- 곤란함은 절대 생각만큼 사소하지 않다.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무게감이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 넘어져서 곤란해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당신은 당연히 다쳤을 거라는 생각에 움찔 놀랄 것이다. 이에 비해 사회적 관계에서 곤란함은 뭔가 잘못되고 누군가 실패하는 걸 암시하는 징조다. 당신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지나치게 많다면 결국 거부당하거나 고립될 위 험성이 높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그런 거부가 신체적 고통과 유사한 사회적 고통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고통은 어떤 면에서는 신체적 고통보다 훨씬 극심하다. '돌멩이와 막대기는 내 뼈를 부러뜨리겠지만 말은 결코 날 해치지 않아'라는 문구와 달리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경험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신체적 고통의 기억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적 고통을 유발하는 요소가 가득한 지뢰밭 사회 를 살고 있다. 사람들의 행동을 끌어내고 규제하는건 법과 규범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법률이나 금지규정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보다 행동을 근본적으로 결정짓는 건 문화를 지배하는 절대적 기준들이고 그것을 감시하는 건 사회적 평가임. 소셜 미디어의 추문은 사회적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경우임. 하지만 그외 온라인 밖의 일상에서도 우리는 오래받거나 비판적 시선에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 도덕 철학에서는 죄책감이 수치심 에 비해 좀 더 성숙하고 진화한 형태의 도덕적 사고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죄책감의 경우 일반적인 기준에 얽매이기보다는 타인에게 초래된 피해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는 특징도 있다. 그 결과 피해를 보상할 만한 조치를 취하고자 애쓰게 되는 것이다. 반면 수치심은 자신의 흠결에만 주목하게 만들어 타인에게는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 전쟁 도중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귀환한 군인이 있다고 가정 해보자. 그가 자신의 행동에 수치심이 아닌 죄책감을 느낄 때 회복 가능성은 더 커진다. 만약 오롯이 수치심만 느낀다면 해 당 기억을 철저히 묻어두고 싶은 마음에 관련된 얘기를 전혀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죄책감을 느낀다면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진실을 털어놓고 보상하고자 할 것이다. 수치심에 휩싸인 개인 혹은 국가가 있다면 그 감정을 죄책감으로 변화시켜 속죄하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 간접 화법을 쓰는 이유 세 가지
1. 부인할 수 있는 그럴 듯한 소지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 Thomas Schelling은 대화 상대를 확신할 수 없는 경우 외교술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을 사상 최초로 제기했다. 즉, 상대방이 당신의 필요나 동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면 신중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2. 관계의 종류
간접화법은 다양한 유형의 관계에 두루 대처하는 데에도 필요하다. 과카몰리를 건네달라고 온갖 사족을 붙여 요구하는 건 친구에게 명령조로 말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3. 상식
간접화법이 쓰이는 또 다른 이유는 상식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는 공유된 지식과 엄연히 구분된다. 공유된 지식은 나와 당신이 어떤 사실을 공통적으로 알고 있지만 당신이 아는 것과 내가 아는 것이 같은지는 알 수 없을 때 성립된다. 여기서 당신이 아는 게 내가 아는 것이라는 지점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복적 폭로를 거쳐야 한다.
-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이 이미지를 관리하는 방식 에는 흥미로운 차이가 존재한다. 두 부류 모두 자신을 포장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후자가 더 빛나고자 노력한다면 전자는 나쁜 인상을 남기지 않는 데 급급하다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 로이 바움에이스터 Roy F. Baumeister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은 이들은 실패하거나 거절당하지 않고 창피함이나 수치심을 피하려는 욕구가 가장 크다면 자존감이 높은 이들은... 더 큰 명예와 명성을 누리려는 욕구가 강하다”. 자신이 가진 멋진 깃털 에 집중하는 대신 지저분한 발을 숨기기 위해 노력한다면 장기 적으로 자신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갖게 될 확률이 높다. 반대 로 다른 이들과 공통적으로 지니는 속성들을 인정하면 자존감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자기계발서나 비즈니스 서적에서 제시하는 조언과는 반대다.
-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생각을 적게 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C.S.루이스, 소설가)
-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건 트럼프, 청중 및 경호대가 집단적으로 위협에 노출된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정체성 축제'를 벌인 덕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자리의 각종 매체들 역시 적들의 첩자라는 조롱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 현 장에 있었던 한 기자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트럼프는 유세장 뒤편에 자리한 기자석을 향해 그가 본 중 가장 역겹고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몰아세웠다. 심지어 그들에 대한 경멸과 조롱을 온몸으로 표현하면서 지지자들에게 다 함께 돌아서서 쏘아보도록 주문했다. 트럼프의 신호에 따라 청중들은 일제히 돌아서서 야유를 보냈다. 그 순간 분위기는 완전히 역전됐다. 기자들 및 기득권층은 더 이상 강력한 세력이 아니었다. 트럼프의 영토에서 이들은 위협에 시달리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유세장은 적들을 물리치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능력을 과시하 는 현장이 되었고 트럼프가 제시하는 희망이 실현될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레이처와 해슬람은 트럼프에 대해 자신을 지지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내세운다고 분석한다. 엄청난 부와 지저분한 사생활을 감추려 들지 않을 뿐더러 굳이 소박한 척해서 ‘우리’에 편입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재력과 무례함을 더 드러냄으로 써 지지자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개인적으로 뭔가 얻을 게 있어서 대선에 출마한 게 아님을 보여준다. 결국 '평범 한 미국 시민'이라는 내집단의 '원조'임을 자처해 '사기꾼 집단 에 지나지 않는 전형적 정치인들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트럼프 현상에 대해 설명한 이유는 명성을 획득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말하 기 위해서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가 무려 610만 명이 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찍지 않았고 심지어 트럼프라면 치를 떤다는 사실은 명성이라는 게 관객에 따라 얼마나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 공존이 불가능할 것 같은 이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갖춘 인물을 알고 있다. 인기 영화의 영웅 캐릭터가 그 대표적인 인물로 이야기의 고전적 전개 방식은 이렇다. (대개는 남성인) 영웅들에게는 (현재의 기술과 경쟁력을 갖게 해주었지만) 후회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과거가 존재한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 일에 관여하거나 문제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은 채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만 어느 순간 악당들이 그를 도발한다. 그를 세상밖으로 끌어내거나 혹은 무고한 사람을 해치려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서사에 따르면 사건이 벌어지기 전 주인공은 항상 선량한 인물로 비춰진다. 하지만 악의적 도발로 인해 내키지 않는 마음을 뒤로하고 묵혀 뒀던 재능을 끄집어내 악당들을 가뿐하게 물리친다. 그러면서 악당들에게 입었던 손해를 고스란히 돌려준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처음엔 마냥 선량했던 주인공이 엄청난 능력을 갖춘 인물로 거듭나는 한편 처음의 선량함 역시 끝까지 잃지 않는 모습을 목격한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이렇게 전형적인 영웅 신화를 통해 선량함과 경쟁력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모두 달성하는 인물을 보여준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했던 월터 화이트와 달리 이들 영웅은 주어진 두 가지 속성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 심리학자들은 이미 지니고 있는 강점으로 인해 다른 부분들 까지 함께 빛나 보이는 후광 효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타인의 특징들에 대해 규정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워렌 하딩 Warren G. Harding 미국 전 대통령은 실제 자질만 놓고 보면 자격 미달이 분명하지만 '대통령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당선된 대표적 사례에 해당된다. 명성, 부, 훌륭한 외모, 큰 키 등의 요소는 다른 평가 지표들을 하찮아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갖는다.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괴짜 같은 면모가 있으면 비호감이 되지만 높은 지위의 사람이 괴짜라면 특 별하고 심지어 매력적으로 비춰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렇게 장점이 많은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이미지 관리를 한다고 비난 받을 확률이 낮다. 신뢰성은 갖추려고 굳이 노력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더 쉽게 주어진다. 여기서 대부분 사람들의 평판을 결정짓는 대다수의 요소가 개인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며, 평판을 높이려 고 노력하는 게 빤히 보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잔인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심지어 타인을 좀 더 가까이에서 세심 하게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성급한 추측을 떠벌리 는 사람들을 보면 씁쓸함은 더 커진다.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부에 못지않게 명성 또한 불평등하고 부당하게 주어진다. 물론 개개인의 실력, 자질과 동기에 따라 결정되는 면도 있지만 이들의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운과 타이밍이 오히려 더 크게 작용하는 데다 이아고의 말대로 아무 근거 없이 주어지기도 하고 날아가기도 한다. 결국 평판이라는 것은 당신을 평가하는 관객들이 부여하는 것이고 이들 관객에게는 각각의 편견과 오류가 존재한다.
- 우리는 천 가지 종류의 삶을 살아갈 장비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결국 단 한가지 삶밖에 살지 못한다.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
- 의도가 아닌 결과로 평가하는 세상은 모든 시대에 걸쳐 불만을 낳았으며 선행을 크게 저해한다. (아담 스미스)
-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Jean Piaget는 어린 아이들의 경우 다섯살 정도까지는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많은 실험 결과 그렇게 어린 나이에는 이른바 '마음의 이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아이들은 같은 상황을 봐도 다른 사람들의 관점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 나이쯤에는 모든 걸 결과로 판단하는 첫 번째 체계만 발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실수로 가해진 피해라고 해도 의도된 것만큼이나 가혹하게 평가한다. 좀 더 자란 뒤에야 두 번째 체계가 발달해 타인의 의도와 마음이라는 것을 해석할 수 있고 초래된 피해 역시 전후 상황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합리화 능력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처벌하고 싶은 본능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뿌리가 상당히 깊기 때문이다. 때문에 진화론적으로도 훈육할 때 아이들의 잘못이 실수였든 고의였든 상관없이 무조건 처벌하는 게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아이가 우유를 쏟았다고 가정해보자. 고의성과 상관없이 부모가 그 행위에 대해 혼내는 것으로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게 나쁜 행동이라는 설명을 부모가 제대로 할 수 없을 때에는 처벌이 훨씬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 결과로 인해 처벌을 받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배워 나간다
- 우리의 두뇌 구조는 왜 이리 이상한가? 지난 5백만년에 걸쳐 인류의 두뇌가 세 배로 커지는 사이 언어는 물론 추론 능력까지 발달했는데 왜 내적 판사나 과학자가 아니라 변호 사가 생겨났다는 말인가? 우리 조상들이 가장 크게 애써왔던 게 진실 규명이 아니었나? 이는 인간이 각자의 평판에 더 신 경 쓰도록 진화했으며, 타인에 대한 평가를 논리나 증거에 입 각해 변화시키는 건 항상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학자 필립 테틀록 Philip Tetlock은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이 평가하고 예측하는 과정을 면밀히 살펴본 뒤 확증적 사고가 탐 구적 사고를 항상 이긴다고 결론 내렸다. 지금껏 봐온 것처럼 확증적 사고가 가정을 확인시켜 줄 증거를 찾는 경향이라면 탐 구적 사고는 취향과 상관없이 무조건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다. 테틀록에 따르면 탐구적 사고가 확증적 사고를 이기는 경우는 다음의 세 가지 상황뿐이다.
1. 결정을 앞두고 관객을 책임질 의무가 당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2. 관객의 견해를 알 수 없을 때
3. 충분한 정보를 입수한 관객이 정확성을 중시한다고 믿을 때
- 삶에서 새로운 상황에 놓이거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 으레 과거의 편견이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온갖 선입견을 투영하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선입견을 하나씩 거둬들이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떨 것 같다고 막연히 상상했던 연막을 거둬내고 그 자리에 실제 그 사람을 채워가는 일이다. (안소니 스토르, 브라이언 매기의 『칼 포퍼』)
- 인간은 훌륭한 도덕적 장비들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지만 이를 대개 잘못 사용한다는 점에서 비극이 시작되고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애처로운 신세로 전락한다. (로버트 라이트, 도덕적 동물)
- 나는 모든 이들의 평가를 귀담아 듣는다. 하지만 기억나는 한 지금껏 내가 따른 건 나 스스로 내린 평가뿐이다. (미셸 드 몽테뉴)
- 인간은 독특한 동물이다. 앞 장에서 인간이 자신들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순진한 현실주의에 빠져 스스로를 합리적 개인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물에서 헤엄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려 애쓴다. 그런데 만약 직시하지 못하면 약간의 의식적 사고 밑에서 거대하게 이루어지는 무의식적 작용 역시 무시하게 된다. 심리학 분야에서 백여 년간 연구가 계속된 끝에 프로이트는 두뇌의 주인이 자아가 아니라는 결론을 얻어냈다. 앞에서 살펴봤듯 내재적 선입견, 인식적 망상과 도덕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또 사고하는 이유를 스스로 분명히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세기 전 플라톤 시대 당시 많은 이들이 이성과 감정의 관계,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인간의 평가에 어떻게 얽혀 있는지에 관해 논의를 벌였다. 한편에서는 평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이성이라고 결론지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데이비드 흄과 같은 사상가들이 “이성은 항상 열정의 노예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사람들은 평가의 세계에서 벗어나길 원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갇힌 채 서로 충돌하는 동기와 부분적 인식을 바탕으로 나름의 평가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자아에는 소속 된 사회와 인간관계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서 늑대 소년은 명칭 자체도 모순될 뿐더러 현실성도 없는 존재로 다가온다. 인 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문화를 행동을 조정하기 위한 통제 체계로 묘사했다. 여기서 인간이 그와 같은 족쇄 를 벗어던지고 싶어하는 이유가 더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기어츠에 따르면 거의 모든 다른 동물들은 통제 체계가 생물학적으로 입력되어 있는 데 반해 인간은 모글리의 경우 처럼 후천적으로 학습된 문화에 '필사적으로 의존하며 특정한 사회 환경 내에서만 스스로를 완성할 수 있다. 그래서 문화의 굴레에서 벗어난 인간은 새처럼 자유롭기는커녕 쓸데없는 본능과 보잘 것 없는 정서 및 지능을 가진 '덩치만 큰 무용지물의 존재가 되고 말 것이라는 게 기어츠의 결론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동물 세계 사이의 균열은 메우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비트겐슈타인 역시 이 점을 인지하고 “만약 사자가 말할 수 있 다고 해도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누가 보고 있든, 어떤 생각을 하든 상관없 이 평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닦겠다는 반항적 욕구를 향해가는 것이다. 주위를 살피며 동의를 구하는 일 없이 자신만의 계획을 추진할 때에만 좋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더 명확해진다. 자유를 너무 성공적으로 추구하면 관객들의 시야에서 아예 벗어나게 되는 만큼 다시 돌 아와 이들을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는 복잡하고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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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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