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제학

인문 2020. 7. 29. 08:26

- 정치 저술가들이 하나의 금언처럼 받아들이는 명제는 어떤 형태의 정부 체계를 모색하더라도 (...) 사람들은 모두 부정직하며 그들의 행동 목적은 오로지 사익의 추구에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익을 수단으로 삼 아 사람들을 통치해야 하며, 이익을 수단으로 삼아 그칠 줄 모르는 탐욕과 야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공익을 위해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 따라서 모든 사람이 부정직하다고 가정해야 한다는 것은 단지 일 종의 정치적 금언일 뿐이다. 실제로는 거짓인 이 금언이 정치에서는 참이 어야 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데이비드 흄, 《에세이: 도덕, 정치 그리고 문학》(1742))
- 내가 주장하려는 바는 법을 설계하거나 정책을 수립하거나 사업체를 조직하려고 할 때,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시민·피고용인·학생·채무자의 행위 모델로 삼는 것은 결코 신중한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패러다임에 따라 정책을 펴면 도덕적 무관심과 이기심이라는 가정을 점점 더 사실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유인이 없을 때보다 유인이 있을 때 훨씬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곤 한다.
둘째, 벌금이나 보상 같은 물질적 인센티브가 때로는 잘 작동 하지 않기 때문이다. 흄이 주장하는 대로 부정직한 사람의 탐욕을 이 용할 수 있도록 아무리 정교하게 인센티브를 설계하더라도, 인센티 브만으로는 좋은 거버넌스가 확립될 수 없다. 내 주장이 맞다면, 광범위하고 잘 정의된 사적 재산권의 확립, 시장경쟁의 강화, 금전적 인센티브를 통한 개인 행동의 유도 등 경제학자들이 선호하는 정책은 좋은 거버넌스에 필요한 윤리적 동기나 그 밖의 사회적 동기를 해치는 의도치 않은 문화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 나는 시장경제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이런 정책들이 이기심을 부추길 뿐 아니라, 협력적이고 관대한 시민문화를 견고하게 유지해주는 사회적 수단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 을 보이려고 한다. 이런 정책들은 시장이 작동하는 데 필수적인 사회 규범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대출을 신청할 때 자기 자산과 부채 상황을 정직하게 적어내는 것, 약속을 잘 지키는 것,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 일상적인 미덕도 이른바 몰아냄 효과 crowding-out라 불리는 문화적 재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시장과 같 은 경제제도는 이런저런 규범이 부재하거나 위태로울 경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특히 오늘날 같은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사회규범이라는 문화적 토대가 필요하다. 이런 규범 중 하나가 '악수는 말 그대로 악수handshake is indeed handshake 라는, 즉 약 속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는 확신이다. 누군가 이를 의심하는 순간, 그 불신 때문에 교환을 통한 상호 이득의 창출은 제한될 수 있다.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완벽한 작동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는 정 책이 오히려 시장의 작동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역설은 시장을 넘어 서는 곳에서도 적용된다. 이런 정책을 편 결과, 시민의식이나 사회규 범을 준수하려는 사람들의 내적 욕구가 고갈되어 미래에 더 나은 정 책을 수립할 여지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축소될 수 있다. 일부 경 제학자들은 아주 먼 과거에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시장을 창조한 것 으로 상상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도덕적 무관심과 이기심의 확산은 경제학자들이 이상적이라고 말할 법한 그 런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 정책입안자는 몰아냄 효과와는 정반대 효과를 가져오는 정책을 찾아낼 수 있을지 도 모른다. 어떤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에서라면 인센티브와 처벌이라는 전통적인 정책 수단이 시민들의 윤리적이거나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고, 그 결과 법적 제약과 물질적 유인의 효과를 높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법과 도덕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의 기원은 적어도 2000년 전 호라티우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법적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죄책감을 토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도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송가》 3권 24번) 호라티 우스는 법과 도덕이 함께 작동하는 것이 질서 잡힌 사회에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 경제학자들의 일반적인 가정과 달리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먼 미래까지 고려하지 않으며 계산에 능하지도 않고 일관적이지도 않다. 나아가 사람들은 현상유지 편향을 보이며 미래의 서로 다른 시점에 놓인 대안들 간의 선택에서 일관성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편향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교육받은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학자들이 계산 착오라 할 법한 행위를 지속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일어날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0보다 크면 그 사건을 확실히 일어나지 않을 사건과 전 혀 다른 것으로 취급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만큼 경제학자들의 존경을 받는 심리학자 카너먼은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근시안 적이며, 미래 자신의 취향을 예측하는 데 서툴고, 기억의 오류와 과 거 경험에 대한 정확하지 않은 평가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 다”고 말했다. 경제학자들은 선택 행위를 모든 인간 행위의 중심에 놓는데, 이제 경제학자들도 사람들이 그다지 선택에 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 보스턴 시 소방청장은 소방대원들의 병가가 이상하게도 월요일과 금요일에 몰려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는 2001년 12월 1일자로 무 제한 유급 병가제도를 폐지했다. 그리고 연간 유급 병가 일수를 최대 15일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하면 그만큼 급여에서 삭감하도록 했다. 소방대원들은 이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 병 가 신청 건수는 전해보다 열 배 증가했다. 소방청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보복조치로 소방대원들에게 지급하 던 휴가 보너스를 폐지했다. 소방대원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듬해 소방대원들이 신청한 병가 일수는 총 1만 3431일로 아무런 제한이 없던 전해의 6432 일보다 늘어났다. 많은 소방대원이 새로운 제도에 모욕감을 느꼈고, 이에 제도를 남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들은 앞서 자신들이 갖고 있던 윤리의식, 즉 부상을 당하거나 몸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공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 시민들에게 좋은 습관을 심어주는 것이 입법자의 임무라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으로부터, '악한 사람'을 가정하며 경제적 거버넌스와 법을 강조하는 시스템적 사고로 초점이 전환되는 긴여정은 16세기 니콜로 마키아벨리에게서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부패'라 부 른 현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사회 관습을 세우는 데 관심이 있었 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2세기 뒤에 등장할, 사람의 부정직함에 대 한 흄의 언급(이 책의 앞머리 인용글)을 예고하는 듯한 문장에서 아리스 토텔레스와는 다르게 권고한다. “공화국을 수립하고 법을 제정하려는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이 악하며,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결코 좋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배고픔과 가난이 부지런한 사람을 만들며, 법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고들 한 다.” 11 ‘법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은 입법자가 대 중에게 습관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 언뜻 비 슷하게 들린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모든 사람이 악하다'는 표현에서, 선하다 ‘buoni'라는 말과 사악하다 ‘rei’라는 말을 사람의 됨됨이가 아닌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는 20세기 경제학자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이런 사고의 기원을 16세기 피렌체에서 찾는다. “경제주의 economism는 발전한 마키아벨리즘이다. 스트라우스가 경제주의라고 지칭한 사고의 기원을 마키아벨 리의 저서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키아벨리는 이기적(“부패한) 시민들로는 좋은 거버넌스가 형성될 수 없다고 본 점에서 대부분의 현대 경제학자들과 거리가 있고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 가까웠다.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법이나 명령만으로는 부패가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억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좋은 관습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한 것처럼, 법이 준수되기 위해서는 좋은 관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법이 두 가지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하나는 개인의 이기심이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활용될 수 있도록 인센티브와 제약을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이 효력을 발휘하는 데 필 요한 좋은 관습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덕성의] 좋은 사례들은 좋은 교육으로부터 나오고, 좋은 교육은 다시 좋은 법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정확히 이 책 마지막 장에서 제시하려 하는, 좋은 법과 좋은 관습이 서로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가 되도록 할 수 있는 시너지 지향적 정책 패러다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 그로부터 2세기 뒤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버나드 맨더빌 Bernard Mandeville 의 《꿀벌의 우화》가 전달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바로 이 런 사고의 급진적인 형태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이 괴짜 런던 의사 는 자신의 책에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미덕은 필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맨더빌의 벌집은 부도덕한 탐욕과 시샘 어린 경쟁 위에서 번성했고, 꿀벌들이 도덕적으로 변하자 붕괴 와 무질서가 뒤따랐다. (물론 당시 맨더빌은 지구상에서 가장 협력적인 꿀벌 종의 개체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램화되어 있다는 사실 을 알았을 리 없다.) 절약의 미덕이 상품 수요를 줄여 경제적 붕괴를 초 래할 수 있다는 맨더빌의 통찰은 케인스 경제학의 기초였던 절약의 역설을 예고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꿀벌의 우화》 1714년도 판 표지에는 이 저서가 “인간의 약점들이 시민사회의 장점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도덕적 덕성을 대신하도록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 담론"을 포함한다고 쓰여 있다. 맨더빌은 결론부에 “무리 중에서 가장 악한 놈마저도 공공선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고 적었다. 맨더빌은 《꿀벌의 우화》가 전하는 교훈을 독자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에 대비해 산문체 주석까지 달았다. “굶주림이나 갈증, 헐벗음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첫 번째 폭군이다. 다음으로 우리의 자부심, 게으름, 관능적 욕구, 변덕스러움은 모든 예술과 과학, 무역, 수공예 그리고 소명을 발전시키는 위대한 후원자들이다. 또한 필요, 탐욕, 질투, 야망이라는 위대한 감독관은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끊 임없이 노동하게 하고, 그들 대부분이 기꺼이 자신에게 주어진 고역 을 받아들이게끔 한다. 여기서는 왕과 왕자도 예외가 아니다. 맨더빌이 보기에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과 달리 “일상적인 기질이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인간 사회에서 결코 자연발생적이지 않다. 마키아벨리가 좋은 정부의 기초를 법을 집행하는 인간의 능력에서 찾았던 것처럼, 맨더빌은 좋은 정부의 기초를 “사적인 악”을 “공적인 이익” 으로 전환할 수 있는 “숙련된 정치가의 능수능란한 관리" 에서 찾았다. 좋은 법이 좋은 시민을 만든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대조적으로, 맨더빌은 우화를 통해 올바른 제도가 비천한 동기를 잘 활용함으로써 고상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연금술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은 애덤 스미스의 몫으로 남겨졌다.
- 고전학파 경제학자들(그리고 이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간과한 사실은 이기심을 이용하고자 설계한 인센티브 제도가 도덕적 행위를 비롯한 친사회적 행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아마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케네스 애로 Kenneth Arrow 는 리처드 티트머스Richard Titmuss의 저서 《선물관계: 헌혈부터 사회정책까지 The Git Relationship: Froma Human Blood to social Polic)》에 대한 비평 논문에서 “혈액이 거래되는 시장이 형성된다고 해서 왜 헌혈 행위에 내재한 이타 주의가 감소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최근까지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이 질문의 답이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굳이 대답할 필요 도 없다고 생각했다. 애로에게 이 문제는 “경험상의 문제일 뿐 경제학의 제1원리를 재검토해야 할 문제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첫 번째 원리는 인센티브와 도덕이 가산적이며 분리 가능하다는 가정이다. 가산적이며 분리 가능하다는 것은 원래 수학 용어로 한 요소의 변화에 따른효과가 다른 요소의 수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요소가 가산적이며 분리 가능하면 두 요소 간에는 시너지 효과(각 파트별로 분리되어 노래하는 것보다 듀엣이 더 나은 것처럼, 각 요소가 다른 요소의 효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효과)도 발생하지 않고 그 반대의, 즉 역의 시너지 효과도 발생하지 않는다. 분리 가능성 가정에 대해서는 이후 장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우리는 이미 이 가정이 성립하지 않는 사례를 살펴보았다. 보스턴 시민에 대한 소방관의 의무감과 그들의 급여에 대한 이기적 관심은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후자만을 고려한 정책이 전자를 약화시켰다. 이 경우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작았다. 이 기심을 가정한 정책 패러다임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가능성이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다 보면, 앨리스가 경제학자의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기는 장면이 나온다. 공작부인이 “오, 사랑이여! 이 사랑이야말로 세상이 돌아가도록 하는구나"라고 외쳤을 때, 앨리스는 혼잣말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모든 사람이 자기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지” 라고 했다. 어떻게 자기 일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 사랑을 대신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법질서를 고민할 때 벤담이나 흄, 스미스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던진 고전적인 질문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정책 당국자들이 떠받드는 성배에 담긴 내용이기도 하다. 이때 문제는 사람들 이 개인적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적절하게 고려하게끔 하는 법과 공공정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 20세기 초 앨프리드 마셜 Alfred Marshall과 아서 피구 Arthur Pigou는 시장이 실패하는 경우에도 가격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내부화하도록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 쳤다. 계약이 불완전할 경우, 다른 사람에게 환경상 피해(외부불경제) 를 입히는 산업에는 조세를 부과하고, 노동자에게 직업훈련을 제공 하는 기업에는 그곳 노동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직할 때 다른 기업이 이로부터 혜택을 얻게 될 것이므로 이를 반영해 보조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존스 씨는 브라운 씨에게 제공한 꿀벌의 수정 서비스 가치만큼 보조금을 받을 것이고, 이렇게 받은 보조금 수입을 합하면 이제 존스 씨는 벌꿀 생산이 창출하는 사회적 총편익만큼 수입을 얻는 셈이다. 최적 조세와 최적 보조금을 부과한다는 것은, 경제행위자의 행동으로 타인에게 초래되는 편익과 비용이 그 행위자 의 사적 수입이나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 그 행동이 타인에게 혜택을 주면 그만큼 행위자에게 보상해주고, 반대로 타인에게 비용 을 초래하면 그만큼 세금 형태로 행위자가 부담하게 하는 것을 의미 한다. 한 가지 사례로 환경세를 들 수 있다. 환경세는 오염물질을 배출 한 사람에게 환경적 파급효과를 초래한 만큼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세금이다. 이런 정밀한 인센티브를 실현할 수 있다면 정확하게 벤담이 말한 “의무와 이해의 결합 원리”를 실행하는 것이 된다. 결국 이기심과 공적 목표가 일치하도록, 개인의 행동에 따르는 물질적 인 센티브를 변화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셜이나 피구 그리고 이후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최적 조세와 보조금은 말하자면 완전한 계약의 대체재라 할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손이 미치는 범위를 보이지 않는 손 정리의 가정이 어긋나는 경우로까지 확장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적으로는 조세와 보조금을 통해 모든 중요한 것에 가격을 매길 수 있으며 또한 그 가격이 적정하도록 만
들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정책입안자 입장에서 시민들이 선한 사람처럼 행동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개인이 자기만 고려하더라도 자기 행동에 영향받는 상대방을 고려하는 것처럼 행동하도 록 인센티브와 제약을 제공하는 것을 정책수립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현명한 정책입안자란 사람들의 도덕심을 고양하는 역할을 맡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입법자라기보다는, 시민들이 선한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적절한 법을 시행하는 역할을 맡은 마키아벨리적 공화주의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존스 씨의 꿀벌과 브라운 씨의 사과나무 꽃 같은 목가적인 사례는 경제학자들이 불완전 계약에 대해 강의할 때 자주 인용하는 사례다. 교과서는 공공재의 대표적 사례로 등대를 든다. 등대의 불빛은 어느 한 사람이 볼 수 있다면 모두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완전계약이라는 문제는 그저 경제 영역의 주변부에서나 발견되는 현상 은 아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 문제는 노동시장이나 신용시장 그리고 정보시장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의 주요 영역에 만연해 있다.
- 애로는 '보이지 않는 손 정리'를 설명하는 논문에 이렇게 적었다. “신뢰가 부족하면 협력을 통해 서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규범을 포함한 사회 적 행위 규범은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사회적 대응일지도 모른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계약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가격이 도덕을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도덕이 가격의 역할을 대신해야 할 때가 있다. 애로가 주장한 핵심은 사회규범이나 도덕 규칙을 통해, 개인 행동 이 타인에게 초래하는 편익이나 비용을 내부화하는 효과가 있다면 시장실패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경제를 구성하는 주요 시 장, 즉 노동시장 · 신용시장 · 지식시장 등이 계약의 불완전함 속에서 도 비교적 잘 작동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사회규범이나 타인을 고 려하는 동기가 긍정적인 노동윤리, 자신이 추진하려는 프로젝트 내용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 약속을 지키려는 책임감 등을 장려하기 때문이다. '도덕경제'라는 말은 결코 형용모순이 아니다.
-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적 입법자들이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기 ”을 가진 사람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공화국이 되도록 거버넌스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가 정해야 한다는 루소의 권유(그리고 그로부터 4세기 후의 메커니즘 디자인)를 두 세기 이상 앞서 예고한 것이다. 이런 주장이 어떻게 정책이 수립되고 법이 집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 이해의 지평을 넓혀준건 사실이다. 하지만 맨더빌을 시작으로 이후 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런 생각이 급진적으로 확장된 데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 오늘날에도 내가 속한 학문 분과의 학자들은 개인의 선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인센티브 제도를 영리하게 설계하면 도덕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시민이 공익에 이바지하도록 행동하게 할 수 있다고 과신한다.
-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윤리적이고 타인을 고려하는 동기는 사 회가 잘 유지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아니, 그 역할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이런 사실을 무시한 채,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선호가 어떤지를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수립한다면 인간이 가진 소중한 성향을 훼손할 수 있다. 따라서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은 소방청장이 처벌이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했을 때 소방관들의 대응이라든지, 하이파의 어린이집에서 벌금을 부과했을 때 어린이집에 더 늦게 도착한 부모들의 행동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 강의실 칠판에 펼쳐진 경제학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도 있다. 백악관에서 초과그무 수당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 정책은 셸링을 비롯한 보좌관들이 토요일에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에서 대학 입학 자격 시험에 응시해 통과하면 상당한 지원금을 제공하는 정책'을 실시했을 때에도 남학생에게는 정책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으며, 여학생에게도 거의 효과가 없었다. 학업 성적이 좋은 일부 여학생에 게만 효과가 있었는데, 이들은 이미 성적이 좋아서 시험만 치른다면통과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었다. 미국 도시에 소재한 250개 학교를 대상으로 학업성취도 시험 성적에 따라 대규모 현금 지급 정책을 실시했을 때도 정책 효과는 거의 없었다. 학생들이 예컨대 독서 같은 자기학습을 더 열심히 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 역시 그 효과가 미미했다. 흔치 않은 자연실험 사례가 하나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병원이 불필요하게 입원 기간을 늘리지 못하도록 일종의 벌금을 부과한 적이 있는데, 이 제도는 기대에 반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 영국에서는 병원의 이윤과 손실 계산에 영향을 미치도록 인센티브를 설계하는 대신, 병원 경영자의 수치심이나 자부심을 일깨우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환자들의 입원 기간이 대폭 감소했다.
- 인센티브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사실 자체가 체험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그 효과를 '몰아냄의 범주적 효과 categorical crowding Out'라고 한다. 그리고 인센티브의 크기가 체험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그 효과를 '몰아냄의 한계적 효과marginal crowding out'라고 한다. 앞으로 보겠지만, 인센티브가 개인의 체험가치를 증가시키는 '끌어들임 효과'도 마찬가지로 범주적 효과와 한계적 효과로 구분할 수 있다.
- 마키아벨리는 이기적인 사람도 '선한 사람처럼 행동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고안하려 했다. 흄은 부정직한 자들의 '그칠 줄 모 르는 탐욕'을 잘 인도해서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하고 싶어 했다. 이런 주장은 여전히 훌륭한 아이디어로 간주된다. 하지만 부정직한 자들을 전제로 법을 만들면, 그 법이 사람들을 부정직하게 만든다. 그래서 선한 사람도 '나쁜 사람처럼 행동하게 될 수 있다. 이런 경고는 데이비드 패커드 David Packard 같은 성공한 기업인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1930년대 후반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일했다. 회사는 공장 보안에 엄청나게 신경 썼다. (...) 노동자들이 도구나 부품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보안 장치를 설치해 도구와 부품 창고 경비를 강화했다. (...) 기업 측이 이렇게 노동자에 대한 불신을 공공연히 드러내자, 노동자들은 마치 회사의 불신이 사실임을 입증하려는 듯 감시가 소홀한 틈을타 도구와 부품을 슬쩍 빼돌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휴렛팩커드를 창립했을 때,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공장의 부품 창고를 언제나 열어놓기로 했다. 이 조치는 두 가 지 면에서 회사에 도움이 됐다. 상품 개발자나 노동자가 도구와 부품 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 혹은 주말에 회사에 나와 자신 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해볼 수 있었다. (...) 그리고 부품 창고를 열어놓는다는 사실 자체가 신뢰의 상징이 됐는데, 신뢰야말로 휴렛팩 커드 경영의 핵심 요소였다.”
-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보상 없이도 행동 자체로부터 만 족을 얻고 있을 때 인센티브의 도입이 행동을 과잉 정당화할 수 있 으며, 인센티브가 부여됨에 따라 개인들은 스스로를 더 이상 자율적 존재로 여기지 않게 될 수 있다고 한다. 1장에서 언급한 실험 사례를 떠올려보자.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경우, 어른이 손을 뻗어 닿지 않는 물건을 집는 것을 도와줬다고 장난감을 상으로 주면, 상을 받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이후 어른을 덜 돕게 되더라는 이야기 말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 다. “보상이 주어지고 나면, 아이들은 예전에는 그 자체로 충분한 목적일 수 있었던 행동을 단지 더 가치 있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돕고자 하는 내재적 동기가 감소한다. 그리고 이제 보상 자체가 충분치 않다고 느끼면 도움주기를 그만둘지도 모른다.
- 인센티브가 때때로 의도치 않게 메시지 역할을 한다는 이론이 말하듯, 팔크와 코스펠트의 실험에서 주인의 하한선 부과는 대리인에게 주인이 대리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달해주는 정확한 정보였다. 실험 후 참가자들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대리인 역할을 맡았던 이 들 중 다수가 하한선 부과가 주인이 자신을 불신한다는 신호였다는 데 동의했다. 또한 주인 역할을 맡았던 참가자들 중 하한선을 부과하 기로 결정한 이들의 경우 실제로 대리인에 대한 기대감이 낮았다. 주 인이 이렇게 대리인을 불신하여 대리인의 선택을 통제하려고 시도 한 경우 (하한선 수준이 상·중·하로 각각 결정되어 있던 조건 모두에서) 절반 이상의 대리인들이 부과된 하한선에 딱 맞춰 노력 수준을 선택했다. 대리인들은 이렇게 대응함으로써 주인들이 가졌던 최초의 비관주의를 실제로 확인시켜준 셈이다.
- 이렇게 이야기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입법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 향으로 전개되었다. 통제 기피를 확인해주는 실험의 구체적이고 세 세한 결과들을 살펴봄으로써 사회 전반에 대해 갖는 함의를 찾아보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적 입법자는 이제 골치 아픈 고민거리를 하나 갖게 되었다. 만일 현실 경제에서도 대부분의 고용주가 자신의 노동자를 믿지 못한다면, 그런 고용주는 실험에서 하한선을 부과했던 것처럼 보상과 감시 위주의 정책을 펴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실험에서 그랬듯이 최소 요구 조건만을 가까스로 충족시키는 식의 노동자들 반응에 직면할 것이다. 그리고 고용주들은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태만함을 지켜보며 그들이 최초에 갖고 있던 암울한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 그린은 옳고 그름 Moral Tibes: Encotion, Reason, and the Gap Between US and Then》이라는 책에서 인센티브와 도덕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 틀을 제공했다. 첫째, 숙고의 과정은 결과에 기반하고(철학자들 용어에 따르자면 '결과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반면, 정서적 과정은 의무나 일련의 규칙에 순응하는 등 비결과주의적(철학자들 용어에 따르자면 '의무론적 판단을 관장한다. 둘째, 이런 행위 방식들은 각각 상이한 뇌 영역, 즉 하나는 (숙고적인) 전두엽 prefrontal cortex의 활성화와 관련 있 고, 다른 하나는 (정서적인) 변연엽limbic system의 활성화와 관련 있다. 뇌과학적 증거들을 두고, 경제적 인센티브가 결과주의적 추론을 전면에 나서게 하며(전두엽의 활성화), 의무론적 판단을 뒷전으로 밀 어낸다는(변연엽의 비활성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만일 이 해석이 옳다면, 그동안 많은 실험에서 확인되어온 몰아냄 효과란 덜 친사회 적인 결과주의적 추론이 때로는(항상은 아니더라도) 친사회적인 의무론적 판단을 몰아내는 효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중과정 이론이 신뢰 게임뿐 아니라 다른 여러 실험에서 나타나는 행동의 근접인을 식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몇몇 증거가 있다. 앨런 산페이 Alan Sanfey 연구팀은 자신들의 이전 실험 결과들을 다음 과 같이 해석한 바 있다.
“최후통첩 게임에 대한 신경 촬영 연구를 통해, 실험 참가자가 불공정 한 제안에 직면할 때 뇌에서 특별히 활성화되는 두 영역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앞뇌섬anterior insula 이고 다른 하나는 배외측 전두엽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dIPFC)이다. 앞뇌섬의 활성화는 감정적 처 리 과정과 연관되고, 배외측 전두엽의 활성화는 숙고적 처리 과정과 연관된다. 섬 부위가 배외측 전두엽보다 활성화되면 그 실험 참가자 는 제안자의 제안을 거부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제안을 수락했다. 이 런 발견은 최후통첩 게임에서 의사결정 과정에 이중 시스템이 작동한 다는 뇌과학적 증거가 된다.”
- 사회적 선호를 둘러싼 이중과정 이론을 신경과학을 통해 규명하려는 시도는 이제 막 발전을 시작한 초기 단계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중요한 언급이 하나 있는데, 바로 로웬스타인과 오도 너휴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숙고적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데, 이런 관심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도덕적·윤리적 원칙에 의해 추동된다. 반면 정서적 시스템은 촉발되는 공감의 정도에 따라, 순수한 이기심과 극 단적 이타성 사이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향할 수 있다. 인센티브가 숙고적 과정을 부각시킨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숙고가 관대한 행동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에이즈 환자들에 대 한 진보주의자들의 태도처럼 말이다. 반면 가난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자아이 사진을 보여주는 것과 그 아이의 처지에 대한 통계수치를 제시하는 것의 효과 차이가 보여주듯, 숙고가 덜 관대한 행동으 로 이어지기도 한다. 숙고가 더 관대한 행동으로 이어질지 덜 관대한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숙고에서 유래하는 관대함이라는 도덕적 명 령(예컨대 벤담식 공리주의 계산)이 정서적 과정에서 관대함을 이끌어내는 감정(공감의 경우)보다 더 강력한지 여부에 달려 있다.
- 시장과 여타 경제제도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 (예컨대 누구와 만나 무엇을 하는지, 그럼으로써 무엇을 얻는지 등)에 따라 장기간에 걸쳐 사회규범과 선호가 형성되고, 이렇게 형성된 규범과 선 호는 삶의 비경제적 영역으로까지 보편화된다. 이런 인식은 오래전 부터 존재해왔고, 이런 관점을 견지한 사람은 마르크스만이 아니다. 왕정주의자였던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대혁명이 “궤변가들과 경제학자들의 시대를 열었다는 사실을 개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 다. “정서적 유대와 관련된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됐다.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 사랑, 존경, 칭송, 유대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해졌다. 삶을 멋지게 치장해줄 휘장이 모조리 찢겨나갔다.” 반면 시장이 가져온 문화적 결과를 한층 우호적인 눈으로 바라 본 이들도 있었다. 몽테스키외 Montesquieu 남작은 “상업이 있는 곳 에서는 사람들이 신사처럼 행동한다”고 했다. 어느 쪽도 경제가 재화·서비스를 생산할 뿐 아니라 사람도 만들어낸다는 생각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선호에 대한 시장의 장기적인 효과에 대해 마르크스, 버크, 몽테 스키외 등이 말하는 바는 우리가 앞 장에서 본 인센티브의 효과와는 상당히 다르다. 앞서 인센티브의 효과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벌금과 보조금이 선호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인센티브가 사람들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그 결과 일부 선호에 주목하며 나머지는 외면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센티브가 사람들이 새로운 취향, 습관, 윤리적 약속, 그 밖의 다른 행위 동기를 습득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르크스나 버크 혹은 몽테스키외의 주장은 이해하기가 좀 더 쉬워진다.
- 식량 저장이 보편화된 사회의 부모들은 그렇지 않은 사회의 부모들에 비해, 아이의 독립성보다 순종적 태도를 훨씬 더 강조했다. 배리 연구팀은 “경제에 대한 정보만으로도 한 사회의 사회화 압력이 순응을 강조하는 쪽으로 이루어지는지 자기주장을 강조하는 쪽으로 이루어지는지를 꽤 정확히 예측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인과관계 의 화살이 반대 방향으로, 즉 자녀 양육에서 출발해 경제적 유형으로 나아갈 리는 없을 것이다. 경제적 유형은 연구 대상이 되는 사회들이 놓인 지리적 여건 속에서 수렵·채취, 목축, 농경을 어떻게 결합해야 생계에 필요한 자원을 가장 잘 조달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
- 수렵·채취 부족, 목축 부족, 전통적 농법(예컨대 원예농법)에 기초해 농경하는 부족을 대상으로 한 우리 연구에서, 시장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집단일수록 제안자가 더 관대한 제안을 했고, 응답자는 적은 몫의 제안을 더 자주 거절하 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집단의 구성원들은 파이를 극도로 불평등하 게 나누겠다는 제안이 왔을 때 수락하기보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받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시장에 가장 덜 노출된 두 집단인 탄자니아의 하드자 수렵·채취 부족과 아마존 유역의 케추아 원예농 부족의 경우, 각각 주어진 파이의 4분의 1과 3분의 1만을 상대 방 몫으로 제안했다. 시장에 상당한 정도로 통합된 인도네시아 라말 레라의 고래 사냥 부족의 경우 주어진 파이의 절반 이상을 상대에게 주겠다고 평균적으로 제안했다. 모든 부족을 고려해보면 우리가 고 안한 시장 노출 지표가 1표준편차만큼 증가하면 최후통첩 게임에서 제안자들의 평균 제안액은 대략 2분의 1표준편차 정도 증가하는 것 으로 나타났다. 인류학자들과 경제학 이외의 사회과학자들이 보기에는 눈살을 찌 푸릴 결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시장이란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메커니즘'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 에르탄 연구팀이 실험을 통해 발견한 것은 다음과 같다. “어떤 집단도 높은 기여율을 보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집단이 기여율이 낮은 사람에게 처벌을 가하는 것을 허용하 는 쪽으로 투표했다. 그 결과 높은 기여율과 높은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었다.” 처벌 시스템을 다수결로 채택하도록 함으로써, 무임승차자에 대한 처벌이 인센티브로서만이 아니라 집단 규범의 신호로 도 기능했음이 분명하다. 이 결과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모집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 험에서, 실험 참가자들 사이에서 처벌이 가능할 때 협력 수준이 높아지는 이유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된다. 인류학자들이 “가문으로 분절된 사회”라고 부르는 사회구조를 생각해보자. 가문은 근본적인 사 회적 단위이며, 공통의 (때로는 매우 먼) 조상을 갖는 가족들로 구성된다. 이런 사회에서 가족은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서로 도움을 구하고 도움을 줌으로써, 닥친 위험을 완화한다. 위험 공유와 재배분에 덧붙 여, 가문은 구성원들의 도덕 교육을 담당하고, 구성원의 행동에 책임을 지며,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이나 외부인을 향해 위반행위를 저질 렀을 때 (필요하다면 처벌과 보상을 통해) 그를 교정할 책임을 진다. 그런데 외부인이 내부 구성원의 잘못된 행동을 처벌하려 한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어서, 그러한 시도 자체가 교정이나 보복을 해 야하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에른스트 겔너ernst Gelliner가 유목민들을 “상호 신뢰하는 친족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이라고 묘사했던 것이 한 예다. 이들에게 가문이란 “강력하고, 자기규제적이며, 자기방어적인, 그러면서도 정치적 참여를 보장하는 집단이다. (...) 이들은 침입 자에 대한 무차별 보복이라는 수단을 통해 스스로를 방어한다. 그리고 내부 구성원들을 스스로 규제한다. 내부적으로는 보복이 일어나 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도덕 교육이나 질서 유지 등 업무를 맡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교육받거나 규칙 준수 여부를 감시당 하고 이에 의거해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서로 혈연관계 가 전혀 없거나 적어도 처음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다. 가문으로 분절 된 사회의 도덕적 코드와는 반대로, 교사, 경찰, 재판관들의 정당성 은 익명적일 때 그리고 이들이 업무상 접하는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 가 없을 때 확보된다. 이들의 정당성은 제복, 학위, 공식 직함에 의해 더 강화되곤 하는데, 이런 지위는 (적어도 이상적으로는) 혈연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이것이 왜 공공재 게임에서 보스턴 실험 참가자들은 평균보다 낮게 기여해 처벌받으면 곧바로 기여를 올리는지, 그리고 왜 같은 조건에서 드네프로페트롭스크 실험 참가자들은 오히려 기여를 줄이는지 (물론 유의미한 정도는 아니지만)를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두 집단 모두 에 더 많이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가 존재하더라도 인센티 브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를 수 있다. 벌금이 부여되면 보스턴 실험 참가자들은 이를 자신이 동료 시민들에게 승인받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는 반면, 드네프로페트롭스크 실험 참가자들은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 가설은 자유주의 사회와 가문 기반 사회에서 사회질서가 유지 되는 방식이 각각 다른데, 그 차이가 실험에서 관찰되는 문화권간 차이를 설명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못했 지만, 내 가설이 맞다면 우리는 자유주의적 시민 덕성의 열쇠를 시장 의 문화적 결과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적인 정치·법·비시장 제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내 가설은 자유주의 사회의 시민문화 를 설명하기 위해 교환 과정 자체에 주목하는 이른바 '달콤한 상업 doux commerce’ 가설이라 불리는 통상적인 설명과는 다르다.
- 사람들은 무임승차를 하면 누구라도 제3자에 의해 처벌될 것이라고 확신할 때, 자신의 희생을 발판 삼아 무임승차자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 현실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너지 효과가 존재한다. 사회규범은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노골적인 위반행위를 정부가 제재하지 않으면 법질서는 쉽게 와해될 수 있다. 이런 시너지 효과는 물질적 인센티브와 도덕적 동기가 대체적이기보다 보완적인 것처럼 나타난 몇몇 실험 결과를 설명해준다. 이때 물질적 인센티브는 도덕적 동기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또한 법치의 등장은, 친인척 혹은 특정 개인들 사이에만 존재하던 신뢰가 일반적 신뢰로 전환된 과정과 동시에 일어났으며 이 두 과정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신뢰의 전환은 야마기시의 신뢰의 해방' 이론과도 맥을 같이한다. 예를 들어 귀도 타벨리니 Guido Tabellini는 일반화된 신뢰가 자유주의적 정치제도의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들에서 번성하고 있음을 보인 바 있다. 유럽 으로 건너간 이민자들로 구성된 대규모 샘플에서 청원 서명이나 시 위, 보이콧 등 정치적 참여와, 자식과 부모를 돌보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감 정도가 음의 상관관계를 강하게 보인다는 사실도 이런 견해에 부합한다. 일반화된 신뢰가 가족 혹은 교구 단위의 규범을 대체해나가는 과 정은 17세기 지중해 무역 시스템의 확장기 동안에도 일어났던 것 같 다. 지중해 무역 시스템에서 가족적이고 공동체적이며 소규모 집단 을 중심으로 작동하던 이른바 집단적 계약 강제 시스템은, 점차 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보편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시스템으로 대체되어갔다. 이는 시장에 기초한 사회가 왜 사회규범을 정의하고 적용하는 데에 높은 수준의 보편주의를 보여주는지를 말해준다. 시장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이런 '문명화 과정'을 도왔다. 시장 의 확장은 법치에 기초한 국민국가의 등장에 기여했고, 내 주장이 옳 다면 이러한 동학은 일반화된 신뢰의 진화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에 덧붙여 시장의 확대는 겔너가 '외적 사회화'라고 부른 국가 교육 시스템의 확립을 촉진함으로써, 보다 보편적인 사회규범이 번성하도록 했다. 겔너는 시장이 국가적 수준에서 분업을 규제할 수 있으려면 교구 단위의 전통적 문화가 시장이라는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확대된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더 보편적인 가치들로 대체되어야 했다고 적고 있다. 그 결과 언어와 문화가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되고, 직업적 · 지역적 이동이 용이해졌으며, 개인들의 소득의 원천인 자산은 장소와 기술에 점점 덜 얽매이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여타 자유주의적 제도가 제공하는 문자 그대로의 사실상의 보험 형태를 보완해준다.
- 메커니즘 디자인이 직면한 어려움은, 시장실패의 해결책이라면 반드시 충족해야 할 세 가지 조건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첫째, 고안된 메커니즘을 통해 이루어진 자원배분이 파레토 효율 적이어야 한다.
둘째, 정책 결정은 개인들이 자신의 경제행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전제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개인들이 어떤 상호작용이 나 교환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포함하여 자신의 선호가 이끄 는 대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학 용어 를 빌리자면, 결과가 모든 개인들의 참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메커니즘에 참여하는 게 그러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해야 하고, 참여는 자발적인 결정이어야 한다. 또한 결과가 인센티브에 부합해야 한다. 즉 메커니즘에 참여한 상태에서 얻 어진 결과는 개인의 극대화의 산물이어야 한다.
셋째, 사람들이 어떤 선호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제한도 있 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전적으로 자기 이익만을 바라보고 도덕에 무관심한 경우에도 메커니즘은 작동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차례대로 효율성 조건, 자발적 참여 조건, 선호 중립성 조건이라고 부르자. 첫 번째 조건은 최소한의 집단적 합리성 조건 을 부여하는 것이다. 최소한인 이유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등의 다른 요소들에 대한 고려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조건은 교 환에 강제로 참여시키거나 재산을 징발하는 경우를 배제하는 것이 다. 세 번째 조건은 두 번째 조건과 더불어, 개인의 자유 그리고 개인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적 사고를 반영한다. 세 번째 조건은 최근에는 자유주의적 중립성이라고 불리기 시작 했는데, “정치적 결정은 (...) 좋은 삶이란 무엇이며,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어떤 특정한 관념과도 무관해야 한다”는 로널드 드워킨 Ronald Dworkin의 금언에서 잘 드러난다. 유사한 뜻 에서 피터 존스Peter Jones는 “특정한 목표들을 정해 시민들이 이를 추구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 아니다” 라고 썼다.
- 실험에 참가한 농부들은 브로텐의 공공재 게임과 파에나스 간의 유사성을 즉시 알아차렸다. 공공재 게임에서 공동소유권 마을 출신 남성들은 다른 여러 개인적·공동체적 변수를 고려한 뒤에도, 사적공동체 출신들보다 공공재 생산에 3분의 1 이상 더 많은 기여를 했
다(여성들의 경우 공동소유 공동체 출신과 사적 소유 공동체 출신 간 차이가 없었는데, 브로텐은 공동체의 운영제도나 파에나/아이니 작업 모두 거의 전적으로 남성이 담당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브로텐은 “최근 개인적인 토지소유권이 형성되면서 (...) 전통적인 형태의 협력이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개별 토지소유권과 마찬가지로, 페루 고원지대에서 근대적 노동시장이 발달한 것도 전통적인 공동체 노동을 바보들이나 하는 일처럼 보이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지역 노동시장이 형성되면서 퇴출 옵 션이 생기자, 이직 가능성이 가져다준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사 람들은 공동체 규범을 무시함으로써 자기 이익을 챙겼다. 인도와 (이미 언급한) 중세 지중해 연안의 무역업자, 멕시코와 브라질의 신발 장인 등에 기초한 많은 인류학 · 역사학 연구는 브로텐의 결론이 광 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브로텐의 연구나 다른 사례에 보이는 증거를 가지고, 계약을 더 완전하게 하기 위해 토지나 다른 재산을 사유화하고 재산권을 명확 히 하는 것이 해당 공동체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추론한 다면 오해일 것이다. 하지만 시장을 더 잘 작동시키려는 노력이 때로 는 원치 않던 방향으로 이어져 문화적 부작용, 즉 교환 기반의 사회 규범이나 공동체에 필수적인 다른 가치를 사람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집단적으로 아테네폴리스는 유능한 메커니즘 디자이너였고, 물 질적 인센티브와 도덕감정이 단순히 분리될 수 있다는 생각을 비웃 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제공한 인센티브가 아테네인의 시민적 덕성을 몰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는 실소를 터뜨렸을 것이다. 배를 가장 먼저 준비한 책임자에게 그들이 약속한 '왕관'은 상이 지 서비스에 대한 보수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격려와 인센티브는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최초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입 법자들이었다. 비록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드리아해 원정이 시작되고 3년 뒤에 죽었다.)
- 몰아냄 효과는 다음과 같을 때 발생한다. 인센티브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 때문에 사람 들이 그 인센티브를 부과하는 사람을 싫어하게 될 때, 인센티브가 사람들에게 이기적인 동기를 용인하거나 심지어 장려한다는 프레임을 제공할 때, 혹은 인센티브가 그 대상의 자율성을 침해할 때 말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문제는 인센티브 자체가 아니라 인센티브와 함께 전달되는 정보일 수 있다. 그리고 인센티브가 전달하는 정보가 더 긍 정적일 수 있도록 할 방법이 있다. 타인을 돕는 일 같은 관대한 행동도, 인센티브가 있으면 이기적인 유인 때문에 그렇게 한 것처럼 오해받을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인센티브가 없을 때보다 인센티브가 있을 때 이기적인 선호 체계를 더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았다. 하지만 인센티브가 가끔은 이런 역정보를 제공하듯이, 이 문제도 아테네 시민의회가 한 것처럼 시민적 덕성을 보여줄 기회를 충분히 제공함으로써 약화시킬 수 있다. 입법자는 인센티브가 그 자체로 문제인 것인지, 그리고 몰아냄 효 과는 인센티브를 부과하는 사람과 그 대상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 인지 아니면 인센티브의 의미로부터 발생하는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만약 입법자가 정책입안자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강령을 만들고자 한다면, 인센티브와 사회적 선호가 상충하지 않 고 상보적으로 작동하는 사례들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입법 자는 부정직한 자들을 위한 법질서에 관한 흄의 격언을 업데이트할 준비를 갖추게 되는 셈이다.
-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2002년 아일랜드에서 비닐봉투에 소액 의 세금을 부과한 일은 하이파의 어린이집에서 지각에 벌금을 부과 한 일과 유사해 보인다. 두 사례 모두 인센티브를 통해, 줄이고자 하 는 행동의 비용을 조금 높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극단적으로 달랐 다. 세금이 도입된 지 2주 만에 비닐봉투 사용은 96퍼센트나 감소했다. 즉 세금이 사회적 선호를 끌어들인 것이다. 많은 아일랜드 사람 들에게 비닐봉투를 사용하는 것은 모피 코트를 입는 것만큼이나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분류됐다. 지각에 부과한 벌금과 비닐봉투에 매긴 세금의 차이를 통해 우리 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이파 어린이집의 경우 벌금을 공 표하면서 내린 처벌을 정당화하지 않았다. '도덕적 교훈'은 없었다. 벌금에 대한 명시적인 규범적 정당화가 없었기 때문에 기본 프레이 밍이 작동되었다. 말하자면, 지각을 팝니다! 벌금이 낮았다는 점도 부모들에게 지각이 학교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한 요인이었다. 더욱이 부모들 눈에는 어떤 부모가 늦는다고 해도 그 일 이 선생님들에게 초래하는 불편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일이라기보다 는, 어쩔 수 없던 일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공 지문에서 “일부 부모님들” 이 지각한다고 했을 때, 부모들은 자신들 이 지각을 하더라도 그게 그렇게 예외적인 문제는 아니며 시간 약속을 준수하라는 사회규범을 특별히 심각하게 위배한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았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적어도 부모들 사이에서 지각한 부모를 보게 되는 사람은 같이 늦게 도착한 부모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아일랜드 비닐봉투세의 경우 오랜 기간 공적인 숙의 과정을 거쳤다. 또한 비닐이 환경 훼손에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효과적인 공공캠페인이 선행되었다. 어린이집에서 지각은 가끔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비닐봉투 사 용은 쇼핑객의 의도적이면서도 매우 공개적인 행위다. 아일랜드의 비닐봉투세는 금전적 인센티브가 명시적으로 사회적 의무라는 메시지와 결합되었고, 비닐봉투를 사용하고 처분할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했다. 하이파의 벌금 부과가 '돈만 내면 지각해도 괜찮다'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아일랜드 의 비닐봉투세가 전달한 메시지는 에메랄드 섬을 쓰레기로 뒤덮지 마!'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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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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