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다이트 운동의 직공들의 분노는 누구를 향했는가? 정체불명의 지도자 러드와 그의 추종자들은 정말 기계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기계를 파괴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바보가 아니었다면 쇳덩어리 기계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을 리 없다. 그 분노의 대상은 기계를 들이고 값싼 노동력을 사용해서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던 자본가, 즉 공장주인들이었을 것임. 자본가에게 분노하여 그들의 재산을 파괴했던 이들에게 기계파괴주의 혹은 기술혐오자의 딱지를 붙인 것은 일종의 모함이다.
- 4차산업혁명이 '한 사람이 백만 명을 먹여 살려야 할 세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한 명이 되기 위한 노력보다 그런 미래를 막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가거에도 그러했으니 시장과 시간이 이런 문제를 자연스레 해결해줄 것이라는 낙관은 설득력이 없다. 현재아 같이 아무런 비판 없이 공격적으로 기술이 개발되는 상황에서 일자리가 없어지는 속도는 너무 빠르고, 새로운 기술들은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과 광범위한 영향력을 갖기 때문. 지금 필요한 것은 제2의 잡스와 하사비스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통제, 견인, 선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유는 오늘날 인공지능과 같은 핵심기술에 대한 지배력이 고도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 전기가 중심이 되었떤 3차산업혁명은 더 많은 사람이 동력과 정보를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권력이 과거보다 더 고루 분산되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는 방식의 4차산업혁명은 다시 정보와 권력의 극단적이 양극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 인터넷이 정보공유와 소통을 위해 사용될 때는 권력의 탈집중화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오고가는 모든 데이터를 모아 활용하게 되자 대량을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소수 집단에 엄청난 힘이 모이게 됨. 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말을 다시 뜯어보면 그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유전이 되는 셈. 그 데이터를 모아 정보로 가공하는 능력도, 그 정보를 다시 사용하는 능력도 소수에게 몰리게 됨. 결과적으로 빅데이터와 인고지능의 시대에 대다수 사람은 기술이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원료와 그 작동대상이 되어버린다. 4차산업혁명의 기술들이 초래할 문제들의 큰 부분은 정치적인 권력관계 문제다.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는 기술이 정치적 특징을 가진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별기술에 따라 특정한 권력관계와 더 잘 양립하거나 덜 양립하는 차이를 볼 수 있다고 주장.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소는 중앙집권적 권력관계와, 태양광 에너지는 민주적 권력관계와 더 잘 양립한다.
- 물어야 할 것은 '내게 (또는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닥칠 것인지'가 아니라 '나(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어던 세상이 나와 내 이웃, 그리고 우리 자손의 자유와 존엄을 지속하능하게 하는가? 그 세상에서 인간 노동의 자리는 어디며, 오늘 개발되는 기술은 그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가? 이 물음들은 4차산업혁명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설계하기 위한 것임. 기술발전이 날씨의 변화와 다르다면, 우리가 그 발전의 방향과 목표를 기획해야 함
- 흥미롭게도 국내에서 4차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은 엘리트 내부의 열광에만 머무르지 않음. 과거 경제성공 신화에는 늘 독단적 엘리트의 성취욕이 지배했다. 그런데 노늘날 4차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는 대중의 자발적 관심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음. 그렇다면 일반대중이 4차산업혁명에 몰입하는 이유는 뭘까? 사회 엘리트 계층이 4차산업혁명을 통해 경제적 성공신화를 이루겠다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과 달리, 일반 대중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낌. 일례로, 최근 언론진흥재단 미디어 연구센터에서 실시한 조사연구는 이를 확증함. 조사대상자 대부분이 4차산업혁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 무엇보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미래 일자리를 잃게 하고(76.5%), 빈부격차까지 심해질 것(85.3%)이라고 보는 데 다수의 의견이 집중되어 있음. 즉 엘리트와 대중의 집단 강박이란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면 열광의 극단에 불안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속사정을 보여줌. 대중의 이러한 불안은 확대일로로 치닫고 있는데, 이를테면 국가와 기업, 그리고 언론 등이 내미는 다음과 같은 슬로건 때문이다. 4차산업혁명의 신흥과학기술을 소비하고 이에 적응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변화하는 세계에서 내쳐질 것이다.
- ICBM의 순환구조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가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해 수집되어야 하며, 이런 데이터는 가공하기 좋고 객관적이며 수치화된 형태로 변환할 수 있어야 함. 예를 들어 홈 오토 시스템에서 '창문이 열려 있다' 혹은 '집안 온도가 섭씨 28도이다'라는 정보는 객관적 형태로 수치화할 수 있지만, 어떤 영화가 재미있다는 정보는 주관적이고 모호하며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감정의 영역에 속함. 이러한 정보를 수치화하기 위해서 다소 억지스럽고 복잡한 기준을 적용하여 수치화할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기계화 과정을 거쳐 나온 출력값이 모든 사람에게 재미있다는 반응을 유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지금까지 ICBM의 기술들을 통해 산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케이스는 대부분 객관적으로 데이터를 수치화할 수 있는 완성된 상품의 유통구조 혁신에 머물렀던 것이다.
- 건설업체와 부동산 재벌들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덕에 돈을 벌 수 있었음. 전국 19곳에 설치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이와 연관된 지역개발 사업은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으로 요란하게 포장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토건족을 위한 부동산 시장 진흥책이었다. 정치인이 임기내에 경제성장률을 올리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면 토목경기 부흥은 빼놓지 않고 실행해야 하는 정책이다. 한국 경제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돈이 흐르기 때문. 돈 있는 사람에게는 창업이나 생산투자, 금융자산 투자보다 부동산이 수익성과 안정성 면에서 가장 유리함. 따라서 대한민국 토건족의 질서를 전략적으로 잘 이용하지 않고선 산업현장과 기술분야에 사람과 돈을 모으기 쉽지 않다.
- 문대통령의 4차산업혁명 공약이 발표된 17년 2월 1일 싱크탱크 5차포럼에서 한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음. "21세기형 뉴딜을 대대적으로 시행하겠습니다. 새정부에서는 공공건물 한채도 그냥 짓지 않겠습니다. 스마트 하우스, 스마트 도로, 스마트 도시를 짓겠습니다. 우리 주변 모든 곳에 4차 산업혁명기술이 적용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이날 그의 발언을 가장 반색하면 들은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토건족과의 관계설정에서 문정부의 4차산업혁명 정책을 창조경제 2기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 4차산업혁명을 강조하는 이들은 흔히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새로운 문명의 시바점이 될 것처럼 이야기함.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기술의 한 갈래에 불과한 이들이, 과연 정보혁명만큼이나 거대한 혁신을 우리 세상에 일으킬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정보기술의 최전방에 있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 회사들은 여전히 이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첨단 기술국가인 독일이나 일본 등에서도 일부 언론을 제외하면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다.
- MIT 미디어랩 조지 이토는 '지난 세기 중반쯤, 변화가 인간을 앞질렀다"고 말했다. 인간이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보다 변화 자체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이야기. 앞으로 고정성은 더욱 빨리 해체되고 유동성도 크게 확산될 것임. 따라서 이러한 보완장치는 콘텐츠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산업전반에 걸쳐 요구됨. 한편, 기존의 콘텐츠 산업정책은 모두 콘텐츠 창조보다 소비가 훨씬 쉽다는 전제를 두고 구축되어 있다. 쓰기보다 읽기가, 부르기보다 듣기가, 그리기보다 보기가, 놀이 만들기보다 놀기가, 가르치기보다 배우기가 더 쉽다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함. 그러나 초연결성은 이런 산업적 전제를 완전히 파괴한다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이한음, 2017)에서 케빌 켈리가 말한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자 사람들은 소비가 아니라 창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 4차산업혁명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서두에서 밝혔듯, 그것은 실체가 없는 기술적 용어에 가깝다. 따라서 4차산업혁명을 전제로 놓고 이야기하기보다, 4차산업혁명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쓸데없는 패닉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성찰적 논의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 역사학자 김기보은 "제4차산업혁명은 아직은 실체가 없는 유령처럼 등장한 말"이라 주장. 1차산업혁명은 화석에너지를 이용해 증기기관 같은 동력을 발명하여 생산량을 급증시킨 계기를 말하는데, 1차산업혁명은 급격히 일어나지 않았으며, 1760-1830년 사이에 서서히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역사학은 점진적으로 조용히 일어났던 변화를 급격한 혁명으로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김기봉의 지적임. 그에 따르면 문제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유령처럼 등장한 제4차산업혁명이 현재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풍조다. 우리는 조국근대화와 잘살아보세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압축성장한 성공신화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제4차산업혁명은 항해의 방향만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지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은 아니다. (조선일보, 1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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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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