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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역사

경제 2014. 12. 27. 17:17

 


돈의 역사 (170357)

저자
김학은 지음
출판사
학민사 | 1994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크기: 15cm X 22.5cm / 215면상태: 01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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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 굴드로부터 도날드 트럼프까지, 뉴 포트에서 팜 스프링스까지, 자가용 기차에서 자가용 비행기까지, 롤스로이스에서 포쉐까지, 악덕 자본가에서 산업가까지, 산업가에서 다국적 기업의 회장에 이르기까지 전형은 바뀌었지만 동일한 내용이 되풀이된다. 비판가가 욕하든지 말든지 현시소비는 돈이 있는 곳에서는 결코 그치지 않는다. 미국에 있어서 돈의 역사는 현시의 역사이다. 동일한 내용이 되풀이된다는 사실은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이다. 형태만 달리할 뿐이지 부유층이 돈을 가지고 뽐내는 것과 야만사회에서 전사가 약탈품을 가지고 뽐내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인간에게는 언제 어디에서나 형식만 달리했을 뿐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그에 따른 찬사와 존경을 받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는데, 이 점에서 반더빌트나 휘트니는 파푸아족 추장이나 안나마스족 우장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반더빌트가나 휘트니가의 매우 복잡한 의식이나 그 부인들이 온몸을 고통스럽게 졸라 매는 콜셋은 야만인들이 성잔치에 엄청난 낭비를 하거나 몸치장을 위해 자상행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외국원수가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21발의 예포를 쏘는 행위나 야만인의 나라에서 초대된 이웃 추장을 즐겁게 하느라고 야만사회에서 값이 비싼 도자기를 쌓아 놓고 깨뜨리는 파괴행위는 똑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포트라취 행위는 현대국가에서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도는 줄어 가고 있으며, 경제가 발전한 정도에 따라서 그 정도는 더 줄어 가는 것을 본다.
- 우리는 고대의 관습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어떻게 영향을 남겼는지, 그것을 몇 개의 단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자본(capital)'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머리' 또는 '소의 머리'를 의미하는 'caput'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현재 인도의 동전의 이름인 '루피(rupee)'는 인도어의 '소떼'를 의미하는 'rupa'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 세계의 금 보유량의 4분의 3을 가지고 있던 스페인은 어째서 빵값이 매일 오르고 금값이 떨어지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어째서 금의 발견에 따라 파산의 선풍이 전유럽을 휩쓸고 있는지 놀란 뿐이었다. 그들은 금과 은의 증가가 물건값을 비싸게 하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유럽은 금 자체가 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알기 시작하였다. 금은 경제를 부추기고 국가의 생산량을 증가시킬 때, 그리고 금의 유통량이 재화와
용역의 공급량과 균형을 이룰 때 부를 창조할 수 있다. 십 수세기 동안 인간은 화폐의 유통량과 상품의 공급량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는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금은 무엇이든지 금화로 만들어 즉시 유통시켜 왔다.
- 스페인에서 생겼던 똑같은 일이 1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 일어났다. 미국은 전쟁시에 영국과 프랑스에 많은 전쟁물자를 팔고 그 대금으로 대량의 금을 받았다. 그러므로 금이 뒷받침하던 달러를 더 많이 발행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전쟁물자의 생산으로 활기를 띠던 경기가 주저앉게 되었다. 생산이 감소할 때 새 달러가 쏟아져 나왔으므로 증가된 화폐량이 감소된 상품의 양을 쫓기 시작하였다. 1912년과 1927년 사이에 미국의 물가는 두 배로 뛰었다. 반복하면, 금이 부를 보증할 수 있다는 믿음은 단순한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 유럽은 약 5천년 전에 바빌로니아의 승려들이 국제결제를 쉽게 하는 제도를 발명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중세의 상인들은 과거의 도움없이 이 제도를 다시 고안해 내야만 하였다. 수천년 동안 각 사회는 각자의 화폐제도를 만들고, 모두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 바빌론, 그리스, 로마가 망하였을 때 그들이 축적한 많은 지식과 그들이 이루어 놓은 발전은 모두 없어져 버리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이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고대와 심지어 중세기에도 지역간의 대화는 제한되어 있었다. 나라마다 다른 언어와 풍습이 교역과 정보교환에 장애가 되었다.
- 세계 최초의 지폐는 중국에서 발명된 것 같다. 이것은 유럽인들이 돈을 종이로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을 하기 수천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에 중국에서 일어난 일은 유럽에서 너무 멀었으므로 중국의 발명은 유럽의 지폐 발달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유럽인에게 지폐로 가는 첫번째 조치는 정말 긴급상황에서 비롯하였다. 어떠한 종류의 경화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군대의 봉급은 지불되어야 하고, 무역은 이루어져야만 하였다. 1483년 무어인들이 스페인의 알함브라 요새를 포위, 공략하였을 때 요새의 모든 경화는 지하 저장소로 사라졌다. 그러나 군대는 어떻게든 지불되어야 하였으므로 요새의 사령관은 지폐를 발행하여 지불하였다.
- 관리통화제도 하에서 통화는 본원통화의 몇 배로 창조된다. 즉, 통화=몇배*본원통화이다. 본원통화는 금본위제도 하에서 지폐발행의 근거인 금의 중량에 해당하고, 통화는 금본위제도 하에서 지폐량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이때에도 통화발행의 제1원리는 지켜야 한다. 즉, 인위적 관리의 대상인 본원통화에 외부적인 영향이 미쳐서는 안된다. 금본위제도에서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것은 금의 가치가 아니라 금의 중량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이 원리가 깨지는 것을 본다. 가령 한때 시중의 자금은 풍부한데 자금이 부동산에 몰려 기업측에서는 자금이 부족하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 말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어떤 사람은 자금이 부동산으로 가기도 하지만, 일부 기업측으로 가는 돈도 있으므로 이런 때일수록 돈을 더욱 풀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통화발행의 근거를 부동산 가격에 두라는 논리나 마찬가지로서 로우의 실수를 모르고 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한때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렵다고 하니까 대통령이 중소기업의 어음을 모두 할인해 주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그 결과는 위에서 본 바대로 로우의 실수를 재현할 수 있다. 관리통화제도 하에서는 통화발행의 근거가 되는 본원통화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 경화의 유통이 잘 안된 이유는 한국에서 꽤 오래 전부터 발달한 어음제도 때문인 것 같다. 어음은 신용수단으로 상인이 사용하였다. 이것은 액수, 만기, 날짜, 수취인의 성명, 수령인의 성명이 적혀 있는 종이이다. 이 종이는 둘로 찢어서 쌍방이 한 조각씩 보관하였다. 채무자는 다른 한 조각이 제시되면 명시된 금액을 지불하였다. 어음의 사용은 한국에서는 화폐제도보다 신용제도가 먼저 발달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경화의 유통이 실패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 고유의 시장제도 때문이다. 장날이면 여러 곳에서 모인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들이 장에 가지고 오는 모든 물건들은 쌀과 옷감으로 그 가치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돈이 유통되는 장소가 한 군데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시장이 아니라 주막집이었다. 이 사실 때문에 정부당국이 새 돈을 유통시키기 위해 주막집을 설립했다는 기록이 있다.
쌀이 돈 노릇을 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그 증거가 남아 있다. 지금도 지방에 따라서는 쌀을 사러 가면서 쌀 팔러 간다고 말한다. 물건을 돈 주고 산다는 것은 돈을 팔아서 물건을 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쌀을 판다는 뜻은 쌀을 팔아 물건을 산다는 뜻인데, 이것은 쌀을 돈으로 사용했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쌀을 사러 가면서 쌀을 팔러 간다는 표현에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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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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