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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사라진 세계

사회 2014. 10. 12. 20:47

 


리더가 사라진 세계

저자
이언 브레머 지음
출판사
다산북스 | 2014-02-2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글로벌 리더십의 진공 상태, 세계 경제는 길을 잃었다! 제2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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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평화를 유지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국제적 영향력을 휘두른 최초의 근현대 국가는 사실 미국이 아님. 영국, 그리고 이후의 대영제국은 18세기가 동틀 무렵 이미 세계적 수준의 해상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었고, 1815년에 마지막으로 나폴레옹을 무찌르면서 이후 한세기 가까이 세계를 지배해왔음. 그리고 그 기간동안 영국은 세계적으로 유용한 공공재, 즉 누구나 사용하고 이익을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 서비스들을 제공. 예를 들어 영국은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세력균형을 조율함으로써 세계평화에 기여. 그리고 자국의 독보적 해군력을 기반으로 국제항로를 확보해 나가면서 세계 경제의 개방화를 촉진했고, 자본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었으며, 금본위 제도를 확산하는 데 기여. 당시 영국 파운드는 세계 금융시장의 주요 준비통화로서 충분한 기능을 했음.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독일과 미국의 성장은 영국의 지배력을 약화시켰고, 유럽 국가들 간의 협력이 와해되면서 이는 결국 1차대전으로 이어짐. 그러나 세계적인 리더로서의 영국의 위상을 완전히 무너뜨린 사건은 2차대전이었음. 그리고 이 두번의 전쟁에서 연합군이나 적국 동맹들보다 타격을 훨씬 적게 입은 미국이 글로벌 리더 자리를 넘겨받을 만큼의 충분한 역량과 의지를 갖추고 국제무대에 등장. 그리고 이후 수십년에 걸쳐 미국은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
- 선진국들이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보다 일자리 창출과 무역수지 균형, 인플레 억제에 더 신경을 쓸 때라면, 항공모함이나 군대, 탱크보다 시장 접근성, 투자방식, 통화정책에 대한 통제력 같은 경제적 도구가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임. 분명한 것은 리더가 사라진 세계에서 각국 정부들은 석유와 가스, 금속, 광물, 심지어 농산물까지도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점. 천영자원 및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한 경쟁에서 산업스파이들이 정부의 비밀병기로 활약하면서, G제로의 세계에서 중대한 세력 싸움은 실제 전쟁터가 아닌 사이버 공간에서 더욱 자주 일어나고 있음. 동시에 신흥국들은 금융, 이동통신, 인터넷 표준 시장에서 서구사회의 기존관념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으며, 각국 정부들은 국경을 초월해 일어나고 있는 아이디어, 정보, 인재, 자금, 상품 및 서비스의 흐름을 국가 차원에서 다시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음.
- 이제 우리는 그동안 알고 있던 세상으로부터 아직 상상하기 힘든 세상으로 이동하고 있음. 그리고 이러한 어마어마한 변화 뒤에는 반드시 거대한 후폭충이 따르기 마련. 물론 이러한 변화의 시기는 언젠가 끝이 날 것임. 선진 세력과 신흥세력들간의 불신과 반목은 분명히 수많은 심각한 문제들을 양산할 것이기 때문. 앞으로 10여년 동안 몇몇 신흥국들은 선진국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려 할 것이고, 다양한 문제들이 야기하는 혼란상황으로 인해 강대국들 간의 동맹처럼 새로운 차원의 협력을 만들려 할 것임. 만약 그러한 협력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앞으로 벌어질 혼란은 자원과 지역 내 세력을 둘러싼 분쟁을 심화시키면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을 것으로 보임
- 미국의 지배체제는 유럽에서는 독일,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군부세력 부활 가능성에 대한 인극 국가들의 우려를 덜어줌. 그리고 일본과 독일도 국방에 지출해야 하는 엄청난 비용부담을 덜 수 있었음. 그 결과, 일본 역시 독일과 마찬가지로 10년 만에 경제의 발전소로 떠오를 기회를 잡았음. 40년대 후반 미국정부는 일본의 산업적 잠재력을 되살리기 위해 하루 평균 100만달러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음. 56년에 이르러 일본 정부는 그들의 국민들이 전후 재건의 시절에서 벗어났다고 선언. 60년대 후반 일본은 연평균 11%의 성장률을 기록. 그리고 68년 서독을 제치고 세계 두번째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으며, 2010년에 중국에게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그 자리를 지킴. 일본의 재건은 성공적인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만은 아니었음. 일본 경제산업성은 다양한 차원에서 자국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 중국이 지난 몇년간 보여준 통화정책과 상당히 유사하게, 당시의 일본은 엔회를 달러에 비해 고의적으로 낮게 고정해 놓음으로써 수출산업을 장려. 20세기중반 여러 총리들과 더불어 경제산업성 고위관료들은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함. 일본의 도약은 전통적 아시아 제국들도 서구의 자본주의적 가치를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하게 입증. 일본이 점차 강력해지면서 많은 미국인들이 자국의 헤게모니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 오늘날의 중국 정도는 아니겠지만, 당시 일본의 경쟁우위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비교적 조화를 이루는 정치적, 경제적 체제에서 나옴.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전후 미국의 영향력에서 어느정도 벗어났지만, 그래도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가치는 이들 국가의 이익과 여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음. 75년에 미국, 일본, 영국,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의 선진국들은 G6를 이루었고, 1년뒤 캐나다가 합류. G7 내부의 경제적, 문화적 경쟁구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유시장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과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집단적 공포심을 바탕으로 확고한 목표를 공유하고 있었음.
- 사실 OPEC은 초기에 국제적으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음. 중동지역에서 새로운 유전들이 계속해서 발견되는 가운데, 서구기업들이 그 이익의 상당부분을 가져갔고, 결과적으로 유가의 상승은 개도국이었던 산유국들에게는 정작 많은 부를 가져다주지 못했던 것. 그러던 중, 67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간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OPEC은 처음으로 석유 통상금지 조치를 발동했고, 이는 큰 혼란으로 이어짐. 하지만 이를 계기로 그 카르텔의 위상은 높아지기 시작. 60년대에 걸쳐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일일 생산량을 1300만 배럴로 높였으며, 이는 그 10년 동안 전세계 소비 석유 증가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양이었음. OPEC회원국들은 그들의 영토안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서구기업들로부터 이익의 더 많은 몫을 요구하기 시작. 그리고 72년에는 카타르와 인도네시아, 알제리, 리비아, 아랍에미리트, 나이지리아까지 OPEC에 가입. 급기야 석유를 둘러싼 생산국과 소비국의 역학관계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 71년 3월 텍사스는 이미 최대 생산량에 도달했고, 이제 생산량을 늘려서 가격상승을 저지하는 시도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됨. 당시 미국의 하루 석유 수입량은 320만 배럴 정도였으며, 이후 5년 동안 그 규몬느 거의 2배로 뛰었음 그리고 OPEC은 석유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게 됨. 매년 OPEC의 생산량 합의는 유럽과 미국에서 석유 및 휘발유 가격 안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 73년 10월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의 분쟁인 4차 중동전쟁은 OPEC이 또 다시 자신들의 무기를 시험해보는 계기가 됬고, 이는 다시 한번 전환점으로 작용. 그 과정에서 OPEC회원국들은 그들이 강대국들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음.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의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OPEC 회원국들은 미국에 대한 석유 수출량을 줄였으며, 세계시장 전체적으로도 점차 그 공급량을 줄여나감. 전쟁과 통상금지가 시작되기 몇주전 배럴당 2.9달러였던 석유가격은 그해 말에 무려 네배로 뜀
- 미 정부가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밀어붙였던 세계화의 흐름은 미국의 세력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신흥세력들의 성장을 자극. 그리고 이들 개도국 지도자들은 국제정치 무대에 살짝 올라서봄으로써 보다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다소 느슨한 형태의 협력을 맺었음.이 국가들은 국제적 영향력을 갖기를 원함. 그리고 자신들이 이룩한 경제발전의 성과가 세계무대에서 보다 정당하게 대접받기를 바람. 하지만 이런 신흥세력들은 글로벌 리더십에 따르는 위험과 부담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음. 다만 자국의 경제발전과정에서 각각의 단계에 대처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임. 이런 소극적 태도가 바로 G제로 세계의 핵심적 모습
- 아시아에는 강력한 국가들이 너무 많은 반면, 협력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 향후 중국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겠지만, 인도 역시 2인자에 머무르기에는 너무 덩치가 큼. 게다가 일본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높은 나라들 중 하나이고, 한국은 주도적인 신흥세력이며, 인도네시아는 경제적 외교적으로 중요한 존재로 떠오르고 있음. 아시아 지역들에 있어 분쟁지역과 세력다툼보다 더 핵심적인 문제는, 많은 국가들이 미국과의 안보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무역관계를 확대하고자 한다는 사실. 그러나 이러한 노선은 오래 지속될 수 없음. 경제적 영향력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는 중국이 그런 나라들에 더욱 압박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소비자 시장이 힘을 얻고 있는 반면 미국인들의 구매력이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기들끼리, 그리고 중국과의 무역관계를 확대해나가기 위해 서두르고 있음. 실제로 신화통신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의 최대무역 교역국이자, 단일 최대 수출시장 자리를 차지. 그리고 2010년부터 아세안 회원국들과 중국간의 협정이 발효되었는데, 여기에는 역사상 그 어떤 무역협정들보다도 많은 인구가 포함되어 있음.
- G제로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식량문제는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세계적 경쟁으로 인해 그 권력이 소비자로부터 생산자로 넘어가는 데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음. 이런 권력주체의 변화가 다양한 형태의 식량보호주의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 사실 이런 현상은 이미 시작됐음. 07~08년 사이에 콩을 포함한 곡물가격이 3배로 뛰었을 때, 러시아와 아르헨티나는 밀의 수출을 제한함으로써 국내가격을 낮게 유지해 자국의 식량공급을 안정화하고자 했음. 그리고 곡물을 수출하는 다른 나라들 역시 비슷한 정책을 폈음. 동남아의 쌀 공급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베트남은 수개월에 걸쳐 쌀 수출을 전면 중단한 바 있음. 이에 빈곤하고 주로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던 국가들은 혼란에 빠져, 어떻게든 곡물을 들여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음. 이처럼 곡물수출국의 정부들은 자국내의 공급부족 사태와 사회적 혼란을 우려하여 수출을 중단하기도 함. 중국과 한국, 사우디를 포함한 여러 나라들은 안전한 식량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그중 특히 아프리카에서 농지를 매입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회적 혼란과 지역간 마찰을 자극하기도 함. 식량부족으로 굶주린 사람들이 옆 동네 주민들이 다른나라로 수출하기 위해 곡물을 트럭에 싣는 모습을 목격할 때 그런 일이 벌어짐. 예를 들언 08년 대우로지스틱스가 마다가스카르에서 벨기에 국토의 절반에 이르는 농지를 임대해 옥수수 경작 사업을 시작하자, 지역사회의 분노가 고조됐음. 그리고 이는 결국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기여. 2010년에는 심각한 가뭄으로 주요 곡물생산국인 러시아가 수개월동안 곡물의 전면적 수출중단을 발표. 러시아 농민들은 해외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고, 국제곡물가격은 크게 상승했으며, 식량문제는 세계 곳곳에서 더욱 심각하게 불거졌음. 식량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선거기간 동안 사회적 동요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이러한 수출중단의 주된 이유였음. 이로 인해 러시어에서 곡물을 수입하는 국가들 중 하나인 모잠비크에서는 무시무시한 폭동이 일어나기까지 했음.
- 오늘날 러시아는 1차대전 이후 외세로부터 가장 여유로운 시절을 즐기고 있음. 러시아 정부에는 구소련 영토에 걸쳐 세력을 다시한번 집결해야만 하는 경제적이고 전략지정학적인, 그리고 국내의 정책적 이유가 있음.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와 더불어 우크라이나를 관세동맹에 합류시키기 위한 푸틴의 끈질긴 노력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 G제로 시대 초기에 서구국가들은 러시아의 이러한 움직임에 개입할 여유가 없을 것임. EU는 주변국들을 경제저긍로 지원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어, 러시아의 그림자 국가들을 새로운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으로 보임. 게다가 많은 유럽국가들을 에너지 수입의 상당부분을 러시아에 기대고 있음. 08년 부시행정부가 러시아와 조지아간의 전쟁에 실질적으로 아무 개입도 할수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 오랫동안 미정부는 러시아의 세력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간섭하기 힘들 것임. 이는 러시아에게 있어 G제로 시대의 긍정적 측면임. 이에 반해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러시아 정부와 기업들이 중앙아시아에서의 주도권과 상업적 계약들을 놓고 중국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점은 부정적 측면임. 그리고 터키나 카자흐스탄 같은 중심축 국가들이 점점 세력을 키워가면서 러시아의 움직임을 크게 제한할 것임. 국내적 요인을 살펴보면, 세계 석유가격과 그것이 러시아의 재정건전성에 미칠 영향은, 앞으로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안정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임. 유가하락은 러시아 경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내부세력들 간으 파벌싸움을 자극할 수 있음. 반면 유가가 상승하면 현재의 엘리트 체제가 더 공고해지고, 정책 결정자들은 석유와 가스 추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 상황에서 다각화된 산업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늦추게 될 것임. 다시 말해, 단기적 승리가 장기적 실패로 이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음.
- G2 공조체제는 그다지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아님. 첫째, 중국은 G2를 원치 않고, 나중에라도 그러한 역할을 맡으려 할 것으로 보이지 않음. 더욱 책임있는 역할을 맡으라는 국제사회의 최근 요청에 대해 중국 정부는 두가지 측면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음. 우선 30년 이상 지속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아직 개도국에 불과하며, 이에 따른 약점과 문제점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주장. 복잡하고 불안정한 다음의 경제개발 단계를 앞두고, 중국 지도부는 너무도 많은 장기적 과제들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책임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고 함. 다음으로 중국은 국제정치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미국이 정의하도록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음. 최근 많은 국가들이 G2체제를 기대하고 있지만, 중국의 생각은 다름. G제로 시대의 위기들도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음. 또한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두 세력들 사이에 지속가능한 다차원적 협력관계가 형성되었던 전례는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두 세력이 전혀 다른 정치적, 경제적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낮아짐. 중국이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단행하거나 국가자본주의를 포기해야만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장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임. 그리고 중국은 개혁과 변화가 실패한다면, 국내에서건 해외에서건 비난의 대상을 찾으려 할 것이고, G2 체제의 유지는 더욱 힘들어질 것임.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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