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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지는 사람들

과학 2014. 10. 24. 20:26

 


외로워지는 사람들

저자
셰리 터클 지음
출판사
청림출판 | 2012-06-10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테크놀로지가 나와 내 인간관계를 조정한다!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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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이 반려로봇의 마케팅 대상 1순위이지만, 젊은이들 역시 반려로봇의 장점들을 알고 있음. 오늘날 10대 청소년은 인간관계의 복잡성에 대처할 준비도 되기전에 성적으로 어른행세를 하도록 내몰림. 그들은 친밀함을 요구하지 않는 접촉의 편안함에 이끌림. 이는 가벼운 일회성 관계, 책임의식이나 배려가 필요없는 섹스로 나아감. 아니면 언제라도 끊어질 수 있는 교류인 온라인 로맨스로 이어지거나, 온전한 친밀감이 생길 수 없는 사랑 이야기에 10대들이 매료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님. 사랑하는 이를 다치게 할까봐 성적으로 완전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고교생 뱀파이어들을 다룬 영화와 소설에 열광하는 세태를 보라. 그래서 10대들은 기술적 교감이란 개념에 마음이 끌림. 안전하고 예상가능한 친구가 되어줄 로봇이야기에 거부감이 없음.
- 온라인 게임이나 가상세계에서 하루 3~5시간을 소비한다면, 다른 어딘가에는 그만큼 시간을 쏟지 못하는게 분명. 그 어딘가는 흔히 가족 및 친구와 관계됨. 둘러앉아 이야기하기, 얼굴 맞대고 단어게임하기, 산책하기, 같이 영화보기 같은 전통적인 활동 말이다. 그리고 온라인 연기는 방향감각의 상실을 불러올 수 있음. 당신은 보상을 얻고 싶은 마음에서 온라인 삶을 시작했을지 모름. 외롭고 고독했다면, 아무것도 안하느니 그거라도 하는 편이 나아 보였을 테니. 그런데 온라인에서 당신은 날씬하고 돈도많고 근사하다. 현실 세계에서보다 많은 기회를 가졌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보단 낫다가 아니라, 무엇보다는 낫다가 될 수 있다. 또는 그 어떤 것보다도 낫다가 되거나. 당연히 사람들은 가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이동하면 실망스러운 기분이 듬. 그래서 더 나은 인물이 될 수 있는 가상장소를 찾아 쉴새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기드문 일이 아님.
- 모바일 기기를 통해 우리는 거의 시간 여유없이 움직이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음 실은 너무 시간에 쫓겨, 글자로 단어를 나타내고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등 신종 축약어로 소통. 어떻게 지내냐는 열린 질문은 하지 않음. 대신 어디야? 라던지 무슨 일 있어? 같이 보다 제한된 형식으로 물음. 누군가의 위치를 알고 간단한 계획을 세우기에 좋은 질문들임. 반면, 복잡한 기분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기에는 그리 좋지 않음. 서로 연결은 되어 있는데 희한하게도 혼자라는 느낌이 더 강한. 친교속의 고독임.
- 처칠이 말했다. "우리가 건물은 지은 다음에는 건물이 우리를 짓는다"라고. 우리가 테크놀로지를 만들면 그 다음에는 테크놀러지가 우리를 만듬. 그러므로 모든 테크놀러지에 대해 우리는 질문해야함. "우리의 인간적 목적에 부합하는가?"
- 사람들은 일의 세계와 가족, 놀이, 휴식의 세계 사이의 경계를 구분짓는 의식만들기에 숙련되어 있음. 특별한 시간(안식일), 특별한 식가(가족만찬), 특별한 의상(근로복은 그게 사업가의 정장이든 노동자의 작업복이든 간에 집에 오면 벗음), 특별한 장소(식당, 미용실, 주방, 침실)가 있음. 지금은 기술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동행함에 따라 경계가 흐릿해졌음.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해, 모래 위에 그어진 전통적이고 유익한 선들을 존중치 않는 테크놀로지를 한가지로 진득하게 즐길 새도 없음
- 멀티태스킹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효율성에 관해 새로운 점을 발견하지 못함. 오히려 멀티태스커들은 시도하는 과제들 중 어떤 것도 잘 수행하지 못함. 그러나 신체가 멀티태스킹을 도취상태로 유도하는 신경화학물질을 분비하여 보상을 하기 때문에 기분은 좋음. 이 도취상태는 멀티태스커들에게 특별히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킴. 도취감에 젖고 싶어 그들은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려듬.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고, 우리는 테크놀로지 덕분에 하기 쉬워진 것들과 사랑에 빠졌음.
- 기술은 우리를 속도에 대비하도록 만들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정신을 못차리는 우리는 기술의 도움으로 속도를 높일수 있어 안도함. 평소에 이메일을 날린다는 식으로 말함. 하지만 일이 빨리 되길 바란다고 무언가를 날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
- 빅토리아 시대에는 사교용 명함(calling card, 집에 부재중인 사람에게 자신이 그를 방문했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바란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자기 이름이 적힌 카드를 집사에게 남겼던 빅토리아 시대 풍습)이라는 형식을 통해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연결되는지가 통제되었음. 가령, 당신이 꼭 대접받으리란 기대 없이 어느 집을 방문했다가 명함을 남기고 온 경우 답례로 당신 집에 명함이 남겨지게 되면 인연을 맺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었음. 페북에서의 친구맺기는 이런 전통을 연상시킴. 페북상에서는 당신이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자는 요청을 보냄. 그 요청을 받은 사람에겐 당신을 무시하거나 친구로 받아들일 선택권이 이음. 빅토리아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걸러내고자 하는 의사가 존재함.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규칙을 따랐음. 이를테면, 사회적 위상이 비슷한 사람에게 가장 개방적인 태도고 적절한 것으로 인정되었음. 페북은 더 민주적임. 각자의 규칙에 따르게 두고, 접촉하는 사람들한테 꼭 이해받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임
-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이들과 소통하기를 오랜동안 바라왔음. 편지를 보냈고, 그 다음엔 전신을 보냈으며, 그 다음엔 전화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었음. 이 모든 것은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때 없는 것보다 나은 수단이엇음. 그러고 나서 얼마 안 가,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이는 대신 전화를 이용하기 시작. 새로운 연결성의 체제에 살고 있다는 걸 처음 감지했던 70년대에는 자동응답기가 걸려오는 모든 전화에 책임을 졌기 때문에 전화로부터 진정 떨어져 있을수가 없었음. 이후, 원래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메시지를 받아놓을 용도로 설계된 이 기계는 빅토리아 시대 명함의 밀레니엄 종말판, 즉 선별장치가 되었음. 시간이 흐르면서 음성메시지는 자체적으로 종말을 맞이 했는데, 그건 전화통화가 제대로 안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음. 사람들은 집에 아무도 없으리란 걸 알면서 일부러 전화하기 시작. 전화벨이 울리고, 음성 메시지가 응답하게 하는 법을 배웠음. 다음 단계에서는 문자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에 음성이 제거되었음. 이메일은 시간과 감정표현에 있어 우리에게 더 많은 통제권을 부여함. 그렇지만 이메일은 또한 충분히 빠르진 않았음. 모바일 연결망이 있으면 우리는 살아가느 속도와 아주 비슷하게 서로의 삶에 대해 소통할 수 있음. 그러나 그 시스템은 역효과를 가져옴. 짤막한 문자들로 우리 자신을 표현하긴 하지만, 다량으로 그리고 큰 집단에게 보내는 경우가 많음. 그러면 돌아오는 메시지가 한층 더 많음. 너무 많아서 문자가 아닌 것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생각은 말도 안되는 것처럼 보임. 세익스피어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름. "우리한테 영양분이 되는 것에 우리가 소진되고 있다"고.
- 문자나 이메일을 받을 때 우리의 신경체계는 도파민을 분비하는 것으로 반응. 우리는 연결성 그 자체에 자극을 받음. 연결성에 의해 고갈되는 한이 있어도 그것을 요구하는 법을 터득함
- 웹사이트에 고백하는 것과 도우미로서 치료용 로봇한테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무언가를 내보내는 걸 강조. 각 행위는 동일한 주장을 함. 나쁜 감정은 배출될 때 독성이 줄어든다고, 두 행위 모두, 사람을 직접 대하는 일 없이 감정을 다룰 수 있다는 개념을 전제로 함. 또한 각 행위에서는 대화라기엔 미흡한 무언가가 대화처럼 보이기 시작함. 감정을 배출하는 것이 감정을 공유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됨
- 9/11의 상흔은 연결선 문화에 대한 이야기의 일부임. 9/11이후 미국인들은 사람과 통신에 대한 전례없는 수준의 감시를 받아들임. 유년기세대에게 9/11은 모든 안락함으로부텅 차단되는 유년기 경험으로 각인됨. 그 영향 하에서, 휴대폰은 신체적, 정서적 안전의 상징이 됨. 세계무역센터 폭격이후, 그 동안 자녀에게 휴대폰을 사줄 이유를 찾지 못했던 부모들이 한가지 이유를 발견했음. 바로 지속적인 접촉임. 줄리아는 9/11의 경험으로부터 휴대폰을 소지하는 것은 항상 바람직하다는 확신을 얻었음.
- 청소년은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장소, 고요한 장소를 필요로 함. 정신분석학자 앤소니 스토도 고독에 대해 아주 비슷한 이야기를 한 바 있음. 창작과정을 설명하며 그는 이렇게 썼음. '지금까지 새로운 아이디어의 과반수는 깨는 것과 자는 것의 중간인 몽상상태에서 발생했다. ... 그것은 아이디어와 이미지가 등장해 자연스럽게 과정을 밟아가는 정신상태다. ... 창작자는 정신안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도록 수동적이 될 필요가 있다.' 디지털 라이프에서는 고요함과 고독을 구하기가 어렵다.
- 2년의 은둔생활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적었음. "나는 내 의지대로 살고 싶어서, 삶의 본질만을 대하고 그것이 가르치는 것을 배울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리고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내가 그 동안 살았던게 아님을 깨닫게 되기 싫어서 숲으로 갔다. 산다는 건 너무 소중하기에, 삶이 아닌 시간을 살고 싶지 않았다. 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닌 한, 체념을 연습하기도 싫었다." 우리는 의지대로 살고 있는가? 삶이 아닌 삶으로부터 돌아서는가? 체념을 거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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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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