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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20세기

사회 2014. 12. 14. 15:36

 


장기 20세기: 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시대의 기원

저자
조반니 아리기 지음
출판사
그린비(그린비라이프) | 2008-12-2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자본주의의 기원, 발전, 이행의 일대기를 다룬다! 우리 시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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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자본은 세계자본주의의 특정단계가 아니며, 최고 최후단계는 더더군나 아님. 오히려 금융자본은 유럽의 중세말 근세초 자본주의의 첫 출발기 이래 자본주의 시대를 특징지어온 되풀이되는 현상임. 자본주의의 전 시대에 걸쳐 금융적 팽창은 하나의 세계적 규모의 축정체제가 또 다른 세계적 규모의 축적체제로 이행하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음. 금융적 팽창은 낡은 체제가 되풀이해서 파괴되는 동시에 새로운 체제가 탄생하는 필수적 측면임. 장기 20세기를 세 국면의 구성으로 재개념화하면 (1)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금융적 팽창, 이 과정에서 낡은 영국체제의 구조가 파괴되었고, 새로운 미국체제의 구조가 탄생했음. (2)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실물적 팽창, 이 시기에는 무역과 생산의 세계적 팽창 속에서 새로운 미국체제의 우위가 관철되었음. (3) 현재의 금융적 팽창, 이 과정에서 이제 낡은 체제가 된 미국체제의 구조는 파괴되고 있고, 새로운 체제의 구조가 탄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 자본주의는 그것이 국가와 동일시 되었을 때 그것이 국가일때만 승리를 거둠. 그 첫 국면이 이탈리아 도시국가,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국면에서 권력은 화폐를 보유한 엘리트 수중에 있엇음. 17세기 홀란트에서는 레헨트층이 기업가, 상인, 대출업자의 이익에 따라 그리고 심지어 이들의 명령에 따라서 통치를 수행했음.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는 1688년 명예 혁명이 홀란트와 유사한 재계의 즉위를 알렸음.
1장_ 역사적 자본주의의 세 번의 헤게모니
- 중국제국은 폴 케네디가 연이은 서구열강의 최종몰락의 이유로 꼽은 과도확장의 덫에 빠지지 않은 분명한 영초주의 조직의 역사적 사례임. 엄밀한 영토주의적 권력논리라는 점에서 볼때, 가장 놀라운 것은 중국 명나라에 팽창주의 동력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이 아니라 15세기 후반기부터 유럽국가들에서 고삐풀려 보이는 팽창주의가 등장했다는 점임.
- 18세기에는 많은 전쟁들이 있었음. 그러나 프랑스어를 공인된 공통언어로 사용하는 주요 유럽국가의 교양있는 계급들 사이의 소통의 자유와 우애로움이라는 면에서 18세기는 근대사의 가장 국제적인 시기였고, 민간인들은 각기 그들의 주권자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라도 드나들면서 자유롭게 서로 사업거래를 할 수 있었음. 이렇듯 17세기 초의 체계의 카오스는 새로운 아나키적 질서로 변환되었음. 전시에조차 사적 기업에 정치권역을 가로질러 평화적으로 상업을 조직할 할 있는 상당한 자유가 부여된 것은 전쟁수단과 생계수단에 대한 신뢰성 있는 공급을 얻어내려는 통치자와 피지배자들의 일반적 이해를 반영할 뿐 아니라, 고삐 풀린 자본축적에 대한 네덜란드 자본가 과두제의 특수한 이해도 반영하는 것이었음. 이처럼 자본축적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정치공간을 재조직한 것은 근대 국가간체계의 탄생 뿐만 아니라 세계체계로서의 자본주의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 해외무역과 해군력 모두에서 영국은 베네치아처럼 우월하고 유리했는데, 두가지 상호작용하는 요인의 덕을 보았음. 하나는 섬나라라는 위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영국에게 떨어진 새로운 역할로, 두 세계를 중개한다는 것이었음. 대륙세력과 달리 영국은 집중된 힘을 해양에 쏟을 수 있었음. 경쟁자인 네덜란드와는 달리, 영국은 육상의 전선에 군대를 배치할 필요가 없었음.
- 1840년대 중반부터 1931년까지 영국은 계속해서 전세계 제품에 국내시장을 일방적으로 개방하였음. 해외영토팽창, 그리고 국내 자본재 산업의 발전과 결합하여 이 정책은 전세계 경제에 대한 강력한 통치도구가 되었음. 영국 통치자들은 자기 나라의 국내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영국의 부와 권력의 팽창에 의존하고 또 거기에 충성하는 전세계적 의존망을 탄생시켰음. 영국은 이렇게 세계시장을 통제하면서, 동시에 전지구적 세력균형에 숙달하였고, 고도금융과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세계제국만큼 효과적으로 국가간체계를 통치할 수 있었음. 그 결과는 서구문명의 연대기에서 들어본 바 없는, 백년 평화라는 현상이었음.(1815~1914)
- 영국은 19세기말 까지 세계 정부기능을 수행했음. 그러나 1870년대부터 영국은 유럽의 세력균형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곧이어 전지구적 세력균형에 대한 통제력 또한 상실하기 시작했음. 이 두경우 모두 독일이 세계권력의 지위로 부상한 것이 결정적 발전이었음. 동시에 자본주의 세계경제 중심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영국의 역량은 그 자신보다 더 거대한 부, 규모, 자원을 보유한 새로운 민족경제의 출현 때문에 침식되고 있었음. 그것은 바로 미국이었는데, 미국은 유럽의 노동, 자본, 기업가정신에 대해 흡인력을 발휘하는 일종의 블랙홀로 발전하였음. 덜 부유하고 힘도 모자라는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 또한 미국과 경쟁할 기회를 얻지 못했음. 영국의 세계권력에 대한 독일과 미국의 도전은 서로를 강화하였고, 영국의 국가간체계 통치능력을 손상시켰으며, 결국 전례없는 폭력과 광포함이 난무한 상태에서 세계적 우세를 둘러싼 새로운 투쟁이 벌어졌음.
- 대륙적 규모, 고립성, 매우 유리한 천연자원, 게다가 정부가 해외제품에는 국내시장을 닫아걸지만 해외 자본, 노동, 기업에게는 개방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는 점 때문에 미국은 영국 자유무역 제국주의의 주된 수혜자가 되었음. 세계적 우월성을 둘러싼 투쟁이 시작된 시점에 미국의 국내경제는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는 길로 잘 나아가고 있었음. 이 새로운 중심지는 무역흐름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타 세계에서 그 정치권역으로 흐럴드는 노동, 자본, 기업의 다소 일방적인 이전에 의해 나머지 세계경제와 연결되었음.
- 냉전 세계질서 속에서 구현된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가 시작된 1970년경이 되면, 초국적 기업들은 세계적 규모의 생산, 교환, 축적 체계로 발전하여, 어떤 국가의 권위에도 종속되지 않고, 미국을 포함한 국가간 체계의 각각의 그리고 모든 구성원들을 그 자신의 법칙에 종속시키는 권력을 갖게 되었음. 이런 자유기업체계의 출현이 미국 헤게모니의 가장 두드러진 결과였음. 이는 베스트팔렌 체계의 팽창과 지양과정에서 결정적인 새로운 전환점을 그리는 것이며, 주요한 세계권력의 장소로서 근대 국가간 체계의 소멸을 개시한 것일는지도 모름.
2장_ 자본의 등장
- 교역팽창이 한계에 도달하면, 관련 행위자들이 현존 역사적 상황하에서 이런 한계가 극복될 수 없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부와 안전을 유지하기보다 그것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일반적으로 인식하는가 여부에 부와 안전이 달려 있게 됨. 이런 인식이 실제로 실현되거 교역 중심지들이 그들의 사업을 더 한층 확대한느 데 잉여 자본을 재투자하지 않도록 제약된다면, 그만큼 경쟁투쟁은 통제되고 축적 중심지들은 최상의 시절을 누릴 수 있음.
- 체계적 축적순환이라는 사고는 브로델의 관찰로부터, 즉 모든 주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발전의 성숙은 상품교역에서 화폐교역으로 전환되는 특수한 교체에서 드러난다는관찰로부터 유래함.
- 근대 고도금융이 피렌체의 발명품이라면, 그 모든 행태에서 근대 금융자본주의의 진정한 탄생지는 15세기 중엽의 제노바였음. 제노바가 이런 재운을 쌓는 것은 주로 중국으로 가는 중앙아시아 교역로가 경쟁성을 지닌데 기인했고, 또 제노바 기업이 성공적으로 이 통로의 흑해 정류장에 대한 준독점적 통제권을 확보해 낼 수 있었던 데 기인함. 몽골제국이 중앙아시아 통로의 접근성과 안전성을 보장하고 제노바가 흑해지역에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한, 제노바 교역은 번성했고 제노바 기업은 규모, 범위, 숫적으로 성장했음. 그러나 몽골의 권력이 쇠퇴하여 중앙아시아 교역로의 경쟁성과 안정성이 줄어들고, 또 소아시아에서 오스만의 세력이 흥성하여 흑해지역의 제노바의 우세를 침식하고 파괴하자, 운명의 수레바퀴는 달리 돌아갔음. 제노바 교역의 번성은 수축되었고, 팽창한 제노바의 군사-상업 장치는 갑자기 근본적 구조조정으 요구에 직면했음.
- 한자동맹 세력의 이른 쇠퇴와 북해연안 어업 및 대량물량품 수송에 기반한 항해 전통 때문에, 네덜란드 상인공동체는 수요와 공급사이의 이런 만성적 시공간적 불균형을 활용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었음. 네덜란드인은 좁은 해협을 통과하는 발트 공급물 이송에 대한 통제에 끼어들어 가장 전략적 시장틈새를 장악하게 되었고, 이로써 거대하고 꾸준한 화폐 잉여 흐름의 혜택을 받는 수혜자가 되었으며, 네덜란드 인은 에스파냐 제국에 전도된 재정압박을 부과함으로써 이 화폐 잉여흐름을 더욱 증대시켰음.
- 20세기 많은 법인기업들처럼, 동인도 회사의 성공과 자급자족은 일상적 경영을 책임진 경영관료제의 권력을 키웠음. 그리고 이런 거대한 권력이 형성되는 대가로 희생된 것은 동인도회사가 아니라 동인도 회사의 주주들이었음. 그 결과 동인도 회사의 실제적, 잠재적 잉여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이 배당지급에서 이탈하여 동인도 회사의 관료적 팽창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17인 위원회의 측근과 그 회사 고위경영자의 합법적, 불법적 수입으로 흘러들어 갔음.
3장_ 산업, 제국, 그리고 “끝없는” 자본축적
- 18세기 전 시기에 걸쳐서 런던은 고도금융의 경쟁적 중심지로서 암스테르담에 바짝 다가섰음. 이는 영국이 유럽 외부세계와의 교역에 대한 배타적 통제권을 획득하기 위해 프랑스 및 약소 경쟁자들과 싸움을 벌여 승리한 결과이자, 네덜란드의 잉여자본이 영국기업들로 이전된 결과였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고도금융에 대한 네덜란드 통치의 최조위기를 촉발시킨 것은 영국이 자신의 북미신민들에게 패배한 일이었음. 미국 독립전쟁이후 네덜란드에 가한 영국의 보복은 네덜란드의 해상권력을 절멸시켰고, 동인도의 네덜란드 상업제국에 엄청난 손실을 입혔음. 그 결과 1760년대 초부터 암스테르담의 금융시장을 침식해 온 반복적 위기 중 하나가 발생하여, 유럽 세계경제에서 암스테르담의 중심적 지위를 제거해 버렸음.
- 장기에 걸친 화폐 안정성은 잉글랜드의 위대함의 핵심요소였음. 만일 화폐 단위가 고정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용이한 크레딧도, 군주에 대한 자금대부의 안정도, 사람들이 신임할 수 있는 계약같은 것도 불가능했음. 그리고 크레딧이 없어다면 위대함도, 금융상의 우위도 불가능했음.
- 장기 20세기는 세개의 구분되는 구획들로 구성됨. 첫번째는 1870년대에 시작하여 193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다시 말해 영국 축적체제의 신호적 위기에서 최종적 위기까지임. 그 두번째는 영국체제의 최종적 위기에서 미국체제의 신호적 위기(우리는 그것을 1970년으로 봄)까지 이어짐. 그리고 그 세번째이자 마지막 구획은 1970년에서 미국체제의 최종적 위기까지 이어짐.
- 미국축적 체제가 등장하여 전면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에 합중국은 이미 완전히 발전한 민족국가 이상의 것이었음. 미국은 광범한 종속 정부들과 동맹정부들에게 효과적인 보호를 공여할 수 있고, 또 세계 어디든 비우호적 정부들에게는 경제적 교살과 군사적 절멸의 확실한 위협을 줄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지닌 대륙적 군산복합체였음. 미국 자본가계급은 그 자신의 영토가 지닌 규모, 섬과 같은 특성, 그리고 자연적 부와 결합된 이런 권력에 힘입어, 영국 자본가 계급이 이미 그랬던 것처럼 보호비용과 생산비용뿐 아니라, 거래비용, 즉 미국 자본의 자기팽창이 의존한 시장도 내부화 했음.
- 세계경제의 모든 실물적 팽창이 특별한 조직구조에 기반하였으며, 그 생명력은 팽창자체에 의해 점차 침식됨. 모든 팽창이 그것을 탄생시킨 힘에 의해 여러가지 방식으로 제약되며, 따라서 이 힘이 강해질수록 팽창이 중단되는 경향 또한 강해짐. 더 특정화해서 말하며 수익률 상승이나 고수익률의 영향으로 교역에서 재투자하려는 자본량이 커짐에 따라 수익률 상승이나 고수익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더욱더 많은 비율의 경제공간이 소진되고 있는데, 이 공간은 시간이 지나며 절멸됨.
- 세계경제의 모든 금융적 팽창 국면에서, 교역과 생산에서의 수익체감과 자본 투입의 위험부담 증가 때문에 발생한 화폐자본의 과잉을 상쇄시키거나 심지어 그것을 능가한 것은 이윤보다는 권력과 지위를 행동의 안내지침으로 삼는 조직들이 거의 동시적으로 화폐자본 수요를 팽창시켰기 때문이었음. 보통 이런 조직들은 교역과 생산에서 자본주의 조직들이 수익체감과 자본투입의 위험부담 증가 때문에 의지가 꺾이는 것처럼 의지가 꺾이지는 않았음. 그들은 그들이 빌릴 수 있는 모든 자본을 빌려, 그것을 시장, 영통, 인구의 강제적 정복에 투입함으로써 수익체감에 저항하였음.
- 14세기말 15세기 초의 금융적 팽창에서 자본축적은 소수 도기국가들에 집적되었으며, 이 도시국가들은 경쟁자들로부터 상품화폐 또는 화폐교역의 운송방향을 전환함으로써, 그리고 약한 도시국가들의 영토와 인구를 차지함으로써 힘과 밀도를 성장시켰음. 이런 자본집적으노 도시국가들의 규모와 힘을 그리고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체계 자체의 규모와 힘을 증가시켰음. 그러나 첫번째 체계적 축적순환의 기반을 마련한 것은 두번째 종류의 집적을 통해서였음. 그 기반은 새로운 조직구조의 형성을 통해 마련되었는데, 이는 세계시민주의적인 축적망의 힘(가장 두드러진 것은 제노바인들)과 가용한 최강권력망(이베리아인들)을 조합한 것이었음. 유사하게 16세기말 17세기 초의 금융적 팽탕에서 리옹 정기시로부터 운송방향을 전환한 것, 그리고 안트베르펜과 세비야를 피아첸차 정기시의 체계에 종속시킨 것은 분명이 다른 모든 자본주의 네이션들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제노바 네이션의 조직영역을 향한, 그리고 그 내부를 향한 하나의 자본집적 형태를 만들어 냈음. 그러나 또 다시 두번째 체계적 축적순환의 기반이 된 것은 새로운 종류의 국가(연합주), 새로운 종류의 국가간 체계(베스트팔렌 체계), 그리고 새로운 종류의 기업조직(공인합자회사와 상시개장 주식시장)을 지원할 수 있는 수단을 네덜란드 인 상인 엘리트 수중에 쥐어 준 자본축적이었음. 18세기 후반의 금융적 팽창에 발생한 자본집적은 앞선 금융적 팽창들에서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이었는데, 이는 성공적으로 자본주의를 내부화한 영토주의 조직들이 침투했기 때문. 그렇지만 네덜란드순환의 주도적 기업조직인 공인합자회사에 초점을 맞추면 유사한 경향을 관찰할 수 있음. 18세기말이 되면, 그런 회사들에 투자된 자본은 거의 전부 그들 중 하나(잉글랜드 동인도회사)에 집적되게 되며, 나머지 대다수 기업들은 사업에서 밀려났음. 비록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의 영토정복이 세번째 체계적 축적순환의 기반을 구성하는 핵심요소가 되긴 했지만, 그 회사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니었음. 영국 자유무역 제국주의의 조직구조는 인도에서 영국제국이 형성된 데 의존했던 만큼이나 동인도 회사 활동의 점진적 탈규제화와 최종적 청산에도 의존하였음.
4장_ 장기 20세기
- 우리시대의 형상을 만들어낸 자본축적의 전략과 구조는 19세기 마지막 사반세기에 존재를 드러내게 되었음. 그것은 자본주의 기업의 경비절감 논리 속으로 비용의 새로운 내부화를 끌어들인데서 기원. 보호비용을 내부화함으로써 네덜란드 체제가 제노바체제보다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과정을 한걸음 더 밀고 나갔던 것처럼, 그리고 생산비용을 내부화함으로써 영국체제가 네덜란드 체제보다 그것을 한걸음 더 밀고 나갔던 것처럼, 미국체제는 거래비용을 내부화함으로써 영국체제와의 관계에서 동일한 일을 수행하엿음. 과거에 별도의 사업단위들이 수행하던 활동과 거래를 단일조직영역내에 내부화함으로써 수직적으로 통합된 다단위 기업들은 거래비용을 감축하고 이를 더욱 계산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음. 이렇게 탄생한 경제(경비절감)는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속도의 경제였음.
- 그런 내부화는 확대된 기업에 많은 이점을 가져다 주었음. 단위들 사이의 거래가 일상화되어 거래비용이 하락하였음. 생산단위들의 관리와 구매 및 유통단위들의 관리를 결합함으로써 시장과 공급원에 대한 정보비용이 감소되었음. 훨씬 큰 중요성을 지니는 것은 많은 단위들이 내부화되자 한 단위에서 다른 단위로 재화의 흐름을 행정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가능해 졌다는 점. 흐름들의 일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하자 생산 및 유통 과정에 이용된 설비와 직원들을 더욱 강도높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생산성이 증가하고 비용이 감소하였음. 게다가 행정조적 덕에 현금흐름은 더 확실해졌고, 관련 서비스에 대해 더 신속한 변제가 제공되었음.
- 공인합자회사는 유럽 외의 세계에서 국가형성과 전쟁형성기능을 수행하도록 유럽정부들의 힘을 실어준 사업조직이었고, 여기서 국가형성과 전쟁형성은 그 자체로 목적이자 상업주의 팽창의 수단이었음. 이 회사들이 이 기능을 정부 스스로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한, 이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유용성에 다소간 비례해 무역특권과 보호를 허용받았음. 그러나 이들이 더 이상 그렇지 못하게 되자마자, 이들 회사의 특권들은 박탈당했고, 중앙정부 자체가 그들의 국가형성과 전쟁수행기능을 장악했음.
- 영국사회의 금전적 합리성과 독일사업의 기술적 합리성을 대비하면, 영국사업이 기술을 단지 최대한의 자본수익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해, 독일사업은 수단을 목적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음. 영국사업의 금전적 합리성은 주로 영국국가가 세계시장 형성과정에 대해 수행한 통제력을 발휘한 것이었음. 이에 비해 독일의 기술적 합리성은 주로 동일한 과정 때문에 새로 형성된 독일국가의 통합에 제기된 심각한 도전을 반영하는 것이었음.
- 폴라니는 1840년대 영국통화의 고정금속 본위제를 일방적 자유무역 및 국내노동시장의 자기조정에 연결시키게 된 긴밀한 상호의존관계를 강조함. 그러나 이런 리카도 자유무역의 세 요소들은 두세기 반 이전에 일관된 전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고정 금속 본위제는 일관성 있는 전체를 만들어낸 바 있었다. 그것이 순조롭게 작동하기 위해서 여기에는 자유시장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 있었으며, 그것은 영국국가와 영국자본의 성공적인 해외팽창이었음. 이런 팽창이 성공적일수록 이자, 이윤, 공납, 송금형태로 해외에서 영국신민들과 거주자들에게 이전되어 영국 파운드의 안정적 금속본위제를 지탱하도록 동원될 수 있는 잉여자본량은 더욱 꾸준하게 늘어났음.
- 18세기말 영국 산업혁명의 선도부문은 출발점부터 그 경쟁력과 계속적 팽창을 외부경제에 의존하였는데, 이는 투입물 획득과 산출처분을 해외시장에 의존함으로써 가능해졌음. 더 중요한 것은 전시지출의 영향하에, 영국 자본재 산업이 정상적 상황하에서 국내 교역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과대성장하였다는 점, 그리고 이런 지출이 늘기보다는 뒤이어 감소하자, 자본재 산업의 규모와 전문화를 유지하려면 그 자체가 전지구적 범위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임. 나폴레옹 전쟁 종료기와 적대성의 종식에 뒤이은 가격과 산출물의 불경기에, 이렇듯 영국 통치계급이 면산업의 전지구적 범위를 공고화하고 자본재산업 시장 확대의 전지구적 범위를 공고화하는 수단과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앞선 30년의 산업팽창이 영국국가의 내외적 안전을 위협하게 될 상황에 직면. 그러나 만일 이러한 수단과 방법을 찾아낸다면, 이 두 산업은 현실적이고 잠재적인 사회적, 정치적 문제의 원천에 벗어나 영국의 부와 권력을 더 한층 팽창시키는 엔진으로 전환될 수 있었음.
- 모든 앞선 세계화폐체계-영국의 것을 포함해-에서 고도금융의 회로와 망은 이윤획득을 위해 그것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사적은행가와 금융가들의 수중에 확고히 장악되어 있었음. 세계화폐는 이렇듯 이윤추구활동의 부산물이었음. 이와 대조적으로 브레턴우즈에서 수립된 세계화폐체계에서 세계화폐의 생산을 담당한 것은 주로 복지, 안보, 구너력에 대한 고려에서 추동된 정부조직들의 망(원칙적으로는 IMF와 세계은행, 실제로는 미국의 친근하고 중요한 동맹국 중앙은행들과 공조를 이루어 행동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었음. 이렇듯 세계화폐는 국가형성활동의 부산물이 되었음.
- 한국전쟁중 그리고 그 후의 대대적인 재무장이 전후 세계경제의 유동성 문제를 영구히 해결해주었음. 외국정부에 대한 군사원조와 해외에서 미국의 군사비 직접지출(둘다 50년에서 58년 사이와 또다시 64년에서 73년 사이에 꾸준히 늘어났음.) 이 세계 경제 팽창에 필요한 모든 유동성을 제공해 주었음. 그리고 매우 관대한 세계 중앙은행으로 작동하는 미국정부와 더불어 세계무역과 생산은 전례없는 속도로 팽창했음. 매코믹에 따르면 한국전쟁에서 출발해 베트남전쟁을 사실상 종식시킨 73년 초 파리평화조약에 이르기까지의 23년은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수익성있는 경제성장의 시기였음.
- 50년대와 60년대는 1850년대와 1860년대처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또 하나의 실물적 팽창국면이 됨. 즉 이 시기에는 잉여자본이 충분히 거대한 규모로 상품교역과 생산에 다시 되돌아와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개별정부조직 및 기업조직들 사이에 새로운 협력과 분업의 조건들을 만들어냄. 확실히 잉여자본이 상품으로 전환되는 속도, 규모, 범위는 앞선 순환보다 미국순환에서 더 거대했음.
- 미국체제의 위기가 도래했음을 알린것은 68년과 73년 사이 서로 구분되면서도 밀접하게 연관된 세 영역이었음. 군사적으로 미군은 베트남에서 훨씬 더 심각한 곤경에 처했음. 금융적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브레턴우즈에서 수립된 세계화폐의 생산 및 조절양식을 유지하기가 어렵고 나아가 그 유지가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음. 이데올로기적으로, 미국정부의 반공십자군은 국내와 해외 모두에서 정당성을 상실하기 시작하였음. 위기는 급속히 악화되었고, 73년에는 모든 전선에서 미국정부가 퇴각하였음.
- 원료채취와 제조업 제품공급조직 분야에서 미국에 기반을 둔 거대 다국적기업 자회사와 지사들이 앞선 시기 유럽에 기반을 둔 상인 모험기업들의 활동을 대체하였음. 새로운 중상주의는 옛 중상주의처럼 거대도시에서 기반한 법인기업이 직접 기업가 역할을 수행하여 그 투자로부터 모헙사업 이윤을 획득함. 이 법인기업은 거대도시에 필요한 원료를 수집하고 채취하는 일을 조직하며, 배후지에 제조업 제품(국내에서 생산된 것이건, 투자국 현지에서 생산된 것이건)을 공급하는 일을 맡음.
- 73년에서 78년까지 5년여 동안 순수 미국달러 본위제는 미국 정부에게 세계화폐의 생산에서 전례없는 행동의 자유를 부여해준 것처럼 보였음. 변동환율제는 .... 그 원천이 무엇이건 간에 미국정부에게 국제수지 적자를 통제할 필요성을 없애 주었음. 왜냐하면 미국은 이제 비태환달러를 국제유통에 무제한 배출할 수 있었기 때문. 따라서 미국은 재화생산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달러를 평가절하하는 반면, 더 이상 자본수지 적자를 벌충하기 위해서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해야 하는 문제에 빠져들지 않게 되었다. ..... 실제적으로, 미국의 국제수지결제문제는 간단하게 사라져 버렸다.
- 금융에 대한 과도한 몰입과 부채에 대한 관용은 거대 경제열강들의 최종단계에 아주 전형적임. 이는 경제적 쇠퇴의 전조임. 금융은 대규모 중간계급을 육성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전체(네덜란드, 미국, 영국) 주민 중 일부 엘리트만이 거래소, 상인, 은행, 그리고 회계사무소의 이윤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 소송과 교역의 우월성은 더 광범한 전국적 번영을 제공하고, 여기서는 보통사람도 생산라인, 광산, 공장, 기계, 범선, 그물을 맡을 수 있음. 이런 경제발전단계가 다음 단계에 자리를 내주게 되면, 자본, 기술, 교육으로부터 확연한 단절이 발생하여, 거대한 중간계급 사회는 생동력과 독특성을 잃는데, 이것이 바로 근심가들이 20세기 말 또다시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 것임.
에필로그_ 자본주의는 성공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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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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