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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역사 2014. 12. 7. 10:34

 


제국(EMPIRE)

저자
닐 퍼거슨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6-11-3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우리 시대 최고의 역사가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제국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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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영국인가
- 에스파냐 제국은 중앙에서 통치하는 독재체제였음. 아메리카의 은으로 가득찬 금고를 소유한 에스파냐 왕은 확실히 세계지배를 꿈꿀 수 있었음. 왕의 영예를 드높이는 것 이외에 그 모든 돈이 다른 무엇에 쓰였겠는가? 그에 비해 잉글랜드에서는 군주의 권력은 결코 절대적이지 못했음. 처음에는 그 나라의 부유한 귀족층에 의해 그리고 나중에는 두 의회에 의해 왕권은 항시 제한되어 있었음. 1649년에는 잉글랜드의 왕이 의회의 정치적 요구에 감히 저항하다가 처형되는 일까지 있었음. 재정적으로도 의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잉글랜드의 군주들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용병에 의존하는 것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허다했음. 그러나 잉글랜드 국왕의 허약함에는 미래의 힘이 숨어 있었음. 폭넓게 정치권력이 퍼져있었기 때문에 재산 역시 그러했음. 세금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징수할 수 있었음. 그러므로 돈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적 통치자에 의해 착복되지 않을 것임을 전적으로 확신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사업가들에게 중요한 유인이었음.
- 1688년 여름 제임스2세의 카톨릭 신앙을 의심스러워하고 그의 정치적 야심을 두려워한 잉글랜드 귀족들의 강력한 과두정은 제임스2세에 대한 쿠데타를 실행. 의미심장하게도 그들은 런던시키 상인들의 지원을 받았음. 그들은 네덜란드 왕 오라녜 빌렘 1세에게 잉글랜드로 침입하도록 초대되었으며 거의 피를 보지 않은 군사행동을 통해 제임스는 쫓겨남. 이 명예혁명은 영국인의 자유와 의회군주제를 결정적으로 확립한 정치적 사건으로 묘사됨. 그러나 그것은 또한 잉글랜드-네덜란드의 사업합병이라는 속성을 지녔음. 네덜란드의 오라녜 빌렘이 사실상 잉글랜드의 새로운 행정수반이 되면서 네덜란드의 실업가들은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의 주요주주들이 되었음.
- 잉글랜드-네덜란드 합병은 잉글랜드 인들이 동방에서 훨씬 더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었음을 의미했음. 잉글랜드인들에게 새로운 인도직물무역을 자유럽게 개척하게 하고, 인도네시아 향신료 무역을 사실상 네덜란드인들에게 주는 거래가 이루어짐. 직물시장이 순식간에 향신료 시장보다 커졌기 때문에, 그것은 잉글랜드 회사의 입장에서 훌륭한 거래임이 판명되었음.
- 인도에 있는 유럽인 정착지들은 그때까지 항상 요새형식으로 만들어졋음. 이제 위험한 시대를 맞아 거기에 본격적으로 수비대를 주둔시켜야 했음. 잉글랜드인들로부터 충분한 인력을 모을 수 없기 때문에, 동인도 회사는 인도대륙의 전사계급 중에서 모집하여 연대를 구성하고, 유럽무기를 지급하고 잉글랜드 장교 예하에 두었음. 이론상으로 전시에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의 보안부서에 지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사적인 군대였고, 곧 이어질 사업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서였음. 무역활동으로 시작한 동인도 회사가 이제는 자체 거류지, 자체 외교관, 심지어 자체 군대까지 보유하게 됨. 그것은 점점 하나의 독립된 왕국처럼 보이기 시작. 여기에 아시아와 유럽의 중요한 차이가 있음. 유럽열강들은 서로 마음껏 싸울 수 있었고 그때 승자는 유럽인일 수밖에 없었음. 그러나 인도의 권력체들이 전쟁을 해도 비인도 권력체가 승자가 될 가능성이 존재했음.
- 프랑스 동인도 회사는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에 그리 위협적 존재가 아니었음. 첫번째 프랑스 동인도 회사는 정부의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액수의 손실을 보았고, 그래서 1719년 다시 설립해야만 했음.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와는 달리 프랑스 회사는 정부의 확고한 통제를 받고 있었음. 그것은 귀족들에 의해 운영되었는데, 귀족들은 무역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무력외교에만 관심을 보였음. 그러므로 프랑스의 위협은 네덜란드인들의 위협과는 아주 다른 형태를 취했음. 네덜란드인들이 시장점유율을 원한다면 프랑스인들은 영토를 원했음.
2. 백색역병
- 영국령 아메리카의 경제는 불확실했고 영국령 아메리카는 경제만으로 건설될 수 없엇음.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음. 즉 이윤동기에 더하여 대서양을 건너게 하는 무언가의 부가적 유인책이 필요했음. 그 무언가는 바로 종교적 근본주의였음.
- 독립전쟁에 대한 할리우드의 판본은 영웅적인 애국파와 사악하고 나치같은 영국군인들 사이의 직접적 싸움으로 흔히 그려짐. 그러나 실재는 아주 다름. 이것은 실로 사회계급들 심지어는 가족들 사이를 갈라놓은 내전이었음. 그리고 최악의 폭력은 영국 정규군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왕에게 충성하는 지역 사람들에 대하여 식민지 반란세력이 자행한 것이었음.
- 아메리카의 독립은 영제국의 종말을 예고했을지 모름. 그것은 확실히 역동적인 새로운 세력을 탄생시켰음. 그러나 영제국은 남아메리카 식민지의 반란에서 결코 회복하지 못한 에스파냐와는 대조적으로 이 손실로 인해 붕괴되지 않았음. 실로 13개 식민지의 상실은 영국의 식민지 팽창을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도록 박차를 가해 훨씬 더 멀리 퍼져 나가게 한 것처럼 보였음. 사실상 대륙의 절반을 상실했음. 그러나 세계의 다른 쪽에서 완전히 새로운 대륙이 손짓하고 있었음.
- 호주역사에서 주목할만한 패러독스는 영국이 버린 사람들이 거주하는 식민지로 출발한 나라가 영제국에 아주 오랫동안 충성을 보여주었다는 것. 아메리카는 담배 플렌테이션과 청교도 유토피아의 결합, 경제적 자유의 창조물로 시작하여결국에는 반역의 공화국으로 끝났음. 호주는 감옥, 즉 자유의 부정으로 출발했음. 그러나 더욱 믿음직한 식민지 개척자들은 필그림들이 아니라 죄수들로 판명되었음.
3. 선교
- 리빙스턴은 복음의 힘을 믿었지만 스탠리는 폭력만을 믿었음. 리빙스턴은 노예제도에 질겁했짐나 스탠리는 그것의 복원을 묵인하려 했음. 특히 리빙스턴은 정치적 국경에 무관심했지만 스탠리는 아프리카가 분할되기를 원했음. 그래서 그렇게 되었음. 1873년 리빙스턴의 사망과 1094년 스탠리의 사망 사이의 기간에 아프리카의 약 1/3이 영제국에 병합되었고, 사실상 그 나머지는 모두 한줌의 다른 유럽 열강에 의해 점령되었음. 그리고 이 정치적 지배를 배경으로 해서만이 사하라 사막이남 아프리카 지역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음. 리빙스턴이 의도했던 대로 상업, 문명, 기독교가 아프리카에 주어질 것이었음. 그러나 상업, 문명, 기독교는 네번째 C, 즉 정복과 함께 올 것임.(commerce, civilization, christianity, conquest)
4. 신의 혈통
- 증기력 이전 시대에 인도는 수공방적, 직조, 염색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었음. 처음에 영국인들은 그들의 생산물에 대해 관세를 인상했는데, 그들의 대체산업 생산방식이 완성되자 자유무역을 요구했음. 이제 그들은 인드롤 영국의 기술과 값싼 인도인 노동력을 사용하는 제조업 경제로 재편하는 데 몰두했음.
- 보통의 인도인은 영국 지배아래에서 더 부유해지지 않았음. 1757년에서 1947년 사이에 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347% 증가했지만 인도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불과 14%증가. 인도경제가 산업화되면서 생긴 이윤의 상당부분이 영국의 관리사무소, 은행 또는 주주에게 돌아갔음. 유능한 인도투자자들이나 기업가들이 부족하지 않았는데도 이러했음. 독립한 아메리카 합중국이 높은 관세장벽 뒤에서 초기산업을 보호하고 있던 19세기에 인도에 강요된 자유무역은 토착 제조업자들을 유럽의 치명적인 경쟁에 노출시키고 말았음. 1896년에 인도의 공장들은 인도 직물소비의 8%밖에 공급하지 못했음. 인도의 연기 계약 노동자들이 영국의 만년 제국 경제가 의존했던 값싼 노동력 가운데 많은 부분을 제공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됨. 1820년대에서 1920년대 사이에 160만명에 이르는 이녿인들이 말라야 고무 플랜테이션에서 피지의 제당공장에 이르기까지, 카리브해, 아프리카, 인도양, 태평양 등지의 여러 식민지에서 일하기 위해 인도를 떠났음. 그들이 이동하고 노동했던 조건들은 이전 세기에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가해졌던 조건과 벼반 다르지 않았음.
5. 맥심총과 자본
- 식민화의 과정이 사영화되었고 독점 무역 회사들이 캐나다에서 콜카타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영토를 개척했던 제국 초기로 되돌아갔음. 로즈는 실로 의식적으로 역사에서 배우고 있었음. 영국의 인도통치는 동인도 회사와 더불어 시작되었음. 이제 영국의 아프리카 통치는 그의 사업 이익에 근거를 두게 되었음.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드비어스 사를 또 하나의 동인도 회사로 칭하기도 했음.
- 무역독점에서 보호령으로 변형하는 것이 아프리카 쟁탈전의 전형적인 진행방식이었음. 정치가즐은 사업가들을 앞세웠지만 머지않아 일종의 공식 식민지 정부를 창설하기 위해 개입했음. 새로운 아픅리카 회사들은 최초의 계획에서는 동인도 회사와 닮았지만 인도의 선구자가 인도를 통치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짧은 기간동안 아프리카를 통치했음.
- 제국이 진정 영국 유권자들 대다수에게 경제적으로 유익했는가? 정말 그러한지는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 없음. 해외투자의 이익은 대다수 사람들이 향유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들의 저축액이 있다면 보통 저축은행이나 다른 금융중개업자들을 통해 영국 정부의 채권에 투자되었음. 동시에 제국방위 비용은 지나치게 높지는 않았지만, 우선적으로 영국 납세자들이 부담한 것이지 백인 정착 식민지의 납세자들이 부담하지 않았음. 실로 이 시기에 제국의 주요 수혜자는 자치령으로 이민을 간 영국 신민들이었음. 1900년에서 1914년 사이에 250만 정도의 영국국민이 제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그중 75%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갔음. 대부분의 경우 이민은 소득을 상당히 증가시키면서 세금부담은 줄여주었음.
- 투기업자 또는 금융업자로서 그들은 제국주의 경제학에서 막중한 단일요소를 이룸. 그들이 추구하는 수익성 있는 사업의 조건 각각이 그들을 제국주의 편에 가담하게 만듬. 전쟁, 그밖의 다른 어떤 공공연한 충격스러운 공공 신용의 혼란으로부터 이익을 빨아먹는 괴물들임. 이들 가문의 부, 활동규모, 그리고 세계적인 조직으로 그들은 경제정책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됨. 그들은 제국주의 사업데 대해 가장 명백한 이해관계를 가지며, 그들의 의지를 각국의 정책에 강요하는 수단을 다수 지니고 있음. 금융은 오히려 제국주의라는 엔진의 운전자로서 그 힘의 방향을 지시하고 활동을 결정함. (홉슨, 1902)
- 영웅시대에는 헬레네가 수많은 배를 발진시킨 얼굴이었음. (헬레네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여인) 우리의 황금시대에 그 얼굴은 종종 어떤 유대인 금융가의 약삭빠른 모습을 띠고 있음. 영국은 로스차일드 경과 그의 동료채권 소유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이집트를 점령하고 그 다음에는 실질적으로 병합했음.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아마도 우리의 남아프리카전쟁일 것임. (브레일스퍼드, 1910)
6. 경매에 붙여진 제국
- 전쟁으로 인한 가장 큰 경제적 변화는 국제자본시장에서 일어났음. 표면상으로는 1920년대에 정상상태로 복귀했음. 대체로 금본위제가 복구되고 자본흐름에 대한 전시의 통제도 없어졌음. 이제 미합중국이 거의 그만한 액수를 해외에 투자하고 있었지만 영국은 세계의 은행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시 시작했음. 그러나 일찍이 순조롭게 작동했던 거대한 기계가 이제는 삐걱거리다가 멈춰버렸음. 이유중의 하나는 전쟁의 결과로 인한 엄청난 액수의 새로운 부채의 창출이었음. 독일의 배상금뿐 아니라 승리한 연합국들이 서로 빚지고 있는 복합적인 부채총액도 있었음.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과 프랑스의 중앙은행이 비축한 금이 부족하여 금본위제의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임. 그러나 주요한 문제는 경제정책(한때 고전적 자유주의의 교의에 근거해서 예산은 수지균형이 맞아야 하고 은행권은 금으로 바꿀수 있어야 한다고 단언했음)이 이제 민주정치정치의 압력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었음. 투자자들은 부채를 지고 있는 정부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확대할 의지가 있다고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음. 그들은 또한 금 유출로 인해, 그에 수반하는 국내의 금융긴축에 관계없이 태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자율이 상승하리라고 확신할 수도 없었음 (금융긴축상황에서는 현금부족으로 인해 이자율이 높은 것이 일반적임)
- 승리의 비용으로 기진맥진하고, 일본과 독일에게 패배후 새출발할 기회를 거부했던 영국은 제국의 비용을 더 이상 부담할 수 없었음. 민족주의 폭동과 새로운 군사기술로 인해 제국 방위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었음. 47년에서 87년 사이에 영국의 국방비는 국내총생산의 5.8%에 달했음. 한세기 전에는 그 비율이 2.6%에 지나지 않았음. 19세기에 영국은 막대한 해외투자자산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메웠음. 막대한 해외자산은 해외부채부담으로 바뀌어 재정을 압박했고, 재무부는 국유화된 복지, 운송, 산업에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음.
- 영제국을 건설하는데 약 3세기가 걸렸음. 절정기에 영젝국은 세계 지표면의 25%를 차지했고 거의 같은 비율의 인구를 통치했음. 뿔뿔이 흩어진 몇개의 섬만을 유품으로 남긴채, 해체하는 데는 단 30년이 걸렸음.
- 영제국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184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에 자유무역은 성행하지 못했을 것임. 19세기 후반에 영국이 식민지들을 포기했다면 그 식민지들의 시장에서는 더 높은 관세, 그리고 어쩌면 다른 형태의 무역차별이 나타났을 것임. 이는 순전히 가설만은 아님. 영국의 제국경쟁자들인 프랑스, 러시아, 독일이 1870년대부터 채택한 관세제도 뿐만 아니라 독립이후에 미국과 인도가 채택했던 고도의 보호무역 정책에서 그 증거는 분명히 드러남. 그러므로 1차대전 이전에 영국이 사용한 군사예산은 국제적 보호무역주의에 대비하여 현저하게 낮은 보험료였던 것으로 보일 수 있음. 한 어림계산에 따르면 자유무역을 실시함으로써 영국이 얻은 경제적 이익은 국민 총생산의 6.5%정도였음.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세계경제 전체가 얻은 이익이 어느정도 였는지는 감히 계산해 보려고 하지 않았음. 그러나 30년대에 영제국의 힘이 쇠약해지고 전세계가 보호무역주의를 선택하면서 나타난 재앙적 결과를 고려하면 그것이 손실이 아니라 이익이었다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어보임.
- 일찍이 빅토리아 시대 후기 영국이 그랬듯이 미국이 비공식 제국에서 공식적 제국으로 변화하면서, 정치적 세계화로 나아가는 단계라고 가정할 수 있음. 역사가 실로 되풀이되는 것이라면 우리가 미국에게 기대할 것은 분명 그것임. 오늘날의 미국처럼, 영국역시 처음에는 세계 지표면의 25%를 통치하는 일에 착수하지 않았음. 영제국은 45년 이후의 아메리카 제국과 아주 유사하게 해안기지와 비공식적인 영역의 네트워크로 출발했음. 그러나 무역 이익에 대한 실질적 위협은 끊임없이 영국인들로 하여금 비공식적 제국주의에서 공식적 제국주의로 나아가도록 유혹했음. 그렇게 해서 지도의 더 많은 부분이 제국의 색으로 칠해지게 되었음. 아무도 미국의 비공식적 제국(다국적 기업, 할리우드 영화, TV복음주의자들의 제국)의 크기를 부정할 수 없음. 이것이 영국의 독점 무역회사들과 선교사들의 제국과 아주 다른 것인가? 세계 곳곳에 있는 미국의 주요 군사기지를 보여주는 지도가 100년전 영국 해군의 석탄적재항구 지도와 아주 유사해 보이는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님. 최근 미국의 외교정책도 영제국이 전성기 빅토리아 시대에서 사용했던 군함외교를 연상시키는데, 당시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다소 골치아픈 일들은 단기간의 예리한 외과수술적 공격으로 처리할 수 있었음. 유일한 차이는 오늘날의 함대는 날아다닌다는 사실임. 그러나 세가지 점에서 영국적 세계화의 과정은 오늘날의 세계화와 근본적으로 다름. 자세히 조사해보면 미국의 힘은 자연스럽게 발생한 제국적 패권국의 힘이 아닐지 모름. 첫째로는 영제국의 힘은 자본과 인력의 대규모 수출에 의지했음. 그러나 72년 이래로 미국경제는 자본의 순수입국이엇음. 식민지로 나가련느 이주자가 많은 나라가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유입되는 이입민들의 인기 있는 목적지임. 전성기에 영국은 엘리자베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뻔뻔 스러운 제국주의 문화에 의존할 수 있었지만, 미국은 항상 다른 나라 국민들이 마음내켜하지 않는 통치자일 것임. 1913년 멕시코에서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를 복원하기 위해 우드로 윌슨이 개입한 이래로 다른 나라에 대한 미국의 개입방식은 종종 약간의 폭탄을 퍼붓고 행군해 들어가 선거를 실시하고 그 다음에 빠져나오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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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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