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메일 리스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4.24 휘메일 리스크

휘메일 리스크

인문 2015. 4. 24. 15:41

 


휘메일 리스크

저자
한상복, 박현찬 지음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 2013-11-27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21세기 생존 화두는 ‘여자의 마음’이다. ‘시장을 움직이는 손...
가격비교

- 남성에게 있어 일이란 끊임없이 점검하고 챙겨야 할 대상. 그래서 틈이 날 때마다 후배들에게 능력을 보여달라는 식의 채찌질형 말을 자주 함. 반면 여성은 일에 앞서 상대의 생각을 점검하는 말을 던짐. 남성들이 조직과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능력의 검증을 요구하는 반면, 여성들은 능력의 검증 못지 않게 자신이 어떻게 여겨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생각함. 타인의 시선을 거울삼아 자신을 살피려 하기 때문. 가방에서 수시로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파악해가며 삶의 자세와 태도를 끊임없이 교정. 이는 그들이 원만한 관계속에서 안정된 자신을 추구하려는 심리를 갖고 있기 때문.
- 남성과 여성은 집에서 추구하는 바가 다르지만 이같은 차이를 서로 인식하지 못함. 남성은 집이 동굴이 되어주길 원함. 혼자만의 공간에 멍하니 앉아 쉬고 싶어함.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은 집이 광장이기를 바란다. 식구들과 어울리며 최대한 많은 대화를 하고 싶은 것. 남녀의 대화방식부터가 판이하게 다르다. 남성은 정보전달을 위한 리포트 토크를 하지만, 여성은 친밀한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라포르 토크를 함. 남편에겐 "오늘 만난 친구중에 이상한 애가 있었어"라는 핵심본론이 중요하겠지만 아내에게는 그날 일어났던 모든 일들과 그것에 대한 자신의 느낀 전부가 남편과 나누고 싶은 본론인 것이다.
- 남성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식과 정보에서 우위에 선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얻음. 반면 여성들은 전문용어보다는 친근한 용어를 주로 사용.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말이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 있는지가 중요. 그럼으로써 돌아오는 호의적인 반응에서 만족감을 얻음. 남성의 말은 권위를 얻고 유지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 권위에 대한 남성들의 집착은 남성적인 용어에서 단적으로 드러남. 컴퓨터 전문용어나 출력, 배기량 같은 자동차 용어들이 그러함 남성은 회의나 세일즈를 할 때 수치와 데이터를 중심으로 대화를 하는 경향이 있음. 비교를 할 때 어느것이 더 우월한지 따지려 드는 것. 해당 주제에만 집중할 뿐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대체로 배제됨 반면 여성들 간에는 먼저 개인적인 대화로 친밀감을 쌓아 신뢰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음. 전문용어는 친밀감을 가르는 위험한 시도로 간주됨. 여성들은 옷인 헤어스타일, 다이어트, 자녀양육 문제 같은 공통의 관심사로 서로의 연결고리를 만들려 함
- 많은 여성들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자기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재능을 갖고 있음. 자신의 문제를 적시하거나 선택을 분명히 하는 일이 드물고 입장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도 않는다. 에둘러 말하고는 알아서 눈치껏 행동하기를 바란다. 여성들의 세상에서는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고 위험한 일로 여겨짐. 그녀들의 세상은 얼핏 온화하고 다정하게 보이지만 그것만이 진실이 아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남성들의 세계 이상으로 혹독하다. 한편, 그들의 에두른 표현은 상대의 관심을 위해 나머지 절반을 남겨놓는 측면도 있음. 나머지 절반을 상대가 완성해주기를 바라는 욕망이다. 그래서 상대의 입에서 원하는 바가 나올 때까지 스무고개 게임을 멈추지 않음
- 여성들은 대체로 감정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함. 때로는 그녀들이 느끼는 감정이 자신을 움직이는 모토가 됨. 그러므로 남성들에게는 성취의 영역인 돈문제가 여성들에게는 남들과 소통하는 영역인 감정문제로 여겨질수도 있음. 남성은 경쟁자보다 연봉이 적다는 발언에서 금액에 집중하지만 여성은 자신보다 연봉을 더 받는 사람때문에 감정이 상함. 여성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말이 "난 아무개가 좋아" 혹은 "난 무엇이 싫어"같은 호불호를 드러내는 표현.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자신의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것인데, 이것은 곧 상대의 공감을 끌어내어 주파수를 맞추기 위한 시도이기도 함. 공감과 동감의 경계선에서 혼란을 겪는 여성을 발견할 때도 있음. 자신과 의견을 같이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감정적 앙금을 쌓는 경우임. 공감이란 서로의 입장은 다르지만 상대를 이해하는 것인 반면, 동감은 그 입장까지 같음을 의미. 하지만 입장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음. 반대의견이 상대에 대한 거부가 아님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이 자기감정에 충실한 차원을 넘어 확신을 갖는다. 그들에겐 나름의 경험과 근거가 있음. 여성은 직관이라는 감각이 충만하기 때문에 느낌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음. 직관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많음
- 대다수 남성이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는 성공. 경제적 성공이든, 명예를 얻는 것이든, 그들에게 성공이란 현재가 아닌 미래적 가치임. 미래를 위해 현재의 욕구를 희생하고 투자할 때 비로소 성공의 문제에 진입할 수 있음. 때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더욱 성공에 집착하고 현재의 행복을 기꺼이 포기하기도 함. 이에 비해 여성이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는 행복임. 그녀들에게는 지금 내가 행복한지, 만족감을 느끼는지가 더욱 중요. 종종 물질적 부분에서도 그런 가치가 적용됨. 누구나 갖고 있다는 다양한 아이템들을 자신만 갖지 못할 때 박탈감게 빠지곤 하는 것이다. 이때 남성은 앞으로 살아갈 날과 성공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여성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 하지만 그 노력이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음. 여성은 남편의 이야기를 이성적으로 이해하지만, 욕망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성적 수용은 무의미. 대부분의 갈등이 남성에게는 능력의 차원인 반면 여성에게는 감정과 욕망의 문제다. 회사 또한 마찬가지다. 경영자가 고통을 감내하며 실적을 위해 일로 매진하자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여직원들의 마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경향이 있음. 여직원이 다수인 조직의 경영자라면, 차라리 어떻게 즐겁게 일할 것인지, 그리하여 직원들의 행복감과 성과를 어떻게 자극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나은 접근법. 그들의 동기를 끌어낼 줄 하는 경영자는 가차없는 숙제검사보다는 함께하는 즐거움을 활용함. 한 마케팅 기업의 대표는 여직원들을 위해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를 포빙, 최고급 구두를 제작해 감동을 안겨주는가하면 사옥 1층에 커피전문점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음. 여직원들을 단순한 일손이 아니라 내부고객으로 대접하며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모토임
- 남성의 경우에는 테스토스테론이 후다닥 쇼핑을 만들어냄. 남성은 쇼핑의 즐거움 보다는 빠른 선택을 통해 자신의 뛰어난 선별능력과 우월감을 만끽. 그래서 남성 쇼핑 중독자는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음. 짧은 시간안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능력의 척도가 되기 때문. 남성에겐 고성능 스포츠카를 모는 행동이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유발해 여성들의 쇼핑만큼 짜릿한 경험을 안겨준다는 연구결과가 있음. 남성 참가자들에게 최고급 스포츠카를 몰게 한 뒤 호르몬 변화를 측정했더니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일제히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음. 아무나 몰 수 없는 고성능 자동차를 운전하는 짜릿한 경험을 통해 어떤 경쟁자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면서 남성 호르몬 수치가 올라감
- 자신의 여성성을 부각시키려는 성향은 매우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여자들의 생존방편이기도 했음. 지위가 높고 능력이 있는 남성에게 어필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런 남성들은 대부분 수동적 여성을 원했음. 자신과 맞설가능성을 품고 있는 능동적 여성에게는 부담감을 느꼈기 때문. 현대 여성들은 굳이 여성성을 부각시켜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원하는 바를 스스로 이룰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음. 그래서 예쁜 척, 착한 척 내숭을 부리려는 여자를 발견하면 반감이 솟수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다른 여성의 내숭에 분노를 드러내는 여자들도 자기 마음에 드는 남성과 어울릴 때는 은근히 내숭실력을 발휘하곤 함. 결국 여성들에게 있어, 이 세상의 모든 내숭 중에 유일하게 허용된 것은 바로 나의 내숭일지도 모른다. 나를 제외한 여성들에게는 일체 허용하지 않는 일종의 내숭 독점권인 셈이다. 여성들의 이런 마음은 어떤 여자(동료 혹은 친구)를 좋아하는지를 통해 드러남. 다양한 조사가 이뤄졌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대동소이했다. 예쁜 척, 약한 척하지 않는 털털한 여자다. 남자보다는 여자한테 더욱 잘해주고 챙겨주는 언니같은 여자라면 호감도가 더욱 높다. 이런 스타일은 남성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음. 적극적인 남성들이 부담스러뤄하는 능동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겹침. 남자보다는 여자한테 더욱 잘해주고 챙겨주는 언니같은 여자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는,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여자다.
- 남성들간의 투쟁이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권력지향적인 데 반해 여성들 간의 투쟁은 조용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평등지향적임. 남성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홀로 솟아오르기 위해 투쟁하는 반면, 여성은 홀로 솟으려는 경쟁자를 다수가 힘을 합쳐 끌어내리기 위해 투쟁함. 이처럼 여성들 간의 경쟁과 성공은 주변 여성들의 눈치를 봐가며 요령있게 자신을 부각시키거나 또는 혼자만 튀려는 재수없는 경쟁자를 다른 여성과의 연대를 통해 끌어내리는 선택 사이의 어느 지점에 놓여 있음.
- 유리절벽은 기업들이 실패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여성을 승진시킨 뒤 해고하는 현상. 이는 불안정하고 실패의 위험이 높아 남성들이 꺼리는 자리를 여성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으며,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았음에도 능력이 없어 실패했다는 구실로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에 다름 아님. 많은 알파걸이 유리천장을 깨뜨리고 정상에 서는 데는 성공하지만 곧이어 만나는 유리절벽 앞에서는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함. 그래서 성공한 알파걸의 지위는 남성들에 비해 매우 불안하다. 작은 실수 하나조차 예사롭게 넘겨버리지 못하는 여성 리더들이 결벽성 완벽주의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 생후 하루밖에 안 된 신생아들의 머리맡에 모빌을 달아주면서 아기들의 행동을 관찰하면 남자아기들은 모빌에 관심을 보임. 모빌이 작동하자 눈을 움직여 그 방향을 쫓음. 사람에게는 무관심. 반면 여자 아기들은 모빌보다 그것을 매달아주는 사람의 얼굴을 빤히 쳐다봄. 모빌을 설치한 사람이 물러서자 그 방향으로 눈을 돌림. 물체보다 사람에 흥미를 더 많이 보인 것. 남녀의 차이는 이렇게 출생 직후부터 뚜렷하게 나타남. 남자 아기는 사람보다 물체에, 여자 아기는 물체보다 사람에 본능적으로 끌림. 켐브리지대학 연구팀은 그 원인을 테스토스테론에서 찾아냈음. 남자 아기들은 엄마의 자궁 속에서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아 사물 및 공간을 지각하는 능력이 주로 발달하는 데 비해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여자아기들은 사람 및 감정을 관찰하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 여성은 이렇게 사람 전문가 자질을 타고 남. 인형놀이를 통해 갈고닦은 사람 전문가 자질은 또래와 어울려 관계를 맺고 감정을 주고 받는 관계 놀이를 통해 더욱 정교하게 발전하며 차츰 보살핌이라는 여성성으로 수렴됨
- 뉴욕 시립대 필리스 체슬러 교수는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저서를 통해 "사람들의 선입견과 달리 여성도 남성만큼의 공격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남성만큼 신체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간접적 폭력을 통해 공격성을 표출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고 분석. 여성들은 자신의 안전을 먼저 확보한 상태에서 다른 이를 공격하는 방법을 진화과정에서 익혔음. 미운 상대를 등 뒤에서 공격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공격은 그 대상이 없는 곳에서 감정의 표현을 통해 이뤄짐. 따라서 당하는 쪽은 언제 누구에게 당했는지 알지도 못한채 험담이나 따돌림에 둘러싸일 때가 있음. 그들의 이런 공격성은 사실 보살핌의 다른 얼굴이라고 볼 수 있음. 둥지 수호자 본능을 발휘해 낯선 이에게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친하게 지내던 이에게 적대감을 표출할 경우에는 연민과 동정심을 은밀하게 거둬들임으로써 공격을 시작. 다만 보살핌 성격의 세심함이 집요함으로 바뀌어 상대에게 최대한의 심리적 타격을 가하는 쪽으로 돌봐주게 됨. 집단화된 가해 여성들은 피해여성을 집요하게 괴롭히면서도 은근한 어투를 사용함. 피해여성이 제3자에게 하소연할 경우 장난인데 오해가 있었다거나 우연이었을 뿐이라며 핑계를 대기 쉬운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남자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은 비교적 쉽게 적발해내는 반면, 여자아이들의 따돌림은 잡아내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함
- 김치나 반찬은 보살핌을 지속적으로 주기 위한 일종의 파이프라고도 표현할 수 있음. 파이프를 박아놓으면 수시로 연락해 김치가 떨어지지 않았냐면서 자주 집으로 불러 자식을 돌봐줄 기회를 얻게 됨. 특히 김치는 식성 헤게모니 경쟁의 첨병임. 여성들은 상대를 보살펴 주고 싶은, 또한 통제하고 싶은 욕망을 반반씩 담아서 음식을 장만함. 그럼으로써 상대의 입맛을 자기에게 맞춰 길들이려 함. 이는 시어머니의 반찬을 외면하는 며느리와, 며느리가 해온 반찬을 식탁에 내놓지 않으려는 시어머니의 행동으로 많은 가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이처럼 남성은 결혼을 하는 순간, 자신을 둘러싼 여자들의 보살핌 권한 투쟁속으로 말려들게 됨. 결코 피할 수 없는 투쟁이며, 많은 남자가 화해나 중재를 꿈꾸지만 그 같은 소망이 이뤄졌다는 기록은 아직 없다. 여성들의 보살핌 욕망의 본질이 곁에 있는 이를 어찌하려는 것이라면, 그런 욕망끼리 충돌하는 다툼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는 최후의 순간까지 웬만해선 끝나지 않음. 그래서 남자란 족속은 어머니와 아내, 심지어는 장모라는 세 여자의 틈바구니에 낀 채, 자기 취향대로 바꾸기와 취향 지켜내기 심리가 격돌을 일으키는 사이를 절묘하게 헤치고 나가는 눈치빠른 인형일 필요가 있음.
- 인류사적으로 사랑과 결혼이라는 개념이 결합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님. 스테파니 쿤츠는 진화하는 결혼에서 사랑으로 묶인 두 남녀의 결합이라는 결혼은 비교적 새로운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결혼은 이질적인 사람들을 친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협력하게 하는 생존의 방식이었음. 중세와 근대에도 귀족이나 부유층이 부를 얻고 유지하는 수단으로 결혼을 이용했으며 평민들 또한 경제적 이해득실에 따라 결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음. 현대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사랑을 기반으로 하며 남자가 생계를 책임지는 결혼은 근대 후기에 나타난 모델. 북미와 서유럽에서 지배적 형태로 자리를 잡는데 150년 이상이 걸렸지만 무너지는 데는 2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스테파니 쿤츠의 분석이다. 쿤츠의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현재를 들여다보면 19세기와 21세기가 혼재되어 있는 모습이다. 흔들리는 가부장 질서 속에서 집중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라난 딸들이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사랑을 바라본다. 사랑이 부담스러우며 결혼의 덫에 빠지고 싶지 않으나, 그럴수록 다른 한편으로는 로맨틱한 영원한 사랑에 천착한다. 그러나 그런 순수한 사랑은, 치열한 경쟁만이 횡횅하느 현실에선 찾아보기 어렵고 순수성을 지켜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결국 로맨틱한 사랑의 결핍을, 이 사람 저사람과의 필요에 의한 사랑을 반복함으로써 채워보려는 여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멋진 남성과의 원나잇스탠드가 그것이다.
- 미국 럿거스대 헬렌 피셔교수는 남녀간의 사랑을 3단계로 분류. 피터 교수에 다르면 남녀간의 사랑은 갈망으로 시작해 홀림을 거쳐 애착으로 진화해감. 사랑의 첫단계인 갈망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것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다. 생식기능과 성적 욕구에 해당. 두번째 단계인 홀림 시기에는 남녀 모두 페닐에틸아민과 엔돌핀 등의 왕성한 영향아래 놓임. 즐거움과 만족이라는 감정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앞서 리처드 루커스 교수팀이 2년이면 소진된다고 분석했던 연인의 정열이 이 시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음. 마지막으로 세번째 애착 단계는 불처럼 뜨겁지는 않으나 훈훈한 관계로 발전하는 시기. 이 시기에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주로 작용. 서로를 돌봐주고 책임져주는 데 관여하는 호르몬. 피셔 교수의 3단계 이론에 여성들의 호기심을 접목해보면,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비로소 명확하게 짐작해낼 수 있음. 상대 남성의 사랑이 어디쯤 와 있는지 수시로 점검함으로써 관계를 부드럽게 발전시키고 싶은 것이다. 초기의 열정적이며 무모한 사랑에서 안정적이며 성숙한 사랑으로 안착되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울리히 벡의 지적대로, 만족시킬 수 없는 기대감속에 관계를 질질 끌다가 결국에는 실망만 남기고 끝나버리는 낭만적 사랑의 덫에 빠진 것은 아닌지 수시로 돌아본다. 그러면서 상대 남성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스스로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일종의 변화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셈이다.
- 마티아스 울 박사는 "세계 문화유산의 상당부분이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한 남성들의 과시욕으로부터 비롯됐다"면서 "근본적으로는 생존과 번식 때문이었지만 여성을 감동시키기 위해 정교한 언어가 발달하고 예술이 꽃을 피웠으며 이는 오늘날의 돈과 비싼 차, 저택, 박사 학위증, 각종 트로피, 고상한 취미 등으로 이어져 내려온다"고 분석. 조공을 바라보는 남성과 여성간에는 약간의 시각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 남성의 경우 능력의 문제로 인식해 비싸고 폼 나는 것으로 아무르 파시옹을 보여주려고 함. 그러나 여성은 정성을 기대. 몇 달 동안 차근차근 모아 선물을 장만했다거나, 먼 속에 있는 전문가를 찾아가 제작을 의뢰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식의 세심한 마음과 스토리를 원하는 것.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가격외에도 그 안에 부여된 정성과 스토리임. 여성은 상대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마음을 써주는지, 자신을 얼마나 특별하게 대접해주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함
- "여자는 어느 몰도 보나 수수께끼다. 그리고 여자에게 있어서 그 모든 것에는 하나의 해결책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임신이다. 여자에게 있어 남자란 수단이다. 그 목적은 언제나 아이다. 하지만 남자에게 여자는 어떤 존재인가? 진정한 남자는 위험과 놀이, 두가지 종류를 원한다. 그 때문에 남자는 위험천만한 장난감으로서 여자를 원한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남성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아이이며, 남성은 그런 여성을 도전 대상으로 여겼다가 오히려 책임지게 된다는 유머 섞인 통찰이다.
- 프랑스 철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모성을 역사적 산물로 파악. 그는 저서 '만들어진 모성'에서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관행이었던 유모 위탁사례를 들어 모성애의 신화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함. 당시 어머니들은 아이를 도시 외곽의 유모에게 맡겼는데, 사실 유모위탁은 유아를 방기한 것과 마찬가지. 아이들은 비위생적 환경과 유모의 방치 속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음. 1년 동안 31명의 영아를 방치해 죽게 만든 유모가 있었으며, 자기 아이 2~3명을 죽인 유모의 집에 신생아를 또 보낸 어머니들도 있었음. 지금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자식을 일손 취급하거나 아들을 양자로, 딸은 가정부로 보내는 일이 불과 수십년 전까지 비일비재했음.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아이는 그저 생기는 것이었고, 부모들은 매번 자식을 낳을 때마다 지극정성으로 보살필 수가 없었음. 아이가 병이 들거나 죽고 사는 문제 역시 부모가 노력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음. 바댕테르는 오늘날의 어머니상이 19세기 들어 계몽주의와 함께 나타났다고 지적. 산업혁명과 중상주의 정책으로 노동력이 중요시 되자 국가가 여성들에게 모성애를 발휘해 직접 키울 것을 요구하게 됨. 게다가 그 이후 정신분석학이 등장하면서 어머니들은 무한책임 앞에 서게 됨. 문제가 있는 아이를 나쁜 어머니로 인한 트라우마의 결과로 보는 견해가 일반화되었기 때문. 바댕테르는 아이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 사이에서 어머니들이 자주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사람들도 습관적으로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책임을 묻게 됐다고 분석.
- 우리나라 가족관계는 외양으로는 가부장적이지만 그 속까지 들여다보면 어머니를 중심으로 자궁가족의 형태를 취함. 자궁가족이란 미국 인류학자 마저리 울프가 중국 여성들의 삶을 분석하면서 정의한 개념. 결혼을 통해 낯선 가족의 낮은 지위로 편입된 젊은 여성이 아이를 낳아 자신의 핏줄을 이용함으로써 영향력을 키워 나가고 마침내 가부장 질서 내부에서 비공식적인 권력의 정점에 선다는 의미.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씨앗으로서의 젊은 여성이 가부장 시스템이라는 단단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 여성은 그 핵심수단으로 자식을 활용함. 낯설고 거친 환경속에서 안정적 생존을 보장받는 방법은 아이를 낳아 구성원들로부터 인정을 얻는 길이었음. 전통사회에서 여성들은 아들을 낳아 한숨 돌리는 즉시 구성원들의 또 다른 기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음. 그것은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출세를 시키라는 집단적 요구였음. 결국 결혼한 여성의 성공은 아들을 얼마나 출세시키느냐로 판가름 되었으며, 이 경우 자궁가족을 이뤄 자신의 권력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음. 그러니까 자궁가족이라는 비공식적인 권력은 아들을 크게 출세시켰을 경우 그 어머니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었던 셈이다. 자궁가족의 전통은 21세기에도 이어짐. 현대 여성들은 매우 짧은 기간에 자신의 자궁가족을 만들어내고 권력을 획득함. 출산율 저하에 따른 사회적 위기로 인해 아이를 낳는 것만으로 곧바로 권력의 중심에 다가설 수 있게 된 것. 이제는 아들이든 딸이든 구분없음. 젊은 엄마들이 "시댁에 아이를 낳아주었다"는 표현을 쓰는 데는 이런 의식구조가 밑바탕으로 깔려 있음
- 21세기 들어 가부장 시스테이 뿌리째 흔들리자 젊은 여성들은 일찌가및 독립의 기치를 높이 드는 것은 물론, 시어머니의 아들까지 자궁가족의 조력자로 편입시킴으로써 자기 영역을 크게 넓히게 됨. 이처럼 현대판 자궁가족의 딜레마는, 어머니가 무한한 희생으로 키워낸 아들로부터 마침내 보상을 기대할 즈음이면 어느새 그 아들을 떠나보내야 할 시기에 이르게 된다는 점. 하지만 에리히 프롬은 참된 모성애를 '분리를 견디고 그 이후에도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풀이한다. "아이는 지배욕이나 소유욕을 가진 여자들에게는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만족스러운 대상이다. 그러나 아이는 성장한다. 어린아이는 언젠가는 어머니로부터 분리될 수밖에 없다. 참된 모성애는 모든 것을 주면서도 아이의 행복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이 단계에서 많은 어머니들은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자아도취적이고 지배욕과 소유욕이 있는 여자는 어린아이가 연약할 때에만 어머니의 사랑을 성공시킬 수 있다. 오직 참으로 사랑할 줄 아는 여자, 그녀 자신의 실존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여자만이 아이가 분리의 과정을 밟고 있을 때에도 사랑하는 어머니일 수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인가 아닌가를 가려내는 시금석은 분리를 견뎌낼 수 있는가, 분리된 다음에도 계속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식의 분리가 배신인지 독립인지는 어머니의 해석에 달려 있다. 어머니가 아들을 놓아주려 하지 않을 경우 품에서 벗어나려는 아들의 행동은 배신으로 규정될 것읻. 반면 어머니가 아들을 며느리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한다면 독립으로 자리매김 됨. 며느리 또한 세월이 흐른 뒤에는 다음 세대에게 역할을 물려주고 뒤로 물러나 가족의 역사가 됨
- 남성들의 경우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내 편과 반대편, 중립 등 세가지 경우로 상대를 분류하는 데 비해 여성들은 감정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내편 아니면 상대편으로 나누는 경향이 있음. 평소에 친밀감을 추구하며 내 편에 대한 애착이 강한 만큼 반대편에 대한 부정적 감정 또한 크다. 여성들은 호감을 얻으려고 같은 편인 척하는지, 아니면 마음속까지 같은 편인지를 금방 판단한다.
-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일수록 미러링을 통한 동질감이 급속히 확산됨. 좋은 일의 경우, 자칫하면 자랑으로 간주되어 부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도 있기 때문. 여성들의 모임에서 불행 배틀 혹은 비련의 주인공 경진대회로 불리는 수다를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유. 결혼기념일 선물을 둘러싸고 자존심 경쟁을 벌이다가도 누군가 불행배틀을 시작하면 모두가 '나도 나도'로 돌아서지 않을 수 없음. 이처럼 여성들에게는 미러링이나 동조화가 몸에 배어 이어 수시로 서로에게서 동질감과 유대감을 확인하는 경향이 있음. 이런 확인이 '같아야 한다'는 강박을 불러냄. 마음이든 처지든 같아야 친밀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 이는 '다름(특히 우월함의 과시)'이 초래할 수 있는 위화감과도 동전의 앞뒤처럼 붙어 있다.
- 남성들은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믿는다. 본질적으로 사람은 같을 수 있으나 지위와 서열에 따라 나누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누가 위이고 아래인지 확인하려 든다.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조심하고, 못한 사람은 은근히 아래로 내려다본다. 반면 여성들은 세상이 공평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여성이 자신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는 것을 부당하다고 인식. 따라서 질투나 시기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창피한 게 아니며, 오히려 그렇게 만든 쪽에 문제가 있다는 도덕관념을 갖고 있음.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0) 2015.05.15
모략의 기술  (0) 2015.04.24
우리는 꼬리치기 위해 탄생했다  (0) 2015.04.16
경영은 사람이다  (0) 2015.04.13
욕망하는 지도  (0) 2015.02.28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