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에라리온과 뉴질랜드에서 벌어진 가옥세와 개 세금 관련 전쟁은 납세자 반란과 그로써 일어난 사태들이 세금의 많고 적음의 문제일 뿐 아니라 정부가 납세자를 대하는 방식과 세금의 강제 집행 이면에 깔린 주권을 주장하는 방식의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유혈사태가 많지 않았던 시대라도 세금 행사가 자주권 침해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과세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주제다. 집에 난로가 몇 개 있는지 확인하려고 세무공무원이 사람들의 집에 들어갈 권리를 인정했던 스튜어트 왕조 후기 시대(1660~1714)에 국민들이 분노한 일을 살펴본다. 디지털 시대라는 오늘날에는 정부가 세금이나 다른 목적으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데도 우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커지니까 말이다.
- 1697년부터 1851년까지 영국에서 부과된 창문세. 언뜻 창문에 세금을 매긴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이거나 어리석은 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는 꽤 영리한 생각이었다.
당시 정부가 직면한 문제는 세금을 부과할 근거가 될 만한 타당한 사유를 찾는 것이었다. 그것은 부의 수준에 따라야 하고(공정성을 위해). 쉽게 검증할 수 있어야 하고(논란을 피하려고). 직전에 폐위된 스튜어트 왕조에서 난로 개수를 확인하려고 세금 조사관들이 집 안까지 들어오게 했던 끔찍한 난로세를 대체해야 했다. 따라서 집 안까지 들어가지 않고도 멀리서 확인해야 했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창문이었다.
집에 달린 창문의 개수야말로 그 집에 사는 사람의 품위와 부를 적절히 나타냈다. 그러니까 평균적으로 더 부유한 사람들이 더욱 많은 창문 세금을 부담하게 한다는 취지였다. 더구나 사람이 집안까지 들어가지 않고도 밖에서 창문 수를 세어 세금을 매길 수 있었다. 오늘날의 부동산 검색 포털 같은 대규모 주택 중개 수단도 없었고. 주택 가격을 합리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할 방법도 없었던 시대에 창문세는 그렇게 나쁜 생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창문세는 오늘날에도 일부 개발도상국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관찰되는 특성(집의 위치. 크기 등)에 수학 공식을 적용해 집값을 추정함으로써 재산세를 산출하는 데 사용하는 컴퓨터 기반 대량감정평가의 단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창문세 아이디어 자체는 좋았지만. 당시 다른 세금 제도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한계가 있었다. 즉. 창문의 수가 부를 나타내는 정확한 기준은 아니었다. 결국 창문세는 곧 불공평한 세금으로 여겨졌다. 애덤 스미스는 창문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시골 마을의 10파운드짜리 집이 런던의 500파운드짜리 집보다 창문이 더 많을 수 있다. 당연히 창문 많은 시골집에 사는 사람들이 창문이 적은 런던의 고급 주택에 사는 사람보다 휠씬 더 가난할 수 있지만, 창문의 수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시골 사람들이 국가에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 오늘날 관광객들이 케임브리지의 캠강에서 보트 관광을 하면 가이드가 모서리에 창문이 있는 강둑 위의 집을 가리킨다. 창문을 모서리에 오도록 설계한 것은 세금을 줄이려고 하나의 창문을 통해 가까이 있는 두 방으로 빛이 들어오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그 속임수를 금방 알아차렸고. 1747년 하나 이상의 방에 빛을 비추는 창문은 방마다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도입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창문을 헐거운 벽돌이나 판으로 임시로 막아서 창문을 세는 조사원들을 속였다. 진흙이나 소똥, 모르타르. 갈대 등을 이용해 밖에서는 창문으로 보이지 않게 하고 수시로 제거할 수 있었다. 이런 재료들은 소나기에 셋겨나갈 수 있었으므로 그 안쪽에는 종이나 합판을 대놓기도 했다."기 그러자 정부는 그해에 다시 한번 막은 창문을 조사원에게 알리지 않으면 다시는 창문을 열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하면 벌금을 무겁게 물린다는 규정을 새롭게 추가했다. 창문세와 관련한 논쟁. 편과적 지지. 분노가 난무했다.
- 대제국의 수백만 시민은 군주의 잔혹함보다는 탐욕을 더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들의 소박한 행복마저 과도한 세금으로 부당하게 침해되었다. 그 세금들은 대개 부유층에게는 큰 압박이 안 되었지만, 사회의 비천하고 궁핍한 계층에는더 무겁게 가중되었다. (에드워드기번(영국의역사가))
- 오늘날의 경제 상황으로 기업들은 과세 근거지를 세계 어디로나 이동하게 되었고, 민주주의는 과세의 가장 좋은 기준은 대체로 소득에서 찾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좋든 싫든 발전은 거부할 수 없으며, 소득세는 미래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과세 능력 기준을 찾을 때까지 유지될 것이다. (에드윈 셀리그먼(미국의경제학자))
- 조세 귀착을 법제화할 때는 그것이 가격을 통제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 법으로 가격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모든 기업은 세금이 부과될 때마다 세전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으므로 소비자 가격은 세금을 모두 반영하게 되어 있다. 결국 최종적인 조세 귀착은 정부 소망대로가 아니라 시장의 힘이 기업의 가격 인상을 얼마나 압박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조세 귀착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세금이 시장의 반응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판단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이것이 당신과 상관없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세 귀착 문제는 실제로 많은 갈등을 일으켰는데. 중세 영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 영국이 19세기 동안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지만 19세기에 만들어진 영국 상선은 대부분 바다 밑바닥으로 처박힐 정도로 위험성이 높았다. 영국의 상선들은 '유럽에서 가장 볼품없고 다루기 힘든 배들'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세금 때문이었다. 1773년 이후 거의 한 세기 동안 영국의 배는 항구 요금과 등대 요금을 내야 했는데. 이는 배의 길이와 너비에 따라 부과되었지만 깊이는 상관이 없었다. 따라서 세금을 최소화하면서 화물을 최대한 많이 심는 방법은 깊이가 깊고 폭이 좁은 배를 만드는 것이었으므로 배 모양이 불안정해진 것이다.
1830년 해양 사전의 저자는 "영국은 바람이 다른 방향으로 불어도 항해를 잘할 수 있도록 만들기보다는 화물 선적에 따른 세금을 회피하는 데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라고 썼다. 그러니까 영국의 상선은 항해에는 전적으로 적합하지 않았지만, 조세 효율성은 뛰어났다는 것이다.
어떤 물건에 세금을 부과하면 그 물건의 소비와 생산이 줄어드는것은 명백하다 창문세가 창문 수를 줄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볼품없는 영국 선박은 세금이 우리가 소비하고 생산하는 물건의 본질적 특징마저 바꾼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금에 대한 이런 반응은 세금납부가 단순한 자원 이전 이상의 피해를 불러온다는 점을 시사한다
- 건물에 대한 세금은 쉽게 변하지 않는 부와 수익성의 가시적 지표로 오랜 기간 매력적인 과세 기반이었다. 그런 이유로 건물은 특히 이상한 왜곡을 자주 보였는데. 폭이 좁은 건물도 그런 경향이 반영된 것이다.
폴란드의 주택 소유자들은 집의 정면이 도로에 얼마나 넓게 접하는지(그리고 길 쪽을 향한 벽의 창문 수)에 따라 재산세를 냈는데. 아마도 세금 징수원이 길을 따라 걸으면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어떤 현상이 나타났을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바로 폭이 좁은 집들이 생겨났는데, 이런 집들은 1제곱미터당 재산세가 휠씬 적었다. 16세기에 네덜란드에서도 집의 폭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겼다. 이 같은 세금 부과 방식은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쿠라사우섬에도 적용되었는데, 이 섬의 수도 빌
렘스타트에는 지금도 해안을 따라 매우 폭이 좁은 (하지만 색상이 눈에 띄게 다채로운) 건물들이 남아 있다.
도쿠가와 시대 일본에서도 집이나 상점의 폭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했다. 이로써 일본의 많은 고대 건물은 폭이 좁고 세로로 긴 형태를 띠는 경향이 있으며, 대부분 상점은 건물의 실제 크기를 감추려고 전면을 작게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상점 주인들은 그런 모양의 건물에 아주 작은 문을 달고는 세금 징수원에게 자기 건물은 작아서 세금을 덜 내야 한다고 설득했다. 베트남에서도 주택과 상점의 전면이 거리에 접하는 폭을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되었으므로 세금을 낮추기 위해 '로켓' 모양으로 주택을 지었다.
세금을 피하기 위한 변칙적인 건물은 이밖에도 많다. 그리스에서 미완성 건축물은 세금을 60퍼센트 감면해주자 미완성 건물이 엄청나게 생겨났다. 미국에서는 1962년 내국세법에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 규정이 도입되면서 이동식 사무실 칸막이가 널리 유행했다. 고정된 구조물은 공제 대상이 아니지만 이동식 칸막이는공제대상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탈리아 남동부의 그림 같은 마을 알베로벨로는 주택이 말그대로 가장 빨리 변하는 곳으로 유명했다.이 마을의 전통적 석조 가옥인 트룰리는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마른 돌로만 지어졌는데, 많은 인터넷 관광 사이트'에 따르면 이는 세금 때문으로, 세금 징수원이 나타날 것 같으면 집을 빠르게 해체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 조세기술은 소리는 가장 적게 내면서 가능한 한 가장 많은 거위의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 (장바티스트 콜베르(프랑스의 중상주의 정치가))
- 첫 번째 규범인 제3자 가격의 원칙부터 살펴보자. 우리는 앞서 베스티 형제가 이전가격을 조작해 높은 세금이 부과되는 법인에서 낮은 세금이 부과되는 법인으로 그룹 내에서 이익을 이전하는 방법을 찾은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룹 안에서 쇠고기 가격을 변경해서 할수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이 자주 써먹은 수법은 허위 대출이었다.
허위 대출은 세금이 낮은나라의 법인(아마도 오직 이 목적을 위해 만든 '알짜 회사'cash cow일 가능성이 높다)에 자본을 투입한 다음 세금이 높은 나라의 법인에 그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한다. 돈을 빌려준 법인(세금이 낮은 나라에 있는 )은 받는 이자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하지만 세율이 낮으므로 세금을 적게 내는 반면., 돈을 빌린 법인(세금이 높은 나라에 있는)은 지급 이자에 대해 높은 세율로 공제를 받는다. 따라서 베스티 형제의 다국적기업은 전체적으로 세금 부담을 많이 줄이고 세후 이익이 크게 늘어난다.
대출을 이용하는 이런 꼼수가 지루해진다면. 경영 수수료, 즉 특허, 상표. 상호, 영업권 등에 대한 로열티(이동하기 쉬운 무형자산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이것이 기업 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같은 것으로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가 영국사업에서 세금을 거의 내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방식이었다. 영국의 스타벅스는 상표 등의 사용에 대한 로열티를 네덜란드의 계열사에 냈을 뿐 아니라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다른 스타벅스 자회사로부터 원두를 구입하고 로스팅하는 비용을 내면서 정작 영국 스타벅스는 차입하는 방식으로 적자를 내는 회사로 만든 것이다.
- 다국적기업에서 이익을 배분하는 것도 끔직하리만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연구개발R&D연구소에서 신약을 개발하면 그 수익이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해보라. 그 신약에 대한 특허는 다른 나라에 낼 수 있고, 자금은 또 다른 나라에서 조달할 수 있으며. 생산된 약품은 전 세계에서 판매된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상황에서 제3자 가격을 적용하는 것이 단지 신중한 분석과 약간의 독창성 문제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제3자 가격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다국적기업이 서로 관련이 없는 다른 회사들보다 일을 더 특별하게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기에 관련이 없는 독립된 회사들이 동의할 만한 제3자가격을 찾는 것은 단순한 허구를 넘어 환상에 가깝다.
두번째 규범에 대한 문제. 즉 과세하려면 실제로 사업장을 두어야 한다는 문제는 최근몇 년 동안 더 두드러졌고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실제로 사업장을 두지 않고도 그 나라에서 사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심각하게 드러났다. 전형적인 예가 구글과 페이스북이다. 이 회사들은 사업장을 두지 않은 나라에서 검색 서비스나 소설 미디어 접근에 대해 비용을 받아 수익을 올렸어도 지금까지는 그 나라에서 그들 이익에 과세하지 않았다. 이들 회사의 서비스가 일상생활의 큰부분을차지하는 많은 사람에게는 이것이 '울지 않은 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현행법으로는 과세되지 않는다. 물론 앞으로도 여전히 그럴지는 조만간 결정될 것이다. 현재는 한 국가에 물리적 사업장을 두지 않는 것이 세금 의무를 피하는 방법이지만, 기술의 변화는 과거보다 이런 과세를 더 쉽고 더욱 크게 만들 것이다.
- 원천징수는 소득세의 대중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미국의 원천징수제를 설계한 당사자 중 한 명인 노밸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원천징수가 작동하는 것을 보고 이를 만든 것을 후회했다. 작은 정부 옹호자였던 그는 나중에 이렇게 한탄했다. "나는 그동안 정부가 지나치게 거대해지고, 거슬리고, 자유를 파괴한다고 맹렬하게 비판해왔는데 정작 내가 그런 정부를 만드는 도구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원천징수가 소득세의 대중화를 가져온 결정적 계기는 현대 대기업이 출현한 일이었다. 결국 어떻게 하면 고용주와 종업원이 세금에 대한 비밀을 유지하고 세금 절약분을 자기들끼리 나누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세금 조사관이 직접 들이닥칠 수도 있다. 대기업은 또 물리적 측면으로나 마케팅 측면으로나 자료를 숨기기가 어렵다. 그리고 직원이 많으면. 그중에서 고지식하게 정직한 직원이나 당국의 보상을 받으려는 직원이 회사의 불법을 신고할 위험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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