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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에 맞서는 과학

사회 2024. 11. 13. 07:04

- 부작용을 겪은 뒤에 충분히 보상하겠다고 약속하면 그만일까? 부작용이 있을지 없을지 충분히 확인한 뒤에 제품을 팔면 안 되는 것일까. 대표의 발언에서 보듯 과학은 어떤 물질이 유해하지않다고 주장하는 데 쓰인다.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근거로 기업은 제품안전성을 증명하며 규제를 피한다. 그런데 과학은 피해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유해성을 둘러싼 논쟁은 정교한 실험을 끈기있게 진행해 나가는 실험실에서도, 또 관련자에게 책임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거리에서도 벌어진다. 이때 과학은 사실을 근거로 부정의를 바로잡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지금은 글로벌 제약사 바이엘에 인수된 화학기업 몬산토가 판매하는 제초제 라운드업은 글리포세이트라는 물질로 만들어짐. 글리포세이트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유럽과 미국, 한국의 규제당국은 각기 다른 기준과 근거로 이 물질의 유해성을 파악하고 규제함.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음이라는 사실은 어떤 사회에서는 유해성이 드러나지 않았기에 안전하다는 증거로, 어떤 사회에서는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조심히 다루어야 하는 증거로 받아들여짐.
기후위기의 현실과 영향에 관해서도 불확실성을 둘러싼 논쟁이 있다. 그간 많은 기후과학자가 충분히 믿을만한 과학적 근거를 다수 제시했음에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구온도변화는 과거부터 있었던 자연스런 현상이라거나 지구의 온도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기후위기가 벌어진 이유의 상당부분은 인간의 활동에 있다는 과학자의 설명 역시 사회와 개인에 따라 달리 수용됨. 과학적 불확실성의 판단과 그에 따른 결정에 원리원칙이나 답이 있지 않다는 점을 알려주는 가까운 사례다.

- 많은 과학적 연구가 때마다 다른 불확실성으로 사회와 연결된다면 적어도 사회 전체의 피해와 관련된 사안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확실성을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적 불확실성에 대한 이해와 합의가 없다면 적절한 골든 타임을 찾기보다 손에 잡히지 않는 확실함을 좇는 데 더 많은 사회적 자원을 쓰게 된다. 역학조사 결과를 두고 도돌이표를 그린 여러 전문가가 빠진 함정이다.

- 과학기술자 전치형은 재난의 핵심은 사건이 뜻밖에 발생한다는 예외성이 아니라 그것이 누구에게나 발생한다는 보편성에 있다고 짚는다. 그는 우리가 재난에 따른 피해사실뿐 아니라 재난에서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관계와 제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피해사실을 확인하고 드러내는 것보다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길이 훨씬 어렵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희망을 놓지 않은 대에만 반전의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사회적으로 재고한 5년간의 과정은 괄목할만한 승리를 얻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느리고 단단하게 성숙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 90년대 미국 담배소송 사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 법정은 하나의 확실한 조사 결과가 법리를 기준으로 확실성을 재차 시험받는 장소다. 민형사 재판의 판결에서는 과학적 불확실성이 항상 쟁점이 된다. 과학지식을 생산하는 전문가는 과학이 불확실하며, 연구를 하면서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전문가들이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과학적 불확실성이 법정에서 발목을 잡는다. 법은 이렇게 말한다. '불확실함은 곧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충분한 근거가 아닌 이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법정이 과학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은 학자의 차가운 눈을 강조했던 한 전문가의 관점과 겹쳐 보이는 듯하다. 이렇게 경계선을 긋고 보는 법정의 단호함에 피해자는 자신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길을 잃는다.
아직 법정 앞에는 증거의 확실함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과학만 설 수 있다. 개정된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에는 역학적 상관관계만 확인되어도 피해자를 구제할 근거가 담겨있지만 이 취지가 법정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넓은 의미의 역학적 상관관계나 통계정 유관성에 주목하는 과학이 필요한 이유다.
21년 1월 애경을 비롯해 CMIT/MIT를 주성분으로 한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판매한 여러 기업에 제기된 형사재심 1심 결과가 나왔다. 기업들은 무죄를 선고받음. 

- 과학적 불확실성을 의심하지 않고 차가운 과학의 경계만을 받아들이는 정치-과학의 장은 원인 제공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판단을 반복할 뿐이다. 전문가들의 지적은 정확히 이 점을 짚는다. "과학적 근거가 명백한 물질에 대해서조차 제조판매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유해물질로부터 우리 가족의 생망과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형사재판 결과는과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알린다. 차갑고 객관적이고 완전무결한 과학은 재난을 끝내지 못한다. 과학과 정치와 불확실성과 피해자의 곁에 서려는 마음이 뒤얽힌 과학만이 재난 이후를 내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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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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