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화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지만, 서구권에서는 도시가 성장할수록 도시가 죽어간다는 역설적 현상이 이미 상식이 됨. 처음 조성된 도시가 오랜 부흥의 기간을 거치다 보면 기본적으로 주택가격이 상승함. 그러다 보면 해당 도시에 거주하거나 해당 도시를 기반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높아진 주거비를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외곽지대로 밀려나가고, 결과적으로 도시 곳곳에 사람들이 빠져나간 음영지대가 속출함. 이것이 건물단위면 공실이 되고, 지역단위면 슬럼이 된다.
미국 로스앤젤리스에 존재하는 스키드로우 지역이 대표적 사례. 혹은 도시 전체가 공동화되어 버려지는 예도 적지 않음. 말하자면 도시도 생물처럼 일종의 생애주기가 있으며 일정한 성장단계를 넘어가면 자생력을 잃으면서 지속가능성을 상실하고 죽음을 맞음. 현재 서울에도 신입생을 구하지못한 초등학교들이 폐교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언젠가 학생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할 때 이들 학교공간도 공실, 주변 학원가도 공실로 이어질 것임. 주택가는 말할 것도 없다.
수도권 붕괴의 전조나 징후는 이외에도 많다. 대표적으로 의료공실을 거론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의료는 대형 의료기관들이 시장을 과점. 이렇게 과점체제가 형성되다 보니 빅5로 대표되는 대형 의료기관이 아닌, 중소형 의료기간, 특히 지방의 지역의료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병원들은 수익성을 상실하면서 경영악화를 겪고 있음. 이는 지방 군소병원의 폐업으로 이어짐. 나중에 가면 수도권도 예외일 수 없다. 주민의 일상 의료수요를 감당하는 지역병원들은 통폐합되고, 결국 몇몇 3차 의료기관만 남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임. 실제 얼마전 중구에 있던 개원 82년 된 백병원이 수익성악화로 폐원을 결정했는데,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 제로금리와 시장부양 정책은 수익을 내지 못하고 미래 전망마저 불투명한 부실기업조차 쉽게 돈을 빌려 파산을 피하게 됨.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이런 경쟁력 없는 기업은 파산을 통해 사라져야 하는데, 이런 시장건전화 과정을 방해한다. 제로금리는 이렇게 투자자들의 윤리관을 왜곡하면서 현재는 다시 금리가 내려가기만을 기다리는 투자괴물을 낳아버렸다. 이들에게 금리의 역습이 다가오고 있다. 금리는 곧 시간임, 시간은 인간에게 유한하기 때문. 시간의 가치가 제로일 수 없다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부족한 연금제도로 인해 우리나라는 은퇴가 임박한 세대들에게 알아서 노후를 준비하라고 한다. 이런 요구는 개인들의 과격한 수익형 부동산 투자나, 아파트 갭투자 열풍으로 이어짐.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 가격을 하향안정화시킨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이런 준비를 하던 세대 전체를 사지로 내모는 꼴이다. 이 때문에 정부도 부동산 가격의 부양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구조가 2000년대 들어 더욱 공고화되었다.
-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정치다. 부동산이 정치인 이유는 그 숫자에 있다. 소득대체율이 낮은 연금대신 부동산 투자나 주택연금을 통해 노후를 대비하는 한국의 특성상 주택가격이 폭락할 경우 노인 빈곤자가 대량으로 양산될 수밖에 없음. 주택보유자의 다수를 차지하며 노후대비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50-60대 이상 세대의 인구비중을 정치공학적으로 고려할 때 가격안정화는 표심에 어긋나는 정책이라 지지받기 어려움. 그러니 급등은 안되지만 하락은 용인할 수 없고, 서서히 안정적으로 상승하는 부동산 시장을 지향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온 것이 대한민국 정부다. 주택시장을 죽이거나 혹은 경착륙을 용인하는 정책은 정부가 도저히 고려할 수 없는 선택지다. 여야를 막론하고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부동산 가격을 일정수준으로 꾸준히 부양해온 이유다.
- 우리 국민은 이제 정부가 어지간해서는 부동산 긴축정책을 쓰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는 지경에 이르렀음. 정부의 방향성으 뻔하다며 레버리지를 일으켜 주택을 여러 채 사는 행태가 만연해짐. 그렇게 주택가격은 상승하고, 가격상승은 재차 매수세를 불러일으켜 주택가격이 초과적으로 오르는 이런 상황이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되어 옴. 정부가 연금제로를 건강하게 운영해서 시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이 국가의 제대로 된 의무이지만, 국가에서 연금으로 노후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니 모두가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가 각자도생 하는 형국이 펼쳐진 것.
- 국내 건설현장이 안전관리에 소홀하게 된 데는 주된 원인이 몇가지 있다.
첫째, 13년 건설업 어닝쇼크 영향. 당시 많은 메이저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플랜트 공사을 수주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보았는데 이후 재정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효율성과 수익성을 추구하는 경영노선으로 전환. 그리고 이를 위해 매출대비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식을 채택함. 건설업 역시 서비스업이므로 1인이 담당해야 하는 일정은 매출규모가 있다. 예를 들어 200억 규모의 공사에서 1인당 20억원을 담당한다고 할 경우, 필요인력은 10명이다. 그런데 20년 이후 1인당 매출부담은 약 30억 정도로 과거보다 50%이상 증가. 이는 200억 공사에 과거에는 10명이 배치되었다면 현재는 6-7명이 배치된다는 의미. 그만큼 노동자 1인이 해야할 일은 소득증가분보다 훨씬 늘어났다.
과거보다 현장에 배치된 인력은 줄고, 한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일(매출)은 늘었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시공관리를 해야할 인력들이 공사진행에 필요한 서류작업에 신경 쓰느라 위험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
이같은 현실은 실제 공시자료에도 드러남. GS건설의 경우, 15년 자료를 보면 1인당 매출부담이 약 26억 정도. 이에 반해 22년 공시자료를 보면 1인당 31억원으로 증가. 이는 직관적으로 과거보다 1.2배 일을 더 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 아마 체감적으로는 1.5배에 달하는 부담을 짊어졌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개선된 사례는 대우건설을 꼽을 수 있는데, 15년 인당 30억원에서 22년 22억원으로 감소.
- 외국 어디를 가더라도 지방소멸 논란이 전혀 없는 나라는 없음. 그러나 그 규모나 속도가 우리보다 빠른 나라는 없다. 그리고 우리처럼 근본부터 무너진 나라도 거의 드물다. 외국이 수도권 등 대도시 과밀화라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반대로 지방경제가 유지되는 이유는 청년교육부터 시작하는 인재경쟁력에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학교수준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미국은 청년층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지 않고 생애주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각 주의 국공립대학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명문대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돕고, 그 명문대학에 엄청난 보상을 주면서 인재를 묶어 놓음. 그러면 자연히 기업들은 지방의 인재를 잡기 위해 각 주의 특성에 걸맞은 일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다.
- 가야할 목적지에 변화를 주지 않고, 교통망만 계속해서 건설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것도 없다. 애초에 적절한 수준으로 분산되어 있다면 굳이 복잡다단한 교통망 없이도 합리적 배치가 가능했을 것임. 그러나 수도권을 더 키우고 신도시를 건설해서 인구가 너무 밀집하면 교통망으로 일부 해소하는 행태를 반복한다면 이 문제는 끝날 수 없다. 교통인프라를 개선하지 않으면 통근지옥이고, 교통인프라를 개선해도 그만큼 지방의 자원이 수도권으로 더 빨려들면서 더 과밀해지는 무한루프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수도권의 기능은 현재 비효율적, 비경제적이다. 지역총생산량 같은 경제적 성고만 보면 상당한 효율성을 자랑하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도시구조인데 경제성과가 좋다는 평가 자체가 애초에 모순임. 한마디로 마라톤에서 앞부분 10키로의 구간만 보면서 세계1등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꼴일 수 있음. 나중에 그 선수가 결승점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수십년 후 지방이 소멸할 수 있는 위험을 지역총생산이 매년 측정도 못한다면 이것이 제대로된 지표일까? 즉, 서울과 수도권의 도시구조는 기본적으로 임계치를 넘긴 수준부터는 도시설계의 방향성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수도권 중심의 도시설계 집중이 과도해진 결과, 먹이와 웅지의 문제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으로 가고 있으며, 해결방안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수도권에 50%넘는 인구가 몰려살면서 서울 한 곳을 중심으로 출퇴근이 집중되는 국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 저출산을 통해 최초로 풍요를 경험하고 고도성장의 과실을 누린 첫 세대가 현재의 80-90대생. 우리는 이들을 MZ세대라 부른다. 부모인 베이비붐세대(1955-70)가 기본적으로4-5명의 형제자매가 한정된 집안의 소득을 나눠써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한편으로 이 때문에 부모세대와 심리적, 문화적 간극이 가장 큰 세대이기도 함.
요약하면 한국은 저출산을 통해 아동 청소년 인구를 줄여서 경제성장을 이뤘고, 동시에 질 좋은 교육을 받은 새 세대를 길러낼 수 있었다. 이전의 농경사회에서 인구의 양이 중요했던 것과 달리, 70-80년대부터는 인재의 질을 택한 것이다. 이렇듯 돌이켜 보면 출산이 곧 비용인 건 경험적으로 다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역사는 출산율을 낮춰가며 도달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 금리와 주식수익률
금리와 수익률 게임은 주식에서도 마찬가지. 부동산의 수익률 지표가 자산수익률이라면 주식의 경우 당기순이익의 성장률이 지표가 될 수 있음. 이는 당기순이익의 성장률에 비래해서 주가가 상승한다는 것에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 그래서 주식투자가 합리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당기순이익의 성장률이 안전자산의 무위험수익률보다는 높아야 함. 예를 들어 금리 2%인 상황에서는 기업의 당기순이익 성장률이 2%보다는 높아야 주식에 투자할 이유가 생김. 보통은 기업의 성장률이 금리보다는 높기 때문에 주식은 대개 좋은 투자처가 된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다름. 23년 미국 S&P500 지수의 기대수익률이 4%였다. 그에 반해 채권금리는 거의 5% 수준으로 올라간 상황. 즉, 주식이 채권보다 기대수이귤은 더 낮고 더 위험한 기괴한 상황. 예금이나 채권을 하는 것보다 주식을 할 때 좋은 점이 단 하나도 없는 시기다. 그나마 24년 접어들면서 미국 S&P500지수의 기대수익률이 9.5% 수준을 보이며 시장이 성장하는 중이다.
- 한국은 여전히 좋지 못한 상태다. 주식시장 변동성이 높으며 특히 당기순이익의 편차가 큰 편이어서 당기순이익 성장률보다 순자산을 시가총액으로 나눈 값인 PBR을 주로 활용. 쉽게 말해 한국기업은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이 들쑥날쑥하므로 소득이 아닌 자산의 성장률을 봐야 하며, 이 자산의 성장률을 살펴보기에 쉬운 지표가 PBR이다. 그런데 현재는 이 PBR을 활용하여 자산가치 상승률을 가늠해 보더라도 금리에 비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상황. 투자를 선택해서 위험을 짊어진 대가로 받는 프리미엄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 핵심은 금리가 제로일 때는 2-3% 수익률도 높앗지만, 3-4% 금리가 유지된다면 4-5%수익률은 위험을 지기에는 너무 낮은 수익률이라 매력이 떨어짐.
- 일본이 국가-은행-기업-가계가 수직적으로 통합된 1940년 체제를 구축했듯이 우리나라 역시 박정희 이후 국가-은행-기업-가계의 통합으로 성장. 한국은 성장을 먼저 한 일본을 따라서 모델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 40년 체제가 전시체제였던 것처럼,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 쿠데타와 이후의 국가운영체제가 일본을 닮았다는 것에서도 공통점이 많다. 물론 일본에 비해서는 그 정도가 덜한 편이었지만 한국 역시 관치금융, 자산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 정규직 사무직 위주의 낮은 노동유연성, 기업혁신의 둔화 등에서는 닮은 측면이 많다. 솔직하게 평가하자면 97년까지는 일본을 거의 그대로 벤치마킹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님.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97년 IMF 금융위기를 겪으며 경제구조를 바꾸어 소위 미국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임. 이 시점이 일본과 우리나라가 다른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던 시기임. 당시 세계적 기술환경도 한국에 적합했다. 지금처럼 소프트웨어가 극도로 중요해지기보다는 하드웨어 제조기술과 조립기술의 시대가 되면서 한국의 경쟁력이 도드라졌던 것임. 중국은 낮은 인건비가 경쟁력이었지만 제조-조립기술이 떨어졌다. 제조-조립분야의 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의 성장은 눈부셨다.
- 97년부터 25년간의 경제성장을 경험한 지금, 코로나 시기에 무차별적으로 투입된 풍부한 유동성을 2-3년간 겪으면서 우리나라 자산시장은 버블경제 시대 일본과 비슷한 조짐을 보임. 특히 고령화, 제조업 경쟁력 약화, 가계부채의 3중고로 인한 어려운 경제상황은 80-90년대 일본을 연상케 함. 출산율은 비교불가다. 일본은 여전히 1.3명대를 유지하지만 한국은 0.7명대로 내려앉으면서 OECD국가 중 꼴찌라는 불명예 속에서 국가소멸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아마도 24년엔 합계출산율 0.6명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고령화로 인한 부양부담과 과잉부채로 인한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소비와 투자여력이 줄어들고, 서비스업이 취약한 산업구조로 인해 제조업 경쟁력 역시 떨어지고 있어 성장동력을 잃을 수 밖에 없음. 이런 와중에도 자산시장에는 부동산 불패신화가 자리잡고 있다. 여전히 구조적으로 한국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보다 세계적 거시경제상황이 한국에 불리해진 것이지 우리 탓이 아니라는 의견이 시장을 지배함. 금리만 낮춰주면 자산 시장이 다시 상승하고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가치관이 판을 친다. 얼핏 90년대 일본과 같은 상황인 것이다. 직업윤리보다는 돈을 벌고 빨리 은퇴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강한 나라, 가족보다도 돈을 행복의 최우선 요소로 생각하는 나라가 되어버림. 지금은 자산 시장 붕괴 이후, 약 30년을 저성장 속에서 고통을 겪었던 일본의 사레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경제구조의 단호한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 금융투자소득이란 말 그대로 투자를 통해 벌어들인 소득. 투자는 위험자산을 매입하는 것이기에 소득이 매년 일정치 않음. 주식의 배당은 겉보기에는 예금의 이자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자는 예금에서 나오는 것이고, 배당은 위험자산인 주식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배당은 이자보다 지속성이 낮다. 따라서 거의 모든 나라가 주식시장에서 얻는 매매이익과 배당이익을 묶어 종하소득과 구분하여 금융투자소득으로 계산하고, 세율도 종합소득처럼 최대 45%에 이르는 높은 수준이 아니라 최대 20% 정도로 낮게 적용함. 되도록 배당을 많이 하라는 정책적 의지가 깔려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위험자산에서 벌어들인 2천만원 이상의 배당소득을 경상적 활동으로 간주하여 종합소득으로 과세함. 대주주로서는 배당금의 액수가 10억이 넘으면 49.5%라는 최고세율이 적용된 세금을 내야 함. 다른 나라들은 20-22% 세율이 적용된 세금을 내는데 우리는 최고소득세율을 내야하니, 자연스레 배당할 유인이 떨어짐. 그 결과 배당을 하지 않아 배당수익률이 내려가고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돈이 들어오지 않는 악순환이 생김.
대주주들은 배당이 아니라면 어떤 방법으로 수익을 확보할까? 첫째는 높은 급영니데 49.5%의 종합소득세율이 부담스럽다. 특히 대주주가 자녀들에게 증여 등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녀가 내야할 증여세를 마련하기 위해 배당을 덜컥 해버리면 역시 높은 세율을 적용받음. 그래서 차라리 자녀들 명으로 신규회사를 설립한 뒤 모기업으로부터 일감을 독점해서 성장하게 만드는 소위 일감 몰아주기 전략을 이용함. 이런 행위는 공정거래법 위반이지만, 지금도 주요 기업들에게서 발견되는 관행이다. 이런 불공정 행위는 자녀가 만든 신생기업에 유리한 조건으로 일감을 주면서 원래는 모기업의 몫인 수익을 넘기는 것. 본래 이런 행위를 견제해야 할 기업의 조직이 이사회다. 하지만 국내 상법으로는 이사회가 대주주를 견제하기 어려움. 물론 상법을 제정한 취지는 그렇지 않았으나 이마저도 삼성가의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재판부가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법의 해석을 기괴하게 변경하면서 현행 상법에서 이사회의 의무란 회사만을 위해 일해도 되는 것처럼 변모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이사회의 견제를 받지 않는 대주주가, 최대한 티 안 나는 방식으로 일감을 몰아주면서 자녀들 명의로 만든 법인, 혹은 개인적으로 설립한 법인에 이익을 넘겨주는 구조로 돈을 담는 것. 그렇다면 대주주 관점에서 자녀의 재원마련은 일감 몰아주기로 해결하면 될 일이다. 주가가 높으면 자녀에게 경영을 승계할 때 증여세 부담만 늘어나므로 주가를 부양할 유인이 사라진다. 이런 행태를 견제하지 않는 이사회를 처벌할 규정도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오히려 주가를 낯춰야 할 동기만 작동. 상승의 인센티브가 아니라 하락의 인센티브가 작용하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주식시장이다. 그 결과는 전 세계 최저수준의 밸류에이션과 낮은 주가로 이어짐. 이는 개인 투자자뿐 아니라 국내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에도 상당한 시련을 안겨주는 셈.
- 제로금리의 역설
크리스토퍼 레너드의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에는 미국이 제로금리 정책을 시행한 12년의 풍경이 나온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제로금리가 돈의 조달비용을 낮추므로 기업의 투자를 유인하는 정책이라 생각해서 성장률이 낮게 나올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장려하던 정책이었다. 제로금리를 넘어서 마이너스 금리로 접어드는 국면에서는 낮은 금리가 불러올 휴유증에 대한 논쟁이 격화됨. 인류 역사상 금리를 그토록 낮게 또 길게 유지한 적이 없었기에, 훗날 2010년대의 제로금리 기가이 2020년대 이후 버블의 큰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제로금리의 도입효과가 실제로 존재하느냐에 대한 해석이다. 경제학자들에게 공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저금리의 혜택이, 실제 경제에서는 다소 다른 경로로 나타나는 것이 이 책에 잘 묘사되어 있다.
금리를 제로로 낮춘 이후, 연준 부위원장 스탠리 피셔가 TI사를 방문. 그 회사의 재무임원이 회사태를 발행하여 자금을 차입한 다음, 그 돈으로 자기주식을 사버리겠다는 말을 하자 스탠리 피셔는 의아해하며 되묻는다. "왜 회사채를 찍어서 돈을 빌린다음 투자하지 않고 자기주식을 사려는거죠?" 라고 묻자 그 임원은 "주식에는 배당으로 순이익으 2.5퍼센트를 주어야 하는데, 회사채로는 이자로 0.5퍼센트만 주면 되니까요" 라고 하면서, 회사채를 찍고 자기주식을 사들이는 것이 기업으로서는 현금지출을 더 줄일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이런 흐름이 확대되어 자사주 매입 열풍으로 이어지는데, 이후 맥도날드를 포함한 기업들이 영업활동을 벌어들이는 돈보다, 회사채를 조달하는 금리가 너무 낮아서 이 자금으로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를 올리고, 높아진 주가로 경영진이 인센티브를 받아가는 지경에 이름. 이런 부작용을 피셔가 버냉키 연준의장에게 지적하자 버냉키는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의 말에 무게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라며기업들의 이런 불합리한 행태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는 훗탈 스탠리 피셔가 버냉키 의장을 비판하는 원인이 됨
- 초저금리가 경제를 위축시키는 이유
현재는 제로금리 정책의 효과를 부정하는 견해가 다시 주목받는 추세. 특히 미제스나 그의 제자 하이에크가 있는 오스트리아 학파가 금리에 관한 개념을 잘 정리했다. 그들은 금리란 시간에 대한 가치인데, 올해의 1억원이 10년후 1억원보다 더 가치가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시간가치인 금리는 현실에서는 결코 제로가 될 수 없는 것임. 그들의 주장에 주목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왜 제로금리일 때 성장률이 낮아지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10년 혹은 100년이 걸리는 장기사업이나 자산에 돈이 투입된다. 이들 자산은 가까운 미래에 수익을 벌어들이는 기업이나 자산이 아니므로, 다르게 본다면 사실상 싼 돈이 없다면 작동되지 않는 좀비화된 사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생적으로는 돈을 벌지못하고, 돈을 버는 데는 수십년 이상 필요하며, 그 기업이나 사업을 유지하려면 영원히 낮은 금리가 이어져야 하기 때문. 즉 낮은금리는 좀비사업으로 돈이 더 흘러가도록 하는 음의 되먹임이 발생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결국 경제규모가 위축됨. 돈은 결국 돈이 되는 사업으로 집중되도록 하는 것이 경제를 키우는 방법인데, 저금리는 저성장을 탈피하는 방법론이 아니라 반대로 저상장을 유도하는 방법론이 된다는 것이 오스트리아 학파의 생각이다. 현실에서는 이를 초창기 미래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금리일 때는 스타트업이 흥하지만 고금리일 때는 사업이 어려워지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 문제는 언젠가 미래에 돈을 벌 스타트업도 있고, 아닌 스타트업도 있는데, 저금리는 이를 가리지 않고 돈이 흘러가게 하면서 원래는 시장성 있는 기업에서 일할 법한 사람도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에 다니게 하고, 동시에 기업자체도 자금지원이 없으면 돈을 벌지 못하는 상태로 만든다. 그래서 오스트리아학파는 시간가치인 금리가 어느 정도는 유지되는 것(중금리 수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금리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이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난에 맞서는 과학 (0) | 2024.11.13 |
---|---|
식량위기 대한민국 (4) | 2024.11.12 |
플래닛 아쿠아 (5) | 2024.11.07 |
제너레이션 세대란 무엇인가 (3) | 2024.11.02 |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 (3) | 2024.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