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만든 세계

과학 2022. 8. 6. 16:48

- 앨버레즈와 스미트, 그들의 동료들은 두 시기의 경계를 이루는 진흙의 화학 성분을 분석하여 지구에는 드물지만 특정한 종류의 소행성에 많이 분포하는 이리듐이라는 원소가 다량으로 포함되 어 있음을 밝혀냈다.
경계층에 포함된 이리듐은 지구가 6600만 년 전에 소행성과 충돌했고 그 여파로 먼지가 날려 이탈리아와 스페인 전역에 떨 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와 같은 시나리오에 감정적으로 휩쓸리기 전에 다른 K-Pg 경계층을 둘러보고 거기에도 이리듐 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니나 다를까, 앨버레즈 가 덴마크 코펜하겐과 뉴질랜드의 어느 도시 외곽에 노출된 경 계층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이리듐 수치를 확인했다.
월터 앨버레즈의 아버지이자 맨해튼 프로젝트 참가자, 노벨물 리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앨버레즈는 경계층에서 발견된 이리듐의 양을 가지고 지구를 그 정도의 이리듐(그림 1.1을 보라)으로 덮 으려면 소행성 크기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계산했다. 그는 소 행성의 지름이 10킬로미터(6마일)에 이른다고 보았다.
지구의 지름(13,000킬로미터)과 비교하면 그렇게 큰 물체가 아 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상대적인 크기로 보면 2층짜리 주택 과 비비탄 총알의 차이와 같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 다. 소행성은 시속 5만 마일이라는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불덩이는 대기에 진입하면서 어마어마한 충격을 지구에 가해 폭 120마일 깊이 25마일의 구멍을 냈다. 그리고 충돌의 결 과 엄청난 양의 부스러기와 먼지가 대기 안과 밖으로 날려 태양 빛을 완전히 뒤덮었다. 세계는 급속도로 차가워졌고 식물의 식량 생산이 멈추었다.
- 소행성 충돌이 없었어도 우리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충분한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 역시 대단히 희박하다. K-Pg 칙술루브 충돌구의 발견으로 인해 다른 충돌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칙술루브에 가한 충격만큼 위력적이었던 다른 소행성 충돌은 지난 5억 년 동안 지구나 달(비슷 한 양의 외계 물질이 도착하는)에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멸종을 일으키려면 크기가 중요하다. 단 하나의 사례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칙술루브 충돌는 5억 년(혹은 그 이상)에 한 번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 소행성의 크기가 크더라도 충돌의 장소도 중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카탄 충돌지 근처의 바위에는 탄화수소와 유황이 풍부하다. 막대한 양의 그을음과 햇빛을 차단하는 연무가 발생한 것은 그런 이유다. 지질학자들은 그토록 파괴적인 물질을 그만큼 배출할 수 있는 바위가 있는 지역은 지표면의 1퍼센트에서 1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고 추산한다.”
지구가 시속 1,000마일의 속도로 자전하는 것을 고려하면, 소 행성이 30분만 일찍 왔어도 대서양에 떨어졌고 30분 늦게 왔다면 태평양에 떨어졌다는 뜻이다. 불과 30분만 차이가 났어도 공룡은 지금 여기 있었을 것이다.
- 인생은 얼마나 강력한 타격을 날릴 수 있느냐가 아니다. 계속 얻어맞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록키 발보아)
- 인도판은 전 세계 대륙과 대 양의 조각 그림 퍼즐을 이루는 거대하고 불규칙적인 모양의 십 여 개 지각판 가운데 하나다. 단단한 암석으로 만들어졌고 지각 과 상부 맨틀에 걸쳐 있는 지각판은 마그마와 용융암으로 이루 어진 반액체의 층 위를 뗏목처럼 미끄러진다. 대부분의 판은 매 년 2~4센티미터의 속도로 상당히 느리게 움직인다.
그러나 인도판은 예외다. 인도판은 6600만 년 전에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위치에 있었다. 아시아 대륙에서 남쪽으로 4000킬 로미터 이상 내려온 마다가스카르 인근의 남반구에 있었다. 지 각판을 움직이는 힘은 인도판을 (이례적으로 빠른) 매년 18~20센 티미터의 속도로 북진하게 했고, 결국 인도판은 4000만 년 전에 아시아 대륙과 충돌했다(그림 2.4)
선구적인 지구화학자 월리 브로커는 이 사건을 가리켜 “세계를 바꾼 충돌”이라고 설명했다. 슬로모션으로 진행된 그 충돌 로 말미암아 티베트 고원과 히말라야 산맥이 점차적으로 만들어 졌다. 그리고 이렇게 솟아오른 산맥은 에오세 말 이후로 대기에 서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지구의 기후를 새로운 방향 으로 틀었다.
인도판이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한 것은 그저 요행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지질학적 우연이었다. 인도판은 1억 4000만 년 전에 거대한 초대륙 곤드와나가 쪼개지면서 형성된 다른 판들보다 두께가 100킬로미터 더 얇다. 덕분에 판을 움직이는 힘은 인도판을 다른 판들보다 매년 15센티미터가량 더 빠른 속도로 밀고 당길 수 있었다.
그러나 매년 15센티미터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 인도판은 그만큼 빨라진 속도 덕분에 2000만 년 동안 훨씬 더 먼 거리를 이동했다. 전형적인 속도로 움직였다면 인도판은 아시아 대륙에 아직 닿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기후는 충돌로 일어 난 변화를 틀림없이 겪지 않았을 테고, 생명의 이야기는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는 아시아를 들이받았고, 그로 인해 지구는 바뀌고 말았다. 지금도 한층 극적이고 놀라운 방식으로 계속해서 바뀌 고 있는 중이다.
- 다윈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동물들과 다른 곳의 동물들이 다르면서도 닮은 모습에 놀랐다. 그는 박물학자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는 같은 이름의 동물들과 겉보기에 닮았다는 이유 로 '호랑이'와 '하이에나' 라고 부른 유대류 식육목 동물들을 보았 다. 그리고 그는 개미귀신'이 유럽에서 본 것처럼 모래구덩이에 진을 치고 곤충 먹이를 잡는 모습을 보았다. 다윈은 이렇게 닮은 점을 한 명의 조물주가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서쪽으로 계속 나아가 남아프리카에 당도한 다윈은 케이프타운에서 유명한 천문학자 존 허셜을 만날 기회를 잡았다. 다윈은일찍이 허셜의 『자연철학 연구에 관한 예비 고찰』(1831)을 탐독 했던 만큼 저자를 만난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당대 최고의 과학 적 지성으로 꼽히던 허셜은 지질학, 화석, 식물학에도 남다른 관 심을 보였다. 그는 집에서 개인적으로 200여 종의 식물 표본을 키우면서 자신의 남아프리카 식물들이 점차적으로 서로를 닮아 가 몇몇 종이 다른 종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채우는 것처럼 보인 다는 것에 주목했다. 다윈은 몰랐던 일이지만, 둘의 만남이 있기 몇 달 전부터 허셜은 자신이 “미스터리 중의 미스터리”라고 불 렀던, 새로운 종이 멸종된 종을 대체하는 현상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관해 서신을 나누고 있었다.
- 다윈은 일기에 그날의 만남을 한참 만에 나에게 찾아온 행운 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고 적었다. 5년째 세계 일주 항해를 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천문학자와 젊은 박 물학자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든 간에 다윈은 얼마 뒤에 자신의 표본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에 갈라파고스의 새들에 관해 적은 것을 정리하면서 다윈은 각 기 다른 섬들에 사는 살짝 다르게 생긴 흉내지빠귀와 거북의 문 제로 돌아가 어떻게 그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습성을 보이는 지 생각했다. 이런 실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특별한 창 조론에 따르면 신은 각각의 섬에 맞게 각각의 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윈에게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런 동 물들은 한 가지 유형의 변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이런 생각에 조금이라도 근거가 있다면 갈라파고스 제도의 동물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종의 안정성을 뒤흔들 수도 있는 실상이기 때문이다.”
종은 변할 수 있다. 이것은 다윈이 처음으로 각성한 순간이었 다. 진화적 사고라는 미끄러운 비탈길을 향해 머뭇거리며 작은 한 발을 내디딘 것이다. 다윈은 어떤 분야에도 전문가가 아니어 서 자신의 표본 대부분이 어떤 종인지 몰랐다. 갈라파고스의 어 떤 동물들이 서로 다른 종인지, 아니면 같은 종의 변이인지 확신 하지 못했다. 그는 영국에 도착하면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자신의 표본과 관련하여 도움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확실히 도움을 주었다. 다윈이 귀국하고 나서 그해 겨울에 그와 동료 선원들이 수집한 표본을 최고의 전문가 들이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 일례로 그가 남아메리카에서 수집 한 화석들은 현존하는 아르마딜로, 라마, 설치류, 나무늘보와 해 부적으로 가까운 관계이며 지금은 멸종한 거대한 포유류들로 밝혀졌다.
- 다윈은 갈라파고스 육지새 스물여섯 가운데 스물다섯이 별개 의 종일 뿐만 아니라 그 섬에만 존재하는 종임을 알고는 크게 당혹스러워했다. 그는 나중에 50~60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대부분이 서로 보이며, 정확히 같은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같은 기후에 놓이는 이런 섬들에 다른 종들이 서식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종이 변했을 가능성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윈은 노트를 펴고 자신의 생각을 의식의 흐름의 기법으로 적어 내려갔다. 그가 가장 먼저 쏟아낸 생각들은 종의 계보에 관 한 것이었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다른 곳의 포유류들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며, 그 차이가 어쩌면 대륙들이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결과인지도 모른다고 추론했다. 남아메리카에서 그가 찾아낸 거대한 화석들은 현존하는 포유류들의 더 크고 멸종한 버전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현생 포유류들이 더 오래되 고 사멸한 종들에서 유래했음을 시사했다. 다윈은 생명의 조직이 불규칙적으로 여기저기 가지를 뻗은, 그중에는 죽어가는 가 지도 있고 새로 생겨나기 시작한 가지도 있는 나무와도 같다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한 지역에서 본 동물들의 비슷한 특징들은 하나의 가지에서 나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노트의 36쪽에서 그는 “나는 생각한다”라고 적고 그 밑에 그림 하나를 그렸다(그림 3.2).
단순하고 조잡한 스케치에 불과했지만 다윈의 그림은 급격하 게 새로운 생명관을 담고 있었다. 하나의 종이 살짝 다른 새로운 종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자손의 종을, 다시 그 아래 자손의 종을 만드는 종의 계보가 바로 그것이다. 다윈의 대담한 발상은 아이가 부모에게서 태어나듯 자연스럽게 새로운 종이 기존의 종 에서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특별한 창조론은 다윈의 마음속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 다음으로 다윈이 관심을 쏟은 것은 새로운 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것이었다. 1838년 가을에 그는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40년 전에 쓴 『인구의 원리에 관한 소론』을 어쩌다 재 미로 읽게 되었다. 맬서스는 인구가 어떻게 식량 공급보다 빨리 증가해서 가난, 기근, 죽음으로 이어지는지를 강조했다. 다윈은 같은 힘들이 자연에서도 작동하며 많은 식물과 동물들이 살아남 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수집한 표본을 통해 개체가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번뜩이는 깨달음이 또 한 번 내리쳤다. “이런 환경에서는 호의적인 변이는 보존되고 그렇지 않은 변이는 도태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결과가 새로운 종의 형성일 것이다.  다윈은 이와 같은 변이의 보존과 도태를 '자연선택'이라고 명명했다.  장대한 여행을 마치고 불과 2년 만에 스물아홉의 다윈은 자연 선택으로 종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그 의 이론은 이후 20년간 빛을 보지 못했다.
- 다윈이 그토록 오랫동안 공개를 미루었던 이유는 많은 학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다윈은 적어도 처음에는 시기상조라고 믿었던 듯하다. 자신의 질문에 대답해줄, 그리고 과학자 집단과 그 밖의 사람들이 틀림없이 제기할 의심의 눈초리를 잠재워줄 더 많은 증거, 훨씬 더 많은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가 나중에 한 친구에게 설명했듯이 “종의 실체와 조금이라도 관련되는 사실들은 무엇이든 다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15년간 다윈은 자신의 이론과 관련되는 온갖 사실들과 관찰들을 수집했다. 그러면서 당시 어떤 박물학자보다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여행을 주제로 한 대중적인 여행기 한 권, 비글호를 타고 방문했던 장소들의 지질학과 동물학을 다룬 아홉 권짜리 책, 산호초 형성에 관한 새롭고 궁극적으로 옳은 이론을 개진한 논문, 따개비에 관한 네 권짜리 책을 썼으며, 게다가 열 명의 자녀까지 두었다!!
마침내 1855년에 그는 사촌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종은 불변한다는 생각을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사실들과 주장들을 내가 모을 수 있는 한 모두 담은 책을 쓰기 위해 이삼 년간 준비하면서 노트에 이런 자료들을 모으고 비교하는 일에 열심이라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나 자신과 관련하여 단연코 최고의 수확은 지긋지긋한 따개비를 마침내 끝냈다는 거야.” 이제 그는 준비를 마쳤다.
- 다윈은 자기 이론의 강력한 지지자이면서 『종의 기원』의 미국 초판 발행을 이끌었던 그레이와 길고 상세하고 무척이나 화기애애 한 편지를 주고받았다. “무신론자 입장에서 글을 쓸 마음은 없지만, 나 자신도 그렇게 원하듯이 남들처럼 분명하게 내가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설계와 은혜의 증거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밝히는 바입니다.  다윈은 그레이에게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내가 보기에 세상에 는 너무도 많은 비참함이 있어요. 은혜롭고 전능하신 신이 맵시 벌을 창조하면서 살아 있는 애벌레의 몸속에 알을 낳아 그것을 파먹도록 설계했다고는, 혹은 고양이가 생쥐를 갖고 놀도록 신이 창조했다고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아름다운 식물의 모습에 매료된 다윈은 꽃가루를 통한 타가 수분에 특별히 주목했다. 그는 곤충들을 자신의 꽃으로 불러들 여 꽃가루를 몸에 묻히게 하려고 식물 종마다 다른 부위를 활용 하여 만든 다양한 장치들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다윈은 “동일한 목적을 얻으려고 마련된...... 구조가 한없이 다양하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자신을 비판하는 자들의 '허를 찌를 기회를 잡았다. 그는 독자들이 아름답고 널리 알려진 식물 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편승하여 그들을 특별한 창조론 대신에 진화적 설명에 귀 기울이도록 만들었다. 자연선택으로도 다양한 식물에 나타나는 여러 변이들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데, 왜 전 능한 신이 정확히 동일한 목적을 위해 그토록 다양한 변이들을 굳이 수고스럽게 만든단 말인가?
- 다윈과 우연 
하지만 자연선택을 둘러싼 의심의 목소리는 진화론 논란의 절 반에 불과했다. 다윈은 자연선택이 종의 개체 간에 존재하는 변 이에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무엇이 그런 변이를 일으키는지를 두고 반대자들뿐만 아니라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논의와 논쟁이 일어났다. 다윈은 본인은 물론 그 누구도 변이의 직접적 인 원인이나 유전의 법칙을 알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종의 기원』의 여러 대목에서 그는 변이의 우발적 속성을 언급했다.
다윈은 변이의 출현에 확률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고 있었다. 그는 가금류 육종가들이 많은 개체들을 키운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인간에게 명백히 유용하거나 흡족한 변이는 아주 가끔씩만 일어나므로 많은 수의 개체들을 키움으로써 그 변 이가 출현하는 기회를 대폭 늘일 수 있다.” 그는 자연에서도 사 정이 같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개체수가 많은 형태는 개체수가 더 적은 희귀한 형태보다 특정 기간에 자연선택이 활용하도록 이로운 변이들을 제공할 기회가 언제나 더 많을 것이다. 몇몇 대목에서 다윈은 변이가 '우발적'이라고 노골적으로 기 술했다.
“우발적으로 신체 크기와 형태에 변이가 일어나...... 개체가 먹이를 더 빨리 획득할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살아남고 자손을 남길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사실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 “식물과 마찬가지로 동물에서도 상당한 폭의 구조의 변화는 많고 사소하고 우리가 우발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아무튼 이로운 변이들이 축적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비판하는 자들은 우발적 변이가 담고 있는 의미를 물고 늘어 졌다. 조물주나 지성이 행하는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 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 였다. 조물주가 창조의 과정을 이끌어간다는 생각을 선호했던 그레이로서도 우발적 변이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윈은 자신 이 목격한 수많은 변이들이 신의 개입의 필요성을 완전히 몰아 냈다고 생각했으므로 변이가 설계되거나 창조되었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다윈은 비둘기와 딱따구리에 대한 그레이의 추론을 이렇게 반박했다.
- “애서 그레이와 몇몇 사람들은 각각의 변이를, 그러니까 적어도 유익한 변이는...... 신의 섭리에 따라 설계된 것으로 본다. 하 지만 인간이 계속적인 교배를 통해 파우터나 팬테일로 만드는 바위비둘기의 변이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신이 설계한 것이냐 고 내가 묻자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에 이런 변 이가 목적과 관련해서는 우발적인 것임을 그가, 혹은 누구든 인 정한다면, ...... 아름답게 잘 적응한 딱따구리의 모습이 변이의 축적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 신의 설계에 따른 것이라고 봐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변이의 원인과 우연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괴물 같은 마다가스카르 나방을 찾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일이었다.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누구도 변이가 무엇인지 말하지 못했고, 최근에서야 우리는 우연을 현행범으로 붙잡을 수 있었다.
- 돌연변이의 무작위성에 해당하는 사례를 검증하려면 먼저 어 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세 가지 수준을 고 려해야 한다. 생물의 개체군 수준에서 작용하는 무작위성, DNA 수준에서 작용하는 무작위성, 기제 수준에서 작용하는 무작위성 이 그것이다. 개체군에서 특정한 돌연변이가 무작위로 일어난다고 말하려면 
(1) 이것이 가져올 결과와는 무관하게 돌연변이가 일어나고, 
(2) 해당 개체가 사전에 이를 알거나 예측할 수 없어야 한다.
개체 내에서 돌연변이가 무작위로 일어난다고 말하려면 DNA 에서 이것이 일어나는 양상이 무작위적 분포를 보여야 한다.
DNA 내에서 무작위적 돌연변이란 우연이 지배하는 기제에 의해 생성되는 것을 말한다.
- 왓슨이 처음에 행한 실수에는 중요한 통찰이 있었다. 그와 크릭은 에놀 형태가 잘못된 염기와 수소 결합을 이룰 수 있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G와 T, A와 C가 염기쌍을 이루는 것이다. 최초의 보고서에서 그들은 이런 의견을 내비쳤다. “자발 적인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염기가 가끔 수소 원자 의 위치가 바뀌면서 훨씬 드문 토토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은 DNA 복제가 일어날 때 예컨대 G 염기가 드문 형태로 있었다면, C가 들어가야 하는 자리에 T가 들어가는 식으로 잘못된 상보적 염기가 이중나선에 삽입될 수 있다고 상상했다.
60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 생화학자들이 포착한 것이 정확 히 그것이었다. 원자 수준에서 분자들을 관찰할 수 있는 대단히 정교한 기술 덕분에 그와 같은 성취가 가능했다. 알고 보니 그것은 감지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사건이었다. 분자가 드문 형태로 바뀌는 찰나의 순간(1,000분의 1초 이하)이 지나고 나면 다 시 흔한 형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화학자들은 용케 도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DNA 중합효소가 잘못 된 염기쌍을 만드는 현장을 재빠르게 사진으로 담아낸 것이다. DNA 염기 내에서 순식간에 일어나는 이런 형태의 변화는 잘못 된 염기 삽입의 99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이런 발견은 돌연변이의 근원이 되는 사건, 생물권에 존재하는 온갖 다양성의 원천이 피해갈 수 없는 근본적인 물리학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화학적 결합 상태를 오가는 양자 천이 quantum transition, 원자 수준에서 벌어지는 우연의 심실세동이다. 그러므로 돌연변이는 DNA의 오류가 아니라 엄연한 특징이다.
- 나는 단백질 서열에서 일어난 철자 오류 하나로 KKKYMMKHL이 KKKYRMKHL로 바뀌는 바람에 3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말을 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자. 앞의 서열은 유인원 면역 결핍 바이러스(SIV)가 만드는 단백질의 일부이며 이 바이러스는 침팬지, 고릴라, 기타 구세계 원숭이들 을 감염시킨다. 뒤의 서열에서 일어난 변화(M이 R로 바뀌는)는 인 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1)의 세 가지 주요 변종(AIDS를 일으키는 변종도 포함하여) 모두에서 발견된다. 돌연변이는 SIV를 침팬지에서 인간으로 세 번의 개별적 과정을 거쳐 유입되게 했고, HIV-1이 되도록 했다.
- 최초의 감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확인된 바 없다. 대부분의 추측은 인간이 야생동물을 사냥하거나 그 고기를 준비 하고 먹는 과정에서 감염된 침팬지 혈액 또는 체액에 접촉한 것에 무게를 둔다. 하지만 최초의 감염이 일어났던 대략적인 시간과 장소는 확실하다. 20세기 초에 중앙아프리카 서부에서 일어 났다. HIV-1의 사악한 쌍둥이면서 덜 알려진 HIV-2 역시 중앙 아프리카 서부에서 유래했다. SIV가 폭넓게 분포했다는 사실은 이바노프가 침팬지 정액을 어디에서 입수했든 간에 자신도 모르 게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유입시켜 잠재적으로 HIV/AIDS를 일 으키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 SIV를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로 만드는 돌연변이 가 반복적이고 독자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과 이런 바이러스가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었다는 사실은 바이러스로 인한 유행병의 기원 역시 우연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하나의 동물 종에서 무작위로 일어나는 변이 바이러스 가운데 어떤 것은 인간을 감염시킬 수도 있다. 만약에 그 종이 우연하게도 인간과 아주 가깝게 지 내는 종이라면,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옮을 수 있고, 그러고 나서 사람들 사이로 확산될 수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인간으로 넘어가는 이런 종간 전파 spillover'는 1918년 인플루엔자 유행병(조류에서 전염)이 일어 난 발단이기도 했으며, 2002~2004년에 유행한 급성 호흡기 증 후군(사스), 2012년 이후로 여러 차례 발생한 중동 호흡기 증후 군(메르스)도 각각 사향고양이와 낙타에서 인간으로 전염된 사 례였다. 사실, 인류 최악의 재앙 가운데 많은 것이 동물에서 기원 한 것으로 밝혀졌다. 천연두는 2,000년도 더 전에 설치류가 옮기던 바이러스에서 유래했고, 홍역은 1,000년 전 가축 소의 우역 바이러스가 시발점이다. 2019년 말에 중국에서 처음 출현하여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 로나바이러스(SARS-CoV-2: COVID-19)도 기원이 비슷하다. 바 이러스의 유전체를 맨 처음 연구한 것을 보면 박쥐 코로나바이 러스의 유전체와 특징이 대단히 유사함이 밝혀졌고, 지금까지 천산갑 코로나바이러스에서만 발견된 특정한 돌연변이와도 상 당히 비슷하다. 천산갑 고기는 중국 등지의 야생동물 시장에서 자주 거래되는 품목이다. 그러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천산 갑에서 인간에게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은 침팬지와 교배하지 말라, '낙타와 키스하지 말라', '사향고양이나 천산갑을 먹지 말라가 아니다. 종간 전파와 잠재적 유행병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우발적 사고임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 대부분의 바이러스 감염은 길게 지 속되지 않는다. 우리의 면역계가 격렬하게 방어에 나서서 바이러스를 몸에서 몰아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이즈 바이러스나중에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로 정정]에는 특별히 사악한 두 가지 속성이 있다. 첫째, 면역계의 세포들에 침투하여 여러 종류의 미생물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세포 유형을 고갈시켜 폐렴, 진균 감염, 그밖에 더 심각한 병을 일으킨다. 둘째, 돌연변이율이 아주 높아서 외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면역계의 공격을 피한다. 일단 병이 확인되면 의사도 약물도 대체로 속수무책이었다.
- 자기방어의 계단은 우리가 백신 접종을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항체 생산에는 며칠이 걸리고 기억을 생성하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래 걸린다. 미생물에서 살아 있지 않은 항원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접촉시키고 기억 세포를 생성하도록 하면 병원균에 접촉하는 것보다 두 단계 앞서게 된다. 그래서 백신 접종을 받은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않거나 경미한 증상을 보이는 것이다. 계단은 또한 우리가 의 가끔 의도적으로 동물에게 항원을 주입하여 항체를 만드는지도 말해준다. 뱀에 물린다던가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항체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 우연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것은 심오한 깨달음이다. 맹목적인 우연이 생물권에서 일어나는 모든 새로움, 다양성, 아름다움 의 원천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소행성 충돌이, 지각판의 이동이, 그저 네 개 염기의 심실세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켰는지 보고 여러분은 틀림없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우연에 휘둘리는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가능한 모든 세계들 가운데 최고의 세계가 아니라 소설가 크리스티안 융게르 센이 말한 “무자비한 무작위성, 극도의 혼란, 계속적인 생물의 취 약성”의 세계에 산다는 불편한 곤경을 들추어낸다. 이런 견해는 당연히 더 큰 설계에서 인간이 중심을 차지한다는 전통적인 믿 음을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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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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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프타는 연료로도 활용되지만, 사실 더욱 중요한 물질로 많이 활용된다.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활용하는 각종 플라스틱이나 옷감의 주요 원료가 나프타다. 나프타에 고온의 열을 가하면 분자의 긴 사슬 구조가 쪼개지는 나프타 크래킹 Naphtha Ctracking 현상이 나타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나프타가 에틸렌, 프로필렌 같은 물질로 변한다. 이 물질을 다시 반응시키면 반복되는 구조를 가지는 고분자 물질이 된다. 이 물질이 바 로 각종 플라스틱의 원료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으로 세계 4위 정도의 에틸렌 생산량을 자랑한다. 에틸렌을 화학적으로 합성하면 폴리에틸렌이 되는데, 이 물질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페트병 같은 투명하고 유연한 플라스틱의 원료다. 즉, 폴리에틸렌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생수병이나 장난감 같은 각종 플라스틱 제품 등에 많이 활용된다. 마찬가지로 프로필렌도 화학적으로 반응시키면 폴리프로필렌이 되며, 각종 장난감 등의 플라스틱 제품에 많이 활용된다. 이처럼 나프타 크래킹을 거친 물질들을 각기 다른 화학물질과 반응시키면 또다시 다양한 원료 물질로 재탄생한다. 이렇듯 원유에 포함된 나프타는 과거에 활용되던 유리, 금속이나 목재를 대체하여 다양한 분야의 제품 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경유와 등유는 나프타보다 탄소 개수가 많아 무거운 물질이다.

그러므로 원유를 증류할 때 증류탑에서 나프타보다 밑에서 배출된다. 이 물질들은 자동차나 보일러의 연료로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인다. 증류탑 가장 아래쪽에서 배출되는 대표적 물질인 아스팔트는 도로를 포장할 때 많이 쓰인다. 무척 끈적이는 아스팔트는 상온에서는 고체 상 태여서 용도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가격이 다른 물질보다 저렴하다. 최근에는 아스팔트에 아주 뜨거운 열을 가하여 나프타 크래킹처럼 재 리함으로써 나프타, 휘발유 같은 물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되었 다. 이를 고도화 설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주요 정유회사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저렴한 아스팔트를 고부가가치 물질로 만들고 있다.

- 일반적으로 풍력과 태양광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신재생에너지이지만, 바이오가스 플랜트도 꽤 많은 전력을 생산해낼 수 있다. 바이오가스란 쓰레기, 가축의 분뇨, 하수의 슬러지 등과 같은 유기물이 산소가 차단된 상태에서 분해되면서 생산되는 메탄을 포함한 가스다. 어떤 유기물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주요 성분이며, 황화수소, 수분 등도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과거 난지도로 대규모 쓰레기 매립지였던 상암동 지역을 언급할 수 있다. 상암동 하늘공원에서는 과거에 매립된 쓰레기 때문에 바이오가스가 생성되고 있고, 현재는 이를 난방 연료로 활용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충남 홍성 지역 등에서는 돼지 분뇨로 바이오가스를 만들고 활용하여 전기를 생산한다.

-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에도 배우는 베르누이의 원리는 18세기 스위스의 유명 수학자 베르누이가 발견해서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압력, 속도 그리고 높이 간의 관계와 에너지 보존 법칙을 다루는 베르누이의 원 리는, 압력이 속도나 높이로도 변환될 수 있고, 높이는 압력과 속도로 변환될 수 있는 등 서로의 에너지 형태는 다르지만 변환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원리는 플랜트 분야에 주로 적용되는 기본 원리 중 하나다. 베르누이의 원리를 활용하면 우리가 원하는 압력, 속도 그리고 위치에 어떠한 유체를 보내고 싶을 때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할 수 있다. 이 원리에 따라 플랜트의 많은 장치와 배관을 설계한다.

- 지금은 고도화한 설계와 건설 기술, 그리고 표준화한 장치 설비에 따라 플랜트를 체계적이고 빠르게 지을 수 있지만, 플랜트 산업의 태동기였던 1900년대 초반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흐르 는 물질을 가열하고, 반응시키고, 분리하는 등의 주요 장치가 표준화되 지 않아 플랜트가 제각각 다른 형태로 설계, 제작되었다. 이처럼 맞춤 형태로 장치를 제작했으니 용량이나 운전 조건이 바뀌면 그에 따라 개 조하는 일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플랜트 산업을 폭발적으로 발전시킨 개념 중 하나인 단위조작 Unit operation 이 등장했다. 단위 조작은 화학공학을 공부하면 필수적으로 배우는 과목 중 하나다. 이 개념은 1900년 초반에 아서 D. 리틀 Arther D. Little이라는 MIT 교수가 제시했고, 수년 뒤에 윌리엄 H. 워커 William H. Walker 등이 정립했다고 한다(www.sciencehistory.org). 이들이 정의한 단위 조작은 다양한 화학 산업에는 동일한 물리 법칙을 따르는 공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의미는 전혀 다른 플랜트라고 할 지라도 그 구성 장치는 동일한 것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일을처리하는 플랜트에서 액체를 이송하려면 펌프를 활용하고, 기체를 이송하려면 압축기를 활용하는데, 식품을 만드는 플랜트 또한 액체나 기체를 이송할 때 동일한 원리에 기반한 장치를 활용한다. 물질을 가열할 때 활용하는 히터, 냉각하는 데 활용하는 냉각기, 가스와 액체를 분리하는데 활용하는 분리기 등의 구성 장치는 동일한 원리에 기반하여 만들어진다. 즉, 기존에는 플랜트 하나하나마다 장치를 맞춤형으로 설계하고 제작했다면, 이제는 필요한 장치를 가져다 연결하여 구성하면 우리가 원하는 플랜트가 된다. 플랜트의 종류가 다양하더라도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치가 많기 때문이다.

 

- 볼 밸브는 내부에 구멍이 뚫린 쇠구슬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이 구조물이 회전함에 따라 내용물의 흐름을 열거나 닫는다. 배관의 크기가 크면 밸브의 쇠구슬 형태의 구성품도 커진다. 그러므로 볼 밸브는 다른 밸브보다 상당히 크며 가격도 비싸다. 그렇지만 밸브를 닫아놓았을 때 유 체가 새는 문제점이 다른 밸브에 비해 적으므로 중요한 장치에 많이 활용한다.

게이트 밸브는 말 그대로 유체의 흐름을 개폐하는 구조물이 게이트gate, 즉 문처럼 생겼다. 위아래로 게이트를 열고 닫을 수 있는데 볼 밸브보다. 크기가 작다. 그렇지만 유체의 흐름을 차단하는 기밀성이 떨어지기 때 문에 조금 새도 큰 문제가 없는 유체가 흐르는 곳에 많이 활용한다.

글로브 밸브는 내부의 유체가 흘러가는 부분을 팽이와 비슷하게 생긴 구조물을 위아래로 움직여서 조절하는 밸브다. 볼 밸브나 게이트 밸브는 미세한 조절이 어려운 반면 글로브 밸브를 활용하면 원하는 만큼의 유체를 흘려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열고 닫음만 필요한 곳이 아니라 흘러가는 양을 조절해야 하는 곳에는 글로브 밸브를 활용 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밸브들은 사람이 수동으로 작동해야 하는데, 체크 밸브처럼 사람이 조절할 필요 없이 역류를 방지하는 기능을 하는 밸브도 있다. 이 밸브는 유체가 정상적으로 흐르다가 반대로 역류할 때 이를 차단해준다. 그 원리는 유체가 앞에서 뒤로 흘러갈 때는 위로 들려 있던 판이 유체의 흐름이 반대가 될 때는 차단하는 것이다. 마치 집 안의 방문이 한쪽으로만 열리게 되어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지금까지 살펴본 밸브들은 대부분 사람이 손으로 작동시킨다. 그렇지만 대형 플랜트를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많은 장치가 자동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장치와 밸브를 사람이 일일 이 조작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플랜트는 컴퓨터를 활용하여 자 동 운전을 한다. 이에 따라 밸브에도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장치를 설치한다. 사람이 손으로 작동하는 경우에는 핸들이 필요한데, 이 핸들 을 대체하는 장치를 밸브에 부착한다. 이 장치를 액추에이터 Actuator라고 한다.

액추에이터는 볼 밸브, 글로브 밸브 등에 부착된다. 즉, 유체가 흘러가는 몸체 body 부분은 그대로고 핸들만 액추에이터로 바뀐다. 액추에이터는 주로 공기나 전기모터를 통해 자동으로 작동한다.

- 플랜트에서 기본적으로 활용되는 공기 액추에이터의 구조를 보면 내부에 스프링이 있어서, 공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스프링 때문에 열리거나 닫히고, 공기가 들어오면 스프링의 힘을 이겨내고 밸브가 움직인다.

전기 액추에이터는 전기 공급에 따라 모터가 돌아가서 밸브를 열고 닫는다.

그렇다면 밸브를 열고 닫으라는 신호는 어떻게 전송될까? 유체의 온도, 압력이나 유량을 원하는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서는 먼저 이 상황들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도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계기다.

- 공정 시스템은 각 플랜트마다 구성이 다르지만, 유틸리티 시스템은 구성과 기능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플랜트에서 주로 활용되는 유틸리티는 공기, 질소, 냉각수, 열매체, 증기, 전기 등이다. 공기는 앞서 살펴본 각종 자동 밸브를 열고 닫는 데 핵심적으로 활용되는 유틸리티다. 어떠한 플랜트는 수분이 없고 밸브를 움직일 수 있도록 압력이 적절한 공기를 생산해야 하는데, 그 생산 시스템은 플랜트의 종류에 상관없이 비슷하다. 그 구성을 살펴보면, 우선 대기의 공기를 흡입한 후 압축기를 활용하 여 5~10bar 정도로 압축한다. 공기 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분이 많 이 포함되어 있는데, 압축을 하면 기체였던 수분의 일부가 액체가 되므로 다음 단계에서 액체를 제거하기 위해 분리기를 거친다. 이렇게 액체 를 제거하더라도 여전히 공기 중에는 수분이 기체 상태로 포함되어 있 는데, 이를 보다 완벽하게 제거하려면 공기 건조기 Dryer를 거쳐야 한다.

공기 건조기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리카겔 같은 흡착제 물 질에 공기를 통과시켜서 공기 속 수분을 극건조 상태로 만들어준다. 이때 연속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어느 정도 물로 포화상태가 되면 열을 가해 고온의 건조한 공기로 물질 내의 물을 날려 보내는 재생 과정을 거친다.

 

- 천연가스 생산 플랜트는 천연가스를 생산하고 이를 처리하여 가정이나 발전소에 공급한다. 이때 가스에 포함되어 있는, 분자량이 크고 상대적으로 무거운 물질(프로판, 부탄)은 적절히 포함시키고 수분은 최대한 제거해야 제대로 연료로 활용할 수 있다. 만약 분자량이 큰 물질이 너무 많이 혼합되면 도시가스를 태울 때 연소 성능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분이 많이 포함되면 발열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때 액체를 제거하는 기술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방법은 화학

물질을 활용하여 제거하는 기술, 두 번째 방법은 가스의 온도를 낮춰서 액화시켜 제거하는 기술이다.

첫 번째 방법에서 활용되는 화학물질은 트리에틸렌글리콜TEG 이라 는 물질인데, 이 물질과 가스를 접촉시키면 가스에 있는 무거운 물질과 수분을 깔끔하게 제거할 수 있다. 그렇지만 화학물질을 한 번 활용하고 버릴 수는 없으니 이를 재생탑이라는 장치에 보내 열을 가하고 끓여서 무거운 물질이나 수분을 제거하여 재활용한다. 이 장치는 부피가 커서 공간을 많이 차지할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줄-톰슨 원리를 활용하여 분리하는 방법으로, 첫 번 째 방법에 비해 장치가 차지하는 공간이 적고 화학물질도 적게 사용한 다. 그렇지만 줄-톰슨 원리를 적용하면 가스의 압력이 낮아져서 이를 다 시 높여줘야 하는 것이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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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여러 호르몬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탄생 합니다. 이를테면 도파민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에 작용하고요, 옥시토신은 연인 혹은 부부 관계를 오래 유지해주지요.
그러나 사랑, 그 기나긴 여정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 은 단연 엔도르핀입니다. 도파민은 뭐고, 옥시토신은 또 뭔지, 벌 써 궁금증이 생기시겠지만, 그건 차차 알려드릴게요. 엔도르핀을 먼저 살펴보면서 완전한 사랑의 이면에 숨어 있는 비밀을 알아봅시다. 엔도르핀은 사랑을 하는 동안 슬픔과 통증을 잊게 하고 쾌락과 오르가슴을 느끼게 합니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신비한 황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콩깍지가 쓰이는 거죠.
이와 유사한 페닐에틸아민은 사랑이 깊어지면 분비되는 호르 몬인데요, 수치가 높아지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랑 이 솟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천연 각성제’로 불립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호르몬 의 특징을 생각한다면 이 표현이 크게 과장된 말은 아닌 셈입니다.
엔도르핀은 마약성 진통제로 잘 알려진 모르핀과 구조가 비슷한 호르몬입니다. 주로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데, 엔도르핀과 페닐에틸아민이 부족할 시에 가장 흔히 발생하는 질병은 우울증과 만성통증입니다. 이 호르몬의 결핍이 심하면 감정을 못 느끼는 무감정증, 희소 질환인 통증을 못 느끼는 감각이상증도 유 발될 수 있지요.  엔도르핀과 분만통의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여성이 분만 시에 겪는 진통은 여성만 느끼는 통증이자, 아마도 모든 통증 중에서
최고 수준의 통증이 아닐까 싶어요. 여성들이 이를 참아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엔도르핀 때문입니다. 여성이 분만할 때 분비되는 엔도르핀 덕분에 그나마 어마어마한 통증을 참아낼 수 있다고 하니, 여성의 고통과 호르몬 덕분에 우리 모두가 이렇게 숨을 쉴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 '기쁘고 즐거운 일이 생기면 엔도르핀이 솟구친다'는 말을 자주 들어보셨지요? 엔도르핀은 사랑의 감정을 자극할 뿐만 아니 라 인체 각 기관의 노화를 막고, 암세포를 파괴하고, 기억력을 높여주며, 인내력을 강화해주는 작용을 합니다. 다시 말해 엔도르핀이 분비되면 기쁘고 즐거워집니다. 반대로 우리가 기쁘고 즐거워하면 엔도르핀이 분비되고요. 엔도르핀과 즐거움을 선순환하는 삶을 산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죠.

- 인간도 바소프레신 관련 유전자에 따라 바람둥이가 되거나, 아니면 순정을 지키는 남편이 되는지가 판가름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스웨덴 연구진이 아내 또는 애인과 5년 이상 관계를 유지해온 남성 쌍둥이 2천여 쌍을 조사해보았답니다. 그 결과, 바소프레신의 흡수를 조절하는 변이 유전자를 두 개나 가진 남성의 경우 아내나 애인과 사이가 좋지 않은 비율이 두 배나 높게 나타났습니다. 즉, 유전적으로나 환경적으로 거의 동일하게 성장한 쌍둥이 중에서 바소프레신을 잘 분비하지 못할 쪽은 비교적 순정적이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이 연구 결과만을 놓고 보면, 유전자 파악을 통해 개인의 바람기 정도를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랍니다. 하지만 연구 진은 이미 연인과 헤어진 남성을 포함해 연구 대상을 확대할 경 우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했지요. 이 에 대한 연구가 더 진척된다면 앞으로 결혼 전에 '바람둥이 유전자 검사'를 하는 일이 유행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 세로토닌은 바로 행복을 담당하는 행복 호르몬입니다. 세로 토닌 신경은 뇌줄기 한가운데에 있는 솔기핵에 위치하는데, 그 수는 수만 개입니다. 뇌 전체 신경세포 수가 약 150억 개에 이른 다는 점에서 아주 적은 수이지만, 세로토닌이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먼저 세로토닌이 마음 상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죠. 마음 상태는 크게 세 가지 신경에 의해 조절됩니다. 쾌락과 정열, 긍 정적인 마음, 성욕과 식욕 등을 관장하는 도파민 신경. 불안, 부 정적 마음, 스트레스 반응 등을 관장하는 노르아드레날린 신경. 그리고 두 신경을 억제하여 너무 흥분하지도, 너무 불안하지도 않게 조절하는 세로토닌 신경. 이 세 가지 신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마음 상태가 형성됩니다. 그중 세로토닌 신경이 잘 활성화되는 사람은 평소에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로토닌은 대뇌피질에도 영향을 미쳐 이른바 '조용한 각성 상태를 일으킵니다. 이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각성 상태가 아니라 명상을 할 때 느낄 수 있는 각성 상태입니다. 세로 토닌의 각성 상태는 자율신경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마치 차 엔 진에 시동을 걸듯 몸을 준비 상태로 만드는 것이지요. 세로토닌 이 잘 분비되어야 아침을 더 상쾌하게 맞을 수 있습니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불안, 우울, 강박, 스트레스가 찾아옵니다. 편두통, 기능성 소화장애, 과식, 과음 등을 초래하고, 성기능에도 영향을 미쳐 남성에게 발기부전과 조루증을 유발할 수 있 습니다. 여러 정서 행동 및 성격장애 또한 세로토닌과 관련돼 있습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침해하고, 심지어 남을 해치는 행동을 보이는 반사회적 성격장애 환자 들은 세로토닌 활동 수준이 평균보다 훨씬 저하되어 있다고 합니다.
반대로 세로토닌이 과다 분비되는 경우, 스트레스 상황에서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분노조절장애를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세로토닌 균형이 무너지면 불안장애, 공황장애, 강박장애, 거식증, 경계선 성격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세로토닌은 이토록 중요하지만, 생각보다 관리하는 방법은 쉽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 바깥에 나가 햇빛을 쐬어주면 끝입니다. 세로토닌은 일조량에 비례해서 분비되기 때문인데요. 그야말로 햇빛은 행복을 보충해주는 공짜 영양제인 셈입니다. 피할 이유가 없겠죠? 마음이 가라앉고 몸이 처지는 기분이 든다면 당장 집에서 나와 햇빛 아래 산책하기를 권합니다.

- 갑상선에서 분비된 호르몬은 티록신과 칼시토닌이 있는데, 그중 보통 갑상선호르몬으로 불리는 티록신은 트리요오드티로 닌과 함께 발열반응을 일으켜 체온을 유지하고 신진대사를 촉진하며, 기초대사와 함께 성장도 조절하는 호르몬입니다. 칼시토닌은 부갑상선에서 분비되는 파라트로몬과 함께 뼈와 신장에 작용하여 혈중 칼슘 수치를 낮추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갑상선호르몬이 부족해지면, 다시 말해 갑상선 기능이 저하되면 우울하고 무기력한 채 피곤하고 얼굴도 푸석푸석해지고, 몸이 붓고 살도 찌고 변비도 생기며, 고지혈증도 생기게 됩니다. 반대로 갑상선호르몬이 과잉인 상태, 즉 갑상선기능항진증이 되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매사 두근거리면서 불안해지고, 땀도 많이 나고 설사가 자주 나며, 많이 먹어도 살이 빠지고 나중에는 안구가 튀어나오는 증상까지 보입니다.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증상들이 연결되어 나타나지요.
이런 경험을 혹시 해본 적 있으신가요? 애매한 증상이 생겨서 병원을 찾았는데, 혈액검사 등 각종 검사를 하면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니 괜찮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경우요. 분명 나 자신은 어딘가 아픈 것 같은데 말입니다. 본인이든 가족이든 주변 사람 중에서도 분명 이런 경우가 많으실 거예요. 피곤하고 우울하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고, 꿈자리도 뒤숭숭하거나 자꾸 허기진 느낌이 들고, 심지어는 느닷없이 유즙이 나오는 황당 한 경험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최근에 한 환자분이 심장이 쿵쾅거리고 화끈화끈 열이 오르며 이유 없이 우울해진다며 병원을 찾아오셨습니다. 혹시 지금 이 책을 읽으시는 분 중에도 이와 비슷한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이런 분은 어디서 진료를 받아야 할까요? 심장내과? 내분비내과? 신경정신과?
뜻밖에도 이런 증상은 갑상선호르몬에 이상이 왔을 때 나타 나는 증상일 수 있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예민해진다거나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찾아오는 증상은 언뜻 생각하면 신경정신과에 해당하는 병증인가 싶지만, 의외로 갑상선호르몬 이상이 원인인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즉, 내분비과에 찾아오셔야 하는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 도파민은 타인 혹은 사물, 상황 등을 바라볼 때 작용하는 감정을 조절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을 판가름하기에 ‘호감 호르몬'이라고 불리지만, 동시에 '충동 호르몬'으로 불리기도 하는 특이한 호르몬입니다. 과다 분 비되거나 과다한 작용을 보이면 그 사람은 대상에 대한 강한 충 동을 느끼게 되지요. 나아가 그 정도가 지나치면 집착, 탐닉, 의존 경향마저 보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자꾸 갈구하게 된다 할까요.
이런 도파민의 작용이 억제되지 않고 내면에 극도의 영향을 끼치게 되면 무슨 일이든 비극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감정의 자기파괴 현상이 일어나고, 결국에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무서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죠. 
- 어떤 사람이나 사물, 혹은 상황을 접한 뒤 4분 안에 도파민이나오지 않는다면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뀐다는 사실, 혹시 아시나요? 그리고 호감이 너무 지나치면 무언가를 충동적으로 격발시키기도 합니다. 마치 뭉크의 절처럼 말이죠. 그래서 앞서 이야기했듯 도파민을 충동 호르몬이라 부르는 거죠. 만약 홈쇼핑 방송을 보다가 상품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그때 도파민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
-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티로신, 페닐알라닌 등 아미노산에서 생성되며, 노르에피네프린과 에피네프린 합성체의 전구물질입니다. 우리 체내에서 신경전달물질로서 작용하는데, 특히 뇌신경세프에 흥분 반응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조금 어려운 이야기지만 신경계에서 생체신호 전달과 관련하여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도파민은 감정과 동기 부여부터 욕망과 쾌락, 학습 등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앞서 말씀드린 지나친 충동과 욕망 이외에도 조울증이나 조현증 같은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도파민이 너무 부족해져도 우울증이 유발되는 등 문제가 생기지요. 하지만 적당한 도파민은 공부나 일에 대해 능률을 높여주고, 이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면 쾌감과 함께 도파민의 분비를 더욱 높이게 되는 선순환이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도파민의 균형이 중요한 것입니다.
- 적당한 도파민의 분비는 쾌감 및 즐거움과 관련된 신호를 전달해 우리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식욕, 성욕, 예술가적 기질을 자극하는 일종의 생체 친화적인 각성제로 '신이 선사한 마약', '사랑의 묘약’, ‘사랑과 창조의 호르몬'이라는 별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요.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도파민 분비가 왕성해지면서 뇌의 가장 깊숙한 중심부에 있는 미상핵의 활동이 두드러지는데, 이에 따라 기분도 급속도로 좋아집니다. 그래서 도파민은 가장 강력한 천연각성제로도 꼽힙니다. 우리가 복용하는 진통제 중에는 정 상치의 수십 배에 달하는 도파민을 일시적으로 방출하여 통증을 잊게 만드는 원리를 이용하는 약도 있답니다.

- 코르티솔과 알도스테론 모두 부신피질에서 생성되는 코르티코이드 호르몬의 일종입니다. 우리에게는 '스테로이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알도스테론은 무기질 코르티코이드로, 수분과 전해질의 흡수에 관여하여 혈압 및 혈액량을 조절하는 기능을 합니다. 코르티솔은 무기질이 아닌 당질 코르티코이드입니다. 스트레스나 자극에 대한 우리 몸의 대사와 면역 반응을 조절하고, 급성 스트레스에 대항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해줍니다. 한편 부신수질에서 나오는 도파민, 에피네프린 (아드레날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을 총칭해서 카테콜아민이라고 하는데, 혈압 조절, 스트레스 대응, 그리고 혈당 상승을 일으켜서 위기에 대처하는 호르몬입니다. 카테콜아민은 코르티솔처럼 인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즉각적인 방어 상태에 들어가도록 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코르티솔을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하여 무조건 부정적인 호르몬으로 보면 안 됩니다. 다만 과해도 문제, 부족해도 문제인 것입니다.

- 콩팥에서 분비되는 혈압 호르몬 레닌은 콩팥의 혈류량에 따라 분비량이 달라집니다. 혈류량이 적어지면 레닌이 많이 분비되 고, 혈류량이 증가하면 레닌의 분비가 억제되지요. 이런 방식으로 혈압이 조절되는 것입니다.
- 고혈압을 진단할 때는 레닌 수치를 우선 검사합니다. 이때 이상이 발견되면 알도스테론 수치도 추가로 검사하여 질병 여부를 확인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알도스테론은 나트륨을 보존하고 칼륨을 제거함으로써 혈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지요.
젊은 나이에 고혈압을 진단받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건너서 아는 지인은 고혈압을 진단받고 고혈압 약 제를 복용했습니다. 그런데 약으로 혈압이 조절되지 않아 더 강한 약을 처방받았지요. 그렇게 강한 약을 복용하다가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문제가 호르몬이라는 것을요.
이런 경우를 본태성 고혈압이 아니라 이차성 고혈압이라고 합니다. 그 지인은 가족 내력이 문제가 아니라 부신피질에 종양이 생겨 알도스테론이 과잉 분비되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처럼 갑상선호르몬, 성장호르몬, 알도스테론, 코르티솔, 카테콜아민 등 고혈압을 유발할 수 있는 호르몬에 이상이 생겼을 때는 고혈 압 약제만 복용하지 말고 호르몬적인 처방을 받아야 합니다.
혈관 건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저나트륨 식단을 선택해야 하고, 상처가 난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식품을 먹어야 합니다. 특히 혈액의 점도와 혈류를 개선하는 퀘르세틴 성분이 많은 양파와 알리신 성분이 많은 마늘, 알긴산이 많은 해조류 등이 도움이 됩니다.
- 나트륨 섭취가 많아지면 전신 혈압이 높아지게 되어 신장의 사구체 및 주변 혈관들에 높은 압력이 전해집니다. 이 때문에 사구체와 혈관이 손상되면 만성 신장병으로 굳어지게 되지요. 만성 신장병이 되면 염분의 배설이 감소하여 염분이 축적되고 레닌 및 안지오텐신 호르몬 증가로 인해 고혈압을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 멜라토닌은 뇌 속에 있는 솔방울 모양의 기관인 송과선에서 생성 및 분비되는 호르몬입니다.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이 멜라토닌의 주원료이죠. 송과선은 밤과 낮의 길이, 계절에 따른 일조시 간의 변화 등과 같은 광주기를 감지하여 멜라토닌 분비량을 조 절합니다.
수면 패턴을 갑자기 바꿨을 때 온종일 피로감을 느꼈던 기억 이 있을 겁니다. 멜라토닌이 생식 활동을 비롯해 신진대사의 생 체리듬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송과선은 세로토닌의 신호를 받아 멜라토닌을 만들어내는데요. 세로토닌은 햇빛을 찔 때 생성됩니다. 말하자면 햇빛은 무료 수면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 멜라토닌과 멜라닌은 이름은 비슷하지만 원료와 구조가 다른 물질입니다. 멜라토닌은 트립토판을, 멜라닌은 티로신을 주원료로 하죠. 그런데 멜라토닌의 기능 중에는 수면과 생물학적 리듬 조절 말고도 멜라닌 합성 조절도 있습니다. 그래서 멜라토닌이 부족해서 멜라닌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햇빛에 노출되는 피부 부위에 검버섯, 기미가 생길 수 있습니다.
봄철에 많은 직장인과 학생들을 괴롭히는 춘곤증, 자도 자도 피곤한 만성피로, 낮에 자꾸 졸음이 쏟아지는 기면증도 멜라토 닌과 연관이 있습니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경우, 낮과 밤이 바뀌 면 멜라토닌이 성장호르몬에도 영향을 주어 성장장애를 가져옵니다. 성장호르몬은 멜라토닌이 분비된 후 두 시간 정도 지나서 최대로 분비되거든요. 따라서 일반적으로 밤 11시에서 새벽 1시사이에 멜라토닌이 최고로 분비된 후 두 시간 뒤인 새벽 3시경 성장호르몬이 분비되어야 정상적인 대사와 성장이 원활하게 이루어집니다.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면 키가 못 큰다는 말은 아이들에 게 으름장을 놓는 말이 아니라 사실인 거죠! 이런 멜라토닌과 성장호르몬의 균형이 깨지면 성장장애와 대사 과정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 성장호르몬은 잠잘 때, 그리고 운동할 때 많이 분비되는데, 특히 수면 중 REM 수면 주기에 맞춰서 박동성 분비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뇌 속의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의 영향 때문 입니다.
어두워지면 송과선에서 멜라토닌이 분비됩니다. 이로써 우리 몸 은 밤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성장호르몬을 비롯해 밤중에 주로 분비되는 여러 호르몬이 활성화되는 겁니다. 숙면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지요? 잠을 자더라도 깊은 잠을 자야 성장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는 건 당연하 지 않겠어요. 자꾸 잠을 깨거나 선잠을 잔다면 성장호르몬의 분비는 그만큼 떨어지게 됩니다. 성장호르몬은 주로 어 린이나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호르몬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은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한 호르몬입니 다. 성장호르몬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지방을 분해하고 근육을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지방분해 효과는 고도비만 치료제로 사용될 정도로 탁월하다고 알려졌지요. 성장호르몬 분비가 왕성하면 근육이 튼튼해지고 군살 없는 탱탱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 습니다. 그 밖에도 심장 기능을 강화하고 심혈관 지방을 없애는 데 도움을 주며, 골밀도를 높이고 새로운 뼈를 만드는 골 교체율 을 증가시켜 뼈를 튼튼하게 합니다.

- 가바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이기 때문에 뇌와 신경을 달래서 다른 혈압을 낮춰주는 작용을 합니다. 그리고 고혈압의 예방 및 개선, 혈중 중성지방 저하 등의 역할을 합니다. 또한 장내에 나쁜 균이 증가하는 것을 억제하므로 변비도 나아지고, 간과 신장의 기능도 강화해주는 등 장점을 아주 많이 가진 호르몬이에요. 그뿐만 아니라 뇌에 직접 작용하는 성분은 아니지만 신경을
이완·진정시켜주는 효과가 있지요.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를 줄 여줘서 신경을 안정시켜 평안한 밤을 이루게 해주고, 우울증을 완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우울증 환자 대부분은 가바 수치가 평균 이하를 보인다고 합니다. 자연 식품, 보충제, 명상이나 운동을 통해 가바 수치를 정상화하면 우울증이 크게 나아지죠.

- 가바의 기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질병이 바로 ADHD 증상입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말하죠. 과거에는 어린이에게만 나타난다고 했지만, 요즘에는 성인에게도 많이 발견되는 질병이죠. ADHD 환자의 경우, 가바 수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ADHD 증상도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습니다. 연구 결과상으로도 이 증세를 가진 아동은 평균보다 가바 수치가 월등 하게 낮으며, 수치가 낮을수록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서 문제 행 동을 더 많이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바를 인내 호르몬이라 이름 붙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 인슐린이 당뇨병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과식을 하게 되면 우리 몸속에 포도당이 많아지고, 그러면 혈당이 급속하 게 높아집니다. 이를 낮추기 위해서 인슐린이 평소보다 많이 분비됩니다. 문제는 인슐린이 혈당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식욕을 높인다는 점입니다. 즉, 과식이 또 다른 과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지요. 이로 인해 인슐린은 더 많이 분비되고, 약물에 내성이 생기듯이 제 기능을 서서히 잃게 됩니다. 결국 인슐린이 많아도 제대로 된 기능을 못하는 '인슐린 저항성'이라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실제로 당뇨병 환자 중에는 인슐린 수치가 일반인보다 오히려 높은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인슐린을 비만 호르몬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비만과 인슐린이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슐린이 과하게 분비되면 지방을 형성하거든요. 그리고 비만이 되면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면서 또 인슐린 수치가 높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의학계에서는 인슐린 저항성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꾸준히 연구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당뇨병 환자들에게 인슐린이 아니라 성장호르몬을 투여하는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성장호르몬으로 인해 근육량이 늘면서 환자들의 혈당이 더 잘 조절되었습니다. 근육량이 인슐린 민감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이처럼 호르몬과 우리 몸의 관계를 다각도에서 살펴보아야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체지방 조절의 열쇠를 쥐고 있는 호르몬을 꼽자면 인슐린과 글루카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렙틴이나 그렐린같은 식욕조절 호르몬도 체지방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요. 근육량과 체지방량에 영향을 주는 성장호르몬, 소장에서 분비되 어 인슐린 분비에 영향을 미치는 인크레틴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수많은 호르몬이 제 역할을 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몸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게 되면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질 수 있지요.

- 우리가 다이어트만 했다 하면 백전백패하는 이유는 식욕 호르몬인 그렐린 때문이에요. 위에서 분비되는 그렐린은 우리에게 '배고프니까 먹어! 먹으라고!'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이 그렐린은 밤 11시에도 분비되고, 우리가 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됐을 때에도 활동을 합니다.
그렐린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녀석이라면 인류 전체가 비만이 되어야 할 텐데, 또 그렇지는 않지요? 정교한 우리의 몸에서 그렐린을 누를 수 있는 또 다른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만 좀 먹어!'라고 잔소리를 하는 호르몬인 렙틴입니다. 정리하면, 그렐린은 '식욕 호르몬'이고 렙틴은 '식욕 억제 호르몬'입니다. 두 호르몬이 상호작용하면서 균형을 맞출 때 우리는 건 강한 식습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렐린과 렙틴의 균형이 무너질 때 비로소 비만이 찾아온다는 것이지요.

- 열두 개의 과업을 무사히 마친 헤라클레스는 그야말로 최고의 영웅으로 칭송을 받습니다. 오늘날에도 '헤라클레스'는 힘의 대명사로 쓰이지요. 그림을 보기만 해도 강력한 힘이 전해져오 는 듯합니다. 이처럼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최근에 발견된 호르몬이기 때문에 아직 생소한 이름일 텐데요, 근육 호르몬 마이오카인입니다.
근육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인 마이오카인은 우리가 운동을 할 때 분비됩니다. 마이오카인은 세포조직을 활성화하여 피부를 젊고 건강하게 만들어주죠. 나이가 들어도 강인함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마이오카인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마이오카인은 근력의 기능을 보호하고 운동능력을 향상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에 너지 대사, 체중 조절, 인지기능 향상, 혈압과 혈당 관리 등에도 관여합니다. 마이오카인의 일종인 '아이리신irisin'은 특히 혈관 을 타고 지방 조직으로 이동해서 백색지방을 갈색지방으로 바 꾸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럼 이제 자연스럽게 지방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보죠. 지 방은 크게 백색지방, 갈색지방, 베이지색지방으로 나뉩니다. 백색지방은 축적된 에너지를 중성지방으로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서 살이 찌게 만듭니다. 반대로, 갈색지방은 저장된 에너지를 열로 방출하게 합니다. 그래서 갈색지방은 흔히 착한 지 방이라고 부르죠. 이 두 지방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베이지색지방은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베이지색지방은 백색지방 조직 안에서 발견된 지방인데, 갈색지방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말하자면, 베이지색지방과 갈색지방이 많을수록 살이 찌지 않고 건강하다는 것이지요.
앞서 지방에서 아디포사이토카인이라는 호르몬이 방출된다. 고 했지요. 아디포사이토카인이 무작정 나쁜 호르몬은 아닙니 다. 정상 체중일 때는 아디포사이토카인 중에서 염증을 억제하 는 아디포넥틴이 방출됩니다. 그런데 비만이 되면 염증을 늘리 는 나쁜 호르몬들이 방출되지요. 염증을 일으키는 아디포사이토 카인은 당뇨, 고혈압, 동맥경화 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니까 지방을 태우는 갈색지방과 베이지색지방이 많아져 야 하겠지요? 백색지방은 사라지지 않고 쌓이기만 하니 말입니 다. 이때 마이오카인이 백색지방을 갈색지방과 베이지색지방으 로 바꿔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때문에 마이오카인의 중요성이 더더욱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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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거짓말 통계

과학 2022. 6. 23. 21:54

- 통계학이라는 비밀스러운 술어는 증거를 중요시하는 문화를 가진 현세에서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혼란에 빠뜨리게 하며, 사물을 과장하거나 극도로 단순화하기 위해 자주 이용된다. 사회나 경제의 동향, 기업의 경영상태, 여론조사, 국제조사 등 방대한 데이터를 기록하는 데 있어 통계적 방법과 통계적 용어 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용어들이다.  그러나 그 용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정직하게 사용하는 발 표자와 사용된 용어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대중들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황당한 말장난에 불과할 것이다.
- 모집단이란 통계적인 용어로 표본이 추출되는 전체를 말하 는 것으로 표본은 모집단의 일부분이다.
예를 들어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는 카드 묶음에서 열 번째 마다 카드를 뽑아내는 경우, 모자 가득히 들어 있는 기표용지 에서 50매를 뽑을 경우, 뉴욕 메디슨스퀘어광장을 지나가는 사람 중에서 스무 번째 사람마다 붙잡고 인터뷰하는 경우가 각 모집단으로부터 표본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물론 마지막 예는 전세계의 모든 사람이나 모든 미국인 또 는 모든 뉴욕 시민들을 대표하는 표본이 아니며, 단지 바로 그 때 메디슨 스퀘어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표본일뿐이다.
어느 여성 여론조사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인터뷰 상대를 찾기 위해 역에 가는데, 그 이유는 역에 가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이 맞지 않는다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는 역에서 인터뷰하기 어려 운데, 그 이유는 어린이를 데리고 다니는 어머니들을 역에서 찾는 일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임의추출인가 아닌가의 판정은 다음과 같다. 즉 모집단 안 에 있는 개체들이 표본에 선택될 기회가 동일한가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 여론조사에 대해서 가장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유주의자와 좌익들이 많은데, 그들은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속임수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 하게 된 이면에는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가 대체로 보수파와는 견해가 다른 자유주의자나 좌익의 의견이나 바람과는 부합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제 투표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바로 그 직전까지도 여론조사가 공화당 후보가 당선 될 거라 알려 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미 우리가 앞서 보아온 바와 같이, 여론조사는 속임수까지 쓰면서 억지로 조작할 필요는 없었다. 표본 그 자체가 어느 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저절로 왜곡되어 버릴 뿐이다.
- 이와 거의 비슷하게 사소한 숫자이지만 생략함으로써 문제 가 발생하는 예로 게젤의 준거(準 Gesell's norms'에 관한 문제가 있다. 이것은 준거에 해당하는 표준치와 자기 아이와의 근소한 수치 차이가 부모들의 고통을 유발하는 현상이다.
어떤 부모가 일간지의 일요판 부록 같은 면에서 갓난아이는 생후 몇 개월에 혼자 똑바로 앉아 있을 수 있게 된다는 기사를 읽었다고 하자. 이 부모는 곧 자기네 갓난아이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 어린 아기가 신문에 지정된 그 시점까지 혼자 똑바로 앉아 있지 못한다면, 그 부모는 틀림없이 자기 아이가 발육 지진아이거나 저능아이거나 또는 뭔가 비정상적인 아이일 것 이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통계 이론상으로는 그 시기까지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엄청나게 많은 어린 아기들이 혼자 똑바로 앉아 있을 수 없으니, 상당히 많은 부모들이 이 때문에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물론 수학적으로 말하면 나머지 절반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정상아' 라고 기뻐할 것이니 확률은 절반인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불행한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그 표준이 되는 준거로부터 더 이상 처지지 않기 위해 억지로 이에 맞추려고 하니 이로부터 엉뚱한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 무엇인가 증명하고 싶어도 증명할 수가 없는 경우에는 다른 엉뚱한 것을 하나 끄집어내 증명한 다음 마치 그 두 사실이 같은 것처럼 슬쩍 넘어간다. 서로 모순이지만 복잡하게 보이는 통계 숫자들을 눈앞에 갑자기 들이밀어 어리벙벙하게 만들면 그들 사이의 사소한 차이를 주목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전인수 격으로 꾸며 내어 갖다 붙인 숫자들은 당신을 언 제나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해 주는 훌륭한 도구이다. 이 말이 틀리면 정말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당신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약이 감기 치료약으로 효용 있음을 증명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단 10g의 약만 있으면 시 험관 내에 들어 있는 세균을 11초 만에 31,108개나 죽일 수 있 다는 확실한 실험실의 연구보고를 대문짝만한 활자로 발표할 수는 있다. 단 이런 일을 하기에 앞서 반드시 유명하거나 권위있는 연구소를 섭외해야만 한다. 또 보고서는 전문을 게재하는 것이 좋고 보고서 옆에는 의사처럼 보이는 하얀 가운을 입은 모델 사진을 같이 올려놓으면 더 효과적이다. 또한 당신의 노하우까지 언급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시험관에서는 이 방부제가 잘 듣지만 사람의 목에 생긴 염 증에 는 잘 듣지 않을 수도 있어요. 목이 상하지 않도록 희석 해야 하는 처방을 내려야 하니까.
- 이런 따위의 얘기를 자진해서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또 어떤 종류의 세균에 효능이 있는지 밝혀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 도대체 감기를 일으키는 세균이 어떤 종류인지 누가 알고 있겠는가? 어쩌면 감기의 원인은 세균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말이다.
사실상 시험관에 들어 있던 세균과 감기의 원인이 되는 세균 (그것이 어떤 종류든 간에)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이를 일일이 따지는 사람도 없으며 더군다나 감기로 코가 근질근질할 때는 무조건 약을 찾게 마련이다.
- 말라리아에 관한 다음과 같은 통계 숫자도 같은 이유로 아무런 의미 없는 숫자이다. 1940년 이전 미국 남부에는 연간 수 십만 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했는데 오늘날에는 손으로 꼽 을 정도밖에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 통계 숫자를 보면 최근 2~3년 사이에 공중 보건에 있어 무엇인가가 매우 중요한 변화 가 일어난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오늘날에는 말라리아라는 것이 말라리아라고 명확히 판명된 경우에 한해서만 보고 되는데 반해 옛날 남부 대부분의 주에서 말라리아라는 단어가 감기나 몸살을 나타내는 일상용어로서 사용되었다는 것이 그 진상이다.
- 쓸데없이 정확한 숫자를 나열해 그럴 듯 하게 보이는 느낌을 주게 하는 데 있어서는 칼 마르크스Karl Marx도 뒤지지는 않 았다. 방적공장에서의 잉여가치율을 계산하는 데 있어서 마르크스는 놀라울 정도의 많은 가정과 추측 그리고 어림수를 써서 계산을 시작하고 있다.
“쓰레기는 6%라 가정한다. ..... 원료비는 어림잡아 약 342 파운드라 한다. 1만 개의 방추는 한 개의 원가가 1파운드라 가정하고....... 그 감가상각율은 10%라 하자. ...... 공장건물 의 임대료는 300파운드라 추정한다. ......”와 같은 식으로 나 아간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이상의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맨체스터 의 어느 방적공장 주인으로부터 입수했다”고 기록하였다. | 마르크스는 이 근사값에서 “..... 따라서 잉여가치율은 80/52 = 153.8%이다” 라고 계산을 한다. 그러므로 하루 열 시 간의 노동을 하는 경우에 “필요 노동시간은 331/33(3.94) 시간, 잉여 노동시간은 62/33(6.06)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 6.06시간의 소수 자리인 0.06시간이란 숫자는 꽤 정확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사실은 야바위꾼의 속임수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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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말을 할 때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말하는 순간 음성이 외이도를 통해 내이로 들어오는 동시에 머리뼈로 전달되는 골전도를 통해 직접 내이로 들어가기 때문인데, 만일 이 목소리가 조금 늦게 청각계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지연 회로를 이용하여 자신의 음성을 100~200밀리초 정도 지연시켜 헤드폰으로 들려주면, 말하기가 곤란해지고 말을 더듬는 듯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를 지연 청각 피드백이라고 한다. 보통은 자기 목소리가 피드백되어도 이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자동 처리로 통제하면서 말을 이어가는 데, 조금 늦게 피드백되면 주의 자원이 주로 듣기 쪽에 배분되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 미국의 심리학자 월러스는 저서에서 인간이 창의적인 해결책에 도달하는 과정 에는 다음 4단계가 있다고 기술했다
(1) 준비: 문제와 요구 사항을 정의하고, 해결책과 그에 따른 반응을 설명해 줄 만한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자신의 해결책이 허용 가능한지 아닌지 검증하는 기준을 정한다.
(2) 부화: 문제로부터 약간 거리를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준비 단계처럼  몇 분이고 계속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몇 주나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3) 발현 : 창의적인 반응의 기초가 제공되는 심적 상태로부터 아이디어가 생긴다. 일부에 관한 아이디어일 수도 있고, 개념이나 실체를 아우르는 전체에 관한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다른 단계와 달리 발현 단계는 매우 간단하며, 몇 분에서 몇 시간 이내에 통찰이 나타난다.
(4) 검증: 발현 단계에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문제의 요구 사항과 준비 단계에서 정한 검증 기준을 만족시키는지 검증한다.
- 행동주의가 한창일 무렵, 어떤 학자들은 정동을 내적 작용이라며 중요하게 여 기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방해한다는 정동 유해설을 주장하 기도 했다. 하지만 행동주의가 쇠퇴하고 인지과학이 흥할 무렵, 미국의 심리학자 아놀드 등은 강한 감정을 일으키는 이미지를 인식하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보 여주어도 말초 신경계가 반응하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이 실험을 통해 외 부 자극이 자신에게 유익한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정동이 생긴다는 감정 인지설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인지심리학자 도다는 감정 충동론을 주장했다. 감정을 주관 하는 시스템은 동물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존에 유익하기 때문에 획득하게 된 소프트웨어라고 설명한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크먼도 자극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작용한다는 정동 진 화론의 입장을 취했다. 이처럼 정동이란 인간 및 생물이 타고난 것으로,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양식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정동이 사회생활 속에서 가치관을 표현하거나 행동을 제어하는 기능이 라 주장하는 정동 사회 구성론도 있다.
정동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먼저 “슬퍼 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어서 슬픈 것이다.”라는 말로 알려진 제임스랑게 이론이 다. 그림 11-2와 같이 자극이 입력되면 말초 신경계가 반응하고 생리적 변화 가 일어나면서 대뇌 피질에서 정동이 생긴다는 것으로, 말초 기원설이라고도 한다. 다만 반증 사례로 말초 신경계와 뇌를 연결하는 경로를 차단해도 감정을 보이는 동물 실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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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2022. 4. 16. 19:21

(1) 1도 상승
- 이산화탄소 농도 그래프인 '킬링 곡선 Keeling Curve'은 거침없는 상승 추이를 보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는 홍수에 뒤이어 가뭄이 시작되는 등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 서아프리카와 북아프리카 지역이 점점 건조해지면서 수천만 명이 넘는 주민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는다.
- 평균적으로 지난 10년 동안 인류는 매년 지하 저장고에 석탄이나 석유, 천연가스의 형태로 묻혔던 이산화탄소 350억 톤을 대기중으로 끌어냈다. 여기에 더해 삼림 파괴나 새로운 농경지를 만들기 위한 개간 같은 '토지용도 변경' 때문에 60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더해졌다. 이 새로 방출된 이산화탄소 가운데 90억 톤은 바다에 용해되었고, 120억 톤은 육지의 초목과 토양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180억톤은 대기에 축적되어 킬링 곡선의 거침없는 상승 곡선을 이끌었다. (20억 톤의 차이가 생긴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2) 2도 상승
- 북극해 얼음의 소멸로 인해 전 세계의 기후가 혼란에 빠진다. 기온 상승의 결과로 뎅기열이 확산되어 사망자가 증가한다. 10대 농작물의 수확량이 감소하며 가난한 국가에서 영양 부족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한다. 가장 격렬한 기후변화의 현장인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메마른 땅에 생계를 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백만 명이 가뭄으로 인해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3) 3도 상승
- 해안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성난 파도를 막아 줄 거대한 바리케이드 뒤에 갇힌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극심한 폭염은 2년에 한 번씩 발생한다. 비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내린다. 기온이 치솟고 강우량이 줄어들면서 경작이 실패한다. 전 세계적인 식량 부족은 대규모 문명 붕괴를 일으킨다. 또한 많은 종의 동물이 멸종된다.

(4) 4도 상승
- 4°C가 오르면 지구는 상당 부분이 생물학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게 된다. 히말라야산맥에는 얼음이 절반만 남아 있다. 깊은 열대나 중위도 지역에서는 홍수가, 메마른 아열대와 지중해 지역은 사막화가 진행된다. 인류의 절반은 피신처를 찾아 이동한다. 여러 나라는 인구의 절반을 잃고 저지대 섬 국가들은 사라진다.

(5) 5도 상승
- 연중 내내 지속되는 폭염에 간헐적인 홍수로 육지 표면이 손실되어 겨울을 넘기기 위한 식량을 생산하지 못한다. 운송, 농업을 비롯한 여러 활동이 중단되어 기근과 경제 붕괴를 촉발한다. 대부분의 도시는 기능을 다하여 버려진다. 대규모 농업은 이제 먼 추억이 되었다. 지구의 거주 가능한 공간의 10분의 9를 잃었다. 대량 멸종이 발생한다.

(6) 6도 상승
- 지구 어디에도 얼음이 없고, 나무들은 북극과 남극 대륙의 가장 높은 곳까지 자란다. 북극에서 적도까지 불길이 활활 타올라 밤에도 낮처럼 환하다. 생태계나 먹이사슬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적도 바다의 해수면은 너무 뜨거워져 그 무엇도 살아남을 수 없다. 열기가 너무 강한 나머지 대부분의 비는 땅에 닿기 전에 증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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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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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밀한 연결

과학 2022. 4. 9. 09:12

- 페닐케톤뇨증의 원인을 수정해 병을 치료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럼 이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순간이다. 지금 우리가 난관에 봉착한 이유는 병의 원인이 쉽게 교정할 수 없는 유전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의 증상이 나타나는 걸 막기 위한 방법이 반드시 근본적인 원인을 공략해야 할 필요는 없 지 않은가? 만약 원인이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 사이에 있는 무언 가를 조절해서 그 결과를 바꿀 수 있다면, 굳이 처음 문제의 시작 이었던 유전자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식이요법이라는 행동치료 이다. 지적 장애 등 행동 수준의 결과를 일으키는 페닐알라닌 분 해 효소 유전자 결함을 직접 수정하는 것은 어려우니, 대신 뇌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페닐알라닌을 아예 섭취하지 않는 행동의 변화로 유전자의 문제를 교정하는 것이다. 식이요법으로 페닐케톤뇨증을 치료하는 것은 굉장히 손쉬운 접근 방식으로 보 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유전자의 이상을 근본 원인이 아닌 그 이 후 단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병에 대응하는 상당히 재미난 접근 의 치료법이다.
이렇게 행동으로 병의 증상을 약화시키는 치료법은 페닐케 톤뇨증 외에도 다양한 신경질환을 치료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대 표적으로 고지방, 저탄수화물, 저단백질 식단의 케톤 생성 식이 요법은 무려 100년 전부터 발병 원리를 명확히 모르는 난치성 뇌전증 치료를 위해 쓰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직 원인이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Autism spectrum disorder의 거의 유일한 치료법도 교육 치료, 언어 치료 등 행동 수준에서의 대응이다. 유전질환은 아니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치료에도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ye movement desesitization and reprocessing, EMDR 이라는 행동요법이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 멘델의 유전법칙을 바탕으로 한 집단유전학은 자연 선택, 돌연변이, 유전자 흐름 등의 방법으로 집단의 대립유전자 빈도가 변할 수 있다는 설명을 통해 다윈 진화의 핵심인 '변화'를 동반한 계승의 비밀을 풀어냈다. 덕분에 다윈의 실수가 해결됐고,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부모님의 얼굴과 성격을 닮을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윈과 멘델의 이론이 세상에 등장한 지 반세기가 지나고서야 두 이론이 서로 만난 것이다. 마침내 현대 유전학이 그 모습을 어렴풋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 인간이 다른 생물종보다 더 훌륭하거나 고등한 생명체라고 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지능을 포함해 여러 표현형을 살펴 보았을 때 인간이 다른 생물종들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작용 을 할 수 있다는 건 명백하다. 인간의 유전자 수가 2만 개에 불과 하다는 진실이 밝혀지자, 학자들은 그럼 도대체 인간의 복잡성이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답을 찾아냈다.
인간의 복잡성이 유전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유전자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그 복잡함이 비롯되었을 거다. 그 래서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아닌 DNA, 즉 98퍼센트의 비암호화 DNA에 주목했다. 처음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결과가 발표되 었을 때,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아닌 마치 암흑물질 같은 비암호화 DNA를 필요 없는 부분으로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부분을 쓰레기 DNAjunk DNA 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생명과학자는 아무도 없다. 비암호화 DNA가 2퍼센트의 유 전자, 2만 개의 유전자로는 다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인간의 다양하 고 복잡한 형질을 조절하는 핵심인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유전학이 유전자의 정체와 기능에 관심을 가진 학문이었다면, 21세기 유전학은 유전자가 아닌 나머지 98퍼센트의 DNA에 관심을 가지는 학문이다. 그 정도로 현대 유전학에서 비 암호화 DNA의 영향은 크다. 인간의 복잡성처럼 유전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생명의 신비를 해결할 열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암호화 DNA 연구는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로 얻은 생명의 설계 도를 해석할 생명의 언어 체계, 즉 DNA의 유전 부호가 개체 수준 의 행동 혹은 형태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100년간 유전학이 등한시했던 비암호화 DNA가 오히려 생명의 특성에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 우리의 세포는 대다수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중 자신이 필요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발현시킨다. 덕분에 각 세포는 자신의 담당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유전자 발현의 조절인 셈이다.
우리 몸에서 유전자 발현 조절이 중요한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세포 내에서도 상황과 시간에 따라 유전자 발현을 다르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세포라고 언제나 똑같은 유전자를 발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췌장 베타 세포 인슐린 단백질의 경우, 밥을 먹은 직후 발현이 증가한다. 음식 섭취로 높아진 체내 혈당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반대로 공복 시에는 작동할 필요가 없어 발현이 감소한다. 이 조절 과정에 문제가 생겨 인슐 린이 필요하지 않을 때 만들어지거나 혹은 필요한 순간에 만들어 지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실제로 인슐린 생성에 문제가 생기면 당뇨병이 발생한다. 따라서 췌장 세포가 혈당량 조절 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서는 항체처럼 아예 필요 없는 단백질의 발현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주요 기능을 담당 하는 인슐린을 적기에 발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유전자 발현 조절은 우리 몸속 세포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게 하는 핵심 작용이다. 따라서 단순히 유전자 서열을 아는 것을 넘어 어느 세포에서 어떤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생명 현상을 훨씬 잘 이해 할 수 있을 거다. 생명의 설계도를 읽는 방법을 터득하는 셈이니 말이다.
- 유전자 발현의 수도꼭지
사람의 유전자 발현은 여러 단계에서 조절되는데, 그중에서도 특정 유전자를 발현할지 말지 가장 확실하게 조절하는 방법은 염색체 변형 chromosome modification 이다(그림 13, 1), 토머스 모건이 밝힌 것처럼 유전자는 염색체에 위치하는데, 이 염색체의 화학적 구조를 바꿔 유전자를 발현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유전자 발현이 시작되려면 이에 필수적인 인자들이 DNA의 유전자 부위에 붙어 발현을 도와주어야 한다. 만약 DNA와 여러 다른 인자가 모여 발현을 시작할 충분한 공간이 제공되지 않으면 이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세포에서 발현하지 않을 유전자 부위의 염색체는 아주 강하게 꼬여 있다. 염색체가 서로 꽁꽁 뭉쳐 있어 유전자 부위에서 그 어떤 일도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냥 유전자라는 기계의 전원을 꺼버리는 셈이다. 이와 반대로 세포에서 발현하고 싶은 유전자 부위의 염색체는 발 현을 도와줄 친구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충분히 널찍한 공간 을 제공한다.
우리 몸의 각 세포가 자기 역할에 필요하지 않아 발현시키지 않는 유전자들, 예를 들어 췌장 세포의 항체나 백혈구의 인슐린은 대부분 이렇게 염색체 변형으로 걸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 른 단계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긴 하지만, 세포가 태어나 사라질 때까지 전혀 쓸 일이 없는 유전자들을 굳이 발현시키고 나서 그 이후에 조절할 이유가 없다. 처음 단계를 조절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인 선택이다. 따라서 대부분 발 생 과정에서 염색체의 구조적인 변화를 통해 필요 없는 유전자를 침묵시키는 방식을 선택한다. 필요 없는 유전자는 아예 염색체 공 간을 막아 버려 발현이 시작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염색체 변형은 유전자 발현을 켜거나 끌 수 있는 가장 확실 한 방법이다. 그러나 특정 세포에서 전혀 필요 없는 유전자가 아 닌 경우에는 이런 방식으로 발현을 조절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유전자 발현을 촉진하기도 하고 때로 억제하기도 해야 하는데, 염색체를 아예 발현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 버리면 그런 가역적인 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다른 유전자 발현 조절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세포에 필요하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 발현이 조절되어야 하는 유전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단백질이 발현되는 양을 조절 한다. 마치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나오게 하는 것과 비슷한데, 물 이 나오게 할지 말지, 물이 얼마나 나오게 할지 조절하는 것처럼 유전자 발현의 수도꼭지가 여러 개 존재하는 것이다(그림 13).
다양한 유전자 발현 조절 방법 중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DNA에서 RNA를 만드는 전사 개시 transcription initiation 를 조절하는 것이다(그림 13, 2), 전사 개시 조절의 원리는 상당히 간단하다. 전사가 시작되는 데 필요한 인자들이 유전자의 첫 부분에 붙어 전사를 촉진하거나 전사에 필요한 인자들이 유전자에 붙지 못하도록 억제자들이 대신 그 자리에 붙어서 전사를 억제하는 것이다(그림 14). 이 과정에서 비암호화 DNA들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사 개시 촉진 혹은 억제자들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이 인자들이 DNA의 아주 적은 부분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정확히 찾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비암호화 DNA의 일부 서열이 유전자를 쉽게 찾 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전사 개시 조절의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세포 외부의 신호에 반응하여 유전자 발현을 촉진하거나 억제한다는 것이다. 세포 바깥에서 전해진 신호는 유전자의 전사 개시를 촉진하는 단백질을 DNA가 있는 세포의 핵 안으로 이동시킨다. 그러면 촉진 인자는 비암호화 DNA 영역의 도움을 받아 유전자의 전사가 시작될 수 있도록 돕는다. 유전 정보와 무관하게 세포가 놓인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 단백질의 발현이 조절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의 정보가 사람의 형태와 기능을 결정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렇게 설계도인 유전자에서 단백질이 만들 어지는 중간 과정을 살펴보면 유전자 발현에서 외부적인 요인도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전자 발현 조절의 많은 과 정이 세포의 독자적인 판단이 아니라 외부 환경을 신호로 받아 진행되기 때문이다.
- 여러 인자의 도움을 받아 전사가 무사히 진행되면, DNA로 부터 RNA가 완성된다. 그러나 RNA가 만들어졌다고 이 유전자 의 발현이 무사히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RNA로부터 단백 질이 합성되는 과정이 남았다.
비암호화 DNA의 정체를 밝히는 연구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모두가 RNA를 DNA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유전자 발현의 중 간 산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유전체 각 부위의 기능에 관한 연 구가 더 많이 진행되며, RNA 중 꽤 많은 것들이 중간 산물이 아닌 그 자체로서 완성된 물질로 기능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암호화 DNA 중 일부는 전사는 되지만, 즉 RNA로는 만 들어지지만, 단백질로 번역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단백질로 만들어지지 않는 RNA를 비암호화 RNA라고 부른다. 비암호화 RNA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긴 RNA고, 나머지 하나는 짧은 RNA다. 두 RNA는 모두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 긴 비암호화 RNA는 앞서 살펴본 전사 개시 단계를 조절하며, 짧은 비암호화 RNA는 발현시키지 않을 RNA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단백 질로 발현되는 RNA 중 지금 세포에서 발현될 필요가 없다고 생 각되는 유전자 RNA를 부숴 단백질이 발현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림 13, 3). 즉, 전사 후 RNA 단계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
DNA가 포함된 염색체의 구조를 바꾸고, RNA로의 전사 개시를 조절하고, 만들어진 RNA를 제거하는 것 외에도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RNA에서 단백질이 합성되는 번역의 개시가 조절되기도 하고(그림 13, 4), 단백질이 완성된 이후 실제로 기능하는 활성화 형태로 바뀌는 과정이 조절되기도 한다(그림 13, 5), 유전자 발현의 조절은 다양한 단계에서 아주 세세한 작업이 필요한 생체 내에서 아주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유전자 발현 조절 과정이 많이 밝혀지며 우리 는 생명의 설계도인 유전자가 우리 몸의 기능과 형태에 영향을 미 치는 방법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밝혀 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어떤 유전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조절되는지 더 정확하게 알게 된다면, 우리는 생명의 설계도를 더 정확하게 해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외부의 병원균에 대응하는 면역 시스템은 우리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대부분 생물도 자신만의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다. 심지어 아주 단순한 생물인 박테리아조차 박테리오 파지처럼 자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면역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자신을 한 번 이상 공격했던 적을 맞춤 상대 하는 후천성 면역 작용도 한다.
우리가 항체라는 단백질로 병원균을 맞춤 상대하는 것과 달리, 박테리아는 RNA로 바이러스를 맞춤 상대한다. 바이러스가 박테리아를 공격할 때 자신의 DNA를 내부로 침입시키니, 같은 뉴클레오타이드로 구성된 RNA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DNA가 박테리아 안으로 들어오면, 박테리아는 들어온 바이러스 DNA 중 일부 서열을 잘라 자기 DNA의 저장공 간으로 옮긴다. 그리고 또 다른 침입자 바이러스의 DNA가 박테리아 안으로 들어오면 그 DNA도 잘라서 이전에 붙여 놓은 침입자 DNA의 옆자리로 옮긴다. 이런 식으로 박테리아는 자신을 공격한 적 있는 모든 바이러스의 유전 정보를 RNA 형태로 차곡차곡 쌓아 둔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정보가 저장된 바이러스가 다시 박테리아를 재차 공격하면, 박테리아는 이전에 저장해 두었던 정보를 바탕으로 침입자의 DNA 서열을 찾아가 그곳을 붙잡는다. 그리고 침입자의 DNA를 제거할 수 있는 효소를 불러와 적을 물 리친다. 한마디로 박테리아는 자신을 침입한 적 있는 바이러스의 DNA를 정확히 찾아가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
- 다른 세포들과 달리 뇌의 신경세포(뉴런)는 사람이 태어날 때 만 들어져 교체도 재생도 되지 않고 평생 쭉 유지된다. 위벽세포의 수명은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지만, 뉴런의 수명은 그 주인인 사 람의 수명과 같다. 즉, 우리 몸의 다른 대부분 세포가 바뀌는 동안 뉴런만은 평생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니 이들이야 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정의하기에 가장 적합한 세포인 셈이다.
뇌가 나를 정의한다고 생각하는 두 번째 이유는 평생 유지되 는 뉴런들이 일생 조금씩 변화하면서 우리의 삶을 기록하기 때문 이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뉴런과 연결되는 시냅스가 조금씩 바 뀌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의 모든 경험과 지식이 뇌 네트워크에 기록된다. 따라서 우리 뇌속 연결은 살아오며 경험한 모든 흔적을 저장하게 된다.
- 몸의 구조나 기능에 문제를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이 며, 이런 돌연변이를 '생식세포 돌연변이'라 부른다. 두 번째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지 않는 돌연변이인데, 보통 세포가 분열할 때 발생한다. 이를 생식세포가 아닌 세포에서 발생하는 돌연변이라는 뜻에서 체세포 돌연변이'라고 부른다.
세포는 분열할 때 유전자가 포함된 DNA를 복제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DNA 역시 함께 반으로 줄 어들 것이고, 그러면 각 세포 별로 유전 정보가 일정하게 유지되 지 못할 것이다. 어떤 세포에는 유전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하나의 세포 안에 일정한 유전 정보가 유지되 도록 세포 분열 시에 매번 DNA가 복제되는데, 보통 이 과정에서 부모에게서 물려받지 않는 체세포 유전자 돌연변이가 나타난다.
- DNA를 복제할 때 무언가 실수가 일어나 원래 DNA와 조금 다른 서열을 가지는 돌연변이 DNA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실수가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생명 시스템은 꽤 정교하게 작동 하니 말이다. 자연적으로는 DNA 복제 때 돌연변이가 100만 분의 1 정도 확률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확률적으로 돌연변이 가 나타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사람 같이 복잡한 다세포 생물은 엄청나게 많은 세포 분열을 반복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은 바로 하나의 세포에서부터 출발해 하나의 개체가 완성되기까지 수도 없이 많은 세포 분열을 반복해야 하는 발생 단계이다. DNA를 자주 복제하면 당연히 돌연변이도 많이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 체세포 돌연변이는 발생 단계에서 나타난다. 인간의 경우 정자와 난자의 수정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세포가 무려 30조 개의 세포로 나뉘어야 하니, 아무리 100만 분의 99만 9,999의 확률로 정교하게 DNA를 복제하는 생명 시스템이더라도 이 과정에서는 꽤 많은 돌연변이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유전자에 나타나는 돌연변이 중 일부는 실제 생명 현상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또 일부 돌연변이는 오히려 개체에 좋은 영향을 준다. 
- 1980년,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의 세 번째 개정판이 발표되고, 드디어 자폐는 조현병의 그늘에서 벗어나 전반적 발달 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s 의 한 종류로 소개된다. 여기서 자폐 는 타인을 향한 관심의 결핍, 의사소통의 심각한 문제, 환경에 대 한 특이한 반응이라는 세 가지 증상을 생후 30개월 이내에 보이는 발달 장애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이 깔끔한 정의가 지금도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 아니다. 이렇게 단순히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환자 사례와 생물학적 근거가 더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아스퍼거 증후군의 등장이었다. 이 질환의 명칭에는 1944년 최초로 환자 사례를 보고한 오스트리아의 한스 아스퍼거Hans Asperger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자신이 연구한 환자 4명이 보이는 공통된 증상을 바탕으로 아스퍼거 증후군을 설명했는데, 이 병의 정의는 비슷한 시기에 레오 캐너가 소개한 자 폐의 기준과 상당히 유사했다. 그러나 캐너의 연구가 이후 학계 에 큰 영향을 준 것과는 다르게 아스퍼거의 연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그가 독일어로 쓴 논문이 영어로 번역되지 않아 널리 퍼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1981년 어느 날 로나 윙Lorna Wing 이라는 정신의학자가 아스퍼거의 발견을 다시 정리해 소개하면서 드디어 그가 진단한 병이 세상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10여 년이 더 흐른 1994년, 아스퍼거 증후군은 마침내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4판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기에 이른다.
-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새로운 병의 등장은 약간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스퍼거는 자신이 분류한 질환이 캐너의 자폐와 구분되는 서로 다른 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병을 세상에 알린 로나 윙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자폐와 아스퍼거 증후군이 연속되는 질환이라고 생각했다. 이 두 병의 차이는 일반적인 자폐와 달리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들은 언어능력이 부족하지 않고 발달 지연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런 아스퍼거 증후군만의 특징들은 또 자폐의 한 종류인 고기능 자폐성 장애High-functioning autism 와 상당히 비슷하다. 따라서 아스퍼거 증후군이 자폐성 장애의 스펙트럼을 벗어나는 독립된 질환인지, 아니면 그저 비교적 가벼운 증상을 유발하는 자폐의 한 종류인지에 관해서는 상당히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어진 신중한 논의 끝에 2013년 발표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최신 개정판(제5판)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은 결국 독립적인 지위를 잃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한 종 류로 흡수되고 만다. 그것도 이 책의 제4판에서 처음으로 독립된 질환으로 인정받은 이후 진행된 바로 다음 개정에서 말이다. 그나 마 위안이 되는 것은 제5판에서 사라진 질환이 아스퍼거 증후군 뿐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폐와 구분되어 오던 비전형 전반적 발달 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 not otherwise specifed도 독립적인 지 위를 잃었다. 심지어 '자폐'라는 이전의 이름도 질환 목록에서 삭제되고, 대신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위의 세 질환이 모두 포함되는 방식으로 진단 기준이 새롭게 정리되었다.
이렇게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에서 드디어 스 펙트럼 장애'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뒤집혀 버린 유전학계의 새로운 흐름이 크게 한몫했다. 인간 유전 체 프로젝트의 완성과 발전한 유전학 기술은 그 당시에 자폐를 정 의하던 주요 증상들의 구체적인 유전적 원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자폐를 일으키는 유전적 조성이 너무나 다양 했으므로 그중 한두 가지를 콕 집어 자폐의 원인으로 특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자폐만의, 혹은 이와 비슷한 성격의 다른 발달 장애들(아스퍼거 증후군, 비전형 전반적 발달 장애 등)만의 고유 한 유전적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 이들을 원인과 발병 기전을 근 거로 서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결론이 지어졌다.
- 정리하자면 광유전학 기법으로 해마 치아이랑의 세포를 자극했고, 그 결과 쥐가 며칠 전에 있었던 조건 형성 과정에서 느낀 공포 기억을 떠올리는 현상이 관찰됐다. 치아이랑 신경세포의 자극이 공포 학습의 결과를 끌어내는 데 충분하다는 사실이 드디어 확인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치아이랑 속 세포를 자극해서 공포 기 억을 상기시킬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세포 안에 공포 기억이 저장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 기억이 저장되는 엔그램의 정체는 바 로 해마 치아이랑에 자리 잡은 신경세포들이었다.
결국 스스무팀의 광유전학 연구는 해마, 소뇌, 편도체 등 거 대한 뇌 부위의 수준에서 연구되던 엔그램이 세포 수준에서도 존 개한다는 걸 밝혀낸 결정적인 연구이다. 괜히 광유전학 최고의 퍼 포먼스로 이 연구를 꼽은 게 아니다.
게다가 일 년 후, 이 연구팀은 비슷한 원리로 쥐에게 가짜 공포 기억을 심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1년 뒤에는 쥐의 나쁜 기억을 이성 쥐와 신나게 놀았던 좋은 기억으로 바꾸는 데도 성공했다. 마치 이 책의 시작 부분에서 소개한 SF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의 기억 이식 회사 '리콜'이 주인공 퀘일의 기억을 조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정말로 기 억 이식 회사가 인간 두뇌의 엔그램을 조작해 우주여행 기억을 주 입하는 게 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커진다. 그리고 한편 으로는 내 기억이 진짜 내가 한 경험이 아니게 되는 세상이 올지 도 모른다는 공포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 언어능력의 발달을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고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지능, 나머지 하나는 다양한 표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신체적인 조건이다. 소리로 소통하는 인간으로서는 두 번째 조건을 위해 발성 기관의 발달이 필수적이다. 사족보행을 하는 동물들은 구조적으로 척추와 얼굴 이 수직을 이룬다. 이렇게 목이 직각으로 꺾여 있으면 소리를 내 는 목의 후두개가 닫히게 된다. 그러나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는 인간은 얼굴과 몸통이 서로 평행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목이 몸 통에서부터 얼굴까지 일자로 곧게 뻗어 있고, 덕분에 후두개가 활 짝 열려 다양한 소리를 쉽게 낼 수 있다. 두 다리로 일어서게 되면서 소리로 소통하는 능력도 한 단계 발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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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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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학에서 1~2도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가장 최근의 빙하기 때 지구의 온도는 지금보다 겨우 섭씨 6도 낮았을 뿐이었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 지구의 평균 온도 는 지금보다 섭씨 4도 높았을 뿐인데, 이때 북극권 북쪽에는 악어도 살았다.
또한 '평균'이 주는 착시 효과에 속아서도 안 된다. 지역별로 나타나는 상당히 큰 기온 차이를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기 때 문이다. 오늘날 전 세계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시대와 비교 해 단지 섭씨 1도 올랐을 뿐이지만, 지역별로 보면 이미 2도 이 상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한 곳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지역들은 세계 인구의 20~40퍼센트가 살고 있는 곳이다.
- 사다리 아래에서 올라오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막는 것은 부도덕할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부자 나라들이 지금까지 너무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 들에게 계속 가난하게 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될 일도 아니다. 대신에 우리는 저소득층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악화시키지 않고 사다리를 올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대기권에 더 이상의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해야 하고, 더군다나 최대한 빨리 제로를 달성해야 한다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역사는 우리 편이 아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적 전환이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를 생각하면 최대한 빨리'라는 말은 굉장히 오랜 시간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에너지 전환을 아예 못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과정이 몇십 년씩이나 걸렸던 것은 사실이다(이 주제에 대해 읽은 책 중 가장 훌륭한 책은 바츨라프 스밀의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s》과 《에너지 신화와 현실Energy Myths and Realities》이 다. 다음의 내용은 이 책에서 빌려 온 내용이다). |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 우리의 주된 에너지원은 우리의 근 육, 쟁기를 끌 수 있는 동물들, 그리고 우리가 태운 식물들이었 다. 18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화석연료는 세계 에너지 소비량 의 절반도 안 되었다. 중국에서는 1960년대가 되어서야 화석연 료가 전체 에너지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시아의 일부 지역과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는 아직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곳들도 있다.  석유가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1860년대부터 석유를 상업적 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반세기가 지난 후 에도 석유는 세계 에너지 공급의 10퍼센트만을 차지했다. 그 수 치가 25퍼센트가 되기까지는 30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천연가스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1900년에 천연가스는 세 계 에너지 사용량의 1퍼센트에 불과했다. 이 수치가 20퍼센트 가 되기까지는 그 후로 70년이 걸렸다. 핵분열은 이것보다 빨라서 0퍼센트에서 10퍼센트까지 가는 데 27년이 걸렸다.
- 다음 그래프는 에너지원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60년이 지나는 동안 얼마나 사용 비중이 증가했는지를 보여준 다. 1840년부터 1900년까지 석탄은 세계 에너지 공급의 5퍼센 트에서 거의 50퍼센트로 성장했다. 하지만 천연가스는 1930년 부터 1990년까지 60년이 지나는 동안 20퍼센트까지밖에 올라 가지 못했다. 이처럼 에너지 전환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연료만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유형의 자동차를 도입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연기관은 1880년대에 최초로 개발 되었다. 그렇다면 도심에 거주하는 모든 가정의 절반이 차를 구 매하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미국에서는 30~40년이 걸렸고, 유럽에서는 70~80년이 걸렸다.
- 과거에 우리가 한 에너지원에서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했던 이유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더 싸거나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무 대신 석탄을 더 많이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는 1킬로그램의 나무보다는 1킬로그램의 석탄에서 더 많은 열과 불빛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 우선 전기에 대한 미국의 그린 프리미엄부터 시작해보자. 사실 이는 우리에게 상당히 좋은 소식이다. 미국은 적절한 그린 프리미엄만 지불하면 온실가스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의 그린 프리미엄은 풍력, 태양광, 원자력을 포함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할 때 우리가 추가적으로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 배출된 온실가스를 포집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된 석탄화력발전소나 가스화력발전소도 여기 에 포함된다(우리의 목표는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원을 사용하 는 것이 아니라 제로를 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생에너지원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제로 탄소 옵션은 모두 고려 대상이다).
- 이 경우 그린 프리미엄은 얼마일까? 미국의 전체 전기 시스 템을 제로 탄소화한다면 평균 전기료는 1킬로와트시(한 시간에 소비하는 에너지의 크기 옮긴이)당 1.3~1.7센트 증가할 것이다. 이 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지불하는 전기료에서 약 15퍼센트 증가한 정도다. 따라서 평균적인 가정의 그린 프리미엄은 한 달 에 약 18달러가 되는데(한 달 전기료가 18달러가 아니라 한 달에 18달러를 더 낸다는 의미— 옮긴이), 대다수 사람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소득의 10퍼센트를 에너지 소비에 쓰는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스러운 비용일 수 있다.
- 미국의 그린 프리미엄이 이토록 낮은 것은 좋은 일이다. 유 럽의 상황도 비슷하다. 유럽의 무역협회가 발표한 연구 보고서 에 따르면, 유럽 전력의 90~95퍼센트 정도를 탈탄소화한다면 평균 전기료가 약 20퍼센트 상승한다.(이 연구에서는 내가 미국의 그린 프리미엄을 계산하는 데 사용한 것과 다른 방식을 사용했다).?
불행히도 미국과 유럽처럼 운이 좋은 나라는 별로 없다. 미 국은 태평양 북서부 지역의 수력, 중서부의 강풍, 그리고 남서부 와 캘리포니아의 1년 내내 내리쬐는 태양광 등 다양한 재생에 너지원을 대규모로 공급받는다. 하지만 어떤 나라들은 강한 햇 빛이 내리쬐지만 바람이 불지 않거나, 바람은 적당하나 햇빛이 일정하지 않다. 물론 햇빛이나 바람 둘 다 적정한 수준이 안 되 는 경우도 있다. 또는 새로운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하지 못하는 나라들도 있다.
- 해가 저문 다음에는 태양광 전기 공급이 끊긴다는 것이 간헐성의 가장 대표적인 예다. 낮에 생산된 여분의 1킬로와트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한 다음, 해가 사라진 밤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가정해보자(당연히 현실에서는 1킬로와트시보다 더 많은 양의 전기가 필요하겠지만, 계산을 간단하게 하기 위해 1킬 로와트시를 사용하겠다). 이 경우 당신은 전기료로 얼마를 더 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두 요인, 즉 배터리의 가격과 교체 수명에 따라 달라진다. 1킬로와트시 배터리를 100달러에 구매했 다고 생각해보자(이는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다. 이 배터리를 구매하려고 대출을 받아야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잠시 무시하 다). 그리고 이 배터리는 수명을 다할 때까지 총 1,000회 재충전 이 가능하다고 가정해보자. 따라서 이 1킬로와트시 배터리의 비용은 1,000회 재충전을 반복하는 동안 100달러, 즉 1킬로와트시당 10센트다. 물론 이 배터리를 사용하려면 전기를 먼저 생산해야 하므로 비용은 증가 한다. 태양광발전은 1킬로와트시당 5센트 정도 비용이 든다. 이 처럼 밤에 사용할 전기는 생산에 5센트, 저장에 10센트, 총 15센트가 들어간다. 다시 말해 우리가 밤에 사용할 전기는 낮에 사용 하는 전기료보다 세 배나 더 비싸다.
- 내가 위에서 언급한 것보다 수명이 다섯 배 긴 배터리를 만 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들은 아직 이런 배터리를 만들지 못했지만, 만약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그린 프리미엄은 10센트에서 2센트로 줄어들어 전기료 인상은 상당히 완 만한 수준에 그칠 것이다. 어쨌든 이 문제는 높은 그린 프리미 엄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 오늘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리고 여기에 혁신이 일어나면 이 그린 프리미엄을 낮출 수 있다고 자신한다.
-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태풍이 지나가고 풍력 터빈을 다시 가동할 때까지 3일만이라도 도쿄에 충분한 전기를 공급하려면 배터리 몇 개가 필요할까? 정답은 1,400만 배터리 이상'이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가 생산한 것보다 많은 수다. 이 정도의 배터리를 구입하려 면 4,000억 달러가 필요하다. 이 금액을 배터리의 수명으로 나눈 연평균 비용은 270억 달러다. 270억 달러는 설치비와 유지비가 포함되지 않은, 배터리만 샀을 때 치러야 할 비용이다.
- 똥은 분해되면서 강력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데, 대부분은 아산화질소이지만 약간의 메탄과 유황, 암모니아도 배출된다. 똥과 관련된 온실가스의 절반은 돼지 똥, 그리고 나머지는 소똥 에서 나온다. 동물들의 똥은 농업에서 장내 발효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큰 온실가스 배출원이다. 그만큼 동물의 똥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물들의 똥, 트림, 그리고 방귀에 어떻 게 대처할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과학자들은 장내 발효 와 관련하여 소의 위 속에서 기생하면서 메탄을 만드는 미생물을 죽이는 백신, 그리고 소 여물에 특별한 사료나 약을 주입하는 것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했다. 이러한 노력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한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소가 배출하는 메탄을 30퍼센트나 줄일 수 있는 3NOP3-nitrooxypropanol라는 화학 합성물이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화학 합성물을 최소 하루에 한 번 소들이 먹어야 하기 때문에 방목하면서 키우는 소들에게는 적합한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래도 새로운 기술과 큰 그린 프리미엄 없이 이런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는 있다. 소가 배출하는 메탄가 스의 양은 그 소가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남미에 사는 소는 북미에 사는 소보다 최대 다섯 배나 많 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아프리카에 사는 소는 이보다 더 많은 양을 배출한다. 북미 지역이나 유럽에서 길러지는 소는 더 효율적으로 사료를 우유와 고기로 전환할 수 있는 개량된 품종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소들은 더 나은 관리를 받고 더 좋은 사료를 먹는다. 이는 메탄가스를 덜 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개량된 품종과 더 나은 사육 방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면 특히 교차교배.cros breding를 통해 아프리카 소를 더 생산적으로 만들고 동시에 더 나은 사료를 더 싸게 공급함으로써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가난한 농부들이 더 많 은 돈을 버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비료도 마찬가지다. 부유한 나라의 농부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면서 비료 사용도 줄 여주는 다양한 기술을 갖고 있다. 이런 기술들이 저렴해지면 가난한 농부들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 나무 심기와 관련해서는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 나무 한 그루는 일생 동안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을까? 나무마다 다르겠지만 40년 동안 4톤을 흡수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 나무는 얼마나 오래 살까? 만약 나무가 타면 그 나무가 저장 한 모든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으로 배출될 것이다.
* 나무를 심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만약 당신이 나무를 심으려고 했던 자리에서 나무가 자연적으로 자랐다면, 결과적으로 탄소포집에는 큰 영향이 없었던 것과 같다.
* 세계의 어느 지역에 나무를 심어야 할까? 전반적으로 눈으로 덮인 지역에서 나무는 냉각 효과보다 온난화 효과를 더 많이 일 으킨다. 나무는 눈과 얼음보다 색깔이 어둡고, 어두운 것은 밝은 것보다 열을 더 많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반면 열대 지역의 숲은 온난화 효과보다 냉각 효과를 더 많이 일으킨다. 나무는 많은 수분을 방출하는데, 이 수분은 구름이 되어 햇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열대 지역과 극지방 사이의 지역인 중간 위도 지역에서는 냉각 효과와 온난화 효과가 서로 상쇄된다. 
* 나무를 심은 자리에 다른 것들이 이미 자라고 있었는가? 만 약 당신이 콩 농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숲을 가꾸었다고 생각해 보자. 콩 농장을 없앴으니 당신은 콩 공급량을 줄인 셈이고, 자연 스레 콩 가격은 올라간다. 그러면 누군가가 다른 곳에서 나무를 베고 콩 농장을 만들 것이다. 당신은 나무를 심어 좋은 일을 했 지만, 누군가는 당신의 좋은 일을 상쇄할 것이다.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해 계산하면, 열대 지역의 약 50에이커 의 땅에 나무를 심어야 평균적인 미국인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다. 여기에 미국 인구수를 곱하면 160억 에이커, 즉 6,500만 제곱킬로미터 이상의 땅이 필 요하다. 세계 대륙의 약 절반이 필요한 셈이다. 그리고 이 나무 들은 영원히 보존되어야 한다. 미국의 배출량만 고려했을 때 이 정도다. 다른 나라의 배출량은 아직 계산하기 전이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무들은 미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 로 많은 혜택을 준다. 우리는 나무를 더 많이 심어야 한다. 하지 만 그렇다고 기후재앙을 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 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나무는 한번 자란 토양에서만 다시 자라기 때문에, 나무 심기를 하면 삼림 벌채로 인한 피해를 복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화석연료를 태워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정도로 많은 나무를 심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없다. 나무와 관련하여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그저 그만 베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지금보다 70퍼센트 더 많은 음식을 생산 하는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서서히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 해서는 식물에 새로운 비료를 주고, 가축을 기르는 방식을 바꾸 고, 음식 낭비를 줄이는 등 새로운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부유한 나라의 국민들은 고기를 덜 먹는 등 식습관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치즈버거는 우리 집안의 전통이지만 어쩔 수 없다.
- 제조과정을 제로탄소화하는 과정은 이렇게 요약된다
* 가능한 모든 과정을 전기화하라. 하지만 많은 혁신이 필요할 것이다.
* 이미 탈탄소화한 전력망으로부터 전기를 얻어라. 이 역시 많은 혁신이 필요하다.
*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 탄소포집기술을 활용하라. 이것도 마찬가지다.
* 더 효율적으로 자재들을 사용하라. 마찬가지다.
- 컨테이너선이나 비행기처럼 자동차보다 더 무거운 것들을 움직일 때, 운송 수단이 크고 재충전 없이 더 멀리 운전할수록, 그것을 움직이는 동력원으로 전기는 괜찮은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는 말은 하나의 법칙이 된다. 배터리 기술에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배터리 는 절대 비행기나 배를 매우 짧은 거리 이상 움직일 수 있도록 가벼워지거나 강해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이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해보자. 시중에서 판 매되는 최고의 전기 비행기는 탑승객 두 명을 태우고, 최대 시속 210마일(약 340킬로미터)로 재충전 없이 세 시간 동안 비행할 수 있다. 반면 중형급 비행기인 보잉787은 재충전 없이 296명 의 탑승객을 태우고 시속 650마일(약 1,050킬로미터)로 20시간 가까이 비행할 수 있다. 5 이처럼 화석연료 비행기는 현재 최고 성능의 전기 비행기보다 세 배 더 빠르게, 여섯 배나 더 오래 날수 있으며, 거의 150배에 가까운 탑승객을 태울 수 있다. | 배터리 성능은 개선되고 있지만 이 격차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조금의 행운이 따른다면 배터리는 에너지밀도가 지금보다 세 배로 증가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휘발유나 제트연료에 비하면 12분의 1 수준이다. 우리에게 최선은 제트 연료를 전자연료나 차세대 바이오연료로 대체하는 것인데, 아래 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엄청난 그린 프리미엄을 감수해야 한다.
- 컨테이너선도 마찬가지다. 최고 성능의 기존 휘발유 컨테이너선은 현재 운영되는 두 대의 전기 컨테이너선보다 200배나 더 많은 화물을 운반할 수 있으며 400배나 더 긴 거리를 항해할 수 있다. 대양을 건너는 데 컨테이너선이 유리한 이유다.
컨테이너선이 세계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감안하면, 액 체연료 이외의 다른 연료로 컨테이너선을 운항하는 것은 재정 적으로 실행 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대체 연료는 우리에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항해는 전체 배출량의 3퍼센트를 차지하므로 청정연료를 사용하면 의미 있는 수준의 배출량 감소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를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연료(이런 연료를 벙커유bunker fuel라고 부른다)는 휘발유 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로 만들기 때문에 굉장히 저렴하다. 이처럼 벙커유가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선박의 그린 프리미엄은 굉장히 높다.
- 가격 조정 외에도 우리의 난방 시스템을 탈탄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 할 수 있는 만큼 전기화하라. 가스식 보일러와 온수기를 모두 전기식 열펌프로 교체하라. 이런 교체가 이뤄지려면, 몇몇 지역에 서는 정부 차원에서 정책을 변경해 이런 변화를 권장해야 한다.
* 전력망을 탈탄소화하라. 가능한 한 많은 곳에 청정에너지 기술 을 도입 및 적용하고 전력의 생산, 저장, 전송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 전기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라. 모순처럼 들릴 수 있다. 왜냐하면 앞에서 배출량 저감보다는 효율성만을 따진 정부 정책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둘 다 필요하다.
-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면 세계는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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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공부가 쉬운 게 하나도 없지만, 그 중에서도 물리과목은 대부분의 학생이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과목 1순위로 꼽을 수 있다. 물론 수학과목도 만만치 않지만, 물리는 특히나 내용도 이해해야 하면서, 공식을 통해 숫자로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물리는 세상 만물을 이해하는 원리이자 법칙이다.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가다보면 수학과 물리는 서로 구분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성적 사고를 하는 데 있어 물리만큼 도움이 되는 학문도 없다. 

이 책은 베이징시 제8중학 영재교육센터 물리 연구반 책임자인 천아이펑이 지은 책이다. 같은 제목의 상편에서는 (1) 운동, (2) 힘과 뉴턴의 운동법칙, (3) 일, 에너지와 운동량에 대해 다루었다. 이번 하편에서는 (1) 전기와 자기, (2) 소리와 빛, (3) 현대물리를 다루고 있다.
상편이 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이라면, 하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하편의 내용은 비교적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까닭에 많은 학생들이 어려워하면서 포기하게 되는 내용들이다.

이 책은 누구나 생활하면서 한 번쯤은 궁금해할 사항들에 대해 답을 들려주면서 물리의 기본개념과 법칙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중간중간에 있는 지식카드에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해 두었다. 나중에는 지식카드만 순서대로 읽어도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이해를 돕는 책이기 때문에 공식이 등장하는 빈도가 비교적 적은 편이고, 공식을 활용한 문제풀이는 제시하지 않는다. 내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다면, 문제풀이는 문제집을 통해 언제든지 연습을 할 수 있다.

입시위주, 문제풀이 위주의 과학교육으로는 앞으로 4차산업혁명 시대의 과학인재를 만들어낼 수 없다. 어쩌면 제2의 스티븐 호킹, 제2의 아인슈타인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는 청소년들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과학교육 때문에 그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이 물리학에 대해 재미있게 접하고, 흥미를 갖게되길 바란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을 통해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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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과학 2022. 3. 27. 18:32

- 사회집단에 소속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 리 자신이 혼자라고 느끼거나 아웃사이더라고 느낄 때 고독해지고 극심한 불안을 느끼며,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이 된다. 구조될 가망이 전혀 없는 무인도에서 고립된 상태로 잘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코틀랜드 어부인 알렉산더 셀커크(로빈슨 크루 소'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는 원래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하던 사람이 었지만 그도 현재 '로빈슨 크루소 섬'이라 불리는 곳에서 혼자 4년을 보내고 나서 구조되었을 때 굉장히 기뻐했다. 고독은 우리에게 해롭 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집단에 소 속되어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어 딘가에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 마음이 편해진다. 사람들이 자신을 원한다는 것을 확인할 때 우리는 삶에 더 큰 만족을 느낀다.  시카고 대학의 혁신적인 신경과학자 존 카치오포John Cacioppo는 동 료 교수 게리 번트슨 Gary Berntson, 진 디세티 Jean Decety와 힘을 합쳐 '사 회신경과학social neuroscience'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다. 카치오포는 특히 고독에 관심을 가졌다. 나중에 그가 진행한 연구의 상당 부분은 고독의 신경생물학적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런 노력을 하는 동안 존은 고독이란 진화의 과정에서 발달한 감정으로 서 뭔가 잘못됐다고 알려주는 신호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고독은 우리의 삶에 즉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신호음이다. 우리 자신 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인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생리 현상을 교란하고 면역체계와 정신 건강을 해친다. 고독이라는 신호를 그 냥 지나칠 경우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서 조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근거는 존 카치오포가 윌리엄 패트릭 william Patrick과 함께 저술한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사회신경과학 으로 본 인간 본성과 사회의 탄생 Lonelines: Human Nature and the Need for Social Connection》에 수록되어 있다.
- 1990년대 초반에 나는 아주 사소하지만 신경 쓰이는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영장류는 왜 서로의 털을 손질하는 일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쓸까? 그때까지 통용되던 전통적인 견해는 털 관리는 순전히 위생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서로 털을 손질해주면 털에 달라붙은 풀이나 씨앗 따위가 제거되고 피부를 깨끗하고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털 손질은 실제로 그런 기능을 하지만, 오랫동안 야생 상태의 원숭이들을 관찰한 나는 원숭이들이 단순히 위생에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털 손질을 받는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털 손질은 사교적인 활동이자 하나의 쾌락이었다.
- 물론 털 손질은 청결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처음에는 그런 이유로 진화했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털 손질은 영장류(말 계통의 동물이나 일부 조류처럼 친사회적인 동물도 마찬가지) 의 진화 과정에서 사교적 성격이 명백한 기능을 보조하기 위해 선택 된 것처럼 보였다. 가장 사교적인 몇몇 원숭이들은 하루 활동 시간의 5분의 1을 털 손질을 해주는 데 쓰기도 했는데, 이것이 전부 위생상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았다. 원숭이와 몸 크기가 비슷한 다른 종들은 자신들이 가진 시간의 1~2퍼센트만을 서로의 털 관리에 쓴다는 점을 보면 더욱 그랬다. 문제는 2가지 가설을 어떻 게 시험하느냐였다. 내가 생각해낸 검증 방법 중 하나는 여러 종의 동물들이 털 손질에 쓰는 시간이 그 동물들의 사회집단의 크기와 상관관계가 강한지(만 약 그렇다면 털 손질에 사회적 기능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아니면 그 동물들의 몸 크기와 상관관계가 강한지(몸 크기는 깨끗이 손질할 털 의 양을 측정하는 지표다)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분석을 해보니 동물 들의 털 손질 시간은 집단의 크기와 상관관계가 있었고 몸 크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의 무죄를 입증한 느낌이었다.
- 사회적 집단과 뇌 크기의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은 오해가 있었다. 그래서 설명을 이어가기 전에 몇 가지만 분명히 하고 싶다. 때때로 사회적 뇌 가설'은 영장류의 뇌가 크게 진 화한 이유에 관한 생태학적 가설의 대안으로 여겨진다. 생태학적 가 설은 한마디로 식량을 잘 찾아내기 위해서'라는 가설이다. 사실은 사회적 뇌 가설이 곧 생태학적 가설이다. 대안 가설은 사교 활동이냐 식량 찾기냐가 아니라 동물들이 개별 개체의 시행착오 학습을 통해 생태학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느냐(그리고 사회집단은 순전히 동물들이 먹이가 풍부한 곳에 모여들기 때문에 형성되느냐), 아니면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교 활동과 무리 생활을 하느냐에 주목한다.
- 한군데에 정착해서 안정적인 집단을 이뤄 생활할 때의 문제점은 다른 개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귀찮은 일들을 잘 처리하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외교 능력과 사교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무리 생활의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 스트레스는 우리를 포함한 모든 포유동물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우리의 면역체계는 심각하게 손상되고 여성들의 생리 내분비시스템이 망가져서 생식 능력까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일을 막아내지 못하면 결국 개체들이 그 집단을 떠나 스트레스가 덜한 작은 집단으로 옮겨갈 것이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모두 혼자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해결책의 핵심은 유대감이 있는 관계와 이런 관계를 뒷받침하는 복잡한 인지능력이다. 그래서 영장류가 사회집단을 유지하는 쪽으 로 진화한 것이다. 이것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는 유대감이 있는 사회집단에서는 친구들이 항상 당신을 지켜봐주고 당신이 잠시 멀 어지더라도 당신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낸 바로 는 영장류와 자기 짝에게 충실한 영양들은 항상 가장 친한 친구들의 소재를 확인하는 반면, 무리 단위로 짝짓기를 하는 종들(내가 연구했 던 야생 염소 같은 동물)은 그런 행동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 회적 뇌 가설은 다음과 같이 2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 생존의 문제는 집단생활을 통해 해결한다.
2단계: 집단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그 생활의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뇌를 가진다.
두 가설의 또 하나의 차이점은 생존의 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에 있다. 큰 뇌에 관한 1단계 생태학적 설명을 선호하는 사람들 은 오직 먹이 찾기라는 관점에서만 생각한다. 사회적 뇌 가설을 선호 하는 사람들은 포식자로부터의 보호를 강조한다. 사실 이것은 영장 류가 특정 서식지에서 번창하는 능력을 제약하는 가장 큰 요인이 무 엇인가의 문제다. 현실에서는 먹이가 문제였던 적은 별로 없다. 적어도 초식동물에게는 그랬다. 언제나 포식자에게 먹히는 것이 훨씬 심각한 문제였고, 영장류의 여러 종들은 적당한 장소가 있어도 포식자 때문에 그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내 생각에 포식자의 위험을 강조하 는 시각의 문제점 중 하나는, 여러 연구자들이 유대가 형성된 사회 (인간 사회도 여기에 포함된다) 내부의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 열매를 먹을지 저 뿌리를 먹을지 결정하는 일은 인지적 측면에서 누워서 떡 먹기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의 사회적 세계는 현재로서는 우주 에서 가장 복잡한 것이다. 우리의 사회적 세계는 너무나 역동적이기 때문에, 그 변화를 따라가고 대응하는 일은 정보 처리라는 측면에서 는 정말 힘든 일이다.
- 곽세열은 한 마을에 거주하는 약 600명의 성인들을 조사해서 누가 누구에게 감정적 지원을 얻는지를 알아내 사회적 네트워크를 그렸다. 연구진은 이 네트워크를 바탕으 로 사람들이 누구의 이름을 많이 언급했는지(인기의 직접적인 척도) 를 파악한 후, 이름이 많이 언급된 사람들의 뇌를 촬영했다. 이 연구 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마을 사람 전부에게 어떤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연구진은 사람들이 친구라 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우리의 연구를 포함한 대다수 연구에서는 이것 을 묻는다)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친구의 수(그 사람과 자신이 친구라고 답한 사람들의 수)를 알아낼 수 있었다. 
- 카나이는 자신이 고독한 사람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자신은 고독하지 않다고 답했던 사람들과 뇌 구조가 다른지를 알아본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고독한 사람들은 상측두구 superior temporal suleus, STS(양쪽 귀 옆에 위치한 측두엽의 한 부분)에 회백질이 적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상측두 구는 마음 이론 연구와 정신화 mentalising에 관한 모든 뇌 영상 촬영 연 구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영역이다. 측두엽은 기억(예를 들면 단어 의 뜻)의 저장에도 깊이 관여하기 때문에, 정신화에서 측두엽이 수행하는 역할은 이런 종류의 연구에 사용되는 짧은 일화 속의 다양한 사건 기억들을 서로 비교하게 해주는 것으로 짐작된다. 또 충분히 예상가능한 결과긴 하지만, 카나이의 연구는 고독이 사회적 단서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회적 네트워크의 규모가 작은 것, 높은 불안, 낮은 공감 능력과 같은 심리 요인들 역 시 고독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측두엽의 부피와 고독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요인은 사교적 인지능력밖에 없었다. 
- 여러 편의 연구가 편도체에 주목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편도체는 대뇌변연계의 한 부분으로서 공포를 비롯한 갖가지 감정적 단서를 처리하는 일에 관여하며 우리로 하여금 위험한 상황을 피 하도록 해준다. 편도체는 뇌에서 신피질 바깥의 오래된 영역에 위치 하지만 뇌 바로 앞의 안와전두피질과 직접 연결된다. 안와전두피질은 감정적 단서를 해석하는 일에 관여하는데, 편도체의 공포 반응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될 경우 그 반응을 억제한다고 알려져 있다. 모 든 인간관계, 특히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는 잠재적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최초의 본능적 반응 은 항상 달아나는 것이다. 실제로 달아날 필요가 없을 때는 안와전두 피질이 이러한 반응을 약화시킬 수 있다. 구애나 짝짓기를 하고 있을 때는 이런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뇌의 각기 다른 영역들이 상호작용으로 미세한 균형을 만들어내는 덕분에 우리가 복잡한 상황에서도 효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는 나의 동료인 옥스퍼드 대학의 메리앤 누난 MaryAnne Noonan 이 한 연구에서 발견된다. 메리앤은 뇌의 백질을 관 찰한 결과 백질의 부피 역시 친구 집단의 크기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뇌의 표면은 백질과 회백질이라는 완전히 달라 보이는 두 종류의 세포로 구성된다. 회백질은 미엘린으로 덮이지 않은 무수신 경세포들의 집합으로서 정보 처리와 연산 같은 딱딱한 작업을 도맡 아 처리한다. 즉 회백질은 뇌의 컴퓨터 엔진이다. 백질은 뇌의 여러 영역에 분포하는 서로 다른 회백질들을 연결하는 배선과도 같다. 백 질이 흰색인 이유는 전선의 플라스틱 절연 물질과 같은 역할을 하는 미엘린nvelin 이라는 지방조직으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미엘린 조직은 서로 연관 있는 2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미엘린은 신경의 발 화가 다른 신경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다른 신경으로 넘어가면 메 시지가 잘못된 곳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둘째, 미엘린은 신경이 전자 신 호를 전달하는 속도를 높임으로써 뇌의 여러 부분들이 빠르게 소통하도록 해준다. 메리앤은 백질의 부피가 사회적 네트워크의 크기와 높은 상관관계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우리가 맨 처음에 사회적 뇌를 분석했을 때처럼 신피질(회백질과 백질을 모두 포함)을 하나의 완결된 단위로 취급하는 방법이 효과적 일 것이다. 예컨대 '짐이 말썽을 피웠는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일은 뇌의 한쪽 구석에서 수행되는 작업이 아니라 뇌의 여러 영역에서 메시지들이 이쪽저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 뇌의 크기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친구의 수를 결정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가진 친구의 수가 뇌의 크기를 결정 하는지는 아직 모른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후자의 가설이 옳다는 근거들은 있다. 이제 우리는 뇌가 상상 이상으로 환경에 유연하게 반 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중에 우리는 사회적 뇌 효과를 중재하 는 사교 기술이 매우 복잡해서 인간이 이 기술을 습득하는 데 20년 이상 걸리고 그 과정이 뇌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살펴볼 것이다. 전전두피질을 비롯한 인간의 사회적 뇌 영역은 많이 사용할 수록 커질 가능성도 있다. 20대 중반이 지나면 이 영역의 성장도 멈 추겠지만, 어쨌든 사람이 성인이 될 무렵이면 그 사람의 뇌는 상당 부분 발달이 끝나는 것 같다. 20대 중반 이후 뇌에 생기는 변화들은 모서리를 다듬는 정도에 불과하다.
- 1980년대에 배리는 당시에 새롭게 떠오르던 게놈 각인이라는 연구 주제에 관심 을 가지게 됐다. 아주 단순화해서 말하면 게놈 각인이란 우리가 부모 에게서 물려받는 유전자들이 마치 자신이 어느 쪽에서 왔는지를 알 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서 결과적으로 한쪽 유전자가 적극적으로 억 제되어 우리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현상이다. 이 유전자들 은 대부분 뇌의 발달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배리는 게놈 각인 의 2가지 측면에 주목했다. 첫째, 우리가 성장하는 동안 아버지의 신 피질 유전자는 발현이 억제되기 때문에 우리의 신피질은 어머니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둘째, 우리의 대뇌변연계 유전자는 아버지 에게서 물려받는다(어머니 쪽 대뇌변연계 유전자는 억제된다). 다소 이상한 이 과정은 남성과 여성의 재생산 전략을 생각하면 일면 타당해 보인다. 대다수 포유류의 암컷, 특히 영장류의 암컷들은 재생산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사회 환경에 잘 적응해야 한다. 대다수 포유류 수컷에게 재생산의 성공은 주로 다른 수컷들과 경쟁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달려 있다. 수컷에게는 다른 수컷들과 경쟁에서 느끼는 극단적인 분노야말로 승리하기 위한 동력이 된다. 제가 양보할 게요! 많이 드세요!'라고 예의 바르게 말하는 포유류 수컷이 자손을 많이 남기기는 힘들다. 반대로 적어도 영장류에서는 암컷이 재생산 에 성공하는 열쇠는 사교성이다. 친구가 많은 암컷은 수컷이 난동을 부린다든가 하는 사태가 생겨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자손을 많이 낳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확률도 높아지며, 자기 자신도 오래 산다(참, 야생마들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사실이 발견됐다). 따라서 우정을 쌓기 위해 필요한 사교술은 자연선택된 형질일 확률이 높고, 뇌에서 사교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우선순위가 높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 영역 들은 신피질의 전두엽에 많이 분포해 있다.
- 성별의 차이에 관한 난처한 질문은 13장에서 다시 다룰 예정이다. 우선 몇 개의 메시지만 전달하고 넘어가자. 첫째, 사교적 진화, 즉 뇌의 진화는 주로 여성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짐작된다. 둘째, 이러한 사실은 사교성의 기반이 되는 신경 시스템의 조직에 결정적 인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영향은 성별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셋째, 우리의 신경생물학 기계가 조직된 방식의 차이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미묘하지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 다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재판의 배심원, 대부분의 단체 운동경기, 정부의 내각, 그리스도의 제자들, 군대의 가장 작은 단위(일반 적으로 '반'이라고 한다), 내일 죽는다면 당신이 진짜로 슬퍼할 사람들의 수 답은 모두 비슷한 수라는 것이다. 이들은 각각 12명, 11~15명, 12~15명, 12명, 11~16명, 11~15명이다. 인간의 심리에서는 12라는 숫자가 특별한 작용을 하는 것만 같다.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서 해야 하는 곳이면 어디나 12라는 숫자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내가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 인간 집단의 자연스러 운 규모에 관한 증거를 수집하던 때였다. 나는 미국 사회심리학자 크 리스천 바이스Christian Buys 와 케네스 라슨Kenneth Larsen 이 쓴 논문을 우 연히 발견했다. 바이스와 라슨은 12명 전후로 형성된 집단을 연민 집단 sympathy group 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지인들 가운데 죽는다면 진짜로 슬플 것 같은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어달라고 요청 해서 그 사람들의 수에 관한 자료를 수집한 최초의 과학자들이었다.
- 그들은 우리가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수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래서 긴밀한 심리적 상호작용이 요구되는 집단의 크기에도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 연민 집단의 규모를 알아보려고 했던 첫 시도는 1990년대 초반에 대학원생이었던 맷 스푸어스가 수행한 조사였다(그는 나중에 생물학 교사가 됐다). 그 조사는 연민 집단의 존재를 확인했다. 또한 그 조사 는 연민 집단 내에 5명 정도로 구성되는 더 작은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는 그 작은 집단을 지지 모둠support clique이라고 불렀다. 그 집단은 1명이 지지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마다 아낌없이 지지와 도움을 주는 사람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네트워크 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구조가 있는 것이 분명했고, 그 구 조에는 놀라울 정도의 일관성이 있었다. 마치 모든 사람이 똑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150명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사실은 여러 층으로 이뤄져 있음을 알려주는 죄초의 단서였다.
- 나중에 내가 페드레이그 매카론, 수산네 슐츠와 함께 영장류에 속 한 종들 전체의 평균 무리 크기를 살펴봤더니 정확히 동일한 프랙털 패턴이 발견됐다. 무리 크기의 최대치는 1.5마리(혼자 사는 것에 가까운 동물), 5마리(주로 한 마리와 짝짓기를 하는 동물의 경우 직계가족), 15마리 (주로 무리 내에서 짝짓기를 하는 종들의 경우, 무리는 수컷 한 마리와 암컷 여러 마리와 자손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50마리 (큰 사회집단을 이루고 사는 종들로, 무리마다 어른인 수컷과 암컷 몇 마리가 포함된다)였다. 이번 에도 비율척도는 똑같이 3이었다. 마법의 숫자 3. 그러니까 동물 종 들은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무리의 규모를 키울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작은 무리들을 합쳐서 더 큰 무리를 만든다. 그렇게 해야 무리들이 다시 쪼개지고 핵분열을 일으키는 사태가 방지되고 하위 집단들이 떨어져나가기보다 뭉쳐 있게 된다. 아마도 작은 무리들을 합쳐 큰 무리를 만들 때 특정한 규모의 무리들만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 같다.
- 15명으로 이뤄진 층은 연민 집단의 역할을 한다. 5 -층은 지지 모둠의 역할을 한다. 지지 모둠이란 감정적, 물리적, 금전적인 도움과 조언을 아낌 없이 제공하는 작은 집단을 뜻한다. 내가 종종 사용하는 표현으로는 기대서 울 수 있는 친구들이다. 15-층에는 일상적인 사교 생활의 상대가 되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우리가 저녁 식사에 초대하거나 술집 또는 영화관에 같이 가곤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50-층에 속한 사람들을 파티 친구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주말 바비큐, 생일 파티, 기념일 파티에 이들을 초대한다. 150-층은 결혼식 하객들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 지금까지 3개 장에서 알게 된 사실들을 정리해보자. 첫째, 유의미 한 친구들의 수는 놀랄 만큼 적다. 또 유의미한 친구의 수는 전반적 으로 개인차가 별로 없고 문화에 따른 차이도 크지 않다. 둘째, 우리 의 사회적 세계는 연속적인 원(또는 층)으로 이뤄진다. 이 원들은 특 정한 규모로 형성되며 각각의 원(또는 층)은 특정한 접촉 빈도, 감정 적 친밀도, 도움을 주려는 의지와 관련이 있다. 유의미한 친구를 나타내는 원들의 바깥쪽에는 더 약한 관계를 나타내는 원 3개가 존재한다. 이곳으로 넘어오면 이타적으로 행동하려는 의지에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가 생긴다. 우리는 이 바깥쪽 원(층)에 속한 사람들을 도 와주려는 의지가 별로 없다. 설령 우리가 그들을 도와준다 해도 철저 한 호혜주의를 바탕으로 행동한다. 지금은 내가 당신을 도와주지만, 나중에 당신이 호의를 되돌려주기를 기대할게요' 우리가 150명의 친 구들을 도와줄 때는 반드시 보답을 기대하지는 않는다(하지만 보답을 받으면 좋은 일이다). 아주 가까운 친구들을 도와줄 때는 아예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셋째, 혈연관계가 네트워크 구조를 결정한다. 전통적 인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만이 아니라 가족이 제일 중요 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서구 선진국들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통념과 달리 지금도 우리에게는 가족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 여러 편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우리는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인 18시간의 20퍼센트 정도를 사회적 상호작용에 사용한다. 일주일 동안 상호작용에 쓰는 시간의 평균은 하루 3.5시간 정도, 그런데 이것 은 파티에 가서 노는 시간이 아니다!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사교적 인 목적에서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거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하루 3.5시간이라고 하면 많아 보이지만 이 시간을 당신의 친구와 가족 150명에게 나눠준다고 가정하면 그들 각자에게 하루 1분 45초밖에 안 된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세요?"라는 인사말을 하면 끝이다. 답변을 기다릴 시간은 없다. 4장에서 설명했듯이 우리의 실제 생활 은 이렇지 않다. 사회적 상호작용 시간의 40퍼센트 정도는 우리의 네 트워크에서 가장 안쪽 원, 즉 '지지 모둠의 5명에게 할애되며, 20퍼 센트는 바로 다음 원인 '연민 집단의 15명 중 앞의 5명과 중복되지 않 는 10명에게 할애된다. 평균을 내보면 우리는 날마다 지지 모둠에 속 한 5명에게 17.5분씩을 내주고, 연민 집단의 나머지 10명에게 4.5분 을 내준다. 물론 우리는 이 사람들 모두를 날마다 만나지는 않는다.
- 사회적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에는 '30분 법칙 Thirty-Minute Rule'이라는 암묵적인 법칙이 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사는 곳에서 30분 이내 거리에 산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도보로 30분인지, 자 전거나 차로 30분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그곳에 도착하 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에 관한 심리적 거리감이 더 중요하다. 이 법칙이 진실이라면 당신은 30분 넘게 걸리는 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만회하기 위해 그들에게는 전화나 문자 메시지로 더 자주 연락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더 많이 건다. 조항현Hang-Hyun Jo이 알토 대학에서 휴대전화 데이터베이스의 전화 발신 패턴을 분석한 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당신의 짐작과 반대로 사람들은 자주 보는 사람에게 전화도 더 자주 걸었다. 캐나다의 이스트요크 공동체에서 연구를 수행한 배리 웰먼과 다이앤 목Diane Mok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가족과 친구를 직접 만나는 빈도에 거리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살펴봤다. 그 결과 두 사람이 8킬로미 터 이상 떨어져 살면 대면 접촉이 확실히 줄었고, 약 80킬로미터(차 로 1시간 정도 거리) 떨어져 살면 만남의 빈도는 더 줄어들었으며, 거 리가 160킬로미터(하루 동안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최대치. 적어도 캐나다에서는 이 정도가 최대치다!)에 이르면 빈도는 또다시 감소했다. 전화 통화도 패턴은 비슷했지만 통화 횟수가 감소하는 속도가 더 느렸고, 약 160킬로미터 지점에서 급격히 감소했다. 
- 남녀 사이에 놀라운 차이가 하나 있었다. 여학생들의 경우 우정을 유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활동은 수다떨기였다. 직접 만나는 전화로 수다를 떨든 효과는 비슷했다. 반면 남학생들의 경우 수다 떨기는 우정에 영향을 못 미쳤다. 정말로 아무런 영 향이 없었다. 남학생들의 경우 우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 활동은 '멋진 일을 같이 하려는 노력을 이전보다 많이 하는 것이었다. 술집 에 가거나, 축구를 하거나, 등산을 하거나, 친구끼리 자주 하던 활동 이면 뭐든지 좋았다. 물론 멋진 일을 같이 한다'는 것은 여학생의 우 정에도 긍정적이었지만, 여학생의 경우 그 효과는 남학생의 경우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여학생들이 친구와 뭔가를 같이 하면 우정을 원래 수준으로 유지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수다 떨기만큼 우정의 질을 높여주지는 못했다. 여학생들이 멋진 일을 같이 할 때의 효과는 남학생들의 효과보다 훨씬 적었다. 남성(상대가 남성인 경우와 여성인 경우 모두)의 우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말이 아닌 행동이었다. 그들은 농담을 던지고, 서로를 놀리고, 가끔씩 자랑도 한다. 하지 만 여학생들처럼 내밀한 대화를 주고받지는 않는다. 남학생에게 내 밀한 대화는 미지의 영역인 모양이다. 나는 햇살 좋은 야외 카페에 마주 앉아 있는 2명의 그리스 노인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들은 때 때로 커피나 파스티스(아니스 열매 향이 나는 식전주의 일종-옮긴이)를 한 모금씩 마시지만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유대감을 쌓는다.
-  이것은 남녀가 우정을 유지하거나 수리하는(자동차 수리의 개념을 빌려왔다) 방식의 차이를 반영한다. 한쪽은 수다라는 방식을 사용하 고, 다른 한쪽은 행동이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것은 남학생의 전화 통화가 거의 항상 여학생의 통화보다 짧게 끝나는 이유 중 하나다. 잘 알려진 대로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종일 같이 있었던 친구와 통화 를 하는 데 꼬박 1시간을 사용한다. 남학생들의 경우 지난달부터 친 구의 얼굴을 못 봤다고 해도 그 친구와 5분쯤 통화를 하면 운이 좋 은 것이다. 하지만 그 통화에서 남학생이 하려는 말은 고작 이런 것 이다. 7시에 만나서 놀자” 우리의 고등학생 표본에서 남학생의 통화 는 낮이든 밤이든 관계없이 평균 100초 정도였다. 여학생의 아침 통 화는 평균 150초 정도였고, 낮 동안 통화 시간이 점점 늘어나서 밤과 새벽 시간에는 평균 500초에 이르렀다. 남학생의 경우 밤이나 새벽에 통화를 하더라도 평균 100초 정도로 동일했다.
우리가 성인 휴대전화 가입자 3300만 명의 통화 19억 통이 담긴 알토 휴대전화 데이터베이스에서 남녀의 통화 시간을 비교해봤더 니, 모든 연령대에서 남성의 평균 통화 시간이 여성보다 확연히 짧았 다. 비록 그 차이가 고등학생들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았지만, 다른 연 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즈비그뉴 스모레다 zbigniew Smoreda 와 크리스티앙 리코프Christian Licoppe가 프랑스 가정 317곳의 통화 기 록을 분석한 결과, 전체 통화 시간의 3분의 2는 여성이 차지하고 있 었다(시간제로 일하는 여성이든, 전일제로 일하는 여성이든, 전업주부이든 차이는 없었다). 통화의 지속 시간을 배제하고 통화 건수로만 보면, 전 업주부 여성은 남성보다 전화를 2배 내지 3배 많이 걸었고 특히 가 족 구성원에게 전화를 자주 걸었다. 이러한 결과는 여성의 연령이나 자녀 유무와 무관했다.
- 마음 이론은 흥미진진한 소설과 시를 탄생시킨다.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계와 뚜렷이 구별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상상 할 수 있다. 과학이라는 학문이 가능한 것도 마음 이론 덕분이다. 마 음 이론은 다른 세계를 경험하지 않고도 그 세계를 상상하도록 해주 기 때문이다. 대다수 동물들의 문제는 그들이 '실제 경험하는 삶'에 너무 밀착해서 분주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몇 걸음 물러나 세상이 왜 이런 모습이어야 할까, 다르게 조직된 세상은 없을까를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생리학과 유전학의 언어,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의 언어, 현상 아래 숨겨진 물리학의 언어로 설명하려면 충분히 뒤로 물러나 상상을 해야 한다.
- 신체 접촉이 친밀감을 준다는 사실이 경영에 활용된 적도 있었다. 1980년대에 영국의 회사들이 볼링핀처럼 쓰러지고 있었을 때, 관리 자들이 정리해고라는 나쁜 소식을 직원들에게 전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그때 그들은 해고를 당하는 직원과 절대로 마주 앉지 말라 는 충고를 받았다. 항상 그 직원의 뒤로 돌아가서 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나쁜 소식을 전하라는 것이 경영 전문가들의 조언이었다. 팔을 가볍게 쓰다듬거나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 동작만으로도 그 상황이 조금 덜 고통스러워졌고, 해고 대상자가 공격적으로 반응할 확률도 낮아졌다.  인간관계라는 맥락에서 신체 접촉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영장류가 우정을 맺고 유지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영장류의 사교 생활은 서로의 털 관리가 중심이다. 정기적으로 서로의 털을 손질해주는 동물들은 그들 중 한 마리가 위협이나 공격을 당할 때 도와줄 가 능성이 높다. 미국의 영장류 동물학자인 로버트 세이파스Robert Seyfarth 와 도로시 체니 Dorothy Cheney는 아프리카 동부에 서식하는 야생 버빗 원숭이를 데리고 중요한 실험을 했다. 그들은 원숭이 한 마리가 먹이 를 먹는 동안 숨겨놓은 확성기로 공격당한 원숭이의 고통에 찬 비명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 비명 소리의 주인공이 먹이를 먹는 원숭이의 털 손질 상대인 경우, 원숭이는 식사를 멈추고 덤불 안을 들여다보면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비명 소리의 주인 공이 다른 원숭이의 털 손질 상대인 경우, 비명 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식사를 계속했다. 기껏해야 확성기가 있는 방향을 한 번 힐끔거리기만 했다. 내가 에티오피아에서 연구했던 겔라다개코원숭이도 마 찬가지였다. 암컷 원숭이 두 마리가 서로의 털을 많이 손질해줄수록 둘 중 하나가 다른 무리로부터 공격당할 때 서로를 도와줄 확률이 높 아졌다. 이런 현상은 인간 사회에도 나타난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리가 그 사람을 위해 이타적인 행 동을 할 확률이 높아질 뿐 아니라, 맥스 버턴의 연구에서 입증된 대로 곤경에 처하면 상대가 우리를 도와주리라고 기대한다.
- 털 손질은 신뢰와 책임으로 이뤄진 관계를 형성하며, 그 근저에는 상대와 늘 함께 지내면서 신체 접촉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 점 은 원숭이들과 유제류 동물들의 차이에서 명확하게 확인 가능하다. 우리는 유대감이 강한 겔라다개코원숭이 무리와 일자일웅에 충실한 바위타기영양 무리, 사회성이 훨씬 낮은 야생 염소 무리, 그리고 무리를 이뤄 살긴 하지만 무작위적인 사교 생활을 하는 사슴 및 영양무리에서 한 개체가 먹이를 먹는 동안 무리 안의 다른 개체들을 얼마나 자주 쳐다보는가를 비교했다. 유대감이 강한 겔라다개코원숭이와 바위타기영양은 평균 6~8분에 한 번꼴로 무리의 다른 개체를 쳐다봤다. 반면 사회성이 낮은 염소들은 평균 40분에 한 번만 다른 개체를 쳐다봤다. 다시 말하자면 유대감이 강한 동물들은 끊임없이 사회적 동반자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것은 그들이 상대를 겁내서가 아니라 상대가 시야에서 사라질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 와 가까이 있으려는 갈망은 인간의 연애와 우정의 특징이기도 하다.
- 도파민 시스템의 지원과 지시를 받는 엔도르핀 시스템은 영장류의 사회적 유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포유동물 일반, 특히 영장류는 털 손질을 받으면 엔도르핀 시스템이 활성화된다. 실제로 이런 과정을 가능케 하는 특수한 말초신경 시스템이 있는데, 이 시스템은 c촉각신경(CT) 뉴런이라 불린다. 뇌에서 엔도르핀을 흡수하면 아편 제의 효과와 비슷한 안도감, 통각 상실, 친밀감, 낙관적인 정서가 만 들어져 털 손질에 참여한 개체들 사이에 강렬한 유대감과 신뢰감이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털 손질에서 매우 중요한 상대를 쓰다듬는 동작은 모낭의 아랫부 분에 위치한 C-촉각신경 수용체를 자극한다. 촉각신경의 섬유는 다른 어떤 말초 감각신경들과도 다르다. 촉각신경의 섬유에는 미엘린 껍질이 없고(그래서 전도 속도가 매우 느리다), 운동 복귀 고리 return motor loon가 없다(일반적인 통증 뉴런에는 운동 복귀 고리가 있어서 실수로 불에 손을 가져다 댔더라도 재빨리 손을 치우도록 해준다). 그리고 촉각신경의 섬유는 단 하나의 자극에만 반응하는데, 그 자극은 정확히 1초에 2.5센티미터 속도로 가볍게 천천히 쓰다듬는 것이다. 이것은 털을 손질해주는 개체가 앞발이 움직이는 속도와 비슷하다. 프랜시스 맥글론 Francis McGlone의 연구진은 아기의 통증에 대한 반응 연구에서 다소 극적인 방법(아기를 핀으로 살짝 찔렀다)으로 이 점을 증명했다. 초당 3센 티미터 속도로 아기를 쓰다듬었을 때 아기는 금방 진정했지만, 초당 30센티미터 속도로 쓰다듬었을 때는 진정되지 않았다. 적절한 방식 으로 자극을 가하면 c-촉각신경 섬유는 엔도르핀 시스템에 직접 작 용해서 엔도르핀이 뇌로 흘러 들어가도록 한다. 그러면 뇌의 거의 모 든 영역에서 발견되는 일련의 특별한 수용체(-수용체)들이 엔도르핀을 수용한다.
- 지난 10여 년 동안 10여 개의 뇌 화학물질이 인간의 사교 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한 연구와 언론 보도가 지나치게 많이 쏟 아져나왔다. 그중에서도 옥시토신은 다른 어떤 물질보다도 많은 관 심을 받았다. 특히 언론이 옥시토신을 대대적으로 띄웠다. 때때로 사랑 호르몬이나 신뢰 호르몬'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옥시토신 은 모든 척추동물이 무기로 사용하는 호르몬이다. 옥시토신은 원래 어류의 몸에서 수분 균형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일부로서 진화했 다고 추정된다. 어류는 바다의 물이 몸의 세포 안으로 지나치게 많이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했다. 어류의 일부가 육지로 올라오는 데 성공해서 양서류와 파충류의 조상들이 되고 마침내 조류와 포유류가 생겨난 후에는 정반대의 문제가 발생했다. 물이 없는 육지에서는 몸이 수분을 잃고 바싹 말라버릴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몸의 수분을 지키기 위해 선택된 물질이 옥시토신이고, 지금도 옥시토신은 포유동물 의 몸에서 그런 생리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포유류가 모유 수유라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함에 따라 옥시토신은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옥시토신의 역할 중 하나는 모유 수유를 해도 엄마의 몸이 수분 균형을 잃고 엉망이 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아마도 옥시토신은 엄마와 아기의 유대를 강화해서 엄마가 계속 젖을 물리도록 하기 위해 선택된 듯하다. 그리고 포유동물의 암컷과 수컷이 유대 관계를 형성하도록 진화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와 아기의 유대 관계를 담당하던 옥시토신이 자연히 암컷과 수컷의 유 대 관계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됐다.
- 실험 결과는 매우 분명했다. 사람들의 연애 관계의 질(특히 얼마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성관계를 맺느냐)을 가장 잘 예측하는 변수는 옥시토신 수용체 유전자였다. 하지만 우리가 엔도르핀 수용체 유전자를 통제했을 때는 관계의 질이 낮아지는 경우가 일부 있었다. 즉 옥시토 신 효과의 적어도 일부는 옥시토신이 아닌 엔도르핀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개인의 사교적 성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엔도르핀 수용체 유전자들이었다. 사교적 성향 척도에는 애착 유형(인간관계에서 얼마나 따뜻하거나 냉정한가)이나 타인에게 공감하는 정도와 같은 심리적 변수가 포함된다. 도파민은 네트워크 수치(친한 친구가 몇이나 되는가, 지역 공동체에 얼마나 활발히 참여하는가 등의 기준으로 측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엔도르핀 시스템은 네트워크 수 치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나머지 3개의 신경화학물질(테스토스 테론, 바소프레신, 세로토닌)은 어떤 수치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사회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데는 엔도 르핀 - 도파민 시스템이 핵심 역할을 하며 옥시토신은 연애 관계에만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시간은 우리가 관계에서 얻는 엔도르핀 분비량을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결정한다. 영장류에서는 관계에 투자하는 시간의 대부분이 털손질을 해주거나 받는 시간이고 털 손질을 받은 시간만큼 엔도르핀이 더 분비되기 때문에 이 관계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우리 인간은 쓰다듬기와 토닥토닥하기,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하게 되는 모든 신체 접촉에서 같은 효과를 얻는다. 사실 이런 행동은 매우 즉 흥적이고 의식의 레이더 밑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대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한다. 사실 우리는 상상 이상으로 그런 행동을 많이 한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사회적 행동 중에서도 엔도르핀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밝혀 진 것들이 있다. 예컨대 웃음, 노래, 춤, 스토리텔링, 잔치가 그렇다.
- 유인원 웃음과 인간 웃음의 차이는 인간이 발성 방법을 조금 바꿨다는 점에 있다. 원숭이와 유인원의 웃음은 단순히 숨을 내쉬었다 들이마시는 것의 반복으로 이뤄진다. 허어...... 허어......... 허 - 어........ 인간은 이 웃음을 도중에 숨을 들이마시지 않고 연속해서 숨 을 내뱉는 소리로 변형했다. 허....... 허....허....... 그 결과 우리는 웃음을 터뜨릴 때 빠른 속도로 폐의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고, 그래서 온몸으로 격하게 웃고 나면 호흡을 되찾기가 어렵다는 뜻에서 '웃다가 숨 넘어가겠다 dying with laughte'는 표현까지 생겼다. 원숭이와 유인 원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원숭이와 유인원의 웃음은 인 간의 예의 바른 웃음에 더 가까운 고상한 활동이다. 우리는 웃을 때 폐를 비우기 때문에 횡격막과 흉벽의 근육에 엄청난 부담을 주며, 폐에서 공기를 내보낼 때의 강한 펌프질도 당연히 부담을 준다. 그러는 동안 펌프질하는 동작과 산소 부족 상태가 엔도르핀 시스템을 활성화한다.
- 나의 추측에 따르면 노래와 춤은 약 50만 년 전 고대 인류(유럽에 서 가장 오래된 화석인류인 하이델베르크인과 그들의 후손인 네안데르탈 인)가 출현하면서 처음 생겨났으며, 고대 인류의 조상들은 공동체 모가 75명 정도였지만 고대 인류는 노래와 춤 덕분에 공동체 규모를 120명까지 늘릴 수 있었다. 120명은 고대 인류의 전형적인 공동체의 규모였다. 이 단계에서 노래는 가사 없이 콧노래나 코러스로만 이뤄졌을 확률이 높다. 이렇게 추측하는 근거 중 하나는 인류가 발화(언어가 아니라)를 했다는 해부학적 표지는 고대 인류에게서 처음 발견 됐지만, 지금과 같은 완전한 언어(지금 우리가 언어로 인식하는 형태)는 약 20만 년 전 현생인류와 같은 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발화의 메커니즘(호흡 조절, 또렷한 발음)은 웃음과 노래(가사 없는 노래)를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과 동일하며, 고대 인류에게서는 이 모든 활동의 흔적이 발견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려면 언어가 필요하다. 우리가 알기로 언어는 30만 년이 더 지나 우리와 같은 종이 등장하고 나서야 생겨났다. 만약 네안데르탈인에게 언어가 있었다 해도 지금 우리의 언어보다는 훨씬 단순했을 것이다(이 점에 관해서는 졸저 《멸종하 거나 진화하거나》에 자세한 설명을 수록했다).  음악 만들기 (특히 노래하기)가 언어보다 오래된 활동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대만에서 스티븐 브라운Steven Brown, 마크 스톤킹 Mark Stoneking과 대만의 여러 연구자들이 합동으로 진행한 기발한 연구에 서 제시한 가설이다. 섬나라인 대만에는 지역별로 9개 토착 민족이 살고 있고 민족마다 방언과 전통 민요를 가지고 있다. 언어와 민요에 관한 정보와 각 토착 민족의 유전자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연구진은 3개 변수 모두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가장 뚜렷한 상관관계는 음악과 유전자 사이에서 나타 났다. 이러한 결과는 음악적 차이가 언어의 차이보다 더 오래된 역사 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 노래와 유대감에 관한 관찰을 하나 더 이야기하고 싶다. 하카는 뉴 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민속무용이다. 원래 하카는 전쟁터에서 적을 조롱하고 위협할 때 추는 춤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뉴질랜드 국가대표 럭비팀인 올블랙스All Blacks가 국제 경기를 치를 때마다 시합 시작 전에 하카를 선보인다. 올블랙스 선수들은 다 같이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몸에 힘이 들어가는 자세를 취하고(과장된 표정도 짓는다), 동시에 발을 쾅쾅 구르며 격렬한 춤을 춘다. 하카에는 훌륭한 의식의 특징이 모두 담겨 있다. 이 의식의 모든 요소가 엔도르핀 시스템을 활성화한다. 좋게 말하면 하카는 인상적인 구경거리가 된다. 하지만 경기 전에 하카를 추는 주된 목적은 엔도르핀 수치를 끌어올려 선수들이 더 침착하고 민첩하며 통증 역치가 높아진 상태로 시합에 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엔도르핀 수치가 높지 않을 때보다 경기에 따르는 압박과 피로를 훨씬 잘 이겨낸다. 뉴질랜드가국제 럭비 대회에서 늘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반세기가 넘도록 국제럭비계를 지배한 비결이 이 특별한 춤 공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 흥미롭게도 알코올 섭취 능력은 인간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유인원(고릴라와 침팬지)에게 도 있는 능력이며, 다른 동물들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알 코올 섭취 능력의 기원은 우리 몸의 효소에 어떤 돌연변이가 생겨서 알코올을 분해해 에너지원인 당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 쩌면 우리의 공통 조상들이 숲의 바닥에 떨어진 썩은 과일을 이용하 기 위해 적응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썩은 과일에는 부피 기준으로 4퍼센트에 달하는 알코올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은 맥주의 알코 올 함량과 비슷하다
- 잔치는 유대감 형성에 중요한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은 2개의 다른 수준에서 작동한다. 가까운 친척 이나 친구와 부담 없이 먹고 마시면 사이가 더 돈독해지며, 가끔 열 리는 대규모 연회는 더 큰 공동체 내의 유대를 증진한다. 둘 다 나름 대로 중요하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잔치는 가까운 관계를 강화한다.
- 가까운 관계는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줌으로써 큰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스트레스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친구들과 먹고 마시는 일을 자주 해야 한다. 대규모 연회는 우리가 큰 공동체 안에 자리 잡도록 해준다. 큰 공동체 내부 의 유대감은 가까운 친구들 사이의 유대감보다 약하기 때문에 우리 는 때때로 공동체를 상기시키는 행사를 열어서 만족을 느낄 필요가 있다. '빅 런치 프로젝트' 연구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최근에 가까운 친구 또는 친척들과 저녁 식사를 한 것이 언제였는지, 그리고 그때 음식을 먹는 일 말고 어떤 일을 함께 했는지를 물었다. 응답자들이 그 식사에 얼마나 만족했는가를 예측하는 공통적인 요소는 4가지로 나타났다. 식사한 사람들의 수(많을수록 좋다), 웃음의 빈도, 과거에 대한 회상, 알코올 섭취 여부, 웃음과 과거 회상이 있었던 자리는 그 2가지가 없었던 자리보다 유대감을 증진하는 효과가 컸다.
- 웃음은 원숭이의 놀이 얼굴에서, 미소는 원숭이의 항복하는 얼굴에서 진화한 것이다. 원숭이들 사이에서 '이빨을 드러내는 표정(또는 으르렁거리는 표정)은 항복 또는 달램의 의미를 지닌다. 소리 내어 웃을 때 입을 크게 벌린 표정과 달리 미소를 띤 표정은 으 르렁거릴 때와 마찬가지로 이빨을 다문 채 입술을 양옆으로 벌린 표 정이다. 둘 다 우정과 관련이 있긴 하지만 하나는 유대감을 쌓기 위 한 표정이고 다른 하나는 복종의 표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긴장을 하 거나 창피할 때, 낯선 사람이나 우리가 윗사람으로 인식하는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미소를 짓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세계에서 웃음과 미소는 혼동이 되기도 하지만, 웃음과 미소는 전혀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사실은 정반대 동기를 나타내는 신호다. 웃음과 마찬 가지로 미소에도 2가지 유형이 있다. 비자발적인 뒤센 미소가 상대 를 달래는(나중에는 승인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신호인 반면 자발적인 비뒤센 미소는 예의 바른 묵인의 신호를 보낸다. 뒤센 미소가 상호작용을 더 하자는 격려라면 비뒤센 미소는 불확실하고 초조한 감정을 나타낸다.
- 크렘스는 실생활 속 대화에서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분석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셰익스피어 희곡의 여러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 들의 마음 상태를 분석했다. 그녀는 희곡의 등장인물들이 그 자리에 없는 다른 누군가의 마음 상태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3명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등장인물들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의 마음 상태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무 대 밖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에 관한 사실을 이야기할 때는 4명까지 가능했다. 이러한 결과는 실생활의 자연스러운 대화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대화를 나눌 때 이 점을 의식하지는 않 지만 대화 인원은 자연스럽게 맞춰진다. 셰익스피어처럼 인간을 유 심히 관찰했던 작가는 이 법칙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희곡에도 동일 한 구조를 적용해 관객에게 지나친 부담이 가지 않도록 했다. 대화 집단 규모의 태생적인 한계는 전통적인 만찬 연회의 규모, 나아가 식탁의 크기에도 영향을 끼친다. 4명은 하나의 대화를 형성하기 때문에 완벽하며, 6명 또는 8명은 다양한 의견을 덧붙일 수 있고 하나의 식탁에 2개 또는 3개의 대화를 수용할 수 있어서 좋다. 6~8명 이 앉을 수 있는 식탁은 크기가 적당해서 사람들이 다른 대화로 옮기 고 싶을 때마다 옮겨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그보다 많아지면 식 탁이 아주 커야 해서 식탁 너머로 이야기를 나누기는 불가능하고(맞 은편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 들리지 않으니까) 양옆에 있는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눠야만 한다. 게다가 두 대화 사이에 애매하게 갇혀 버린 사람은 결국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혹시 당신이 식탁면 이 점을 확인해보라. 물론 이런 행사에 큰 식탁을 놓는 이유, 그리 고 그들이 이런 배치를 바꾸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행사 내내 손 님들이 대화에 깊이 빠져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조 용히 앉아서 연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인류는 약 50만 년 전에 처음으로 불을 다루는 법을 알아냈다고 한다. 불을 획득하게 되면서 인류는 '햇빛'을 4시간 더 연장할 수 있 었다. 비록 그 빛을 이용하려면 야영지에 머물러야 했지만, 인류는 그 시간에 여행을 하거나 사냥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음식을 먹고 사교 활동을 할 수는 있었다. 실제로 인류가 이렇게 해서 획득한 시간은 지금 우리가 사회적 상호작용에 할애하는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우리는 하루에 3.5시간 정도 사교 활동을 하니까. 나는 《멸종하거나 진화하거나》라는 책에서 이러한 원리를 이미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중요한 사실은 저녁 시간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며 그 기원은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올라간다는 것이다.
- 인생에서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낯 선 사람을 만나야 새 친구를 사귄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낭비해가 며 그 사람들이 우정의 일곱 기둥 하나하나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확 인하기를 원치 않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것을 일일이 확 인한다면 하루 24시간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단순한 지시문 몇 가지 를 사용해서 그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입할 가치 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별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 대해 더 알아볼지 말지를 판별하기에 가장 좋은 기준은 무엇일까? 자크 로니는 이것을 알기 위해 사람들이 일곱 기둥이라는 기준을 낯선 사람에게 어떻게 적용하는가를 조사했다. 사람들이 예 상보다 자주 선택한 특징들은 혈통, 종교, 정치적 견해, 윤리적 견해 였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것은 음악적 취향이었다. 음악이 이를 정확히 보여준다. 잉글랜드 남부 일대에서 여성의 미토콘드리아DNA(어머니 쪽 혈통으로만 유전된다)는 주로 고대 켈트족(또는 로마계 영국인 Romano-British)에게서 온 것이지만, 남성의 Y 염색체(아버지 쪽 혈 통으로만 유전된다)는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뚜렷한 연속변이(서로 인접한 것끼리는 비슷하지만 맨 처음 것과 맨 마지막 것은 확연히 다른 것들의 연속체)를 나타낸다. 동쪽에는 앵글로색슨 유전자가 대부분이고(410년경 로마인들이 떠나고 대륙에서 앵글족과 색슨족 침략자들이 들어온 지점이 동쪽이다), 서쪽에는 켈트족 유전자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앵글로 색슨 침략자들은 일종의 인종 청소를 하면서 원래 잉글랜드 남동부에 살고 있었던 켈트족 남성을 몰아내고 켈트족 여성을 차지 했던 것 같다. 색슨 침략자들은 극단적 인종차별 정책을 법률로 만들 어 수백 년 동안 시행했다. 그들은 원래 그곳에 살던 잉글랜드 주민 을 법 앞에 아무런 권리가 없는 사람들로 취급하고 그들에게 법적 불 이익은 불론 경제적 불이익도 주었다(20세기 후반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서 행해진 아파르트헤이트에서 흑인들이 받았던 대우와 비슷하다). 이런 식의 강압 통치는 300년이 지나 알프레드 대제 King Alfred the Great가 모든 주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했을 때 비로소 완화됐다. 차별을 완화한 이유 중 하나는 그 무렵에는 인종 간 결혼이 늘어나고 문화적, 언어적 지배의 영향으로 누가 어떤 인종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문화 적 관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시대의 한 가지 이상한 유물은 유전자 연속변이의 서쪽 끝에 사는 현대 웨일스인들을 웰시 Welsh'라 고 부르는 것이다. 웰시라는 단어는 색슨족의 언어에서 '외국인' 또 는 '노예'를 뜻하는 웰라스wealas에서 유래했다. 외국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은 누구나 데려가서 노예로 부릴 수 있었으므로 외국인과 노예는 동음이의어에 가까웠다.
역설적으로 500년 후에는 앵글로색슨족이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 게 된다. 1066년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했을 때, 노르만족은 색슨족의 귀족과 고위 성직자들을 죽이거나 추방하고 나서 그 자리를 노르만족에게 넘기고, 색슨족의 토지와 재산을 빼앗고, 귀족이 아 닌 색슨족은 새로운 주인들이 얼마든지 사고팔 수 있는 농노로 취급 했다(농노제는 대륙에서 건너온 노르만족이 영국에 최초로 도입한 일종의 제도화된 노예제였다. 19세기 중반까지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제국에서 는 농노제가 유지됐다). 그리고 1000년쯤 후인 지금도 노르만족의 후 예들은 여전히 영국 사회 상류층을 차지한다. 그것은 영국 상류층들 이 프랑스식 성을 쓴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옛날 정복왕 윌리엄이 나눠준 땅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의 영국 귀족들 중에 색슨족 성이나 노르웨이식 성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기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들에도 이 시대의 흔적 이 남아 있다. 영국인들은 들판에 있는 동물을 지칭할 때는 옛날 게르만계 색슨족의 명칭 (sheep, cow, pig)을 사용하고, 그 동물을 식탁에 올릴 때는 노르만계 프랑스어 명칭 (mutton, beef, pork: 각각 프랑스어의 mouton, boeuf, porc에서 유래한 말이다)을 사용한다. 색슨족 농노들은 들판에서 동물을 보살피거나 사냥할 때는 그들의 고유어인 앵글로색슨어를 썼지만 그들의 주인인 노르만족에게 그 고기를 가져갈 때는 프랑스어를 썼던 것이다.
- 요점은 짝에 관한 결정을 할 때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어떤 여자든 괜찮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남자들도 여자가 젊을수록 좋아하니까). 하지만 남성들은 1차원적인 세계에 살기 때문에 비교적 간단한 결정을 한다. 그래서 일부다. 처제를 허용하는 모든 사회에서 남성들은 거의 똑같은 연령대의 여성(젊은 여성)들과 계속 결혼을 한다. 반면 여성들은 다양한 이해관계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는데, 이 이해관계들은 때때로 서로 충돌한다. 그래서 여성의 결정은 더 복잡해지고 불완전해진다. 여성들은 절대로 완벽한 배우자를 찾을 수가 없으므로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에 대해서는 남녀의 선호가 일치했다. 그것은 책임의 중요성이었다. 이 점은 우정과 마찬가지다. 우리의 론리 하트 광고 연구에서 남성과 여성은 동일한 빈도로 '책임'을 언급했다. 물론 여성들이 책임감을 원하는 비율이 남성들보다 2배 높긴 했지만, 저스틴 모길스키 Justin Mogilski의 연구진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성격이 다 다른 사람들에 관한 짧은 일화를 들려주고 그들이 일시적 동반자와 장기적 동반자로서 어떨지를 평가하도록 했다. 그러자 남녀 모두가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도 정직과 겸손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특히 장 기적 동반자 관계를 평가할 때 정직과 겸손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여기서 정직은 과거에 애인에게 얼마나 충실했는지로 측정했으며 신뢰도, 즉 헌신의 정도를 결정한다고 해석됐다.
- 연령대별로 남성과 여성 중 어느 쪽을 상대적 으로 선호하는가를 알아봤다. 데이터에 따르면 10대 초반인 여자 청 소년의 가장 친한 친구(가장 자주 전화를 거는 사람)는 여자 친구일 가 능성이 높지만, 18세를 넘어서면 가장 친한 친구가 남성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남성에 대한 선호는 20대 초반에 정점에 달하고 40세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40세가 넘으면 남성에 대한 선호도는 급속도로 감소하며 55세 정도에는 다시 여성이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노년기까지 여성 편향이 유지된다. 남성들은 거의 동일하지만 약간 다른 패턴을 따른다. 청소년기에 남성에게 편향된 선호를 보여 주지만, 30세가 될 때까지 남성이 전화를 가장 자주 거는 대상은 점 점 여성 편향으로 바뀌어간다. 30세가 넘으면 남성 편향이 잠시 정점에 올랐다가 꾸준히 감소해서 낮은 수준의 여성 편향을 향해 나아가는데, 이 편향의 정도는 여성들이 나타낸 편향의 정도와 거의 비슷하다.
- 여성들의 선호도 곡선은 남성들의 선호도가 정점에 이르는 것보다 7년 일찍 정점에 이른다(여성은 23세, 남성은 30세가 정점이다). 여성들의 선호도 곡선이 남성의 곡선보다 정점에 머무르는 시간이 훨씬 길다(여성은 45 세까지, 남성은 35세까지). 다시 말하면 여성은 자신의 애인 또는 배우자에게 집중하는 기간이 남성보다 3배나 길다. 남성은 이 기간이 길 어야 7년이지만 여성은 21년 정도 된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에게 연 애 관계에 관해 2가지를 가르쳐준다. 첫째, 여성은 어떤 남성을 선택 할 것인가에 관해 아주 일찍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고수하면서, 가 장 둔한 남성도 마침내 깨닫고 호응할 때까지 그를 계속 접촉한다. 마치 남성들은 여성의 마음을 알아차리기까지, 아니면 적어도 호혜적으로 반응하기까지 5년 정도가 걸리는 듯했다. 그래서 다른 포유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세계에서도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남성이 여성의 주의와 관심을 끌기 위해 어떤 식으로 과시를 하든 간에, 궁극적으로 누구와 삶을 함께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여성이다. 연인이 된 뒤에는 남성이 여성 보다 훨씬 일찍 흥미를 잃는다. 여성 배우자에 대한 남성의 관심은 몇 년밖에 안 가며, 중년에 이르면 무의미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사람들의 통화 기록에서 알아낸 것들이 이렇다니..
-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볼 때 전전두피질(기본적으로 뇌에서 의식적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의 활동이 억제된다는 점은 더욱 흥미롭다. 상대에 대해 너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일시적으로 차단하 는 뭔가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비노드 고엘 Vinod Goel과 레이 돌런Ray Dolan의 선행 연구를 떠올리게 한다. 고엘과 돌런 은 종교적 신념이 논리적 추론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억제할 때 전전두피질의 활동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한번 생각해보라. 종교적인 사람들, 특히 열광적인 종교 분파에 속 하는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처럼 몽상적이고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태도를 취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사 랑에 빠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과 사랑에 빠졌으니까. 
- 신기한 지표는 집게손가락(둘째 손가락)과 약손가락(넷째 손가락)의 길이 비율이다. 이 비율은 2D4D 비율(D는 '숫자'를 뜻하는 digit의약자)이라고도 불리는데, 영장류 중에서 긴팔원숭이처럼 일자일웅 짝짓기를 하는 종들은 이 비율이 1에 가까운 반면 침팬지처럼 무작위 교미를 하는 종들은 1보다 작다(집게손가락이 약손가락보다 훨씬 짧다). 예로부터 진화심리학자들은 평균적으로 여성들이 1명과 섹스를 하고 남성들은 난잡한 섹스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넓게 보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많이 있다. 남녀의 2D4D 비율에도 이러한 차이가 반영된다. 여성들은 보통 2D4D 비율이 1에 가까운 반면 남성들은 이 비율이 1보다 작다(집게손가락이 약손가락보다 짧다).
- 2D4D 비율은 태아기의 테스토스테론 수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임신 중 엄마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 을수록 자녀의 2D4D 비율은 극단적으로 낮아진다(즉 무작위 성교). 라파엘은 많은 시간을 들여 우리의 대규모 유전자 표본에서 연구 대 상자들의 손을 촬영했다. 그리고 대상자들의 2D4D 비율을 계산해 서 SOI 점수 및 유전자 패턴과 비교했다. 결과를 분석해보니, 특히 여성의 경우 2D4D 비율과 테스토스테론 수치, 엔도르핀 수치, 바소프레신 유전자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그리고 2D4D 비율의 효과는 충동성 impulsivity (결과는 나중에 생각하고 행동을 먼저 하는 성향)에도 영향을 끼쳤다. 남성화한 여성일수록(2D4D 비율이 낮은 여성일수록) 더 충동적이고 성급하며 현재 편향을 곧잘 했다. 그리고 2D4D 비율이 특정한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는 정황 도 발견됐다. 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아슬아슬한 모험을 추구하기 때문에 애인이 아닌 사람과도 성교를 즐길 가능성이 있다.
- 연애는 강렬하고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요구를 토대로 형성되며 그 관계 속에서 섹스는 약간의 접착제(섹스는 다량의 옥시토신, 엔도르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가 되고 약간의 생물학적 기능(재생산)을 한 다. 물론 다수의 연애는 이성애지만, 관계의 기능이 아닌 원칙은 동 성애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성애는 동성애든 간에 성별에 따른 심리와 행동의 차이는 관계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든다. 
- 사교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남성은 타인의 동정과 위로를 피하기 위해 상대가 멀어지도록 하는 행동을 해서 혼자가 되려 한다.  반면 여성은 울음을 터뜨리는 것과 같은 행동으로 동정과 위로를 유도하고 상대가 다가오도록 한다. 남성과 여성은 위험에 대한 반응에서도 이와 비슷한 차이를 나타냈다. 여성은 소리를 지르는 반면 남성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입을 열어 욕설을 내뱉는다. 다음에 롤러코스터를 타러 갈 때 남녀의 반응을 관찰해보라.
- 사교성 측면에서 남녀 차이의 적어도 일부는 생애 초창기부터 나타난다. 따라서 남녀 차이가 순전히 문화 적응과 양육의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니퍼 코넬란Jennifer Connellan과 사이먼 배런-코언 Simon Baron-Cohen은 100명의 신생아를 대상으로 주의력 검사를 했다. 그들은 제니퍼의 얼굴 사진을 보여준 다음, 그 얼굴의 주요 요소들 (제니퍼의 눈, 입 등)이 똑같이 있긴 하지만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모빌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이 2가지를 차례로 보여주었을 때 아기들이 얼마나 오래 쳐다봤는지를 측정했다(절반은 얼굴을 먼저, 절반은 모빌을 먼저 보여주었다). 아기들의 3분의 1 정도는 특별히 어느 한 쪽을 선호하지 않았지만, 한쪽을 선호했던 아기들 중에서 남자 아기 들은 모빌을 훨씬 좋아했고 여자 아기들은 사람의 얼굴을 더 좋아했다. 선호도의 비율은 양쪽 다 2:1이었다. 다른 연구에서도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양육자와 눈을 오래 마주치며 사교적 결례라는 개념을 남자아이들보다 먼저 이해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전반적으로 여자아이들과 여자 어른들은 남자아이들과 남자 어른들보다 음성에 많이 의지한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일찍, 더 효과 적으로 언어를 습득하며 대화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부모가 대 화를 시도할 때 10대 남자아이들이 흔히 보이는 불만스러운 반응만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원숭이에게서도 발견된다. 나탈리 그리노 Natalie Greeno와 스튜어트 셈플Stuart Semple의 붉은털원숭 이 atests micagues의 발성 빈도에 관한 훌륭한 연구는 암컷 원숭이들이 수컷보다 사교적임을 입증했다. 따라서 이런 특징은 인간이라는 종이 출현하고 인간 고유의 양육 습관이 만들어지기 한참 전에 생겨난 것으로 짐작된다.
- 특히 눈에 띄는 사실은 과거를 공유하는 것이 남성과 여성의 친밀감에 정반대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 과거를 공유하는 관계가 남성에게는 긍정적이었던 반면 여성에게는 부정적으로 작용했다(여성들끼리는 과거를 공유한다는 것이 강조될수록 친밀감의 수준이 낮아졌다). 이러한 차이는 남성은 집단 활동(대부분의 집단은 공통 의 과거를 강력한 토대로 삼는다. 어느 집단이나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까) 을 선호하며 여성은 단 둘이서 하는 활동(일대일 관계에서는 과거를 공유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예컨대 현재 서로에게 얼마나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을 선호한다는 것을 반영한다.
- 남녀의 2가지 해부학적 차이를 알면 당신은 놀랄지도 모른다. 당신이 샤워젤을 사러 가 진열대에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는다고 하자. 비누와 샤워젤은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나뉘어 진열되어 있고, 여성들의 진열대에 놓인 제품은 남성용 제품과 크게 다르다(그리고 더 비쌀 것이다). 왜 남성용과 여성용 샤워젤이 따로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단순히 제조 업체들이 여성이 쓰는 물건을 더 비싸게 팔려고 그런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그들은 남성은 피부에 거친 질감이 닿을 때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여성은 부드러운 질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들은 남성용 샤워젤을 거칠 거칠하게 만들고 여성의 샤워젤은 보드랍게 만든다. 모두가 좋아하는 젠더 중립적 비누는 없다.
두 번째 차이는 더욱 놀랍다. 사람의 망막에는 3가지 수용체 세포 (또는 원뿔 수용체)가 있고 수용체 세포의 종류별로 색을 다르게 본다. 각각의 수용체 세포는 서로 다른 파장의 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각 각의 수용체가 반응하는 빛의 파장은 약 430, 545, 570나노미터이 며, 이 빛들이 우리 눈에는 파랑, 초록, 빨강으로 보인다. 초록과 빨 강 수용체는 X염색체 위에 있고, 파랑은 7번 염색체 위에 있다. 그래 서 빨강을 인식하지 못하는 적색맹은 남성에게만 나타난다. 남성은 X염색체를 하나만 가지고 있으므로 빨강 원뿔세포 유전자에 결함이 있으면 문제가 생기지만, 여성은 다른 X염색체에 예비 유전자를 가 지고 있어서 괜찮다. 게다가 빨강 원뿔세포 유전자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빛의 파장은 가변성을 지닌다. 그래서 여성은 약간 다른 파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빨강 원뿔세포 유전자를 물려받은 경우 미세한 차이가 나는 2가지 빨강(빨강과 유사 빨강)을 구별할 수 있다(남성은 절대 못 한다). 이런 사람들을 사색형 색각tetrachromacy 또는 사색자 fourcolour vision 라고 하는데, 사색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흔하다. 다양한 추정치가 있지만 아마도 전체 여성의 4분 의 1이 사색자일 것이다. 빨강, 유사 빨강, 초록, 유사 초록, 파랑의 5가지 색을 구별할 수 있는 오색자 pentachromacy 여성은 이보다 훨씬 드 물다. 남녀의 이런 차이는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은 아니 다. 구대륙의 원숭이들과 유인원들은 모두 삼색자이지만, 신대륙의 일부 원숭이들은 암컷이 아주 정상적인 삼색자인 반면 수컷은 3가지 색 중에 2가지밖에 못 본다(그리고 수컷들이 인지하는 2가지 색의 종류는 개체마다 다르다). 그러니까 아내가 자신이 보기에는 전혀 다른 색의 옷 2벌을 놓고 잘 어울리느냐고 물을 때 남자들이 어리둥절해져서 “그럼, 잘 어울리지”라고 대답하는 데는 아주 단순한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 
- 사실 남자와 여자의 뇌는 다른 점이 정말 많다. 우선 3가지만 이야기해보자. 남성의 뇌는 여성의 뇌보다 크다(뇌 크기의 차이는 약 10퍼 센트로, 몸 크기의 평균적인 차이와 거의 같다). 하지만 여성의 뇌에 백질 (그리고 뇌 내의 영역들을 서로 연결하는 전선 역할을 하는 뉴런들)이 훨 씬 많고, 여성의 전전두피질이 더 크다. 또 여성의 뇌는 남성의 뇌보 다 성인기에 일찍 도달하는데, 이 차이는 남녀가 사회적으로 성숙하 는 시기의 차이와 일치한다. 백질의 부피 차이는 남성과 여성이 뇌의 여러 영역들을 통합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에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여성이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이유도 백질의 부피 차이로 설명된다. 또 여러 가지 감각을 통해 얻은 정보를 통합하는 능력도 여성이 더 우수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보통 이런 일들은 뇌의 여러 영역에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은 사교 활동의 세계에서도 여러 사 람을 각자 다르게 대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짝을 선택할 때도 서로 경쟁하는 준거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낸다. 그리고 뇌 영상 촬영 연 구에서는 여성의 우측 전전두피질, 특히 안와전두피질의 부피가 더 크다는 증거가 있다. 우측 전전두피질과 안와전두피질은 사교적 감 정 반응, 정신화, 사회적 네트워크 크기를 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 을 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영역들이다
- 울음에는 엔도르핀 시스템이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엔도르핀 시스템은 뇌 내의 아스피린을 제공하므로 정신적 고통은 당연히 엔도르핀 반응을 촉발하며, 엔도르핀 반응은 우리에게 약간의 아편을 주입해 고통을 완화하는 동시에 기분이 나아지도록 한다. 다시 말하면 울음 의 기원은 다른 사람의 동정심을 유발해서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이 로운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보다는 울음을 통해 기분을 전환하는 직 접적인 효과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 나이 들고 병약해지면 외출하기가 어려워 방 안에서 홀로 지난 일을 곱씹으며 서서히 죽어간다는 이야기들, 고대의 어떤 사회에서는, 심지어는 20세기에 들어서도, 노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아프리카의 마사이 부족 사회에서 노인들은 때가 왔다고 판단되면 숲속에 들어가서 가시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불가피한 운명을 기다리곤 했다. 운이 좋은 노인은 평화롭게 굶어 죽거나 탈수로 사망했고, 그렇지 않으면 하이에나에게 죽임을 당했다. 날씨가 추운 북극지방에 사는 이누이트족 노인 중에 자기 몸뚱이를 끌고 신속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족에 짐이 되니 자신을 죽 여달라고 부탁하거나(보통은 칼로 찔러 죽이거나 목을 졸라 죽였다) 부족이 이동할 때 홀로 남아서 저체온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고대 일 본에는 가난한 가족들이 쇠약해진 노인을 산속에 버리는 '우바스테' 라는 풍습이 있었다.  고대사회의 이런 관행들은 현대사회의 맥락에서는 무척 잔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역사상 지금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가 없 었으므로 우리가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과거를 조금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봐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지금도 상황이 나빠지면 그런 관행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 대에 경제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을 때 미국에서는 친척들이 병원 앞 마당에 버리고 간 노인들이 7만 명에 이르렀다. 2000년대 들어 일본 경제가 쇠락의 길을 걷자 일본에서는 병원과 자선단체 앞에 노인들 이 버려지는 사건이 급증했다. 흔히 '노인 유기.granny dumping'라 불리 는 이런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서구 선진국의 도시와 마을에는 혼자 외출할 수가 없어서 일주일 내내 타인과 접촉하지 못하는 노인 들이 부지기수다. 무료 급식을 배달하는 사람이 오는 시간이나, 구호 단체 사람이 와서 하루에 15분간 노인들의 옷을 갈아입혀주는 시간 을 빼면 그들은 온종일 혼자 지낸다. 우리가 1장에서 살펴본 대로 고 독은 현대사회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다. 
-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의 부상과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소셜 미디어는 2000년대 들어서 생긴 가장 중요한 사회적 사건이었다.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와 새로운 형태의 소셜 미디어는 문자 그대로 우리 의 사교 생활에 혁명을 일으켰다. 우리가 이 책에서 우정을 탐색하며 알게 된 것들을 돌이켜보면, 이처럼 새로운 상호작용의 방식들은 우 리에게 2가지 결정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첫 번째 통찰은 이 새로운 매체들이 과거였다면 대면 만남을 지속하지 못해서 조용히 식어버 렸을 우정을 유지시켜준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이사를 많이 다 니는 시대에, 우리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 가게 될 때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의 정신적 웰빙에 특히 이롭다. 고독이 우리를 삼켜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오래된 친구들과의 접촉은 우리의 고독감 을 덜어주고 새로운 사교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벌어준다.
디지털 미디어가 광범위한 실험의 가능성을 열어준 덕분에 우리는 사교 세계가 어떤 제약을 받으며 왜 그런 제약을 받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하나의 통찰을 얻었다. 우리의 온 라인 사교 세계가 오프라인 사교 세계와 사실상 동일하다는 것은 사 교적 제약이 우리가 소통에 사용하는 매체가 아닌 우리의 정신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사회적 네트워크의 규모에 제한이 있는 것은 인지적 제약 때문에 우리가 사교 활동에 무한정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고, 사회적 네트워크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시간의 제약이다. 
- 온라인은 우리의 견해를 더 많은 청중에게 전파하도록 도와줄 수는 있어도 우리에게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주거나 오래된 관계를 보수해주지는 못한다. 바다의 등대가 위험을 알리는 신호를 보낼 뿐 지나가는 배와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계를 맺고 보수하는 작업은 오래된 방법대로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의사 소통이 의미가 있으려면 그 소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관계가 존재해 야 한다. 우정을 쌓는 과정, 그리고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은 단순히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자기기가 자동으로 띄워주는 생일 축하 인사 를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우리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과 함께 사교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그런 활동에는 일정 정도의 신체 접촉과 가벼운 애정 표현의 몸짓이 포함되는데 온라인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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