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방정식

과학 2023. 11. 7. 15:39

- 지금 우리가 누리는 대부분의 첨단 기술은 자연의 기본 힘을 연구하는 과학, 즉 물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요즘 과학자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을 하나로 통일하는 이론을 향해 나 아가는 중이다. 이 이론이 완성된다면, 아래 열거한 '가장 심오한 질문들'의 답을 알게 될 것이다.
*빅뱅 직전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무엇이 빅뱅을 유발했는가?
*블랙홀의 내부(또는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시간여행은 가능한가?
*우리 우주에는 웜홀wormhole이 존재하는가?
*4차원 이상의 고차원 공간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우리 우주 외에 다른 우주가 존재하는가? 즉, 다중우주 또는 평행우주가 존재하는가?
- 맥스웰 방정식
뉴턴은 미적분학으로 서술되는 '힘' 때문에 물체가 움직인 다고 했다. 그 후 패러데이는 '장' 때문에 전기현상이 나타 난다고 주장했으나, 장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벡터 미적분 학'이라는 새로운 수학이 필요했다. 이 분야를 개척한 사람 이 바로 케임브리지의 수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다. 그러니까 케플러와 갈릴레이가 뉴턴 물리학의 기초를 닦 은 것처럼, 패러데이는 맥스웰 방정식의 기초를 닦아놓은 셈이다.
맥스웰은 물리학의 도약을 견인한 수학의 거장이었다. 그는 패러데이가 발견한 전기와 자기의 특성이 수학이라 는 언어를 통해 깔끔하게 요약될 수 있음을 간파했다. 앞 서 말한 대로 움직이는(또는 변하는) 자기장은 전기장을 생성하고, 움직이는(또는 변하는) 전기장은 자기장을 생성 한다.
맥스웰은 전기장과 자기장의 관계를 파고들다가 현대물 리학의 역사를 바꿀 중요한 질문을 떠올렸다. 변하는 전기장이 자기장을 만들었는데, 이 자기장이 또 다른 전기장을 만들고, 이 전기장이 또 다른 자기장을 만들고. 이런 식 으로 계속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그는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하여 '이런 식의 상생 과정이 여러 차례 반 복되면 전기장과 자기장이 끊임없이 뒤바뀌는 파동이 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상생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전 기장과 자기장의 진동으로 이루어진 파동이 생성되어 혼 자 힘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벡터 미적분학을 이용하여 이 파동의 속도를 계산해보 니약 310,740km/s라는 값이 얻어졌다. 맥스웰은 계산 을 직접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값은 그 무렵에 알려진 빛의 속도와 오차범위 안에서 거 의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현재 알려진 빛의 속도는 299,792km/s이다). 그리하여 맥스웰은 '빛은 곧 전자기파 이다!'라는 과감한 주장을 펼치게 된다.
맥스웰은 이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모든 실험 결과를 종합해볼 때, 빛은 전기 및 자기 현상을 일으키는 물질에서 방출된 횡파transverse wave로 이루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전기와 자기를 하나로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수학적으로 대칭적인 관계에 있기 때 문이다. 맥스웰의 방정식에는 '이중성duality'이라는 대칭이 존재한다. 즉, 빛(전자기파)에 포함된 전기장을 라 하고 자기장을 B라 했을 때, E와 B를 맞바꿔도 맥스웰의 방정 식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이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전 기와 자기가 동일한 힘의 두 가지 측면임을 의미한다. 맥 스웰은 E와 B 사이의 대칭을 이용하여 전기와 자기를 통 일했고, 그 덕분에 19세기 과학은 위대한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 앞서 말한 대로 자석이 움직이면(즉, 자기장이 변하면) 전기장이 생성되고, 전선이 움직이면(전기장이 변하면) 자 기장이 생성된다. 이 사실을 이용하면 빠른 시간 안에 전선 의 전압을 바꾸는 변압기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발전 소에서 수천 볼트의 전기를 생산하여 송전선을 통해 배달 하면, 도시 외곽에 있는 변전소에서 110볼트(또는 220볼 트)로 낮춰서 일반 가정이나 공장으로 보내는 식이다.
그러나 전기장과 자기장이 일정한 직류는 이런 식으로 전압을 바꿀 수 없다. 교류전기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수시 로 변하기 때문에 전기장을 자기장으로, 또는 자기장을 전 기장으로 쉽게 바꿀 수 있다. 즉, 교류는 변압기를 이용한 승압 및 강압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류의 값이 일정한 직류에는 '변압'이라는 과정을 적용할 수 없다.
결국 에디슨은 교류와 직류의 전류전쟁에 패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 모든 것은 맥스웰의 방정식을 무시한 대가였다
- 맥스웰의 방정식과 뉴턴의 운동법칙은 자연의 신비를 풀 고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 사 이에서 매우 그럴듯한 '만물의 이론'으로 수용되었다(적어 도 그 당시에는 만물의 이론이었다).
1900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은 '필요한 것은 모두 발견되었고, 이제 남은 일은 관측값의 정확도를 높이 는 것뿐'이라며 과학이 종착점에 도달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당시 과학자들은 뉴턴의 운동방정식과 맥스웰의 방정식이 서로 모순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물리학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는 폐기되거나 대대적으로 수정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책은 맥스웰이 사망하던 1879년에 태어난 열여섯 살짜리 소년 이 쥐고 있었다.
-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생 시절에 맥스웰 의 방정식을 처음으로 접하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렸 다. '빛의 속도로 달리면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그 전에는 이런 질문을 제기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맥스웰 의 방정식을 이용하여 기차처럼 움직이는 물체에서 발사 된 빛의 속도를 계산해보았다. 지면에 서 있는 사람이 볼 때, 이 빛의 속도는 원래 빛의 속도에 기차의 속도를 더한 값으로 보여야 할 것 같다. 뉴턴의 고전역학에 의하면 당 연히 그래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기차를 타고 가면서 진행 방향으로 야구공을 던진다면, 지면에 서 있는 사람이 볼 때 야구공은 당신이 던진 속도에 기차의 속도를 더한 속도로 나아간다. 만일 야구공을 기차가 가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던졌다면, 지면에 서 있는 사람이 볼 때 야구공은 당신이 던진 속도에서 기차의 속도를 뺀 속도로 뒤쪽을 향해 날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빛과 같은 속도로 내달리면 빛은 그 자리에 정지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직접 계산을 해보니, 관측자가 빛 과 같은 속도로 경주를 한다 해도 빛은 한 자리에 멈추지 않고, 관측자에 대하여 여전히 광속으로 나아간다는 결론 이 얻어졌다. 물론 뉴턴역학에 의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다. 충분히 빠른 속도로 나아가면 누구든지 빛을 따라잡을 수 있는데 관측자가 바라보는 빛의 속도가 항상 똑같다니, 지나가는 멍멍이가 웃을 일이다. 그러나 맥스웰의 방정식 은 '당신이 아무리 빠르게 내달려도 절대로 빛을 따라잡을 수 없으며, 당신 눈에 보이는 빛의 속도는 항상 똑같다'고 단언하고 있었다.
- 이것은 아인슈타인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결과였다. 뉴 턴과 맥스웰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 둘 중 하나는 수정되 어야 한다. 빛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니, 대체 이게 무 슨 뜻일까? 그는 특허청 사무실의 책상 앞에 앉아 이 질문 을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1905년 의 어느 봄날, 그는 베른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과학의 역 사를 바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나중에 그는 이날을 회상하며 "마음속에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의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빛의 속도를 재려 면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와 공간을 측정하는 자[]가 있 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빠르게 내달려도 빛의 속도가 항상 똑같으려면, 내가 바라보는 시간과 공간이 그 만큼 달라져야 한다!
이는 곧 빠르게 날아가는 우주선 안에 탑재된 시계는 지 구의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당신이 빠 르게 움직일수록 당신의 시계는 느리게 간다(다른 관측자가 볼 때 그렇다는 뜻이다-옮긴이).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으로부터 예측 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지금 몇 시입니까?"라는 질문의 답은 당신의 이동속도에 따라 달라진 다.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의 내부를 지구 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슬로모션처럼 보일 것이다. 또한 우주선을 포함하여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물체는 진행 방향으로 길이가 짧아지고, 모든 질량은 증가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인은 이 런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가 볼 때 시간은 정상 적인 빠르기로 흐르고, 모든 물체의 길이도 정상이며, 질량도 지구에서 잰 값과 똑같다.
훗날 아인슈타인은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이론으로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꼽았다.' 현대문명의 이기를 이용 하면 속도가 빠를 때 나타나는 현상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비행기에 원자시계를 설치해놓고 지상에 있는 시 계와 비교하면 비행기의 시계가 느리게 간다. 단, 비행기의 속도는 광속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느리기 때문에 두 시 계의 오차는 1조분의 1초보다 작다(두 시계를 비행기에서 비교 하면 지상에 있는 시계가 느리게 간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두 관측 자가 서로에 대하여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상대방의 시계가 자신의 시계 보다 느리게 간다-옮긴이).
- TV에 나오는 우주인들이 우주선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은 '지구와 너무 멀어서 중력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우주정거장이나 우주왕복선의 고도는 기껏해야 450km 이내이다. 이 정 도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밖에 안 된다. '우주'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 을 정도로 가깝다-옮긴이). 태양계 안에서 중력이 0인 곳은 존 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주인의 몸이 둥둥 떠다니는 것 은 우주선이 그들과 함께 '지구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 다. 산꼭대기에서 발사된 뉴턴의 대포알처럼(그림-1 참조), 우주선과 우주인은 지구 주변을 돌면서 지구를 향해 자유낙하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주선의 내부는 무중력상태가 아니다. 우주선과 우주인이 똑같은 가속도로 떨어지고 있 기 때문에 마치 무중력상태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원리를 놀이공원의 회전목마에 적용해 보았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물체의 속도가 빠를수록 공 간이 진행 방향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물체도 진행 방향으 로 수축된다. 목마가 회전하는 것은 바닥원판이 회전하기 때문인데, 중심에서 멀수록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바닥원 판의 중심부보다 가장자리가 더 많이 수축된다. 그러므로 원판의 회전속도가 광속에 가깝다면 원판은 심하게 구부 러질 것이다. 즉, 평평했던 원판은 그릇을 뒤집어놓은 것처 럼 가운데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곡면이 된다.
- 이제 당신이 회전목마의 구부러진 원판 위를 걷는다고 가정해보자. 가운데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으니 똑바로 걷기가 어려울 것이다. 눈을 가린 상태라면 당신은 보이지 않는 힘이 자신을 원판의 바깥쪽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생 각할 것이다. 회전목마를 탄 사람이 '원심력centrifugal force 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회전목 마의 바깥에 있는 사람은 굳이 원심력을 도입할 필요가 없 다. 그저 '바닥이 휘어졌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바깥쪽으로 밀려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 아인슈타인은 이 모든 결과를 하나로 묶었다. 당신이 회 전 원판에서 바깥쪽으로 밀려나는 것은 원판 자체가 휘어 져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느끼는 원심력은 원리적으로 중 력과 동일하다. 중력은 가속운동을 하는 좌표계에서 나타 나는 일종의 착시현상이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좌표계에 서 진행되는 가속운동은 다른 좌표계에서 작용하는 중력과 완전 히 동일하며, 중력이 작용하는 이유는 공간이 휘어져 있기 때문 이다.
이제 회전목마를 태양계로 대치해보자. 지구는 태양 주 변을 공전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태양이 지구에게 중력이 라는 힘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구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는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는 지구 주변의 공간이 휘어져있고, 지구가 그 휘어진 길을 따라 원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여 '중력은 실체 가 아닌 환상'이라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물체가 움 직이는 것은 중력이나 원심력 때문이 아니라, 물체 주변의 공간이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 어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물체가 움직이는 것은 중 력이 잡아당기기 때문이 아니라, 휘어진 공간이 밀어내기 때문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세상 은 거대한 무대이며, 우리는 그 위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배우이다." 이것은 뉴턴의 고전역학에 딱 맞아떨어지는 표 현이다. 그는 이 세상이 정적靜的 static이고 평평한 3차원 공간이며, 모든 만물이 그 안에서 특정한 법칙에 따라 움 직인다고 생각했다(공간이 평평하다는 것은 납작한 평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휘어짐 없이 똑바로 이어지는 입체 공간'이라는 뜻이다- 옮긴이).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우주관을 폐기하고 '휘어 진 공간'을 도입했다. 이런 곳에서는 똑바로 걸어갈 수 없 다. 휘어진 곡면 위를 걸을 때에는 발밑에 형성된 굴곡에 의해 몸이 특정 방향으로 밀려나기 때문에,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리게 된다.
- 결국 중력이라는 힘은 실체가 아닌 환상이었다. 당신이 지금 의자에 앉아 이 책을 읽고 있다면, 당신은 '내 몸이 공 간으로 날아가지 않는 것은 중력이 나를 의자 쪽으로 잡아 당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 인은 '지구의 질량이 당신 머리 위의 공간을 휘어지게 만 들었고, 그로 인해 당신의 몸이 의자 쪽으로 내리 눌려지고 있기 때문에 의자에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다'고 강변한다. 
- 일반상대성이론은 모든 물체와 시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중력의 근원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특수상대성이론보다 훨씬 강력하면서 대칭성도 높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공 간에서 직선 궤적을 그리는(즉, 등속운동을 하는) 물체만 을 다루고 있는데, 실제 우주에서 등속운동을 고수하는 물 체는 거의 없다. 우리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물체들(경주 용 자동차, 헬리콥터, 로켓 등)은 속도가 수시로 변하는 가 속운동을 하고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이처럼 속도가 일 정하지 않은 물체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이론이다.
- GPS의 핵심부품은 초정밀 원자시계이다. 그런데 GPS가 정확도를 유지하려면 특수 및 일반상대성이론에 입각 하여 시계를 수시로 보정해야 한다.
GPS 위성은 시속 27,000km라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 기 때문에, 그 안에 탑재된 시계는 지표면의 시계보다 조금 느리게 간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움직이는 물리계에 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빛을 쫓아가 는'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 (현실적으로 실행 이 불가능하여 상상 속에서 진행되는 실험-옮긴이)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공위성은 높은 고도에서 선 회하기 때문에 지표면보다 중력이 약한데, 일반상대성이론 에 의하면 중력은 시공간을 휘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중력 이 약할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즉, 인공위성의 시계는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해 느려지고,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빨라지고 있다. 이 상반된 효과가 정확하게 상쇄되면 좋겠 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GPS의 정확도를 유지하 려면 지구의 관제팀이 위성의 시계를 주기적으로 보정해 줘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및 일반상대성이론이 없다 면 전 세계의 운전자들은 수시로 길을 잃고 헤맬 것이다.
- 뭐니뭐니 해도 디랙이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반물질 antimatter의 존재를 예견했다는 것이다. 반물질은 일상적인 물질과 동일한 물리법칙을 따르지만, 전하가 반 대이다. 그러므로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positron는 음전 하가 아닌 양전하를 띠고 있으며, 양전자와 반양성자 anti- proton, 그리고 반중성자 anti-neutron를 잘 결합시키면 반원 anti-atom를 만들 수도 있다(반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을 반물질이 라 한다-옮긴이). 그러나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폭발을 일 으키면서 에너지로 변하기 때문에, 반물질을 안전하게 보 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반물질은 만물의 이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궁극의 이론에 등장하는 모든 입자 에는 그에 대응되는 반입자 짝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 과거에 물리학자들은 대칭이라는 것이 물리 이론의 미학적 요소일 뿐, 필수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디랙 이후로 물리학자들은 대칭으로부터 새로운 물리적 현상(반물질, 전자의 스핀 등)을 예측할 수 있음을 절실하 게 깨달았다.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우주를 서술하려면 대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 슈뢰딩거의 고양이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근본적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고실험을 고안했다. 이 실험은 멀쩡한 고양이 한 마리를 상자에 넣는 것으로 시작된다. 상자 안에는 방사성원소인 우라늄이 들어 있는데, 여기서 입자가 한 개만 방출되면 가이거계수기가 작동하면서 미리 설치해놓은 총이 고양이를 향해 발사되도록 세팅되어 있다. 질문: 임의의 순간에 고양이는 살아 있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우라늄이 붕괴되는 것은 순전히 양자적 현상이기 때문 에, 고양이의 상태도 양자역학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하이 젠베르크는 '상자의 뚜껑을 열지 않는 한, 고양이는 두 개 의 파동(살아 있는 고양이를 서술하는 파동과 죽은 고양이 를 서술하는 파동)이 섞인 상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양이는 살아 있거나 죽었거 나 둘 중 하나이지 '살아 있으면서 죽은 고양이는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다. 고양이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은 뚜껑을 열어보는 것뿐인데, 뚜껑을 연다는 것은 주어진 물 리계를 관측한다는 뜻이고, 관측이 실행되는 순간 파동함 수가 곧바로 붕괴되어 둘 중 하나로 결정된다. 다시 말해 서, (의식이 동반된) 관측 행위가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모든 것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슈 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은 18세기 아일랜드의 철학자이자 주교였던 조지 버클리의 질문을 연상시킨다. 울창한 숲속 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는데 그것을 보거나 듣는 사람 이 하나도 없다면, 과연 그 나무는 소리를 낼 것인가? 유아 론자(자기중심주의자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한술 더 떠서 '숲속에 사람(관 측자)이 없다면 나무는 목탄, 묘목, 땔감, 합판 등 다양한 상태가 섞인 채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의식을 가진 누군 가가 나무를 바라봐야 비로소 그 순간에 파동이 마술처럼 붕괴되어 평범한 나무가 된다는 것이다(반드시 나무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나무가 될 확률이 제일 높은 것뿐이다-옮긴이).
아인슈타인은 방문객들과 담소를 나눌 때 "쥐 한 마리 가 무심결에 달을 바라봤기 때문에 달이 그곳에 존재한다 니, 이게 말이 됩니까?"라며 양자역학의 문제점을 지적하 곤 했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상식에서 아무리 벗어난다 해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 양자역 학은 실험 결과를 이론적으로 재현하는 데 단 한 번도 실 패한 적이 없다. 맥스웰의 고전전자기학에 양자역학을 적 용한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QED)은 이론과 실험 결과가 소수점 이하 11번째 자리까지 일치한다. 간단 히 말해서 QED는 인류의 지성이 낳은 '가장 정확한 과학 이론'이다. 이토록 정확한 이론을 어느 누가 감히 부정할 수 있겠는가?
양자역학이 '진실의 일부만 서술하는 미완의 이론'이라 고 주장했던 아인슈타인도 1929년에 하이젠베르크와 슈 뢰딩거를 모두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다.
-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을 시원하게 풀어줄 해결책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지금도 물리학자들은 이 문제 가 거론될 때마다 갑론을박을 벌이곤 한다[관측을 실행하 여 파동함수가 붕괴되어야 고양이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닐스 보어의 해석(이것을 '코펜하겐 해석'이라 한다)은 과 거보다 입지가 좁아졌다. 그 사이에 나노기술이 발달하여 개개의 원자를 다루는 실험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 이다. 사실은 보어의 확률해석보다 다중세계 가설이 더 그 럴듯하다. 이 가설에 의하면 상자의 뚜껑을 여는 순간 당 신의 우주는 '고양이가 살아 있는 우주'와 '고양이가 죽은 우주'로 갈라진다]
- 핵력
아인슈타인이 통일장이론을 완성하지 못한 이유는 퍼즐의 커다란 조각인 핵력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20~ 1930년대에는 핵력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QED가 전대미문의 성 공을 거두면서,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을 핵력에 적용하 는 작업에 착수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맨땅에서 출발하여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려면 새롭고 강력한 도구 가 필요한데, 당시에는 입자를 빠른 속도로 발사하는 장치 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두 종류의 핵력이 존재한다. 강한 핵력strong nuclear force(강력)과 약한 핵력 weak nuclear force (약력) 이 바로 그것이다. 양성자는 양전하(+)를 띠고 있어서 서로 밀어내기 때문에, 원자핵이 이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 인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원자핵이 양성 자의 척력을 극복하고 견고하게 유지되는 것은 이들 사이 에 전기력 외에 핵력이 추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핵력 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산산이 흩어진 아원자입 자subatomic particles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들)의 구름으로 덮여 있을 것이다.
강력은 다양한 화학원소를 무한히 긴 시간 동안 안정 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특히 양성자 와 중성자의 수가 같거나 비슷한 원소들은 우주가 탄생한 후 줄곧 안정한 상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원자핵에 양성 자와 중성자가 너무 많으면 몇 가지 이유로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양성자가 너무 많으면 전기적 척 력이 강하게 작용하여 원자핵이 산산이 흩어지고, 중성자 가 너무 많으면 상태가 불안정하여 자연적으로 붕괴된다. 특히 약력은 중성자를 영원히 잡아둘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붕괴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예를 들 어 자유중성자 free neutron (원자핵에 속하지 않고 홀로 돌아다니는 중성자-옮긴이)한 줌을 용기에 넣어두면 14분 만에 절반이 붕괴된다. 중성자가 붕괴되면 양성자와 전자, 그리고 유령 같은 반뉴트리노anti-neutrino가 남는데,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다룰 예정이다.
핵력의 특성을 알아내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핵의 크기가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원소의 종류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핵의 지름은 원자 지름의 10만 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러므로 원자핵의 내부를 탐색하려 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탐사 입자를 발사하는 입자가속 기particle accelerator가 있어야 한다. 20세기 초에 러더퍼드 는 납 상자 속에 넣어둔 라듐에서 방사선이 방출되는 것을 목격하고, 이것을 탐사 입자로 삼아 산란 실험을 실행하여 원자핵의 존재를 알아냈다. 그러나 이제는 원자의 내부가 아니라 '원자핵의 내부'를 탐사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강 력한 복사를 내뿜는 에너지원이 필요했다.
- 물리학자들은 1950년대부터 입자빔으로 양성자를 때리는 실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입자의 종류가 예상했 던 것보다 너무 많아서 큰 혼란에 빠졌다.
정말이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자연은 더 깊이 파고 들어갈수록 단순해진다고 믿었는데, 실상은 정반대 였다. 아마도 양자물리학자들이 아인슈타인과 의견 일치 를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혹시 신은 정말로 악의적인 존재가 아닐까?'
연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입자 목록에 질릴 대로 질린 로 버트 오펜하이머는 '금년 노벨상은 새로운 입자를 하나도 발견하지 않은 물리학자에게 줘야 한다'고 할 정도였고, 엔리코 페르미는 "내가 그 많은 입자 이름을 다 외울 정도로 암기력이 좋았다면 진작에 식물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물리학자들은 입자의 바다에 빠져 익사할 지경이었다. 어찌나 혼란스러웠는지, 일각에서는 인간의 지성이 아원 자 영역을 이해하기에 턱없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자조 섞인 불가지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개에게 미적분학을 가 르칠 수 없듯이, 인간은 원자핵에서 일어나는 일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진정시킨 사람은 캘리포니아공과 대학(칼텍 Caltech)의 물리학자 머리 겔만과 그의 동료들이 었다. 겔만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기본입자가 아니라, 쿼크 라는 더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부분 적으로나마 문제를 해결했다.
쿼크 가설은 단순한 모형이었지만, 입자를 몇 개의 그룹 으로 분류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과거에 멘델레예프 가 원소를 화학적 특성에 따라 분류했던 것처럼, 겔만은 자신의 분류표에서 빈칸으로 남은 부분에 '강한 상호작용 (핵력)을 교환하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입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 후 1964년에 쿼크모형에서 예견된 '오메가 마이너스(-)'라는 입자가 발견됨으로써 겔만의 이론이 검증되었고,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69년에 노 벨상을 수상했다.
쿼크모형이 수많은 입자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대칭 에 기초한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아인슈타인은 시 간과 공간을 맞바꿔도 이론이 변하지 않는 4차원 시공간 대칭을 도입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상대성이론을 완성했 다. 겔만은 세 개의 쿼크를 포함하는 방정식을 제안했는 데, 방정식 안에서 쿼크를 이리저리 맞바꿔도 방정식의 형 태는 변하지 않는다. 즉, 겔만의 방정식은 쿼크의 맞교환에 대하여 대칭적이다.
- 약력은 다양한 원자의 핵을 단단하게 유지시킬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원자핵이 더 작은 입자로 붕괴 되는 과정에 관여한다. 앞서 말한 대로 지구의 내부가 뜨 거운 이유는 그곳에서 방사성붕괴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화산폭발과 지진을 일으키는 막대한 에너 지의 원천은 약력인 셈이다. 중성자는 상태가 불안정하여 양성자와 전자로 붕괴되는데(이것을 베타붕괴 beta decay라 한다), 붕괴 전과 붕괴 후의 물리량이 보전되려면 제3의 입 자가 도입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유령입자로 알려진 뉴트리노이다.
- 물리학자들이 뉴트리노를 유령에 비유하는 이유는 행성 전체를 뚫고 지나갈 정도로 투과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 금 이 순간에도 우주에서 날아온 수많은 뉴트리노들이 당 신의 몸을 관통하고 있으며, 이들 중에는 두께가 4광년(약 40조 킬로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납덩어리를 가뿐하게 통 과하는 것도 있다.
1930년에 뉴트리노의 존재를 예견한 파울리는 훗날 이 런 말을 남겼다. "결코 관측할 수 없는 입자를 이론에 도입했으니, 결국 제가 죄인입니다." " 유령 같은 뉴트리노는 물 리학자들의 애간장을 있는 대로 태우다가 1956년에 원자 력발전소에서 방출된 복사에너지에서 마침내 발견되었다 (뉴트리노는 일상적인 물질과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 다. 다시 말해서, 상호작용을 할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뜻 이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낮은 확률을 극복하기 위해 엄 청나게 많은 뉴트리노를 관측 대상으로 삼았다. 당첨 확률 이 100만분의 1인 로또 복권을 수백만 장 사들여서 기어 이 당첨금을 받아낸 것과 비슷하다).
- 물리학자들은 약한 핵력을 이해하기 위해 새로운 대칭 을 도입했다. 전자와 뉴트리노는 약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쌍을 이루고 있으므로, 새로 도입한 대칭을 통해 한 쌍으 로 묶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대칭을 맥스웰 이론의 대칭에 결합한 것이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일한 약전자기 이론elec- troweak theory이다.
스티븐 와인버그와 셸던 글래쇼, 그리고 압두스 살람은 약전자기이론을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9년에 노벨 상을 받았다(세 사람 모두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했다-옮긴이). 아인슈타인은 빛과 중력을 통일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빛은 중력이 아닌 약력과 통일되었다.
강력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세 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겔만의 대칭에 기초한 이론이고, 약력은 전자와 뉴트리노 사이의 대칭에 기초하여 전자기력을 결합한 이론이다(약력의 대칭은 강력의 대칭보다 규모가 작다).
쿼크모형과 약전자기이론은 난장판에 가까웠던 입자 동 물원을 성공적으로 설명했지만 중요한 문제가 여전히 남 아 있었다. '이 모든 입자들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것인가?'
- 뉴턴은 시간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한쪽 방향으로만 진행한다고 생각했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시간은 우주 전 역에 걸쳐 똑같은 속도로 오직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지 구에서의 1초와 우주 반대편에서의 1초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같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믿음이었다. 즉, 당신과 내가 우주공간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적 절한 통신수단만 있으면 두 사람의 시계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간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장소에 따라 다른 속도로 흐를 수도 있다. 게다가 20세기 후반의 물리학자들 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의 강물에 소용돌이가 생기면 당신을 과거로 데려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물리 학자들은 이것을 닫힌 시간꼴 곡선closed timelike curve, 즉 CTS라 부른다). 또는 시간의 강물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 각기 다른 두 개의 우주(평행우주)를 낳을 수도 있다.
- 아인슈타인은 누군가가 삶의 의미를 물을 때마다 궁색 한 표정을 짓곤 했지만, 신에 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갖 고 있었다. 그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신이 존재하며, 둘을 확실하게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기도할 때 찾는 인격적인 신으로, 성경에 적힌 대로 블레 셋(팔레스타인)을 벌하고 믿음에 보답하는 신이다. 아인슈 타인은 이런 신을 믿지 않았다. 그는 우주를 창조한 신이 인간사에 일일이 간섭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이 믿은 것은 스피노자의 신이었다. 즉, 우주 에 아름다움과 단순함, 우아함을 부여하여 지금과 같은 질 서를 창조한 신을 믿은 것이다. 우주는 추하고, 무작위적이고, 혼란스러운 곳이 될 수도 있었지만, 신은 보이지 않는 곳에 심오한 질서를 숨겨놓았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을 '거대한 도서관에 막 들어선 아 이'에 비유했다. 미스터리로 가득 찬 우주의 해답이 방대 한 양의 책에 적혀 있는데, 그 한복판에 자신이 서 있다는 뜻이다. 그가 일생을 두고 추구했던 목표는 그 책의 단 몇 장이라도 읽어보는 것이었다.
-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질문만 남겨놓고 조용히 사라졌다. 우주가 거대한 도서관이라면 그곳을 관리하는 사서는 누 구이며, 책을 쓴 저자는 누구인가? 모든 물리법칙이 만물 의 이론으로 설명된다면, 그 방정식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가 제기한 또 하나의 질문도 매우 심오하다. '신은 이 세상을 왜 하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창조했을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지금과 같은 모습 을 특별히 선호했던 것일까?'

- '플랫랜드Flatland'라는 2차원 평면세계에 사는 납작한 생명체를 상상해보자(나는 이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이들에게는 2차원 평면이 세상의 모든 것이며, 눈에 보이 지 않는 세 번째 차원은 그저 전설로만 전해져올 뿐이다. 플랫랜드가 처음 창조될 때 아름다운 3차원 수정이 있었 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상태가 불안정해지다가 수백만 조각으로 쪼개져서 플랫랜드에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후 플랫랜드에 거주해온 플랫랜더(평면인간)들은 수백 년 동안 수정 조각을 열심히 모아서 퍼즐을 맞추듯이 쌓아나 갔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두 개의 커다란 수정 덩어리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둘 중 하나를 중력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를 양자이론이라 불렀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두 덩어리는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진취적 사고로 유명했던 한 플랫랜더가 엉 뚱한 제안을 하여 다른 플랫랜더들을 한바탕 웃게 만들었 다. "수학을 이용해서 두 개의 수정 덩어리를 세 번째 방향 으로 쌓아봅시다. 2차원에서는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 으니까, 3차원으로 쌓으면 정확하게 들어맞을 겁니다!" 플 랫랜더들이 반신반의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 번째 방 향으로 수정덩어리를 쌓았더니, 완벽한 대칭을 보유한 아 름다운 원형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 스티븐 호킹은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완벽한 이론이 발견되면 처음에는 일부 과학자들만 이해하 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게 될 것 이다. 그러면 '우주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심오한 토론에 철학자와 과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의 해답을 찾는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무지한 상태로 살아왔던 인간이 드디어 신의 마음을 알아냈기 때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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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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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생물과 산다

과학 2023. 11. 5. 14:03

- 미생물은 또한 우리가 세상에 데뷔할 때, 제일 먼저 나와 환영해 줍니다. 분만 과정에서 산모가 엄청난 산고를 치르는 동안 아기는 산도“를 지나며 거기에 살고 있는 미생물을 온몸으로 맞이합니다. 따라서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와 자연 분만된 아기는 처음부터 다른 미생물을 접하게 됩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가 자연 분만으로 나온 아기에 비해 감염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 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난 작은 친구들이 아기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 아기는 세상에 나온 다음부터 자기를 보듬어 주는 사람들과 음식 등 주변 환경을 통해 다양한 미생물을 받아들입니다. 특히 모유는 좋은 음식뿐만 아니라 좋은 미생물까지 아이에게 전해 주죠. 대표적으로 모유에 많이 들어 있는 비피도박테리아Bifidobacteria는 아기의 면역계 형성을 돕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자연 분만과 모유 수유 등을 통해 만들어지는 '착한 미생물 집단'이 아기 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몸바탕, 즉 '체질' 형성에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 우리 대장균은 대표적으로 비타민 K와 B 등을 생산한다. 혈액 을 응고시키는 효소 가운데 일부는 비타민 K가 있어야만 가능하니 까, 우리가 없다면 사람들은 작은 상처에도 곤혹을 치를 것이다. 비 오틴biotin이라고도 하는 비타민 B1은 또 어떤가? 신진대사를 활발 하게 해 주고, 혈액 순환을 좋게 하여 인간의 탈모를 막아주니 말이 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 우리가 건재하는 한 인간은 이런 비타민 결핍증 걱정을 할 필요조차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대장 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먹은 음식과 함께 들어오는 잡균들은 끼 어들 틈이 없다. 결국 우리가 제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인체에 해가 되는 미생물이 인간 몸속으로 침입하지 못한다. 이렇게 우리 는 우리에게 살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한 인간에게 성심껏 보답하고 있다. 
- 고균은 다른 생물이 살 수 없는 험악한 환경에서도 유유자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미생물 집단이다. 고균의 영문명은 'Archaea' 이다. '고대의' 또는 '원시의'를 뜻하는 접두사 'archaeo-'에서 유 래했다. 이들의 서식 환경이 원시 지구와 비슷하다고 생각되기 때 문이다. 예를 들어 끓는 물에 가까운 온천수나 사해처럼 염분 농도 가 높은 곳이 고균의 보금자리다.
흥미롭게도 방귀 성분의 3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메탄가스 는 일부 고균만이 만들 수 있는, 그야말로 고균만의 특별한 작품이다. 결국 우리 장 속에도 많은 고균이 살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인간에게 병을 일으키는 고균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극한 환 경에서 자랄 수 있는 고균의 특성은 생물공학적 응용 측면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예컨대 섭씨 100도에서도 안정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는 고균의 효소는 산업적 응용 후보 0순위로 꼽힌다.
세균 또는 박테리아Bacteria 영역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능력을 지닌 원핵생물이 속해 있다. 능력에 비해서 이들의 모양은 단순하 다. 대부분의 세균은 동그랗거나 갸름하다. 동그란 세균을 구균 또는 알균, 갸름한 세균을 간균 또는 막대균이라고도 부른다. 어중간 한 경우도 있는데, 이를 구간균이라고 한다. 또 강낭콩처럼 구부러 진 막대균은 비브리오, 구불구불한 모양의 세균은 나선균이나 스 피로헤타라고 부른다. 세균의 크기는 보통 0.2~10마이크로미터 정도다.
작은 균이라는 뜻의 세균은 이름부터가 비호감이다. 국어사 전에서도 균을 "동식물에 기생하여 발효나 부패, 병 따위를 일으 키는 단세포의 미생물로 정의하고 있다. 심각한 오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속담처럼 일부 병원균 때문에 모 든 세균이 박멸의 대상으로 매도되고 있으니 말이다. 
- 낙동강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큰 강은 모 두 서해와 만난다. 이는 서해로 오염 물질(영양분)이 더 많이 유입 되고, 그만큼 부영양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적조는 서해보다 남해에서 더 자주 발생한 다. 왜 그럴까? 중요한 해답 하나는 갯벌에 있다.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히는 우리나라의 서해 갯벌은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갯벌 생태계의 생동감 넘치는 근간은 바로 미생물이 이루고 있다. 갯벌 1제곱킬로미터 km2에 들어 있는 미생물이 하루에 분해하는(먹어 치우는) 유기물 양은 웬만한 도시 하수처리장에서 처리하는 양과 맞먹는다고 한다. 이처럼 갯벌의 탁월한 정화 능력이 서해를 적조로부터 지킨다고 볼 수 있다. 숲이 '지구의 허파'라면, 갯벌은 '지구의 콩팥이다. 그리고 콩팥의 정화 기능은 미생물이 담당한다. 어디 이뿐인가? 갯벌에서 왕성하게 자 라는 미생물은 좀 더 큰 생물들의 먹이가 되어 생물 다양성의 보고를 떠받치고 있다. 그러니 조개와 소라, 낙지 등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맛난 해산물은 미생물이 주는 선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이다.
- 광합성 능력의 원조는 바로 '남세균' 또는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라고 부르는 세균이다. 남세균은 진핵생물인 조 류와 마찬가지로 광합성을 한다. 이 때문에 한때 남조류bluegreen algae라 불리기도 했다. 광합성 과정에서 산소를 생성하는 남세균 은 지구상 생명체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시 지구에 는 기체 상태의 산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식물보다 수백만 년 앞 서 광합성을 시작한 남세균 덕분에 식물이 출현할 즈음에는 지구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이미 10퍼센트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세균의 형태는 다양하다. 이분법으로 분열하는 단세포도 있고, 다중 분열법으로 군체를 형성하는 것도 있으며, 사슬 모양으로 증식하는 것도 있다.
약 30억 년 전에 출현한 원조 광합성 세 균들의 활동으로 원시 지구의 대기 산소량이 꾸준히 늘어났다. 화 석 증거에 의하면, 지구 대기 중에 산소가 축적되는 시점부터 다양 한 생명체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소로 호흡을 하면 상대 적으로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더 크고 다양한 생물이 진화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셈이다. 다시 말해서, 미생물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다양한 삶은 애당초 시작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 말라리아 병원체는 인류가 아프리카 안에서 활동하던 시절 마 주친 유인원류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탈아프리카를 감 행한 인간 숙주와 함께 말라리아 병원체도 퍼져 나갔다. 인류가 정 착 생활을 하기 전에 유행했던 말라리아는 주로 잠복기가 길고 치 사율이 낮았다. 간혹 짧은 잠복기와 높은 치사율을 보이는 돌연변 이체도 있었지만, 이렇게 숙주를 급사시켜 버리는 병원체는 곧 사 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미처 다른 숙주로 옮겨가기 전에 기존 숙주 와 함께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규모로 무리를 지어 이 동 생활을 하던 고인류를 상대로는 고병원성 말라리아가 위세를 떨치지 못했다.
신석기로 접어들면서 인류는 정착하여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 다. 이전 시대보다 안정적으로 식량을 얻게 되면서 정주 인구가 늘 어났다. 말라리아 병원체 입장에서는 감염할 수 있는 숙주가 늘어 난 것이니 그야말로 물고기가 물 만난 격이었다. 특히 그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인류와는 잘 맞지 않았던 (짧은 잠복기와 높은 치사율 때 문) 말라리아 병원체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한 곳에서 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의 새로운 삶의 형태는 공격적인 말라리아 병원체가 번성하기에 아주 좋은 기반이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인 간이 열대열원충에 본격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한 것은 상대적으로 최근, 즉 신석기부터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인간과 이 미생물이 서 로에게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열대열원충의 맹독성에 대한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다.

- 유산균(또는 젖산균)은 탄수화물을 발효시켜 젖산을 만드는 세균 무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들이 만드는 대표적인 발 효 식품으로 김치와 요구르트 등을 들 수 있다. 젖산균의 일종 인 '락토바실루스 아시도필루스Lactobacillus acidophilus'는 사람을 비롯한 동물의 장에 사는 세균이다. 라틴어 학명을 그대로 풀어 보면, 산성을(acido-) 좋아하는(-philus) 젖에 있는(lacto-) 막대균 (-bacillus)이다. 이름 그대로 이 세균은 산성 조건(pH 5.0 이하)에서 잘 자란다. 1900년에 갓난아기의 똥에서 처음으로 분리된 이 세균은 현재 미국식품의약국US FDA에서 그라스GRAS 등급, 즉 일반 적으로 안전하다고 간주되는generally recognized as safe 물질로 분 류하고 있다.
- 「프롤로그」에서 언급한대로, 산모는 10개월 동안 뱃속에서 품은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자신의 미생물을 한껏 전달해 준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엄마의 유익균은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 본 격적으로 전달된다. 미생물이라고 해서 젖가슴 주변에 있는 피부 미생물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충격적일 수 있겠는데, 모유는 무 균 상태가 아니다. 유산균을 비롯하여 다양한 세균이 들어 있는 일 종의 프로바이오틱 음료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모유에 있는 유산균은 가슴 피부에서 발견되는 세 균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유선염을 앓고 있는 산모가 건강한 모유에서 분리한 세균 무리를 먹었더니 항생 제보다 뛰어난 치료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섭 취한 세균이 그 여성의 모유에서도 발견되었다.
먹은 세균이 모유에서 나오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해당 세균이 창자에서 유선 (젖샘)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있어야 한다. 놀랍게도 이는 사실인 것 으로 밝혀졌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유익균이 면역세포의 에스코트(?) 가운데 엄마의 장에서 젖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 뱃속 아기는 양수에서 물장구치며 이를 마시기도 한다. 따라서 양수에 미생물이 존재한다면 태아의 장 속으로 들어올 수 있을 테 다. 실제로 배내똥 세균의 절반 이상이 양수에도 존재한다. 결론적 으로 자궁과 태아 모두 무균 상태가 아니라는 얘기다. 믿기지 않겠 지만, 미생물 친구들은 우리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이미 우리 몸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렇다면 양수에 있는 세균들은 또어 디서 왔단 말인가? 놀라지 마시라! 이들의 근원지가 산모의 입과 장(창자)이란다. 양수 속 세균도 모유 속 세균의 경우와 같은 방법 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입과 장에 사는 세균이 모유와 양수로까지 건너가 살고 있다 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마음을 추스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 다. 우리는 세상에 나오기 전에 부모에게서 유전자와 함께 다양한 미생물을 받는다. 그렇다면 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몸의 생리적 성질이나 건강상의 특질, 즉 체질은 유전자와 미생물의 합작품이 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 냐하면 체질이란 것이 일단 타고난 후에는 교환 불가능한 유전자 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었다면, 체질 개선은 원천적으로 불가 능할 뻔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미생물을 통해 체질을 개 선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장내미생물상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은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단백질 분해 능력이 강한 장내미생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 유산균이 풍부한 음 식은 일차적으로 건전한 장내 세균 집단을 복원시키고, 이차적으 로 건강을 지켜준다.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아셨던 걸까? 다양한 발효 음식을 남겨 주 신 조상들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튼튼한 장을 유지해 주는 건 강식을 매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각종 김치와 젓갈, 된장, 고추장에다 식혜와 막걸리까지 우리 음식 중에는 발효 음식이 아닌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서구식으로 변화된 우리 식 습관이 염증성 장질환자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으려면,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이 5000년 동안 먹 어 온 고유의 음식을 잘 챙겨 먹어야겠다. 자칫하다 남의 똥을 먹 을 수도 있으니! 반대로 좋은 장내미생물상을 유지하고 있으면 건 강에 덤으로 돈까지 찾아온다. '똥값'이 '금값'이 된 시대가 왔으니 말이다.

- 사람으로 치면 친척이라고 볼 수 있는 두 종류의 세균이 있다. 이름만 잘 살펴보아도 이들 세균의 독특한 특성을 알 수 있 다.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Deinococcus radiodurans의 속명은 구균coccus 앞에 '끔찍한' 또는 '소름 끼친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deinos'가 붙어 있다. 종명은 방사능(radio)과 내구성(-durans)을 뜻하는 말의 조합이다. 결국 소름 끼칠 정도로 방사능에 잘 견디는 세균이라는 얘기다. 보통 4개가 붙어사는 이 세균은 인간 치사량의 1500배에 달하는 방사능에 노출되어도 살아남는다.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는 1956년 미국의 한 농업 시험장 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방사선을 이용한 통조림 식품 멸균법을 개발하던 연구진이 강한 방사선 처리에도 살아남아 깡통 속의 고 기를 상하게 한 세균을 분리한 것이다. 이들은 같은 유전자를 여러 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방사선에 의해 손상된 유전자를 즉시 대체 할 수 있고,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이 덕분에 강력한 방사선에 견딜 수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이 세균을 방사능 폐기물 처리 및 오염 지역 정화에 응용하는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 하고 있다.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Thermus aquaticus는 '열'을 뜻하는 그리 스어 'thermos'와 '물'을 뜻하는 라틴어 'aqua'에서 유래한 세균명 이다. 1966년,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온천수에서 분리된 세균이다. 1966년,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온천수에서 분리된 세균 답게 섭씨 70도에서 가장 잘 자라고, 80도까지도 거뜬하다. 하지만 50도 아래로 내려가면 얼어(?) 죽을 판이다. 고온에서 사는 만큼 이 세균의 효소들은 내열성이 강하다. 대표적으로 이 세균의 DNA 중 합 효소Taq DNA polymerase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험관에서 원 하는 유전자를 증폭하는 데 널리 쓰였다. 유전자를 증폭할 때는 열을 가해 이중나선을 떨어뜨리는 과정이 들어가는데, 기존의 효 소들은 열에 약해 한 번 복제할 때마다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번 거로움이 있었다. 또한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었다. 반면 열에 강한 Taq는 계속 재사용될 수 있어서 그만큼 널리 쓰이면서 현대 생명공학의 핵심 기술이 되었다. 이 기술은 범죄 수사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사건 현장에 있는 혈흔 또는 머리카락 한 올 에 있는 소량의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증폭하여 결정적인 증거 를 확보하는 바로 그 기술이다."

- 월바키아 Wolbachia는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감염 세균 집단일 것이다. 1924년에 처음 발견되었지만, 1990년대까지 이 세균에 대 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곤충과 선충 등의 세포 안에서 내부공 생체의 형태로 살아가기 때문에, 보통의 배양 방식으로는 검출하기 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곤충과 선충 종의 75퍼센 트 가량이 이 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대부분의 선 충은 월바키아가 안에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요컨대 항생제를 처리해서 이 세균을 죽이면 숙주인 선충도 따라 죽는다.
월바키아는 일부 곤충에게 극단적인 성차별을 한다. 수컷을 없 애 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당 곤충의 수컷에 감염하면 남성 호 르몬을 억제해서 수컷 곤충의 성을 서서히 암컷으로 전환시켜 버 린다. 반면 암컷에 감염하면, 암컷이 알을 낳을 때 모두 암컷만 태어나게 만든다. 월바키아를 지닌 채 말이다. 이처럼 난자가 정자와 수정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생식 방법을 단성 생식 (또는 처녀 생식)이라고 하는데, 여러 곤충뿐만 아니라 일부 어류와 양서류, 파충류에서도 발견되는 생식 방법이다. 단성 생식에 월바 키아가 항상 관여하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자연 상태에서 그 구성원들끼리 교배하여 자손을 낳을 수 있는 생물 집단을 생물학적 종biological species이라고 한다. 독특한 구애 행동처럼 자연계에는 다른 종과의 교배를 막는 여러 가지 생식적 격리 작용이 있기 때문에, 각 종의 고유한 특성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월바키아에 감염된 말벌에 항생제를 처리했더니, 이 말벌 은 다른 종과 교미하여 잡종 말벌을 낳았다. 월바키아가 말벌의 바람기를 막고 있었단 말인가?
최근에는 월바키아가 자신의 유전자 일부를 숙주로 전달할 수 있고, 전이된 유전자가 발현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세균이 곤 충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고, 미치고 있는지 사뭇 궁금해진 다. 나아가서 아주 오래전에 어떤 세균들이 숙주 세포로 들어와 미 토콘드리아와 엽록체로 진화했듯이, 월바키아 또한 세포소기관으 로 진화될지 모를 일이다.

- 면역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선천성 면역'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가지고 있는 방어 체계다. 건물의 무인경보시스템처럼 선천성 면역은 항상 감시 활동을 하면서 신속히 대응한다. 이 방어 체계가 특정 침입자를 인식하거나 기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 일범이 재차 들어와도 더 신속하고 강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간혹 길을 가다가 불량배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혈액도 온몸을 돌아다 니다 보면 우리 몸에 침입한 병원체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때 일차 적으로 백혈구가 나서서 식균 작용을 통해 침입자들을 물리친다. 메치니코프가 발견한 면역 반응이다
- 선천성 면역의 방어가 뚫리면 '후천성 면역'이 나선다. 후천성 면역은 선천성 면역보다 많이 느리지만 확실히 기억한다. 따라서 특정 침입자에게 특이적으로 반응하며, 다시 만나면 훨씬 더 빠르 고 강하게 응징한다. 이런 맞춤형 반응은 식세포가 침입자를 파괴 해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후천성 면역은 다시 '세포성 면역'과 '체액성 면역'으로 나눌 수 있다. 세포성 면역은 감염된 세포 자체를 직접 공격하여 파괴하는 방식이다. 체액성 면역 은 흔히 면역 반응으로 알려진 항원-항체 반응이다. 에를리히가 주장한 면역 반응이다.

- 학적으로도 흙냄새는 생명의 향기가 맞다. 그 냄새의 실체는 '방선균菌, Actinomyces'이라는 특정 토양 세균 집단이 뿜어내는 화합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1200여 종의 방선균은 대부분 흙에서 산다. 자연의 흙 1그램에는 수백만 마리의 방선균이 들어 있다. 가장 흔 한 토양 세균이다. 실처럼 뻗어 자라는 세균이라는 한자 이름대로 방선균은 마치 곰팡이처럼 자라면서 땅속 영양분을 빨아들인다. 토양 방선균은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이 가운데 '지오스민geosmin'이라는 휘발성이 강한 물질이 있다. 우리의 후각은 이 화합물에 민감하다. 한 여름에 소나기가 쏟아 질 때나 숲 속의 촉촉한 오솔길을 거닐 때 흔히 맡을 수 있는 냄 새다. 지오스민은 흙냄새의 주성분이다. 

- 정상적으로 피부에 사는 미생물의 90퍼센트 정도가 포도상구균이다. 피부에 있을 때 이들은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 만 잘못된 장소, 예컨대 피부에 상처가 나서 살속으로 들어가게 되 면 문제가 된다. 새로운 환경에서 제공되는 수분과 양분 덕분에 이 들은 빠르게 성장하는데, 여기서 세균의 성장이 우리에게는 감염 이기 때문이다.
'황색포도상구균'을 한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식중독 관련 기사는 여름철 뉴스의 단골손님이다. 이들은 노랗기 때문에 라틴 어로 금색을 의미하는 종명을 붙여 Staphylococcus aureus라는 학명이 생겼다.
포도상구균은 건조와 염분, 자외선 등 여러 환경 스트레스에 상대적으로 잘 견딘다. 이 런 특성은 피부 표면에서 살아가는 데에 안성맞춤이 다. 우리 몸에서 황색포도 상구균의 주 서식지는 콧 구멍이다. 인구의 약 20퍼 센트가 이 세균을 콧속에 늘 간직하고(?) 있다. 나머 지는 일시적으로 있기도 하고,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차이는 개개인의 면역계 특이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황색포도상구균을 가지고 있어도 별 문제 는 없다. 콧구멍을 후빌 때에만 각별히 주의하면 된다. 자칫 사방에 이 악명 높은 세균을 묻힐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사소한 부주의로 황색포도상구균이 음식에 들어가면 식중독이 생길 수 있다.

- 효모는 한마디로 숨은 요리사다. 각종 빵과 음료가 모두 이들의 손(?)을 거쳐 가기 때문이다. 현재 1500종 넘는 효모가 알려져 있지만, 우리의 파티를 위해서는 단 1종, 바로 빵효모와 그의 형제 들만 있으면 된다.
빵효모의 학명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 Saccharomyces cerevi- siae'는 각각 '당Saccharo'과 '곰팡이myces', '맥주cerevisiae'를 뜻하는 라틴어를 조합한 것이다. 어원만 보면 '맥주효모'로 부르는 게 맞 다. 하지만 이 효모는 빵과 맥주의 발효를 모두 수행하니까 빵효모 라 불러도 무방하다. 게다가 맥주 발효에는 다른 '형제 효모(변종)' 들도 참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빵효모라는 명칭이 더 나 은 것도 같다.
- 효모는 발효 과정에서 탄산가스(이산화탄소)를 만든다. 이 때문에 빵 반죽이 부풀어 오르고 맥주 거품이 생긴다. 사실 효모를 뜻하는 영어 yeast (이스트)는 네덜란드어 gist에서 넘어왔고, 이 말은 '끓는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맥주 발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효의 산물로 생성되는 이산 화탄소 때문에 위로 떠오르는 효모(상면 발효 효모)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뭉쳐서 바닥으로 가라앉는 효모(하면 발효 효모)도 있다. 상면과 하면 발효 효모를 각각 따로 사용하여 만든 맥주가 에일ale과 라거lager다.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가 대표적인 상면 발효 효 모이고, 유명한 하면 발효 효모로는 사카로미세스 카를스베르겐 시스 Saccharomyces carlsbergensis를 들 수 있다. 보통 상면 발효 효모 는 하면 발효 효모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발효하기 때문에 발효가 더 빨리 끝난다.

- 불꽃처럼 타오르는 생명들
위 소제목은 단순한 문학적 은유가 아니다. 과학적 사실이다. 연소와 호흡은 기본적으로 같은 화학 반응이기 때문이다. 인공호 흡과 모닥불에 하는 부채질을 생각해 보자. 모두 꺼져가는 생명과 불을 살리기 위한 노력 아닌가! 핵심은 산소다. 도대체 여기서 산 소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일까?
국립국어원에서는 연소燃燒를 "물질이 산소와 화합할 때에 많 은 빛과 열을 내는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과학 용어를 사용 하여 재정의하면, 물질이 산화(산소와 화합)되면서 에너지(빛과 열)를 내는 현상이다. 우리도 각 세포에서 음식을 소화해서 얻은 영양분 을 태우고 있다. '칼로리를 태우라'는 다이어트 구호에서 이런 사실 을 엿볼 수 있다.
- 연소와 호흡은 모두 같은 산화 반응이고, 반응의 최종 산물은 이산화탄소와 물이다. 연소 과정에서는 빠르게 한꺼번에 에너지 가 방출되지만, 호흡에서는 천천히 단계적으로 에너지가 방출된 다는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떤 물질이 산소 원자(O)와 결 합하거나 수소 원자(H)를 잃어버리는 것을 산화라고 한다. 이 것의 정반대는 환원이다. 상대적으로 더 환원된, 즉 수소 원자 가 더 많은 물질은 그만큼 에너지가 많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냥 외워도 좋다.
원자는 물질의 기본 구성 단위다. 원자는 하나의 핵과 이를 둘 러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의 수는 원자에 따라 다르다. 핵과 전자는 각각 양성(+)과 음성(-)을 띠는데, 평소에는 이 둘이 상쇄되어 있어서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원자 수준에서도 음양의 조화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자는 수시로 원자 사이를 오간다. 이 것이 화학 반응이다. 따라서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가 전자를 잃 으면 양이온이 전자를 얻으면 음이온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가 먹은 밥이 몸 안에서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살펴보자.
녹말(다당류)이 주성분인 밥은 입과 위, 소장 등을 통과하면 서 소화되어 포도당과 같은 단당류 형태로 분해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 혈액에 의해 각 세포로 전달된다. 세포에 도달한 포도당 (GHzO)은 단계적으로 산화되면서 에너지를 방출하고, 최종적으 로 이산화탄소(CO2)로 전환된다(광합성의 역반응임을 주목). 달리 말 하면, 포도당이 분해되면서 여기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가 수소 원자(H)와 전자(e)에 담겨 방출되는데, 이 에너지를 세포가 사용 한다. 그리고 남겨진 빈 용기인 수소 원자와 전자는 산소와 결합하여 물(HO)이 되니, 산소는 수고하고 지친 수소 원자와 전자를 품에 안아 쉬게 함으로써 대부분 생물(모든 생물이 그러한 것은 아님에 유의 바람. 271쪽 참조)의 삶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생명체 내에서의 에너지 흐름은 결국 전자의 흐름이다. 마치 야구 경기에서 타자가 방망이를 휘두른 힘이 야구공에 실려 이동 하는 것처럼, 수소 원자(H)와 전자(e)를 매개체로 이루어진다. 이 는 1937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얼베르트 센트죄르지Albert Szent-Györg, 189~1986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생명이란 쉴 곳을 찾는 전자다."

- 공생의 길을 개척한 미토콘드리아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는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 들어내는 세포내 발전소다. 앞서 소개한 믹소트리카와 같은 극히 예외적인 생명체를 제외한 모든 진핵세포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있 다. 그런데 이 세포내 발전소의 모양과 특성이 심상치 않다. 미토콘 드리아는 세포의 핵에 있는 유전물질과는 별도로, 자기만의 유전 물질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제와 단백질 합성도 독립적으 로 수행한다.
1967년, 미국의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가 미토콘드리아가 스파이로헤타와 비슷한 세균에서 유래했다는 혁신적인 생각을 내놓았다. 그녀에 따르면, 먼 옛날에 유산소 호흡을 하며 자유생활을 하던 세균이 다른 세포에게 잡아 먹혀 내부로 들어와 독립성을 거의 잃 어버리고 자리를 잡으면서 현재 진핵세포(49쪽 그림 참조)가 탄생했 다는 것이다. 발표 당시에는 냉소를 받았던 (특히 남성 과학자들로부 터) 그녀의 '세포내공생설細胞內共生說, Endosymbiotic theory'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를 지지하는 증거가 많이 발견되어, 이제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미토콘드리아와 세균은 여러 면 에서 닮은꼴이다. 일단 크기가 비슷하다. 그리고 미토콘드리아 리 보솜ribosome은 세포질에 있는 것과 다르고, 세균의 것과 똑같다. 게다가 미토콘드리아와 세균의 유전체가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 마굴리스의 이론에 대해 우리나라의 철학자 김동규는 “포식자 내부에서 공생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이야말로 미토콘드리아에게 배워야 할 지혜"라는 통찰력 있는 설명을 내놓았다(자세한 내용은 그 의 책 『멜랑콜리아』를 참조하자). 먹잇감 입장에서는 포식자의 내부라 는 엄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쳤을 것이고, 반대로 포식자는 이 먹잇감을 소화시키려고 갖은 애를 썼을 터인데, 결국 이 둘은 새로운 공존의 기술을 터득했고, 진화의 신기원을 이루어 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이 철학자의 생각을 접하고 나 니, 살아있는 모든 개체는 혼자가 아니라 미지의 다수가 우연히 만 나 장구한 생명의 역사 속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 생체'라는 생각이 든다.

- 2015년 독일의 한 연구진이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아시네토박터 Acinetobacter는 대장균과 흙에서 흔히 발견되는 세균인데, 연구진들이 아시네토박터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각각 다른 아미노 산의 생산 능력을 없애 버렸다. 그러고 나서 얄궂게도 이들이 만들 수 없는 아미노산을 뺀 배양액에 두 세균을 함께 넣고 지켜보았다. 우리에게는 호기심 천국이지만, 불의의 장애를 입은 세균들 입장 에서는 죽음이 기다리는 지옥 전차에 떨어진 셈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세균 모두 꿋꿋하게 자라는 것이 아닌가! 최첨단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믿지 못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장균이 자기 몸 길이만한 가는 관을 만들어 아시네토박터 세균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나노튜브nanotube가 두 세균의 세포벽을 관통하여 서로 필요로 하는 아미노산을 주고받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달라진 환경에 맞추어,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절묘한 공생의 기술이다.
우리 인간은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 속에서 우리가 잘 살아가려면 타인의 노력을 존중해 주고 타인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 능력을 나누어 서로를 돕는, 그런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공생하며 사는 법을 미생물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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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세계 그 자체

과학 2023. 10. 21. 17:25

-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겠다. 살아 있는 존재는 기계가 아니고, 우리 머리 밖에는 수학이 존재하지 않고, 실재하는 세계 는 시뮬레이션이 아니고, 컴퓨터는 생각하지 못하고, 의식 은 환각이 아니고, 의지는 자유롭지 않다.
나는 이론물리학자이며 수학을 활용해 우주의 토대를 탐 구하는 일로 먹고산다. 역사에서 알 수 있듯 수학은 성공을 거둔 방법이며 우리가 우주에서 발견한 모든 것을 통합적 으로 이해하게 해주었다. 물리학은 우리 주위의 세계가 보 편적 법칙을 따르는 미립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주의 역사가 태초까지 140억 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 을 밝혀냈다. 그러나 우리가 성공에 도취해 쉽게 잊어버리긴 하지만, 수학적 모형과 실제 물리적 세계는 같지 않다.
수학은 우주를 다스리지 않는다. 수학은 우리가 우주에 서 발견한 것을 기술하는 수단일 뿐이다. 자연법칙도 마찬 가지다. 항성들 사이에서나 원자의 가장 안쪽에서 작용하 는 자연법칙 같은 것은 없다. 자연법칙은 우주에 대해 우리 가 아는 것을 우리 나름대로 요약하는 방법에 불과하다. 생 물학적 유기체로서 우리는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최대한 이해하고자 애쓰지만 자연은 자연일 뿐이다.

- 모형을 실재와 동일시하는 이러한 오해의 바탕에는 인간의 의식이 세계 자체보다 우월하다는 이원론적 존재론이 깔려 있는데, 여기에는 역사적 뿌리가 있다. 우리는 필멸하 는 물질을 다스리는 영원하고도 초월적인 영역이 있을 것 이라고 상상하고는 한다. 과학이 우주에 대해 많은 것을 밝 혀냈음에도, 우리는 사실상 종교적 세계관에서 스스로를 해 방시키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개념과 비유는 계속해서 우 리의 사고를 오염시키고, 물리학은 물질을 지배하는 독립적 이고 자율적인 존재를 상정한 채 아름다운 수학적 법칙을 발견하는 과학을 표방한다. 단순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법론은 많은 경우에 성공을 거두었지만 여기에는 위험도 따른다. 우주가 근본적 의미에서 아름답거나 단순하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 머지않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유전 부호를 속속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유전체에 들어 있는 정보는 많지 않다. 당 신의 염기 서열뿐 아니라 친구 여러 명의 염기 서열까지 USB 드라이브에 넣어도 드라이브에 공간이 남을 것이다. 머나먼 미래의 고등 문명이 우리의 염기 서열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해독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며 염기 서열을 우 주로 보낸다고 상상해 보라. 외계 문명이 당신의 복제본을 만들 수 있을까? 어림도 없다.
그것은 단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 로 불가능하다. 설령 염기 서열이 DNA 분자에 기반한 부호 라는 것을 외계인이 알았다 해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마 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항성으로부터 부호를 받았는데 그 것이 유전 부호를 나타낸다는 짐작이 들었을 때 우리는 그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부호가 DNA와 관계가 있 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정보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변환하는 방법을 알아내기에는 부족하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없어도 될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없으면 안 된다.
열쇠는 부호를 해독해 물리적으로 살아 있는 유기체로 구현하는 온전한 세포계에 들어 있다. 부호를 읽을 수 있는 세포가 없다면 DNA 분자는 그저 무의미할 뿐이다. 알맞은 조건을 만나지 못하면 유전자는 다른 분자에 비해 딱히 이 기적이지 않다. 마찬가지로 컴퓨터 코드(부호)는 모든 명령 을 컴파일하고 실행할 적절한 컴퓨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다. 애플 컴퓨터용으로 개발된 프로그램은 윈도 PC에서 돌 아가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적절한 케이블이 없으면 컴 퓨터 배터리를 충전할 수조차 없다. 실제 컴퓨터를 제작하 는 데는 코드를 작성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공이 든다. 이를 테면 우리는 양자 계산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법을 오래전 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 양자 컴퓨터를 제작하는 것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 이렇듯 물질에는 이중적 성격이 있어서, 어떤 때는 파동 으로 기술하는 것이 최선이고 어떤 때는 입자로 기술하는 것이 최선이다. 입자와 파동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해결한 것이 양자역학이다. 조금 섣불리 말하자면 물질은 당신이 보지 않을 때는 파동처럼, 볼 때는 입자처럼 행동한 다. 파동은 존재하는 가능성들을 나타내는데, 당신이 측정 하는 순간에 그중 하나만이 실현된다. 나머지 가능성은 전 부 사라지고 실현된 가능성만 남는다. 파동의 크기는 각각 의 결과에 확률을 부여한다.
측정하기 전에는 어떤 선택도 이루어지지 않음을 명심하 라. 파동성은 실제로 존재하며 수많은 현상을 낳는다. 낱낱 의 입자를 다룰 때는 이 현상들을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양자역학을 큰 물체에 적용할 때뿐이 다. 모든 큰 물체는 작은 물체들로 이루어졌으므로 양자역학 법칙이 큰 물체에도 적용된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양이를 예로 들어보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유명한 사고실험에서 고양이가 죽은 동시에 살아 있는 상태에 놓 인 상황을 상상했다. 이는 원자핵 하나가 붕괴하는지 아닌 지에 따라 이 고양이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원자핵 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고양이는 살아 있지만, 원자 핵이 붕괴하는 순간 고양이는 치명적 독극물에 노출된다. 원자핵은 관찰되기 전까지 두 상태(붕괴하거나 붕괴하지 않 거나)로 존재할 수 있으므로, 고양이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이 모든 현상은 상자 안에서 일어나며, 우리가 상자를 열어 안을 들여다볼 때만 비로소 어느 쪽인지가 결정된다. 고양 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양자역학은 둘 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상자를 열 때까지는 말이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현 상이 실재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 데카르트가 옹호한 이원론은 아직까지도 많은 종교인들 이 천명하는 믿음을 온건하게 반영한 것으로, 그다지 독창 적인 발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제시하여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결론이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게 했다. 오늘날 과학 교육을 받은 이 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몸과 정신의 분리가 별로 인기를 끌 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그들이 남들 앞에서 말하는 바로는 그렇다. 많은 이들이 의식은 물질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물 질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뇌 같은 신체 적 장기에 깃들지 않은 채로 자유로이 떠다니는 자아는 존 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데카르트의 오래된 이원 론은 그 매력을 잃지 않고 현대 컴퓨터과학의 사고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별하는 방식은 몸과 정신을 바라보던 방식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이 런 식으로 컴퓨터 기술은 대규모 연산을 효율적으로 하는 데 관심이 있는 이들뿐 아니라, 데카르트의 '나' 문제를 새롭게 포장하려는 이들을 위한 도구로도 발전했다. 

- 현대 컴퓨터의 발명자 앨런 튜링은 1950년에 발표한 중요한 논문에서 이렇게 물었다.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을까?"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컴퓨터는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튜링은 모방 게임을 상상했는데, 오늘날 '튜링 테스트Turing test'라고 불리는 이 게 임에서 컴퓨터는 인간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상대방을 설득하려 애쓴다. 당신이 계 산주의 마음 이론을 믿는다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컴 퓨터에는 의식이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 지 않다면 당신은 철학적 좀비의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하 는데, 이는 기본 가정에 어긋난다. 존 설 같은 사람들은 이 렇게 콧방귀를 뀐다. 튜링 테스트가 지능에 대해 무언가를 말할지는 몰라도 그 결과가 어째서 의식과 관계가 있다는 거지?

- 중요한 요점은 모형과 실재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한가운데에 있으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서 최대한 많이 배우고 이해하고자 노력할 수 있을 따름이다. 나는 물리학자일지 는 몰라도 우주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물리학을 우 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그럴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 우리는 병에 걸려서야 비로소 우리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세 계의 존재에 묶여 있으며, 어떤 심연이 우리를 그 존재로부터 갈라 놓아 그 존재는 우리를 알지 못하고, 우리도 그 존재에게 자신을 이 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이 존재가 바로 우리 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걱정 말라. 당신이 영혼에 짓눌리더라도 그것이 바라는 것은 깊고 꿈꾸지 않는 잠에 불과하니까 사랑받지 못하는 몸은 더는 어떤 고 통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근육, 뼈, 살갗을 비롯한 모든 것은 재로 돌아가고 뇌도 결국에는 생각하기를 멈출 것이다. 그것이 우리 가 신에게 감사하는 이유다. 존재하지 않는 신에게 걱정 말라. 모든 것은 헛되다. 당신 이전의 모든 이에게 그랬듯 이것은 평범한 이야기다. (마를렌 하우스호퍼, 『오스트리아 먼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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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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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설계

과학 2023. 10. 21. 17:17

- 지구상에서 알려진 모든 생명체는 DNA가 사용하는 4글자 알파벳을 단백질이 이용하는 20글자 알파벳 체계로 번역할 때 똑같은 암호를 사용한다. 생명 탄생의 필연성을 따지는 데 있어 핵심적인 부분은 이런 기발한 암호체계가 어떻게 등장하였는가 하는 것이 다. 생각이 없는 원자들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프트웨어 를 썼으며, 첫 세포를 구축해서 가동시키는 데 필요한 그 특정 형 태의 정보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이 해답은 아무도 모르지만 이 주제와 관련해서 과학자들은 전 통적으로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 진영에서는 이 모든 것이 우연을 통해 일어났다고 믿는다. 생명이란 불가사의한 화학적 요 행의 결과라는 것이다. 무작위의 화학적 혼합물에서 분자들이 우 연히도 적절하게 뒤섞여 생명 탄생에 필요한 정교한 배열을 만들 어낼 확률을 계산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럼 아주 숨이 턱 막힐 정 도로 낮은 확률이 나온다.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 형태가 우 연에 의해 등장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건은 분명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 딱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생물학적 결정론자들은 우연은 부차적으로 작용했을 뿐 이고, 자연의 법칙이 호의적으로 작용한 결과 올바른 분자들이 형 성된 것으로 가정한다. 일례로 미국 생물속생설(biogenesis)의 개척 자 시드니 폭스(Sidney Fox)는 화학이 호의적으로 작용해서 아미노 산들이 생물학적 기능을 갖기에 알맞은 적절한 조합으로 연결된 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연 속에는 생명을 촉진 하는 물질이 만들어지게 하는 내재적 편향(in-built bias)이 존재하 는 셈이다. 이 편향을 음모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 학과 화학 법칙에 생명을 위한 청사진이 들어 있다는 주장이 과연 믿을 만할까? 생명 탄생에 필요한 결정적인 정보량이 그런 법칙 안에 암호화되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 물과 감람석은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물질에 속한다. 태양계 여러 행성의 대기에는 CO2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그렇다면 CO2 역 시 우주에 흔하다는 의미다. 사문석화작용은 자발적 반응이기 때 문에 물과 바위가 많은 행성이라면 어디서든 그 반응이 대규모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주는 단순 세포들로 가 득해야 한다. 생명은 조건만 맞아떨어지면 어디서든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지구 위에서 적절한 조건 이 형성되는 순간 거의 순식간에 생명이 탄생했다고 여겨지는 것 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일단 단순한 생명체가 등장하고 나면, 조건만 적당히 주어지면 차츰 더욱 복잡한 형태로 진화한 다고 가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그런 일이 일 어나지 않았다. 단순 세포가 처음 등장한 이후 복잡한 생명체로 진 화하기까지는 엄청나게 긴 공백이 있었다. 거의 지구 수명의 절반 에 가까운 시간이다. 더군다나 40억 년에 이르는 진화의 역사 중 단순한 생명체에서 복잡한 생명체로의 진화는 딱 한 번밖에 일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충격적일 정도로 진귀한 예외적 사 건이다. 이는 이러한 진화가 대단히 기이한 사건이었음을 암시하 고 있다.
만약 단순 세포가 수십억 년에 걸쳐 천천히 복잡한 세포로 진화했다면 온갖 종류의 중간단계 세포들이 존재했을 것이고, 일부는 지금까지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중간단계 세포가 전 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만 남아 있다. 한편에는 세포의 부피와 유전체의 크기 모두 작은 세균(bacteria)이 존재한다. 이들은 자연선택을 통해 군살을 빼고 최소의 형태로 간 소화됐다. 세포의 전투기인 셈이다. 다른 한편에는 거추장스럽 고 거대한 진핵세포가 존재한다. 이것은 전투기보다는 항공모함에 가깝다. 전형적인 단세포 진핵세포는 세균보다 15,000배나 크고, 유전체도 그에 버금가게 크다.
동물, 식물, 곰팡이 등 지구상의 모든 복잡한 생명은 진핵세포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똑같은 선조로부터 진화했다. 따라서 진핵세 포의 선조를 만들어낸 그 단 한 번의 사건이 없었더라면 식물도, 어류도, 공룡도, 유인원도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순 세포들 은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생명체로 진화하기에 적합한 세포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왜 그럴까? 2010년에 나는 독일 뒤셀도르프대학교의 선구적인 세포생물학자 빌 마틴(Bill Martin)과 이 주제를 탐험해보았다. 우리 는 다양한 세포의 대사율과 유전체 크기에 관한 자료를 활용해서 단순 세포가 몸집을 불린다면 가용한 에너지가 얼마나 될지 계산 해보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국 몸집을 불리는 데 따르는 에너지 불이익 이 상당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세균을 진핵세포의 크기로 키 운다면 유전자당 가용 에너지가 대등한 크기의 진핵세포에 비해 수만분의 1로 작아질 것이다. 그리고 세포들은 유전자당 에너지가 더욱 많이 필요해진다. 유전자로부터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대단히 에너지 집약적이기 때문이다. 세포의 에너지는 대부분 단 백질 생산에 쓰인다.
하지만 여러 복잡한 세포보다 훨씬 큰 세균도 일부 존재하기 때 문에 언뜻 보면 세균이 몸집을 키워서 얻을 것이 없다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 듯 보인다. 검은쥐치(surgeonfish)의 장 속에 사는 에 플로피시움(Epulopiscium)이 그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에플로피시 움은 자신의 완벽한 유전체의 복사본을 최고 200,000개까지 가지 고 있다. 이 다중의 유전체를 모두 함께 고려하면 DNA의 총량이 어마어마한데도 유전자 복사본 각각의 가용 에너지는 일반적인 세균과 거의 똑같다. 아무리 잘 봐줘도 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세포 라기보다는 여러 세포가 하나의 세포로 융합한 공동체(consortium) 에 불과하다.
- 그렇다면 거대 세균은 왜 그렇게 많은 유전체 복사본이 필요할 까? 세포가 막을 사이에 두고 형성되는 역장에서 에너지를 획득 하고, 이 막전위는 번개 불꽃의 전위차와 대등하다는 사실을 떠올 려보자. 세포가 이 전위차를 잘못 다루었다가는 큰일을 당한다. 막 전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순간, 세포는 죽음을 맞이한다. 유 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있는 동료 생화학자 존 앨런(John Allen)은 거의 20년 전에 막전위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유전체가 필수적이 라고 제안했다. 유전체가 단백질 생산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유전체들은 자신이 통제하는 막과 가까운 곳에 자리해야 한다. 그래야 국소적으로 일어나는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앨런과 다른 사람들은 이것이 진핵세포에도 해당하는 사실이며, 단순 세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할 만한 타당 한 증거를 상당히 확보했다.
그러면 단순 세포가 직면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더 크고 복잡 한 형태로 자라려면 세포는 더 많은 에너지를 발생시켜야 한다. 단 순 세포가 이것을 가능하게 할 방법은 에너지 수확에 이용하는 막 의 면적을 넓히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막의 면적을 넓히면서 막전 위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려면 유전체 전체를 추가로 복제해야 한다. 즉, 실제로는 유전자 복제본당 획득 에너지가 전혀 커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단순 세포는 유전자가 늘어날수록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 그리고 유전자가 가득 들어 있는 유전체를 사 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있으나마나한 존재다. 세포가 좀 더 복잡 하게 자라려고 할 때 이것은 커다란 장애물이 된다. 어류나 나무를 만들어내려면 세균이 갖고 있는 것보다 수천 배나 많은 유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핵세포는 이런 문제점을 대체 어떻게 해결했을까? 바로 미토콘드리아의 획득이다.
약 20억 년 전, 한 단순 세포가 어쩌다 다른 단순 세포 안에 들어 가 살게 됐다. 이 숙주세포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 지만 그것이 한 세균을 포획했고, 그 세균이 숙주세포 안에서 분열 을 시작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이 세포 속의 세포들은 후손을 남기기 위해 경쟁했다. 그래서 에너지 생산 능력을 잃지 않으면서 가장 신속하게 복제할 수 있는 세포가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렇게 세대를 거듭하다 보니 이 내공생 세균(endosymbiotic bacteria)은 ATP를 만드는 데 필요한 막과 막전위를 통제하는 데 필 요한 유전체를 모두 가지고 있는 소형 발전기로 진화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결정적이었던 부분은 이 세포들이 가장 기본적인 요 소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벗어던졌다는 점이다. 불필요한 요소 들은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세균 스타일 이라 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3,000개 정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불과 40개 정도의 유전 자만 남아 있다.
- 숙주세포에게는 다른 상황이 전개됐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체가 축소됨에 따라 숙주 유전자는 복사본당 가용 에너지가 커져서 숙주세포 자신의 유전체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토콘드리 아 부대가 ATP를 넘칠 정도로 제공해주는 덕에 숙주세포는 DNA 를 마음껏 축적하며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 미토콘드리아는 DNA 를 세포의 핵 속에 맡겨놓고 다니는 헬리콥터 부대로 생각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체는 자신의 불필요한 DNA를 버림으 로써 더욱 가벼워졌고, 따라서 더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를 수 있게 되어 세포핵 유전체가 훨씬 더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거대해진 유전체가 복잡한 생명체의 진화로 이어지는 유 전적 재료를 제공해주었다. 미토콘드리아가 복잡성 자체를 이끌어 낸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복잡성이 허용된 것이다. 이것 말고는 에너지 문제를 극복할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모든 진핵세포가 하나의 공통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을 보 면 이런 일이 지구 위에서 딱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복잡한 생명체의 등장은 전적으로 단 한 번의 우연한 사건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바로 한 단순 세포가 또 다른 단순 세 포를 자기 안에 끌어들인 사건 말이다. 이런 연합이 복잡한 세포들 사이에서는 흔할지 몰라도 단순 세포에서는 대단히 희귀하다. 그 리고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전혀 확실하지 않았다. 이 긴밀한 두 파트너가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함께 적응에 성공하 고 나서야 그 후손들도 번성할 수 있었다.
- 온갖 종류의 희귀한 사건이 우연히 종분화를 촉발할 수 있다. 물 리적 격리나 유전자의 큰 변화들뿐만 아니라 환경적, 유전적, 심리 적인 사건들도 종분화를 일으킨다. 산맥이 솟아올라 종을 두 지역 으로 나누었을 때도 종분화가 일어날 수 있고, 바닥 근처에서 새끼 를 낳던 어류를 수면에서 낳게 만드는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때도 종분화가 일어날 수 있고, 암컷 도마뱀이 짝을 찾을 때 빨간 점 대 신 파란 점이 있는 수컷을 더 선호하는 변화가 일어났을 때도 종 분화가 일어날 수 있다.
통계적 증거에서 드러나는 핵심 포인트는 종분화의 촉발 요인은 어떤 단일하고 급격한 운명의 변화, 진화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예 측 불가능한 운명의 변화여야 한다고 페이젤은 강조한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돌연변이는 모두 어떤 식으로는 이롭게 작용 했던 것들입니다.”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준 돌연변이가 '올바른' 돌연변이처럼 보이는 것은 그것을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 볼 때 생기는 편견 때문이다. 혹스는 이렇게 말한다. "일이 다 벌어 진 다음에 전체 과정을 뒤돌아보면 마치 놀라운 일련의 사건이 벌 어졌던 것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 행운의 조건
당신은 운 좋은 사람이라 느끼는가? 행운은 우주가 당신에게 안겨주는 어떤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은 일련의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당신이 로미오 같은 운명의 꼭두각시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 대신 그(셰익스피어나 로미오가 아니라 와이즈먼)가 여기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 행운은 당신이 무작위로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이득을 뽑아낼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자신의 행운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 행운의 여신을 자기편으로 만들다
19세기의 화학자 윌리엄 퍼킨(William Perkin)은 콜타르로부터 무색의 항말라 리아제인 퀴닌(quinine)을 합성하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결과물은 선명한 보 라색의 화합물이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합성 유기염료였다.
하이킹을 다녀온 후 가시 돋힌 풀씨들이 바지에 자꾸 달라붙는 것에 영감을 받아 발명가게오르그 데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은 벨크로 접착테이프를 개발했다.
듀폰사의 화학자 로이 플런킷(Roy Plunkett)은 새로운 프레온 냉매에 대해 연 구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담아둔 용기가 미끌미끌하게 코팅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테플론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는 코팅 방법의 시초다.
1930년대에 벨연구소의 공학자 칼 잰스키(Karl Jansky)는 대서양 횡단 무선 통신에서 발생하는 잡음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이 수신기 잡음이 하늘의 한 고정된 방향에서 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견으로 전파천문학(radio astronomy)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탄생한다.
1960년대에 바넷 로젠버그(Barnett Rosenberg)는 전기가 세균에 미치는 영향 을 연구하다가 일부 세포가 세포분열 능력을 잃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결 국 그 범인은 백금 전극에서 나온 부산물로 밝혀졌다. 이것이 바로 가장 효 과적인 항암제 중 하나인 시스플라틴이다.
- 사실 2가지 방법론 모두 강점과 약점이 있다. 데이터 포인트(data point)가 희박하고 실험을 반복할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경우, 어떻게 든 정보를 쥐어짜내는 데는 베이즈식 방법론이 훨씬 효과가 뛰어 나다. 천체물리학을 예로 들어보자. 1987년 근처 은하계인 대마젤 란은하에서 초신성 폭발이 관찰되어 그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 오는 중성미자의 흐름에 관해 오랫동안 제기된 이론을 검증해볼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중성미자는 관측이 어려워 겨우 24개밖에 감지되지 않았다. 반복 가능한 자료가 풍부하게 존재하지 않는 한 빈도주의 방법론은 소용이 없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정보를 빌려 오는 유연성을 가진 베이즈식 접근방법은 여러 경쟁 이론들의 장 점을 평가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을 제공해주었다.
이런 분석을 할 때는 충분한 근거를 갖춘 이론이 제공하는 좋은 사전정보가 도움이 된다. 그런 사전정보가 없으면 베이즈 분석이 결국 쓰레기 정보를 입력해서 쓰레기 정보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법정에서 베이즈식 방법론의 도입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다. 겉으로 보기에 베이즈식 방법론은 여러 원천에서 얻은 뒤 죽박죽 섞인 증거를 종합하기에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이런 문제 가 있다. 베이즈 통계를 사용한 1993년 뉴저지의 친자확인소송에 서 법정은 배심원들이 각자 얻은 사전정보를 이용해 피고가 아이 의 친부일 확률을 결정하도록 했다. 그러자 배심원마다 친부 가능 성을 최종적으로 예상한 통계치가 제각각으로 나왔다. 카네기멜 론대학교의 래리 와서먼(Larry Wasserman)은 이렇게 말한다. "베이 즈식 방법에는 맞고 틀리고가 없습니다. 아주 포스트모더니즘적이 죠.”
- 물리학에서 확률에 대한 의문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세기초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Pierre Simon de Laplace)는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의 결정론적 법칙 때문에 우주의 미래가 영원히 결정 되어 있다고 믿게 됐다.
그러다가 양자역학이 등장한다. 양자역학은 전자나 다른 기본 입자처럼 아주 작은 대상을 기술하는 이론으로, 물질의 속성을 이 해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근본이 되는 이론이다. 양자역학에서 논 란이 되는 부분 중 하나는 양자역학이 물리학의 근본적인 수준에서 확률과 무작위성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주장을 크게 못마땅해하며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십 년 후에는 비선형 동역학(non-linear dynamics) 연구 를 통해 심지어 뉴턴의 고전물리학조차 그 핵심에는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있음이 밝혀져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쯤 되고 보 니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은 마치 하나의 통합원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 희망을싣고 온 운석
약 1억 년 정도마다 거대한 것이 지구를 강타한다. 만약 그 일이 지금 일어 난다면 우리를 모두 싹 쓸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마지막으로 일어났던 충돌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약 6,550만 년 전에 직경 10km 정도 되는 운석 하나가 오늘날의 멕시코 지역에 있는 유카탄 반도를 강타했다. 탄소와 황 성분이 풍부한 기체가 폭발 한 바위층에서 분출하면서 범지구적 재앙을 촉발했다. 여기저기 불꽃이 솟 아오르고, 하늘은 암흑으로 변하고, 지구가 냉각되고, 산성비가 쏟아져 내렸 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만에 공룡들은 죽고 말았다. 암모나이트, 대부분의 조 류(birds), 육상식물을 비롯해서 바다를 헤엄치고 하늘을 날던 다른 거의 모 든 파충류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반면 포유류는 이야기가 다르게 전개됐다. 포유류 역시 종의 절반 정도가 멸종했지만 여기서 살아남은 포유류는 체구가 작고, 번식이 빠르고, 재주가 많은 동물들이었고, 이 충격으로 풍부하게 생겨난 동물 사체 등을 먹고 살 수 있었다. 이들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거나 숨어서 불길과 산성비를 피할 수 있 었다. 이들은 민물 생태계 안이나 그 주변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민물 생태계는 죽은 생물체의 유기물질이 꾸준히 유입되었기 때문에 바다나 육 지보다 재앙에 직면했을 때 회복탄력성이 더 뛰어났다.
이 생존자들이 결국 지구를 물려받게 된다. 생물권이 점차 회복됨에 따라 포 유류는 공룡이 차지하고 있다가 비어버린 생태적 지위를 점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해양파충류의 생태적 지위까지도 차지하게 됐다. 화석 기록을 보 면 진화적 창조성이 폭발적으로 나오던 6,500만~5,500만 년 전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친척뻘 생물종의 유전체를 비 교해서 진화계통수를 재구성하는 분야인 '분자 시계(molecular clock)' 연구에 서는 살짝 다른 그림이 나온다. 여기서는 운석 충돌 후 1,000만 년이 지날 때까지도 포유류가 진화할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어쨌든 간에, 그때 데뷔한 한 포유류 혈통이 바로 우리 영장류다. 만약 그때 그곳에 운석이 충돌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지금 여기 있지 못했으리라 말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레이엄 로턴)
- 있었다. 이들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거나 숨어서 불길과 산성비를 피할 수 있 었다. 이들은 민물 생태계 안이나 그 주변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민물 생태계는 죽은 생물체의 유기물질이 꾸준히 유입되었기 때문에 바다나 육 지보다 재앙에 직면했을 때 회복탄력성이 더 뛰어났다.
이 생존자들이 결국 지구를 물려받게 된다. 생물권이 점차 회복됨에 따라 포 유류는 공룡이 차지하고 있다가 비어버린 생태적 지위를 점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해양파충류의 생태적 지위까지도 차지하게 됐다. 화석 기록을 보 면 진화적 창조성이 폭발적으로 나오던 6,500만~5,500만 년 전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친척뻘 생물종의 유전체를 비 교해서 진화계통수를 재구성하는 분야인 '분자 시계(molecular clock)' 연구에 서는 살짝 다른 그림이 나온다. 여기서는 운석 충돌 후 1,000만 년이 지날 때까지도 포유류가 진화할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어쨌든 간에, 그때 데뷔한 한 포유류 혈통이 바로 우리 영장류다. 만약 그때 그곳에 운석이 충돌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지금 여기 있지 못했으리라 말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레이엄 로턴)
- 지금은 진화가 우리보다 선수 쳐서 이 기술을 사용했음이 밝혀 지고 있다. 생명은 이미 무작위 신호의 혜택을 보고 있었던 것이 다. 어떤 상황에서는 잡음을 조금 넣어주는 것이 주변 환경에 대한 유기체의 감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준다. 예를 들어 가재의 경우 고요한 물보다는 난류로 흐르는 물속에서 포식자 물고기의 미묘 한 지느러미 움직임을 더욱 잘 감지한다. 사람도 살짝 잡음이 보태 졌을 때 스크린 위의 희미한 이미지를 더 잘 인식하는 것으로 밝 혀졌다.
- 영국 생물학자 마이클 챈스(Michael Chance)는 버밍엄대학교에 있 을 당시인 1959년에 변화무쌍한 행동을 의미하는 '프로테우스적 행동(protean behaviour)'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 을 진화적으로 설명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런 설명은 영 국의 두 생태학자 피터 드라이버 (Peter Driver)와 데이비드 험프리 스(David Humphries)가 경쟁자나 먹잇감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도 록 인지 능력을 발달시키는 동물이 많다는 사실을 관찰하면서 시 작됐다. 그럼 자연선택은 예측이 어려운 행동을 만들어내는 메커 니즘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이에 따라 그 천적은 더욱 뛰어난 예측 능력을 발전시키면서 진화의 군비경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법으로 당장 떠오르 는 2가지 전략은 실제 의도를 숨기는 것과 거짓 신호를 내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2가지 모두 적이 훨씬 뛰어난 지각 메커니즘을 진화시키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진화론적으로 안정적 인 전략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군비경쟁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 다는 뜻이다. 수많은 갈등 속에서 이렇게 군비경쟁이 악화일로를 걷지 않게 막는 방법은 게임이론가들이 말하는 '혼합전략(mixed strategy)'을 채택하는 것밖에 없다. 이것은 확률에 근거해 결정을 내리는 전략이다. 이렇게 되면 예측 능력을 아무리 구사해도 소용 이 없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 지휘관들은 이 아이디어를 떠올리 고 주사위 던지기로 순찰항로를 무작위로 골라 다녀서 적군의 구 축함을 피했다. 자연에서는 천적 간의 상호작용이 이와 비슷한 방 식으로 일어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양미리(sand eel)는 보통 떼를 지어 빠르게 움직이는 방식으로 포식자에 반응한다. 하지만 얕은 물에서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는 아주 다른 행동이 나온다. 어군이 깨지면서 각각의 양미리가 무작위 방향으로 쏜살같이 움 직이며 포식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드라이버와 험프리스는 프로테우스적 행동이 종에게 경쟁력을 부여해주기 때문에 주변에서 흔하게 보여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 다. 그러고 나니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사례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갈매기들이 사방에서 급강하하며 침입자 를 떼로 공격하는 행동이나, 임팔라 무리가 교란을 당했을 때 갑작 스럽게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면서 혼란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것 도 다 그런 사례였다.
- 이 프로테우스 전략(proteanism)으로 포식자와 피식자 간의 기이 한 상호작용도 일부 이해할 수 있다. 새들은 새끼들이 들어 있는 둥지로부터 천적의 관심을 따돌리기 위해 부상 입은 척할 때가 많 다. 이 어미 새들은 속도와 방향을 무작위로 변화시키면서 새끼들 로부터 포식자의 관심을 돌리고자 하는 목적과 자기 자신의 생존 을 확보하려는 목적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나방, 도 마뱀, 쥐가 공격받을 때 경련을 일으킨 듯 행동하는 수수께끼 같은 이유도 포식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 위한 전략이라 생각하면 의미가 통한다.
- 경쟁 상황이 찾아오면 사람들 속에서 잠자고 있던 프로테우스 가 밖으로 튀어나온다. 여기서 생물학자들은 사람과 다른 동물들 간에 중요한 차이를 알아챘다. 인간의 경쟁자는 또 다른 인간인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뉴멕시코대학교의 심리학자 제프리 밀러 (Geoffrey Miller)는 이 점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인간만의 독특한 인 지 방식을 갖게 된 것은 우리 선조들의 행동에서 일어난 이런 개 선이 핵심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지닌 무작위로 생각할 줄 하는 재주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해주는 창조적 재능의 원천 인지도 모른다.
- 진화이론가들은 진화적 적응을 질서와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과 정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자연선택은 무작위적인 무질서로부터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규칙성을 구축하는 것 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프로테우스적 행동은 이런 단순한 관점을 거부한다. 프로테우스적 행동은 무작위적이면서도 적응에 이롭고, 카오스적이면서도 자연선택의 결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생물학 자들이 이것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당연한 일이다.
- 즐거운 사건이긴 한데 불확실할 경우에는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가 더 어렵기 때문에 더 오랜 시간 거기에 정신을 쏟을 수밖에 없 고, 따라서 고조된 감정도 그만큼 더 오래 지속된다. 심리학자들이 '즐거움의 역설(pleasure paradox)'이라고 부르는 현상도 이것 때문 에 생긴다. 즉,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를 원하지만 이해하게 되면 뜻하지 않았던 사건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린다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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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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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보는 방법

과학 2023. 10. 13. 20:58

- 오늘날 인간은 꿈속의 환상과 현실의 혼돈 사이에 끼어 걸어 다니는 몽상가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은 정확한 장소와 시간을 추구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석기시대의 감정, 중세시대의 사회기관과 더불어 가히 신적인 기술력으로 스타워즈의 문명을 만들었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과 우리 자신은 물론 모든 생명체에 드리워진 위험으로 우리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몸부림치고 있다. (에드워드 윌슨, 지구의 정복자)
- 안락한 환상보다는 잔인한 진실이 낫다. (에드워드 애비)
- 복잡계에는 행위자의 행동 및 상호작용의 구조와 연관되어 있는 어느 정도의 내재된 무작위성이 들어 있는데 놀랍게도 그 런 무작위성이 유용할 수 있다. 우리는 무작위성에 겁을 낸다. 게다가 현대 기업 경영의 핵심은 어느 과정에서든지 무작위성 의 원천을 제거함으로써 질을 높이는 데 있다. 따라서 무작위성 은 껴안고 가야 할 기회라기보다는 싸워야 할 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복잡계에 대한 연구는 그 반대를 보여준다. 번식할 때의 오류(변이)가 자연선택이라는 방앗간에 빻을 곡식을 제공하여 결과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형태로 끝없이 이어진다는 개념에 기초한 다윈의 진화론은 무작위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윈의 이론과 그 안에 있는 무작위성의 역할은 사실 기복 이 심한 지형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발견'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동물 생태든 신기술이든 간에 새로 운 기회를 발견하는 우리의 능력은 지형이 얼마나 기복이 심한 지와 우리의 탐색 기술에 달려 있다. 단순한 지형에서는 단순한 탐색만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기복이 심한 지형에서 단순한 탐색은 실패한다.
지형은 구성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복 잡해진다. 어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혼합 조제하는 칵테 일 요법을 찾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칵테일 요법에 들어가는 각· 각의 약의 효능이 서로 독립적이라면 각 약제를 한 가지씩 넣어 보면서 최선의 효과를 내는 약제만을 남기는 식으로 가장 좋은 칵테일 요법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약제가 서로 상호작용하면 최선의 효능을 보장하는 명확한 신호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단순한 탐색은 실패로 끝난다.
- 복잡한 지형에서의 탐색 능력은 무작위성을 도입하면 크게 향상될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가 말했듯 "실수는 발견 으로 가는 문이다.” 가장 경이로운 종의 진화 비밀이 변이에 있 듯, 탐색에 오류를 허용하는 것은 발견을 위한 강력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무작위성을 받아들이면 시스템에 대한 통제를 약간 포기해 야 한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결과를 향상시키 고 싶다면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좀 더 일반적 으로, 조심스럽게 통제되는 중앙 집중 시스템은 보편적인 기준 보다는 환원주의 사고에서 나온 현대의 인공물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피드백의 원리, 이질성, 무작위성이 잘 맞아 떨어져 서 중앙통제는 없지만 꽤 생산적인 복잡계를 만든 수많은 사례 가 있다. 효과적인, 분권화된 의사결정은 복잡계에서 생겨나는 가장 좋은,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 중 하나일 수 있다.
-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 이에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복잡한 금융 적응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각 단계에서 혜택이 더 생긴다 는 미명 하에 부가적인 복잡성을 축적해왔다. 즉, 시장을 서로 연계시키면 확실히 가격 차이가 빨리 없어질 것이고, 단타거래 자가 있으면 어느 거래에서든 준비된 거래 파트너가 보장되며, 또 파생상품을 사용하면 농부가 나쁜 날씨의 위험을 피하거나 연기금의 포트폴리오를 보장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등등의 혜택 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런 개별적인 요소들은 이치에 맞 지만 모두 모아 놓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지적했듯 환원주의는 구성주의를 내포하지는 않는다.
- 따라서 시스템의 어느 한 요소에 대한 동기와 이해가 타당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전체의 행태라고 확신해서는 안 된다. 플래쉬 크래쉬는 계획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창발 현상으로 생겨 난 것이다.
플래쉬 크래쉬는 놀라울 정도로 온건한 경고였고, 우리는 반 드시 여기에 주의해야만 한다. 5월, 당시 30분 동안 일어난 사건 은 굉장했지만 돌이킬 수 있었다. 역동적인 사건을 조심스럽게 해부할 때, 우선 그 사건의 몸체의 출현을 막을 위치에 있을 필요가 있다. 불행히도, 플래쉬 크래쉬는 사후적인 연구조사가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는 깜깜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우리가 만들어놓은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것도 시작조차 못한 상태이다.
플래쉬 크래쉬는 이윤을 쫓는 욕심으로 일어났지만, 다행히 도 악의가 아닌 무지에 의해서였다. 악의와 약간의 선견지명이 개입됐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장기적인 손상과 혼란을 상상해보 라. 예를 들어, 테러조직이나 테러지원국이 우리 시장의 기초를 이루는 컴퓨터나 인적시스템에 침입해 훨씬 크고 오래 지속되 는 규모로 피해를 입힌다면 얼마나 어렵겠는가?
- 금융 붕괴와 관련된 주요 시장이 자주 번개 가치는 산등성이에 있는 조림 숲이라고 상상해보자. 때때로 번 개가 나무를 때리면 나무는 불길에 휩싸이고 주변 나무에 불 을 붙인다. 목재 수확을 최대로 하고 싶다면, 더 많은 나무를 심 는 방법과 불길이 번지지 않을 정도의 휴경지를 조성하는 방법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여기서 최선의 선택은 다양한 기본 요소, 예를 들어 번개의 빈도수와 나무의 성장률 등에 달 려 있지만 최선의 선택을 하느냐 마느냐는 그 산등성이를 소유 한 사람한테 달려 있다. 만약 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면, 몇 개 의 화재차단지대를 도입하여 불씨가 전체 산등성이를 태우는 큰 불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각 나 무의 소유주가 다르고 자신이 개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보상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에서는 그런 화재차단지대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모든 개인 소유주는 화재차단지대의 도 입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화재차단지대에서는 목재를 수 확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도 선뜻 차단지대를 제공하려 하지 않 을 것이다. 즉, 화재차단지대는 공급이 부족하여, 훨씬 더 파괴 적인 화재를 초래하고, 좀 더 조정된 체제 하에서 가능한 양보 다 훨씬 적은 양을 수확하게 된다.
금융위기 초기의 담보대출이 이에 해당된다. 어느 누구도 가 능한 거래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으며 즉각적인 이윤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 은행이 다른 은행이 발행한 증권을 보유 하는 것이 개별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비록 다른 은행이 또 다른 은행에서 증권을 샀을지라도 말이다. 이런식으로 계속 가다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은행이 실패하면 약 속된 이윤을 보장하는 전체 시스템이 흐트러지는 지점에 이른 다. 비슷하게, 한 회사가 채무불이행(신용부도스와프라고 알려진) 의 위험에 대해 보험과 같은 보험 증권을 사고팔면서 회사 위치 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 보험 증권 중 하나에서 생긴 손실 은 다른 보험 증권으로 얻은 이득으로 완벽하게 상쇄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회사(AIG라고 알려진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 룹)가 채무를 갚을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전체 시스템이 실 패한다. 이 경우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다른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불합리한 제도 에서 생긴 연쇄적인 연계성이다. 잘 배치된 화재차단지대가 없 다면, 이 시스템은 작은 사건이 재앙 수준의 결과를 내기 쉽게 되어 있다.
- 창발emergence이 우리를 위해 작동할 때,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경이로운 것이다. 창발이 좋은 쪽으로 작동할 수 있을 때 생긴다면, 인생은 좀 덜 흥분되겠지만 훨씬 더 재미있 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불행히도, 겉으로 보기에는 위험하 지 않은 사건이 재앙으로 이어지는 캐스케이드' 를 촉발하는 창 발의 어두운 면을 보았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복잡계는 우 리 세상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시 스템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지만, 금융시장에서 사용되는 서 킷브레이커처럼, 비유하자면 화재차단지대와 같은 것을 현명하게 도입하여 시스템의 부정적인 면을 완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 른다. 하지만 통제의 필요성에 비해 통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한참 뒤떨어져 있다. 빨리 필요한 지식을 발전시켜서, 못 한 개가 없어서 왕국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 안개 속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찾으려다 에베레스트산 아래 개미언덕 위에 서 있는 등반가에게로 다시 돌아가자. 자신이 올랐 던 자리에서 주위를 둘러본다면,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개미언덕을 벗어나서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려면 등반 가는 내리막길을 택해야만 한다. 이는 등반가가 언덕 오르기 탐 색에서 오류를 범할 필요가 있고 적어도 한 발걸음을 내리막길 로 내딛어야만 함을 의미한다. 이 방법은 가능한 한 가장 높은 지점을 찾겠다는 전체적인 목표와 겉으로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길게 보면 이 잠깐의 손실은 훨씬 더 높은 산꼭대기를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경사길로 들어서게 할 가능성이 있다.
필요하다면 내리막길도 선택하는, 오류를 포함하는 확률적 언덕 오르기와 같은 탐색 알고리즘을 흔히들 모의 담금질 simulat- ed annealing이라고 한다. 실제 담금질은 유리나 금속과 같은 물질을 가열한 다음 천천히 식힘으로써 물질의 성질을 향상시킨다. 담금질된 재료 속 원자들은 동등하게 서로 정렬하는 경향이 있 다. 하지만 이런 경향은 열을 가할 때 외부에너지에 의해 들어 오는 소음에 제압되고, 원자들은 사방으로 나뒹군다. 만약 가열 된 물질을 급속하게 냉각하면 냉각하는 순간 원자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 어디든 간에 그렇게 뒤섞인 채로 굳는다. 하지만 물질이 매우 천천히 식으면,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이리저리 방 향을 바꾸는 원자의 움직임이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물질은 대 부분의 원자들이 다시 서로 정렬된 상태로 냉각된다. 흔히 담금 질로 만들어진 고체 구조는 물질이 더 좋은 성질을 갖게 한다. 모의 담금질은 실제 담금질과 매우 비슷한 아이디어를 사용 한다. 오르막길로 가는 바람직한 경향을 가진 표준적인 언덕 오르기 알고리즘을 택하고, 여기에 높은 '온도'로 약간의 소음을 집어넣는다. 이 알고리즘은 여전히 오르막길을 가는 반면, 소음 은 알고리즘이 간헐적인 소음을 받아들이게 한다. 온도가 높거 나 지나치게 많이 내려가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내리막길로 간 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도가 내려가고 내리막길로 가려는 경 향은 잦아들다가 결국은 온도가 너무 낮아져 알고리즘은 순수 한 언덕 오르기로 되돌아간다.
이렇게 탐색과정에 의도적으로 오류를 집어넣으면 기복이 심한 지형 어느 한곳에 갇혔을 때 보통은 빠져나올 수 있는 능 력을 갖게 된다(<그림 5.2> 참조). 본질적으로, 우리가 집어넣은 소음은 그 지형을 진동시키기 시작하고, 더 높은 곳을 가려는 등반가가 예전에는 넘을 수 없었던 장애물을 쉽게 지나가게 해 줄만큼 충분하게 작은 골짜기들을 채운다. 소음은 등반가가 개 미언덕을 내려오게 해주고 에베레스트산 쪽으로 나아가게 한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여기에도 거래가 있다. 소음을 넣으면 적어도 단기간에는 성과가 떨어진다. 후지산처럼 쉽게 오를 수 있는 지형에서는 오르막으로 가는 제대로 된 방향이 가끔씩 내 리막길로 가라는 명령으로 방해되기 때문에 탐색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 물론, 소음으로 인한 혜택은 좀 더 기복이 심한 지형 에서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데 있다. 기복이 심한 지형에 서 소음은 높이가 낮은 국소적인 최적값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 혼합제제의 탐색이 탄탄한 생물학적 시스템과 복잡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에 의한 제약, 법적 제약, 규제 등 다양한 제약으로 인해 단일 제제가 선호된다. 예를 들면, 제약회사는 다른 회사의 약이나 다른 대체 약이 있는 약을 포함할 수도 있는 혼합제제를 찾기보다는 쉽게 팔리는 블록버 스터급 단일 제제를 발견하는 데 (그리고 특허를 내는 데) 역량을 쏟아 붓는다. 정부 규제마저도 단일 제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 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 FDA은 혼합제제는 혼합제제 로서 시험되고 승인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이 과정은 비용 이 매우 많이 든다. 이런 요구는 혼합제제에 들어 있는 약이 개 별적으로 모두 승인을 받은 경우에도 해당된다. 하지만 최근, 일 부 기관에서 혼합제제의 가치를 인식하고 그 사용을 권장하는 희망적인 움직임이 있다.
- 앞으로 10년 안에 개인 맞춤 의약품이라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게 될 공산이 크다. 일례로 현재의 암 치료는 암의 종류 를 지나치게 넓은 범주로 분류하고 나서 같이 분류된 것은 동일 한 질병인 것처럼 취급하고 치료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들은 암 치료에 맞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일반적인 치료법 을 두루 시행한다. 똑같은 치료법에도 사람들이 꽤 다르게 반응 한다는 사실은 암이 훨씬 더 개별적인 특징을 갖고 있음을 암시 한다. 이를테면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은 약에 따라 민감한 정 도가 다소 다른 다양한 종류의 변이가 있다. 좀 더 심도 있는 조 사와 정보가 있다면 그러한 특수한 경우를 많이 밝혀낼 수 있다 고 생각한다. 최근 유전자 분석의 비용이 낮아짐에 따라, 미래의 암 진단은 한 개인의 암 유전자형과 연관이 될 공산이 크다. 
- 꿀벌 군집처럼 개미 군집도 다양한 결정을 해야 한다. 이를 테면 일개미한테 개미 언덕을 보수하라고 시킬 것인지 아니면 먹이를 찾아오라고 내보낼 것인지 등등을 결정해야 한다. 데보 라 고든Deborah Gordon을 비롯한 몇몇 연구자들은 개미가 무엇을 할지 결정할 때, 다른 개미들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많은 다른 개미들이 먹이를 가지고 돌아오는 것을 본 개미는 자기도 나가서 먹이를 모을 것이다. 먹이가 풍부하면, 먹이를 찾는 일은 쉬울 것이고, 먹이를 가지고 더 빨리 돌아올 것이다. 이런 행동은 다른 개미도 먹이를 찾아 나서도록 자극한 다. 만약 먹이가 별로 없거나 주변에 천적이 있다면, 먹이를 가 지고 돌아오는 개미는 거의 없을 것이며 일개미는 다른 일을 할 것이다. 어느 경우든 '다른 개미들이 하는 일을 하라'는 규칙은 군집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활동으로 이어진다.
- 그렇다고 무턱대고 규칙을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은 아 니다. 예를 들어, 군대개미는 다른 개미들이 깔아둔 화학적 신호 를 따른다. 이런 행동은 보통 적응행동인데, 전체적인 지시 없이 오직 지엽적인 신호만으로 군집을 빨리 이동시키거나 먹이 사 냥을 위해서 수만 마리의 개미가 적절한 대형을 갖추는 데 필요 하다. 안타깝게도, 군대개미의 행렬이 부주의하게 자신의 자취 (자신이 전에 깔아둔 화학적 신호)를 따라가기 시작하면서 원형선 회(<그림 7.5> 참조)를 만들고, 결국은 모든 개미들이 원형선회를 하게 되어 전략이 실패로 돌아가기도 한다.
- 기록된 것 중에서 가장 초기의 경매는 기원전 500년경 바빌론에 있었다. 결혼을 위해 여자들이 경매에 붙여졌고, 가장 선호되는 아내감을 낙찰해 생 긴 수익을 인기 없는 아내의 거래를 보조하기 위해 사용했다. 이런 메커니즘은 1990년대에 '피베이트feebate' 시스템의 논의에 서 다시 나타났다. 피베이트는 기름을 많이 먹는 트럭 같은 저 효율 기술에 부과된 세금을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자동차 구입 보조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 루이스 베텐코트Luis Bettencourt, 호세 로보Jose Lobo, 데보라 스트럼스키Deborah Strumsky, 제프리 웨스트 등은 도시 인구수와 관련된 도시의 다양한 물리량에 대해 멱법칙 지수를 계산했다. 노면 의 양이나 휘발유 판매량과 같은 물리량은 아선형으로 스케일 링되는데, 이는 도시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자원의 1인당 사 용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더 큰 도시는 더 작은 도 시보다 1인당 휘발유 판매량이 더 적고, 1인당 노면의 양도 더 적은 편이다. 직관적으로 봤을 때, 도시를 외곽으로 확장하기보 다는 빌딩을 더 높게 짓는 경향이 생기면서 도로가 덜 필요하고, 대중교통은 더욱 발달하게 되어 전반적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은 교통시설이 만들어진고 하면 말이 된다. 대체로 큰 도시는 제반시설에 쓰는 돈을 아끼는 편이다.
경제 생산량, (특허나 R&D 고용으로 측정되는) 독창적인 활동, 범죄나 질병과 같은 기준치는 초선형으로 스케일링된다. 따라서 작은 도시보다 큰 도시일수록 상대적으로 경제적 생산성이 높 고 창의적인 한편, 범죄가 많고 질병이 들끓을 수 있다. 이런 초 선형성은 도시의 사회적 요소와 더 많이 연관되어 있는 편이다.
-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개인과 연관된 주택, 가사 자원의 소비, 고용과 같은 다수의 기준치는 선형으로 스케일링된다. 이는 1인 기준으로 볼 때, 모든 도시가 같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멱법칙 지수는 기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나온 예비적 인 추정치이고 현 상황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제공한다. 지 금 살고 있는 도시와 크기가 매우 다른 도시로 이사 가거나, 새 로운 발명품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회들을 바꾸거나, 성장의 한계가 얼어붙기 시작하거나, 새로운 기술이라는 구명보트가 사 용된다면, 이 법칙이 빗나가는 것을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멱법칙은 우리 미래에 대한 힌트를 준다.
- 추정값이 믿을 만하다면, 세계 인구가 증가하면서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집중될 것이고, 거대 도시는 도로나 연료와 같은 자원의 수요를 덜어줄 것이다. 안타깝게도, 도시화가 더 된 다고 해도 선형으로 증가하는 주택이나 전기와 같이 개인이 필 요로 하는 수요를 경감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미래의 열쇠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이 바로 초선 형' 요소들이다. 대부분의 SF영화에서 암울하게 표현되고 있듯 범죄와 질병이라는 오래된 문제는 도시가 커짐에 따라, 1인 기 준으로 볼 때 더 증가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문제의 스케일링 법칙은 초선형인데 이를 (선형이나 아선형으로) 균형 있게 조정할 수 있어야, 새로 생기는 거대 도시의 일인당 경제성장과 독창성이 증가할 전망이다.
꾸준히 뛰는 심장 박동처럼, 세계 인구는 계속 증가하여 도 시로 집중되고 있다. 아마 도시 집중이 진행되는 와중에, 독창적 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우리에게 할당된 심장 박 동수 이상으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 발리의 농사 이야기는 복잡계에서 발생하는 협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상류의 농부들이 오직 자신의 행복에만 관심을 가지고 물을 독차지해 수확량이 크게 줄어드는 재앙적인 상황에서 시작했다. 그런 다음, 협력이 가능해지고 수확량이 증대 되어 모든 사람들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방식으로 보상이 재편성 되는, 자연과 인간의 복잡한 역학을 덧붙였다. 이 새로운 결과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농사일을 조정할 기구의 필요성이 생겼다. 그리하여 어떤 독단적인 이념을 설파하기보다는 농사의 기본과 관계되는 수문학hydrology, 벼 성장패턴, 해충 개체 수의 역학을 토대로 출현한 종교 시설이 발붙일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생긴 것이다. 종교시설의 설립자나 수행자가 이 사실을 깨닫든 말든 상관없다. 복잡한 자연 시스템과 인간사회 시스템 간의 상호작 용이 상호작용이 없이는 도달하지 못했을) 훨씬 더 좋은 곳으로 전 체 시스템을 이끌었다.
- 조심스럽게 협력하는 전략은 본질적으로 남으로부터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을 진화시킨다. 상대편이 적절한 악수를 하면 상 대편을 자신으로 인식하고, 그렇지 않으면 남으로 인식한다. 이 렇게 자신들끼리만 (협력) 게임하는 전략을 가짐으로써, 협력이 시스템 안에서 생겨나는 것인데, 이는 협력의 딜레마를 쉽게 해 결한다. 협력으로 가는 이 새로운 경로는 친족 선택에 대한 흥 미로운 변종이다. 친족 선택에서 행위자들은 공통의 유전적 기초를 공유하기 때문에 시스템에서 협력이 생겨난다. 이 장에서 살펴본 게임에서 친족 개념은 집단 결집의 의미를 제공하는 악 수의 기능으로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의사소통이 집단 결집을 이루게 한다는 개념은 솔깃한 가정이다. 이는 소통의 출현이 사 회 시스템에서 협력으로 가는 중요한 경로가 될 수 있고, 궁극 적으로 생존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경쟁은 우리를 조금 더 잘살게 하지만, 협력은 놀랍도록 잘 살게 한다는 관찰은 사회의 근본적인 속성일 수도 있다. 안타 깝게도 개인적 보상은 협력보다 경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 아주 다른 두 개의 다른 시스템에 대한 우리의 탐구는 한 줄기 희망을 준다. 발리 농부들의 종교 활동에 대한 주의 깊은 고고학적 연구부터 인위적 진화와 오토마톤의 추상적 이론으로 만들어진 수치적 생태계 분석에 이르기까지, 복잡계 연구에 사용된 다양 한 렌즈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겉으로 보기에는 경쟁을 선호하 는 시스템마저도 협력이 생길 수 있고 유지될 수 있음을 알았다. 아마도 손과 마음을 잇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쉬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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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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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니엄 버그는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즉,숫자를 두 자리만 사용하여 햇수를 저장하므로, 1901년 과 2001년이 구분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문제 해 결을 위해 막대한 노력을 들여 거의 모든 것을 업데이트했다. 그러나 재난을 피했다고 해서, 처음부터 아무런 위험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밀레니엄 버그를 잘 해결했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 Y2K38 버그는 좀 더 근본적으로 컴퓨터 코드를 업데이트해야 하며 일부의 경우 컴퓨터 자체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 199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선 마이크로시스템즈 Sun Microsystems 에서는 새로 입사한 직원이 데이터베이스에서 자꾸 사라졌다. 그의 세부사항을 입력해 넣을 때마다, 시스템이 그를 흔적도 없 이 꿀꺽 삼키는 듯했다. 그의 기록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인 사과의 누구도 왜 자꾸 새 직원 스티브 널 Steve Null이 데이터베이 스에서 삭제되는지 알지 못했다.
인사과 직원은 반복해서 이름인 '널 Null'을 입력했지만, 안타 깝게도 그 직원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데이터베이스에서 NULL 은 자료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스티브 널이 등록되지 않는 것이었다. 컴퓨터 입장에서 그의 이름은 '스티브 제로'나 '스티 브 존재하지 않습니다'처럼 보였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파 악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인사과 직원은 반복해서 스티브의 세부사항을 입력했고, 왜 데이터베이스가 그의 정보를 삭제하는지 고민을 멈출 수 없었다.
1990년대에 데이터베이스가 좀 더 정교해진 이후에도 문제 는 지속했다. 널은 분명 합법적인 이름인데, 컴퓨터 코드에서는 여전히 NULL을 자료가 없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데이터베이스 는 이제 성이 널인 직원을 데이터로 받아들였지만, 새로 발생한 문제는 그를 검색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름이 널인 직원 을 검색하려고 하면, 그런 자료 없다는 대답이 뜨는 것이다.

- 중요한 유효숫자
2017년 2월 BBC는 영국 통계청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ONS 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6년의 지난 3개월 동안, '영국의 실업자 수는 7,000명이 떨어져 160만 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7,000이라는 숫 자는 160만이라는 수가 반올림된 자리보다 낮다. 수학자 매튜 스크록 △Matthew Scroggs는 재빨리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BBC의 보도는 실업 자수가 160만 명에서 160만 명으로 감소했다는 말과 똑같다는 것이다. 본래 값의 유효숫자 아래에서 생기는 변화는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들 은 7,000개 정도의 일자리 수 변화는 한 회사가 문을 닫는 정도의 범 위 안에 있으므로, 경제 전체적인 변화를 가늠하기엔 중요하지 않은 수 치라고도 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영국 통계청은 실업자 수를 발표하며 10만 단위로 반올림했던 것이었다.
BBC의 보도는, 영국 통계청이 실제로 발표한 통계 자료를 첨부하며 다 음과 같이 좀 더 자세하게 수정됐다.
영국 통계청이 발표한 실업자 수를 95퍼센트 신뢰도로 추정하면 80,000명에서 ±7,000명 내외입니다. 따라서 앞서 보도한 7,000명의 감소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습니다.
영국 통계청이 계산한 실업자 수 감소는 73,000명 이상 87,000명 이하 였다. 다시 말해 실업자 수 변화의 폭이 매우 크진 않았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부정적이기보단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이는 '실업자 수가 7,000 명 감소했다'는 말과는 분명 다른 얘기다. BBC가 기사를 좀 더 자세하 게 수정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사고가 생겼을 때 누군가를 탓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그 러나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실수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 재난을 예방하는 방법으로는 너무 순진한 생 각이다. 제임스 리즌 James Reason은 맨체스터 대학교 University of Manchester의 심리학과 명예교수다. 그는 인간의 실수에 관해 연 구한다. 그는 재난에 대하여 스위스 치즈 모델 Swiss Cheese model을 제안했다. 이 모델은 인간 개개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바라본다.
스위스 치즈 모델은 어떻게 '방어 시설, 보호벽, 안전장치 등 이 한 번의 우연으로 뚫리게 되는지' 관측한다. 이 우연은 시스 템을 향해 마구 던지는 돌무더기로 비유할 수 있다. 바로 시스템을 모두 통과해 재난으로 이어지는 돌멩이. 시스템 내에는 많은 층이 있고, 층마다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보호벽과 안전장치 등이 있다. 그러나 층마다 구멍이 뚫려있기도 하다. 마치 스위 스치즈를 얇게 썰어낸 것과 같은 셈이다.
나는 이런 식의 사고 관리 시각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는 분명히 사람들이 실수를 일으킬 확률이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 이다. 현실적인 접근은 바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실수가 재 난으로 커지기 전에 즉각 걸러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단단하게 구성하는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그것은 시스템 측면의 실패이지 개인에게 책임을 씌우려 하면 안 된다.
방구석 전문가로서, 내가 보기에는 토목 분야와 항공이 이런 점에서 뛰어난 것 같다. 이 책의 자료를 조사하며, 나는 많은 사 고 보고서를 읽었고 토목이나 항공 관계자는 시스템 전체를 바 라봤다.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의료나 금융 분야에서는 개인에 게 책임을 덮어씌우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 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문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결과, 시스템은 더 취약해진다.
- 길이에서도 시작점 때문에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그 러나 훨씬 드물긴 하다. 독일의 라우펜부르크 Laufenburg와 스위 스의 라우펜부르크 사이에 다리가 건설되고 있었다. 각자 다리 를 짓되, 중간에서 서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양 측이 다리의 높이를 정확히 합의해야 한다. 해수면을 기준으로 정의하기로 했다. 여기서 문제는 각 나라가 해수면에 대해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던 점이다.
바다는 깔끔한 평면이 아니다.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또 여 러분은 지구의 중력장이 고르지 못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똑같지 않은 중력장 때문에 해수면은 각각 다르다. 그 래서 나라마다 해수면을 정해놓을 필요가 있다. 영국은 남서부 의주 콘월 Cornwall에 있는 뉴린 Newlyn에서 측정한 영국 해협의 평균 높이를 사용한다. 1915년부터 1921년까지 한 시간에 한 번 씩 측정했다. 독일은 북해의 높이를 사용한다. 북해는 독일의 해안선을 이룬다. 스위스는 육지에 둘러싸여 있지만, 지중해의 높이를 이용한다.
- 독일과 스위스의 '해수면 높이가 27cm만큼 달랐기 때문에, 다리는 중간에서 어긋났다. 그러나 이는 수학 실수 때문이 아니 었다. 사실 엔지니어들은 해수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 었고, 그 차이도 27cm로 정확히 계산해냈으나..... 그 차를 반 대쪽에서 뺐다. 각각의 절반이 가운데에서 만났을 때, 독일 측 은 스위스 측보다 54cm 높았다.
이 이야기가 바로 '해수면은 한 번 더 재고, 225미터짜리 다리는 한 번만 지읍시다 Measure sea level twice, build a 225-metre bridge once’ 라는 말의 유래이다.

- 신체 치수 자료를 활용하여 디자인할 때, '평균적인 사람'이 라는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실수한다. 실 제로, 미 공군 가운데 '평균적인 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사람 의 신체 치수가 대단히 다양하다는 뜻이다. <'평균적인 사람?> 중에서. 길버트 S. 대니얼스 Gilbert S. Daniels

- 통계학에서 계산한 숫자는 답을 찾는 일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통계학의 수치에서 실제 답을 얻어내려면 약간의 상식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한편, 여러분이 암 발생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통 계 소식을 듣는다면, 여러분은 사람들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 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가 사실이다. 장수하는 사람 이 꾸준히 늘고 있다. 즉, 사람들이 오래 살다 보니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졌다. 암 대다수에 있어서 나이는 가장 위험한 요인 이고, 영국에서 모든 암의 60퍼센트는 65세 이상의 노인에게서 진단된다. 이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지만, 통계학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숫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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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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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지능

과학 2023. 9. 5. 12:17

- 1858년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Alfred Russel Wallace)와 함께 영국 린네 학회 (Linnean Society)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다윈은 진화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한 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각자 다른 형태, 생리, 행동 등을 보인 다. 즉 자연계의 생물 개체들 간에 변이가 존재한다.
둘째, 일반적으로 자손은 부모를 닮는다. 즉 어떤 변이는 유전(heredity)한다.
셋째, 환경이 뒷받침할 수 있는 이상으로 많은 개체가 태어나기 때문 에 먹이 등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 (competition)할 수밖에 없다. 
넷째,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형질을 지닌 개체들이 보다 많이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자연선택)

- 변이는 더 이상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생명의 역사 한복판에서 변화를 주도하게 되었다. 변이가 없으면 애당초 선 택도 없다. 자연 선택은 변이를 먹고산다.
염색체에는 각각의 유전자가 앉는 자리 (locus)가 있다. 인간 을 포함한 생물들은 각 세포 안에 한 쌍의 동일한 크기와 모양을 가 진상동 염색체들을 갖고 있다. 인간은 하나의 세포 안에 모두 23쌍, 즉 46개의 염색체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난자와 정자를 만들려고 감수 분열 (meiosis)을 하기 전에는 언제나 염색체를 쌍으로 갖고 있 는 배수체 (diploid) 생물이다. 이 때문에 각각의 유전자 자리마다 하 나 또는 두 종류의 대립 인자(allele)를 지닌다. 만일 두 상동 염색체 의 동일한 유전자 자리에 동일한 대립 인자를 갖고 있으면 동형접 합(homozygous) 상태라고 하고 다른 대립 인자들이 앉아 있으면 이형 접합(heterozygous) 상태라고 한다. 따라서 한 개체는 각 유전자 자리에 최대 두 종류의 대립 인자까지 지닐 수 있지만 개체군 전체를 놓 고 보면 그 유전자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대립 인자는 두 종류 이상일 수 있다. 한 유전자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대립 인자의 수가 많을수록 유전적 변이가 다양한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대립 인자들 의 총합이 바로 유전자군을 이룬다.

- 야생 조류의 개체군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개체들로 이뤄져 있 기 때문에 그들 중 한두 마리가 감염되어도 좀처럼 전체로 번지지 않 는다. 그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부족한 개체들 일부가 죽어 나 갈 뿐 유전적으로 다른 대부분의 개체들은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려 죽은 개체들이 비워 준 공간을 메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기르 는 닭은 오랜 세월 특별히 알을 잘 낳는 닭들을 가려내는 인위 선택 (artificial selection)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비록 유전자 복제 기술을 통 해 만들어지진 않았어도 거의 '복제 닭' 수준의 빈곤한 유전적 다양 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일단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닭장 안으 로 진입하기만 하면 모든 닭이 감염되는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우리가 지금 기르고 있는 닭은 원래 동남아시아 열대림에 서식 하는 붉은멧닭 (red junglefowl)을 가축화한 것인데 이제는 더 이상 자 연계에 존재하는 동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들은 그저 알 낳는 기계 일 뿐이다. 알이란 닭들이 우리 식탁에 올려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병아리, 즉 자식을 얻기 위해 낳는 것이다. 도대체 자식을 하루에 하 나씩 낳는 동물이 이 세상천지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닭은 오랜 세월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괴물'이다. 그 괴물이 이제 우 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을 공격하던 바이러스가 언제부터 인가 인간도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류 인플루엔자를 우리가 이처럼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사람과 동물을 모두 감염시킬 수 있는 인수 공통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 몇 년 전 나는 조류 인플루엔자에 관한 토론회에서 이 같은 생물 학적 사실을 설명하고 매년 예산 낭비를 되풀이할 게 아니라 기초연 구를 통해 근본적인 방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하지만 장기간의 기초 연구라면 두드러기 증상을 보이는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득달에 즉시 사용 가능한 방안을 하나 제시할 수밖에 없 었다. 구체적인 방법은 어찌 되었든 닭장 안의 유전적 변이를 높이는 게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야생에 사는 새들처럼 닭장 안의 닭들도 유전적으로 다양한 변이를 갖게 된다면 바이러스가 유행한 다고 해도 실제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어 가는 닭들만 제거하면 될 뿐 닭장을 통째로 초토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전적 변이가 개체군의 건강을 담보한다. 섞여야 건강하다.
- 참으로 기막힌 모순이다. 유전자 치환은 개체는 보다 탁월하게 만들어 줄지 모르지만 개체군은 더없이 취약한 상황으로 내몰 수 있 다. 자연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유전자를 섞어 왔다. 유전 적으로 단순한 그러나 탁월한 개체군은 환경이 안정적으로 유지되 는 동안에는 성공적으로 영역을 넓혀 갈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은 늘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변해 왔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개 체군은 바로 유전적 변이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진정 섞여야 건강하다.

- 고층 아파트에 사는데도 거실 한가운데 로 줄지어 행군하는 작은 개미를 보곤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집에 서 사는 집개미 중에서 아주 작다고 하여 애집개미라는 이름을 얻은 개미다. 영어 이름은 '파라오개미 (pharaoh ant)'인데 이집트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해서 그리 부르기로 한 것이다. 개미들의 제국은 본래 어 느 따뜻한 날 서로 다른 군락으로부터 날아 나온 공주개미들과 왕자 개미들이 이른바 혼인 비행을 하며 짝짓기를 한 다음 충분한 정자를 비축한 차세대 여왕개미가 양지바른 곳에 굴을 파는 식으로 건설된 다. 그런데 애집개미의 공주들은 오라버니들과 잠자리를 같이하여 정자 주머니 가득 정자를 채운 다음에는 그저 여행 가방이나 이삿짐 에 올라타 어디든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기만 하면 그곳에서 애써 같 은 종의 수컷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곧바로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애집개미는 지금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아 파트를 석권했다. 자연계에는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불리하거나 유리한 전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진화에서 유효 개체군의 크기가 중요한 것은 유효 개체군이 작을수록 개체군 내의 대립 유전자 빈도가 임의로 변화하는 현상인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의 영향이 커지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과 유전적 부동은 진화의 양대 메커니즘이다. 자연 선택이 다분히 결정 론적인 작위적 과정이라면 유전적 부동은 개체군 내의 대립 유전자 빈도가 말 그대로 임의로 변하는 무작위적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유 전적 부동은 종종 자연 선택이 애써 다듬어 놓은 적응 체계 (adaptive system)를 해체시켜 버린다. 자연계의 진화가 방향성을 지니기 어려 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계학적 개념으로 보면 유전적 부동은 다름 아닌 '표본 오차(sampling error)'에 지나지 않는다. 무작위적인 표본 추출로는 결코 훌륭한 적응 체계를 만들어 낼 수 없지만 하릴없 이 변화하는 유전자 빈도, 그것 또한 엄연한 진화의 모습이다.

- 조물주의 존재를 부정하는 『종의 기원』의 불온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다윈에게 가해진 종교적 또는 사회적 탄압은 사실 그리 심하 지 않았다. 영국 성공회는 다윈의 주검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모시 는 것에 대해 그리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보다 나은 형질이 자연적 으로 선택되는 것이 진화의 메커니즘이라면 자연 선택의 궁극적인 결과로 신의 선택을 받은 '완벽한' 종인 인간이 진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영국의 종교계는 다윈의 이론을 신 의 인간 창조를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이해하고 자연 선택의 메커니 즘을 다분히 진보의 개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 생명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복잡한 생물이 보다 단순한 생물로 부터 진화한 것은 사실이나 모든 생물의 구조가 언제나 단순한 데에 서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보다 복잡한 생물도 등장한 것이지 결코 모든 생물이 좀 더 복잡하 게 변화하는 방향성 같은 게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단세포 생물 중에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렇다 할 변화도 겪지 않고 살아남 은 것들이 있는가 하면 비교적 최근에 분화된 것들도 있다. 이렇듯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다.
2002년에 타계한 하버드 대학교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 드는 그의 저서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Wonderful Life)』에서 만 일 우리가 지구의 역사가 담긴 영화를 다시 돌린다고 할 때 마지막 장면에 우리 인간이 또다시 등장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고 설명 한다. 한 종의 인간을 꽃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운 것 도 아니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운 것도 아니다. 인간은 이 지극히 무계획적이고 무도덕적 (amoral)이며 비효율적인 자연 선택 과정의 우연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 다윈의 자연 선택 메커니즘을 설명할 때 흔히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란 표현을 쓴다. 그런데 이 표현은 다윈 자신의 표현이 아니다. 스스로 '다윈의 불도그'를 자처하며 다윈의 이론을 알리고 변호하던 스펜서가 1864년에 만들어 널리 퍼뜨린 이 말은 정확하게 번역하면 '최적자의 생존이라고 해야 한다. 나는 이 표현이 알게 모 르게 '최고', '일등', '유일' 등을 앞세우며 과열 경쟁을 부추긴 죄인 중 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선택 과정에서 언제나 최고의 단 한 개체만이 살아남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개체군 내에 존 재하는 변이의 스펙트럼 어느 지점에 자연 선택의 칼날이 내려칠지 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함께 경쟁하는 다른 개체들보다 조금이라 도나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면 그만큼 생존과 번식에서 유리한 위치를 갖게 되리라는 의미에서 'survival of the fitter'라는 비교급의 개 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윈은 뒤늦게 '적자 생존'이라는 용어 와 거리를 두려 노력했고 사과까지 했지만 스펜서가 씌운 굴레를 걷 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다윈이 최상급이 아니라 비교급을 제안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하느님이 미리 예정해 놓은 것을 펼쳐 보인다는 의미 를 지닌 영어 단어 evolution이 동양으로 건너오면서 얻은 번역어인 '진화(化)'에는 아예 '나아갈 진(進)'이 포함되어 있다. 독일의 신학 자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그의 저서 『오시는 하느님 (Das Kommen Gottes)』에서 미래를 'Futurum/Future'과 'Adventus/Advent' 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Futurum은 아직 지나가지 않은 과거일 뿐 이고, 기독교적인 시간인 Adventus는 미래에서 시작하여 현재를 거 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개념이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다윈 이 오랫동안 evolution이라는 용어 사용을 꺼린 데는 상당히 깊은 신 학적 이해가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서양의 이 같은 심란한 단어를 동 양에서는 너무 쉽게 처리하는 바람에 진화와 진보의 관계를 더욱 혼 란스럽게 만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언론에서는 '진화'라는 단어 를 '변화'의 대용어쯤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은연중 에 '바람직한 변화', 즉 '진보적 변화'를 말할 때 진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듯이 보인다.
- 비록 나는 이 글에서 진화는 결코 진보적 변화가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지만 사실 진화 생물학계는 이 문제를 두고 두 진영으로 갈려 있다. 다윈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양 진영을 왔다 갔다 한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했던 로마의 철학자 프 로타고라스(Protagoras)처럼 지금도 일부 진화 생물학자들은 지성이 나 감정 이입 등 우리 스스로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인간의 속성들 은진보적 진화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나의 스승인 하버 드 대학교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생물의 진화를 전체적으로 바라 봤을 때 엄연히 진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고 믿는 쪽이다. 하 지만 그의 제자인 나는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굴드 진영에 가깝다. 『풀하우스(Full House)』에서 굴드는 진화란 단순한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온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이전 글을 읽은 독자라면 내가 얼마나 굴드를 불편해 하는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모든 게 싫은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 진화이 론의 발달에 여러모로 공헌했다. 진화와 진보의 관계에 대한 그의 명쾌한 설명도 그중 하나다.

- 적응(adaptation)은 진화 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진 화 생물학에서 말하는 적응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얘기하는 적응, 즉 새로운 환경 조건에 서서히 익숙해지는 과정과는 다른 것이 다. 진화적 적응은 그것을 지닌 생명체로 하여금 보다 잘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전적 특징을 말한다. 1996년 윌리엄스는 "진화적 적응은 오로지 자연 선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라고 단언 했다. 1859년 『종의 기원』 6장에서 다윈이 했던 다음 말을 이어받은 것이다. "만약 수많은 연속적인 사소한 변화들을 통해서는 형성될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기관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나 의 이론은 완전히 뒤엎어질 것이다.” 하지만 다윈은 그의 이론에 대 한 확신을 다음 문장에서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경우를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윌리엄스는 진화적 적응은 자연 선택을 통해서가 아니면 절대 로 만들어지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특별하고도 성가신 개념이며, 우연이 아니라 분명히 설계에 따라 만 들어진 게 아니면 어떤 효과라도 기능이라고 일컬어서는 안 된다."

- 그런데 정말 척추동물의 눈은 완벽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가? 공교롭게도 척추도 없는 무척추동물 중에도 우리와 상당히 비슷한 구 조의 눈을 가진 동물들이 있다. 바로 오징어, 문어, 낙지 등 연체동물이다. 오징어의 눈과 인간의 눈을 위아래로 잘라 단면을 비교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서로 전혀 다른 진화의 역사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구조와 기능을 갖게 된 이른바 ‘수 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의 좋은 예다. 그런데 오징어의 눈과 우 리 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세 한 가지 뚜렷하게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시신경과 실핏줄이 망막의 뒷면에 붙어 있는데 비해 다른 하나는 망막에 구멍을 뚫고 시신경과 실핏줄을 동공 안 으로 끌어들여 망막의 내벽에 붙여 놓았다. 도대체 왜 멀쩡한 스크린 에 구멍을 뚫고 깨끗한 상이 맺혀야 하는 스크린의 앞면에 그것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일까? 과연 오징어와 인간 중 누가 그런 어리 석은 구조를 가진 눈의 소유자일까? 답은 뜻밖에도 우리 인간이 그 렇게 비합리적으로 설계된 눈을 가졌다는 것이다.
- 인간은 누구나 시각적 맹점 (blind spot)을 갖고 있다. 시신경 다발 을 눈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뚫어 놓은 구멍에 간상세포와 원추세 포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우개가 달린 연필을 눈높이에 들고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만 지우개 끝에 초점을 맞춘 다음 눈의 방향을 고정시킨 채 연필을 서서히 오른쪽으로 움직여 보라. 연필이 시선 방향으로부터 20도 정도 움직인 지점에 이르면 지우개가 보이 지 않을 것이다. 왼쪽 눈도 마찬가지로 중앙선에서 약 20도 왼쪽 지 점에 맹점을 가지고 있다.
망막 위에 분포하는 혈관들도 그들의 그림자 때문에 작은 맹점 을 여럿 만든다. 어쩌다 혈관들을 망막 위에 붙여 놓는 바람에 생긴 이 문제 때문에 비유를 하자면 진화의 역사 내내 엄청난 소비자 진정 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리콜(recall)'을 해서 문제 해 결을 위해 노력한 결과 우리 눈은 순간순간 조금씩 다른 각도를 보려 고 끊임없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이같이 엄청난 양의 정보가 두뇌 에 전달되어 끊임없이 분석 종합되는 덕분에 우리는 우리 시야에 있 는 영상을 지속적으로 보고 있다고 느낄 뿐이다. 잘못된 설계를 근본 적으로 뜯어 고치지는 못하고 그저 보완책을 강구한 것이다.
- 이 같은 이른바 역망막 (inverted retina) 현상은 단순한 시각 감손 은 물론 각종 심각한 임상 문제들을 일으킨다. 대수롭지 않은 출혈도 망막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심각한 시각장애를 불러올 수 있다. 또 간상세포와 원추세포가 망막으로부터 쉽게 분리되어 눈 안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일단 이런 증상이 발생하면 그 진행 속도가 점진 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시각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 안과 의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수술이 백내 장 수술이고 다음이 바로 망막 박리 방지 수술이다. 이런 여러 설계 상의 문제점을 고려해 보면 오징어의 눈이 인간의 눈보다 훨씬 더 합 리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셈이다. 만일 완벽한 눈을 설계하는 사람에 게 상금 1억 원을 주는 공모전이 벌어진다면 멀쩡한 망막에 구멍을 내는 설계도를 제출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 왜 인간의 눈은 이렇게도 불합리하게 만들어졌는가? 자연 선택은 왜 좀 더 완벽한 설계를 만들어 내지 못했는가? 문제는 바로 인류 가거쳐 온 진화의 역사에 있다. 뒤집힌 망막의 설계는 인간만의 문 제가 아니라 거의 모든 척추동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 이다. 척추동물의 눈은 작은 조상 동물들의 투명한 피부 밑에 있던 빛에 민감한 세포들로부터 발달했다. 당연히 이 세포들에 혈관과 신 경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상태에서는 다분히 합리적인 설계였을 것 이다. 하지만 수억 년이 흐른 오늘에도 빛은 어쩔 수 없이 혈관과 신 경을 지나쳐야만 시각 세포에 도달할 수 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 은 설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진화에는 이처럼 역사적 제약(historical constraint), 또는 계통적제약(phylogenetic constraint)이 있다.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제약 때문에 애꿎게 해마다 수많은 사람 이 음식물로 기도가 막혀 목숨을 잃는다. 갓 앞니가 나온 아이들이 특별히 자주 희생 제물이 되는데 소시지나 당근을 앞니로 끊어 삼키 다가 변을 당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몇 차례씩 저녁 뉴스 시간에 이른바 하임리히 (Heimlich) 응급처치를 훌 륭하게 해내며 기도가 막혀 숨을 쉬지 못하는 엄마의 목숨을 구한 꼬 마들이 등장한다. 기도에 음식물이 막혀 캑캑거리는 엄마의 명치를 주먹을 쥔 채 순간적으로 압박하여 막혀 있던 음식 덩어리가 튀어나 오게 한 꼬마에게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대며 어디에서 배웠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유치원 또는 캠프에서 배웠다고 대답한다. 
- 그런데 도대체 왜 음식물이 가끔 기도를 막는 일이 발생하는 것 일까? 문제는 우리 몸의 배관에 있다. 코로 들이마신 공기와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이 목 부위에서 무슨 까닭인지 애써 교차하며 서로 자 기관을 찾느라 힘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를테면 교통사고다. 입 보다 위에 있는 코를 통해 들어온 공기가 애써 목의 앞쪽 관으로 올 필요가 없도록 기도가 식도 뒤에 위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우리 몸은 어찌 보면 식도와 기도의 위치가 뒤바뀐 것처럼 보인다. 반면 코 밑에 있는 입을 통해 들어온 음식물은 억지로 기도의 뒤에 위치하는 식도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 문제 역시 소비자들의 빗발 치는 원성에 못 이겨 거의 눈가림 수준의 해결책을 내놓았는데, 그게 바로 후두개(喉頭蓋, epiglottis)다. 후두개는 우리가 음식을 삼킬 때는 기도를 막았다가 숨을 들이마실 때 열어 주는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 는데 때로 실수를 해서 음식물이 기도를 막게 되는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구조적 결함 역시 다 조상 탓이다. 그 옛날 우 리가 물고기였을 시절에는 물속에서 아가미로 호흡을 했다. 입으로 물을 들이마신 다음 아가미를 통해 빠져나갈 때 산소를 걸러 마시던 물고기들 중 일부가 뭍으로 올라가기 위해 숨쉬기 운동을 시작했다. 숨쉬기 운동을 하려고 생겨난 콧구멍이 배에 있는 물고기보다 등에 있는 물고기들이 훨씬 유리했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이때 엇갈린 두 관의 위치를 바꾸지 못한 채 대대로 물려받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 무슨 재료라도 가져다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공학자와는 달리 자연 선택은 이처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을 가지고 그 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 『적응과 자연 선택』의 저자이자 다윈 의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조지 윌리엄스는 1957년 국제 학술 지 《진화(Evolution)》에 발표한 논문에서 아주 좋은 예를 들어 이를 설 명했다. 칼슘의 대사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유전자는 사고로 부러진 당신의 뼈에 부지런히 칼슘을 공급해 빠른 시일 내로 뼈가 다시 붙을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건 당신이 젊 었을 때 얘기고 나이가 들어 어쩌다 골반에 금이라도 갈라치면 젊었 을 때처럼 그리 활발하게 돕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연신 동 맥 구석구석마다 칼슘을 쑤셔 넣는 짓에는 열심을 다해 결국 심각한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며 호시탐탐 당신의 목숨을 노린다. 한 유전자 가 한편으로는 생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을 주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죽음의 벼랑으로 떠미는 것이다. 이처럼 표리부동(表裏不同) 한 유전자들을 데리고 생명체를 완벽하게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 으리라.

- 자연 생태계의 얽히고설킨 관계망 속에서 무수히 많은 다른 생물들과 공진화하며 어느 한 방향으로 일관성 있는 적응 체계를 만들 어 낸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19세기 영국의 작가 피터 미어 래섬 (Peter Mere Latham)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완전한 계획을 세우려는 것은 쇠퇴의 징조이다. 흥미로운 발견이나 발전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완벽한 연구실을 설계할 시간이 없다." 자연의 강은 완벽의 정상을 향해 거슬러 오르지 않는다. 그저 구불구불 흘러갈 뿐이다.

- 남용과 오용 모두가 문제다. 예전에 미국에 살 때 열이 너무 심하게 오르거나 콧물이나 재채기가 멈추질 않아 병원 을 찾으면 우선 그런 증상을 유발하는 장본인이 세균인지 바이러스 인지를 가리기 위해 병원균 배양시험부터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 서 세균성으로 밝혀지면 항생제를 처방하지만 만일 바이러스가 원 인으로 판정되면 집에서 편히 쉬며 물을 많이 마셔 몸 안에 들어온 바이러스를 열심히 씻어 내라며 약도 주지 않고 돌려보낸다. 바이러스는 완벽한 의미의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항생제로는 구제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환자들은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주사도 놓아주지 않고 약도 주지 않은 채 돌려보내면 의사가 돌팔이라며 몰 아세운다. 그래서 단순한 감기 환자도 애꿎은 주사도 한 대 맞고 두 툼한 약봉지를 손에 쥐어야 뿌듯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선다. 그 주사액과 약 속에는 우리 몸을 편안하게 해 주는 성분이 들어 있다. 내일 아침 중요한 시험이 있어 지금 그 준비를 해야만 한다면 그런 약의 도움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이른바 '감기약' 을 복용한 사람은 당장 몸은 조금 편할지 모르나 병은 하루나 이틀 정도 더 오래 앓는 것으로 밝혀졌다.
- 세균성으로 진단되어 항생제를 처방받는 과정에도 미국과 한국은 큰 차이가 있다. 미국 의사들은 대개 2주일 분량의 항생제를 주 며 증상이 없어지더라도 반드시 끝까지 다 복용하라고 당부한다. 하 지만 지금까지 내 경험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달랑 3일 치 를 주는 게 고작이다. 미국 의사들이 2주일치의 약을 주며 전부 복용 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 몸이 설령 증상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편안해 지더라도 잠입한 세균을 모두 제거한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처방된 약을 끝까지 복용하는 것은 환자 자신에게도 좋은 일 이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공동체 전체에도 좋은 일이다. 어느 정도 몸이 편안해졌다고 약을 끊은 채 외출해 콧물 훔친 손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손도 잡고 얼굴에 재채기를 해 대면 아직 채 박멸되지 않은 세균들이 감염되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며칠 동안의 투약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은 세균들은 그만큼 내성이 강한 것들일 확률이 높으며, 이런 일들이 사회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면 결국 우리 주변에는 내성이 강한 균주들만 득시글거리게 되는 것이 다. 우리의 무책임이 불리한 자연 선택을 부추기는 셈이다. 남용뿐 아니라 오용도 심각한 결과를 빚는다.

- 오랫동안 벌새의 꽃가루받이 생태를 연구한 진화 생물학자 폴 이월드(Paul Ewald)가 쓴 명저 『전염성 질병의 진화 (Evolution of Infectious Disease)』(1993년)의 출간과 더불어 우리는 병원균의 독성이 그 전염 메커니즘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감기 바이러스가 감염된 사람을 너무 아프게 만들어 전 혀 외부 출입을 못하게 하면 다른 기주로 옮아 갈 경로를 스스로 막 는 셈이 된다. 반면 직접 전파(direct transmission)에 의존해야 하는 바 이러스와 달리 말라리아 병원균은 감염된 사람이 중간 숙주인 모기를 쫓을 기력조차 없을 정도로 아프게 만드는 게 더 유리하다.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가 파리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처럼 민첩하면 말라리아 병원균은 다음 숙주로 전파 되기 어렵다. 감기에 걸려 죽는 사람은 많지 않아도 말라리아는 여전히 우리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으로 남아 있는 까닭이 바로 간접 전파(indirect transmission)에 있다.
- 사회적 감염으로 집단 면역을 얻으려면 구성원의 50~90퍼센 트가 감염되고 최소 60퍼센트가 면역돼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필연 적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사망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집단 면역은 다분히 진화론적 발상이다. 야생 동물 집단에서는 수시로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생명은 소중한 것이며 내 생명은 더욱 소중하다. 국 가가 집단면역 정책을 채택할 경우 사망하는 사람 중에 내가 포함된 다면 나는 결코 그 정책을 따를 수 없다. 진화는 낭비를 선택했다. 엄 청나게 많이 태어나 대부분이 죽고 극히 일부만 살아남아 번식에 이 르는 게 냉혹한 진화의 현장이다. 그 어느 정부도 함부로 진화적 정책을 추진해 국민의 목숨을 낭비할 수는 없다.

- 자연계에서 아주 드물게 수컷이 선택권을 행사하는 모르몬 귀뚜라미 (mormon cricket)의 경우에는 암컷에게 구애 선물로 바치는 정 낭(spermatophore) 하나를 만드는 데 수컷 몸무게의 거의 27퍼센트가 소모된다. 하룻밤에 네 번만 정사를 나누면 그야말로 공중 분해를 면 치 못하는 엄청난 수컷의 투자가 수컷으로 하여금 선택의 권한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 수컷 경쟁 체제를 택한 수컷들은 자기들끼리 경쟁 과정을 거쳐 순위를 정함으로써 암컷의 선택권을 상당 부분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다. 흔하진 않지만 때로는 수컷 경쟁을 통해 정해진 '내정 (default)' 순위를 거부한 채 버금 수컷(beta-male)과 짝짓기를 하는 암컷들이 있다. 데이터의 양이 충분하지 않아 아직 논 문으로 펴내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민벌레 (Zorotypus barberi) 연구에 서 꼭 버금 수컷과 짝짓기를 고집하는 암컷들을 추적 관찰한 경험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수컷들 간의 경쟁 구도가 바뀌었을 때 다른 암 컷들처럼 새로 등극한 으뜸 수컷과 또다시 짝짓기를 해야 하는 번거 로움을 피할 수 있었다. 몸길이가 비록 2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곤충이지만 마치 권력 구도의 변화를 예측이라도 하는 것처럼 행동 하는 그들이 내겐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 아름다움과 힘으로 승부할 수 없을 때 선물 공세로 암컷의 환심 을 사려는 수컷들이 있다. 밑드리 (scorpionfly)라는 곤충의 수컷들은 먹이가 될 만한 곤충을 잡아 암컷에게 선사하고 암컷이 그 선물을 먹 는 동안 짝짓기를 한다. 식사와 정사를 한꺼번에 해치우는 결코 낭만 적이지 않은 밑드리 암컷을 위해 수컷들은 조금이라도 더 큰 선물을 잡아 바치려 노력한다. 미국 뉴멕시코 대학교의 랜디 손힐 교수는 이 구애 선물이 크면 클수록 암컷에게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아짐은 물 론, 큰 선물일수록 암컷이 먹는 시간이 길어지며 보다 많은 정자들이 암컷의 난자들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갈매기를 비롯한 많은 새들도 짝짓기 과정에서 수컷이 암컷에 게 먹이를 선물로 바친다. 새끼가 태어났을 때 과연 먹이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가장이 될 것인가를 가늠하듯 암컷은 선물 을 다 먹어 보고 나서야 수컷에게 짝짓기를 허용한다. 인간사회에서 도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할 때 흔히 반지를 선물하는데 동물들의 구 애 선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 춤파리과(Empididae)에 속하는 파리 수컷은 다른 곤충을 먹이 로 잡아 그것을 암컷에게 청혼 선물로 주고 암컷이 그 선물을 먹 는 동안 교미를 하는 풍습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풍선파리 (balloonfly)라고 불리는 종들은 더욱 정교한 구애 행동을 보인다. 풍 선파리 수컷들은 먹이로 잡은 곤충을 스스로 분비한 생사(生絲)를 이용해 선물 포장을 한 다음 암컷에게 바치는 상당히 세련된 구애 행 동을 보인다. 그런데 어떤 수컷들은 이보다 한술 더 떠 먹이를 잡지 도 않은 채 속이 텅 빈 선물을 포장해 암컷에게 준 다음 암컷이 그 선 물을 뜯는 동안 교미를 마친다. 요즘 환경 보전을 위해 상품의 과대 포장을 줄이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쯤 되면 과대 포장의 극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짝짓기를 마친 다음에도 수컷의 시름은 끝이 나질 않는다. 초여름 연못가에서 한가롭게 나는 실잠자리나 늦여름 온 하늘을 뒤덮는 잠자리들이 종종 마치 2인승 자전거를 타는 연인들처럼 앞뒤로 붙 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잠자리와 잠자리의 수 컷 생식기에는 마치 주걱처럼 생긴 기관이 있어서 수컷이 일단 암컷 의 질 속으로 들어간 다음 만일 다른 수컷의 정액이 있는 걸 발견하 면 그걸 죄다 긁어 낸 다음에야 자신의 정액을 사정한다. 그래서 짝짓기를 마친 다음에도 암컷을 놓아 주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붙들고 다니는 것이다. 이 같은 정자 제거 (sperm displacement) 전략은 꼴뚜기 에서도 관찰된다. 꼴뚜기 수컷은 셋째 다리를 사용해 암컷의 구강막 (buccal membrane)에 붙어 있는 다른 수컷의 정자 덩어리를 제거한다. 유럽의 바위종다리 (dunnock) 수컷은 교미하기 전에 암컷의 꽁무니 근처의 배설강(claoca) 부위를 계속 쪼아 대어 결국 암컷으로 하여금 이전 수컷의 정액을 분출하게 만든 다음에야 짝짓기를 한다. 상어는 우리 여성들이 관수기 (douche)로 질을 세척하는 것처럼 암컷의 질 속으로 엄청난 양의 물을 뿜어낸 다음 자신의 정액을 주입한다.

-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에게 해로운 돌연변이들이 축적되어 결국에는 멈추게 되는 현상을 흔히 '멀러의 깔축톱니 (Muller's ratchet)'라고 부르는데, 그 반대로 유성 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DNA 복구 메커니즘(DNA repair mechanism)'을 이용해 수시로 유전자의 결 함을 제거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이 같은 '유전자 다양성 (genetic diversity)' 가설들은 처음에는 다분히 집단 선택 가설에 기반 을 두고 개발되었지만 차츰 개체 수준의 설명으로 다듬어졌다. 유전 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만들어 내면 그만큼 오랜 기간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시간적인' 가설들과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이 생태적으로 다양한 니치(niche)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공 간적인' 가설들이 제기되어 이제는 성의 진화를 설명하는 한 축으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 이 세상에는 도대체 몇 개의 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런 의심 없이 성이란 당연히 암수 둘뿐이라고 생각할 것 이다. 그렇다면 현화식물, 즉 꽃을 피우는 식물의 경우를 들여다보 자. 절대 다수의 현화식물은 한 꽃에 암술과 수술을 모두 가지고 있 다. 적어도 형태적으로는 암수한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화식물 에서 같은 꽃의 암술과 수술 간에는 서로 꽃가루를 주고받지 않는다. 동물계에서 근친상간을 피하는 적응 메커니즘들이 진화한 것과 마 찬가지로 식물에서도 자가 수분을 방지하는 다양한 메커니즘들이 개발되어 있다. 암술과 수술의 시간차 발달이 그런 메커니즘의 하나 로 대부분의 꽃에서는 수술이 먼저 발달한다. 꽃이 피면 우선 꽃가루 를 다른 꽃으로 보내는 일부터 시작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벌이나나 비가 꽃가루를 거의 다 실어 나르고 나면 수술들은 시들기 시작하여 차츰 고개를 숙이고 그들 사이로 암술이 우뚝 서게 된다. 그때부터는 주로 남의 꽃가루를 받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부분 의 꽃은 우선 수컷으로 태어났다가 점차 암컷으로 변해 간다. 살면서 자연스레 성전환 수술을 받는 셈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꽃의 성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을까? 처음 에는 온전히 수컷으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꽃가루를 보내 기도 하지만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암수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기능적인 암수한몸이다. 수술들이 모두 시들고 난 후에야 거의 완벽한 암컷이 된다. 식물학자들은 이 과정을 식물, 또는 더 엄 밀히 말하면 꽃의 젠더가 변화하는 과정으로 본다. 한 지역의 꽃들을 놓고 볼 때 형태적으로는 암수한몸인 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로 다른 사회적 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한 꽃 을 지켜본다면 처음에는 100퍼센트 수컷으로 시작했다가 이를테면 78퍼센트 수컷 (즉 22퍼센트 암컷), 36퍼센트 수컷 (64퍼센트 암컷)을 거 쳐 99퍼센트 암컷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화식물에는 도대체 성 이 몇 개가 있는 것인가? 온전한 수컷에서 거의 완전한 암컷에 이르 기까지 그 모든 정도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성 이 존재한다. 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우리 인간의 관점이 언제나 자연계의 가장 보편적인 관점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 동성애 성향을 발현하는 유전자가 중립적 (neutral)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번식의 측면에서 분명히 불리해 보이는 형질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걸 보면 직접적으로, 또는 적어도 간접적 으로 동성애 유전 형질은 선택적 이득을 갖고 있어야 한다. 2004년 에 발표된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교의 연구는 지금까지 시도된 연구 들 중 가장 그럴듯한 근거를 제공한다. 그들은 100명의 이성애자 남 성과 98명의 동성애자 남성들을 대상으로 친척들의 인적 사항에 대 해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모두 4,600명의 정보를 분석한 결과 동성 애자 남성들의 여자 친척들이 이성애자 남성들의 여자 친척들보다 더 많은 수의 자식을 낳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애자 남성들의 어머 니들이 평균 2.7명의 자식을 낳은 데 비해 이성애자 남성들의 어머니 들은 2.3명의 자식을 낳았다. 이모들의 경우도 2.0명과 1.5명으로 동성애자 남성들의 집안이 훨씬 더 높은 번식 성공률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비록 외가쪽에서만 나타났지만, 남성의 동성애를 유발하는 유전 형질이 여성들의 생식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쩌면 동일한 유전자가 남성의 경우에는 동성애를 유발 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이성, 즉 남성에 대한 성적 호감을 더욱 자 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유전자는 동성애를 유발하는 유전자라기보다 남성에 대한 성적 호감을 자극하는 유전자라고 보 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강조하건대 이런 경우 '유전자'라고 할 때 그것은 결코 하나의 유전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 성향처럼 복합적인 심리 또는 행위의 조절이 달랑 유전자 하나에 달려 있을 확률은 극히 낮다.
동성애 유전자가 반대 성의 생식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같은 성에도 이득을 줄 가능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동성애 유전자 는 남성은 좀 더 여성적으로 만들고 여성은 보다 남성적으로 만드는 경향을 보이는 듯하다. 2008년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진이 4,904쌍의 쌍둥이들에게 익명으로 그들의 성적 성향, 스스로 판단한 자신의 젠 더 인식, 평생 경험한 성 상대자의 수 등을 물은 결과, 보다 여성적인 남성과 다분히 남성적인 여성들이 훨씬 더 많은 성 상대를 경험한 것 으로 나타났다. 다른 진화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이 배란 시기에 임박했을 때에는 다분히 마초 기질의 남성에게 끌리는 경 향이 있지만 다른 시기에는 보다 부드럽고 배려 깊은 남성을 선호하 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하면 여성들이란 때로 우락부락한 남성 과 바람은 피울지 모르나 남편으로는 다정다감하고 협조적인 여성 적 남성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흔히 이 세상이 온통 불륜 으로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세상 많은 자식들은 결국 남편들의 자식일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성애 성향을 유발하는 유전 형질이 때로 소수의 사람들 에서 극적인 발현을 보여 그들을 동성애자로 만들기도 하지만, 그렇 지 않은 경우에는 그저 적절히 여성적으로, 또는 남성적으로 만들어 줌으로써 이성에게 보다 매력적이 되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 해밀턴의 이론에 따르면 번식이란 결국 유전자들이 자신들의 복사체들을 퍼뜨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버드 대학교 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의 표현을 빌려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얻기 위해 잠시 만들어 낸 매개체에 불과하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흔히 뜰에 돌 아다니는 닭들이 각자 모이도 쪼아 먹고, 때론 싸움도 하고, 짝짓기 도 하고, 알을 낳고 살다가 죽는 걸 보며 닭이라는 생명의 주인은 당 연히 닭이라는 개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버틀러와 윌슨의 관점에 서 보면 닭은 기껏해야 몇 년 동안 알을 낳고 살다가 한 줌 흙으로 돌 아가는 덧없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 닭을 만들어 낸 유전자는 그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왔고 어쩌면 영원히 그의 후손으로 이어져 갈 존재이다. 

- 사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이유는 먹이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밝 혀졌다. 관찰해 보니 기린들은 먹이가 귀한 건기에도 나무 꼭대기가 아니라 어깨 높이에 있는 잎들을 주로 따 먹는단다. 기린의 목이 길 어진 진짜 이유는 짝짓기에 있었다. 길고 굵은 목을 가진 수컷들이 싸움도 더 잘하고 암컷들에게도 더 매력적이란다. 그러니까 기린의 목이 길어진 과정에는 자연 선택보다 성 선택의 영향이 훨씬 더 컸던 것이다. 함부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범 한 형질들의 배후에는 성 선택이 자연 선택보다 훨씬 자주 버티고 서 있는 듯싶다.
하지만 이쯤에서 조금 엉뚱한 질문을 해 보자. 기린의 목이 정말긴 것인가? 기린은 사실 목보다는 다리가 긴 동물이다. 기린이 물을 마실 때나 땅에서 자라는 풀을 뜯을 때는 다리를 굽히거나 양쪽으로 벌려야 한다. 그렇다면 다리 길이에 비해 기린의 목은 사실 짧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기린의 목은 몸통에 비해 긴 것일 뿐 다리를 포함한 몸 전체와 비교하면 그리 긴 게 아닐 수도 있어 보 인다. 몸통도 위아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을 뿐 거대한 심장을 담기 위해 양옆으로 상당한 부피를 갖도록 진화한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물에 대해 면밀한 상대 성장(allometry) 에 대한 측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사뭇 신기한 일이다. 아울러 수컷 기린의 목이 길고 두꺼워진 과정을 성 선택 메커니즘으 로 설명한다면 암컷 기린의 목과 다리도 만만치 않게 길어진 점도 설 명해야 할 것이다.

-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2013년 내가 출간한 책의 제목이자 평생 자연을 관찰하고 내린 내 나름의 결론이다. 내가 관 찰한 바에 따르면 이 세상은 손잡은 자들이 미처 손잡지 못한 자들을 물리치고 사는 곳이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을 전수 조사한 것은 아니 지만 내가 아는 한 살아 있는 생물 중 짝이 없는 생물은 없다. 1967년 에 발표된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세포 공생설은 가히 혁명적 이었다.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원래 독립적으로 생활하던 세균이었는데 더 큰 세균 안에 들어가 공생하게 되 었다는 그의 주장에 매료되어 1976년 가을 서울대에서 열린 "전국 대학생 생물학 심포지엄"에서 논문을 발표하며 학자로서 내 삶이 시 작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먼 훗날 나는 서울대 교수가 되어 헌법 재판소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여성 유전 현상을 설명하며 남성 중심 '호주제의 모순을 지적하게 되었다.
마굴리스의 연구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이제 생물학은 세포 수 준을 넘어 개체 수준의 공생을 연구하고 있다. 키, 몸무게, 나이, 성별 에 따라 다르긴 해도 인간 어른은 대개 30조개의 인간 세포와 39조 개의 미생물 세포로 이뤄져 있다. 세포 수로만 보면 나는 진정 내가 아니다. 거대한 미생물 생태계와 손잡은 공생체다.

- 전중환 교수는 2019년에 펴낸 『진화한 마음』에서 진화 심리학의 핵심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복잡한 구조는 기능을 반영한다.
둘째, 마음은 인류의 조상들이 수렵 채집 생활에서 직면했던 적응적 문제들을 해결하게끔 설계된 심리적 적응들의 묶음이다.
셋째, 서로 다른 적응적 문제들에 각각 맞춰진 다수의 특수화된 심리기제들이 진화했다.
넷째, 적응은 과거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므로 오늘날에도 반드시 번식 성공도를 높여 주는 것은 아니다.

- 진화 심리학은 사회 생물학에 대한 탄압이 약간 수그러들기 시 작하던 1990년대 초에 태동했고 다수의 사회 생물학자들이 기꺼이 진화 심리학으로 전향했다. 나도 그중 하나다. 2003년 국제 학술지 《진화 심리학 (Evolutionary Psychology)>이 창간될 때 편집진으로 초대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그러나 전향은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 생물학과 진화 심리학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 이다. 현대 인간사회의 대부분은 일부일처제 사회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포유동물의 번식 구조는 거의 어김없이 일부다처제다.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영장류로는 올빼미원숭이 한 종과 긴팔원 숭이들뿐이다. 인간은 사회적으로는 일부일처제로 보이지만 유전 적으로도 그런지는 들여다봐야 한다. 도덕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었던 지미 카터 (Jimmy Carter) 전 미국 대통령도 언젠가 성인 잡지 《플레 이보이 (PlayBoy)》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음으로는 수없이 많은 간통 을 저질렀다.”라고 고백했다. 우리의 심리와 실제로 드러나는 행동 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사회 생물학이 드러나는 행동의 사회적 진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진화 심리학은 그런 행동을 유발하는 심리 기제의 진화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통해 자연 선택 이론을 진화의 기 본 메커니즘으로 제시했지만, 실제로 생존의 현장보다 더 극적인 진 화적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 번식이다 보니 1871년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제시한 성 선택 이론이 인간 심리 분석에 훨씬 큰 영향 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짝짓기와 부모의 투자는 진화 심리학에 서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주제다. 다음으로 활발한 연구 주제가 역시 짝짓기와 집단 생활이 빚어내는 문화의 진화이다 보니 기존의 전통적 심리학 분야들 및 인접 학문들과 진화 심리학의 관계 정립 또한 중요하다.

- 자연 과학은 분야마다 그 분야 전체를 포괄하는 이론적 체계가 있다. 물리학에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이 있다면, 화학에는 원자 론이 있다. 생물학은 다윈의 진화론이 포괄하고 지질학은 판구조론 으로 통합된다. 심리학에는 다양한 심리 현상을 일관되게 설명하는 통합 이론이 없다. 심리학자들은 그동안 특정한 방식으로 마음을 움 직이는 근접 원인(proximate cause)을 찾는 데 천착하느라 마음이 왜 그런 식으로 작동해야 하는지 궁극 원인 (ultimate cause)을 찾는 데 소 홀했다. 2009년 4월 나는 다윈의 사도들』이라는 책을 집필하기 위 해 하버드 대학교 언어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를 인터뷰했다. 나는 그 에게 진화 심리학의 미래에 관해 물었고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는 진화 심리학이 심리학의 독립된 분과 학문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심리학 전반에 걸쳐 제기되는 질문이 되는 게 아니라 그저 심 리학의 한 분과가 된다면 실패라고 생각한다. 진화적 기원과기 능에 관한 질문들은 독립된 분야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 심리학 의 모든 분야에 스며들어야 한다." 진화 심리학이 심리학 전체를 관 통하는 이론적 바탕을 제공하리라 기대한다.

- 영국 리버풀 대학교 진화 생물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음악이 언어와 마찬가지로 집단 구성원 간의 결속을 강화시켜 주는 일종의 '상호 털 고르기 (mutual grooming)' 기능을 한다고 설명한다. 침팬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장류 동물이 서로 털을 손질해 주며 관 계를 돈독히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던바는 언어란 결국 서로 털 고르기를 하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기 위해 진화했 다고 주장한다. 음악 역시 상당히 대규모로 동료의식을 고취하고 결 속을 다지는 데 사용된다. 우리 대부분은 「아침 이슬」과 「오필승코 리아」를 부르며 서로 어깨동무가 되어 본 경험을 갖고 있다.
던바의 가설은 최근 대표적인 집단 선택론자인 데이비드 슬론 윌슨에 의해 새롭게 포장되어 부활했다. 음악 활동은 개인에게는 손 해를 끼치지만 집단 전체에는 이득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연 선택되 었다는 윌슨 특유의 논리로 던바의 개체 선택 이론에 야릇한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는 윌리엄 해밀턴의 혈연 선택론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인간은 진화의 역사 대부분을 가까운 친족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집단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설령 음악 활동으로 인해 자신에 게는 손해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것은 결국 유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기적인' 행동인 셈이다. 음악 의 진화에 구태여 집단 선택론을 끌어들일 까닭이 있을지는 좀 더 생 각해 볼 일이다.
그리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꼭 짚고 넘어 가야 할 가설로 캐나다 맥길 대학교 심리학과 샌드라 트레헙 (Sandra Trehub) 교수의 이른바 '자장가 가설 (lullaby hypothesis)'이 있다. 칭얼 대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흥얼거리기 시작한 자장가로부터 음악이 탄생했다고 설명하는 가설이다. 엄마와 아기의 유대 관계는 모든 인 간 문화권에 다 존재하며, 음악에 대한 관심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타나고, 어린 시절 습득하는 언어와 관련하여 음악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언어 영역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가설 의 타당성은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인간을 제외한 그 어느 영장류 동물에서도 자장가와 흡사한 그 어떤 흥얼거림도 관 찰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진화 생물학적 가설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 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가설은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의 스티븐 핑커가 주장하는 것인데, 앞의 가설들과 달리 독특하게 비적응주의 적 가설이다. 일명 '치즈케이크 가설 (cheesecake hypothesis)'이라 불리 는 그의 가설에 따르면, 음악이란 그저 다른 목적으로 진화한 우리 두뇌의 어떤 메커니즘의 우연한, 그러나 "행복한" 부산물에 불과하 다고 설명한다. 배꼽이 탯줄이라는 적응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 처럼 음악은 그저 "귀로 듣는 치즈케이크(auditory cheesecake)"란다. 치즈케이크는 달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게끔 진화한 우리 신경 회 로를 보다 효율적으로 자극하도록 제작된 인공물일 뿐 생존과 번식 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핑커의 주장은 사실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윌리엄 제 임스(William James)의 의견을 이어받은 것이다. 제임스는 일찍이 음 악을 "어쩌나 생겨난 순전히 청각 기관을 갖고 있는 바람에 생 겨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핑커의 설명은 진화심 리학에 기반하고 있는데, 인간의 마음이란 어느 한 가지 기능만을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다뤄야 하는 '다목적 사고 장치 (all-purpose reasoning device)'라고 믿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두뇌는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여 러 '모듈'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기왕에 다른 기 능을 위한 모듈을 설정한 다음 그것의 부산물로서 음악을 설명한 까 닭은 무엇일까? 음악 또는 예술을 담당하는 모듈을 가정하지 않는 핑커의 가설이 제시하는 '특별한' 이유들이 내게는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 진화 생물학자들에게 따라다니는 가장 더러운 욕 중의 하나가 바로 '유전자 결정론자'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진화 생물 학자도, 이 점에 있어서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도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매 순간 유전자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고 믿 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란 유전자와 환경이 함께 조율하며 연출해 내 는 것이다. 유전자란 도킨스의 설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이들의 생각처럼 이기심이라는 심성을 지닌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다. 유전자 는 그저 어떤 단백질을 만들라는 지령을 담고 있는 화학 물질에 지 나지 않는다. 유전자로부터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거의 한치 의 오차도 없이 진행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백질들이 모여 생명체 의 몸과 정신을 이룬다. 이 과정에는 상당한 변이가 나타난다. 아무 리 동일한 단백질들을 가지고 만들어도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형태 는 사뭇 다를 수 있다. 행동이란 형태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는 더욱 많은 편차가 존재한다. 한때는 행동도 과연 유전하느 냐는 질문을 놓고 생물학계에서 논쟁을 벌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행동의 유전적 근거를 의심하는 과학자는 없다. 만일 문화를 '한 개 체군의 모든 행동 유형의 집합체'라고 정의한다면 문화도 그 근원을 파고들면 결국 유전자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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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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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굉장한 세계

과학 2023. 8. 28. 17:22

- 맬컴 매키버의 주장에 따르면, 동물들이 육지로 이주했을 때 더 넓어 진 시야로 인해 계획과 고급 인지능력의 진화가 촉진되었다고 한다. 요 컨대 그들의 환경세계가 확장됨에 따라 마음도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환경세계를 탐구하는 행위는 우리로 하여금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햄릿이 허레이쇼에게 애원하는 대목을 떠올린다. "하늘과 땅에는 당신의 철학에서 꿈꿨던 것 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이 인용문은 종종 '초자연적인 것을 포용하 라'는 호소로 받아들여진다. 나는 오히려 그것을 '자연을 더 잘 이해하 라'는 외침으로 간주한다. 다른 동물에게는 자연스러운 감각이 우리에 게 초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고통 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어항에 담긴 금붕어를 불쌍히 여기며, 금붕어가 어항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우리의 감각도 우리 주변에 어항을 만드는데, 그 어항은 일반적으로 통과를 허용하지 않는다.
-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언젠가 말했듯이, "진정한 항해는 하나밖에 없으니 (...) 낯선 땅들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다른 눈을 소유함으로써 (...) 각각의 눈이 바라보는 100개의 우주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제 항해를 시작하기로 하자.

- 냄새 전용 어휘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수렵채집 부족인 세마크베 리족, 마니크족과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의 자하이족 사람들은 이의 를 제기할 것이다." 자하이족은 냄새를 표현하기 위해 한 다스의 단어 를 사용한다. 그중 하나는 휘발유, 박쥐의 배설물, 노래기의 냄새를 기 술한다. 다른 하나는 새우 페이스트, 고무나무 수액, 호랑이 고기, 썩은
심지어 후각망울은 냄새를 맡는 데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2019년, 탈리 와이스Tali Weiss는 이 구조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음에도 냄새를 잘 맡는 여성을 여러 명 확인했다.19 그녀들이 냄새를 맡는 방법은 아무도 모른다.
- 고기의 냄새를 나타낸다. 또 다른 하나는 비누, 두리안 과일의 톡 쏘는 냄새, 빈투롱'의 팝콘 같은 냄새를 가리킨다. "자하이족 사람들은 냄새 에 대해 이렇게 쉽게 이야기해요"라고 심리학자 아시파 마지드Asifa Majid 는 말한다. 그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영어 사용자가 색깔에 이 름을 붙이는 것만큼이나 쉽게 냄새에 이름을 붙인다. 토마토가 빨갛듯 이, 빈투롱은 '피트ltpit'한 것이다. 또한 냄새는 그들의 문화에서 기본 적인 부분이다. 마지드는 언젠가 자하이족 친구들로부터, '연구원과 너 무 가까이 앉아 있게 하는 바람에 냄새가 뒤섞인다'라는 비난을 들었다 고 한다. 한번은 그녀가 야생 생강의 냄새에 이름을 붙이려고 했다. 그 러자 아이들은 그녀가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줄기와 꽃이 각각 독특한 냄새를 가진 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식물 전체를 하나의 대상으로 취 급했다며 놀렸다고 한다. "연구 대상이 영국인과 미국인이 아닌 자하이 족이었다면, '인간의 후각은 형편없다'라는 신화는 훨씬 더 일찍 깨졌을 거예요"라고 마지드는 나에게 말한다.

- 개미 페로몬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개미는 많은 페로몬을 보 유하고 있으며, 그 특성에 따라 각각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공기 중으 로 쉽게 떠오르는 경량급 화학물질은 먹잇감을 재빨리 제압할 수 있는 병정개미들을 부르거나 빠르게 확산되는 경보를 울리는 데 사용 된다. 만약 당신이 개미의 머리를 부순다면, 몇 초 안에 근처의 동료들 이 에어로졸화된 페로몬을 감지해 전투에 돌입할 것이다. 공기 중으로 천천히 떠오르는 중량급화학물질은 흔적을 표시하는 데 사용된 다. 일개미들은 먹이를 발견했을 때 이것을 분비함으로써 다른 동료들 을 핫스팟으로 안내한다. 더 많은 일개미들이 도착함에 따라 흔적은 더 욱 뚜렷해진다. 먹이가 바닥나면 흔적은 희미해진다. 가위개미 leafcutter S는 흔적 페로몬trail pheromone에 매우 민감해서, 1밀리그램이면 지구를 세 바퀴 도는 길을 내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거의 에어로졸화되지 않는 중량급 화학물질은 개미의 몸 표면에서 발견된다. 표피탄 화수소 cuticular hydrocarbon로 알려진 이것은 신분증 역할을 한다." 개미들 은 그것을 사용해 종(다른 종의 개미), 소속(다른 둥지의 개미), 신분(여왕개미) 을 식별한다. 또한 여왕개미는 이 물질을 사용해 일개미들의 번식을 막 거나, 제멋대로인 백성을 처벌하도록 표시한다.
페로몬은 개미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개미들로 하여금 다른 적절한 감각 신호를 무시하고 엽기적이고 해로운 방식으로 행동 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 붉은개미는 청띠신선나비blue butterfly의 애벌레 를 돌보는데, 이들은 개미의 애벌레와 전혀 닮지 않았지만 그들과 똑 같은 냄새가 난다. 군대개미는 페로몬 흔적을 따라가는 데 전념하기 때문에 그 경로가 실수로 무한히 반복될 경우 수백 마리의 개미들이 탈진해 죽을 때까지 끝없는 '데스 스파이럴death spiral'을 돌게 된다. 많은 개 미들은 죽은 개체를 식별하기 위해 페로몬을 사용한다. 생물학자인에 드워드 윌슨E.O. Wilson 이 살아 있는 개미의 몸에 올레산oleic acid을 발랐을 때, 그들의 자매들은 그들을 시체로 취급하고 개미집의 쓰레기 더미로 옮겼다. 개미가 살아 있거나 발을 까딱까딱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 다. 중요한 것은 '시체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개미의 세계는 소란스럽고, 페로몬이 앞뒤로 오가는 시끄러운 세계 다"라고 윌슨은 말했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이 작고 불그스름한 생명체들이 허둥지둥 지상을 돌아다니는 것 외에 아 무것도 볼 수 없지만, 엄청난 양의 활동, 조정, 의사소통이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모두 페로몬을 기반으로 한다. 이 '냄새 나는 물질'은 개미들 로 하여금 개체성의 한계를 초월해 초개체로 행동하게 함으로써, 단순 한 개체들의 멋모르는 행동으로부터 복잡하고 초월적인 행동을 만들어 낸다. 페로몬 때문에 군대개미는 '막을 수 없는 포식자'로 행동하고, 아 르헨티나개미는 수 킬로미터에 걸쳐 초군집supercolony을 형성하고, 가위 개미는 균류를 재배함으로써 자신만의 농경을 영위한다. 개미의 문명 은 지구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이며, 개미 연구자 파트리치 아 데토레 Patrizia d'Ettorre가 쓴 것처럼 "그들의 천재성은 확실히 더듬이에 있다."
- 무성생식 침입자 개미에 대한 크로나워의 연구는 그 천재성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준다. 개미는 본질적으로 1억 4000만 년 전에서 1억 6800만 년 전에 진화한 '고도로 전문화된 벌wasp 집단'으로" 고독한 존재에서 극도로 사회적인 존재로 빠르게 전향했다. 그 과정에서 방향제수용체 유전자냄새 나는 화학물질을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유전 자의 레퍼토리가 증가했다. 즉 초파리는 60개, 꿀벌은 140개의 방 향제수용체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개미는 300~400개의 유 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무성생식 침입자는 무려 500개의 유전자를 가지 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세 가지 단서가 있다." 첫째, 무성생식 침입 자의 방향제수용체 중 3분의 1은 더듬이의 아래쪽-더듬이질을 하는 동안 서로 두드리는 부분에서만 생성된다. 둘째, 이 수용체는 개미 가 신분증처럼 착용하는 중량급 페로몬을 특이적으로 탐지한다. 셋째, 180개에 달하는 이 수용체는 모두 하나의 유전자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유전자는 조상 개미가 단독생활에서 군집생활로 전환한 시기에 반복적 으로 복제되었다. 이러한 단서들을 종합해, 크로나워는 모든 추가적인 후각 하드웨어가 '둥지 동료를 더 잘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 라고 추론한다. 요컨대 그들은 '한 페로몬의 존재 여부'만 찾는 게 아니 라 '수십 개 페로몬의 상대적 비율'을 평가한다. 그것은 까다로운 계산 이지만, 개미가 하는 다른 모든 일들을 뒷받침하는 계산이다. 후각 능력 을 확장함으로써, 그들은 정교한 사회를 규제하는 수단을 얻은 것이다.
- 개미는 아마도 페로몬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페로몬은 개미의 전유물이 아니다. 암컷 바닷가재는 성 페로몬 으로 유혹하기 위해 수컷의 얼굴에 오줌을 눈다." 수컷 생쥐는 오줌에 서 페로몬을 생성하여, 암컷으로 하여금 냄새의 특정 성분에 끌리게 만든다. 이 물질은 《오만과 편견>의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다신 darcin이라고 한다. 초기의 거미난초spider-orchid는 벌들의 성 페르몬을 모 방함으로써 수컷 벌을 속여 꽃가루를 옮기게 한다." "우리는 항상, 특히 자연 속에서 거대한 페로몬 구름 속에 살고 있다." E. O. 윌슨은 언젠 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수백만분의 1그램 단위로 뿜어져 나와 1킬 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다." 이러한 맞춤형 메시지는 가장 작은 동물에서 부터 가장 큰 동물에 이르기까지 동물의 왕국 전체를 움직이게 한다.

- 바다의 플랑크톤은 크릴새우를 닮은 동물성 플랑크톤에게 잡아먹힐 때 DMS를 방출하고, 크릴은 고래, 물고기, 바닷새의 먹 이가 된다. DMS는 물에 쉽게 용해되지 않으며 결국 공기 중으로 방출 된다. 만약 대기 중의 농도가 충분히 상승하면, DMS는 구름의 씨앗(응 결핵)이 된다. 만약 DMS가 선원의 코에 들어가면, 네빗이 "굴과 매우 흡 사하다" 또는 "해초 같다"라고 묘사한 냄새를 유발한다. 그게 바로 바다 의 향기다.
특히 DMS는 풍요로운 바다의 향기로, 거대한 '식물성 플랑크톤 떼' 가 똑같이 거대한 '크릴 떼'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증거다. 베이츠와 대 화하는 동안, 네빗은 자신이 상상했던 화학물질이 바로 DMS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물이 먹잇감으로 넘쳐나고 있음을 바닷새들에게 알 리는 후각적인 '저녁 식사 종'이었던 것이다. 베이츠는 남극대륙 전역의 DMS 수준을 보여주는 지도를 네빗에게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인상을 확고히 했다. 다양한 수준의 화학물질에서, 네빗은 '냄새 나는 산'과 '냄 새 없는 계곡'으로 이루어진 바닷속 풍경을 보았다." 그녀는 바다가 자 신이 한때 상상했던 것처럼) '별 특징 없는 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 히려 그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코에는 분명한 비밀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바닷새처럼 바다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병석에서 일어났을 때, 네빗은 DMS 가설을 확인하기 위한 일련의 연 구를 수행했다." 그녀는 섬새류가 화학물질의 '번들거리는 부분'에 모여들 거라고 예상했다. 그녀의 계산에 따르면, 그 새들은 현실적으로 바람에 떠밀려갈지도 모르는) 낮고 미약한 농도의 DMS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일부 섬새류가 심지어 날기도 전에 DMS에 끌린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많은 종들이 깊은 굴속에 둥지를 틀고, 자몽만 한 크기의 털 실 뭉치를 닮은 새끼들이 어둠의 세계로 부화한다. 그들의 초기 환경세 계는 빛은 없지만 냄새로 가득 차 있으며, 그 냄새는 굴 입구에서 밀려 들어오거나 부모의 부리와 깃털을 타고 들어온다. 이 갓 부화한 새들은 바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데도 DMS로 향할 줄 안다. 밝은 세계로 나 와 '폐소공포증을 느끼게 하는 육아실'을 '광대한 하늘과 맞바꾼 후에 도, 냄새는 그들의 북극성으로 남아 있다. 그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다니며, 해수면 아래에 있는 크릴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향기의 분산 된 기둥을 찾는다."

- 당분 등의 고전적인 맛을 이토록 감지하지 못하는 현상은 놀랍게도 일반적이며, 동물의 식단에 따라 다르다. 고양이, 점박이하이에나, 그리 고 고기만 먹는 다른 많은 포유동물들은 단맛을 감지하는 능력이 부족 하다.'24 피만 먹는 흡혈박쥐도 단맛과 우마미에 대한 미각을 잃었다.' 판다는 대나무만 먹기 때문에 우마미를 감지할 필요가 없지만, 입안에 무수히 많이 존재할 수 있는 독소를 경고하기 위해 쓴맛 감지 유전자군' 을 확장했다. 다른 초식동물들도 코알라와 마찬가지로 쓴맛 탐지기를 더 많이 얻었지만, 바다사자와 돌고래를 포함해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포유류는 대부분의 쓴맛 탐지기를 잃었다.'2'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하 게, 동물의 미각적 환경세계gustatory Umwelt는 가장 자주 접하는 먹이를 이 해하기 위해 확장 및 축소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들이 때때로 그들 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고양이 등의 현대 육식동물과 마찬가지로, 작은 육식공룡은 아마도 당분을 맛보는 능력을 상실했을 것이다. 그들은 제한된 미각을 후손 인 새들에게 물려주었고, 상당수의 새들은 여전히 단맛에 대한 감각이 없다. 명금류-울새, 어치, 홍관조, 박새, 참새, 핀치, 찌르레기가 포함 된 매우 성공적인 보컬 그룹는 예외다. 진화생물학자인 모드 볼드윈 Maude Baldwin은 2014년, 최초의 명금류 중 일부가 '우마미를 감지하던 기 존의 미각수용체'를 '당분도 감지하는 미각수용체'로 전환함으로써 단 맛을 되찾았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변화는 호주-식물이 너무 많은 당분을 생산해 꽃이 꿀로 넘치고, 유칼립투스 나무가 껍질에서 시럽 같 은 물질을 내뿜는 땅에서 발생했다. 당분을 좋아하게 된 새들은 이 풍부한 에너지원 덕분에 호주에서 번성했고, 다른 대륙으로의 마라톤 이주를 견뎌냈으며, 어디에 도착하든 꿀이 풍부한 꽃을 찾아냄으로써 오늘날 세계 조류 종의 절반을 포함하는 거대한 왕조로 다양화한 것으 로 보인다. 이 이야기는 증명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 력이 있다. 만약 무작위적인 호주 새 한 마리가 수천만 년 전에 환경세 계를 확장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새 소리의 아름다운 선율을 들 으며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 인간에게는 두 개의 눈이 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머리 위쪽에 있고, 크기가 동일하며, 전방을 향한다. 이러한 특성 중 어느 것도 표준이 아 니며, 동물계의 나머지를 대충 훑어보면 '눈을 소유한 생물'만큼 다양 한 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은 여덟 개 또는 수백 개일 수 있 다. 대왕오징어의 눈은 축구공만큼 크고, 요정벌fairy wasp의 눈은 아메바 의 핵만큼 작다.' 오징어, 깡충거미, 인간은 모두 독립적으로 진화한 카 메라 같은 눈을 가지고 있으며 단일 렌즈가 단일 망막에 빛을 집중시킨 다. 곤충과 갑각류는 겹눈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수많은 별도의 집광 단위(또는 낱눈)로 구성되어 있다. 동물의 눈은 이중 초점 또는 비대칭일 수 있다. 그것은 단백질이나 암석으로 된 렌즈를 가질 수 있다." 그것 은 입, 팔, 갑옷에 위치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눈이 수행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을 수행하거나 그중 몇 가지만 수행할 수 있다.
- 하지만 복잡한 눈을 '완전하다', 단순한 눈을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윈은 틀렸다. 네 번째 단계의 눈은 진화가 지향하던 플라톤적 이상이 아 니다. 그것보다 앞선 '더 단순한 눈'은 우리 주변에 여전히 버젓이 존재 하며, 소유자의 욕구를 잘 충족한다. "눈은 '허접함'에서 '완전함'으로 진 화하지 않았다." 닐손은 강조한다. "그것은 '몇 가지 간단한 작업을 완벽 하게 수행하는 것'에서 '많은 복잡한 작업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진화했다." 이 책의 서론에서 소개된 불가사리는 다섯 개의 팔 끝에 눈 이 있다.25 이 눈들은 색깔, 디테일, 신속한 움직임을 볼 수 없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불가사리가 안전한 산호초로 천천히 복귀할 수 있도 록 큰 물체만 탐지하면 되기 때문이다. 불가사리에게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이나 깡충거미의 눈이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볼 뿐이다. 다른 동물의 환경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그 동물이 감각을 어디에 쓰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예컨대 영장류는 아마도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곤충을 잡기 위해 크 고 예리한 눈을 진화시켰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 예리한 시각을 물려 받았는데, 시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힘을 빌려 다재다능한 손가락을 인 도하고, 의미가 부여된 기호를 읽고, 미묘한 표정에 숨겨진 단서를 평가 한다. 우리의 눈은 우리의 필요에 부합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대부 분의 다른 동물들이 공유하지 않는 독특한 환경세계를 제공한다.
- 동물의 시력은 '1도당 주기 cycle per degree(cpd)'로 측정된다." 행복한 우 연의 일치로, 이 개념은 얼룩말의 줄무늬로 생각할 수 있다. 팔을 쭉 뻗 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보라. 당신의 손톱은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360도 중 약 1도의 시각적 공간을 나타낸다. 당신은 그 손톱에 60~70쌍 의 얇은 흑백 줄무늬를 그릴 수 있고, 여전히 그것들을 구별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시력은 1도당 60~70주기, 즉 60~70cpd다. 현재 최고 기 록은 호주의 쐐기꼬리수리wedge-tailed eagle가 보유한 138cpd다. 32 쐐기꼬 리수리의 광수용체는 동물계에서 가장 좁은 축에 속하므로, 독수리의 망막 안에 빽빽하게 채워질 수 있다. 이 날씬한 세포들 덕분에, 그들은 우리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픽셀을 가진 화면을 통해 세상을 효과적으로 본다. 그들은 1.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쥐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독수리를 비롯한 맹금류는 우리보다 더 날카로운 시각을 가 진 유일한 동물이다. 감각생물학자인 엘리너 케이브스Eleanor Caves는 지 금껏 수백 종의 시력 측정치를 비교해왔는데, 그중에서 인간을 능가하 는 좋은 거의 없다." 맹금류를 제외하고, 다른 영장류는 우리의 시력에 근접한다. 문어 (46cpd), 35 기린(27cpd), 말(25cpd), 치타(23cpd)의 시력은 그 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사자의 시력은 13cpd에 불과하며, 법적으로 시 각장애인으로 간주되는 문턱값인 10cpd 바로 위에 있다. 모든 새(그리고 벌새와 올빼미 같은 놀라운 동물), 대부분의 물고기, 모든 곤충을 포함해 대부 분의 동물들이 이 문턱값에 미달한다. 꿀벌의 시력은 1cpd에 불과하다. 당신이 뻗은 엄지손톱은 벌의 시각 세계에서 대략 1픽셀에 해당하며, 그 픽셀 안의 모든 세부사항은 뭉개져 균일한 얼룩으로 전락한다. 
- 동물들은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 하고 날카로운 눈이 더 흔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어떤 경우에는 눈이 진화사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겹눈의 구조는 저해상도의 저 주를 받았고, 이런 종류의 눈으로 출발한 곤충과 갑각류는 현재 빼도 박 도 못하게 되었다.
파리매 robber Ay의 시력은 3.7cpd이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서 '하등동 물'의 한계가 아니라 '겹눈'의 한계다. 파리의 눈이 사람의 눈만큼 날카로워지려면 겹눈의 너비가 1미터는 되어야 한다" (겹눈의 설계는 인간의 눈 에 비해 유리한 점도 있고 불리한 점도 있다. 겹눈처럼 렌즈가 많으면, 뇌에 큰 부담을 주 지 않고서도 다량의 시각 처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미지를 처리할 때 중추신경계에 걸리는 부하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겹눈의 중요한 약점은, 물리법칙 때 문에 비교적 저해상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각각의 렌즈들은 하나의 화소처럼 행동하므로, 이미지의 최대 해상도는 렌즈의 수에 의해 결정된다. 렌즈의 수를 늘리는 방 법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각각의 눈에 좀 더 많은 렌즈를 끼워 넣는 것이고, 두 번째는 눈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방법에는 모두 문제점이 있으며, 인간의 눈과 같은 해상도를 가지려면, 겹눈의 직경이 수 미터는 되어야 한다-옮긴이 [출처: 브라이언 콕스, 《경이로운 생명》, 지오, 2018]).
더욱이 예리한 눈에는 큰 결점이 있다. 쐐기꼬리수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물들은 더 작고 빽빽이 채워진 광수용체를 가짐으로써 더욱 날카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수용체는 이제 더 작 은 영역에 빛을 모으므로 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특성들―민감 도와 해상도-은 서로 상충관계에 있으며, 두 가지 면에서 모두 탁월한 눈은 없다. 독수리는 대낮에 멀리 떨어진 토끼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 지만, 해가 지면 그 예리함은 곤두박질친다(야행성 독수리는 존재하지 않는 다). 반대로 사자와 하이에나는 멀리서 얼룩말의 줄무늬를 식별할 수 없 지만 그들의 시각은 야간에 얼룩말을 사냥할 수 있을 만큼 민감하다. 그 들을 비롯해 많은 동물들은 시각의 예리함보다 민감성을 우선시했다. 언제나 그렇듯, 눈은 소유자의 필요에 맞게 진화한다. 어떤 동물은 굳이 선명한 이미지를 볼 필요가 없다. 심지어 어떤 동물들은 아예 이미지를 볼 필요가 없다.
- 한 영장류는 두 개의 '정면을 향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특이하다. 왼쪽 눈의 시야는 오른쪽 눈과 매우 비슷하며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러한 배열은 우리에게 탁월한 깊이 지각depth perception을 제공한 다. 또한 그것은 옆에 있는 것을 거의 볼 수 없으며, 고개를 돌리지 않고 는 뒤에 있는 것을 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바라봄seeing은 마주 봄facing과 동의어이며, 탐색exploring은 돌림turning과 응시 gazing의 합성어다. 그에 반해 대부분의 새(단, 올빼미 제외)는 '측면을 향하는 눈'을 보유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뭔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릴 필요가 없다.
땅을 훑어보며 하늘을 나는 독수리의 경우,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옆에서 비행하는 다른 독수리를 볼 수 있다." 왜가리의 시야는 수직으로 180도를 포괄하므로, 부리가 정면을 향한 채 똑바로 서 있어도 발 근처 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볼 수 있다. 청둥오리의 시야는 완전한 파노라 마여서, 전방이나 후방에 사각지대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호수 표면에 앉아 있는 청둥오리는 움직이지 않고 하늘 전체를 볼 수 있다. 비행하는 청둥오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세상'을 동시에 본다. 우리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모든 풍경'을 의미하 기 위해 "조감도鳥瞰圖”라는 문구를 사용한다. 그러나 '새의 시각'은 단순 히 '인간의 시각'을 높인 게 아니다. "인간의 시각 세계는 눈앞에 있고, 인간은 그 안으로 들어간다. " 마틴은 언젠가 이렇게 썼다. “그러나 조류의 시각 세계는 주변에 있고, 새들은 그 사이를 통과한다."

- 눈은 빛의 속도로 작동하지 않는다. 눈에 들어온 광자에 광수용체가 반 응하고, 광수용체가 생성한 전기 신호가 뇌로 전달되는 데 시간이 걸리 기 때문이다. 킬러 파리의 경우, 진화가 이러한 단계를 한계까지 밀어붙 였다. 곤살레스-벨리도가 그들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보여줬을 때, 광수 용체가 전기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가 뇌에 도달하고, 뇌가 근육에 명령을 내리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6~9밀리초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 간의 광수용체가 이러한 과정의 첫 번째 단계를 수행하는 데 걸리는 시 간은 30~60 밀리초다." 만약 당신이 킬러 파리와 동시에 이미지를 본다 면, 신호가 당신의 망막을 떠나기 훨씬 전에 곤충은 이미 공중에 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범위에서, 이 파리들의 광수용체보다 더 빠른 광수용체는 없어요"라고 곤살레스-벨리도는 자부심에 가까운 말투로 말한다."
또한 파리의 시야는 우리보다 빨리 업데이트된다. 깜박이는 불빛을 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깜박임이 점점 더 빨라지면, 섬광들이 뭉쳐 져 하나의 지속적인 빛으로 변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이를 임계점멸융합 주파수 critical Hicker-fusion frequency(CFF)라고 하는데, 뇌가 시각 정보를 얼마나 빨리 처리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척도로 사용된다. CFF를 동물 의 머릿속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프레임 속도-연속된 정지 화상들이 동영상으로 보이는 시점-라고 생각해보자. 인간의 경우, 조명이 양호 할 때의 CFF는 초당 60프레임(FPS 또는 헤르츠)쯤 된다. 대부분의 파리는 350헤르츠까지 올라가지만 킬러 파리는 이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인간의 영화가 슬라이드 쇼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의 가 장 빠른 행동조차 나른해 보일 것이다. 살의를 품고 휘두르는 손바닥도 쉽게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권투는 태극권처럼 보일 것이다.
- 일반적으로 더 작고 빠른 동물일수록 더 높은 CFF를 갖는 경향이 있 다. 인간의 시각(60헤르츠)에 비해 고양이는 약간 낮고(48헤르츠) 개는 약 간 높다(75헤르츠)." 가리비의 눈은 매우 낮고 (1~5 헤르츠), 야행성 두꺼비 의 눈은 훨씬 더 낮다(0.25~0.5 헤르츠), 장수거북(15헤르츠)과 거문고바다표 범harp seal (23헤르츠)은 높은 편이지만 여전히 낮다. 황새치swordfish는 통상 적인 조건에서는 별로 나을 것도 없지만(5헤르츠)," 특별한 근육으로 눈 과 뇌를 풀가동함으로써 시각의 속도를 여덟 배까지 높일 수 있다. 많은 새들은 선천적으로 빠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최대 CFF가 146 헤르츠 인 얼룩딱새pied flycatcher-작은 명금류는 지금껏 테스트된 척추동물 중 가장 빠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날아다니는 곤충을 추적 해 잡아먹는 데 목숨을 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먹 잇감인 곤충들은 여전히 얼룩딱새보다 빠른 눈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꿀벌, 잠자리, 파리의 CFF는 200~350헤르츠다.

- 최초의 영장류는 거의 확실히 이색형 색각자였을 것이다." 그들은 두 가지 원뿔세포, 즉 짧은 원뿔세포와 긴 원뿔세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 은 개처럼 세상을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보았다. 그러나 4300만 년 전부 터 2900만년 전 사이에, 한 특정 영장류의 환경세계를 영구적으로 변화 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긴 옵신을 만드는 유전자의 추가적 사본 을 얻었다. 이것을 유전자 중복gene duplication이라고 하는데, 세포가 분열 하고 DNA가 복제될 때 종종 발생한다. 그것은 실수이지만 '행운의 실 수'다. 왜냐하면 여분의 유전자 사본에 진화가 개입해, 원본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재주를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긴 옵신 유전자에 바 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두 개의 사본 중 하나는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 어, 560나노미터의 빛을 흡수했다. 다른 하나는 점차 530나노미터라는 더 짧은 파장으로 이동해, 오늘날 우리가 중간(초록색) 옵신이라고 부르 는 것을 탄생시켰다. 이 두 유전자는 98퍼센트 동일하지만, 2퍼센트의 차이가 '파란색과 노란색'으로만 보이던 세상에 '빨간색과 초록색'이 추가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요컨대 문제의 영장류는 기존의 '긴' 옵신과 '짧은' 옵신에 '중간' 옵신을 추가함으로써 삼색형 색각을 진화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확장된 시각을 후손들-우리를 포함하는 아프리카, 아 시아, 유럽의 원숭이와 유인원에게 물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색깔을 보게 된 '과정'을 설명하지만, 그 '이유' 는 설명하지 않는다. 복제된 긴 옵신 유전자가 중간 파장으로 이동한 이유는 정확히 무엇일까? 답은 분명해 보이는데, 그것은 '더 많은 색깔 을 보기 위해서다. 단색형 색각자는 흑색과 백색 사이에서 약 100등급 의 회색을 구별할 수 있다. 이색형 색각자는 노란색에서 파란색까지 약 100단계를 추가한 후, 회색과 곱해 수만 가지의 지각 가능한 색깔을 만든다. 삼색형 색각자는 빨간색에서 초록색까지 100개 정도를 더 추가한 후, 이색형 색각자의 색깔 수와 곱해 수백만 개로 늘린다. 이처럼 각각 의 추가적 옵신은 시각적 팔레트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킨다." 그러 나 이색형 색각자가 수만 가지 색깔만으로도 충분히 번성할 수 있다면, 삼색형 색각자가 수백만 가지 색깔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무엇일까? 19세기 이후 과학자들은 '삼색형 색각자가 초록색 나뭇잎을 배경으 로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과일을 더 잘 발견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15 더 최근에 일부 연구자들은 '삼색형 색각자의 이점이 가장 영양가 높은 열대우림의 잎을 찾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잎은 싱싱하고 단백 질이 풍부할 때 붉은빛을 띠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설명 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영장류는 과일을 먹지만, 과일이 익 지 않았거나 귀한 시기에 덩치 큰 종은 어린잎을 먹으며 버틸 수 있다. "그것은 삼색형 색각의 진화를 위한 완벽한 환경이에요"라고 영장류의 시각을 연구하는(그리고 지난 장에서 보았듯이 간혹 얼룩말의 줄무늬도 연구하는)
어맨다 멜린은 말한다. "주요 먹이와 대체 먹이를 찾는 데 유용하거든요."
- 우리의 수정체는 일반적으로 자외선을 차단하지만, 수술이나 사고로 수정체를 잃은 사람은 자외선을 희끄무레한 파란색으로 지각할 수 있 다. 82세에 백내장으로 왼쪽 수정체가 손상된 화가 클로드 모네에게 바 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는 수련에 반사되는 자외선을 보기 시작했 고, 흰색 대신 희끄무레한 파란색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모네는 논외로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UV를 볼 수 없다. 과학자들이 '자외선을 보는 능력은 희귀하다'고 그토록 믿고 싶어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색깔을 볼 수 있는 동물들은 대부분 자외선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상이고 우리는 괴짜라고 할 수 있다."
자외선은 매우 보편적이므로, 자연의 많은 부분이 각 동물들에게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물은 자외선을 산란시켜 은은한 자외선 안개를 만드는데, 그 덕분에 물고기들은 미세한 '자외선 흡수 플랑크톤' 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설치류는 UV가 풍부한 하늘을 배경으로 새들의 어두운 실루엣을 쉽게 볼 수 있다. 순록은 (UV를 반사하는) 눈으로 뒤덮인 산비탈에서, (UV를 거의 반사하지 않는) 이끼와 지의류를 빠르게 식별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사례들을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
이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꽃들은 꽃가루 매개자에게 자신의 상품을 광고하기 위해 극적인 UV 패턴을 사용한다. 해바라기, 금잔화, 검은눈 천인국black-eyed Susan은 인간의 눈에 균일한 색으로 보이지만, 벌들은 꽃 잎의 밑 부분에 있는 자외선 반점-선명한 과녁을 볼 수 있다. 
-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새(또는 공룡)보다는 개의 색각을 상상하는 것 이 훨씬 더 쉽다. 만약 당신이 삼색형 색각자라면, 특정 색깔을 제거하 는 앱을 사용해 이색형 색각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심지어 다른 삼색 형 색각자(예: 벌)의 '파란색, 초록색, UV 시스템'을 우리의 '빨간색, 초록 색, 파란색 시스템'에 매핑함으로써, 그들이 보는 세상을 시뮬레이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색형 색각자에게 사색형 색각을 알기 쉽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람들은 종종 특별히 설계된 고글을 이용해 비분광색을 볼 수는 없냐고 물어요. 나도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요!"라고 스 토더드는 말한다. 분광광도계를 이용해 새의 깃털에서 적자주색과 녹 자주색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다음에는 좀 더 제한된 범위의 색 깔로 다시 색칠해야 한다. 사색형 색각을 삼색형 색각으로 번역하는 것 은 쉽지 않다. 실망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동물들이 서로에 게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 또는 '그들의 색각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 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인간 사색형 색각자는 일반적으로 여성이다. 왜냐하면 짧은(S) 옵신 을 코딩하는 유전자만 상염색체에 있고, 긴) 옵신과 중간(M) 옵신을 코딩하는 유전자가 모두 X염색체에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두 개의 X염색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유전자의 '약간 다른 두 가 지 버전'을 물려받을 수 있다. 그럴 경우, 그녀들은 서로 다른 파장에 동 조된 네 종류의 옵신-이를테면 S, M, La, Lb-을 보유하게 된다. 여성 여덟 명 중 한 명 정도가 이런 패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대 부분은 사색형 색각자가 아니다. 그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조 각들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빨간색과 초록색 원뿔세포 는 30나노미터 떨어진 파장에 가장 잘 반응한다. 새롭고 뚜렷한 차원의 색깔을 생성하려면, 네 번째 원뿔세포가 해당 범위의 거의 정중앙즉 초록색에서 12나노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야 한다(Da29가 바로 이런 원뿔세포를 가진 사람이다).
- 인간 사색형 색각자는 일반적으로 여성이다. 왜냐하면 짧은(S) 옵신 을 코딩하는 유전자만 상염색체에 있고, 긴) 옵신과 중간(M) 옵신을 코딩하는 유전자가 모두 X염색체에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두 개의 X염색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유전자의 '약간 다른 두 가 지 버전'을 물려받을 수 있다. 그럴 경우, 그녀들은 서로 다른 파장에 동 조된 네 종류의 옵신-이를테면 S, M, La, Lb-을 보유하게 된다. 여성 여덟 명 중 한 명 정도가 이런 패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대 부분은 사색형 색각자가 아니다. 그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조 각들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빨간색과 초록색 원뿔세포 는 30나노미터 떨어진 파장에 가장 잘 반응한다. 새롭고 뚜렷한 차원의 색깔을 생성하려면, 네 번째 원뿔세포가 해당 범위의 거의 정중앙즉 초록색에서 12나노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야 한다(Da29가 바로 이런 원뿔세포를 가진 사람이다).

- 빛은 파동임을 기억하라. 파동은 진동하면서 이동하는데, 이러한 진 동은 일반적으로 이동선과 수직인 모든 방향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때 로는 하나의 평면에만 국한된다(로프를 벽에 부착한 다음 위아래, 또는 좌우로 흔드는 것을 상상해보라). 이러한 종류의 빛을 편광빛polarized light이라고 하 며, 자연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즉 빛이 물이나 공기에 의해 산란되거 나 매끄러운 면(예: 유리, 번들거리는 잎, 물줄기)에 반사될 때 형성된다. 인간 은 편광을 대체로 감지하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곤충, 갑각류, 두족류는 색을 보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편광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눈에 는 (전형적으로 수평 또는 수직 편광에 의해 자극되는) 두 종류의 광수용체가 있 어서, 두 개의 수용체를 비교함으로써 다른 범위(또는 다른 각도)로 편광된 빛을 구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동물을 2차원 편광 인식자dipolat라 고 부를 수 있다.'
- 갯가재는 눈의 상반구에 편광수용체 polarization receptor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반구에서는 편광수용체가 45도 회전한다. 그리고 중간대의 다섯 번째 줄과 여섯 번째 줄에는 뭔가 독특한 것이 있다. 편광빛은 일 반적으로 하나의 고정된 평면에서 진동하지만, 그 평면은 때때로 회전 할 수도 있는데 이때 빛은 비틀린 나선을 따라 이동한다. 이것을 원형편 광circular polarization이라고 한다. 그리고 2008년 마셜의 박사후 연구원 추 츠후이가 발견한 것처럼, 갯가재는 원형편광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중간대의 맨 아랫줄에는 (시계 방향 또는 반시계 방향으로 나선 회 전하는) 원형편광에 동조된 광수용체가 있다. 따라서 갯가재는 여섯 가지방향 수직 및 수평, 두 개의 대각선, 시계 방향 및 반시계 방향-의 편광수용체를 가지고 있다. 요컨대 다른 동물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6차원 편광 인식자 hexapolat인 것이다."

- 예컨대 영장류는 어린잎과 익은 과일을 더 잘 발견하기 위해 삼색형 색각을 진화시켰다. 그리고 일단 환경세계에 빨간색이 추가되자, 빨갛 게 충혈됨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맨살 부분'이 진화하기 시 작했다. 히말라야원숭이의 빨간 얼굴, 개코원숭이의 빨간 엉덩이, 우스 꽝스럽게 빨갛고 대머리인 우아카리원숭이의 머리는 모두 삼색형 색각 때문에 가능하게 된 성적 신호다."
산호초 주변에 서식하는 물고기 대부분도 삼색형 색각자다. 그러나 물이 적색광을 강하게 흡수하기 때문에, 그들의 민감도는 스펙트럼의 파란색 끝으로 이동한다. 픽사의 <도리를 찾아서>에 등장하는 블루탱 같은 산호초 어류 중 상당수가 파란색과 노란색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의 삼색형 색각을 기준으로 할 때, 노란색은 산호초라는 배경에 묻히고 파란색은 물과 뒤섞인다. 스노클링을 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색깔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눈에 띈다. 우리가 보유한 특정한 원뿔세포 트리오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구별하는 데 뛰어나기 때문이 다. 그러나 물고기들 자신과 포식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물고기들은 기가 막히게 잘 위장되어 있다."
포식자들의 색각은 중앙아메리카에 사는 딸기독개구리 strawberry poison frog의 패턴을 다양화했다. 그들은 단일종이지만, 자그마치 열다섯 가지의 상이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중 하나는 청록색 스타킹을 착용한 라임 빛 녹색 개구리이고, 다른 하나는 검은 반점이 있는 오렌지색 개구리다. 이들의 색깔은 거의 무작위로 보일 정도로 다양하지만, 시각적 광기visual madness에는 그 나름의 체계가 있다. 이 개구리들은 유독하며, 가장 유독 한 개구리가 가장 눈에 잘 띈다. 그러나 몰리 커밍스와 마르티너 만Mar- tine Maan이 발견했듯이, 그들은 새들에게만 눈에 띄고 뱀 등의 다른 포식 자들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색형 색각자인 새들의 눈이 기이한 양서류 피부의 진화를 추동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 가설은 설 득력이 있다. 그들의 색깔은 경고용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포식자의 시 각에 가장 적합한 색깔을 갖게 된 개구리일수록 공격받지 않을 가능성 이 크다. 그리고 커밍스와 만에 따르면, 먹잇감의 색깔을 연구함으로써 그 포식자 이 경우 새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 눈은 자연의 팔레트를 정의하므로, 동물의 팔레트를 분석하면 누구의 시선을 끄는 게 목표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꽃에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1992년 라르스 치트카Lars Chit- tka와 란돌프 멘첼Randolf Menzel은 180송이의 꽃을 분석해, 어떤 종류의 눈 이 그 색깔을 구별하는 데 가장 적합한지 알아냈다."그 정답-초록색, 파란색, UV에 대한 삼색형 색각을 가진 눈은 벌을 비롯해 수많은 곤 충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당신은 이 꽃가루 매개자들 이 '꽃을 잘 보는 눈'을 진화시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 렇지 않았다. 그들의 삼색형 색각 스타일은 최초의 꽃이 나타나기 수억 년 전에 진화했으므로, 후자가 전자에 맞도록 진화했음이 틀림없다.  꽃이 '곤충의 눈을 이상적으로 자극하는 색을 진화시킨 것이다.

- 사람들은 종종 '동물계 전체가 고통을 동일하게 느낀다'고 생각하지 만, 그렇지 않다. 색깔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놀 라울 정도로 가변적이다. 빛의 파장이 보편적으로 빨갛거나 파랗지 않 고 냄새가 보편적으로 향기롭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것처럼, 고통을 주 도록 특별히 진화한 전갈 독의 화학물질조차도 보편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동물에게 부상과 위험을 경고한다는 점에서, 고통은 그들 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모든 동물에게는 경계해야 할 것이 있 지만, '피해야 할 것'과 '용인해야 할 것'은 종마다 제각기 다르다. 어떤 동물이 무엇을 고통스럽게 여길지, 과연 고통을 겪는지, 심지어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를 말하기가 악명 높을 정도로 까다로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중요한 것은 뉴런의 총 개수가 아니라 뉴런 간의 연결이다. 인간의 뇌에서는 수십만 개의 뉴런이 피질 오케스트라의 상이한 부분들을 연 결한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 우리는 고통스러운 경험의 완벽한 교향곡 을 연주할 수 있으며, 감각 신호를 부정적인 감정, 나쁜 기억 등과 결합 한다. 그러나 곤충의 뇌에는 그런 연결이 훨씬 더 희박하다." 초파리의 통각수용체는 버섯체 mushroom body라고 불리는 뇌 영역에 연결되는데, 이 부분은 학습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버섯체와 다른 뇌 영역을 이어주 는 출력 뉴런은 21개뿐이다. 파리는 통각 자극을 회피하는 법을 잘 배울 수 있는데, 인간의 고통에 내재된 나쁜 감정도 함께 배울 수 있을까? 곤충의 뇌에는 심지어 인간의 편도체처럼 감정을 처리하는 영역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요인들이 고통에 대한 곤충의 주관적인 경험을 이해하 기 어렵게 만들고 있어요." 곤충의 행동을 연구하는 생리학자인 셸리 아 다모Shelley Adamo가 나에게 말한다.
"그렇다면 곤충의 감정중추는 어떻게 생겼을까요?"라고 아다모는 덧 붙인다. '다른 동물들의 뇌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고사하고 '인 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얼마나 적은지를 감안할 때, 통증을 경험하는 데 어떤 신경학적 특징이 필요한지에 대해 단정적인 선언을 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 동물들은 다양한 온도 센서를 사용하는데, 이 중에서 가장 철저하게 연구된 것은 TRP 채널이라고 불리는 단백질 그룹이다. 그것은 전신의 감각뉴런 표면에서 발견되며, 적절한 온도에 도달하면 열리는 쪽문 역 할을 한다. 쪽문이 열리면 이온이 뉴런 속으로 들어가고 전기 신호가 뇌 로 전달되어, 우리는 뜨겁거나 차가운 감각을 느끼게 된다. 어떤 TRP 채널은 고온에 맞춰져 있고, 어떤 채널은 저온에 맞춰져 있다(차가움은 단 순히 '뜨거움의 부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다른 감각이다)."
또한 TRP 채널은 다양한 범위의 온도에 반응한다. 어떤 것은 온화하 고 무해한 범위를 탐지하고, 어떤 것은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극단에서 발화한다. 특정 화학물질도 이러한 채널을 작동시킴으로써 열감과 냉 감을 생성할 수 있다. 칠리고추에 함유된 캡사이신은 TRPV1-고통스러울 정도로 높은 온도를 감지하는 TRP 채널을 작동시켜 작열감을 초래한다.'박하는 TRPM8이라는 냉감 센서를 활성화하는 멘톨을 함유 하고 있기 때문에 냉감을 일으킨다.
이와 동일한 센서가 동물계 전체에서 발견되지만, 각 종마다 신체와 생활방식에 맞게 조정된 미묘하게 다른 버전을 보유하고 있다. 온혈동 물은 스스로 열을 생성하며, 그들의 TRPM8 버전은 체온이 좁은 쾌적 대 comfortable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경보를 울린다. 시궁쥐의 경우, TRPM8이 약 24도에서 작동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그보다 약간 더 높은 온도에서 활동하는 닭의 경우, TRPM8의 설정값은 29도다. 이 와 대조적으로, 냉혈동물은 온기를 환경에 의존하기 때문에 체온이 넓 은 범위에 걸쳐 변동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TRPM8 버전은 전형적 으로 훨씬 더 낮게- 개구리의 경우 14도-설정되어 있다. 물고기는 TRPM8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의 물고기가 빙점에 가까운 온도를 견딜 수 있다. 설사 고통을 느끼더라도, 그들은 고통스러울 정도 로 차갑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는 것 같다. 인간은 쾌적함을 느끼는 온도 가 각자 다르지만, 그 편차는 동물계 전체의 편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 니다.
땅다람쥐는 어떨까? 마토스-크루스는 그들의 TRPM8 버전이 다른 온혈 설치류의 버전과 매우 유사하지만, 훨씬 덜 민감하게 만드는 몇 가 지 변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여전히 멘톨에 반응하지만, 10도 의 낮은 온도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 다람쥐들이 우리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추운 환경에서 그렇게 편안하게 동면할 수 있는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한다.
고통스러운 열을 감지하는 TRPV1 센서도 소유자의 필요, 특히 체온 에 맞춰 조정되었다." 즉 닭의 버전은 45도, 생쥐와 인간의 버전은 42도, 개구리의 버전은 38도, 제브라피시의 버전은 33도에서 활성화된다(이 것은 냉감 센서로서는 전혀 쓸모가 없지만, 온감 센서로서의 이점은 분명하다). 각각의 종은 '뜨거움'에 대한 자체적인 정의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생활하는 온도는 제브라피시에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생쥐를 괴롭히기 시작하 는 온도는 닭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닭조차도 지금까지 테스 트된 TRPV1 중에서 가장 덜 민감한 버전을 보유한 두 종 앞에서 초라 해진다. 그들은 다른 동물들이 견딜 수 없는 열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 는데, 둘 중 하나가 (사막에 사는) 쌍봉낙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뜻밖에도-두둥--열세줄땅 다람쥐다! 내가 인공 동면실에서 쥐고 있던 그 겸손한 설치류는 빙점에 가까운 온도에 대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극한의 열도 견딜 수 있다. 그라체바의 열판 검사에서, 다람쥐는 자신이 머무는 판이 55도에 도달 하는 경우에만 더 차가운 판으로 황급히 이동한다.' 그들이 북쪽의 미 네소타에서 남쪽의 텍사스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에서 번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의 온도 센서는 지리적 분포, 활동하는 계절, 그 밖의 많 은 것들에 영향을 미친다. 동물들이 감지하고 견딜 수 있는 온도를 정 의하고 '뜨거움'과 '차가움'의 개별적 한계를 조정함으로써 이 센서들은 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를 규정한다.

- 원거리에서 오는 적외선을 탐지하려면, 광원이 (태양처럼) 극도로 강렬하거나 특수 장비가 있어야 한다. 검정넓적비단벌레속 딱정벌레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 곤충들은 날개 아래와 가운뎃다리 바로 뒤에 한 쌍의 구멍을 가지고 있는데, 각각의 구멍에는 기형적인 산딸기처럼 보이는 약 70개의 구 체體덩어리가 들어 있다. 동물학자 헬무트 슈미츠Helmut Schmitz가 현미 경으로 분석한 결과, 각각의 구체는 유체Auid로 채워져 있고 압력에 민 감한 뉴런의 끝을 에워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외선이 구체에 닿으면, 내부의 유체가 가열되어 팽창한다. 구체는 단단한 외장을 가지 고 있어서 바깥쪽으로 부풀어 오르지 못하므로, 그 대신 신경을 압박해 발화시킨다. 이것은 이 장의 앞부분에서 본 것과는 다른 종류의 열 감지 시스템이다. 동면하는 땅다람쥐나 날쌘 초파리와 달리, 딱정벌레는 단 순히 주변 온도를 측정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벽난로 옆에서 난롯불을 쬘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뜨거운 열원에서 나오는 복사열을 적외선의 형태로 감지한다.
- 딱정벌레의 구형球形 센서는 매우 민감해야 한다. 그들은 수십 킬로미 터 떨어진 곳에서 불타는 숲과 그 밖의 뜨거운 장소로 자주 이동하기 때 문이다. 1925년 벼락을 맞은 콜링가 석유 저장고는 건조하고 나무가 없 는 지역의 한가운데에 있는데, 그곳에 도착한 딱정벌레의 대부분은 동 쪽으로 130킬로미터 떨어진 숲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거리 와 1925년 화재의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슈미츠는 "딱정벌레의 센서 는 대부분의 상업용 적외선 탐지기보다 더 민감하며, 액체 질소로 먼저 냉각되어야 하는 최첨단 양자 탐지기와 동등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슈미츠에 따르면 구형 센서 자체가 이렇게 민감할 수는 없으며, 딱정벌 레가 필시 그것을 더 잘 반응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고 한다. 딱정벌레가 비행하는 동안 날갯짓으로 인해 진동이 발생하는데, 이 것이 인근의 구멍으로 전달되어 구형 센서를 흔들면 센서 내부의 감각 뉴런이 발화의 문턱에 도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감각 뉴런을 문턱너머로 떠미는 데 필요한 적외선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것을 다른 방 식으로 생각해보자. 가로로 길게 놓여 있는 벽돌을 상상해보라. 파리 한 마리가 충돌해도 꼼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로로 세워져 있다면, 파리 한 마리라도 그것을 넘어뜨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세워져 있는 벽 돌은 반쯤 시동이 걸린 상태이기 때문에 소량의 에너지에도 반응할 수 있다. 슈미츠의 주장에 따르면, 침엽수비단벌레의 날갯짓이 열 센서에 반쯤 시동을 걸어 매우 약한평상시에는 탐지할 수 없는 적외선 신 호를 탐지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나무에 앉아 있는 딱정벌레는 상대 적으로 적외선에 둔감하다. 하지만 불을 찾아 이륙하자마자 자동으로 탐색 영역을 넓혀, 멀리 떨어진 열의 희미한 흔적을 타오르는 횃불로 변화시킨다.
- 딱정벌레의 몸에는 또 한 가지 비결이 있다. 모든 곤충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외부 표면은 화재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매우 잘 흡수한다. 딱 정벌레는 불을 효율적으로 쫓도록 전적응preadaptation (생물이 현재 처해 있는 환경과는 다른 환경에 처하거나 생활양식을 바꿀 필요가 생겼을 때 이미 그것에 적합한 형질을 가지고 있어 적응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현상을 말한다-옮긴이)되어 있는 셈이므로, 그들의 조상은 몸이 자연적으로 흡수하는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개발하기만 하면 되었다. 열한 종의 검정넓적비단벌레 가 이렇게 했는데, 매우 성공적이어서 다섯 개 대륙에 퍼져나갔다." 

- 조류와 포유류의 조상은 체온을 생성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독립적으로 진화시켜, 주변 온도와 자신들의 온도를 분리했다. 전문적으로 내온 성, 구어체로 온혈성으로 알려진 이 능력은 조류와 포유류에게 속도와 스태미나, 지구력과 가능성을 부여했다. 그 능력 덕분에, 그들은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았고 장기간 및 장거리에 걸쳐 활동성을 유지할 수 있 었다. 반면에 온혈동물은 누군가에게 추적당하기가 매우 쉬워졌다. 즉 그들은 변하지 않는 체온 때문에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어, 숙주(특히 혈관)를 찾는 기생충들의 좋은 표적이 되었다. 혈액은 영양분이 풍부하 고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일반적으로 무균 상태여서, 결론적으로 최고의 식량원이다. 그리하여 최소한 1만 4000종의 동물들빈대, 모기, 체체 파리, 참노린재assassin bug이 이것을 먹고 살기 위해 진화했으며, 그들 중 상당수가 열에 적응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 촉각은 진동, 전류, 질감, 압력 등의 물리적 자극을 다루는 기계적 감 각 중 하나다.'' 많은 동물의 경우, 촉각은 멀리서도 작동할 수 있다. 이 장의 뒷부분에서 살펴보겠지만, 물고기, 거미, 매너티 같은 다양한 생물 들은 (공기와 물을 통해 이동하고, 소리를 내고, 파문을 일으키는) 숨겨진 신호를 느 낄 수 있다. 미세한 털과 그 밖의 센서를 이용해, 그들은 멀리 있는 다른 동물들의 움직임을 느낄 수도 있다. 악어는 수면에서 가장 부드러운 잔 물결을 탐지할 수 있고, 귀뚜라미는 돌진하는 거미가 만들어내는 희미 한 바람을 감지할 수 있고, 바다표범은 헤엄치는 물고기가 남긴 보이지 않는 물결을 통해 물고기를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신호들 중 대부분을 탐지할 수 없다. 
- 물고기는 측선을 통해 문자 그대로 주변에 흐르는 풍부한 정보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거의 모든 방향으로 몸길이의 한두 배까 지 확장되는데, 데이크흐라프는 이를 일컬어 "원거리 촉각"이라고 한 다. "인간은 피부 위로 흐르는 강한 수류를 느낄 수 있지만, 물고기가 측 선을 통해 획득하는 풍부한 인식에 비하면 어림도 없어요"라고 수십 년 동안 이 시스템을 연구해온 셰릴 쿰스Sheryl Coombs는 말한다. 우리가 거 리를 걸을 때 밝기와 색상의 패턴이 우리의 망막 위로 움직이는데, 우리 는 이를 통해 우리를 지나쳐 흐르는 주변 환경을 인식한다. 아마도 물고 기는 측선 위로 움직이는 물의 패턴에서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다. 단언하건대 그들은 이러한 패턴을 사용해 흐르는 물속에서 방향을 잡고, 먹이를 찾고,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고, 서로를 감시할 수 있다. 무 리 속의 물고기는 측선을 사용해 가장 가까운 이웃과 속도 및 방향을 일 치시킨다." 포식자가 돌진할 때 유입되는 급물살은 포식자와 가장 가까 이 있는 개체의 측선을 자극해 멀리 달아나게 한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은 이웃의 측선을 연쇄적으로 자극해 도미노 현상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공황의 물결이 바깥으로 퍼져나가면, 물고기 떼는 포식자 주 위에 매끄럽게 분산된다. 각 물고기는 주변에 있는 소량의 물에만 주의 를 기울이지만, 촉각은 모든 물고기를 연결해 조정된 전체로서 행동하게 만든다. 눈먼 물고기일지라도 여전히 무리에 가담할 수 있다."
- 귀뚜라미의 사상모와 거미의 감각모는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하다. 그것들은 단일 광자 가능한 한 가장 적은 가시광선 양안 에 있는 에너지의 일부에 의해서도 구부러질 수 있다. 이 털들은 존재하 거나 존재할 수 있는 어떤 시각수용체보다도 100배나 더 민감하다." 실 제로 귀뚜라미의 털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열잡음 thermal noise-흔들리는 분자의 운동에너지과 거의 같다. 달리 말하면, 물리 법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 이러한 털들을 더 민감하게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들을 흥분시키지 않는 이유가 뭘까? 거미가 상상 속의 곤충을 향해 끊임없이 뛰어오르거나, 귀뚜라미가 유 령거미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첫째로, 털은 생물 학적으로 유의미한 주파수에만 반응한다. 그런 종류의 주파수는 포식자나 먹잇감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지, 환경에 의해 생성되는 것은 아니 다. 둘째로, 털의 기저부에 있는 기계수용체는 털 자체보다 덜 민감하므 로, 발화하려면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 가닥의 털이 거미를 움직이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동물들은 단일 기계수용체의 흥분된 독창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모든 기계수용체 의 합창을 듣는다.
그렇다면 털 하나하나가 그토록 민감한 이유는 뭘까? 명백한 설명은, 포식자와 먹잇감 사이의 오랜 군비경쟁이 '가장 희미한 신호까지도 감 지하는 센서'의 진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좀 쉬운 대답 이라, 완전히 납득할 수 없어요"라고 카사스가 말한다. 생물학자로서, 그는 동물의 최적화optimization를 누누이 강조해왔다. 최적화란, 자신이 직면한 많은 제약조건 속에서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귀뚜라미의 털은, 최적화가 아니라 극대화의 드문 사례예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지금보다 더 나을 수 없을 정도인데,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진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모해 스스로 올챙이를 만들 준비가 되면, 수컷 들은 짝에게 접근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워켄틴과 그녀의 동료 마이클 콜드웰Michael Caldwell은 적외선 카메라로 그들을 관찰함으로써, 여러 마리의 수컷들이 나뭇가지에 버티고 앉은 상태에서 몸을 들썩이 며 엉덩이를 격렬하게 흔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런 과시행위는 그 자 체로서 매력적이지만, 수컷들은 시야가 가려졌을 경우에도 이렇게 행 동한다. 서로를 볼 수 없을 때도 '떨리는 엉덩이가 생성한 진동을 여전 히 느낄 수 있으므로, 그들은 이 진동을 사용해 라이벌의 덩치와 동기를 평가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경연의 승자는, 더 오랫동안 엉덩이 를 흔들고 더 오랫동안 지속되는 진동을 생성한 수컷이다."
- 다른 많은 동물들도 아마 이런 방식으로 소통할 것이다. 수컷 농게 fiddler crab는 거대한 집게발로 모래를 두드림으로써 짝을 유혹한다. 흰 개미 병사들은 더 많은 병정개미를 끌어들이는 진동 경보를 만들기 위 해 개미집 벽에 머리를 부딪친다. 소금쟁이-연못과 호수의 표면을 따 라 스케이트를 타는 곤충는 진동을 이용해 짝짓기를 하는데, 이로 인 해 진동에 민감한 포식자를 불러들일 수 있다." 이 모든 동물들은 주변 의 표면 - 나뭇가지가 됐든 해변이 됐든을 따라 이동하는 진동을 생성하고 이에 반응한다. 
- 진동 노래들이 매우 이상하게 들리는 것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소리 와 동일한 물리적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공기 중에서 동물의 음높 이는 일반적으로 몸집과 관련 있기 때문에, 생쥐가 우렁차게 울거나 코 끼리가 찍찍대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는다. 표면파의 경우에는 그런 제약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작은 동물이 (훨씬 더 큰 몸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들리는) 저주파 진동을 만들 수 있다. 뿔매미는 몸집이 악어의 수백 만분의 일에 불과하지만, 악어만큼이나 낮고 중후한 짝짓기 소리를 낼 수 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소리에는 또 다른 한계가 있다. 그것은 바깥쪽을 향해 3차원적으로 방사되기 때문에 매우 빨리 에너지를 잃는다. 곤충은 좁은 범위의 주파수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 간단한 울음소리를 냄으로 써 이를 만회한다. 그러나 표면파는 평평한 경로를 따라 이동하기만 하 면 되기 때문에, 더 먼 거리에서도 에너지를 유지한다. 이 채널을 따라 신호를 보내는 곤충들은 더 많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들은 멜로 디의 상향upsweep과 하향downsweep, 톤스택tone stack, 타악기의 배경을 생성 할 수 있다. 그들의 표면파가 새소리에 가깝게 들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동물들은 바다에서 육지로 모험을 떠나는 순간부터 지반진동을 감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모험을 감행한 최초의 척추동물-초기 양서 류와 파충류-은 아마도 큰 머리를 땅에 댐으로써 표면파가 턱뼈를 통 해 내이로 전달되도록 허용했을 것이다. 포유류의 조상에서는 그 턱뼈 중세 개가 공기 중의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전용되었다. 그것들은 축소 되면서 조금씩 움직여, 중이의 작은 뼈인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로 변 했다. 그리하여 턱을 통해 지표면의 진동을 전달하는 대신 외이와 고막 을 통해 공기 중의 소리를 전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시적인 골전도bone-conduction 경로는 여전히 작동한다. 진동은 외이와 고막을 완전히 우회하여, 두개골의 뼈를 통해 내이로 직접 전 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골전 도 헤드폰을 착용하고 귀를 자유롭게 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골전도 보청기를 사용할 수 있고, 청각장애인 댄 서는 특수한 진동 무대를 이용할 수 있다. 비청각장애인도 예외 없이 골 전도를 통해 웬만큼 들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녹음된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녹음은 우리 목소 리의 '공기 중 구성요소'를 재현하지만, 두개골을 통해 전달되는 진동은 재현하지 않는다.

- 소리에 의한 사냥에는 큰 단점이 있으니, 바로 간섭interference 이다. 독수리처럼 시각에 의존하는 포식자는 움직일 때 티가 나지 않지 만, 올빼미처럼 청각에 의존하는 포식자는 날갯짓 할 때 소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올빼미의 귀 근처에서 나는 날갯짓 소리는 먹잇감의 '희미 하고 먼 소리'를 잠재적으로 집어삼킬 수 있다. 다행히도 올빼미의 몸에 는 부드러운 깃털이 있고 날개에는 톱니 모양의 가장자리가 있어서, 거 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조용한 비행이 가능하다." 따라서 날갯짓으 로 인한 소음의 대부분은 올빼미의 가청 주파수에 미달하며, 소형 설치 류의 가청 주파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올빼미는 생 쥐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지만, 생쥐는 올빼미가 다가오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한다
- 박쥐는 음파 탐지기를 지속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맨 처음 나방을 찾 을 때, 박쥐는 넓은 야외 공간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이 검색 단계에서, 박쥐는 가능한 한 멀리 전달되는 신호크고 길고 드문드문한 펄스로, 에너지가 좁은 주파수역에 집중되어 있다)를 송출한다. 일단 유망한 메아리를 듣고 가 능성 있는 목표물에 접근함에 따라 전략을 수정한다. 목표물에 대한 디 테일한 정보를 포착하고 거리를 보다 정확하게 추정하기 위해, 박쥐는 신호의 주파수역을 확장한다. 목표물의 위치를 더 빨리 업데이트하기 위해 더 자주 신호를 송출하고, 메아리와 겹치지 않도록 각각의 신호를 짧게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목표물을 향해 돌진할 때, 박쥐는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최대한 빨리 수집하기 위해 '최후의 비명'을 생성한다. 어떤 박쥐들은 이 시점에서 음파 탐지기의 빔을 확장해 감각 영역을 넓히 는데, 이는 옆으로 빠져나가려는 나방을 더 잘 잡기 위한 계략이다.
초기 검색에서 '최후의 비명'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사냥 순서가 불 과 몇 초 사이에 진행될 수 있다. 박쥐는 자신의 지각을 전략적으로 제 어하기 위해 소리의 길이, 횟수, 강도, 빈도를 몇 번이고 다시 조정한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은 박쥐의 울음소리가 그 의도를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소리가 길고 시끄럽다면, 그들은 멀리 있는 뭔가에 집중 하고 있는 것이다. 소리가 부드럽고 짧다면, 가까운 곳에 있는 뭔가를 향해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펄스가 더 빨라진다면, 목표물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리들을 실시간으로 측정 함으로써, 연구자들은 박쥐의 마음을 거의 읽을 수 있다.
- 신경과학자 로어 탈러Lore Thaler는 2009년부터 키시와 함께 일했다. 그녀는 뇌 스캐너를 통해, 그를 비롯한 인간 반향정위자들이 메아리를 들을 때 시각피질-일반적으로 시각을 다루는 영역의 일부가 매우 활발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시력을 가진 사람들이 동일한 자극을 들을 때, 그 영역은 휴면 상태에 있다. 이것은 키시가 메아리를 "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뇌는 메아리에서 얻은 정보를 조직화함으로써 주변 환경에 대한 공간 지도를 작성한다. 이 작업은 본래 시각의 주특기 이지만, 뇌는 시각이 없어도 시각피질을 소위 반향 처리 피질로 전용함 으로써 유사한 지도를 작성할 수 있다(사실은 그 이상이다). 따라서 키시 는 '사물의 위치'뿐만 아니라 '사물들 간의 상대적 위치까지도 알고 있 다. 이 능력은 그가 하는 보다 인상적인 일들-하이킹에서 자전거 타기 에 이르기까지 ᅳ을 설명할 수 있다. 그의 기억, 지팡이, 다른 감각은 그 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할 뿐이지만, 그의 딸깍거림은 입수한 정보를 공간에 배치한다. 

- 측선이 이미 존재했다면, 왜 그 위에서 전기정위가 진화했을 까? 전기장이 다른 어떤 자극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 은 난류에 의해 왜곡되지 않기 때문에, 급류와 소용돌이가 측선을 뒤덮는) 빠르게 흐르는 강물 속에서 유리하다. 전기장은 어둠이나 진흙탕에 의 해 가려지지 않으므로, 전기어는 탁한 물과 어두컴컴한 물속에서 활동 할 수 있다. 전기장은 빛과 냄새처럼 장벽에 의해 차단되지 않으므로, 전기어는 단단한 물체를 투시함으로써 숨겨진 보물을 탐지할 수 있다.
사실 전기어의 감시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들은 (물체가 전류를 전달하는 능력인) 전도도뿐만 아니라 물체가 전하를 저장하는 능력인) 정 전용량 capacitance에도 민감하다. "자연환경에서 정전용량은 살아 있는 자의 징표예요"라고 매키버는 말한다. 먹이 동물은 시각과 청각에 의존 하는 포식자를 속이기 위해 얼어붙거나 숨거나 침묵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요함, 은폐, 침묵은 전기정위를 피해갈 수 없다. 전기어에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그렇지 않은 모든 것보다 두드러진다. 

- 요컨대 상어는 네 가지 감각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1.6킬로미터 이상 의 거리에서, 상어는 먹이의 냄새를 맡는다." 가까이 접근하면 시각이 바통을 이어받고, 더 가까이 접근하면 측선이 끼어든다. 전기감각은 사 냥의 막바지에 개입해, 사냥감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을 안내 한다. 로렌치니 팽대부가 일반적으로 입 주위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바 로 이 때문이다.....
수동적 전기수용은 숨어 있는 먹이를 찾는 데 특히 유용하다. 왜냐하 면 동물은 자연적인 전기장을 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감각에 의존할 수 없다면 - 예컨대 칼메인의 실험에서처럼 먹이가 모래 속에 묻혀 있을 때 상어는 로렌치니 팽대부가 목표물에 충분히 가까워질 때까지 헤엄쳐 가야 한다. 어떤 종들은 머리를 크게 함으로써 수색 작업을 가속화했다. 귀상어-또는 망치상어는 원뿔형 주둥이 대신 자동차 스포일러처럼 생긴) 넓고 평평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망치"의 밑면에는 팽대부가 들어 있는데, 귀상어는 망치를 금속 탐지 기처럼 휘두르며 해저에 묻힌 먹이를 찾아낸다. 다른 상어들보다 전기 적으로 더 민감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큰 머리를 이용해 주어진 시간 안 에 더 넓은 지역을 훑어볼 수 있다.
- 전기감각의 복잡한 역사는 또한 전기수용체의 특별한 점을 암시한 다. 뇌의 언어는 전기이므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물들은 빛, 소 리, 방향제, 그 밖의 자극을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기기묘묘한 방법(수용 체)을 진화시켜야 했다. 그러나 전기수용체는 전기를 전기로 번역할 뿐 이며, 우리의 생각을 작동시키는 실체를 탐지하는 유일한 감각기관이 다. 따라서 전기수용체를 진화시키는 것은 비교적 쉬웠을 것이므로, 그 것이 척추동물의 진화 계통수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기를 여러 차 례 반복한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그런데 전기수용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제한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전도성 매질conductive medium에 잠겨 있을 때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물은 확실히 중요한 매질이며,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전기수용 동물들이 거 의 예외 없이 수서동물이라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 연어, 거북, 큰흰배슴새Manx shearwater (바닷새의 일종)를 비롯한 많은 동물 들도 출생지의 고유한 자기magnetic 특성이 기억 속 깊이 각인되므로, 성 체가 된 후에도 동일한 장소를 찾을 수 있다." 거북은 이 각인을 이용해 자신이 부화한 해변에 알을 낳는다." 그들의 정확성은 기묘하다. 어센 션섬에 둥지를 틀고 사는 바다거북의 경우, 2000킬로미터를 헤엄쳐 브 라질에 다녀온 후에도 대서양 한복판에 있는 작은 땅 덩어리를 찾아낼 수 있다." 이 귀소본능은 너무나 강해서, 거북은 (설사 바로 옆에 완벽해 보이는 장소가 있더라도) 때때로 자신이 태어난 해변을 찾아 수백 킬로미터를 헤엄쳐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좋은 둥지'의 조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 둥지는 물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모래 알갱이는 산소가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커야 한 다. 셋째, 온도가 알맞아야 한다. 알이 얼마나 뜨겁거나 차가운지에 따 라 거북의 암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거북은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이 세상에서 내가 아는 곳은 단 하나, 내가 태어난 해변이에요"라고 로 만은 말한다. 그리고 바다에서 몇 년 동안 생활한 후에도, 거북은 자기 지도에 의존해 '좋은 둥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
-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자신의 나침반에서, 한 동물이 올바른 방향을 결정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5분이 걸린다고 가정해보자. 실 험자가 그 동물을 자기장에 노출시키고 1분 후 반응을 기록한다면, 그 결과는 중구난방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시간적 창을 임의로 선택했지만, 내 말의 요점은 '우리가 올바른 창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거의 즉 각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시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에 익숙하다. 아마도 자기수용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을 텐데, 우리는 그것이 작동하는 시간 범위timescale를 알지 못한다. 그것을 모르거나, 알아내야 한다는 사실조 차 깨닫지 못한다면 좋은 실험을 설계하기가 어렵다. 내가 서론에 적었 듯이, 과학자의 데이터는 '그가 던진 질문'의 영향을 받고, 그의 질문은 '그의 상상력'에 의해 조종되고, 그의 상상력은 '그의 감각'에 의해 제한 된다. 우리 자신의 환경세계의 경계는 다른 동물의 환경세계를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자기수용의 소란스럽고 불규칙한 특성은, 어떤 동물도 자기수용에만 의존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즉 그들은 시각과 같이 '보다 신뢰할 수 있는 감각'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자기수용을 '예비 감각' 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만약 당신이 이주하는 동물이라면, 완전히 길 을 잃지 않는 한, 자기수용은 아마도 가장 덜 중요한 감각일 거예요"라 고 키스는 말한다. 자기신호가 없을 때, 보공나방은 밤하늘의 별 패턴을 보며 비행할 수 있다. 난생처음 바다에 들어갈 때, 새끼 거북은 자기장 을 무시하고 파도의 방향에 의존한다.

- 동물은 하나의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가용 정보를 사용해요"라고 워런트는 말한다. “가능한 감각을 총동원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다중감각multisense을 보유하고 있어요."

- 부질없는 상상일랑 그만두고, 모기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자. 당신은 더듬이를 앞세워 고온다습한 열대 공기 속을 비행하며, 이산화탄소 냄새를 맡을 때까지 각종 방향제의 구름을 지나친다. 일단 이산화탄소 냄새를 맡으면 그쪽으로 기수를 돌려, 확실한 단서를 찾기 위해 지그재그로 비행한다. 당신은 어두운 실루엣을 발견하고, 면밀히 조사하기 위해 바짝 접근한다. 당신은 인간의 피부에서 방출되는 듯한 젖산, 암모니아, 설카톤sulcatone의 분자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마침내 결 정적 단서인 열기를 포착하고 목표물에 내려앉아, 당신은 발을 이용해 넘쳐나는 소금, 지방, 그 밖의 성분을 맛보며 쾌재를 부른다. 당신은 모 든 감각을 총동원해 인간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혈관을 찾아내 빨대를 꽂고 배가 터지도록 피를 빠는 일만 남았다.
우리는 서론에서 환경세계 개념의 선구자인 야콥 폰 웍스킬을 만났 는데, 그는 동물의 몸을 '정원이 내다보이는 여러 개의 감각 창을 가진 집'에 비유했다. 이후 11개 장에 걸쳐, 우리는 '각각의 감각을 고유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창문을 하 나씩 들여다보았다. 많은 감각생물학자들도 모든 경력을 걸고, 하나의 창문을 통해 우리와 대동소이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동물은 그렇지 않 다. 이집트숲모기처럼, 그들은 모든 감각기관에서 동시에 입력되는 정 보들을 결합하고 상호 참조한다. 우리는 동물의 선례를 따라야 한다. 그 들의 환경세계를 제대로 평가하고 우리의 감각 여행을 마무리 짓기 위 해, 우리는 웍스의 '은유적 집'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동물의 몸 전체가 환경세계의 본질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 는 집 자체의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 동물들이 '외부 세계의 감각 정보' 와 '자신의 몸 안의 감각 정보'를 어떻게 결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 리는 집 안을 두루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동물들이 자신의 모든 감각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모든 창문을 동시에 들여다 보아야 한다.

- 서로 보완하는 것을 넘어, 몇 가지 감각이 결합될 수도 있다. 어떤 사 람들은 상이한 감각들이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경험하는데, 이를 공감 각synesthesia이라고 한다.' 어떤 공감각자에게는 소리에 질감이나 색깔이 있을 수 있고, 어떤 공감각자에게는 단어에 맛이 있을 수 있다. 이 지각 적 번짐 perceptual blurring은 인간에게는 특별하지만 어떤 생물들에게는 표 준이다. 예컨대 오리너구리의 '오리 같은 주둥이'에는 '전기장을 탐지하 는 수용체'와 '접촉에 민감한 수용체가 각각 존재한다." 그러나 뇌에서 는 전자의 신호를 받는 뉴런이 후자의 신호도 받는다. 그렇다면 오리너 구리는 전기촉각electrotouch이라는 단일감각을 보유하고 있어서, 먹이를 찾아 잠수할 때 가재가 일으키는 수류를 감지하기 전에 전기장을 탐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부 연구자들은 "오리너구리가 두 가지 신호의 시간 차를 이용해 '가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판단한다"고 제 안했다. 우리가 번개와 천둥 사이의 간격을 이용해 폭풍우까지의 거리 를 측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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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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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점과 시각세포는 빛이 '어느 정도 있는지', 즉 어느 정도 어둡거나 밝은지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윽고 시각세포가 여러 개로 나뉘고, 시각세포가 있는 피부 표면이 오목해지면서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지각할 수 있었다. 시각세포 사이에 경계가 생기거나 피부 표면이 오목하게 파이면, 직진하는 성질이 있는 빛이 어느 방향 에서 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각세포 사이에 경계가 생긴 부 분은 곤충 등의 '겹눈'(20쪽 참고)으로 진화했고, 피부 표면이 오목해진 부분은 달팽이나 앵무조개 등의 '배상안'(25쪽 참고)이나 '바늘구멍'으로 진화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생명체 중 눈이 가장 오래된 동물은 캄브리아 기(5억 4,100만~4억 8,500만 년 전) 바다에 서식한 절지동물 삼엽충이다. 화석을 살펴보면 대다수 삼엽충 종의 눈이 현재의 곤충과 비슷한 겹 눈이다.
'바늘구멍'은 인간이나 새 등의 '카메라'(28쪽 참고)으로 진화 했다. 피부 위에 시각세포가 배열된 조직을 '망막'이라고 한다. 카메 라눈은 망막 위에 렌즈가 있어서 빛을 굴절시키고 망막 위에 상을 맺 게 한다.
사물의 형태를 인식하면 부딪칠 위험이 있는 장애물이나 가까 이 있는 적을 피해 도망칠 수 있다. 이처럼 눈은 빛의 직진과 굴절을 이용하여 사물의 형태를 또렷이 분간하는 기관으로 발달했다.
- 먼저 곤충의 눈을 대표하는 '겹눈'을 살펴보자. 수많은 낱눈이 벌집처럼 모여 하나의 눈을 이룬 것이다.
파리는 약 4,000개, 잠자리는 약 2만 개의 낱눈이 있다. 잠자리 의 겹눈을 확대해보면 공처럼 생긴 표면에 낱눈이 빽빽하게 배열되 어 있다. 각 낱눈에는 투명한 볼록렌즈 같은 각막이 있고, 그 밑에 7~8개의 시각세포가 늘어서 있다. 공처럼 밀집한 낱눈들은 조금씩 다른 방향에서 오는 빛을 각막으로 포착한다. 이처럼 하나의 낱눈이 하나의 화소를 만들고 뇌가 정보를 통합하여 하나의 상을 형성하는 구조를 연립상눈이라고 한다.
공처럼 튀어나온 겹눈의 특징은 시야가 넓다는 것이다. 특히 잠 자리와 게의 돌출된 눈은 360도 대부분을 볼 수 있다. 잠자리나 게를 잡으려고 뒤에서 숨죽이며 접근해봤자 소용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등 뒤까지 훤히 내다본다.
그러나 겹눈에는 큰 단점이 있다. 시야가 넓은 대신 해상도가 낮 다는 것이다. 곤충의 시력은 인간의 수십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래 서 시력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곤충의 눈은 몸에 비해 이상할 정 도로 커졌다. 잠자리의 눈이 머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좋은 예다. 눈을 크게 만들고 낱눈의 수를 늘려 해상도를 높인 결과다.
겹눈은 주위 경치를 흐릿하게 보지만, 움직이는 물체를 인간보 다 훨씬 잘 포착한다. 인간의 눈이 1초 동안 약 40회 깜박이는 빛을 감지하는 데 반해 파리는 1초 동안 140회 이상 빛을 감지한다. 이처럼 동체 시력이 뛰어난 파리가 보기에는 파리채를 든 사람이 슬로모션으로 움직인다.
- 곤충의 머리에는 겹눈 외에도 '홑눈'이라는 3개의 눈이 삼각형으로 늘어서 있다. 홑눈은 겹눈을 구성하는 낱눈과 비슷하지만 초점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상을 맺을 수 없다. 그렇지만 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대신 명암 변화에 민감하다. 겹눈보다 시각세포가 많아서 정 보를 더 쉽게 얻기 때문이다.
곤충은 하루의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과 마치는 시간을 홑눈이 인식한 빛의 명암으로 안다. 실제로 낮에 활동하는 곤충의 눈을 가리 면 날이 밝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래서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마치는 시간은 평소보다 빨라진다.
홑눈의 역할은 이뿐만이 아니다. 홑눈은 신경섬유가 굵어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한다. 곤충은 삼각형으로 늘어선 3개의 눈으로 인식한 명암을 조합하여 지평선의 위치를 파악한다. 그래서 비행하는 도중 자세가 흐트러지면 재빨리 바로잡을 수 있다. 이 말인즉 홑눈으 로 명암 변화를 느끼고, 밝은 하늘과 어두운 땅 사이를 자유자재로 비행할 수 있는지 항상 확인한다는 뜻이다. 곤충은 홑눈 덕분에 비행 능력이 뛰어나다.
- 투명한 2개의 막이 입구를 덮은 '카메라눈'은 바늘구멍눈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다. 카메라눈의 바깥쪽 막을 '각막', 안쪽 막을 '수 정체'라고 한다. 각막은 외부에서 들어온 빛을 굴절시키고, 수정체는 두께를 바꾸며 빛의 굴절을 미세하게 조절하면서 초점 맺힌 상을 망 막에 형성한다. 카메라눈은 빛이 들어오는 입구를 넓혀도 수정체로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깨끗한 상을 맺는다. 또한 입구를 넓히면 많은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도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있다.
카메라눈은 시력이 겹눈보다 좋다. 겹눈은 낱눈마다 각막이 있 고 낱눈 사이가 나뉘어 있어서 시각세포를 많이 배열할 수 없다. 하 지만 카메라눈은 각막이 하나고 구획도 없기 때문에 망막 안에 시각 세포를 촘촘하게 배열할 수 있다. 겹눈은 낱눈 하나당 7~8개의 시각 세포가 배열된 데 반해, 시각세포가 가장 많이 밀집한 인간의 눈은 1mm 사이에 수백 개의 시각세포가 있다. 카메라눈이라는 점은 같지 만 인간보다 시력이 좋은 새의 망막은 시각세포의 밀도가 더 높다.
- 물속에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물고기의 눈
인간과 마찬가지로 물고기의 눈도 카메라눈이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어떻게 물안경 없이도 사물을 볼까?
어류는 물속에서도 잘 볼 수 있도록 각막에서 빛을 굴절시키지 않는다. 대신 수정체의 렌즈를 두껍게 하여 빛을 크게 굴절시킨다. 수정체를 최대한 두껍게 하면 공 모양에 가까워진다. 굽거나 조린 생 선의 눈 속에 있는 하얀 공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물고기 의 수정체로, 불에 익히기 전에는 투명하다. 공처럼 둥근 눈은 빛을 쉽게 굴절시키기 때문에 인간처럼 각막 앞에 공기층을 만들지 않고 도 물속에서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있다.
다만 물고기의 수정체는 구형이어서 인간의 눈처럼 두께를 조절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카메라처럼 렌즈를 앞뒤로 움직여 초점을 맞춘다. 가까운 곳을 볼 때는 렌즈를 망막에서 떨어뜨리고, 먼 곳을 볼 때는 망막 가까이에 둔다.
참고로, 육상과 수중을 오가며 활동하는 거북이나 가마우지 등 은 공기 중과 물속에서 수정체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빛이 굴절하기 힘든 물속에서는 동공 조임근이라는 근육으로 수정 체의 일부를 눌러 렌즈를 두껍게 하고 커브의 각도를 높여 빛을 쉽게 굴절시킨다.
- 양서류와 파충류 중에는 머리에 '두정안(頭頂)'이라는 제삼의 눈을 지닌 동물이 있다. 뉴질랜드의 작은 섬에 사는 몸길이 60cm 정도의 투아타라도 그중 하나다.
투아타라는 수명이 100년 이상인 도마뱀으로, 약 2억 년 전의 파 충류와 흡사해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린다. 태어난 지 반년이 지나면 투아타라의 두정안은 비늘로 덮이기 때문에 겉에서는 보이 지 않는다. 이 눈에는 렌즈와 망막 등이 있지만 겨우 빛을 감지할 뿐 이다.
언뜻 생각하면 두정안은 퇴화하여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듯하지만, 손상되면 투아타라가 보금자리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 점을 감안하면 눈이 방향을 파악하는 태양 컴퍼스 역할을 하는 듯하다. 태양 컴퍼스는 빛의 방향을 감지하여 태양의 위치로부터 방위를 파악하는 능력으로, 꿀벌이 보금자리로 돌아갈 때 (103쪽 참고)나 철새가 이동할 때 사용한다. 이처럼 곤충의 홑눈처럼 사물을 보진 못해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눈도 있다.
- 미각과 후각 등의 감각기관이 머리에 모여 있는 척추동물과 달리 곤충은 온몸에 미각기관과 후각기관이 분포한다. 예를 들어 파리는 입 근처와 촉각기관에 후각기관이 있고 입과 발끝, 날개 가장자리 와 산란기관에 미각기관이 있다.
그러므로 파리는 음식에 발을 대기만 해도 맛을 알 수 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파리는 입보다 발이 음식에 먼저 닿기 때문에 발끝으로 미각을 느끼며 먹이를 찾는 편이 효율적이다. 파리가 앞발을 자주 비비는 이유는 미각을 느끼는 기관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파리의 앞발과 마찬가지로 문어의 빨판에도 미각을 느끼는 기 관이 있다. 종마다 다르지만 다리 하나당 200개나 되는 빨판이 있는 문어는 잡은 사냥감의 맛을 빨판에서 바로 확인한 후 먹어 치운다. 5억여 개의 신경세포 중 약 3억 개가 8개의 다리에 집중된 것을 보면 문어에게 다리가 얼마나 중요한 부위인지 짐작할 수 있다.
- 동물이 인식할 수 있는 점멸 속도를 '임계융합주파수'라고 하며, 단위는 Hz(헤르츠)로 표시한다. 파리의 임계융합주파수는 약 140Hz 고, 파리보다 빠르게 나는 잠자리는 약 170Hz, 잠자리보다 빠른 벌은 약 200~300Hz다. 반대로 움직임이 느린 개미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40Hz 정도다. 이처럼 눈의 종류가 겹눈으로 같더라도 재빠른 곤충이 임계융합주파수가 높은 경향이 있어서 움직임에 민감하다.
- 시각의 성질을 잘 이용하는 동물 중 하나는 사바나에 서식하는 얼룩말이다. 얼룩말의 몸에 줄무늬가 있는 이유에 관해 그동안 많은 동물학자가 의견을 제시해왔다. 최근에는 등에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설이 유력해졌다. 등에는 말이나 얼룩말의 피를 빨아 먹는다. 등에 같은 곤충이 많 은 지역의 얼룩말은 줄무늬 수가 많고, 피를 빨아 먹는 곤충이 적은 지역에서는 줄무늬 수가 적은 경향이 있다.
영국 브리스틀대학교 팀 카로 교수의 연구팀은 얼룩말 줄무늬 가 등에의 공격을 막기 위해 생겼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여 증명 했다. 이들은 말에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코트를 입히면 흰색 이나 검은색의 단색 코트를 입혔을 때보다 등에가 들러붙는 횟수가 적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줄무늬가 등에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등에가 말에 달라붙을 때의 상황을 조사해보니 줄 무늬가 있으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도 등에의 시력이 나빠서 줄무늬를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회색으로 보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말의 몸에 가까워질 때에야 비로소 등에 의 눈에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나타나기 때문에 거리감이 나빠져 착륙할 수 없는 것 같다.
- 개구리의 눈은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배경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먹이로 인식한다. 그래서 움직이는 곤충을 컴퓨터 모니터로 보여주 면 먹이로 착각해 잡아먹으려고 한다. 개구리의 눈은 인간과 같은 카메라눈이지만, 정지한 물체를 보는 시력이 매우 낮고 동체 시력만 뛰어나다. 즉, 움직이는 것을 잡는 능력이 특화했다.
개구리는 움직이는 작은 물체를 보면 정면으로 몸을 돌리고 두 눈으로 보며 거리를 잰다. 두꺼비는 혀의 길이가 대략 20cm여서 사 정거리가 길지만 먹이를 잡기까지 약 0.03초가 걸린다. 곤충의 겹눈도 움직이는 물체에 매우 민감하지만, 개구리가 혀를 내미는 속도에는 대적할 수 없다.
이런 습성이 있는 개구리를 키운다면 먹이를 주기가 까다롭다. 죽어서 움직이지 않는 먹이는 안 먹으려 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먹이 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죽어 있더라도 움직이면 먹는다. 개구리는 '움직이는 작은 것'은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움직이는 큰 것'을 보면 반사적으로 도망치는 습성이 있다. 분명 새나 뱀 같은 천적이 다가왔 다고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 때문일 것이다.
- 자외선을 활용하는 생물은 곤충뿐만이 아니다. 들판의 꽃들도 자외선을 쉽게 감지하는 곤충의 눈을 이용한다. 자연계에 있는 꽃의 약 3분의 1은 색깔이 흰색이다. 많은 흰색 꽃이 자외선을 잘 반사하 는 플라본과 플라보놀이라는 색소를 함유하고 있다. 이 현상에 의지 하여 곤충들은 꽃의 꿀을 찾는다. 곤충들이 꽃가루를 운반해주면 꽃은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꽃과 달리 초록색 잎 부분은 자외선을 반사하기 어려우므로 곤충의 눈에는 흰 꽃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 흰색을 더 하얗게 만드는 형광물질
우리 눈에 보이는 종이는 대부분 흰색이다. 그 이유는 종이에 형광표백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종이의 원료인 펄프는 원래 갈색이지만 표백해서 하얗게 만든다. 하지만 표백해도 노란색을 약간 띠기 때문에 새하얗게 만들기 위해 형광표백제를 사용한다.
서로 뒤섞으면 하얀색이 되는 색을 보색이라고 하는데, 노란색의 보색은 파란색이므로 파란색 형광표백제를 섞어 하얗게 보이도록 한다.
흰색 종이와 마찬가지로 새하얀 셔츠에도 형광표백제가 사용된 다. 하얀 셔츠가 점점 누렇게 되는 이유는 때가 묻기 때문일 수도 있 지만, 여러 번 세탁하면 형광표백제의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 세제에 들어 있는 형광표백제는 흰색을 보존해준다.
하야면 하얗수록 사람들이 깨끗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수많은 제품이 흰색을 더욱더 하얗게 만드는 형광물질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 겹눈을 구성하는 낱눈의 시각세포는 특정 방향으로 진동하는 빛에 민감하다. 하늘의 파란색은 햇빛이 공기 중의 분자 등에 닿아 반사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겹눈으로 보면 편광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눈에는 오전 10시와 오후 2시의 하늘이 비슷해 보이지만, 꿀벌은 오전 10시와 오후 2시의 하늘에서 각각 다른 편광 패턴을 본다. 그리고 공기 중 분자에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빛의 반사되며 진동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이 편광 패턴의 차이를 통해 태양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날씨가 흐려도 태양의 위치에 따라 편광 패턴이 다르므로 꿀벌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보금자리로 돌아간 꿀벌은 날개를 위아래로 떨고 엉덩이를 좌우로 떠는 일명 '8자 춤을 춘다. 태양의 방향과 꽃의 방향 사이의 각 도를 8자 춤으로 표현하여 꿀이 있는 곳을 알리는 것이다. 꿀벌은 이 놀라운 능력을 통해 꿀이 가득한 꽃이 있는 곳의 정보를 동료들과 효 과적으로 공유한다.
꿀벌뿐 아니라 겹눈을 가진 많은 곤충과 갑각류가 편광을 감지 할 수 있다.
- 금눈돔의 안구는 그림처럼 가장 안쪽에 망막이 있고 바로 바깥쪽에 '휘판'이라는 반사판이 있다. 망막을 빠져나온 빛을 휘판에서 한번 반사한 다음 망막으로 되돌리기 때문에 적은 빛이라도 동공으로 들어오면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심해어의 눈이 빛나는 이유는 휘판에 닿은 빛이 반사되기 때문 이다. 버드비크 독피시(Birdbeak dogfish)처럼 심해에 서식하는 상어의 눈은 휘판 때문에 금색으로 빛난다. 심해어뿐만 아니라 고양이 같은 야행성 동물도 이런 반사판이 있다. 심해어는 휘판 때문에 눈의 민감 도가 높지만 사물을 자세히 보지는 못한다. 또한 눈이 크지만 시력은 좋지 않다.
- 돌고래는 에코로케이션(Echolocation)이라는 초음파 클릭음을 내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먹이를 찾는다. 보통 물고기가 알아들을 수 있 는 소리는 4kHz지만 돌고래의 클릭음은 수십 kHz의 초음파이기 때 문에 은밀하게 먹잇감을 찾을 수 있다. 어군을 탐지하는 선박용 소나 는 돌고래의 에코로케이션을 응용한 기술이다.
또한 대왕고래가 커뮤니케이션에 이용하는 20kHz 이하의 초 저주파수는 수백 km 이상 떨어진 곳까지 닿는다고 한다. 음파의 주 파수가 낮으면 더 멀리까지 전달되지만 파장보다 작은 대상을 감지 할 수는 없다. 파장보다 작은 대상은 그 음을 반사하기 어렵기 때문 이다.
초저주파수로는 작은 생물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대왕고래는 먹잇감을 찾을 때 주파수가 높은 초음파를 사용한다.
- 인간의 눈에는 파랑, 초록, 빨강에 대한 감도가 높은 3종류의 원추세포가 있는데, 송사리의 눈에는 보라 1종류, 파랑 2종류, 초록 3 종류, 빨강 2종류 등 무려 8종류의 원추세포가 있다고 한다. 원추세 포의 종류는 시각세포에 있는 시각 색소의 종류에 따라 나뉜다.
동물 간상세포의 시각 색소는 로돕신, 원추세포의 시각 색소는 포톱신이라고 한다. 송사리의 색각을 변화시키는 것은 포톱신에 있 는 옵신이라는 물질이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겨울철 송사리는 옵 신의 양이 줄어들면서 색각이 변화한다.
옵신을 만들면 아무래도 몸에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봄부터 여름의 번식기에만 생산하는 듯하다. 실제로 송사리는 겨울철에는 먹이를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색을 식별하지 못해도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다. 낭비하는 에너지를 아껴 가장 활발하게 움직여야 하는 번식기에 대비하는 것이다.
- 인간의 눈은 어떻게 3종류의 간상세포를 가지게 되었을까? 답을 얻으려면 공룡이 번성한 중생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시기에 살던 포유류 대부분은 야행성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색을 구별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현재도 포유류 대부분이 파 란빛에 대한 감도가 높은 S 원추세포와 빨간빛에 대한 감도가 높은 L 원추세포 2종류만 가지고 있다.
원추세포가 2종류면 색을 구별할 수는 있지만 여러 종류를 구분하기는 힘들다. S 원추세포와 L 원추세포가 있으면 초록, 노랑, 주황이 비슷해 보이고, 빨강은 어두침침한 색으로 보인다. 일부 원숭이나 인간 등의 영장류는 추가로 M 원추세포가 있어서 초록색에 대한 감 도가 높기 때문에 3종류의 원추세포로 많은 색을 구별한다. 영장류 가 3종류의 색각을 획득한 이유는 빨강, 노랑, 주황 등을 통해 잘 익 은 과일을 찾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3가지 색각이 더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곤충을 찾는 데는 2가지 색각이 유리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초록 잎 위에 노란색 곤충이 있다면 색상이 눈에 띄기 때문에 3가지 색각이 있으면 발견하기가 더 쉽다. 그러나 곤충이 초록 잎과 같은 색으로 위장하면 색보다는 밝기의 차이가 단서가 되기 때문에 대비를 식별하기 쉬운 2가지 색각이 유리하다. 특히 깊은 숲속 등 어둑어둑한 곳에서는 2가지 색각을 갖춘 동물이 더 많은 곤충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듯 3색각이 항상 유리하다고 할 수는 없다. 채집 중심 생활 에서는 3색각이 편리하지만, 사냥할 때는 2색각이 유리한 경우도 있 다. 실제로 사냥으로 생활한 민족이 많았던 백인 중에는 2색각인 색 약을 지닌 사람이 많다. 주로 과일 등을 채집하며 살았던 흑인보다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사자 같은 육식동물이 2색각인 이유는 그 쪽이 초식동물을 발견하는 데 더 유리했기 때문인 듯하다.
- 투명한 피부와 칙칙한 피부
투명하고 깨끗한 피부도 빛의 반사와 관계가 깊다. 피부는 바깥 쪽부터 표피, 진피, 피하조직이라는 3개의 층으로 구성된다. 표피의 바깥쪽에는 각질층이 있다. 빛의 일부는 각질층을 투과하여 표피나 진피까지 도달하는데, 이때 각 층에서 정반사나 확산반사되어 돌아 온 빛이 사람의 눈에 보인다.
즉, 우리가 평소 보는 '피부색'은 각질층, 표피, 진피에서 반사된 빛이 합쳐진 것이다.
피부 속까지 파고든 빛이 많이 확산반사되어 돌아올수록 더 환해지고 깊이가 느껴지기 때문에 투명해 보인다. 파운데이션 화장품에 빛을 반사시키는 성분이 많은 이유는 확산반사를 통해 피부의 투명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인종에 따라 다른 피부색은 피부의 투명함과도 관계 있다. 백인 은 황인종에 비해 멜라닌 색소가 적어 내부에서 확산한 빛이 많이 돌 아오므로 더 투명해 보인다. 또한 젊은 사람의 약간 붉은 기가 도는 피부는 투명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피부가 흴수록 붉은색이 도드라져 보이는 경향이 있고, 붉은 기가 돌면 피부가 더 환해 보이기 때문이다.
피부가 거칠면 칙칙해 보이는 이유는 피부 표면에서 빛을 확산하여 빛이 속까지 닿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투명한 피부를 만들려면 보습에 신경 써야 한다. 피부의 수분을 유지하여 건조해지거나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고, 표피나 진피까지 빛을 흡수시켜 반사되는 빛을 늘려야 한다. 아름다운 피부를 가꾸기 위해서는 보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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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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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처

과학 2023. 5. 31. 15:50

- 대다수의 과학자가 유전자에 포함된 생물학적 정보에 관심이 있는 데, 같은 정보를 담고 있는 DNA 서열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차이는 게놈을 복제할 때 일 어나는 무작위 오류 때문에 생기고(이것을 돌연변이라고 한다), 돌연변이가 있다는 것은 과거 어느 시점에 이런 오류가 일어났음을 나타낸다. 유전 학자들은 유전자와 정크 DNA 모두에서 문자 1000개당 하나 꼴로 일어 나는 이런 차이를 조사해 과거에 대해 알아낸다. 친족 관계가 아닌 두사 람의 게놈 사이에는 보통 30억 개 문자 가운데 300만 개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돌연변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일정한 속도로 축적되므로 어떤 단편에서든 두 게놈 사이의 차이가 클수록 그 단편이 공통 조상의 몸 안 에 있었던 시점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경과한 것이다. 따라서 차이의 정 도는 과거에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뒤로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 기록하는 생물학적 스톱워치인 셈이다.
- 리처드 클라인 Richard Klein은 우리 현생인류가 행동의 측면에서 그 이 전 인류와 뚜렷하게 달라진 이유를 유전자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 각한 가장 유명한 인류학자다. 그의 '유전자 스위치설'에 따르면, 약 5만 년 전 이후 현생인류다운 행동이 만개한 아프리카의 후기 석기 혁명과 서유라시아의 후기 구석기 혁명은 뇌 작동에 영향을 미치는 어느 유전 자에 발생한 한 돌연변이의 빈도 증가 때문이었다. 그런 유전적 변화가 혁신적인 석기 제작과 복잡한 행동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클라인의 가설에 따르면, 이 돌연변이의 빈도가 증가한 것은 개념적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 같은 인류의 뛰어난 몇몇 형질의 바탕이 되었다. 클라인은 그 돌연변이가 있기 전에는 현생인류다운 행동이 불가능했다
- 다른 종에도 소수의 유전자 변화가 큰 형질 변화를 초래한 예가 있다. 예컨대 멕시코의 야생 테오신트teosinte"에 달리는 작은 이삭 이 오늘날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사 먹는 큰 옥수수자루가 되기 위해서 는 다섯 개의 변화만 일어나면 된다.
클라인의 가설은 발표되자마자 강한 비판을 받았다. 고고학자 샐리 맥브리어티Sally McBreaty와 앨리슨 브룩스Alison Brooks의 비판이 가장 잘 알 려져 있는데, 이들은 클라인이 현생인류다운 행동의 특징으로 간주한 거의 모든 형질이 후기 구석기 또는 후기 석기 시대로의 이행기보다 수 만년 전에 아프리카와 중동의 고고학 기록에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지 적했다." 하지만 새로운 행동이 전혀 없었다 해도 클라인의 가설은 일 리가 있었다. 현생인류다운 행동의 증거가 5만 년 전 이후로 점점 증가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런 증거는 "거기에 생물학적 변 화가 관여했는가"라는 질문을 낳기 때문이다.
- 그러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어디서 만나 교잡하여 유럽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뉴기니까지 확산한 집단을 야기했을까? 고고학자들은 중동에서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13만 년 전에서 5만 년 전 사이에 우세한 집단으로서의 지위를 맞바꾼 일이 적어도 두 차례 있었음을 밝혀냈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 두 집단이 만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이렇게 중동에서 교잡이 일어났다고 생각 하면 유럽인과 동아시아인이 공통으로 네안데르탈인 DNA를 물려받은 사실이 설명된다.
- 프리카 기원설의 주장도 전부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 손에는 현재 '종합'이 있다. 이는 고대 DNA를 바탕으로 네안데르탈인과 현 생인류 사이의 유전자 흐름을 밝혀냄으로써 얻어낸 견해다. 이 견해는 '주로 아프리카 기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설을 지지하는 동시에 네안 데르탈인과 친밀하게 교류한 것이 틀림없는 현생인류의 문화에 대해 심 오한 의미가 있는 사실도 밝혀낸다. 유전학 데이터를 통해 아프리카 외 지역의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전 세계를 휩쓴 집단의 자손이라 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 교잡이 있었다는 것도 알려졌다. 이 사실은 우리 조상들과 그들이 만난 구인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우리와 비슷했고, 아마 우리가 현생인류 특유의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행동 다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화적 교환이 있었음이 틀림없고, 그에 따라 교잡도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 만남을 그린 윌리엄 골딩과 진 아우얼의 소설은 역사를 제대로 본 것이었다. 또한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이 비아프리카인에게 전달한 생물학적 유산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데니소바 동굴에서의 발견은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이주하는 동안 구인류와 교잡한 것이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라는 두 구인류 집단 에서 채취된 DNA가 시퀀싱되었는데 두 데이터 모두에서 현생인류와 구인류 사이에 있었던 이제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교잡이 확인되었 다. 다음에 새로 발견되는 구인류 집단의 DNA를 시퀀싱하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교잡이 더 밝혀질지도 모르는데 그렇다 해도 뜻밖의 일은 아닐 것이다.
- 현생인류와 교잡한 네안데르탈인은 우리가 시료를 채취해 시퀀싱한 네안데르탈인과 대단히 가까운 관계였다고 추측되는 반면 뉴기니인의 조상과 교잡한 구인류는 시베리아 데니소바인과 그 정도로 가까운 관계 가 아니었던 것 같다. 현대 뉴기니인과 오스트레일리아인의 게놈을 살 펴보면서 이 현대인들과 시베리아 데니소바인 사이에 DNA 문자의 차 이가 몇 개인지를 세는 방법으로 그들의 조상이 공통조상 집단에서 분 기한 시기를 추측해보았다. 차이의 개수는 게놈의 모든 부위에서 집단 분기가 적어도 40만 년 전에서 28만 년 전에 일어났을 경우에 예상되는 값을 나타냈다.'' 즉, 시베리아 데니소바인의 조상이 뉴기니인 DNA에 기여한 데니소바인 계통에서 분기한 시점은 데니소바인의 조상이 네안 데르탈인과 분리된 시점을 향해 3분의 2쯤 거슬러 올라간 시점이었다. 데니소바인의 두 집단은 그들의 유전학적 관계가 서로 가깝지 않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 다른 적응 형질을 가지고 엄청나게 다른 기후에서 번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데다 집단들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현대인 집단들 사이의 간격보다 훨씬 크다는 점 을 고려하면, 데니소바인을 하나의 폭넓은 인류 범주로 보는 것이 합리 적이다. 그중 한 가지가 뉴기니인과 교잡한 고대 집단의 조상이 되었고, 또 하나가 시베리아 데니소바인이 되었다. 우리가 아직 표본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데니소바인 집단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네안데르탈인도 이 광범위한 데니소바인 계통의 일원으로 간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 많은 계통과 교잡이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온 아프리카가 인류 진화의 모든 대규모 사건의 진원지였다는 대전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골격 증거를 보면 아프리카가 200만 년 전 이전의 인류 진화에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 은 확실하다. 호모 속보다 수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던 직립 보행 유인원이 발견된 이래로 그것은 상식이 되었다. 또한 현생인류의 해부학적 특징을 지닌 적어도 30만 년 전 골격이 아프리카에서 발견되 고, 최근 5만 년 사이에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확산이 있었다는 유전학적 증거가 나오면서 해부학적 현생인류 탄생에 아프리카가 중심적 역할을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하지만 200만 년 전과 30만 년 전 사이의 기간은 어떨까? 이 시기의 대부분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에서 나온 인류 골격이 유라시아에서 나온 인류 골격에 비해 현생인류와 명백하게 더 가 깝다는 증거가 없다.  우리 계통이 200만 년 전 이전과 30만 년 전 이후 에 아프리카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항상 그곳에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견해가 지난 20~30년 동안 힘을 얻었다. 하지만 유라시아는 풍요롭고 다양한 거대 대륙이므로 현생인류에 이르는 계통이 상당한 기 간 동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아프리카로 돌아갔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간은 어떨까? 이 시기의 대부분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에서 나온 인류 골격이 유라시아에서 나온 인류 골격에 비해 현생인류와 명백하게 더 가 깝다는 증거가 없다.  우리 계통이 200만 년 전 이전과 30만 년 전 이후 에 아프리카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항상 그곳에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견해가 지난 20~30년 동안 힘을 얻었다. 하지만 유라시아는 풍요롭고 다양한 거대 대륙이므로 현생인류에 이르는 계통이 상당한 기 간 동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아프리카로 돌아갔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 5만 년 전 이전의 유라시아는 활기 넘치는 장소였다. 적어도 180만 년 전을 시작으로 아프리카에서 다양한 인류 집단이 도착했다. 이런 집단 들은 자매 집단으로 갈라지고, 다양화하고, 서로 교잡하고, 새로 도착한 집단과 교잡했다. 이런 집단 대부분은 머지않아 절멸해 적어도 '순수한 형태로는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골격과 고고학 증거를 통해 현생인류 가 아프리카를 나오기 전에 매우 다양한 인류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대 DNA가 추출되어 분석되기 전에는 유라시아가 아프리카 에 필적하는 인류 진화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몰랐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서유라시아에서 만났을 때 교잡했는가"를 둘러싼 열띤 논쟁은 쓸데없이 앞서 나간 것처럼 보인다. 현재 이 논쟁은 오늘날 살아 있는 수십억 명의 DNA에 기여한 교잡이 있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유럽은 유라시아에서 튀어나와 있는 작은 반도에 지나지 않는다. 수십만 년 전 서로 갈라진 시베리아 데니소바인, 오스트랄로 데니소바인,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적어도 세 집단의 DNA 서열 을 통해 이미 밝혀진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폭넓은 다양성을 고려하면, 이 집단들을 유라시아라는 광대한 지역에 살고 있었던, 헐거운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고도로 진화한 구인류 가족의 일원으로 보는 것이 옳다.
- 2013년 말 에스케 빌레르슬레우 Eske Willersley와 공동 연구자들은 약 2 만 4000년 전 시베리아 남부 중앙 말타에 살았던 소년의 뼈에서 얻은 게 놈 데이터를 발표했다. 말타 소년의 게놈은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에 대해 가장 강력한 유연관계를 보였지만, 오늘날 그 지역에 사는 시베 리아인과는 가장 약한 유연관계를 보였다. 고대 북유라시안이라는 유령 집단에 대해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말타 소년의 게놈은 현재 고대 북유라시아인의 원형 표본이 되었다. 고생물학자들은 과학 문헌에서 새 로 발견된 집단을 정의하는 기준으로 쓰이는 개체라는 의미에서 이를 '기준표본'이라고 부른다.
말타 소년의 게놈이 손에 들어오면서 퍼즐의 다른 조각들도 맞추어 졌다. 이제 현대인 집단을 가지고 먼 과거에 일어난 일을 복원할 필요가 없었다. 유령 집단에서 직접 채취한 게놈으로 수만 년 전의 이주와 집단 교잡을 마치 최근 역사를 분석하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 말타 소년의 게놈으로 해낸 일은 내가 아는 한, 그전까지는 현대인의 데이터를 가지고 어림짐작만 할 수 있었을 뿐인 과거를 생생히 밝혀내는 고대 DNA의 힘을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다.
말타 소년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아메리카 원주민 DNA의 약 3분의 1이 고대 북유라시아인에게서 왔고 나머지는 동아시아인에게서 왔다 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 대규모 교잡 사건은 왜 유럽인이 유전적으로 동아시아인보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더 가까운지 설명해준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동아시아인 관련 계통과 서유라시아인 관련 계통의 교잡에서 생긴 집단의 자손이라고 주장한 우리의 미발표 논문은 옳았다. 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 논문은 빠르게 변화하는 고대 DNA 분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추월당했다. 빌레르슬레우와 공동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은 현대인 집단에만 의존해야 했을 때 가능했던 연구를 훌쩍 뛰어넘었다. 우리는 다른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었기 때 문에 아메리카 원주민이 집단 교잡으로 탄생했음을 증명할 수 없었지 만, 빌레르슬레우팀은 그것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그 교잡 이 더 큰 이야기의 일부였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 오늘날 아프리카 외부의 큰 집단들 가운데 여러 개가 많은 교잡의 산물이라는 발견은 과학자 대부분이 예상한 것과 달랐다. 게놈 혁명 이전에는 나도 많은 사람들처럼 우리가 오늘날 보는 집단들, 즉 유전적으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큰 집단은 먼 과거의 분기를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의 큰 집단 자체가 더 오래전 존재했던 매우 다른 집단의 교잡에서 생긴 것이다. 우리는 그 이후 우리가 분석한 모든 집단 에서 비슷한 패턴을 포착했다. 동아시아인, 남아시아인, 서아프리카인, 남아프리카인, 모두 마찬가지였다. 인류의 과거에는 나무의 몸통에 해 당하는 단 한개 집단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계속 교잡이 있었다. 
- 이렇게 매우 다른 집단들이 융합해 지금의 서유라시아인이 되었음 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증거가 바로 푸른 눈, 흰 피부, 금발 같은 북유럽 인의 전형적 모습이다. 고대 DNA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8000년 전 무 렵 서유럽의 수렵채집인은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피부가 검었고 머리카락도 짙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에는 보기 드문 조합이다.  유럽 최초의 농경인은 대체로 피부색은 밝았지만 검은 머리카락에 갈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럽인의 흰 피부는 이주해 온 농경인에 게서 유래한 것이다. 유럽인의 금발을 만든다고 알려진 돌연변이의 가 장 오래된 사례는 시베리아 동부의 바이칼 호수 지역에서 발견된 1만 7000년 전 고대 북유라시아인이다. 오늘날 중앙유럽과 서유럽에는 이 돌연변이가 수억 개 존재하는데, 그 기원은 고대 북유라시아인의 DNA 를 가진 사람들의 대규모 이주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다.
예로부터 많은 학자들이 인종이라는 개념을 비판해왔지만 확실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고대 DNA 혁명 덕분에 유령 집단이 퍼져 나가며 다른 집단과 교잡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놀랍게도 그런 비판이 재점화되고 있 다. 1만 년 전에서 4000년 전 사이까지 서유라시아의 유전적 단층선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이 고대 DNA 혁명으로 증명되면서 인 종이라는 지금의 분류는 생물학의 '순수한 기본 단위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늘날의 인종 분류는 최근의 현상으로, 그 기 원은 반복적으로 일어난 교잡과 이주에 있다. 고대 DNA 혁명으로 밝혀 진 사실들은 교잡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교잡은 지금의 우리를 이루는 근본적인 바탕이므로 교잡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정하 지 말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 고대 DNA 혁명은 우리에게 한 가지 큰 교훈을 준다. DNA 분석 결 과가 들려주는 인간의 이주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항상 기존 모델과 매 우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이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인간의 이주와 집단 형성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게 하는 것이다. 인도유럽인, 즉 '아리아인'을 '순혈' 집단으로 보는 사고방식이 19세기 이래 유럽에서 민족주의 감정을 유발해왔다. 진정한 '아리아 인'은 켈트인인가, 튜턴인인가 아니면 또 다른 집단인가를 둘러싼 논쟁 이 오갔고 이런 논의는 나치의 인종주의를 부채질했다. 유전학 데이터 는 이 가설들 가운데 일부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여 불편한 기분이 들 지도 모른다. 유전적으로 비슷한 집단 하나가 인도유럽어 다수를 퍼뜨 렸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데이터는 또한 그런 초기 논의가 계통의 순수함을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했다는 사실도 보여준 다. 처음 인도유럽어를 사용한 사람들이 중동에 살았든 동유럽에 살았 든 인도유럽어를 광대한 지역으로 퍼뜨린 주된 집단인 얌나야인은 교잡 으로 형성되었다. 매듭무늬 토기 문화를 시행한 사람들은 더 교잡한 사 람들이었고 벨 비커 문화와 관련 있는 북서유럽인들은 거기서 더 교잡 한사람들이었다. 고대 DNA는 매우 다른 집단들 사이의 대규모 이주와 교잡이 인간의 선사 시대를 만든 중요한 힘임을 입증했다. 순혈 신앙으로의 회기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는 엄밀한 과학에 역행하는 것이다.
- 강한 집단 병목을 경험한 유럽인 계통의 집단 아슈케나지계 유대인, 핀란드인, 후터파 신도, 아마쉬파 신도, 사그네락생장Saguenay-Lac-St.-Jean 지역의 프랑스계 캐나다인 등은 의학 연구자들의 영원한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집단의 창시자가 우연히 가지고 있던, 질병을 유발하는 드문 돌연변이의 빈도가 병목으로 인해 극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부모 중 한쪽에서만 한 개를 물려받는 경우 무해한 돌연변이(질병을 일으키기 위 해서는 두 개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열성 유전된다고 말한다)를 부모 양쪽에서 물려받으면 치명적인 병에 걸릴 수 있다. 그런데 집단에 병목이 일어나 그런 돌연변이의 빈도가 증가하면 집단 내 개인들이 양쪽 부모로부터 같은 돌연변이를 물려받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다. 예컨대 아슈케나지 계 유대인에서는, 뇌가 변성되어 생후 수년 내에 사망하는 테이-삭스병 이라는 심각한 질병의 발생률이 높다. 내 사촌 중 한 명도 젤위거증후군 이라고 불리는, 아슈케나지 창시 집단의 질병 탓에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사망했고, 어머니의 사촌 중 한 명은 릴리데이증후군, 즉 가족성 자율신 경실조증이라는 또 다른 아슈케나지 창시 집단의 질병 탓에 젊은 나이 로 사망했다. 이런 질병이 수백 개나 확인되었고 그것에 관여하는 유전 자가 아슈케나지계 유대인을 포함해 유럽인 창시자 집단에서도 확인되 었다. 이런 발견은 중요한 생물학적 통찰을 불렀고 몇몇 사례에서는 손 상된 유전자의 영향을 상쇄하는 약이 개발되기도 했다.
인도에는 물론 강한 병목을 겪은 집단에 속하는 사람 수가 훨씬 많 다. 그 이유는 인도라는 나라가 인구가 엄청날 뿐 아니라 자티 집단 약 3 분의 1이 아슈케나지계 유대인 또는 핀란드인에서 일어난 것과 동일하거나 더 강한 병목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인도인 집단에서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는다면 수천 가지 질병에 대한 위험인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체계적으로 조사한 적이 없음에도, 그런 예가 이미 몇 가지 알려져 있다. 예컨대 바이샤 계급은 수술 전 투 여되는 근이완제에 반응해 장기간 근육 마비를 일으키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인도 의사들은 바이샤 계통 사람들에게 이 약제를 투여하지 않 는다. 그 증상은 바이샤 일부에서 부틸코린에스테라제라는 단백질 농도 가 낮아서 생기는 것이다. 유전학 연구 결과 그런 증상은 열성 유전되는 돌연변이 탓임이 밝혀졌는데 바이샤는 약 20퍼센트 빈도로 그 돌연변이 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인도인 집단에서보다 상당히 높은 비율이므 로 아마 바이샤의 창시 집단 중 한 명이 그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었을 것 이다. 40 20퍼센트라는 빈도는 꽤 높은 편으로 바이샤의 약 4퍼센트는 유 전자 두 개 모두에 돌연변이를 포함하고 있어서 마취를 받으면 불행한 반응을 일으킨다.
-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현생인류와 교잡한 시점 사이의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계통 분기가 빠르게 연속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은 현 생인류가 유라시아 전역에서 자신들의 기술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확산 할 수 있는 모든 환경으로 차례차례 이동하면서 이미 살고 있던 집단을 대체했음을 암시한다. 구인류는 이미 200만 년 가까이 유라시아에 거주 했고 데니소바인과 교잡한 증거로 미루어 현생인류가 확산할 때도 그곳 에 있었다고 추정되지만, 너무 빠르게 확산한 현생인류에게 맞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설령 그 이전의 초기 현생인류가 남쪽 길을 경유하여 동아시아로 확산했다 해도 그들 역시 그 후 이주한 현생인류에 의해 대체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현대인의 계통에 매우 낮은 비율밖 에는 기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동아시아에서도 현생인류의 아 프리카와 중동 밖으로의 확산은 서유라시아에서 그랬듯 칠판을 지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즉, 자신들을 위한 '빈 서판'을 창조한 것이다. 유라시아의 오래된 집단들은 붕괴했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집단들이 들어와 유라시아 대륙을 빠르게 점유했다. 현재의 동아시아인에게는 이런 초창기 집단에서 유래한 DNA의 실질적인 유전학적 증거가 남아있지 않다.
- 오스트로네시아어의 확산은 동아시아 심장부에서 주변부로 농경인 이 이동한 일을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사례다. 오늘날 오스트로네시 아어는 멀리 떨어진 태평양의 수백 개 섬들을 포함해 광대한 지역에 걸 쳐 퍼져 있다. 고고학, 언어학, 유전학 데이터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추정해볼 수 있다. 약 5000년 전 동아시아 본토의 농경이 대만으로 확산 했다. 대만에서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가장 오래된 가지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농경인들이 남쪽으로 확산해 약 4000년 전 필리핀에 도달 했고 그런 다음 더 남쪽에 있는 뉴기니와 그 동쪽의 작은 섬들에 도달했 다. 43 대만에서 확산할 무렵 그들은 거친 물살 속에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측면에 통나무를 받친 배인 아웃트리거 카누를 발명해 외해를 항 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3300년 전 이후 '라피타'라 불리는 양식의 토기를 제작하는 고대인들이 뉴기니 동쪽에 출현했고 곧이어 태평양으로 더 멀리 확산하기 시작해 빠른 시간 내에 뉴기니에서 3000킬로미터 떨어진 바누아투에 도달했다. 거기에서 통가섬과 사모아섬을 포함해 폴 리네시아 서부의 섬들로 확장하는 데는 겨우 몇 백 년이 더 걸렸을 뿐이 고 그런 다음 1200년 전 무렵까지 오랜 휴지 기간을 보낸 후 800년 전에 는 태평양 최후의 거주 가능한 섬들인 뉴질랜드, 하와이, 이스터섬까지 도달했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 서쪽으로 확산한 일도 마찬가지로 인 상적인데, 이들은 적어도 1300년 전에는 필리핀 서쪽으로 9000 킬로미 터 떨어진 아프리카 연안의 마다가스카르에 도달했다. 현대의 거의 모든 인도네시아인은 물론, 마다가스카르 사람들도 오스트로네시아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이것으로 설명된다. 
내 연구실의 마크 립슨은 오늘날 오스트로네시아어를 사용하는 사 람들 거의 모두에 나타나는 어떤 유형의 DNA를 추적 마커로 사용하면 이 어족의 확산을 추적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립슨은 이 어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현대인 거의 모두는 동아시아 본토의 어느 집단보다 대만의 원주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집단에서 유래한 DNA를 적어도 일부 가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이 결과는 오스트로네시아어의 확산이 대만에서 시작되었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 십중팔구 틀린 오래된 믿음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 우리 자신이 놓이는 위치 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게놈 혁명에는 정체성에 관한 오래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정체 성의 새로운 토대를 세우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있다. 바로 인류 역사에 교잡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음을 밝힘으로써 민족주의 를 떠받치기 위해 이용된 거의 모든 생물학적 논증을 파괴한 것이다. 인 도유럽어를 사용하는 '순혈' 아리안 민족이 독일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 음을 매듭무늬 토기 문화가 남긴 인공물을 통해 추적할 수 있다는 나치 의 이데올로기는 그 인공물을 사용한 사람들이 실은 러시아의 스텝에서 대규모로 이주했음이 밝혀지면서 산산조각 났다. 독일 민족주의자들에 게 러시아의 스텝은 경멸의 대상이었고 따라서 그곳을 민족의 발상지로 본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또한 남아시아 외부에서 온 이주자들이 인도 문화에 큰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힌두 지상주의 이데올 로기는 현대 인도인 계통의 대략 절반이 지난 5000년 이내에 이란과 유 라시아 스텝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대규모로 이주한 사람들에게서 비롯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붕괴했다. 마찬가지로 르완다와 부룬디 의 투트시족은 서유라시아 농경인에게서 DNA를 물려받았지만 후투족 은 그렇지 않다는 대량 학살의 논거로 이용된 사고방식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우리는 현대의 거의 모든 집단이 수천 년, 혹은 수만 년에 걸 쳐 반복된 집단 교잡의 산물임을 알게 되었다. 교잡은 인류의 본성이므 로 어떤 집단도 '순혈'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 고대 DNA 연구는 병원체의 진화에 대해서도 밝혀내고 있다. 인간의 유해를 갈면 때때로 그 개인이 사망할 당시 혈류에 있던 미생물의 DNA가 나오는데, 그 미생물이 유해의 사망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미생물 DNA를 분석한 결과 페스트균이 14~17세기까지 유행한 흑사병,146~8세기 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15 약 5000년 전 이후 유라시아 스텝의 무덤들에서 발굴된 개체 중 최소 7퍼센트의 사인 이 된 역병 ''의 원인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또한 고대 병원체 연구를 통 해 고대 한센병, 결핵' 그리고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을 초래한 식물의 병의 역사와 기원도 밝혀졌다. 고대 DNA 연구에서는 현재 치석과 대변을 포함해 인체에 살고 있는 미생물에서 분석 시료가 일상적으로 채 취되고 있고 이는 우리 조상들이 먹은 음식물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새로운 정보원은 이제 막 채굴되기 시작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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