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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다가올 미래

과학 2023. 5. 13. 17:47

- 산업화 이후 인간 활동에 따라 대기 중으로 배출되고 있는 부유물질 역시 복사에너지 수지에 영향을 미쳐 기후를 조절하는 역 할을 담당합니다. 대기 중 존재하는 입자상 액체상 미세 부유물 질을 에어로졸aerosol 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 농도, 화학적 조성은 매우 다양하며, 대기 중에 입자 형태로 직접 유출되거나 혹은 가 스 형태로 배출되고, 화학 반응을 통해 2차 변형되어 생성되기도 합니다. 흔히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부르는 입자가 여기에 포 함됩니다.
- 에어로졸은 자연적으로 생성되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생성되기도 합니다. 먼저, 바다의 염분, 사막의 모래 먼지, 산불이나 화산 폭발 시 분출되는 가스 등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종류가 있습니 다. 화석연료와 바이오매스 연소로 인한 황화합물, 유기화합물, 검 댕(석탄, 나무 등을 태울 때 나는 오염물질) 등 인위적인 인간 활동으 로 만들어지는 종류도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자동차, 공장, 조리 과정 등에서 발생하는 아황산가스, 질소화합물, 납, 오존, 일산화 탄소 등은 대기오염 물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기 중에 배출되어 장기간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온실가스와 달리 인위적으로 발생한 에어로졸의 경우 대기 중 체류 시간이 짧아 단지 며칠 동안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약하게 부는 때 발원 지역 부근에 고농도로 나타나다가 며칠 바람이 강하게 불면 대부분 사 라집니다. 따라서 기후 문제보다는 대기오염 차원에서 심각하게 다루기도 하지요.
그런데, 긴 파장인 지구 복사에너지에 비해 파장이 짧은 형태 로 지구에 유입하는 태양 복사에너지는 대기 중 에어로졸 농도에 따라 우주로 반사되는 정도가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지속적인 대기오염 물질 배출에 따른 에어로졸 농도의 증가 역시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검은 에어로졸brown aerosol은 태양 복사에너지를 흡수해서 지구온난화를 강화하지만, 대부분의 에어로졸 성분들은 태양 복사에너지를 차단하여 지구온난화보다 오히려 지구냉각화에 더 기여하므로 온실효과와는 반대로 작용 합니다. 오늘날 인위적인 기후변화,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온실 가스를 꼽을 뿐 에어로졸을 탓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에어로졸은 구름 형성에도 관여하여 간접적으로도 지구를 냉각화하기 때문에, 만일 오늘날 에어로졸 농도 증가 없이 온실가 스 농도만 증가했다면 아마도 지금보다 지구온난화 수준은 이미 훨씬 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을 통해 기후변화 에 대한 정기적인 진단과 평가 결과를 보고서로 발표하고 있습니 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건강검진 결과와도 같습니다. 제4차 기후 변화 평가보고서에는 과학적 근거에 의해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명백히 인간 때문"이라는 표현이 포함되었고, 노벨 재단에서는 이 공로를 인정하여 제4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저자들을 대표하는 IPCC 의장과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을 2007년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후변화 회의론자들climate skeptics은 지구온난화가 과장되었으며 자연적 기후변동성의 범위 를 넘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급격한 인위적 기후변화는 자연적 기후변동성 범위를 훨씬 초과하여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그 원인이 산업화 이후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라는 점은 더 이상 부인하기 어려운 과학 적 사실이 되었습니다. IPCC의 제5차, 제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 서에는 지난 제4차 평가보고서에서보다도 더욱 많은 과학적 증거 들을 바탕으로 매우 분명하게 인위적 기후변화를 강조하고 있습 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마치 기후변화 원인이 여전히 논 쟁 중인 사안처럼 해묵은 기후변화 회의론이나 양비론에 빠져 과 학적 사실들을 외면할 상황이 더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 하지만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은 이 그래프가 과거 중세 온난기와 소빙하기를 없애고 현대 온난기를 과장했다고 봤습니다. 여기 서 중세 온난기는 10~13세기 사이 지구상 일부 지역이 온화했던 기간이고, 소빙하기는 이후 13세기 초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세계 각지에서 기온 저하 현상이 나타났던 기간입니다. 이들은 역사 기록 등을 통해 과거 중세 온난기의 기후가 20세기와 비슷하거나 훨씬 따뜻했고, 소빙하기에는 현재보다 훨씬 더 추웠음을 지적합 니다. 현재의 온난화가 단지 자연적 기후변동성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좀 더 최신 연구를 종합하면, 소빙하기와 달리 중세 온 난기는 전 지구적 현상이었다기보다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현상 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좀 더 정밀한 데이터로 재구성된 2,000 년 동안의 지구 평균 온도 그래프에서도 중세 온난기는 잘 드러나 지 않고 소빙하기에만 지구 평균 온도가 0.2도 정도 낮아졌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오늘날의 급격한 지구온난화 수준과 그 속도는 오랜 지구의 과거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즉, 후속 연구 를 통해 데이터가 보완되어도 IPCC 보고서의 기본 틀이 무너진 것은 아니며 하키스틱 곡선이 현재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가 산업화 이후부터 급격히 진행 중인 것으 로 보아 더 이상 '인위적' 기후변화를 계속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 입니다. 하키스틱 곡선으로 알 수 있는 인위적 기후변화 문제의 본질은 오늘날 높은 온도 그 자체보다 하키스틱의 날 모양으로 급증하고 있는, 무서우리만치 빠른 상승 속도와 상승 폭입니다.
- 기온에 따라 수증기 H,0량이 변화하 면 온실효과와 구름에도 영향을 미쳐 다시 기온을 변화시킵니다. 따뜻한 대기는 차가운 대기보다 더 많은 양의 수증기를 가질 수 있으므로, 기온이 오르면 수증기량이 증가하고 온실효과를 통해 기온이 더욱 상승하게 됩니다. 이러한 효과를 수증기 되먹임 water vapor feedback 효과라고 하는데, 지구온난화를 가속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사실 자연적 온실효과에 대한 기여도 만으로 본다면 수증기는 이산화탄소보다도 대략 2~3배나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수증기는 이산화탄 소와 달리 대기 중에 오래 잔류하지 않습니다. 쉽게 비나 눈으로 내리기도 하고, 대기 중 수증기량이 증가하면 구름도 함께 증가하 여 지구로 유입하는 태양 복사에너지를 차단하여 지구온난화를 해소하는 효과도 있으므로 종합적인 복사 효과는 간단하게 결정 되지 않습니다.
- 지구온난화로 북극증폭과 함께 북극해가 빠르게 온난화되면 서 저위도의 기온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제트기류가 약해지며 심하게 사행하고 북반구 중위도에 있는 우 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북미와 유럽 일부 지역에 도 심각한 북극발 한파를 몰고 오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는 듯 합니다. 최근 미국 동부 지역의 이상 기후나 심지어 미국 남동부 에 있는 텍사스주에서까지 심각한 한파로 알래스카보다 더 추운 겨울을 보내게 된 이유도 북극 소용돌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구온난화인데 왜 덥지 않고 추운지를 묻는 것은 북극 소용돌이 와 같은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해 가지는 의문일 것입니다.
- 기후변화로 나타나고 있는 해양에서의 변화는 해수의 수온 상승과 해수면 상승으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해수의 수온이 오르고 빙하가 사라지며 심층 해수 생성도 약해지는데, 이로 인한 해양순환이 변화하며 다시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등 여러 물리적인 변화가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화학적으로 도 해수의 특성에 변화가 생기며 해양생태계 전반을 위협하고 있는 데, 이것 역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 산업화 이후 인류의 누적 탄소배출량 증가 속도와 달리 비교 적 더딘 속도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했던 것은 육상 과 해양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일부 흡수해 주었기 때문입니 다. 문제는 해수의 수온이 상승함에 따라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액체인 해수에 녹는 탄소 용해도는 수온이 낮을수록 높습니다. 지구온난 화로 해수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주는 완충 지로서 역할이 점점 사라지는 중입니다. 해양의 이산화탄소 흡수 역할이 줄어들수록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더 빠르게 증가할 수 있어 배출량을 더 급격히 줄여야만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그동안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대기뿐만 아니라 해양에 녹아 용존 탄소 농도가 증가했는데, 용존 탄소 농도가 오 르면서 해수의 산성도를 낮추어 해양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해수의 산성도는 80pH이 넘기 때문에 70pH 이하인 산성이 아니라 약한 염기성 상태입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 날수록 이산화탄소가 점점 더 많이 해수에 녹아 pH를 낮추기 때 문에 산성화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 해수 중 용존 이산화탄소 농도가 점점 증가하는 것과 다르게 용존 산소 농도는 전 세계 바다 곳곳에서 낮아지는 중입니다. 이 에 따라 용존 산소 농도가 매우 낮은 무산소 환경의 바다를 일컫 는 '죽음의 바다dead zones'이 점점 더 자주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 습니다. 해수가 산성화되며 탄산칼슘 골격을 가진 조개, 갑각류, 산호 등의 피해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양산성화와 빈산소화, 그리고 해양온난화로 인한 수많은 해양생물의 스트레 스 증가는 오늘날 심각한 위협에 놓인 해양생태계의 현실을 보여 줍니다. 각종 해양생물의 피해가 심각해져 해양생태계가 완전히 황폐화하면 부지불식간 해양에 크게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는 인 류의 삶도 보장하기 어려워집니다.
- 에어로졸은 연무질 또는 분진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대기 중 고체 혹은 액체 형태로 부유하며 존재하는 미세한 입자를 의미 하는데, 그 크기는 0.01~100m 범위로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매 우 가벼워 천천히 가라앉으므로 대기 중에서 잘 확산하며 체류 할 수 있습니다. 이 중 입자의 크기로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구분합니다. 지름이 10um 이하면 미세먼지, 지름이 2.5m 이하 면 초미세먼지로 구분합니다. 특히 인위적인 에어로졸 성분에는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납, 아산화질소, 오존, 일산화탄소 등을 포함하는 대기오염 물질이 포함되어 인체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해성 에어로졸 농도가 높아지는 대기오염이 인체에 어떤 영 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 두 사건입니다. 바로 1940년대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고통을 안겨준 것으로 알려진 로스엔젤레스 스모그 사건과 1952년 12월 수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것으로 알려진 런던 스모그 사건입니다. 로스엔젤레스 스모그 사건은 주로 자동차 배기가스 속에 포함된 탄화수소와 질소산화물의 혼합물이 태양 빛에 노출되어 광화학반응에 의해 발생했습니다. 닷새 간의 스모그 기간동 안 최소 20명의 사망자와 6천 명 이상의 질환자가 발생했으며, 그 후에도 수많은 노약자가 호흡기 계통 질환으로 숨졌습니다. 런던 스모그 사건은 가정용 난방 및 공장과 발전소의 석탄 연료 사용 에 따라 배출된 일산화탄소, 이산화황 등이 짙은 안개로 지표면 에 축적되며 발생한 전혀 다른 성격의 대기오염입니다. 이 당시 아황산가스가 황산 안개로 변해서 호흡장애와 질식 등에 의한 사 망자가 첫 3주 동안 4천 명에 달했고, 그 후에도 만성 폐질환으 로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요. 이 두 사건의 여파로 스모그 의 성질에 따라 두 지역의 이름을 따서 '런던형' 혹은 '로스엔젤레 스형'으로 스모그를 구분합니다.
- 기후변화로 농작물 재배지가 달라지면서 작물지도가 바뀌고 결국 우리의 식탁을 바꾼다는 점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1980년에는 전국에 걸쳐 형성되어 있던 사과 재배지가 1995년 이후에는 충남 일부, 충북, 경북으로 집중 되었고, 21세기 말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제주를 대표했던 감귤은 1990년대부터 재배 감소 추세를 보이더니 2000년대부터는 경기도 이천과 충남 천안 등 내륙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또, 기상이변과 함께 특정 작물 수급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빈번해지고 있는데, 최근 '양상추 빠 진 햄버거', '토마토 빠진 햄버거 판매가 이뤄지며 이슈되기도 했 습니다.
- 전 세계에 팬데믹을 가져온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나요?
네, 그렇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코로나19 팬데믹 을 가져온 바이러스'SARS-CoV-2' 출현에 직접적으로 역할을 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기 때문입니다. 영국 케임브리 지대과 미국 하와이대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이 연구 결 과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따른 산림 서식지의 변화가 중국 남부 지역을 코로나바이러스의 '핫스팟hotspot'으로 만들었습니다. 중국 남부 원난성과 미얀마, 라오스의 접경 지역에서는 지난 세기 동안 기후변화와 함께 식물생태계의 큰 변화가 있었는데, 주로 키가 작은 나무들이 자라던 열대 관목 지대에서 주로 숲에 서식하는 박쥐종에게 적합한 환경인 열대 사바나와 낙엽수 산림지대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이 지역은 중간 숙주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천산갑의 서식지이기도 하지요.
특정 지역의 코로나바이러스 수는 그 지역에 서식하는 다양한 박쥐 종의 수와 관련이 깊은데, 과학자들은 중국 윈난성 남부에 40종의 박쥐가 추가 유입되면서 약 100종의 박쥐 매개 코로나바이러스가 더 증가했음을 발견했습니다. 전 세계 박쥐들은 각 종마 다 평균 2.7종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있기 때문에 모든 종 통들어 서약 3,000종에 달하는 서로 다른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를 가 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증상을 보이지 않으나 기후변화로 특정 지 역에 서식하는 박쥐 종의 수가 증가하면 인간이 면역력을 가지지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생기거나 진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다고 합니다.
박쥐가 보유한 대부분의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잘 감염 되지 않지만 인간을 감염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몇몇 코로나바이 러스는 박쥐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중 3가 지가 인간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는데, 바로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입니다.
- 경제학자들은 탄소 1톤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계산하기도 하 는데, 탄소배출이 온실효과를 강화하고 기후위기 피해가 발생하 는 과정을 수량화하기 위해 '탄소의 사회적 비용SCC' 개념을 만 든 것이지요.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부터 자동차 연비 등 여러 요소를 통해 2010년부터 SSC 산출 노력을 지속했는데, 기후변화 가 가져오는 손실을 메꾸기 위한 사회적 비용인 셈입니다. 이 SSC 는 두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탄소 배출로 전 세계적 인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 는 배출된 온실가스가 장기간 대기 중 체류하며 미래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를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연방정부에서 SSC를 채택하자마자 주정부에서도 빠르게 채택했고, 자체적인 SSC를 산출하던 캐나다 정부 역시 미국의 SSC를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 했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SSC는 여러 번 변화를 겪기도 했습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기후변화의 과학적 실체 자체를 부정하며 SSC를 톤당 1~7달러 수준으로 내리기도 했지만 바이든 행정부에 서는 과거 오바마 행정부 때와 같이 톤당 51달러 수준으로 산출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SSC 수치가 더 높아져야만 하고,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중입니다. SSC가 현재의 3배 이상인 톤당 171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발 표되고 있으며, 일정 수준을 지나면 이는 더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ESG를 필수로 고려하는 기업들은 SSC 증가에 따른 환 경비용 증가에 대비해야만 합니다.
- 현재 지구온난화 1.5도 상승까지 남은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 량은 400~650G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400Gt을 국 가별 탄소 누적 배출량을 인구 비례로 계산해보면 우리나라에 남 은 탄소 배출량은 고작 2Gt에 불과합니다. 국내 연간 탄소배출량 이 0.6~0.7Gt 수준임을 감안하면 고작 3년 치밖에 남지 않았음 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에 탄소중립 요구가 거셀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꼭 국제 사회의 요구 가 아니더라도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 탄소중립을 통해 인류의 지 속 가능한 발전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인류 공멸을 피하기 위한 노력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수송 부문 탄소배출량 감소 역시 중요한데, 신공항 건설 논란 도 있지만 탄소배출이 많은 항공 운송보다는 가급적 탄소배출이 적은 철도 운송을 권장해야 하며, 전기차 등의 친환경 미래 모빌 리티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특 히 코로나19 엔데믹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항공 부문의 탄소배출 량을 감소시킬 대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유럽환경청 자료에 따 르면 승객 1명이 1km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은 비행 기가 285g으로 가장 많고, 승용차는 104~158g, 버스 68g, 기차 14g으로 같은 거리 이동을 위해 비행기는 기차의 20배 이상 많은 탄소를 배출합니다. 생산, 유통, 폐기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표현하는 탄소발자국은 또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국내에서 개인 1명이 1km 이동 시 승용차가 210g, 비행기가 175g, 버스 27.7g, KTX 열차 22.7g으로 조사되었 습니다. 비행기보다도 개인 승용차 이동이 더 많은 탄소배출량을 보여 대중교통의 중요성도 알 수 있습니다.
- 편의점 CU는 원두에서 커피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 찌꺼기를 재활용해서 만든 테이블인 '커피박 덱을 설치하는데, 소각 시 1톤 당 약 338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일반 생활폐기물을 친환 경 자재로 사용하는 것으로서 이미 유럽 등에서는 상용화되어 있 습니다. 커피박 덱은 쪼개짐이나 뒤틀림 같은 변형이 작고 기온과 강수량 등 외부 환경에 대한 내구성도 좋으며, 방향 및 탈취 효과 도 있어 편의점 CU는 국내 편의점 업계 최초로 일부 점포에 이를 설치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가맹점 반응 등을 고려해 설치 매장 을 확대할 예정이며, 다른 편의점 업계에도 파급 효과가 있을 것 으로 기대됩니다.- '인류세'는 오래전 오존층 연구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미국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의 폴 크루첸 교수가 2000년도에 처 음 제안한 표현입니다. 그는 2000년에 멕시코에서 열린 지구환경 분야 국제회의에 참석해서 "우리는 이제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인류세Anthropocene 란 인류를 뜻 하는 'anthropos'와 시대를 뜻하는 'cene'의 합성어로 인류에 의 해 만들어진 지질시대라는 의미입니다. 즉, 인류가 지구환경을 심 하게 바꾸어 기존 지질시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지질시대로 구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 오랜 지구의 역사에서 마지막 지질시대인 지금은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 홀로세Holocene, 沖積에 해당합니다. 1만 년 이상 오 래 지속된 이 지질시대 동안에도 많은 지구환경의 변화를 겪었지만 1950년 이전까지의 변화는 그 이후의 변화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난 70 년간 엄청난 지구환경 및 자연생태계 변화를 겪도로 지난 70여 었기 때문입니다.
- 크루첸 교수의 제안 이후 <네이처>나 <사이언스>와 같은 저명 국제학술지에도 인류세는 여러 차례 등장하고, 이제는 일반에도 잘 알려진 개념이 되었습니다. 최근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팀은 국 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인류세가 열렸음을 보이는 구체적 데이터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총 16가지 항목별로 과거와 현재의 구체적인 지구환경 특징을 비 교하는 수치를 열거한 것이지요. 예를 들면, 암모니아 등 반응성 질소의 대기 배출량이 1600년에서 1990년 사이에 250% 증가했 고, 대형 댐 대부분이 1950년 이후 건설되면서 저수량의 95.7% 를 차지하여 바다로 흘러가는 퇴적물이 대폭 감소했으며, 오늘날 전 세계 6,400만km의 고속도로 건설에는 약 2,000억 톤의 모래 와 자갈이 투입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대기 중 수은 농도가 산업 화 이전 대비 450% 증가한 점, 전 세계 수천 km의 해안선에 모 래 이동이 차단되고 연안 습지가 훼손된 점, 플라스틱 생산량이 1950년대 연간 200만 톤에서 현재 3억5900만 톤으로 급증한 점, 지구상 포유류 생물량의 96%가 사람과 가축, 조류의 70%는 가금류가 차지할 정도로 생물량이 급변한 점 등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산화탄소 배출이 2017년 361억 톤 수준으 로 급등했음을 제시하며 지금은 더 이상 홀로세가 아닌 인류세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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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데이터에 신호와 소음이 섞여 있다고 말한다. 방대한 데이터에서 신호를 찾는 것은 마치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바늘을 찾기 위해 모래밭을 전부 뒤집어볼 수도 없다. 숨은 바늘을 찾는 과학, 데이터 밭에서 소음은 걸러내고 신호를 찾는 과학 이 곧 통계학이다.
- 한 사람의 인생처럼 불확실한 것은 없지만, 천사람의 인생의 평균처럼 확실한 것도 없다. (엘리저 라이트(Elizur Wright))
- 프랑스 수학자 아브라함 드무아브르(Abraham de Moivre)가 처음 발견하고, 라플라스가 처음 증명한 이 사실에 '중심극한정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세계적인 수학자 폴리아(George Polya)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분포의 변동이 라도 아주 많이 더해지면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 확인된 사실이자 수학적으로 증명된 필연적 인 사실이다. 정규분포가 정상적인 사람들의 통계 법칙 인지는 모르겠지만 통계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법칙인 것은 확실하다.
- 경제력과 흡연같이 숨어 있으면서 겉에 드러난 두 변수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혼선 변수'라고 한다. 두 변수에 영향을 미쳐 '중첩 변수', 숨어 있다는 뜻으로 '잠복 변수', 이외에 교란 변수, 혼재 변수 등으로 부르 기도 한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진짜 원인을 알아내기 어렵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처럼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란 어느 정도 용이하지만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꽤 까 다롭다.
현상을 예측만 할 때는 상관관계만으로 충분하다. 초콜릿 소비가 많은 나라는 여전히 강대국이며 과학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 다음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큰 나라는 그래서 초콜릿 소비를 많이 하는 나라이다. 다만 현실을 개선할 때는 상관관계만으로 부족하다. 숨어 있는 진짜 원인을 알아야 정확하게 처방할 수 있다.
- 오늘을 다시 살기 위해 쓰는 방법 중 하나는 수학이다. 매일 다른 오늘에 생성될 '데이터'가 무엇일지 확률분포를 이용한 모형으로 만들어 수리적 계산으로 B의 추정값의 확률분포를 찾는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데이터를 생성할 모형이 필요하다. 데이터가 정규분포를 따른 다는 '가정'은 사실 수리 통계적 계산이 가능하도록 데 이터 생성 모형을 정규분포로 정한 것에 불과하다.
오늘을 다시 사는 다른 방법은 작은 '멀티버스'를 소환하는 것이다. 원래 물리학 용어였지만 그 개념이 영 화나 만화에서도 많이 쓰여 익숙한 멀티버스는 무한히 많은 다중 우주가 사람들 모르게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오늘 우리가 가진 데이터는 어떤 모집단에서 랜덤하게 뽑힌 표본이다. 오늘을 다시 산다면 그 모집단에서 다른 표본이나 데이터를 얻을 것이다.
- 모집단은 그 자체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므로 실제로 다른 표본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발상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우리가 가진 오늘의 데이터 는 작은 우주이다. 이 작은 우주를 마치 '모집단'인 것처 럼 생각하고 이 작은 모집단에서 새로운 데이터를 관측 한다면 어떨까? 이미 관측된 2,000명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우주에서 역시 2,000명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우주 를 생성한다. 전체가 옮겨가면 두 우주가 같아지므로 그 중 일부를 '복사해 새 우주를 만든다. 복사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새로운 우주에서는 2명, 3명이 될 수도 있 다. 이 과정은 우연에 맡긴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우주 에 복사되지 않는다. 이 역시 우연이다. 이런 식으로 하 면 서로 다른 2,000명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우주를 (거의) 무한하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작은 멀티버스를 소환했다.
멀티버스의 무수히 많은 우주에서는 서로 다른 B의 추정값이 계산된다. "오늘을 다시 살 때 B의 추정값이 어 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에 대한 답을 멀티버스의 서로 다른 B의 추정값이 어떻게 다른지 조사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이를테면 멀티버스의 추정값들이 0.5~1.5 사이라면 미지수 P가 양수임을 확신할 수 있는 셈이다.
이처럼 작은 멀티버스를 소환하는 방법을 '부트스 트랩(bootstrap)'이라고 한다. 서양식 장화(boot) 뒤축에 달린 끈(strap)이란 뜻이다. 원래는 알 수 없는 추정량의 변동을 주어진 데이터에서 다시 표집해 알아내는 방법이 마치 장화를 신은 사람이 자기 장화 끈을 잡고 끌어당겨 하늘을 나는 것 같다는 뜻에서 지어졌다. 영국의 SF 소설가인 아서 클라크의 "과학은 이해하기 전까지는 마법이다"가 떠오르는 이름이다.
- 부트스트랩이 개발된 것은 1980년대이다. 이보다 이른 1930년대에 피셔는 주어진 데이터를 뒤섞어 멀티버스 를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다. 가설검정에 많이 쓰여 '뒤 섞기 검정'이라고 불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 들은 20세기에는 널리 쓰이지 못했다. 작은 멀티버스를 생성하는 데 드는 힘과 노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하지 만 21세기에는 널리 쓰이고 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손쉽게 멀티버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 는 오늘을 다시 사는 마법 같은 우주이다.

- 하버드 대학교의 역학 전공 교수이자 미국 질병청의 전염병분석센터 소장인 마크 립시치(Marc Lipsitch)는 "불확실 성 앞에서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겸손한 과학이 좋은 과학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전염병분석센터의 철학을 그대로 옮긴다.
"더 나은 분석과 더 나은 데이터를 통해 불확실성을 개선함과 동시에 불확실성 하에서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밝혀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이로 인한 결과를 명확히 소통하는 것이다."
- 빅데이터는 21세기의 보물섬이다. 그 크기가 엄청난 만큼 여러 보물이 숨겨져 있다. 동시에 쓰레기도 많이 섞여 있다. 그렇게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시끄러운 소음은 신호로 위장하기도 한다. 빅데이터를 의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 2019년 기준으로 월 300만 원 이상 공무원·사학·군인연금을 수령하는 국민은 무려 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국민연금 수령자 중에는 0명이다. 국민연금이 봉이라는 다른 근거이다. 사실 자체는 맞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한민국의 연금 제도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역사가 짧다. 국민연금 제도는 1988년에야 시작 되어 대상이 전 국민으로 확대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22년 현재 은퇴자 대부분은 20년 미만의 납입이력이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공무원연금은 훨씬 오래 전부터 시행돼 수급받는 은퇴자들은 20년 이상 2배 넘 게 오랫동안 연금을 납입했다. 30년 이상 연금을 납부한 공무원연금 수령자와 20년 미만 연금을 납부한 국민연 금 수령자를 직접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중도절 단의 오류라고 부른다.
미국의 블루스 가수는 대부분 늙어 자연스레 죽는데, 힙합 가수는 폭력과 마약 사건으로 사망한 비율이 높다면서 힙합 문화를 비하하는 것과 같은 오류이다. 힙합 가수는 대부분 아직 자연사할 나이가 되지 않았다. 공평한 비교가 아니다.
- "모든 (통계) 모형은 틀렸다. 그러나 일부는 쓸모 있다.”
영국의 통계학자 조지 박스(George Box)의 말이다. 데이터의 원천은 모집단이다. 이 모집단은 기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자연현상을 나타낸 다. 아무리 복잡한 통계 모형이라도 자연현상 그 자체를 100%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통계 모형은 틀렸다.
-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복잡 한 자연현상 그 자체보다 그 속에 숨은 대략의 신호를 파악하는 것이 어떤 본질을 파악하는 데 더 요긴하다는 경구이다. 그러니 모든 통계 모형은 틀렸지만 그중 일부는 신호를 파악하는 좋은 도구일 수 있는 것이다. 완벽한 통계분석은 없다. 다만 어떤 통계분석은 쓸모 있는 결론을 줄 뿐이다.
이 격언의 논리를 확장하면 비모수통계의 여러 방법은 모두 틀렸다. 그러나 몇몇 방법은 쓸모 있다. 데이터에 숨은 진짜 강력한 신호라면 스플 라인과 커널, 어떤 방법을 이용하든지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방법 모두 어느 정도 쓸모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했던 것이다.

- 통계학은 근사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여 기서 '근사'는 두 가지로 해석해주면 좋겠다. '거의 비슷하다'라는 뜻, 그리고 '보기에 좋다', '그 럴듯하게 괜찮다'라는 뜻. 자연현상과 가능한 한 '비슷한' 모형을 생각해낸 통계의 답이 역시 '그 럴듯하기도 하다. 정확하지 않으므로 편향이 있 다. 이 편향이 어느 방향으로 생길지 모르니 불 확실하다. 아무리 잘 근사된 모형이라도 자연에 내재된 무작위성은 불확실성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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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협력한다

과학 2023. 3. 9. 19:49

- "어떤 방에서 당신이 가장 똑똑하다면, 당신은 방을 잘못 찾은 것이다."(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 '우리에게는 생동하는 지구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인간의 교만함이 우습다. 힘없는 자의 수사학이나 마찬가지다. 지구가 우리를 돌보고 있는 것이지, 우 리가 지구를 돌보는 것이 아니다. 반항하는 지구를 길들인다거나 병든 지구 를 치유한다는 우리의 오만한 도덕적 계율은 그저 인간의 끝을 모르는 자기기 만 능력을 보여줄 뿐이다. 사실상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 해야한다.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인간이라는 종 특유의 거만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인간이 다른 모든 종을 위해 유일하게 선택받아 만들어진 종이라는 증 거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힘이 있고, 수가 많고, 위험하다고 해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종이라는 생각도 잘못됐다. 스스로를 신이 특별히 만든 존재라 는 인간의 착각은 그저 직립보행하는 포유동물이라는 우리의 진정한 위치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 (린 마굴리스 Lynn Margulls, 공생자 행성 중에서)

- 동기화가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은 동기화로 인한 단점이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 개 의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된 형태다. 뇌의 수많은 신경세포는 서 로 전기신호를 나누며 소통하고, 감각적 인상이나 생각을 만들 어낸다. 뇌의 전기 활동은 대개 비동시적인 것이어서 우리 뇌는 모든 세포를 동시에 활성화하지 않고도 여러 정보를 병행해서 처리할 수 있다. 뇌의 여러 부위에서 서로를 자극하거나 방해하는 신경세포 사이는 아주 조화롭고 안정적이다. 그런데 이런 평화로운 균형이 깨지고, 마구잡이로 변한 신호가 동기화가 필요 한 긍정적인 자극 신호보다 많아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바로 간질 발작이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갑자기 수많은 신경세포가 동시에 같은 박자로 전기신호를 내보내기 시작하면 뇌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 결과 간질 발작 증상이 나타난다.
-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감염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그 수를 줄이기 위해 락다운 조치를 취한 국가가 적지 않다. 여러 정치인과 과학자들이 과연 길고 완화된 락다운과 짧고 강 력한 락다운 중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일지 뜨겁게 토론했다. 서양 국가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 람들 간의 접촉을 줄이는 조치를 취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감염자의 수가 증가하고 대유행이 다시 발생할 때마다 정치계 가 (대개의 경우 너무 늦게) 반응을 보여 조치를 취했고, 사람들은 접촉을 줄였다. 그러면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아 감염자의 수가 줄어들었다. 감염자의 수가 줄어들면 안심하고 방심한 사람들이 락다운 조치를 완화했고 감염자의 수는 다시 늘어났다. 이 과정 이 계속 되풀이되었다. 마치 요요처럼.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발 견된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대유행에 따른 감염자 수 의 진동은 스라소니와 눈덧신토끼의 개체 수 변화에 따른 로트 카-볼테라 모델과 정확히 일치하는 모양새다. 물리학자 벤저민 마이어 Benjamin Maier는 간략한 모델을 만들어 많은 국가에서 여러 차례 융기와 침강을 보인 감염자 수 곡선을 쉽게 설명했다. 이 간단한 모델에 따르면 팬데믹은 강력하지만 짧고 무엇보다도 조화된 조치를 통해 안정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독일에 서는 국민들이 세 차례나 대유행을 겪는 동안 의사결정권자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정치권은 언제나 너무 늦고 너무 느리 게 반응했으며, 다른 나라와 국내의 상황을 잘못 비교했고, 근본 적이고 중요한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대유행이라는 흐 름의 역학이 간단한 활성제-억제제 시스템을 따른다는 사실 또 한 깨닫지 못했다. 이 사실만 알았어도 여러 조치를 더욱 적확하 게 시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짧고 강력한 락다운 조치 를 시행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감염자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역 내에서 감염자가 더 이상 발생하 지 않았다면 동기화 효과 또한 줄어들었을 테고 이에 따라 동기 화의 사슬도 끊어졌을 것이다.

- "혼란스러운 체제의 깊은 곳에서는 거의 항상 가장 작은 구조적 변화가 거대한 행동의 변화로 이어진다." (스튜어트 카우프만 Stuart Kauffman, 복잡계 이론생물학자)
- 우리는 다중 안정성과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질을 수 학적인 모델로 간략하게 나타내고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생태계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항상 균형 상태라 는 결과만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종의 구성이 어떻 게 변할 수 있을지, 지금과는 다른 종의 구성이 가능할지 여부는 결국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 구체적으 로 알 수 있는 몇 가지 예시가 있다. 이것은 모델에서 예측된 다 중 안정성과 실제 생태계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집 근처 작거나 큰 호수가 매번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1년 중 어떤 때는 물이 맑고 깨끗하지만 어떤 때는 아주 탁하다. 우리는 호수가 맑거나 혹은 탁하다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견고한 균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이 맑은 상태가 유지되는 이유는 물속에 있는 식물이 빛을 충분히 받아 많이 자랐고, 이에 따라 물벼룩 같은 곤충들의 은신처가 늘 어났으며, 이 곤충들이 원래대로라면 물 위를 뒤덮었을 조류를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호수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이 강물로 먹을 것을 많이 던지면(예를 들어 오리에게 밥을 주겠다는 이 유로) 어부지리로 혜택을 본 물고기들의 개체 수가 급격하게 늘 어난다. 물고기들은 물벼룩을 잡아먹고, 물벼룩이 없으니 조류가 늘어나 호수를 뒤덮고, 수면이 뒤덮이니 물이 탁해지고 물속 식물이 햇빛을 받지 못해 죽는다. 물속 식물이 죽으니 은신처를 찾지 못한 물벼룩의 개체 수는 더욱더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러면 조류는 증가한다. 이런 식으로 호수의 상태가 완전히 뒤집힌다. 이렇게 상태가 급변하는 과정은 임계현상과 마찬가지로 점진적 이 아니라 비약적으로 발생한다. 다만 외부적인 요소(이 경우에는 사람들이 호수로 던지는 먹이)만이 서서히 변한다. 호수의 상태가 급 변하고 나면 이곳의 물이 다시 맑은 물로 돌아가기는 매우 어렵 다. 식물의 자기 강화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호수 로 던지는 먹이의 양을 티핑 포인트 이전 수준으로 줄이더라도 효과는 없다. 호수의 물은 탁한 상태로 유지된다.
- 이것이 바로 티핑 포인트의 전형적인 특성인 비가역성이다. 분화 단계에 돌입한 줄기세포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란 매우 어렵거나 심지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티핑 포 인트를 넘어 급변한 호수의 물을 맑은 상태로 되돌리려면 호수 에 던지는 먹이의 양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줄이거나 물고기의 개체 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 그래야 물벼룩의 개체 수가 회복된 다. 늘어난 물벼룩들이 조류를 먹어 치우면 물속 식물도 서서히 다시 자라날 수 있다. 티핑 포인트를 넘어가면 시스템을 완전히 다른 균형 상태로 만드는 도약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티핑 포인 트를 넘긴 원인을 멈춘다고 해도 전체 시스템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이것을 '이력현상Hysteresis' 이라고 한다.
비가역성은 각각의 세포가 주변 환경의 느린 변화에 따라 비가역적으로 세분화하고 조금씩 성장해 모습과 기능을 완전히 바꾸는 배아의 발달에는 꼭 필요하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생태계 에서는 나쁜 것이다.
- 군집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 분야 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모델 중 하나로 1995년에 헝가리 의 물리학자 터마시 비체크 amis Vicsek와 동료들이 만든 비체크 모 델 Vicsek model 이 있다.' 이 간단한 모델은 군집행동의 몇 가지 근본 적인 요소만을 형상화한 것이다. 수없이 많은 각 구성원이 군집 내에서 일정한 속도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모든 구성원에는 움직임의 방향이 있고, 방향은 갑작스런 외부의 영향으로 우연 히 바뀔 수 있다. 그래서 각 구성원의 움직임은 불규칙해 보인다. 본질적인 요소를 더해 보자. 각 구성원은 주변에 있는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구성원들은 자신의 행동반경 내를 '둘러보고 다른 구성원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 다른 구성원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방향을 중간값 으로 정한다. 그런데 모든 구성원이 동시에 이 법칙을 따르면서 임의의 방향 전환에 대응하므로 과연 구성원들이 스스로 일치 된 방향을 만들어낸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에 따르면 특정한 조건 아래서, 예를 들어 구성원들의 밀도가 충 분히 높으면, 이들은 단시간에 집단적인 방향을 갖고 느리게 변 화하는 군집을 형성한다. 동기화 현상이나 임계현상에서 관찰한 것과 마찬가지로 복잡하게 얽혀 있던 구성원들이 서서히 군집행 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임계점을 넘었을 때 갑작스럽게 집단행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즉, 모든 구성원이 군집행동을 보이든가 아니면 아예 개별적으로 움직이든가 둘 중 하나다. 집단 중 몇몇 구성원만 군집행동을 하고 나머지는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중간 단계는 없다. 비체크 모델은 비현실적이긴 하지만(이 모델에서 구 성원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평평한 곳에서 움직 인다) 그럼에도 군집행동의 발현을 잘 보여준다. 각 구성원이 주 변에 있는 소수의 다른 구성원과 가까운 거리 내에서만 상호작용 을 해도 집단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즉, 모든 구성원이 반응하지 않아도 집단행동이 시작된다.
- 옌스 크라우제와 동료들이 진행했던 보행자 실험에서는 소수 가 다수를 이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연구진은 실험을 시작 하기 전에 모든 참가자들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대다수는 아무 내용이 없는 쪽지를 받았다. 이들은 원래 정해진 원칙, 즉 되도록 그룹에서 벗어나지 말고 평범하게 걸어가면 되었다. 몇몇 소수 는 특정한 지시가 적힌 쪽지를 받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쪽지의 내용을 발설하지 말고 강당 끄트머리에 있는 칠판 방향으로 걸 어가라는 것이었다. 실험을 시작하자 전체 그룹은 서서히 칠판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누가 그 무리를 이끌고 있는지 알 지 못한 채로 말이다. '정보를 전달받은 소수'가 집단 전체를 특 정한 방향으로 유도했다. 이 실험에서도 우리는 정보를 가진 소 수가 나머지 다수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실험에서 연구진은 각각 반대되는 정보를 가진 두 그룹을 만들었다. 이 실험에서는 다수가 자신들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했고,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목표(칠판)에 도달하기 위해 두 그룹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이동하느라 길게 이어 진 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마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집 단행동을 통해 더 나은 의사결정에 도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으로 보인다.
물론 사람들이 현실에서 그룹을 지어 목표한 방향에 도달하기 위해 체육관이나 강당 안에서 돌아다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 다. 이런 실험실 환경에서 얻은 관찰 결과와 이론이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황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실험 결과로 얻은 지식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혹은 명확하게 정보를 교환하지 않고도 일치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생존경쟁이라는 개념이 개인과 인종, 시민과 국가에 적용되면서 뜻이 왜곡되었고 '적자생존'이라는 개념 또한 잘못 해석되면 서 자연과학, 경제학, 사회과학 분야에서 국가사회주의적인 사상 이 강해졌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오늘날까지 사회의 여러 측면 에서 그 잔재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일이 특히 더 유감스러운 이 유는 다윈 본인 또한 자신이 주장한 개념의 불완전함을 이미 알 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각기 다른 자연의 메커 니즘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윈은 자연을 마치 결투장처럼 묘사했지만 한편으로는 특성 의 변이와 자연 선택이 여러 종 사이의 공생과 상리공생을 충분 히 설명하기에는 모자라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이론은 진화가 왜 점진적이 아니라 비약적으로 발생하는지 뒷받침하지 못한다. 다윈은 자연 선택이라는 원칙이 각 개체뿐만 아 니라 종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벌이나 개미처럼 사회적인 곤충들 사이에서 개별적인 개체는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수수께끼를 남겼다. 또 다윈 진화론 의 '적자생존'이라는 간단한 법칙만으로는 무궁무진한 종의 다 양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오히려 종의 다양성 이 줄어들어야 한다. 다윈의 진화론이 기껏해야 근사치에 가깝 다는 것을 사회다윈주의자들은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다윈 진화론의 기초에는 또 다른 큰 약점이 있다. 특성의 변이와 자연 선택을 변화가 없고 통계적인 환경에서 관찰했다는 점이다. 5장 티핑 포인트에서 보았듯이 실제 생태계에 사는 동물종 과 식물종은 워낙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한 종의 특성이 변 하면 그 결과 다른 종의 특성이 영향을 받고 외부적인 조건이 변 할 수 있다. 연결망에서 어떤 노드의 변화를 개별적으로 생각하 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결망은 테두리가 없어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다. 자연의 전체 연결망은 진화 메커니즘의 지배를 받는다.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이것을 "모든 진화는 공진화 Coevolution 다."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다윈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이론의 근본 메커니즘을 간략한 근사치라고 해석했다고 상정한 말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확대되면서 우리는 적응과 선택이 종 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각 종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뒤섞인 데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윈은 자연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관찰하고 결론을 내렸다. 그의 논증 과정은 '거대한 동물이나 식물을 관찰했을 때 볼 수 있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다윈은 미생물의 세계를 알지 못했다. 박테리아와 고세균 같은 미생물의 종 다양성은 모든 식물종과 동물종의 종 다양성보다 10만 배는 더 다양하다. 그러므로 다윈의 진화론은 생명체의 극히 일부분에만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 위노그라드스키와 베이예링크는 집단적인 전체와 공생 메커 니즘을 더욱 강력하게 주장했다. 덕분에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미생물학 분야에서는 미생물과 소위 세포 내 공생체 Endosymbiont 이 론 그리고 공생 발생symbiogenesis에 관심을 둔 연구가 활발하게 진 행되었다. 공생 발생이란 '서로 다른 유기체가 융합하여 새로운 유기체로 탄생하는 것'을 말한다. 러시아의 생물학자 콘스탄틴 메레시콥스키 Konstantin Mereschkowski는 1905년에 동물, 식물, 버섯 그리 고 단세포 생물 등 모든 진핵생물이 각기 다른 박테리아성 근본 유기체의 융합에 의해 발생했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실제로 몇 몇 진핵생물의 소기관은 박테리아의 구조와 유사하다. 모든 세 포에는 미토콘드리아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리케차속Rickettsia의 특정한 박테리아와 비슷하게 생겼다. 리케차속의 박테리아는 세포 내에 기생한다. 박테리아와 마찬가지로 껍질과 게놈, 즉 유전 질이 있으며 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식물에는 소기관이 아 니라 엽록소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광합성을 촉진한다. 엽록소체의 모습 또한 광합성 박테리아인 남세균과 비슷하게 생겼 다. 남세균은 빛을 영양분으로 바꾼다. 또 엽록소체에도 유전질 이 있다. 메레시콥스키는 비록 유전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 랐지만, 이 지구상에 오로지 박테리아와 고세균만 존재하던 시 절에 어느 순간 고세균 하나가 다른 박테리아를 삼켰고 공생적 인 결합이 발생했으며 그것이 곧 고등 유기체의 근간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 공생 발생 이론은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60년 쯤 지나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진화이론학자인 린 마굴리스가 이 이론을 다시 끄집어냈다. 마굴리스가 1967년에 발표해 큰 반향 을 일으킨 논문에 따르면 공생 발생은 진핵생물 발생의 본질적 인 메커니즘이다. 몇몇 생물학자들은 그 과정이 지구상 생명체의 진화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린 마굴리스는 이에 대해 증거에 기반을 둔 이론을 제시했다.
- 도킨스가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복잡하고 경제적이지도 않은 공생 발생을 왜 그렇게 강조하는 겁니까?"
마굴리스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이 존재하니까요."
이 짧은 대화는 두 전문가의 관점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도킨스는 자신이 주장하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경험적 증거는 적 극적으로 고려하지만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한다. 마굴리스는 냉정한 관찰을 거쳐 무엇이 존재하는지 확인한 다음에야 상황을 설명하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 생물학계의 반항아인 린 마굴리스와 신다윈주의자들 사이에 있었던 논쟁의 주제는 그저 공생 발생이 모든 고등 생명체의 근 원이라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마굴리스에 따르면 바로 이런 협력 과 공생으로 가는 비약적인 발걸음이 근본적인 요소가 되어 진 화가 발생한다. 전체 시스템에서 새로운 연결이 발생하면서 개별 적인 요소가 서로 만나지 않고 의존하지 않으며 점진적으로 진 화할 때와는 달리 갑자기 다른 방식으로 기능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그녀의 이론으로 증명되었다. 이로써 다윈이 이미 의구심 을 품은 적이 있던 수수께끼 중 일부가 풀렸다. 다윈의 이론은 각 종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구조나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마굴리스는 종 사이의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상호작용, 예를 들어 협력적인 공생 관계나 상리공생을 통해 새로운 시스템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공생 발생은 그저 한 가지 예시일 뿐 이다. 생명은 새롭고 매우 긍정적인 협력 행동이 발생함으로써 세상을 정복했다고 마굴리스는 말했다. 그런 변화는 대개 미생물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미생물 분야는 간과되기 쉽다.
- 누구나 이끼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연녹색부터 짙은 녹색, 때로는 붉은색이기도 한 이끼는 돌이나 바위 위에 얼룩처럼 붙어 있 다. 많은 사람들이 이끼를 식물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녹색이 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끼는 아주 특이한 생명체다. 이끼는 여러 유기체가 결합해 하나의 생명체를 이룬 결과물이다.
지구의 지표면 중 대략 5%가 이끼로 뒤덮여 있다. 이끼는 어 디서나 자라지만 성장이 아주 느려서 1년에 약 1밀리미터 정도 자란다. 이끼는 굉장히 오래 살 수 있다. 어떤 이끼는 4,500살에 서 8,500살 정도다. 이끼는 대부분 버섯과 조류, 그리고 다른 남세균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류와 남세균이 결합체에 광합성 에너지를 전달한다. 식물에 속하지 않는 버섯은 스스로 광합성을 할 수 없다. 대신 버섯은 조류를 보호하고 결합체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전형적인 상리공생이다. 흥미롭게도 이 결합체의 일원들은 혼자서도 살 수 있다. 즉, 이끼를 이루지 않고도 살 수 있는데, 다만 형태는 완전히 다르다. 이끼는 말하자면 선택적인 유기체다. 표현형, 모양, 구조, 형태학 등은 어떤 버섯종과 어떤 조류종이 결합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끼는 표현형으로 총체적인 유기체를 구성하기 때문에 흥미로운 생명체다. 변이의 진화 메커니즘과 선택이 개별적으로 관여한 버섯이나 조류종뿐만 아니라 전체 결합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점도 특이하다.
바로 이것이 린 마굴리스가 주장한 내용이다. 그녀는 자연이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지구를 지배했다고 말하며 앞선 내 용을 덧붙였다. 협력의 원칙은 간단한 윈윈 상황을 거치며 널리 퍼진다. 협력을 통해 새로운 총체적인 유기체가 발생하며, 그 역 동적인 진화 과정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난다. 이끼가 공생 하는 유기체라는 사실은 이미 1970년대에 밝혀진 내용이지만 이끼는 당시 예외적인 현상이자 자연의 변종으로 여겨졌다.
- 모든 생명체는 미생물과 협력하는데, 유기체 내에서 이런 협력 과정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발견된다. 대부분의 척추동물 의 소화 체계 내에서 미생물은 아주 유연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이른바 숙주의 식습관에 적응한다. 그러니 소화기관 내의 미생 물을 부가적이고 조절 가능한 장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종에게 미생물과의 협력은 아주 특별하다. 흔하지만 아주 흥미로운 진딧물인 완두수염진딧물Acyrthosiphon pisum을 살펴보자. 이 진딧물은 약 80개의 특별한 체세포, 즉 균세포 Bacteriocyte로 구성된다. 완두수염진딧물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관찰하면 부크네라 아피디콜라 Buchnera aphidicola라는 작은 박테리아를 찾을 수 있다. 80개 밖에 안 되는 균세포 내에 박테리아가 최대 500만 개가량 살고 있다. 박테리아들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할까? 이 박테리아들은 당분자와 아미노산을 재가공해 진딧물의 신진대사를 돕는다. 진 딧물은 그 임무를 세포 내에 있는 박테리아에게 맡긴다. 세포 내 공생체인 부크네라 아피디콜라는 암컷 진딧물이 낳는 알을 통해 후손 진딧물에게 전달된다. 약 1억~3억 년 전, 티라노사우르스 렉스가 지구상에 나타나기도 전이자 복잡한 생명체가 지구에 등 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부터 진딧물과 박테리아는 공생 관계를 맺고 있었다. 진딧물과 박테리아는 아주 오랜 시간 지속 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그런데 진딧물과 박테리아의 밀접한 협력 관계가 오랜 시간 이어지다 보니 박테리아는 자신의 유전질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이 박테리아종은 진딧물의 세포 내에서만 살고 거기서 번식하기 때문에 숙주 세포 밖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유전자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크네라 아 피디콜라의 게놈은 모든 생명체 중 가장 작다.
- 위글스워시아 글로시니디아 Wigglesworthia glossinidia 라는 박테리아종은 체체파리의 균세포 내에 살며 효율적인 공생 관계를 이룬다. 수많은 곤충들이 세포 내 공생체인 박테리아를 키우고 있다. 바 퀴벌레도 마찬가지다.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훌륭한 공생 관계 를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콘볼루타 로스코펜시스Convoluta roscoffensis라고 불리던, 속칭으로는 로스코프 지렁이 혹은 민트소스 지렁이 등으로 불리는 납작한 녹색 지렁이가 있다. 현재의 학명은 'Symsagittifera roscoffensis'다. 아무튼 이 지렁이는 태어날 때 특별한 입을 갖고 있는데, 놀랍게도 다른 소화기관은 없다. 어린 지렁이가 미세 조류를 먹으면 이것이 지렁이의 피부 아래로 마치 실처럼 이어진 다음 점점 늘어나고 정착한다. 지렁이가 자라 면 입이 사라진다. 이후 지렁이는 일생 동안 직접 먹이를 섭취하 지 않는다. 대신 새끼 때 섭취해 피부 아래에 저장해 둔 미세 조 류가 광합성을 하면 지렁이가 에너지와 영양분을 얻는다.
특히 흥미진진한 예시를 하나 더 소개하겠다. '하와이 짧은 꼬리 오징어Euprymna scolopes'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오징어는 몸길이가 대략 3센티미터 정도이며 천적이 아주 많다. 그런데 매우 현명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한다. 밤에 달빛이 비치면 오징어의  림자가 포식자의 눈에 띄게 되는데, 이 오징어는 스스로 빛을 내서 달빛에 섞여 들어감으로써 천적의 눈을 피한다. 이런 생물발 광(유기체가 빛을 내는 능력)은 오징어가 아니라 오징어에 붙어사는 박테리아 알리이피브리오 피셰리Alivibrio fischeri가 내는 것이다. 이 오징어가 갓 부화했을 때는 아직 박테리아와 공생하지 않는다. 오 징어는 자라면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 박테리아를 습득한다. 오 징어의 몸에 오직 생물발광하는 알리이피브리오 피셰리만을 받 아들이고 발광 기관까지 이동시키는 관이 있고, 박테리아는 이 관을 통해 발광기관에 도달한 다음 오징어가 먹는 영양분을 섭 취하고 번식한다. 매일 아침마다 오징어의 체내에 있던 박테리 아 중 90%가 다시 주변 바다로 흩뿌려지는데, 그 박테리아를 새 로 부화한 새끼 오징어가 받아들인다. 곤충과 세포 내에 공생하는 박테리아와 달리 오징어와 생물발광 박테리아의 관계는 느슨 한 편이다
- 남세균과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첫째로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사람속의 종이 지구상에 특별히 오래 존재 했던 종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사람은 진화 과정 에서 나타난 부수적인 종이자 다른 종에 비해 짧게 살고 사라지 는 경향이 있는 생명체다. 둘째로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환경 을 장기적이고 비가역적으로 대격변시킨 유일한 생명체는 아니 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지구의 환 경을 크게 변화시켰는데, 자신들이 급격하게 변화시킨 환경에서 살아남은 남세균과는 달리 우리는 변해버린 환경 속에서 살아남 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인간이 지구상의 생명체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현재의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를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기후 위기, 디지털화와 세계화에 따른 위기, 생물 다양성 손실, 금융 및 경제 위기, 인구과밀, 식량난 등은 하찮은 우리 종을 구하려다가 발생한 것이다. 현재로서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냉정하게 보자면 그렇다.
- 가망 없는 인류, 턱 끝까지 닥친 여러 위협 요소, 정치적 무관 심, 점점 기괴하게 일그러져 가는 인간관계, 대규모 정신 이상, 독재자, 그리고 이런 위기에서 우리가 천만다행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주 작 은 희망을 품고 있다. 축구 시합을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안타깝게도 복잡계 과학과 이 책이 인류를 구할 안내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극적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고 위기에서 규칙 을 발견하고 다른 관점을 취하고 모든 것들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우리를 도울 도구 상자는 될 수 있을 것이 다. 우리는 복잡계 과학의 도움으로 규율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 고 필수적인 메커니즘을 확인하고, 세세한 것들만 따지다가 길을 잃지 않고 여러 현상 사이의 연결을 인식한 다음 그 공통점에 서 배울 수 있다. 공통점만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차이 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 우리는 그저 차이점을 규명하고 그 수를 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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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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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312년 최초의 수로인 아쿠아 아피아Aqua Appia가 건설되었고 서기 226년까지 5세기 동안 총 11개의 수로가 완공되었다. 수로의 총 연장 길이는 약 800km에 달하였는데, 이는 서울시 둘 레길의 5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길이다. 또한 일부 수원지는 도심으로부터 90km나 떨어져 있었다.
수로를 통해 로마 시내에 전해진 물은 856개의 공공 목욕탕과 1,352개의 분수를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을 넘어 요즘의 복합 문화 공간에 가까웠다. 대규모의 목욕탕 안에는 체육 시설이 있어 간단한 운동을 할 수 있었으며, 사우나와 마사지는 물론 독서와 음주까지 할 수 있었다. 고대 로마 가 사회적, 문화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 로마에 처음으로 지어진 공공 목욕탕은 기원전 19년에 완공된 수로 아쿠아 비르고 Aqua Virgo를 통해 물을 공급받았다. 이 수로 의 건설자는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친구이자 미대 지망생 이면 누구나 한 번쯤 초상화를 그려봤을 석고상의 실제 모델 마 르쿠스 아그리파Marcus Agrippa다. 아그리파는 수도 시설을 정비하 고 확장하는 데 막대한 사유 재산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아쿠아 비르고는 11개의 수로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물을 흘려보내는 기 능을 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인 트레비 분수 Trevi Fountain에도 물을 공급하고 있다. 이처럼 로마 제국 때 건설된 수로의 일부는 현재도 유럽 각 지역에 유적으로 남아 있다.'
- 다빈치는 커다란 기포가 나선형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스케치하고 상세히 설명하였는데, 이를 레오나르도의 역설 Leonardo's paradox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무거운 공은 직선으로 가라앉고 작 은 기포는 직선으로 떠오르는데, 커다란 기포는 갈지자형 또는 나 선형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역설로 불린다.
네덜란드 트벤테대학교 유체물리학 그룹의 크리스티안 벨뒤스 Christian Veldhuis는 2007년 기포의 거동을 물리학적으로 해석한 논문 '레오나르도의 역설: 입자와 기포의 경로와 형상 불안정성' 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참고로 심리학과 미술에서 '레오 나르도의 역설'은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데, 넓은 각도 끝의 직 선 일부가 곡선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이처럼 기포의 독특한 물리적 특성은 놀랍게도 의료 분야에 도 활용된다. 예를 들어, 혈액에 평균 직경 5m 크기의 미세 기포microbubble를 주입한 후 특정 부위를 초음파로 촬영하면 기존보다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초음파 주파수와 크기가 비슷 한 미세 기포가 공명 현상으로 초음파 산란을 유도하여 영상의 선명도를 증강시키는 원리다. 또한 초음파 조영제는 인체에 무해 한 미세 기포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검사나 시술 시 특 정 조직이나 혈관이 잘 보이도록 인체에 투여하는 약물인 조영제 contrast media의 부작용 문제를 해결하여 향후 더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 유압의 원리를 처음 밝힌 사람은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 Blaise Pascal이다. 그는 유체의 특성을 연구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일명 파스칼의 법칙 Pascal's law으로 밀 폐된 용기 속 액체의 한 부분에 압력을 가하면 모든 지점에 같은 크기의 압력이 전달되는 원리다. 힘은 압력과 면적을 곱한 값이므 로 일정한 압력 하에서 면적을 달리 하면 힘의 세기도 조절할 수 있다. 이는 작은 힘으로 큰 하중을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압 장치는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필요 로 하는 비행기에 널리 활용된다. 유압을 이용하면 큰 힘이 요구 되는 장치를 손쉽게 밀거나 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의 보조익, 승강타, 방향타 외에도 슬랫slat, 플랩flap, 스포일러 spoiler, 랜딩 기어 landing gear, 브레이크 break 등을 제어할 때도 유압이 사용된다. 오늘날 유압 장치는 비행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활 용되는데, 주로 큰 하중을 다루는 포크레인, 지게차, 덤프트럭 같은 건설 기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파스칼의 법칙은 모든 비압축성 유체에 적용되므로 물도 해당 되지만 기계를 부식시킬 위험이 있어 주로 기름을 사용하며, 한 자로 기름 유)를 써서 유압壓)이라 부른다. 참고로 기름 대 신 공기를 사용하는 공압 시스템 pneumatic system은 공기를 압축해 압력을 높이는 방식이다. 공압은 유압에 비해 정밀하지 않지만 반응 속도가 빠르고 화재 발생 시 위험성이 적어 대형 차량의 에 어 브레이크, 교반기의 에어 모터 등에 활용된다.
- 독일의 항공사 루프트한자는 항공기 표면에 상어 비늘과 유사 한 구조의 필름을 붙여 항공기의 운항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연 료를 절감하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물과의 마찰 저항을 줄여 물 속을 초고속으로 헤엄치는 상어 비늘의 원리를 응용한 생체모 방기술로, 일명 에어로 샤크 AeroSHARK라 불린다. 상어 비늘에는 한쪽 방향으로 갈비뼈 같은 돌기가 존재하는데, 이를 리블렛riblet이라 한다. 리블렛은 육안으로 관찰할 수는 없고 현미경으 로 확대해야 자세히 볼 수 있는 있는 10~100m 크기다. 리블렛 이 만드는 미세한 소용돌이는 주변 물의 흐름과 상어 피부 사이 의 마찰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루프트한자 항공은 이 기술을 유럽 아시아 대륙 간 국제노선에 투입되는 보잉 747기에 실험 적용하였다. 여객기 기체 하부에 약 800m2 면적에 걸쳐 머리카락 굵기의 절반 수준인 50m 높이의 미세 돌기가 달린 얇은 필름을 부착하였다. 계산에 따르면 비행 시 주변 공기와 마찰을 줄여 연간 3,700톤의 연료 절약과 11,700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효과가 발생한다. 이는 유럽-아시아 구간 비행 48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양이다.
- 카메론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보다 해양 탐사에 더욱 큰 흥미 를 느꼈을 정도로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으며,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였다. 또한 그는 2012년 딥시 챌린저 Deepsea Challenger라 불리는 잠수정을 직접 운행하여 지구상 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를 탐험한 적도 있다. 카메론이 SF 영화의 전설이 된 <터미네이터>와 <아바타>를 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카메론과 미국 해군사관학교 연구진은 타이타닉의 침몰 과정을 구조역학적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연구 목적은 타이타닉이 빙산과 충돌한 후 진행된 침수, 침몰 및 구조적 파손을 정확하게 모 델링, 시뮬레이션 및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선박 설계의 핵심 기술인 비선형 구조역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 정받는 부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백점기 교수에게 자문을 요 청하였다. 백점기 교수는 조선해양 분야의 양대 노벨상으로 불리 는 미국조선해양공학회의 데이비드 테일러 메달David Taylor Medal 과 영국왕립조선학회의 윌리엄 프루드 메달William Froude Medal 모두 수상하였다. 또한 영국왕립조선학회는 백점기 교수의 업적 을 기리기 위해 구조역학 분야 35세 이하 최우수 연구자에게 시 상하는 백점기 상Jeom Kee Paik Prize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끈질긴 연구 끝에 <타이타닉>에서 배가 90° 가량 기울어진 상태에서 부서진 것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2013년 조선해양공학 학술지 <Ships and Offshore Structures>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타이타닉이 빙하에 부딪힌 뒤 약 23°로 기운 시점 에 두 동강이 났다. 연구진은 당시 자료를 참고하여 선박의 크기 와 형태는 물론 내부 구조까지 똑같이 모델링한 후 유량 방정식 으로부터 침수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하였다. 이를 통해 시간에 따른 침수량과 굽힘 하중 bending moment을 계산하였으며, 선체가 23° 정도 기울었을 때 배 중심부에서 최대 굽힘 하중을 받는다 는 사실도 밝혔다.
카메론은 타이타닉이 한 번에 완전히 부러지지 않고 잠시나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바나나 이론 banana theory 으로 설명하였다. 선박의 본체는 마치 반으로 쪼개진 바나나처럼 두 동강이 났지 만 이중저가 껍질처럼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 온도뿐 아니라 비뉴턴 유체 non-Newtonian fluid라는 당밀의 물리적 특성도 이 사건의 주요인이다. 뉴턴 유체 Newtonian fluid는 속도에 관계없이 일정한 점도를 갖는 유체로 비교적 점성이 약한 기체와 물 같은 액체가 이에 속한다. 반면 이와 반대로 유체가 움직일 때 점도가 변하는 유체를 비뉴턴 유체라 하는데, 주로 당밀 처럼 점성이 강한 액체들이 여기에 속한다.
비뉴턴 유체는 가해지는 응력stress이 커짐에 따라 점성이 강해 지는 전단 강화 shear thickening 유체와 점성이 약해지는 전단 박화 shear thinning 유체로 나뉜다. 전단 강화 유체로는 전분물이 있으며, 당밀, 케첩, 생크림, 시럽, 혈액, 실리콘 오일 등은 전단 박화 유체 에 속한다. 예를 들어 병에 든 케첩의 점성이 강해 잘 나오지 않을 때 병을 흔들면 어느 순간 점성이 약해져 밖으로 튀어나온다. 당밀도 이와 유사하게 평소 정지해 있을 때는 점성이 강하지 만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따라 순간적으로 점성이 약해져 더욱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한참을 흐르고 난 당밀은 거의 멈춘 후 다시 점성이 강해져 사람들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당밀 속에 갇힌 수백 명의 시민들은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댈 뿐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었고 결국 찬란한 보스턴 역사에 최악의 참사로 남았다.
- 테일러가 폭발 사진만 보고 원자 폭탄의 위력을 계산한 것과 달리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종이 한 장으로 그 위력을 추정하였다. 원자 폭탄의 실전 투입 전 트리니티 실험 Trinity test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었던 그는 충격파가 몰 려올 즈음 종잇조각을 공중에 날렸다. 약 2.5m를 날아간 종잇조 각은 잠시 후 땅에 떨어졌고, 페르미는 그 변위로부터 핵폭탄의 위력을 추론했다.
값비싼 계측 장비 없이 종이와 연필만으로 대략적인 실험 결 과를 빠르게 예측한 낭만의 시대였다. 당시 페르미가 추정한 값 은 10kt였는데, 실제 폭탄의 위력은 20kt 정도였다. 두 배 차이가 나긴 했지만 지금처럼 정밀한 컴퓨터 계산이 불가능했던 시대에 단순 계산으로 얻은 값 치고는 상당히 높은 정확도라 평가받았다. 페르미가 사망한 지 70여 년이 지난 2021년 미국 워싱턴대학 교 물리학과 조나단 카츠 Jonathan Katz 교수는 페르미가 남긴 메모 로부터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원자 폭탄의 위력을 계산했는지 추측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처럼 기초 지식과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단시간 내에 답을 구하는 방식을 페르미 추정 Fermi estimation 또는 추측 guess과 평가
estimation"를 합쳐 게스티메이션 guesstimation이라 부른다. 또한 디자이너들이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를 냅킨에 스케치하듯 과학자들은 메모지에 간단한 계산을 하는데, 이를 봉투 뒷면 계산back of the envelope calculation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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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초월

과학 2023. 1. 29. 13:19

- 지구상에 가장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인간의 직계 조상이라고 알려진 것은 약 180만 년 전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다. 이 무렵 호미닌의 두뇌 크기는 600cc에서 1300cc로 2배가 넘게 커졌다. 이 영리한 친 사회적 무리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문제 해결 과정을 기억할 수 있었다. 이들이 다른 누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궁리해 만든 도구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해서 300만 년 전 초기 호미니드가 만든 단순한 도구와는 크게 다르다. 호모 에렉투스는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게 불을 피웠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 다. 집단으로 사냥을 하며 아프리카에서부터 아시아에 이르는 넓 은 땅을 호령했고 유럽 일부 지역까지도 진출했다. 이들은 언어 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한 형태였지만, 놀랍게도 바다 를 항해할 수 있는 탈것을 만들어 섬 사이를 오갔다고도 한다. 유 전적으로 볼 때 호모 에렉투스는 대단히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 다. 각기 다른 개체군이 넓은 지역에 퍼져 생활하면서 수십만 년 에 걸쳐 친척뻘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호미닌과 교배를 했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120만 년 전, 기후 변화의 영향 때문인지 호 모 에렉투스는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러 전 세계적으로 고작 1만 8500명 정도만 남게 된다.' 인간은 이후 약 100만 년 동안 현재 침팬지나 고릴라가 겪고 있는 멸종 위기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빠 졌다. 호미닌의 다양성을 감소시킨 인구 병목 현상이 어쩌면 인류 라는 종의 진화를 가속화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 얼마나 많은 종의 인간이 존재했는지, 얼마나 많은 인종으로 나뉘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50만 년 전 하이델베르크인(1907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시 교외에서 화석이 발견된 고대인 류. - 옮긴이)이 기후 변화의 결과로 당시 거주하던 아프리카 대륙이 점차 푸르게 변하자 유럽과 그 너머까지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흔 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30만 년 전부터 갑자기 유럽으로의 이주 가 중단되었다. 아마도 혹독한 빙하기 이후 사하라 지역에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사막 지대가 만들어진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결국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부족은 다른 부족과 교류가 끊어져 격 리되었다. 이러한 격리를 통해 각 개체군이나 부족 사이의 유전적 차이가 진화해 마침내 서로 다른 인종이 형성되었다. 해부학적으 로 현생 인류의 뿌리로 보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최근 발견된 호모 날레디 Homo naledi(201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화석이 발견된 고대 인류. -옮긴이)처럼 멸종한 다른 인종과 섞이면서 문화를 발전시키고 번식 했다. 아프리카를 떠난 호미닌 중 기온이 낮은 북부 유럽에 정착 한 개체군이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오직 유전학을 통해서만 존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인류로 진화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8만 년 전, 현생 인류의 몇몇 가족이 최초로 아 프리카 대륙을 떠났을 무렵 네안데르탈인은 지금의 시베리아에서 스페인 남부 지역에 걸쳐 크게 번성해 있었다. 어디에서든 다른 인간을 만날 때마다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 우리 유전자 속에 살아 있는 그들의 흔적이다. 나를 포함해 오늘날 유럽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유전적 구조 안에는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여전히 유럽인의 20퍼센트 이상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를 다음 세대로 전해주고 있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고대 인종 역시 현대인에게 유전적 유산을 남겼다. 오스트 레일리아 원주민은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데, 아쉽게 도 데니소바인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거의 없다. 또한 아직까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다른 고대 인종도 2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이들을 포함한 전 세계 인간에게 유전적 영향을 미쳤다' 어 쩌면 다른 인종에 흥미를 느끼고 번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본 성이 우리의 조상으로 하여금 다양한 호미닌의 좋은 유전자를 수 집하게 만들었고 이 유전자는 환경에 상관없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 애초부터 인간이 혹독한 환경에 맞설 수 있 을 만큼 신체적 능력이 뛰어났던 시기는 역사를 샅샅이 뒤져봐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의 생존 가능성은 언제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으로부터 불과 7만 4000년 전, 지금의 인도네시아 토바Toba 에서 대규모 화산 폭발이 발생했다. 이후 살아남은 우리 조상의 개체 수는 불과 몇천 정도 에 불과해 멸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중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은 몇 종에 그친 유인원과 단 한 종의 인간이었다.
도박과도 같은 문화적 변화 속에서 오직 현생 인류만 살아남았 다. 비슷한 능력을 가졌던 다른 사촌격 종들도 지구에서 수십만 년 이상 생존했지만, 단편적인 흔적만 남겼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전 세계에 퍼져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문화 덕분이었다. 우리가 거둔 영광스러운 성취인 문화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네안데르탈인의 비극 적인 최후보다 분명한 사례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 도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현생 인류와 비교했을 때 두뇌 용량도 더 컸으며 신체적 조건도 우월해 추운 기후에서 더 잘 생 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멸종했고 우리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운도 따랐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기후의 변화는 초원에서 온 사냥꾼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조상이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먼저 자리를 잡았던 원주민은 감당하 지 못할 질병을 가지고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 은 따로 있다. 당시 네안데르탈인은 근친 교배를 거듭한데다 개 체 수도 이주민에 비해 10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유전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경우 한 종이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인 진 화적 적응력이 현생 인류와 비교했을 때 최소 40퍼센트 이상 뒤 떨어져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렇게 적응력이 떨어지면 개 체 수는 물론 유전적 다양성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이 구석기 시대의 개체 수, 이주형태, 생태적 요소 등을 입력해 당 시 상황을 재현해보니 네안데르탈인은 이주민과 처음 만나고 1만 2000년 정도 후에 멸종했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 진화의 성공 여부를 궁극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개체 수이다. 그렇다면 유럽으로 조금씩 이주한 현생 인류는 개체 수로 네안데르탈인을 압도했다는 것인데 무엇이 개체 수 증가의 결정 적 원인이 되었을까?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 조상의 지능이 다른 종에 비해 훨씬 뛰어났기 때문일까? 물론 이러한 추측도 가 능하다. 그렇지만 두뇌 용량이나 사용했던 도구 등 모든 증거를 종합해 비교하면 멸종한 네안데르탈인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호모 사피엔스의 어떠한 생물학적 혹은 문화적 요소가 네안데르탈인을 압도할 수 있도록 했고 지표면의 3분의 1이 얼음으로 뒤덮일 정도로 혹독한 환경에서도 훨씬 더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 네안데르탈인과 관련한 프랑스 의 여러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분석해보면 불을 피울 때 특별 한 방법을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바로 부드럽고 윤기 가 흐르는 광물인 이산화망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산화망간 가 루를 사용하면 발화점을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산화망간을 모아 놓았던 널찍한 장소를 찾아냈다. 네안데르탈 인은 이 가루를 부싯깃 역할을 하는 마른 이끼 등에 섞어 필요할 때마다 불을 피웠던 것이 분명하다. 현대인이 불을 피울 때 성냥 을 사용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방 법은 다음 세대로도 전해지는데 그 정보는 사용되는 재료만큼이 나 귀중하다'
- 그렇다면 인간의 두뇌가 커지고 지능이 높아지면서 불을 피울 수 있게 된 것일까? 아니면 불을 피울 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의 두뇌가 커질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모두 옳을 것이다. 수십만 년에 걸쳐 인간의 유전자, 문화, 환경이 모두 적절하게 적응하면서 축적된 지식을 통해 진화 과정을 서로 보완하며 만들어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불은 고대 그리스인의 생각처럼 자연을 이길 수 있는 신과 같은 힘을 인간에게 선사했다. 이 덕분에 호미닌은 주어진 환경을 마음대로 관장할 수 있는 일종의 정원사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불이라는 에너지를 이용해 식량으로 삼을 초식 동물을 먹일 목초지를 조성했고 자신들의 필요에 부합하고 생존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생태계를 완성했다.
우리의 조상은 그들이 의지했던 문화에 유리한 환경적 조건을 스스로 만들었다. 주어진 환경에 더 많이 개입해 통제할수록 세대 를 거쳐 그런 문화 정보를 전달하는 작업의 유리함도 더 크게 부각되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해가고 있던 것이다.
-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간은 자신만을 위해 사냥 을 하지 않는다. 잡은 사냥감은 그대로 부족에 가져와 함께 나눠 먹는다. 200만 년 전 호미닌이 사냥감이나 먹을거리를 그대로 들 고 돌아갔다는 증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분업은 부 족의 일원이 각자 특기를 개발하면서 효율적으로 사냥을 할 수 있 게 한다. 사냥용 창을 잘 만들 수 있다면 굳이 최고의 사냥꾼이 되 지 않아도 사냥꾼 못지않게 인정을 받아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 다. 이런 협동과 먹을거리의 분배는 집단의 역량을 강화시키고 여 러 복잡한 특기나 기술을 더 다양하게 발달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신체적으로 사냥꾼 역할로서의 절정기는 이십 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갈고 닦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40대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자기 몫을 하는 사냥꾼이 될 수 있다." 수렵과 채집을 하는 인간 공동체에서는 18세 무렵이 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에 게 필요한 열량조차 스스로 구하지 못한다. 반면, 비슷하게 수렵과 채집을 하는 침팬지는 유아기를 갓 벗어난 5세 무렵부터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집단에서 이탈했거나 먹을거 리가 부족할 때 부분적으로라도 자신의 생존을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사실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일단 집단을 이 루고 서로 협력하게 된다면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자체로도 생존 을 위한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단순한 독립의 의지보다 이 런 점이 생존에 있어 훨씬 중요하다.
-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고 종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과정인 출산과 모유 수유는 이렇게 어려운 문제이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산모와 아 기 모두 사망의 위험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위험의 대가로 얻게 된 더 큰 두뇌, 극단적으로 높은 사회 성, 문화적 지식이 진화 과정에서 그만큼의 가치를 분명히 발휘했 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수많은 진화 과정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출산도 불을 다루는 기술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불에 의한 보호 가 없었다면 이렇게 어려운 출산을 정기적으로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 사방이 노출된 평원에서 살았을 때 아기 는 새끼 영양 같은 초식 동물처럼 위험을 피해 스스로 달아날 능 력을 갖추지 못했다. 두뇌가 급격히 커지는 쪽으로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출산 과정이 어려워진 것은 분명 인류가 불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한 뒤에 일어난 현상일 것이다.
- 영장류 17종의 몸무게, 식습관, 먹을거리를 찾는 방식 등을 바탕으로 각 영장류의 뉴런 수를 계산한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가 인간만큼 큰 두뇌를 유지하 기 위해서는 하루에 7시간 이상 먹는 데 써야 하는 반면, 몸무게는 26킬로그램까지 줄여야 한다." 몸무게 변화 없이 7시간 이상 먹 는 데 쓸 경우 감당할 수 있는 뉴런은 최대 320억 개에 불과하다. (인체에는 1000억 개에 달하는 뉴런이 있다.20)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인지적 능력에 대한 요구가 증가 하면서 주요 뉴런이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했다. 그 결과 인간의 진화는 에너지 효율이 향상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개선되고 촉진되었다. 에너지 효율의 향상에는 두뇌 안에서 포도당과 크레아틴 전달체를 조절하는 새로운 유전자도 포함되어 있 다." (크레아틴은 포도당이 부족할 때 가능한 빨리 대체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종의 예비 공급원이다.) 반면, 근육은 다른 영장류와 비교해 크게 달 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진화는 근육이 아닌 두뇌의 역량을 최적화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뇌 강화 위주로 적응이 진행되었음에도 지능은 섭취 가능한 열량에 좌우되었다. 빙하기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은 체온 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최소 3500킬로칼로리 정도 섭취해야 했을 것이다. 동시대에 살았던 조금 더 덩치가 큰 네안데르탈인은 체온 을 유지하고 채집 활동을 하기 위해 매일 3360~4480킬로칼로리 정도 필요했을 것이다." 고생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코가 독특하게 넓었던 것은 '숨을 더 많이 들이마시기 위한' 진화의 결과 로 이 덕분에 호흡량이 증가하고 효율이 좋아졌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네안데르탈인은 고열량 식단이 필요한 에너지 과다 소비형 생활 방식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꿀, 과일 혹은 이따금 섭취했을 지방이 풍부한 육류를 제외한다면 그들의 식단은 열량이 그리 높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장류는 상당한 시간을 먹는 데 소비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두 뇌 성장과 문화 발달을 이뤄내지 못했다.
루시 같은 최초 호미니드의 두뇌에는 최대 400억 개의 뉴런이 있었으며 하루에 7시간 이상 쉬지 않고 유인원과 비슷한 식단을 섭취해야 두뇌 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약 620억 개의 뉴런을 갖고 있었던 호모 에렉투스는 하루에 8시간 이상을 먹어야 했고, 이후 등장한 네안데르탈인의 경우에는 매일 최소 9시간 이상을 먹는 데 써야 했다. 따라서 채집, 사냥, 사회화는 물론이고 다른 문 화적 활동에 시간을 거의 낼 수 없었다. 한마디로 애초에 불가능 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만큼 먹었는지는 차치하고, 매일 9시간을 계속해서 먹을 수 있도록 밥그릇을 채울 시간이나 여력 자체가 없 었을 것이다. 인간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건 불을 다루 게 된 이후부터이다.
-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이 거둔 성공은 근본적으로 다른 어떤 생 명체보다 에너지를 자유롭게 다루고 에너지를 얻기 위한 노력을 다른 곳에 전가하는 능력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에너지를 얻기 위 해 음식을 생화학적으로 분해하는 데 신체적 능력에만 기대지 않 고 먹을거리를 물리적으로 가공하거나 발효, 절임 등으로 조리하 는 문화도 활용했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을 이용해 조리했다는 사실이다.
- 일반적으로 동일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더라도 육류보다 식물을 소화시킬 때 훨 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소는 몇 시간에 걸쳐 씹어 삼키 고 되새김질을 한다. 처음에는 입에서 질긴 섬유 조직을 분해하고 4개의 위장에서 같은 과정을 반복한 후에야 비로소 지방으로 저 장된다. 인간의 두뇌는 많은 에너지와 단백질을 필요로 하는데 지 방이 많은 육류는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다. 사냥을 하는 과정, 도구나 손 또는 이로 사냥감을 먹기 좋게 해체하는 과정, 씹어 삼키고 소화시키는 등의 신진대사 과정에는 분명 에너지가 소모되 지만, 식물을 섭취할 때보다는 에너지 소비가 적다.
불을 이용해 조리한 음식은 소화시키기가 훨씬 쉽다. 불의 에너 지가 인간의 위장이 할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같 은 무게라면 날고기보다 익힌 고기를 섭취하는 것이 10배 이상 효율적이다. 게다가 불을 이용해 조리한 음식이 더 많은 열량을 제공한다. 인간의 신체는 조리된 음식을 더 잘 흡수하는데 육류는 단백질을 40퍼센트 이상, 곡물이나 뿌리채소는 탄수화물을 50퍼 센트 이상 더 흡수할 수 있다." 음식물 조리는 복잡한 두뇌 조직 을 생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철분, 아연, 비타민 B12 같은 영양소를 더 많이 그리고 더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 불이 인간의 소화 작용을 상당 부분 대신하게 되면서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인간 의 소화 기관은 크기가 점차 줄어들어 다른 영장류와 달리 상당수 의 야생 상태의 잎이나 열매를 소화시킬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은 섭취할 수 있는 것의 종류를 줄여나가는 진화의 도박 때문에 기근 에 취약해졌고 여타 영장류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식물의 독성 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소화 기관의 크기가 줄어들면 서 귀중한 열량을 커진 두뇌로 더 많이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사냥 및 채집을 주로 하는 공동체를 보면 필요한 열 량의 절반 이상을 동물에게서 얻고 나머지는 식물로부터 보충한 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조리법의 발명이 인류의 조상들이 먹 을거리를 구해 섭취할 준비를 하고 씹어 삼키는 데 소모되었을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줄여준 것은 분명하다. 
- 이미 20만 년 전쯤에 인간의 두뇌 크기는 골반이 감 당할 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했지만, 두뇌의 신경망은 역량을 계 속해서 진화시켰다. 그렇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은 안전하게 이 뤄진 제왕 절개 수술이 진화적 효과를 가져왔다. 골반이 너무 좁 아 자연 분만이 어려웠던 산모도 이제는 문제없이 자신의 유전자 를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산모와 태아 모 두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좁은 골반을 가진 여 성이 증가하게 되었다. 지난 60년 동안 골반 크기 문제로 제왕 절 개를 선택한 비율은 전체 산모의 3퍼센트에서 3.6퍼센트로 늘어나 60년 전과 비교했을 때 20퍼센트 증가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언젠가는 외과적 수술에 의한 분만이 자연 분만만큼 늘어나게 될 지도 모른다. 반면, 지난 1만 년 동안 인간의 두뇌는 대략 3~4퍼 센트에서 최대 10퍼센트 가량 작아졌다. 이러한 현상을 이제 우리 사회가 작은 공동체에서는 지적 능력이 떨어져 생존을 담보하기 힘들었을 이들도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갈 수 있을 만큼 사회 구 조가 복잡해졌다고 해석하는 가설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두뇌의 크기가 작아지는 현상은 가축화된 동물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어쩌면 과사회성 hypersociability, 협동과 관련된 유전적 변화가 일부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지능이 높을수록 자녀를 적게 낳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지적 능력이 유전자 풀에서 점점 그 가치가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인간이 그동안 축적한 지식을 점점 더 문헌이나 기계 등 외부 장치에 기록하는 것에 의존하면서 지적 능력이 생존 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 문화의 영향력에 대한 증거는 신경학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 다. 인간의 두뇌는 말 그대로 주변 문화에 의해 다듬어진다. 최근 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수백 명의 인간과 침팬지 두뇌의 대 뇌 피질에서 지능을 관장하는 영역을 살펴본 결과 뇌구sulci라고 부르는 주름은 태어난 이후 계속 자라고 변화하지만, 인간과 침팬 지 사이에 차이점이 있었다. 침팬지는 이 주름의 모양과 위치가 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어 형제자매라면 모양이나 위치가 거 의 비슷했다. 그런데 인간은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이 극히 미미했 고 환경과 사회적 요소가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침팬지는 유전 적으로 자신들의 인지 능력에 갇혀 있기 때문에 두뇌의 발달 혹은 새로운 행동이나 기술을 배우는 능력이 제한된 것이다. 반면, 인간 은 침팬지보다도 덜 발달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출생 후에 는 두뇌가 더 크게 성장을 한다. 이때 외부 세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관습에 따른 각각의 단계나 과정이 왜 중요한지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배우고 익히기만 하면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인 간과 다른 지능이 있는 동물 사이의 핵심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 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진화 심리학자 마이크 토마셀로는 주목할 만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에서는 열기 힘들게 만들어진 상자에 선물을 넣어 한 아이와 침팬지에게 주었다. 아이와 침팬지 모두 처음에는 스스로 상자를 열지 못했다. 토마셀로는 상자를 이 리저리 움직이고 열어 안에 있는 선물을 꺼내는 모습을 보여주었 다. 그는 마지막 과정으로 상자를 열기 전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3번 두드리는 동작을 끼워 넣었다. 아이와 침팬지 모두 토마셀로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해 선물을 꺼낼 수 있었지만, 손으로 머 리를 두드리는 행동까지 따라한 것은 아이뿐이었다. 침팬지는 그 행동이 상자를 여는 것과 상관이 없다고 보고 따라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모든 행동을 그대로 따 라했다. 아이는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을 신뢰해 각각의 단계와 행동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어쩌면 불필요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따라한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아이는 행동의 목적이 덜 분명할수록 오히려 더 주의를 기울여 똑같이 따라한다'
복제는 대단히 중요한 행위이기 때문에 인간은 거기에 맞춰 문 화적, 생물학적 구조를 진화시켜왔다. 여기에는 긴 어린 시절과 큰 사회적 집단 그리고 더 나은 기억력 등이 포함된다. 인간은 배 우는 동시에 가르친다. 인간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어떤 일을 하는 시범을 보여준 뒤 아이가 자신을 따라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 러면서 일종의 쌍방향 대응 과정으로 다음 단계의 시범을 보여주 기 전에 아이의 행동에 맞춰 수정하면서 아이가 최종적으로 원하 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른 동물은 이렇게 쌍방향 대응 행동을 하지 않는다.
- 사회가 더 많은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사회가 보유하 고 있는 기술도 효율성과 함께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진화 했다. 가마는 단지 질그릇을 굽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질그릇에 유약을 더하기 위해 높은 온도를 만들고 제어하는 과정에서 야금술 (광석에서 금속을 골라내고 정련하는 기술. -옮긴이)로 발전되었을 가능 성이 높다." 그릇 장식에 쓰기 위해 광석을 부숴 가마에 넣자 마음대로 녹이고 주무를 수 있는 작은 구리 알갱이가 가마 안에 쌓인 광경을 상상해보자. 돌에서 구리를 얻을 수 있다는 발견, 즉 공 작석(구리가 돌로 산화되어 형성된 보석. -옮긴이)이나 코벨라이트(황화 구리로 구성된 광물. 옮긴이) 그리고 황화구리 성분으로 밝은 녹색으 로 빛나는 광석을 녹이고 제련해 구리를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은 대단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밟고 있는 땅속에 얼마든지 재 사용할 수 있고 어떤 형태로든 만들 수 있는 놀랍도록 새로운 소 재가 감추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새로운 소재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 다. 가마의 온도를 최소한 섭씨 1000도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 해서는 연료로 숯이 필요했고 풀무의 도움도 받아야 했다. 인간은 새롭게 만들어낸 단단한 구리 칼날로 뼈와 나무 그리고 돌도 잘라낼 수 있게 되었다. 이집트에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도 구리로 만 든 도구를 사용해 돌을 잘라 쌓아 올린 것이다. 피라미드를 만들 기 위해서는 대략 30만 개 이상의 구리 끌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 정되는데 이 끌을 만들기 위해 1만 톤 이상의 구리 광석이 필요 했을 것이다." 당시 필요한 구리를 캐내기 위해 광부들은 길어야 1년 정도밖에 생존할 수 없는 최악의 환경에 내던져졌다고 한다.
기원전 3000년경, 인간은 구리에 주석을 더해 청동을 제작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최초의 합금이었다. 청동은 새로운 교역로를 열었다. 주석은 상대적으로 드문 광물인 탓에 주석이 매장되어 있 던 현재 영국 남서부 콘월Cornwall 주 지역에서부터 교역로를 따라 아프가니스탄까지 이동하기도 했다. 이때 물자뿐만 아니라 기술이나 사상도 함께 전파되었다. 주석 교역로는 최초의 대규모 국제 교역로였으며 이를 통해 부를 쌓은 새로운 사회 지배 계층이 등장하게 되었다." 기원전 1200년경, 이러한 국제적인 교역로가 유목 민족의 침략으로 갑자기 끊어지자 청동의 대체품을 찾아 나서게 되었고 마침내 모든 바위에 가장 대중적인 금속인 철이 상당 부분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은 곧 철기 시대로 접어들었고 그 시대는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철광석을 녹일 때는 구리를 만들 때보다 훨씬 더 높은 온도가 필요했다. 고대 사람들이 당시의 가마나 화로를 이용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괴철塊뿐이어서 청 동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망치로 내려치는 단조 작업을 거쳐 강 성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청동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15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런 방식으 로 가공된 철기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숯을 연료로 해 가마의 온도를 끌어올리는 방법이 개발되고 철과 탄소를 결 합할 수 있게 되면서 혁신적인 돌파구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해 서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강철이다. 그때까지 만들어낸 금속 중에서 가장 단단했던 강철은 탄소가 어느 정도 함유되느냐 가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탄소가 1퍼센트 포함되 면 좋은 품질의 강철이 되지만, 탄소 함유량이 4퍼센트에 이르면 강도가 떨어져 무르고 만다. 인간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강철을 제조할 때 어떤 경우에 성공하고 또 어떤 경우에 실패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강철 제조법은 세대를 거쳐 대단히 까다롭고 비밀스러운 의식을 통해 일부에게만 전수되었다. 로마 군단은 영 국에서 철수하면서 쇠못을 비롯한 관련 기술을 신중하게 감췄다. 부러지지 않는 칼, 수도관, 배를 만들 수 있는 자신들만의 지식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 발견된 한 구덩 이에서는 로마 군단이 철수하면서 두고 간 7톤에 달하는 쇠못과 철제 보급품이 그대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금의 영국 지 역에서는 강철 제조를 위한 핵심적인 기술이 사라지면서 아서왕의 명검 엑스칼리버 같은 무적의 무기에 대한 전설만 남게 되었다.
-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노래의 길 사례는 인간이 만든 이야기가 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또 널리 퍼질 수 있었는지 설명해 준다. 인간의 이야기는 일종의 집단적인 기억 장치로 이런 이야 기 속에는 자세한 문화적 정보가 암호화되어 저장되어 있다. 이야 기는 집단의 문화적 지식이 집단적 기억 속에 축적이 되고 진화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래 남아 있도록 도와준다. 동시에 복잡하 고 풍부한 문맥의 문화적 정보를 널리 퍼트릴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인간의 문화가 복잡하게 진화하면서 이야 기는 단순히 중요한 문화적 적응 과정 의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 다. 우리의 두뇌는 인지 과정의 일부로 이야기 서술에 대해 반사적 으로 반응을 하며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우리의 정신과 사 회, 그리고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형성하며 우리의 삶을 지켜준다.
- 이야기로 전해 들은 정보는 훨씬 더 기억하기가 쉽다. 연구에 따르면 이야기를 들으면 두뇌의 여러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되기 때문에 무려 22배나 더 기억하기가 쉽다고 한다. 단순히 사실만 을 나열하면 두뇌에서 언어 처리를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 Broca's area과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 만 반응하지만, 똑같은 정보라 할지라도 이야기를 통해 전달될 경우 서술과 관련된 두뇌의 다른 영역들이 함께 깨어난다. 이야기에 달리기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 으면 운동 피질이 함께 깨어나며 부드러운 비단으로 만든 옷이 언급되면 감각 피질이 함께 반응하는 식이다. 두뇌는 마치 우리가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며 그 이야기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반응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은 감정과 사상 그 리고 새로운 생각을 듣는 이들의 머릿속에 심어주어 똑같은 사건 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도록 만든다. 실제로 이야 기를 전해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두뇌를 확인해보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동시에 똑같이 반응한다고 한다. 신경학자들은 이 런 현상을 두고 '화자와 청자의 신경 결합'이라고도 설명한다' 정리하면, 인간의 두뇌는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을 이해할 수 있 도록 진화했고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문화적 도구가 되 어 유전자와 문화의 상호 진화를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가며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의 인생은 물론 전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도 계속되는 장대한 이야기의 근원이 초자 연적인 창조주라고 여긴다.
이야기는 생존을 위한 진화적 과정에 의해 다듬어진 두뇌의 정 교한 예측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두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 로 눈, 귀, 피부, 내부 기관 등 신체 각 부분이 전해오는 자극을 받 아들이는 것이다. 두뇌는 이 정보로부터 현실에 대한 인식, 자신 에 대한 감각,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 등을 이끌 어낸다. 이러한 과정을 보통 의식意識이라고 부른다. 두뇌는 새로운 감각 정보와 함께 끊임없이 그 예측 장치를 새롭게 개선하며 그 예측력을 이용해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이끌어주고 무엇보다 도 위험 요소들을 피하며 식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인간은 예측 장치를 통해 무거운 물체는 아래로 떨어지고 그 늘진 곳에 있는 물체는 더 어둡게 보이며 물은 씹을 필요가 없다 는 사실 등을 배우게 된다."
- 위약이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그 이야기가 인간의 문화적 형성 과정에 이미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르 게 작용할 수 있다. 궤양에 대한 치료법으로 위약을 활용할 때 이 웃하고 있는 덴마크와 네덜란드보다 독일에서 효과가 2배나 더 높게 나타났고 고혈압 치료법으로 활용할 때는 다른 국가들에 비 해 독일에서 그 효과가 훨씬 미미하게 나타났다." 인간의 믿음에 의해 신호를 받아 만들어지는 두뇌의 화학 물질은 염증이나 긴장감을 포함한 다양한 자극에 대한 대응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중국 인 중 전통 의학과 점성술을 신봉하는 사람은 태어난 해가 특정한 신체 기관과 관련이 있으며 최종적으로 사망의 원인까지 될 수 있 다고 믿기 때문에 해당 기관이나 장기에 병이 생기면 평균 4년에 서 5년 이상 빠르게 사망했다." 이같은 놀라운 결과는 중국계 미 국인과 유럽계 미국인의 사망률을 비교 연구한 결과로 도출된 것 이다. 태어난 해가 같고 역시 같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비교해 보니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계 미국인은 운 명론적인 이야기를 믿었고 스스로 그런 예언을 현실로 만들었다. 특정 질병에 걸렸을 때 이들이 사망하는 확률이 더 높아지자 비슷 한 문화적 믿음을 갖고 있던 주변 사람들도 자신의 믿음에 더욱 신뢰를 갖게 되었다. 이처럼 수명이란 때로는 유전자가 아닌 문화 적 이야기의 힘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본능적인 감정에 대응해 신 체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만약 위험한 장소에 있거나 안전하지 못한 음식을 먹는다면 몸은 흥분을 하거 나 구토를 하는 것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한다. 마찬가지로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에 있을 때 두뇌는 고 통과 통증을 줄여주는 상황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이런 일은 특히 아이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넘어져 무릎을 다친 아 이에게 어른이 그저 "호" 하고 불어주는 것만으로도 진정하는 모 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감각적 경험과 현실을 일치시 키려는 두뇌의 전략 중 하나로도 생각할 수 있다.
-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관습도 유익한 면 이 존재하기 때문에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사냥을 예로 들어 생각 해보자. 전 세계의 모든 공동체는 사냥을 마치 의식을 치르듯 진행했다. 동물 흉내를 내고 오직 특정 지역에서만 사냥을 하며 때 로는 고기를 얻는 데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장소를 굳이 찾아가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의식을 앞세운 사냥이 성공한 사례를 분석하던 중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방식의 사냥은 성공 사례의 공통된 방식을 찾아 철저하게 모방하는 일반적인 방법보다 더 나은 전략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사냥터를 선 택할 때도 전에 큰 성공을 거두었던 장소를 다시 찾아가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사냥감들이 학습을 통해 그 장소를 피해갈 가 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의식을 거쳐 사냥터 를 무작위로 선택하면 사냥꾼이 특정 장소로 치우치는 경향을 피 할 수 있다. 사실 편견은 인간 인지력의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이 다. 침팬지는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편견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일 없이 무작위로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이야기는 공동의 자산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공동체에서 관리 할 수 있는 일종의 체계를 형성하도록 한다. 사냥과 채집을 주로하는 공동체에 세상 모든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정령 신앙이 널리 퍼져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언어가 출현하기 이전 초기 호미닌 공동체에도 이러한 신앙이 존재했을 것이다." 신앙과 관련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인간이 자연 세계와 상호 관계 를 맺고 있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을 자연의 지배 자로 설정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사상은 대단히 이례적인 경우로 자연스럽지 않은 사상일지도 모른다. 시베리아 동부에 위치한 야 쿠티아 공화국의 야쿠트yakut 부족은 순록을 사냥한다. 그들은 순 록에 정령이 깃들여 있다고 믿고 있으며 정령이 인간을 위해 자신 을 희생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냥은 하나의 의식으로 진행되며 그 의식에는 동물에 깃든 정령과 인간을 위한 희생에 대한 인정과 경외심이 깃들어 있다.
- 동남아시아처럼 기후가 온화하고 습도가 높으며 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역의 언어는 모음을 더 많이 그리고 자음을 더 적게 사 용하며 대부분 음절이 단순하다. 반면, 열대우림지역에 속해 있지 않은 영국이나 조지아의 언어에는 자음이 넘쳐난다.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는 더 강하게 숨을 뱉으며 발음하는 자음이 있 는 단어가 더 많다. 또 사막에 가까운 건조 기후에서는 중국어나 베트남어 같은 성조 언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건조한 기후가 성대 의 움직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이 이유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다시 말해, 해부학적, 환경적, 문화적 영향을 받아 적응한 것이다.
입으로 소리를 내서 하는 말은 기본적으로 ftp 혹은 t와 같은 고주파의 자음에서부터 e와 o 그리고 u와 같이 저주파 모음에 이 르는 일련의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울창한 숲이나 뜨거운 열기 같은 방해물은 언어에 대해 선택 압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방해물이 고주파 음파를 왜곡하거나 중간에 사라지게 만들기 때 문이다. 언어가 서로 다른 이유는 각기 다른 환경에 대한 문화적 적응 과정의 영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인간이 지금과 같이 다양한 소리를 내고 말을 하게 되기까지는 일련의 해부학적 적응을 통한 진화 과 정이 필요했다. 우선 두 발로 서서 걷게 되면서 네 발로 걸을 때 앞 다리를 지탱했던 갈비뼈와 횡격막의 부담이 사라졌다. 이 덕분에 마음대로 호흡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입에서 성대로 이어지는 발성 통로인 성도聲가 활짝 열렸다. 또한 후두가 혀의 뒤쪽 부분 까지 내려와 크기는 작지만 중요한 말굽 모양의 뼈인 이른바 설골 에 매달리게 된 것도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변 화를 통해 성도는 더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혀는 더 넓 은 공간을 확보해 말을 하는 동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자음과 모음의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진화적 측면에서는 위험을 감수한 전략이었다. 후두의 위치가 낮아졌다는 것은 이제 더는 숨을 쉬면서 무언가를 삼킬 수 없게 되었고 다른 영장류에 비해 목이 막히거나 질식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아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영장류의 후두는 비강 안에 서도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간의 아 기는 마치 호흡용관을 단 것처럼 후두의 위치가 높아 숨을 쉬는 동시에 젖을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3개월 정도 지나면 후두의 위 치가 내려가 말을 할 수 있는 보상이 주어진다. 후두의 위치가 높은 유인원은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인간처럼 말을 하지 못한다.
- 일단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인간은 하나의 언어만 말하는 것으 로 그치지 않는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한다. 그렇게 구사하는 각각의 언어 는 처음에 두뇌를 변화시키고 성격과 행동 등을 미묘하게 변화시 킨다. 언어와 관련한 문화적 진화는 인간의 생명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다른 언어를 사용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된다. 언어는 인간을 넘어서는 힘을 갖고 있다. 감정이 변하고 신체 언어가 변 한다. 나는 슬픔을 표현할 때는 터키어를, 풍자를 하고 싶을 때는 영어를 쓰는 것이 더 좋다." 터키의 작가 엘리프 샤팍의 말이다.  언어는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을 만들어간다. 영어를 쓰는 사람은 일본어를 쓰는 사람에 비해 꽃병을 깨트린 일 같은 사고의 원인이나 원인 제공자를 더 잘 기억한다. 영어로는 "제이미가 꽃병 을 깨트렸다"는 방식으로 상황을 직접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만 일본어에서는 사건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으 며 그저 "꽃병이 깨졌다"라고만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언어 에 존재하는 구조는 현실을 구성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만들어 낸다.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과 인간의 본성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 인간의 두뇌는 변하고, 인지 능력은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문화적 입력 요소에 따라 새롭게 깨어난다.
- 언어에 따라 방향을 설명하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하다. 영어에 서는 "나의 왼쪽 다리처럼 주로 왼쪽, 오른쪽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그렇지만 전 세계 언어 중 대략 3분의 1 정도는 왼쪽, 오른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캥거루kangaroo'라는 단 어로 유명한 오스트레일리아 퀸즈랜드 북단의 원주민 언어인 구 구이미티르Guugu Yimithirr어는 위치와 방향을 동서남북으로 설명 한다. "저 사람 북쪽에 서 있는 남자가 내 남동생이다" 같은 식인데 모든 교환이나 거래를 할 때는 방향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 원주 민이 문법에 맞는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머릿속으로 동서남북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언어와 공 간에 대한 의식을 구성하는 방법에 있어서 인지적 변화가 필요하 다. 만일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어 떤 사람이 나에게 다가올 때 서쪽에서 왔는지 동쪽에서 왔는지부 터 기억해야 한다. 구구 이미티르 같은 언어 중 일부는 행동을 나 타내는 모든 동사가 방향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완전히 다 른 개념적 틀이다. 무방향성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에게는 익숙하 지 않겠지만, 익힐 수 있는 기술이다.
- 한 실험에서는 영국인과 독일인에게 한 여성이 자신의 차를 향 해 걸어가고 있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국인은 행동에 주목해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독일인은 좀 더 전체 적인 관점을 가지고 행동의 목적을 포함시켰고 대부분 "한 여성이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간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그 상황에 사용 가능한 문법도 영향을 미친다. 독일인과 달리 영국인에게는 '-ing'로 끝나는 현재진행형이 있어서 현재 일어나는 행동을 묘사 할 수 있다.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모호한 상황을 설명할 때 독 일어를 구사하는 사람에 비해 행동의 목적보다 행동 그 자체를 언급할 확률이 더 크다. 그렇지만 영어와 독일어를 모두 구사하는 사람이 행동과 목적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는가 하는 문제는 이러한 실험이 어느 나라에서 진행되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독일 에서 실험이 진행되었다면 목적에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고 영국 에서 실험이 진행되었다면 행동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다.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상관없이 이 실험은 한 사람의 관점 을 결정짓는 데 문화와 언어가 어떻게 얽혀서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 1960년대 언어 심리학 분야의 선구자였던 수전 에르빈 트립이 영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여성들에게 미완성 문장을 마무리 지어달라는 요청을 하자 각 언어별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진 소망이 가족의 뜻과 맞지 않을 때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일본어로 마무리할 때는 "대단히 불행한 시간이 될 것이다”라고 마무리했고 영어로 마무리할 때는 "내가 하고 싶 은 대로 하겠다"라고 마무리한 것이다. 에르빈 트립은 이 결과로 부터 인간의 생각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의 한계 안에 존 재하며 두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각각의 언어에 맞춘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진다는 결론을 내린다. 당시에는 대단히 놀라운 개념이 었지만, 훗날 이어진 다른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실제로 두 종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언어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 사회의 성장으로 인한 장점도 있지만, 경쟁으로 인한 압박이 늘 어나 인지적으로 더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구성원 사이에서 는 단단한 유대 관계가 반드시 필요했고 이 관계가 계속해서 유지 되고 확장되어야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모든 구성원의 사회적 위치와 평판을 기억해야 했다. 사냥 같은 중요한 활동을 포기하고 서라도 관계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일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사 람인지 확인해야 했던 것이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 비해 두뇌에서 사회적 인지 처리를 담당하는 신피질 영역이 극적으로 성장한 것 은 우연이 아니다. 신피질의 성장은 피질 주름이 늘어나면서 이루 어졌다. 이렇게 늘어난 피질 주름은 언어를 위한 연결성을 강화시 켜준다. 규모가 커진 사회는 언어의 진화를 위한 선택 압력을 제 공한다. 또한 언어의 진화는 또 다른 진화적 의견 교환의 순환에서 더 큰 사회를 만든다

- 새롭게 등장한 일신교의 신은 궁극의 심판하는 눈을 가지고 인 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지옥과 천국 중 어느 곳에 보낼지 결 정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경전은 모두 심판하는 신의 신성한 감시하는 눈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 눈은 인간의 몸과 마음 을 꿰뚫어 본다. 또한 대부분의 신은 인간의 선한 행동보다 악한 행동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따라서 종교는 점점 규모가 커지는 사회를 통제하려는 사회적 선택 압력을 통해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 사 회가 수용하는 종교의 유형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통제력의 종류 나 유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일상과 도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상위 신은 혈연관계를 넘어 낯선 이들 사이에 대규모 협동이 필요한 조세를 바탕으로 하는 부유하고 거대한 사 회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응징과 개인을 중요하게 생 각하는 신을 중심으로 한 신앙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 람들의 대규모 협동을 손쉽게 끌어내려는 적응 과정에서 진화했 을 것이다." 
- 굵은 머리카락, 많은 땀샘, 독특한 치아, 동아시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비교적 작은 젖가슴 등은 모두 대략 3만 5000년 전에 나타난 EDAR 유전자가 변하면서 만들어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유전자가 그렇게 빨리 퍼지게 된 이유가 당시 기온이 높았기 때문에 더 많은 땀샘이 유리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저 그런 모습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창백한 피부와 파란 눈동자 역시 한때 이국적이고 더 매력 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짝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었 기 때문에 두 특성이 북유럽 지역에서 빨리 퍼져나갈 수 있었을지 도 모른다' 지난 2000년 동안 영국 사람은 키가 더 커지고 머리카락 색은 금발에 가깝게 변했으며 더 푸른 눈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인간 역사에서 가장 매혹적인 문화 실험 중 하나가 장신구의 발 명이다. 인간은 장신구를 통해 타인에게 의미를 전달한다. 아주 오 랜 조상의 시대부터 목걸이는 대단히 효과적인 상징물이었다. 목 걸이는 문화적 정체성이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는 데 사용되었 고 몸에 늘 지니는 부적의 역할도 했다. 건강과 물질적 풍요를 가 져다주는 작지만 대단히 강력한 부적으로 여긴 것이다. 스페인 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색깔 있는 조개껍질 목걸이는 대략 11만 5000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프리카 최남단에 있는 블 롬보스 Blombos 동굴에서는 인간이 사용했던 것 중 가장 오래된 목걸이가 발견되기도 했다. 눈물 모양의 '바다 달팽이' 껍질을 65개 이상 모아 구멍을 뚫어 만든 이 목걸이는 황토색 장식 흔적이 여 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종류의 목걸이는 7만 5000년 전 인류의 조상이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그들과 지금의 우리가 공통 된 인간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블롬보스 동굴에 서 발견된 선사 시대 목걸이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목걸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 목걸이를 누가 만들었든지 간에 날 카로운 심미안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구슬이나 조개껍질을 골라내 만들었을 것이고 목걸이를 착용했을 사람은 그 의도와 의미를 잘 알아차렸을 것이다.
- 의복도 목걸이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똑 바로 서서 걷는 종이기 때문에 가리지 않으면 드러나 보일 수밖 에 없는 성기를 가려야 하는 사회적 규범에서 '나뭇잎으로 만든 옷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행동을 통해 혈연관계를 넘어 수많은 사람이 갈등 없이 가까이 모여 지속적으로 살 수 있게 되 었다. 개인적으로는 의복이 아기를 업거나 월경 중일 때 몸을 가 리려는 실용적인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인간이 만들거 나 사용하는 다른 모든 물건처럼 의복 역시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 미를 지니고 있다. 기본적인 의복에 여러 장식이 추가되면서 가치 가 높아졌고 그 형태가 복제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성별에 관계없 이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상징적인 의복 규정을 통해 지위, 성별, 그 밖의 다른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나타낸다. 예 컨대 부족이나 종교에 대한 충성심도 포함이 되며 때로는 다른 공 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도록 해 서로 각자 집 단을 이루어 갈라지고 이 때문에 한 부족 내에서도 분열이 일어나 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의복은 각자의 기술과 전문성을 가지고 다른 문화를 발전시키고 진화하며 경쟁하도록 돕는 데 중요한 역 할을 했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장식이 문화적으로 적응하여 진 화하는 '목적'이다. 사회적 규범을 반영하고 공통의 이야기 안에 부족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 한 집단을 내부적으로 단속하는 다양한 사회적 규범이나 기준 안에서도 각기 다른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다양한 집단이 줄지어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점이 그 안에 있는 구성원의 육체와 정신까 지 변화시키게 된다. 문화적 학습은 사람들의 두뇌를 바꾼다." 어 떤 기술이든 그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은 근육의 통제, 조정, 균형, 속도와 거리의 판단 등과 관련된 신경 연결망을 '연결해주는' 과 정과 관련이 있다. 의도하지 않아도 습득한 기술이 자연스럽게 구 현된다고 느껴질 때까지 이러한 과정이 계속된다. 일단 행동이나 사고의 과정을 반복해서 연습하면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되면 두뇌가 느끼는 부담이 현저히 줄어 작업 기억 능력에 여유가 생기고 세세한 부분까지 혁신을 일으켜 인간 우수성의 극한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모습은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에서 부터 뛰어난 연주자나 곡예사가 되는 일까지 어떤 분야에서든 찾 아볼 수 있다." 컴퓨터 게임을 장시간 하는 사람은 두뇌 안에 특 정 영역이 공통적으로 생겨나 오직 게임의 중요 규칙을 알아보는 것에 전념하게 된다." 인간의 문화적 형성 과정 역시 신체에 영향 을 미친다. 뛰어난 테니스 선수는 라켓을 쥐는 쪽 팔의 골밀도가 20퍼센트 이상 높아지며 고산 지대에 사는 사람은 적은 산소량에 적응해 더 많은 적혈구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폐의 크기도 더 커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같은 현상이 유전적 변화가 아니 라 한 사람이 평생 살아가면서 겪는 생물학적 변화라는 사실이다.
- 또 다른 바다 유목민인 인도네시아 바자우Bajau 부족의 경우 문 화적으로 진화한 생활 양식이 유전적 적응을 불러왔다. 유전학자 들은 바자우 부족의 놀라운 잠수 기술을 조사해 그들의 DNA에서 몇 가지 유전자 변형체를 찾아냈다. 이 변형체를 통해 바자우 부 족은 혈액과 중요 장기가 더 많은 산소를 보유하고 체내의 이산화 탄소 농도를 조절하며 동시에 산소가 녹아있는 혈액의 보관소 역 할을 하는 비장의 크기를 늘릴 수 있었다. 바자우 부족의 비장 크기는 일반인에 비해 50퍼센트 정도 더 크다. 이러한 유전자의 일부는 지금은 멸종한 데니소바인과의 성적 교류 과정에서 유전 적으로 물려받게 된 것으로 보이며 문화적 진화 압력을 통해 개체 군 안에서 선택되었다.
- 체면 문화는 정부의 통제력이 약하고 재산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바로 위상이 아닌 실질적인 지 배력이 사회적 규범에 선택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이 같은 지역은 보통 외진 곳에 떨어져서 목축을 주로 하며 가축 도둑도 많다. 서로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해낼 만한 기회 가 많지 않고 그 누구도 소유물에 손대지 못한다는 폭력성에 대한 평판이 보호 장치가 된다. 가장 폭력적인 행위를 불러일으키는 것 은 역시 명예나 체면에 대한 공격이다. 이는 부끄러움이나 모욕적 인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농경 사회에서는 많은 인구가 가 까이 정착해 살고 있으며 공동으로 소유한 땅이나 관개수로처럼 공동의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이처럼 농경 사회에서는 실질적인 지배력이 아니라 위상을 더 가 치 있게 보는 사회적 규범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곡물은 훔친 다고 해서 가축만큼 이익이 바로 생기지 않으며 농부는 범법자를 상대할 때 자신의 힘보다 더 강력한 집단 행동을 끌어낼 수 있는 전통적 관습 등에 의존한다. 누군가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자신도 위험을 감수하며 사전에 더 공격적인 행동을 보여 상대방을 단념시키려는 대신 평소에 친절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취해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한 상황에서 서로를 보호하고 돕는 쪽을 택한다.
미국 남부 지방 사람의 뿌리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이민자 이다. 주로 거친 평원이나 산지에서 목축을 했던 이들은 자율성과 체면의 문화를 고스란히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들이 정착 한 많은 지역에서 농경이나 도시 문화에 동화되기도 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최남부 지역에서는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 는 체면 문화를 계속 유지했다. 반면, 북부 지방에 정착한 사람들 은 농사를 주로 짓던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온 이민자였다. 이들에게는 강력한 공동체의 제도와 전통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규범은 변화에 저항한다. 왜냐하면 태도나 관습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 체면 문화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위협이나 협박은 사회가 하 나로 뭉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이러한 것이 통용되는 사회는 결국 허물어지고 더욱 친 사회적인 집단의 희생물이 된다. 이제는 앞서 언급했던 미국 북부 지방처럼 위상이나 명성을 중요하게 여 기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한편, 인구 구성이 점점 다양해지고 도 시에서처럼 서로 다른 규범에 노출되면서 규범을 어기는 사람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가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더욱 다양한 표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사회적 규범에 노 출된다는 것은 각 구성원이 더욱 개방적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연 구에 따르면 어린아이가 인종적으로 다양한 학교에 다니면 여러 인종 사이에서 사회적 응집력이 더욱 커진다고 한다.
- 인간은 탐욕스러운 존재로 무언가를 모으려는 본능 을 가지고 있다. 마치 까치처럼 인간도 어릴 때부터 그저 아름답 다는 이유로 욕심 나는 물건을 모은다. 인간의 문화적 진화는 이 러한 충동을 부추겼다. 어린아이는 세 살 무렵부터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강렬하게 의식한다.' 설사 기존의 소유물과 완전히 똑같 은 것을 준다고 해도 대체되는 것에 저항한다. 사회가 충분히 성 장하면서 사유 재산에 대한 규범을 통해 자신의 몸에 직접 치장하 고 장식하는 것에서 장식한 물건을 소유하는 쪽으로 변한다. 이러 한 변화의 과정과 오직 아름답고 귀하기 때문에 모은 수집품의 교환이 명성, 평판, 신용을 대신해 부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교환의 중개자 혹은 집행자가 된다. 이렇게 되면서 교역의 규모가 새로운 차원으로 크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된 선사 시대의 조개껍질 목걸이를 떠 올려보자. 목걸이를 만든 여러 이유 중 한 가지 특별한 이유는 바 로 수집과 보관에 대한 욕구다. 적당한 조개껍질을 찾아 목걸이를 만드는 일에는 분명 선택에 따른 이익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생존에 급급했을 당시 대단히 정교한 기술과 많은 시간 등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목걸이를 굳이 만들었을 리 없다. 이와 관 견해 인상 깊은 이론은 조개껍질 목걸이가 부족의 정체성을 강화 하려는 사회적 목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장신구가 교환 가능한 수집품의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바로 화폐의 개념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한 것과 동일하게 가운데 구멍이 뚫린 조개껍질은 알제리에서부터 아프리카 최남단 그리고 이스라엘까 지 이어지는 여러 유적지에서 발견된다. 그 역사가 약 12만 년 전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조개껍질은 여러 부족이 수천, 수만 년의 세월 동안 공통의 문화적 관습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바 다에서만 구할 수 있는 조개껍질이 발견된 유적지 중 많은 곳이 깊은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사실은 조개껍질이 먼 곳까지 이동했다는 증거가 된다. 다시 말해, 당시에도 바닷가 부족과 내륙 부족 사이에 대륙을 가로지르는 연결망을 따라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가공된 조개껍질은 부족간 연결망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 같은 선사 시대의 연결망은 유전적, 문화적 교류가 늘어나도록 도왔을 것 이고 문화적 진화를 촉진시켰을 것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집단 에 의존하도록 진화하고 또 집단이 생존을 위해 다른 집단에 의존 하도록 진화하는 과정에서 교역을 위한 연결망은 아프리카 대륙 에 살고 있던 인류의 조상에게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 이후 찾아온 빙하기를 견디며 살아가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조 상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야말로 문화적 진화와 유전적 진화 사 이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생물학적 체계 안에서 집단 선택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인지는 논쟁의 여 지가 있지만, 문화적 진화에서 집단 선택은 명성과 사회적 규범을 통한 커다란 원동력이 됨은 분명해 보인다"
- 인간이 대부분의 진화 과정을 끝마친 홍적세 기간은 자연 환경 이 정말 혹독했다. 이 때문에 적은 인구수가 유지되면서 여러 공 동체 사이에 교역 기회도 제한되었다. 이 결과는 아프리카 대륙에 서 갈라져 나온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인류의 여러 후손 사이에 나타난 유전적 차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2만 5000년 전 고 원지대에 최초로 정착한 조상들의 후손인 지금의 티베트인은 고 대 데니소바인과의 성적 결합을 통해 특별한 유전자를 물려받았 고 이를 통해 임신한 여성들은 낮은 혈중 산소 농도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태반 포유류가 겪는 고지대의 한계를 극복 한 것이다. 티베트 여성은 이 특별한 유전자가 없는 여성들에 비 해 두 배는 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강력 한 선택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또 다 른 고원 지대인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에 최초로 인간이 정착 한 것은 약 1만 1000년 전이다. 역시 그곳 사람도 다른 유전적 적 응 과정을 거쳤다." 혈액의 헤모글로빈 농도가 높아졌고 산소를 끌어모으는 방법을 개선했다. 몇 가지 서로 다른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피부색은 과거에 조상이 이주해왔다는 분명한 증거인데 태양의 위력이 약한 낮은 고도에서는 멜라닌 색소가 사라져 피부 색이 더 밝아진다!" 멜라닌 색소는 자외선을 막아주는 반면, 피부 가 태양에 반응해 만들어내는 필수 비타민 D의 양을 제한한다. 다만 유럽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창백한 피부는 사실 극히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사냥과 채집을 주로 했던 스페인 원주민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유럽인은 불과 7000년 전만 해도 검은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 문화적 진화가 항상 발전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상 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생물학적 진화에서도 동일한 현 상이 발견된다. 다윈은 일부 따개비가 유전적으로 더 단순한 형 태로 진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따개비가 더 복 잡한 형태로 진화하는 가운데에서도 일부 따개비는 단순한 형태 로 진화한 것이다. 인간의 문화적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 구의 규모와 유대감이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구가 많 을수록 복잡한 기술이 더 많이 탄생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태 평양에 흩어져 있는 여러 섬의 인구 규모, 유대 관계를 낚시 도구의 정교함, 종류와 비교해 살펴보았다. 인구 약 1000명의 말레쿨라Malekula섬은 12가지의 서로 다른 낚시 도구를 가지고 있었고 100만 명 이상의 원주민이 서로 이어져 있는 하와이 제도의 본섬인 하와이섬에는 70여 가지가 넘는 정교한 낚시 도구를 찾아볼 수 있었다.
- 1970년, 덴마크의 경제학자 에스테르 보스럽은 전 세계 사회에서 여성이 맡고 있는 역할의 차이를 각 사회가 사용하 는 농업 기술과 연관시켜 조사했다." 초창기 농업처럼 끝이 뾰족 한 막대기나 괭이처럼 손으로 들고 사용하는 농기구가 많이 사용 되고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던 시기에는 여성도 적극적으로 농사를 거들었다. 그런데 쟁기의 사용으로 노동력보다 자본이 더 중요 해지고 강력한 상체의 힘과 쟁기를 잡는 힘 그리고 필요할 때 쟁 기를 뒤로 잡아당기거나 앞으로 끄는 가축을 다루는 힘이 더 중 요해졌다. 또한 쟁기는 자녀를 돌보면서 동시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성은 주로 집 밖에서 쟁기를 사용해 농사를 짓고 여성 은 집 안에서 집안일을 돌보는 것이 일종의 공식처럼 자리를 잡았 다. 결국 이러한 노동의 분업화는 여성이 있어야 할 '원래의 자리 는 집 안이라는 규범을 만들어냈다. 이 같은 규범은 심지어 경제 의 기반이 농업을 벗어난 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집 밖에서의 여성 의 모든 활동과 취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경우처럼 과거 경제 기반을 괭이 등을 사용하던 기초적 농업 에 두고 있다가 발전한 문화권에서는 쟁기를 주로 사용했던 아라 비아반도를 중심으로 한 서남아시아 지방과 달리 남녀가 더 평등 하다. 사하라 사막 남쪽에서도 이와 유사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가 축을 소유하는 일이 흔해지면서 모계 중심의 사회적 규범은 부계 중심의 사회적 규범으로 바뀌게 된다." 오직 가축에 치명적인 체 체tsetse 파리(아프리카 원산의 흡혈성 파리의 총칭.옮긴이)가 들끓어 가 축을 사용한 농업이 불가능했던 지역에서만 모계 중심의 사회 체 제가 유지되었다. 이처럼 환경으로 인한 압력은 문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 사냥과 채집을 주로 하는 대부분의 공동체는 인간을 생태계의 일부로 여겼다. 문화적으로 진화된 그 들의 행동과 기술 역시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이러한 사고를 반영 한다. 예컨대 그들에게는 1년 중 특정 기간이나 혹은 특정 지역에 서 사냥을 제한하는 사회적 규범 같은 것이 존재했다. 이것은 아마 도 생존과 관련해 손에 넣으면 다시 채워지지 않는 자원은 손대지 않겠다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인간이 동식물에 대해 야생 상태에서 상호관계를 유지하 지 않고 반대로 소유를 시작하게 되면 인간도 생태계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관계가 바뀌게 된다. 인간이 처음에는 살아 있는 동물 을 신으로 섬기다가 자연의 거대한 구조물로 그리고 다시 인간이 만든 인공적 구조물로 바뀐 뒤 마지막으로 인간의 형상을 한 신 을 따르게 된 것처럼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위계질서도 변화 가 생겼다. 인간은 영구적인 구조물을 건설해 자연에서 나와 거주 지를 옮겼고 도로를 포장했으며 물의 흐름도 바꾸었다. 그 다음에 는 자연과 점점 더 확실하게 구분되는 인간만의 세상을 만들어갔 다. 인간은 인공적인 환경을 구축해 춥고 축축하고 지저분하고 위 험한 자연의 불편으로부터 기쁜 마음으로 벗어났다. 그러는 동시 에 생태계의 또 다른 일부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로 결정했다. 인위적으로 개입해 농작물과 가축의 품종을 바꾸고 물적 자원의 형태에도 수정을 가한 것이다. 최근에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이런 변화를 어린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비교했다. 미국의 대도시인 시카고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근교인 메노미니의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에서 자라는 아이가 동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비 교한 것이다. 다만, 실험 시작 전 메노미니 공동체의 장로가 자연 과 관계없는 환경에서 동물과 노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 적해 진짜 나무와 풀 그리고 바위가 있는 배경이 추가되기는 했 다. 이 연구에 따르면 도시 아이는 동물 장난감을 사람처럼 대한 반면, 원주민 공동체 아이는 장난감이 진짜 동물인 것처럼 상상하 며 놀았다고 한다.
- 1780년 화산이 폭발하며 핀지랩Pingelap이라는 작은 산호섬의 주민이 거의 다 사망하고 20여 명 정도만 살아남은 일 이 있었다. 이 섬은 상대적으로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고 외부인과 의 혼인을 꺼리는 사회적 관습까지 더해져 유전적 변형이 축적되 었다. 현재 누적된 근친의 결과로 섬 주민 중 10퍼센트 이상이 심 한 색맹으로 세상을 흑백으로밖에 보지 못한다. 색맹증은 낮에는 문제가 되지만, 밤에는 오히려 보통 시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사물을 더 잘 구별할 수 있어 밤낚시에 적격이다. 이 사실은 왜 색 맹증 유전자가 계속 유지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 인간 사이에 나타나는 유전적 차이는 점점 줄고 있지만 그것은 인간이 유전적 진화를 멈췄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더 많이 뒤섞이 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존재한 부족의 고립된 생활은 부족 사 이의 혼인, 이주, 교역, 자유분방한 성생활 등으로 막을 내렸다. 심 지어 다른 부족과의 혼인을 금지하는 강력한 사회적 규범이 있었 을 때도 유전적 증거를 보면 부족 사이의 교류가 계속 이어졌다 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말을 가축으로 길들이고 바퀴가 달린 운송 수단을 발명하게 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넓게 퍼져나갔다. 그렇지만 19세기가 될 때까지도 유럽에서는 가까운 친척끼리 혼 인하는 풍습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때 자전거가 발명되면서 이 같은 풍습은 크게 줄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과도 교제 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 발하기 전까지 400만대가 넘는 자전거가 팔려나갔다. 특히 프랑 스가 큰 영향을 받았는데 프랑스인의 체격은 더 커졌고 친척끼리 혼인하는 경우도 크게 줄었다. 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 인간은 모두 시간의 피조물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 진 우주 안에서 진화했고 인간의 육체는 지구라는 행성의 움직임 을 따라 적응했다. 인간의 모든 세포는 시계 유전자를 가지고 있 어 이 유전자가 마치 진짜 시계 속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작 용하며 유전자 발현이라는 진동을 일으킨다. 이러한 시계가 유전 자, 호르몬, 심장 박동, 두뇌 활동, 감정, 신체 기능 등을 조절한다' 인간의 내장은 대략 오전 10시쯤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며 고통을 가장 잘 견뎌낸다. 온몸이 최고로 조화로울 때는 오후 2시쯤이다. 오후 5시가 되면 육체적 능력이 최고조에 달해 근육의 힘과 유연 성이 최대치에 이르며 심장과 폐도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 알코 올에 대한 내성은 저녁 8시 무렵이 최고이고 9시쯤 되면 수면 호 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가장 깊게 잠이 든다.' 체온의 경우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에 제일 낮아 진다. 인간의 육체는 월경부터 임신까지 놀라울 만큼 규칙적으로 생물학적 시간표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 기술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우주의 흐름과 이 사회가 똑같 이 움직이게 만들 수 있도록 진화했다. 그렇지만 아주 오래전 과 거에는 시간을 헤아리는 일이 먹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때를 알 려주는 것처럼 생존의 조건과 관련이 있었다면 이제는 절대적으 로 주관적인 사회적 규범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기독 교 성직자는 하지와 동지, 춘분과 추분의 날짜를 정하기 위해 천 문학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복잡한 부활절 계산 방법 이 그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이다. 기독교 달력과 관련된 정치학은 시간과 인간 사이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그에 따른 해석을 둘러싼 문화적 규범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연중 행사인 부활절은 2세기에 들어서고 나서야 비 로소 기념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부활절은 원래 기독교가 아닌 이교도들이 봄을 맞이하는 축제에서 변형된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유월절 축제를 마치고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사흘 뒤에 부활했다고 믿는다. 유월절은 오 늘날로 치면 4월쯤인 유대력 니산월 15일이며 대략 봄의 첫 번째 보름달이 뜨는 때와 맞아떨어진다. 그렇지만 유대인의 달력은 윤 일보다는 윤달이 있기 때문에 유월절은 해마다 달라진다. 기독교 에서는 부활절이 자신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일요일이 되기를 바 랐다. 동시에 이 새로운 종교가 유대교와 확실히 구별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기독교의 부활절은 절대로 유대교의 유월절과 겹쳐 서는 안 되었다. 유월절 축제의 본질과 부활절의 배경을 생각하면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모습이 바로 종교 정치인 것이다. 결국 부활절은 춘분이 지난 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뜬 이후 의 첫 번째 일요일로 결정되었다. 만일 보름달이 일요일에 뜬다면 부활절은 그다음 일요일로 미뤄졌다. 천문학과 수학이 동원된 복 잡한 계산 방법이 만들어져야 달, 태양, 별의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그래야만 앞으로 다가올 춘분의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 성직자는 수 세기 동안 천문학 분야의 관찰과 연구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기독교 달력은 계절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양력과 음력을 모두 사용했지만 특별한 축 제일에 대해서는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했다.
- 인간의 두뇌가 제한된 정보만으로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을 그려 나가면 대부분은 이를 통해 별다른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세상 에 대한 인식을 구축해나간다. 신경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의사 결정에 있어 일종의 '신체적 처리 과정이 진행된다고 설명 한다. 두뇌의 복내측 전두엽 피질이 혈압 변화나 심박수 상승 같 은 신체적 신호를 만들어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무의식적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린다. 그러면 두뇌는 의식적 추론이 따라잡기 전에 이미 직관적 결정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 급한 치마의 줄무늬 색 문제의 경우 야외의 자연광 아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은 흰색과 금색이라고 생각했던 반면, 실내 에 오래 있었던 사람은 파란색과 검은색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증거가 제시되었다.
-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빠르고 감정적인 생각과 판단은 이치 에 들어맞는 행동이다. 생존을 좌우하는 상황은 결국 빠른 결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자와 마주했을 때 달리기로 앞지를 수 있을 까 생각한다면 이미 상황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직관적인 결정은 종종 형태의 인식이나 환경적 단서 혹은 유용하다고 증명된 여러 편견을 바탕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집단의 생존 역시 대부분 빠른 생각에 의지한다. 만일 소방관이나 군인이 도움을 주 기 위해 달려가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안전을 먼저 생각 한다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 다. 그렇지만 일단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 성공을 거둔다면 그 집 단의 생존 확률은 상승한다. 운동선수나 다른 숙련된 예능인이 필 요한 기술을 익히고 연습을 한 후에도 동작 하나하나에 대해 의식 적으로 신경을 쓰고 판단하려 한다면 제대로 된 솜씨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감정이란 대단히 유용하다. 결국 위험에 대해 빠르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공포심이며 위협을 더 확실히 깨달 을 수 있도록 상호 작용을 증폭시키는 것은 분노다. 그리고 죄책 감 때문에 사회 규범을 벗어나거나 집단의 결속을 위태롭게 만드는 일을 꺼리게 된다. 
- 생물학자들은 인간이야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르거나 사실이 아닌 정보의 개념을 확대, 재생산하는 유일한 영장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다른 영장류는 현재의 상황과 다른 세상의 상 태를 이해할 수 없으며 다른 개체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도저히 상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존재하며 타인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여기에서부터 인간은 종종 자 신이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반면, 나와 의견을 달리 하는 타인은 그 렇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렇지만 타인도 자신과 마찬 가지로 합리적이지만 대신 서로 다른 목표와 근본적 신념 그리고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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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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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낟알에는 큰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따로 말리거나 처리를 하지 않아도 벌레가 끓는 것만 막아주면 아주 오래 보관이 가능한 거죠. 그러니 겨울철을 날 식량으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때까지의 인류는 이런 고분자 탄수화물, 즉 녹말을 분해 하기 쉬운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거지요. 하지만 인간에게는 대신 불이 있었죠. 곱게 가루를 낸 뒤 물과 섞고 끓이면 녹말이 분해되면서 먹기 알맞게 변합니다. 커다란 옹기 등에 낟알 채로 저장해두었다가 먹을 때 껍질을 까고 돌절구에 문대어 가루로 만들어 물로 반죽을 하고 불에다 익힙니다. 그러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요리가 개발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쌀을 밥으로 지어 먹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 습니다. 삼국 시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 가루를 내어 쪄서 먹었 다고 문헌에는 전해져 오지요. 밀도 처음부터 가루를 내어 쪄서 먹었고 요. 반죽을 한 것까지는 같지만 이를 발효시켜 조금 더 소화시키기도 좋 고 풍미도 좋게 만들지요. 모양을 잡아 빵을 만들기도 하고, 길게 가락을 내어 면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란 개념이 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길들여진 것이 아닌데도 가축화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일어날 때 자기가 축화란 개념을 씁니다. 자기가축화의 대표적인 동물로는 보노보와 인간 을 꼽습니다. 자기가축화에서도 일반적인 가축화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 들에게 친밀하게 굴거나, 인내심이 늘어나고, 공격성이 줄어드는 등의 행 동이 나타납니다. 두개골이 작아지고, 이빨 크기도 줄고, 수컷의 외양이 암컷처럼 혹은 어린 개체처럼 변하는 등의 외모의 변화도 나타납니다. 보노보를 보면 이런 특징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아주 유사하지요. 외모도 그렇지만 유전적으로도 둘이 가장 가깝습니 다. 그런데 보노보와 침팬지를 비교해 보면 지킬과 하이드 정도로 둘은 달라 보입니다. 침팬지들은 낯선 침팬지들을 만나면 먼저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을 가하고, 싸우기가 다반사지요. 하지만 보노보는 폭력성이 많 이 사라졌습니다. 낯선 보노보를 봐도 위협을 하기보다는 서로 성기를 접촉하면서 우호를 쌓는 걸 즐겨합니다. 같은 집단 안에서도 침팬지는 싸움이 그치질 않지만, 보노보는 웬만하면 싸움이 없습니다. 외모도 조 금 변했습니다. 이빨도 작고 두개골도 작지요. 피부색도 덜 진합니다.
보노보 사이에서 이런 자기가축화가 나타난 건 암컷 위주의 사회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암컷이 덜 공격적인 수컷을 선호해서 짝짓기를 하면서 점차 수컷의 공격성이 줄어들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이 런 자기가축화는 인간에게서도 보여진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를 인간자기가축화가설Human Self-domestication Hypothesis이라고 합니다. 
- 인간의 자기가축화는 문명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개를 가축화한 것은 길게 봐도 3만 년 전이지만 인간이 자기가 축화를 시작한 것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만 년은 거뜬히 넘어가니까 요. 인간이 가장 먼저 가축화한 건 자기 자신이란 이야기지요. 이 또한 우리 선조들에게 고마워 할 일이라 여겨집니다. 우리 선조는 싸움 대신 대화를, 배제보다는 협동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던 것입니다.
- 음식이 쉽게 소화된다는 건 그만큼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는 말이기도 합니다. 흔히 점심시간은 1시간을 줍니다. 밥 먹는 데야 30 분도 걸리지 않지만 어느 정도 소화시킬 시간까지 염두에 둔 거지요. 물 론 1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순 있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배를 꺼줄 수 있는 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이미 불에 조리되어 많이 분해되어 있기 때 문입니다. 불에 음식을 익혀 먹기 전 조상들은 먹은 걸 소화시키려면 지 금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쉬어야 했지요. 그러니 하루 한두 끼만 먹어도 우리보다 소화시키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고,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부족했겠지요. 불에 음식을 익혀 먹는 건 다른 일을 할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음식을 익혀 먹는 건 우리 몸의 구조를 바꾼 대사 건이었습니다. 먼저 소화기관이 짧아졌습니다. 이전에 비해 소화가 쉬워 졌으니 굳이 긴 소장을 가질 필요가 없었지요. 맹장이 짧아져 지금의 충 수돌기 정도로 줄어든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그리고 턱이 변합니다. 딱 딱한 음식을 먹던 조상들은 어금니를 우리보다 여섯 개 정도 더 많이 가 지고 있었습니다. 어금니는 맷돌처럼 음식을 잘게 갈아 소화를 돕는 일 을 하지요. 당연히 어금니 자리를 만들기 위해 입이 앞으로 삐죽이 나왔 었지요. 두개골 화석을 보면 확실히 그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익 혀 먹는 음식은 이전만큼 많이 갈 필요가 없으니 어금니가 줄어듭니다. 지금도 사람에 따라 사랑니가 어려서부터 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잇몸속에 가둔 채 일생을 보내는 이도 있는 것처럼, 이전 조상들도 사람에 따 라 어금니의 개수가 좌우 위아래 합쳐 네 개에서 여덟 개 정도 차이가 났 을 겁니다. 음식이 딱딱할 때는 어금니 개수가 많은 것이 생존에 유리하 지만 이젠 그렇지 않지요. 어금니 개수가 줄어든 사람들도 같은 경쟁력 을 갖춥니다. 게다가 말을 하기에는 어금니 개수가 적고 입이 덜 튀어나 온 편이 유리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튀어나온 입이 들어가는 구조 적 변화를 겪습니다.
또 다른 변화는 혀의 형태입니다. 두껍고 크던 혀가 얇고 작아지면서 입안에서 혀의 움직임이 훨씬 더 현란해집니다. 다양한 형태의 발음을 하는 데는 혀의 움직임이 중요합니다. 다양한 모음과 자음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불의 사용 이후의 일이지요. 포유류는 모두 음식을 먹을 때 기관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막는 후두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목 위의 보라색 긴 막이 후두개입니다. 왼쪽은 다른 영장류의 후두지요. 보시면 숨을 쉴 때 후두가 입과 목 사이를 완전히 막는 걸 볼 수 있습니 다. 그래서 숨은 코로만 쉴 수 있지요. 반대로 오른쪽 인간의 후두는 숨 을 쉴 때 열린 공간이 입과 이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후두개가 해 부학적으로 아래로 내려가게 된 것은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면서 경추와 두개골의 구조가 변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런데 입 구조가 개조되 면서, 즉 입과 코로 동시에 숨을 쉴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항상 기도로 음식물이 넘어가는 위험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사래가 걸리는 거지요. 그 정도야 말을 하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에 비하면 감수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변화를 통해 인간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야어여오요우유이'의 다양한 모음과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의 다양한 자음이 모여 온갖 종류의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자 그를 조합하여 대상을 지칭하거나 상태나 행동을 나타내는 언어가 탄생하게 된 것이지 요. 하지만 인간의 후두가 말을 하기에 적합한 구조로 바뀐 것이 인간의 다양하고 심층적인 언어활동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쉽게 말 해서 하드웨어와 함께 소프트웨어도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지요. 상징, 추상적인 발상, 단어와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 등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지능이 점차 발달하면서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언어를 구사하기 위한 적절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같이 갖추는 데는 시간 이 꽤 걸려서, 지금으로부터 3만~10만 년 전쯤 언어가 출현하게 됩니다. 이처럼 불의 사용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들에게 불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실제 불을 사 용하게 된 진짜 프로메테우스(들)은 누구였는지 알 수 있는 길은 요원하지만, 누군지는 몰라도 인류 전체에게 고마운 사람이겠지요.
- 한편으론 초원의 선조들에게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 중 하나가 다른 동물의 두개골과 뼈였다는 것도 도구를 사용하게 된 이유입니다. 사냥이 익숙지 않은 우리 선조들은 조개나 흩어진 낟알 그리고 다른 동물들이 먹고 남긴 걸 먹게 됩니다. 맛난 부위는 다 먹어치운 뒤니 먹을 것이라곤 껍질이나 뼈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두개골 안의 뇌와 뼈 안쪽의 골수는 지방이 풍부해서 에너지원으로 삼기 좋았다는 거지요. 맛 있고 영양가 있는 이 골수를 빼먹기 위해서는 두개골과 뼈를 부숴야 했 죠. 그렇게 선조들은 손으로 돌멩이를 들고 내리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곧 날카로운 부분이 있는 돌이 공격과 방어에 더 효율적이고, 뼈를 부술 때도 뾰족한 부분으로 갈라진 틈을 치는 게 좋다는 걸 깨닫지 요. 이제 이들은 그냥 석기가 아니라 뾰족하게 다듬어진 석기를 사용하 기 시작합니다. 구석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도구는 주먹도끼입니다. 한 손에 쥐고 다른 동물을 내려치기도 하고, 가죽을 벗기기도 하고 또 땅을 파서 저장뿌리 등을 캐기도 했지요. 주먹도끼를 만들기 위해선 돌을 다 듬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몸돌을 단단한 다른 돌로 찍어 박편을 분리해 서 날카롭게 만들었지요. 즉 도구(주먹도끼)를 만들기 위해 도구(다른 돌) 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 근육이 움직이기 위해선 물질 대사, 즉 일종의 화학 반 응이 일어나야 합니다. 근육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죠.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일종의 화학 반응인데 여기에는 모두 효소가 관여합니다. 그리고 효소는 그 대부분이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지요. 단백질은 온도에 민감합니다. 온도가 변하면 구조가 변합니다. 따라서 체온이 낮으면 효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또 하나 화학 반응 자체가 온도에 민감합니다. 우리가 겪는 0°C에서 40°C 정도 사이에서 온도가 10°C 높아지면 화학 반응 속도가 2배 정도 빨라집니다. 따라서 체 온이 높을수록 우리 몸의 화학 반응인 물질대사도 활발해지는 거죠.
그럼 40°C나 50°C가 되면 더 좋지 않을까요? 여기서 효소가 단백질이라는 것이 체온을 더 올리는 것에 다시 걸림돌이 됩니다. 마치 계란 흰자가 굳어지면 다시 흐물흐물해지지 못하듯이 효소의 단백질도 40°C 정도가 되면 변성이 일어나고, 그러면 효소 자체를 쓸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40°C는 대부분의 생물에게서 마지노선이죠. 포유류의 체온이 35°C부 근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더 높이면 더 효율적이겠지만 그러면 마지노선 에 너무 가깝습니다. 마지노선에서 적당히 떨어져 유사시 체온이 올라가 더라도 버틸 수 있는 온도로 진화한 것이 포유류의 체온이죠. 치타가 무 지막지한 속도를 얼마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폭발적으로 근육을 쓰는 과정에서 급격히 오르는 체온을 버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들소를 사냥 할 때도 하루나 이틀 정도 계속 몰다 보면 지쳐 쓰러지는데 이 또한 체온 이 올라가는 걸 버티지 못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보면 진화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생물 중에는 40°C가 넘는 온도에서도 물질 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진화한 종도 있습 니다. 다만 그런 경우는 외부 온도가 높은 곳에서 사는 경우뿐입니다. 포 유류가 그런 온도로 체온을 높이도록 진화하지 않은 데는 효소단백질 의 변성뿐만 아니라 에너지 효율을 생각한 점도 있습니다. 외부 기온이 20~30°C 정도를 유지할 때 그보다 아주 높은 체온을 유지하려면 더 많 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데 이 또한 생존율을 높이는 데 별 도움이 되 지 않았던 거지요.
-  바이타민 D는 음식으로도 섭취할 수 있습니다. 가장 풍부한 음 식은 생선입니다. 특히 생선의 간에 바이타민 D가 풍부하지요. 그래서 북유럽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생선 간으로 만든 간유를 즐겨 먹었습니다. 또 신선한 고기, 특히 피에도 바이타민 D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알래 스카의 이누이트는 잡은 고래를 생으로 먹기도 합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의 북유럽처럼, 바다도 강도 얼어붙은 곳에서 바이 타민 D가 풍부한 음식을 찾기란 힘듭니다. 겨울에 쉽게 구하기도 힘든 고기도 불에 익혀 먹다 보니 바이타민 D가 부족하게 되죠. 가을철에 모 아놓은 말린 과일과 낟알들, 말린 뿌리채소, 거기에 말린 고기만 먹으니 자연스레 바이타민 D가 모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북유럽에 살던 선조 중 많은 이들이 바이타민D 부족으로 죽거나 건강이 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나마 멜라닌 색소가 덜 분포된, 즉 피부색이 덜 검은 이들은 바 이타민 D를 더 잘 생성해 다른 이들보다 겨울을 잘 날 수 있었겠지요. 그러면서 북유럽 사람들은 차츰 피부가 하얗게 변하게 되었지요.
북유럽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프리카와 같은 열대지방이 아닌 곳에서는 한편으로 피부를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고 또 반대로 자외선을 쬐어서 바이타민 D를 생성해야 하는 문제가 피부색을 적당한 상태로 만 듭니다. 너무 짙어지면 바이타민 D를 만들 수 없고 또 반대로 너무 옅어 지면 자외선에 의한 피부암 등의 발생비율이 높아지니 진화는 각 지역에 맞는 적당한 피부색을 각기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피부는 한대 에서 열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깔을 가지게 되었지요. 물론 오늘날에 는 거주 지역을 옮겨다니는 것도 자유롭다 보니 피부색은 더 이상 바이 타민 D 때문에 변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지요.
- 춥고 배고픈 겨울을 눈앞 에 두고는 다람쥐나 개구리, 곰 등은 영양분을 충분히 쌓기 위해 엄청나 게 먹어서 겨울잠을 자기 전엔 살이 무척 올라와 있지요. 하지만 이는 생 존을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초기 인류도 마찬가지였 습니다. 늘 먹을 것이 부족했습니다. 언제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을 수 있 을지 모르니 먹이를 구하게 되면 가능한 한 많이 먹었지요. 필요한 양보 다 많이 먹고 여분의 영양분을 저장하는 데 유리한 선조는 그렇지 못한 선조보다 생존율이 높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양분을 어떻게 저장했을까요?
일단 저장하는 물질은 지방으로 정해집니다.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에 비해 단위질량당 저장하는 칼로리도 높고 또 분해하기도 편하기 때문입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1g당 칼로리가 4kcal지만 지방은 9kcal로 두배가 넘죠. 거기다 지방은 지방산 세 분자와 글리세롤 한 분자가 결합해 서 만들어지는데 이 결합만 끊으면 바로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 다. 이에 비해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을 고분자 형태로 저장하면 분해하 는 데 시간도 에너지도 많이 듭니다. 그러니 지방으로 할 수밖에요.
다음은 저장할 장소가 문제입니다. 보통의 경우 우리 몸에서 가장 지 방이 많은 곳은 피부 바로 아래입니다. 피하지방층이죠. 피하지방은 체 온이 손실되는 걸 막아주는 역할도 하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신체 내부 를 보호하기도 하는 중요한 부위입니다. 이곳이 살짝 두꺼워지는건 요사이 사람들로선 걱정거리지만 예전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요. 오히려 말라서 이 피하지방이 얇아지는 게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첫 저장 장소는 피하지방층이 됩니다.
하지만 저장해야 될 지방이 많이 늘어나면 곤란해집니다. 피부 아래 쪽에만 저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죠. 마치 파카를 서너 벌 껴입은 모 습처럼 되면 움직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니까요. 선조들도 계속 움직여 야 하니 팔과 다리에 지방을 저장해서는 곤란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머 리에 저장할 수도 없습니다. 머리가 무거워지면 걸을 때마다 무게 중심을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남은 부분은 몸통인데 가슴은 아니었습니 다. 폐가 원활하게 움직여야 호흡이 쉬운데 가슴에 지방이 차면 안 되지 요. 그렇다고 갈비뼈 바깥쪽에 잔뜩 지방을 짊어지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지요. 결국 남은 곳은 복부와 골반 주위, 즉 엉덩이입니다.
- 여기서 남자와 여자가 나뉩니다. 남자는 복부에 지방을 모으게 됩니다. 내장 사이사이에 내장지방을 만들고 복부 앞쪽에 복부지방을 저장하지요. 등 쪽은 척추가 지나가니 적합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여성호르몬이 이끄는 데로 주로 허벅지와 엉덩이 부분에 지방을 모아둡니다. 그 위쪽 복부에는 아이가 들어서야 하니 공간을 남겨놔야죠. 하지만 더 이 상 배란을 하지 않게 된 여성들은 성호르몬이 줄어들고 이제 남자와 같 이 복부를 중심으로 지방이 모이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진화는 지방을 가져다 쓸 때는 축적할 때와 반대의 순서 를 밟게끔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빠질 때는 복부와 엉덩이 허벅지를 마 지막에 두고, 얼굴과 팔다리 등의 피하지방을 먼저 가져다 쓰는 거지요. 그래서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아랫배는 아직 나왔는데 얼굴부터 핼쑥해 집니다. 저금을 할 땐 적금통장에 돈을 먼저 넣지만 쓸 때는 현금이 항 상 드나드는 통장에 든 돈을 적금 통장에 든 돈보다 더 자주 빼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 여기에는 호르몬과 효소의 역할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방분해 및 저장에 관여하는 효소 중 하나가 리포단백 라이페이스LipoProtein Lipase, LPL인데 이 효소의 활성 부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이 효소와 결합 하는 수용체에는 지방 분해를 도와주는 베타 수용체와 분해를 억제하는 알파-2 수용체가 있는데 베타 수용체는 주로 얼굴과 상체에 알파-2 수용체는 하체에 더 많습니다.
결국 찌는 순서와 빠지는 순서는 애초에 정해져 있는 거지요. 그러니 다이어트를 '대충' 했을 땐 한 번 부풀어 오른 배는 줄어들 줄 모르고 괜 한 팔다리만 얇아지는 셈입니다. 물론 근력운동을 식이요법에 겸하면서 꾸준히 하면 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
- 이족보행 이전과 이후에 가장 많이 변한 것 중 하나가 골반 부근입니 다. 이전에는 척추와 두 다리가 약 120° 정도의 각도로 꺾어져 있었다면 이젠 180°, 즉 직선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골반뼈가 비교적 등쪽, 즉 위쪽에 있고 그 아래쪽에 생식기며 방광이며 고환 등이 놓여 있었는데 방향이 바뀌면서 생식기와 고환의 위치는 더 아래쪽으로 내려 가고 방광은 둘에 비하면 더 위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면서 또 다 른 사달이 났습니다. 전립선은 정소, 즉 고환에서 생식기로 이어지는 정 액을 운반하는 긴 호스와 같은 선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서게 되면서 이 들 사이의 위치가 바뀌었지만 이 선이 지나는 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고환에서 바로 생식기로 이어지면 끝인데 굳이 위로 올라가 방광을 한번 휘돌고 다시 내려옵니다. 침팬지나 고릴라처럼 숲에 살았던 영장류로 서의 인간의 선조에게는 이렇게 고환에서 방광을 거쳐 생식기로 가는 방향이 최단거리에 가까웠지만 골반과 방광, 고환, 생식기 등의 위치가 바뀌면서 애도는 길이 된 것이죠. 그래서 나이든 남자들에게 전립선 문제가 심각해질 확률이 더 높아졌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3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에는 현재 두 가지 가설이 맞서고 있습니다. 하나는 전통적인 입장으로 아프리카 단일 가설이라고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 들이 점차 세력을 넓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주장입니다. 근래에 들 어 힘을 얻기 시작한 또 다른 가설은 다지역 기원설이라고 합니다. 이미 전 세계에 퍼진 호모 에렉투스들이 독립적으로 진화를 통해 호모 사피 엔스가 되었고, 이런 호모 사피엔스들의 교류를 통해 현재와 같은 인류 가 탄생했다는 주장입니다.
- 어떻게, 왜 호모 사피엔스만이 남았을까 하는 문제는 두 가지 이론이 대립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종들은 사피엔스와 섞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거나 사라졌다는 교체 이론, 서로 교배하며 현생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교배 이론으로 나뉘어져 있었지요.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데니소바인의 발견이나 유전공학의 연구 결과는 교배 이론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 중생대의 긴 세월 동안 포유류의 선조는 주로 밤에 생활했습니다. 공 룡들이 활보하던 중생대 내내 포유류는 쥐 정도의 크기에서 덩치를 더 키우지 못했고, 공룡들이 잠든 밤을 틈타 먹이를 사냥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사물을 파악하다 보니 빛이 어느 정도 있어야 사물을 구 분할 수 있는 원추세포보다는 적은 빛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간상세포 가 발달했습니다. 또한 원추세포도 가시광선의 양 끝에 있는 빨간색과 파란색을 중심으로 반응하는, 그래서 대부분의 가시광선을 감지할 수 있는 두 가지 종류, 적원추세포와 청원추세포만 가지고 있었지요. 즉 두 가지 원추세포의 조합만 가지고 사물의 색을 구분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야행성 포유류 대부분이 두 가지 종류의 원추세포만으로 살아갑니다. 야생의 갯과 동물이나 고양잇과 동물 같은 육식 동물들 대부 분이 밤에 사냥을 하기 때문에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원추세포는 두 종 류입니다. 그리고 낮에도 사실 별 상관이 없지요. 코끼리인지 하이에나인 지 구분하는 건 형태지 색이 아니니까요. 그 후손인 개와 고양이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선조도 마찬가지로 두 가지 원추세포만 가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6,600만 년 전에 있었던 백악기-팔레오기 멸종 이후, 인간과 다른 영장류 동물의 공통조상이 열대우림의 나무에서 살기로 결정하면 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선조의 주된 먹이는 사시사철 열리는 열매와 꽃의 꿀입니다. 또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나뭇잎이나 가지를 기어가 는 벌레를 먹었고 가끔은 작은 동물을 사냥하기도 했습니다. 삶의 시간 대도 바뀌었습니다. 어두운 곳에선 가지와 가지 사이를 넘나들기 힘들었던 것이죠. 이들은 해가 뜨고서야 먹이를 구하고 서로 교류하며 사냥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이들 선조 중 일부가 변이를 일으킵니다. 적원추세 포의 일부가 구조가 바뀌면서 적색보다 녹색에 민감하게 변한 것이죠. 이런 변이는 확률적으로 매우 적지만 그래도 꾸준히 일어나는 변화입니 다. 땅에서 야행성 생활을 할 때 이런 변이는 별 도움도 되질 않고 오히 려 에너지를 낭비하기 때문에 약점이 됩니다. 따라서 이 변이를 자손이 물려 받아도 종 내부에 퍼질 가능성은 매우 적지요.
하지만 낮의 나무 위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녹색 잎들 사이에서 남들 보다 빠르게 노랗고 빨간 열매와 꽃을 구분할 수 있다면 먹이를 구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단축될 것이고, 특히나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변이를 일으킨 선조는 다른 선조들보다 건강하게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퍼트릴 가능성이 높았지요. 그 결과로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영장류의 공통 선조들은 모두 세 가지 원추세포 를 가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신세계 원숭이들, 즉 중남미에 사는 원숭 이들도 원래는 두 가지 색밖에 구분을 못했지만 독자적으로 세 가지 색 을 보도록 진화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즉 열대우림이라는 비슷한 환경에서 살면서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영장류들은 모두 더 많은 색을 구 분할 수 있도록 독립적으로 진화한 거지요.
현재도 적녹색맹인 사람이 있습니다. 녹원추세포가 원추세포로부 터 기원하다 보니 유전적으로 녹원추세포가 제대로 발현되지 않거나 세 포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경우가 간혹 나타나고, 또 유전이 되기도 합 니다. 그렇다면 적원추세포와 그로부터 연유한 녹원추세포는 과연 무엇 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일까요?
- 우리 망막의 원추세포 안에는 세포막과 동일한 종류의 얇은 막으로 된 디스크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데 그 막에 로돕신rhodopsin이란 물질이 박혀 있습니다. 이들이 빛을 받아들여 모양이 변하면 그게 기점이 되어 우리가 빛을 감지하지요. 핵심적인 변이는 바로 이 빛을 수용하는 로돕 신의 구조 차이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로돕신을 구성하는 두 물 질 옵신opsin과 레티날retinal 중 옵신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차이라고 해도 아주 약간만 다를 뿐이죠. 그리고 흡수하는 빛의 파장대도 아주 조금만 차이가 납니다. 적원추세포의 옵신은 560나노미터(nm) 파장의 빛을, 녹 원추세포의 옵신은 530nm의 파장의 빛을 주로 흡수합니다. 청원추세 포는 이보다 차이가 꽤 커서 420nm 파장 빛을 흡수합니다.
실제로 적원추세포 옵신의 유전자(OPNILW)와 녹원추세포 옵신의 유전자(OPN1MW)를 살펴보면 다섯 개도 되지 않는 아미노산 서열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옵신을 구성하는 355개 정도의 아미노산 중 딱 몇 개가 바뀌어서 흡수하는 광 파장이 달라진 것이죠. 그리고 이 정도 변 이는 생식세포, 즉 정자나 난자를 만드는 세포 분열과정에서 아주 쉽게 일어나는 변이입니다. 결국 옵신이라는 원추세포 디스크에 박혀있는 막 단백질의 아주 일부를 바꾼 그 변이가 현재 무지개를 다섯 가지 혹은 일 곱 가지 색으로 구분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었던 것이죠.
- 포유류의 선조가 자궁을 발달시키고 알 대신 새끼를 키워 출산하게 된 건 대략 길게는 3억 년에서 짧게는 2억 2,000만 년 전 정도라고 여겨 집니다. 하지만 이 때의 자궁은 지금으로 치자면 아주 어린 새끼를 낳아 육아낭이라는 주머니에서 키우는 유대류 정도의 불완전한 자궁이었습 니다. 제대로 된 자궁이 나타나는 건 1억 7,500만 년에서 1억 500만 년 전이었습니다. 공룡이 세상을 호령하던 중생대에 우리 포유류의 선조는 먼 미래를 기다리며 자궁을 진화시켰던 것이죠.
우리 인간처럼 다른 동물도 자궁이 하나일 것으로 생각하지 쉽지만, 사실은 두 개의 난관이 자궁으로 변한 것이니 자궁 또한 두 개를 가지는 동물이 훨씬 더 많습니다. 유대류와 설치류, 토끼 같은 종류는 각각의 난관이 진화해서 두 개의 자궁을 만듭니다. 그리고 반추동물이나 바위너 구리, 고양이 같은 경우는 두 개의 자궁을 가지지만 맨 아래 자궁경부는 하나인 구조를 가집니다. 개나 돼지, 코끼리, 고래 등의 경우는 자궁의 위쪽은 분리되어 있지만 아래는 하나로 통합된 구조입니다. 자궁이 완전 히 하나인 경우는 인간과 침팬지, 고릴라 같은 우리와 가까운 영장류뿐 이지요.
그렇다면 자궁이 있는 동물은 모두가 폐경에 이를까요? 현생 인류의 경우 40~50세 사이에 대부분의 여성은 폐경에 접어듭니다. 그런데 비슷한 다른 유인원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혹자는 인간이 원래 야생 상태에서 주어진 수명보다 훨씬 더 오래 살면서 폐경이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 드 러나죠. 인간과 같이 사는 고양이나 개 등은 원래 야생에서 누리는 평균 수명보다 훨씬 긴 일생을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만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는 경우 죽을 때까지 폐경에 이르지 않습니다. 다른 야생에서 발견되 는 아주 오래 산 동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폐경은 모든 인류에게 일어나므로, 우리 종이 갈라지던 분기점 이전, 약 13만 년 전에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폐경은 육아를 감 당할 수 있는 자손 수의 한계에 그 원인이 있을 거라 연구자들은 생각합 니다. 대략 2~4년에 한 명씩 아이를 낳게 되면 20년 정도면 대략 5~15명 사이의 아이를 낳게 됩니다. 초기 유아사망률이 높았을 때였으니 그 중 절반 정도가 태어나 1년 이내에 사망한다고 쳐도 꽤 많은 아이를 길러야 하죠. 이미 태어나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에너지를 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죠. 폐경을 하게 된 것은 또한 가족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 니다. 무리를 지어 살지만 일부일처제인 사회에서는 더 강한 자손을 낳 기 힘든 나이의 여성이 자손을 낳기보다 육아와 먹이 채집 등 기타 활동 을 하는 것이 무리 전체의 이익에 부합합니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개체는 생 존율이 떨어집니다. 나이가 든 여자가 출산하는 아이는 건강하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더구나 지금보다 건강관리가 훨씬 힘들었을 옛날에는 말이죠. 그보다 이미 있는 개체의 보호와 육성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유 전자의 전달에 훨씬 효율적일 것입니다.
- 더 중요한 것은 폐경이 된 여성이 손주를 돌보게 되면 그 여성의 딸이 나 아들은 새로운 자식을 임신하고 번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손주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할머니 유전자의 25% 정도를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는 예전 인간 선조의 할머니들이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스스로 폐경을 하기로 한 건 아닙니다. 유전적 변이에 의해 어떤 이들은 40대 말 정도에 폐경을 하게 되고 또 다른 이들은 계속 아이를 낳았을 겁니다. 그런데 폐경에 이른 쪽은 아이를 낳지 않으니 대신 가족 집단을 위해 다른 일을 했을 것이고. 이 경우가 자손의 생존율과 번식률 이 조금 더 높았던 것이 세대가 지나면서 인간 여성 전체가 폐경에 이르게 만들었던 것이죠.
- 고생대 말에 아주 큰 사건이 생깁니다. 페름기 대멸종이란 것 인데 이때 당시 살던 생물들 중 약 97~99%의 생물종이 모두 멸종합니 다. 엄청난 사건이었죠. 그 과정에서 포유류와 파충류의 선조들도 대부 분 사라지고 구사일생으로 소수의 종만 살아남아 중생대를 엽니다. 중생 대가 되자 육상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포유류와 파충류가 현 재의 모습으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전까지 화석을 보면 포유류나 파충류 그리고 양서류는 겉모습으로 서로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 다. 그런데 또 하나의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바로 트라이아스기 대멸종입 니다. 고생대와 중생대를 가르는 페름기 대멸종이 이때까지 지구에서 일 어났던 가장 규모가 큰 대멸종이라면 트라이아스기 대멸종은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대멸종이었습니다. 그리고 둘 다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 페름기 대멸종은 시베리아 지역의 대분화로 시작되었습니다. 약 100만 년을 넘는 시간 동안, 지금의 인도만한 면적에서 지속적으로 화산 분화가 일어납니다. 그때 흐른 용암이 지금 시베리아에 1km가 넘는 두께 로 쌓여 있을 정도로 엄청난 분화였죠. 그 결과로 지구 온난화가 시작되 었습니다. 그러자 당시의 북극과 남극 주변의 동토층들이 녹으면서 땅속 에 묻혀 있던 메테인 가스가 대기중으로 분출됩니다. 메테인은 화학식이 CH인데 대기 중의 산소와 만나면 연소하면서 이산화탄소와 물이 되지 요.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져 지구 대기 온도가 더 높아집 니다. 그러자 바닷물의 온도도 높아지면서 해저에 있던 메테인하이드레 이트가 녹으면서 또 메테인 가스가 대기 중으로 분출합니다. 마찬가지로 산소와 만나면서 연소하고 이산화탄소와 물이 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메테인 가스가 나오고 산소가 달라붙어 연소하면서 대 기 중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그 이전에 비해 절반 정도로 낮아 진거죠. 마치 지금으로 치면 해발 5,000m 정도 되는 높이의 산소 농도라고나 할까요? 이러니 산소로 호흡을 하던 동물들은 숨을 쉴 수가 없어서 거진 다 죽어버리게 된 거죠.
트라이아스기 대멸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대서양 해저에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산맥, 대서양 중앙해령이 있는데, 이 산맥이 생긴 것이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입니다. 산맥이 생기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해저 화산의 분화가 이어집니다. 페름기 말 대멸종과 비슷한 시작이었죠. 그리고 전개 과정도 비슷하게 이루어집니다. 결국 두 대멸종의 끝은 대기 중 산소 농도 하락으로 끝맺음이 됩니다. 이 두 대멸종을 살아낸 동물들은 혹독한 환경의 시련 속에서 새로운 진화를 이룹니다. 공룡과 포유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낮은 산소 농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호흡 효율이 더 좋아져야했지요. 공룡에서는 기낭이, 포유류에서는 가로막이 그 역할을 합니다.
- 포유류가 정온동물로 진화한 것에 대해서는 물론 다른 가설들도 있 는데 그 중 하나가 초식동물 가설입니다. 초식동물이 먹는 풀에는 탄수 화물은 풍부하지만 단백질의 재료는 부족했습니다. 충분한 단백질을 확 보하기 위해 많은 풀을 먹다 보니 과잉 영양 상태가 되었고,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자 신체는 항상 따뜻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원인이야 무엇이 되었든 일단 정온동물이 된 포유류는 비늘을 털로 바꾸었던 거지요.
하지만 털의 기원이 그렇다고 체온 유지에 있는 건 아닙니다. 포유류 화석에서 털의 흔적이 본격적으로 발견되는 건 중생대이지만 고생대 말 포유류의 선조 반룡류나 수궁류에서도 털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연구 결 과들도 한두 가지는 아니거든요. 그 당시는 꽤 따뜻했던 시절이라 체온유지를 위해서라면 털이 발달할 이유가 별로 없던 때였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지요. 다른 이유는 바로 감각입니다.
실제로 현존하는 포유류의 털은 감각기관이기도 합니다. 털이 자라 는 모낭에는 신경이 연결되어 있어 털을 스치는 아주 가벼운 자극에도 반응을 합니다. 앞서 언급한 벌거숭이두더지쥐의 경우에도 주둥이 주변 에는 몇 가닥의 털이 있습니다. 또 주변의 고양이나 개를 봐도 주둥이 주 변에 다른 털보다 긴 털이 몇 가닥에서 몇십 가닥씩 나 있지요. 이들 털 의 역할은 보온보다는 촉각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어두운 밤처럼 눈이 별 소용이 없을 때, 코를 킁킁대며 지면에 바싹 붙이며 움직이는 동물들은 냄새를 맡으면서 주둥이 주변에서 뻗어나온 털로 주변을 감지 합니다. 마치 곤충들이 더듬이를 발달시켰듯이 포유류도 다른 곳보다 먼 저 주둥이 주변의 비늘을 털로 전환시켰는데 최초의 이유는 아마 이런 감각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이죠. 아마 고생대 말 반룡 류나 수궁류에서 발견된 털의 흔적도 체온 유지보다는 이런 감각기관으 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 정온동물로의 진화를 보면 포유류는 아니지만 새들도 마찬가지의 과 정을 거칩니다. 현재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동물은 포유류와 조류인 데요, 그래서 조류의 경우에도 포유류와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깃털이 진화합니다. 깃털과 털의 차이는 바로 것입니다. 털은 피부의 모낭에서 하나씩 자랄 뿐입니다. 그러나 깃털은 모낭에서 깃 하나가 자라고 그것 에 가지처럼 털이 붙어 있지요. 그래서 털에 비해 더 가늘고, 품을 수 있 는 공기층이 두터워 털보다 보온에 더 효과적입니다. 오리털이나 거위털 로 속을 채운 옷이나 이불이 따뜻한 이유이지요.
현존하는 새들은 일종의 공룡인데 아직 하늘을 날기 전 중생대에 이미 공룡은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이미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로 많습니다. 깃털의 기원은 털과 마찬가지로 비늘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포유류의 털이 처음에는 감각기관이었던 것처럼 새의 깃털도 처음 목적은 달랐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생각합니다. 중생대 공룡이 깃 털을 가지게 된 것에는 아직 여러 가설이 경쟁하고 있는데 체온을 유지 하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었겠습니다만 짝짓기를 위해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역할로도 함께 혹은 먼저 사용되었을 것이란 증거도 꽤나 있습니 다. 한편으로는 균형을 잡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현재의 새들은 깃털에 파묻혀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고 있지요.
- 인간과 같은 포유류를 다른 척추동물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알 대신 새끼를 낳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선조 포유류도 중생대 중반까지는 알을 낳았습니다. 사실 동물 대부분은 알을 낳아 번 식을 합니다. 도마뱀이나 닭도 알을 낳고 개구리나 고등어도 알을 낳습 니다. 그뿐 아니지요. 곤충도, 거미도, 게나 가재도 모두 알을 낳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알이란 애초에 난자가 그 시작입니다. 처음부 터 정자와 결합한 수정란의 형태이든 아니면 나중에 정자가 들어오는 무 수정란이든 난자가 알이 되는 거지요. 하지만 난자만으론 거친 세상에 새끼가 무사히 부화해서 잘 성장하고 하나의 성체가 되기 힘든 것이 사 실이니 난자에 여러 가지 필요한 성분을 좀 더 담아 만드는 게 알이지요. 그래서 사실은 '닭이 먼저냐 아니면 알이 먼저냐'는 논쟁은 생물학적으 로 보면 그 결론이 이미 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알이 먼저지 요. 아직 닭으로 진화하기 전의 선조들도 알을 낳았고 그 알들에 담긴 작 은 진화가 모여 닭이 되었으니까요.
- 양서류의 가장 큰 특징은 어릴 때(유생기)에는 아가미를 가지고 물속에서 살고, 커서 성체가 되면 폐호 흡을 한다는 것이죠. 양막 척추동물의 선조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 런데 알에서 태어나 보니 이미 말라버린 물웅덩이라면 얼마나 황당할까 요? 처음에는 부모가 알에서 깨어난 자식을 자신의 입에 머금고 가까운 물로 데려가는 수고를 했을 것입니다. 물론 많이도 죽었을 거고요. 새끼 의 입장에선 충분한 물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게 된다면 아가미로 호흡하 는 시기가 짧을수록 생존율이 높았을 겁니다. 점점 이 아가미 호흡을 하 는 시기(유생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졌고, 마침내 알 속 배 아 시절 아가미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바로 폐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현재의 육상 척추동물들은 파충류건 포유류건 조류건 모두 알 속에서 혹은 엄마의 자궁에서 배아 시기에 잠시 아가미구멍을 가지고 이후 아가미구멍이 닫히면서 폐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곤 태어나자마자 폐로 호흡을 하지요. 인간의 배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아가미구멍이 생 기지만 곧 사라지면서 폐가 만들어지지요. 양막을 가진 알을 낳게 되는 변화는 육상 척추동물이 강이나 바다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고 진정한 육상동물이 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 우리는 폐로 숨을 쉽니다. 인간이 그러니 다른 동물도 다 그런 줄 알지만 사실 폐로 숨 쉬는 건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곤충은 기관 으로 거미는 서폐book lung로 물속의 많은 동물들은 아가미로 숨을 쉽니 다. 그리고 아예 호흡기관이 없는 동물도 많습니다.
진화의 초기 동물들은 별도의 호흡기관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크기 가 작으면 그저 확산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죠. 확산? 그렇습 니다. 숨을 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우리 몸의 세 포 모두는 호흡을 합니다. 여기서 호흡이란 영양분(주로 포도당)과 산소 를 가지고 ATP라는 에너지 화폐를 만드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부산물 로 이산화탄소가 생기고 별 필요 없으니 버립니다. 세포가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놓는 건 모두 세포막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놓는 걸 기체 교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단세포생물은 물속에 사니 물에 녹아 있는 형태로 산소를 물과 함께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도 물과 함께 내놓습니다. 단세 포생물은 아니지만 산호나 말미잘, 해파리 같은 녀석들도 몸의 두께가 아주 얇아 대부분의 세포들이 물과 직접 접촉하면서 기체를 교환하기 때문에 별도의 호흡기관이 필요 없습니다. 물과 직접 접촉하지 않는 세포도 바로 옆 세포가 물에 접하고 있으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물에 포함 된 산소가 확산하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이산화탄소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갑니다. 미역이나 김 등의 해초들도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개체의 내부가 복잡해지면서 몸 안쪽 깊숙한 곳의 세포는 확 산으로만 기체 교환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따로 산소를 공급해 주고 이산화탄소를 수거하는 기관이 필요하게 되었죠. 
- 개구리나 두꺼비는 양서류라고 합니다. 물과 땅 '양'쪽에 '서식하는 동 물이란 뜻이지요. 하지만 개구리 같은 양서류는 사실 어려서는 물속에 서만 살 수 있고, 커서는 물 밖에서만 살 수 있는 동물이지요. 다른 이유 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려서는 아가미로 호흡을 하고, 커서는 폐로 호흡을 하기 때문이죠. 폐가 아가미가 진화하거나 변해서 된 거라 고 생각하는 분도 간혹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로 폐어lungfish *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한글 이름도 영 문 이름도 이 물고기의 '폐를 가지고 있다는 특징'을 적나라하게 드러냅 니다. 고생대 데본기에 출현한 이 녀석들은 우기에는 많이 퇴화되었지만 아직 기능을 잃지 않은 아가미구멍으로 물속에서 숨을 쉬고 건기가 되 면 폐로 숨을 쉽니다. 즉 이들은 폐와 아가미 둘 다 가지고 있는 거지요. 처음 연구자들이 폐어를 발견했을 때는 폐로 숨을 쉬는 것을 보고 이들이 육상 척추동물의 선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리도 아니죠. 하지만 우리 육상 척추동물의 먼 선조는 데본기에 이미 폐어와 갈라선 사지형어류 입니다. 물론 사지형어류도 폐어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폐를 진화시켰 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럼 폐는 어떻게 진화한 것일까요? 물에서 아가미로 호흡을 하며 살 다가 "난 이제 육지로 나갈 거니까 폐를 진화시켜야돼", 이러진 않았을 거란 말이죠. 진화의 이유는 물에서 호흡하기가 힘들어진 물고기들의 안간힘이었습니다. 지금도 민물에 사는 물고기들 중에는 아가미 말고 다 른 기관으로 호흡을 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미꾸라지나 메기는 장으 로 공기 호흡**을 하여 아가미와 피부호흡만으로는 부족한 산소를 확보 합니다. 이들은 시시때때로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어 공기를 빨아들인 뒤 장에서 산소를 흡수하고 항문으로 남은 기체를 내보내는 모습을 보 이죠. 이때 항문 주변에서 공기 방울이 빠져나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 견할 수 있습니다. 가물치나 버들붕어 등은 래버린스 기관Labyrinth organ ᄋ 로 공기 호흡을 합니다. 미로기관이라고도 하는 래버린스 기관은 아가미 의 일부가 변화되어 만들어진 기관으로 폐와는 그 기원이 다릅니다. 이들 물고기는 수면위로 입을 내밀어 공기를 빨아들여 이 래버린스 기관으로 보내 공기 호흡을 합니다. 물론 이들도 아가미호흡을 하지만 래버린스 기관에 의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아서 만약 공기 호흡을 하지 못하게 되 면 오래 생존하기 힘듭니다.
이처럼 많은 민물고기들이 아가미 이외의 호흡기관을 확보하게 된 것 은 민물의 특수한 사정 때문이죠. 바닷물에 비해 물 자체의 절대량이 작 은 민물의 경우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여름 이 되면 바닷물보다 그 절대량이 작은 민물은 훨씬 빠르게 수온이 올라 갑니다. 이렇게 수온이 상승하면 물속의 산소 농도는 급격히 낮아지게 되지요. 또 홍수가 나거나 산사태 등으로 흙이 강물에 쏟아져 들어와도 산소 농도는 순식간에 감소합니다. 물속의 산소가 흙에 있던 다양한 무 기염류와 결합하여 사라지기 때문이죠. 혹은 갑작스러운 녹조 현상이 일 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수중 산소 농도가 낮아지면 아 가미만으로는 생존에 필요한 산소를 모두 공급하기는 아무래도 힘들게 됩니다. 이런 수중 상황에 대응이 가능한 물고기들만이 민물에서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물고기들이 산소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 니다. 하나는 물에 녹아 있는 산소를 물과 함께 들이마시는 것. 이는 아 가미로 이미 하고 있지요. 다른 하나는 공기 중의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 이죠. 입으로 공기 중의 산소를 마시면 해부학적 특성상 이 산소는 식도 를 거쳐 위와 소장 그리고 대장을 거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물고기는 장호흡을 하고 또 다른 물고기는 래버린스 기관이란 걸 만들었듯이 또 다른 종류는 폐를 만들었습니다.
폐는 장호흡을 하는 물고기들과 비슷하게 소화기관의 일부가 발달하 면서 형성됩니다. 하지만 그 부위가 소장이 아니라 식도 쪽입니다. 식도 의 한 부분이 부풀어 올라 주머니처럼 발달하고 그 주변에 실핏줄들이 집중되면서 폐로 발전한 것이죠. <그림24>는 폐의 진화 과정을 보여줍니 다. 처음에는 식도의 한쪽이 부풀어 올라 주머니가 됩니다. 이때는 입으 로 삼킨 공기가 이 주머니에 모여서 공기 호흡을 했겠지요. 이때 공기 중의 산소는 주머니의 막을 통해 혈액으로 확산됩니다. 그럼 막의 표면이 더 넓어지면 아무래도 공기 호흡 효율이 높아지겠지요? 그래서 진화는 막의 표면을 주름지게 해서 표면적을 넓힙니다. 처음에는 주름 정도만 졌다면 진화가 거듭되면서 주름진 표면 자체에 다시 작은 주름이 지면서 점점 복잡한 구조가 됩니다.
또 주머니의 크기도 점점 커지게 되죠. 그리고 식도와 나눠집니다. 물 론 완전히 분리되진 못해서 목에 식도와 기도를 나누는 장치가 마련되 지요. 후두개가 바로 그 장치로 먹은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는 걸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과정은 물속에서만 일어나진 않았습니다. 이렇게 원시적인 폐를 갖춘 물고기 중 일부가 육지에 진출했고, 육지에 진출한 사건은 폐의 기능을 더욱 강화시키고 그 구조를 더 심화시켰던 겁니다. 결국 폐는 산소 농도가 자기 마음대로 변하는 민물에 살았던 물고기들 에 의해서 만들어졌던 것이죠. 그런데 지금껏 물고기로 통칭했지만 사실 고생대 민물로 진출해 폐를 발전시켰던 어류는 조기어류와 육기어류 두 종류로 나뉩니다.
-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물고기들이 속한 조기어류는 이 폐를 부레로 발전시킵니다.* 이들은 폐를 공기 호흡을 하는 데 쓰기보다는 물속에서 이동하는 데 주로 쓰이는 부력기관으로 변화시켰는데 이것이 부레죠. 부레를 가지게 된 조기어류는 물속에서 보다 원활한 이동이 가 능해졌습니다. 또한 상승과 하강에 드는 에너지를 감소시켜 생존력을 높 였죠. 이렇게 부레를 가지면서 보다 강한 경쟁력을 가지게 된 조기어류 는 다시 바다로 진출하여 자신을 쫓아냈던 판피어류와 연골어류를 물리 치고 바다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중생대 초기 어룡이 멸 종된 원인 중 하나가 이들의 귀환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바다에서는 조기어류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육기어 류는 영광스러운 귀환을 할 수 없었습니다.
- 그럼 유악동물은 또 어떻게 나눌까요? 이제 턱이 있으니 같은 계통아니냐고 생각하시겠지만 뼈를 가지고 또 나눔니다. 단단한 뼈를 가지면 경골어류, 물렁뼈로만 이루어지면 연골어류라고 하지요. 원래 이 두 가지 말고도 판피어강과 극어강이라고 더 있었는데 모두 멸종해 지금은 두 가지 종류입니다. 연골어류의 대표적인 동물이 상어와 가오리지요. 이들 의 가장 큰 특징은 뼈가 온통 물렁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인데, 그것 말 고도 부레가 없어 가만히 있으면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는 특징도 가지 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대신 간에 지방을 저장해서 부력을 조금 얻 고 잠시도 쉬지 않고 헤엄을 치지요. 가만히 있으면 계속 아래로 가라앉 기 때문입니다.
이제 드디어 온전한 척추에 턱도 있고 뼈도 딱딱한 경골어류까지 왔 으니 완전히 정리가 된 걸까요? 아쉽게도 아직 한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현존하는 경골어류는 크게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바다나 민물의 물고 기 모두가 해당되는 조기어류고요. 나머지 하나는 육기어류입니다. 조기 어류는 피부가 변해서 지느러미가 된 물고기들입니다. 지느러미 안에 뼈 가 있긴 해도 가시 같은 형태지요. 현존하는 물고기들 중에 앞에서 다른 종류라고 했던 것 이외에 거의 모든 물고기가 이 종류입니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바다와 강에서 대성공을 거둔 종류지요. 그리고 나머지 하나 는 육기어류인데 지느러미 안에 살과 뼈가 들어 있는 물고기지요. 현재 폐어와 실러캔스 딱 두 종류만 존재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육기어류가 육상 척추동물의 조상입니다. 즉 조기어류는 우리의 직계가 아니라 한 4 억 년 전에 갈라진 방계인 셈이지요. 결국 육상 척추동물은 초기의 척삭 동물로부터 척추동물로, 다시 유악어류로, 경골어류로, 그리고 육기어류 로 이어지는 척추동물의 한 갈래의 현재 진화 단계에 해당하는 동물인 셈입니다.
- 이들 조상어류에서 턱을 가진 어류, 유악어류들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턱이란 무얼까요? 또 어떤 진화적 근거를 가진 걸까요? 턱은 물고기들 의 호흡 기관인 아가미로부터 진화했습니다. 그래서 턱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아가미에 대해 조금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그림43>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가미가 있는 동물이 입으로 물을 들이마시면 이 물은 아래쪽 아가미를 따라 밖으로 흘러나갑니다. 이때 아가미의 얇은 표면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모세혈관과 만나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형식으로 호흡을 하는 거지요.
아가미는 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표면적을 최대한 넓히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입안으로 들어온 물이 아가미 밖으로 빠져나가는 과정이 매끄럽게 이루어지도록 구조도 만들어졌지요.
하지만 입을 벌린다고 물이 마냥 들어오진 않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는 호흡을 하려면 헤엄을 쳐야 했지요. 그러면 앞쪽의 물이 입안으로 들 어오게 되니까요. 그러나 물고기도 쉬고 싶을 때가 있는데 항상 헤엄치 는 건 아무래도 싫었나봅니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턱이지요. 아래턱이 생기면서 오므렸던 입을 벌리면 입안 공간이 넓어지면서 압력이 낮아지고 물이 들어오게 됩니다. 다시 아래턱을 닫으면 입 속 공간이 좁아지면서 그 압력으로 아가미를 통해 물이 빠져나갑니다. 그러다 이 턱 위에 돌 가 이빨이 되면서 먹이를 공격하고 삼키는 용도로도 바뀐 것이지요.
- 다양한 느낌을 모두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용체의 종류가 다양 해야 합니다. 이런 기계적 혹은 물리적 자극에 반응하는 수용체들 중 어 떤 수용체는 아주 작은 자극에도 반응하는가 하면 또 다른 수용체는 비 교적 큰 자극에만 반응하지요. 또 자극이 계속 되어도 처음에만 반응하는 수용체도 있고, 지속되는 자극에 계속 반응하는 수용체도 있습니다. 자극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도 반응하는 종류와 아주 좁은 범위 의 자극에만 반응하는 수용체도 있습니다. 메르켈 소체, 루피니 소체, 마이스너 소체, 라멜라 소체, 모낭 수용체, 자유 신경 말단 등 다양한 종 류의 수용체들이 각기 반응에 참가하는 거죠. 감각신경을 통해 전달 받 은 뇌가 이를 통합해서 어떤 상태인지를 판단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피부에서만 이런 감각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운동을 쉬다가 오랜만에 근력운동을 하면 온몸의 근육에서 비명을 지른다고들 이야기하지요. 실제로는 비명을 지르는 건 근육세포가 아니라 그곳 주변 에 포진한 감각세포의 수용체들입니다. 또 스트레칭을 할 때도 근육이 쭉 늘어나는 느낌, 당기는 느낌, 뭉쳤던 근육이 풀리는 느낌 등을 받기도 하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 이들 수용체들은 모두 유모세포입니다. 즉 세포 표면에 섬모들이 나 있는 거죠. 외부 자극에 의해 이들 섬모가 움직이면 그에 따라 주변 세포 막의 이온 채널이 열리고, 그곳으로 이온이 들락날락하면 그에 따라 세 포 내부에 있던 소포체가 세포막에 붙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경전달물 질을 아래쪽 신경세포와의 사이 공간(시냅스)로 내놓는 거죠. 즉, 이들은 모두 공통조상을 가지고 있는 친척들입니다. 섬모를 가진 유모세포가 일 부는 귀에서 청각을 담당하거나 균형감각을 맡게 되고, 피부에서는 피 부에 닿는 물리적 자극을 담당하게 된 것이지요.
물고기의 옆선은 이런 피부감각의 아주 오래된 버전입니다. 생선을 잘 살펴보면 몸통 중간에 아가미 부근에서 꼬리까지 옆으로 길게 점선 형태가 보이는데 이를 옆선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선이 있는 건 아니고 이 부근의 비늘이 옆과 달리 속으로 파여 있기 때문에 그리 보이는 것이 지요. 이 옆선 안으로 물이 들어가면서 그 안의 감각세포 중 일부가 가진 유모세포의 섬모를 자극합니다. 그 자극에 따라 섬모가 움직이면서 정보 를 전달하는 거죠. 이를 통해 물고기는 물살의 흐름과 방향 등을 파악합니다.
- 온도 변화에 대해 반응하는 세포들도 있지요. 이전보다 온도가 내려가거나 올라갈 때 이를 느끼는 감각기관인데 이들 또한 하나가 아닙 니다. 따뜻하거나 뜨거운 걸 느끼는 게 다르고, 시원하고 차가운 걸 느끼 는 게 다른 거죠. 먼저 세포막에 있는 TRV-3이라는 수용체는 33C가 되 면 이온채널이 열립니다. 이렇게 온도에 의해 열리는 이온 채널을 온도 의존성 이온채널이라고 하는데요, 이 채널이 열려 신호가 뇌로 가면 뇌는 자율신경을 통해 땀을 흘리게 하면서 체온을 낮추게 하죠. 하지만 온도가 더 높아지면 더운 정도가 아니라 뜨겁고 위험합니다. TRV-1은 42°C가 되면 열립니다. 그럼 우린 뜨겁다는 일종의 통증을 느끼죠. 이 수용체는 일종의 통각 수용체로 우리에게 아픔을 느끼게 합니다. 이 채널은 앞서 이야기한 캡사이신에 의해서도 열립니다. 그래서 매운 걸 먹으면 뜨 겁다는 느낌이 나고, 실제로 땀도 흐르는 것이지요. TRV-2라는 수용체 는 52°C 이상에서 열리는데 TRV-1보다 더 강한 통증 신호를 전달합니 다. 아주 위험한 온도라는 신호지요.
- 여름 저녁 해가 지고 바람이 불면 시원한 느낌이 들지요. 이를 감지하 는 건 CMR1이란 수용체인데 8~28사이에서 열립니다. 이 수용체는 또 멘톨에 대해서도 반응하지요. 그래서 박하향을 맡을 때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이고요. 하지만 이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는 ANKTM1이라는 수 용체가 반응합니다. 이때는 아프다는 느낌이 들지요. 얼음을 오래 물고 있거나, 추운 겨울 노출된 피부가 아프게 느껴질 때 이 수용체가 역할을 하는 거지요. 이 또한 통각수용체이기도 합니다.
이들 또한 물고기의 옆선에 있는 수온을 느끼는 감각세포들과 그 기 원이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 피부의 각종 감각세포의 기원 은 아주 먼 옛날 고생대 초기 바다에 살던 선조 물고기가 진화를 통해 만들어낸 감각세포인 것이죠.
- 맛과 쓴맛은 경계하기 위해 생겨났습니다. 신맛은 산acid의 맛이죠. 좀 더 정확히는 수소 이온의 맛입니다. 열매와 같은 식 물성 재료나 이미 죽은 사체들이 부패하면 유기산이 형성되기 시작합니 다. 흔히 우리가 쉬었다고 이야기하는 상황이죠. 이런 음식을 먹으면 장 내에서 난리가 납니다. 수소 이온에 의해 장내 산도(pH)가 바뀌면 기존 의 장내 환경에 적응해 있던 장내 세균들이 몰살당하고 영양분의 흡수 에 문제가 생깁니다. 설사를 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또한 부패 과 정에서 생긴 독성 물질이 장내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죠. 부패 과정 을 거치면서 늘어난 세균이나 곰팡이 중 일부도 체내에서 독성물질로 작 용합니다. 이를 걸러내기 위해 신맛을 파악하도록 진화한 것이죠
- 쓴맛도 위험 물질을 걸러내는 장치입니다. 쓴맛은 대개 알칼로이드의 맛인데 질소 원자를 가지는 화합물로 염기성을 띱니다. 이런 알칼로이드 중 일부는 식물이 동물에게 먹히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독성 물 질입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열매, 나뭇잎 혹은 구근이나 가지에 주로 분 포하고 있습니다. 이들 물질을 걸러내기 위한 장치가 쓴맛을 느끼는 것이 죠. 그래서 갓난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쓴맛과 신맛을 내는 음식을 먹으 면 뱉어냅니다. 흔히 허브라고 부르는 독특한 향을 내는 식물들도 사실 은 이런 알칼로이드의 일종을 만든 것이죠.
- 동물의 미각은 어떤 음식을 주로 섭취하느냐에 따라 종마다 다릅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 그리고 꿀 등을 주로 섭취하는 곤충에 따라 미각 수용 세포의 종류와 비율이 다른 것이죠. 육식동물의 경우 쯘 맛에 대한 민감도가 초식동물보다 높습니다. 식물은 독을 만드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드는, 독성은 없고 쓴맛만 나는 물질을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 문이죠. 식물을 주로 먹는 초식동물의 경우 쓴맛에 대한 민감도를 낮추지 않으면 먹이에 대한 선택지가 확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주로 육식을 하는 동물은 쓴맛의 민감도를 높이는 편이 독성물질로부터 안전을 유지하는 더 좋은 방편이 됩니다. 인간의 경우 초기에는 주된 먹 이가 열매와 꽃의 꿀이었으니 당연히 단맛이 발달했고, 육상동물 대부 분이 그러하듯이 짠맛 또한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육식을 겸하게 되면서 감칠맛 또한 발달해 있습니다. 그리고 신맛과 쓴맛 또한 열매와 애벌레 등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확보되었죠. 그리고 다른 육상 척 추동물과 마찬가지로 미각을 주로 확인하는 세포는 입 내부 그 중에서 도 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초식동물은 아니었기에 쓴맛에 대해 민감도가 높은 편 입니다. 갓난아이는 이를 확실히 보여주죠. 그러나 인간은 학습의 동물. 부모를 따라 조금씩 쓴맛에 길들여집니다. 익은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우리 몸에 부족한 바이타민이나 여타 다양한 영양분을 확보하기 위해선 신선한 풀을 먹어야 했고, 또 음식이 쉬이 상하는 걸 막기 위해 허브를 첨가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간의 미각은 어찌 보면 동물 세계에서 가 장 균형 있게 발달했는지도 모릅니다.
-  어느 날 세균 하나가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바로 산소를 이용해서 포도당을 분해한 거지요. 지금 우리가 하는 산소호흡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자 포도당 하나를 분해할 때 ATP가 34개씩 나오는 엄청난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집니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같은 일을 하는 데 월급 100만 원을 받던 사람이 갑자기 1,000만 원을 받게 된 겁니다. 그리고 고세균 중 하나가 이 세균을 집어 삼킵니다. 산소호흡을 하는 세 균은 고세균 몸 안에서 산소 호흡을 통해 ATP를 마구 생산하고 그 중 일부를 고세균에게 넘깁니다. 대신 고세균은 세균에게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뒤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산소호흡을 하는 세균에게도 산소가 위험한 물질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 신의 세포막을 직접 외부로 노출하지 않기 위해 고세균의 품 안으로 들 어가지요. 고세균은 자신의 세포막을 통해 산소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미토콘드리아에게 재빨리 전달하고 주변의 영양분을 열심히 흡수하지 요. 미토콘드리아는 이제 재료 구하는 일에는 일절 신경을 쓰지 않고 오 직 ATP를 만드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 로운 진화가 일어나지요. 미토콘드리아의 선조가 가지고 있던 유전자, 즉 DNA 중 많은 부분을 비교적 안전한 고세균에게 옮깁니다. 고세균은 자 신의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핵막을 만들고 그 안에 보관하게 되지요. 미토콘드리아 입장에서도 핵막으로 잘 보호된 곳에 자신의 유전자를 보 관하는 것이 더 마음이 놓였을 것이고요. 결국 그들은 그렇게 하나의 세 포와 세포 내 소기관이 되어 진핵생물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 포식과 피식이 생겨났다는 것도 진핵생물이 되면서 생긴 중요한 변화 입니다. 원핵생물들은 다른 생물을 잡아먹는 일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사자가 들소를 사냥해서 잡아 먹는 걸 생각해 보지요. 사냥하는 과정에서 사자는 이미 에너지를 많이 소비합니다. 그리고 먹은 고기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또 에너지를 소비합 니다. 그러고도 살아가는 건 소비한 에너지보다 고기를 통해 얻는 에너 지가 더 많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원핵생물의 경우는 다릅니다. 이들은 같은 양의 양분을 얻어도 우리보다 10분의 1밖에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 지요. 그러니 사냥을 하고, 그 걸 다시 소화하는 과정에서 드는 에너지가 먹이로부터 얻는 에너지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냥을 할 이유가 없는 거지요. 이들은 자연적으로 죽은 사체로부터 먹이를 구하거 나 생물의 분비물로부터 먹이를 얻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거죠.
진정한 의미의 먹고 먹히는 관계, 즉 피식과 포식은 진핵생물의 출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생태계가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바와 같이 생태계는 일종의 먹이 사슬 혹은 먹이 그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식물, 좀 더 정확하게는 독립영양 생물이 있고, 이들을 먹고 사는 초식동물이 있고, 이 초식동물들을 먹 고 사는 육식동물이 있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이들이 죽으면 분해하는 분해자가 있습니다. 이렇게 먹고 먹히는 관계가 생태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데 이는 약 21억 년 전, 진핵생물이 탄생하면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 처음 광합성을 시작한 생물 중 대표적인 것이 황세균입니다. 황세균 은 온천이나 화산 주변에 주로 서식합니다. 이들은 온천이나 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화수소를 이용해서 광합성을 하지요. 빛 에너지를 받아 황화수소를 분리합니다. 그 중 수소는 나중에 포도당을 합성할 때 이산 화탄소와 함께 재료로 이용되지요. 필요 없는 황은 그냥 주변에 버립니 다. 이렇게 버려진 황들로 온천 주변이나 화산 주변은 노랗게 변하지요. 하지만 바다는 넓고 물속 화산은 아주 띄엄띄엄 있습니다. 황화수소가 나오는 주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황세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경쟁 에서 밀려난 세균들은 다른 대책을 세워야 했지요. 이들 중 일부가 황화 수소 대신 물을 이용해서 광합성을 하는 방식으로 진화합니다.
- 황화수소와 물은 사실 분자 구조가 아주 비슷합니다. 황화수소는 황 원자(노란색)를 중심으로 수소 두 개가 붙어 있고 물 분자는 산소 원자(빨간색)를 중심으로 수소 두 개가 붙어 있지요. 그러니 황을 이용해서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아주 조금의 변이 만으로도 물을 이용해서 광합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왜 처음 광합성을 하는 이들은 흔하디흔한 물 대신 황화수소를 이용했을까요? 황화수 소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것이 물 분자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것보다 조금 더 쉽기 때문입니다. 진화에서는 아주 조금의 차이라도 대단히 중요 하지요. 황화수소를 이용하는 것이 물을 이용하는 것보다 유리하니 처 음에는 황화수소로 광합성을 하는 세균들이 더 경쟁력이 있었던 거지 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황화수소를 더 이상 확보할 수 없게 된 세균 들은 물을 이용해 광합성을 하게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5억 년에서 38억 년 정도 전의 일입니다.
황화수소를 이용할 때는 부산물이 황이었지만 물을 사용할 때는 산소가 됩니다. 세균으로서는 필요도 없고 또 위험하기까지 한 산소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지요. 광합성을 하면서 생긴 산소는 아주 빠르게 외부로 버려집니다.
바다에는 이들이 버린 산소가 녹아들고 세상이 바뀝니다. 바닷속 산 는 일단 다양한 양이온들과 만나 앙금이 되어 바다 밑바닥에 쌓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철이지요. 이전까지 철은 바닷물에 그저 녹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산소와 만나 산화철이 되면서 대량으로 쌓입니다.
- 다른 양이온들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면서 바닷물에는 산소와 만나도 앙금을 만들지 않는 나트륨이나 마그네슘 같은 것들의 비율이 높아졌지요. 지금 바닷물이 짠 이유가 바로 산소 때문인 거지요.
그렇게 바닷물의 양이온들 대부분과 결합해서 가라앉아도 생물들이 내뿜는 산소는 끊임없이 증가합니다. 바닷물에 더 이상 녹을 수 없을 만 큼이 되자 이제 산소는 대기 중으로 빠져나옵니다. 그때의 대기는 대부 분 암모니아, 메테인, 이산화탄소 등이었지요. 하지만 산소가 등장하자 상황이 변합니다. 암모니아는 산소와 만나 물과 질소 분자가 되고 메테인은 산소와 만나 물과 이산화탄소가 됩니다. 대기 중의 암모니아와 메테인은 이 과정에서 거의 사라지고 말지요. 사실 그 이전이라고 산소가 생 성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자외선이 바다에 내리쬐면 물 분자를 분리해 산소를 만들긴 하니까요. 하지만 그 양이 너무 조금이라 금방 메테인 이나 암모니아랑 만나 사라져버렸던 거죠. 하지만 이제 광합성을 하는 생물들이 마구 늘어나면서 내뿜는 산소의 양도 어마어마해지니 메테인 과 암모니아를 모두 없애버리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물속 생물 들이 광합성을 하면서 이산화탄소를 자꾸 흡수하자 대기 중의 이산화탄 소 농도도 계속 줄어듭니다. 결국 지금처럼 질소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산소가 3분의 1에서 조금 모자라는 비율을 차지하는 모습으로 대기의 구성이 바뀐 것이죠.
- 하지만 당시 생물들에게 산소는 위험한 독성 물질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흔히들 활성산소가 노화를 촉진한다고 할 때 그 산소입니다. 산소는 워낙 반응성이 좋은 기체입니다. 그래서 산소가 주변의 다른 물질들과 만나면 높은 확률로 화학 반응을 합니다. 공기중에 노출된 철이 녹스는 것도 반은 산소가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죠. 이런 산소가 세포 내에 있으면 주변의 다른 세포 내 소기관이나 생체 분자 들과 결합해서 부숴 버립니다. 그러니 당시 생물들로서도 산소는 한시 바삐 처리해야 할 물질이었지요.
산소를 없애기 위해서 생물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데 그 중 하 나가 광합성 과정을 담당하는 회로를 반대로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광합 성에서 산소가 발생하는 것은 캘빈회로란 곳에서의 일입니다. 이곳에서 이산화탄소와 수소로 포도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이 산소였죠. 이산화탄소 세 분자와 물 다섯 분자 그리고 수소 원자 6개가 모여 한 사이클을 돌면 3탄당 인산이라는 물질이 나오고 이 3탄당 인산 둘이 합해서 포도당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산소 분자가 배출됩니다. 그러니 이 회로를 반대로 돌리면 산소를 다시 흡수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시트르산 회로는 미토콘드리아에 존재 하는데 이 회로가 하는 일이 바로 3탄당에 산소를 우겨넣어 이산화탄소 와 물을 만드는 일입니다. 더구나 이 회로를 구성하는 각종 물질들은 캘 빈회로의 그것들과 거의 동일하고 물질들의 이동 방향만 반대로 이루어지지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긴 물질들로 미토콘드리아는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엄청 효율적으로 ATP를 만들어냅니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 산 소를 처리하는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산소도 처리하고 더불어 ATP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이를 쓸 수밖에요. 미토콘 드리아의 선조 세균은 이렇게 산소 호흡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 루시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많습니다만 고인류학계에서는 인류 전 체의 공통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루시가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비틀즈 의 노래 <루시 인 더 스카이 Lucy in the Sky>에서 땄던 이름이지요. 고인류 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들은 최소한 한두 번은 들어보았을 터입니다. 그 런데 혹시 루카LUCA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루카라는 이름은 모든 생물의 공통조상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입 니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의 공통조상이란 뜻이지요. 그런데 이름 맨 앞에 last가 들어가는 이유는 뭘까요? 이 생물은 최후 의 공통조상이라는 뜻입니다. 즉 최초의 생명에서부터 이어지는 여러 갈 래가 있었을 터인데 후손을 남기지 못한 이들은 대가 다 끊어졌을 터입 니다. 후손이 현재 살아남은 모든 생물의 대를 쭉 쫓아가다 보면 만나 게 되는 첫 생물을 일컫는 말입니다.
- 루카라는 개념은 찰스 다윈으로부터 시작하는데, 1859년에 나온 책 『 종의 기원』에서 보편적 공통조상 이론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 마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유기적인 존재가 지나간 처음 살았던 원시적인 형태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생물의 힘에 대한 위대함엔 몇 개 혹은 하나의 존재가 숨 쉬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그때 다윈은 루카가 그렇게나 오래된 존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겠지만 말이지요.
그럼 루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현존하는 모든 생명이 가진 공통점을 살펴보면 루카의 특징을 알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합 니다. 어떤 모습이 모든 생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면 그건 자연히 루카로부터 물려받은 거라고 볼 수 있다는 거지요. 결국 루카의 특징은 어찌 보면 현존하는 지구의 생명으로부터 뽑아낸 귀납적 정의로서의 '생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 일단 오늘날 현존하는 모든 생물의 유전 암호는 DNA를 기반으로 합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지요. DNA는 인산과 염기가 리보스라는 5탄당을 중심으로 결합한 구조입니다. 그리고 모든 생물의 DNA는 동일한 네 종류의 염기,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 아데닌(A)을 가지고 있습 니다. 또한 모든 생물의 DNA는 이중나선 구조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도 동일하지요. 단지 생물마다 다른 것은 구아닌, 티민, 시토신, 아데닌의 순서와 비율, 그리고 DNA 사슬의 길이일 뿐입니다. 그리고 DNA를합성해서 이중나선구조를 만들기 위해 DNA 중합효소를 쓴다는 것도 모두 같습니다.
생물에서 DNA는 유전암호이기도 하지만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이기도 합니다.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먼저 DNA의 암호는 RNA로 복제되는데 이를 전사transcription라고 합니다. 이 RNA는 리보솜이란 세포 내소 기관에 얹히고 여기에 암호에 맞는 아미노산을 끌고 와서 단백질을 만들 게 되지요. 이 과정 또한 모든 생물에서 동일하게 이루어집니다.
- 또 모든 생물은 에너지원으로 포도당을 이용합니다. 물론 포도당 말고 다른 영양분을 이용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모두 포도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기본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고, 포도당이 없는 경우 다른 물질도 사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이런 에너지원에서 생체 내 활동에 필요한 에 너지 형태인 ATP를 만들어내는 것도 같습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면 ATP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지질로 된 막의 내부와 외부의 전위차를 이용하는 것 또한 모든 생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원핵생물들은 모두 세포막을 통해 ATP를 만들고 진핵생물들은 미토콘드리아의 막을 통해 ATP를 확보합니다.
- 모든 생명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포 하나가 개체인 단세포생물도, 세포 여러 개가 모여 하나의 개체를 이루 는 다세포생물도 그 기본이 세포인 것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 포를 생명의 기본 단위라고 하지요. 또 모든 세포는 이중의 인지질로 된 세포막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류에 따라 세포막에 분포하는 물질이 조금 씩 다르긴 하지만 인지질로 된 이중막이 근간을 이루는 것 또한 예외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물의 세포막에는 단백질로 구성된 나트륨 칼륨펌프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세포들은 내부를 나트륨 농도가 낮고 칼륨 농도가 높도록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포가 늘어나는 것은 세포 분열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단세포 생물은 이를 통해 번식을 하고, 다세포생물은 이를 통해 생장을 하지만 근본은 같은 거지요. 세포 분열 과정 또한 기본적으로는 같습니다. 우선 DNA를 복제해서 두 배로 늘리고 이 DNA가 먼저 두 개로 분리됩니다. 이후 DNA를 감싼 세포질이 둘로 나눠지는 것이지요.
- 연구에 따르면 인류는 다른 동물에 비해 인류는 유전적 다양 성이 대단히 작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간단한 예로 아프리카 열대우림에 사는 한 3km 정도 떨어진 두 침팬지 집단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이 인류 전체의 유전적 다양성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 인간의 모습은 침팬지보다 훨씬 다양하지요. 피부색도 다르고 얼굴 형태도 다르고 몸매도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동물 전체를 통틀어 유전적 다양성이 가장 작은 존재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인류는 이렇게 좁은 유전자풀을 가지게 된 걸까요? 인간 이외에도 유전자풀이 대단히 협소한 생물들이 몇 있는데요. 치타와 고래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의 유전자풀이 협소한 이유는 한 때 멸종 에 이를 만큼 개체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유전자를 가졌 던 많은 개체들이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남은 몇 안 되는 개 체들로부터 다시 자손들이 늘어나다 보니 유전자풀이 협소해졌다는 거 지요. 물론 이런 경우도 시간이 지나면 유전자풀은 다시 넓어지지만 아 직 그 정도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인류도 한 때 멸종의 위기를 겪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과 학자들은 약 10만 년 전 어떤 이유에선지 갑자기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 원인이라고 판단합니다. 대략 5천 명에서 1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 다는 거지요. 그 원인에 대해선 다양한 가설이 존재합니다. 우선 기원전 13만 5,000년에서 9만 년 사이에 아프리카 대륙이 건조해지면서 심한 가뭄에 시달렸다는 겁니다. 또 하나는 수마트라 섬의 토바 화산 분출이 원 인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슈퍼화산이었던 토바 화산 폭발로 지구 대기 전체에 화산재가 퍼지면서 햇빛을 차단했고 그에 따라 기후가 갑자기 변 하면서 당시 살던 인류의 조상 대부분이 죽고 일부만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는 거지요. 혹은 급속히 번창한 감염병 때문일 수도 있다는 주장 도 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인류는 10만 년 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이죠. 그 5천 명에서 1만 명, 지금으로 치면 서울의 대규모 아파트 한 단지 정도의 인구로부터 한국인 미국인, 나이지리아인, 러시아인, 남 미 원주민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인종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 인종을 나누는 걸 피부색으로 한다는 건 더 웃긴 일입니다. 
- 그렇다면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어떤 관계인 걸까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우리에게 있다는 건 이 둘이 짝짓기가 가능했고 그 자손이 생식능력이 있다는 걸 뜻합니다. 즉, 호모 사피엔스 와 호모 네안데르탈인은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이라는 뜻이지요. 데니소 바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과 우리 는 마치 개와 회색늑대, 집고양이와 들고양이 정도의 관계라는 것이죠.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과의 차이가 이 정도인데, 같은 호모 사피 엔스끼리 또 다시 인종을 나누는 것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게다가 호 모 속의 유일한 종인 우리끼리 서로 차별한다는 것은, 민망하고도 부끄 러운 일일 것입니다.
- 다른 의미에서 우리 인간은 승자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간은 처음 직립보행을 했을 때 조개를 캐고, 시체를 먹는 청소부적인 역할이 었지만, 생태계의 최종포식자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마저도 승리라 고 볼 순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자연을 바라 보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오해를 하는 것이죠. 자연에서는 청소부건, 포식자이건 피식자이건 어느 종이 다른 종을 지배하지 않습니다. 그저 생태계의 일부를 이룰 뿐이지요. 따라서 포식자가 되었다고 신분이 상승 하는 건 아닙니다. 한번 더 말씀드리자면, 지금 지구의 모든 생물은 최선을 다해 각자의 자리에서 진화했고 인간은 그저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 인간의 진화만이 아주 특별하다고 볼 이유가 진화론에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다른 생물과 차원이 다른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으면 다른 방식, 다른 접근이 좋겠습니다. 가령 우 리는 우리가 지구상에 사는 다른 모든 생명과 별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초의 종입니다. 여기에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겠지요. 또 우리 는 '인간 중심주의'가 객관적 현실을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오해를 제공 한다는 것 또한 깨닫고 있습니다. 이 또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다르다고 같은 인간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데에 (모든 이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합의를 이 루어 나가고 있는 최초의 생물이기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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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브레인 3.0

과학 2023. 1. 9. 20:27

- 사실 인간의 뇌는 인간보다 몸집이 더 큰 코뿔소나 얼룩말보다도 크기가 더 큽니다. 하지만 만약 뇌의 절대 적인 크기가 지능을 결정한다면 인간보다 뇌가 더 큰 코 끼리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시 다시피 전혀 그렇지 않죠. 그런가 하면 뇌가 신체를 차지 하는 비중이 지능을 결정한다면 참새나 개미는 인간보다 4배에서 6배 더 똑똑해야 말이 됩니다. 또, 인간의 뇌가 다른 동물보다 주름이 많이 져서 더 똑똑한 것이라면 인간의 뇌보다 주름이 훨씬 더 많은 돌고래가 화성에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있어야겠죠.
그렇다면 대체 인간 뇌의 어떤 면이 이런 지능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걸까요? 우선 같은 포유류 내에서 비 교해 본다면 인간의 뇌는 설치류나 토끼류에 비해 신경 교세포의 비율이 훨씬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신경교세포, 그중에서도 성상교세포 astrocyte는 학습과정이나 인지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 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신경세포 대비 신경 교세포의 수가 많은 것이 지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이라는 설명이 타당해 보입니다.
- 그런데 같은 유인원 내에서 비교하면 이런 특성은 조금 달라집니다. 앞서 소개해 드렸던 브라질의 여성 뇌 과학자 수자나 허큘라노하우젤 교수를 기억하시죠? 네, 바로 인간 뇌에 있는 신경세포와 신경교세포의 수를 세 는 방법을 알아낸 분입니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 의 대뇌에는 약 163억 개의 신경세포와 608억 개의 신 경교세포가 있고 소뇌에는 690억 개의 신경세포와 160 억 개의 신경교세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보다 뇌의 크기나 질량이 훨씬 작은 다른 유인원의 경우에도 대뇌와 소뇌에 있는 신경세포와 신경교세포의 비율을 계 산해 보면 인간과 거의 같은 값을 가진다고 합니다.
- 이는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뇌의 구조는 변하지 않고 단지 크기만 커졌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인류학자들은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해 오는 과정에서 뇌가 크게 발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불의 발견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이 불을 이용해서 조리된 음 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소화하는 데 에너지를 덜 쓰게 되 었기 때문에 남는 에너지를 뇌에 쓸 수 있게 됐고, 그래서 뇌가 더 빠르게 발달할 수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소나 코끼리와 같은 초식동물들은 하루 종일 무언가를 먹고 소화시키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죠.
- 인간의 뇌는 효율을 중요시하며 진화해 왔지만 동시에 생존에 필수적인 기능에 있어서는 그 어떤 동물이 나 기계보다도 뛰어난 능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다른 사 람의 얼굴이나 표정을 인식하는 능력 같은 것이 대표적 입니다. 인간은 사자나 곰과 같은 동물보다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하기 때문에 이들에 맞서 혹독한 야생에서 생존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따라서 사회성과 관련된 뇌의 기능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겠죠.
사람은 미로에서 길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도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보여줍니다. 어두 운 숲 속에서 호랑이나 늑대에게 쫓길 때 반드시 필요 한 능력이었겠죠. 이런 인간의 뛰어난 길 찾기 능력은 인 공지능을 개발하는 과정에 적용되기도 했는데요. 2018 년, 알파고AlphaGo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구글 딥마인드 DeepMind 연구팀은 인간의 길 찾기 전략을 모방한 인공지 능 에이전트(일종의 컴퓨터상에서 동작하는 로봇)를 개발했 습니다. 연구팀은 기존의 인공지능 구조에 인간 뇌의 내후각피질에 있는, 격자세포grid cell로 불리는 공간 탐색 세포의 작동 원리를 반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기존의 에이전트에 비해 훨씬 뛰어난 길 찾기 능력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길을 찾을 때 사람과 비슷한 전략을 사용해 서 지름길을 찾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 뇌과학자들은 신경교세포에 대해서 그동안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신경교세포는 '활동전위 action potential'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연구자들의 관심은 아주 활발하게 활동전위를 만들어 내는 신경세포에 쏠릴 수밖 에 없었죠.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교과서에는 신경교 세포가 신경세포를 고정시키고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 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인간의 뇌는 유한한 양의 에너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신경세포를 단지 고정만 시키려고 한다면 굳이 살아있는 세포를 이용해서 고정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살아있는 세포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말 입니다. 그토록 효율적인 컴퓨터로 진화해 온 인간의 뇌가 이 처럼 비효율적으로 작동할 리가 없지 않을까요? 물론 과거에 도 이런 의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뇌과학자들에 게는 활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신경교세포보다는 스스로 활동전위를 발생시키는 신경세포가 더 중요한 연구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많아지고 뇌과학 연구를 위한 새로운 방법들이 개발되면서 신경교세포의 역할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신경교세포는 신경세포를 지지하거나 영양분을 공급하는 단순한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에서 신호 전달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보조 하거나 새로운 시냅스 생성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 뇌과학 분야에서 신경교세포는 더 이상 무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처럼 아직도 뇌과학 분야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수없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 그런데 평상시보다 우리 뇌가 극도로 활성화되는 경우가 딱 2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뇌전증epilepsy 이라는 뇌질 환에 걸린 경우입니다. 과거에는 '간질'이라고 불렀던 질환인 데요. 이 병의 가장 전형적인 증상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 기 발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발작을 일으키게 되면 많은 경 우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몸과 사지를 비틀거나 경련을 일으킵니다.
뇌전증 환자들 중에는 발작을 일으키는 특정한 뇌 부위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있어 그 부위를 찾아 수술로 제거하여 치료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신경외과에서는 이 부위를 찾기 위해서 두개골을 절개하고 뇌에 전극을 삽입하는데요. 뇌 에 전극이 삽입된 상태에서 환자가 발작을 일으킬 때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아주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발작 때 측정한 뇌파를 분석해 보면 놀랍게도 뇌의 작은 부위에서 평상시보다 몇 배나 더 강한 신경전류가 발생을 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신경세포가 미쳐 날뛰고 있는 겁니 다. 그런데 이런 신경세포의 '주'는 시냅스와 신경섬유 다발 을 타고 이웃하는 신경세포들로 빠르게 퍼져 나갑니다. 잔잔 한 호수 한 가운데에 커다란 돌멩이를 하나 던지면 물결이 전 체 호수로 퍼져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러한 신경세포의 과도한 흥분이 전체 뇌로 퍼지면 정상적인 뇌기능과 신체기능이 마비되고 발작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도 우리 뇌가 극도로 활성화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최근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죽음을 맞기 직전 20~30초의 시간 동안 뇌 전체영역에서 고차 인지기능과 관련된 뇌 활동이 폭발적으로 관찰된다고 합니다.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난 소위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생동안 보고 배우고 느 꼈던 모든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고 표현하는 경우 가 많습니다.
어릴 적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기억들은 우리 대뇌의 다양한 부위에 흩어져서 저장이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기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특정한 부위가 존재한다면 그 부위가 손상될 경우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요. 대뇌 전역 에 흩어져 저장돼 있는 모든 기억들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는 것은 우리 뇌의 모든 부분에서 동시다발적인 활동이 일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013년 미시간대학교의 지모 보르지긴 Jimo Borjigin 교 수 연구팀이 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 결과는 매우 흥미롭 습니다. 다소 잔인해 보이기는 하지만, 연구팀은 뇌파를 측정 하면서 쥐를 희생시키는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인위적으로 쥐 의 심장을 멈추게 한 뒤 뇌파를 관찰해 봤더니 뇌파가 완전히 사라져서 뇌사상태에 빠지기 20~30초 전 무렵에 쥐가 깨어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감마파뇌파에서 30Hz에서 70Hz 주파수 성분)가 관찰됐습니다.
- 우리 귀는 700Hz의 주파수로 진동하는 소리와 710Hz의 주파수로 진동하는 소리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헤드폰을 쓴 상태에서 오른쪽 귀 에는 700Hz, 왼쪽 귀에는 710Hz의 진동음을 들려주면 신기 하게도 머릿속에 두 주파수의 차이에 해당하는 10Hz의 낮은 주파수를 가진 진동음이 들립니다. 이 소리를 바이노럴 비트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시면 바이노럴 비트음원을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꼭 양쪽 귀에 스테레오 헤드폰을 착용하고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바이노럴 비트라는 소리는 뇌 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입니다. 우리 뇌에서 소리를 인식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보통 청각 피질auditory cortex이라고 알려져 있는 일차청각영역으로 소리 신호가 전달되기 전에 뇌간이라는 부위를 거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생물 시간에 배우셨을 텐데요. 뇌간은 뇌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중간뇌, 다리뇌, 숨뇌로 구성 돼 있습니다. 그리고 호흡이나 심장박동과 같이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신체 활동을 제어하는 역 할을 합니다. 양쪽 귀에서 들어온 서로 다른 진동수의 소리가 이 곳에서 합쳐지면서 두 주파수의 차이에 해당하는 새로운 소리가 만들어지는 거죠.
-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특정한 주파수의 바이노럴 비트를 들으면 마음이 안정되거나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직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는 않아서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기는 합니다만 아마도 뇌간이 우리의 자율신경계를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바이노럴 비트에 의해 뇌간의 기능이 조절돼서 우리 신체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예를 들어 만성 통증이라는 질환이 있습니다. 몸의 특정한 부분이 이유 없이 계속해서 아픈 건데요. 실제로 그 부위에 이상이 있 는 게 아닙니다. 그 부위의 감각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과도하 게 활동을 하면 실제로 아프지 않아야 하는데 통증을 느끼는 겁니다. 그렇다면 영구자석을 이용해서 만성 통증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네, 영구자석을 이상이 있는 뇌 영역 위에 올려 두기 만 하면 그 영역의 활동성이 떨어져서 통증의 치료가 가능합 니다. 비슷한 원리로 뇌졸중, 우울증, 편두통, 뇌전증과 같은 다양한 뇌질환의 치료에 쓸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으신 가요? 아직까지 원리는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자기장이 신경세포에 있는 이온 채널의 활동성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실험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 약인공지능과는 대조적으로 인공지능 스스로가 신경망 구조를 설계해서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자율적으 로 학습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강인공지능 strong Al'이라 고 부릅니다. 하나의 인공지능 구조로 다양한 문제를 해 결하기 때문에 '범용 인공지능'이라고도 부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강인공지능은 "알파고가 바둑의 고수가 된 뒤 갑자기 체스를 두고 싶어져서 스스로 체스를 학습 할 수 있는 신경망 구조를 설계하고 인터넷을 뒤져 체스 의 기보를 학습한 다음 체스의 고수가 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딥 드림에 사용된 기술은 '스타일 트랜스퍼Style
Transfer'라고 불리는 최신 인공지능 기술입니다. 고흐의 그 림을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에 집어넣어 학습을 시 키면 그 과정에서 고흐의 화풍에 해당하는 정보가 인공 신경망의 숨겨진 층hidden layer 어딘가에 따로 저장되는데 요. 그 정보를 가져오면 어떤 사진이든 고흐가 그린 그림처럼 바꿔줄 수가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딥 드림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넥스트 렘브란트 The Next Rembrandt'라 는 이름의 인공지능을 선보였는데요. 이름에서 알 수 있 듯이 사진을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처럼 바꿔주는 인공지 능입니다. 이제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예술 분 야에까지 인공지능이 도전장을 던진 거죠.
- '알파고 제로'는 강화학습이 인공지능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강화학습은 반복적인 시행착오를 할 때 그 결과가 좋은지 혹은 나쁜지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문제라면 어디든지 적용이 가능합니다. 이처 럼 '강화학습'이라는 무기를 갖춘 인공지능은 앞으로도 인간 의 직관력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했던 다양한 문제들을 자신만 의 '창의적인' 직관력으로 해결해 낼 것입니다. 앞으로 인공지 능은 새로운 소재의 개발이나, 난류에 강인한 비행체의 설계, 새로운 단백질 구조의 제작과 같은 분야에서 빛을 발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 그런데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려면 결국은 하나의 인공지능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이 개발돼야 합니다. 제가 강연에서 여러 번 언급한 IBM의 '왓슨'은 퀴즈쇼뿐만 아니라 의학, 법률, 금융, 심지어는 작곡 분야에까지 진출했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왓슨이 범용 인공지능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왓슨은 엄연히 약인공지능입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퀴즈쇼에 출연한 왓슨은 의학 분야에 적용되는 왓슨, 교 육 분야에 적용되는 왓슨과는 다릅니다. 기본적인 플랫폼은 공유할지 몰라도 입력되고 출력되는 데이터의 양식과 성격에 맞춰 각각 다르게 설계된 인공지능들입니다. 그래도 왓슨의 경우에서처럼 하나의 플랫폼을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젠가는 범용 인공지능이 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 아마존 같은 인터넷 쇼핑 플랫폼에서는 상품 목록의 맨 위나 오른쪽 위치에 상품 광고 배너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 이죠. 그런데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화가 나거나 감정 이 격해진 상태에서는 더 값비싼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하 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쇼핑을 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 뇌의 보상중추를 자극하여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도파민의 분비를 증가시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스마트폰의 사용 패턴 등으로부터 스마트폰 사 용자의 감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면 사용자가 화가 난 상태 일 때는 비싼 제품을 광고 배너에 띄우고, 차분하고 이성적인 상태일 때는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배너에 띄운다면 매출상승에 도움이 되겠죠.
이런 기술이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이 기술을 통해 아마존 매출의 1%만 상승한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액 수의 돈을 더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마존의 연 매 출액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우리 돈으로 무려 400조원 입니다. 여기의 1%면 4조 원이죠.
앱에 스크롤 패턴을 인식하는 기능 하나를 넣어서 매년 4조 원을 더 벌어들일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죠. 
- PTSD라는 질환은 끔찍한 사고를 당한 뒤에 일상생활 중에도 그 사고의 기억이 계속해서 떠올라서 정상 적인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심각한 정신질환의 일종입니다. 퇴역한 병사들은 전장에서 끔찍한 장면을 많 이 목격했기 때문에 PTSD에 많이 걸립니다.
그런데 장기기억은 뇌의 전 부위에 퍼져서 저장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끔찍한 기억이 저장되는 부위가 다릅니다. 그래서 브레인 칩을 이식하기 위해서는 일단 문제가 되는 기억이 뇌의 어느 부위에 저장이 돼 있는지부터 알아내야 합니다. 보통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으로 대표되는 뇌기능 영상 기술을 이용하면 잊고 싶은 기억 이 저장된 부위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PTSD에 걸린 병사에게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저 장된 부위를 알아내고 나면, 그 부위에 브레인 칩을 삽입 하는 수술을 합니다. 수술 부위가 아물고 난 뒤에 일상생 활을 하다가 문득 잊고 싶은 기억이 떠오르면요. 주머니 에 리모컨 같은 것을 하나 들고 다니다가 리모컨에 있는 버튼을 눌러줍니다. 그러면 브레인 칩에 전류가 흐르면서 칩 아랫부분에 있는 신경세포의 활성도를 낮춰버립니다.
그러면 기억이 잠시 동안 사라지게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PTSD 환자의 기억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2020년대 초에 최초로 이 브레인 칩을 이식받은 퇴역 병사가 탄생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DARPA라고 하는 기관은 기 본적으로 군사기술을 연구하는 기관입니다. 인명 살상용 드론이나 첨단 유도무기 같은 걸 개발하는 곳이죠. 그렇 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DARPA의 연구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 SF영화 같은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우리 뇌에는 편도체 amygdala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이 부위는 두려움 을 느끼게 해 주는 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만약 DARPA가 몰래 편도체에 브레인 칩을 이식한 뒤, 전쟁 터에 나가기 전 본부에서 브레인 칩의 스위치 버튼을 누 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네, 두려움이 없는 병사를 만들 수 있겠죠.
이런 부작용의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능 력 강화를 위한 브레인 칩이나 수학능력 강화를 위한 브 레인 칩 같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 며, 실제로 동물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실험을 한 연구소 도 있습니다.
- 우리 뇌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극이 가능하지만 그중에서도 뇌의 깊은 영역을 정밀하게 자극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집 속초음파'라고 하는 기술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초음파는 우 리가 들을 수 있는 최고 주파수인 2만 Hz보다 높은 주파수를 가진 음파인데요. 아시다시피 우리 신체 내부 장기를 들여다 보거나 태아를 관찰하는 데에도 많이 쓰이고 있죠.
이 초음파를 여러 위치에서 동시에 만들어 내면 아주 좁은 부위에 초음파를 집중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머리 밖 에서 발생한 초음파를 잘 조절해서 손이나 발의 감각을 느끼 는 체성감각 부위로 집중시키면 손이나 발에 무언가가 닿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장치를 아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가상현실에서 아바타가 느끼는 감각을 실제로 우리가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술들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감각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손가락의 감각을 담당하는 뇌 영역을 알고 있고 그 부위에 집속 초음파를 전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손 가락을 지긋하게 누르는 느낌, 뜨겁거나 차가운 물체를 만질 때의 느낌, 뾰족한 것으로 찌르는 느낌, 거친 면을 손가락으로 문지를 때의 느낌과 같이 서로 다른 감각을 구분해서 느끼게 할 수는 없다는 거죠. 그리고 사람마다 감각을 담당하는 뇌 부 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개인별로 아주 정밀한 뇌 지도를 만든 뒤에야 이 기술이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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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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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테크

과학 2023. 1. 6. 16:46

- 남성들은 운동용으로 자전거를 탔지만 여성들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이동의 자유를 누리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이용해 혼자 서도 멀리 갈 수 있었고, 가보지 못했던 곳도 갈 수 있게 되었다. 따라 서 자전거는 여성들이 독립적인 심성을 키우는 데 기여한 이동 수단 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자전거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는 것은 여성이 사회에 나가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데도 그 힘이 꽤나 중요 한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자전거가 이런 모든 변 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여성해방운동과 같은 일련의 물결들 이 이미 그 이전부터 넘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전거가 기존의 사회운동을 강화하고 확산시켜 더 많은 이들을 움직이게 하 는 데 도움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자전거는 19세기 후반부터 굉장한 바람을 일으켰던 여성 참정권 운동, 즉 여성의 투표권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에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참정권 운동가들을 찍은 사진을 보면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여성이 자전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서 멀리 떨어 져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집회를 할 때 자전거를 타고 참여하 기도 했으며, 경찰이 쫓아오면 자전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도 했다. 심지어는 참정권 운동을 반대하는 남성 정치인들의 행렬을 자전거로 가로막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자전거는 자신 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인 정치적 기술이었다.
- 지금은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일상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시대다. 자전거는 현대 여성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바퀴가 크며 타기 힘들고 위험한 페니파딩이라는 자전거 대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안전 자전 거를 만들어내는 데는 여성의 역할이 컸다. 또 그런 안전 자전거가 여 성의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게 인간 과 기술은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내는 상호 관계 속에서 새롭게 거듭 난다. 어떤 기술을 손에 쥐고 또 그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나 가느냐에 따라 기술의 미래는 물론 우리의 미래 또한 바뀔 수 있을 것 이다.

- 인쇄를 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종이다. 종이는 중국의 채륜이 기원후 105년에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꾸지뽕나무와 마, 옷감 넝마 등을 사용하여 종이를 만들었다. 서양에는 오랫동안 종이 가 없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등에서는 식물의 껍질인 파 피루스에 글자를 적었고, 중세 유럽에서는 소가죽으로 만든 소피지 (vellum)와 양가죽으로 만든 양피지 (parchment)가 쓰였다. 파피루스는 쉽게 변질되었지만 소피지나 양피지는 제본을 잘하면 꽤 오랫동안 내용을 보존할 수 있었다.
중국의 종이는 아랍을 거쳐 12세기에 스페인에 전래되었다. 그리 하여 14세기에는 독일 뉘른베르크에 제지 공장이 세워졌고, 15세기 에는 목판을 통해 게임용 카드와 성화가 종이에 인쇄되었다. 이런 배 경이 금속 활판 인쇄술의 발전은 물론 책의 대량 인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왜 중국에서는 종이가 발명되어 널리 사용되었는데 유럽에서는 그러지 못했을까? 한 가지 설명은, 중국에서는 종이 대신 쓸 수 있는 비단이 비쌌던 반면, 유럽에서는 종이의 원료가 귀했고 양피지가 상 대적으로 값이 쌌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물론 이는 상대적인 가격을 말하는 것인데, 종이를 일찍 발명한 중국에서도 종이는 비쌌 기 때문에 관청에서 이면지 사용을 권장했고, 중세 시대의 유럽에서 양피지로 된 책 한 권은 지금의 돈으로 수백만 원을 호가했다.
- 그렇다 하더라도 인쇄술 혁명이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 았다고 한다면 이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역사가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Elizabeth Eisenstein)은 이에 대해 대 안적인 설명을 내놓았다. 그녀는 인쇄술 혁명이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을 낳은 것은 아니지만, 이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르네 상스가 인쇄술 혁명 이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인쇄 술을 통해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글이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었다 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다른 시기의 부흥 운동은 등장했다가 큰 영향 력 없이 소멸하였지만, 14세기 르네상스는 달랐다. 인쇄술이 이탈리 아에 국한되었던 인문주의 부흥 운동을 전 유럽적인 현상으로 만들 었기 때문이다. 즉 인쇄술이 (하나의)'a renaissance'를 우리가 아는 (바 로그) The Renaissance'로 바꾼 것이다.
인쇄술은 종교개혁에도 영향을 미쳤다. 로마 가톨릭은 성경의 출 판을 통제하였으나, 가톨릭에 반기를 든 개신교는 인쇄술의 중요성 을 일찍이 간파했다. 개신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림 으로 성경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특히 개신교는 교회의 권력과 재산을 가지고 호의호식하는 로마 교황청의 신부들과 예수의 뜻을 따르 는 검소한 목회자를 비교하는 그림을 인쇄해서 사람들에게 배포했 고, 이런 인쇄물들이 평민들을 개신교로 개종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 다. 또 개신교는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성경을 찍어냈는데, 독일어 성경의 인쇄 부수가 50만 부에 달했다. 이렇게 출판된 성경이 식자층 에 퍼져서 로마 교황청의 권위를 현저히 약화시키고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학혁명의 경우에는 인쇄술의 영향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 났다. 과학자들은 고전을 필사하고 고전에 포함된 복잡한 천문도 같 은 그림을 따라서 그리는 데 상당한 시간을 써야 했는데, 인쇄술이 보급되고 인쇄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천문학 책에 등장하는 복잡 한 그림이나 생물학, 지리학 분야의 그림들을 그릴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인쇄된 그림이나 표의 축적이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어 과학 자들이 연구에 투자할 시간이 많아졌다. 과학자들은 책을 필사하고 그림을 그릴 시간에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게 되었고, 특히 고전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개진할 시간적 여유를 갖 게 되었다.

- 조지 이스트먼이 코닥 카메라를 발명한 것은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일까? 카메라의 발전 과정을 돌아보면 "필요는 발명의  머니"가 아니라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라는 말이 더 적절하게 들어 맞는다. 발명을 하고나니 필요가 생겼다. 즉 코닥 카메라를 만들고 나니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서 카메라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으니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과 인간,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살펴볼 때, 사람이 어 떤 기술을 필요로 하기에 자연스럽게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발명품이 탄생하자 비로소 필요가 생 기는 경우도 기술의 역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특징적인 현상이다. 에 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했을 때 그는 이것의 용도 열 가지의 목록을 작 성했다. 이중에는 임종을 거두는 사람의 유언을 녹음하는 것, 시력을 잃은 사람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것 등이 있었지만, 음악을 듣는 것은 없었다. 그는 몇 년 뒤에 자신의 축음기가 상업적으로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그런 상태에서도 그는 축음기 를 돈을 넣고 음악을 듣는 '주크박스'에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다. 하 지만 결과는 에디슨의 예상을 벗어났다. 축음기는 음악을 듣는 데 가 장 널리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가 없을 때도 공중전화나 삐삐를 사용해 큰 불 편 없이 살았고, 자동차가 없을 때도 마차나 기타 교통수단을 이용 해 도시에서의 삶을 향유했다. 휴대전화가 나오니 매일 전화를 가지 고 다닐 필요가 생긴 것이고, 자동차가 나오니 삶의 속도가 빨라진 것 이다. 필요가 분명해서 이루어지는 발명만큼이나 발명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 필요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다." 새로 운 기술을 세상에 내놓고자 애쓰는 발명가들이 꼭 마음에 새겨야 할 격언이다.

- 물론 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당연히 필요하고, 그 전문가들이 잘할 수 있는 영역 또한 수없이 많다. 그렇지만 이렇게 혁신적인 기술의 경 우에는 전문가들이 불리할 때도 있으며, 오히려 아마추어의 관점이 유리할 때도 있다. 무선전신을 발명한 굴리엘모 마르코니 (Guglielmo Marconi)도 당시 전자기파를 이용한 통신 기술을 발명하려고 했던 물 리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아마추어였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파장이 짧을 때 전파의 에너지가 극대화되어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파 장을 짧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마르코니는 거꾸로 긴 파 장을 만들어야 전파가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파장을 더 늘리는 쪽으로 무선전신을 개량했다. 결과는 마르코니의 압승이 었다.
벨은 전신에 대해서는 아마추어였고 따라서 전신이라는 패러다임에 구속되지 않았다. 이는 벨이 전화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할 수 있 었던 기반이다. 반면에 벨은 전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 던 전문가였다. 그는 수년간의 실험을 통해 목소리를 전달하는 전기 회로를 만들었고,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 기술을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전화의 성공은 기존 전신 기술의 패러다임에 포섭되지 않은 벨이 목소리 송수신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이 기술에 대한 확고한 전망을 관철시켜나갔기에 가능했다.

- 사람을 태우고 비행한 첫 비행기는 운 좋은 자전거 기술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라이트 형제는 기존의 과학 이론을 습득하 고 새를 관찰해 날개의 제어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론과 현장 시험이 맞지 않자 이론을 의심했고, 새로운 계수를 구하기 위해 창의적인 자전거 실험을 고안해서 실행했으며, 이 실험에 문제가 있자 풍동을 개 발해 정확한 데이터를 얻어냈고, 이런 데이터에 근거해 비행기 날개 와 프로펠러 디자인을 개선했다. 이들은 박사 학위를 받기는커녕 대 학을 졸업하지도 않았지만, 이론과 실험을 교차 검증하고 결합하면 서 4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이성과 상상력을 멋지게 결합한 라이 트 형제는 랭글리보다, 아니 그 어느 누구보다 과학적으로 사고했던 발명가였다.

- 컴퓨터의 역사가나 컴퓨터 전문가, 엔지니어, 과학자들에게 '컴퓨 터가 누구로부터 시작됐는가'라고 물어보면 다수가 앨런 튜링으로부 터 시작됐다고 답한다. 그런데 나는 그 답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 면 튜링의 논문은 대단히 흥미롭고 중요한 업적이지만 이 논문의 영 향력은 거의 없었고, 이 논문대로 컴퓨터를 만든 사람도 없었기 때문 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튜링의 논문이 컴퓨터를 만든 선구자들에 게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튜링은 미국 프린스턴에 잠시 머물며 여러 과학자를 만난 적이 있 다. 사람들은 튜링이 그때 프린스턴에서 만난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이 후에 컴퓨터를 제작하는 데 결정적인 역 할을 했을 거라고 추론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잘 따져보면 그런 증거 들은 없다. 튜링을 컴퓨터의 시조로 삼으려 했던 많은 시도는 모두 컴 퓨터라는 것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수학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얘기 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컴퓨터의 기원이 추상적이고 심원한 수리철 학적인 문제에 있었다고 해석하고 싶은 것이다.
- 나는 컴퓨터의 시작을 튜링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 각한다. 그 시작은 바로 자카르의 방직기다. 자동인형 이야기를 할 때 다루었지만, 이 방직기에는 천공 카드라는 도구를 사용했다. 옷감에 무늬를 넣기 위해 실이 들어갈 때 어느 부위를 열어야 하고 어느 부위 를 닫아야 하는지를 조절하는 천공 카드를 사용했는데, 천공 카드의 구멍들이 지금으로 보자면 일종의 프로그램인 셈이다. 넣고자 하는 무늬의 유형을 천공 카드에 프로그램화해서 옷감을 짰기 때문이다.
이 천공 카드를 이용하면 엄청나게 정교한 무늬의 옷감을 짤 수 있었다. 자카르는 이 방직기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초상화 를 방직기로 짰는데, 실크로 된 자신의 전신 초상화를 짜기 위해 사용 한 천공 카드는 무려 2만 4,000장이었다.

- 어쨌건 알파고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어마어마한 능력을 보 여주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보통 바둑판 은 가로와 세로가 19줄이다. 그런데 이 바둑판을 20줄로 바꾸면 알파 고는 사람만큼 바둑을 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19줄 바둑 판으로 바둑을 배웠기 때문에, 바둑판을 조금만 변형하면 사람에게 지고 만다. 바로 이것이 인공지능이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정말로 뛰어나기 때문에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어떤 일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생각하는 능력이 더 발전해서 그런 일 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기술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려면 인 공지능의 이런 속성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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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생물은 왜 죽는가

과학 2023. 1. 5. 19:24

- 자기복제형 RNA 분자가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상대적으로 더 증가하기 쉬운 배열이나 구조를 가진 RNA 분자가 재료를 독점하는 바람에 다른 분자가 만들어지기 어렵게 됩니다. 더욱이 자기 편집을 통해 효율적으로 증가하는 것들끼리 연결이 되면 더더욱 다른 분자들의 생성을 방해합니다. 이처럼 생산성이 더 좋은(잘 증가하는) 분자가 자원을 독차지해서 그것들만 더욱 잘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연쇄 반응, 즉 '선순환'이 RNA를 '진화'시켜 생물이 탄생하는 기반을 만들었다고 추정됩니다.
다만 이 선순환이 계속 일어나려면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안정적인 재료 공급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으 뜸가는 공급원이 바로 RNA 자신입니다. RNA는 반응성이 풍부한 만큼 잘 부서지기도 하고, 만들고 나면 이내 분해되 고, 분해된 RNA가 새로운 RNA의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만들고 분해되고 다시 만들어내는 리사이클이 이 책의 주제인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더 작습니다. 유전물질(DNA나 RNA)과 그걸 둘러싼 단백질인 캡시드(껍데기)로 구성된 물 질로서 입자 크기가 수십 나노미터 (1나노미터는 1/100 만 밀리 미터)에 불과합니다.
숙주인 세포에 기생하고 그 안에서 자기복제를 하지만 자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무생물'로 분류됩니다. 바이러스는 자기 힘만으로는 몸과 에너지를 만드는 데 필 요한 '단백질'을 만들 수 없습니다. 단백질 합성은 리보솜이 라는 유전정보의 '통역 장치가 하는 일인데 바이러스는 리보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코로나바이러스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기존의 코로나바이러스는 감기의 원인균으로서 오랫동안 잘 알려져 왔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직경 100나노 미터 (1/1만 밀리미터) 크기의 구형으로, 스파이크 단백질이라 고 불리는 가시가 돋아난 막에 유전물질인 RNA가 들어가 있습니다(참고로 이 막은 지방으로 되어 있고 알코올에 잘 녹기 때문에, 알코올 소독을 통해 쉽게 제거됩니다).
이것이 체내에 들어가면 스파이크가 숙주의 세포 표면 에 있는 단백질(ACE2 수용체)과 결합합니다. 그러면 바이 러스는 세포 속으로 침투하여 바이러스 안의 한 가닥 사슬 RNA가 나옵니다. 그 바이러스 RNA는 숙주세포의 리보솜 을 사용하여 자신을 늘리기 위한 단백질을 합성합니다. 예 를 들어 숙주 세포는 RNA를 주형으로 삼아 두 가닥 사슬 RNA를 만드는 효소(RNA 의존성 RNA 합성 효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그것을 만듭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로 쓰이는 아비간이나 렘데시비르 같은 항바이러스제는 이 효소의 활동을 방해합니다.
숙주 내에서 증가한 RNA도 숙주의 리보솜을 사용하여 자바이러스를 만들기 위한 단백질을 합성합니다. 바이러 스는 이렇게 만들어진 재료를 조합하여 세포 내에서 수백 배나 증가합니다. 그리고 숙주 세포의 분비 작용을 이용해 서 세포 바깥으로 나가서 다른 세포로 침투하거나 혹은 비 말 등을 통해 체외로 퍼져 나가기도 합니다.
- 바이러스는 자기를 복제한다는 면에서만 보면 '생물적'이지만 세포 밖에서는 증식할 수 없고 에너지 소비와 생산 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물질적입니다. 지구에 처음으로 나타났던 자기복제 능력을 가진 RNA 분자는 바이러스 와 비슷한 물체였을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생물과 무생 물을 구별하는 커다란 차이는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없는가, 스스로 증식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46억 년 전에 생긴 지구의 표면은 고온으로 인해 질척질척하게 녹아 있었습니다. 그 후, 몇억 년이라는 시간이 흐 르면서 표면은 서서히 식고, 핵산이나 단백질 또는 지질같은 세포의 재료가 되는 유기물들이 타서 없어지지 않은 채로 축적되었습니다. 그 유기물 중에서 RNA와 달라붙어 자기복제를 돕거나 분해를 막는 작용을 하는 것도 나타났지요. 그리고 그런 '도우미'를 얻은 RNA가 더 잘 살아남았 습니다.
RNA와 단백질이 끈적끈적한 덩어리(액적)를 만들고, 그것이 재료와 더 잘 밀착하면서 생산 효율이 좋은 일종의 자기복제 머신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저 재료가 다가와 주기를 무작정 기다리던 '우연한 만남 작전'에서, 마 침내 주변에서 필요한 것을 모으는 '농축 작전'으로 바뀌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 덕분에 '만든 것을 분해하고 다시 바꿔 재활용'하는 활동이 가속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맨 처음에는 자기복제 머신 간에 경계도 없고, 질척질척하게 녹은 덩어리끼리 붙었다가 떨어지는 동작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액적 내에서 재료가 되는 분 자의 농도가 높으면 반응이 많이 일어나고 낮으면 복제 효 율이 떨어지는 불안정한 상태였으리라고 짐작됩니다. 더 안정적으로 자기복제를 하기 위해서는 RNA와 단백질, 그리고 재료가 항상 함께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양한 화학반응을 통해서 우연히 '주머니'에 둘러싸 인 액적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주머니 속이라면 더욱 안 정된 환경에서 좀 더 유리하게 자기복제가 가능했을 것입 니다. 소위 말해, 이번에는 '포위 작전'을 시작하게 된 것이 지요.
액적은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쉬운 수용성이고 그것을 둘러싼 '주머니'는 물에 잘 녹지 않는 유성입니다. 이때 의 모습은 마치 두 개의 층으로 갈라진 세퍼레이트 드레싱 을 마구 저었을 때 생기는 끈적끈적한 유액 상태였을 것 으로 짐작됩니다. 한정된 재료를 써서 효율적으로 자기복제를 하는 '유기물' 주머니가 서로 집합과 분산을 거듭하면 서 점점 더 효율적으로 자기복제를 하는 주머니가 늘어나 서 주류가 되었고, 이것이 첫 세포의 원형이 된 것으로 보입 니다.
주머니에 들어간 RNA는 이윽고 스스로 아미노산을 이어 붙여서 단백질을 만드는 리보솜 같은 장치로 변모했습니다. 리보솜은 모든 생물의 세포 속에 존재하고, RNA의 배열 정보를 통해 아미노산을 연결하여 단백질을 만드는 장치입니다. 즉, 최초로 등장한 세포가 리보솜을 가지고 있었 으므로 지금의 생물이 모두 가지게 된 것입니다. 리보솜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 DNA는 당, 염기, 인산이 끈 형태로 이어져 있는데, RNA와 거의 동일한 구조이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당의 종류가 다 릅니다. DNA는 두 가닥 사슬로 된 나선 구조가 많고 RNA 보다 안정적이며 분해되기 어려운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반대로 RNA는 불안정한 만큼 반응성이 풍부하며, 자기복제나 자기편집이 쉽고, 다른 RNA나 단백질 등과 결합하기 쉬운 성질이 있지요.
DNA 내에서 유전정보를 가진 부분을 유전자라고 부르 며, DNA가 접힌 구조를 염색체라고 부릅니다.
DNA라는 물질이 유전정보인 이유는 염기라고 불리 는 화합물의 배열 순서(서열) 때문입니다. DNA의 염기에 는 네 가지 종류(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가 있는 데, 그들 중에서 세 가지가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합니다. 예를 들어 ATG (아데닌, 티민, 구아닌)의 서열인 경우, 메신저RNA(mRNA)라고 불리는 RNA에 의해 AUG로 변환되어 복 사되고, 그게 단백질 합성 장치인 리보솜에서 메티오닌이 라는 아미노산과 결합한 운반 RNA(tRNA)를 불러들입니다. 차례로 mRNA가 지정한 아미노산이 tRNA에 의해 운반되 고 이어져서 단백질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DNA와 RNA라는 두 종류의 비슷한 물질이 존재하는 걸까요? 입시 준비하는 수험생의 입장으 로 보면 귀찮기 이를 데 없는 개념이지만 생명 탄생의 역사 에서 보면 아주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장수할 수 있는 이유는 천적이 적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장수를 가능하게 하는 중 요한 힌트가 숨겨져 있습니다. 우선 저산소 생활 환경을 꼽 을 수 있습니다. 깊은 굴속에서 100마리 정도가 집단생활을 하므로 산소가 희박한 상태에 적응하며 삽니다. 일반적인 쥐의 경우, 산소가 없으면 5분 정도 만에 죽지만 원래부터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 사는 벌거숭이 두더지쥐는 20분 이상 견딜 수 있습니다. 체온도 매우 낮고(32도), 체온을 유지 하기 위해 쓰는 에너지도 적어서 먹는 양도 적습니다. 이런 성질은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대사가 낮다는 사실, 즉 에너 지절약형 체질임을 의미합니다.
- 에너지 절약형 체질은 에너지를 생산할 때 생겨나는 부산물인 활성산소의 양이 적다는 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활 성산소는 생체 물질(단백질, DNA나 지질)을 산화시키는, 즉 녹슬게 하는 작용을 하는 노화 촉진 물질입니다. 이 물질이 적으면 세포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매우 유리하지요.
예를 들어 DNA가 산화하면 유전정보가 변화하기 쉬워져서 암의 원인이 되는데, 활성산소가 적으면 그만큼 암에 걸릴 위험이 줄어듭니다. 흥미롭게도 실제로 벌거숭이두더 지쥐는 거의 대부분이 암에 걸리지 않습니다. 활성산소가 적은 게 장수에 큰 공헌을 하고 있지요. 또한 좁은 굴속에서 살고 있어서 몸에는 히알루론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 다. 히알루론산은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피부에 탄력을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물질이 항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습니다.
-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장수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포유류로서는 드물게 '진사회성'을 갖춘 생물이라는 점입니다. 진사회성이란 꿀벌이나 개미와 같은 곤충에서 볼 수 있는 여왕 중심의 분업 체제를 뜻합니다. 벌거숭이두 더지쥐는 100마리 정도가 모여 집단생활을 하는데, 그중에 서 한 마리의 여왕 쥐만 새끼를 낳습니다. 마치 꿀벌의 여왕 벌처럼 말이지요. 꿀벌의 경우, 일벌은 모두 암컷이지만 선 천적으로 새끼를 낳을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벌거숭이두 더지쥐는 여왕을 제외한 암컷은 여왕 쥐가 발하는 페로몬에 의해 배란이 멈춰서 일시적으로 새끼를 낳을 수 없게 됩니다. 여왕 쥐가 죽으면 페로몬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므로 배란 기능이 부활해서 다른 암컷이 여왕이 되고 새끼를 낳기 시작하지요.
여왕 이외의 개체는 각각 일을 분담합니다. 예를 들어 서경호 담당, 식량 조달 담당, 육아 담당, 이불 담당 등입니 다. 여기서 이불 담당이란 그냥 뒹굴면서 어린 쥐의 몸을 덥 히고 체온 저하를 방지하는 일을 말합니다. 잠자는 걸 좋아 하는 개체 사이에서는 인기 있는 직업일지도 모르겠네요. 진사회성의 핵심은 이런 분업에 의해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므로 한 마리에 할당되는 노동량이 감소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불 담당뿐 아니라 많은 개체들이 편하게 잠자며 뒹굴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이렇게 노동 시간의 단축과 분업에 의한 스트레스 경감이 수명 연장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수명 연장에 따라 '교육'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분업이 더욱 고 도화·효율화되어 더더욱 수명이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벌 거숭이두더지쥐는 이 수명 연장의 선순환 덕분에 일반적인 쥐보다 10배나 더 장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희한하게도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죽음은 젊은 개체의 사망률과 늙은 개체의 사망률에 거의 차이가 없습 니다. 다시 말해, 나이를 먹어 기운이 없어진 개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원인 때문에 사망하게 되는지 아직 밝혀진 바는 없지만 죽기 직전까지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그야말 로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다 죽는 이상적인 죽음이지요.
- 작은 생물은 도망 다니는 일, 그러니까'(다른 생물 에 의해) 잡아먹히지 않는 일'이 사는 길이고, 반면에 비교적 큰 생물은 자기 몸을 유지하기 위해 '잡아먹어야 살 수 있 습니다. 또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인간에 의해 사육 되는 동물 이외의 생물은 인간처럼 오랜 노화 기간을 겪지 않고 생식이라는 목표를 통과하면 수명이 다해 대부분 건 강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마치 프로그램된 적 극적인 죽음의 방식처럼 보입니다.
생물은 탄생 이후 오랜 시간을 거쳐 다양화되었지만, 형태나 생태만 다양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삶에 맞춰서 죽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진화하였습니다.
어떤 생물이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죽음의 방식이야말로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 나가는 과정에 서 '선택'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지금 살아남은 생 물들에게는 그 '죽음의 방식'마저도 어떤 의미가 있었기 때 문에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 현대인은 사고로 죽거나 곤충이나 물고기처럼 프로그램된 수명으로 툭 끊어지듯 죽는 것과는 달리 '노화'라는 과정을 거쳐 죽게 됩니다. 노화는 세포 레벨에서 일어나는 불가역 적인 즉, 되돌릴 수 없는 '생리현상입니다. 세포의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어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서 곧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세포 기능의 저하나 이상은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고, 현대인들은 표면적으로는 이런 질병에 의해 죽 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큰 사 망 원인은 면역세포의 노화에 의한 면역력 저하나 조직 세 포의 기능 부전에 의한 것입니다.
- 1981년 이후 일본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암 또는 노화에 따른 DNA의 변이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세포 증 식과 관련한 유전자는 통상적으로 '적당한 수준'으로 제어 되고 있어서 필요할 때 세포분열을 일으키고 필요가 없으 면 바로 정지합니다. 암은 이 세포 증식 제어와 연관된 유전 자에 변이를 일으켜서 제어 불능에 빠지게 하고 계속 증식 하여 결국에는 온몸으로 퍼져서 결국 정상적인 조직까지 파괴해 버립니다.
이처럼 노화에 따른 DNA의 변이의 축적과 함께 암에 의한 사망률이 급상승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55세 정 도부터가 주의해야 할 시기입니다. 이런 사실에서 판단하자면 '게놈의 수명은 55세'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주목할 만한 점은 이 DNA 합성 효소의 정확성입니다. 무려 10의 9승에 한 번, 다시 말해 10억 염기에 한 번 정도밖 에 실수(에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세포에는 60억 개의 염기 쌍이 있는데, 한 번의 세포분열로 대략 10개 정도 의 실수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경이적인 정확도를 자랑하 는 것이지요.
이런 대단히 정확한 합성 능력도 한 번에 완성된 게 아 니라 진화 과정에서 서서히 그 정확도를 높여 나갔다고 말 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 그보다는 더욱 정확한 것만이 선택 되어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 다만 생물의 진화가 걸어온 길을 보았을 때 이 DNA 합성 효소의 정확성이 높다는 것이 언제나 좋은 일만은 아니 었습니다. 생물이 탄생한 초기의 격렬하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는 오히려 정확성이 그리 높지 않고 다양성을 늘리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확성이 너무 낮으면 그만큼 살아남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세포만 만들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런데 지구 환경이 점차 안정되고 생물 의 구조도 복잡해지면서 DNA 합성 효소의 정확성이 높은 편이 생존에 더 유리해졌습니다. 즉, 10억 염기에 한번정도 나오는 복제 실수라는 절묘하게 '적당한 부정확성'에 안 착하게 됐던 것이지요.
- 수정란이 분열하고 분화해서 기관의 형성이 이루어지고 몸이 완성되면 남은 건 낡은 세포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반복 작용뿐입니다. 교체 주기는 조직에 따라 다릅니다. 제일 짧은 것은 장관 내부 표면의 주름에 있는 상피세포로서 며칠 내에 교체됩니다. 피부가 4주, 혈액이 4개월, 제일 긴 것은 뼈세포로 4년에 걸쳐 모두 교체되지요.
그래서 인간 몸의 세포는 4년마다 대부분 새롭게 바뀌 어서 '딴 사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물론 사실 그대로 말 하자면 그렇게 극단적인 변화는 아니고요. 노화한 세포부터 서서히 차례차례 교체되기에 모습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체세포라도 예외적으로 교체를 하지 않는 조직이 있습니다. 심근세포와 신경세포입니다. 심장을 움 직이는 심근세포는 태어난 이후부터 굵어지고 커지는 일은 있어도 그 수가 줄어드는 일은 없습니다. 뇌와 척수를 중심 으로 온몸에 신호를 보내는 신경세포는 유소년기 때 제일 많고, 그 후로는 기본적으로 줄어들기만 하지요. 만약 뇌의 신경세포가 교체되기라도 하면 기억을 유지할 수 없으니 큰일일 테니까요. 마음(심장과 뇌)은 평생 변하지 않습니다! 심장과 뇌는 상처를 입으면 그걸로 끝이지만 다른 조직은 줄기세포가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기능이 점점 저하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줄기세포의 노화입니다. 새로 운 세포를 공급할 때, 줄기세포는 두 개로 분열해서 하나는 줄기세포, 또 하나는 피부 세포를 만듭니다. 피부 세포는 또 두 개로 분열해서 이번에는 두 개의 피부 세포를 만들지만 줄기세포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줄기세포는 기본적 으로 항상 일정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줄기세포도 노화합니다. 노화한 줄기세포는 분열 능력이 떨어지면서 충분한 세포를 공급할 수 없게 됩니다.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새로운 세포를 많이 필요로 하는 혈액과 면역세포를 만드는 조혈 줄기세포 등입니다. 면역에 관한 세포 생산 기능이 떨어지 면 감염된 세포나 이상 세포를 제거할 수 없게 되지요.
- 조직의 세포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포를 공급할 뿐 아니라 노화한 낡은 세포를 제거해야 합니다. 노화 세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제거됩니다. 첫째, 세포 자신이 ‘아포토시스apoptosis'라는 세포사cell death를 일으켜 내부에서 분해 되어 부서지는 방식입니다. 둘째, 면역세포에 의해 잡아먹 혀 제거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은 개체의 노화 세포는 이러한 방식으로 제거되기 어려워져서 그대로 조직에 머무는 경향이 생깁니다.
이 노화한 잔류 세포가 문제인데, 주변에 사이토카인Cytokine 이라는 물질을 뿌려대기 때문입니다. 원래 사이토카 인은 세포가 다치거나 세균에 감염되었을 때 그것을 제거 하기 위해 염증반응을 유도하여 면역 기구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사이토카인이 조직의 노화 세포에 서 방출되는 경우에는 염증반응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그 때문에 장기 기능이 저하되어 당뇨병, 동맥경화, 암 등의 원인이 됩니다.
즉, 노화세포가 제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면 조직을 해치고 기관의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뜻입니다.
- 생쥐를 대상으로 진행한 흥미로운 실험을 하나 소개합 니다. 네덜란드의 연구팀이 2017년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생쥐도 나이를 먹으면 제거되지 않는 노화 세포가 조직에 쌓이게 됩니다. 이 잔류 노화세포의 세포사를 유도하지 못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세 포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p53 이라는 단백질이 세포질에 서 핵 안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노화세포에서 다량으로 발 생하는 FOXO4 (폭소 4)라는 단백질이 그 이동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FOXO4가 p53을 방해하지 않도록 p53의 결합 부위에 붙는 작은 단백질(펩타이드)을 합성하여 그걸 늙은 쥐 에 투여했습니다. 그러자 예상대로 p53가 세포핵 안으로 이 동하여 세포사를 유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펩타이드를 투여하여 노화세포가 제거된 늙은 쥐는 신 장과 간 기능이 회복되면서 운동 능력이 향상되었고 털도 수북하게 돋아났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쥐뿐만 아니라 인간도 낮은 체내 염증반응과 장수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일어나는 노화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이 제거되지 않는 노 화 세포에 있는 듯합니다. 인간에게 이 펩타이드를 사용하 는 일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서는 현재 연구 중입니다. 이처럼 체세포의 기능 저하가 신체 조직의 움직임을 저 해하여 결국 뇌나 심혈관, 간 기능이나 신장 기능을 떨어 뜨려서 인간을 '늙은' 상태로 만들어 죽음으로 내모는 것입 니다.
- 인간 몸 세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체세포의 텔로미어는 분열할 때마다 짧아집니다. 그런데 모든 세포의 분열 횟수 가 딱 50회로 정해져 있다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노화하고 말겠지요. 긴 수명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세포에도 텔로 미어 합성 효소가 나타나고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는 장 수 세포도 필요합니다. 바로 그 대표적인 것이 줄기세포와 생식세포지요.
분화한 세포(체세포)가 점차 노화하여 제거되어도 줄기세포가 항상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고 보충해 줍니다. 한평생 계속 사는 줄기세포의 텔로미어는 텔로미어 합성 효소에 의해 항상 늘어나고 유지됩니다. 그러나 줄기세포의 경우에도 나이를 먹음에 따라 텔로미어 합성 효소의 활성 이 저하되어 조금씩 텔로미어가 짧아지고, 그에 따라 새로 운 세포의 공급이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생식 계통의 세포도 줄기세포와 마찬가지로 텔로미어 합성 효소의 작용으로 텔로미어의 길이가 유지됩니다. 생 식세포는 다음 세대로 생명을 잇는 소중한 세포이기 때문에 노화는 가급적 억제됩니다. 따라서 갓 태어난 아기의 모 든 세포가 가진 텔로미어는 완전히 리셋된 상태여서 길이가 길지요.
- 생물은 다세포화로 가는 진화 과정에서 암화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세포에 대한 품질 관리 quality control 기능을 획득했습니다. 즉, 품질 관리 기능을 가진 생물이 선택적으로 살아남았던 것이지요. 이 품질 관리 기능은 두 개의 메 커니즘이 지탱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면역 기구고, 또 하나는 세포 노화 기구입니다.
면역 기구는 외부에서 침투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의 침입자뿐 아니라 노화한 세포나 암세포 등 이상 세포도 공격해서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이상 세포는 시그 널 인자를 뿜어서 대식세포Macrophage 나 T세포 등의 면역 세포를 활성화함으로써 마치 이들에게 자신을 공격해서 먹 어달라는 듯 재촉하고, 결국에는 이들에 의해 제거됩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생리 작용으로서 우리 몸 안에서 항상 일 어나고 있는 반응입니다.
그러나 면역세포가 모든 이상 세포를 깔끔하게 제거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암세포가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아 있 죠. 암세포는 변이를 통해 정상 세포인 척 행동하고, 면역세 포를 억제하는 작용[면역 관문immune checkpoint]을 함으로써 공격을 회피하기도 합니다. 면역 관문으로 유명한 PD-L1 은 암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입니다. PD-L1을 가진 암세포에 면역세포(T세포)가 달라붙으면, 암세포로 인식되지 않고 공격받지도 않습니다. 이에 따라 암세포가 점점 증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 다세포생물의 세포 품질 관리를 담당하는 또 하나의 메 커니즘이 '세포 노화 기구입니다. 면역 기구는 이상 세포를 찾으러 다니고 발견해서 제거합니다. 이에 반해 세포 노화 기구는 텔로미어를 예로 들자면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 아져서 일정 횟수의 분열 후에는 노화를 유도하여 세포의 무한 분열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즉, 세포 노화 기구는 활성산소나 변이 축적에 의해 이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세포를 이상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제거하고 새로운 세포로 교체하는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뜻이지요. 그럼으로써 암화의 위험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앞서 던진 "왜 분화한 세포는 텔로미어 합성 효소작용을 일부러 막아 노화를 유도하는 아까운 행위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것입니다.
- 남성은 정자를 만드는 근원이 되는 세포인 정모세포가 감수분열, 즉 염색체 수가 절반이 되는 특수한 분열을 해서 4개의 정자로 변합니다. 그 과정에서 각각의 염색체 쌍에서 무작위로 한 개가 선택되어 한 개의 정자에 들어갑니다. 이 조합의 수는 2의 23승(약 800만) 개가 됩니다. 다시 말해 약 800만 종류의 정자가 생긴다는 뜻이지요.
이는 참으로 엄청난 숫자이지만, 그 염색체가 분배하는 동안 두 개의 상동염색체가 달라붙어 (이를 '대합'이라고 함), 같은 종류의 유전자 간에 '상동 재조합'이라는 부분적인 교 환이 일어납니다. 각각의 상동염색체 중 한 개는 어머니, 또 한 개는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마구잡이로 섞이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염색체의 내용물(조합)이 변화합니다.
단, X 염색체와 Y 염색체는 배열이 크게 다르므로 부분적으로만 대합합니다. 상동 재조합에 의한 부분적인 교환도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상동 재조합은 여성 쪽의 난자 형성시에도 일어나고, 수정 시에는 난자와 정자가 무작위로 융합하므로 수정란의 조합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설령 형제자매가 몇십억 명 있다고 하더라도 일란성(일란성 쌍둥이나 세쌍둥이 등)이 아닌 한, 자신과 똑같은 유전정보를 가진 형제나 자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유성생식이란 마이너 체인지를 통한 다양성을 만들 어내기 위해 진화한 구조입니다. 이 책의 서술방식으로 말 하자면, 진화는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므로 유성생식이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데 유효했기 때문에 그러한 구조를 가진 생물들이 선택되고 살아남았다는 것이지요. 생물 대부분은 크건 작건 이 유성생식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 생물은 호흡으로 영양을 태워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에너지는 세포의 활동에 쓰이 데, 포유동물은 체온을 유지하는 데도 에너지를 사용합니 다. 영양이 많으면 태우는 양도 당연히 많아지므로(이를 '대 사가 활발해진다'라고 함) 부산물도 많이 나오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활성산소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활성산소가 DNA나 단백질을 산화시켜서 이들의 활동력을 떨어뜨립니다. 따라서 음식물 섭취를 제한하면 활성산소의 양이 줄어서 수명이 늘어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루코스glucose 센서인 Gprl 단백질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설령 글루코스가 충분히 있어도 그것을 감지하거나 이용할 수 없으므로 칼로리 제한과 마찬가지로 대사가 저하되어 수명이 길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GPR1 말고도 글루코스 대사와 관련된 일련의 유전자 변이도 역시 수명을 늘립니다.
- '죽음'은 절대적으로 나쁜 존재가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 있어 필요한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생물 은 기적이 중첩됨으로써 이 지구상에 태어나고, 다양화되 고, 멸종을 거듭함으로써 선택되고, 진화를 이루어 왔습니 다. 그 흐름 속에서 이 세상에 우연히 태어난 우리는 그 기 적과도 같은 생명을 다음 세대에 이어주기 위해 죽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끈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고 이타적으로 죽는' 죽음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자손을 남겼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생물의 긴 역사를 돌아보면 자손 하나 남기지 않 고 일생을 마친 생물도 수없이 많습니다.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모든 생물은 턴 오버하며, 생과 사를 반복하면서 끊임 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났으므로 다음 세대 를 위해 죽어야 합니다.
'죽음'을 이렇게 생물학적으로 정의하고 긍정적으로 받 아들일 수는 있지만, 사람은 감정의 생물입니다. 죽음은 슬프고, 가능하다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설령 우리가 벌거숭이두더지쥐 의 생활을 흉내 내는 일에 멋지게 성공해서 건강수명이 늘 어나고 죽는 그날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순식간에 죽는 이 상적인 인생'을 보낼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나'라는 존재를 잃는다는 공포는 변함없으리라 봅니다. 그 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공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그 공포는 인간이 '공감력'을 익히고 집단을 소중히 하며 타인과의 유대를 통해 살아남아 왔 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 인간 개개인이 가진 '죽음의 공포는 나와 '공감'으로 연
결되어 언제나 나에게 행복감을 주었던 사람들과의 유대가 끊기는 데서 오는 공포입니다. 또 나 자신만이 아니라 나와 공감으로 이어져 있던 타인이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 다. 그리고 그 경우, 슬픔을 치유해 줄 다른 무언가가 그 상 실감을 메워줄 때까지 슬픔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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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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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뇌는 당신의 뇌처럼 진화했을까? 누가 봐도 확실한 답은 생각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흔히 뇌가 일종의 '상향 진보'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추정한다. 말하자면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로 진화해서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는 어떤 동물들보다도 더 정교하게 설계된 생각하는 뇌인 인간의 뇌가 있다는 식으로 가정한다. 결국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최고 의 힘이니 말이다. 그렇지 않나?
하지만 이 명백한 답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우리 뇌가 생각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발상은 인간 본성에 대한 엄 청난 오해들의 근원이 되어왔다. 그 소중한 믿음을 내려놓았 다면 당신은 뇌를 이해하는 길에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우리 뇌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무 엇인지, 궁극적으로 우리가 정말로 어떤 종류의 생명체인지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다가간 것이다.
- 신체예산에 관한 한 예측 prediction은 늘 반응 reaction을 앞지른다. 포식자의 공격에 앞서 움직일 준비를 한 생물들은 포식 자가 덮치기를 기다린 생물보다 생존 가능성이 더 크다. 대체 로 예측이 적중했거나 치명적이지 않은 실수를 하고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운 생물은 잘 살아남았다. 반면 빈번하게 예측이 어긋나거나 위협을 피하지 못하거나 결국 나타나지 않 은 위협에 대해 거짓경보 false alarm를 반복한 생물들은 그리 잘 살아남지 못했다. 그들은 주변 환경을 덜 탐색했고 먹이를 덜 찾았으며 번식 가능성도 적었다.
이러한 신체예산을 과학에서는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라고 한다.  알로스타시스란 몸에서 뭔가 필요할 때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자동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을 뜻한다. 캄브리아 기의 생물들은 온종일 감지하고 움직임으로써 자원을 얻거 나 썼으므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알로스타시스가 신체 시스 템의 균형을 잡아주었다. 써버린 자원을 제때 보충하려면 뒤로 물러나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 동물들은 몸이 미래에 필요할 것들을 어떻게 예측했을 까? 가장 좋은 정보원은 자신들의 과거, 곧 이전에 비슷한 상 황에 처했을 때 했던 행위들에 있다. 과거 행위가 성공적으로 위협을 피하게 해주었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주는 등 보 상을 가져다주었다면 그들은 그 행위를 반복하려 할 것이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종류의 동물은 자기 몸을 어떤 행위에 대비시킬 때 어떤 식으로든 과거 경험을 떠올린다. 예측은 이처럼 유용한 역량이어서 단세포생물조차도 자신의 행위를 예측하여 계획한다. 지금도 과학자들은 이들이 어떻게 예측을 해내는지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고 있다.
-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왜 뇌는 당신의 뇌처럼 진화했는가? 이는 사실 대답하기 불가능한 질문이다. 왜 냐하면 진화는 목적을 갖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화에는 '왜'가 없다. 하지만 최소한 당신의 뇌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가 무엇인지는 말할 수 있다. 뇌의 핵심 임무는 이성이 아니다. 감정도 아니다. 상상도 아니다. 창의성이나 공 감도 아니다.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 곧 알로스타시스를 해내는 것이다. 당신의 뇌는 음식이나 보금자리, 애정 또는 물리적 보호와 같이 좋은 것으로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 망을 품고 지속해서 당신의 에너지를 투자한다. 그렇게 해서 자연의 필수 과업, 곧 당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 는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의 뇌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생각 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벌레에서 진화해 아주아주 복잡해진 신체를 운영하는 것이다.
- 나는 뇌가 점점 복잡해지는 신체의 에너지 자원 예산을 관리해가면서 감각계와 운동계를 점점 정교하게 진화시켰다고 했다. 하지만 3층 뇌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의 동물적 충동과 감정을 정복하기 위해 이성이 생겨나면서 뇌는 층을 이루어 진화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다른 과학적 관점을 어떻게 조 화시켜야 할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조화시킬 필요가 없 다. 왜냐하면 하나가 틀렸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의 뇌 가설 은 과학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이었으며 가장 널리 퍼진 오류 중 하나"다.
이 이야기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으며 때때로 우리가 일상 에서 느끼는 바를 정확히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당신 혀에 있는 미뢰는 부드러운 초콜릿 케이크의 달콤한 한 조각 에 이끌리지만, 당신은 방금 아침식사를 마쳤기 때문에 사양한다. 이럴 때면 충동적인 도마뱀의 뇌와 감정적 변연계가 당신을 케이크가 있는 쪽으로 밀어내지만 이내 이성적인 신피 질이 끼어들어 이들을 굴복시켰다고 쉽게 믿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쁜 행동은 내면의 고삐 풀린 고대 야수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좋 은 행동도 이성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리고 이성과 감정은 서 로 전쟁을 벌이지도 않으며, 심지어 이 둘이 뇌의 각각 다른 부분에 살지도 않는다.
뇌가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설은 여러 해에 걸쳐 몇몇 과학자가 제기했는데, 20세기 중반 내과 의사 폴 매클린Paul MacLean이 공식화했다. 매클린은 뇌가 플라톤의 전쟁 이야 기와 같은 구조로 생겼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당시 손에 넣을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이었던 외관 검사를 통해 이 가설을 확인했다. 죽은 도마뱀과 포유류, 인간의 뇌를 현미경으로 두루 관찰해 단지 눈으로만 이들 간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식별해낸 것이다.
매클린은 다른 포유류의 뇌가 갖지 않는 새로운 부분들을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다고 결론 내리고는 이 부분을 신피질 이라 불렀다. 또한 파충류의 뇌가 갖고 있지 않은 일련의 부 분들을 포유류의 뇌가 가지고 있다고 결론 내리고 이를 변연계라 불렀다. 자, 이렇게 해서 마침내 인간 기원의 이야기가 탄생했다.
매클린의 삼위일체의 뇌 가설은 과학계의 일부 영역에서 호응을 얻었다. 그의 추정은 간결하고 우아했으며 인간 이성 의 진화에 대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하 는 것처럼 보였다. 다윈은 저서 《인간의 유래 The Descent of Man> 에서 인간의 마음은 몸과 함께 진화했으며 우리 모두에게는 오래된 내면의 야수가 살고 있어서 합리적 생각으로 길들이 고 있다고 주장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1977년에 출간한 저서 《에 덴의 용The Dragons of Eden》을 통해 삼위일체의 뇌라는 개념을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렸다. 그는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 뇌 진화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미 '삼위일체의 뇌' 가설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들을 이미 갖고 있던 때에 <에덴의 용>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전문가 들은 일찍이 신경세포라 불리는 뇌세포들의 분자 구성에서 발견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전문가들은 뇌가 세 겹으로 이루어져 있 다는 발상을 완전히 버린다. 더 정교한 방법으로 신경세포를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발상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었다.
- 뇌는 진화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점점 커지면서 재조직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의 뇌에는 네 개의 신경세포 클러스 터 또는 뇌 영역이 들어 있다. 이것이 당신이 몸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촉각을 만들어내도록 돕는다. 이 뇌 영역들을 통틀 어 일차체감각피질primary somatosensory cortex 이라고 한다. 하지 만 쥐의 뇌에서 일차체감각피질은 하나의 영역으로 되어 있어 여기에서 모든 과업을 수행한다. 우리가 매클린처럼 인 간과 쥐의 뇌를 간단히 눈으로만 들여다본다면 인간의 뇌에 서 발견된 체성감각 영역 중 세 개가 쥐에게는 없다고 믿기에 이른 것이다.
- 이 세 영역은 인간에게서만 새로 진화된 것이며 인간 특유의 기능들이 이 영역에 들어 있으리라고 결론 내릴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우리의 네 개 영역과 쥐의 한 개 영역 에 같은 유전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냈 다. 이 한 토막의 발견이 진화에 관해 무언가를 암시해준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약 6,600만 년 전에 살았던 인간과 설치류의 마지막 공통 조상은 오늘날 우리 뇌의 네 개 영역이 담당하는 기능들을 수행하는 하나의 체성감각 영역을 가졌으 리라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뇌와 몸이 더 크게 진화함에 따라 그 하나의 영역이 확장되어 그때까지 맡았던 책임들을 재분배하기 위해 세분화되었을 것이다. 뇌 영역들의 재배치, 곧 영역 간 분리와 통합14을 통해 더 복잡한 뇌가 만들어졌고, 이로써 더 크고 복잡해진 신체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 과학자들은 최근 모든 포유류의 뇌가 단 하나의 제조계획manufacturing plan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파충류와 다른 척추동 물들도 같은 계획대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신경과학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아직은 이러 한 연구에 관해 알지 못한다. 아는 사람이라 해도 이러한 발 견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 막 생각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 공통된 뇌 제조계획brain-manufacturing plan1'은 난자가 수 정된 직후, 배아가 신경세포를 만들어내기 시작할 때부터 돌 아간다. 포유류의 뇌를 형성하는 신경세포들은 놀라울 정도로 예측 가능한 순서대로 만들어진다. 이 순서는 생쥐, 쥐, 개, 고양이, 말, 개미핥기, 인간, 그리고 지금까지 연구한 모 든 종류의 포유류 동물에게서 똑같이 발견된다. 
- 따라서 우리 대뇌피질의 크기는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며, 여기에는 어떤 특별한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대뇌 피질의 크기는 또한 얼마나 이성적인 종인가에 관해 아무것 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만약 대뇌피질의 크기로 이성적 능 력이 결정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은 코끼리 인 덤보 호튼, 바바일 것이다). 서구의 과학자와 지식인들은 '커다랗고 이성적인 대뇌피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는 오랜 세월 동안 그 개념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렇다. 진화과정에서 뇌의 발달 단계 중 어떤 것은 더 길게, 어떤 것은 더 짧게 지속되도록 특정 유전자들이 변형되었으며, 이것이 뇌 안에서 상대적으로 크거나 작은 부분들을 만들어낸다.
- 감정 및 본능과 이성이 싸운다는 플라톤의 발상은 인간의 행동에 대해 서구문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이었다. 만 약 당신이 자신의 본능과 감정을 적절히 억제한다면 사람들 은 당신의 행동이 합리적이며 당신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기를 선택한다면 당신의 행동은 비도덕적이라 불릴 것이며, 당신이 합리적으 로 행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당신은 정신질환자로 간주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합리적인 행동인가? 전통적으로는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생각은 합리적인 것인데 반해 감정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신이 절박한 위험에 처해서 두려움을 느낄 때처럼 감정은 때때로 합리적이다. 그리고 뭔가 중요한 것 을 발견할 거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소셜미디어에 몇 시간씩 빠져 있을 때처럼 생각은 때때로 비합리적이다.
어쩌면 합리성에 관해서는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 곧 우 리가 매일 사용하는 수분· 염분·포도당, 그리고 그 밖의 신체 자원을 관리하는 신체예산의 측면에서 더 잘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합리성이란 당신이 지금 당면한 환경에 잘 대처하기 위해 자원을 쓰거나 비축해두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물리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빠 졌고, 뇌는 당신이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보자. 이때 뇌는 신장 맨 위에 자리잡은 부신에게 신속하게 에너지를 공 급할 수 있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잔뜩 뿜어내라고 지시할 것이다. 삼위일체의 뇌 관점에서 코르티솔의 분출은 본능적 인 것이며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신체예산의 관점에 서 코르티솔의 분출은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뇌는 지 금 당신의 생존과 이후 있을지 모르는 잠재적 자손의 존재에 게 확실한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합리적 행동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신체예산을 잘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운동을 격렬히 하면 혈류에 코르티솔 이 다량 흘러들어오면서 불쾌함을 느낄 수 있지만 미래 건강 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합리적이라 여긴다. 동료로부터 비판 을 받을 때 급증하는 코르티솔도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왜 냐하면 코르티솔이 더 많은 포도당을 만들어내어 당신이 새 로운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 사회의 온갖 신성한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법률 분야를 살펴보자. 변호사는 자기 고객이 흥분해서 이성이 감정에 압 도당해 괴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를 전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괴로움을 느꼈다고해서 그것이 비이성적이 되었다거나 이른바 감정적 뇌가 이 성적 뇌를 장악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괴로움 은 당신의 뇌 전체가 예상되는 보상을 위해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마음속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발상은 이외에도 많 은 사회제도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경제 분야에서 투자자 행 동 모델은 합리성과 감정을 뚜렷하게 구분한다. 정치권에는 현재 감독하는 산업 분야에 과거 로비 전적이 있는 등 이해충돌 문제가 뚜렷한 지도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자신이 쉽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국민을 위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오만한 생각들 밑에 바로 '삼위일체의 뇌'라는 허구가 도사리고 있다.
당신의 뇌는 세 개가 아니라 하나다. 플라톤이 말한 내면의 전투를 넘어 나아가려면 우리는 합리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심지어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어떤 과학자는 인간의 마음을 두려움, 공감, 질투 그리고 생존을 위해 진화한 심리적 도구들을 모아 놓은 일련의 '정신 기관들mental organs'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뇌는 그런 식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다. 우리 뇌는 또한 어떤 부분은 켜져 있고 다른 부분은 꺼져 있는 식으로 활성화되면 서 '빛나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검색하고 열 수 있는 컴퓨터 파일처럼 기억을 '저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발상들은 모두 지금은 구식이 되어버린, 뇌에 대한 과거의 믿음에서 비롯된 비유다.
- 우리의 뇌 네트워크는 항상 켜져 있다. 신경세포들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외부세계의 뭔가가 자신들을 켜주기를 기 다리지 않는다. 모든 신경세포는 배선을 통해 서로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그들의 의사소통이 외부세계나 당신의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따라 더 강해지거나 약해질 수는 있지만, 이 의사소통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뇌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은 속도와 비용 사이에서 균형 을 잡는 행위다. 각 신경세포는 수천 개의 다른 신경세포에 직접 정보를 전달하고 수천 개의 다른 신경세포로부터 정보를 받으면서 500조개가 넘는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간에 연결을 만들어낸다. 정말 엄청난 수다. 하지만 이런 연결 없이 모든 신경세포가 네트워크의 다른 신경세포 하나하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야 한다면 연결의 수는 이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그런 구조는 더 많은 연결이 필요하므로 우리 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소진해버릴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전 세계 항공여행 시스템과 같은 좀 더 알뜰한 배선 배치가 있다. (그렇다, 나는 여기서 또 하나 의 비유를 들고 있다.) 항공여행 시스템은 전 세계 공항 약 17,000개를 연결한 네트워크다. 우리 뇌가 전기적 신호와 화 학적 신호를 실어 나른다면, 이 네크워크는 승객들을 (그리 고 잘하면 수화물까지) 실어 나른다. 각 공항은 다른 모든 공항으로 비행기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부 공항으로만 직항 편을 운행한다. 모든 공항에 비행기를 보내야 한다면 항공 교 통량은 1년에 수십억 회가 늘어나 연료와 조종사, 활주로 부 족으로 결국 전체 시스템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일 부 공항이 허브 역할을 해서 나머지 공항의 부담을 덜어준 다. 예를 들어 네브래스카의 링컨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가 야 한다면 직항편이 없으므로 먼저 링컨에서 뉴저지의 뉴어 크국제공항과 같은 허브로 비행한 다음, 거기서 로마로 가는 두 번째 장거리 항공편을 타야 한다. 허브 두 개를 거쳐 세차 례 비행을 할 수도 있다. 
- 우리의 뇌 네트워크는 정지해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어떤 변화는 매우 빠르게 일어난다. 뇌의 배선은 신 경세포 간 국지적 연결을 완성하는 화학물질에 푹 잠겨 있 다. 글루타메이트 glutamate, 세로토닌serotonin, 도파민dopamine을 비롯한 이런 화학물질을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이라고 한 다. 이 물질들은 신호가 시냅스를 건너가는 것을 더 쉽게 하 거나 어렵게 만든다. 그것들은 말하자면 공항 직원들과도 같 다. 항공권 판매원, 보안검색 담당자, 지상 승무원들은 공항 내에서 승객의 이동을 더 빨리 또는 더 늦게 이루어지게 할 수 있으며 이들 없이는 여행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뇌 네트워 크의 변화는 즉각적이고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물리적인 뇌 구조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다. 또 한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일부 화학물질은 다른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해 그 효과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이런 식 으로 작용하는 뇌 화학물질을 신경조절물질neuromodulator이라 고 한다. 이들은 공항 인근의 날씨와 비슷하다. 날씨가 맑으 면 비행기가 빠르게 날아간다. 폭풍우가 몰아치면 비행기가 뜨지 못하거나 경로가 변경된다. 신경조절물질과 신경전달 물질 덕분에 하나의 뇌 구조는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활동 패턴을 만들어낸다.
- 일반적인 시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며칠 동안 눈을 가리고 점자 읽는 법을 가르치면 시각피질의 신경세포가 촉각에 더 집 중하게 된다. 눈가리개를 제거하고 24시간이 지나면 그 효과 는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아기가 선천적으로 심한 백내장을 가지고 태어나서 뇌가 시각정보를 입력받지 못하면 시각피 질의 신경세포는 다른 감각을 위해 용도가 변경된다.
어떤 신경세포들은 매우 유연하게 연결되어 있어 여러 업무를 관장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배내측전전두피질 dorsomedial prefrontal cortex 이라고 불리는 전전두피질의 유명한 부 위가 하나 있다. 이 뇌 영역은 항상 신체예산에 관여하지만, 기억·감정·지각· 의사결정·통증·도덕적 판단·상상·언어·공 감등 다른 것들과도 자주 관련된다.
-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한 신경세포가 다른 기능들이 아 닌 특정 기능에 더 기여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신경 세포도 하나의 심리적 기능만 갖지는 않는다. 심지어 과학자 들이 '시각피질' 또는 '언어 네크워크 language network'와 같이 그 기능을 따서 뇌 일부분에 이름 붙인다 하더라도 그 이름은 뇌의 해당 부분이 수행하는 어떤 독점적인 업무가 아니라 그때 그 과학자가 주목하는 것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지금 모든 신경세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이 아니다. 하나의 공항이 비행기를 띄우고 항공권을 판매하 고 형편없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신경세포는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서로 다른 신경세포들의 집단이 동일한 결과를 만들 어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한번 핸드폰이든 초콜릿 이든 당신 앞에 있는 무언가를 잡기 위해 손을 뻗어보라. 손 을 거두었다가 아까와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손을 뻗어보라. 이처럼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간단한 동작도 한번 할 때 마다 다른 신경세포들의 조합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축중degeneracy' 이라 한다.
- 뇌의 경우 복잡성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경전달물질과 신경조절물질, 그리고 갖가지 부가기능의 도움을 받 아 일제히 다른 특정 신경세포들에게 신호를 쏘아대는 수십 억 개의 신경세포를 상상해보라. 그 전체 모습이 뇌 활동의 한가지 '패턴'이다. 복잡성은 뇌가 이전에 만든 오래된 패턴 의 조각과 조각을 조합해 엄청나게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뇌가 과거에 도움이 되었던 패 턴을 불러들여서 새롭게 시도할 만한 패턴을 만들어냄으로 써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효 율적으로 몸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 복잡성이 높은 뇌는 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뇌는 컴퓨터에 파일을 저장하는 식으로 기억을 저장하는 게 아니 라 전기와 소용돌이치는 화학물질을 사용해 필요할 때마다 재구성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기억remembering'이라고 부르 지만 사실은 모아서 '조합 assembling'하는 것이다. 복잡한 뇌는 미트로프 브레인이나 주머니칼 브레인보다 더 많은 기억을 모을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같은 기억을 불러올 때마다 당신의 뇌에서는 매번 다른 신경세포 덩어리들이 그 기억을 조합해냈을 것이다(이것이 축중이다).
- 더 복잡한 두뇌는 또한 더 창의적이다. 복잡한 뇌는 과거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일에도 대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낯선 산이나 계단을 오른다면 과거에 비슷한 것을 올라봤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 복잡한 두뇌는 변화하는 환경이 시시각각 다른 신체예산을 요구하는 것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수많은 기후와 다양한 사회구조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당신이 적도 지방에서 북유럽으로 이동해야 하거나 느긋한 문화에서 엄격한 규율을 가진 문화로 이동해야 한다면, 머릿속의 복잡한 뇌를 가지고 더 신속하게 적응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복잡성이 높을수록 뇌가 손상에 더 탄력적으 로 대응할 수 있다. 신경세포들의 덩어리 하나가 작동을 멈추 면 다른 신경세포 덩어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이것이 자연선택이 복잡한 두뇌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 나다. 주머니칼 브레인이라면 이런 능력이 없어서 어떤 신경 세포들이 사라지면 그 기능도 잃을 것이다.
- 인간의 두뇌는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두뇌일 수는 있지만 복잡도가 높은 유일한 두뇌는 아니다. 지적 행동은 뇌 구조가 다른 여러 종에서 이미 수차례 나타났다. 복잡한 뇌 가 몸 전체에 분포해 있는 문어가 한 예다. 문어는 퍼즐을 풀 수 있고 수족관 수조를 탈출할 수도 있다. 새들도 복잡한 뇌 를 가질 수 있다. 어떤 새는 신경세포가 대뇌피질로 조직화되 어 있지 않은데도 간단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고 약간의 언어 능력도 있다. 고도로 복잡한 인간의 뇌가 진화의 정점은 아니 라는 사실을 잘 기억해두라. 우리 뇌는 다만 우리가 거주하는 환경에 잘 적응했을 뿐이다.
- 아기의 유전자는 놀라울 정도로 주변 환경에 따라 이끌리 고 조절된다. 예를 들어 시각에 가장 중요하게 관여하는 뇌 영역은 아기의 망막이 정기적으로 빛에 노출되는 경우에만 정상적으로 발달한다. 아기의 뇌는 또한 자신의 귀의 특정 모 양에 따라 듣는 법을 배운다. 더 이상한 것은 바깥세계에서 아기의 몸에 몰래 들어오는 몇 가지 유전자가 추가로 필요하 다는 사실이다. 박테리아와 그 밖에 작은 생물들 속에 숨어 아기의 몸에 들어오는 이 꼬마 방문객들이 어떻게 뇌에 영향 을 끼치는지에 관해서는 과학자들도 이제 막 조금씩 알아내 기 시작했다. 아기의 배선 지침은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 양육자, 당신과 나 같은 사람들에게서도 영향을 받는다.
- 뇌에 관한 한 본성이나 양육이나 같은 단순한 구분이 유혹적일 수는 있겠으나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양육 이 필요한 본성'을 지녔다. 우리의 유전자가 완성된 뇌를 만 들어내려면 적절한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 곧 적소가 필 요하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말을 걸고 수면시간을 일정하게 설정해주고 체온을 유지해주는 양육자들로 채워진 적소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사 실을 안다. 하지만 수십 년 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중요하다. 당신이 새벽 4시에 깨어 울어대는 당신의 작은 천 사를 달래려고 하거나 아기가 바닥에 시리얼을 차분하게 93 번째 떨어뜨리고 있을 때, 당신은 알든 모르든 아기 뇌의 세 부조정과 가지치기를 안내하는 것이다. 어린 뇌는 스스로를 세계에 연결한다. 배선 지침이 풍부한 사회적 세계를 포함해 아이들의 뇌를 건강하고 온전하게 성장시키기 위한 세계를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 막대기를 든 열 살짜리 소년을 소총을 든 어른 게릴라로 보는 것이 왜 지극히 정상일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뇌의 관점에서 상황을 들여다보자. 태어난 순간부터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까지 뇌는 두개골이라는 어둡고 조용한 상자에 갇혀 있다. 뇌는 매일매일 눈, 귀, 코를 비롯하여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세계로 부터 감각 데이터를 지속해서 수신한다. 이 데이터는 우리 대 부분이 경험하는 의미 있는 광경이나 냄새, 소리와 같은 형태 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빗발치는 광파와 화학물질, 그리고 기압의 변화에 불과하며 그 안에 본질적인 의미 같은 건 없다.
이렇게 모호한 감각 데이터 조각들을 맞닥뜨리면 뇌는 어떻게 해서든 다음에 무엇을 할지 파악해야 한다. 우리 뇌의 가장 중요한 일이 몸을 제어해 잘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당신의 뇌는 감각 데이터의 맹공격으로부터 어떻게든 의미를 만들어내어 당신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거 나 어떤 맹수의 점심식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그렇다면 우리 뇌는 어떻게 해서 감각 데이터를 해독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내는 것일까? 바로바로 들어오는 모호 한 정보들만 사용해야 한다면, 당신은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최선의 반응이 무엇인지 알아낼 때까지 헤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운 좋게도 뇌에는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추가정보원이 있다. 바로 기억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지금 까지 경험해온 것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직접 겪은 일들과 친구나 선생님, 책이나 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출처로부터 배워온 것들이 뇌를 돕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잡한 신경망에서 신경세포들이 전기화학적 정보를 앞뒤로 전달하면서 뇌는 눈 깜짝할 사이에 과거 경험의 조각들을 재구성해낸다. 감각 데이터의 의미를 추론하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알아내기 위해 이 조각들을 조합해 기억을 만들어낸다.  과거 경험에는 우리 주변 세계에서 일어난 일뿐만 아니라 신체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도 포함된다. 심장이 빨리 뛰었는 가? 심호흡을 했는가? 비유적으로 말해서 당신의 뇌는 매 순 간 스스로 묻는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와 비슷한 상 황을 만났을 때, 내 몸이 지금과 비슷한 상태였을 때, 그때는 이다음에 무엇을 했지?' 이에 대한 대답이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에 완벽하게 부합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당신이 생존하고 나아가 번영할 수 있도록 돕는 적절한 행동계획을 제공한다 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는 뇌가 신체의 다음 행위를 어떻게 계획하는지 설명해 준다. 당신의 두뇌는 어떻게 바깥세계에서 들어오는 가공되 지 않은 정보 조각들에서 숲속에서 게릴라를 보는 것과 같이 충실도가 높은 경험들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뇌는 쿵쾅거리 는 심장에서 어떻게 공포감을 만들어낼까? 한 번 더 말하자 면, 뇌는 스스로 질문함으로써 기억으로부터 과거를 다시 만 들어낸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내가 마지막으로 겪었을 때, 내 몸이 지금과 비슷한 상태에 있었고 이 특정한 행위를 하려고 했을 때, 그다음에 무엇을 보았나? 그다음에 어떤 느낌이 들었던가? 이에 대한 대답이 당신의 경험이 된다. 뇌는 머리 바깥의 세상과 머리 내부로부터 나오는 정보들을 결합해 당 신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
- 우리가 보는 것은 세상에 있는 것과 우리 뇌가 구성한 것의 조합이다. 당신이 듣는 것 역시 세상에 있는 소리와 뇌안 에 있는 것의 조합이며, 다른 감각들도 마찬가지다. 이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뇌는 신체 내부에서 느끼는 것 또한 구성한다. 통증이나 불안감처럼 내부에서 느껴지는 감 각들은 뇌에서 일어나는 일과 폐, 심장, 내장, 근육 등에서 실 제로 일어나는 일의 조합이다. 뇌는 또한 여기에 과거 경험에 서 얻은 정보를 추가해 그 느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측한 다. 예를 들어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하거나 기력이 부 족할 때 배가 고픈 것으로 느껴 (배가 고파서 기력이 부족했 던 적도 있으므로) 간식을 먹으면 기운이 날 것이라 생각하 기도 한다. 사실은 수면부족으로 지친 것인데 말이다. 이렇 게 구성된 배고픔의 경험은 원치 않게 과체중이 되는 한 가지 이유가 될 수도 있다.
-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이 흥분했을 때의 행동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흥분하기 전에 당신의 예측을 바꿀 기회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반복 연습을 통해 당신은 특정 자동 행동을 다른 행동보다 더 많이 일어나게 만들 수 있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미래의 행동과 경험들을 더 많 이 제어할 수 있다.
나는 당신에 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이 메시지는 희망적 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이런 추가 제어에는 몇 가지 단서가 따르긴 한다. 더 많은 제어는 더 많은 책임을 의미한다. 당신의 뇌가 단순히 세상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상을 예측하고 게다가 자신의 배선까지 바꿀 수 있다면, 당신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누가 책 임을 져야 할까?  바로 당신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책임'은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비극 이나 그 결과로 경험하는 역경에 대한 책임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접할 모든 상황을 선택하지 못한다. 우울증, 불안증, 또는 그 외에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 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때로는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 오늘의 행동은 내일 뇌가 내놓을 예측이 되며, 그 예측들은 자동으로 당신이 앞으로 할 행동을 이끌어낸다. 따라서 당신 에게는 새로운 방향으로 예측하는 뇌를 길러낼 자유가 있으 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두가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누 구에게든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는 있다.
예측하는 뇌를 가진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 과 경험들을 더 많이 제어할 수 있고 더 많은 책임을 갖는다. 이러한 책임을 기꺼이 감수할 마음이 있다면, 그 가능성에 대 해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의 삶은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은 유명 한 말을 남겼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사랑하고 잃는 것이 낫다." 신경과학 용어로 말하자면, 이별을 하면 당신 은 괴로워서 죽을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외로움은 당신의 죽 음을 실제로 앞당길 수 있다. 이것은 감옥에서의 독방 감금, 곧 강요된 외로움이 왜 천천히 이루어지는 사형과 같은지 주장하는 하나의 논거가 된다.
- 한 연구에 따르면 식사 전후로 두 시간 안에 사회적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몸에서 실제로 섭 취한 것보다 104칼로리를 더 섭취한 것처럼 대사가 일어난 다. 이런 일이 매일 발생한다면 몸무게가 매년 11파운드(약 5 킬로그램)씩 늘어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견과류에 들어 있는 것처럼 건강에 좋은 포화지방을 먹었다고 해도 그날 안에 스 트레스를 받으면 나쁜 지방을 잔뜩 먹은 것처럼 신진대사가 일어난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생선 대신 감자튀김을 먹어도 좋다고 공식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뭘 먹든 그것은 당신의 양심에 따라 할 일이다. 다만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스트레스가 말 그대로 몸무게를 늘 릴 수 있다는 것이다.
- 지금까지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대뇌피질의 배 선은 압축을 가능하게 한다. 압축은 감각통합을 가능하게 한 다. 그리고 감각통합은 추상화를 가능하게 한다. 추상화는 매우 복잡한 우리 뇌가 물리적 형태가 아닌 사물의 기능을 기 반으로 유연한 예측을 내놓을 수 있게 한다. 그것이 창의성이 다. 당신은 그리고 의사소통, 협력, 모방을 통해 이러한 예측 을 공유할 수 있다. 이것이 다섯 가지 C가 인간의 뇌에게 사 회적 현실을 만들고 공유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다섯 가지 C는 다른 동물에서도 다양한 수준으로 발견된 다. 예를 들어 까마귀는 나뭇가지를 도구로 사용하는 창의적 인 문제 해결사다. 코끼리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들을 수 있는 낮은 소리로 의사소통한다. 고래는 서로의 노래 를 모방한다. 개미들은 먹이를 찾고 둥지를 보호하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 꿀벌은 같은 벌집에 사는 벌들에게 꿀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 엉덩이를 흔들면서 추상화 를 사용한다.
하지만 인간에게서 다섯 가지 C는 서로 얽히고 강화되 어64 이 다섯 가지를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넘어가게 한다. 명금songbird은 다 자란 명금 교사들로부터 노래를 배운다. 인 간은 노래하는 방법뿐 아니라 휴일에는 어떤 노래가 적합한 지처럼 노래와 관련된 사회적 현실까지 배운다. 미어캣은 반 쯤 죽은 먹이를 가져와서 새끼들에게 죽이는 법을 가르친다. 인간은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우발적 살인과 고의적 살인의 차이 또한 배우고, 각각에 대해 다른 법적 처벌을 만든다. 쥐 는 맛있는 음식을 냄새로 표시해 먹어도 안전한 음식임을 서 로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지뿐만 아니라 우리 문 화에서 어떤 음식이 메인 코스 또는 디저트인지, 각각 어떤 그릇을 사용해야 하는지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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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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