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픽테토스는 본명이 아니며, 본명이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에픽테토스'라는 단어는 그저 '획득했다' 정도의 의미이며, 그가 노예였다는 사 실을 반영한다. 우리가 아는 그의 주인은 에파프로디토스라 는 사람이다. 그는 부유한 자유인이었으며(그 역시 전직 노예 였다는 뜻이다) 로마에서 네로 황제의 시종으로 일했다. 로마 는 에픽테토스가 젊은 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는 절름대며 걸 었는데, 태생적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그 전 주인 밑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입은 부상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에파프로디 토스는 에픽테토스를 잘 대해주었고 당시 로마에서 가장 이름 난 선생 중 한 명인 무소니우스 루푸스에게 스토아 철학을 배우게 해주었다.
서기 68년 네로 황제가 죽은 후 에픽테토스는 주인에게서 풀 려났다. 로마에서 특히 머리가 좋고 교육을 잘 받은 노예들에 게 흔히 있던 관행이었다. 그래서 그는 제국의 수도에 직접 학 교를 세우고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제국 수도에서 모든 철학 을 금지한 서기 93년까지 그곳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일반적 으로 철학자들이 그랬지만 특히 스토아주의자들이 여러 황제 에게 박해를 받았는데 특히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도미티아 누스 황제가 심했다. 
- 서기 68년 네로 황제가 죽은 후 에픽테토스는 주인에게서 풀 려났다. 로마에서 특히 머리가 좋고 교육을 잘 받은 노예들에 게 흔히 있던 관행이었다. 그래서 그는 제국의 수도에 직접 학 교를 세우고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제국 수도에서 모든 철학 을 금지한 서기 93년까지 그곳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일반적 으로 철학자들이 그랬지만 특히 스토아주의자들이 여러 황제 에게 박해를 받았는데 특히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도미티아 누스 황제가 심했다.
- 우리는 우리의 능력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연이 주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에픽테토스, 《담화록》)
- 우주는 누군가의 소원을 귀 기울여 들어 주지 않는다. 우주는 다만 하던 대로 할 뿐이다. 상사, 동료 직 원, 회사 주주들, 고객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요인들이 다 그 우주의 일부다. 자, 그러면 어째서 그들이 나의 분부대로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단 말인가?
-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를(다른 사람들의 행동 결과는 차치 하고라도) 통제할 수는 없다는 기본 진리를 내면화함으로써,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확신이 담보되는 한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 결과를 차분하게 수용할 수 있게 된다.
- 에픽테토스의 스승인 무소니우스 루푸스는 특히 실천적인 스토아주의자로 유명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삶의 중요한 사안들 에서부터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발상 같은) 집에 어떤 물건들을 들일 것이며(실용적이고, 쉽게 부서 지지 않는 소재로 만든) 머리를 어떻게 자를 것인지 (쓸모없는 숱만 잘라 내는) 같은 다소 사소한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관해 조언을 했다. 그는 식단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 다. 그는 "비록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르도록 부추기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많은 쾌락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음식과 연결된 쾌락이야말로 의심할 바 없이 모든 쾌락 중에서도 가장 맞서 싸우기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말을 보탠다. "그런 몇 차례 식도 락의 순간들을 얻기 위해서는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무수히 많은 값비싼 음식들을 가져다 차려내야 한다. 요리사들은 농 부들보다 아주 높은 몸값을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잔칫상을 차리는 데 자기 전 재산을 탕진하지만, 그런 비싼 음식을 먹는 다고 더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음식에 관한 한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은 얻기 어려운 음식보다 얻기 쉬운 음식을, 곤경 을 수반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을, 가용하지 않은 것보다 가용한 것을 더 선호한다."
- 자, 문제는 이것이다. 한편으로 자기 본연의 장점을 통해 획득 하기가 극히 어려운 여러 가지 선결 조건들에 잘 들어맞는 다 소운 좋은 사람들만이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아리 스토텔레스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필수 선결 조건들의 목록을 거부할 뿐 아니라 그런 것들이 훌 륭한 삶을 방해한다고까지 주장하는 견유학파 철학자들이 있 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이 두 입장 사이에 놓인 논리적 공간을 차지한다. 무엇보다도 건강, 재물, 교육, 훌륭한 외모 등은 선호할 만한 무관심의 대상들인 반면, 이와 반대되는 것들이나 그 밖에 다른 많은 것들은 선호할 만하지 않은 무관심의 대상들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천재적인 한 수였다. 스토아 주의자들은 행복한 삶을 사회적 지위, 재원, 신체 건강, 매력도 등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목표로 만들었 다. 반면 이 모든 특성들은 비록 덕 있는 삶을 추구하는(도덕 적으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능력과는 무관한 것들이기는 해도 덕을 실천할 때 방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 여전히 선호할 만한 것들이다(아마 보통 사람들도 쉬이 이렇게 이야기할 것 이다). 선호할 만한 경험과 선호할 만하지 않은 경험을 지극 히 평범하게 대비시키는 이런 발상을 세네카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요령 있게 압축한다. "기쁨과 고통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선택을 요청한다면 나는 전자를 추구 하고 후자를 피할 것이다. 전자는 자연에 따르는 것이요, 후자 는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그것들을 평가하는 한, 그것들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존재한다. 그러나 수반되 는 덕의 문제로 보자면, 기쁨을 통해서 도달하는 덕이든 슬픔 을 통해 도달한 덕이든 각각의 경우마다 그 덕은 동일한 것이 다.” 다른 말로 하면, 온갖 수단을 다 써서 삶에서 고통을 피하 고 기쁨을 경험하라.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일이 자신의 고결성 을 위험에 빠뜨릴 때는 아니다. 수치스런 방식으로 기쁨을 추구하느니 존경스런 방식으로 고통을 감내하는 편이 더 낫다.
- 이 한 가지를 조심하시오, 오 인간이여. 그대가 그대의 의지를 얼마의 가격에 팔고 있는지 한번 보라는 말입니다. 다른 할 일이 아무리 없어도, 그대의 의지를 싸게 팔지는 마시오. (에픽테토스, 《담화록》, I. 2)
- 키잡이가 자신의 배를 난파시킬 요량이라면 그 배를 구 해낼 때 필요한 것과 똑같은 재주는 필요치 않습니다. 그가 배를 돌린다 해도 풍랑 속으로 너무 멀리 나간 것 이라면, 그는 길을 잃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 다만 주의의 결핍 때문이라 해도 역시 똑같이 그는 길을 잃을 것입니다. 인생도 완전히 똑같습니다. 만약 그대가 아주 잠깐이라도 꾸벅 꾸벅 존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그대를 떠날 것입니다. 늘 깨어 있으면서 그대가 받은 인상들을 감 시하십시오. 그대가 계속 간직할 것들은 사소한 것들이 아닙니다. 자기 존중, 명예, 성실성, 침착한 정신, 미혹 이나 두려움이나 선동에 흔들리지 않기.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바로 자유입니다. 이 모든 것을 뭘 위해 팔아치울 것인가요? 구매할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십시오.
- 하노이 힐튼으로 이송되었을 무렵 스톡데일은 정확히 에픽테 토스가 충고한 대로 하리라 결심했다. 운명의 여신이 배정한 역할이라면 무엇이든 능력껏 최선을 다해 수행할 것. 그는 두 가지에 굴복할 경우에만 적들이 이기게 된다는 것을 항상 명 심했다. 두려움과 자기존중의 상실이다. 스톡데일은 자신을 억류하고 있는 자들, 그중에 특히 그의 고문 책임자를 집중 연 구했다. 에픽테토스나 아렌트가 만약 그곳에 있었다면 둘 다 그리 봤겠듯이 스톡데일 역시 그 사내는 악인이 아니라 다만 나름의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뿐임을 이해 하게 되었다. 어쩌면 놀랍게도, 스톡데일은 그에 대한 증오심 이 아니라 오히려 존경심을 키워나갔다. 고문자의 임무는 죄 수의 정신을 깨뜨려서 공포를 주입하는 것이다. 이를 아는 에 픽테토스는 가능한 유일한 대응법을 제시한 바 있다. "아예 죽 을 작정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떻게든 살겠다고 기를 쓰는 것도 아닌 사람이 폭군의 면전에 섰을 때, 그 무엇이 그 에게 두려움을 갖게 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지요."
- 우리 모두가 매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용기를, 약간이라도 더 예리한 정의감을, 더 많은 절제를, 그리고 더 많은 지혜를 발휘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좋아질지 한번 상상해보라. 스토아주의의 도박은 카토, 스톡데일, 그 밖에 우리가 여기서 접한 사람들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우리가 사물을 균형 있게 조망하는 데, 다시 말해, 우리의 이전 모습보다 약 간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데 도움을 주리라는 쪽에 판돈을 거는 것이다.
- 나는 반드시 죽습니다, 그래야겠지요? 만약 당장이라면 나는 지금 죽고 있는 것이겠지요. 만약 조만간이라면, 나는 지금 저녁을 먹을 겁니다. 지금은 저녁 식사 시간이니까요. 그리고 나중에 그 시간이 오면 죽을 겁니다. (에픽테토스, 《담화록》, I.)
- 우리는 다 가올 자신의 죽음에 몹시 괴로워하는데 그 이유는 정확히 옥 수수나 추정컨대 지구상의 다른 대부분 종들과 달리 그런 생 각을 심사숙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 가를 아는 것이 당연히 그 사물의 본성을 바꾸지는 않는다. 단 지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꿀 뿐이다. 따라서 이런 사유 노선은 통제의 이분법이라는 스토아의 근본 사상으로 곧장 이 어진다. 죽음 그 자체는 우리 통제하에 있지 않지만(죽음은 이 런저런 방식으로 발생할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는 아주 확실히 우리 통제하에 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노력할 수 있고 또 노력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우리가 문자 그대로 우주의 먼지 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성찰할 것을 요청했다. 우리를 구성하 는 화학적인 원소들은 태양계 근처 어딘가에서 발생한 초신성 의 폭발에서 기원한 것으로, 그런 물질이 수십억 년의 진화를 거치고 나서 우리 몸을 구성하는 바로 그 분자들이 되었다. 이 것은 참으로 멋지고 경외감이 샘솟는 사유다. 하지만 에픽테 토스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 반대 방향이다. 다시 한 번, 문 자 그대로 우리는 먼지로 되돌아갈 것이고, 우리 몸의 화학물 질들은 재활용될 것이고,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에 따라 새로운 유기체들이 우리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우주의 작동 원리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게 그런 것뿐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느 말이 맞든지 우 리는 우주의 먼지로부터 생겨났고, 우주의 먼지로 되돌아갈 것이다. 어쨌든 이런 생각 덕분에 우리는 우주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가 살아 있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시간이 그야말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훨씬 더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이 찰나의 시간이 언젠가 종료되리라는 전망 때문에 낙담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전혀 유익하지 않은 태도다.
-  "논리가 분노를 이기는 법이다. 정당한 분노조차도 금방 불합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차갑고 무심한 논리에 따르라."
-  "쓸쓸한 상황이란 도움받지 못하는 자의 처지입니다. 왜냐하면 군중 속에 있다고 안 쓸쓸 한 것이 아니듯이 인간은 단지 혼자이기 때문에 쓸쓸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 속에 담겨 있는 함의에 따 르면 '쓸쓸하다'라는 용어는 어떤 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그를 해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앞에 노출된 것을 의미하기 때 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스스로 외로움 을 맞이할 준비를 또한 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만으로 충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좋은 것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것들을 사랑하는 법을 알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또 그런 것들 둘 다와 상관없는 것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사랑의 힘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에픽테토스, <담화록>, II. 22)

- 《엥케이리디온》에서 뽑아낸 열두 가지 과제들
1. 당신의 인상들을 검사하라. “그러니 모든 강렬한 인상에 대 해 이렇게 말하기를 즉각 실천에 옮기세요. '네가 가진 건 고작 인상일 뿐, 그 인상의 원천은 아니다.' 그런 다음 그 인상을 그 대가 가진 규준으로 검사하고 진단하세요.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그리고 그대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아니라면, 이렇게 대꾸할 준비를 하십시오. '그러면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오."
2. 사물의 덧없음을 상기하라. "그대를 기쁘게 하거나 혹은 그 대를 이롭게 하거나 혹은 그대가 점점 더 애착을 갖게 되는 어 떤 특별한 것들의 경우에, 그것이 본래 어떤 것인지를 상기하 세요. 덜 귀중한 것들에서 출발하십시오. 예를 들어, 그것이 그대가 좋아하는 그릇이라면, 나는 그릇 조각 하나를 좋아해' 라고 말하세요. 그러면 그 그릇이 깨졌을 때 당황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아내나 자식에게 입맞춤을 할 때 이렇게 되 뇌세요. 나는 죽을 운명인 존재에게 입맞춤 하고 있다.' 그러 면 그들이 그대에게서 떠나가더라도 그렇게 심난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3. 보류 조항을 명심하라. "어떤 행동을 계획할 때마다 그 계획에 따라 벌어질 일들을 마음속으로 시연하세요. 만일 목욕을 하러 나서는 길이라면, 목욕탕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장면들을 마음속에 그려보세요. 물을 튀기고, 밀치고, 소리치고, 거기다 그대의 옷을 훔쳐 가는 사람들까지 말입니다. 만일 애 초에 그대가 '나는 목욕을 원하지만 동시에 내 의지가 자연과 계속 잘 어우러지게 하고 싶다[즉 이성을 사회생활에 적용하 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대는 더 침착하게 그 행동을 완료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행위마다 이렇게 해보세요. 그 방법을 쓰면 만약 어떤 일이 벌어져 그대의 목욕을 망치더라도 그대는 이 미 이렇게 생각하고 있게 될 것입니다. '하긴, 그게 내 유일한 의도는 아니었어, 나는 내 의지가 자연과 계속 조화를 이루게 하려고도 했던 거야,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내 심신이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면 그렇게 조화를 이루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겠지."
4. 지금 여기서 덕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늘 유념하라. "모든 도전에 대해서, 그대가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 그대 안에 보유한 자원을 기억하세요. 잘생긴 남자나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자극을 받을 때는 그대 안에서 극기라는 정반대의 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고통에 직면하면 지구력을 발견할 것 입니다. 모욕을 당하면 인내를 발견할 것입니다. 조만간 그대 는 도덕적인 수단을 이용해 참아내지 못할 단 하나의 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점점 더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5. 잠깐 멈춰서 숨을 깊게 들이마셔라. "기억하세요, 맞거나 모욕당하는 것만으로는 해를 입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을요, 해를 입으려면 지금 그대가 해를 입고 있다고 믿어야만 하는 겁니다. 만약 누군가가 그대를 도발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대 의 마음이 그런 도발의 공모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상들에 충동적으로 반응하면 안 되는 본질적인 이유입니다. 반응을 드러내기 전에 잠깐 시간을 가지세요. 그 러면 통제력을 건사하기 더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6. 타자화하라. “우리의 공통 경험을 마음에 떠올림으로써 우 리는 자연의 의지와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친구가 잔을 깰 때, 우리는 곧바로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저런 운이 안 좋군 요.' 그렇다면 그대 본인의 잔이 깨질 때도 똑같은 인내의 정신 으로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무 거운 일들로 넘어가 보지요. 누군가의 아내나 자식이 죽었을 때, 우리 모두는 판에 박힌 듯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긴, 그게 인생이지 뭐.' 하지만 자기 가족 중 누가 관련되기 라도 하면, 즉각 '이걸 어떡하지, 난 어떡하지!'라고 말하지요. 그러지 말고 비슷한 상실이 타인을 괴롭게 할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기억하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7. 말은 조금만 하되 제대로 하라. “대개의 경우 침묵을 그대 의 목표로 삼으세요. 오로지 필요한 말만 하고, 그것도 간략하 게 하세요. 말해달라고 요청을 받는 드문 경우라면 말을 하되, 검투사, 말馬, 운동, 음식과 술 같은 진부한 것들, 흔해 빠진 것 들은 결코 말하지 마세요.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칭송하거나, 비난하거나, 비교하거나 하지 말고, 어쨌든 그들에 관해서 수 군거리지 마십시오."
8. 친구를 잘 골라라.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과 형제처럼 교제 하는 일을 피하십시오. 꼭 그래야만 하더라도, 그들 수준으로 주저앉지 않게 조심하세요. 알다시피 어떤 친구가 불결하면 그의 친구들 역시 어쩔 수 없이 약간은 불결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처음에 얼마나 깨끗한 사람들이었는지는 문제가 안 됩니다."
9. 모욕에는 유머로 응수하라. "누군가가 그대에게 악담을 하 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런 소문들에 맞서 자신을 변 호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대신에 이렇게 응수하십시오. 맞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야기의 절반은 모르는 모양이군요. 더 많이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이것은 에픽테토스의 고유한 유머에 심오한 지혜가 함께 실려있음을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예시다. 
10.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지 말라. "대화 중에 지나치게 길 게 자신의 업적이나 모험에 관해 논하지 마세요. 단지 그 이유 는 그대가 자기 위업을 상세히 늘어놓으며 즐거워해도 그것이 곧 다른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은 기쁨을 얻게 되 는 걸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11.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하라. "어떤 사람은 서둘러서 씻습니다. 그가 제대로 안 씻었다고 말하지 말고 서둘러서 씻었다고 말하세요. 어떤 이는 포도주를 많이 마십니다. 그가 안 좋게 술을 마신다고 말하지 말고, 많이 마신다고 말하세요. 그들의 사정을 알기 전까지 그들의 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어떻 게 안단 말입니까? 그것이 분명히 이것을 알아들어 놓고는 저것에 동의하게 되는 처사로부터 그대를 구원해줄 것입니다."
12. 당신의 하루를 반성하라. “오늘 하루 그대가 한 일들을 하 나하나 곰곰이 짚어 보기 전까지는 그대의 연약한 눈꺼풀에게 잠을 허용하지 마세요.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가, 어떤 일 을 했고 어떤 일을 남겨 두었나? 그렇게 시작하십시오, 그렇게 당신의 행위들을 검토하세요, 그러면서 수치스런 일들에 대해 서는 스스로 꾸짖고, 선한 일들에 대해서는 기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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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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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움은 한밤의 어둠에서 흘러나와 우리를 에워싸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 에픽테토스는 두려움을 시작하고 멈추고 통제할 모든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스토아 철학에서 가 장 크게 요구되는 부분이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선과 악 이외의 모 든 것에 무관심한 사람, 연민과 공감 같은 감정에 인색한 사람으 로만 묘사될 때 게으르고 냉정한 인간처럼 비쳐질 수 있다. 하지 만 모든 감정 하나하나에 완전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는 모든 것에 손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매일 심문을 받기 위해 총이 겨누어진 상태에서 걸어갈 때 속으로 구호를 읊조렸다. '두려움을 통제하라, 죄책감을 통제하라, 두려움을 통제하라, 죄책감을 통제하라.' 심문을 받으면서 일시적으로 통제력을 잃을 때면 내 눈에서 어김없이 어른거리는 두려움 과 죄책감을 덮기 위해 시선을 돌리는 방법을 고안했다. 심문관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고 맹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심문관의 왼쪽 귓불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아마 내가 약간 사 시라고 생각했는지 그것에 익숙해진 듯했다. 감정을 통제하는 일 은 어렵지만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 했다. "자신의 파멸도 구조도 모두 자신 안에 있다.
- 스토아 철학자들에 따르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과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에픽테토스는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세상에는 우리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이 있다. 의견, 동기, 욕망, 혐오처럼 자신의 행동과 관계된 일은 통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신체, 재산, 명성, 사회적 지위처럼 자신 의 행동과 관계없는 일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본래 자유로우며 구속이나 방해의 대상이 아니다. 이와 달리,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통제로 인해 쉽게 허물어질 수 있고 굴종적이며 구속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원리는 간단하고 이해하기도 쉽다. 하지만 남다른 태도를 요구하며 이는 곧 남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남다른 태도란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합리적 선택을 내리고, 사회적 위계 혹은 도덕적 위계에 따라 변하는 생각이나 복잡한 법 령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원칙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 그 원칙은 바로 '나는 그 문제를 진실로 통제하는가'이다.
- 윌리엄 어빈은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기쁨과 평정심에 도달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덜 느끼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미 일어난 일에 집착하느라 낭비하는 시간이 줄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즐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또한 이 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평정심도 어느 정도 느끼게 된다. 스토아 철학을 실천하고 살면서 아주 소소한 것에도 쉽게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지금 자 신의 모습에, 지금 살고 있는 삶에, 우리가 살게 된 이 우주에 기쁨 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세네카를 비롯한 여러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했듯이 우리가 유일하게 의지해야 할 것은 냉철하지만 이성적이고 솔직한 시각으로 상황을 보는 것이다.
어떤 악도 죽은 사람을 괴롭히지 않음을 생각하라. 저승은 무서 운 곳이라는 말은 그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해 야 한다. 어떤 어둠의 힘도 망자를 위협하지 않으며, 저승에 감옥 이나 불로 이글거리는 강, 망각의 강이나 심판하는 의자, 죗값을 치르는 죄인이나 족쇄 없는 자유 속에서 다시 군림하는 폭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라. 이는 우리에게 근거 없는 두려 움으로 고통을 안겨주는 시인들의 상상력일 뿐이니. 죽음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우리의 고통은 그 경계선 너머로 가지 못한다. 죽음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 누워 있던 평온한 상태로 우 리를 되돌려준다. 만일 누군가가 죽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다면 그는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죽음은 선도 악도 아니다. 실재하는 것만이 선이나 악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죽음 그 자체는 비실재로, 모든 것을 무(無)로 바꾸며 우리를 운명의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게 만든다.'
-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켈리 맥고니걸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기비판을 하면 동기부여가 약해지고 자기 절제력이 부족해진다. 그뿐 아니라 우울증의 가장 뚜렷한 전조 중 하나이기도 해서 '긍정 의지력'과 '부정 의지력'을 모두 고갈시켜 버린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기연민은 특히 스트레스와 실패에 직 면했을 때 자신을 우호적이고 친절하게 대하는 감정으로 동기부 여를 강화하고 자제력을 길러준다.?
이러한 측면들은 오늘날 스토아 철학의 본보기를 가장 잘 보여준 넬슨 만델라와도 관련이 있다. 그는 감옥생활을 하면서 엄청난 변화 를 겪었다. 처음에 그는 그의 친한 친구이자 법률고문인 올리버 탐 보가 표현한 대로 "열정적이고 감정적이고 예민하며 모욕과 생색내기를 통한 비꼼과 앙갚음에 쉽게 분개하는 사람이었다." 8 하지만 27 년이 지나고 그는 안정되고 신중한 정치인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그 이유를 보자면 "감옥에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통제해야만 하는) 한 가지 는 오직 자기 자신이었다. 그곳에선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방종하거 나 자기 수련이 느슨해질 여지가 없었다."
- "감옥에서 다른 많은 이들은 무너졌지만, 만델라는 오히려 단련 되었다. 그는 타인과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짐을 지우지 않았다. 또한 굴복하는 사람들을 결코 비난하지 않았다. 그저 한낱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델라는 수십 년 동안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 연구했고 깊은 동정을 느꼈다. 어떤 면에서 그는 전 인류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누구도 자 신이 당했던 대로 취급받지 않기를 원했던 것이다. "
여기서 볼 수 있듯 자기 용서에 대한 경험은 자기 수련을 발전시킨 결과이자 원인으로 작용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오이 맛이 쓴가? 그렇다면 버려라. 길에 찔레덤불이 있는가? 그렇다면 피해 돌아서 가라. 그렇게 하는 것 으로 충분하다. “이 세상에 도대체 이런 게 왜 생겨난 거야?"라는 말은 말아라. 고통에는 한계가 있으며 상상으로 그 무엇도 가미하 지 말아야 함을 명심한다면 고통은 견딜 수 없는 것도, 영원히 지 속되는 것도 아니다. 고통은 육체에 해롭거나(그렇다면 육체가 그 렇다고 분명히 표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신에 해롭다. 하지만 나름의 침착함과 평정을 유지하는 것은 정신의 힘이다....
- 문제가 까다롭고 재미없는 방식을 써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스토아 철학에 기반한 태도로 접근할 때 실제로 성공과 기쁨이라는 결 실을 맺게 된다. 윌리엄 어빈은 이렇게 쓰고 있다. “혹여 누군가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한다는 이유로 스토아 철학자를 비관주의자로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심리학 연구를 살펴보면, 부정적 상황 설정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실천은 주체 를 '완전한 낙관주의자'로 탈바꿈시키는 효과를 보여준다."
- 신체적인 것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하는 일에 늘 한계를 둔다면 그것은 당신의 일과 삶에 퍼져 들어갈 것이다. 한계란 없다. 고원들만 있을 뿐.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거길 올라서 넘어가야 한다. (이소룡)
-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러한 '재능 부족'이라는 변명을 비난하며 이 렇게 쓰고 있다.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에 대한 숭배를 부 추긴다. 천재적 인물을 기적적인 존재로 간주해야 우리 자신을 비교 하고,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 누군가를 '신'과 같다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는 우리가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 라이언 홀리데이는 이렇게 말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속이다. 우리는 환상을 걷어내고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 혹은 두려워하는 것을 다 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앞에 가로놓인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외관이 아니라 본질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인식 문제와, 세상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측 면에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문제를 다룬 것이다. 우 리는 이렇듯 겉으로 보이는 상대방의 인식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다. 만일 우리가 스토아 철학에 기반한 행동을 한다면 외부적 사건들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우리의 영향력과 통제력 범위에 있는지 를 바탕으로 판단을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현상을 정확히 인식 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잠시 멈춤과 평정심을 활용하여 불완전한 인식의 베일을 걷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는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는 외적인 측면이다.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다른 측면 도 있다. 이와 똑같이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자기 자신, 자신의 욕 구,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세네카는 내면의 자아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사실주의를 적용 하는 스토아 철학의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잘못에 대한 자각은 구원의 첫 단계다.' 나는 에픽테토스의 이 말 을 아주 좋아한다. 자신이 나쁜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바람이 없는 것이다. 우선 자신 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인지해야 이를 개선할 수 있다. 어떤 사 람들은 자신의 실패를 자랑한다. 자신의 결점을 장점으로 생각하 는 사람이 잘못을 바로잡을 생각을 하겠는가? 따라서 최선을 다 해 자신의 잘못을 입증하고 자신에 대한 모든 증거를 스스로 조사 해야 한다. 우선 검사의 역할을, 이어서 판사, 마지막으로 변호사의 역할을 하라. 때로는 자신에게 가혹해야 한다
- 세네카는 코르시카 섬에서 8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어머니 헬비아에게 보내는 위로」라고 알려진 편지를 그의 어머니에게 썼다. 자신 때문에 슬퍼하지 않도록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쓴 편 지였다. 부당한 취급을 받아 망명 보내진 그는 어머니의 기분을 북 돋아주려고 온 힘을 다했다! 세네카가 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은 그 가 마음의 단순한 비결을 통해 망명이라는 상황을 어떻게 바꾸었는 지 보여준다. 그는 이렇게 썼다.
저는 한창때처럼 즐겁고 쾌활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가장 좋 은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일에 대한 모든 압력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나름의 관심사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어느 때는 가벼운 공부를 하며 즐기기도 하고 어느 때는 마음의 본질과 우주의 본질을 열심히 탐구하기도 합니다. 마음은 
- 세네카는 망명을 처벌로 생각하지 않고' 기회로 생각했다. 그는 망명생활 속에서 기쁨을 누렸고 그야말로 '즐겁고 쾌활하게' 지낸 다고 말했다. 네로 황제에게 조언하는 직책에서 신경 써야 할 일들 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대상으로 마음을 돌려 세상, 땅, 바다, 자신을 에워싼 우주현상과 자연현상, 심지어 신까지 탐 험했다. 그는 네로의 궁정에서 보내야 했던 위험하고 복잡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난 변화로서 이러한 생활을 환영했다.우선 세상의 나라들과 그 나라들의 위치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라 사이를 흐르는 바다의 특성을 생각하고 번갈아 생기는 썰물과 밀물을 생각합니다. 이어서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두려 움을, 천둥, 번개, 세찬 바람, 수증기, 쏟아지는 눈과 우박으로 만 신창이가 된 지역을 살펴봅니다. 아래의 모든 영역을 살펴봤으니 마지막으로, 마음은 하늘 가장 높은 곳으로 날아올라 가장 웅장한 광경을, 신성한 광경을 즐기고, 마음이 영원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동안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모든 것을 되새깁니다
- 진정성은 우리가 취약점을 인정하는 동시에 세상의 여러 도전에 맞서 스스로 무장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복잡한 상태이지만 일단 숙련이 되면 내면의 평정심이 생기고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는 측면에서 확실한 이점이 있다. 우리는 지속 적으로 소소하면서도 도덕적인 선택을 해나갈 때 변함없이 일관되 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보다 더 훌륭한 일은 없다.
<왕좌의 게임>(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미국 드라마-역주)에 등장 하는 티리온 라니스터가 존 스노우에게 훈계하는 장면은 취약성과 진정성의 갑옷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는 부분인 것 같다.
네가 누구인지 잊지 마. 세상은 절대 잊지 않으니까. 그걸 네 강점 으로 만들어. 그럼 결코 네 약점이 되지 못할 테니까. 그걸 갑옷처 럼 입으면 누구도 널 상처 입히지 못할 거야!
- 세네카는 상당히 어두운 표현을 쓰긴 하지만 과거와 미래 사이의 연관성을 제시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재에 감사하고 적극적으로 임하고 몰두하기 위해서 과거와 미래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 제시한다. 다음의 인용문은 애석함이 담겨 있 긴 하지만, 이장 첫 부분의 인용문처럼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여기에 나온 말들을, 의사 결정 과정에서 우선 잠시 시간을 내어 사 색으로 차분함과 평정을 유지하는 동기부여제로 활용하길 바란다. 이어서 스토아 철학에 기반한 생활방식으로 다시 돌아오는 동기부 여제로 활용하길 바란다. 그래야 미래의 두려움을 현재의 선의에서 나온, 대담하고 고결한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 이는 바람직한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이는 성공을 향한 반복적인 노력에 도움이 되는, 작은 후회와 실패만 과거에 남아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노인들 가운데 한 명을 붙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오셨군요. 백세 혹은 그 이상의 나이가 그대를 짓 누르고 있군요. 이제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세요. 그 시간 가운데 대금업자, 애인, 보호자, 의뢰인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 부부 싸움을 하고 자책하고 사회적 의무로 시내 여기저기를 황급히 뛰어다니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 생각해보세요. 스 스로 자초한 병들과 사용하지 못하고 버린 시간들도 생각해보세 요. 이제 남은 시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길지 않다는 걸 알 게 될 것입니다. 기억을 더듬어보세요. 언제 확고한 목적이 있었 는지, 의도대로 지나간 날들이 얼마나 적은지, 언제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지, 언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는지, 언제 마음이 괴 롭지 않았는지, 그 긴 인생에서 어떤 일을 이루었는지, 스스로 무 엇을 잃었는지도 모르는 사이 그대의 삶을 앗아간 사람들이 얼마 나 많은지, 근거 없는 슬픔, 어리석은 즐거움, 탐욕스런 열망, 사회 의 온갖 유혹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온전한 자신 가운 데 남겨진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말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예상보 다 빨리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 예상보다 빨리 죽어가고 있다는 점에 연연하지 말고 과거를(당신의 기억과 발자취를, 후회와 성공을 이용하여 현재를 고무시켜야 한다. 현재를 살아야 한다. 바람직하게 살아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 당신 이 속도를 늦추고, 시간과 마주하고, 삶의 교훈을 현재에 적용할 힘 과 인내심을 갖추고 있다면 과거는 당신의 현재를 형성하는 그릇으로서 당신 곁에, 당신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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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지

인문 2023. 7. 14. 12:20

중국 고전중에서 인물지는 비교적 우리에게 낯설다. 이 책은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에서 관리로 활약하던 유소가 지은 책이다. 유소는 삼국시대 위나라 학자이며 저술가, 정치가, 정론가이다. 자는 공재孔才이며  생몰 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한말 건안(196~220)부터 위초 정시(240~248)까지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물지는 주로 인재등용 및 평가방버, 평가의 오류, 적재적소의 배치방법, 인재등용의 어려움 등을 요약정리한 인사관련 전문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역대 왕조의 인사행정부서에서 교과서처럼 활용했다고 한다. 유소가 한창 활약하던 서기 230년경은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였다. 이런 시기에 중국에서는 인사와 관련한 전문서적이 집필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중국의 문화와 행정력이 상당히 앞서 있음을 말해준다.

국가나 군대와 같은 대규모의 조직을 이끌어 나가려면, 그 조직을 관장할 인재를 얼마나 잘 뽑느냐 그리고 뽑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승진을 시키며 어떻게 상벌을 주느냐에 따라 그 조직의 흥망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물지가 지어질 당시의 중국이나 현대사회 대기업 회장님이나 조직을 이끌어가는 수장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분야이다.

조직에서 인재를 어떻게 가멸하고 어떻게 발탁하여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타고난 재질이 모두 다르고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올바른 인사를 위해서는 재질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인재를 배치할 것을 강조한다. 인간처럼 다양한 성격, 품격, 재능, 유형을 가진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론적인 문제를 인물지에서 다루고 있는데, 주제의 특성상 구체적이라기보다는 비교적 추상적이며, 현실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수준이라기 보다는 철학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드러나는 것으로 재질을 알아보는 방법으로 구징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품성이 소박하고 담백하여 안으로는 총명하고 지혜롭고 밖으로는 밝고 명랑하며, 근육은 튼튼하고 골격이 단단하며, 목소리는 맑고 안색에는 미소를 띠며, 의표는 정중하고 용모는 단정하여, 아홉가지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이 바로 순수한 품덕을 가진 사람이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고, 다섯가지 범주로 사람의 재질을 분류한다. 또한 인재의 내면을 관찰하여 서로 다른 성정의 유형을 12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특성 및 장단점을 제시하고 있다.

인물지의 내용 중에서 현대사회에서도 충분히 활용가능한 내용은 인재를 감별하는 여덟가지 방법인 팔관과 인재를 감별할 때 흔히 범하는 오류를 기술한 칠류일 것이다. 2천년이 지난 현대사회에서도 인간의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책 말미에 첨부된 부록에는 인물지의 원문과 해석이 실려 있다. 원문 자체는 그다지 길지 않다. 지은이는 원문의 각 장에 해당하는 내용마다 중국 고전에 실린 유사한 내용 및 중국 역사에 기록된 내용을 적재적소에 삽입하여, 원문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조직의 리더나 인사담당자라면 반드시 곁에 두고 읽어볼만한 책이다.


#인물지 #인사 #인사관리 #인재 #사람쓰는법 #조직관리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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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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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기의 기술

인문 2023. 6. 30. 11:26

-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빼기를 무시한다. 이런 경향이 얼마나 보편적이 고 강력한지, 전문가들은 학습을 아예 '지식 구성 knowledge construction 이라고 말한다. 31 우리가 어떤 지식을 잘못 알고 있을 때, 이 지식 위에 다 또 다른 지식을 쌓는 것은 지진으로 손상된 고속도로 위에다 콘크리 트 평판을 얹어서 기존의 지식을 강화하겠다는 발상이나 마찬가지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낡은 생각을 버리고 안정된 기반 위에 새로운 생각 을 쌓는 것이 옳다. 그런데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사회적인 차원 에서든 개럿 하딘이 말했던 공유지의 비극을 배웠기 때문에 이것을 의 심하지 않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하딘은 다민족 사회에 반대하려고 자기가 고안한 공유지의 비극 이론을 사용 한우생학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성격이 다른 공동체들 사이의 협력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때는 하딘의 이론이 특히 더 해롭다. 그런 발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든 자기의 마음을 활짝 열어놓으려면 직관적으로 틀렸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에도 과감하게 빼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빼기를 무시하는 행동은 지구에게도 더 나쁘다. 닥터 수스Dr. Seuss 가 반세기 전에 환경주의의 고전적인 저서 《로렉스The Lorax》를 통해서 밝혔듯이, 만약 우리 인류가 후세에 여러 가지 선택지를 남기고 싶다면 일단 지금은 여러 가지 것을 뺄 필요가 있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 도가 일정한 기준선 위로 올라가 있을 때는 이산화탄소를 조금 더 천천 히 배출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좋은 출발점이긴 하지 만 그것만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 금 우리는 무언가를 뺄 필요가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더하기의 특성과 근원을 이해함으로써 서로 이질적인 세상 들에서 더 적은 것을 찾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당신이 빼기를 하는 소 수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라면, 당신은 변화라는 우리의 시장에 팽배 한 비효율성을 이용해서 변혁을 이뤄낼 것이다.
- 빼기에 대한 생각을 연마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학계에 몸담은 덕 분이다. 어린 시절에 잔디를 깎으면서 했던 생각은 지난 10년 동안 다 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마음속에서 다듬어졌고, 마침내 여러 가지 증거로 열매를 맺었다. 이제 나는 이 증거를 최대한 많은 사람과 공유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짜릿한 흥분감을(동시에 의무감을 느낀다.
그 증거를 검토하기 전에,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먼저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내 생각을 소개해야겠다. 내가 어떤 목 표 지점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며 기울였던 수천 시간은 모두 다음 두 단 락에 압축되어 있다.
이 문제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은, 내가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 단순함이나 우아함 혹은 '더 적은 것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이다 Less is more같은 정태적인 현상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였다. 빼기는 일종의 동작이 다. 그리고 더 적다는 것은 최종 상태다. 더 적은 상태는 때로 빼기의 결 과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상대적인 적음 상태는 서로 많이 다르다. 우리가 훨씬 더 희귀하고 더 보람 있는 유형에 도달하는 방법은 오로지 빼기라는 행 동을 통할 때다.
다른 말로 하면 빼기는 더 적어지는 것을 추구하는 행동이지만 행동을 덜 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실, 더 적어진다는 것은 행동을 더 많이 하거나 적어도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고속도로를 없 애는 일은 고속도로를 그냥 두거나 아예 처음부터 고속도로를 건설하 지 않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우리 연구팀이 실험을 통해서 발견한 사 실이지만 정신적인 차원의 빼기에도 많은 노력이 든다. 그러므로 빼기 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미니멀리스트가 될 필요는 없다. 느긋해야 한 다거나 반기술주의자여야 할 필요도 없다. 손쉬움을 인기의 비결로 삼는 철학을 따로 가질 필요도 없다. 그런 철학을 빼기와 혼동할 경우 에는 빼기를 하나의 선택지로 바라보지 않으며, 또 빼기를 하는 데 필 요한 힘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시하는 태도가 나타난다.
- 아주 간단한 행동을 하는 데도 뇌의 여러 부위 사이에서 조정 과정 이 필요하다. 그렇긴 하지만, 특정한 보상 제도의 역할을 보면 우리가 연구 주제로 다루는 더하기 행동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어 떤 것을 획득하는(즉 더하는) 행동은 뇌의 중요한 동기부여 시스템과 일 치하기 때문에, 빼기 같은 대안 행동을 추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 버릴 수 있다.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음식을 구하는 데 오랜 세월 도움이 되었던 더하기에 뒤따르는 이 보상 체계의 작동 전원을 끄기는 어렵다. 공짜로 얻었지만 작아서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는 스케이트보드 모자 를 내가 실제로 머리에 쓸 가능성이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그 체계는 작동을 멈추지 않는다.
- 핵심을 말하면, 내가 비록 우리 연구팀의 공유 연구 폴더를 온갖 불 필요한 파일들과 하위 폴더들로 채우기는 하지만, 우리의 뇌는 정신적 처리 과정에 과중한 부하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동 보호장치를 진화적 으로 발전시켜왔다. 사람이 잠을 잘 때 뇌세포가 축소하는데, 38 이것은 미세아교세포 microglial cell들이 들어와서 뉴런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용 되지 않는 시냅스들을 청소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39
발생 초기에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진 시냅스가 신경 활동에 의해서 필요한 부분만 남고 제거되는 현상인 시냅스 가지치기 synaptic pruning 도 바로 자동화된 빼기 과정이다. 과일나무가 사방으로 가지를 성장시키 는 것처럼, 우리는 뉴런과 뉴런 사이에 시냅스를 성장시킨다. 수분을 많 이 섭취한 나무는 점점 더 커지고 튼튼해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시냅스 연결점을 많이 사용할수록 이 부분은 점점 크고 강해진다. 물론 번 성하는 과일나무에는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소중한 햇빛이나 수분이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에 분배되어서 결과적으로 낭비가 일어나지 않 도록 하기 위해서다. 뇌에서 미세아교세포는 가지치기를 통해 덜 유용 한 시냅스를 제거해서 다른 시냅스가 더 많은 에너지와 공간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더 적은 것을 활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 다. 생태계와 종과 세포라는 각각의 차원에서 자연선택은 양방향으로 작용한다. 우리에게는 더하기 본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더하기 빼기 두 가지로 형성되어온 삶의 환경으로 둘러싸여 있다.
- 괴베클리 테페 인근에는 음식을 요리하는 난로도 없었고 집도 없었으며 장난감 방울도 하나 없었다. 그곳 주변에는 그 시기에 사람들이 모여서 살았다고 추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슈미트가 괴베클리 테페에서 발견했지만 발견하지 못한 바로 이 점 이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한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기념 물이나 그 밖의 다른 것들을 문명에 추가할 수 있는 시간과 기술과 자원이 마련되었다는 기존의 이론에 구멍을 냈다. 신전의 돌기둥을 만들 고 옮기고 또 배치하려면 일꾼 수백 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괴 베클리 테페의 신전은 그 지역에 형성된 마을보다도, 심지어 농경 생활 보다도 시기적으로 앞선다. 수렵채집인이 약 25명씩 떼를 지어 다니던 세상에서는, 괴베클리 테페에 신전을 지으려면 여러 부족 사이에 유례 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협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슈미트는 논문 '신전이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도시가 생겼다First Came the Temple, Then the city'에서 새롭고 개선된 이론을 제시했다. 14 논문 제목이 말하듯이(아무래도 진실에 가깝다고 믿을 수 있는 내용인데) 괴베클리 테페에 신전을 짓는 행위 덕분에 수렵채집꾼이 한곳에 모여 살았을 것 이라는 주장이었다. 15 신전이라는 발상은 이질적인 집단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최초의 구실이었다. 그런 다음에 신전을 짓고 또 유지하 는 데는 장기간의 헌신이 필요했으므로, 수렵채집인들은 일시적인 식 량원을 찾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렵채집 활동을 하기보다는 한 곳에 정착해서 농업에 종사하게 되었다고 슈미트는 주장한다. 괴베클 리 테페의 주변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그 신전이 세워지고 난 뒤 1,000년에 걸쳐 사람들이 정착해서 밀을 경작하고 가축을 길렀음을 말해준다.
괴베클리 테페에서 발견된 사실은 문명과 더하기 사이의 관계를 뒤 집어놓는다. 어떤 집단이 아무리 신전 짓기를 열망하더라도, 우선 농사 를 지으면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정착 생활을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순서상 먼저라고 학자들은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슈미트는 이것과 정반대가 진실이라고 말했다. 즉 신전을 지으려는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농업이 시작된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더하기는 인류에게 문명을 가져왔다.
무언가를 짓고 세우고자 하는 문화적 경향은 우리가 빼기를 무시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나타남에 따라서, 상대적인 많음에 대한 또 하나의 유서 깊은 문화가 나타났다. 그것 은 바로 물질문화다. 내 신발장에 있는 제각기 다른 스타일의 열네 켤레 운동화는, 사람들이 자기의 새로운 사회적 삶을 추구할 수 있게 해 주는 실용적인 다양성이 그만큼 확장되었음을 말해준다.
- 곤도는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의 전체에 걸쳐 물건을 '열정적이고 완벽하게' 없애버리려는 자신의 고집스러움을 자세하게 설명 하며, 눈에 잘 띄는 더 적음을 고집하는 단계를 펼쳐보인다. 그녀의 가 르침 가운데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물리적 공간을 정리하 면 심리적 공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라는 말이다. 이 가르침은 에 머슨을 기쁘게 해주는 방식으로 발상과 사물을 연결한다.
이것은 곤도의 가르침을 내가 해석한 내용이다. 당신은 이 해석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관없다. 그녀가 우리에게 준 가장 귀중한 교훈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하고 더 적은 것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에 있다.
- 곤도의 메시지가 독특하고 강력한 것은 그녀가 '불꽃이 이는 기쁨' 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집안 살림의 정리수납에 대해서 그녀가 하는가 장 기본적인 조언은 자기가 원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혹은 자기 집에 맞 지 않는 것을 없애라는 것이지만, 그녀는 이 논리를 뒤집어서 인간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녀는 "기쁨을 주는 것은 지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 두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버리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결코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하는 티셔츠, 주방용품, 레고 세트 등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그렇기에 곤도는 주장한다. 기쁨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은 무조건 자기 생활에서 빼버리라고
'불꽃이 이는 기쁨spark Joy' 이라는 곤도의 기도문이 얼마나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는지, 이것은 하나의 운동이 되었고 밈meme이 되었 다. 그리고 그녀의 다음 책 제목이 되었다.36 우리가 빼기를 고수하고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이해하도록 설득하려면 빼기 행위 자체를 재미 있게 만들어야 한다.
- 어느 하나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선택지들의 전체 범주를 무시 하고 간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쁘다. 그러나 시스템에 관한 한 빼 기라는 방식을 무시하면 훨씬 더 큰 피해가 발생한다. 이미 객관적인 사실로 드러났듯이, 우리가 놓치고 넘어간 선택지가 거의 대부분 더 나은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대니얼 카너먼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레빈의 통찰은, 만약 어떤 사람이 행동을 바꾸려고 할 때 이것을 행 할 방법이 두 가지 있으며, 하나는 좋은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방 법이라는 것이다. 좋은 방법은 구속력을 발휘하는 요인을 줄이는 것이지 추진력을 발휘하는 요인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레빈이 '나쁜 방법'이라고 말한 것은 좋은 행동에 대한 보상이든 나쁜 행동에 대한 처벌이든 더하기를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더할 경우 시스템 내부에 긴장이 커지기 때문에 나쁜 방법이라고 레빈은 설명한다.
만일 나나 아내가 에즈라에게 아이패드로 동영상을 보지 않고 책을 읽으면 쿠키를 주겠다고 약속한다고 치자. 이런 제안은 아이패드를 될 수 있으면 멀리해야겠다는 에즈라의 동기를 강화한다. 그러나 에즈라 에게 쿠키를 주겠다고 한 약속은 에즈라가 아이패드의 유혹에 저항하 는 것을 예전보다 더 쉽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에즈라는 결국 그 유혹에 넘어간다. 이렇게 되고 말 때 쿠키를 주겠다고 했던 약속은 에즈라를 더 깊은 좌절의 늪으로 밀어넣는다.
- 그러나 나는 유혹적인 아이패드가 그 상황에서 에즈라 앞에 없게 하거나 아이패드의 화면이 보이지 않게 하거나 아이패드의 배터리가 방전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도 에즈라가 아이패드를 보는 대신 책을 읽게 하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 이것은 레빈이 시스템을 바 꾸는 '좋은 방법'이라고 했던 한 가지 예다. 이 방식은 실질적으로 긴장 을 완화하기 때문이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똑같다. 다른 모든 조 건이 동일하다면,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단체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추가하는 것은 인종차별주의 제도를 뒷받침하는 인센티브를 없애는 것보다 못하다. 변화를 추구하는 이 두 가지 방식은 각각 더하기와 빼기의 방식이다. 둘 다 인종차별주의가 덜한 방향으로 시스템을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 어떤 복잡한 시스템의 전반적인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 이 시스템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을 뺀다는 발상은 여전히 직관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엠바카데로 고속도로가 철거된 뒤에 교통 상황이 예전보다 더 나빠지지 않자 사람들이 어리둥절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의 서울에서는 2005년에 청계고가도로가 철거된 뒤에 교통 상황이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사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캐리는 예측할 수 없는 시스템에 엄청나게 많이 맞닥뜨린다. 이 시스템은 온갖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데, 그 모든 가능성을 일일이 다 따질 시간적인 여유가 캐리에게는 없 다. 그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환자들의 상태가 시시각각으로 악화되 기 때문이다. 가능한 모든 변수의 개수와, 이 변수들을 놓고 가늠할 수 있도록 캐리가 힘들게 획득한 능력을 감안할 때, 그녀가 사용하는 환자 분류 절차는 놀랍도록 간단했다. 고도로 훈련된 모든 응급실 의사가 사용하는 이 환자 분류 절차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판단을 유도한다.
* 이 환자에게 목숨을 살리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가?(조금도 지체할 수 없는 긴급한 환자인가?)
* 이 환자에게는 얼마나 많은 자원이 필요한가?
* 이 환자의 활력징후는 얼마인가? 
이게 전부다. 환자 분류 절차는 응급실이 맞닥뜨리는 시스템을 핵심만 남기고 모두 빼버린다. 그 덕분에 내 동생이 응급 환자를 치료하 는 상황이 개선된다.
- 빼기부터 먼저 하는 것이 변화의 힘을 더 증폭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장난감만이 아니다. 과제 관리 교과서들은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먼저 나온 결과물이 그다음에는 입력물이 되는 일련의 변화가 일어날 때, 초기에 나타나는 변화들이 나중에 나타나는 변화들보다 상대적으 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비용도 상대적으로 덜 드는 경향이 있음 을 일깨운다. 35 문제가 있는 변기 레버는 실제로 설치되었을 때보다도 안상태일 때 발견되는 것이 훨씬 낫다. 카테터가 세균에 감염되지 않고 깨끗하게 유지되도록 의료진이 손을 씻는 것은 세균 감염이라는 사건 이 터지고 난 다음에 대처하는 것보다 사람의 목숨은 더 많이 구하고 비용은 조금이라도 덜 든다. 마찬가지 이치로, 빼기를 먼저 할 때 타성이라는 잘 닦여져 있는 길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진다.
그러니까 만일 당신이 바꾸고 싶은 시스템의 본질을 발견하기 위해 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뺀다면, 젠가에서처럼 반드시 빼기부터 먼저 하라. 그런 다음에 '눈에 잘 띄는 더 적음'을 고집하라.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이렇게 뺀 것을 나중에 다시 사용할 수 있음을 잊지 마라. 도넛 가운데의 구멍은 빼기 과정에서 이 단계를 이해하는 데 잊을 수 없는 이미지를 제공한다. 속이 꽉 찬 벽돌이 안나 키클라인의 K 벽 돌로 바뀌었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름으로 튀길 밀가루 반죽의 가운 데 부분을 뺌으로써 도넛이 더 나아질 수 있음을 누군가가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이 변화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문서는 184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메인주에 살던 핸슨 그레고리 Hanson Gregory 라는 10대 청소년 이 변혁을 이루어낸 주인공이다. 핸슨은 엄마가 튀긴 케이크는 가운데 부분이 왜 늘 눅눅한지 궁금했다. 엄마에게 물어봤지만 엄마는 모르겠 다고 말했다. 그러자 소년은 기름에 튀기려고 준비해둔 동그란 형태의 도넛 반죽 두 개에서 가운데 부분을 포크를 떠냈다. 엄마가 만들어둔 원형 밀가루 반죽을 고리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엄마는 이것을 그대로 튀겼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도넛에 최초로 구멍이 생겼다. 
도넛 반죽에서 가운데 부분을 제거하자 도넛이 더 골고루 튀겨졌으 며, 또 계피 설탕을 뿌릴 표면적도 예전보다 넓어졌다. 문자 그대로, 더 적음이 더 많음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 도넛의 위상이 몰라보게 좋아졌 음은 말할 것도 없다. 1934년의 시카고 세계박람회에서 이 도넛은 '세 기적 발전의 히트 음식'으로 선포되었다. 
- 우리에게도 응급실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행동을 하고 적응할 여지를 제공하는 점검목록표가 있다.
* 개선하기 전에 빼라(환자분류)
* 빼기를 먼저 하라(젠가)
* 눈에 잘 띄는 더 적음을 고집하라(스프링스틴의 음반)
* 뺀 것을 재사용하라(도넛의 구멍)
- 3R 운동은 온실가스가 대기로 배출되는 흐름을 억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가 화석연료의 소비를 줄이면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온 실가스가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대기에 온실가스를 추가하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필요가 있다. 온실가스를 줄여야(즉 빼 야) 하지만 3R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데 3R 운동이 실제로는 해로울 수 있다. 0을 도저히 깰 수 없는 기준선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음수의 존재 자체를 '불가능하다'고 생각 하는, 어린아이와 파스칼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사고방식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3R 운동만 고집한다면, 현재의 탄소 배출량 수준을 우리로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기준선으로 간주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에즈라에게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의 현재 탄소 배출량은 과학자들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을 이미 넘어섰다.
현재 상황이 전체 지구 차원에서 획기적인 돌파를 이루려면 먼저 빼기부터 할 필요가 있다. '빼기 Remove'가 가장 우선적인 R이 되어야 한다.
- 센딜 멀레이너선 sendhil Mullainathan과 엘다 샤퍼 Eldar Shafir는 《결핍의 경제학 scarcity》 이라는 책에서 경제적 빈곤과 나쁜 결 정 사이의 관계에 대해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상식을 뒤집었 다. 프린스턴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샤퍼와 당시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수였던 멀레이너선은 '가난한 사람들이 나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만 놓고 보자면,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의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좋아할 내용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 일반적인 추론이 반대로 바뀌어야 함을 보여 준다. 나쁜 결정이 사람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난하 다고 생각하는 인지의 영향이 나쁜 결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동생들이 먹을 음식을 살까, 아니면 공부를 하기 위한 책을 살까 고민하느라 정신적 대역폭을 쓸 수밖에 없는 고등학생은 그 책들의 내용을 생각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게다가 이 학생의 대역폭은 이미 책과 음식 사 이의 딜레마에 소모되기 때문에, 비록 책을 무료로 제공받는다고 하더 라도 자기가 놓인 상황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처리할 정신적인 공간이 상대적으로 적다.
가난한 사람들은 종종 이런 정신적 결핍 상태에 갇힌다. 반면에 그 렇지 않은 사람들은 노자와 허버트 사이먼이 권하는 대로 느긋함의 호사를 누린다.
- 책을 직접 필사해야 했던 시절에 히브리어 성경은 이미 "많은 책을 만드는 데는 끝이 없고, 많은 연구는 몸을 힘들게 만든다"라고 경고했다.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정보가 너무 위협적이라고 여긴 나머지, 시칠리아 지방장관이던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124통의 도덕 적 조언이 담긴 편지 가운데 두 번째 편지를 '독서를 할 때의 산만함'에 할애해서, 너무 많은 책을 읽으면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동원할 수 있는 정신적인 역량을 너무 많이 써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정보가 서가에 있든, 이메일함에 있든, 뇌에 있든, 정기적이고 의도 적으로 정보를 빼는 것은 다른 대안보다 훨씬 낫다. 잠을 자면 스냅스 가 제거되는데, 잠을 자지 않으면 뇌는 과부하가 걸리고 작동이 느려진 다. 깨어있을 때 정보를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뇌는 멀쩡한 고전 을 펄프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정보 과부하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래 서 누구보다도 똑똑하다는 교수들이 멍청하게도 '이메일이 교수들을 멍청하게 만든다'는 경고의 이메일을 마구 뿌려댄다.
좋은 소식도 있다. 정신의 저장고에서 정보를 빼어 버리고 나면, 쓸데없이 메모리 용량을 잡아먹던 컴퓨터 프로그램을 닫았을 때처럼 뇌의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는 점이다.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일할 때 우리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수 있고, 그 지식을 지혜로 증류할 수도 있다.
- 교육학자들은 미취학 아동과 우리 모두가 무언가를 학습하는 방법 에 이름을 붙여두었다. 이 학습법은 바로 '구성주의 constructivism'다. 18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은 자기 주변과 자기 마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 해서(즉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의미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덤프트럭만 가지고 놀 때 에즈라가 의미를 구성할 수 있는 상황 은 단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에 젖은 바위에서 미끄러 져 내려오면서 마찰력을 경험할 수 없다는 뜻이고, 태양 에너지가 검은 배수관 안으로 모여서 그곳이 놀이터 전체에서 가장 따뜻한 공간이 되 는 열역학 현상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뜻이며, 또 우유 상자를 쌓아올린 망루에서 떨어지면서 중력과 편심력off-center force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에즈라의 새로운 놀이터가 모든 경험을 하도록 유도할 때, 에즈 라는 다양한 육체적 경험 속에서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었다.
- 우리가 의미를 구성하는 상황들이 반드시 물리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한 대밖에 없는 덤프트럭에는 '여러 명이 이것을 공유해야 한다' 는 조건이 자연스럽게 마련되었다. 적어도 소유자들 사이에 서열이 정 해져야만 했다. 에즈라는 제2주인이었는데 제1주인인 말콤과 빠르게 친해졌다. 이렇게 공유하거나 혹은 공유하지 않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 다. 놀이터의 절반을 덮은 해변 같은 샌드박스에 웅덩이가 형성되면 이 미취학 아동들은 꼬마 건축가가 되어서 웅덩이와 웅덩이 사이로 운하 를 만들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놀이터가 아이들의 행동을 어떻게 발전시키 는지 바라보고는 기념비적인 건축이 문명보다 앞선다는 이론을 떠올 렸다. 괴베클리 테페에 있는 거대한 암석 기념물은 너무 커서 한 무리의 수렵채집인이 조각해서 옮겼을 수는 없다. 에즈라의 놀이터에 있는 버려진 목제 데크 조각들은 너무 커서 미취학 아동 한 명이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힘을 합친다.
몇 대의 덤프트럭을 가지고 자랐든, 우리는 그렇게 놀면서 우주의 법칙에 대한 발상을 형성했다. 지식은 친구나 교사와 나누는 말과 행동, 그리고 빼기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에서 나온다. 통찰이 어디에서 비롯 되든, 구성주의에서의 구성은 세상의 작동 원리에 대한 기존의 발상에 새로운 정보를 추가함으로써 지식을 쌓는다는 사실을 말한다. 우리의 새로운 발상은 낡은 발상을 토대로 한다.19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발상은 우리의 세계관과 자아관을 형성 한다. 총체적인 차원에서 지식 구성은 우리에게 인간만의 독특한 강점 을 제공하는 문화적 진화 과정이다. 20 지식을 쌓을 때 우리는 문명을 건 설할 때와 마찬가지로 더하기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아는 것이 모르 는 것보다 낫긴 하다. 그러나 문명을 건설할 때와 마찬가지로, 발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빼기를 함으로써 세상을 개선할 기회와 편익은 그만 큼 더 커진다.
- 사람들은 네 살짜리 아이들이 산타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나 사이비 종교단체 신도들이 가지는 허황한 종말론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 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잘못된 생각을 벗어던지 기를 거부한다. 평생을 사색과 명상으로 보낸 훌륭한 시인이자 스승인 랄프 왈도 에머슨도 예외는 아니었다. 생각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그가 어떻게 규정했는지 보자.
“생각을 아주 조금만 확대해도 외부의 사물들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에머슨은 사물에 대해서는 변화의 유형을 제한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에 대해서는 오로지 '확대'만이 변화의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바라보았다.

- 당신이 꼭 기억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뒤집어라: 더 많은 것을 추구하기 전에 더 적은 것을 추구해라. 응급실에 서 의사가 환자를 분류할 때처럼,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세부 사항을 빼 라. 그런 다음, 변화를 시도할 준비가 되면 뺐던 것을 맨 먼저 보태라. 젠 가 게임을 하듯이 빼기를 먼저 한 다음에 더하기를 하라는 말이다. 그런 데 꼭 기억해야 할 게 있다. 더 적음이 손해가 아님을 당신이 깨닫는다고 해서 당신의 청중이나 고객도 그걸 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니 사람들 에게 이 책의 내용을 말해주되, 한동안은 '빼기'라는 표현을 삼가라. 대 신 '깨끗하게 비우기'나 '덜어내기'나 '드러내기' 같은 표현을 사용해라. 그리고 전환을 시도해라.

확장하라: '더하기 그리고 빼기'를 생각해라. 자연과 마야 린은 더하기와 빼기가 변화를 지향하는 상호보완적인 접근법임을 보여준다. 더하기는 빼기를 위한 전제여야 하지 빼기 자체를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된다. 또, 자기 안의 다른 자아를 동원해서 문제에 접근해라. 아버지라는 자아는 자전거 설계자가 놓친 것을 볼 수 있다. 당신 안에 그런 자아가 부족하 다면, 편집자를 고용하면 된다. 그리고 반드시 전체적인 '장'을 바라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행동중단과 음수는 불가 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은 긴장이 존재하는 공간이고, 긴 장을 제거하는 것은 시스템을 바꾸는 '좋은 방법'이다. 다양성을 더하고 인종차별주의를 빼라.

증류하라: 사람에게 집중해라. 자전거는 균형을 잡지 못해도 어린아이는 균형을 잡을 수 있다. 기쁨을 주는 것이 드러날 때까지 그 밖의 다른 것 은 벗겨내서 빼버려라. 잡다한 것을 빼는 행위는 기쁨을 가져다 주며, 최 적의 경험이라는 심리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적인 차이를 가려내는 자 기만의 타고난 감각을 이용해라. 매머드 한 마리를 빼는 것은 매머드 한 마리를 더하는 것보다 더 큰 변화다. 복잡성을 받아들이되 본질을 붙잡 으려고 노력해라. 물체는 잊어버리되 변수로 작용하는 요인들은 기억해 라. 그리고 역학 과목에는 낙제하지 말고 통과해라. 정보는 빼고 지혜는 더해라.

지속하라: 빼기를 계속 해나가라. 더 적음을 부인할 수 없는 진리로 만들 수 있는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음반 <도시 변두리에 깔린 어둠>을 눈 에 보이게 만들었다. 코스타리카는 탄소중립을 눈에 잘 띄는 것으로 만 들었다. 어린 시절 내 친구이자 사촌인 칩은 운전자가 사라져버린 고카 트를 웃음의 소재로 만들었다. 도넛에 구멍을 만들려고 뺐던 밀가루 반죽으로 호두 모양의 도넛을 만드는 것처럼, 뺐던 것을 재사용할 수 있음을 잊지 마라. 뺀 것을 가지고서 또 다른 선택의 유산을 만들 수 있다. 수비어만, 레어 로빈슨, 엘리너 오스트롬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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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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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힘

인문 2023. 6. 18. 08:43

- 아프리카의 경우는 지리가 최대의 장애물이며 따라서 고립의 영향 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면, 유럽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해서 근 대 문화를 생성하게 한 평야지대와 일정한 크기의 선박들이 항행할 수 있는 가항하천들의 가치가 특히 돋보이는 곳이다. 아프리카와 유럽 간의 발전의 차이는 <배를 띄울 수 있는 강>들의 유무에서 시작되 었다. 아프리카에는 큰 강들이 많지만 주로 고지대에서 낙하하면서 거대한 폭포를 이루고 게다가 서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이런 조건은 실제로 무언가를 운반하는 교역로로 이용하는 데는 무용지물이다. 반면 유럽의 경우는 라인 강, 다뉴브 강 등이 평지에서 서로 연결되면 서천연 국경 역할을 했고 쉽게 배를 띄울 수 있는 조건은 이 지역 교 역 시스템의 발전을 부추겼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남유럽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서유럽이 누리는 지리적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 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유럽에 불어닥친 재정 위기로 인한 구제금융 과정에서 북쪽의 유럽과 남쪽의 유럽 사이에 이념적 분열과 함께 <지리적 분열> 또한 가시화되고 있다.

- 수세기 동안 중국과 인도 간의 교역은 매우 미미한 수준에 그쳤는데 이 국면이 조만간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현실적인 국경이 티 베트-인도 국경이고 보면 중국이 늘 이 지역을 통제하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에게는 일종의 지정학적 공포가 있다. 만약 중국이 티베트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면 언제고 인도가 나설 것이다. 인도가 티베트 고원의 통제권을 얻으면 중국의 심장부로 밀고 들어갈 수 있는 전초기지를 확보하는 셈이 되는데 이는 곧 중국의 주요 강인 황허, 양쯔, 그 리고 메콩 강의 수원이 있는 티베트의 통제권을 얻는 거나 다름없다. 티베트를 <중국의 급수탑>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에 버금가는 물을 사용하지만 인구는 다섯 배나 많은 중국으로 서는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사실 관건은, 인도가 중국의 강물 공급을 중단시키고 싶은가가 아 니라 과연 인도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가이다. 수세기에 걸쳐 중국은 이런 일만은 절대로 발생하지 못하도록 해왔다. 배우 리처드 기어와 자유티베트운동Free Tibet Campaign은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부당한 점령을 줄곧 규탄해 왔고 이제는 한족의 티베트 정착 정책에 대해서 도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 티베트 독립운동 단체, 할리우드 스타들과 세계 2위의 경제대국과의 싸움은 그 결과가 불을 보듯 뻔하다.
리처드 기어가 됐든 오바마 대통령이 됐든, 서구인들이 티베트 문 제를 거론하면 중국은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위험하다거나 체 제 전복을 시도하는 것도 아닌데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중국인 들은 티베트 문제를 인권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기보다는 <지정학 적 안보>의 틀에서 본다. 중국인들은 서구인들이 중국의 안보를 침해 하려 한다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중국의 안보가 저해된 적은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설사 티베트에서 한족 에 대항하는 봉기가 일어난다고 해도 인구학과 지정학이 티베트 독립에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 예전에는 만주와 내몽골, 신장 지역 주민의 대다수는 만주족과 몽골인, 그리고 위구르족이었다. 그러나 이 세 지역의 대다수도 중국계 한족이 점하고 있거나 적어도 다수에 근접해 가고 있다. 그리고 티베 트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 상황은 한족에 대한 분노로 2008년에 일어난 봉기처럼 자주권 을 주장하는 행동이 앞으로도 이어질 거란 의미를 갖는다. 당시 라싸 에서 중국계 티베트인들에 반발해 일어난 시위에서 상당수 한족의 재산이 방화 및 약탈당했고 21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 국의 엄격한 탄압은 지속될 것이며, 자유티베트운동 또한 중단되지 않을 것이며, 티베트인들의 고난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승려들의 분신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족 또한 끊임없이 몰려올 것이다.
- 막대한 인구의 대다수가 심장부에 몰려 있는 중국은 이들을 분산시킬 곳을 찾고 있는 중이다. 미국인들이 서부로 눈을 돌렸듯이 중국인들도 먼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철마가 유럽 이주민들을 코만치와 나바호족 땅에 실어 날랐듯이, 현대의 철로 만든 수탉(즉 기차)은 한족 을 티베트 땅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 예전에 나는 런던 주재 중국 대사를 한 고급 프랑스 식당에서 만난 적이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질문에 대한 저우언라이 총리의 답 변으로 많이 인용된 그 유명한 말을 듣게 될 거라고 은근히 예상하고 서 말이다. 당시 닉슨은 이렇게 물었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이 무어라고 보십니까?"
이에 대한 저우언라이의 답은 이랬다.
“그에 대해 얘기하기엔 너무 이른 것 아닌가요?"
아쉽게도 내 예상은 빗나갔지만, 대신 나는 인권이라 부르는 것들 이 중국에 전면적으로 도입되었을 경우 어떻게 폭력과 사망이 만연 하게 된다는 것인지를 묻는 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에게서 엄중한 훈계를 들어야 했다.
"당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화에서 당신들의 가치가 먹힐 거 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
- 중국 선박들은 태평양을 향하든 인도양을 향하든, 남중국해를 나서는 순간부터 여전히 난관에 직면한다. 하지만 중국에게 가스와 원유를 수송하는 이 물길이 없다면 중국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프 만의 산유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베트남을 지나가야 한다. 주목할 점은 베트남이 최근 들어 미국에 접근을 시 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인 필리핀 근해 도 지나야 한다. 그러고 나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가 마 주하고 있는 말라카 해협이 나온다. 이 세 나라 또한 외교적, 군사적 으로 미국과 연결돼 있다. 말라카 해협의 길이는 거의 8백 킬로미터 에 달하는데 가장 좁은 곳의 너비가 채 3킬로미터를 넘지 않는다. 따 라서 이곳은 늘 요충지이자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중 국은 여전히 여기에 묶여 있는 취약한 입장이다. 말라카 해협 인접국 들, 그리고 중국이 접근하기에 가까운 모든 국가들은 하나같이 중국 의 부상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들 나 라의 대다수가 중국과 영유권을 놓고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 중국은 남중국해의 거의 전 지역은 물론 그 아래를 지나는 것으로 여겨지는 에너지 공급의 소유권도 주장한다. 말레이시아, 대만, 베 트남, 필리핀, 그리고 브루나이까지도 중국과는 물론이고 자기네끼 리도 영유권을 두고 갈등하고 있다. 일례로 필리핀과 중국은 미스치 프 암초를 놓고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남중국해의 난사군도에 위치한 넓은 암초인 미스치프도 언젠가 제 이름에 맞는 역할을 하게 될 날이 오겠지만 수백 개에 달하는 산호섬 하나하나도, 심지어 물 위 로 불쑥 솟아 있는 바위 하나까지도 외교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작은 바위 하나라도 전관수역(연안국이 어업과 자원 등을 발굴할 수 있는 특 권수역)이나 탐사권, 영유권 문제에 관한 잠재적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영유권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중국은 준설과 간척사업을 병행하면서 분쟁 대상인 일련의 암초들과 산호섬들을 인공섬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한 예로, 파이어리 크로스 리프는 이름 그대로 단순한 암초였는데 중국이 항만과 활주로를 건설해서 버젓이 난사군도의 한 섬으로 만들어 버렸다. 또 다른 암초에는 아예 포병대를 배치하기도 했다. 새로 건설한 활주로로 전투기를 착륙시킬 수 있게 된 중국은 현재의 영공을 넘어서는 항공통제권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2015년 여름 미 국방장관 애시 카터는 이런 발언을 했다.
"물속의 바윗덩어리를 비행기 이착륙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동은 주권 행위로 볼 수는 없으며 이는 국제 항공 및 해상 운송의 규제 대 상이다."
이 발언은 중국이 이 지역의 군사 태세를 방어에서 공격과 방어 양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발표한 직후에 나왔다. 이러한 움직임은 규칙 제정자가 되고자 하는 중국의 의도를 강조하고 있지만 인접국들 에게는 당근과 채찍 모두가 될 수 있다.
- 지정학 전문 저술가인 로버트 D. 카플란은 20세기 초반에 카리브 해가 미국의 손에 들어갔듯, 남중국해가 중국의 손아귀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미국은 자국의 육상 영토를 공 고히 통합하고 나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아우르는 대양 강대국이 되었 다. 그리고 쿠바에서 스페인을 몰아내면서 주변의 해양을 평정했다. 중국 역시 태평양과 인도양을 아우르는 대양 강국이 되고자 한다. 이 목표를 위해 중국은 미얀마,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지 의 심해 항구에 투자하고 있다. 이들 나라와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 해서 향후 중국 해군이 이곳을 방문하거나 주둔하게 될 경우는 물론 통상 라인을 중국 본토와 연결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면서 이곳을 사들이고 있다.
인도양과 벵골 만의 항구들은 중국의 미래를 공고히 다지는 보다 큰 계획의 일부분이다. 중국은 미얀마 서부 해안부터 시작해서 벵골 만을 지나 중국 남서부로 들어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했 다. 이는 에너지 공급량의 거의 80퍼센트가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는 것에 불안을 느낀 베이징 정부가 그 의존도를 줄여보려고 고안해낸 방법이다. 중국이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얼마간 이해되는 것은 2010년 미얀마 군사 정권이 조금씩 바깥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했을 때 이 나라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나라들 가 운데 중국이 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미얀마와 잽 싸게 우호 관계를 수립했고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미얀마 정 부에 개인적인 호감을 표하기까지 했다. 이들 나라가 미얀마에 영향 을 미칠 수 있다면 중국을 지속적으로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금 까지 중국은 지구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게임에서 선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미얀마 정부를 신뢰하는 한 워싱턴은 미얀마를 수호하는 한편 언제고 중국을 이곳에서 밀어 낼 수 있다.

- 1803년, 미합중국은 프랑스로부터 뉴올리언스가 있는 루이지애나 지역 전체의 지배권을 사들였다. 이 지역은 멕시코 만에서 시작해서 북서쪽으로 로키 산맥의 미시시피 강 지류들의 상류까지 뻗어 있다. 이 땅의 면적은 오늘날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그리고 통 일 독일을 합친 넓이와 맞먹는다. 신생 미합중국은 이 땅을 흐르는 미 시시피 강의 유역을 기반으로 번영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
1천5백만 달러짜리 서명 하나로 1803년에 미국은 루이지애나를 구 입하여 영토를 두 배로 늘렸다. 이는 곧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내륙 수로 수송권을 확보한 셈이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역사학자 헨리 애덤스는 이렇게 썼다.
"미합중국이 투자 대비 이렇게 많은 것을 얻은 일은 이제껏 없었다.”
거대한 미시시피 유역에는 전 세계 다른 하천들에 비해 훨씬 긴 가항수로들이 많다. 수원이 산악지대에 있지도 않으며, 그토록 광대한 거리를 가로질러 대양으로 가는 길 내내 그만큼 차분하게 흐르는 강 은 그 어디에도 없다. 풍부한 유역 수계의 공급을 받는 미시시피 강은 미니애폴리스 부근에서 발원해서 남쪽으로 약 2,897킬로미터를 흘러 멕시코 만에서 끝난다. 이렇듯 강들은 큰 항구로 이어지며, 수상 기를 이용한 운반은 예나 지금이나 육로운송보다 훨씬 싸게 들어 당 시 한창 상승일로이던 교역을 위한 천연 수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처럼 미국은 지리적으로 전략적 깊이를 확보함과 동시에 방대하 고 비옥한 토지, 그리고 사업을 펼치기에 적합한 대서양 항구들이라 는 대안을 얻었다. 또한 동부 해안을 새 영토와 연결해 주는 동서 루 트를 확보했고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수계는 인구 밀도가 희박한 지 역들을 서로 묶어주면서 단일 통합체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 당시 신생 국가는 거인, 다시 말해 대륙의 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의식이 있었다. 미국인들은 점차 서쪽으로 전진하면서도 남쪽을 호시탐탐 엿본 것은 물론 <왕관에 박힌 보석>인 미시시피의 수호에도 신경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1814년, 영국은 물러갔고 프랑스는 루이지애나를 포기했다. 이제 스페인 사람들만 내보내면 됐다. 그리고 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 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나폴레옹과 전쟁을 치르느라 이미 지칠 대 로 지쳐 있었다. 미국이 세미놀족을 스페인령인 플로리다까지 밀어 내자 스페인 본국은 머지않아 정착민 물결이 밀려오리라는 것을 감지했다. 1819년, 스페인은 플로리다뿐 아니라 덤으로 꽤 넓은 토지까지 미합중국에 넘겼다.
- 루이지애나 구입은 미국 입장에서는 심장부를 얻은 격이었다. 그런 데 1819년에 맺은 대륙횡단조약도 거의 이에 버금가는 가치를 안겼 다. 스페인은 미국이 현재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의 경계인 북위 42도 선 위인 극서부 지역에서 사법권을 행사하는 것을 인정했다. 반면 스 페인은 그 아래인 미국 영토의 서쪽을 지배한다는 계약 내용을 받아 들였다. 그리하여 미합중국은 <태평양>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즈음 대다수 미국인들은 1819년에 플로리다를 얻은 것을 가장 큰 승리로 여겼지만 당시 국무장관인 존 퀸시 애덤스는 일기장에 이 렇게 기록했다.
"결정적으로 태평양 방향의 경계선을 획득한 것이 우리 역사에 위 대한 시대를 열게 한다."
- 19세기가 지나면서 스페인의 힘은 점점 쇠약해졌지만 여전히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건 사실이었다. 1898년, 미국은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군대를 파견해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은 물론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까지 손에 넣었다. 이 모든 지역이 유용했지만 특히 괌이야말로 필수적인 전략적 자산이었다. 쿠바 또한 강대국이 지배19세기가 지나면서 스페인의 힘은 점점 쇠약해졌지만 여전히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건 사실이었다. 1898년, 미국은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군대를 파견해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은 물론 필리 핀에 대한 지배권까지 손에 넣었다. 이 모든 지역이 유용했지만 특히 괌이야말로 필수적인 전략적 자산이었다. 쿠바 또한 강대국이 지배19세기가 지나면서 스페인의 힘은 점점 쇠약해졌지만 여전히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건 사실이었다. 1898년, 미국은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군대를 파견해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은 물론 필리 핀에 대한 지배권까지 손에 넣었다. 이 모든 지역이 유용했지만 특히 괌이야말로 필수적인 전략적 자산이었다. 쿠바 또한 강대국이 지배한다면 전략적 위협이 될 소지가 있었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그 위협은 제거됐다. 그리고 1962년, 소련과의 분쟁에서는 소련이 마지못해 굴복함으로써 다시 한 번 그 위협은 제거됐다. 현재 특별히 쿠바를 지원하는 강대국은 없는 상황 이고, 쿠바 또한 문화적으로나 어쩌면 정치적으로도 점차 미국의 영 향권 아래 다시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14년 말,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가 선언됐다.)
미국은 신속히 움직였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긴 미국 은 쿠바와 플로리다 해협을 확보함으로써 카리브 해에 성큼 다가 설 수 있었다. 미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하와이의 퍼시픽 아일랜드 를 합병해서 자국의 서부 해안으로의 안전한 접근을 도모했다. 또한 1903년에는 파나마 운하의 배타적인 권한을 보장받는 조약을 체결했 다. 무역 붐이 일어났다.
이 시기야말로 미국에게는 세계무대로 나선 것 이상을 보여주는 시기였다. 전 세계를 향해 무력시위 이상의 것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 금세기에 치명적인 게임은 향후 중국과 미국, 그리고 그 지역 다른 국가들이 체면을 잃지 않고 서로 분노와 원망의 우물을 깊이 파는 법 없이 위기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대체로 미국이 승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런데 덜 알려진 사실은 러시아가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고 몇 달 뒤 미국도 모스크바가 사정권에 드는 주피터 미사일을 터키에서 철 수했다는 점이다. 이는 곧 양측이 타협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자국 국민들에게는 자기들이 굴복하지 않았다고 내세울 수 있게 한 일종의 절충 행위였던 것이다.
21세기에 태평양에서는 강대국들 간에 이뤄야 할 타협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100퍼센트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 른 나라들에게 분쟁 지역 내로 들어오기 전에 통지할 것을 요구하며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중국과, 일부러 통지하지 않고 비행을 강행 하는 미국 간의 타협 여부가 초기 사례로 부각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은 방공식별구역을 지정하고 쟁점화하면서 얻은 게 있다. 또 미국은 이를 준수하지 않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얻은 것이 있다. 결국은 기나 긴 게임이 될 것이다.
- 거의 모든 국가들이 복잡한 외교적 퍼즐로 얽혀 있는 이 문제의 지 역에서 핵심 국가들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싱가포르인 것 같다. 이 세 나라들은 비좁은 말라카 해협에 걸터앉아 있는 형세 다. 날마다 이 해협을 통해 1천2백만 배럴의 원유가 점점 더 목이 마 른 중국과 이 지역 다른 나라들로 향한다. 이 세 나라들이 친미 성향을 버리지 않는 한 미국은 핵심적인 이익을 수호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중국이 정치적으로 이념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은 굳이 공산주의를 전파할 생각이 없다. 냉전시대 러시 아처럼 보다 넓은 땅에 대한 욕망을 불태우지도 않는다. 중국은 자국의 상품들이 전 세계로 전달되는 항로 대부분의 경비를 미국이 담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영향력 이 중국에 지나치게 근접하지 않는 선에서의 얘기다.
물론 논쟁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때로 민족주의를 국 민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래도 양측은 타협점을 찾을 것이다. 다만 서로의 입장을 잘못 해석하 거나 지나친 도박을 걸 경우 사태는 위험해진다.
이 경우에도 발화점은 있다. 미국과 대만이 맺은 조약에 따르면, 중 국이 자국의 23번째 성으로 주장하는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은 개 입하게 되어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을 촉발할 임계점은 미국이 대만 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경우나 대만의 독립선언이다. 그러나 아직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아서 이 지역의 수평선에서 중국군이 쳐들어 오는 장면은 보기 어려울 것 같다.

- 앞서 봤듯이 프랑스는 유럽의 기후와 교역로 그리고 천연 국경선의 수혜를 가장 많이 누리는 최적의 위치를 점한 나라다. 하지만 프랑스 는 현재 독일 땅이 된 북유럽평원의 평야지대로 인해 지리적으로 완 전히 보호받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독일이 단일 국가가 아닐 때 는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프랑스는 러시아에서도 꽤 멀고, 몽골 유목민들과도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으며, 영국과는 해협이 가로막고 있다. 이는 곧 전면적인 공격 시도나 프랑스 전 국토에 대한 점령 시도는 격퇴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프랑스는 모 스크바 턱밑까지 치고 들어가 세력을 과시할 수 있었을 정도로 유럽 대륙에서는 막강한 나라였다.
그런데, 독일이 통일되고 말았다. 원래 독일은 일종의 개념으로만 존재해 오고 있었다. 그런 상태가 수세기 동안 이어졌다. 즉 10세기에 신성로마제국이 되는 동프랑크 족의 지역이 이후 5백 년 동안 게르만 군소 왕국들이 모여 있어 때로 게르마니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던 것이다. 1806년 신성로마제국이 와해된 뒤 1815년 비엔나 의회에서 39개 소규모 주들의 연합체 가 독일 연방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이는 북독일 연방의 결성으로 이어졌고, 독일의 승전부대가 파리를 점령하면서 보불전쟁이 끝나자 1871년 마침내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지리 적으로는 자신보다 몸집이 크고 인구는 같은, 그러나 산업화에서 훨 씬 앞서서 더 높은 성장을 자랑하는 이웃을 곁에 두게 되었다.
독일의 통일 선언은 프랑스를 무릎 꿇리고 난 직후 파리 베르사 유 궁에서 행해졌다. 이로써 프랑스의 방어선에서 가장 취약한 지 점이었던 북유럽평원이라는 틈을 메우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로부 터 70년 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런 일이 한 번 더 일어난다. 프랑 스가 전쟁 대신 외교를 통해 동쪽으로부터의 위협을 중립화하려는 시도를 하려 했다가 또 다시 독일에게 당하기 때문이다.
- 독일은 독일대로 항상 프랑스보다 훨씬 심각한 지리적 문제를 겪고 있었다. 북유럽평원의 평야지대는 독일이 발 뻗고 잘 수 없는 이유 두 가지를 안겨주었다. 서쪽에는 통일 강국 프랑스가 오랫동안 버티고 있으며, 동쪽에는 러시아라는 거대한 곰이 웅크리고 있었다. 독일에 게 최악의 상황은 이 둘이 통로인 북유럽평원을 건너 한꺼번에 침공 해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 이지만 이에 대한 공포는 재앙 수준의 결과를 예상한다.
프랑스는 독일을 두려워하고, 독일은 프랑스를 두려워한다. 1907년 프랑스가 러시아, 영국과 손을 잡고 3자동맹을 맺었던 것도 이런 배 경에서였다. 독일이 이 세 나라 모두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 국 해군은 필요할 경우 독일의 북해와 대서양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범위를 추가했다. 그래서 독일의 해결책은 또 다시 프랑스를 선제공격하는 것밖에 없었다.
독일이 처한 지리적 위치라는 딜레마와 호전성은 흔히 독일 문제로 알려진 상황을 야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 이후 실제로는 수세 기에 걸친 전쟁을 뒤로하고 유럽이 이에 대한 해답으로 삼은 것은 유 럽 땅에서 유일한 압도적인 세력, 즉 나토 설립을 주도하고 향후 유럽 연합의 태동을 가능케 한 미국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거였다. 전쟁 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러나 미군에 의해 보장받은 안전으로 유럽인 들은 경이로운 실험에 착수했다. 바로 서로를 믿으라는 요구를 실천 하는 것이었다.

- 현재도 영국인에게는 <위대함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남아 있다. 이 기억에 따르면 세계가 그렇게 되길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영국 은 그것을 해야 할 나라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생 각은 여전히 많은 영국인들에게 설득력을 지닌다. 영국은 유럽 가운 데 남아 있으면서도 여전히 유럽 바깥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해결해 야 할 숙제다.
영국을 유럽연합의 바깥쪽으로 자꾸 내모는 두 가지 쟁점은 서로 연결돼 있다. 그것은 바로 <주권>과 <이민자 문제>다. 일부 유럽 통합 회의론자들의 지지를 받는 반反유럽연합 정서는 유럽연합이 정하는 엄청난 분량의 법률과 그 내용에 반발한다. 하지만 회원국들 간의 합 의의 일부이므로 영국도 이를 준수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언론은 언론대로 유럽인권보호조약 때문에 강제로 추방할 수 없는 외국인들이 영국에서 저지른 심각한 범죄들을 대서특필한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몰려오는 경제적 이민과 난민의 물결 속에서 영국에 오기를 희망하는 이민자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반유럽연 합 정서 또한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영국인들은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 이 더 많은 이민자들을 영국으로 보내려 한다고 믿고 있다.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은 최근 유럽이 겪고 있는 경기 침체로 인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 영향은 대륙 전체에 걸쳐 우파 정당의 약진 등 범민족주의에 반대하는 일체의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결과 적으로 유럽연합이라는 구조도 약화시킨다.

- 러시아라는 개념이 성립된 시기는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우 크라이나인 드네프르 강 연안의 도시들과 키예프 공국으로 알려진 동슬라브 부족들의 느슨한 연합 형태가 그 기원이다. 그러나 당시 한 창 제국을 확장해 나가던 몽골인들이 남부와 동부 지역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13세기 무렵이 되자 이들의 공세는 정점에 치달았다. 결국 당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러시아는 모스크바 북동쪽과 그 주변 에 다시 터를 잡았다.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알려진 초기 러시아는 방어력이 취약하기 짝이 없었다. 산지는 물론 사막도 없고 변변한 하천도 드물었다. 사방이 허허벌판인데다 남쪽과 동쪽의 스텝 지대를 넘어서면 몽골인들의 땅이었다. 침입자는 맘만 먹으면 언제든 진격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에게는 점령할 만한 천연 방어 진지들도 거의 없었다.
최초의 차르인 이반 4세는 <방어로서의 공격> 개념을 실전에 도입한 인물이었다. 일단 내부를 공고히 평정하고 확장한 다음에야 비로소 바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 방침은 멋지게 성공했다. 이반 4세야말로 개인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이론을 증명하는 데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극도의 무자비함과 뛰어난 선견지명이 혼재된 이 인물이 없었다면 러시아 역사는 다른 식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신생국 러시아는 이반의 조부인 이반 대제Ivan the Great 아래서 조 심스레 확장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1533년 권좌에 오른 이반 대제는 확장의 속도를 부쩍 높였다. 러시아는 동쪽의 우랄 산맥지대와 남쪽 의 카스피 해, 그리고 북으로는 북극권 한계선까지 잠식해 갔다. 카스 피해에 대한 접근 권한을 획득한 것을 시작으로 흑해까지 손을 뻗었 고, 이윽고는 몽골 제국을 부분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캅카스 산맥을 활용할 수 있기에 이른다. 그 즈음 러시아는 몽골의 황금 군단이든, 오스만 제국이든, 페르시아든, 누가 됐든 장래의 침입자들을 지연시 키려는 목적으로 체첸에 군사 기지를 설치했다.
다소 주춤한 시기도 있었지만 다음 세기에도 러시아의 확장은 멈추 지 않았다. 러시아 군주들은 우랄 산맥 쪽으로 밀어붙이고 시베리아 쪽으로도 파고 들어가더니 마침내는 저 멀리 동쪽 태평양 연안의 모 든 땅을 손에 넣었다.
- 대양으로 바로 접근할 수 있는 <부동항의 부재>는 늘 러시아에게는 아킬레스건이었다. 북유럽평원만큼이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러시아는 지리적 약점을 지녔지만 그 나마 석유와 천연가스 덕분에 더 약한 나라로의 추락만은 모면했다. 일찍이 1725년에 표트르 1세가 후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남긴 이유도 납득이 간다.
"할 수 있다면 콘스탄티노플과 인도로 가까이 접근하라. 누가 되 든 그곳을 통치하는 자야말로 세계의 진정한 통치자가 되리라. 그러 므로 꾸준히 싸움을 도발하라. 터키뿐 아니라 페르시아에서도! 할 수 있는 한 페르시아 만 멀리 침투할 것이며, 할 수 있는 한 인도의 안까 지도 깊숙이 들어가라."
- 러시아에게 세바스토폴은 단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부동항이다. 그 렇지만 흑해를 나서서 지중해로 진출하려면 1936년 몽트뢰 협정으로 보스포루스 해협의 관리를 위임받은 나토 회원국 터키의 간섭을 받 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 군함들은 그 해협을 항해할 수는 있지만 제 한된 인원만이 가능하며 분쟁 시에는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 혹 시 러시아 군함이 보스포루스를 통과했다 하더라도 지중해에 도달하 려면 에게 해도 건너야 한다. 마찬가지로 대서양에 도달하려면 지브 롤터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거나 인도양으로 나가려면 수에즈 운하로 내려가는 것까지 허락받아야 하는 규정이 여전히 유효하다.
- 우크라이나가 벨기에나 미국의 메릴랜드에 버금가는 영토를 잃었는 데도 아무도 도와주러 달려오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와 그 이웃 국가 들은 이른바 지리적 진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나토에 속해 있지 않다면 모스크바가 가까울 것이요, 워싱턴 D. C.는 한참 멀다는 것이다. 러시아에게 이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그들은 크림 반도를 잃었을 때 대처할 방도가 없지만, 서방에는 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해 제한적인 제재만을 가했다. 이 제제가 제 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독일을 포함한 여러 유럽 국가들이 겨울용 난방연료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동과 서를 가 로지르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열거나 닫는 권한은 크렘린에 있다.
정치적 무기로써 에너지는 시간을 벌게 해주며, 러시아 민족이라는 개념은 향후 러시아가 저지르는 그 어떠한 행동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것이다.

- 18세기에 한국이 얻은 <은자의 왕국Hermit Kingdom>이라는 별칭은 수 세기에 걸친 정복과 점령, 약탈 혹은 어디론가 가기 위한 경유지의 대 상이 된 뒤에 이 나라가 스스로 고립을 택한 데서 나온 명칭이다. 만 약 다른 나라나 다른 민족이 북쪽에서 내려오면 일단 압록강을 건넌 뒤 해상까지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천연 장벽은 거의 없다. 반대 로 해상에서 육로로 진입한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런 배경에 서 몽골이 한반도에 들어왔다 나갔고 이어 명나라, 만주족의 청나라 그리고 일본도 수차례나 침입했다. 한국이 여러 교역로들과 단절하고 홀로 있기를 희망하면서 바깥 세계와 엮이지 않는 편을 택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세기에 들어서 일본이 다시 들어왔고 1910년에는 아예 이 나라를 통째로 합병해 버렸다. 그러 고 나서 일본은 한국 문화 전체를 말살하는 정책을 개시했다. 한국어 사용이 금지됐고 한국 역사를 가르치는 것 또한 금지됐다. 신사참배 도 의무적으로 시행됐다. 일제 강점기는 오늘날까지도 한일 양국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 일본 헌법 2조 9항은 정부가 자위대를 해외에 파병하는 것을 어렵 게 해놓고 있다. 그래서 아베 내각은 9항을 유연하게 해석하면서, 이 제 일본이 이 지역에서 좀 더 대담한 역할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는 식 으로 헌법 개정에 회의적인 국민들을 설득하려 한다. 특히 집단 안보 의 한 축으로 동맹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2016년 7월 10일에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함으로써 보통국가, 즉 군사력을 갖고 당당하게 외교 및 군사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국가로 갈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개헌 발의 가능 의석을 확보했다.)
이런 배경에서 2015년의 일본 방위비는 유례없이 큰 규모로 책정 되었다. 그 금액의 대부분은 해군과 공군의 장비 현대화에 투입되는 데 이 가운데에는 미국산 F-35A 스텔스 전투기 구입도 포함돼 있다. 2015년 봄, 일본 정부는 일명 헬리콥터 수송 구축함이라고 하는 장비를 공개했다. 군사 전문가라면 이내 눈치 챘을 것이다. 이 배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항공모함으로 사용되다가 1945년 항복과 함께 사용이 중지된 당시의 항공모함만큼 덩치가 크다는 사실을. 이 전함 은 고정익 항공기 동체에 날개가 고정되어 있는 항공기) 수송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국방장관은 "이것을 항공모함으로 이용할 생각 은 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는 곧 오토바이를 사놓고 오토바 이처럼 타지 않을 것이니 자전거라고 우기는 것과 다름없다. 현재 일 본은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 일본이 번쩍대는 이런저런 신무기에 돈을 쓰는 행동의 의도는 그것 이 배치되는 지점만 보더라도 명확하다. 열도 주요 부분을 방어하고 있는 오키나와의 군사 시설은 앞으로 더욱 개량될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은 2013년 중국 정부가 선언한 확대된 방공식별구역과 겹치는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을 감시하는 데 보다 큰 유연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영토 주장이 겹치는 구역에는 현재 일본이 실효적 지배 중이지만 중국 또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일명 센카쿠(일본 명) 또는 댜오위다오(중국명) 제도가 있다. 류큐 제도의 일부이기도 한 이 지역이 특히 민감한 것은 적대적인 세력이 일본의 중심부로 접근하려면 이곳을 꼭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곳은 일본에게는 상당 한 해양 영토를 보장할 뿐 아니라 해저에는 개발 가능한 가스전과 유 전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필요한 모든 수 단을 동원해서라도 이곳을 붙들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편 동중국해에서 중국이 선언한 확대된 방공식별구역은 공교롭 게도 중국, 일본, 대만, 그리고 한국까지도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 는 지역과 겹쳐진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지나는 어떤 비행 물체도 필 히 신고를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자위권적 조치에 직면할 것이라 고 공언했다. 하지만 일본, 한국 그리고 미국의 대응은 이 말을 무시 한 채 신고하지 않고 그대로 비행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이에 대해 군사적인 대응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부의 선택 여하에 따라 언제 라도 최후통첩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 니카라과 대운하는 파나마 운하보다 더 길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폭도 더 넓고 수심도 깊어서 아주 덩치가 큰 유조선과 컨테이너 운반선들도 통과할 수 있다. 중국 해군 함정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 현 재 파나마 운하가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고 있다면 니카라과 대운 하는 동과 서를 가로지른다. 그런데 운하의 중간부를 위해 니카라과 호수를 파낼 것인데 이로 인해 환경론자들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 장 큰 청정 담수호가 오염될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회의론자들은 파나마 운하를 남쪽으로 수백 킬로미터 정도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굳이 니카라과 대운하가 필요한지 묻는다. 하지만 중국은 더 큰 선박들이 운항할 수 있는 이 운하의 관리권을 쥐 어서 오로지 중국만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것이다. 그렇다면 니카라과 운하의 향후 수익성에 관한 질문이 나온다. 수익 을 내려면 앞으로도 수십 년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당장의 상업 적 이익보다 중국의 국가 이익이 걸린 문제로 보인다.

- 100년 전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0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도 앞섰다. 그러나 산업 다각화의 실패, 계층화되고 불공정한 사회, 허술한 교육 제도, 연 이은 쿠데타, 게다가 지난 30여 년간의 민주 정부 시대에 주먹구구식 으로 남발된 경제 정책 등으로 아르헨티나의 위상은 급속히 추락하 고 말았다.
브라질에는 이 고상한 체하는 이웃을 비꼬는 농담이 있다. 브라질 사람들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두고 〈그러한 세련됨이 그처럼 엄청난 난장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국민>이라고 한다. 아르헨티나는 이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죽은 소만이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죽은 소 혹은 바카 무에르타는 이 나라에 퍼져 있는 셰일층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이 지역에는 아르헨티나가 150년 동안이나 쓰고도 남 을 에너지에 수출까지 할 수 있는 양이 매장돼 있다. 아르헨티나 중부 지역인 파타고니아, 즉 칠레와 맞대고 있는 서쪽 국경지대에 위치하 고 있는 이 지역은 벨기에만한 면적으로 나라로 치면 상대적으로 작 겠지만 셰일층의 규모로는 꽤 큰 편이다. 현재까지는 잘 진행되고 있 다. 만약 셰일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에 대한 반감만 없다면 말이다. 단 조건이 있다. 일단 셰일에서 가스와 기름을 얻기 위해서는 막대한 규 모의 해외 투자가 필요한데 아르헨티나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우호적 인 국가로 인식되고 있지 않다.

- 사실 세계는 아프리카의 지리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다. 아 프리카가 얼마나 큰 대륙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 는 우리 대부분이 메르카토르 Mercator 방식의 지도를 쓰는 데서 비롯 됐다. 이 도법은 평평한 면에 지구를 그리다 보니 고위도로 갈수록 면 적과 형상이 왜곡된다. 따라서 실제로 아프리카는 일반적으로 지도 에 그려진 것보다 훨씬 길다. 이는 희망봉을 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 한 일인지, 또 교역에서 수에즈 운하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 삼 깨닫게 해준다. 희망봉을 도는 일은 기념비적인 업적이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게 되자 서유럽에서 인도까지의 해상 여행은 9,656킬로 미터로 단축되었다.
먼저 세계지도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알래스카를 캘리포니아에 갖 다 붙여보자. 이어 미국을 완전히 뒤집어 보면 일부 들쑥날쑥한 부분 들이 있겠지만 아프리카 대륙과 대충 들어맞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실제 아프리카는 미국보다 3배는 크다. 다시 표준 메르카토르 지도를 보자. 그린란드가 아프리카와 같은 크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아프리카는 그린란드보다 14배는 더 크다. 미국, 그린란드, 인도, 중 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영국까지 다 합쳐도 아프리카 대륙 에 모두 집어넣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덤으로 동유럽 대부분을 집어넣 을 만큼의 공간도 남는다. 우리는 아프리카가 거대한 대륙이라는 것을 알지만 정작 지도상에서는 아프리카가 얼마나 큰지 제대로 알 수 없다.
-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 모 두는 아프리카인인 셈이다. 그런데 기원전 8천년 무렵부터 인종의 법 칙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동과 지중해 주변을 떠돌던 어떤 이들이 방 랑벽을 버리고 정착하더니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이윽고 마을과 도 시를 이루며 모여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남쪽으로 돌아가 보면 재배할 식물도 별로 없고 동물들조차 많지 않았다. 땅의 상당 부분은 정글과 늪, 사막 혹은 가 파른 고원지대다. 이런 지형에서는 밀이나 쌀을 재배하기도, 또 양을 치기도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아프리카의 코뿔소나 가젤, 기린 등은 짐을 나르는 짐승이 되기를 완강히 거부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역시 인상적인 표현으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만약 아프리카의 군대가 농가에서 키운 기린 고기를 먹고 커다란 코뿔소에 올라탄 기병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유럽으로 밀고 들어와 그곳에서 양고기를 먹으며 시원찮은 말 등에 올라탄 병사들을 쓸어 버렸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일찍 출발했지만 다른 것을 발전시키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려서 오늘날까지도 과거에 붙들려 있는 실정이다. 더 운 기후가 초래한 말라리아와 황열병 같은 악성 질병들은 밀집된 생 활환경과 열악한 보건시설로 인해 현재는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나 타나고 있다. 물론 인도아대륙과 남아메리카 같은 다른 지역들도 사 정이 비슷하지만,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는 후천성 면역 결 핍증 같은 질병의 타격이 큰데다 특히 모기와 체체파리의 만연으로 인한 문제도 심각하다.
- 아프리카 대륙의 강들 또한 문제다. 대개 고지대에서 발원한 강들이 가파르게 꺾여 내려오기 때문에 배를 띄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일례로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로 긴 장대한 잠베지 강을 보자. 길이만도 장장 2735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강을 마주한 관광객들은 하얗게 부 서지는 급류와 빅토리아 폭포에 매료될 게 분명하지만 정작 이 강은 교역로로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잠베지 강은 여섯 개 나라를 지나는데 모잠비크에서 인도양과 합쳐질 때는 무려 해발 1천4백여 미터의 높이에서 흘러내린다. 이 강의 일부에서는 얕은 배를 띄울 수 는 있지만 이 부분마저도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물자 수송은 제한 돼 있다.
- 다뉴브 강이나 라인 강을 갖고 있는 유럽과는 달리 아프리카 하천 들의 이러한 결점은 지역 간의 교류와 교역의 발전을 저해했다. 이런 약점은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쳤고 대규모 교역 지역의 형성을 막았 다. 니제르 강, 콩고 강, 잠베지 강, 나일 강을 비롯한 대규모 하천들 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단절은 인간 요소라고 다 르지 않다. 러시아, 중국, 미국처럼 거대한 지역에서도 단일 언어를 쓰는 것이 교역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프리카 에는 족히 수천 개가 넘는 언어들이 있으며 비슷한 규모의 지역을 지 배할 만한 공통 문화도 자라지 못했다. 이에 비해 유럽은 소통할 수 있는 공통어를 가질 만큼의 작은 크기인데다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지형이었다.

- 콩고민주공화국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는 아홉 개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 나라들 또한 하나같이 이곳에 근심거리를 더하다 보 니 콩고 내전이 아프리카판 세계대전>으로 알려진 것도 과언이 아니 다. 이 나라의 남쪽에는 앙골라가, 북쪽에는 콩고공화국과 중앙아프 리카공화국이, 동쪽에는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탄자니아, 그리고 잠비아가 자리 잡고 있다. 콩고 내전의 기원은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 간다. 그 중에는 1994년 르완다를 강타한 재앙으로 발발한 내전과 그 후폭풍으로 서부 지역이 전쟁에 휩쓸렸던 최악의 시기도 있었다.
르완다 대학살 이후에 살아남은 투치족과 비교적 온건한 후투족은 투치족이 이끄는 정부를 설립했다. 그러자 후투족 민병대의 살인 기 계들인 인테라함웨interahamwe는 콩고민주공화국 동부로 도주해 오 면서 국경 지역에서 불법 침입을 자행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국 경 근처에 거주하는 투치족을 살해할 목적으로 콩고민주공화국군 일부 분파에 가담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룬디와 에리트레아의 지원 을 받는 르완다와 우간다 군대가 그 지역으로 밀고 들어왔다. 콩고민 주공화국의 반정부 민병대와 손을 잡은 이들은 인테라함웨를 공격했 고 나중에는 아예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를 전복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들 또한 이 나라의 천연 부존자원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면서 휴대 폰과 컴퓨터 칩을 만드는 데 쓰이는 콜탄의 수십 톤을 특히 르완다 쪽 으로 실어 날랐다. 그러나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군은 쉽사리 항복하 지 않았고 바야흐로 앙골라, 나미비아, 짐바브웨까지 개입한 상태에 서 전투는 이어졌다. 결국 이 땅은 20여 개가 넘는 파벌이 싸우는 거 대한 전장으로 변했다.
이 전쟁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줄잡아 10만 명의 인명을 앗아갔고 질병과 굶주림으로 6백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결과를 낳았다. 특히 유엔의 추산에 따르면 희생자들의 거의 절반이 5세 이하의 어린이들 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최악의 전투는 잦아들었지만 이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분쟁의 본산이면서 언제 또 발발할지 모를 전면전을 방 지하기 위해 유엔의 전면적인 평화 유지 임무가 여전히 요구되는 지 역이기도 하다. 콩고민주공화국은 한 번도 하나였던 적이 없었기 때 문이다. 그들이 실질적으로 평화롭게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을 때까 지는 단지 분열 상태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유럽 식민주의자들은 닭도 없이 달걀을 만들어 냈다. 그로 인해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논 리적 부조리가 반복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이 지역에 지속적으 로 출몰하고 있다.

- 나일 강이 없으면 아무도 없다. 이집트가 거대한 나라이기는 하나 8천4백만 명에 달하는 인구 대다수가 나일 강에서 불과 반경 십여 킬 로미터 이내에 살고 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만 보면 이집 트는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대다수 유럽인들이 아직 움막에 살고 있을 때 이미 이집트는 민족 국가를 확립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이집트는 어디까지나 지역 강국에 지나지 않았다. 국토의 3면이 사막의 보호를 받고 있으 니 지중해의 강대국이 될 수 있었을 테지만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 다. 바로 나무가 귀하다는 점이다. 대다수 역사에서 나무가 귀한 나라 치고 세력을 과시할 만한 강한 해군력을 구축한 나라는 없었다. 물론 이집트에 해군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이집트는 선박을 건조하기 위 해 많은 돈을 지불하고 레바논에서 삼나무를 수입해 오기도 했다. 하 지만 결코 대양해군이 돼 보지는 못했다.
- 오늘날의 이집트는 미국의 군사 원조 덕에 아랍 세계에서 가장 강 력한 국방력을 갖춘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집트의 군사력은 사막 과 바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 조약의 제약을 받고 있는 형편 이다. 특히 시나이 반도에서 툭하면 터지는 이슬람 봉기를 상대하고, 매일 전 세계 교역량의 8퍼센트가 드나드는 수에즈 운하를 지키면서 8천4백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날마다 먹여 살리느라 고군분투하는 것만으로도 이집트는 여전히 뉴스거리임에 분명하다. 전 세계 석유의 2.5퍼센트가 매일 이 수에즈 운하 길을 통과한다. 혹시라도 이 운하가 폐쇄된다면 유럽은 15일, 미국은 10일의 수송 시간을 더 잡아야 한다.

- 중국의 접근은 많은 아프리카 정부들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베이징 정부나 중국의 대형 기업들은 인권이라는 미묘한 문제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 개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일부 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 국부를 착복하는 행위를 멈추라는 요구도 하지 않는다. 일례로 중국이 수단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임을 감안하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수단의 편을 들고 국제사법재판소가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 장을 발부했음에도 그를 지원하고 있는 배경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태에 대한 서구의 비판에도 베이징 정부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서구가 행한 일들 의 역사를 볼 때 이는 단지 중국의 사업을 방해하려는 또 다른 권력게임이자 위선적 행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을 훈계하는 것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세계 경제의 가혹한 현실과 이슬람주의의 위협으로 인해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이 돼버린 것이다. 2015년 7월, 오바마 대통령이 케냐와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때 케 냐에 만연한 동성애 혐오증과 부패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인권 상황 을 비판했다 하여 서구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상 그 비판은 형식에 그친 것이었다. 두 나라 모두 소말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의 중추 세력인데다 유엔 또한 이슬람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 두 나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필요 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라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비즈니스 측면 에서 자신들이 중국에 뒤처지는 입장임을 왜 모르겠는가.
중국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석유, 광물, 귀금속, 그리고 시장이다. 이는 정부 대 정부 관계로는 공평하지만, 대형 공사에 투입되는 지역 주민들과 중국인 인력 간에 긴장이 증가하는 현상 또한 나타날 것이 다. 그리고 이 상황은 베이징 정부로 하여금 그 지역 정세에 그만큼 더 많이 관여하게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소규모나마 여러 나라에서 군사력이 요구될 수도 있다.

-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최대 교역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이 두 나라의 우호적인 정치 및 경제 협력의 역사는 꽤 길다. 오늘날 국영, 민영을 망라한 수백 개의 중국 기업들이 더반, 요하네스버그, 프리토 리아, 케이프타운 그리고 포트엘리자베스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제는 나이지리아에 이어 아프리카 대륙에 서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경제(앙골라보다 세 배나 큼), 군사, 인구(5천3백 만명) 등 어느 모로 보나 이 나라가 남쪽의 강국인 것은 자명하다. 남 아프리카공화국이 여타의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훨씬 빠른 발전을 이룬 데는 대륙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양 대양으로 진출하기 수월한 위치도 한몫했다. 또 금과 은, 석탄의 매장량이 풍부하며 대규모 식량생산이 가능한 기후와 토양을 지닌 덕도 있다.
대륙의 맨 끝단에 위치한데다 연안 평지가 가파르게 높아지는 바람 에 모기가 번식하기 힘든 조건이 돼준 것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말 라리아의 저주에서 고통받지 않는 몇 안 되는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된 이유였다. 이 조건 덕분에 유럽 식민주의자들은 말라리아 가 맹위를 떨치는 열대 지역보다 훨씬 멀리 빠르게 내륙 깊숙한 곳에 정착해 소규모 산업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산업이 모태가 되어 오늘날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제의 주요 부문들을 성장시켰다.
남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에게 바깥 세계와 사업을 한다는 것은 프 리토리아나 블룸폰테인, 케이프타운과의 거래를 의미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자국의 천연자원과 지리적 위치를 이용해서 인접국들을 수송 시스템에 편입시켰다. 이는 곧 이 나라에 양방향 철도가 있으며 이스트런던, 케이프타운, 포트엘리자베스, 더반의 항만들로부터 쭉 쭉 뻗어나가는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도로망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 다. 이 수송망은 짐바브웨, 보츠와나, 잠비아, 말라위 그리고 탄자니 아를 통해 북쪽으로 뻗어 올라가서 콩고민주공화국의 카탕가 지역과 동쪽으로는 모잠비크까지 뻗어나간다. 중국이 건설한 카탕가에서 앙 골라 해안에 이르는 새 철도가 콩고민주공화국의 교통량을 흡수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독점하다시피 하던 기존 수송 시스템에 어느 정 도 도전이 되겠지만 그래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갖고 있는 이점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유럽 식민주의는 아랍인들을 민족 국가의 형태로 묶어서 그들의 통 치자들이 자신의 출신 부족과 자신이 속한 이슬람 종파에게만 호의 를 베풀게 하는 유산을 남겼다. 이들 독재자들은 유럽인들이 그어둔 인위적인 선들 사이의 영토 전체를 자신들이 통치할 수 있는 위임장 을 보장받기 위해 국가라는 구조를 이용했다. 그 선들이 역사적으로 올바른지 혹은 어느 날 느닷없이 함께 묶여져 버린 서로 다른 부족들 과 종교들에게 공정한지 등은 아예 무시한 채 말이다.
그 결과가 야기한 분쟁과 혼란을 이라크만큼 적절하게 보여주는 사 례가 또 있을까. 시아파 가운데서도 신심이 더 깊은 이들은 수니파가 이끄는 정부가 시아파의 성지인 나자프와 그들의 순교자인 알리와 후세인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카르발라를 지배 통치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이러한 집단 정서의 근원은 수세기도 넘는 옛 시절로 올라간다. 이라크 국민으로 불린 고작 수십 년의 세월이 그 기나긴 감정을 희석시킬 순 없었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자들이었던 투르크인들은 쿠르드족이 장악하고 있는 암벽 투성이 산악지대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바그다드로 향하는 평지가 되고 현재 시리아가 되는 서쪽에서는 거주민들 대다수가 수 니파 아랍인들인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라는 거대한 강들이 나타나더니 뒤이어 습지대인 샤트알아랍 강(수로)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이라크 남동부 바스라 시에서는 대다수가 시아파 인 아랍인들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투르크인들은 이런 상황에 따라 이라크 지역을 모술, 바그다드, 바스라라는 세 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 누어 다스렸다.
보다 오래전인 고대에도 이 지역들은 이 구분과 대체로 부합했는데 당시는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수메르라는 명칭으로 알려졌다. 페르 시아는 그곳을 통치하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분할했으며 후일 우마이야 왕조도 비슷한 방식을 따랐다. 그 런데 영국인들은 같은 지역을 보면서 원래 분할돼 있던 세 곳을 자기 들 멋대로 하나로 합쳐 버렸다. 이는 어디까지나 기독교도들이 삼위 일체를 통해서나 풀 수 있는 논리적 불가능성이지, 이라크에서는 <거룩하지 않은 난장판>으로 귀결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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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 인명표에 기초해 산출한 고대의 예상 수치로 알 수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신생아의 대략 3분의 1이 출생 한 달 이내 사망했다. 절반 정도는 5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주요 사망 원인은 질병, 영양 결핍, 열악한 위생으로 추정된다.
(2) 전체 인구의 약 50퍼센트가 20세 이하였다.
(3) 전체 인구의 근 80퍼센트가 50세에 도달하기 전에 사망
했다.
십대가 장악한 세상이라니, 악몽 그 자체다! 오늘날과 사뭇 대조적이다. 오늘날에는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퍼센트를 넘으며 18세 미만보다 많다.
- 로마 지배계층에 관한 놀라운 사실은 본인이 선택하면 굉장 히 이른 나이에 경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긴티비리(vigintiviri, 20인회) 소속 원로원 의원의 자제는 17 세나 18세에 1년짜리 관직을 맡을 수 있었는데, 4개 위원회(처 음에는 6개였다)가 모여 법무, 조폐, 도로 관리 따위의 안건을 다루었다. 키케로가 법정에서 열일곱 살 검사에 맞서 의뢰인을 변호한 기록도 있다! 일부 비문에는 20대 초반에 사망한 남성 이 이미 변호인 및 법학자(법률 자문위원)로 일한 경험이 있다 고 적혀 있다. 의사 직도 마찬가지다. 14세에 수련을 시작해 5년 후 아직 십대의 나이로 의사가 된 일부 사례가 있다. 정계에서 는 17세에서 25세의 젊은 나이에 아주 대단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권위 있는 자리를 맡은 사례들이 보이는데, 일례로 소 플 리니우스는 18세에 어느 소도시의 보호자가 되었다. 재무관이 되는 것은 중대한 첫걸음이었고, 어떤 시기에는 24세에 재무관직을 맡을 수 있었다. 네로는 황제에 취임했을 때 17세였고 콤모두스는 19세, 엘라가발루스는 14세였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세 명 다 대재앙을 불러왔다.
- 노인들에게 나타나는 어려움으로는 호흡 곤란, 카타르성(점액이 다량 배출되는 염증옮긴이) 기침, 방광 폐색, 배뇨통, 관절염, 신장 질환, 어지럼증, 중풍, 심각한 체중 감소, 전신의 심한 가려움증, 불면증, 장과 눈과 코에서의 묽은 점액 배출, 시력 감퇴, 녹내장으로 인한 시력 상실, 청력 상실이 있다.
여기에 켈수스는 이질과 만성 설사 증세를 덧붙였고, 고대 사 료에 언급된 그 밖의 흔한 증상으로는 치아 손상, 발기 불능, 통 풍, 소화불량, 좌골신경통 등이 있다.
짧은 인생은 자연이 내려준 가장 큰 축복이라는 대 플리니우 스의 말이 전혀 놀랍지 않다. 정신과 신체의 기능 쇠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살아도 '산다'고 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 산산이 흩어진 재산
고대의 부는 거의 전적으로 토지 형태로 유지되었다. 토지를 소유한 자는 (1) 땅을 농부들에게 빌려주거나 (2) 하인을 구해 땅을 경작하고 농산물을 팔아 막대한 이득을 올렸다. 이는 금융 거래와 더불어 로마 사회에서 대부분의 귀족 가문이 지위와 신 분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따랐다. 가장이 사망하면 자녀들이 재산을 한몫씩 나눠 갖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그런데 대가족의 경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토지가 잘게 쪼개지면서 이 가문은 결국 거대한 부가 가져다 주었던 '영향력'을 모두 잃을 터였다.
따라서 귀족들은 재산이 지나치게 분산되지 않도록 가족 수를 적게 유지했다. 하지만 이 또한 위험했다. 높은 사망률 때문 에 남자 상속인이 한 명도 없게 될 가능성이 증가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토지는 딸들과 함께 몽땅 사라져버렸다. 딸들은 자 기 몫으로 받은 토지를 결혼할 때 지참금으로 다른 가문에 들고 갔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이 문제는 적절한 시기에 양자를 들이는 것 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어느 세대에나 귀족 가문의 약 75퍼센트가 자취를 감추 고 새로운 가문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러므로 가장은 토지를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남길지 잘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노년 이 길어질 경우를 대비해 어떻게 해야 가족들이 그를 잘 보살펴 줄지에 관해서도 필시 열심히 궁리했으리라.
- 배역을 연기하다
인생을 무대로 보는 생각은 고대에 흔했다. 고대인은 사람이 일생 동안 수많은 가면을 쓰고 벗을 수 있다고 여겼다. 사람을 뜻하는 영어 단어 person이 '무대 가면, 극중 인물'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persona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절대 우연이 아 니다.
세네카 역시 이 관점에 동의했다. 세네카는 우리 대부분이 인 생을 살면서 수차례 가면을 바꾸며 오로지 현자들만이 자기 자신의 배역을, 그러니까 자신에게 맞게 설계되었거나 스스로 적응한 배역만을 연기한다고 강조했다.
인생에서 이야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어떻게 연기되느냐다. 어디에서 멈추든 상관없다. 멈추고 싶은 데서 멈추되 다만 좋은 결말을 붙여라.
여기에 핵심이 있었다. 사람은 일생 동안 한 편의 연극을 상 연하며 죽음은 이 연극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아무리 좋은 연극이라 해도 자칫 결말이 전체를 망칠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관객이 되어야 하며(세네카) 자신이 선택한 배역에 걸맞게 살기 위해 그리고 죽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 세네카가 강조한 점은 죽음의 순간이란 미리 연습할 수 없다 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한 번이 전부고, 좋은 죽음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었다. 임종을 앞둔 아우구스투스황제는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인생이라는 희극에서 맡은 배역을 잘 연기해낸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 목적을 성취하다
카토는 인간의 삶은 자연의 계획을 따른다는 말을 반복하며 이 주제를 마무리한다. 소년에게는 나름의 관심사가 있다. 청년 의 관심사도 그와 같을까? 아니다, 청년 역시 그 나름의 관심사 가 있다. 그 관심사가 인생의 다음 단계로까지 이어질까? 아니 다. 그 단계에는 그 나름의 문제가 있으며 이는 노인이 갖는 관 심사와도 다르다. 그리고 노인의 관심사가 하나둘 사라지면서 "천명을 다한 인생이 비로소 죽을 때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대화록은 영혼의 불멸성에 관한 몇 가지 고대 이론들과 카토의 최종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삶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무엇일까? 아니, 오히려 삶은 우 리에게 노고를 주지 않던가? 삶의 실질적인 이점이 무엇이든 삶이라는 잔은 여전히 채워지거나 혹은 한도에 도달할 걸세.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을 한탄하고 싶지 않네. 여러 배운 사람 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살아온 삶에 불만이 없으니까. 나는 내가 아무런 목적 없이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 삶을 살지 않았 거든. 더 나아가 나는 삶을 떠날 때 집이 아닌 어느 여관을 나서듯 떠나겠네. 자연이 우리에게 내준 것은 영구적인 집이 아니라 여행중 잠시 머무르는 숙소에 불과하기 때문이지.
- 지배계층 사람들은 대중과 달리 대지를 떠도는 사자의 원혼이나 사후의 고통 따위를 좀처럼 믿지 않았다. 키케로는 "죽은 자가 아직 살아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인과율에 무지하 거나 헛것에 홀렸으리라고 했다. 망자가 삶의 안락함을 박탈당 했다고 믿거나 지하세계에서 영혼이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비이성적이긴 마찬가지였다. 키케로는 이런 믿음으로 인해 치러지는 의식에 관해 재담을 남기기도 했다. "슬프다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행동은 참으로 어리석다. 대머리가 된다 고 슬픔이 덜어질 리 있으랴." 대 카토(키케로의 저작에서 인용, 177쪽 참조)와 소크라테스는 이 문제에 관해 희망적인 불가지론적 관점을 보였다.
세네카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듯이 죽을 때도 행 복하게 죽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다시 말해 죽음을 기 쁘게 맞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불가피한 운명과 싸우려 드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러한 시도는 죽음의 순간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세네카는 말했다. "우리를 삶과 묶어주는 끈은 단 하나뿐이니, 바로 삶에 대한 사랑이다.”
- 지금까지 보았듯이 고대인은 사후세계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체로 지하세계를 단죄나 보상이 이루어지는 심판의 장소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한 가지 중요한 결과 를 낳았다. 고대 종교에서는 신앙심이 점수로 매겨졌다고들 말 한다. 제대로 된 의식을 제때에 치르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였 고, 그저 그것만 잘 지키면 별문제가 없었다. 사후세계에 어떠 한 기대도 없으니 이번 생에서의 성패가 중요했고, 성공은 과연 신들이 내 편에 있는지에 달려 있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가 신 들을 인정하길 거부하여 신들의 지위를 손상시켰다면 그는 처 벌을 받기 위해 사후세계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 다. 처벌은 지금 이곳에서 당신을 찾아올 것이었다.
- 어떤 식으로든 사람이 죽음을 피해갈 수 있을까? 고대 신화는 이 주제를 탐색했다. 바빌로니아 신화의 영웅 길가메시는 불사(不死)를 추구하여 지하세계로 내려갔고, 여신 칼립소는 트로이아 전쟁을 마치고 아내 페넬로페에게 돌아가려는 오디세우스에게 불멸을 약속하며 자기와 함께 머무르라고 설득했다. 여신 테티스는 아들 아킬레우스를 죽음으로부터 구하려고 스틱스 강에 담갔으며 하지만 발뒤꿈치를 담그는 것을 잊어버렸다 빼어난 가수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를 다시 데려오 려고 하데스로 내려갔다.
- 핵심은 이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리스인 들은 이 문제에 관련해 그 어떤 환상도 품지 않았다. 그들이 보 기에 필멸과 불멸 사이의 골짜기에는 절대 다리를 놓을 수 없었 다. 그러려고 시도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히브리스 (bubris, 자만심)'며, 피하고자 했던 운명을 오히려 더 확실하게 불러올 방법이나 다름없었다. 에오스(새벽의 여신)와 그녀의 인간 연 인 티토노스의 신화는 신들도 가끔 실수할 때가 있음을 보여준 다. 에오스는 티토노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지만 영원한 젊 음은 깜빡하고 주지 않았다.
- 계절에 따른 자연의 삶과 죽음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서 그대 로 반복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로마인이 죽음과 마주할 때 기쁨 으로 전율했다는 뜻은 아니다. 세네카나 루크레티우스 같은 사 상가들이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애써 안심시키는 것만 봐도 확실 히 그렇다. 하지만 로마인은 죽음을 피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으며 죽는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지도 않았다. 죽음은 자연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죽음과 '싸운다'는 생각은 그들에 게 어불성설이었다. 세네카는 물었다. 당신이 자연에게 복종해 야겠는가, 자연이 당신에게 복종해야겠는가? 
- 우리는 앞서 키케로가 노년의 죽음을 잘 익은 열매가 자연스레 떨어지는 것이나 오랜 여행을 마치고 뭍으로 다가가는 여행자에 비유한 것을 보았다. 스토아주의자였던 마르쿠스 아 우렐리우스 황제는 이렇게 썼다.
삶이란 얼마나 하찮은가. 어제는 한 방울의 정액이었고 오늘은 시신 아니면 재다. 그러니 너는 이 덧없는 순간들을 자연이 너에게 의도한 대로 쓴 다음 흔쾌히 쉬러 가라. 때가 된 올 리브 열매는 자신을 잉태한 대지를 축복하고 자신에게 생명 을 준 나무에게 감사하며 땅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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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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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업

인문 2023. 5. 31. 15:48

-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에는 프로네시스 (phronesis)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는 '실천적 지혜'라는 뜻으로, 지식을 의미하는 에피스테메(episteme), 참된 지혜 혹은 성스러운 지혜를 의미하는 소피아(sophia)와는 결이 다른 개념입니다. 아리스 토텔레스는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좋은 삶을 사는 것 에 관하여 잘 숙고하는 사람'이 실천적 지혜가 있는 현명한 사람이 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질 문을 던지며 시의적절하고 상황에 잘 맞은 답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프로네시스이겠지요.
- 저는 지금도 어떤 일에 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이렇게 묻습니다. 이 일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 법에 저촉되거나 일반적인 윤리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름다운가? 멋있 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추하지는 않은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배운 질문과 가치 판단의 기술은 21세기를 사는 저에게도 여전히 유용합니다.
- 혹시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를 기억하시나요? 아마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웠을 거예요.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을 중시해 서 욕망을 채워야 행복하다고 하는 데 반해, 스토아학파는 절제하 는 생활이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하지요.
두 학파에 비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같은 시기에 퓌론이라 는 사람이 이끈 '회의학파'가 있었습니다. 회의론자들은 '에포케 (epoche)'라는 걸 강조했는데요. 이 에포케라는 말은 '판단 중지'라 는 뜻입니다. 언제나 일관되게 옳고 그른 것도, 좋고 나쁜 것도 없 으므로 매사에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신중하게 판단을 보류해 야 한다고 주장했던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에 이 에포 케라는 말을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 회의론은 자주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의론자 를 인생무상의 태도나 허무주의를 내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회의'란 어떠한 진리도 무조건적으로 신뢰 하지는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진리라고 믿는 것조차도 끊임없이 검토하겠다, 즉 그것이 진리라고 판단하기를 유보하겠다는 태도이지요.
사실을 확인하고, 맥락을 파악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저돌적 이 됩니다. '다 따져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어! 역시 답은 이것뿐이 야!' 이런 생각에 거침없이 행동하기 쉬워요. 물론 그래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확실한 것을 원합니다. 후회하고 싶지 않고, 실수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최대한 확실한 답을 찾으 려고 해요. 물론 답을 냈다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당연합니 다. 그런데 그 '확실한 답은 자칫 독선이나 아집이 될 수도 있습니 다. 자신의 신념으로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핍박하는 근거가 돼요. 그걸 경고하는 사람들이 바로 회의론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나의 답에 충실할지라도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른 고민 끝에 다른 답을 내렸다는 사실을 용인하는 태도가 바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성을 로고스(logos)라고 했습니다. 원래 로 고스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특성이면서 동시에 인 간에게 그런 특성을 부여한 신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많은 그리스 의 철학자가 신을 로고스로 설명하곤 하는데, 특히 헬레니즘 시대 의 스토아 철학자들이 그랬어요. 그들은 신을 곧 로고스라고 생각 했으니까요. 이런 생각은 고스란히 기독교 전통으로도 이어지지요. 신약 성서 『요한복음』의 첫 구절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맨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
여기서 말씀이 바로 로고스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구절들을 보 면 로고스는 '신과 함께' 있었으며 '말씀이 곧 신'이라고 합니다. 원문의 의미를 살펴보면 로고스는 신을 지향하고, 신과 함께 있 으며, 신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로고스를 통해 모든 것이 생겨났 고, 이 세계는 로고스 없이 생겨나지 못합니다. 세계는 로고스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계는 로고스인 것, 곧 합리적인 것이지요.
-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떠 사람을 만들었어요. 구약성서창세기에는 신이 "우리의 모습에 따라 닮도록"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는 구절이 있습니다. 신의 모습을 닮는 다는 건 육체적인 형상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신의 가 장 본질적인 속성, 즉 로고스를 닮아야 합니다. 이성(logos)적인 생 명체가 바로 성서가 보여주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이러한 생각은 비단 기독교의 것이 아니라 무척 그리스다운 것이기도 합니다.
- 주위 사람과 사이가 안 좋을 때 인간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연애가 잘 안 풀리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묻게 되듯, 죽음이란 삶 자체를 회의하게 만듭니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만큼 강력하게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질문은 또 없을 것입니다. 죽음은 인생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계기이자, 동시에 모든 질문을 백지화시키는 막강한 힘이 있는 셈입니다.
- 저는 '죽겠다'라는 표현에 죽고 싶지 않다는 인간의 열망이 내재 되어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 죽겠으면 그 사람을 만나고, 무슨 일이 하고 싶어 죽겠으면 그 일을 하려고 하잖아요. 죽고 싶지 않은 열망, 살고 싶은 욕망, 실은 더 잘해보고 싶고, 더 보고 싶고, 더 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죽겠다'는 말로 강하게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겠 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지금 그 마음은 얼마나 약해져 있을까, 풀리지 않는 욕망 때문에 얼마나 마음 쓰며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 고전은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귀중한 실 마리를 제공하지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우리가 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 치욕적인 행동 대신 아름다운 성취를 추구하게 하 며, 현재의 안락함에 안주하기보다는 고난을 헤쳐 나가도록 이끌 어줄 것입니다. '살아가는 힘'을 주는 셈이지요.
삶은 영원하지 않고 시간은 잔인하리만치 냉정하게 뚜벅뚜벅 자 신의 보폭대로 걸어갑니다. 행복만 계속되는 인생은 없으며, 설사 그렇다고 해도 결국에는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타인의 고통을 오 롯이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삶이 지독하게 힘들 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 그리스 신화는 카오스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카오스를 '혼돈'으 로 알고 있지만, 원초적인 뜻은 '커다란 공허'에 가깝습니다. 카오 스가 생겨난 다음에 가이아, 타르타로스, 그리고 에로스가 생겼다 고 해요. 가이아는 대지이고, 타르타로스는 지하세계 깊은 곳, 즉 심연입니다. 에로스는 아시다시피 사랑의 신입니다. 여기서 사랑 이란 우리가 아는 그런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에너지라고 볼 수 있어요. 모든 물질이 역동하게 하는 힘이지요.
이들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신들입니다. 타르타로스 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카오스와 가 이아, 에로스가 최초의 신임에는 이견이 없어요.
이중 최초의 지배자는 가이아입니다. 카오스는 장소를 빌려주었 고, 에로스는 에너지로 존재했으며, 실질적 힘은 가이아에게 있었 습니다. 신화학자들은 이런 해석을 내리기도 합니다. 가이아 여신 이 세계를 처음으로 지배했다는 이야기는 원시 시대가 모계중심 사회였음을 보여준다는 거예요.
실제로 가이아는 많은 것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가장 먼저 우라 노스와 호론과 폰토스를 낳지요. 우라노스는 하늘, 호론은 산, 폰 토스는 바다라는 뜻입니다. 대지인 가이아가 자신의 일부를 들어 내서 하늘을 만들고, 일부를 솟아오르게 해서 산을 만들고, 일부를 녹여내어 바다가 생기도록 했다는 겁니다. 그리스인들의 창의적인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지요. 자연을 의인화하고 신격화해서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리스 사람들은 그런 어른들의 습성을 잘 알았고, 그 습성의 폐 단이 무엇인지도 잘 이해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신화 를 통해 가르치는 겁니다. '우리 어른들이란 원래 이렇단다. 너희 들을 자꾸 우리들의 틀 속에 가두려고 하지. 우리가 그렇다는 거 잘 이해하렴. 하지만 그 안에 안주하고 머물지 마라. 뛰쳐나가려고 했다가 그 틀이 너무 단단해 부딪혀 주저앉았다고 실망하고 포기 하지 마라. 우리가 그렇게 지키려고 하는 이 틀을 깨고 나와 너희 들의 세계를 만들어 보렴. 우라노스가 가이아의 간섭에서 벗어나 서 그랬던 것처럼,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땅에서 바깥 으로 나왔던 것처럼, 제우스가 형제자매들을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구하고 아버지 세대와 싸웠던 것처럼, 그렇게 너희도 우리에게 덤비렴. 물론 우린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다. 그러니 단단히 힘을 키 워라. 그리고 꼭 너희들의 세계를 만들어라.'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아버지를 몰아내는 폭력적인 신화를 대대로 자식들에게 들려주면서 이런 메시지를 던진 거라고 생각 하면, 참 대단하다고 감탄할 수밖에 없지요. 우리는 과연 이런 식 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며 또 버틸 수 있을 때까 지단단하게 버티면서 새로운 세대들의 맷집과 뚝심을 길러주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 그리스로마 신화에 비추어 볼 때, 저는 세대갈등을 꼭 부정적으 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으로 봤 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의 말대로만 한다면 그게 과연 좋은 세상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성세대의 틀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에요. 그것도 오래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저 런 시도를 해보고 그중 좋은 것들을 골라 만들어놓은 것이거든요. 그것은 이후에도 계속 지켜나가야 할 훌륭한 전통일 수 있지요. 그 렇게 이미 만들어진 기존의 틀에 안주하면 편할 거예요. 안정적인 삶을 살 것이고, 서로 간에 갈등도 별로 없겠지요. 하지만 발전도 없을 거예요. 아무리 훌륭한 사회라고 하더라도 변화가 없으면 정 체되고 퇴색하며, 결국에는 화석화되고 맙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주어진 틀이 아무리 좋아도 그걸 벗어나고 싶어 하는 묘한 욕망이 사람들에게는 본능처럼 있지요. 자유를 위한 욕망 말이에요.
- 우리나라에서도 여름에 록 페스티벌이 열리면 많은 사람들이 가 서 마구 소리 지르고 뛰고 그러잖아요? 예전에 어느 방송에서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얘기하 더라고요. 며칠 동안의 일탈로 일 년을 살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요. 어떻게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런 행동을 국가적으로 용인 해주고 지원해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극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욕망의 절제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면, 축제는 일정 시기마다 각계 각층의 욕망을 분출시켜주었던 거예요. 이것이 사회 갈등을 해소 해나가기 위한 그들만의 방식이었습니다. 에로스 신이 사람들 가 슴속에 불러일으키는 욕망은 생산을 위한 힘찬 원동력이지만, 충족되지 못하고 억압되면 갈등과 혐오의 씨앗이 되지요. 축제는 억압된 욕망을 달래는 슬기로운 완충기였던 셈입니다.
- 질문하지 않는 삶이 무조건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질문 이 너무 많은 사람은 그 질문이 주는 고민의 무게에 짓눌려 불행 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적절히 잘 던지는 사람은 사 는 동안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 니다. 그냥 걷기만 하면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놓칠 거예요.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만이 길가에 핀 꽃을 보고, 그 꽃 이 어떻게 피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만이 그 길의 흙과 빛, 바람을 살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묻는 사람의 눈에는 또 다른 길이 보이며, 질문을 놓지 않는 사람에게는 점점 더 넓은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5년 뒤에, 그리고 10년 뒤에 우리가 살게 될 세상이 어떨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누구 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 도 금방 쓸모가 없어질지 모릅니다. 이런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것 은 질문의 힘입니다. 스스로 묻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위기에도 자기 나름의 답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마음껏 질문을 던지십시오. 한때 우리는 모두 질문이 많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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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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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진화론자들은 진화의 원리가 먹고 먹히는 포식 관계에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진화론 자체가 더 진화하더니, 그 원리가 포식 관계가 아닌 미셸 세르(Michel Serre, 1930~2019)가 말한 것 같은 기생 (Le Parasite) 관계, 숙주와 기생물의 관계에 있다는 걸 알게 되지 요. 그런데 최근 학계에서 수없이 부정되고 거절되어온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1935~2011)의 포식도 기생도 아닌 '심바이오시스(symbiosis)', 공생 이론이 인정을 받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토콘드리아 이론이지요. 초기 기독교인들이 함께 나누고 서로 도와주면서 산다는 '코이노니아(Koinonia)'와 같은 얘기지요.
- 영혼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이미 찻잔 하나로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찻잔을 만 드는 물질은 인간의 육체에 해당해요. 플라스틱 컵이면 플라 스틱, 유리컵이면 유리. 우리의 육체도 그 컵들의 질료처럼 우리의 몸뚱이를 이루는 물질인 거예요.
그런데 컵과 그릇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요. 그들은 무언 가를 담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컵의 본질은 무언가 담는 것 이고, 무언가 담으려면 비어 있어야 합니다. 컵의 본질은 유리나 플라스틱 같은 물질에 있는 게 아니라 비어 있는 성질에 있어요. 비어 있지 않으면 컵에 무엇을 담겠습니까. 아무 역할도 못 해요. 비어 있는 게 그릇의 본질입니다. 그 빈 공 간을 '보이드(void)'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빈 컵에 커피를 따르면 커피잔, 물을 따르면 물 잔이 되어 빈 공간이 없어져요. 그러면 이 컵은 더 이상 다른 것을 담을 수가 없지요. 이미 무언가 담겨 있으니 더 담을 수 없어요. 그게 '마인드(mind)'예요. 컵과 그릇 물질 자체는 '보디(body)'입니다. 만약 유리컵이 깨지면 담고 있던 액체도 사 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보디도 마인드도 없어집니다.
하지만 텅 비어 있던 공간, 그것은 어디로 갔을까요. 깨졌 나요? 없어졌나요? 아닙니다.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 비어 있는 공간은 저 은하계, 빅뱅이 일어난 저 우주와도 통하고 있지요.
상상해보세요. 우주도 비어 있으니까 우리가 달나라도 가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릇은 보디, 그릇을 채우는 욕망이 마인 드. 그릇이 깨지면 담겨 있던 게 다 쏟아지듯, 죽으면 육체도 욕망도 다 없어집니다. 깨지고 쏟아져도 남아 있는 빈 공간, 모든 그릇의 비어 있는 부분, 보이드. 그게 스피릿이에요.
스피릿은 우주의 것이지요. 내가 죽어도 내 안에 있던 우 주의 스피릿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영성이 중요한 거예요. 몸뚱이도 내 것이고 마음도 내 것이지만 영혼만은 내 것이 아니에요.
- 뉴턴이 한쪽만 바라본 사람이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떨어지는 것만 봤지 그 작은 풀이 하늘을 향해 자라고, 나무가 되고, 거기에 빨간 사과가 열려서 높이 매달리는 것은 보지 못한 거예요. 우리는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라 뉴 턴이 보지 못한 하늘로 올라간 사과, 그 생명의 역 엔트로피 를 봐야 합니다. 그것을 사랑하고 믿어야 해요.
작은 송사리 떼가 잉어나 오른다는 상류를, 등용문을 통과 하듯 향해가는 그 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고 기라도 죽은 고기는 흰 배를 내놓고 떠내려가지만, 송사리는 아무리 작아도 살아서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요. 다시 말하지 만, 그것이 바로 "나는 진리요 생명이니라" 하는 생명의 힘 입니다.
- 부활도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한 알의 곡식이 땅에 떨 어져 죽으면 거기서 수십 개의 열매가 열려요. 화려하고 아 름다운 일종의 작은 부활이지요. 보세요. 우리 선조들 생명 이 부활한 것처럼 바로 지금 이렇게 숨 쉬고 기지개 켜고 아 침 산책을 준비하는 내 모습이 있잖아요.
육체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모든 책도 선 인들의 정신이 무수히 많은 책 제목으로 부활하여 나타난 것 이에요. 책은 모두 죽은 자들의 사상의 부활인 것이나 다름 없지요.
- "종교와 관계없이 사람이면 누구나 죽음에 직면했을 때 착 해집니다. 『논어』에 나오는 증자의 말처럼 '조지장사(鳥之將死 其鳴也悲 人之將死其言也, 새가 죽을 때 그 울음소리가 슬픈 것과 같 이 사람이 죽을 때 본성으로 돌아가 착해진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거꾸로 죽음이 찾아오면 더 집착하며 매달리는 사람도 있어요. 노추(老醜)야. 내 돈, 내 재산, 내 명예 같은 세속적 탐욕을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하고 매달리며 죽음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지요. 대개 신을 믿지 않다가도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까지 죽음이 생명과 다른 곳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 죽음이라는 것은 내가 태어날 때 부터 함께 가지고 있었던 거구나' 하고 말이죠.
역설적으로, 생명이 뭔지 몰랐는데 죽는 순간 생명이란 게 뭔가를 비로소 깨달은 것이지. 죽음의 발견이 곧 생명의 발 견이었던 거야. 태어나서 빛만 본 사람은 어둠을 모르는 게 아니라, 빛도 모르는 거예요."
- "당신 암이야'라고 선고를 받는 순간 갑자기 공기 맛이 달라져요. 방금 전까지 숨 쉬던 그 공기가 아닌 게지. 어제 보던 세상의 빛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아무리 하찮은 것들이라 해도 저것들을 이제 더는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아주 다르게 보인다는 겁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사형수가 집행장에 갈 때 한 번은 땅 을, 한 번은 하늘을 본다고 하지 않아요. 진흙이 앞에 있으면 피해 가고요. 그런 점에서 한 번도 우리는 나쁜 사람을 처형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죽음 앞에선 그는 이미 악인도 잔혹한 범죄자도 아닌 게지."
-이 회장도 죽음을 목도하고 종교적 물음이 생겨났던 것 이군요.
"늘 그런 질문을 속으로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쁜 꿀벌은 슬픔을 모른다'는 속담처럼 죽음을 잊고 지내다가 불현듯 어느 한순간에 묵혀두었던 질문을 하게 된 것이라고 봐요. 아마 가장 가까운 (이 회장의) 형님이 돌아가신 것이 계 기가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부하와 씨름 을 하다가 넘어지자 통곡을 하며 울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부하가 민망해서 사죄하니까 대왕은 '야, 이 바보야. 내가 져 서 우는 줄 아느냐. 그러고는 '그 넓은 세상을 다 정복하고 서도 죽으면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의 넓이밖에는 필요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러워 운다'고 했답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은 뒤부터 땅에 대해 아무 욕심을 내지 않았죠. 그래서 지금까지 그 흔한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았나 봅니다." (웃음)
- 진화론은 신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이 36억 년 전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존재해왔음을 증명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생물학자들은 그 힘을 '섬싱 그레이트 (something great)'라고 부르죠. 생명을 안다는 게 바로 하나님 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증명하는 겁니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어제까지 없었던 생명이 생겨나고, 태내 열 달 동안 36억 년의 시간을 다 보내고, 달이 차면 지자기)가 어떻게 알고 엄마 배 속에서 나오냐 그 말이에요.
이런 모든 것............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인 간이 어떻게 알아요? (신을) 모른다가 정답이지, '있다, 없다' 는 말은 거짓이에요. 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신을 모 르는 거지요. 미지(知)의 존재니까 더 생각하는 것이에요. 소크라테스가 한 말,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현자의 길 이요, 믿는 자의 사다리'라고, 마지막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서 우리는 슬프고 무섭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겁니다. 불나방처럼 타 죽는 것을 알면서 날 끌어당기는 기막힌 힘, 그것이 우리가 찾고 구하는 신의 모습이죠."

"하늘과 땅의 단절을 답답하게 여기신 예수님......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게 된 것이지요. 종교란 말은 개화기 때 일본 사람들이 영어의 '릴리전(religion)'을 불교 용어인 '종(宗)'과 '교(敎)'를 따서 번역한 말입니다. 그런데 릴리전의 어원이 뭣인지 아시지요? '다시 잇는다', 즉 단절된 것을 다시 연결 한다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단절된 하늘의 일과 말, 그리고 땅의 일과 말을 다시 이어주는 것! 그것이 종교이 며 그 필요성이지요. 그리고 '다시 읽는다'는 뜻도 있어요. 나의 삶을 다시 읽는 것, 그 의미를 다시 찾는 것, 그것이 종교라고 말이지요."
- 사뮈엘 베케트의 영화로 알려진 1965년 작 <필름>은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가 저서를 통해 최고의 아일랜드 영화 라고 칭한 작품이기도 하다. 선생은 <필름> 이야기를 흥미진 진하게 했다.
"영화에서 한 여인이 자식을 낳는데 난산을 하며 울부짖는 거야. 그 아이를 받으려는 사람은 큰 구덩이 아래에 있어. 그 구덩이는 무덤입니다. 아이를 받는 의사는 곧 무덤 파는 묘 지기이기도 한 것이지. 의사가 아이를 자궁에서 끄집어낼 때 쓰는 '겸자'로 구덩이를 파고 있어요.
그게 바로 베케트가 만들어낸 '움툼(womb. 자궁, tomb. 무 덤)'인 거지. 우리 일생을 필름처럼 빨리 돌리면 어떻게 될 까. 태어나자마자 사람은 죽고, 의사는 묘지기가 되며, 겸자 는 땅 파는 곡괭이가 되는 거지.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면 특정인을 악인, 선인이라 규정할 수 없어. 모든 인간의 조건이 똑같다는 거지. 예외가 없어. 이 같은 선악과 의 결과에서 생겨난 이항대립의 의식, 그것이 곧 원죄이고 '실낙원'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 환경이라고 생각하면 기독 교에 대한 모든 질문이 거의 풀린다고 봐요. 그런데 동양인, 우리 아시아인들에게는 원죄라는 개념이 없으니 기독교를 이해하기 힘들지요.
상당한 지식인도 원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요. '나는 죄 지은 것 없으니 예수교를 안 믿는다'고 말하지요. 원죄는 불 교도 그렇지만 인간의 삶 자체가 부조리로 되어 있는 상황과 조건에 예외가 있을 수 없어요. 생사(生死)는 반대의 단어인 데도 실은 같은 의미지요. 사뮈엘 베케트식(式)으로 이야기 하자면, 태어날 때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니까."
-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요. 먼저 내 마음속의 틀부터 버려야 합니다. 일단 상대방을 현재의 상 태 그대로 인정하는 거예요. '저 사람은 저럴 수밖에 없었다'라 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자라온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살아오 면서 겪은 어떤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가치관의 차 이도 있을 수 있죠. 지금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는 이면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이 존재합니다.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모습을 떠나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렇게 행동하 는 이유를 보게 되면 내 마음의 반응도 달라집니다. 상대가 잘못을 해도 화가 나기보다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나게 돼 요.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 자연히 내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 까 하는 마음도 생기게 되죠.
- 분명 깨달음은 있습니다. 하지만 환상적이고 신비하고 심오한 깨달음 같은 건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그 래서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참선 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깨달음에 대해 뭔가 마술 같은 신비한 체험일 거라는 편견이 있어요. 그런 느낌이 없으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 하는 경향도 있죠. 그러나 사실 깨달음은 일상과 동떨어지고 신비로운 어떤 것이 아닙니다. '몰랐던 걸 알았다', '잃었던 걸 찾았다', '가려졌던 것이 벗겨졌다', '어두웠던 것이 밝아졌다' 등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번갯불이 번쩍하는 순간 방 안을 직접 본 상태와 유사하죠. 나의 참모습, 이 세상의 참모습 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확신하는 경험적 지혜가 바로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에 맞게 내 삶을 만들어가는 실천이 더욱 중요합니다.
- 삶도 죽음도, 모두 생명 활동의 하나입니다. 개별 생명체가 태어나면 시작이고 죽으면 끝이고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끝 없이 이어지는 생명 활동의 여러 모양 중에 하나인 거죠. 이 사 실을 깨닫게 되면, 생에 대한 지나친 애착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고, 죽음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 습니다. 이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붓다 의 깨달음이고 가르침입니다.
- 우리는 계속해서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 개인과 타인을 구 별 지으려고 해요. 무엇이 원인이 되어서 뭔가가 만들어지고 그로부터 다시 새로운 무엇이 만들어진다고 보는 거죠. 그러나 딱 정해진 근본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불교의 사고방식 입니다.
오로지 조건생 조건무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어요. 단지 조 건이 맞으면 생겼다가 조건이 안 맞으면 사라지는 거죠. 마치 손뼉 소리처럼요. 조건이 만들어지면 바로 소리가 나죠. 안 맞 으면 바로 없어져 버려요. 세상 모든 게 그런 활동의 한 가지일 뿐입니다.
이게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사고방식이고 그것을 불교용어 로는 공이나 연기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 그런 사실 을 잘 파악하고 알 수 있도록 접근하는 것을 중도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 당신은 나를 볼 수 있고 나와 이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는 모두 그게 무슨 뜻인지 압니다. 하지만 우리 몸 안에서,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끔 만드는 어떤 고정된 실체가 존재하느냐 고 묻는다면, 애초에 질문이 잘못되었어요. 그리고 이러한 시 각은 '무아'라는 불교의 개념과 사뭇 닮아 있습니다.
무아(No Self), 산스크리트어로는 아나트만(Anatman). 초기 불교에서 사용했던 팔리어로는 아나타(Anatta)입니다. 고정된 실재로서의 나는 없고 모든 것은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불교 의 개념은 제가 연구하고 있는 시스템 생물학과 동일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완전히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 당신은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완전합니다. 존재 자체가 기적입니다. 모든 일상이 신비이고 불가사의입니다.
- 본질을 본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의 존재나 현상을 보더라도, 거기 에 연관되어 있는 수많은 것들을 함께 보는 것입니다. 차 한 잔 을 마셔도 그 오랜 세월, 차나무에서 차 이파리가 하나씩 나오 던 때, 그걸 쑥쑥 자라나게 한 햇빛과 빗물과 바람, 찻잎을 따 고 덖는 노고와 내 앞까지 오는 데 쏟은 수많은 존재의 수고와 정성을 함께 보는 것입니다.
시비 분별, 번뇌망상이 있기 이전의 마음, 비교하기 이전의 마음, 나라고 하는 개념이 있기 이전의 마음. 부처님은 항상 그런 마음으로 행동합니다. 그런 마음에서 꽃을 들어 보인 것이 지요. 무아를 체득하고 나의 의식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화두와 같은 강력한 무기가 필요합니다. 꽃을 든 부처님의 마음, 그 꽃 을 보고 빙그레 미소 짓는 가섭존자의 마음, '그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이지?' 하고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나의 본래 마음을 알고 싶다.
그 물음은 결국 이런 뜻이기도 하니까요.
- 걱정이나 불안, 이기심, 괴로움은 본래 마음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에 때가 묻게 된 거죠. 순수한 마음이었을 때가 분명히 있었어요. 더러워진 창문을 닦듯이 마음의 때를 깨끗이 닦고, 평화로운 나의 본래 마음을 찾아야 합니다.
- 그릇이 비어 있어야, 중요한걸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쓸데없는 것만 자꾸 그릇에 채워 넣다 보니, 정작 귀하고 중요한 걸 담을 수 없게 됩니 다. 지금 내 마음의 그릇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한번 살펴 보세요. 불필요한 감정들, 쓸데없는 망상,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고민거리들로 가득 차 있진 않은가 하고요.
또한 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주변에 점점 높은 담을 쌓 기도 합니다. 지위나 지식, 재산 같은 것들을 최대한 많이 쌓아 올리는 데 집착하고 매달립니다. 그러면 본인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그 안에 갇혀버리고 마는 거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비우고 허물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비우고 허무는 일을 위해, 절에서는 절을 합니다. 절 이란 내 앞의 상대방을 섬기고 모시는 일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몸짓입니다. 불교에서 하는 큰절을 '오체투지'라고 하는데, 내 이마와 두 팔꿈치, 양 무릎 이렇게 다섯 부분을 모두 땅에 닿게 하는 인사법입니다. 이마는 내 몸의 가장 높은 곳이잖아요. 이 마를 땅에 대면, 자연히 나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게 되죠. 나를 낮추고 낮추다 보면 점점 내가 사라져서 완전히 없어질 때가 오는데, 그것이 바로 무아입니다. 그렇게 됐을 때, 비로소 나의 마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커다란 빈 그릇이 됩니다.
- 십우도에서 소는 우리가 찾으려는 '자아' 혹은 '참된 나'를 의미합니다. 즉, 자아를 찾아서 떠나는 여정을 표현한 것이죠.
그런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여덟 번째 단계입니다. 텅 빈 원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습니다. 힘겹게 소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온 목동은 그만 소를 잊고 자기 자신까지도 잊어버리고 나 자 무아의 경지에 이릅니다. 비어 있는 원은 어떠한 집착도 없 는 완전한 해방을 의미하지요. 즉, 십우도는 마음을 다스리고 궁극적으로 자아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는 깨달음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나를 잊어야 역설적으로 나의 근원에 닿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무념(無念), 무상(無相), 무주(無住).
달마대사의 여섯 번째 제자인 육조 혜능대사가 한 말이에 요. 선이라는 마음의 상태를 혜능대사는 무념, 무상, 무주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번뇌와 망상이 없는 것을 무념, 어떤 고정 된 생각이 없는 것을 무상,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무주라고 해요. 그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마음속에 헛된 생각이 없는 것을 무념이라고 합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멍한 상태가 아닙니다. 생각을 할 때, 온갖 집착을 내려놓고, 자기 고집이나 욕심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음으로 무상은 고정된 상이 없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서 우리가 무언가를 보거나 누군가를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함께 떠올리는 상들이 있습니다. 할머니란 단어를 들으면, 자동으로 시골의 전원 풍경이나 할머니가 지어주신 솥밥 냄새가 떠오르며 포근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죠. 과거의 경험과 지식 과 정보에 의해서 대상과 연관된 관념, 편견들이 생겨나는 거 죠. 그런 관념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서 그 대상에 대입시켜 바 라보는 것입니다. 그런 상이 생기기 이전의 마음을 생생한 마 음, 살아 있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지어 낸 고정된 생각이 없는 것을 무상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주는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고 합시다. 한번 내가 큰 도움을 줬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그 생각에 계속 얽매이고 끌려가게 됩니다. 도움을 줬던 사람의 반응이 미지근하면 서운해하기도 하고, 도와준 일 때문에 내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걸 후회하기 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등 여러 감정에 휩싸이는 거죠. 이렇 게 어느 한곳에 얽매여 머무르거나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상태 가 바로 무주입니다.
그러니까 무념, 무상, 무주한 마음이야말로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우리 본연의 마음, 원래 있었던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그 러한 본연의 마음을 일으켜서 진짜로 쉬면서 앉아 있는 것이 바로 좌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절에서는 팔을 과도하게 흔들면서 걷지 않습니다. 평상시에 는 차수라고 해서 두 손을 교차하여 왼손 손등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잡아 가지런히 모으는 자세를 취합니다. 돌아다니다 사 람을 만날 때는 합장을 합니다. 밖에서 만나면 악수를 하는데 절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목례를 하는 인사를 합니다. 합장은 '당신과 나는 하나입니다', '내 모든 것을 모아서 하나의 마음 으로 대합니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가진 두 손을 모두 내보여 줌으로써 나는 당신과 다투거나 싸울 의사가 전혀 없다는 표현 이기도 합니다.
- 열 개의 손가락을 하나로 모으는 행위를 통해 본질과 현상이 하나가 되고 왼손가락의 다섯 장기간, 심장, 위, 폐, 신장)와 오른손가락의 다섯 감각기관(눈, 귀, 코, 혀, 피부)이 한데 모아집니 다. 또한 나와 상대가 하나 됩니다. 소통이 이뤄진다는 것은 마 음이 맞는 것, 즉 나와 상대의 마음이 통하는 일이죠. 그래서 합장은 나는 당신과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진정한 소통을 바라는 몸짓과 같습니다.
- 지금 이 만남이 세상에서 단 한 번의 인연입니다. 지금 이 순 간이 세상에서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때가 모 두 기회이니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일기일회의 마음으 로 바라본다면 항상 새롭고, 잘해보고 싶은 의지가 생겨납니 다. 언제 어떤 일이든, 어느 사람이건,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 들을 당당하게 맞을 수 있어요.
인생에서 좋은 때라는 건 따로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입니다.
- '꽃밭'이라고 하면 반드시 거기에는 선택과 소외가 발생합 니다. 선택과 소외가 생기면 반드시 거기에는 차별이 생기고 싸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잘 알려진 꽃, 화려한 꽃을 위해서 하찮아 보이는 풀꽃 따위는 뽑혀야 하는 대상이 되는 거죠. 따 라서 평화로울 수도 없고 편안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풀꽃밭' 이라고 하면 모두가 꽃이기 때문에 선택과 소외가 발생하지 않 습니다. 모두 평화롭게 살 수 있죠.
존재 하나하나가 다 꽃으로 존중받고 배려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입니다. 그런 삶이 가능한 곳을 극락세계라고 합니 다. 이 기와 안에서는 어떤 식물도 함부로 취급받지 않고 다 보 호받습니다. 식물들의 천국인 셈이죠. 우리에겐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들이 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필요합니다. 이 것도 그런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작은 몸짓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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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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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이유
"우리는 왜 뻔한 질문을 주고받을까?"
이유 1 우리는 좋은 질문을 하기에 너무 이기적이다 
이유 2 질문을 두려워한다
이유3 질문으로는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
이유4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느라 객관성을 잃었다 
이유 5 우리는 급하게 묻고 급하게 답한다
이유 6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

- 연구에 따르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한다. 도파민은 흥분감을 불러일으킨다. 하버드대학교의 과학자들은 fMRI 스캐너를 사용해서 연구를 진행했다. 먼저 실험 참가자 195명에게 자신의 의견과 생각 에 대해 토론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실험 참가자들이 자신에 대해 말한 내용과 타인에 대해 말한 내용 간의 신경 활동 차 이를 조사했다. 그 결과,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세 개의 영역에서 큰 반응을 보였다. 먼저 내측 전두엽 피질 영역이 두드러지게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영역 측핵 영역과 복측 피개 영역에서도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이 밝혀졌 다. 이 두 영역은 사실 변연계의 도파민 시스템으로 섹스, 코 카인, 맛있는 음식 같은 쾌락에 반응하는 부위였다.
이 실험 결과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섹스나 코카인, 맛있는 음식만큼이나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잘 보 여준다. 또 사람들이 왜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보다 자신에 대 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비록 다른 사람들 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울지라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이 훨씬 더 즐거운 법이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질문을 던 지는 것보다 더 강렬한 결과(도파민, 달콤한 느낌, 보상)를 가져 다주기 때문이다(<다이아나 타미르(Diana Tamir)>, 2012).
- 우리는 신속하게 답을 검색하고 찾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이런 중요한 질문에도 똑같이 반응한다. 그러나 중대한 의견 차이가 있거나 심사숙고해야 하는 일,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그러니 우리는 답변을 미루는 법도 배 워야 한다.
-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모순적 증거가 드러나 면 오히려 자신의 견해를 더 강하게 믿는다고 한다. 자신의 의견과 신념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유연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다르 다. 객관적인 판단 기준이 사라진 채 다름만 인정하다 보면 사실과 의견이 뒤섞이게 되고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객관 적으로 판단하고 추론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 메르슈는 "우리는 보통 술 취한 사람이 가로등에 기대는 것처럼 사 실을 사용한다"라고 표현했다. 조명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항상 자신의 타당 성을 찾고 발견한 정보는 자신의 관점에 맞춰서 걸러낸다.
진지하면서도 호기심이 넘치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기 존에 갖고 있던 관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지 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질문을 원치 않는다. 정당한 불확실성보다 부당하더라도 확실한 것을 원한다. 우리는 생 존 모드에서 어려운 질문에 본능적으로 더 빨리 대처한다. 왜냐하면 질문은 정체성이 위협받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 다. 물론 "어디에서 살고 있습니까?"와 같은 사실 질문(fact question)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당신의 진술에 대 해 질문하면 긴장하지 않고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 소크라테스처럼 질문하는 법
"나를 버리고 상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라"
1. 지혜는 놀라움에서 시작한다
2. 호기심을 유지하라
3. 용기를 내서 과감하게 질문하라
4. 판단하되 집착하지 마라
5.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해보자
6. 연민하되 공감하지 마라
7. 상대가 짜증을 내도 마음에 담지 마라

- 소크라테스는 대화상 대가 지식을 기억해내도록 도왔는데 그 방법을 '산파술'이라 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어머니가 산파여서 출생 과정을 잘 알 고 있었고 다른 사람의 지식을 심화시키는 방법을 출생 과정 에 비유했다.
내가 말한 것 중 일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아는 게 없다는 생 각에 모르는 뭔가를 추구해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 다. 하지만 인간은 뭔가를 탐구할 때 더 나아지고 더 용감해지며 덜 무 기력합니다. 이것이 내가 모든 것을 걸고 싸울 주제입니다.
- 소크라테스는 메논에게 이렇게 말했고 결국 마지막 말을 문자 그대로 실행했다. 그는 기소당했고 독약을 마시라는 사 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70세였고 죄명은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였다. 일생 동안 비판적인 질문을 던져 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그러 한 비판적 질문들이 청소년의 불복종을 충동질한다고 여겼 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그를 궤변론자로 분류했다. 당시에 궤변론자는 무신론의 한 부류로서 반사회적이라고 여겼다.
-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ie)』에서 소크라테스 의 재판 과정을 설명했다. 소크라테스는 500명의 아테네 남 자 배심원 앞에서 자신을 변론했다. 변론에서 그는 자신이 어 떻게 나쁜 평판을 얻게 되었는지 설명했고 자신을 고발한 자 들에게 조롱을 퍼부었다. 배심원들은 그가 기소 자체를 진지 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과반수 이상인 360표 찬성으로 독약형을 선고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을 일종의 무(無), 꿈 없는 영원한 잠 또는 죽은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간다고 여겼다. 두려워할 필 요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철학사의 출발점으로 불려왔다. 어떤 이들은 '철학의 빅뱅'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 나는 바보고 상대방이 전문가다
아이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는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성인은 왜 그렇지 못할까? 성인들은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지기도 전에 상황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연습해보자.
* 상대를 해당 주제에 대한 전문가라고 가정하자.
* 당신의 생각, 판단, 의견을 흥미로워하지 마라.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알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 대화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질문을 해보자.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정확하게 무엇을 경험했어요?" "알고 있는 다른 거 더 없어요?" "그 일의 결과가 항상 똑같을까요?" "그 일이 다르게 전개되지는 않을까요?" "그 일이 언제, 어떻게 전개될까요?'
이 연습을 자주 하다 보면 질문이 바닥나지 않는다. 만약 질문이 바닥난다면 '난 이미 알고 있어'나 '그 말이 맞아'라고 했던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 에픽테토스는 『담화록』에 판단하려는 경향을 포함해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 기록했다. 그는 판단하지 않고 관찰만 하라고 권유
했다.
누군가 빨리 씻는다고 가정하자. 이런 경우 그가 잘못 씻는다고 말하 지말고 그냥 너무 빨리 씻었다고만 말해라. 누군가 와인을 많이 마신 다면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나쁜 습관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술을 많이 마신다고만 말해라. 그가 가진 동기를 정확히 모르면서 그가 나쁜 행동을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현대 작가인 마시모 피글리우치는 『당신은 어떻게 스토아학파가 될까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결론은 사실(관찰로 확인된 동의할 수 있는 사실)과 판단을 구별해야 한 다는 것인데, 정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잠시 생각을 멈춘 후 사실 과 판단을 구분해야 한다.
- 많은 사람이 공감에 호의적이다. 그러나 공감 은 거리를 유지하고 도덕적이고 객관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는 최악의 적이다. 『공감의 배신』이라는 책을 쓴 예일대학 교의 심리학자인 폴 블룸은 <보스턴 리뷰>에 다음과 같은 글 을 썼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으면 나는 종종 공감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보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 만 “저는 공감에 반대합니다"라고 말을 덧붙이면 불편한 웃음이 이어 진다. 처음에는 이런 반응에 놀랐다. 하지만 공감에 반대하는 말은 새 끼고양이가 싫다는 말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농담으로나 받아들 일수 있는 그런 이상한 말이었다.
- 블룸은 도덕성, 연민, 친절, 사랑, 좋은 이웃, 옳은 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 등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이 모두를 지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공감은 그렇지 않다고 했 다.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면 공감은 나쁜 상담자라는 것이다.
-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과 닮은 사람들, 아주 잘생긴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의 사람들에게 더 크게 공감한다고 한다. 즉, 우리의 공감은 엄청나게 편향되어 있다. 블룸은 공감을 인지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으로 구별했다. 당신의 지성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당신을 자리 잡 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사는 자신의 이야기가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야 한다. 이는 합리적인 추측이며 사회적 지능의 현명한 사용법이다. 그러나 감정 이입은 다른 이야기다. "의사도 환자에게 감정적으로 공감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블룸은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의사는 제정신이 아니어서 수술할 수가 없다. 도덕적 판단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감은 오히려 나쁜 상 담가이다. 도덕적 판단은 공감이 아니라 합리적 성찰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은 자신의 책과 논문에서 정서적 공감의 대안으로 비 공감적 연민 또는 공감하지 않는 연민을 주장한다.
가장 친한 친구의 파트너가 세상을 떠났다고 상상해보자. 큰 공감 반응은 그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공황, 슬픔 등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공감이 친구와 당신에게 유익하냐이다. 공감하지 않는 연민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글자 그대로 고통 속에서 자신 을 잃지 않고 도움과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거리를 적절히 뒀을 때 더 편한 상태가 되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야 기에 덜 끌려다니고 상대방의 말을 더 잘 듣고 분석할 수 있 다. 공감이 거의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더 자세히 알 기 위해 던지는 훌륭하고 심층적인 질문은 결국 "공감하지 마세요"라는 말과 같다. 그러니 잠시 공감을 멈추는 게 좋다.
-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대화는 종종 '모르겠다'라는 전반적 의미인 '아포리아(aporie)'로 끝난다. 질문은 여전히 질문으 로 머물고 만족스런 답변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함께 생각 해낸 아이디어와 생각은 수없이 많지만 대화를 끝낼 정도로 결정적이지는 않다.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대화의 목표는 답 을 찾는 게 아니다. 대화에서 찾은 모든 '답변'에 대해 계속 질문하는 것이다. 더 많은 질문을 해야만 생각이 계속 움직인다. 실제로는 너무 조금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 계속 호기심을 가지고 생각하며 명백한 것을 포함하여 모든 것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그러면 자동으로 모든 것을 느끼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정말로 답을 모른다. 이 사실을 모르는 무지가 더 강한 무지다.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대화를 하다 보면 결국 당신은 문제의 모든 면 을 보고 질문하고 탐색하게 된다. 그리고 대화의 끝인 아포리 아가 자유를 가져다준다.
- 거리를 두고 듣기
상대의 말에 관심을 유지하려면 피상적으로 들어야 한다. 감정 이입을 하면 안 된다. 오직 피상적으로, 문답식으로 들어야 한다. 상대가 사용하는 언어를 들어도 그 의미에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한다.
- 가장 먼저 어떤 형태로 말하는지 인식해야 한다. 말의 내용을 듣지 말고 언어의 형태를 들어보자. 질문하는지, 주장하는지, 무언가를 설명하는지, 자신의 발언을 방어하는지 살펴보자. 말을 하면서 어떤 개념을 강조하는지, 반대 주장을 하는지, 논점에 오류는 없는지 잘 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보통 상상을 펼치며 듣고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놓고 생각해본다. 세세한 부분은 스스로 채우고 무의식적으로 문장을 보충하면서 전체 이야기를 완성한다. 하지만 피상적으로 들으면 이야기의 형태만 듣고 내용은 듣지 않게 된다. 상상하지 않고 상대에게 관심을 유지한 채 상대가 말하는 것만 문자 그대로 듣게 된다.
이를 '적극적인 마음챙김'이라고 부른다. 상대의 언어에만 온전히 관심을 쏟을 수 있어서 오히려 에너지 소모가 덜하다. 자신의 말을 끼워 넣지 않고 완성하지 않으며 보태지도 않는 다. 약간 모자란 사람처럼 행동하며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 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말의 숨은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 짜증 자체는 탐구 과정에서 꼭 필요한 재료다. 짜증을 내는 이유는 질문에 상처를 받았지만 강력하게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관점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짜증을 낸다. 즉, 짜증은 자기 생각에 갇혀 있다는 표시다. "왜 짜증이 나죠?"라고 질문하면서 상대방이 자신의 상태를 볼 수 있게 하고 결국에는 '자기의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한다.
- 짜증 견디기
*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을 활용해서 대화를 시작해보자.
* 허락을 구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보자.
* 질문을 계속하고 다시 받아치기를 반복하자.
* 상대방이 짜증을 내더라도 침착하자. 그 짜증은 당신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다.
* 질문을 계속해도 될지, 아니면 그만해야 할지에 대해 물어보자.
* "한숨을 쉬는 것을 봤어요. 그 한숨은 어떤 뜻이에요?" "짜증 나 보이던데 왜 짜증이 났나요?" 같은 질문을 해보자.
- '왜'로 시작하는 질문에는 한 가지 결점이 있다. '왜'로 시작하는 질문에 상응하는 단 하나의 분명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만사는 단지 하나의 이 유, 원인, 동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2차 세계 대전은 왜 일어났을까요?"라는 질문에 딱 한 가지 분명한 이유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답변을 원한다면 질문을 '어떻게'로 시작하는 것이 낫다. "왜 고기를 안 먹나요?"가 아니라 "어떻게 고기를 안 먹게 됐 나요?"라고 질문하면 좀 더 다양한 원인에 대해 들을 수 있다.
- 모든 사람과 대화할 필요는 없다. 가족 파티에서 늘 같은 이야기만 하고 도무지 종 잡을 수 없는 이종사촌이 있다면?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다 면 그만두면 된다. 공감대가 전혀 없고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비가 너무 많은 동료가 있다면? 물론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
대화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지, 에너지가 빠져나가는지를 주의해서 살펴봐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대화는 정확 히 말하면 평소 내가 관심 없던 사람들,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나자신에게도 선물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생각과 통찰력을 얻을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좋은 대화가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주입하기보다는 함께 지혜로워질 수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관점과 이해를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 먼저 이해하고 그다음에 이해받는 대화가 필요하 다. 좋은 대화는 좋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좋은 질문은 호기 심 가득한 마음과 감탄하는 자세에서 시작한다. 즉, 소크라테스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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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파워오브펀

인문 2023. 5. 17. 21:33

-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공식적인 진단을 받지는 않았더라도 많은 이들이 공허함, 외로움, 지루함, 전반적인 무력감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 만나는 사람들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거라고 주장하고 싶다. 고통스러워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즐기지 못하 기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재미는 행복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는 얘기다.
- 장난기, 유대감, 몰입이 모두 적극적인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은 곧 수동적인 소비만으로는 진정한 재미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뜻이 기도 하다. 우리가 재미를 위해 하는 많은 일, 즉 TV 시청이나 소셜 미디어 피드 확인 같은 것들은 수동적인 활동이다. 그런데 거기에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다고 설득하기 위해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가.
이런 생각에 반발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면, 그건 수동적인 소비 가 편하고 즐거우며 심지어 교육적이고 만족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 이다. 실제로 소비가 정말 즐겁거나 보람 있는 상황도 많은데, 이런 상황들 때문에 진정한 재미와 쉽게 혼동하게 된다. 예컨대 콘서트 나 연극, 댄스 공연은 신나고 즐겁고 심지어 변혁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나는 영화를 보러 가거나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 는 게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삶에서 수동적인 소 비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이런 일들이 정말 재미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 경험과 관련된 뭔가가 장난기, 유대감, 몰입을 제공한다면 모를까. 이럴 때 그 경험은 적극적 소비로 바뀔 수 있다."
- 수동적 소비의 주된 문제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고 사용하는 마약처럼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습관은 의존성 을 유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수동적 소비를 선택 사항에 서 기본 사항으로 바꿔 결국 다른 선택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 게 한다. 그리고 수동적 소비에 빠져서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낼 때 마다 진정한 재미를 추구하는 데 쏟아야 할 시간과 에너지가 줄어 든다.
- 때로는 궁극적으로 즐겁지 않고 결코 진정한 재미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그 일에 계속 매료될 수도 있다. 소 셜 미디어에 빠져들거나, 뉴스 기사를 계속 스크롤하거나, 데이트 앱에 등록된 이성의 프로필을 아무 생각 없이 훑어보거나, 소파에 들러붙어서 하루를 허비하거나, 필요 없거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싼 물건을 사는 것 등이 그렇다. 그게 시간을 보람 있게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고 결국 기분이 나빠지거나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충분히 알면서도 계속 그런 일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그런 일들의 속박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일이 생겼 다면 당신은 내가 '가짜 재미'라고 부르는 것에 유혹당했을 가능성 이 크다. 가짜 재미는 진정한 재미를 안겨주리라고 생각하게끔 의 도적으로 고안된 활동과 일들을 가리키며, 실제로는 장난스러운 유 대감이나 몰입감을 안겨주지 않는다.
가짜 재미는 위장술이 뛰어나기 때문에 처음에는 식별하기가 어 려울 것이다. 진정한 재미를 느낄 때 우리 몸과 뇌에 존재하는 화학 물질 중 일부를 방출하도록 고안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실제로 는 보상과 가치관, 목표가 우리와 매우 다른 사람이나 기업이 만든 재미의 신기루다. 정크푸드처럼 가짜 재미 역시 신속한 즐거움을 주 지만, 궁극적으로 완전한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 우리는 죽으리라는 사실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통제할 수 있다. 하루하루를 그냥 간신 히 견디며 살 것인지, 아니면 마음껏 경험하면서 즐길 것인지 통 제할 수 있다. 임종을 맞을 때 평생 시간을 낭비했다는 기분을 느 낄 것인지, 아니면 태양 아래에서 보낸 찬란한 순간을 떠올릴 것 인지 통제할 수 있다. 우리가 얽매여 있는 대부분의 것이 중요하 지 않다는 생각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자유로운 기분을 안 겨준다. 우리는 자기만의 의미와 목적과 기쁨을 만들 수 있다. 자 기만의 경로를 기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을 안내해주는 것이 진정한 재미다.
-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할 사실은 우리 삶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 이라는 것이다. 관심은 우리가 가진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이다.
우리는 자기가 주목하는 것만 경험하고, 자기가 주목하는 것만 기억한다. 어떤 순간에 어디에 주의를 기울일지에 대한 선택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결정들이 전부 합쳐지면 매 우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애니 딜러드가 썼듯이, "우리가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 곧 인생을 보내는 방식이 된다".
- 산업혁명과 공장 일자리의 출현은 유급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즉, 성과가 아니라 그들이 직장에 서 보낸 시간을 기준으로 수입이 결정되기 시작했다. 이는 구두를 수선하고 그 대가를 받는 구두 수선공 (종료 시점이 정해져 있고 성공을 측 정하는 명확한 방법이 있다)과 이론상 무한정 반복할 수 있는 작업을 수 행한 시간에 따라 보상을 받는 공장 근로자의 차이다. 후자는 사람 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견딜 수 있는 한 계속 일하고자 하는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또 공장 노동으로의 전환은 여가와 재미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작업 완수에서 생산 쪽으로 돌리면 당연히 많은 물건이 생겨날 것이다. 여기서 윤을 남기려면 당신이 생산한 물건을 사도록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다시 말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광고와 마케팅 같은 산업을 새로 구축해서 사람들이 더 많은 걸 원하 고 필요로 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이때 정말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당신이 만든 물건을 사면 행복하고 즐거워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누가 더 많은 물건을 얻을 수 있는지 서로 경쟁하게 하면 훨씬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당신이 만든 물건을 사고 신용카 드빚을 갚으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일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대개는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하는 직장에서 일을 한다. 그러 면 또 이윤을 내기 위해 그 물건을 팔아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상 황이 계속 되풀이된다(당신은 지금 한 단락으로 요약한 물질주의와 소비문화 의 역사를 보고 있다).
- 악순환은 진정한 재미를 유발하는 능력과 관련해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많은 돈과 물질적 소유물을 재미와 결합하면, 더 많 은 물건을 살 돈을 벌기 위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으려는 동기가 생긴다. 다시 말해 일이 여가를 침범하도록 부추기는 역효과가 생 긴다. 이 때문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고, 실제로 진정한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경험에 참여할 시간 도 줄어든다. 그러면 재미 부족으로 공허함과 불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장난기 · 유대감 · 몰입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우리는 종종 밤과 주말까지 더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 더 많은 걸 사는 방법으로 감정적인 공백을 메우려고 노력한다.
-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 개발을 도왔던 전 페이스북 엔지니어 저스틴 로즌스타인은 <소셜 딜레마>에 출연해서 "우리의 관심은 채 굴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풍요로운 방식으로 살 아가는 것보다 스크린을 응시하고 광고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기업에 더 이익이 된다.”
그들이 추구하는 건 우리의 관심뿐만이 아니다. 기술 전문가이자 가상현실 분야의 선구자인 재런 러니어는 광고주 (그리고 유료 콘텐츠 를 제작하는 사람이나 기업)가 페이스북 같은 회사에 돈을 내는 이유는 우리가 단순히 그들의 광고를 흘깃 보고 넘어가게 하려는 게 아니 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우리의 인식, 감정, 행동에 점진적이고 미약 한 변화를 일으키면 훗날 그들의 이익이나 수익에 도움이 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돈을 낸다. 다시 말해, 그들의 목표는 우리가 뭔가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한때는 광고라고 불렀던 것을 이제는 거대한 규모의 '지속적인 행동 수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러니어는 말한다. 그가 한마디로 요약하는 것처럼, "당신의 특정한 행동 변화 가 제품으로 바뀌었다".
기업들은 '적응형 알고리즘'이라는 걸 이용해서 우리 행동을 수 정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앱이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해서 더욱 개인화된 광고와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게 하는 컴퓨터 프로 그램이다.
친구와 어떤 일에 관해 얘기를 나눈 뒤, 일테면 새 신발에 관해 얘기를 나눈 뒤 당신이 직접 검색한 적이 없는데도 소셜 미디어 피 드에서 그 신발 광고를 본 적은 없는가? 이것이 적응형 알고리즘의 예다.
- 하지만 이런 알고리즘이 하도록 유도하는 일만 문제인 게 아니라, 그로 인해 하지 않게 되는 다른 모든 일도 문제가 된다. 특히 앱과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사람들(대부분 비도덕적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이 익을 추구하는)의 동기가 우리가 실제로 삶을 사는 방법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면 뭔가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보다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 는 바람에 확실히 놓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요컨 대 알고리즘으로 생성된 링크를 따라가는 모든 순간에는 책을 읽거 나 악기를 연습하거나 친구와 대화를 나누거나 심지어 하늘을 쳐다 보는 등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하지 않게 된다. 시간을 파편화할수 록 우리는 자신을 더 보기 좋게 가꿔야 하는 일종의 상품으로 취급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런 상황에 많이 연루될수록 몰입하거나 진 정한 자아를 드러내거나 진정한 재미를 느끼는 능력이 줄어든다.
- 피처럼 붉은색을 띤 알림 창부터 쇼핑 카트에 뭔가를 넣을 때 발 생하는 미세한 진동까지 도파민 분비 요인은 우리 휴대전화 곳곳 에 있다. 가짜 재미를 추구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도록 우리를 속이 는 것과 관련해 가장 관련성 높은 세 가지는 새로움, 보상, 예측 불 가능성이다. 이들 각각은 그 자체로도 강력하며 휴대전화를 들여다 볼 때 종종 그러는 것처럼 한꺼번에 경험하면 거의 저항이 불가능 하다. 하지만 이들을 잘 파악하고 있으면 저항할 기회가 많아진다.
- 새로움
새로운 걸 경험할 때마다 도파민이 약간씩 분비된다. 우리가 왜 이런 식으로 진화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발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의 진화적인 이점은 새로움이 재미와 연관 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우리의 가장 즐거운 기억 중 에는 그 순간 새롭게 느껴진 활동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첫 키스를 했던 순간이나 처음 구입한 차를 운전하던 순간, 새로운 곳으로 처음 여행을 갔을 때를 떠올려보라. 우리가 '재미'라고 부르는 기분에는 즐거움과 기쁨을 이용해서 새로운 걸 시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 는 진화적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새로움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실생활에서는 새로운 건 결국 사라지고 다른 것 또는 다른 사람으로 옮겨 가게 된다. 하지만 휴대전화는 집어 들 때마다 새로운 걸 제공하기에 휴대전화를 확인 하는 일은 결코 물리지 않는다. 새 이메일이 없으면 언제든지 소셜 미디어를 확인하면 된다. 소셜 미디어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뉴스 를 보면 그만이다.
- 예측 불가능성과 보상이 결합하면, 다시 말해 슬롯머신과 시간 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앱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일정으로 보상이 제공되면 효과가 훨씬 강력하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간헐적 강화 (intermittent reinforcement)'라고 부른다. 이는 매우 강력한 도파민 분 비 요인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행동을 조종하는 가장 효과적인 기술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다. 정서적인 학대 관계에서 매우 흔하게 나 타나는 패턴이기도 하다.
간헐적 강화가 발휘하는 힘은 대부분 기대와 관련이 있다. 즉, 우리 뇌는 보상이 보장돼 있을 때보다 예측할 수 없는 보상을 기대할 때 더 많은 도파민을 방출한다. 그래서 알림음을 듣거나 진동을 느 끼면 중요한 일이나 대화를 하던 중에도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 뇌가 기본적으로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면서 침을 흘리는 것이다. 불확실성에 매력을 느끼는 본능과 기대의 생화학이 결합하면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자주 논쟁에 휘말리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누군가 와 싸움을 벌이면 우리 몸에 있는 생존과 관련된 그 밖의 화학물질이 전부 방출된다. 이 생화학적 조합 때문에 상대방의 반응을 열심히 예상하면서 우리가 옳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려고 집착하게 된다.
상대가 언제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상황이 더 욱 악화된다.
앱 개발자들은 불확실성과 간헐적 강화를 이용해서 우리를 휴대 전화에 계속 매어둔다. 이메일이나 팔로워, '좋아요', 뉴스 기사가 평일 오후 4시에 갱신된다고 정해져 있다면 다른 시간대에도 계속 휴대전화를 확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휴대전화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다. 언제 새로운 정보가 도착할지, 그게 어떤 정보일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휴대 전화를 가지고 다니고 주의의 일부는 늘 휴대전화에 쏠려 있다. 궁극적인 보상이 아무리 무의미하더라도 예측 불가능성과 기대 때문에 우리 뇌는 도파민을 분비하고, 이것 때문에 계속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데이비드 그린필드의 말처럼, "아마 우리 뇌가 이 걸 좋아하는 듯하다".
- 우리 뇌가 새로움, 보상, 예측 불가능성에 끌리는 건 본질적으로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사실 그 때문에 호기심을 느끼 게 되므로 여기에는 진화적인 이점이 있다. 만약 호기심이 없다면 우리는 현실에 안주할 테고 결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예기치 않게 즐거 운 상황으로 인도하므로 삶이 더 즐거워진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지나치면 독이 된다. 스마트폰에는 도파민 분비 요인이 너무 많아서 단순히 호기심을 느끼는 게 아니 라 최면에 걸리곤 한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 리고는 시간이 언제 이만큼이나 지난 건지 의아해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정말 즐길 때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데, 도파민이 유도한 가짜 재미에 무아지경으로 빠져 있을 때도 마찬가 지다.
- 진정한 재미는 우리 관심을 집중시키는 반면, FOMO는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 관심을 분산시키고 불안하게 해 서 종종 몸에서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될 정도다. "휴대전화가 눈에 보이거나 근처에 있을 때, 또는 휴대전화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거나 심지어 들었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진다." 데이비드 그린필드의 말이다. "이건 스트레스 반응이라서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싶어지는 게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잡는다. 그 러고 나면,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할 만 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강화된다. 이 역시 도파민 분비 요 인으로,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된다.
코르티솔은 뭔가에 쫓기는 등의 신체적 위협에 대응하고 살아남 게 해준다. 안타까운 점은 도파민 시스템이 우리에게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구별할 수 없는 것처럼, 코르티솔 시스템 역시 신체적 위협과 감정적 위협 또는 중대한 위협과 사소한 위협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도에 상관없이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 한다.
- 내가 알아낸 충격적인 사실 중 하나는, 일찍 죽는 문제에서는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게 비만으로 인한 신체 활동 부족과 건강 문제 보다 훨씬 큰 위험 요소라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외로움과 사회 적 고립으로 인한 건강 위험이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맞먹는다고 주장했다.
외로움과 관련된 건강 문제는 너무 많기 때문에 UCLA 사회유전 체핵심연구소의 스티브 콜 박사는 외로움을 "다른 질병을 키우는 비료"라고 말한다.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비만부터 우울증, 알츠하이머병, 인지력 저하에 이르기까지 모든 질환의 높은 위험성과 관련이 있다. 이 중 마지막 두 가지에서는 그 위험성을 특히 주목할 만하다.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알츠하이머 병과 인지력 저하, 흔히 치매라고 이야기하는 질환의 발병 위험을 50퍼센트 정도 증가시킨다고 한다.
외로움은 염증과 면역력 약화를 일으키는 위험 요인이다. 또 혈 액 속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증가시키고 수면 장애를 일으킨 다. 수면 부족은 그 자체가 방금 열거한 모든 질환에서 독립적인 위 험 요소라는 걸 고려할 때, 이는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외 로움은 남들에게 거부당하거나 배제되는 징후 같은 잠재적인 사회 적 위협을 극도로 경계하게 해서 FOMO를 조장한다. 과잉 각성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의 징후이자 원천이다.
- 몰입이 반드시 황홀하거나 오래 지속되는 건 아니다. 한 번에 몇 분 또는 몇 초씩 낮은 강도의 몰입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황홀한 몰입도 가능한데, 이를 심리학자들은 '지고'의 경험이라고 부른다. 칙센트미하이의 설명처럼, 이런 최고의 몰입 상태에 있을 때는 "오랫동안 소중히 여기면서 인생이 지향해야 하는 바를 가리켜주는 더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최대한 많은 경험을 통해 몰입에 빠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칙센트미하이는 말한다.
이키가이(v)라는 일본식 개념에 대한 연구도 이를 뒷받침 하며, 재미를 중심으로 살아가면 우리 삶의 궤적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예를 제공한다. 이키가이를 대략 설명하자 면 '가치 있는 삶'이라는 뜻으로 프랑스인들이 레종 데트르(raison d'être)라고 부르는 것, 즉 우리의 존재 이유다. 이것은 아침에 침대 에서 기쁘게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한데, 작가 엑토르 가르시아와 프란세스크 미랄레스가 《이키가이: 장수와 건강한 삶을 위한 일본 인들의 비결(Ikigai: The Japanese Secret to a Long and Healthy Life)>이라 는 책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 장수의 과학과 무엇이 길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지에 관심이 많 은 가르시아와 미랄레스는 100세 이상의 인구가 평균보다 많은 것 으로 유명한 일본의 오키나와섬으로 향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주민 들이 느끼는 굉장한 기쁨이 길고 즐거운 삶의 여정을 인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게 바로 그들이 "항상 바쁘게 살면서 느끼는 행복"이라고 설명한 이키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여기서 바쁘다는 건 서구에서처럼 항상 인터넷에 접속해 서 하루 7시간 동안 일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키가이에서 말하는 바 쁨은 자기가 아끼는 어떤 것 또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행복을 뜻한 다. 즉, 특정한 종류의 몰입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르시아와 미랄레 스는 "더 많이 몰입할수록 이키가이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 사람들이 자신의 이키가이를 표출할 때 경험하는 몰입은 우리가 즐길 때 경험하는 몰입과 같은 종류다. 가르시아와 미랄레스는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할아버지를 한 분도 보지 못했다"라면서 그들이 방문한 오기미 마을의 주민들을 설명했다. "오기미는 정말 나이 많은 주민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장수 마을' 로 유명한데, 그들은 항상 왔다 갔다 하면서 노래방에 가거나 이웃 집을 방문하거나 게임을 한다."
연구원들이 방문했을 당시 오기미에는 술집도 없고 식당도 몇 군데뿐이었지만 주민센터는 10개가 넘었다.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모여서 사교 활동을 벌였고 가르시아와 미랄레스도 불러서 함께 어울렸다. 가르시아와 미랄레스는 마을에 머무는 동안 아흔아홉 살과 아흔네 살, 그리고 여든아홉 살이 된 '젊은' 남자의 합동 생일 파티 에 참석했다. 그들은 춤을 췄고, 축제에도 갔으며, 차를 마시면서 여 유롭게 담소를 나눴다. 노래도 많이 불렀다. 이들이 인터뷰한 노인 한 분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는 말 로 공동체의 가치관을 요약했다.
이키가이의 몰입, 그리고 진정한 재미의 몰입은 우리가 화면을 응시하는 동안 종종 빠져드는 멍한 상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칙센트미하이는 후자를 '정크' 몰입이라고 부른다. 즐거울 수는 있 지만 정신이 마비된 상태를 말한다.
정크 몰입은 실제로 우리를 사로잡지 않으면서 소비만 장려한다.
- 곰곰이 생각해보면 재미 자체가 미리 정해진 결과가 없는 즉흥적인 상태다. 재미있게 놀 때는 전적으로 그 순간에 집중하면서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일에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자신을 향한 것이든 다른 사람을 향한 것이든 평소의 비판적인 성향이 일시적으로 잦아들고, 개방적이고 장난스러운 정신으로 대체된다. 자의식에서 놓여나면 새로운 일을 시도할 용기가 늘어난다. 아이디어도 많아진 다. 일반적인 불안감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 또 창의력을 발휘할 잠재력도 놀랄 만큼 솟구친다.
- 생각은 항상 표류하기 마련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유는 자 신의 머릿속을 마구 흔들어서 눈보라가 휘날리는 스노볼이라고 생 각하는 것이다. 눈송이는 개별적인 생각인데 아무렇게나 빙글빙글 도는 바람 탓에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마음챙김 명상을 할 때는 아 무것도 판단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꾸려고 하지 않으면서 폭풍자 기 생각)을 가만히 관찰하기만 한다. 그러다가 결국 폭풍이 잦아들면 눈송이가 바닥에 얌전히 가라앉을 것이다.
직접 해보는 게 좋은데, 주의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자 신을 용서하는 태도를 취하자는 것이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뇌는 생각하는 게 자신의 본분이기 때문에 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써도 계속 산만해지기 쉬우니, 그것 때문에 자책하지는 말자. 그건 더없이 정상적인 일이다. 자기 생각을 알아 차렸다는 건 성공했다는 뜻이다.
둘째, 너무 바쁘게 살지 말자는 것이다. 고요하고 여유 있는 생활 이 너무 불편해서 삶을 여러 일로 가득 채우는 이들도 많다. 또 불 안감이 밀려오지 않도록 바쁘게 지내기도 한다. 나도 바쁘게 지내 는 게 어느 정도까지는 유용한 대처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는 바람에 분주함 자체가 불안과 고통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런 분주함을 제거할 경우 또 다른 일시 적 부작용인 실존적 절망의 위험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여가를 즐기는 데는 어떤 기술도 필요 없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증거는 그와 반대되는 정황을 시사한 다. 여기는 일보다 즐기기가 더 어렵다. 여가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르면 삶의 질 이 높아지지 않으며, 그건 저절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
- 마거릿 탤벗은 "실력은 평범하지만 정말 즐기는 일에 기꺼이 참 여하는 것, 특별한 이유 없이 해보고 싶은 일을 불완전하게나마 추 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저항처럼 느껴진다"라고 했다. 그러 니 저항하자. 초보자가 되자. 사정이 허락할 때마다 열정 · 관심사. 취미를 추구하자.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자. 그럴 때마다 '호사가'라는 말은 변덕이나 무책임한 태도를 암시하는 게 아니라 '즐기다'라는 이탈리아어 동사에서 유래했다는 걸 기억하 자. 그리고 '아마추어'는 기술 부족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사랑'과 관련된 라틴어 단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 결국 습관과 루틴은 우리가 삶을 쉽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삶을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침저녁의 통근길 이나 매주 식료품점에서 장을 보는 걸 생각해보자. 항상 같은 길로 다니기 때문에 그 경로에 대해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편 리하고 효율적이지만 그런 자동 조종 모드에 있을 때는 현재에 집 중하지 않게 된다. 현관문을 나선 뒤로는 어떻게 그곳에 도착했는 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 사무실 책상이나 농산물 매장에 도 착해 있기도 한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 었다면 더 그럴 것이다.
자동 조종 모드로 살아가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이 적을 뿐 만 아니라 실제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윌리엄 제임 스는 1890년에 출간한 고전적인 책 《심리학의 원리》에서 이를 다 음과 같이 설명했다. “해가 지날수록 (우리) 경험의 일부가 자동적인 루틴으로 바뀌어 거의 신경을 쓰지 않게 되고 며칠, 몇 주가 눈 깜짝할 새에 흐른다. (...) 세월은 갈수록 공허하게 무너진다."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가리켜 '분열(dissociation)'이라고 하는데 스크린은 특히 강력한 방아쇠 역할을 한다. 기술 중독 전문가인 데 이비드 그린필드의 말에 따르면, 이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가 퍼 뜩 정신을 차려보니 당신 인생의 최근 45분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제임스가 넌지시 암시한 것처럼, 당 신의 일정을 루틴과 습관, 수동적인 소비로 채우면 기억 속에 서로 구별이 가지 않는 매끄러운 연결고리만 가득해져서 언제 하루가 끝 나고 언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지 알 수 없어진다.
- 이에 맞서서 시간을 늦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학자들이 말하 는 '패턴 분리(pattern separation)'의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 즉 단조로움을 깰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려면 새로운 경험과 작은 반항을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 길고 매끄러운 사슬 대신 색색의 구슬로 만든 목걸이를 갖게 되는데, 각각의 구슬은 요한 하위징아의 말처 럼 '기억에 간직될 보물'이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 구슬의 색이 더 뚜렷할수록, 그리고 매일 더 많은 구슬을 모을수록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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