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쇼펜하우어와 관련된 책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철학자들의 철학자로 불리웠으며, 늘 그에게는 비관론자, 비평가, 아웃사이더 등의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삶의 진리를 추구하던 사람이었다. 같은 시대 철학자인 헤겔에 비해 쇼펜하우어의 저서들은 주장이 매우 명쾌하고 지시성이 있어, 요즘에 읽어도 머리에 잘 들어오기 때문에 대중이 찾고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1820년대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를 통해 힌두교와 불교에 관해 알게 되었고, 서양에서 최초로 동양철학의 세련된 점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쇼펜하우어는 서양철학과 동양찰학간의 유사성을 말한 철학자이자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표명한 독창적인 철학자로 꼽힌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토론술은 필수적이다. 취직과 승진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시장에서 물건값을 흥정할 때에도 우리의 의지를 상대에게 설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철학이 아닌 토론술을 다룬 책이다.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고상하고 점잖은 토론지침서라기보다 토론에서 이기는 법을 알려주는 기술을 가르쳐 준다. 자신이 틀렸음을 알고 있음에도 모든 청중들에게 자신이 정당하게끔 보여주는 기술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논쟁에서 이기는 기술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을 통해 논쟁과 토론에서 쏟아져 나오는 간계의 실체를 속속들이 들춰냄으로써 누구나 실제의 논쟁과 토론에서 부정직한 기만들을 금방 알아차리고 나아가 그것들을 물리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토론을 칼 대신 머리로 하는 검술이라고 정의한다. 토론에서는 결투에 임한 검객처럼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칼로 찔러 쓰러뜨리는 것이다.

이 책은 100여년 전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충분히 시사성을 가지며, 오히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요구에 더욱 부응한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 논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논쟁의 본질, 즉 논쟁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의 주장을(혹은 우리가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 반박하는 수단으로는 두 가지 화술과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우선 두 가지 화술에는 '논쟁의 내용과 연관된 화술과 논 쟁상대방과 연관된 화술이 있다. 전자의 경우, 우리는 절대 적이며 객관적인 진리와 상대방이 주장하는 내용이 일치하 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후자를 택할 시에는 상대 방이 이미 인정했거나 주장한 내용이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진리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두 가지 방법에는 '직접반박'과 '간접반박'이 있다. 직접반박은 상대방 주장의 근거를 공격하는 방법이고, 간접반박은 상대방의 주장이 몰고 올 결과를 공격하는 방법이다.
- 다시 말해 직접반박은상대방의 주장이 옳지 않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간접반박은 상대방의 주장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직접반박은 다시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는 상대방의 주장이 의존하고 있는 여러 근거들이 틀렸다는 것 을 보여주거나(상대방 주장의 대전제와 소전제를 문제 삼음), 근거는 인정하되 해당 근거로부터 그의 주장이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상대방의 추론과정을 문제 삼음). 다시 말 해 우리는 상대방이 결론을 이끌어낸 추론형식을 공격하는 것이다.
간접반박에는 '간접증'과 '단순반증'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간접논증은 일단 상대방의 주장을 옳다고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 옳다고 인정된 상대방의 또 다른 주장과 연결하여 이를 특정한 결론을 위한 전제로 사용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준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주장이 자가당착에 빠져있거나 그의 또 다른 주장과 배치되기 때문에 그 결론 이 분명한 거짓임을 밝혀낸다.
이로써 그의 주장은 내용상으로나 그가 인정한 다른 사 실과의 관계에서나 모두 거짓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처음 에 옳다고 인정한 그의 주장 역시 틀린 주장이 된다. 잘못된 전제로부터 나오는 주장이 항상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올바른 전제에서는 오직 올바른 주장만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반증은 상대방이 주장한 개념에 포함되는 여러 개별 적인 경우(사례)들을 직접 증명함으로써 그의 주장의 보편 성을 반박한다. 즉 상대방의 주장이 이 개별적인 경우에 들 어맞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 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 여준다.
- 이것이 모든 논쟁의 기본골격이자 뼈대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논쟁의 기본구조를 알게 되었다. 모든 논쟁은 근본 적으로 이런 기본구조로 소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쟁은 참된 근거를 가지고 진행될 수도 있고 거 짓된 근거를 가지고 진행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이 참된 근거이고, 무엇이 거짓된 근거인지는 쉽게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논쟁이 길고 집요하게 늘어지는 것이다.

- 지금까지 상대방이 내세운 주장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주장이 앞에서 예로 든 종파 나 직업 등의 공동 이익에 배치된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청중은 상대의 논리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근거가 없거나 불충분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것 이다.
반면에 우리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것이 라고 할지라도 올바르며 정확하다고 생각하며, 우리 의견 에 동조하는 합창을 목청껏 부를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상대방은 창피해서라도 자기 입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 이때 대부분의 청중은 자기 확신에서 나온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의 견해에 동조했다고 생각한다.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대개 이성적인 시선에서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 럼 보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베이컨(Bac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성은 기름 없이 메마른 상태에서 세상을 비춰줄 수 있는 빛이 아니다. 이성은 의지와 욕망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그냥 받아 들인다."

-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렇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선택받은 소수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든 것이라고는 허튼 생각뿐이므로 이부 분을 공략하면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한 견해가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 의견의 참에 대한 증명은커녕 그것이 참이 될 개연성의 근 거도 될 수 없다.
만일 그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면 다음의 사실을 수용해야만 한다.
1) 시간상의 거리가 보편성이 가지고 있는 증거력을 빼앗는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한때 보편적 진리로 간주되었던 잘못 된 생각들을 다시 진리라고 주장해야만 할 것이다. 프톨레마 이우스의 천동설, 혹은 모든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카톨릭을 다시 재건하려는 것 등이 그 예다.
2) 공간상의 거리 역시 이와 동일한 기능을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신도들이 생각하 는 보편적 종교관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그들을 당황스럽 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보편적 견해라고 부르는 것도 잘 살펴보면 두세 사람의 견해에 불과하다. 보편적 견해가 어떻게 형성되는 지 잘 관찰해 보면 이런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 우리는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순환논법을 사용할 수 있다.
순환논법이란 선제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주장을 기정 사실화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허구적 논증 기술이다. 즉 증명되지 않거나 앞으로 증명되어야 할 명제를 이용하여 다른 명제를 증명하려는 방법이다.
이처럼 아직 논증되지 않은 내용을 기정사실화하는 방법에 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서로 다른 명칭을 자의적으로 혼용하거 나(예 : '기사의 명예'를 '좋은 평판'으로, '처녀의 순결성'을 '미덕'으로 바꿔서 사용) 서로 바꿀수 있는 개념을 자기 마음대로 혼용하 는 것(예: '척추동물'을 '적피동물'로 바꿔서 사용)이다.
두 번째 방법은 개별적인 문제를 보편적인 문제인 것처럼 확대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학의 불확실성을 증명하면서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은 모두 불확실하다고 기정사실 화 해버리는 것이다.
반대로 두 가지 사실이 대립할 경우, 한 가지 사실만을 증 명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다른 사실도 기정사실로 만들 수 있다.

- 상대방이 우리 주장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 우리는 원래보다 더 불합리한 반대 주장을 함께 제시하여 선택하도록 해야한다.

- 주장의 정당성을 논증하기 위해 상대로부터 '예'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에 상대가 의도적으로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 같은 분위기를 눈치챘다면 처음 의도와는 정반대의 내용을 상대방에게 물어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에게 마치 우리가 원래 의도한 것과 반대되는 내용에 대해 긍정적인 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상대방이 두 가지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 는 고민에 빠지게 만듦으로써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긍정적 인 답변을 얻으려고 하는지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 질문이나 논거에 대해 상대방이 직접적인 대답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다른 내용을 질문하거나 간접적인 답변이 나 내용과 전혀 관계가 없는 말로 피해나가면서 다른 곳으 로 화제를 전환하려고 할 때가 있다. 이는 우리가(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상대방의 약점을 건드렸다는 확실한 신호다.
즉 이것은 우리의 질문이나 논거 때문에 그의 말문이 막혔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상 대방이 이 약점으로부터 도망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건드린 약점이 무엇인지 잘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다.

- 동일한 낱말로 지칭되는 개념들이 유사관계에 있거나 서로 중첩되는 경우, 토론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기술로 이용할 수 있다.

- 상대방의 논거를 역이용하는 기술을 쓰면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 이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용하려고 하는논거를 역이용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기 술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그는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므로 정상 참작이 필요합니다."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상대방의 이 논거를 역이용하여 다음과 같은 역공을 펼 수 있다.
"바로 그가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따끔하게 혼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런 나쁜 버릇에 물들지 않을 테니까요."

- 상대방이 자신의 주장 중 어떤 특정한 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보라고 분명하게 요구했지만 이에 대해 특별한 이의 제기 거리가 없을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사안을 일 반화하여 보편적인 관점에서 반박하면 된다.
예를 들어 왜 특정한 물리학 가설을 믿지 않는지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우리는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의 허위성에 대해 말하고 잡다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면 된다.

- 유사성이 있거나 느슨하게나마 연관성이 있다면, 상대방의 주장을 사람들이 혐오하는 범주 속에 넣는다.

-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질문들은 체계적이며 질서정연하게 할 것이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하라. 그러면 그는 우 리가 그 질문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채지 못할 것이 며, 이에 대해 아무런 사전대비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로부터 얻어낸 대답들을 이용해 여러가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우리는 그의 대답을 이용하여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 상대방에게 우리 주장의 전제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의 시인을 받아냈다면, 더 이상 물어볼 것 없이 이 대답을 근거로 하여 곧바로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심지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제들 가운데 아직 한두 가 지 전제에 대해서 시인을 못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29번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시인한 것으로 간주하고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도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을 근거로 간주하여 상대방을 기만하는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 상대방이 반증거리를 제시하며 우리를 궁지로 몰아갈 경우, 우리 주장을 다시 세밀하게 구분함으로써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이 기술은 토론의 쟁점이 이중적인 의미나 이중적인 경우로 해석될 때 사용할 수 있다.

- 상대방이 우리 주장을 물리칠 만한 논거를 손에 쥐었다는 낌새를 포착했다면, 그가 자신의 논증을 끝까지 밀고 가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적절한 때를 잡아 논쟁을 중단하거나 논의를 다른 방향으 로 돌려놓아야한다. 관련해서는 34번 기술을 참조하면 된다.

- 상대방이 제시한 근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방법이 없을 경우, 미묘한 반어법을 이용하여 자신이 무식해서 무슨 소 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해라.
"지금 당신이 말씀하신 것은 저의 형편없는 머리로는 도 저히 이해할 수 없군요. 당신 말씀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저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그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우리는 청중들에게 상대방이 한 말이 모두 허튼소리라고 중상모략할 수 있다.
칸트(I. Kant)의 『순수이성비판』 출판되고 높은 명성을 누리기 시작할 무렵, 고루한 철학교수들은 "무슨 소린지 하 나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칸트가 주장하 는 내용들을 모두 물리친 것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칸트를 따르는 몇몇 젊은 철학자들이 이 고루한 교수들이 털어놓았던 것처럼 그들이 실제로 칸트철학을 하 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했을 때, 이 교수들은 매우 씁쓸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이 기술은 우리가 청중으로부터 상대방과는 비교되지 않 을 정도로 존경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설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이를테면 교수 대 학생의 관계 같은 경우다. 원래 이 기술은 2번에서 설명한 기술에 속하며, 합당한 근거 대신 자신의 권위를 악의적으로 이용한다.
이에 대한 반격은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무슨 말씀을 하 시는 겁니까? 당신의 탁월한 통찰력에 비춰봤을 당신이 제 말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모두 제가 설명을 잘못드린 탓이겠죠."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이 사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좋든 싫든 간에 이것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로써 그가 애당초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명 하게 드러난다.
상황은 다시 역전된다. 즉 상대방이 우리 주장을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매도하려고 했지만, 우리는 그가 우리 주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2번과 마찬가지 로 이 기술은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사용해야 한다.

- "그것은 이론상으로는 맞지만, 실제로는 틀립니다."
이와 같은 궤변을 통해 우리는 상대방 주장의 근거는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있다.
이것은 '논리적 추론은 당연히 근거로부터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는 규칙과 모순된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론상 으로 옳은 명제는 실제로도 올바른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 다. 이것이 맞지 않다면 이론의 어딘가에 오류가 있든지, 아 니면 무언가가 간과되거나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론상으로도 틀렸다.

-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처럼 상대방을 화나게 만드는걸까? 영국의 철학자 홉스(Hobbes)는 『시민론』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인간이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훨씬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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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욱리자

인문 2024. 1. 19. 06:51

- 욱리자는 유기 자신을 대변하는 가상 인물이다. 원나라 말기의 어지러운 세태를 통렬히 비판하며 치세의 구현 방략을 논하고 있는 것 이 특징이다. 중국문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욱리자》는 《장자》로부 터 시작되는 우언문학의 전통을 잇고 있다. 《욱리자》에 나오는 우화는 진실과 거짓, 탐욕과 파멸, 허세와 기만, 교만과 비굴, 근면과 나태, 현 실과 이상, 착취와 도탄, 술책과 의리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 든 문제를 다룬다. 신랄한 풍자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모순과 비리로 얼룩진 난세의 현실을 직시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주옥같은 경구와 격언이 가득하다. 다음 격언이 이를 방증한다.
- 난세에는 무함과 참언이 난무한다. 특히 유기처럼 재주가 많은 사람의 경우는 집중적인 견제를 받을 공산이 크다. 유기는 성정이 곧 아 직언을 잘했다. 난세에 이런 모습을 보이면 적을 많이 만들 수 있기 에 위험하다. 낙향하기는 했으나 산속에 칩거하며 《욱리자>를 저술한 것은 잘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전화위복의 계기로 작용했기 때 문이다. 저술에 착수한 지 1년 뒤인 지정 20년(1360)에 주원장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유기의 명성을 들은 주원장이 사람을 보내 초빙했던 결 과다.
- 《춘추좌전春秋左傳》을 보면 위영공은 위의공과 더불어 춘추시 대의 대표적인 암군으로 나온다. 위영공은 동성애로 유명했다. 그 상대가 바로 미자하였다. 《한비자> <세난難>에 유명한 일화가 나온다. 당시 위나라 법에 따르면 군주의 수레를 몰래 타는 자는 발을 자르는 월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미자하의 모친이 병에 들었을 때 어 떤 사람이 밤에 몰래 와서 미자하가 위영공의 수레를 슬쩍 빌려 타고 나간사실을 알렸다. 위영공이 이를 전해 듣고 오히려 그를 칭찬했다. "효자로다. 모친을 위하느라 발이 잘리는 형벌까지 잊었구나!"
다른 날, 미자하가 위영공과 함께 정원에서 노닐다가 복숭아를 따게 되었다. 먹어보니 맛이 아주 달았다. 반쪽을 위령에게 주자 위령공이 칭송했다.
"나를 사랑하는구나! 맛이 좋은 것을 보고는 과인을 잊지 않고 맛보게 하는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용모가 쇠하고 총애가 식었다. 한번은 위영공에게 죄를 짓게 되었다. 위영공이 책망했다.
"이자가 전에 과인의 수레를 몰래 타고 나간 일도 있고, 또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결국 미자하는 쫓겨나고 말았다. 여기서 나온 성어가 여도지죄다. 먹고 남은 복숭아의 죄란 뜻으로 지나친 총애가 도리어 큰 죄의 원인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두고 한비자 는 <세난>에서 이같이 평해놓았다.
미자하의 행동은 변함이 없었다. 전에 칭찬받던 일이 후에 책망을 받게 된 것은 군주의 애증이 변했기 때문이다.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는 지혜를 내 는 것마다 군주의 뜻에 부합해 더욱 친밀해졌지만, 미움을 받을 때는 아무리 지혜를 짜내도 군주에게는 옳은 말로 들리지 않아 벌을 받고 더욱 멀어지기 만 한다. 군주에게 간언을 하거나 논의를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이 과 연 군주에게 총애를 받고 있는지, 아니면 미움을 받고 있는지 여부를 잘 살 핀 뒤 유세해야만 한다.
- 총애의 대상과 강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다. 애증이 들쭉날쭉 변 하기 때문이다. 한비자가 군주 앞에서 유세하고자 할 때 반드시 군주가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지 여부부터 따져보라고 충고한 이유다. 미자하 는 이를 간과했다. 크게 보면 미자하는 군주가 보여주는 염량세태의 희 생양에 해당한다. 위영공의 변덕 가능성을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 구장 땅의 농부가 풀로 울타리를 덮었다. 하루는 우연히 짹짹거리는 소리를 들어 풀을 들추었다가 꿩을 잡게 되었다. 이후 다시 덮어놓고는 또 다시 꿩을 잡고자 했다. 다음 날 가서 주의해 들어보니 전처럼 짹짹거리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가 재빨리 풀을 들추었다가 이내 독사에게 손을 물 려 죽고 말았다. 욱리자가 말했다.
"이는 작은 일이지만 커다란 교훈이 될 수 있다. 천하에는 뜻밖의 복이 있지만 뜻밖의 화도 있다. 소인배들은 화와 복이 서로 기대며 그 안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요행이 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이유다. 실의는 늘 득의한 데서 비롯된다. 이로운 면만 보고 해로운 면을 보지 못하거 나 살아남는 것만 알고 패망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 화와 복이 서로 기대며 숨어 있다는 이른바 화복상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이 <도덕경> 제58에 나온다. 해당 대목이다.
화여, 복이 의지하고 있구나! 복이여, 화가 숨어 있구나! 누가 그 궁극을 알겠는가?
- 대다수 사람들은 지게미를 훔치고는 마치 천일주를 빚은 것처럼 떠벌이곤 한다. 난세일수록 허장성세가 횡행하는 법이다. 난세에 군웅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한 지역을 다스리는 이른바 토황제皇帝 를 자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록 오합지졸일망정 유민들을 그러 모아 세를 불리기 위해 그런 것이다. 야심을 지닌 군웅들의 이런 행태 를 무턱대고 탓할수는 없다. 유민들 자체가 염량세태의 진원지이기 때 문에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비록 처음은 미약할지라도 새 세상의 도래에 대 한 확고한 신념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대업을 이룰 수 있다. 삼국시대 당시 이를 실천했던 인물이 조조다. 그는 지게미가 아니라 진짜 천일주를 빚고자 했다.
천일주를 빚고자 하면 스스로 남의 모범이 될 필요가 있다. 조조는 생전에 자신이 평생에 걸쳐 이룬 업적은 난세를 평정해 백성을 구한 데 있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이 와중에 많은 원한을 산 것도 사실이나 백성을 혹사시키는 황당한 일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백 성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평생 검박하게 살다간 인물이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 《삼국지》 <원소전紹>에 따르면 원소는 미목이 수려한데다 명사들 과 사귀는 것을 좋아했다. 집안의 이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던 것 이다. 사서에 따르면 그의 집 앞은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명사들 로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당시 조조는 능력이 뛰어나기는 했 으나 멸시의 대상인 환관 집안 출신이었다. 더구나 조조의 부친 조 은 거액을 주고 태위의 자리에 오른 까닭에 세인들의 지탄을 받고 있 었다. 유비는 비록 한실의 후예라고 하지만 가계를 확인할 길이 없는 한미한 가문 출신이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짚신을 삼고 돗자리를 짜서 연명하는 처지였다. 손권 역시 토호 출신에 불과했으므로 낙양 陽을 거점으로 누대에 걸쳐 그 이름을 떨친 원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처럼 원소는 당대 최고의 명망이 있었다. 게다가 그는 유협遊俠의 무리와 어울리며 지내는 등 협기까지 있었다. 스무 살에 이르러 효 렴에 천거된 것을 계기로 효를 다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출사한 지 얼 마 되지 않아 모친상을 당하자 초막을 짓고 삼년상을 치르면서 어려서 하지 못했던 부친의 복상까지 합쳐 총 6년을 초막에서 지낸 것이 그렇다. 나무랄 것이 없었다.
- 너무 일이 잘 풀리면 무사안일에 빠지기 십상이다. 원소가 바로 이런 덫에 걸렸다. 실속이 없었던 것이다. 환관 집안에 겉모습이 볼품없던 조조가 실속을 채워 천하를 호령하는 위치로 올라섰던 것과 대비된다. 두 사람의 운명이 엇갈리기 시작한 단초는 바로 원소의 무사 안일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주변 사람 들의 추대에 의해 동탁토벌군의 맹주가 되었던 것이 상징적이다. 당시 조조는 어렵사리 마련한 거사자금으로 간신히 병사들을 모은 뒤 토벌군의 일원으로 참석해 나름대로 사선을 뚫고 분전을 거듭했음 에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반면에 원소는 토벌군이 해체된 이후 기주를 점거해 가장 강력한 패자로 군림하게 되는 등 전 과정이 모 두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그가 땀 흘려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직 휘황한 집안의 배경만으로 이런 위치에까지 오른 것이다. 이에 반해 조 조는 모든 것을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피땀 어린 노력을 통해 얻었다. 이후 두 사람은 하북의 패권을 놓고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다투 게 되었다. 그 결과는 주지하다시피 조조의 승리로 끝이 났다.
- 제환공이 관중에게 이같이 물은 적이 있다.
"나라를 다스릴 때 가장 큰 걱정거리는 무엇이오?"
"토지신을 모시는 사당의 신상에 구멍을 파고 들어간쥐입니다."
"왜 그런 것이오?"
관중이 대답했다.
"군주도 사당에 흙으로 빚어 만든 신상을 모시는 과정을 보았을 것 입니다. 흙을 빚어 신상을 만들 때 나무로 모형을 세우고 그 위에 진흙 을 바릅니다. 이후 사당에 소조된 신상을 안치했는데 쥐가 신상의 틈 사이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살게 됩니다. 연기를 피워 쫓으려니 신상의 나무에 불이 옮겨 붙을까 우려되고, 물을 붓자니 신상의 표면에 칠한 흙이 떨어질까 우려됩니다. 사당의 신상 안에 들어가 사는 쥐를 잡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군주의 좌우에 있는 자들은 나가서는 권세를 부려 백성으로부터 이익을 거두어들이고, 들 어와서는 붕당을 만들어 악행을 숨깁니다. 궐 안에서 군주의 사정을 엿 보아 궐 밖으로 이를 알리고, 안팎으로 권세를 키우며 일을 멋대로 조 정하는 까닭에 여러 신하와 관원이 날로 부유해지고 있습니다. 해당 관 원이 이들을 주살하지 않으면 법이 어지러워지고, 주살하면 군주가 불 안해집니다. 그런 까닭에 이들을 그대로 두고 있으니 이들이 바로 사당의 쥐입니다. 신하가 권력을 쥐고 멋대로 금령을 휘두르며 자신을 위하 는 자는 반드시 이롭게 하면서 그렇지 않은 자는 반드시 해롭게 하니 이들이 사나운 개입니다. 무릇 대신들이 사나운 개가 되어 도를 터득한 선비를 물어뜯고, 군주의 좌우가 사당의 쥐가 되어 군주의 실정을 엿보 는데도 군주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군주의 이 목이 어찌 가려지지 않겠으며, 나라 또한 어찌 망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나온 성어가 맹견사서다. 가게 앞의 맹견과 사당의 쥐 는 간신을 상징한다. 이런 간신이 군주 옆에 있으면 그 나라는 이내 패 망하고 만다.
이는 나라뿐 아니라 크고 작은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선우 와 악우로 구분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악우가 바로 맹견사서에 해당한다. 현명한 처신이 필요한 이유다.
- 그러고는 요동에 갔다가 함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4월, 2세 황제가 진시황의 급서로 중단된 아방궁 축조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이 또한 선황의 공업을 널리 드날리기 위한 것이었다. 당초 아방궁의 축조 는 진시황 35년(기원전 212)에 시작되었다. 진시황의 능묘를 미리 조성하 는 여산의 수릉조영도 함께 전개되었다. 이때 중원 일대의 백성과 죄수가 대거 동원되었다. 화북 일대의 만리장성 축성 작업으로부터 불 과 3년 뒤에 시작된 까닭에 민심이 흉흉했다. 각지에서 유민이 격증하 면서 치안이 크게 불안해졌다. 이해 가을 7월, 마침내 진승이 반기를 들었다. 진시황이 급서한 지 1년 만에 일어난 이 사건은 사상 최초의 제국인 진나라가 일거에 무너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조고는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잇따르고 있는데도 진나라의 대 권을 전횡할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군신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을 우려해 먼저 이들을 시험하고자 했다. 사슴을 가져다가 호해에게 바치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말입니다."
호해가 웃으며 말했다.
"승상이 잘못 알았소. 왜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것이오?"
그러고는 좌우에게 물었다. 혹자는 침묵하고, 혹자는 말이라고 했다. 조고에게 아부한 것이다. 일부는 정직하게 사슴이라고 했다. 조고는 사 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은밀히 법의 올가미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후 군신 가운데 아무도 조고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다. 여기서 나온 성어가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진나라 조정을 온통 조고의 지시에 의해 일사불 란하게 움직이는 개떼로 만든 배경이 여기에 있다.
- 술치는 신하들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미연에 제압하는 측면에서는 제신술 내지 어신술이고, 군주가 은밀히 구사한다는 측면에 서는 잠어술潛禦術에 해당한다.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부득이 신하 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만일 조금이라도 경계를 늦추면 군권이 신하 들에게 잠식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주변 의 신하들이다. 최상의 방안은 군주가 모르는 음지에서 세력을 부식할 계기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고, 이를 뒤늦게 알았을 때는 가차 없이 싹 을 제거하는 것이다.
술치는 몇 가지 점에서 법치와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우선 법치는 드러낼수록 좋은 데 반해 술치는 드러내지 않을수록 좋다. 이것처럼 법 치와술치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은 없다.
- 《주역》은 <혁革>의 효사에서 군자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임기응 변하는 것을 대인호변내지 군자표변으로 표현해놓았다. 대인은 군주를 의미한다. 호랑이는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털갈이를 하 는데, 털갈이가 끝난 호랑이의 털은 색채가 선명하고 아름답다. 호변은 가을이 되어 호랑이의 털이 아름다워지듯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로워지 는 것을 뜻한다. 표범도 가을이 되면 털갈이를 한다. 조정대신들이 혁 명의 마무리 사업에 노력해 세상을 새롭게 바꾸는 것을 상징한다. 가을 에 새로 난 표범의 털처럼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소인들 역시 이를 좇아 표정을 바꾼다. 이른바 소인혁면小이다. 명 군과 현신이 나타나 나라를 다스리면 소인들은 비록 겉모습에 지나지 않기는 하나 얼굴 표정을 바꾸며 함부로 불의한 것을 저지르지 못한다《주역》은 <혁革>의 효사에서 군자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임기응 변하는 것을 대인호변내지 군자표변으로 표현해놓았다. 대인은 군주를 의미한다. 호랑이는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털갈이를 하 는데, 털갈이가 끝난 호랑이의 털은 색채가 선명하고 아름답다. 호변은 가을이 되어 호랑이의 털이 아름다워지듯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로워지 는 것을 뜻한다. 표범도 가을이 되면 털갈이를 한다. 조정대신들이 혁 명의 마무리 사업에 노력해 세상을 새롭게 바꾸는 것을 상징한다. 가을 에 새로 난 표범의 털처럼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소인들 역시 이를 좇아 표정을 바꾼다. 이른바 소인혁면小이다. 명 군과 현신이 나타나 나라를 다스리면 소인들은 비록 겉모습에 지나지 않기는 하나 얼굴 표정을 바꾸며 함부로 불의한 것을 저지르지 못한다
- 장자가 말한 소요유의 세계는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과 사뭇 닮 았다. 성인과 신인을 넘어 지인의 단계에 이르면 내가 없는 이른바 무기가 이루어지고, 무기가 이루어지면 문득 대붕으로 변해 무용지용 의 지혜를 깨닫는다고 주장한 것이 그렇다. 장자가 말한 무기는 불가에서 말하는 몰아와 같다. 우주와 자신이 하나가 되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잊는 범아일여의 단계는 무용지용을 불가의 용어로 변용한 것에 해당한다.
- 욱리자가 말했다.
"싸움을 잘하는 자는 적을 줄이고, 잘하지 못하는 자는 적을 늘린다. 적 을 줄이는 자는 번창하고, 적을 늘리는 자는 망한다. 무릇 남의 나라를 취할 경우 그 나라 사람을 모두 적으로 만드는 셈이 된다. 적을 잘 줄이는 자는 남들로 하여금 나를 적으로 대하지 않도록 만든다. 탕왕과 무왕에게 적이 없었던 것은 내적으로 적을 대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직 천하의 지 극히 어진 자만이 나의 적이 또 다른 나의 적을 대적하게 만들 수 있다. 적 이 대적을 포기하고, 천하가 복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개미사회에서는 다른 길로 가는 개미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다른 길 로 가는 개미가 바로 새로운 먹이의 이동경로를 찾아내는 개척자 역할 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를 사회 전체로 확대하면 다른 길로 가는 사 람이 많이 존재하는 사회가 오히려 역동적이면서 크게 발전할 가능성 이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꿀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좁은 공간에 많은 꽃이 있는 하우 스에 풀어놓은 꿀벌은 일찍 죽는다. 과로 때문이다. 과잉노동이 개인과 조직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과 같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치면 그사 회는 이내 궤멸하고 만다. 일을 잘하는 규격품 같은 개체만으로 구성된 조직이 여유를 잃고 자멸하는 것과 닮았다.
- 치병과 치국을 같은 차원에서 논한 것은 나라를 하나의 유기체 로 본 결과다. 예로부터 정치와 의술을 같은 이치 위에 있는 것으로 간 주한 이유다. 이는 비단 중국에 그친 것이 아니다. 인류학자들은 정치 와 의술을 하나로 보는 생각이 원시시대부터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었 음을 밝혀냈다. 현존 원시부족 역시 부족의 우두머리는 대개 주술 내지 간단한 시술 등을 통해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자였다. 치국의 이치를 치병의 이치에서 찾는 대목이 ≪정관정요> <논정>에 나온다. 이에 따 르면 정관 5년(631), 당태종이 좌우 시신에게 이같이 말한다.
치국과 치병은 아무 차이도 없소. 병자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생각되면 오히려 더욱 잘 보호해야 하는 것 등이 그렇소. 그리하지 않아 병이 재발하면 틀 림없이 운명하게 될 것이오. 나라를 다스리는 것 또한 그러하오. 천하가 약 간 안정되면 반드시 더욱 다투어 신중해야만 하오. 평화롭다고 교만하고 안 일한 모습을 보이면 틀림없이 패망하게 될 것이오. 지금 천하의 안위는 짐에 게 달려 있소. 짐이 날마다 더욱 근신하며, 비록 즐거움을 누릴 정황이 되어 있는데도 이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오. 짐의 이목과 고광 의 역할을 경들에게 맡기겠소. 군신은 한 몸이니 의당 한마음으로 서로 협력해야 할 것이오. 일을 하면서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서슴없이 간하고, 이를 숨기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오. 군신이 서로 의심해 마음속의 말을 다하지 못하면 이는 실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큰 해가 될 것이오.
- 신하가 없으면 군주는 단 하루도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 그러나 신 권을 제압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군주가 난세는 말할 것도 없 고 치세에도 신권에 대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 다. 그리하지 않으면 군주는 이내 허수아비가 되어 시해를 당하고 나라 를 빼앗기게 된다. 동서고금의 역대 왕조사를 개관하면 한비자의 이런 주장이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그대로 적중했음을 알 수 있다
- 한비자가 군권을공권, 신권을사권으로 간주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권은 확고한 군권을 배경으로 통용되는 천하의 저울 을 뜻한다. 군주는 천하의 저울을 거머쥔 자다. 공권이 널리 통용되기 위해서는 저울질이 공정해야 한다. 관건은 공정한 법집행에 있다. 사사 로운 저울질은 공권의 존재 자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데서 사사로운 저울질이 등장하게 된 다고 보았다. 권신이 등장해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을 사권의 전형으로 간주한 이유다.
한비자가 볼 때 신하는 군주에게 고용된 가신에 해당한다. 신권 의 상징인 승상 역시 군주의 집안을 돌보는 집사에 불과하다. 집사가 주인행세를 하는 기미를 보일 때는 상벌권을 발동해 과감히 제거해야만 한다. 군주는 집사가 은밀히 세력을 키우는 것을 막기 위해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일꾼들과 연계해 집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시 감시하는 방안을 제시한 이유다. <한비자> <팔경>의 해당 대목이다.
군주는 아랫사람들과 연계해 상관의 비리를 고발하도록 조치해야만 한다. 재상은 조정대신, 조정대신은 휘하 관속, 장교는 병사, 현령은 지방 관속, 후 비는 궁녀들로 하여금 고발하게 한다.
한비자가 말한 공권은 군주가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인사대권과 상 벌권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은 이를 전봉權 과 전토권으로 표현했다. 전봉권은 천자가 제후에게 관작과 봉지 를 내리는 권한을 말하고, 전토권은 천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제후를 토벌하도록 명하는 권한을 뜻한다. 천자의 전봉권과 전토권은 춘추시대 에만 작동했다. 한비자는 전국시대의 인물이다. 전국칠웅 모두 왕을 칭 하며 천하통일의 주역이 되고자 했다. 한비자가 말한 공권은 곧 천자의 전봉권과 전토권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천하통일의 주역이 될 새 왕조 의 창업주를 염두에 둔 개념이다. 유기가 언급한 군신공치와 별반 차이 가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군주와 신하는 태생부터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 다. 문제는 조화다.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군 권과 신권의 절묘한 조화가 영원한 과제로 부상하는 이유다.
- 예나 지금이나 많은 민족으로 구성된 대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편견과 불평등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기> <예>에 서 역설한 대동의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천하위공의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예운>은 대동을 이같이 표현해놓았다.
대도가 행해지는 세계에서는 천하가 공평무사하게 된다. 어진 자를 등용하고 재주 있는 자가 정치에 참여해 신의를 가르치고 화목함을 이루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부모하고만 친하지 않고 자기 아들만을 귀여워하지 않는 다. 나이 든 사람들이 그 삶을 편안히 마치고, 젊은이들은 두루 쓰이고, 어린 이들은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고,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자식 없는 노인과 병든 자들은 모두 부양되고, 남자는 모두 일정한 직분이 있고, 여자는 모두 시집갈 곳이 있다. 땅바닥에 떨어진 남의 재물을 반드시 자기가 가지려 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들은 자기가 하려 하지만, 반드시 자기만 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간사한 모의가 끊어져 일어 나지 않고, 도둑이나 폭력배가 생기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외출할 때 문을 열어놓고 닫지 않는 이유다. 이를 일컬어 대동이라 한다.
한마디로 지상낙원의 모습이다. 청나라 말기에 강유康有爲는대동서를 저술해 대동사상을 전개한 바가 있다. 그는 대동사회가 나 타나지 못한 근본원인을 자기 자신과 가족에 집착하는 이기심에서 찾 았다. 가족제도의 폐기라는 과격한 주장을 펼친 이유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예운>은 동반성장 등으로 풀이해도 좋다. 부익부 빈익 빈은 패망의 길이다. 하후상박의 연금제와 누진세 등을 적극 활용해 균 부 이념을 실천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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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신 선한 과일과 견과를 기본으로 하는 풍미를 위해 꿀을 곁들일 수 있 다) 식단을 추천하면서, 모든 사람이 끼니마다 고기를 먹으려 한 다면 세상에 음식이 충분하지 않게 될 것이고 자원을 얻기 위한 경쟁이 벌어져 결국 자연이 파괴되고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지적 했다. 다른 예로 프랑스의 화려한 정치 철학자 장자크 루소를 보 자. 약 300년 전에 그는 갈색 빵과 치즈 한 조각만으로 식사를 하 면 편리할뿐더러 맛도 좋다고 썼다. 플라톤과 루소는 이른바 '균 형 잡힌 삶을 위한 상세한 식단을 제시하기도 했다. 철학적인 식 단이라고나 할까?
- 음식 평론가이자 언론인인 마이클 폴란은 《마이클 폴란의 행복한 밥상》의 출간을 기념하는 지방 순회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납고 고집스러운 적과 맞서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자 금을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식품 마케팅 기업들이 그것입니다. 미 국의 식품업계만 해도 약 300억 달러 규모입니다. 창피하게도 영 양학이라는 조그만 산업이 그 옆에서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식품 업계와 영양학의 관계를 알고 싶으면 식품 담당 기관들의 이상한 '안전 권고'를 살펴보십시오. 예컨대 미국 식품의약국 FDA은 감자 칩을 먹으면 심장에 좋다고 권고하고, 미국심장협회AHA에서는 코코아 퍼프 Cocoa Puffs 시리얼과 캐러멜 스월Cramel Swirl 아이스크림을 추천합니다.
-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가 보자.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독특한 식물과 특수하게 개량된 식물들이 많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들이 '번야번야Bunya Bunya'라고 부르던 나무도 그중 하나다. 번야번 야 나무에는 즙이 풍부한 열매가 가득 열리는데, 원주민들은 이 나무를 매우 신성하게 여겨서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번야번야 한 그루를 그 아이의 몫으로 지정했다. 원주민들은 모두 번야번야 나 무를 수호하는 사람이 됐고, 나무 열매에 대한 권리와 함께 나무 를 보호할 의무도 함께 주어졌다. 필요한 경우에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무를 보호해야 했다! 하지만 유럽에서 처음 이주해 온 사 람들은 잔인한 면모를 드러내면서 숲의 나무를 다 베어 버리고 토착민들을 죽였다. 이때 오스트레일리아 고유의 품종이 많이 멸 종됐다. 이주민들이 나무를 베어 낸 이유는 오스트레일리아 전체 를 목장과 밀밭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비록 방법은 서로 달랐지 만 이주민들과 원주민들은 둘 다 음식에서 정체성을 찾았다.
- 훤칠한 키, 마른 몸매, 말처럼 기다란 코, 그리고 어느 전기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드럽고 우수에 찬 눈'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인 존 로크는 이름난 미식가는 아니었지만 17세기에 인간의 자연권 natural right이라는 원칙을 강력하게 옹호했던 위대한 정치 철학자로 언제나 기억될 것이다. 로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 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독립적이며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 명과 건강, 자유와 재산에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로크는 인간의 기본 권리와 자유에 관한 정치 사상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미국 독립 선언문>, 미국의 권력분립 원칙, 그리고 미국의 <권리 장전>에도 그의 자취가 남아 있다. 그의 사상은 <미국 인권 선언 문>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 은 사실은 로크가 음식에 관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을 먹 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확고한 견해를 피력했다는 것이다. 로크의 음식 철학은 그가 1692년에 집필한 《교육론》이라는 비교적 덜 유명한 에세이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충고하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커다란 갈색 빵 한 조각을 때로는 버터 나 치즈를 곁들이고 때로는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은 채로 먹는 것이 최고의 아침 식사라고 생각한다. (......) 내 생각에 영국인들 을 괴롭히는 병의 상당 부분은 고기를 너무 많이 먹고 빵을 너무 적게 먹어서 생기는 것이다.'
인권에 관한 로크의 선언들은 몇백 년 동안이나 힘차게 울 려 퍼졌지만 음식에 관한 그의 선언들은 다소 가볍게 취급된 것 도 같다! 오늘날 인기를 끄는 다이어트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은 빵을 먹지 말라는 것 아닌가. 요즘 인기가 많은 '팔레오Paleo' 다 이어트, 일명 '석기 시대 다이어트'를 예로 들어 보자. (이 다이어트 에 대해서는 4장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팔레오 다이어트를 하는 사 람은 빵은 물론이고 곡물과 가공 곡물로 만든 모든 음식을 인체 에 해로운 것으로 간주하고 입에 대지 말아야 한다.

- 프랑스의 훌륭한 식료품 상인이자 제빵사인 장클로드 파퐁Jean-Claude Papon은 내게 단순한 빵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이 정도면 한 학급 전체를 먹이기에 충분한 양의 미니 롤빵이 나올 것 같다.
*밀가루 500g
*소금 10 자밤
*제빵용 이스트 8g
*물 320ml
자, 그러면 어떻게 시작할까? 우선 소금과 밀가루를 섞는다. 그리고 컵에 따뜻한 물을 붓고 이스트를 녹인다. 밀가루 한복판에 작은 홈을 만든다. 그 홈에 이스트를 녹인 물을 부은 다음, 손으로 천천히 밀가루를 추가하면서 아주 부드러운 반죽이 만들어질 때까지 섞어 준다. 다음으로 반죽을 평평한 조리대나 도마에 올린다. 다음은 장클로드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 하는 과정이다. 반죽을 5~7분 동안 열심히 치대고 접어 주면서 끈기가 생 기도록 만든다.
반죽을 오목한 그릇에 담고 행주로 덮어 30분 이상 그대로 둔다. 반죽의 부피가 두 배로 커지면, 다시 일을 시작한다! 손에 밀가루를 묻히고 반죽을 탕탕 쳐서 공기를 뺀다. 조리대에 밀가루를 조금 뿌리고 그 위에서 반죽으로 작은 롤을 만든다. 롤을 오븐 트레이에 올려놓고 30분 더 그대로 둔 다 음, 아주 뜨거운 오븐(240°C)에 넣고 12~15분간 굽는다. 롤의 윗면에는 물을 아주 살짝 뿌려서 촉촉하게 해 준다. 빵의 바닥을 두드렸을 때 텅빈소리가 나면 잘 구워진 것이다.

-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첨가된다는 미네랄 성분을 제외하더라도, 1970년대 공장에서 생산된 빵에 들어가는 화학 첨가물의 목록은 엄청 길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그 첨가물 목록이 갑자기 짧아졌다. 그 이유는 빵을 만드는 업체들이 '밀가루 개량제'를 사용하는 방법을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빵에 개량제를 넣을 때는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아도 된다. '공정 보조 물질'을 식 품 성분 표기에 포함할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물질이 아주 소량 첨가되는 것만으로도 빵에 변화를 일으킨 다면 그것이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 한다.
- 비타민과 철분은 문제가 안 될 것 같지만, 대개의 경우 어떤 식품에 비타민과 철분이 첨가됐다는 것은 누군가가 먼저 그 성분들을 제거했다는 뜻이다. 통밀가루에는 비타민이나 철분 같 은 영양소를 첨가할 필요가 없다. 통밀의 겨와 씨눈에 비타민과 철분이 (그리고 다른 영양소도)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 로 현대의 대량 생산 빵에는 비타민 B1(티아민), 비타민 B2(리보 플라빈), 비타민 B3(니아신), 엽산, 철분이 첨가된다. 비타민 C(아 스코르빈산)도 첨가되는데, 이것은 우리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트의 발효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영양 성분 위에 커다란 물음표가 찍힌다. 이러한 영양소들은 원래의 화학적, 물리적 배경에서 추출되고 나서도 똑같은 작용을 할까? 다른 말로 표 현하자면, 어떤 제품에 비타민과 철분이 첨가됐다는 것의 실제 의 미는 우리가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그 영양소를 얻지 못하고 있다 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영양을 섭취할 때 가장 큰 혜택을 얻을 수 있다. 아니, 그래야 영양소를 처리할 수 있다. 잠깐 뉴스거리가 되다가 사라지곤 하는 의학 연구 기관의 연구들 중 하나를 보자. 2014년 미국의 환경워킹그룹Environmental Working Group은 '식품 첨가물은 그 자체로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 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어린이와 임산부에게 위험하고, 식품 첨가물을 비타민제와 함께 먹으면 더 위험해진다고 한다. 환경워 킹그룹은 미국의 8세 이하 아동의 절반 정도가 영양 성분이 과도 하게 첨가된 식품 때문에 비타민 A, 아연, 니아신을 몸에 해로울 정도로 많이 섭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  빵에 들어가는 예상 밖의 6번 재료는 콩기름을 비롯한 각종 지방이다. 지방은 빵의 질감을 더 매끈하고 보드랍게 만들고, 보존 기간을 약간 연장해서 빵이 금방 상하지 않도록 해 준 다. 올리브유를 넣어도 긍정적인 효과는 비슷하지만 콩기름이 훨씬, 훨씬 저렴하다. 안타깝게도 콩기름은 올리브유보다 더 살이 찌기 쉬 운 재료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콩기름이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7번 자리를 차지하는 재료는 황산칼슘이다. '파리의 반죽plaster of Paris'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황산칼슘은 문자 그대로 하얀 돌멩 이를 가루로 만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연에서 얻은 물질이라 고도 할 수 있다! 기업들은 발효 속도를 높이기 위해, 보존 기간 을 늘리기 위해, 그리고 반죽이 기계에 덜 달라붙도록 하기 위해 황산칼슘을 사용한다. 
- 8번 재료는 모노글리세라이드와 디글리세라이드, 에톡실화모노글리세라이드와 디글리세라이드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이 화학 물질들이 추가되면 반죽은 더 크게 부풀기 때문에, 반죽에 다른 재료들을 적게 넣어도 되고 생산 단가가 낮아진다. 또 제빵 용 트레이에서 빵을 꺼내기가 쉬워진다는 실용적인 장점도 있다. 9번의 자리에 슬쩍 들어온 재료는 액상 과당high-fructose corn syrup 이다. '진짜' 빵도 때로는 설탕 대신 과당을 사용해서 향미를 증진 하고 반죽이 잘 부풀어 오르게 만든다(이스트는 당을 사랑하기 때 문이다). 사실 빵에는 꿀이 일정량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비록 제 조업체들은 빵에 설탕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지만, 자연에서 얻은 꿀을 한 숟가락 가득 넣는 경우라면야 그렇게 만든 빵은 우리에게 이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액상 과당은 가장 싼 당이고, 제조업체들이 다른 어떤 당보다 액상 과당을 좋아하는 이 유도 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액상 과당을 콩기름과 함께 섭취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죽이는 일이라는 사실은 그냥 디테일로 취급된다! 현대의 음식 평론가 조지프 머콜라Joseph Mercola는 액상 과당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방(트랜스 지방)은 당신의 몸 안에 있는 세포에 기능 이상과 혼란을 일으킨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공 지방은 비만과 당뇨병, 생 식기 질환과 심장병 같은 질병과 관련이 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나쁘다는 생각이 드는가? 진지하게 말하 건대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10번 재료는 곰 팡이 제거제로 사용되는 프로피온산칼슘이다. 프로피온산칼슘은 곰팡이와 박테리아의 증식을 억제하기 위해 빵에 첨가된다. 프로 피온산칼슘은 생쥐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서 안전성을 검증받 았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생쥐에게 괜찮은 것이라면 인간에게도 괜찮은 것이라 믿는 것뿐이다.
- 11번 재료는 대두 레시틴이다. 대두 레시틴은 보통 유화제로서 오일과 지방 같은 성분들의 분리를 방지하기 위해, 또는 단순 히 식감을 좋게 하고 보존 기한을 늘리기 위해 사용된다. 일단 대 두 자체가 유전 공학을 적용했거나 논란을 일으킨 살충제 '라운 드업 Roundup'을 사용해서 재배했을 가능성이 있다. 라운드업은 아 주 조금만 섭취해도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콩 자체가 문제든, 아니면 재배 방식의 문제든, 아니면 가공 과정의 문제든 간에 오늘날 콩이 들어간 모든 식품은 호르몬의 균형을 무너뜨려 몸에 혼란을 일으키고 체중을 증가시킨다는 혐 의를 받고 있다! 대두 레시틴과 같은 재료들은 '크리스털 꽃병을 깨뜨리지 말라' 또는 '스위스 시계를 집에서 수리하지 말라'라 는 나의 세 번째 원칙에 직접적으로 위배된다.
- 12번 재료인 스테아릴젖산나트륨은 우리를 공업화 시대로 확 실하게 데려다주고 17세기 존 로크의 목가적인 꿈에서는 더 멀어 지게 한다. 젖산나트륨은 실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유기 화합물 이다. 팬케이크나 와플에서부터 채소와 아이스크림 같은 음식에 도 들어가고, 포장재와 샴푸에도 첨가된다. 젖산나트륨이 빵에 들 어가면 반죽이 물을 더 많이 흡수하게 해서 빵의 부피를 키워 준 다. 그리고 잊지 말라. 물은 가장 값이 싼 재료라는 사실을! 내생 각에 젖산나트륨이 들어간 빵은 중량 대비 지방 함유량이 조금 낮기 때문에 적어도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환영할 만하다. 
-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지상에서 가장 힘센 군주였을 때' 전차 안에서 마른 빵을 씹어 먹었다는 사실, 그리고 세네카가 여 든세 번째 편지에서 '방종이 허락되는 나이'인 노년에는 저녁 식 사 때 마른 빵 한 덩어리를 먹는 것을 자신에게 허락했다고 썼다 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소개했던 사람이다. 만약 그런 로크가 오 늘날 살아 있다면, 자연스럽게 마르는 빵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 아서 고전할 것이다.
평판이 그리 좋지 못한 12번 재료도 13번과 비교하면 인기 연예인일 듯하다. 13번은 바로 제1인산칼슘이다. 농부들이 비료로 많이 쓰는 제1인산칼슘은 보통 뼈를 분쇄해서 얻는다. 물론 제빵 업계에서는 제1인산칼슘을 단지 팽창제와 보존제로만 사용하긴 하지만, 뼈를 갈아 넣는다니! 우스운 이야기 하나 더. 사실은 그렇 게 우습지도 않지만, 14번 재료인 황산암모늄 역시 농업용 비료로 쓰인다. 황산암모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툭 튀어나오는 화학 물질이다. 제빵업계에서는 이스트의 먹이 보충을 위해 황산 암모늄을 첨가한다.
나의 세 번째 원칙을 파괴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재료는 15번 재료인 효소다. 각종 효소는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시간을 단축 시키기 위해 첨가된다. 시간은 돈이니까! 빵에 가장 자주 사용되 는 효소는 아밀라아제와 프로테아제인데, 아밀라아제를 얻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박테리아, 균류, 그리고 돼지! 이 효소들이 다른 용도로 쓰일 때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주의하라는 다양한 경고 문구가 따라다닌다.
16번 재료는 반쯤은 괜찮다. 아조디카본아미드라는 이 재료 는 밀가루를 표백하고(더 하얗게 만들고 반죽을 다루기 쉽게 만 들어 준다. 그럼 아조디카본아미드는 왜 반만 괜찮을까? 기묘한 이야기지만 미국에서는 아조디카본아미드가 안전한 물질로 간주 되는 반면 유럽에서는 알레르기 반응과 천식 발작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금지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조디카본아미드는 전혀 괜찮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17번 재료 역시 비슷한 의심을 받고 있다. DATEM으로 불리는 이 재료의 다른 이름은 글리세린주석산지방산에스테르이다. DATEM은 또 하나의 유화제로서 반죽의 부피를 늘리고 균일성을 높여 준다.
KILLEM, 아니 DATEM은 사실 2002년 안전성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시험 전에 DATEM이 쥐들에게 '심장 섬유증과 부신 비대 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앞에서 말한 대로, 쥐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반드시 인간에게도 그대로 나 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샌드위치를 먹을 때는 그저 운이 좋기만을 바라자!

- 우리는 왜 아조디카본아미드를 먹는가
2001년 시카고의 어느 고속 도로에서 아조디카본아미드를 운반하던 트럭 이 전복됐을 때, 시카고 시청 공무원들은 고위험 물질 주의보를 발령하고 반경 약 800미터 내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켰다. 사고 현장에 있었 던 사람들은 눈이 따갑고 피부가 가려운 증상을 호소했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아조디카본아미드는 어떤 상황에서는 금지되는 화학 물질이지만 매우 흔한 식품 첨가물이기도 하다. 제빵업계에서는 밀가루를 표백하기 위해, 그리고 개량과 숙성을 위해 아조디카본아미드를 사용한다. 아조디카본아미드는 스타벅스와 같은 체인점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예컨대 스타벅스의 크로아상 제품들)에 첨가되고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는 햄버거 와 핫도그빵의 형태로 판매된다.
규제 담당 기관들도 아조디카본아미드가 '호흡 과민성 물질로서 알레르 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아조디카본아미드가 분해될 때는 세미카바자이드라는 물질이 만들어지는데 유럽 연합, 오스트레일리 아, 뉴질랜드, 싱가포르에서는 세미카바자이드를 약한 발암 물질로 간주해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다르다. 언제나 (뭔가를 금지하는 일에) 신중한 FDA는 소량만 사용할 경우 세미카바이드가 안전하다고 간 주한다.

- 1857년 1월 7일의 일기에서 소로는 자신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거리에서나 사회에서나 나는 항상 방탕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고 내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초라하다. 아무리 많은 금이나 아무리 명예로운 일이 생겨도 내 삶이 근사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주지사 와 식사를 한다거나 국회 의원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한적한 숲이나 들판, 또는 평범한 잔디밭이나 토끼가 뛰어다니는 목초지 에 혼자 있을 때는, 더없이 음산하고 우울해서 마을 사람들은 술집 에 가고 싶어질 오늘 같은 날에도, 나는 나 자신으로 돌아오고 다 시금 나 자신이 대단한 인맥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추위와 고 독이 나의 친구들이다.
나에게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며 얻는 것과 똑같이 귀중하다. 향수병에 걸린 사람이 고향으로 향하는 것 처럼 나는 혼자 숲길을 걸어 집에 돌아온다. 그 덕분에 나는 군더 더기를 제거하고 사물을 원래 모습 그대로 장엄하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날마다 일정 시간 동안은, 온전한 정신으로 지내고 싶다.
- 사람이 직접 재배하는 작물로만 살고 그 작물만 먹으면서 단순하게 살려고 한다면, 그리고 비싸고 사치스러운 물건들을 사들이려 하지 않고 자기가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짓는다면, 그 사람은 지팡이 한두 개 폭의 땅만 경작하면 된다. 밭을 갈 때도 소를 이용해 쟁기 질을 하지 않고 삽을 쓰면 된다. 오래 농사를 지은 땅에 거름을 줄 필요도 없이 가끔 새로운 땅으로 옮겨 주면 된다. 그에게 필요한 모든 농사일은 마치 여름철에 이따금씩 왼손을 움직이는 것처럼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 내가 준비한 저녁 식사는 여러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그저 나의 옥수수밭에서 따온 쇠비름Portulaca oleracea을 데치고 소금으로 간을 한 요리였다. 내가 쇠비름의 라틴어 이름을 소개한 것은 그 이름 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평화로운 시 대의 평범한 점심시간에 충분한 양의 삶은 옥수수를 소금에 찍어 먹는 것 외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내가 약간의 변화를 준 것도 사실은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식욕의 요구에 굴복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걸핏하면 꼭 필요한 음식이 아니라 사치스러운 음식을 갈망한다. 내가 아는 어느 선량한 부인은 자기 아들이 물 만 마셨기 때문에 일찍 죽었다고 생각한다.

- 독일의 막스플랑크 인류역사과학 연구소의 고고 유전학 부서에서 마이크로바이옴 과학을 연구하는 크리스티나 워리너는 오 늘날 인류가 많이 소비하는 과일, 채소, 동물의 모든 품종을 세밀 하게 관찰하고 석기 시대에 살았던 그 품종의 조상들과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봤다. 그녀는 인류가 고기와 젖과 알을 최대한 많 이 얻기 위해 젖소, 염소, 닭을 사육하고, 식물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돌연변이를 선택하거나 교차 수정시켜 우리가 원하는 특징을 가진 품종을 만들어 낸 과정을 추적했다. 예컨대 옥수수는 원래 '테오신트teosinte'로 불리던 억센 야생 식물이었고, 지중해 요리(심 지어는 피자에도)에 꼭 필요한 재료인 토마토는 원래 작은 베리류 에 가까웠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단 하나의 품종들을 선택하고 개량해서 실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냈다. 이제 우리는 그 품종 들이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지경이다. 양배추,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브뤼셀스프라우트, 케일은 모두 꽃양배추 Brassica oleracea라는 단일 품종을 개량해서 인간이 만들어 낸 식물이 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팔레오 다이어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공장식 축사에서 키운 고기에 곁들여 먹는 채소들 역시 부자연스러워 보이기 시작한다.
팔레오 다이어트와 그 아류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전문 가들의 의견 및 그처럼 단순한 식사법에 대한 경고와 모순된다. 2013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실린 한 편의 논 문은 10년 전 그 학술지에 글을 썼던 인류학자 윌리엄 레오너드 William Leonard의 냉혹한 경고를 다시 상기시켰다. '현대의 질병들을 인간이 자연식 식사에서 멀어져 나쁜 음식을 먹은 결과로 설명하 는 경우가 너무 많다. (・・・・・・) 이런 접근법은 인간의 영양학적 필 요를 근본적으로 잘못 분석하고 있다'

- 수천 년 동안 의사들이 균형의 미덕을 신봉했다는 사실은 고대의 문헌에도 나온다. 예를 들면, 고대 중국의 신화에 등장하는 황제 헌원씨가 신하인 기백에게 '왜 요즘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하는가'라고 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혜가 높은 신하였던 기백 은 '옛날에는 사람들이 도를 실천하고 음양의 이치에 순응하며 만 물의 조화라는 도리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는 하지만 요 즘에는 그렇지 못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요즘 사람들의 생활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술을 물처럼 마셔 대고 파괴적인 활동에 빠져들어 정을 소모하고 기를 고갈시킵니다. (......) 감정적 자극을 추구하고 돈으로 즐거움을 얻으려 하니 자연의 리듬과 우주의 질서에 어긋나게 됩니다. 그들은 생활과 음식을 조절하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습니다.

- 세밀한 관리를 받으면서 운동을 할 때도 다이어트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고 밝혀졌다. 따라서 '아직 날씬해지지 않은 사람들은 다 운동을 안 해서 그렇다'라는 잠재된 의심도 배 제해야 한다. 음식에 관한 규칙 1번, 디테일이 중요하다. 사람마다 위장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의 종류가 다르고, 수면 패턴도 다르고, 스트레스의 수준도 다르다! 어쨌든 다이어트에 관한 연구 결과 는 모호하지 않다. 연구 결과들은 인과 관계는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홉의 경고와 일치한다. 똑같은 다이어트 처방을 했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체중이 상당히 감소하고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체 중이 늘어난다. 확실한 것은 운동이라는 하나의 변수가 에너지 방정식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작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은 건강은 전체론적인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에너지 균형'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나의 두 번째 음식 규칙은 에너지 균형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모두 상호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예를 들어 보자. 당 신이 체중 감량을 원한다면 운동량만 늘리는 것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운동을 하더라도 당신이 먹고 마시는 양이 동시에 증가 한다면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몸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해서 몸에서 에너지를 태우는 방법이 바뀐 다면 운동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다. 당신은 몸의 변 화를 멈출 수가 없다. 그것은 '건강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실은 우리가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일정한 시간 동안 지방 세포들이 저장된 에너지를 혈액으로 내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탄수화물 위주의 전형적인 식사를 하면 포만감이 몇 시간 동안 지속된다. 몇 시간이 지나면 혈중 포도당 수치가 낮아져 정상으로 돌아오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인슐린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온다.
인슐린 수치가 높아지면 당신의 몸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지 방을 태울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데서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몸의 첫 번째 선택은 근육과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사용하는 것이다. 당신이 건강하고 몸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자주 습격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몸에 저장된 글리코겐으로 음식이 소화되는 동안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반면 몸 안에 글리코겐이 부족하다면 우리 의 몸은 근육을 분해해서 근육 속의 단백질을 포도당으로 변환한 다. 식사를 너무 엄격하게 제한하고 지나치게 많은 운동을 하거나 병 에 걸려서 몸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근육이 파괴되는 것은 너무나 당 연한 일이다. 이런 현상을 '근육 소모'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 이 지방을 연소시키고 근육을 회복하려고 한다면 탄수화물로 이뤄진 간식을 먹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다.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 하면 인슐린 수치가 높게 유지되기 때문에 지방 세포가 에너지를 내보내지 못하고 근육이 대신 분해된다. 운동선수들이 단백질을 아주 많이 섭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백질은 마법처럼 근 육으로 바뀌지는 않지만, 단백질을 많이 먹으면 지금 있는 근육이 소모될 위험은 낮아진다. 그리고 단백질을 섭취하면 일시적인 포 만감도 얻을 수 있다.
- 당신이 충분히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은 대부분의 일들과 마찬가지로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다 먹었다는 신호는 분자 단위의 여러 가지 생리학적 메커니즘에 의존한다. 그 중 하나는 위장 소화관이 늘어날 때 뇌에 물리적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장 펩티드(두 개 이상의 아미노산이 작은 사슬 모 양으로 결합된 것으로서, 단백질의 구성 요소 중 하나) 호르몬이 분 비되어 뇌 수용체들과 상호 작용을 하는 것이다. 세 번째 메커니 즘은 위에서 그렐린ghrelin이라는 호르몬이 생산되는 것이다. 우리 가 일정한 시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으면 그렐린 수치는 높아지 며 식사를 하면 수치가 낮아진다.
-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의 수석 컨설턴트인 닐스 그로달Neils Graudal 박사는 염분 논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모든 증거를 검토해 봐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염분 섭취량을 줄이면 어떤 확실 한 혜택을 얻는다고 믿을 이유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로달 박사 의 연구진은 염분과 고혈압의 관계를 다룬 연구를 무려 167편이 나 검토하고 심장 건강과 관련된 다른 요소들도 모두 살펴봤다. 그들은 무엇을 발견했을까? 그렇다. 소금 섭취량이 감소하면 혈 압은 낮아질 수 있었다. 하지만 소금 섭취량을 줄이면 콜레스테 롤이 2.5퍼센트 증가하고 중성 지방도 7퍼센트 증가했다. 콜레스 테롤과 중성 지방 수치는 심장의 건강을 확인하는 지표다. 디테 일은 중요하고,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 '복잡한 조리법은 잊고 단순한 식사를 하라.' 프랑스의 위대한 '낭만주의 철학자였고, 다른 시각에서는 최초의 생태학자이자 환경 운동가였던 장자크 루소가 특유의 문체로 가르침을 준다.
나는 최대한 절약하며 살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지갑은 점점 얇아 졌다. 절약은 검소한 생활을 추구해서라기보다 단순한 것을 사랑 하기 때문이었고, 지금도 아무리 비싼 테이블에 앉는다 해도 단순 함에 대한 나의 사랑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사 상의 어떤 부분도 소박한 식사보다 훌륭하지는 않다. 나에게 우유, 채소, 달걀, 갈색 빵, 괜찮은 포도주를 달라. 그러면 나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화려한 코스 요리가 나오고 하인 들이 줄줄이 시중을 들지 않아도 괜찮다. 입맛이 전부다.
- 당시에는 5~6수만 있으면 나중에 몇 루블이 있어야 먹을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나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음식이 아닌 다 른 데 욕구를 느꼈으므로 절제된 식생활을 했다. 잘은 모르지만 그것을 금욕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배 몇 개와 새로 산 치 즈, 빵을 칼로 잘라 먹으면서 몇 잔의 몽페라 와인을 마시는 순간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미식가였기 때문이다.

- 우리는 지방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었기 때 문에, 올리브유나 '진짜' 치즈에 들어 있는 지방은 질량이 동일한 경 우 탄수화물의 2.5배나 되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훌륭한 에너지원이 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그렇다. 치즈와 올리브유는 정말로 우리를 날씬하게 해 주는 음식이다. 적어도 과일과 채소가 많이 포함되고 가공식품은 최소화한 균형 잡힌 식단의 일부로서 적당한 양을 먹을 경우에는 그렇다.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지중해식 식 사를 확인해 보라! 치즈에서 발견되는 지방(가공된 치즈가 아니라 진 짜치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은 품질이 좋은 자연 지방이며 오메 가 3 지방산을 함유하고 있다. 오메가 3 지방산은 일반적으로 어유 fish oil에 들어 있다고 알려진 물질로서 뇌의 철학적 사고를 도와준 다.
- 지방은 경주와 같은 무산소 운동을 하는 동안 글리코겐을 더 잘 활용하도록 해 주고, 혈액 속의 포도당과 인슐린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해 준다. 그리고 고탄수화물 식사를 하면 근육이 혈액에서 가져와야 하는 글루코스의 양이 줄 어들기 때문에 피로가 늦게 찾아온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간식으로 작은 유기농 감자칩 한 봉지를 먹거나 점심시간에 치즈 샌드위치를 먹으면 당신은 직장에서 피로를 덜 느낄 수 있다! 만 약 사람들이 뚫어지게 쳐다보면 코언 박사가 시켰다고 말하라. 요컨대 지방의 형태가 지방의 양보다 중요하다. 올리브유, 견과류, 씨앗과 같은 식품에 함유된 지방은 각종 만성 질환을 예방해 준다. 그래서 지중해식 식사법은 오메가 3 지방산이 풍부한 음식인 통 곡물, 신선한 과일과 채소, 생선, 마늘, 포도주 섭취를 권장한다. 앞 에서도 말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조언일 뿐이다. 물론 나의 조언은 증거 분석에 기초한다. 지방 섭취는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 다. 당신의 몸은 날마다 일정량의 지방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뇌와 신경계가 작동하고, 당신의 피부와 머리카락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 하고, 당신이 음식을 먹을 때 지용성 비타민이 잘 흡수된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헬스클럽 얼굴'움푹한 뺨, 주름살, 퀭한 눈)을 가지기 싫 다면 당신 몸의 세포에 지방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그 점을 고려해서 적정 비율의 지방이 함유된 식사를 하라. 단 지나치게 많은 양 은 금물이다. (지방을 너무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 하긴 뭐든지 너무 많 이 먹으면 좋지 않다. 미국 영화배우 메이 웨스트Mae West의 생각은 다르겠 지만.) 그러면 지방을 얼마나 먹어야 적당할까? 일반적으로 영양학 자들은 당신이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의 3분의 1 정도를 지방의 형 태로 섭취하라고 말한다.

-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크리소스토무스는 디오게네스의 생활 양식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는 보리빵 하나를 먹으면서도 남들이 가장 비싼 음식을 먹을 때 보다 큰 기쁨을 느꼈고, 개울에 흐르는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도 남들이 트라키아산 와인을 마실 때보다 더 즐거워했다. 그는 목이 마를 때 샘가를 그냥 지나치고는 고급 포도주를 파는 곳을 찾으려 고 백방으로 애쓰는 사람들을 비웃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은 소나 양보다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곤 했다.

- 과일주스의 문제는 진짜 과일로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과일의 모든 부분이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과일을 있는 그대로 섭취할 때 과일 속의 당분은 과일의 세포벽에 저장된 식 이 섬유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혈관 속으로 천천히 들 어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식이 섬유를 마시는 것을 좋아 하지 않기 때문에 과일주스에는 식이 섬유가 포함되지 않고, 우 리는 몇 초 만에 다량의 당분을 꿀꺽꿀꺽 삼키게 된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멀찌감치 달아날 만큼 많은 양이다. 물론 '에너지 음 료'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에너지 음료 를 마시면 당분은 기적에 가까운 속도로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 당분이 실험실에서 제조되며 말토오스, 덱스트로스, 수크로스, 또 는 기업들이 가장 좋아하는) 액상 과당 같은 별명을 가지고 있을 경우 효과는 더욱 신속하다.

- 아주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평소에는 필요한 양보다 조금 더 많 이 먹고, 간혹 어떤 시기에는 너무 적게 먹는 리듬으로 생활했다. 그 결과 인간의 몸은 겨울을 날 준비가 필요한 지역에 사는 모든 동물의 몸과 마찬가지로, 어떤 시기에는 음식을 거의 먹지 않거 나 아예 먹지 않고 어떤 시기에는 폭식하는 것(장래에 대비해 미리 살을 찌워 놓는 것)을 선호한다. 우리는 현대적인 생활을 하게 되 면서 비로소 원하는 음식을 아무 때나 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 잠시 음식을 먹지 않고 지내면 어떤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질까? 하 루의 절반인 열두 시간(간의 글리코겐 수치가 중요한데, 그 수치는 열두 시간 동안 굶어야 떨어지기 때문이다) 동안만 혈관에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인체는 몸속의 죽은 세포나 손상된 세포를 대체 에너지원으로 삼아 영양분을 얻는다. 이것이 이른바 '자가포식autophagy'이다. 자가포식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자신'을 뜻하는 auto와 '먹다'를 뜻하는 phagy의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자가포식이 발견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90년대 에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의학 연구자인 발터 롱고Valter Longo는 효모 세포(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그는 효모가 살아 있는 아주 작 은 유기체라고 강조했다)가 당을 얻지 못하고 물만 흡수할 경우 그 효모는 죽거나 쇠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건강하고 튼튼해진다 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에 흥미를 느낀 롱고는 의학 학술지와 학계 동료들의 회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더 깊이 있는 연구 에 돌입했다. 그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쥐에게 3일 동안 음식 을 주지 않으면(3일은 쥐에게는 매우 긴 시간이다) 쥐의 골수가 줄 기세포를 만들기 시작한다. 줄기세포는 여러 종류의 신체 조직으 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로서 요즘에는 불치병 치료의 성배로 여 겨진다. 줄기세포는 마치 오래된 자동차의 엔진을 수리하는 유능 한 정비공처럼 손상된 세포들을 감쪽같이 교체한다.
-  심지어 스탠퍼드대학교의 미생물학자인 저스틴 소넨버그Justin Sonnenburg는 인간의 몸은 '체내 미생물들의 성장과 번식에 최적화 된 정교한 용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은 섬이 아니다'라 는 오래된 격언은 우리 개개인이 실제로 수많은 생명체들로 이뤄 진 군도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은 수천 개의 서로 다른 유 기체로 이뤄지며 그 유기체의 대부분은 박테리아다. 인간은 박테 리아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놀랍게도 인간의 몸에서 박테리아 세포가 차지하는 비중은 90퍼센트 정도다! 적어도 숫자로는 그렇 다. 박테리아는 소화, 성장, 질병 예방 같은 기능에 반드시 필요하 며, 부정적인 기분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섬세한 작업에 도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고? 박테리아 는 우리의 신경 전달 체계를 직접 통제한다.

-  맥주에 들어 있는 홉은 염증 방지라는 대단히 유용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맥주에 들어 있는 쓴맛의 산 성분들은 소화를 촉진한다.
맥주에는 루풀론과 잔토휴몰이라는 두 종류의 산이 들어 있다. (힘없는 쥐 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신빙성이 떨어지는 연구에 따르면) 루풀론과 잔토휴몰 은 소량을 섭취할 때 항암 효과를 발휘한다.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면 이 성 분들을 소량 섭취하게 된다. 또 잔토휴몰은 스트레스로 세포가 파괴되지 않 도록 함으로써 뇌의 뉴런들을 활성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맥주는 우리 몸에 건강한 뼈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실리콘 silicon의 양을 늘려 준다. 그리고 맥주는 충치의 원인이 되는 박테리아를 물리친다.
알코올이 함유된 다른 음료와 마찬가지로 맥주에는 심장 질환 예방에 도 움이 된다고 알려진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하다.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 20만 명을 대상으로 실험해서 2013년에 발표된 한 연구의 결과, 맥주를 마시면 신장 결석의 위험이 60퍼센트 감 소한다.

-  대두유와 옥수수유는 살이 찌는 음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형편없는 음식을 먹고 있을까? 왜 우리 자신의 몸을 이렇게 함부로 다룰까? 하물며 액상 과당과 대 두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 예컨대 저지방 우유 같은 음식에 숨 겨져 있다! 이 쓰레기 같은 재료들은 여러 형태로 다양한 음식에 은밀히 섞여 들어간다. 실제로 평범한 미국인이 하루 동안 섭취 하는 식물성 기름의 4분의 3은 대두유에서 얻은 것으로 추정되는 데, 이것은 사람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열량의 5분의 1에 해당한 다. 게다가 우리는 몸에 나쁘다고 알려진 자연의 설탕 대신 인공 감미료를 음식에 첨가하는데, 날마다 소비되는 감미료의 절반은 옥수수에서 추출한 것이다. 인공 감미료 덕분에 대두와 옥수수라 는 두 가지 작물이 공급하는 열량은 하루에 필요한 열량의 3분의 1에 이른다! 하지만 당신은 대두와 옥수수를 먹었다고 생각하지 도 않는다. 이것은 '강제 급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 대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초국적 농업 기업(카길 Cargill, 아처 대니얼스미들랜드 Archer Daniels Midland, 솔라에 Solae 같은 기업들)에게 큰 이 윤을 제공하기 때문에, 간혹 이 기업들을 뭉뚱그려서 '대두 재벌 Big Soy'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식품업계가 '대두 재 벌'과 사랑에 빠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식품업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인 유전자 변형 옥수수도 마찬가지다). 대두는 저렴할 뿐 아니라 아주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작물이기 때문이다. 대두 는 버려지는 부분이 없다. 두유는 사실 '우유'가 아니라(젖을 짜는 동물에게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대두를 물에 넣고 끓여서 얻은 액체에 향료와 감미료를 첨가한 음료다. 대두유를 정제하는 공정에서 얻는 레시틴이라는 물질은 각종 가공식품에서 물과 기 름을 결합하는 데 쓰인다(유화제). 그리고 대두의 껍질은 섬유질 이 풍부하기 때문에 빵과 아침 식사 대용 시리얼에 첨가된다.
가공되고 정제된 대두는 식품 성분 표기에 '분리대두단백'이 라든가 '식물성 조직 단백질'이라든가 '식물성 스테롤' 등의 다양 한 명칭으로 기재된다. 대두유는 전 세계의 식품업계가 가장 광 범위하게 사용하는 식물성 기름이다. 대두유는 종종 식품 포장지 에 그냥 '식물성 기름'이라고만 표기되며 마가린, 스프레드, 샐러 드드레싱에서 발견된다. 간편식, 소시지, 수프, 테이크아웃 음식, 칩, 동물 사료, 그리고 농업용 비료에도 대두가 들어간다.
이 모든 사실은 미국에서만 대두 식품 소매업의 규모가 연간 50억 달러 이상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식품업계가 가장 깊이 숨겨둔 비밀들 중 하나가 대두와 관련이 있는 이유를 설명 해 준다. 그 비밀은, 쉿, 사실 대두가 음식의 적이라서 대두를 먹 으면 소화 불량에 걸린다는 것이다! 대두는 공업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단백질은 변성되고 발암 물질 수치는 높아진다. 크리스 털 꽃병을 깨뜨리지 말라고 했는데. 공업적으로 처리된 대두가 우리의 배 속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의 몸은 필수적인 비타민과 미네랄, 즉 칼슘, 철, 아연과 같은 성분을 흡수하지 못하고 단백질 을 잘 소화하지 못해서 결국 살이 찌게 된다. 몸에 해로운 성분을 먹고 암에 걸리는 것만 해도 나쁜데! 마지막이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 더. '대두 이소플라본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구조 가 비슷하기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한 특정한 암과 갱년기 증상 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대두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두가 건강에 좋은 이유들을 나 열하겠지만, 아마도 대두가 건강에 좋다는 연구들은 대두 섭취가 갑상선 질환 및 내분비 기능 저하와 관련이 있으며 생식기관의 발육에도 해롭다는 사실을 무시했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아기가 6개월이 되기 전까지 대두가 들어간 분유를 먹이지 말라고 부모 들에게 공식적으로 권고한다. 
- 당신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중국에서는 수천 년 동안 콩을 먹지 않았느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 다. 미국의 영양학자인 카일라 대니얼Kaayla T. Daniel은 자신이 논쟁 을 즐긴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이다. 대두 섭취의 역사에 관 한 특별한 연구를 했던 그는 그런 비교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콩을 두부나 된장으로 만들어 먹었다. 두부와 된장은 오늘날 서양에서 공업적으로 가공해 식품에 사용하는 콩 과는 크게 다르다. 간장, 타마리, 된장, 템페, 두부, 두유처럼 오 랜 전통을 가진 콩 음식들은 전통적인 발효법 또는 침전이라는 방법으로 콩에 들어 있는 독성을 중화한다. 이런 음식들은 대부 분 대두를 통째로 사용하기 때문에 콩에서 추출한 물질인 분리 대두단백으로 만든 음식보다 몸에 좋다.

- 녹색혁명
녹색 혁명은 여러 가지 혁명이 많이 일어난 시기인 1960년대에 시작됐다. '녹색혁명'이라고 하면 현대적이고 긍정적으로 들리지만(그런 의도에서 붙 인 이름이기도 하다),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은 1960년대에 들어 '종자의 다 양성을 훼손하고 제3세계의 농작물 전체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농업 기업들 의 음모에 가속이 붙었다고 비판했다. 좋든 싫든 간에 녹색 혁명은 인류 전 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세계적인 움직임이었다.
1960년대가 전반적으로 낡은 것을 추방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시기였던 것처럼, 녹색 혁명 기간에 '원시적' 또는 '열등한' 것으로 여겨지 던 종자들이 수확량이 많은 슈퍼 종자로 대체됐다. 인도에서는 라기ragi (조 의 일종)와 조와jowar(수수의 일종)처럼 단백질과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토종 곡물들이 밀과 쌀 같은 주식용 곡물로 대체됐다. 밀과 쌀은 영양 면에서 라기와 조와를 따라가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새 로운 곡물들의 수익성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식품 활동가 반다나 시바 Vandana Shiva가 <정신의 획일화Monocultures of the Mind》라는 책에서 설명한 대로, 전통적인 곡물들은 잡초' 취급을 받고 독약에 파괴당했다.
시바는 단일 경작 대신 생태적으로 균형 잡힌 농법을 사용하고 작물을 순 환시키는 '혼작' 방식의 다품종 경작을 주장한다. 이런 방법으로 농사를 지 으면 해충이 적게 모여들고 토양의 영양분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 농장 안에 다양한 층위의 식물이 자라면 다양성이 확보되고, 다양성은 식물, 동물, 곤충에게 모두 이롭게 작용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종류의 캠페 인들과 유기농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농업의 반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를 투여한 가축에게서 얻은 고기를 우리가 먹으면 우리도 그런 물질을 상당량 섭취할 수밖에 없다. 목장 에서는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테스토스테론처럼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들을 가축에게 다량 주사한다. 게다가, 음, '살을 찌우기 beef them up" 위해 트렌볼론아세테이트TBA: trenbolone acetate 라 는 물질을 가축에게 먹인다. TBA는 단백 동화 스테로이드의 일종으로 테스토스테론의 여덟 배 내지 열 배나 강력한 물질이다. 즉 우리에게 고기를 제공한 젖소가 TBA를 먹었다면 우리의 쇠고 기에도 TBA가 들어 있고, 우리도 TBA를 일정량 섭취하게 된다. 근육을 늘리고 싶은 보디빌더들은 이것이 쉽고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사실은 그렇지 않다). TBA는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자연스러운 분비를 억제한다. 일반적인 믿음과 달 리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은 성별에 따라 양만 다를 뿐 남성 과 여성의 몸에서 둘 다 분비된다. 그래서 TBA를 섭취하면 밤에 식은땀을 흘리고, 공격성이 증가하고, 식욕이 왕성해진다. 한 마 디로 TBA는 사람을 망쳐 놓는다.

- 감자튀김에는 당신이 먹고 싶지 않을 법한 다 른 재료들도 잔뜩 들어간다. 우선 카놀라유가 있다. 맥도날드의 친절한 전단지에 따르면 카놀라유는 단순히 감자를 튀기기 위해 서가 아니라 '색, 향미, 질감'을 위해 사용하는 재료라고 한다. 실 제로 오늘날 업소의 주방에서 사용하는 요리유는 올리브유 25퍼 센트와 카놀라유 75퍼센트의 비율로 혼합한 기름이다. 우리 동네 의 건강식품 매장에도 올리브유와 해바라기씨유 옆에 그 혼합 기 름이 담긴 커다란 유리병이 놓여 있다. 그 유리병에는 우중충한 갈색을 띤 기름이 들어 있고 '냉압착'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이것을 보면 카놀라유를 새로운 브랜드로 재탄생시키는 일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카놀라유는 대부분 유전자 변형 제 품이고 사실 카놀라 씨앗(유채씨)도 밝은 노란색 겨자꽃을 잡종 교배한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카놀라유는 올리브유와 똑같이 단 일불포화 지방산을 함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건강에 좋은 식 품으로 홍보된다. 포화 지방과 불포화 지방을 둘러싼 주장들(이 주장들은 오랫동안 소비자들에게 유제품 대신 마가린 같은 공업 제품 을 구입할 이유를 제공했다)은 다 거짓은 아니겠지만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것인데도 말이다. 분명한 사실은 카놀라유가 순한 맛 을 지니고 있으며 값이 매우 싸다는 것이다. 이 마지막 두 가지 장점 덕분에 카놀라유는 사랑스러운 올리브유와 크게 다른 제품 이 된다. 그리고 확실히 카놀라유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올리 브유의 영향과 제법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가족을 위한 건강 웹 사이트인 <헬시홈이코노미스트Healthy Home Economist>의 필진인 존 무디John Moody는 카놀라가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 다. 그는 카놀라가 원래 LEAR, 즉 저에루스산채종유 Low Erucic Acid Rapeseed oil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채종유의 문제점은 심장과 신장에 손상을 일으키는 에루스산이라는 물질이 많이 들 어 있다는 것이다. 카놀라는 유전자 변형을 통해 덜 위험한 품종 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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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언어를 넘어가는 콘텍스트를 건드려줘 야 그걸 잡아낼 수 있고, 그 콘텍스트가 그 사람의 내면일 수도, 심리 일 수도 있어요. 배우지 못한 어머니가 있다면 어머니가 했던 얘기 를 정서적으로 읽어내면 좋죠. '손좀 씻어라' 하고 역정을 내셨을 때 는 어머니 몸이 편찮으신 날일 수도 있어요. 어머니가 짜증낼 때 옆 집 할머니가 최신 에어컨을 샀을 수도 있고요.(웃음) 그때는 현상만 을 읽고 화를 내기보다는 이렇게 말하면 좋겠죠. '조금 있다가 에어 컨을 살걸 그랬어요. 그런데 저거 중고로 내놓으면 나름 돈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면 어머니가 산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바꾸냐' 그러 죠. 말이나 텍스트에 사로잡히면 안 돼요. 우리가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능력 을 기르는 거예요. 문자로 쓰인 것만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이 세상 에서 가장 어려운 책은 배우지 못한 어머니 아버지라는 책이고, 우 리는 그걸 잘 읽어내야 해요. 

-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질문을 할 때 고통을 전제로 하고 물어요.
뭔가 미지의 세상으로 간다는 착각을 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죽음 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고, 삶은 고통을 느끼는 거예요. 죽은 사 람은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아요. 고독도, 배고픔도, 거동의 불편함 도, 근심과 걱정도 없죠. 죽음에서 안타까운 것은 단지 하나일 뿐이 에요.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행복도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행복은 고통의 완화, 잠시 동안 고독이 사라지고 배고픔도 가시고 신체의 불편함도 줄어들고 근심과 걱정도 가시는 상태니까요. 죽어서 고통 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니 고통의 완화도 의미가 없다, 이것이 죽음 의 의미예요. 그래서 나이 든 어르신들은 죽음에 대해 물어보지 않 아요. 젊은 사람들이 물어보죠. 나이 드신 분들은 대부분 알아요. 고 통이 없다면 행복도 없다는 것을요. 정말 아이러니하죠. 기력도 떨 어지고 거동도 불편하지만, 오히려 노쇠한 상태이기에 행복이 무엇 인지 정확하게 아니까요.


벚꽃은 마지막 순간에 제일 화려하게 피어요. 그리고 이삼일 정도 지나서 바람 불고 비 오면 떨어지죠. 어르신들이 많은 강연에서 제가 끝날 때쯤 가끔 이런 말을 해요. 자기를 벚꽃 다 떨어진 나무라 고 생각하고 다니시지 말라고, 지금이 벚꽃 마지막 단계라고, 숨넘 어가고 죽어갈 때 그때 꽃이 지는 거라고, 60~70 먹었다고 해서 꽃 잎진 것처럼 살지 말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지금이 가장 예쁠 때라 고 그렇게 말해요. 소비를 많이 안 하니까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미 죽은 것처럼 취급받는 것뿐이라고요. 당연하죠. 떨어지기 직전의 벚 꽃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나요. 바람에도 비에도 애닯게 꽃잎이 흔들리니, 그만큼 이제 타자의 움직임에도 민감하기만 해요. 자신의 고통과 쾌락에만 매몰되는 이기적 개인이 더 이상은 아니죠. 이제 성숙한 거예요. 타자의 고통에도 민감할 수 있으니까요. 

- 4차 산업혁명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고, 그냥 스마트폰 혁명이 라고 보면 돼요. 스마트폰, 즉 휴대용 인터넷 단말기 안에 세계 전체 의 시장이 들어온 거예요. 나아가 스마트폰에 어울리는 시장마저 만 들어졌죠. 이제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려고 몸소 시장에 갈 필요가 없어요. 가상의 시장에서 결제를 하면 어느 사이엔가 상품이나 사람 이 문앞에 도착할 테니까요. 물론 과거 전통시장의 호객 행위도 사 이버화돼요.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모두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변 화하죠. 그래야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테니까요. 그 자극적 인 문자나 영상 사이사이에는 엄청난 광고가 붙죠. 광고의 유혹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구매하려면 다양한 상업 포털 사이트에 접속 하는 것이 이미 대다수 사람들의 행동 아닌가요? 스마트폰으로 흡 수되지 못한 시장이나 자본은 반대로 도태될 거예요. 스마트폰 사용 자에게 검색되지 않는 것은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 게임이라는 말의 어원 아세요? 파스칼의 《팡세》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하나 나와요. 프랑스에서 근대사회가 발달하고 도시에 부르 주아 귀족들이 많이 생기잖아요. 파스칼이 살던 17세기에 상류층계 급의 수가 늘면서, 지금 골프 치는 것과 비슷하게, 나는 귀족입네 하 면서 여우 사냥을 즐겼어요. 그런데 여우가 한계가 있잖아요. 여우 를 너무 많이 잡아서 거의 전멸하는 상황까지 갔어요. 그래서 어떻 게 했냐면 여우 가죽옷을 입힌 농노의 아이들을 들판에 풀어놓았어 요. 그리고는 아이들을 사냥하는 거죠. 그것을 '게임'이라고 한 거예 요. '사냥감'이라는 뜻으로요. 농노의 아이들을 출발시키고 개를 풀 어서 사냥을 했어요. 그러면 아이의 피가 묻은 여우 가죽을 가지고 오는 거예요. 피 흘리며 죽어간 아이를 데리고 올 수는 없잖아요. 사냥을 도와주는 농노들이 자기들과 같은 계급의 아이들을 근처 땅에 묻어주는 거죠. 그들의 가슴속에는 아마도 피눈물이 그치지 않았을 거예요.
도박판에서 막장으로 가면 손목도 걸고, 집문서도 걸고, 아내도 걸잖아요. 게임장이 거대해진 이유는 카지노와 주식시장을 생각해 보면 알죠. 그 안에 떼로 몰려서 돈을 따려고 혈안이 된 모습들을 보 면 알아요. 도박장은 도박꾼들이 몰려들어야 도박이 가능해져요. 수많은 도박꾼들의 돈을 몇몇 사람들 수중으로 몰아주는 거니까. 그런 데 결국 이득은 도박장 주인이 보는 거죠. 그게 게임이에요. 아이템 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잭팟을 노리는 것이 뭐가 달라요. 발터 벤야 민이 얘기했던 것처럼 합법적 투기가 투자고, 불법적 투자가 투기예 요. 그 경계선은 체제가 정하는 거죠. 도박장에 노름꾼들이 몰려들 어야 장사가 되는 것처럼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주식시장, 부동산시 장에 투자자들이 몰려들어야 돼요. 스마트폰 경제가 게임산업을 육 성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게임을 하려고 스마트폰을 자주 켜야 게 임 이용자들이 소비시장이나 금융시장, 혹은 투기시장을 더 많이 그 리고 더 자주 접할 테니까요.

- 뭐든 할 수 있죠, 열심히 하면. 그런데 나머지는 포기해야 되는 거예요. 자기를 부품화하면 그 부품이 꽂혀 있는 전체에 대해서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죠. 그 전체가 변한다든가, 아니면 버려지거나 하면, 그에 따라 부품도 쓸모가 없어질 테니까요. 전문가들, 나아가 직장인들이 근본적으로 보수 성향을 띄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죠. 분업에 길들여진 사람이 분업 체계를 옹호하는 거예요. 대부분 의 사람들이 그에 맞춰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요. 나머지 것을 버 리고 전문화되면 될수록 너는 회사에 잘 팔릴 거야,라고 강요하고 그렇게 믿으면서 말이죠.

- 전문가의 논리, 특화된 논리에 속지 말아야 돼요. 내가 알파고나 AI 같은 사람이 되면 이 사회에서 버려지지 않 을 거라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 느낌 때문에 아이든 어른이든 경쟁 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잊지 마세요. 전문가만 되면 삶이 부유해지고 안전하리라는 느낌은 착각이라는 사실을 오 히려 사정은 반대라는 것을요.

- 간혹 가다가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살지도 않는 집을 하나 더 가지고 있으면서 임대료를 얻어서 생활을 한다고 해 요. 그러고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노동을 하지 않 았는데도 수익이 생긴다면, 그건 다른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한 거예 요. 임대료의 경우는 물론 주거가 불안한 사람들로부터 착취한 거 죠. 작은 자본가고 작은 지주인 거예요. 그래서 속상하고 이런 사람 들하고 만나고 싶지도 않아요. 큰 집에서 사는 건 상관이 없지만, 대 신 집으로 임대료를 받으면 안 돼요. 그런데요, 집이 없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간혹 월세 등을 받아서 노후를 유지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가 있죠. 이 경우는 조금 난감해요. 가족공동체가 외해되어서 돌봄 이 필요한 분들이지만, 이것이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니까 요. 이런 서글픈 경우가 아니라면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나 주식 투자 등으로 이윤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돼요. 자본가 처럼 지주처럼 살면서 어떻게 노동계급을 아낀다고 떠들 수 있나요?

- 좋은 사회는 자신이 생산한 것으로 노동하기 힘든 약자를 돌보는 사회예요. 당연히 이런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존중을 받죠. 노동 이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약자를 돌보는 힘이니까, 노동이 존중을 받아요. 역설적으로 말해서 노동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약자들 이 있고, 그들이 우리 사회에 고마움을 느끼는 사회였으면 좋겠어 요. 그런데 너무 많이 고마워하지 않는 사회였으면 하고요. 그 사람 들이 젊었을 때 가난한 아이나 노인들을 돌봤던 사회였기 때문에 그 래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게, 미래 세대에게 내가 노동한 대 가, 내가 다 먹지도 못할 것들을 맡겨뒀던 거예요. 그것이 나중에 돌 아오는 거죠. 높은 적립금을 부어서 나중에 받아먹으려는 것과 다른 거예요. 애초에 모든 보험은 공동체가 와해되어야 하고, 공동체가 돌보지 않아야 성립이 돼요. '자식들이 당신을 돌보는 시대는 지났어요. 스스로 노후를 관리하세요' 이렇게 홍보해야 돼요. 개인들을 깨알처럼 흩어지게 해서 내가 아파도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고, 내가 음식이 떨어져 집에서 죽어도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를 거라는 느낌을 줘야 돼요. 그러면 계산을 하게 되는 거죠.
억압체제에서는 사회에 기생하는 계층이 있어요. 그들은 노동을 하지 않아요. 잡은 물고기의 반 이상을 선주가 가져가니까요. 배 가자본이라면 고용된 선장이나 어부들은 노동자가 되겠죠. 그런 구 조로 유지가 돼요. 선주나 지주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본가가 들 어온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어요. 그냥 억압체제가 세련되게 변한거죠.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벤담이나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에 이르러 완성된 이기적 개인주의예요. 결 국 사회 체제를 바꾸는 혁명과 함께 우리는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이 기주의와도 싸워야 해요. 어떻게 해야 내 삶이 더 즐겁고, 어떻게 해 야 내 삶이 추위로부터 더 멀리 벗어날 것인가만 생각하는 이 집요 한 개인주의, 이기주의와 싸워야 해요. 불교적인 길일 수도 있어요. 소유 욕구에 대한 싸움이 인간에게는 필요하니까요.

- 프랑스의 정치인류학자인 피에르 클라스트르 Pierre Clastres, 1934~1977는 '국가가 없는 사회' 혹은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에 대해 연구를 해 요. 그래서 나온 책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La Société contre l'État, 1974) 예요. 농경사회 이전의 수렵채집을 하는 전통이 중남미 인디언 사회 에 남아 있잖아요. 1960년대에 거기 들어가 현지 조사를 진행한 거 예요. 클라스트르가 보니까 인디언들이 성인이 되면 잔혹할 정도로 육체에 고통을 가하는 통과의례를 거치는 거예요. 칼로 새기고 불로 지져서 몸에 문신을 만들어요. 여기서 클라스트르가 성인이 되는 통 과의례가 왜 이렇게 가혹할까, 의문을 품었던 거죠. 결국 클라스트 르가 이해한 것은 그 고통의 인내가 자유인의 공동체로 살아가겠다 는 강렬한 동의였다는 거예요. 타인이 약하다고 해서 지배해서도 안 되고, 타인이 강하다고 해서 복종해서도 안 되는 것이 자유인이에 요. 지배와 복종 관계가 없는 공동체가 그들이 생각하는 문명사회예 요. 복종하는 다수가 존재해야 유지되는 국가와는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타인을 얕보고 무시하고 지배하려는 유혹에 빠지려고 할 때, 몸에 새겨진 흉터를 보고 마음을 다잡는 거죠. 만약에 내가 몸이 아 프고 배도 고픈데, 부족의 누군가가 사냥감을 몰래 감춰놨다고 해봐 요. 그러면 그 사람의 명령을 따를 수 있잖아요. 그럴 때 몸에 문신을 새겼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인내하고 싸우는 거예요.

- 노동하는 사람에게 물적 생산수단이 주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진보라는 말을 쓸 수 있어요. 노동만이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는 것, 직접 생산에 참여하지 않은 대표자나 정신노동 자들은 숙련노동자의 평균임금 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 일방적으 로 명령을 하는 상전을 뽑지 않는 것, 그리고 모든 대표자는 언제나 소환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자유인들이 꿈꾸는 공동체의 이념이었어요. 일을 하지 않고 어떤 결과물을 얻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일 을 시켜야 가능하잖아요. 사회성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거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에게 착취당하지 않는 사회를 꿈꿔야 하잖아 요. 노예나 소작농이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가, 공동체가 어떻게 가 야 하는지 자기 발언을 하지 못해요. 그러면 민주주의가 불가능해지 는 거예요. 억압체제가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생계 문제를 위협에 빠 뜨리니까 정치적 발언을 할 수가 없는 거죠. 노동자들이 생산 현장 까지 개입을 하고 결정을 해야 민주주의가 가능한 거예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가 민주적이지 않은데, 이런 체제 안에서 민주주의가 어 떻게 실현되겠어요. 지금 자유는 소비의 자유, 자본가의 자유, 땅 가 진 사람의 자유밖에 없어요.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노동자 편을 든다고 하지만, 소작료를 낮추겠다는 수준밖에 안 돼요.

-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진짜 교육이에요. 내 말을 잘 듣도록 가르 치는 것이 교육일까요, 아니면 내 말을 거스르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육일까요? 불교에서 제자를 키우는 것을 보면 진 정한 교육을 생각해볼 수 있어요. 결국 한 사람의 주인을 키우는 것 이 교육이잖아요. 불교에서는 그런 강력한 주체를 키우는 것이고, 그래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거예요. 스승의 말을 어길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주체가 된 거예요. 생각해보면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도 그래요. 자기가 죽더라도 내 딸 내 아들은 자기 인생을 심사숙 고해서 매 경우마다 스스로 결정을 하고, 또는 수정하면서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나요? 매번 부모한테 와서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야 돼요?' 이러면 잘못 교육한 거 아닌가요? 

- 19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서양의 대학은 중간관리자 양성소로 바뀌어요. 그 결과 우리가 3, 4학년 때 배우는, 흔히 전공이 라고 부르는 교육이 새롭게 들어왔어요. 어차피 전공은 노동계급의 것이라서 명령하는 사람은 전혀 배울 필요가 없었어요. 그래도 중세 대학의 아우라를 남겨둬야 되니까, 전자본주의 시대 지배계급이 배 웠던 철학, 문학 그리고 신학 등은 1학년 교양 과정으로 들어온 거고 요. 신입생들은 1년 동안 교양과목을 통해서 자신이 지배계급인 듯 한 착각에 빠지죠. 존재도, 우주도, 역사도, 사회도 고민하게 되니까 요. 하지만 그들도 그리고 그들의 부모도 모두 알아요.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대학은 중간관리자 양성소라는 사실을요. 마침내 전공으로 들어가면 지성인이라는 백일몽은 끝나요. 산업 체제가 요구하는 분화되고 전문화된 부품이 되는 교육이 시작되는 거죠.
대학 1년, 혹은 2년까지 사회와 역사 그리고 자신의 삶을 고뇌하 던 지성, 전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폭로했던 지성을 부정하면서 3, 4학년 대학생들은 자신이 왜 대학에 왔는지 다시 기억하게 돼요. 경쟁에 이겨서 남보다 안정된 삶을 도모하기 위해서였죠. 자신의 모 든 것을 역사와 사회에 바치려는 생각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1980~1990년대에 대학교 1, 2학년들이 학생운동을 하고 술 마시고 고민했던 바닥에는 발버둥 같은 것들이 있었어요. 대학생 내부에서 전향이라는 것이 벌어지는데, 묘한 전향인 거죠. 총체적으로 이 사 회가 어떻게 될까, 이런 반자본주의적인 꿈들을 꿨다가 3, 4학년이 돼서는 전공에 집중한 거예요. 부모들이 왜 애들을 대학에 보냈냐 면, 투자였다고요. 돈을 이만큼 투자하면 더 많이 버는 거라는, 바닥 에 투자의 논리가 들어 있는 거예요. 그게 우리 대학의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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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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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얻는 지혜

인문 2023. 12. 18. 07:01

- 매력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지혜로운 마술이다. 세상의 어떤 일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 실력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 상대방의 호의를 이끌어내 당신을 칭찬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타고난 매력을 갖고 있어서 쉽게 인기를 얻는다면 당신은 운이 매우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타고난 매력도 노력을 더할 때 빛을 발한다. 일시적인 인기가 아니라, 인간적인 호감과 존경을 얻고 사람들의 마 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내면의 매력을 찾아내 갈고닦을 줄 알아야 한다.

- 지혜로운 사람은 상대방의 악의를 미리 알아차리고, 그것을 호의로 바꾼다. '눈에는 눈'이라는 식으로 상대방의 악의를 그대로 갚아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잠재적인 적을 심복으로 만들거나, 자신의 평판을 해치는 사람을 자신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바꾸는 것 은 상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인내 없이는 불가능하다.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오히려 호의를 베풀어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 라. 이러한 기술이야말로 냉철한 이성과 침착함을 겸비한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교묘한 처세술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모든 일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사람들은 상대가 겉으로 드러내는 감정을 통해 그의 생각을 유추한 다. 따라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실질적인 지혜는 없다. 자신의 패를 보여주고 카드게임을 하는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 진 돈을 모두 잃게 된다.
말과 행동을 아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물리쳐라. 사람들이 집요하 게 당신의 생각을 알아보려고 할 때에는 먹물을 내뿜은 오징어처럼 당신의 생각을 감추어라. 당신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다른 사람들 이 알지 못하게 하고 예측하지 못하게 하라. 당신의 성향을 파악하 면 사람들은 그것을 깔아뭉개거나 아첨하는 식으로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상대가 갚을 수 있는 만큼만 호의를 베풀고, 지나치게 많이 주지 마 라. 지나치게 많이 베푸는 것은 주는 것이 아니라 파는 것이다. 상대 에게 은혜를 갚으라고 채근하지도 마라. 도저히 은혜를 갚을 수 없 다는 생각이 들면 상대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당신과 아예 연락 을 끊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대와 관계를 끊고 싶다면, 지나친 호의를 베풀어서 그의 마음에 과도한 짐을 지워주어라.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은 불평등한 관계가 계속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당신을 피하게 될 것이다. 신은 자신의 조각상을 만든 조각가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마찬가 지로 은혜를 입은 사람은 은혜를 베푼 사람이 가까이 있는 것을 부담 스러워한다. 따라서 한 번에 지나친 호의를 베푸는 것보다 조금씩, 그 리고 자주 주는 것이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현명한 태도이다.

-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이해하는 것은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익숙한 것보다 이국적인 것이 더 비싸고, 잘 알지 못하는 것이 과대평가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신비감을 느낄 때 당신을 더 높이 평가한다. 따라서 좋은 평판을 얻으려면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 히 설명하지 마라. 당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듣되, 당신을 비판 할 기회를 주지 않을 정도가 적절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왜 칭찬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잘 알려지 지 않은 것이나 신비로운 것을 숭배한다.

- 상상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지나친 속단에 빠져 대상을 과대 평가하게 된다. 사람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 는 대로 과장해서 본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 의 상상력을 통제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다.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해서 두려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지레 겁먹고 위축되지 마라.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만나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어울려 지내다 보면 존경하는 마음보다는 실망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인간이라 는 좁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인격이나 재능에 문제가 없는 사람 은 없기 때문이다.

-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용기를 절대 전부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알리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자기를 속속들이 알게 만들지는 않는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고, 그러한 이유로 아무도 그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상대의 한계 를 정확하게 알 때보다는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추측하고, 정말 능력이 있는지 궁금해할 때 그를 더욱 존경하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았을 때 즉시 승낙하지 말고 신중히 생각한 뒤 승낙하라. 오래 기다린 뒤에 얻은 것이 더욱 값진 법이다.
마찬가지로 요구를 거절할 때에도, 상대가 거절의 말에 상처 입지 않도록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정중하게 거절하라. 대부분의 사람 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거절하는 것은 손쉽게 받아들인다. 그동안 처음에 가졌던 기대감이 상당 부분 사그라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이 급하게 재촉하더 라도 가능하면 답변을 미루어라. 상대방이 그 문제에 매달리지 않고,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릴 시간을 주어라. 

- 어떤 사람의 거절은 다른 사람의 수락보다 더 큰 호감을 준다. 진심이 담겨 있고 깍듯이 예의를 갖춘 거절은 성의 없고 무뚝뚝한 수락 보다 훨씬 듣기 좋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아니오"라고 해서 모든 일을 망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은 무턱대고 거절부터 하기 때문에 나중에 결국 수락하더라도 좋지 않은 인상만 주게 된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든 한마디로 딱 잘라 거 절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까지 예의를 갖춰 상대방이 당신에게 호의 를 잃지 않게 하고, 수락하지 못하는 대신에 친절한 말과 태도로 그 빈자리를 메워라. 오랫동안 생각하고, 거절이나 수락의 말은 가능한 한 짧게 하라.

- 당신의 의견이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반박하지 마라. 그가 반대하는 이유가 교활함 때문인지 혹은 어리석음 때문인지를 먼저 간파하라. 상대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불통일 수 도 있지만, 당신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서 일부로 반대 의견을 내놓 는 것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웃어버리면 그만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숨은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건전한 논쟁이 목적이 아니라 당신의 속마음을 알아내려는 속셈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에는 경계심이라는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꽂아 두는 것이 지혜롭다.

- 지혜로운 사람은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행동을 함으로써 난처한 상황을 쉽게 모면한다. 이들은 재치 있는 농담을 던지거나 빙그레 웃 는 것만으로도 난처한 상황에서 슬쩍 발을 뺀다. 역사상의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사소한 행동 하나로 어려운 상황을 모면 했다.
슬그머니 화제를 돌리는 것만큼 상대방의 요구를 점잖게 거절하는 방법은 없다. 상대방이 어떤 것을 요구할 때 잔꾀를 부려 변명을 늘 어놓기보다는 그 요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척하는 것이 더 효과 적일 수도 있다.

- 잊어야 할 것을 잊을 줄 아는 것. 이것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인 생의 행복과 관련된 중요한 지침이다.
우리는 가장 빨리 잊어버려야 할 일을 가장 오래 기억한다. 기억은 언제나 우리의 뜻을 배신해서, 정작 기억하고 싶은 것은 기억나지 않 지만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뇌리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다. 고통스러운 과거는 또렷하게 기억나는데 즐거웠던 과거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골치 아픈 기억을 치유하는 최고의 약은 망각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망각이라는 뛰어난 약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 때로는 무관심한 척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
당장 원하는 것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속을 끓일 필요가 없다.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신기하게도 태연하게 기다리면 저절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잡으려고 다가가면 그만큼 멀어지고, 멀어지면 그만큼 다가오는 그림자와 같다. 이러한 이치는 인간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 "사람들이 당신을 버리기 전에 당신이 먼저 그들을 떠나라"
지혜로운 사람은 이 격언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산다.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을 승리로 장식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조련사는 자신의 경주마가 달리다가 쓰러 져 관중의 조롱을 받기 전에 그 말을 은퇴시킨다. 미인은 늙어서 추해 진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적절한 시기에 거울을 깨뜨린다. 

- 지혜로운 사람은 싸울 때에도 구차하게 싸우지 않는다. 그는 상대방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관대하게 대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에 이르는 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싸움에서 이기기보다 자신 이 명예를 존중하는 뛰어난 전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명예롭지 못한 승리는 승리가 아니라 패배일 뿐이다. 고결한 사람은 친구와의 우정에 금이 갔을 때 얻은 무기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다. 심지어 증오하는 사람과 싸울 때에도 그가 자신에게 가졌던 신뢰 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사소한 배신행위도 자신의 명성을 완 전히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윗사람의 비밀을 알려고 하지 마라. 그가 당신에게 비밀을 고백했다고 해서 당신이 그의 심복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윗사 람의 비밀을 듣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마음의 짐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추한 모습을 상기시켜주는 거울을 언젠가는 깨버린 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참모습을 본 사람을 멀리하고, 단점을 아는 사람을 부담스러워한다. 특히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자신의 약점을 잡고 있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한다. 그는 잃어버린 자유를 회 복하기 위해 자신의 이성까지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한때 권력자의 심복이었다가 한순간에 파멸당한 사람 이 부지기수에 이른다. 따라서 윗사람의 비밀은 듣지도, 말하지도 않 는 것이 현명하다."

- 부러진 손가락을 보여주면 모든 공격이 그 손가락에만 집중된다.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그것에 대해 절대로 불평하지 마라. 악의를 가진 사람들은 당신의 약한 곳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낙담한 한 인상도 주지 마라. 상대방은 그것을 핑계로 당신을 조롱거리로 삼 으려 할 것이다.
악의를 품은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의 상처를 건드릴 생각만 한 다. 이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아픈 곳만 공격한다. 따라서 지혜로 운 사람은 악의를 가진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도 태연하게 행동할 뿐 만 아니라 상처가 될 만한 곳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운명도 때로는 우리의 가장 약한 곳을 노려 상처를 입힌다. 고통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면, 고통이나 즐거움이 어디에 서 오는지 함부로 드러내지 마라. "

-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결코 좀스럽고 시시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대화를 나눌 때 지나치게 꼬치꼬치 캐물어서도 안 된다. 특히 상 대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라 자연스러운 대화를 수사 관이 꼬치꼬치 캐묻는 심문으로 만들지 마라. 특히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자리에 있을 때에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절친한 친구들, 지인, 심지어 적과의 관계에서도 모르는 척하고 내버려두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일이든 지나치게 자세하게 따지고 들면 상대방은 짜증을 낸다. 특히 불쾌한 문제를 계속해서 문제 삼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 어떤 일이든 해결해주는 해결사 같은 사람이 되지 마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사람이 그를 탐내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람에게 걱정거리가 된다.
어느 누구에게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불행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더욱 불행하다. 모든 사람에게 쓸모 있는 사람은 아무에게도 쓸모없는 존재와 마찬가지이고, 오히 려 분란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에나 해결사나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가 있는데, 그들은 탁 월하다는 최초의 평판을 잃고 이내 평범하다는 경멸을 받는다. 이러 한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면 재능을 지나치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 충분한 능력을 갖추되 그것을 적당히 보여주어라. 횃불이 밝으면 밝을 수록 그만큼 기름이 소모되고, 횃불이 꺼질 시간이 다가온다. "

- 불운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내일 일어날 일, 심지어 먼 미래에 일어 날 일도 오늘 미리 생각해두어라. 앞날을 정확하게 내다보는 사람은 유사시에 필요한 대비책을 마련해둠으로써 곤경에 빠지지 않는다. 따라서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은 쉽게 불운을 겪지 않는다.
베개는 말이 없는 예언자이다. 어려운 상황이 닥친 다음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보다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충분히 생각하면서 잠 자리에 드는 것이 현명하다. 일단 행동하고 난 다음에 생각하는 사 람들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잘못된 일에 대한 변명거리만 찾게 된다.
우리의 삶은 생각할 일들의 연속이다. 깊이 생각한 후에 미리 준비해 두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 지혜로운 의사는 처방을 내릴 때와 처방을 내리지 않을 때를 구분할 줄 안다. 심지어 이들은 치료를 전혀 하지 않고 병을 고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손을 놓은 채 뒤로 물러서서 지 켜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일으킨 감정의 태풍을 가라앉히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 지금 당장은 고개를 숙여 양보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참는 자가 승리한다.
맑은 물도 조금만 휘저으면 흙탕물이 된다. 흙탕물은 손을 대면 더 혼탁해지고, 가만히 두면 저절로 맑아진다. 때로는 상황이 좋아질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혼란스럽고 힘든 상황을 해결하는 최선 의 방법이다.

- 기다릴 줄 알라. 시간이라는 들판 한가운데를 천천히 여유 있게 가 로질러 가서 기회를 잡아라. 시간이라는 목발은 헤라클레스의 무쇠 몽둥이보다 더 큰 능력을 발휘한다. 신은 회초리가 아니라 시간으로 인간을 단련시킨다. 행운은 기다리는 법을 아는 사람에게 엄청난 보 상을 해준다.

-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에는 운이 얼마나 자신을 돕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이는 자신의 기질과 능력, 신체적인 특징을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건강의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 마흔 살에 히포크라테스의 책을 읽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지혜를 얻겠다는 욕심에 마흔 살에 세네카의 책을 읽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그보다는 운의 흐름을 읽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현명한 태도이다.
운이 당신을 도와주고 있다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라. 운은 자신 감 넘치는 당당한 사람을 좋아한다. 반면 불운이 닥치면 아무런 행 동도 하지 말고 뒤로 물러서서 기다려라.

- 뛰어난 노름꾼은 돈을 따고 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난다. 성공적인 퇴각은 용감한 공격 못지않게 훌륭하다.
충분한 성과를 올렸다면, 혹은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하더라도 적당 한 시기에 그만둘 줄 알아야 한다.
오래 지속되는 행운은 위험하다. 행운이 찾아온 뒤 불운이 찾아오 고, 또다시 행운이 찾아올 때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
행운이 급하게 달려오면 미끄러져 산산조각이 될 위험도 그만큼 크 다. 작은 행운은 길게 지속되는 반면 엄청난 행운은 금방 사라진다. 행운은 무거운 사람을 오랫동안 업고 가야 하는 것에 금세 지치기 때문이다. 

-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일을 시작하는 방법보다 마무리 짓는 방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시작하는 것보다 는 성공적으로 끝맺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상에는 행운을 타고 태어났지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 들이 많다. 행운의 집에 박수갈채를 받고 들어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행운의 집을 나올 때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행운은 좀처럼 우리를 대문 밖까지 배웅해주지 않는다. 행운은 자기 집에 들어오는 사람은 따뜻하게 맞이하지만 떠나가는 사람에게는 무례하게 대한다.

-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인생 1막에는 죽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겨라. 고전에 힘입어 우리는 더 깊이 있고 참다운 인간이 된다. 인생 2막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세상의 좋은 것을 즐겨라.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은 없다. 조물주는 우리 모두에게 천부 의 재능을 골고루 나누어주었고, 때로는 가장 탁월한 재능을 가장 평범한 사람에게 주었다. 그들에게서 다양한 지식을 얻어라.
인생 3막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보내라. 마지막 순간에 행복한 철학자가 되는 것만큼 좋은 마무리는 없다. 

- 여름철에 겨울 살림을 준비하는 것은 손쉬울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태도이다.
행복할 때에는 쉽게 호의를 얻고 친구들도 넘쳐난다. 그런데 어리석 은 사람은 행복할 때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행복에 눈이 멀어 친구 들을 보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이 불행에 처하면 그 친구들도 그를 모르는 척하고, 아무도 그를 돕지 않는다.
불행에 대비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계속해서 돈독한 우 정을 유지하라. 지금은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값지게 여겨질 날이 올 것이다. 

- 자신의 운명을 지시해주는 별을 따라가라. 운명의 별의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사람이 불운하다면 그가 자신의 운명의 별을 모르고 있기 때 문이다. 세상에는 의지와 노력만으로 이룰 수 없는 일도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상당히 인정받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별로 인정받 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야에서는 뛰어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무능한 사람도 있다. 심지어 같은 능력을 갖고 있는데도 행운이 크게 따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행운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운명의 카드를 뒤섞는다. 실패와 성 공의 일정 부분은 운명에 달려 있다. 따라서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 의 운명을 지시해주는 별을 알아보고,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

- 모든 것을 소유하려고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이 소유한 것을 함께 즐 길 줄 아는 지혜만 있으면 직접 소유할 때보다 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것은 잃어버릴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갖지 못할 때 더 간절한 마음이 생긴다. 심지어 같은 물이 라도 다른 사람의 우물물은 꿀맛처럼 달다.
소유하면 즐기기 어렵고, 오히려 근심만 많아진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소유한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을 누린다.

- 새로운 것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에게 관대하고, 뛰어나지만 익숙한 것보다 평범하지만 새로운 것을 높이 평가한다. 새로운 것은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해서 권태로움을 해소시켜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누리는 영광은 짧다. 단 며칠, 몇 주만 지나도 사 람들의 관심과 관대함은 사라진다. 따라서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적 절하게 기회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로움이 익숙함으로 바뀌고 놀라움이 싫증으로 변하면 신기한 것에 대한 환호는 사라지고 새로운 인물에 대한 박수갈채도 사라진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게 마련이고, 그 때를 놓치면 기회는 사라진다.

-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자주 눈앞에 보이면 명성이 퇴색하는 반면, 가끔씩 나타나면 존재감이 더 커진다. 보이지 않을 때는 사자 처럼 느껴지던 사람도 눈앞에 있으면 생쥐처럼 보일 수 있다. 사람들은 영혼에 숨어 있는 것은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기 때문에 좋은 것일수록 너무 많이 보여주면 그 가치가 떨어진 다. 눈에 보이는 것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고, 업 적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점점 더 부풀려지기 때문이다. 착각은 귀를 통해 들어와서 눈을 통해 나간다. 따라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명성을 유지한다.

- 신은 세상을 창조하고, 그것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빛을 부여했다. 또한 신은 모든 인간에게 재능을 주었고, 그것을 과시할 수 있도록 용기와 지혜를 함께 주었다.
재능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가장 적 절한 시기를 포착해야 한다.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기 때문에 잘못 하다가는 기회를 놓쳐서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게 된 다. 그렇다고 하찮은 재능을 그럴듯하게 꾸며서 과시해서도 안 된다. 사람들은 허영심 강한 사람을 경멸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무언의 웅변, 즉 탁월한 능력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 드러내는 것이 훌륭한 시가 되기도 한다. 한꺼번에 뛰어난 재능 을 드러내지 않고, 조금씩 드러내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 달은 무수한 별들 가운데서 홀로 찬란히 빛난다. 하지만 태양이 떠오른 다음에는 희미하게 보이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다.
당신의 재능을 가리는 사람 곁에는 절대로 가지 마라. 당신을 한층 빛나게 해줄 사람만 사귀어라.
로마의 시인 마르시알리스의 작품에 나오는 교활한 여인 파불라는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었다. 그녀는 못생기고 초라한 하녀들을 항상 주위에 거느리고 다니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한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탁월한 능력이나 재능을 갖고 있지 않다면 별볼일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주의하라. 그들과 함께 당신의 평판도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을 향해서 매진하는 동안에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과 어울리되, 일단 성공하고 나면 당신을 빛내줄 사람들만 곁에 두어라.

- 성공하는 사람은 실패하는 사람이 가장 나중에 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한다. 둘 다 똑같은 일을 하지만, 일을 하는 순서는 다르다. 또한 성공하는 사람은 일의 순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실패하는 사 람은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본다.
계획 없이 시작한 사람은 끝까지 뒤죽박죽인 채 일을 한다. 이런 사 람은 오른쪽에 놓아야 할 것을 왼쪽에 놓고, 왼쪽에 놓아야 할 것을 오른쪽에 놓는다. 그가 제대로 일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 가 그가 할 일의 순서를 정해주는 것이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자 신이 해야 할 일을 즉시 알아보고 자진해서 그 일을 한다. 

- 행운은 나름대로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운에만 맡기지 않는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행운도 자신의 것 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운의 여신이 사는 집 앞에서 언젠가는 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기다린다. 하지만 소수의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용감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후자는 용기, 지혜, 배짱에 힘입어 행운을 누리고, 전자는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 때문에 끝까지 행운을 만나지 못한다. 

-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일을 성급하게 처리해서 생긴 피해보다는 단호하게 결정하지 못해서 생긴 피해가 더욱 크다. 전쟁에서는 움직일 때보다 가만히 있을 때 더 큰 피해를 입는 법이다.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등을 떼밀어주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면서도 결단력이 없 어서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
반대로 민첩하게 행동함으로써 절대로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뛰어난 판단력과 단호한 결단력에 힘입어 손 쉽게 성공을 거머쥔다. 이들은 말과 동시에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에 항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고,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 어떤 것이든 처음에는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미완의 모습을 본 사람의 뇌리에는 그 인상이 남게 되고, 완성된 모습 을 보아도 기억이 되살아나 감상을 방해한다. 완성되지 않은 전체를 한번 흘깃 보는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족한 점만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작용을 한다.
어떠한 것이든 완성되지 않으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아무리 맛 있는 음식이라도 그것을 요리하는 과정을 본다면 식욕이 반감되거나 오히려 불쾌감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거장들은 모두 시작 단계에 있는 작품을 좀처럼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자연에서도 이러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자연은 때가 될 때까지는 절대로 자신을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

- 일을 시작하려는데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면 애초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냉철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일에는 매달리지 않는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할지 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떤다면 무슨 수로 그 일을 무사히 마무리 지 을 수 있겠는가.
살아가다 보면 성공하리라고 100퍼센트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실 패하는 경우가 숱하게 많다. 처음부터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차라리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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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목표로 한 군자의 다섯 가지 자세는 무엇일까?
첫째, 항상 침착하게 대비하고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아랫사람을 통솔할 수 없다.
둘째, 자기 경험에만 의지하면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진다. 그 결과 독불장군이 되어 독선에 빠지고 진보도 발전도 기대할 수 없 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선인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셋째, 인간으로서 신뢰를 높이려면 성실해야 한다.
넷째,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과 사귀면 어느새 상대에게 감화되어 자신도 발전할 수 있다.
다섯째, 누구나 실패와 실수를 한다. 그것을 고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크게 달라진다.
- <노자>라는 고전에는 경낙과신, 즉 '가볍게 승낙하면 미덥지 않다'라는 의미의 명언이 있다. 경낙이란 가볍게 승낙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큰 단점이 있다.
첫째, 스스로 자기 자신을 괴롭게 한다.
그 자리의 분위기나 일시적인 감정에 휩쓸려 자기 힘에 부치는 일을 경솔하게 떠안아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되고, 결국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둘째, 가볍게 승낙하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단 한 마디의 가벼운 승낙 때문에 그런 결과를 맞이한다면 이것만큼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 자로가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맨손으로 범을 잡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가 없는 사람이라면 나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일에 임해서는 두려워할 줄 알고 미리 계획하 기를 좋아하여 성공하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다."
子路曰, “行三軍, 則誰與?”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자로왈 자행삼군 즉수여 자왈 폭호빙하 사이무회자 오불여야 필야임사이구 호모이성자야
-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하지 않으셨다.
억측하지 않으셨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게 없으셨으며, 
고집하지 않으셨고, 
자신만 옳다고 하지 않으셨다.
- 자공이 친구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심으로 일러주고 잘 인도하되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만두어 스스로 욕되지 않아야 한다."
- 공자가 말한 친구를 대하는 방법 중에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만두어라'라는 대목이 참 멋지지 않은가?
부즉불리(不卽不離), 즉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는 바로 이러한 자세가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요령이다.
- 부하는 상사의 뒷모습을 보고 성장한다. 일을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전부 보고 있다. 따라서 상사는 그런 부하의 시선을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순자라는 고전에는 '근원이 맑으면 흐름도 맑고 근원이 탁하면 흐름도 탁하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근원의 '원(源)'은 남을 이끄는 사람을 가리킨다. 윗사람이 맑으면 아랫사람도 맑고, 윗사람이 탁하면 아랫사람도 탁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업무적인 면에서도 인격적인 면에서도 부하의 모범이 될 만한 인 물이 되길 바란다는 말이다.
《사기》에도 역시 '복숭아와 자두는 말하지 않아도 그 아래 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복숭아나 자두 는 봄이 되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맛있는 열매를 맺기 때문에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람이 모이고 그 아래에 길이 난다는 의미다.
- 덕이 있는 인물 주변에는 그 덕을 우러러보고 저절로 사람이 모인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바로잡기 위해 먼저 실행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 한 덕이다. 지위나 명령으로 부하를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부하가 스스로 '저 사람을 위해서라면'이라고 생각해 따를 수 있 도록 덕을 갖춰야 한다.
덕 외에 다른 하나는 솔선수범(率先範)해서 열심히 하는 것이다. 입으로만 설교하면 부하는 듣지 않는다. 몸소 모범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는 아홉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볼 때는 명확한가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확실하게 들었는가를 생각하고, 안색은 온화한가를 생각하고, 태도는 공손한가를 생각하며, 말은 진 실한가를 생각하고, 일할 때는 진지한가를 생각하고, 의문이 들 때는 물을 것을 생각하고, 화가 치밀면 후환을 생각하고, 이득을 보면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孔子曰, “君子有九思.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
공자왈 군자유구사 시사명 청사총 색사온 모사공
언사충 사사경 의사문 분사난 견득사의

- 《손자병법》에서는 싸움을 할지 말지를 결정할 때 일곱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군주는 어느 쪽이 정치를 잘하고 있는가
국내 정치가 삐걱거린다면 전쟁할 처지가 못 된다. 무리하게 전쟁을 시작해도 승산은 매우 희박하다.
둘째, 장수는 어느 쪽이 유능한가
싸움을 지휘하는 것은 장수다. 승패는 그 수완 여하에 달려있다.
셋째, 기상과 지리는 어느 쪽에게 유리한가
기상과 지리도 승패를 크게 좌우하니 면밀하게 따져보고 시작한다.
넷째, 법령은 어느쪽이 철저한가
나라를 정비하려면 법을 빼놓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조직도 법이 중요하다.
다섯째, 군대는 어느쪽이 우수한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살펴야 할 기본 조건이다.
여섯째, 병사는 어느 쪽이 잘 훈련되어 있는가
훈련되어 있지 않은 병사는 그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일곱째, 상벌은 어느 쪽이 공정한가
- '서로 속인다는 것이 고상한 표현은 아니다.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먼저 손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보자.
"예를 들면, 할수 있어도 못하는 척하고 필요해도 필요 없는 척 한다. 멀어지는 척하면서 가까이 가고 가까이 가는 척하면서 멀어 진다. 유리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유인하고 혼란스럽게 해서 공 격한다. 적이 탄탄하면 물러서서 대비를 굳건히 하고 적이 강하면 싸움을 피한다.
일부러 도발해서 기운이 빠지게 하고 저자세로 나가 방심하게 만든다. 적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바쁘게 만들어 지치게 하고 적이 단결하면 이간질한다."
- <손자병법>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승산 없는 싸움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떻게 승산을 파악할 수 있을까?
다음의 다섯 가지 조건으로 알 수 있다.
첫째, 양쪽의 전력을 분석해서 싸워야 할지 말지 정확하게 판단한다.
이런 판단을 위해서는 항상 냉철하게 생각하고 낙관적인 예측 은 피해야 한다.
둘째, 병력에 맞는 방식으로 싸운다.
현대 기업으로 치면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의 장점을 활용한 전략으로 싸우라는 말이다.
셋째, 공통 목표를 향해 조직적으로 똘똘 뭉친다.
어떤 조직도 내부가 뿔뿔이 흩어지면 잠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조직에 그런 결속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없는지는 리더 의 역량에 달려 있다.
넷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적의 허점을 찌른다.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싸움을 걸면 처음부터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왕 싸운다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상대의 혼란을 틈타야 한다. 이러면 승리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다섯째,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장수의 지휘권에 간섭하지 않아야한다.
유능한 장수를 뽑아 군의 전권을 위임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이 다섯 가지 조건은 현대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 "지지 않는 형세를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아군의 태세에 달 렸지만, 이길 기회를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적의 태세에 달렸 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지지 않는 태세를 갖추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승리의 조건까지는 만들 수 없다."
- 먼저 만반의 준비를 굳건히 한 후 상대의 빈틈을 찾아 공격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지 만 적어도 패하지 않는 태세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덧붙여 이런 이야기도 했다.
"승산이 없으면 방어를 굳건히 해야 한다. 반대로 승산이 있을 때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으로 전환해야 한다. 전쟁을 잘하는 자는 방어를 할 때는 병력을 아껴 적이 공격할 틈을 주지 않고, 공격으로 전환했을 때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퍼부어 적에게 방어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군은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고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공격인가 방어인가는 결국 처한 상황에 달려 있다. 이 선택을 제대로 하는 것이 훌륭한 장수다. 시대나 나이를 떠나 리더라면 요구되는 능력이다.
-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조건을 갖춘 후 전쟁을 시작하고,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전쟁을 시작한 후 승리하려고 한다.
是故勝兵先勝而後求戰敗兵先戰而後求勝.
시고승병선승이후구전 패병선전이후구승
- 《손자병법》에서도 주도권을 잡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조 했다.
"적이 싸우게 만들려면 그 싸움이 유리하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반대로 적이 싸우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만들려면 싸우면 불 리하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적의 태세에 여유가 있다면 수를 써서 지치게 만들어야 한다. 적의 식량이 충분하다면 식량 수송길을 끊어 굶주리게 한다. 적의 준비가 충분하다면 계략을 이 용해서 혼란에 빠뜨려야 한다.'
- 완전히 포위된 적에게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 것이다. 그 이유는 도망가는 길이 막힌 적은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라는 속담처럼 필사적으로 반격할 위험이 있기 때문 이다.
죽을 각오를 한 사람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죽을 각오로 부딪 혀 오면 설령 이쪽이 대군이라고 해도 큰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 자칫하면 대반전이 일어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는 현명한 대응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을 꾸짖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상대방이 설 자리조차 없을 만큼 추궁하면 언젠가는 어딘가에서 호된 반격을 당할지 모른다.
중국 속담에 '궁지에 몰린 사람은 반항하고, 개는 울타리를 뛰 어넘는다'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비유이지 않은가? 당연히 때와 장소에 따라 남을 꾸짖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하 더라도 도망칠 구멍 정도는 내주고 해야 한다.
- 장수가 경계해야 할 다섯 가지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죽을힘을 다해 싸우면 정말로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장수에게 필요한 것은 종합적인 판단력이다. 자기 자신이 필사 적으로 싸우기보다 부하들이 필사적으로 싸우게 만들어야 한다. 자신이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만족하면 주객이 뒤바뀌는 꼴이다.
둘째, 살려고 발버둥치면 포로가 되기 마련이다.
궁지에 몰려 살려고 하면 도망치거나 포로가 되는 길, 두 가지 밖에 없다.
셋째, 성미가 급해서 화를 잘 내면 적의 술수에 넘어간다.
성미가 급하면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없다. 성급하게 굴면 결국 자기손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성급한 성격을 노리고 적이 공격 하면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고 패하게 된다.
넷째, 청렴결백을 고집하면 적의 도발에 말려든다.
청렴결백에 집착하는 장수는 개인적인 욕심이 없어서 성품이 강직하다. 반면에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다섯째, 민중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신경쇠약에 걸린다.
병사를 너무 아낀 나머지 이런저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면 정작 중요한 싸움에서 전력을 다할 수 없다.
- 병사에게 상을 자주주는 것은 궁색해진 것이다.
병사에게 벌을 자주 내리는것은 곤란해진 것이다.
- 조직 관리의 비결은 신상필벌(信賞必罰)이다. 상을 줘야 할 때와 벌을 내려야 할 때를 구분하라는 의미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조직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 조직 관리의 참고서라고 할 수 있 는《한비자》는 상과 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명한 군주는 두 개의 자루를 쥐고 신하를 통제한다. 두 개의 자루란 형(刑)과 덕(德)이다. 형은 벌을 주는 일이고 덕은 상을 내
리는 일이다. 신하는 항상 벌을 두려워하고 상을 기뻐한다. 군주가 이 두 개의 자루를 쥐고 있으면 으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 서 신하를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
병법서 《울요자》에도 상벌이야말로 장수의 위신을 세우는 열쇠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벌하는 상대는 지위가 높은 인물일수록 효과가 있고, 표창 하는 상대는 지위가 낮은 사람일수록 영향이 크다. 처벌받아야 하는 죄를 지은 사람은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반드시 벌해야 한다.
형벌이 최고 간부에게까지 미쳐야만 장수는 위신이 선다."
단, 형벌의 집행은 입으로 말한 것보다 강해야 한다.
리더가 사심을 품으면 머지않아 균형이 깨지고 부하의 신뢰를 잃게 된다. 상벌을 집행할 때 필요한 것은 신중함과 공평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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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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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종의 탄생

인문 2023. 12. 7. 11:48

- 백색 동아시아인
요컨대 유럽의 '대항해시대' 초기에 동아시아 사람들은 한결같이 백 인으로 묘사되었고 황인종으로 묘사된 적이 없다. 상인들과 (그 뒤를 이 어) 선교사들이 신비한 동양의 놀라운 땅으로 처음 발을 들여놓은 당시 의 문헌들 중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글들에는 중국인과 일본인을 모두 백인으로 묘사한 예가 가득하다. 그중 몇 가지만 들어도 충분할 것이다. 우선 포르투갈 약제상인 토메 피르스의 기록은 이에 대한 최초의 기 록 중 하나다. 그는 1512년부터 1515년까지 말라카에 머물며 『동방제 국기(國記, Suma Oriental』로 알려진 긴 보고서를 작성해 마누엘 1세에게 바쳤다. 이러한 종류의 정보가 으레 그렇듯 그가 작성한 기록은 철저하게 가려진 비밀이었다. 당시 포르투갈은 엄청난 이익을 보장할 이 지역으로의 무역을 독점하길 원하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이익이 더 는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피르스의 글 중 일부가 (라무시 오에 의해) 출판될 수 있었다. 이때 밝혀진 비밀 가운데는 중국인이 “우 리처럼 백인이며 상당수가 무명과 비단을 입고 다닌다"라는 정보도 포 함되어 있었다. 그의 글 전체를 보면 중국인은 독일인(당시의 상투적인 이 미지로서)에 비견되기도 했고 중국 여성들은 우리와 같은 백색이며 에 스파냐 귀부인 같다고도 했다."
장기간 인도에 파견된 포르투갈 관료였던 두아르트 바르보자가 쓴 비슷한 시기의 보고서 역시 축약본 형태로 라무시오에 의해 출판되 었다. 바르보자는 중국인을 피부가 흰 사람들로 설명했다. "거상들은 백인이며 풍채가 좋았다. 그 아내들 역시 미인이지만, 남녀 모두 눈이 작 았다. 남성들의 수염은 서너 가닥 정도가 났을 뿐이었다." 여기서도 사 람들의 외모는 철두철미 유럽인의 기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인들은 신발과 양말을 신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으며 독일인과 비교되었다. 그들의 언어는 이베리아 사람들의 귀에 자신들의 것과 대등하게 훌륭한 언어로 들렸다." 1514년 작성된 조반니 다 엠폴리의 미발표) 문서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백인이며 옷은 독일인처럼 입었고 신발은 프랑스인 같았다." 일본인에 대한 최초의 정보는 류큐 제도에 한정된 것 이었지만 그 보고서들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피르스는 일본인들이 "백인이고 옷을 잘 차려입었으며 중국인보다 훨씬 품위가 있다" 라고 말했다. 이는 아마도 일본인이 훨씬 부유하다고 믿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1517년이 "레퀴아Lequia"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 어디인 지 알아내라는 지령이 내리기도 했다.
이상의 초기 문건들을 일별한 뒤 필자가 받은 인상은 다소 산만하고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 지역 사람들이 백인이라거나 혹 은 그렇게 추정된다는 말에는 인종적 함의가 결코 들어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피부색을 묘사하는 부분조차 없었다. 중국인과 오키나와 사람들을 백인으로 표현한 것은 그들의 물질적 풍요, 국력, 높은 수준의 세련된 문화를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백색은 다른 색과 마찬가지 로, 사람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치평가적인 말이다. 동아시아 인 피부의 색소가 아프리카나 인도 혹은 말레이 사람들과 다르게 보였 지만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이 '백인'으로 보인 것은 아니었다. 오래지 않 아 그들은 곧 진정 '문명화될 수 있는 능력, 즉 유럽의 기독교로 개종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인이 이웃한 중국인보다 더 백 인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16세기 말 일본인은 이미 수만 명이 개종했다 는 점이 부분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 일본에서 기독교는 1614년 공식적으로 금지되었고 1639년 일본 내에 머물던 마지막 서양인이 쫓겨났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유럽인의 어조는 점차 냉랭해졌고 이에 따라 일본인의 안색도 차가워졌다. 1614년 일본 대사가 로마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창백"하고 "구릿빛"이며, "올리브빛이 나는 황색"에 "번들거리는 흑 색"으로 묘사되었다. 심지어 1660년 기록된 공식적인 예수회 역사에 는 이들이 "올리브색"이라고 적혀 있다. 1715년에 나온 다른 예수회 문 건을 보면 여타 동아시아인에 비해 일본인은 적어도 덜 올리브색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20년이 지나 동일한 저자에 의해 뒤바뀌게 된 다. 이 시점에 이르러 그는 일본인의 피부색은 중국인과 똑같이 올리브 색이라고 선언했다. 한편 1727년 출간된 엥겔베르트 켐퍼의 일 본지History of Japan』는 19세기까지도 유럽의 일본 인식에서 일종의 기준 이었다. 여기서 일본인은 백색이 아니라 갈색braune으로 표현되었는데 이것이 영어로는 황갈색tawny, 다시 프랑스어로는 구릿빛bazanez으로 옮겨졌다. 켐퍼의 표현은 '올리브색'이라는 단어와 함께 흑인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원주민을 일컫는 가장 흔한 말이 되었다. 
- (일부) 중국인의 피부가 검다고 이야기할 때는 필시 개종이 힘들다고 판단한 때인 듯하다. 일본에서 진행된 선교 사업은 (순식간에 이뤄진) 환상적인 성공처럼 보이지만, 중국은 사정이 달랐다. 개 종자의 수가 적은 현상에 당황한 선교사들은 그 원인을 정작 중국인에 게서 찾았다. 예컨대 1596년 마테오리치는 광저우 남부에서 15년 동 안 얻은 개종자 수가 100명에 그친 데 불만을 토로했다. 중국인에 대한 또 다른 전형적인 표현이 있는데 이는 이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이 일 과 무관하지 않다. 즉 중국인은 아이일 땐 백색이고 예쁜데 어른이 되면 못나고 뚱뚱하고 검은색이 된다는 표현이었다.
- 결국 중국인은 그들의 안색을 가장 잘 묘사하는 용어상의 혼란-황 색, 황갈색, 갈색, 검정색, 빨간색, 구릿빛, 암청색의 와중에 결국 백 색이 아니게 되었다. 달리 말해, 이제 더는 백색이 아니었다. 또 다른 보 기를 들면 17세기 초반 크리스토프 카를 페른베거"라는 오스트리아인 이 남긴 일지가 있는데, 이 일지는 1972년에야 발간되었다. 그는 푸젠 성 남부의 광저우를 여행할 때 그곳이 “중국에서 최악의 장소”라고 생 각했다. 사람들이 풍채는 좋지만 "약간 황색"이라고 평한 페른베거는 그들에게 남색男의 풍습이 있고 노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육체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비난했다. 반면 일본의 서남 끝에 위치한 도시 히라도에는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유럽인보다 덩치는 작지만 “상당히 백색"이라고 했다. 게다가 이들은 중국인보다 훨씬 잘살며 "전시에는 남성적인 민족"(중국인은 "여성적 이다")이고 여성은 "백색이며 매력적이다”라고 했다. 색깔을 나타내 는 이들 용어 (그는 중국인을 황색으로 부른 여행자들 중 한 사람이다)에는 문 화, 종교, 도덕, 지위, 신분, 성차와 관련해 복잡하고 다양하게 구별하는 방식이 분명히 관계되어 있다. 머지않아 일본인들 역시 그들의 백색성 을 상실하고 이웃 나라 중국처럼 황색(또는 올리브색)이 될 운명이었다.
- 린네의 분류법은 1758~1759년에 출판된 결정판인 제10판 에서 중대한 변화를 겪는다. 그동안 이 책은 10여 쪽의 2절판을 벗어나 마침내 1,300여 쪽을 넘어서는 두 권짜리 걸작으로 성장한다. 20여 년 에 걸쳐 수많은 수정과 증보를 거듭했지만 제10판에 이르기까지 인간 에 대한 설명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가해진 수정은 '유럽 인Homo europaeus'을 첫째 자리에서 뺐다는 점이다. 린네가 이전의 계층 구조를 왜 수정했는지는 불명확하다. 그가 다른 중대한 변화-각각의 종에 다수의 서술형용사를 붙인 것ᅳ를 가할 때는 당시 사회의 전형적 인 인종주의에서 가져온 규범적 주장을 강하게 반영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두운fuscus' 아시아인이 처음으로 luridus로 호칭되었다는 점이다. luridus는 황색yellow, 연황색pale yellow, 병색 sallow, 창백한pallid, 죽은 것 같은deathly, 섬뜩한ghastly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흔히들 이것이 바로 황인종이라는 관념의 진 정한 기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좀 더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 선 린네는 '황색flavus', '황갈색fulvus' 또는 '담황색gilvus' (물론 이 외에 다 른 단어들도 있다) 등과 같은 좀 더 일반적이고 중립적인 용어를 선택하 지 않았다. 고전 라틴어에서 luridus는 경멸적인 말이다. 보통은 영어의 lurid(끔찍한)처럼 끔찍함과 더러움과 핼쑥함을 함의한다." 이런 수정 에 대해 많은 독자가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한 것은 타당하지만, 그 선 택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다. 필자는 luridus가 다분히 의도적이며 상당히 의미심장하다고 본다. 린네는 흑과 백의 '중간'을 의미하는 색이 아니라 특히 허약함과 질병을 암시하는 색을 말하 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베르니에가 인도 여성이 체현하는 황색은 아름 다운 황색이지 황달 걸린 자의 황색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을 때 그 역시 황색의 이중적 의미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어쨌든 린네는 '아시 아인Homo asiaticus'을 분류할 때 후자의 황색으로 규정했다. 이때 그는 분명히 의학과 식물학이라는 자신의 두 전문 분야를 토대로 생각하고 판단했을 것이다.
앞 장에서 필자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백색이 때론 누르스름함, 병약 함, 죽음의 창백함 따위로 인식된 점을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영어의 jaundice (황달)라는 말이 황색을 가리키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암시하듯 의학에서 황색 피부는 언제나 황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또한 황색은 체액론에서도 중요한 색이다. 체액 론의 전통은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로부터 시작한 이래 10세 기 이슬람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이븐시나'를 경유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갔다. 담즙의 색깔로서의 황색은 일반적으로 불같은 다혈질의 기 질과 연결되었다. 담즙이나 쓸개의 질병으로 여겨진 황달에 대한 18세 기 의학 교재의 전형적인 설명은, 흐름이 막힌 담즙이 혈액으로 흘러들 어 피부까지 향해 결국 피부를 황색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 질병의 증상은 무기력, 나태, 게으름이라고 했다.
- 이런 표현들은 우리에게 '게으른 중국인'이라는 중국혐오증의 초기 적 전형과 신기할 정도로 닮았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지 모 른다. 그러나 당시 유럽인들은 무기력이나 게으름 같은 개념은 다른 많 은(전부는 아니더라도) 비유럽인의 특징이며 기력과 활력의 결핍은 그들 신체의 다른 많은(전부는 아니더라도) 질병의 징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맨더빌의 『맨더빌 여행기』 프랑스어판(1400년경)에는 인도를 이와 연관시킨 흥미로운 예가 나온다. 즉 인데inde 강가에 사는 주민들은 “마 치 황달에 걸린 사람처럼" 녹색이 섞인 "황색" 피부를 하고 있다는 것 이다. 칸트는 1777년 출판된 인종에 관한 글(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 루겠다)에서, 인도인의 "올리브황색" 피부색은 쓸개가 막히고 간이 부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 인도인의 "태생적" 피부색 역시 "황달 걸린 사람의 피부색으로 보인다고 했다. 
린네가 아시아인의 피부색을 fuscus에서 luridus로 바꿀 때 황달이나 특정 의학적 상태를 염두에 두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비록 luridus가 고전 라틴어로 황달에 걸린 상태를 가리키는 말은 분명하지만). 다만 필자가 아 는 한 식물학과 연관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이에 대해 아무도 지적한 바 가 없다. 린네는 『자연의 체계 초판의 「식물계에 대한 관찰 하단에서 (그리고 1736년 『식물학의 기초Fundamenta Botanica』에서 반복하여) 이를 설 명하는데, '색깔'이라는 표제가 달린 '식물의 힘'의 마지막 항목은 다음과 같다. "붉은색은 산을 의미한다. 그리고 식물 전체가 누런색luridus 이고 칙칙해 보이면 의심스럽다." 린네가 이 색을 '칙칙하고' '의심스 러운' 성질과 연결함으로써, 첫눈에도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식물이 흙 속 미네랄이 부족하거나 다른 질병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황백화 현상 (엽록소의 결핍으로 이파리가 황색으로 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 만 린네는 1751년에 초판이 발행된 『식물철학Philosophia Botanica』에서 Luridae라고 명명한 일단의 식물군을 "의심스러운" 성질이라고 규정 했다. 이 식물군에는 배풍등, 산사나무, 디기탈리스, 담배 등이 포 함된다. 달리 말해 '의심스러운'이라는 말은 병든 식물뿐 아니라 마약, 독, 혹은 독성과 관련 있는 식물도 가리키는 것이다. 린네가 1766년 출 간한 『의학의 열쇠Clavis Medicinae』에서는 이러한 범주가 Virosa (즉 악취 나는 것)라는 표제 아래 실려 있다.
- 마침내 1780년대가 되면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같은 보편사 학자들조차 “몽고족의" 야만성은 "아시아의 산마루" 지역에 사는 모든 민족의 특징이라는 이론을 개진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기형적이 고" 약탈적인 성격은 단순히 기후나 문화적인 탓만은 아니며 유전적인 원인 탓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즉 몽고인종은 블루멘바흐의 인류 고유 의 다양성에 대하여』 제3판이 나올 즈음 이미 후진적이고 침체된 지역 으로 간주된 극동을 표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유 형의 고정관념에 기초한, 동아시아에 대한 유럽인의 인식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기존의 중국과 중국 문화에 대한 호감은 18세기 후반부터 일 기 시작한 중국혐오증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동아시아 문명은 유대- 기독교의 서구가 발생하기 전에 이미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지만, 이제 는 정체된 문명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이는 헤르더가 중국을 “상형문 자로 채색하고 비단으로 둘러 방부 처리한 미라"라고 혹평한 것에 잘 요약되어 있다. 이 문명이 정체된 원인은 그것의 '몽고족' 특성 때문이 라는 것이다.
- 1950년대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질병이 염색체와 관련된 질병 이라는 새로운 지식이 등장했으며, 그에 따라 그동안 이 질병에 붙여 진 명칭의 인종주의적 성격에 대한 인식도 늘어났다. 명칭을 변경하자 는 제언이 1961년 의학지에 실렸고 1965년에는 몽고 정부가 세계보건 기구에 유사한 항의를 표시했다. 하지만 당시의 많은 학자와 의사들은 여전히 주저하고 있었다. 1966년 어느 학회가 발행한 자료집은 다운의 「백치의 인종 구분에 관한 고찰」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제호를 여전 히 '몽고증'이라 붙였다. 당시 기념식에 참석한 한 일본인이 현장의 청 중들에게 "이 전문적인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주 장을 펼쳤지만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는 단지 명칭을 둘러싼 문제가 아니었다. 1978년 발표된 어느 중요한 논문은 부제에 '몽고증'이라는 말을 쓰면서,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은 어쨌든 '몽고인'처럼 생겼다"라고 주장했다.
다운증후군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기록을 아무 리 찾아봐도 동아시아인이 인종적으로 몽고인이다라는 개념에 도전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와 비슷하게 몽고눈과 몽고점의 경우에서도 '몽 고인종성 자체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약 서구인 누군가가 다 운증후군이나 특정한 눈 모양 혹은 피부의 반점 때문에 '몽고인'처럼 '생겼다'면, 그것은 코카서스인종의 골격에 나타난 대단히 이국적이고 외래적인 요소로 간주되었다." 퇴행 이론 또한 결국 폐기되었을지 몰 라도, 이러한 이상 현상을 보이는 서구인의 몸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거 나 최소한 사과라도 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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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이 선을 위해 쓰이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더 많은 선한 이들이 권력을 쥐어야 한다. (제프리 페퍼)

- 권력의 7가지 원칙
제1원칙: '착한 사람' 이미지에서 벗어나라 
제2원칙: 당당하게 규칙을 깨라
제3원칙: 이미 권력자인 것처럼 행동하라
제4원칙: 성공한 사람으로 나를 브랜딩하라
제5 원칙: 영리하게 인맥을 쌓아라
제6원칙: 권력은 얻은 즉시 사용하라
제7원칙: 권력의 과거는 처벌받지 않는다

- 자기 인식 이론은 "개인은 명시적인 행동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사고방식, 감정적 상태와 다른 내면의 상태를 알게 된다."라고 가정한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때 알게 되는 정보를 바
- 탕으로 자신의 사고방식을 이해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행동에 관한 중요한 정보가 믿음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더 자신 있게 행동해서 자신감을 높일 수 있고, 스스로를 더 강한 존재로 표 현해서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믿음, 즉 권력감을 쌓을 수 있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자신의 경쟁자가 승진하지는 않을지, 상사가 자신 을 어떻게 생각할지, 자신이 상대적으로 유능한 사람인지 등을 자주 걱 정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권력을 얻는 데 중요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권 력을 얻을 때 최대 장애물은 단연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권력의 제1원칙 은 자승자박하지 않는 것이다.

-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 세계에서는 반칙을 유도해도 비난을 훨씬 덜 받는다. 그런데 조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 남들이 하지 않는 일들을 기꺼이 한다. 당신이 의도적으로 인간관계를 맺거나 아첨을 하거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의 경쟁자들 도 당신처럼 정직하고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경쟁자들은 권 력을 얻기 위해 온갖 전술을 동원한다. 그래서 그들이 기꺼이 하는 일들 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뿐만 아니라 권력의 경쟁에 서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을지도 선택한다. 당신도 권력을 얻기 위해 무 언가를 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 영국 축구팀처럼 과장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택해서 스스로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또는 트로이 티노처럼 "그들과는 아주 다르게 게임을 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 사피 바칼의 《룬샷>이란 책에는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 끄는 설계의 힘'이란 흥미로운 부제가 달려 있다.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 들이 대체로 처음에는 효과가 없고 반대에 부딪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칼은 유다 포크먼 Judah Folkman 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스턴 소 아병원의 소아외과 전문의였던 포크먼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분명 노벨의학상을 받았을 것이다. 바칼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1971년 포크먼은 암세포가 숙주와 상호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암세포 가 어떤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에 속은 주변 조직들이 종양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 그리고 그 신호를 막고 신호가 움직이는 통로를 파괴하는 신약을 제안했다. 달리 말하면 그는 종양을 굶겨 죽이는 약을 제안했던 것이었다. (...) 30년 동안 7년을 주기로 포크 먼의 제안은 어이없이 죽었다가 화려하게 부활하기를 반복했다. (...) 2003년 1월 1일 (・・・) 포크먼이 새로운 암 치료법을 처음 제안한지 32년 이 흐른 뒤에 (...) 듀크 대학교의 한 종양학자가 신약 '아바스틴'Avastin의 새로운 효능을 공개했다. (...) 아바스틴은 대장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연장하는 데 최고로 효과가 있었다. (...) 아바스틴과 포크먼의 아이디 어가 암 치료법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이 분명했다. (...) 나중에 포크먼 은 "엉덩이에 화살이 몇 개나 박혔는지 보면 누가 리더인지 알 수 있죠."라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권력을 원한다면 반대에 부딪혀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하며 장애물에 부딪히더라도 포기해선 안 된다. 남들의 생각과 말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문제가 발생하거나 비난을 받는다 고 해서 경로에서 이탈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단단한 자아 를 지녀야 하고 끈질김과 회복력이 있어야 한다. 권력을 키우는 데 필요 한 개인적인 자질처럼' 끈질김과 회복력도 연습과 경험, 사회적 지지가 있다면 개발할 수 있다.
- 벨미는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인 크리스틴 라우 린Kristin Laurin 과 함께 권력 추구 성향과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에 계급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했다." (참 고로 미는 지금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벨미와 라우 린은 이 실험을 통해 2가지 전형적인 권력 추구 방식을 확인했다. 하나는 열심히 일하고 동료를 돕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등 친사회적으로 행동하면서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얻기 위해 정치적으로 행동하라고 말한다. 즉 전략적으로 행동하고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이로운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자신의 성취를 널리 알리라고 말이다(자신의 성취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제4장의 주제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해냈는지 타인에게 알리면 강력한 개인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실험 결과 그들은 두 전략의 유용성에 관한 평가에서 사회 계급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회적 출신과 상관없이 실험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두 전략 모두 권력을 얻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전략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할지에서는 계급의 차이가 확인됐다. 사회 계급이 낮은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행동해서 권력 을 얻는 전략을 더 꺼리는 경향을 보였다.
- 기본적으로 진정한 리더십에 관한 주장은 과학적으로 거짓임이 증명됐고 여러모로 해롭다. 스칸디나비아 출신 학자 2명이 진정한 리더에 관 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조잡하다 못해 실체가 불분명한 이론을 낱낱이 분석해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그 논문으로 수상했다.
대부분의 긍정적인 리더십들은 조직 생활과 상사와 직원의 관계를 충 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쉽고 겉으로 좋아 보이고 이념적으로 매 력적인 해결책을 내놓는다. (...) 변혁적 리더십과 진성 리더십(본연의 자기 모습을 인식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리더십옮긴이) 같은 유명한 리더십 이론들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 그 이론들을 뒷받침하는 지 적 근거들은 너무나 위태로워서 왜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지 의심스 러울 정도다. 
진정성에 관한 이론들이 학문적인 근거가 빈약해서 비난을 받는 것만 은 아니다. 와튼 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우리는 진정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 누구도 당신의 진정한 자아상을 보길 원치 않는다. (...) 10년 전 A.J. 제이콥스는 한 점의 거짓 없이 진정한 자신으로 몇 주를 보냈다. 작가였 던 그는 편집자에게 자신이 싱글이었다면 그녀와 자려고 했을 것이라 고 말했고, 유모에게는 아내가 떠난다면 유모와 데이트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심지어 그는 장인 장모에게 대화가 지루하다고 말했다. 제이콥스가 이 실험을 통해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는 "기만 덕분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문제없이 돌아간다."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거짓말이 없으면 결혼 생활은 깨질 것이고 노동자들 은 해고될 것이며, 자아는 산산조각 날 것이고 정부는 무너질 것이다.” 라고 덧붙였다.
- 진정성을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권력의 원칙들을 적용할 때 당신이 일부러 성격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을 키우는 데 동원되는 기술들과 행동들은 공정하 다.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익히고 활용할 수 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당신의 자아나 성격이 바뀌지 않으며 바꿀 필요도 없다.
꼭 외향적인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전략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강화 할 수 있다. 자신감이 없더라도 겉으로 보기에 자신감 있게 행동할 수도 있다. 그렇게 당신이 권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바로 내가 가르치고 글을 쓰는 목적이다. 당신이 누구든지 상관없다. 자신을 옥죄는 틀에서 벗어나 기꺼이 권력을 키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배우고 실행할 수 있다.
- 상대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
'자신에게 진실하라'와 '자신의 진정한 북극성을 찾아라' 같은 말들은 지나치게 자기 지시적일 뿐 아니라 리더들이 절대 따라선 안 되는 조언 이다. 리더는 조력자와 지지자가 필요하다. 리더가 우선 완수해야 하는 주요 임무들에는 조력자와 지지자를 확보하는 일도 있다. 만일 리더가 자신이 아닌 조력자와 지지자로 영입하려는 사람들의 니즈와 동기에 맞 게 행동하고 말한다면 목표를 더 손쉽게 달성할 수 있다.
- 영향력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조력자가 필요하다. 조력자를 원한다면 상대에게 무언가를 내줘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그들은 당신을 지지할 것이다. 아마도 그들에게 줘야 하는 것은 그들과 당신이 비슷한 부류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존슨은 남부 출신과 이야기하면 남부 억양을 강하게 사용했 고, 미네소타 출신의 자유당원인 허버트 험프리Hubert Humphrey 의원과 이 야기할 때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때로 조지아 출신의 보수당원인 리처드 러셀Richard Russell 의원과 이야기할 때도 마찬 가지였다.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그들이 당신을 지지한다면 그들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갈 것인가?'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으려고 할 때 문제가 하나 있는데 바로 덜 유능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사회심리학 교수인 수전 피스크 Susan Fiske와 동료들은 대인지각 interpersonal perception (타인의 표정이나 언행 등 정보를 통해 그 사람의 심리 상태나 사회적 상태를 판단하는 능력 옮긴이)의 기본적인 특징들에 관해 대대적으로 조사했다. 그들은 여러 문 화에 걸쳐 사람들은 타인을 판단할 때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유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대체로 따뜻하고 유능하게 보이고 싶어 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하지만 따뜻함과 유능함이라는 두 요소는 개념적으로 상 반된 속성을 지닌다. 이는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에이미 커디Amy
Cuddy의 《내가 착하다고 해서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Just Because I'm Nice, Don't Assume I'm Dumb 에 잘 표현되어 있다.
- 그리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테레사 애머빌Teresa Amabile 교수의 실증적인 연구인 《유능하지만 잔인한》Brilliant but Cruel에도 잘 나타난다. 애 머빌의 연구에서 사람들은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후기를 남겼는데 “부 정적인 후기를 남긴 사람들은 긍정적인 후기를 남긴 사람들보다 더 지적 이고 유능하며 전문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심지어 긍정적인 후기의 내 용이 더 수준이 높더라도 마찬가지였다. (...) 하지만 부정적인 후기를 남 긴 사람들은 긍정적인 후기를 남긴 사람들보다 호감을 덜 받았다."
로버트 치알디니는 이렇게 조언한다. 먼저 유능함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따뜻함을 보여 준다면 사람들은 그 따뜻함을 약함의 신호가 아니라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서 기대하기 어려운 긍정적인 일면이라고 여길 것이다.
- 고인이 된 로큰롤 가수 리키 넬슨 Ricky Nelson의 <가든 파티> Garden Party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사가 있다. "너는 모두를 기쁘게 할 수 없어. 그 러니 너 자신을 기쁘게 해."라는 가사다. 모두가 사회 정체성이 있고 타인 에게 수용되고자 하는 인간적인 욕구가 있다. 사관학교에서 가장 가혹한 처벌 중 하나는 사회적 배척이다. 아마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권력의 첫 번째 원칙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다. 하지만 그 정체성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영원히 정의 내리도록 내버 려 둬선 안 된다. 사회적 관계는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수용되려 는 욕구가 자신의 목표를 제한하고 이익과 욕구를 추구하는 데 방해가 돼선 안 된다. 간략하게 말하면 스스로를 옭아매는 틀에서 벗어나 목표 를 달성할 수 있는 협상력을 얻기 위해 권력의 기반을 다지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 권력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
기본적으로 권력을 얻기 위해 기존의 규칙과 사회 규범을 어기는 행위에 는 어딘가 다르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따른다. 다시 말해 규칙을 깨면 주도권이 생긴다. 하지만 규칙을 깨뜨리려면 먼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앞서 사례에서 트로이티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는 선 댄스 영화제의 만찬을 후원하는 업체에 먼저 연락했고, 직접 여러 경영 대학원을 섭외해서 특별한 활동을 시작했다.
규범과 규칙, 사회적 관습을 깨는 것은 '규칙 파괴자'를 더 힘 있는 사 람으로 만들고 결과적으로 권력을 부여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여러 심리학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 허락보다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쉽다
직장 생활에서 갈등은 흔하다. 직장인들은 평균적으로 매주 약 3시간 을 갈등을 해소하는 데 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약 60퍼센트는 갈등 상황에 대응하는 기본적인 훈련조차 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훈련이 부족할 뿐 아니라 타인의 호감을 얻고 수용되길 바라는 욕구 때문에 우리는 가장 힘들고 불편한 상황을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 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은 갈등을 싫어하고 그래서 논 쟁을 피하려고 애쓴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원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때 상대는 우리가 예 상한 것보다 덜 저항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대립을 싫어한다. 누군 가와 대립해서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불편해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하고자 하는 대로 행동하라. 그리고 미리 양 해나 허락을 구하지 않고 한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하라. 이런 행동이 대 체로 더 쉽고 더 성공적이고 더 생산적이다.
- 규칙과 사회적 기대를 무시하라고 조언하기는 쉽지 않다. 규칙대로 하는 것, 다시 말해 통념을 따르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다. 사 람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규칙대로 움직이기를 좋아한다.
글래드웰에 따르면 조지 워싱턴은 미국 독립전쟁에서 영국군에게 승 리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부대원들에게 영국군처럼 입고 대형을 갖춰 행 군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투에서 패배하자 그는 과거의 전술로 되돌아가 다시 전처럼 나무와 암석 뒤에 매복했다가 영국군을 급습했다.
항상 전면 압박수비로 승리했던 농구팀은 신선한 전략을 써서 승리한 경우가 더 많았음에도 자주 평범한 수비를 펼치곤 한다. 비대칭전과 파 격적인 전략은 성공과 권력을 가져다줄 수 있다. 하지만 규칙을 깨뜨리 려면 그에 따르는 사회적 비난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 규칙을 따르고 사회적 기대에 순응하면 힘을 얻으려는 여정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곧이곧대로 규칙과 사회적 기대에 따라 살아가면 과도하게 제한적인 기회와 가능성만이 허락될 것이다. 따 라서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불리한 위치에서 권력을 손에 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규칙을 깨는 것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합 리적인 선택지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 기존의 규칙들을 고려했을 때 승리하게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규칙을 따르고 지지하라. 하지만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권력의 제2원칙인 규칙을 깨는 것은 성공으로 가는 증명된 전략이다.
- 힘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을 이용하라
사람들은 힘이 있는 자와, 마치 힘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외 모와 행동에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생존 을 위해 벗과 적을 빠르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력을 건 투쟁에서 누가 우세할지도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다. 즉 상대방을 빠르게 평가 하는 능력은 진화론적으로 보면 일종의 적응 기술이었다. 그런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얼굴만 보고 첫인상을 결정한다.
- 이 주장의 논리는 간단명료하다. 분노는 강압과 위협과 어울리는 감정 이다. 강압적이고 위협적인 행동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예의 바르거 나 규범적인 행동이 아니며 심지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앞서 제2장에서도 말했지만 권력을 지닌 사람은 규칙을 어겨도 처벌이나 비 난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 그 자체가 권력이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은 관습적인 행동 규범에서 벗어나며 더 많은 권력을 지닌 사람만이 분노를 드러내 사 회적 기대를 어기는 것이 허용된다.
- 권력을 지닌 사람이 규칙을 어겨도 쉽사리 처벌받지 않는 것처럼, 더 큰 권력을 지닌 사람은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보다 분노를 쉽게 표 출할 수 있다. 그래서 분노를 서슴없이 표출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 람보다 사회적 지위가 더 높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런 논리에 따라 권력을 얻고자 한다면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기를 추천한다. 앞서 청문회에서 블랭크파인과 헤이워드가 보인 행동을 다시 떠올려 보자. 헤이워드는 청문회에서 사과했고 이 행동으로 그는 나약한 존재처럼 보였다. 반면에 블랭크파인은 골드만삭스를 보호하기 위해 강하게 밀어붙이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 행동으로 그는 더 강한사람처럼 보였고 회사에서 그의 지위도 한층 올라갔다.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성의 가슴을 움 켜쥔 것을 자랑하는 음성이 담긴 '액세스 할리우드 테이프'Access Hollywood tape 음담패설 파문부터 금융 부정행위 의혹에 이르는 다양한 스캔들에 직면할 때마다 더 단호하게 밀어붙이고 오히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 을 공격했다. 이 중에서 그 어떤 행동도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분노가 슬픔이나 회한과 같은 다른 부정적인 감정보다 권력과 지위를 높 이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사례를 제시하는 것뿐이다.
- 사회심리학자인 라리사 티에덴스Larissa Tiedens는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은 지배적이고 강인하며 유능하고 똑똑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은 표정에 분노가 드러나는 사람은 슬픈 표정을 한 사람보다 사회 적으로 지위가 높고 더 많은 권력을 지녔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진행한 4개의 연구에서 티에덴스는 “분노를 표출하 는 행위가 사회적 지위의 부여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입증했다. 슬픔이 얼 굴에 묻어 있는 사람은 따뜻한 인상을 주지만 화가 났다는 것을 거리낌 없이 표정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유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티에덴스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진행한 현장 연구를 통해 자주 분노 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승진하고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평가 점수 를 받는 것을 확인했다. 앞서 나는 사람들이 좋아해 주길 바라는 욕구를 극복하라고 조언했다. 이 조언과 일맥상통하게 티에덴스는 "화가났다는 것을 드러내면 (...) 비호감을 얻고 차가운 인상을 주지만 호감은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고 얻는 데 아무 의미가 없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공동 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는 분노를 드러내면 협상 테이블에서 더 큰 이익을 얻고 협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협 상 테이블에서 화가 났다는 것을 거리낌 없이 보여 주는 사람은 강인하고 단단하다는 인상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 미안한 감정은 대체로 분노와 반대 효과를 낸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비난을 받으면 기본적으로 미안한 표정부터 짓는다. 하지만 이럴 때 미 안한 표정을 지으면 안 되는 이유가 3가지 있다. 미안한 표정을 짓기에 앞서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첫째, 사과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하는 행동'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존재한다'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애매모호하거나 누가 져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가 일단 사과를 하면 그 사람과 부정적인 행위 사이에 명확한 연결 고리가 생긴다.
둘째, 사과는 사람들의 자기 인지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사과를 할 경우 심리적 비용이 발생한다. 한 연구진은 두 번의 실험을 통해 사과하길 거부하는 행위가 "권력감/통제감, 가치 진실감과 자아존중감을 높인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일관성과 자기 확신에 대한 욕구 때문에 쉽사리 사과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강력하고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들과 조직들이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일관성과 자기 확신에 대한 욕구 때문에 그들에게는 사과할 게 없는 것이다.
셋째, 사과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과하는 사회적 행위자만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함부로 사과해선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사과를 한 다는 것은 누군가는 공로를 인정받고 다른 누군가는 비난을 받는다는 의 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사과를 하는 사회적 행위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믿음에 도 영향을 미친다. 사과는 약자의 행위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과하는 주 체가 영향력이나 지위, 명망이 낮을 것이라 여기고 그에 대한 행동도 달라진다.
- 자신감과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라는 조언은 사회적 통념에 반한다. 일 반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면 자신의 나약함을 보여 주라고 조언한 다. 부드럽게 행동해서 타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안정과 지지를 얻 으라고 말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동기가 더 강하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해 권력과 성공을 추구하느냐, 아니 면 나약한 사람을 돕고 가까워지길 원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할 것이냐가 결정된다. 모두 가능하지만 내가 검토한 증거에 따르면 성공을 추구하고 권력을 얻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더 좋다.
-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업무를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환경에서 자신감과 유능함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당신이 높은 지위에 있고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리더십과 안심을 바랄 때 더욱 중요하다.
물론 당신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나 리더가 아닐 때 취약함과 불안 감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업무와 관련해 높은 지위에 있다면 불안감 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꼭꼭 숨기는 것이 자신에게 훨씬 더 좋을 것이 다. 사람들은 승리하고 우세할 것 같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따 라서 승리하고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오해를 바로잡아 주려는 행위는 쩌면 실수인지도 모른다.
-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과 경력, 인성에 관해 이야기하면 그 누구도 그 사람과 전에 함께 일했던 부하직원이나 사업 파트너 등에게 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내린 결정에 헌신한다. 일단 관계에 금 전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투자하면 그 수고로움과 헌신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 판단을 잘못 내렸다고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다. 상황은 애매모호하 다. 그래서 그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큰 권력이 있는지, 얼마나 유능한 사 람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대체로 어려운 일이다.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하면 확실히 권력의 제3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실제보다 더 큰 권력을 지닌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느냐에 따라서도 평가를 받는다. 조직 에서 특출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과 친구처럼 지내면 자신의 개인적인 평판도 일 잘하는 사람으로 올라간다는 연구가 있다.' 로버트 치알디니 는 이렇게 인맥에 따라 지위가 상승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주로 다음의 사례를 소개하곤 한다. "부와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 금융가 배런 드로스 차일드 Baron de Rothschild는 지인에게서 대출 부탁을 받았다. 로스차일드는 '자네에게 직접 대출을 해줄 생각은 없네. 대신 자네의 팔짱을 끼고 사이 좋게 증권거래소를 한 바퀴 돌까 싶어.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자네에게 돈을 빌려주겠다고 득달같이 달려들 걸세'라고 대답했다."
개인의 지위와 명망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 공한 사람과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이미 일류인 사람이 나 조직과 관계를 맺는 것은 강력한 개인 브랜드를 구축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 많은 기업 리더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언론을 형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언론과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 데 시간이나 노력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케팅과 PR을 담당하는 직원들을 따로 두는 것이다. 알렉스 콘스탄티노플Alex Constantinople은 트리스탄 워커와 일했던 PR 전문가다. 콘스탄티노플은 많은 중역이 자신의 브랜드가 필요 없다 고 생각하지만 워커는 그들과는 생각이 반대라고 말했다.
기업가이자 벤처캐피털리스트인 마크 서스터 Mark Suster는 세일즈포스Salesforce의 창립자이자 CEO인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와 함께 일했다. 그는 베니오프가 언론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고 기자들에게 개인 적으로 메모를 보냈으며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베니오프에 관해 우호적인 언론 보도가 많았던 이유가 아마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 적당한 논란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라
언론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수고를 덜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일단 자 신이 뉴스거리가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조회수를 올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 면, 다시 말해서 뉴스거리가 되려면 대체로 논란이 될 만한 여지가 있어 야 한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이 부분에서 칼라카니스에게서 배울 점이
- 내 이야기를 남이 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라
많은 사람이 그렇지만 특히 여성이나 겸손함의 가치가 중요한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자기 홍보에 거부감을 느낀다. 문제는 당신이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 당신의 이야기를 해줄지 알 수 없으며, 조직에서 당신의 성취를 제대로 평가할지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 브랜드와 자기변호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여기 에 수반되는 활동과 그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 옛말에 '네가 무엇을 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누구를 아느냐 가 중요하다'라고 했다. 이 말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당신이 누 구를 알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아느냐는 당신의 영향력과 경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권력의 제5원칙이 '영리하게 인맥을 쌓아라'인 것이다.
인맥을 쌓는다고 코데스타니처럼 속담에나 나올 법한 대박을 터뜨린 다거나, 페라지처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컨설팅 회사를 차린다거나 워커처럼 성공적인 부동산 투자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 러 증거가 보여 주듯이 인맥을 쌓고 사회적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분명 권력을 얻고 경력을 쌓는 데 추진력을 제공한다. 
- 권력은 사용하면 고갈되는 희귀하고 한정된 자원이 아니다. 이것이 이번 장의 핵심 주제다. 오히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구조화하고 자 신과 목적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을 바꾸는 것 을 포함하여 무언가를 완수하고자 권력을 행사할수록 권력은 더 커진다. 권력을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가 권력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다. 사 람들은 권력에 끌린다. 그래서 권력을 더 많이 행사하고 자신이 강하다 는 것을 보여 줄수록 더 많은 조력자들이 생긴다. 따라서 권력의 제6원칙 은 '권력은 얻은 즉시 사용하라'다. 사람들이 당신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 는 권력 이상의 힘을 사용하라. 권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그 힘은 소 진되기보다 영속될 가능성이 크다.

-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좋은 결과물을 내놓으면 리더의 권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긍정적인 변화와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리더를 지지할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력을 키우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미 주어진 권력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정도 와 형태는 다르지만 조직은 일반적으로 타성에 젖는다. 그래서 무언가를 개선하려면 기존의 방식을 타파해야 한다. 조직의 기존 구성원들과 프로 세스는 대개 현상을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기 때문에 현상을 타파하고 상황을 개선하려면 권력이 필요하다.
기존의 리더가 조직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 권력을 성공적으로 사용하 면 그의 권력은 커진다. 반면에 권력을 행사하길 미루거나 전혀 행사하 지 않으면 현상은 그대로 유지되겠지만 권력은 줄어든다. 따라서 권력은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 외부인이 조직의 리더가 되면 조직 안팎에서 자신을 도와줄 조력자를 확보해야 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리더의 소통 방식과 운영 방식을 이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원하는 변화와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단 조력자를 확보하면 모든 것이 신속하고 효 율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지향하 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당신의 전략에 반발하고 개혁 시도에 저항하거나 고의적으로 방해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사람을 교체하는 것은 권력을 키우는 데 2가지 이유에서 효과적이다.
첫째,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변화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로 조직을 채울 수 있다. 이는 조직의 성과를 개선하고 조직에서 힘을 기르고 입지를 단단하게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도전적 이고 정치적으로 힘겨운 상황에서 힘이 되어 줄 우군을 확보할 수 있다.
- 힘을 과시해 공포를 조장하는 행위의 유용성에 관해서는 마키아벨리 의 《군주론》에 있는 유명한 구절이 하나 떠오른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 왜냐하면 사랑이 란 일종의 의무감으로 유지되는데 인간은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이어서 이익을 취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사랑을 내팽개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 유지되며 실패하는 법이 없다. 마키아벨리는 리더(군주)의 첫 번째 책임은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지위를 잃으면 리더는 더 이상 무언가를 해낼 힘을 상실하기 때문 이다.
- 자신에게 권력이 있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그 권력을 기꺼이 행 사할 것임을 사람들에게 보여 줘야 한다. 그리고 그 권력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제도화하는 구조를 만들어 내면 권력은 사용하면 할수록 커진다. 이번 장에서 살펴본 사례들이 보여 주듯이 그 누구의 반대 없이 힘을 사 용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리더는 어느 정도 사회적 반감을 감수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권력의 제1원칙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할까 봐 전전긍긍 해선 안 된다. 게다가 경쟁자를 제거하고 자신의 권력을 영속시키는 제 도를 만들고자 할 때 위험이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갈 등을 싫어하기 때문에 놀랍게도 주도권을 잡은 사람이 하는 일에 반발할 가능성이 작다. 일단 주도권만 잡으면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 그리고 사 람들은 권력자에게 끌리게 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적개심은 무 력화되고 권력은 안정되며 적은 친구가 된다.
- 권력자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라미드 처럼 밑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줄어들고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권력은 지지자들의 수도 증가시킨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권력자에게 끌리고 그의 영향권에 들어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위계의 정점으로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겠지만 높은 곳에 있거나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과 동맹을 맺길 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그래서 권력을 얻으려면 몇 가지 규칙을 어길 수밖에 없다. 제2장에서 봤듯이 권력을 얻으려면 규칙을 파괴해야 하고 이는 실제로 권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간략하게 말하면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것은 권력자에 게 적대적인 사회적 역학관계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얻고 지배적인 자리에 서면 그 권력을 영속시키는 제도도 만들 수 있다. 
- 법정에서 반대편에 선 검사와 피고측 변호사는 동류다. 그들은 그저 같 은 경력의 다른 지점에 있을 뿐이다. 기업 임원의 범죄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검사에게 그 순간 위험한 일만이 아니라 자칫 유명한 로펌에서 일 할 기회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법무부에서 일하는 예 의 바르고 성취욕이 강한 동료들에게 '사회적 불편감을 일으킨다. 특히 자신과 같은 계급이 그렇게 멋진 사람들로 구성됐을 때 그 누구도 계급 의 배반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 권력은 사람들이 손실보다 보상과 이익에 주목하게 하고 낙관주의를 강화하며 더 위험한 행동을 하게 한다. 그래서 권력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목 표를 격렬하게 추구하면서 다른 상황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자유 롭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번 장은 탈억제적이고 반규범적인 행위가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서 더 자주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볼 것이다. 권력이 사회 적 규범과 관습을 위반하는 행위를 촉발하는 이유는 그 권력이 최악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힘과 돈이 있으면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힘과 돈이 없는 사람보다 그 일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덜 져도 된다. 이렇게 행동의 결과에 책임지지 않 아도 된다면 권력자가 자신의 행동에 별다른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 잘못은 잘못이고 성과는 성과다?
마케팅 학자 3명이 "소비자들은 왜 부도덕하게 행동한 유명인이나 기업과 브랜드를 계속 지지하는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순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명인이나 기업에 깊은 애정과 호감을 오랫동안 유지하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도덕적으로 강직하다고 여긴다. 여기서 딜레마는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과 부정행위를 저지른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 사이의 잠재적인 모순과 긴장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이 모순을 해소하는 하나의 과정이 '도덕적 합리화'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사회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와 동료들이 설명했듯이 도 덕적 합리화는 첫째, 해로운 행위를 재정의하고, 둘째, 손해가 발생한 데 에 범법자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셋째, 범법자가 초래한 손해를 최소화 하거나 왜곡하고, 넷째, 희생자를 비인간화하거나 비난해서 다른 사회적 행위자들의 부도덕한 행동을 재정의하고 재개념화하는 전략이다." 도 덕적 합리화는 사람들이 그들의 부도덕한 행동을 나쁘지 않거나 정말 그 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 모순을 해소하는 또 다른 과정인 '도덕적 분리'가 위에서 언급한 마케 팅 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에 소개됐다. 도덕적 분리는 애착과 매력을 느 끼는 대상이 부정행위에 연루됐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 부도덕한 행위 는 현재의 그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에게 계속 끌리고 관계를 이어 가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도덕적 분리는 "소비자들 이 도덕성의 판단과 실적의 판단을 선택적으로 분리하는 심리적 단절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의 불륜 사건은 골프 선수로서 그의 역량과는 무관하다. 빌 클린턴이 모니카 르윈스키와 성적으로 놀아난스 캔들은 미국 경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한 그의 능력과 아무 관련이 없다. 기업 임원들의 다양한 성추문들은 기업 전략가나 경영 관리자로서 그들 의 능력과는 관련이 없다. 사람들은 도덕적 분리를 통해 권력자의 잘못된 행동은 인정하지만 그 비행은 권력자와 관계를 계속 이어 가려는 동기가 되는 실적이나 성과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도덕적 분리는 인지적으로 더 쉽게 달성된다.
도덕적 분리는 도덕적 합리화보다 정당화하기 더 쉽고 잘못됐다는 느 낌이 덜 든다. 도덕적 합리화는 사람들에게 부도덕한 행위를 용납할 것 을 요구하고 소비자들의 도덕적 자아상을 위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 덕적 분리는 소비자들이 범법 행위를 비난하면서 동시에 그 범법자를 지지할 수 있게 해준다. 도덕성으로부터 실적과 성과를 분리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책하지 않고 부도덕한 행위자를 지지할 수 있다.
- 나는 도덕적 합리화와 도덕적 분리 현상을 자주 목격했는데 그중 도덕 적 분리는 실제로 사람들이 부정행위를 한 사람과 계속 어울리는 것을 더 빈번하게 정당화했다. 핵심은 사람들은 힘이 있으나 문제도 있는 사 람들과 계속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이익이 될 때, 그들과 친분을 유지 하면서 자신의 도덕적 청렴함을 유지하기 위해 인지적으로 상황을 재평 가하고 재정의하는 많은 방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 서사를 만들고 이 이야기가 진실로 여겨질 때까지 반복해서 사람들에 게 들려줄 수 있는 것도 권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벤처캐피털리 스트, 투자자, 심지어 직원과 소비자는 기업가 단 한 명의 지위를 높이고 자신과 동료들은 등장하지 않는 기업의 멋진 창립 신화를 좋아한다. 그 렇게 쓴 이야기가 '잘 팔리고 그 속에 약간의 진실이 담겨 있는 한 사람 들은 이야기의 진실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담긴 비전과 서사, 투자, 소비자와 인재를 끌어 들이는 데 유용한 정보에만 관심이 있다. 역사적으로 정확한가에는 흥미 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확인되지 않은 불편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신 의 이야기를 일찍 널리 퍼뜨리고 개인의 권력을 영속시킬 수 있는 현실 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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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는 그 문제가 발생했을 때와 같은 생각의 레벨로는 해결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가령 돈이나 연애 문제는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그보다 한 단 계 높은 차원, 즉 인생이라는 관점에서 돈이나 연애를 다시 돌아봤을 때 무언가 깨달음을 얻게 된다.
- 브레인 애슬리트는 운동선수만큼이나 절제된 생활을 한다.
의식이 불필요한 정보에 휩쓸리지 않도록 집 안과 생활을 심플하게 하고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을 보지 않는다. 두뇌 회전을 유지하기 위한 식사(특히 요리에 사용하는 오일에 신경을 쓴다), 의식에 흡착되기 일쑤 인 불필요한 정보를 떼어놓기 위한 호흡과 요가 등을 수련한다.
의식을 편견이나 고정관념과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웨이트트레이닝처럼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결코 쉬운 길도 아니고 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답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생각하는 힘'은 하나의 유력한 해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 하는 힘을 단련하는 것은 평생 먹고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만큼 중요 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 정의해보자면 '생각한다는 것은 개념의 바다에 의식을 띄우고 정보와 지식을 분리 · 결합해 정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즉, '의식적인 행위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머리를 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의식 을 사용한다. 생각하는 것은 의식을 사용하여 정보를 정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브레인 애슬리트의 출발점이다. '의식을 자유롭게 컨트롤하는 것' 이야말로 우리의 최종 목적지다.
-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파악하여 단 한 가지 일만 처리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표면적인 문제에 일 시적으로 대처해봐야 결국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뒷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 존재한다. 그들은 그 본질을 찾아내는 것에만 시간을 쏟는다. 찬찬히 문제의 근원을 밝혀내면 문제의 뿌리를 단숨에 뽑아낼 수 있다. 100개의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 라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요인(레버리지 포인트/핫 버튼)을 발견하여 그 것에 주력하는 것이 그들의 방법이다.
- 도쿄대학에 합격하는 사람들의 우수함은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이 아니라 작은 일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의식의 컨트롤 능력에 있다. 수험은 의식을 컨트롤하기 좋은 트레이닝의 장이긴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얻은 지식은 시간과 함께 퇴색하고 머지않아 잊혀버린다. 남은 가치는 집중했던 체험이다. 그리고 새로운 게임은 계속해서 생겨난다.
- 메타 사고의 최종적인 목적은 본질을 꿰뚫고 핵심을 찌르는 대책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질적'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본질에는 세 가지 공통되는 요소가 있다. 바로 '보편성(응용할 수 있 는 것)', '불변성(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단순성(심플한 것)'이다. 이러한 본질을 파악해두면 후에 응용 가능성이 커진다.
이 세 가지 특성을 검증해보면 자신이 생각해낸 것이 본질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만약 생각해낸 것에 이 세 가지 요소가 없다면 더욱 본 질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 시험 직전에 이유 없이 청소를 하고 싶어지는 현상을 현실도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도쿄대학의 한 교수는 청소가 리엔트로피(re- entropy), 즉 의식의 응축이라고 지적한다. 책상이나 방 안이 어질러져 있으면 의식이 그것에 들러붙어 확산해버리므로 중요한 생각 작업에 할애 하는 뇌의 처리 능력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족해지는 것이다. 1장에 서 소개한 생각과 정보의 패러독스는 생활공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스티브 잡스는 집에 물건을 거의 두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한데, 생 각하는 힘이라는 관점에서 말하자면 물건이 없는 상태는 의식을 정리하 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에 고개가 절로 끄덕 여진다.
- "논리적으로 이끌어낸 결과는 어디까지나 '판단을 돕는 도구'로서 활 용해야 한다. 지성의 활동은 논리학이나 수학 같은 정확한 과학의 영역을 넘어 가장 넓은 의미로서의 예술의 영역에 들어간다. 여기에서 말하는 예 술이란 수많은 사상이나 관계 속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을 판단력을 이용하여 발견해내는 기능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판단력에는 모든 힘 과 관계를 본능적으로 비교하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관련성이 나 중요성이 낮은 것을 즉시 옆으로 밀어내고, 연역법에서는 불가능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당면해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를 인식하는 것이다."
-  본질적인 사고는 좌뇌가 만들어내는 논리적 사고, 혹은 우뇌적인 직감력이나 창조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좌뇌와 우뇌의 신비하고 미묘한 균형에 의해 발생하는 통찰력에 근거한다.
생각건대 '어째서 그러한가?"라는 논리적 의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 하고 항상 그러한 문제의식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있으면, 마지막 순간에 대기하고 있던 우뇌가 움직이면서 영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까.
추상화나 전체상을 파악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회사 생활을 오 래 한 사람들은 곧잘 '지식이나 경험이 쌓이면 눈앞의 일뿐만 아니라 옆 부서나 회사 전체, 업계 전반에도 눈이 가게 되어 있고, 그것이 회사원으로서의 성장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너무 느긋한 이야기로 들린다.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싶다면(빨리 성장하고 싶다. 혹은 이노베이션을 일으키고 싶다) 스 파르타식 브레인 트레이닝(두뇌 근육 트레이닝)을 한다는 생각으로 '메타 적인 시점 갖기', '사물의 뒷면을 들여다보기' 등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 기업만 봐도 영업부, 개발부, 기획부 등 부서별로 분단된 틀 안에서만 논의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서는 이노베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 본래 그것을 결합하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지만 전체의 움직임을 보는 빅 픽처(big picture)를 가진 경영자는 많지 않다.
그동안 사고이론의 큰 흐름은 효율화(ROE 등)와 요소 환원, 그리고 빅 픽처가 거의 동등한 취급을 받으며 세 가지 중요한 요소'로 여겨져 왔 다. 하지만 그 가치는 떨어졌다.
진짜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힘을 통해 전체상을 파악하는 문제해결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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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장자수업2

인문 2023. 11. 15. 07:17

- 내가 누군가 '귀가 밝다'고 말한 것은 그가 '특정한 저것의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누군가 눈이 밝다'고 말한 것은 그가 '특정한 저것의 모양을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본다'는 것 을 의미한다.
무릇 스스로 보지 않고 저것을 보는 경우나 스스로 얻지 않 고 저것을 얻는 경우는 다른 사람이 얻으려는 것을 얻음이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음이 아니며, 다른 사람이 맞다고 하는 것에 맞추려 함이지 자신이 맞추어야 할 것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변무
-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종교적이지만, 불교에는 묘한 데가 있 습니다. 불교에서 인간은 부처를 숭배해야 하지만 동시에 인 간도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부처의 눈으 로 보아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눈으로 볼 수도 있다는 가르 침, 종교로서는 정말 개운치 않은 종교가 불교입니다. 분명한 것은, 승려들에게 복이 있으려면 중생들은 부처의 눈으로만 세 상을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면, 중생들이 사찰을 찾아 시주할 일도 없을 테니까요. 모든 사람 이 부처가 되면 붕괴되는 종교! 탄생할 때부터 그 내부에 시한 폭탄을 장착했던 종교! 그것이 불교입니다. 시한폭탄의 초침 이 돌아가고 있다는 긴박감 때문인지, 종교성과 함께하는 불교 의 인문성은 더 극적인 데가 있습니다. 밝은 대낮보다 짙은 어 둠 속에서 작은 촛불이 더 인상적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앙 굿따라니카야(Ainguttara Nikāya)』에 실린 작은 경전 「마하나마경 (Mahānāmasutta)」에서 고타마 싯다르타는 이야기합니다. "에히 파 시코(ehi pasiko)!" "와서 보라(come and see)!"는 아주 강렬한 인문주의 선언입니다. 내 말을 믿지 말고 여기로 와서 너의 눈으로 직 접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봄'을 뜻하는 '파삼(passam)'에서 유래 한 '파시코'라는 말은 강렬합니다. 그렇습니다. 싯다르타는 중생 들이 자기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기를 원했던 겁니다. 중생들이 자기 눈으로 보게 되면, 그들도 자신처럼 깨달은 자, 즉 부처가 된다는 걸 싯다르타는 알았으니까요. 바로 여기서 릴케의 발원 은 부처가 되겠다는 의지와 다름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 보는 법이나 그것을 가르치는 선생은 필 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오라!"는 말은 사족에 불과합니다. “와 서" 볼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냥 "보면" 되니까요. 「변무」 편의 '총명 이야기'에서 장자의 입장은 바로 이겁니다.
- 눈이 없는 것을 '맹(盲)'이라 하고, 귀가 없는 것을 '롱()' 이라 합니다. 맹이라는 한자는 '눈'을 뜻하는 '목(目)'과 '없다' 는 뜻의 '망(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면 롱이라는 한자는 '용'을 뜻하는 '용(龍)'과 '귀'를 뜻하는 '이'로 구성됩니다. 뱀 이든 용이든 파충류에게는 귀가 없다는 것에 착안한 글자입니 다. 어쨌든 맹인이나 농인에게는 다른 사람이 귀가 되고 눈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와 달리 누군가 자신이 귀 와 눈이 되어줄 테니 너는 스스로 듣지도 보지도 말라고 유혹하 거나 강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유혹과 강요에 복종하는 순간 우리는 기묘한 맹인이나 엽기적인 농인이 되고 맙니다. 「소요유」편에서 장자가 말했던 상황이 펼쳐진 겁니다. "어찌 몸에만 농맹(盲)이 있겠는가? 저 앎에도 역시 농맹이 있다(豈唯有 聾盲哉?知有之)."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니, 눈이 없어 보지 못하고 귀가 없어 듣지 못하는 경우보 다 더 '웃픈' 상황입니다. 이런 희비극을 폭로하는 것이 명 이 야기입니다. 국가나 자본의 팩트 물신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이렇게 탄생합니다. 특정한 저것의 소리를 들을 수 있거나 특정한 저것의 모양을 볼 수 있는 것보다 스스로 듣고 스스 로 볼 수 있는 것을 장자가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제야 총명 이야기의 핵심이 '특정한 저것의 소리'나 '특정한 저것의 모양'이라고 번역한 '피(彼)'라는 글자에 있음을 알게 됩 니다. '피', 즉 '저것'은 내가 아닌 타인이나 국가 혹은 자본이 보 라고 유혹하거나 강요하는 팩트였던 겁니다. 그래서 총명 이야 기 후반부에서 장자는 말합니다. "무릇 스스로 보지 않고 저것 을 보는 경우나 스스로 얻지 않고 저것을 얻는 경우는 다른 사 람이 얻으려는 것을 얻음이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음이 아니며, 다른 사람이 맞다고 하는 것에 맞추려 함이지 자신이 맞추어야 할 것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지 못하고 자신이 맞추어야 할 것 에 맞추지 못한 채, 자신의 소중한 삶을 허비하고 있다는 사실 이 말입니다. 그러니 싯다르타는 노파심에 절절하게 호소했던 겁니다. "내게 와서 네 눈으로 보라!" 그러나 장자는 사람들이 국가나 자본의 눈 대신 스승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것마저 경계합 니다. "네가 있는 그곳에서 네 눈으로 보라!" "에히 파시코"가 아 니라 그냥 "파시코!” 릴케는 장자에게 미소를 던집니다.

- 어떻게 내가 삶을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는가? 어떻게 내가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우리들이 마치 젊어서 고향을 잃고도 고향으로 되돌아갈 줄 모르는 것이 아님을 알겠는가? 여희(姬)는 애(艾)라는 곳을 지키던 어느 여 족(族)의 딸이었다. 진(晉)나라가 처음에 그녀를 잡아 데리고 왔을 때, 눈물이 그녀의 옷을 적실 정도였다. 진의 궁궐에 이르 러 진왕(王)과 침상을 같이하고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되자, 그 녀는 자신의 눈물을 후회했다. 어떻게 내가 죽은 사람들이 처음 에는 살기를 바랐음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는가?
꿈속에서 잔치를 연 사람이 아침에 깨서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고, 꿈속에서 울부짖으며 눈물 흘리던 사람이 아침에 깨서 새벽에 사냥을 즐긴다.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자신이 꿈꾸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꿈꾸고 있으면서 꿈속의 꿈을 해몽하기도 한다. 우리는 깨어나서야 자신이 꿈꾸고 있었음을 안다. 단지 크게 깨어날 때만 우리는 큰 꿈을 꾸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렇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이 깨어 있다고 생각하고 분명하 게 아는 듯 "왕이구나! 목축민이구나!"라고 말하는데, 고루하기만 하구나! 「제물론」

- 조릉의 수렵 금지 구역 근처에서 노닐고 있을 때, 장주(莊)는 남쪽에서 방금 날아온 기이한 까치를 보았다. 날개폭이 일곱 자 이고 눈 크기가 한 치나 되는 이 까치는 장주의 이마를 스치듯 지나가 밤나무 숲에 앉았다.
장주는 말했다. "이 새는 무슨 새인가! 큰 날개로 날지도 못 하고, 큰 눈으로 나를 보지도 못하는구나!"
장주는 자신의 옷자락을 걷고 밤나무 숲으로 걸음을 재촉하 며 석궁으로 그 새를 겨냥했다. 그때 그는 매미 한 마리를 목도 했는데, 그 매미는 방금 아름다운 그늘을 발견해 그 자신을 잊 고 있었다. 사마귀 한 마리가 앞발을 들고 그 매미를 낚아채려 했는데, 그 사마귀도 얻을 것을 기대하며 자신이 드러났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 기이한 까치도 그 사마귀를 뒤따르며 이롭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인데, 그 까치도 이익을 기대하며 자신의 실제 상황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장주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말했다. “아! 사물들은 본질적 으로 서로 연루되어, 하나의 종류가 다른 종류를 부르는구나!" 장주가 석궁을 던지고 숲에서 되돌아 나오는데 사냥터 관리 인이 그에게 욕하며 달려왔다. 장주는 집으로 돌아와 사흘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자 인저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최근 무엇 때문 에 이리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신 겁니까?"
장주가 대답했다. “지금까지 나는 드러난 것을 지키며 나자 신을 잊으려 했고, 혼탁한 물을 보며 맑은 연못에 매료되어 있 었다. 게다가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이미 '그 사회에 들어가서는 그곳의 규칙을 따르라'고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얼마 전 조릉에서 노닐 때 나는 나 자신을 잊었다. 기이한 까치가 이마를 스치고 날아들었을 때 나는 밤나무 숲에서 노닐며 나의 실제 상황을 잊었다. 아니나 다를까, 밤나무 숲을 지키던 사냥터 관리인은 나를 범죄자로 여겼다. 이것이 내가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이유다." 「산목」

- 우연히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새끼 돼지들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잠시 후 새끼들은 놀라 눈망울을 굴리며 모두 어 미를 버리고 달아났다. 그 새끼들은 어미에게서 자신을 보지 못 했을 뿐이고, 어미에게서 유를 얻지 못했을 뿐이기 때문이 다. 새끼들이 자기 어미를 사랑하는 것은 어미라는 형체가 아니 라 그 형체를 움직이도록 한 것이다. (...)
인기지리무신(趺支離無賑)은 위나라 영공에게 유세를 했다. 영공은 그를 너무나 좋아하게 되어 정상적인 사람을 보면 오히 려 그들의 다리가 너무 앙상해 보였다. 옹앙대영(大)은 제 나라 환공에게 유세를 했다. 환공은 그를 너무나 좋아하게 되 어 정상적인 사람을 보면 오히려 그들의 목이 너무 앙상해 보였 다. 그러므로 그 매력이 월등하다면 그 형체는 잊게 되는 법이 다. 그런데 사람들은 잊어야 할 것은 잊지 못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는다. 이것이 바로 '진짜 잊음'이라고 말한다. 「덕충부」
- 영공이나 환공은 사실 비범한 군주였습니다. 억압의 피라미드 그 최고 정점에 있었고 최상의 허영을 과시하던 두 사람은 억압체제와 허영의 논리에 깊은 환멸을 느꼈습니다. 궁궐의 모 든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는 척할 뿐 그 누구도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없고, 모든 관료들이 자신을 존경하는 척할 뿐 그 누구도 자신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 어 두 군주는 자신도 여자를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사랑하는 척 하고, 신하를 그 쓸모 있음 때문에 아끼는 척하고 있다는 걸 압 니다. 권력과 부가 사라지면 이 모든 것들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겁니다. 영공과 환공은 이런 비범한 자각이 있었기에 지푸 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구나 가까이하기를 꺼리던 두 불구 자를 만났던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배와 복종과는 무관한 사 랑의 관계, 허영에서 벗어난 기쁨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성공 합니다. 자신이 금관과 곤룡포를 빼앗겨도, 심지어 권좌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팔이나 다리가 잘려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만 날 수 있는 사랑의 짝을 찾은 겁니다. 그 짝과 함께할 때 영공이 나 환공은 더 이상 군주일 수도 없습니다. 권력과 부가 아니라 오로지 사랑으로만 교환되는 관계에 돌입했으니까요. 새끼 돼 지가 어미 품에서 젖을 빨다가 편히 잠들고, 어미가 그런 새끼 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연상됩니다. 새끼 돼지 이야 기를 마무리하며 장자는 "그 매력이 월등하다면 그 형체는 잊 게 되는 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말해도 좋을 듯합니다. "그 형체를 잊게 되었을 때 우리는 타자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 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억압사회가 각인시킨 시각 지 배적인 사유, 억압사회를 유지하는 시각 지배적인 삶을 극복하 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 자사, 자(子), 자려, 자래, 이렇게 네 사람 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말했다. “누가 없음을 머리로, 삶을 척추로, 그리고 죽음을 꽁무니로 생각할 수 있는가! 누가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이 한 몸이라는 걸 아는가! 나는 이런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다."
네 사람은 서로 쳐다보고 미소를 지으며, 마음에 거슬리는 것 이 없어 마침내 서로 친구가 되었다. 자여가 병이 들자 자사가 병문안을 왔다.
자여가 말했다. “위대하구나! 저 사물의 만듦이 나를 이렇게 뒤틀리게 만드는구나! 구부러져 등이 튀어나오고 오장이 위로 향하며 턱이 배꼽에 숨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아졌고 목뼈가 하늘을 가리키니, 음양의 기운이 모두 뒤죽박죽이구나!"
자여의 마음은 편안하여 아무런 일도 없는 듯했다. 자여는 비틀거리며 방 밖으로 나가 우물에 자신을 비춰보며 말했다. “아! 저 사물의 만듦이 또 나를 계속 뒤틀리게 만들려 하는구나!"
그러자 자사가 말했다. “자네는 그것이 싫은가?"
자여가 대답했다. "아니, 내가 무엇이 싫겠는가! 내 왼팔을 차츰차츰 닭으로 변화시키면 나는 그에 따라 새벽을 알리는 소 리를 내겠네. 내 오른팔을 차츰차츰 석궁으로 변화시키면 나는 그에 따라 구운 올빼미를 기다리겠네. 내 엉덩이를 차츰차츰수 레로 그리고 나의 신(神)을 말로 변화시키면, 나는 그에 따라 그 것을 탈 것이니 다시 마구를 채울 필요가 있겠는가! 또한 얻는 것도 때에 맞은 것이고, 잃은 것도 따라야 할 것이네. 때에 편안 해하고 따름에 머물러야 슬픔과 즐거움이 개입할 수 없는 법이 지. 이것이 옛사람들이 '매달린 데서 풀려남'이라고 말했 던 것이네. 그런데도 스스로 풀려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물 들이 더욱 얽어매게 될 거야. 게다가 사물은 자연을 이기지 못한 지 오래인데, 내가 또 무엇을 싫어하겠는가!"
얼마 후 자래가 병에 걸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죽으려 할 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둘러앉아 울고 있었다.
자려가 가서 안부를 묻고는 말했다. "쉿! 비키세요! 변화 를 놀라게 하지 마세요!" 자려가 문에 기대어 말했다. "위대 하구나! 만물의 만듦이여! 또 그대를 무엇으로 만들려고 하는 가? 그대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는가? 그대를 쥐의 간으로 만 들려고 하는가? 그대를 벌레의 다리로 만들려고 하는가?"
자래가 말했다. "부모가 명을 내리면 동서남북 어디에 있든 자식은 따라야 해. 음양은 사람에게 단지 부모일 뿐만이 아니 네. 그것이 나를 죽음에 가깝게 하는데, 만약 내가 따르지 않는 다면 나는 바로 무례한 자가 될 뿐이니, 음양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거대한 대지는 형체를 주어 나를 싣고, 삶을 주어 나를 일하게 하고,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하고, 죽음으로 나를 쉬 게 한다네. 그래서 나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 바로 나의 죽음을 긍정하는 이유네. 지금 위대한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녹이고 있 는데, 쇠붙이가 뛰어 올라와 '나는 장차 반드시 명검 막야가 될 거야!'라고 말한다면, 위대한 대장장이는 반드시 상서롭지 못한 쇠붙이라고 생각할 것이네. 이제 한번 인간의 형체를 빌렸으면 서도 '사람일 뿐이야, 사람으로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면, 저 변화의 만듦도 반드시 상서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지금 한번 하늘과 땅을 거대한 용광로로 생각하고 변화의 만듦 을 위대한 대장장이로 생각한다면, 어디로 간들 좋지 않겠는 가! 편하게 잠들고 새롭게 깨어날 뿐이네."
- 자래의 이야기에는 막야()라는 명검이 등장합니다. 막 야는 간장(醬)이라는 검과 함께 춘추시대를 상징하는 명검입 니다. 간장과 막야라는 부부 대장장이, 즉 남편 간장이 만든 검 이 간장이고, 아내 막야가 만든 검이 막야입니다. 간장이든 막 야든 이것은 쇠붙이가 꿈꿀 수 있는 최상의 이상형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막야가 인간의 꿈, 즉 권력자, 부자, 미인 등을 상징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자래의 대서사시에서 대장장 이 비유는 매력적입니다. 금붙이도 있음이고, 용광로에 있는 쇳 물도 있음이고, 쟁기도 있음이고, 명검 막야도 있음입니다. 대장 간에서는 이렇게 찬란한 생성의 드라마가 벌어집니다. 명검 막 야는 소중한 것이니 쇠붙이들은 이에 집착할 겁니다. 쇳물에서 막야가 되면 기쁘고, 막야가 녹아 쇳물이 되면 슬플 겁니다. 그러나 생성은 이런 기쁨과 슬픔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쇳물은 막 야의 부재로 오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쇳물은 막야만큼 긍정해 야 할 생성의 결과물이니, 있음으로 긍정해야만 합니다. 대장장 이 비유는 죽음을 부재로 이해하며 절망하는 우리 인간의 편협 함을 바로 부수어버립니다. "이제 한번 인간의 형체를 빌렸으면 서도 '사람일 뿐이야, 사람으로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면, 저변 화의 만듦도 반드시 상서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건 강함, 젊음, 미모 등에 매달려 변화와 생성을 부정하는 우리에게 이만한 죽비도 없을 겁니다. 마침내 자래의 대서사시가 정점에 이르면서 현해 이야기는 엄청난 감동과 함께 마무리됩니다. "지 금 한번 하늘과 땅을 거대한 용광로로 생각하고 변화의 만듦을 위대한 대장장이로 생각한다면, 어디로 간들 좋지 않겠는가!"
- 하늘과 땅 사이, 이 세계는 있 음으로 충만한 생성의 장입니다. 여기에 없음이나 부재는 끼어 들 틈이 없습니다. 쟁기가 녹아 쇳물이 되고, 쇳물이 명검이 되 고, 명검이 녹아 쇳물이 됩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만 들어질까요? 그것이 무엇이든 부재의 느낌이 없이 긍정해야 할 겁니다. 녹는 과정도 긍정하고, 형체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긍정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래는 마지막으로 여섯 글자의 유언을 자 려에게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성연매(成然), 거연각(然覺)." "편하게 잠들고 새롭게 깨어날 뿐이네." 이렇게 자려와 자래 두 사람, 아니 자사, 자여, 자려 그리고 자래 네 사람은 영원히 헤어 질 수 없는 친구가 되는 시험을 무사히 통과합니다.

- 공수가 선을 그리면 양각기와 곱자에 부합했고, 그의 손 가락은 사물에 따라 변할 뿐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았다. 그러므 로 그의 영대(臺)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만 막혀 있지는 않았 던 것이다. 우리가 발을 잊는 것은 신발에 딱 맞은 것이고, 허리 를 잊는 것은 허리띠에 딱 맞은 것이다. 앎에서 옳고 그름을 잊 는 것은 마음에 딱 맞은 것이고, 내면의 변화도 없고 외부 사람 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마주친 사태에 딱 맞은 것이다. 처음 으로 딱 맞았지만 일찍이 딱 맞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느끼는 것은 딱 맞음의 잊음에 딱 맞은 것이다. 「달생」
- 윤편 이야기나 포정 이야기를 통해 장자는 '육체적 이성'이나 '몸적 마음'을 강조합니다. 장자는 몸적 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 다. 그가 비우고 잃어버리고[] 잊으려고 하는 것은 몸 과 분리된 마음, 몸과 독립된 마음, 실체로 이해된 마음입니다. 정치철학적으로 장자의 이런 입장은 정신노동의 독립성과 우 월성에 근거한 억압체제에 대한 비판과 공명합니다. 어쨌든 장 자는 손과 하나가 되는 마음, 그리고 끌이나 칼과 하나가 되는 마음, 나아가 마침내 나무토막이나 소의 고유한 살결에 들어가 노니는 마음을 복원하려고 합니다. 전국시대에 소인이라 불리 던 피지배계급이 간신히 보존하고 있던 마음입니다. '허(虛)’ ‘상 (喪)' 혹은 '망忘)' 등 개념은 바로 이런 문맥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에만 집중하면 이 세 개념이 무언가 신비하고 초월적인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포정 이 야기에서 장자가 신(神) 개념을 이야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 니다. '허' '상' 혹은 '망' 개념이 가진 부정적 뉘앙스가 낳을 오 해와 착각을 막기 위해 신이라는 긍정적 개념을 제안한 겁니다. 이것이 윤편 이야기나 포정 이야기 외에도 삶의 달인을 다룬 이 야기들이 『장자에 많은 이유일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실체로 이해된 마음을 부정하고 몸적 마음을 긍정하려는 장자의 속내 와 공명하는 철학자가 동아시아가 아니라 서양에서, 그것도 장자 사후 2,000여 년이 지난 뒤에 뜬금없이 탄생한다는 사실입 니다. 바로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입니다.
『도덕의 계보학(Zur Genealogie der Moral)』에서 니체는 장자의 '망' 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말을 우리에게 들려줍니 다.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이런 저지 장치가 파손되거나 기능이 멈춘 인간 은 소화불량 환자에 비교될 수 있다. (...) 이런 망각이 필요한 동 물에게 망각이란 하나의 힘, 강건한 건강의 한 형식을 나타내지 만, 이 동물은 이제 그 반대 능력, 즉 (...) 망각을 제거하는 기억 을 길렀던 것이다." 장자가 들었다면 박수를 쳤을 만한 인상적 인 구절입니다. 특히 소화불량은 장자도 부러워했을 매력적인 비유입니다. 니체에게 있어 망각은 소화가 양호하게 되는 상태 에, 그리고 반대로 기억은 소화불량 상태에 비유됩니다. 
-  장자는 발과 허리라는 근사한 비유를 하나 던진 다음 공수의 경지를, 혹은 그 경지가 시사하는 교훈을 '망' 과 '적'이라는 개념으로 일반화합니다. "앎에서 옳고 그름을 잊 는 것은 마음에 딱 맞은 것이고, 내면의 변화도 없고 외부 사람 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마주친 사태에 딱 맞은 것"이라고 하 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내 마음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러니까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옳고 그 름을 따지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것은 그 사람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또한 나에게 딱 맞는 어 떤 장소에 있게 되었을 때, 우리의 내면은 안정될 뿐만 아니라 그곳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에도 휘둘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떤 장소에 있을 때 내면의 동요가 일어나거나 다른 사람의 평 가에 휘둘린다면, 우리는 딱 맞는 장소에 있지 않은 셈이죠.
- 공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장자는 이야기합니다. "처음으로 딱 맞았지만 일찍이 딱 맞지 않은 적 이 없었다고 느끼는 것은 딱 맞음의 잊음에 딱 맞은 것이다." 이 사람과 딱 맞는 순간, 이 음악과 딱 맞는 순간, 혹은 이 장소와 딱 맞는 순간, 우리는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 사람과, 이 음악 과, 그리고 이 장소와 딱 맞았었다고 느껴야 한다는 겁니다. 항 상 딱 맞았었다고 느껴야 "딱 맞는다"는 생각, 딱 맞는 대상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마음이 싹트지 않을 테니까요. '망'과 '적'은 대상화하는 순간 무력해진다는 걸 알 정도로 영민한 장 자입니다.

- 말은 숨을 쉬는 것만이 아니고, 말하는 자에게는 말이 있다. 그 말하려는 것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 실제 말이 있는 것 인가? 아니면 애초에 어떤 말도 있지 않은 것인가? 만일 이런 말이 새들의 지저킴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구별 의 증거는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길)은 무엇에 가려져 진짜와 가짜가 있게 되는가? 말)은 무엇에 가려져 옳고 그름이 있게 되는가? 길은 어디에 간들 있 지 않겠는가? 말은 어디에 있든 허용되지 않겠는가? 길은 작은 이루어짐에서 가려지고, 말은 화려한 꽃에서 가려진다. (...) 허 용된다고 해서 허용되는 것이고,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허용 되지 않는 것이다. 길은 걸어서 이루어지고, 사물은 그렇게 불 러서 그런 것이다. 어떻게 그런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 이다. 어떻게 그렇지 않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것이다. 사물에는 원래 그렇다고 여길 수 있는 측면이 있 고, 사물에는 원래 허용된다고 여길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어떤 사물도 그렇지 않은 것은 없고, 어떤 사물도 허용되지 않은 것 은 없다. 「제물론」

- 그대는 저 사마귀를 모르지는 않겠지? 사마귀는 앞발을 사납 게 치켜들고 흔들며 수레바퀴 자국에 서서 수레와 맞서려고 하 네. 자신이 그 수레를 감당할 수 없음을 모르는 것이지. (...)
그대는 저 호랑이 기르는 사람을 모르지는 않겠지? 그는 감 히 호랑이에게 살아 있는 동물을 먹이로 주지는 않는다네. 호랑 이가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이다 드러내는 성냄 때문이지. 또 그 는 감히 호랑이에게 동물을 통째 먹이로 주지는 않는다네. 호랑 이가 그것을 찢어발기다 드러내는 성냄 때문이네. 호랑이 기르 는 사람은 호랑이가 배고프거나 배부를 경우에 때를 맞추어 호 랑이의 성냄을 조절하지. 호랑이가 인간과 유가 다른데도 자신을 기르는 사람에게 고분고분한 이유는 그 사람이 호랑이 의 기질을 따랐기 때문이고, 호랑이가 자신을 기르는 사람을 물 어 죽였다면 그 사람이 호랑이의 기질을 거슬렀기 때문이네.
저 말을 아끼는 사람은 광주리로 똥을 받고 대합조개 껍데기 로 오줌을 받아준다네. 마침 파리나 모기가 말 등에 들러붙으려 는 것을 보고 불시에 말 등을 때리면, 말은 재갈을 부수고 말을 아끼는 사람의 머리를 발로 차고 그의 가슴을 걷어차게 되네. 아끼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아끼는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던 셈 이네. 「인간세」
- 자는 세 우화로 구성된 당랑 이야기 안에 자기 고뇌 혹 은 자신의 문제의식을 멋지게 새겨 넣습니다. 당랑 이야기는 먼 저 사마귀 우화로 시작됩니다. '당랑거철(鄭拒轍)'이라는 유명 한 고사성어의 출전이 되는 우화입니다. 사마귀 한 마리가 수 레와 맞짱을 뜨려고 수레바퀴 자국에 서 있는 상황입니다. 정 확히 말해 사마귀는 수레의 진행을 막으려고 했던 겁니다. 얼 마 지나지 않아 수레가 그 바퀴 자국을 따라 굉음을 울리며 육 박해 들어옵니다. 그러나 사마귀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수레가 지나간 뒤 바퀴 자국에는 사마귀 한 마리가 짓뭉개져 있을 테니까요. 사마귀 우화를 마무리하면서 장자는 사마귀가 자신이 그 수레를 감당할 수 없음을 몰랐던" 거라고 논평합니다. 당랑거철이라는 고사성어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에 저항하는 어리석음의 비유로 통용되는 이유가 짐작이 됩니 다. 하지만 사마귀 우화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 실마리는 수레를 뜻하는 '거)'라는 글자에 있습니다. 기원 전 1200년경 중국 대륙에는 청동기 시절 국가의 힘과 지배계급 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전거(戰車)가 중앙유라시아로부터 수입됩 니다. 상나라 시절 이야기입니다. 상나라 시절 고분에서 부장품 으로 전거가 출토되는 것이 그 증거일 겁니다. 사마귀가 맞선 수 레가 국가기구를 상징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 어디선가 "역사의 수레바퀴는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을 들어봤 을 겁니다. 청동기 시대와 함께 시작된 국가는 말이 끄는 전거 와 함께 대지를 질주합니다. 인간을 포함해 동물종 모두가 공유 했던 대지는 이제 인간이 독점하는, 특히 소수 지배계급이 독점 하는 곳으로 쪼개집니다. 영토국가로의 추세는 이제 누구도 거 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겁니다. 강자와 약자는 있어도 지배와 복종이 없었던 대지는 국가의 탄생과 함께 점점 활기를 잃어가 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 수레바퀴 자국이 대지에 더 깊게 새겨 지기 전에,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사마귀 로 상징되는 사람들이 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렬한 죽음이 반복되자 생각을 전환한 사마귀들이 생깁니다. 역사의 수레를 막거나 되돌릴 수 없다면, 수레에 올라타 말고삐를 잡겠다는 발상의 전환입니다. 전거의 폭주를 막으려고 장렬한 죽음을 각오하는 방법이 아니라 전거에 올라타 전거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 하자는 방법입니다. 국가에 맞서지 말고 국가를 이용하자는 수 정주의자의 길은 이렇게 열립니다. 사마귀 우화에 이어지는 두 우화로 장자가 숙고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호랑이 기르는 사람[養虎 우화와 '말을 아끼는 사람]'우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인공의 성격이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첫 번 째 우화의 주인공은 사마귀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우화의 주인 공은 사람입니다. 영토국가를 상징하는 전거에 올라타는 순간 사마귀가 사람으로 변신한다는 건 무척 인상적입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전거에 맞서는 존재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문명에 반 하는 야만, 인간에 반하는 짐승, 혹은 지혜에 반하는 우매함으로 표상됩니다. 수레에 올라탄 사마귀가 문명화된 인간으로 표상 되는 이유입니다. 설령 그들이 여전히 전거에 불만을 품고 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 '위시'는 '가느다란 줄기'와 '굵은 기둥' '나병에 걸린 추 너'와 '서시 같은 미녀' 등을 구별하는 것이다. 사물이 아무리 엉 뚱하고 이상야릇한 것일지라도, 길로 그것과 소통하여 하나가 될 수 있다. '쪼개짐'이 있으면 '완전함'도 있고, '완전함'이 있 으면 '망가짐'도 있다. 사물에 내가 규정한 '완전함'과 '망가짐' 이 없어야 그것과 다시 소통해서 하나가 될 수 있다. 오직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소통해서 하나가 될 줄 안다.
'위시'를 쓰지 않고 그것을 '일상'에 깃들도록 해야 한다. '일상'이란 '사용(用)'을, '사용'이란 '소통'을, 그리고 '소통' 이란 바로 '얻음(得)'을 말한다. 이런 얻음에 이르면 거의 다 온 것이다. '인시(因)'할 뿐이지만 그러면서도 왜 그런 줄 모르는 것, 그것을 길이라고 한다. 「제물론」
- 장자는 "사물이 아무리 엉뚱하고 이상야릇한 것일지라도, 길로 그것과 소통하여 하나가 된다"고 말합니다. "엉뚱하고 이상 야릇한 것"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열등한 것이자 쓸모가 없는 것들입니다. 당연히 그것은 관계할 가치가 없고 멀리해야 할 것들이죠. 그러나 비범한 영혼 에게 그것은 충분히 쓸모가 있고 매력적인 것으로 긍정될 수 있 습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그 사람이나 그 사물로 발걸 음을 옮기게 될 겁니다. 그 걸어감이 반복되면 당연히 길이 만 들어지겠죠. "엉뚱하고 이상야릇한 것"과 소통하려면 그것이 엉 뚱하고 이상야릇한 것으로 보여서는 안 됩니다. 장자가 "사물에 내가 규정한 '완전함'과 '망가짐'이 없어야 그것과 다시 소통해 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가느다란 줄기라고 멀리하고, 추녀라고 멀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가느다란 줄기도 근사한 건축 재료가 되고, 추녀도 매력적인 짝이 될 수 있으니까요. 바로 이 순간 가느다란 줄기는 가느다란 줄기가 아니라 굵은 기둥보다 더 훌륭한 건축 재료가 되고, 추 녀는 더 이상 추녀가 아니라 서시 같은 미녀도 아쉽지 않은 소중 한 애인이 됩니다. '위시'와 날카롭게 구별되는 '인시' 개념은 바 로 이 문맥에서 읽혀야 합니다. 위시에서 우리 사유가 원인이고 외부 사물이 결과였다면, 인시에서 그 관계가 뒤집힙니다. 인시 에서는 외부 사물이 원인이고 우리 사유는 그 결과가 되니까요. 그래서 인시 개념에서 '인(因)'이라는 글자가 명사로는 '원인'이 라는 뜻을 가진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닙니다. 가느다란 줄기만 있더라도 그것을 절대적 원인으로 삼아 집을 짓는 것, 추 녀만 있더라도 그 여자를 절대적 원인으로 생각해 사랑을 이루 려는 것, 부족한 식재료만 있더라도 그것을 절대적 원인으로 긍 정해 근사한 요리를 만들려는 것, 바로 이것이 '인시'입니다.
- '이것이라 생각한다'는 뜻의 위시에서 '이것'은 다른 것과 비 교되는 '이것'입니다. 반면 '이것에 따른다'는 뜻의 인시에서 '이 것'은 비교 대상이 없는 '이것'입니다. 위시의 '시'와 인시의 '시' 사이에는 이렇게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사실, 바로 여기 에 장자 사유의 섬세함이 자리를 잡습니다. "위시'를 쓰지 않 고 그것을 '일상'에 깃들도록 해야 한다는 장자의 주장은 바 로 이 간극을 건너뛰라는 요구였던 겁니다. 손약 이야기를 떠올 려보세요. 손이 트지 않게 하는 똑같은 약이지만, 송나라 사람 의 일상에서 그 약은 겨울에 빨래하는 데 사용되었고 오나라 사 람들의 일상에서는 수전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장자는 “일 상'이란 '사용'을, '사용'이란 '소통'을, 그리고 '소통'이란 바로 '얻음[得]'을 말한다. 이런 얻음에 이르면 거의 다 온 것"이라고 말을 이었던 겁니다.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이 따뜻한 오 나라에서는 쓸모가 없으리라고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장자 의 말대로 우리는 "위시'를 쓰지 않고 그것을 '일상'에 깃들 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오나라에서도 손이 트지 않게 하 는 약이 버려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얻게 될 테니까요. 위시에 서 인시로의 전환, 혹은 '비교되는 이것'이 '비교 불가능한 이것' 으로의 전환은 이렇게도 중요합니다. 바로 이 순간 사유의 세계 는 삶의 세계로 열립니다. 그래서 장자는 위시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인시)'할 뿐이지만 그러면서도 왜 그런 줄 모르는 것, 그것을 길이라고 한다"고 강조했던 겁니다. 내 앞에 주어진 타자들을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것으로, 매력적이고 사랑스러 운 것으로 긍정하라는 것! 그래야 우리는 타자에 가까이 가려는 걸음을 자기도 모르게 내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타자 에만 적용되는 가르침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것과 비교하지 말고 절대적으 로 긍정해야 합니다. "나는 머리가 나빠." "나는 못생겼어." "나는 스펙이 부족해." 이것도 위시니까요.

- 노(魯)나라 군주를 만났는데, 그에게 근심하는 낯빛이 있었다.
시남 선생이 말했다. "그대는 어찌 근심스러운 낯빛이십니까?" 노나라 군주가 말했다. "선대 천자들의 통치술을 배우고 선 대 군주들의 유업을 닦아 귀신을 공경하고 현인을 존중하고 배 운 것을 몸소 실천하기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지만, 우환을 면하 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남 선생이 말했다. "우환을 없애는 군주의 기술은 얕습니 다. 풍성한 털의 여우와 아름다운 털의 표범이 숲속에 살면서 바위굴에 숨어 있는 것은 그의 고요함입니다. 밤에 움직이고 낮 에는 머무는 것은 그의 경계함입니다. 비록 배고프고 목마를지 라도 숨어 있다 멀리 강과 호숫가에서 먹이를 구하는 것은 그의 안정됨입니다. 그런데도 그물과 덫의 우환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다만 그들의 가죽이 재난을 부른 겁니다. 지금 군주께 노나라는 그 가죽과 같은 것뿐 이겠습니까? 바라건대 군주께서도 육체를 도려내 가죽을 벗어 버리며 마음을 씻어 욕망을 없애버려 아무도 없는 들판에 노닐 도록 하십시오. 월나라 남쪽에 건덕의 국가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순진하고 소박하며 사사로움이 적고 욕망도 드뭅니다. 일할 줄은 알지만 저장할 줄은 모르고 남에게 무엇을 주고도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의무가 어떻게 구분되 는지, 예식은 어떻게 수행하는지도 모릅니다. 멋대로 부주의하 게 행동하는 것 같지만, 모든 경우에 품격이 있습니다. 살아서는 즐겁고 죽어서는 풍장을 좋아합니다. 바라건대 군주께서도 국가 를 떠나 사회를 버리고 길을 친구삼아 떠나십시오."
노나라 군주가 말했다. "그곳에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고 또 강과 산으로 막혔는데, 내게는 수레도 배도 없으니 어찌하면 좋 을까요?"
시남 선생이 말했다. “주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머 물지 않은 것을 배와 수레로 삼으십시오."
노나라 군주가 말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아득히 멀고 아 무도 없는데 내가 누구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겁니까? 내게는 양 식도 없어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그곳에 도달하 겠습니까?"
시남 선생이 말했다. "비용을 적게 쓰고 욕망을 줄이면 비록 양식이 없더라도 풍족할 수 있습니다. 군주께서 강을 건너 바다 에 떠가시면, 되돌아보아 바닷가가 보이지 않게 되고 더 나아가 면 배가 어디에 이를지 모르게 될 겁니다. 군주를 전송하는 이 들이 모두 바닷가에서 되돌아갈 때쯤, 군주께서는 이로부터 더 멀리 나아가셨을 겁니다. 타인을 소유한 자는 그것에 연루되고, 타인에 소유된 자는 근심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임금은 타 인을 소유하거나 혹은 타인에 소유되지 않으려 했던 겁니다. 바 라건대 군주께서는 연루됨과 근심을 제거하고 홀로 길을 따라 크게 광막한 국가에서 노니십시오." 「산목」
- 크리스토퍼 벡위드(Christopher Beckwith, 1945-)는 주저 중앙유 라시아 세계사(Empires of the Silk Road)』에서 말합니다. "유목민들 은 거대 농업 국가들의 농경민에 비해서 대개는 훨씬 쉽게 먹거 리를 구했고, 훨씬 편하게, 훨씬 오래 살았다. 중국 지역으로부 터 동쪽 스텝 지역으로 유출되는 인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들은 주저 없이 초원의 삶이 더 낫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로 많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훈족이나 다른 중앙유라시아 민 족에게 넘어갔을 때, 그들이 고향에 있을 때보다 더 잘 살았고 더 좋은 대접을 받았다." 여기서 위드가 주목하지 못하는 것 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이 물질적 이익 때문에 유목생활에 뛰어 드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복종을 강요하는 체제를 거 부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내하고 유목생활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중앙유라시아에는 많았기 때문입니다. 스키타이의 길이 아니 라 반대의 길을 만들려는 사람들, 습격과 약탈의 도구가 아니라 탈주와 자유의 동반자로 말을 탔던 사람들입니다. 중앙유라시 아의 팽팽한 긴장, 스키타이의 삶과 진정한 유목민의 삶 사이의 긴장은 중국 대륙까지 파장을 미칩니다. 잊지 마세요. 중앙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초원길이나 사막 길은 실크 등 사치품들만 오 갔던 것이 아닙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기르는 방법도 오갔 던 길, 즉 국가의 길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동시에 그 길을 통해 유목국가나 유목제국마저 벗어던지려는 자유인들의 고뇌 와 꿈도 함께 들어오게 됩니다. 장자가 천하의 북쪽에서 자유의 공기를 느낀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기원전 300년경 중국 전국시대에 살았던 그는 영역을 넓혀가려는 영토국가의 야욕에 맞서고자 했던 거의 유일한 철학자였으니까요.
- "우환을 없애는 군주의 기술은 얕다"고 평가하며, 시남 선생 은 노나라 군주에게 우환을 없애는 근본적인 방법을 제안합니 다. 그 핵심은 군주의 지위를 버리라는 것, 지배와 피지배로 구 성된 국가기구를 벗어나라는 겁니다.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 기 위해 시남 선생은 "풍성한 털의 여우와 아름다운 털의 표범" 을 비유로 듭니다. 아무리 조심하고 경계해도 여우나 표범은 인 간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들의 털가죽 때문입니다. 사람 들은 값비싼 털가죽을 얻기 위해 여우나 표범을 사냥합니다. 결 국 여우나 표범은 자기 털가죽을 벗겨내거나 보잘것없게 훼손해야 합니다. 물론 여우나 표범이 그렇게 할 리 없습니다. 마찬 가지로 노나라 군주가 국가를 떠나거나 군주라는 지위를 버리 는 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여우나 표범이 자기 가죽을 스 스로 도려내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만큼 힘든 일일 겁니다. 그러 나 시남 선생이 제안한 근본 대책은 정확합니다. 국가라는 억압 사회가 작동하면 누구나 군주가 되려는 본능을 가지게 됩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누구나 CEO나 대주주가 되려는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시남 선생의 말대로 "노나라는 여우나 표 범의 가죽과 같은 것뿐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귀한 겁니다. 군 주의 자리는 모든 허영과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희소한 자리니 까요. 시남 선생은 노나라 군주에게 군주라는 지위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노나라 군주는 다른 국가나 혹은 내부 경쟁자 들의 사냥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육체를 도려내 가죽을 벗어버리며 마음을 씻어 욕망을 없애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시남 선생은 노나라 군주를 격려하기 위해 저 남쪽 멀리에 있는 자유로운 공동체, 지배와 피지배라는 위계질서가 작동하지 않는 공동체를 소개합니다.
바로 '건덕의 국가 [德之國]'로 불리는 마을입니다. '건덕 德)'은 매력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국가로 번역 한 '국(國)'은 국가기구를 상징하기보다 상형문자 전통대로 목 책 등 울타리로 둘러싸인 마을을 가리킨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 니다. 시남 선생은 담담히 건덕지국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합 니다. "일할 줄은 알지만 저장할 줄은 모르고 남에게 무엇을 주고도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의무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예 식은 어떻게 수행하는지도 모릅니다. 멋대로 부주의하게 행동 하는 것 같지만, 모든 경우에 품격이 있습니다. 살아서는 즐겁 고 죽어서는 풍장을 좋아합니다." 
- 라틴어 코무니타스 (communitas)의 어원을 추적하면, 우리는 이에 대한 증거를 갖게 된다. 이 용어는 다른 사람에 대한 '선물'이나 '의무'를 의미하는 무누스(munus)에서 유래한 말이다." 소수가 부나 권력을 독점하 지 않은 곳, 커먼과 무누스가 살아 있는 곳, 지배계급이 없으니 그들이 강요한 의무나 예식이 무력화되는 곳, 대다수가 비굴하 지 않고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는 곳, 지배와 복종에서 자유롭기 에 삶이 누구나 즐거운 곳, 피라미드나 고분을 만들어 지배자의 위엄을 과시하지 않는 곳, 새나 짐승 혹은 벌레에게 시신을 맡 기는 곳. 바로 이곳이 코무니타스로서 매력을 세우는 마을입니 다. 노나라 군주가 이 코무니타스에 살게 되면, 그의 모든 고민 이 봄눈 녹듯 사라지리라는 건 분명합니다. 
- "타인을 소유한 자는 그것에 연루되고, 타인에 소유된 자는 근심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임금은 타인을 소유하거나 혹은 타인에 소유되지 않으려 했던 겁니다." 누구도 지배하려 하지 말고,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말라! 지배와 복종이 없는 코 무니타스를 구성하라! 불행히도 시남 선생과 장자의 외침은 공 허하게 흩어집니다. 대붕이 훌쩍 날아갔던 그 남쪽 바다, 그 끝 은 이렇게 외롭게 방치되고 맙니다. 떠나면 죽을 것 같기에 떠 나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 장자의 안타까움은 이렇 게 깊어만 갑니다. 대붕의 한숨입니다.

- 흔적을 끊기는 쉽지만, 땅을 밟지 않기란 어려운 법이네.
인위적인 것에 의해 부려지는 사람은 속이기 쉽지만, 자연적 인 것에 의해 부려지는 사람은 속이기 어렵지.
날개가 있는 것이 난다는 것은 들어보았겠지만, 날개가 없이 난다는 것은 아직 듣지 못했을 거야.
앎으로 안다는 것은 들어보았겠지만, 알지 못함으로 안다는 것도 듣지 못했을 거고.
저텅 빈 곳을 보게! 빈방에서 밝음이 생기고, 상서로움은 고요함에 머물고 있네.
저 고요하지 않은 상태, 앉아서 달린다고 말하지.
이목을 안으로 통하게 하고 마음에서 앎을 쫓아낸다면, 귀신도 찾아와 깃들 텐데 하물며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인간세」
-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걸어야 하는 지를 장자가 명확히 보여주는 이야기가 「인간세」 편에 있습니 다. 바로 '날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날개 비유 외에도 그 에 버금가는 시적 표현들로 충만합니다. 특히 걸어가는 일이고 독하리라는 느낌을 바로잡으려는 빈방]의 비유는 매력적입 니다. 빈방의 비유로 장자는 우리가 타자에게 가는 과정이 사실 타자가 내게로 오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사실 이 것은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도 아는 일입니다. 멀리 있는 미루나 무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면 그 나무도 그만큼 조금씩 조금씩 내 게 다가올 테니까요. 반면 카프카의 성처럼 우리가 무언가에 다 가가면 갈수록 그것들로부터 멀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지 않아서 생기는 일입니다. 이는 걸어가 지 않은 경우보다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아내와 남편과, 애인과, 아들과 딸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관계가 호 전되기는커녕 악화되는 비극적인 상황이지요. 어딘가에 혹은 무언가에 가고 있지만 멀어지기만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걷지 말고 멈추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아주 조금 걸어 보면서 내가 가려는 곳이 내게 다가오는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바로 그 방향입니다. 한 걸음 내가 나아가면 한 걸음 내게 다가 오는 타자! 바로 그 방향으로 우리는 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걸어감과 관련된 이 모든 가능성들! 근사한 시 한 편으로 이 모 든 것을 담아낸 것이 바로 날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시를 음 미하듯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민감하게 이 이야기를 다루어 야 하는 이유입니다.
- 심연을 건너기로 작정한 사람을 다시 떠올려보세요. 그는 가 장 먼저 무엇을 할까요. 이쪽 절벽 끝에서 저쪽 절벽 끝으로 뛰 려면, 혹은 그 도약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지고 있는 짐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무거운 배 낭뿐만 아니라 두꺼운 외투마저 버리고 가벼움과 경쾌함을 얻 어야 합니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심연은, 심연 건너편 저쪽 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네가 내게로 오려면 거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바로 여기서 '날개가 없음'을 뜻하는 '무 익)'과 '알지 못함을 뜻하는 '무지'가 '날개를 없앰'과 '앎을 없앰'이라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의미로 심화됩니다. 날 개나 앎마저 없애야 가벼움을 얻을 수 있다는 장자의 투철함입 니다. '없앰'을 뜻하는 '무)'라는 글자는 곧바로 우리를 '비움' 을 뜻하는 허(虛)라는 글자에 이르게 합니다. "저 텅 빈 곳을 보 게! 빈방에서 밝음이 생기고, 상서로움은 고요함에 머물고 있 네." 이사 경험을 떠올려보세요. 

- 전개지(之)가 주(周)나라 위공(公)을 만났다.
위공이 말했다. "나는 신(腎)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축신과 함께 배웠다는데 어떤 얘기를 들으셨는지요?"
전개지가 말했다. "저는 비를 들고서 뜰 앞에서 시중을 들었 을 뿐이니 스승님으로부터 무엇을 들었겠습니까?"
위공이 말했다. “선생은 너무 겸손하시네요. 나는 듣고 싶습니다."
전개지가 말했다. "저는 스승님께서 '생을 잘하는 사람은 양을 치는 것과 같아서, 그중 뒤처진 놈을 발견하여 채찍질을 하 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걸 듣기는 했습니다."
위공이 말했다. "무슨 뜻인가요?"
전개지가 말했다. "노(魯)나라에 선표(單)라는 사람이 있었 는데, 바위굴 속에 살고 골짜기 물을 마시며 민중들과 이익을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70세가 되어도 어린아 이 같은 안색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행하게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그 호랑이에게 잡아먹혀버렸습니다. 또 장의 毅)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높은 문을 가진 귀족의 집이든 문 대 신발을 사용하는 민중의 집이든 달려가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 다. 그러나 나이 40세에 몸 안의 열병으로 죽어버렸습니다. 선표 는 그의 안을 길렀으나 호랑이가 그의 바깥을 잡아먹어버렸습니 다. 장의는 그의 바깥을 길렀지만 병이 그의 안을 공격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그중 뒤처진 놈을 채찍질하지 않은 겁니다." 「달생」

- '사물 중 저것 아닌 것이 없고, 사물 중 이것 아닌 것이 없다. 스스로를 저것이라고 여기면 (이것은) 드러나지 않고, 스스로를 이것이라고 여기면 (저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저것은 이것으 로부터 나오고, 이것 또한 저것에 따른다고 말한다.'
저것과 이것이 동시에 생긴다는 견해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동시에 생기는 것은 동시에 죽는 것이 고 동시에 죽는 것은 동시에 생긴 것이며, 동시에 허용되는 것은 동시에 허용되지 않는 것이고 동시에 허용되지 않는 것은 동시 에 허용되는 것이다. 옳음을 따르는 것이 그름을 따르는 것이고 그름을 따르는 것이 옳음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저 것과 이것이 동시에 생긴다는 견해를 따르지 않고 사물을 '자연스러움 (天)'에서 비추어 보는데, 이 또한 인시(因是)다.
이것은 또한 저것이고, 저것은 또한 이것이다. 저것 또한 하나 의 시비(是非)고, 이것 또한 하나의 시비다. 그렇다면 저것과 이 것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저것과 이것이 자기 짝을 얻지 않는 경우를 '길의 지도리라고 부른다. 지도리는 처음부터 그 '원의 중앙'을 얻어야 무한한 것에 대응한다. 그렇게 되면 옳음도 하나의 무한이 되고, 그름도 하나의 무한이 된다. 「제물론」
- 문이 닫힐 때 안과 밖은 구 분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문이 열릴 때 안과 밖의 구분 은 해체됩니다. 여기서 문이 문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적 특 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을 여닫는 걸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부드럽게 할 수 있는 근사한 경첩, 바로 지도리, 추樞) 입니다. 그래서 장자의 문 이미지는 지도리 예찬으로 근사하게 마무리됩니다. "저것과 이것이 자기 짝을 얻지 않는 경우를 '길 의 지도리(道樞]'라고 부른다. 지도리는 처음부터 그 '원의 중앙 [中]'을 얻어야 무한한 것에 대응한다." 내가 바깥으로 나갈 수 있고 타자가 내게 들어올 수 있으니, 이쪽과 저쪽이나 이것과 저것, 혹은 이런 대립과 관련된 옳고 그름도 일의적으로 정해 질 수 없습니다. 장자가 "옳음도 하나의 무한이 되고, 그름도 하 나의 무한이 된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나가본 적이 없기에 막 연히 바깥쪽이나 저쪽 혹은 타자라고 상상했던 것들을 어느 꽃, 어느 바람, 어느 여자, 어느 남자, 어느 비바람으로 생생하게 마 주치게 될 겁니다. 타자를 이해하는 길이 문 안쪽에서 바깥쪽으 로 열리는 거죠. 반대 상황도 가능합니다. 문이 만들어졌기에 바 깥쪽의 타자를 안쪽으로 들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바깥 쪽이 안쪽으로 열리는 환대의 길입니다. 그렇지만 타자를 이해 하거나 환대하는 것, 즉 문을 여는 일에만 집중해서는 안 됩니 다. 어쩌면 나를 파괴하려는 타자와 단호히 단절하는 것, 즉 문닫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장자가 문을 벽처럼 사유했던 혜시를 완전히 부정하지 못했던 이유가 짐작이 됩니다. 문턱에 서서 장자는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닫히는 문만이 열릴 수 있 다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장자는 숙고합니다. 닫아야 할 때 닫을 수 없는 문, 열어야 할 때 열리지 않는 문. 경첩이 부서진 문들입니다. 문턱에 서서 장자의 사유는 이렇게 깊어만 갑니다

- 예()는 아주 작은 표적이라도 활로 맞추는 데 능숙했지만, 사람들이 자기를 찬양하지 않도록 하는 데는 서툴렀다. 성인은 '자연적인 것'에 능숙하지만, '인위적인 것(ᄉ)'에는 서툴다. 자연적인 것에도 능숙하고 인위적인 것에도 잘 대처하는 것은 오직 '완전한 인간(人)'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직 벌레만이 벌레일 수 있고, 오직 벌레여야 자연적일 수 있다. 완전한 인간 은 자연적인 것을 싫어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자연적이라고 여 기는 것도 싫어하는데, '나는 자연적인가? 아니면 인위적인가?' 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경상초」
- 천하 바깥 그 자유의 공간이 거의 사라진 시대, 대붕이 되어 천하를 비웃으며 천하의 북쪽으로 그리고 천하의 남쪽으로 날 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시대입니다. 억압과 허영의 세계는 인간 의 자유를 부단히 감시하고 저주합니다. 대붕으로 자랄 조짐만 보여도 아이들을 메추라기로 만들어버립니다. 대붕은 단지 비 현실적인 꿈이라는 선전도 횡행하고요. 대붕들은 점점 날개를 접고 몸을 움츠리며 멍한 눈으로 석양을 바라볼 뿐입니다. 다 행히도 장자에게는 대붕이 되는 길 외에 소충이 되는 길도 있 습니다. 무한히 커지는 길만큼 무한히 작아지는 길도 중요합니 다. 작디작은 벌레처럼 되어야, 그것도 누구의 눈에도 띄어서는 안 되는 미세한 벌레가 되어야, 자유인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자유를 구가할 수 있습니다. CCTV에도 잡히지 않는 벌레 와 같은 자유인들이라고 무시하지는 마세요. 그들은 언제든지 모여서 거대한 자유의 군단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그 들은 흩어져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의 마지막 열 번째 화 살을 말입니다. 쏘지 못한 예의 열 번째 화살, 혹은 마지막 태양을 맞히지 못하고 비껴가 어느 땅에 박힌 그 열 번째 화살은 어 디에 있을까요? 바로 이 화살을 찾는 날, 소충들은 거대한 떼로 모일 겁니다. 활에 그 마지막 화살을 장전해 하늘의 태양에 쏘 려면 불가피한 일입니다. 대지를 감시하는 뜨거운 하늘의 눈, 그 마지막 태양이 사라져야. 모든 초목과 짐승 그리고 인간은 어둠 속의 별들처럼 자기 빛을 뿜어낼 수 있습니다. 예가 꿈꾸던 세 상은 이렇게 우리에게 올 겁니다. 그날은 언제일까요? 예의 마 지막 화살이 거침없이 하늘의 태양을 향해 나아갈 그날! 대붕이 다시 날갯짓을 시작할 그날!

-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맹손재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곡은 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고 마음속으로도 슬퍼하지 않았으며 장례를 지낼 때도 애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 가지 가 없음에도, 그는 노나라에서 장례를 잘 치른 자로 명성을 떨쳤 습니다. 그 내실이 없는데도 그런 명성을 얻는 경우가 실제로 있 는 것 아닙니까? 저는 정말로 그것이 이상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맹손재는 죽음과 장례에 대한 앎을 넘어 그 것을 모두 실천한 사람이다. 장례를 간소히 치르려 해도 뜻대로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이미 간소히 한 것이 있다. 맹손재는 태어난 이유나 죽는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어느 것이 중요하고 어느 것이 부차적인지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변 화에 따라 하나의 사물로 태어났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변화가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장차 변화한다 면, 어떻게 변화하지 않음을 알겠는가? 장차 변하지 않게 된다 면, 어떻게 이미 변화했었음을 알겠는가? 단지 나도 그렇지만 너도 꿈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그는 몸이 망가지더라도 마음을 소모하지 않았고, 몸을 떠나려 해도 죽음에 신경 쓰지 않는다. 맹손재만이 홀로 깨어난 사람이 다. 다른 사람들이 곡할 때 그 또한 곡을 했는데, 이것은 사람들 이 그렇게 한 것을 따른 것이다. 지금 우리는 자신을 나라고 여 기고 있을 뿐인데, 어떻게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이 실제로 내 가 아님을 알겠는가? 너는 너 자신이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 다고, 혹은 너 자신이 물고기가 되어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 다고 꿈꿀 수 있다. 지금 말하고 있는 나도 깨어 있는 자인지 아 니면 꿈꾸고 있는 자인지 모르겠구나!" 「대종사」
- 태어난 이유는 죽는 이유는 "왜?"라는 의 문을 던진다면, 삶을 긍정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야 맹손 재가 왜 "태어난 이유나 죽는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그는 삶을 긍정했던 사람, 지금 잠시 머무는 삶, 어머니와 함께한 삶을 향유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태어나기 전의 상태나 죽은 뒤의 상태는 그의 마음속에 들어올 수도 없는 거죠. 당연히 어떻게 사느냐의 여부나 어떻게 죽느냐의 여부 중 무엇이 중요한지도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정도로 도 충분히 근사하지만, 지적인 독자들에 대한 노파심에 장자는 사족을 하나 붙입니다. "변화에 따라 하나의 사물로 태어났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변화가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장차 변화한다면, 어떻게 변화하지 않음을 알겠는 가 장차 변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이미 변화했었음을 알겠 는가?" 인식론적 설명입니다. 살아서 변화를 겪고 있다면 어떻 게 태어나기 전의 상태나 죽은 뒤의 상태를 알 수 있겠냐는 이 제 죽어 더 이상 변화를 겪지 않게 되면 어떻게 살았을 때의 상 태를 알 수 있겠냐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맹손재는 태어나서 자 신이 겪은 모든 변화를 긍정했던 사람입니다. 늙어도 그것을 젊 음의 부재로 생각하지 않고 다리가 잘려도 그것을 다리의 부재 로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여기서도 유목민적 감수성이 빛을 발합니다.

- 재경이 나무를 깎아서 악기 받침대를 만들었다. 받침대 가 만들어지자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귀신의 솜씨와 같다며 놀라 워했다. 노나라 군주도 악기 받침대를 보고 재경에게 그에 대해 질문했다. "너는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만들었는가?"
재경은 대답했다. “저는 비천한 목공인데, 무슨 별다른 방법 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받 침대를 만들 때 저는 기를 소모하는 일 없이 재계하여 마음을 고 요하게 만듭니다. 3일 동안 재계하면 치하의 상이나 작록 등에 대한 기대를 마음에 품지 않게 됩니다. 5일 동안 재계하면 비난 과 칭찬, 그리고 숙련과 거침이라는 평가를 마음에 두지 않게 됩 니다. 7일 동안 재계하면 문득 나 자신에게 사지와 몸이 있다는 것을 잊게 됩니다. 이때가 되면 국가의 위세에 대한 두려운 생각 이 마음에서 없어지게 되고 안으로는 마음이 전해지고 밖으로는 방해 요인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다음에 저는 산림으로 들어가 나무들의 자연스러운 성질을 살피는데, 그러면 나무들의 몸이 하나하나 제게 다가옵니다. 그 후 완성된 악기 받침대를 떠 올리도록 만드는 나무 한 그루가 마음에 들어와야 저는 손을 대 서 자르기 시작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결코 나무에 손 을 대지 않습니다. 저의 역량과 나무의 역량이 부합되니, 제가 만든 악기 받침대를 귀신이 만든 것 같다고 하는 이유도 아마 여 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달생」
- 남자 주인공 재경과 여자 주인공 나무는 스스로 주인공임을 유지하는 동시에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존중한 채, 사랑의 피륙 을 짜기 시작합니다. 재경은 말합니다. "저의 역량과 나무의 역 량이 부합된다以天]"고 말이죠. 그 결과 "귀신이 만든 것과 같은 악기 받침대가 탄생합니다. 당근을 원하고 채찍을 피하려 는 복종에의 욕망도,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도, 죽음에 대 한 공포와 삶에 대한 갈망도 일체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 했던 겁니다. 군주도, 세상 사람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 한 갈망마저 조연이 되어야 합니다. 재경과 나무가 주인공이 되 어 근사한 아이를 잉태하고 생산할 수 있으려면 말입니다. 그 래서 재경의 악기 받침대는 주인공의 품격을 고스란히 가지게 되고, 표절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독창성(originality)과 권위 (authority)를 갖추게 됩니다. 진정한 권위는 앵무새가 아니라 작 가(author)에서 온다는 윤편 이야기의 통찰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재경의 악기 받침대는 자유의 증거, 주인의 증거, 사랑의 증 거였던 겁니다. 노나라 군주는 악기 받침대가 예술의 경지에 이 른 것을 찬탄하고 경배합니다. 그런데 그는 알까요? 자신의 찬 탄은 재경과 나무가 두 명의 주인공이 되는 것에 대한 긍정이라 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것은 유일한 주인을 자처하는 군주로서 의 자기 부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노나라 군주는 재경이라는 소 인에게 자유를 인정하고 나무 각각의 고유성을 긍정할 수 있을 까요? 아마 힘들 겁니다. 재경을 주인공으로 긍정하는 순간, 노 나라 군주는 더 이상 재경과 같은 피지배계급을 노예처럼 부릴 수 없을 테니까요. 여기서 노나라 군주는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 다. 재경의 악기 받침대를 찬탄해서도 안 되고, 찬탄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까요. 바로 이 대목이 장자의 재경 이야기가 빛나는 지점입니다. 이제야 장자가 장인들에 집중한 이유가 분명해집 니다. 우리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둘의 경험입니다. 국가주 의를 벗어나는 사랑과 연대의 가능성입니다.

- 습지의 꿩!
열 걸음 걷다 한 번 먹이를 쪼고,
백 걸음 걷다 한 번 물을 마시네.
울타리 안에 갇혀 길러지는 걸 바라지 않지.
신(神)이 울타리 안에서 비록 왕과 같을지라도
이것은 좋지 않은 일이니까. 「양생주」
- 2,500년 전 장자가 권력의 유혹에 대처한 방식은 인상적입니 다. 장자는 재상이 되면 소인들을 위한 국가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혹은 자신이 재상이 되면 최소한 소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과거보다 높아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 니다. 그는 이미 대붕이었기 때문입니다. 대붕에게는 좁은 세계 를 만드는 담장을 파괴하거나 아니면 좁은 세계를 떠나버리는 것, 이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대붕이 날개를 접 고 자신의 거대한 몸을 작은 호랑이굴에 쑤셔 넣을 수 있겠습 니까? 그러니 장자에게 초나라 군주의 제안은 유혹조차도 되지 않습니다. 장자의 확고함은 그가 기회를 살려 대부 두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기는커녕 장자는 이미 거의 들어가 있는 대부 두 사람마저 호랑이굴에 서 빼내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갑골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 인 대목입니다. 권력의 맛을 본 두 사람마저 영토국가라는 협소 한 세계를 벗어던지는 대붕으로 만들어버리려 하니까요. 나무 를 베어 죽여야 그걸로 서까래나 대들보를 만들 수 있는 법입 니다. 국가권력도 그 대상이 지배계급이든 피지배계급이든 인 간의 자유와 능동성을 박탈해야 그들을 부릴 수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장자는 '살아 있는 거북'과 '죽은 거북의 등껍질'을 이야 기하는 겁니다. 살아 있는 거북의 등껍질로는 점을 칠 수가 없 습니다. 살아 있는 거북을 죽이고 등껍질을 칼로 도려낸 다음 그걸 잘 말려야 합니다. 그래야 신탁을 받을 수 있는 종교 도구 가 되니까요. 불에 던져 근사한 균열을 얻으려면 이런 잔인한 조치는 불가피한 법입니다. 물론 군주는 등껍질을 그야말로 아 끼고 사랑합니다. 그 껍질을 "상자에 넣고 비단보로 싸서 묘당 안에 소중하게 간직할 정도니까요.

- 효자는 부모에게 아첨하지 않고 충신은 군주에게 아부하지 않 는데, 이것이 제대로 된 신하와 자식이다. 부모의 말은 무엇이든 긍정하고 부모의 행동은 무엇이든 좋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은 못난 아들이라고 한다. 군주의 말은 무엇이든 긍정하고 군주의 행동은 무엇이든 좋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은 못난 신하라고 한 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자신들에게도 똑같이 해당 됨을 모르는 것일까?
세상 사람들이 긍정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긍정하고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무엇이든 좋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 은 자신을 아부꾼(道人)이나 아첨꾼(人)이라고 말하지 않는 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정말로 부모보다 더 권위가 있고 군 주보다 더 위엄이 있다는 것인가! 자신을 아부꾼이라고 하면 세 상 사람들은 불끈 화를 내고 자신을 아첨꾼이라고 하면 세상 사 람들은 왈칵 화를 내지만, 그들은 평생 아부꾼이자 평생 아첨꾼일 뿐이다. 적절한 비유를 모으고 세련된 문장을 구사해서 대중 을 끌어모으지만, 시작과 끝, 근본과 지엽은 서로 모순될 뿐이 다. 근사한 옷을 입고 화려한 장신구도 착용하고 표정과 몸짓을 바꾸어가며 동시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자신이 아부한 다거나 아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저 세상 사람들 과 무리를 지어 옳고 그름을 따르지만 자신이 대중 가운데 한 명 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니, 최고의 어리석음이다.
자신이 어리석음을 아는 사람은 크게 어리석지는 않고, 자신 이 미혹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크게 미혹된 것은 아니다. 크게 미 혹된 사람은 죽어도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크게 어리석은 사람은 죽어도 깨닫지 못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갈 때 한 사람이 미혹되어도 목적지에는 이를 수 있는 것은 미혹된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미혹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미혹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온 세상이 미혹되었기 때문에 내가 설령
아무리 방향을 알려준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으니, 너무나도 슬픈 일 아닌가! 「천지」
- 삼인행 이야기가 서늘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장자 가 묘사한 섭섭한 세계가 2,000여 년 전 중국 전국시대에만 국 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한 치의 어 긋남 없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피라미드를 붕괴시키려는 도 대신 한 단계라도 그 상층부로 올라가려는 경쟁 논리만이 팽 배한 것이 문제입니다. 피지배계급이 자신을 잠재적 지배계급 으로, 노동자들이 자신을 잠재적 자본가로 오인하면서, 지배자 와 피지배자 혹은 자본과 노동이라는 근원적 억압 형식이 은폐 되고 맙니다. 군주제에서 대의제로의 이행은 억압 형식이 스스 로의 생명을 영속화하는 가장 세련된 형식을 찾았음을 의미합 니다. 민중의 혁명으로 특정 군주가 축출되는 걸 방치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특성 군주와 함께 군주라는 형식도 폐기될 수 있으니까요. 나쁜 군주든 좋은 군주든 문제는 군주라는 형식 자 체에 있다는 걸 민중은 자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혹 은 국가주의자는 셀프 혁명을 만들어냅니다. 다수 피지배자들 이 혁명을 일으키기 전에 선거라는 사이비 혁명으로 지배계급 이 먼저 군주를 바꾸어버리는 거죠. 군주라는 형식을 보존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입니다. 선거에 의한 군주 변경, 대통령제는 이렇게 탄생합니다. 물론 대통령 후보는 지배계급의 일원이거나 지배계급이 간택한 사람입니다. 지배계급이 통제 가능한 혁명, 합법적인 혁명, 지배와 피지배라는 형식은 결코 침해되지 않는 보수 혁명은 이렇게 탄생합니다.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으나 아무나 대통령이 될 수 없는 기만적 지배 형식이죠. 이것은 물론 누구나 대자본가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대자본가가 될 수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도플갱어 (doppelganger)입니다. 자본과 국가 사이 의 은밀한 지배는 이렇게 공명하면서, '작은 대통령' '작은 국회의 원' '작은 자본가' '작은 CEO'의 시대를 열었죠. 대통령이, 국회의 원이, 그리고 CEO가 바뀌는 현란한 저글링 속에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지배와 복종 형식은 편안히 숙면을 취한다는 게 중요 합니다. 하도 빨리 내용물이 바뀌니 형식은 생각할 겨를도 없고, 심지어 형식이 항상 새로운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겁니다.

- 남백자규가 여우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이가  많은데도 안색이 마치 어린아이 같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여우가 말했다. "나는 길에 대해 들었습니다."
남백자규가 말했다. "길은 얻어 배울 수 있는 것입니까?" 여우가 말했다. "오!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 복량의卜)는 성인의 소질은 있지만 성 인의 길은 없고, 나는 성인의 길은 있지만 성인의 소질은 없습 니다. 내가 성인의 길을 가르치고자 하면, 아마도 그는 진짜 성 인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성인의 길을 성 인의 소질이 있는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 또한 쉬울 거예요. 그 에게 알려주고서 내가 그를 지켜보면, 그는 3일이 되어 천하를 도외시할 거예요. 그가 천하를 이미 도외시한 뒤 내가 그를 지 켜보면, 그는 7일이 되어 외물을 도외시할 겁니다. 그가 이미 외물을 도외시한 뒤 내가 그를 지켜보면, 그는 9일이 되어 삶을 도외시할 거예요. 이미 삶을 도외시한 뒤 그는 '아침이 열리는 것(朝)'처럼 될 겁니다. 아침이 열리는 것처럼 된 뒤 그는 '단 독적인 것을 볼見獨)' 거고요. 단독적인 것을 본 뒤 그는 과거와 현재를 없앨 수 있겠죠. 과거와 현재를 없앤 뒤 그는 죽지도 않 고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에 들어갈 겁니다." 「대종사」
- '홀로 걷는 여자', 여우에게서 우리는 말을 타는 전사의 당 당함을 떠올려야 합니다. 여우는 억압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 고 온갖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전통 가부장제 속의 여성과는 다 릅니다. 그녀가 "나이가 많은데도 안색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 던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 을 때 일어나는 여성, 여성에게 강요되는 온갖 의무들로부터 자 유로운 여성, 바로 그녀가 여우였습니다. 그녀가 억압사회에서 허우적거리는 웬만한 남자들보다 위대하다는 것은 분명합니 다. 그 또한 자유로운 전사를 꿈꾸던 남백자규가 여우에게 배움 을 청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길은 얻어 배울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 달리 여우가 단호하게 말합니다. "오!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남백자규에게는 성인, 즉 자유인이 되는 길을 배울 수 있는 소 질이 없다는 절망적인 선언입니다. 그러나 여우는 여기서 그치 지 않습니다. 절망적인 선언에 남백자규가 좌절이라도 할까 걱 정하듯, 여우는 복량의倚)라는 남자의 사례를 통해 성인이 되는 길을 남백자에게 알려주니까요. "저 복량의는 성인의 소 질은 있지만 성인의 길은 없고, 나는 성인의 길은 있지만 성인 의 소질은 없습니다. 성인의 길을 가르치고자 하면, 아마도 그는 진짜 성인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직접적 가르침이 아니라 간 접적 가르침입니다. 자유는 강요할 수도 가르칠 수도 없다는 여 우의 통찰입니다. "길은 얻어 배울 수 있는 것입니까?"라는 남 백자규의 의문 자체가 그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증거입 니다. 자유는 누군가의 가르침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 니다. "그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때 여우가 말하 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겁니다. 누군가에 의지해 자유로우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소망과는 달리 자유에서 멀어지게 되니 까요. 자유는 직접적으로 가르칠 수 없고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다는 여우의 깊이가 놀랍습니다.

- 원숭이 키우는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 에 셋, 저녁에 넷 주겠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은 모두 노여워했 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제안 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했다. 이름과 내용이 어긋나 지 않았지만 노여움과 기쁨이 작용한 것 또한 인시(因)다.
그러므로 성인은 '옳음과 그름'으로 갈등을 완화하지만 '자연 스러운 물레(天)'에 머문다. 이를 일러 '두 길을 걸음(行)'이라 고 한다. 「제물론」

-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에는 못생긴 사람이 있었는데 애태타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있었던 젊은 남자들은 그를 사모해 떠나지 못했고, 그를 보고 부모에게 '다 른 사람의 처가 되느니 차라리 그의 첩이 되겠어요'라고 간청하 는 젊은 여자들이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더군 요. 그렇지만 일찍이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고, 그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 호응했을 뿐이죠. (...) 제가 그를 불러 살펴보니 정말 온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못생겼더군요. 저와 함께한 지 몇 달이 되기도 전에, 저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 게 되었고, 한 해가 되기도 전에 저는 그를 신뢰하고 말았습니 다. (...) 결국 저는 나라를 그의 손에 맡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 아 그는 저를 떠나버렸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것 처럼 실의에 빠졌고, 더 이상 이 나라를 함께 즐길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공자가 말했다. “(...) 그는 분명 소질은 완전하지만 덕은 드러 나지 않은 사람일 겁니다."
애공이 물었다. "소질이 완전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공자가 대답했다. “죽음과 삶, 생존과 파멸, 성공과 실패, 가 난과 부유함, 능력과 무능함, 비방과 칭찬, 주림과 목마름, 추 위와 더위, 이것은 모두 사태의 변화이고 부득이한 움직임이어 서 우리 앞에 밤낮으로 번갈아 나타나지만, 우리의 사유로서는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로 마음의 조 화를 어지럽히거나, 이런 것들을 마음에 담아두어서는 안 되죠. 마음으로 하여금 조화롭고 즐겁게 하여, 타자와 소통해도 즐거 움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삶의 연속성에 틈이 없도록 타 자와 함께 봄이 되어야 하니까요. 이것이 타자와 마주치는 순 간마다 마음에 그에 맞는 때를 생성시키는 겁니다. 이런 상태가 공자가 말했다. “(...) 그는 분명 소질은 완전하지만 덕은 드러 나지 않은 사람일 겁니다."
바로 '소질이 완전하다'는 말의 의미죠."
애공이 물었다. “덕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공자는 대답했다. "고르다는 것은 최고로 물이 안정되어서 표본이 될 만한 상태를 말하죠. 안으로부터 잘 보전되고 밖으로 동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덕이라는 것은 조화로움을 이룬 결 과물입니다. 덕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에게서 타자는 떨어져 나올 수가 없는 법이죠." 「덕충부」
- 『장자』 내편 중 다섯 번째 편은 「덕충부」 편입니다. '덕충부' 라는 말은 "매력이 충만한 징표"라는 의미입니다. 아니나 다를 까, 이 편에는 우리에게 소요유, 즉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가르 쳐주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불 쌍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유를 가르쳐주지 도 않습니다. 그저 그들은 우리 옆에서 자유인의 삶을 살아냅 니다. 이렇게 그들은 우리 곁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겁니다. 맞지 않았으면 그만이지만, 그들의 날갯짓이 만드는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면 우리의 가슴은 자유의 희망으로 부풀어 오를 겁니다.
- 기쁨을 주는 사람이나 장소에게 애태타는 슬픔과 우울을 주 지는 않습니다. 슬픔과 우울은 존재를 파괴하는 힘이라는 걸 알 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할 때 상대방이 슬퍼하거나 우울하다 면, 그는 나를 떠나거나 시들어 죽어갈 겁니다. 결국 나의 기쁨 도 유쾌함도 그와 함께 꺼져버리고 말겠죠. 그래서 '소질이 완 전하다', 즉 재전(全)의 뜻을 설명해주는 마지막 대목에서 장 자는 말합니다. "마음으로 하여금 조화롭고 즐겁게 하여, 타자 와 소통해도 즐거움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삶의 연속성에 틈이 없도록 타자와 함께 봄이 되어야 하니까요. 이것이 타자와 마주치는 순간마다 마음에 그에 맞는 때를 생성시키는 겁니다." 자유인에 대한 최고로 멋진 찬사는 이렇게 등장합니다. 장자의 찬사는 아침 해에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이슬처럼 '타자와 함께 봄이 되어야 한다'고 번역한 네 글자 '여물위與物爲春)'에 맺 힙니다. '~와 함께'라는 뜻의 '여(興)', '타자'나 '외물'를 뜻하는 '물(物)', '되다'라는 뜻의 '위)', 그리고 '봄'을 뜻하는 '춘(春)' 으로 구성된 문장입니다. 누가 장자 사유의 핵심을 묻는다면, 이 네 글자의 문장을 반복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여물위춘!"

- 공자가 여량이라는 곳을 관광하고 있었다. 그곳폭포는 삼십 길이나 되었고 그 물거품이 사십 리나 튈 정도로 험해 자라나 물고기 등도 헤엄칠 수 없는 곳이었다. 한 사나이가 그곳에서 헤엄치는 것을 보자마자 공자는 그가 고뇌가 있어 자살하려 한 다고 판단해 먼저 제자들을 보내 물가를 따라가 그 사나이를 건 지게 하였다.
그 사나이는 수백 보의 거친 물길을 지나 물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머리카락이 물결에 풀어진 채 노래를 부르며 둑 바로 아래 잔잔한 물에서 헤엄쳤다.
공자도 그를 따라가 물어보았다. “나는 그대가 귀신인 줄 알 았네. 그런데 지금 보니 자네는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군. 물을 건너는 데 길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네."
그 사나이가 대답했다. "없네! 내게는 길이 없네. 나는 과거 ()에서 시작했으나 삶에 깃들어 명령을 이루고 있네. 물 이 소용돌이쳐서 빨아들이면 나도 같이 들어가고, 물이 물속에 서 밀어내면 나도 같이 밀려 나오지. 물의 길을 따를 뿐, 그것을 사사롭게 여기지 않네. 이것이 내가 물을 건너는 방법이야." 그러자 공자가 물어보았다. “과거에서 시작했으나 삶에 깃들 어 명령을 이룬다는 그대의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 사나이가 대답했다. "내가 육지에서 태어나서 육지에 편했 던 것이 과거이고, 내가 물에 깃들어 물에 편해진 것이 삶이고, 어 떻게 그렇게 되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명령이야." 「달생」

- 장자가 곧 죽으려 할 때, 제자들은 장례를 후하게 치르려고 했다.
장자가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관곽으로,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별들을 다양한 구슬로, 그리고 만물을 부장품으로 생각하고 있네. 내 장례용품에 어찌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겠 는가? 무엇을 여기에 더 보태려 하는가!"
제자들이 말했다. “저희는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을 쪼아 먹을까 두렵기만 합니다."
장자가 말했다. “땅 위에서는 까마귀와 솔개의 먹이가 되고, 땅 밑에서는 땅강아지와 개미의 먹이가 되는 것이네. 그런데 까 마귀와 솔개의 먹이를 빼앗아 땅강아지나 개미에게 주려고 하 니, 어찌 이렇게도 편파적인가!" 「열어구」
- 죽음을 앞둔 장자는 자신이 가난한, 그래서 순수한 유목민의 정신을 품고 살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고 분은 아니더라도 작은 분묘를 만들려고 하자, 장자는 제자들에 게 자신은 매장이 아니라 조장을 선호한다고 피력하지요. 빈 배 이야기에서 자기를 비우고 세상을 소요하라고 강조했던 장자 다운 생각입니다. 자기를 비운다는 것, 그건 '가난한 유목민'이 되어야 자유인으로 순수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장자 의 모든 이야기 중 가장 극적인 임종 이야기가 조장이라는 유목 민의 장례를 긍정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착농경을 하던 중국인들에게도 고분을 만드는 매장은 때늦은 장례 형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장례를 뜻하는 장(葬)이라는 글자의 갑골문이나 소전체가 그 증거입니다. 나무판에 시신을 올 린 다음 풀을 덮고, 그 판을 나무 위나 풀 위에 올려놓은 형상 입니다. 아울러 갑골문을 보면 사(死)라는 글자가 나무판에 올 린 시신을 묘사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死)나 장(葬)이라 는 글자에 반영된 장례 형식은 매장이 아닙니다. 조장까지는 아 닐지라도 풍장(風葬)은 분명합니다. 그러던 것이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에 이르러 중국에서도 고분을 만드는 매장이 지배적인 형식으로 변한 겁니다. 여기서 고분이 지배와 복종이 영속화된 정착사회, 즉 영토국가의 상징이라는 걸 상기해야만 합니다. 바 로 이것이 장자가 조장을 택한 이유입니다. 숨이 끊어지는 날까 지, 아니 숨이 끊어진 뒤에도 국가주의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지 를 버린 장자였습니다.

- 옛날 장주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나는 나비였고 스 스로 유쾌하고 기분이 좋았기에 자신이 장주라는 걸 알지도 못 했다. 갑자기 깨어나니 분명히 장주였다. 장주가 나비가 된 꿈 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 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 다. 이것을 '타자와 함께 변화한다(物化)'고 말한다. 「제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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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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