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리자

인문 2024. 1. 19. 06:51

- 욱리자는 유기 자신을 대변하는 가상 인물이다. 원나라 말기의 어지러운 세태를 통렬히 비판하며 치세의 구현 방략을 논하고 있는 것 이 특징이다. 중국문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욱리자》는 《장자》로부 터 시작되는 우언문학의 전통을 잇고 있다. 《욱리자》에 나오는 우화는 진실과 거짓, 탐욕과 파멸, 허세와 기만, 교만과 비굴, 근면과 나태, 현 실과 이상, 착취와 도탄, 술책과 의리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 든 문제를 다룬다. 신랄한 풍자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모순과 비리로 얼룩진 난세의 현실을 직시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주옥같은 경구와 격언이 가득하다. 다음 격언이 이를 방증한다.
- 난세에는 무함과 참언이 난무한다. 특히 유기처럼 재주가 많은 사람의 경우는 집중적인 견제를 받을 공산이 크다. 유기는 성정이 곧 아 직언을 잘했다. 난세에 이런 모습을 보이면 적을 많이 만들 수 있기 에 위험하다. 낙향하기는 했으나 산속에 칩거하며 《욱리자>를 저술한 것은 잘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전화위복의 계기로 작용했기 때 문이다. 저술에 착수한 지 1년 뒤인 지정 20년(1360)에 주원장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유기의 명성을 들은 주원장이 사람을 보내 초빙했던 결 과다.
- 《춘추좌전春秋左傳》을 보면 위영공은 위의공과 더불어 춘추시 대의 대표적인 암군으로 나온다. 위영공은 동성애로 유명했다. 그 상대가 바로 미자하였다. 《한비자> <세난難>에 유명한 일화가 나온다. 당시 위나라 법에 따르면 군주의 수레를 몰래 타는 자는 발을 자르는 월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미자하의 모친이 병에 들었을 때 어 떤 사람이 밤에 몰래 와서 미자하가 위영공의 수레를 슬쩍 빌려 타고 나간사실을 알렸다. 위영공이 이를 전해 듣고 오히려 그를 칭찬했다. "효자로다. 모친을 위하느라 발이 잘리는 형벌까지 잊었구나!"
다른 날, 미자하가 위영공과 함께 정원에서 노닐다가 복숭아를 따게 되었다. 먹어보니 맛이 아주 달았다. 반쪽을 위령에게 주자 위령공이 칭송했다.
"나를 사랑하는구나! 맛이 좋은 것을 보고는 과인을 잊지 않고 맛보게 하는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용모가 쇠하고 총애가 식었다. 한번은 위영공에게 죄를 짓게 되었다. 위영공이 책망했다.
"이자가 전에 과인의 수레를 몰래 타고 나간 일도 있고, 또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결국 미자하는 쫓겨나고 말았다. 여기서 나온 성어가 여도지죄다. 먹고 남은 복숭아의 죄란 뜻으로 지나친 총애가 도리어 큰 죄의 원인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두고 한비자 는 <세난>에서 이같이 평해놓았다.
미자하의 행동은 변함이 없었다. 전에 칭찬받던 일이 후에 책망을 받게 된 것은 군주의 애증이 변했기 때문이다.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는 지혜를 내 는 것마다 군주의 뜻에 부합해 더욱 친밀해졌지만, 미움을 받을 때는 아무리 지혜를 짜내도 군주에게는 옳은 말로 들리지 않아 벌을 받고 더욱 멀어지기 만 한다. 군주에게 간언을 하거나 논의를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이 과 연 군주에게 총애를 받고 있는지, 아니면 미움을 받고 있는지 여부를 잘 살 핀 뒤 유세해야만 한다.
- 총애의 대상과 강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다. 애증이 들쭉날쭉 변 하기 때문이다. 한비자가 군주 앞에서 유세하고자 할 때 반드시 군주가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지 여부부터 따져보라고 충고한 이유다. 미자하 는 이를 간과했다. 크게 보면 미자하는 군주가 보여주는 염량세태의 희 생양에 해당한다. 위영공의 변덕 가능성을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 구장 땅의 농부가 풀로 울타리를 덮었다. 하루는 우연히 짹짹거리는 소리를 들어 풀을 들추었다가 꿩을 잡게 되었다. 이후 다시 덮어놓고는 또 다시 꿩을 잡고자 했다. 다음 날 가서 주의해 들어보니 전처럼 짹짹거리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가 재빨리 풀을 들추었다가 이내 독사에게 손을 물 려 죽고 말았다. 욱리자가 말했다.
"이는 작은 일이지만 커다란 교훈이 될 수 있다. 천하에는 뜻밖의 복이 있지만 뜻밖의 화도 있다. 소인배들은 화와 복이 서로 기대며 그 안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요행이 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이유다. 실의는 늘 득의한 데서 비롯된다. 이로운 면만 보고 해로운 면을 보지 못하거 나 살아남는 것만 알고 패망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 화와 복이 서로 기대며 숨어 있다는 이른바 화복상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이 <도덕경> 제58에 나온다. 해당 대목이다.
화여, 복이 의지하고 있구나! 복이여, 화가 숨어 있구나! 누가 그 궁극을 알겠는가?
- 대다수 사람들은 지게미를 훔치고는 마치 천일주를 빚은 것처럼 떠벌이곤 한다. 난세일수록 허장성세가 횡행하는 법이다. 난세에 군웅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한 지역을 다스리는 이른바 토황제皇帝 를 자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록 오합지졸일망정 유민들을 그러 모아 세를 불리기 위해 그런 것이다. 야심을 지닌 군웅들의 이런 행태 를 무턱대고 탓할수는 없다. 유민들 자체가 염량세태의 진원지이기 때 문에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비록 처음은 미약할지라도 새 세상의 도래에 대 한 확고한 신념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대업을 이룰 수 있다. 삼국시대 당시 이를 실천했던 인물이 조조다. 그는 지게미가 아니라 진짜 천일주를 빚고자 했다.
천일주를 빚고자 하면 스스로 남의 모범이 될 필요가 있다. 조조는 생전에 자신이 평생에 걸쳐 이룬 업적은 난세를 평정해 백성을 구한 데 있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이 와중에 많은 원한을 산 것도 사실이나 백성을 혹사시키는 황당한 일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백 성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평생 검박하게 살다간 인물이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 《삼국지》 <원소전紹>에 따르면 원소는 미목이 수려한데다 명사들 과 사귀는 것을 좋아했다. 집안의 이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던 것 이다. 사서에 따르면 그의 집 앞은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명사들 로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당시 조조는 능력이 뛰어나기는 했 으나 멸시의 대상인 환관 집안 출신이었다. 더구나 조조의 부친 조 은 거액을 주고 태위의 자리에 오른 까닭에 세인들의 지탄을 받고 있 었다. 유비는 비록 한실의 후예라고 하지만 가계를 확인할 길이 없는 한미한 가문 출신이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짚신을 삼고 돗자리를 짜서 연명하는 처지였다. 손권 역시 토호 출신에 불과했으므로 낙양 陽을 거점으로 누대에 걸쳐 그 이름을 떨친 원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처럼 원소는 당대 최고의 명망이 있었다. 게다가 그는 유협遊俠의 무리와 어울리며 지내는 등 협기까지 있었다. 스무 살에 이르러 효 렴에 천거된 것을 계기로 효를 다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출사한 지 얼 마 되지 않아 모친상을 당하자 초막을 짓고 삼년상을 치르면서 어려서 하지 못했던 부친의 복상까지 합쳐 총 6년을 초막에서 지낸 것이 그렇다. 나무랄 것이 없었다.
- 너무 일이 잘 풀리면 무사안일에 빠지기 십상이다. 원소가 바로 이런 덫에 걸렸다. 실속이 없었던 것이다. 환관 집안에 겉모습이 볼품없던 조조가 실속을 채워 천하를 호령하는 위치로 올라섰던 것과 대비된다. 두 사람의 운명이 엇갈리기 시작한 단초는 바로 원소의 무사 안일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주변 사람 들의 추대에 의해 동탁토벌군의 맹주가 되었던 것이 상징적이다. 당시 조조는 어렵사리 마련한 거사자금으로 간신히 병사들을 모은 뒤 토벌군의 일원으로 참석해 나름대로 사선을 뚫고 분전을 거듭했음 에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반면에 원소는 토벌군이 해체된 이후 기주를 점거해 가장 강력한 패자로 군림하게 되는 등 전 과정이 모 두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그가 땀 흘려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직 휘황한 집안의 배경만으로 이런 위치에까지 오른 것이다. 이에 반해 조 조는 모든 것을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피땀 어린 노력을 통해 얻었다. 이후 두 사람은 하북의 패권을 놓고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다투 게 되었다. 그 결과는 주지하다시피 조조의 승리로 끝이 났다.
- 제환공이 관중에게 이같이 물은 적이 있다.
"나라를 다스릴 때 가장 큰 걱정거리는 무엇이오?"
"토지신을 모시는 사당의 신상에 구멍을 파고 들어간쥐입니다."
"왜 그런 것이오?"
관중이 대답했다.
"군주도 사당에 흙으로 빚어 만든 신상을 모시는 과정을 보았을 것 입니다. 흙을 빚어 신상을 만들 때 나무로 모형을 세우고 그 위에 진흙 을 바릅니다. 이후 사당에 소조된 신상을 안치했는데 쥐가 신상의 틈 사이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살게 됩니다. 연기를 피워 쫓으려니 신상의 나무에 불이 옮겨 붙을까 우려되고, 물을 붓자니 신상의 표면에 칠한 흙이 떨어질까 우려됩니다. 사당의 신상 안에 들어가 사는 쥐를 잡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군주의 좌우에 있는 자들은 나가서는 권세를 부려 백성으로부터 이익을 거두어들이고, 들 어와서는 붕당을 만들어 악행을 숨깁니다. 궐 안에서 군주의 사정을 엿 보아 궐 밖으로 이를 알리고, 안팎으로 권세를 키우며 일을 멋대로 조 정하는 까닭에 여러 신하와 관원이 날로 부유해지고 있습니다. 해당 관 원이 이들을 주살하지 않으면 법이 어지러워지고, 주살하면 군주가 불 안해집니다. 그런 까닭에 이들을 그대로 두고 있으니 이들이 바로 사당의 쥐입니다. 신하가 권력을 쥐고 멋대로 금령을 휘두르며 자신을 위하 는 자는 반드시 이롭게 하면서 그렇지 않은 자는 반드시 해롭게 하니 이들이 사나운 개입니다. 무릇 대신들이 사나운 개가 되어 도를 터득한 선비를 물어뜯고, 군주의 좌우가 사당의 쥐가 되어 군주의 실정을 엿보 는데도 군주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군주의 이 목이 어찌 가려지지 않겠으며, 나라 또한 어찌 망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나온 성어가 맹견사서다. 가게 앞의 맹견과 사당의 쥐 는 간신을 상징한다. 이런 간신이 군주 옆에 있으면 그 나라는 이내 패 망하고 만다.
이는 나라뿐 아니라 크고 작은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선우 와 악우로 구분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악우가 바로 맹견사서에 해당한다. 현명한 처신이 필요한 이유다.
- 그러고는 요동에 갔다가 함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4월, 2세 황제가 진시황의 급서로 중단된 아방궁 축조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이 또한 선황의 공업을 널리 드날리기 위한 것이었다. 당초 아방궁의 축조 는 진시황 35년(기원전 212)에 시작되었다. 진시황의 능묘를 미리 조성하 는 여산의 수릉조영도 함께 전개되었다. 이때 중원 일대의 백성과 죄수가 대거 동원되었다. 화북 일대의 만리장성 축성 작업으로부터 불 과 3년 뒤에 시작된 까닭에 민심이 흉흉했다. 각지에서 유민이 격증하 면서 치안이 크게 불안해졌다. 이해 가을 7월, 마침내 진승이 반기를 들었다. 진시황이 급서한 지 1년 만에 일어난 이 사건은 사상 최초의 제국인 진나라가 일거에 무너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조고는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잇따르고 있는데도 진나라의 대 권을 전횡할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군신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을 우려해 먼저 이들을 시험하고자 했다. 사슴을 가져다가 호해에게 바치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말입니다."
호해가 웃으며 말했다.
"승상이 잘못 알았소. 왜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것이오?"
그러고는 좌우에게 물었다. 혹자는 침묵하고, 혹자는 말이라고 했다. 조고에게 아부한 것이다. 일부는 정직하게 사슴이라고 했다. 조고는 사 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은밀히 법의 올가미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후 군신 가운데 아무도 조고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다. 여기서 나온 성어가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진나라 조정을 온통 조고의 지시에 의해 일사불 란하게 움직이는 개떼로 만든 배경이 여기에 있다.
- 술치는 신하들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미연에 제압하는 측면에서는 제신술 내지 어신술이고, 군주가 은밀히 구사한다는 측면에 서는 잠어술潛禦術에 해당한다.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부득이 신하 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만일 조금이라도 경계를 늦추면 군권이 신하 들에게 잠식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주변 의 신하들이다. 최상의 방안은 군주가 모르는 음지에서 세력을 부식할 계기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고, 이를 뒤늦게 알았을 때는 가차 없이 싹 을 제거하는 것이다.
술치는 몇 가지 점에서 법치와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우선 법치는 드러낼수록 좋은 데 반해 술치는 드러내지 않을수록 좋다. 이것처럼 법 치와술치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은 없다.
- 《주역》은 <혁革>의 효사에서 군자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임기응 변하는 것을 대인호변내지 군자표변으로 표현해놓았다. 대인은 군주를 의미한다. 호랑이는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털갈이를 하 는데, 털갈이가 끝난 호랑이의 털은 색채가 선명하고 아름답다. 호변은 가을이 되어 호랑이의 털이 아름다워지듯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로워지 는 것을 뜻한다. 표범도 가을이 되면 털갈이를 한다. 조정대신들이 혁 명의 마무리 사업에 노력해 세상을 새롭게 바꾸는 것을 상징한다. 가을 에 새로 난 표범의 털처럼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소인들 역시 이를 좇아 표정을 바꾼다. 이른바 소인혁면小이다. 명 군과 현신이 나타나 나라를 다스리면 소인들은 비록 겉모습에 지나지 않기는 하나 얼굴 표정을 바꾸며 함부로 불의한 것을 저지르지 못한다《주역》은 <혁革>의 효사에서 군자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임기응 변하는 것을 대인호변내지 군자표변으로 표현해놓았다. 대인은 군주를 의미한다. 호랑이는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털갈이를 하 는데, 털갈이가 끝난 호랑이의 털은 색채가 선명하고 아름답다. 호변은 가을이 되어 호랑이의 털이 아름다워지듯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로워지 는 것을 뜻한다. 표범도 가을이 되면 털갈이를 한다. 조정대신들이 혁 명의 마무리 사업에 노력해 세상을 새롭게 바꾸는 것을 상징한다. 가을 에 새로 난 표범의 털처럼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소인들 역시 이를 좇아 표정을 바꾼다. 이른바 소인혁면小이다. 명 군과 현신이 나타나 나라를 다스리면 소인들은 비록 겉모습에 지나지 않기는 하나 얼굴 표정을 바꾸며 함부로 불의한 것을 저지르지 못한다
- 장자가 말한 소요유의 세계는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과 사뭇 닮 았다. 성인과 신인을 넘어 지인의 단계에 이르면 내가 없는 이른바 무기가 이루어지고, 무기가 이루어지면 문득 대붕으로 변해 무용지용 의 지혜를 깨닫는다고 주장한 것이 그렇다. 장자가 말한 무기는 불가에서 말하는 몰아와 같다. 우주와 자신이 하나가 되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잊는 범아일여의 단계는 무용지용을 불가의 용어로 변용한 것에 해당한다.
- 욱리자가 말했다.
"싸움을 잘하는 자는 적을 줄이고, 잘하지 못하는 자는 적을 늘린다. 적 을 줄이는 자는 번창하고, 적을 늘리는 자는 망한다. 무릇 남의 나라를 취할 경우 그 나라 사람을 모두 적으로 만드는 셈이 된다. 적을 잘 줄이는 자는 남들로 하여금 나를 적으로 대하지 않도록 만든다. 탕왕과 무왕에게 적이 없었던 것은 내적으로 적을 대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직 천하의 지 극히 어진 자만이 나의 적이 또 다른 나의 적을 대적하게 만들 수 있다. 적 이 대적을 포기하고, 천하가 복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개미사회에서는 다른 길로 가는 개미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다른 길 로 가는 개미가 바로 새로운 먹이의 이동경로를 찾아내는 개척자 역할 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를 사회 전체로 확대하면 다른 길로 가는 사 람이 많이 존재하는 사회가 오히려 역동적이면서 크게 발전할 가능성 이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꿀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좁은 공간에 많은 꽃이 있는 하우 스에 풀어놓은 꿀벌은 일찍 죽는다. 과로 때문이다. 과잉노동이 개인과 조직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과 같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치면 그사 회는 이내 궤멸하고 만다. 일을 잘하는 규격품 같은 개체만으로 구성된 조직이 여유를 잃고 자멸하는 것과 닮았다.
- 치병과 치국을 같은 차원에서 논한 것은 나라를 하나의 유기체 로 본 결과다. 예로부터 정치와 의술을 같은 이치 위에 있는 것으로 간 주한 이유다. 이는 비단 중국에 그친 것이 아니다. 인류학자들은 정치 와 의술을 하나로 보는 생각이 원시시대부터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었 음을 밝혀냈다. 현존 원시부족 역시 부족의 우두머리는 대개 주술 내지 간단한 시술 등을 통해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자였다. 치국의 이치를 치병의 이치에서 찾는 대목이 ≪정관정요> <논정>에 나온다. 이에 따 르면 정관 5년(631), 당태종이 좌우 시신에게 이같이 말한다.
치국과 치병은 아무 차이도 없소. 병자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생각되면 오히려 더욱 잘 보호해야 하는 것 등이 그렇소. 그리하지 않아 병이 재발하면 틀 림없이 운명하게 될 것이오. 나라를 다스리는 것 또한 그러하오. 천하가 약 간 안정되면 반드시 더욱 다투어 신중해야만 하오. 평화롭다고 교만하고 안 일한 모습을 보이면 틀림없이 패망하게 될 것이오. 지금 천하의 안위는 짐에 게 달려 있소. 짐이 날마다 더욱 근신하며, 비록 즐거움을 누릴 정황이 되어 있는데도 이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오. 짐의 이목과 고광 의 역할을 경들에게 맡기겠소. 군신은 한 몸이니 의당 한마음으로 서로 협력해야 할 것이오. 일을 하면서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서슴없이 간하고, 이를 숨기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오. 군신이 서로 의심해 마음속의 말을 다하지 못하면 이는 실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큰 해가 될 것이오.
- 신하가 없으면 군주는 단 하루도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 그러나 신 권을 제압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군주가 난세는 말할 것도 없 고 치세에도 신권에 대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 다. 그리하지 않으면 군주는 이내 허수아비가 되어 시해를 당하고 나라 를 빼앗기게 된다. 동서고금의 역대 왕조사를 개관하면 한비자의 이런 주장이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그대로 적중했음을 알 수 있다
- 한비자가 군권을공권, 신권을사권으로 간주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권은 확고한 군권을 배경으로 통용되는 천하의 저울 을 뜻한다. 군주는 천하의 저울을 거머쥔 자다. 공권이 널리 통용되기 위해서는 저울질이 공정해야 한다. 관건은 공정한 법집행에 있다. 사사 로운 저울질은 공권의 존재 자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데서 사사로운 저울질이 등장하게 된 다고 보았다. 권신이 등장해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을 사권의 전형으로 간주한 이유다.
한비자가 볼 때 신하는 군주에게 고용된 가신에 해당한다. 신권 의 상징인 승상 역시 군주의 집안을 돌보는 집사에 불과하다. 집사가 주인행세를 하는 기미를 보일 때는 상벌권을 발동해 과감히 제거해야만 한다. 군주는 집사가 은밀히 세력을 키우는 것을 막기 위해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일꾼들과 연계해 집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시 감시하는 방안을 제시한 이유다. <한비자> <팔경>의 해당 대목이다.
군주는 아랫사람들과 연계해 상관의 비리를 고발하도록 조치해야만 한다. 재상은 조정대신, 조정대신은 휘하 관속, 장교는 병사, 현령은 지방 관속, 후 비는 궁녀들로 하여금 고발하게 한다.
한비자가 말한 공권은 군주가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인사대권과 상 벌권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은 이를 전봉權 과 전토권으로 표현했다. 전봉권은 천자가 제후에게 관작과 봉지 를 내리는 권한을 말하고, 전토권은 천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제후를 토벌하도록 명하는 권한을 뜻한다. 천자의 전봉권과 전토권은 춘추시대 에만 작동했다. 한비자는 전국시대의 인물이다. 전국칠웅 모두 왕을 칭 하며 천하통일의 주역이 되고자 했다. 한비자가 말한 공권은 곧 천자의 전봉권과 전토권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천하통일의 주역이 될 새 왕조 의 창업주를 염두에 둔 개념이다. 유기가 언급한 군신공치와 별반 차이 가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군주와 신하는 태생부터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 다. 문제는 조화다.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군 권과 신권의 절묘한 조화가 영원한 과제로 부상하는 이유다.
- 예나 지금이나 많은 민족으로 구성된 대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편견과 불평등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기> <예>에 서 역설한 대동의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천하위공의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예운>은 대동을 이같이 표현해놓았다.
대도가 행해지는 세계에서는 천하가 공평무사하게 된다. 어진 자를 등용하고 재주 있는 자가 정치에 참여해 신의를 가르치고 화목함을 이루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부모하고만 친하지 않고 자기 아들만을 귀여워하지 않는 다. 나이 든 사람들이 그 삶을 편안히 마치고, 젊은이들은 두루 쓰이고, 어린 이들은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고,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자식 없는 노인과 병든 자들은 모두 부양되고, 남자는 모두 일정한 직분이 있고, 여자는 모두 시집갈 곳이 있다. 땅바닥에 떨어진 남의 재물을 반드시 자기가 가지려 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들은 자기가 하려 하지만, 반드시 자기만 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간사한 모의가 끊어져 일어 나지 않고, 도둑이나 폭력배가 생기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외출할 때 문을 열어놓고 닫지 않는 이유다. 이를 일컬어 대동이라 한다.
한마디로 지상낙원의 모습이다. 청나라 말기에 강유康有爲는대동서를 저술해 대동사상을 전개한 바가 있다. 그는 대동사회가 나 타나지 못한 근본원인을 자기 자신과 가족에 집착하는 이기심에서 찾 았다. 가족제도의 폐기라는 과격한 주장을 펼친 이유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예운>은 동반성장 등으로 풀이해도 좋다. 부익부 빈익 빈은 패망의 길이다. 하후상박의 연금제와 누진세 등을 적극 활용해 균 부 이념을 실천해야하는 이유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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