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쇼펜하우어와 관련된 책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철학자들의 철학자로 불리웠으며, 늘 그에게는 비관론자, 비평가, 아웃사이더 등의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삶의 진리를 추구하던 사람이었다. 같은 시대 철학자인 헤겔에 비해 쇼펜하우어의 저서들은 주장이 매우 명쾌하고 지시성이 있어, 요즘에 읽어도 머리에 잘 들어오기 때문에 대중이 찾고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1820년대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를 통해 힌두교와 불교에 관해 알게 되었고, 서양에서 최초로 동양철학의 세련된 점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쇼펜하우어는 서양철학과 동양찰학간의 유사성을 말한 철학자이자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표명한 독창적인 철학자로 꼽힌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토론술은 필수적이다. 취직과 승진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시장에서 물건값을 흥정할 때에도 우리의 의지를 상대에게 설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철학이 아닌 토론술을 다룬 책이다.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고상하고 점잖은 토론지침서라기보다 토론에서 이기는 법을 알려주는 기술을 가르쳐 준다. 자신이 틀렸음을 알고 있음에도 모든 청중들에게 자신이 정당하게끔 보여주는 기술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논쟁에서 이기는 기술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을 통해 논쟁과 토론에서 쏟아져 나오는 간계의 실체를 속속들이 들춰냄으로써 누구나 실제의 논쟁과 토론에서 부정직한 기만들을 금방 알아차리고 나아가 그것들을 물리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토론을 칼 대신 머리로 하는 검술이라고 정의한다. 토론에서는 결투에 임한 검객처럼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칼로 찔러 쓰러뜨리는 것이다.

이 책은 100여년 전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충분히 시사성을 가지며, 오히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요구에 더욱 부응한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 논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논쟁의 본질, 즉 논쟁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의 주장을(혹은 우리가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 반박하는 수단으로는 두 가지 화술과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우선 두 가지 화술에는 '논쟁의 내용과 연관된 화술과 논 쟁상대방과 연관된 화술이 있다. 전자의 경우, 우리는 절대 적이며 객관적인 진리와 상대방이 주장하는 내용이 일치하 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후자를 택할 시에는 상대 방이 이미 인정했거나 주장한 내용이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진리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두 가지 방법에는 '직접반박'과 '간접반박'이 있다. 직접반박은 상대방 주장의 근거를 공격하는 방법이고, 간접반박은 상대방의 주장이 몰고 올 결과를 공격하는 방법이다.
- 다시 말해 직접반박은상대방의 주장이 옳지 않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간접반박은 상대방의 주장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직접반박은 다시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는 상대방의 주장이 의존하고 있는 여러 근거들이 틀렸다는 것 을 보여주거나(상대방 주장의 대전제와 소전제를 문제 삼음), 근거는 인정하되 해당 근거로부터 그의 주장이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상대방의 추론과정을 문제 삼음). 다시 말 해 우리는 상대방이 결론을 이끌어낸 추론형식을 공격하는 것이다.
간접반박에는 '간접증'과 '단순반증'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간접논증은 일단 상대방의 주장을 옳다고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 옳다고 인정된 상대방의 또 다른 주장과 연결하여 이를 특정한 결론을 위한 전제로 사용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준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주장이 자가당착에 빠져있거나 그의 또 다른 주장과 배치되기 때문에 그 결론 이 분명한 거짓임을 밝혀낸다.
이로써 그의 주장은 내용상으로나 그가 인정한 다른 사 실과의 관계에서나 모두 거짓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처음 에 옳다고 인정한 그의 주장 역시 틀린 주장이 된다. 잘못된 전제로부터 나오는 주장이 항상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올바른 전제에서는 오직 올바른 주장만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반증은 상대방이 주장한 개념에 포함되는 여러 개별 적인 경우(사례)들을 직접 증명함으로써 그의 주장의 보편 성을 반박한다. 즉 상대방의 주장이 이 개별적인 경우에 들 어맞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 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 여준다.
- 이것이 모든 논쟁의 기본골격이자 뼈대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논쟁의 기본구조를 알게 되었다. 모든 논쟁은 근본 적으로 이런 기본구조로 소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쟁은 참된 근거를 가지고 진행될 수도 있고 거 짓된 근거를 가지고 진행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이 참된 근거이고, 무엇이 거짓된 근거인지는 쉽게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논쟁이 길고 집요하게 늘어지는 것이다.

- 지금까지 상대방이 내세운 주장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주장이 앞에서 예로 든 종파 나 직업 등의 공동 이익에 배치된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청중은 상대의 논리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근거가 없거나 불충분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것 이다.
반면에 우리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것이 라고 할지라도 올바르며 정확하다고 생각하며, 우리 의견 에 동조하는 합창을 목청껏 부를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상대방은 창피해서라도 자기 입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 이때 대부분의 청중은 자기 확신에서 나온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의 견해에 동조했다고 생각한다.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대개 이성적인 시선에서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 럼 보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베이컨(Bac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성은 기름 없이 메마른 상태에서 세상을 비춰줄 수 있는 빛이 아니다. 이성은 의지와 욕망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그냥 받아 들인다."

-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렇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선택받은 소수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든 것이라고는 허튼 생각뿐이므로 이부 분을 공략하면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한 견해가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 의견의 참에 대한 증명은커녕 그것이 참이 될 개연성의 근 거도 될 수 없다.
만일 그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면 다음의 사실을 수용해야만 한다.
1) 시간상의 거리가 보편성이 가지고 있는 증거력을 빼앗는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한때 보편적 진리로 간주되었던 잘못 된 생각들을 다시 진리라고 주장해야만 할 것이다. 프톨레마 이우스의 천동설, 혹은 모든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카톨릭을 다시 재건하려는 것 등이 그 예다.
2) 공간상의 거리 역시 이와 동일한 기능을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신도들이 생각하 는 보편적 종교관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그들을 당황스럽 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보편적 견해라고 부르는 것도 잘 살펴보면 두세 사람의 견해에 불과하다. 보편적 견해가 어떻게 형성되는 지 잘 관찰해 보면 이런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 우리는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순환논법을 사용할 수 있다.
순환논법이란 선제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주장을 기정 사실화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허구적 논증 기술이다. 즉 증명되지 않거나 앞으로 증명되어야 할 명제를 이용하여 다른 명제를 증명하려는 방법이다.
이처럼 아직 논증되지 않은 내용을 기정사실화하는 방법에 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서로 다른 명칭을 자의적으로 혼용하거 나(예 : '기사의 명예'를 '좋은 평판'으로, '처녀의 순결성'을 '미덕'으로 바꿔서 사용) 서로 바꿀수 있는 개념을 자기 마음대로 혼용하 는 것(예: '척추동물'을 '적피동물'로 바꿔서 사용)이다.
두 번째 방법은 개별적인 문제를 보편적인 문제인 것처럼 확대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학의 불확실성을 증명하면서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은 모두 불확실하다고 기정사실 화 해버리는 것이다.
반대로 두 가지 사실이 대립할 경우, 한 가지 사실만을 증 명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다른 사실도 기정사실로 만들 수 있다.

- 상대방이 우리 주장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 우리는 원래보다 더 불합리한 반대 주장을 함께 제시하여 선택하도록 해야한다.

- 주장의 정당성을 논증하기 위해 상대로부터 '예'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에 상대가 의도적으로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 같은 분위기를 눈치챘다면 처음 의도와는 정반대의 내용을 상대방에게 물어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에게 마치 우리가 원래 의도한 것과 반대되는 내용에 대해 긍정적인 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상대방이 두 가지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 는 고민에 빠지게 만듦으로써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긍정적 인 답변을 얻으려고 하는지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 질문이나 논거에 대해 상대방이 직접적인 대답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다른 내용을 질문하거나 간접적인 답변이 나 내용과 전혀 관계가 없는 말로 피해나가면서 다른 곳으 로 화제를 전환하려고 할 때가 있다. 이는 우리가(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상대방의 약점을 건드렸다는 확실한 신호다.
즉 이것은 우리의 질문이나 논거 때문에 그의 말문이 막혔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상 대방이 이 약점으로부터 도망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건드린 약점이 무엇인지 잘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다.

- 동일한 낱말로 지칭되는 개념들이 유사관계에 있거나 서로 중첩되는 경우, 토론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기술로 이용할 수 있다.

- 상대방의 논거를 역이용하는 기술을 쓰면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 이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용하려고 하는논거를 역이용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기 술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그는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므로 정상 참작이 필요합니다."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상대방의 이 논거를 역이용하여 다음과 같은 역공을 펼 수 있다.
"바로 그가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따끔하게 혼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런 나쁜 버릇에 물들지 않을 테니까요."

- 상대방이 자신의 주장 중 어떤 특정한 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보라고 분명하게 요구했지만 이에 대해 특별한 이의 제기 거리가 없을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사안을 일 반화하여 보편적인 관점에서 반박하면 된다.
예를 들어 왜 특정한 물리학 가설을 믿지 않는지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우리는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의 허위성에 대해 말하고 잡다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면 된다.

- 유사성이 있거나 느슨하게나마 연관성이 있다면, 상대방의 주장을 사람들이 혐오하는 범주 속에 넣는다.

-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질문들은 체계적이며 질서정연하게 할 것이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하라. 그러면 그는 우 리가 그 질문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채지 못할 것이 며, 이에 대해 아무런 사전대비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로부터 얻어낸 대답들을 이용해 여러가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우리는 그의 대답을 이용하여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 상대방에게 우리 주장의 전제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의 시인을 받아냈다면, 더 이상 물어볼 것 없이 이 대답을 근거로 하여 곧바로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심지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제들 가운데 아직 한두 가 지 전제에 대해서 시인을 못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29번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시인한 것으로 간주하고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도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을 근거로 간주하여 상대방을 기만하는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 상대방이 반증거리를 제시하며 우리를 궁지로 몰아갈 경우, 우리 주장을 다시 세밀하게 구분함으로써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이 기술은 토론의 쟁점이 이중적인 의미나 이중적인 경우로 해석될 때 사용할 수 있다.

- 상대방이 우리 주장을 물리칠 만한 논거를 손에 쥐었다는 낌새를 포착했다면, 그가 자신의 논증을 끝까지 밀고 가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적절한 때를 잡아 논쟁을 중단하거나 논의를 다른 방향으 로 돌려놓아야한다. 관련해서는 34번 기술을 참조하면 된다.

- 상대방이 제시한 근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방법이 없을 경우, 미묘한 반어법을 이용하여 자신이 무식해서 무슨 소 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해라.
"지금 당신이 말씀하신 것은 저의 형편없는 머리로는 도 저히 이해할 수 없군요. 당신 말씀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저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그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우리는 청중들에게 상대방이 한 말이 모두 허튼소리라고 중상모략할 수 있다.
칸트(I. Kant)의 『순수이성비판』 출판되고 높은 명성을 누리기 시작할 무렵, 고루한 철학교수들은 "무슨 소린지 하 나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칸트가 주장하 는 내용들을 모두 물리친 것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칸트를 따르는 몇몇 젊은 철학자들이 이 고루한 교수들이 털어놓았던 것처럼 그들이 실제로 칸트철학을 하 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했을 때, 이 교수들은 매우 씁쓸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이 기술은 우리가 청중으로부터 상대방과는 비교되지 않 을 정도로 존경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설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이를테면 교수 대 학생의 관계 같은 경우다. 원래 이 기술은 2번에서 설명한 기술에 속하며, 합당한 근거 대신 자신의 권위를 악의적으로 이용한다.
이에 대한 반격은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무슨 말씀을 하 시는 겁니까? 당신의 탁월한 통찰력에 비춰봤을 당신이 제 말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모두 제가 설명을 잘못드린 탓이겠죠."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이 사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좋든 싫든 간에 이것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로써 그가 애당초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명 하게 드러난다.
상황은 다시 역전된다. 즉 상대방이 우리 주장을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매도하려고 했지만, 우리는 그가 우리 주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2번과 마찬가지 로 이 기술은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사용해야 한다.

- "그것은 이론상으로는 맞지만, 실제로는 틀립니다."
이와 같은 궤변을 통해 우리는 상대방 주장의 근거는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있다.
이것은 '논리적 추론은 당연히 근거로부터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는 규칙과 모순된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론상 으로 옳은 명제는 실제로도 올바른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 다. 이것이 맞지 않다면 이론의 어딘가에 오류가 있든지, 아 니면 무언가가 간과되거나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론상으로도 틀렸다.

-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처럼 상대방을 화나게 만드는걸까? 영국의 철학자 홉스(Hobbes)는 『시민론』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인간이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훨씬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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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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