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카페

인문 2023. 8. 22. 15:33

- 소크라테스 대화법은 스스로 진리를 찾으려는 하나의 방식이다. 또한 체계, 정신, 방법, 철학적 문답의 한 형태이자 지적 기술이 며, 이 모두가 통합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에 있어 한 번도 '방법'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소크라테스 대화법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무엇 보다 소크라테스가 '실천하는 철학', 즉 행동으로서의 철학, 삶의 방 식으로서의 철학, 누구든 할 수 있는 일로서의 철학을 완전히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하나의 질문을 여러 관점에서 살펴 볼 수 있는 철학적 문답의 '열린 체계'이다.
소크라테스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프린스턴의 철학 교수인 그레고리 블라스토스 Gregory Vlastos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 '인류의 가 장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유가 뭘까? 그에 따 르면,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으로 철학 탐구가 “모든 사람에게 개방 된 보통 사람의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대화법은 특별한 철학적 견해, 분석 기술, 전문용어 등에 전념할 필요 없이 보통 사람의 상식과 일상용어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블라스토스 교수가 말했듯이, 이런 조건은 당연하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의 문제는 모든 인간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 학자들은 소크라테스 대화법을 엘렝코스elenchus 라고 하는데, 그리스어로 '정밀 조사' 또는 '반대 심문'을 뜻한다. 그러나 엘렝코 스는 그냥 조사나 심문의 한 종류가 아니다. 엘렝코스는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도록 하고, 자신의 의견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 하는지를 알게 하는 대화법이다. 리드 대학 (Reed College)의 철학 교수인 C. D. C. 리브C. D. C. Reeve박사는 엘렝코스에 관해 이렇게 설 명한다. "엘렝코스의 목적은 단순히 덕목에 대해 적절한 정의를 내 리는 것만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도덕적인 교화의 목적도 있 다. 소크라테스는 반대 논증을 이용한 철학적 사색을 규칙적으로하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무엇보다 도덕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적 사색이 인간의 행복에 매우 중요한 만큼 그 자유를 빼앗기느니 차라리 사형을 받겠다고 했다."
- 소크라테스 카페에서는 예를 들어 (실제로 질문으로 제기된 적이 있었 던) "고독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싶을 때 명 심해야 할 태도가 있다. 처음부터 질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야 한 다. 이런 태도에 따라 위의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우리는 항상 고독을 극복하기를 원할까?" 가령 셰익스피어와 괴테는 고독 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받아들였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 한 걸작을 창조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고독에 대 해 많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고독에도 정도가 있고 종류가 다양 할까?", "상황에 따라서 극복하고 싶은 고독이 있고 또 자신의 일부 로 받아들이고 싶은 고독이 있을까?"
이런 질문에 효과적으로 답하려면 우선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질문 을 던지고 답해야 한다. "고독이란 무엇인가?", "고독을 극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도대체 왜 고독을 극복하기를 원하는가?", "고독의 다양한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런 고독의 종류들을 나누는 기준이나 특성은 무엇일까?", "세상과 단절한듯 완전한 고독의 세계로 빠지는 것이 가능할까?" 그 외에도 수없이 많 은 질문이 있다.
소크라테스식 철학 문답에 완전히 매료된 사람들은 질문을 즐긴 다. 그들은 질문이 고갈되는 법이 없고, 질문하는 새로운 방식도 끊 임없이 찾아낸다. 나는 소크라테스 카페에서 열정적으로 철학적 문 답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질문의 화신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수학자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는 확실성을 탐구하기 위해 수학적 방법을 모든 지식으 로 확장하려고 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에서 알 수 있듯이,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능력으로 자신이 실제로 여기에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 EImmanuel Kant의 관점은 데카르트와 상당히 달랐다. 칸트의 '비판 철학'에 따르면, 생각은 반드시 외부 세계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은 인간 정신의 구조와 일치하는 정도로만 알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칸트에게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 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순수이성비판Critique of Pure Reason》에서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다. 그 러기 위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긴 세 가지 질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에 답하고자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삶의 역경을 견뎌낼 가치가 있도록 만들기 위해 사람은 모두 자신의 삶에서 독특한 이유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 소피스트는 강의를 했다. 소크라테스는 '순전히' 질문을 했다. 소피스트는 교육, 미덕, 인간의 탁월성에 대해 말로 설명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으로 세밀하게 보여주었다. 인간의 내적 개선 즉 진정한 '영혼의 치료'를 이뤄냈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받고 지적 성장의 아픔을 경험하는 것은 고통스러웠 다...소크라테스는 지혜를 강조했고, 가치 없는 통찰력은 받아 들이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와 동떨어진 문제를 살펴 보는 무심한 질문자가 아니라 삶을 탐구하는 데 완전히 몰입 하는 인물이었다.
라슬로 베르세니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고, 타당한 주장으로 변론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증명할 수 있음을 의미 한다. 그리고 순차적인 긴 추론으로 붙잡은 결론을 내리는 것을 뜻 한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은 우리가 예리하고 열정적인 정신을 갖추고, 위대한 사상을 고찰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질문과 문제를 숙고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특정 철학을 옹호하거나 반대로 근거가 없다고 주장할 때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도록 한다. 그러면 매우 통찰력이 날카로운 사상가들의 철학이라도 종종 명백 한 결점이 있음을 알게 되고, 우리는 모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 인 존재라는 사실을 거듭 깨닫는다.

- 기원후 1~2세기에 노예에서 해방되어 철학 학교를 세운 스토아 학파의 도덕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는 우리가 모든 요소를 통제 할 수는 없으나 파란만장한 삶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자율적인 존재라고 믿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자연이 주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이와 유사하게 니 체는 우리가 운명의 완전한 주인은 아니지만, 수동적인 희생자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니체는 우리가 운명과 더불어 삶을 창 조해 나가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외 부의 힘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필요한 영향력 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좋건 나쁘건 우리가 의도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를 독특한 존재로 만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 도로시 할머니의 말에 나는 몽테뉴가 소크라테스를 찬양한 글이 떠오른다. "소크라테스의 삶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은, 그가 노년 에 시간을 내 춤과 악기 연주를 배우고 그 시간을 보람 있다고 생각 한 사실이다." 몽테뉴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도로시 할머니가 간직하는 노년의 삶에 대한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는 명언을 남겼 다. "내가 살아갈 날이 짧을수록 삶을 더욱 깊고 충만하게 만들어야 한다."

- 괴테는 19세기 말의 진정한 소크라테스식 질문자였다. 종이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떤 일에 전념하기 전까 지는 망설임이 생긴다. 망설임에는 뒤로 물러날 가망성이 있으며 늘 비효율적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창조하는 모든 일에는 하 나의 기본적인 진실이 있다. 이 진실을 알지 못하면 수많은 아이디 어와 멋진 계획들이 사라지게 된다. 그 진실은 바로 이러하다. 분명 히 어떤 일에 착수하는 순간, 그 결정에서 모든 사건의 흐름이 나온 다. 그 흐름은 온갖 종류의 보이지 않는 사건과 만남 그리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물질적 지원으로 지어진다. 할 수 있거나 할 수 있다 고 꿈꾸는 그 모든 일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천재성과 능력,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 바로 지금 시작하라."
나는 종이를 다시 접어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뉴저지에 도착하자마자 메모지를 조수석에 놓고 붉은색 매직펜으로 해야 할 일을 크게 적었다.
- 대학을 졸업하고 저널리스트로 여러 해를 보내면서 나는 혼자 철 학서적을 매우 열심히 읽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월터 카우프만이었다. 대부분의 학계 철학자들과 달리 카우프만은 우연히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한 철학자였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질문하기를 좋아하는 열정을 잃지 않았으며 평생 그 런 마음을 품고 길렀다. 카우프만은 니체의 많은 서적을 독일어에 서 영어로 정교하게 번역한 일로 학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또 그 는 매우 독창적인 철학 서적들을 펴냈고,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의 삶에 중심이 되는 문제를 다루며 자신만의 폭넓은 철학 체계를 이 뤄냈다. 카우프만은 비판적이고 열정적이며 소크라테스식으로 작문했다.
카우프만은 이단자의 믿음》에서 다음과 같이 깨달음을 주는 글을 썼다.
살면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시간을 낭비하는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주도록 하자... 치열하게 삶을 살 아간다면 잠자는 시간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열정적으로 삶 을 즐긴다면 죽음의 시간이 축복으로 다가온다. 나는 영원 히 견딜 수 있는 삶을 바라지는 않는다. 사랑과 열정과 고통과 창조의 삶을 바란다. 하룻밤 잠을 잘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면 죽을 자격도 있다. 왜 나는 다시 깨어나기를 원해야 할까? 내가 깨어 있는 시간에 못했던 일을 하기 위해서일까? 우리는 모두 많은 시간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삶을 망치고 형 편없이 만들어놓는 이유는 죽음이 내게서 멀리 있고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과 만나기로 되어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고 말하 는 것은 끔찍한 일이 아니다. 정직함을 업신여기는자들은 그 기쁨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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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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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지리학자 폴 비달 드라 블라슈Paul Vidal de la Blash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지역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요소들을 그들 자신의 필요에 의해 하나의 체계적인 상호 연관된 요소들로 변형시 킴으로써 지역의 특성을 만들어간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특정 지역 은 다른 지역들과 구분될 수 있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게 되고, 이지 역적 특성은 결국 그 지역 주민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
이 문장의 핵심은 마지막에 있습니다. "지역적 특성은 결국 그 지역 주민들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라는 말은 곧 '지역은 우리의 삶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실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 다. 결국 장소는 사람의 공간적 자화상이며,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 들의 참모습이 왜곡 없이 가장 솔직하게 반영된 실체인 것입니다.
- 현대 대도시 경관의 전형, 즉 외관상 특징은 모더니티 양식으로 불리는 장식 없는 직육면체의 마천루들이 도심부를 차지하는 모습 일 것입니다. 모더니티는 이성, 과학적 합리성, 보편주의, 질서, 표준 화, 기능 및 효율성 등을 강조한 것으로 세상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 고 실제적인 시각을 반영한 사상입니다. 전통적인 권위 대신 도시의 시민 생활과 기계문명을 향유하고자 하는 편리성과 효율성이 중시 되었고,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에서도 '계획'의 의미가 적용되었습 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급성장한 기술 발전으로 인구가 급증하 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모더니티가 가속화되었고, 19세기~20세기경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마천루를 비롯한 고가와 도로, 고속 도로, 공항, 댐, 항구, 공업단지, 아파트단지 등이 대거 등장했고 경제적·사회적 발전을 이루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모더니티를 Less is More (단순할수록 풍부하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말부터 모더니티 양식의 공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모더니티는 어떤 기후, 문화, 도시에도 모두 적용할 수 있는 합성재료, 표준화, 효율적인 대량생산 등 균일하고 보편적 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몰개성화와 획일화를 유발하여 진부하고 건조한 경관만을 조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더니 티는 과거와 달리 'Less is Bore (단순할수록 지루하다)'이라는 평가를 받 게 되었고, 이에 따라 포스트모더니티 postmodernity가 등장했습니다.

- 핵심지역-주변지역 간 지역 격차 강화 이론
누적적 인과관계 cumulative causation 란 외부경제, 집적의 효과, 국지 화경제 등의 요인들에 의해 특정 지리적 환경에서 누적으로 발생하 는 경제적 이점을 말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웨덴의 군나 르 뮈르달Gunnar Myrdal이 주장한 이론으로, 지역의 원천적인 이점으 로 인해 집적 및 군집의 효과가 발생하며 이에 따라 지역의 경제력 이 누적적으로 강화된다는 이론입니다.
뮈르달에 따르면, 특정 지역에 효과가 누적되어 발생하면 다른 지역에서 이 지역으로 인력과 자본 등이 유입됩니다. 이렇게 되면 특정 지역에 한정된 누진적 효과는 주변의 경제발전 정도가 부진한 지역에 부정적 효과를 유발합니다. 즉 자유로운 시장 메커니즘에서는 지역 불균형을 유발하는 요인이 존재하고, 빈곤한 국가일수록 이 불균형은 더욱 심화된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키블 David Keeble은 뮈르달보다 더 자세히 이 이론을 설명하고 있는데, 특정 중심지에서 개발이 시작되면 누적적 인과관계를 통해 중심지역의 성장이 더욱 강화되어 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개발된 중심지역에 서 새롭게 입지한 산업이 다른 지역의 산업을 끌어들이기 때문입니 다. 또한 성장을 가져오는 경제적 힘은 중심지역과 배후지역과의 상 호작용을 통해 유지되고 강화됩니다. 그러나 이 상호작용은 낙후지 역의 자본과 노동이 성장지역으로 유출되는 형태이므로 상품 교역 과 생산요소의 이동은 균형이 아닌 불균형을 초래합니다. 그 결과 지역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된다고 설명하며 이는 지역 불균형 현상을 해석할 때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용어로 역류효과 backwash effects가 있습니다. 역류효과란 중심지의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중심지역의 산업이 주변의 노 동력과 자본을 흡수하고, 주변지역의 산업을 잠식하여 주변지역의 발전을 저해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바로 이 역류효과가 지역 격차를 심화시킨다고 봅니다. 역류효과로 인해 다른 지역의 경제발전이 특정 지역에 미치는 부정적 요소로는 인력과 자본 등의 유출, 지역 세 수입 기반의 약화, 누진적 효과의 발생 저해 등이 있습니다. 학자들 은 역류효과를 지역 간 경제발전의 격차 발생 및 핵심지역-주변지 역의 형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 핵심지역-주변지역 간 지역 격차 완화 이론
누진적 효과와 역류효과가 지역의 경제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는 있지만, 지역의 경제발전 과정은 이러한 요 인들로만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만약 누진적 효과와 역류효과만으 로 지역의 경제발전 과정이 설명된다면 지역 간 경제력의 격차는 극 단적으로 첨예화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우리나라와 중국 등 의 경제발전 과정은 이러한 요인들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따라 서 반대로 핵심지역-주변지역 간 지역 격차가 완화된다는 이론도 있는데, 그 요인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파급효과 spread effect를 들 수 있습니다. 파급효과는 다른 지역의 경제발전이 특정 지역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로, 중심지의 성장이 주변의 자원 개발과 기술 발달을 촉진하여 주변지역의 산업 을 발전시키는 효과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핵심지역의 경제성장으 로 인한 식량의 수요 증가, 핵심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원료 및 부품 의 수요 증가, 핵심지역에서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기 위한 노동력의 수요 증가 등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한 나라 안에서 1인당 경제성장량 증가로 인해 수요 는 많아지고 공급이 부족해지면 주변지역에서 부족한 만큼을 수입 하게 됩니다. 이때 주변지역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수출이 이루어지는 긍정적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즉 핵심지역의 경제 활성 화에 따른 수요 증가는 주변지역에 확산 효과를 유발하여 지역 경제 발전의 동기를 제공한다고 봅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일본과 미국의 경제발전으로 파급효과를 누린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 습니다.
두 번째는 수입대체입니다. 한마디로 수입대체산업을 통해 격차 를 완화한다는 것인데, 수입대체산업이란 수입 상품을 국내에서 직 접 생산 및 충당하는 산업을 말합니다. 외국에서 상품을 수입하는 일은 무역수지 면에서 감소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소득 및 고용에 서도 여러 가지 부정적 요소를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무역수지 적자인 주변지역에서는 가능한 한 수입 상품을 국내 생산품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무역수지 개선을 위한 소극적 방안으로 수입대체산업(수입 절약 산업)을 육성하는 것 이지요. 19세기 및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입대체는 일본 경제발전 의 토대이기도 했습니다. 즉 핵심지역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을 복사 생산하여 자국의 고용효과를 증진하고 국가 수입을 늘리는 것입 니다.
세 번째로 핵심지역의 내부적 요인으로 인해 핵심지역-주변지 역 간 격차가 완화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핵심지역 내부 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누진적 효과 때문에 격차가 완화된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집적의 비경제agglomeration diseconomies를 들 수 있습니다. 집적의 비경제는 도시화와 산업의 집중으로 발생하는 경제 측면에서의 부정적 효과(높은 토지 및 노동비용, 교통 체증 비용, 물류비 용 증가, 높은 세금 부담 등)를 말합니다.

- 19세기의 유럽 제국주의는 세계의 주변지역 에 그들의 상업적·정치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식민도시를 많이 건설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식민도시는 유럽 식민지 정책이 낳은 독특한 산물이기도 합니다. 식민 지배를 받았던 주변지역들의 식민도시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식민세력(핵심지역)에 의해 직접 건설되거나 거의 건설된 도시입니다. 순수한 혹은 순전한 식민도시the pure colonial city 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곳은 식민세력 유입 이전에는 도시 기능이 거 의 없다가, 식민화 이후 식민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정치·경제·군 사·문화적 기능들이 부여된 도시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 식민지 시 절 명칭인 봄베이 Bombay로도 알려진 인도의 뭄바이Mumbai, 베트남의 호찌민 Ho Chi Minh City, 필리핀의 마닐라Manila, 영국령 홍콩British Hong Kong(1841~1997)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 식민도시들은 식민세력 인구가 유입되고 취업 기회가 많아 지면서 주변 지역에서도 인구가 몰려들었고, 도시인구가 급속히 증 가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즉 자연발생적인 인구 증가가 아니라 선진 세력의 유입에 따른 사회적 인구 증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식민지의 기능이 이입된 도시로서, 원래 도시였으 나 식민세력이 들어오면서 더욱 이국화된 도시를 말합니다. 즉 식민 화되기 이전에도 이미 도시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식민지가 되면서 도시의 입지적 이점과 풍부한 노동력에 식민지 기능이 이입되며 더 욱 발달한 도시를 의미합니다. 자체적으로 성장하던 도시가 식민세 력에 의해 이용당하는 도시가 되어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도시에는 기존의 전통적인 도시경관에 식민세 력이 건설한 건축물들이 혼재된 경관을 보입니다. 인도의 델리Delhi, 멕시코의 멕시코시티Mexico City, 중국의 상하이Shanghai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일부 항만도시도 이에 해당하는데, 한 예로 전라북 도 부안군에 위치한 줄포의 곰소항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국에서 착취한 농산물과 군수물자를 반출하기 위해 항만을 구축할 도로와 제방을 축조하여 육지가 되면서 만들어진 항구입니다. 지금은 작고 조용한 항구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줄포에는 아직까지도 시골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넓은 도로가 그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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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었을 때에도 지금과 같은 작업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바로 '나이가들면 더 강해지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가 얼마나 진실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면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나이 들면서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또 스스 로를 폄하하며, 노인들을 차별하는 사회 분위기가 여전하도록 나도 모 르게 동조했던 것에서 차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또 '나이 듦'에 관한 고리타분하고 틀에 박힌 생각에서도 차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해에 도달하려면 노년의 엄청난 잠재력을 깨달아야 한다.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또 창조적인 방식으로 나이 드는 법을 배워서, 마냥 자신을 가라앉히는 '늙었다'는 기분에서 벗어나도록 하자.

- 오늘날의 고령자들이 바라는 것은 마법의 물도, 젊음을 되찾아준다는 약속도 아니다. 으레 사람들이 자신의 노후를 그려왔던 것처럼 퇴직 후에 고단한 몸을 추스르면서 죽기 전 몇 년 동안 편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에 가깝다. 그들은 나 이가 많아진 덕분에 누릴 수 있게 된 삶을 알차게 경험하고자 한다. 그 러다 보면 그들에게는 노년이 으뜸이고, 젊음은 단순히 거쳐 가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 나이가 우리를 규정하는 수단이 되거나, 우리의 삶을 제한하고 부 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만 작용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나이 드 는 것을 스스로 무엇보다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나이 드는 것 을 축하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를 옭아매는 세상의 낡은 방식들을 초월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평생에 걸쳐 탐색 하고 성취해왔던 것들을 비로소 재미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 노년은 지나온 삶의 나날을, 완전한 한 벌의 옷처럼 입을 수 있게 해준다. 이런 관점에서 본 노화는 자아의 해체와는 정반대다.  (매티스 와인버그Matis Weinberg, 「체계Frame Works』)
- 루이스의 말에 따르면, 불교가 처음 형성된 시기인 2000여 년 전에 는 평균 기대수명이 짧았고 사람들은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불교 사상에 이중적인 관점이 자리 잡았다.  바로 삶이 덧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더 귀하고 아름다워 진다는 것이다. 나이 듦의 목적은 삶의 목적과 다르지 않으며, 그래서 노년을 인생의 다른 시기들보다 가치가 덜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 히려 그 반대다. 노화는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가치와 깨달음, 혹은 지혜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본다. 
- 가령 살아갈 날이 며칠 안 남았다고 상상해보라.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가만히 쪼그리고 누워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 겠지만, 대다수는 본능적으로 가장 소중한 사람들, 물건, 음식을 찾으 며 마지막 남은 순간의 의미와 기쁨을 최대한 누리려고 할 터이다. 물 론 노화는 그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인생의 지평을 보다 날카 롭게 볼 수 있는 과정이다. 노화는 그 자체로 삶을 질적, 양적 측면에서 모두를 개선시키는 동기가 된다는 것이다.

- 고결하고 덕 있게 살아온 삶은...지금까지의 노고를 행복하게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노년을 완성한다. (키케로CICERO, 「노년에 대하여on Old Ages)
- 주민들의 퇴행성 · 진행성 정신 질환이 나이가 들면서 호전되는 것 을 보면, 팜헤이븐은 여러모로 볼 때 마이애미의 샹그릴라 같은곳이었 다. 그들의 인생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수학자이자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모델인 존 내쉬의 유명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존 내쉬는 편 집 조현병이 발병하면서 뛰어난 학자로서의 여정을 갑자기 중단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러서 증상이 거의 사라졌으며, 연구하고 가르칠 능력이 새로 생겨났다. 존 내쉬와 같은 사람들은 나 이 듦에 관한 놀라운 역설을 드러낸다. 우리 몸과 두뇌가 측정 가능한 양상으로 퇴보하는건 분명하지만, 전체적인 기능은 전과 다름없이 안정적으로 작용하며 어떤 측면은 오히려 개선되기도 한다.
-  '지식, 판단, 공감, 창조성, 통찰의 중요한 다섯 가지 긍정적인 성향은 나이가 드는 과정을 통해서만 지속적으로 발달한다. 가장 현실 적이고 유익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은 이런 특성들에 좌우되고, 이에 발맞추어 성장한다. 이 다섯 가지가 합해지면, 나이 듦의 가장 큰 선물 인 '지혜'가 된다.
- 나이가 들어 은퇴하거나 역할 변화가 생기면, 무언가 창의적인 활동 에 나설 자유가 더 많이 생긴다. 잠재적인 다양한 해법을 모색하는 확 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는 창조성의 핵심인데 이런 확산적 사고는 노 년에 강화되기도 한다. 앞서 보상과 연관된 신경회로의 활용이나 반구 비대칭감소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던 것처럼, 노년의 두뇌에서는 여러 다른 영역에서 더 많은 활동이 나타난다. 생각하는 방식에서 감정적 으로 민감한 반응이나 융통성 없는 태도의 구속을 덜 받기 때문이다. 노인의 두뇌는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이나 공동체와 연계하는 독창적인 방법을 추구하고자 하는 동기적 측면의 비축분을 구축한다." 창조자로서의 지혜는 과거의 지식과 기술에만 반드시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다른 네 가지 지혜와는 흔히 구별된다. 나이 들어서 과거 경력과는 큰 관련이 없는 창조적인 활동, 즉 완전히 새로운 활동에 몸담은 운동선수, 취미 활동가, 화가, 장인, 이야 기꾼을 한번 생각해보자.
이들에게는 학자, 현자, 관리자, 예지자의 요소가 분명히 존재하지 만 이들의 진정한 강점은 과거에서 벗어나면서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 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순전한 모험심 또는 공동의 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도전에 기꺼이 나선다.
- 엄밀히 말하면 '예지자seer'라는 단어는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 혹은 하늘이 내린 지식을 받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의 시야를 넘어서 보는사람see-er'을 뜻한 다. 이 글에서 논하는 예지자의 경우 비범한 시야나 통찰력이 있는 사 람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을 지칭하는 건 아니다. 그런 정의를 염두에 둔다면, 예지자의 사고방식은 자기 성찰적이고, 탐 구적이고, 영적이다. 이들은 내적으로 숙고하며, 외적으로 다른 이들 과 교감한다.
예를 들면, 어떤 예지자들은 명상을 하면서 고독과 평온을 찾고, 해 결해야 할 문제를 깊이 생각하거나 취해야 할 반응을 궁리할 시간을 갖는다. 또 어떤 이들은 영적인 관심을 종교적인 믿음과 관례에 맞추고, 종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큰 만족을 찾는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예지자들은 이런 방식을 실천하고 다른 이들과 교류하면서 육체적으 로나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지고, 결과적으로 더 오래 살게 된다.
예지자의 지혜는 변화에 대처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가 가르침을 구하고 도움을 받고 영감을 얻기 위해 서 예지자들을 찾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할 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대부분 떠올리는 이미지는 묵 묵히 그리고 평온하게 삶의 지평선 너머에서 우리가 건너오기를 기다 리는, 바로 이런 예지자의 모습이다.
나이 듦의 여러 요소 중에서, 눈에 보이는 경계를 초월하는 이러한 예지자의 지혜는 매우 중요하며 가장 강력하다. 예지자들은 인간의 삶 을 에워싼 보다 큰 힘에 친숙하며, 죽음이란 삶의 임무가 끝나는 예견 된 결말이라고 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노인학자 라스 톤스탐은 '물질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에서 보다 '장대 하고 초월적인 관점'으로 바뀌는 이런 관점의 변화를 '노년의 초월감 gerotranscendence' 61이라고 일컬었다.

- 노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각자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단순히 생존하는 것으로만 만족할 것인지 각자 자문해보아야 한다. (로버트 버틀러Robert Butler, 왜 생존하는가? Why Survive?』)
- 나이 듦의 위력을 갈수록 많이 느낀다. 목적의식을 갖는 것은 나이 듦 의 산물이자 가장 훌륭한 도구이다. 우리는 목적의식을 인식조차 잘 하지 못하지만, 사실 목적의식 덕분에 더 건강하게 지낸다. 장애물과 부딪치거나 연령점과 맞닥뜨렸을 때 그리고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우 리는 목적의식을 무기 삼아 버틴다.
그런 맥락에서 목적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는 과거를 돌아 보고 좋고 나쁜 것 모두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얼 굴은 동시에 앞을 바라보면서 과거에서 유래한 방향, 목표, 의미를 가르쳐주고 삶의 이유를 제시한다. 

- 나이 듦 그 자체는 우리가 젊은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진코헨Gene Cohen, 「창조적인 노화The Creative Ages)
- 리는 과거를 잊을 수 없지만 힘과 영 감을 얻기 위해 자주 돌아보아야 한다. 한편 어떤 역할, 목표, 열정을 평 생 변함없이 추구할 수는 없다. 신체적인 민첩성과 지구력이 필요한 활 동처럼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능하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나 퇴행현상이 나타나면, 전에 했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또는 새 로운 방향에서 새로운 시도에 나서야 한다.
또 과거에 누렸던 일부 조건을 거리낌 없이 내려놓고 새로운 모습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야 한다. 자기 정체성과 남들과 관계를 맺는 방 식을 재창조하는 과정은 처음에는 더디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 록 속도가 붙는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 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다.

-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 위해 그토록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 나는 '나이가들면 더 강해지는 능력이 있다'는 주장으로 이 책을 시작했으며, 세 가지 질문과 그 답을 중심으로 논리를 펼쳐왔다.
왜 나이가 들까? 지혜를 키우기 위해서
왜 생존해야 할까? 목적을 깨닫기 위해서
왜 성장해야 할까?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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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라는 곳을 들어가면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지 않고 공식적인 교육제도하에서 버텨낼 도리가 없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리포트를 제출하고, 논문을 쓰고,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한다. 취업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젠 생존을 위한 글쓰기가 시작된다. 업무보고 및 지시가 메신저나 보고서의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을 일목요연하게 잘 쓰는 사람이 진급고 빠르고 돈도 많이 벌 가능성이 커진다.

직장을 그만두면 글쓰기를 안해도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제2의 인생 혹은 인생 2모작을 하게 될 경우 글쓰기는 제2의 인생을 극명하게 바꾸어 놓을 수 있다. 관련분야에 대한 책을 쓰거나 블로그에 연재를 하면 전문가로 인정받아 같은 수준의 강사보다 어 많은 보수를 받거나 더 많은 강의를 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글쓰기 기본기 7가지 방법, 글쓰기 스킬 9가지 방법, 고난도 글쓰기 스킬, 실전 글쓰기의 순서로 글을 쓰고자 할 때 주의해야 할 기본기를 설명해 주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돈버는 글쓰기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으며, 마지막 챕터에서는 챗GPT로 창조적인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다.

챗GPT가 국내에 소개된 이후 글쓰기와 관련된 인간의 여러가지 작업들이 모두 컴퓨터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예측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이런 열풍이 지나가고, 챗GPT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활용하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의견이 등장하면서 챗GPT를 활용하는 여러가지 실용서적도 등장하고 있다.

챗GPT의 문제는 같은 걸 물어봐도 다른 답을 계속 내놓고 다른 답을 한다는 걸 알아채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알아채는 주체에 해당하는 뭔가가 없다. 순전히 무작위다. 그리고 챗GPT는 너무 쉽게 고친다. 고정된 몸이 없다. 따라서 생성 인공지능에서는 생성물의 변덕성에 주목해야 한다. 미드저니, 달리, 스테이블디퓨전 같은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도 그렇고 챗GPT 같은 언어 생성 인공지능도 그렇고 가끔은 번역 인공 지능도 그러한데, 조금만 다른 프롬프트를 주면, 아니 심지어 같은 프롬프트를 주더라도 생성물이 크게 바뀐다. 인간으로 치면 매번 생각이 바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휘발성이 강해 매번 새롭다. 학습된 모델 자체는 엄청난 잠재 기억 덩어리지만, 인공지능에서는 생성물이 변덕스럽게 달라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챗GPT를 활용해서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내가 원하는 웹소설, 동화, 자기소개서 등을 작성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독창적인 사고일 것이다. 
글을 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생각이다. 생각의 출발은 풀어야 하는 문제다. 문제를 풀려면 데이터가 필요하고, 데이터를 잘 이해하고 요약하고 정리할 수 있어야 하며, 데이터를 압축해야 하고, 데이터에서 플러스알파를 추출해야 한다. 데이터란 남들이 기왕에 찾아낸 해결의 단서다. 문제가 크게 새롭지 않다면 남들이 제공한 데이터를 적절히 조합해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새롭다면 데이 터를 토대로 자신이 직접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문제여야 보람이 있다. 지식이건, 콘텐츠건, 돈벌이건 간에 말이다.
글쓰기는 문제의 발견, 데이터 처리와 종합, 플러스알파의 추가, 멋진 표현이 합쳐지는 과정이다. 이 점에서 나는 글쓰기가 생각의 싸움을 위한 근력과 관련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챗GPT가 좋은 답을 내놓게 하려면 질문을 잘해야 한다거나 답을 잘 유도해야 한다는 이 야기가 있다. 맞는 말이지만 조건이 있다. 질문자가 던지는 문제가 새 롭거나, 질문자가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거나 답을 평가할 능력을 지 니고 있어야 그것이 성립한다. 즉 생각의 근력이 길러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생각의 근력을 키우기 위해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해 낸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는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풀기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압축하고, 새로운 생각을 보태고, 자신과 남이 알아 들을 수 있게 표현하는 전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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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기심과 흥미를 따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번 걸어가 보세요. 편한 길을 선택했을 때보다 결과적으로 스트레스 가 훨씬 적을 것이고, 개인적 성장과 사회적 평가와 경제적 안정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무엇보다 날마다 생 활이 즐거워집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해야 몸과 마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 자기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싶으면, 일단 멈춰서서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 가 있습니다. '주변에서 좋게 여기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하니까요.
자신이 만족하는 삶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전보다 훨씬 쉬울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를 기준 으로 선택하고, 머리로 이것저것 생각하기보다 마음의 반 응을 소중히 여기기만 하면 됩니다.
인생에서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 먹고 싶은 음식, 만나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 장소,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휴일에 하고 싶은 일 등등.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선택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에 설레고 무엇 을 싫어하는 사람인지, 어떤 환경에서 기분이 좋아지는지 알게 됩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면 만족할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행복할지도 시나브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란 누구나 제일 잘 알 듯하면서도 제일 모 르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회사에서 일한 사람, 가족을 우선하여 산 사람일수록 지금 한 번쯤 자신을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만족과 자기 행복을 추구해 나가려면, 결국은 자기를 기쁘게 만드는 것을 발견하여 거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판단 기준은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이다
- 50부터는 '나중에 얼마나 성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느냐'보다 '지금 얼마나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채울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회사에서 일하는 40~50대라면 곧 다가올 정년 후 에 다른 일을 시작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봅시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 하고 싶은 일', '언젠가 꼭 하고 싶은 일' 등 몇 가지 선택지를 찾 아 놓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할 것입니다.
진정한 '안정'은 변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변화하면서 유연하게 균형을 맞추는 상태입니다. 자신의 마음도 주변 환경도 계속 변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 처음부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고수입까지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우선 일을 목적에 따라 셋으로 나누어 봅시다.
라이스 워크 : 밥을 먹기 위한, 즉 생계를 위한 일
라이크 워크 : 좋아하는 일, 즉 욕구 충족을 위한 일
라이프 워크: 보람과 사명감으로 추구하는 일
- 특히 50부터는 성장하고 싶다면 전보다 더 의식적으로 새로운 정보·환경·사람을 접하여 내면의 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소소한 행복'과 '자기 가능성을 추구하는 행복'은 전혀 다릅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기 목숨을 태운 후에야 얻을 수 있습니다. 마라톤을 완주했을 때, 꾸준히 추진한 일에서 성 과를 냈을 때, 자녀의 성장을 확인했을 때 눈물이 날 듯이 기뻤던 것은 그만큼 수고하며 역경을 극복했기 때문이 아 닐까요? 그러므로 행복을 얻고 싶다면 역경을 피하지 말고 역경이 기다리는 곳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를 아는 것은, 여행할 때 목적지를 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목적지는 나중에 변경해도 됩니다. 그러나 목적지가 없으 면 막연히 방황하거나 남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기 쉽 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를 필요로 하는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혼동하여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게 됩니다. 특히 불안·초조·고독을 느낄 때는 판단을 그르치기 쉬우므로 더 조심해야 합니다.
꿈을 따르고 몰두하면서 10~20년쯤 살다 보면 결국 상 당히 큰 뜻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직업이 아닌 자원봉사나 사회 공헌, 또 취미 활동이라도 괜찮습니다. 일단 어떤 영역 에서든 큰 뜻을 품으시길 바랍니다.
- 40~50대는 지금까지 실적 · 인맥·환경 등을 구축해 온 현 직장에서 일하기가 아무래도 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장 소에만 집착하면 주위와의 인식 차이를 눈치채지 못하게 되어 버립니다. 정치나 경제계 등에 특히 그런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특히 남성이라면, 일찌감치 한 개인으로서 사회에 공헌할 방법을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50세부터 개인으로 활 약하는 여성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은 여성 특유의 유연성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출산과 육아로 조직에서 방출되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기를 먼저 거쳤기 때 문일 수도 있습니다.
50부터 활약하려면 회사에서 일할 때부터 한 개인으로 사회에 어떻게 공헌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남 을 위해 앞에 나설 줄도 알고 뒤로 물러설 줄도 압니다. 그 래서 회사 안팎에서 그를 찾는 사람이 생기고, 개인 사업을 해도 잘 풀리는 것입니다.
- 50부터 꽃을 피우려면 어떤 사람과 어울리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과감히 도전하는 사람, 호기 심과 탐구심이 넘치는 사람들과 사귀다 보면 자연스레 감 화되기 마련입니다. 나이 때문에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는 사람, 줄곧 똑같은 푸념만 늘어놓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어 느새 물들어 버려 더 이상 성장을 멈추게 됩니다.
40~50대가 되면 각자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목적이 명 확할수록 만나는 상대도 취사선택하게 되죠. 이때는 함부 로 많은 사람과 어울리거나, 어쩌다 얽힌 사람에게 맞추려 고 애쓰는 것을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여행, 한번 해 보고 싶은 취미· 놀이·배움, 참여하고 싶은 이벤트, 미리 해 두고 싶은 효도,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기 등을 1년 단위로 꾸준히 실천해 나가면 어떨까요?
앞일을 너무 세세히 정하지 말고 '일단 1년은 이걸 하자', '1년 동안 이것만은 달성하자'는 가까운 목표부터 하나씩 성취해 나가는 거죠. '앞으로 1년밖에 인생이 남지 않았다' 는 생각으로 살아도 좋습니다. 그다음 해에는 기존의 일을 연장하거나 약간 변형해도 됩니다. 아니면 전부터 하고 싶 었던 다른 일을 시도해도 괜찮아요.
어쨌든 지금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바로 해야 합니다. 나중에 하자고 미루면 대개는 영영 못 하게 되니까요. 게다가 모든 것은 항상 변하고 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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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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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에서는 이미 우연의 긍정적인 측면을 깨닫고서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전기 회로 같은 민감한 시스템은 우연한 효과로 안정화될 수 있으며, 우리의 뇌도 그렇게 기능한다. 또한 우연 은 진화의 엔진일 뿐 아니라 창의성의 엔진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타심, 동정심, 도덕심 같은 타인을 위한 마음도 인간의 행동을 예측 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우연의 선물을 얻기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한 다. 대가는 바로 불확실함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불쾌함을 느끼므로 우리는 불확실한 상황을 가능하다면 피하려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기회를 잃어버린다.
- 우연은 신이 자기 이름으로 서명하기 싫을 때 사용하는 신의 가명이다. (아나톨 프랑스)
- 어차피 마주해야 할 우연이라면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우연의 얼굴을 더 자주 대한다. 우리는 네트워크화된 세계의 위험성을 한탄하지만 이런 세계가 어떤 기회를 제공하는지를 간과한다. 소설 『해리 포터로 실업자에서 백만장자가 된 조앤 K. 롤링을 생각해보라. 아무도 그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 했다. 출판 전문가들조차 해리 포터』 1권 원고를 보고 출판을 거절 했다고 하지 않은가.
또한 독일이 어떤 무력 충돌도 없이 그렇게 빨리 통일되리라는 것을 예견했던 사람이 있었던가? 독일을 통일에 이르게 한 결정적 계기 역시 아주 우연한 사건이었다. 1989년 11월 9일 동베를린 정치 국의 대변인이었던 귄터 샤보브스키는 카메라 앞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동독 주민들의 비자 없는 서독 여행을 '지금부터, 즉시' 허가 한다고 말실수를 했다. 그 소식은 곧바로 퍼져나갔고 열광하며 베를 린 장벽으로 달려든 동독 군중들 앞에서 국경 수비대는 맥을 못추 었다. 그렇게 장벽은 무너졌다.
- 이런 복잡한 세계 속에서 중심을 잡고 태연하게 살려면 우연이라는 현상과 친숙해져야 한다. 더는 어느 곳에서도 안전성은 보장되 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과 친해지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우연 이 카오스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실제로 전혀 예 측할 수 없는 일도 법칙을 따른다.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우 연을 더 잘 알아야 한다. 그러면 믿기지 않는 일에 대한 의문과 변덕 스러운 삶에 무방비 상태로 맡겨져 있다는 느낌을 덜 수 있다. 백쇼 부자의 재회나 독일 통일과 같은 행복한 우연 속에 숨겨진 원칙과 친해지는 사람만이 우리 시대가 제공하는 기회를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어떤 사건의 원인을 완벽하게 알 수 없을 때에 우연을 경험한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 발생한 원인의 일부가 자신이라면 이 원인은 관찰되는 사건과 분리될 수 없고, 이런 상황에서는 피드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피드백은 원자물리학에서와 같이 규명하고자 하는 현상이 그 연 구에 투입되는 수단과 분리될 수 없는 경우 개입된다. 피드백은 우 리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가령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면서 도리어 자녀의 영향을 받는다. 주식 투자자들은 앞으로 어떤 주식이 오를까를 생각하여 매수를 결정하지만 주가의 등락은 바로 투자자 들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삶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에 대해 더 살펴볼 것이다.
- 우리는 우리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내고, 우리의 결정으로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바로 그렇기에 미래에 대해 제 한된 진술밖에 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일에 더 많이 관여하고 더 큰 영향을 끼칠수록 그 결과는 더욱더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므 로 우리가 삶을 임의로 계획할 수 없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대가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미래를 내다보도록 만들어지지 않고, 프랑스 작가 폴 발레리의 말처럼 "미래를 만들어 나가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미묘한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했다. 그들은 백인 대학생들에 게 다양한 피부색의 지원자들에 대한 가상 면접을 실시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백인 대학생들은 지원자가 흑인일 경우 신체적으로 더 거리를 두고, 자꾸만 말이 꼬였으며, 서둘러 대화를 끝냈다. 물론 악의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중에 비디오로 자신의 행동을 보고는 매우 놀라워했다. 그러나 지원자들은 면접관들의 기 분을 민감하게 느꼈다. 그리하여 흑인 지원자들은 백인 면접관들의 이런 태도로 인해 도리어 불안해져서 실수를 저질렀고 그 결과 백인 경쟁자들에 비해 나쁜 점수를 받았다.
그다음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가상 면접관들에게 이번에는 흑인 지원자들에게 의식적으로 친절하게 대하고 백인 지원자들에게는 무 뚝뚝하게 대하라고 했다. 그러자 이제 백인 지원자들이 떨어졌다. 신 경이 예민한 상태에서는 그만큼 자신 없는 행동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판단할 때 우리는 자로 재듯이 할 수 없다.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입자 실험을 하는 물리학자들과 비슷한 형편 에 처한다. 어떤 상태를 관찰하려고 할 때마다 그 상태를 변화시키 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그런 피드백을 통해 우연이지 않게 미래학자들은 현재 상황을 미래에 투사시켰다. 위원회 보고 는 2000년에는 달에 유인 우주정거장이 생길 것이며 바다 밑에 집 을 짓고 살 거라고 예견하였다. 그런 것들은 오늘날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다. 다만 아무도 거기에 관심이 없을 뿐이다. 게임 규 칙이 변한 것이다.
컴퓨터의 사용은 그런 반작용의 좋은 예다. 전자공학의 발전은 칸의 시대와는 다르게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했고, 이것은 다시금 기술의 발전을 다른 쪽으로 유도하였다. 그러므로 미래학자들은 다른 투자자들의 태도가 변하는 바람에 전략을 갑자기 제대로 써먹지 못 하게 된 증권 투자자들과 비슷한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마치 양쪽 눈을 가리고 책장을 조립해야 하는 사람과 비슷하다. 책장에 필요한 모든 부품을 가지고 있으나 어떤 규칙으로 그것들을 맞춰야 할지 몰 라 더듬더듬 찾는 사람들. 가끔 제대로 명중시킬 때도 있지만 그것 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래학자들은 기술 분야의 명중률에 대해서는 조금도 부 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일어날 확률이 아주 높은 것으로 찍은 100가지 중 30가지가 현실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 행동과 관련한 예언일수록 더 빗나갔다.
- 계획적 사고의 오류
칸과 그의 동료들은 무제한으로 발달되는 기술이 미래에 우리에게 영화 같은 삶을 선사할 것이라고 희망했다. 그들은 우리가 꿈꾸는 미래에 따라 사회가 전개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복잡한 세계에서 계획에 착착 들어맞는 공동생활은 존재할 수 없다. 계획이 있으려면 계획을 세우는 사람, 즉 모든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이런 정보의 기초 위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위원회 같은 것이 필요하 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씨족 사회보다 조 금만 더 복잡해져서 노동이 분화되기 시작하면 사회는 계획대로 진행될 수 없으리라 전망했다. 국가뿐 아니라 회사나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 어느 기업에서 계획에 따라 모든 것을 진행한다면 경영진은 결정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수뇌부 한 사 람이 전체의 공장을 훤히 꿰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그는 다른 소식 통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역시 현실을 그대 로 전달해줄 수는 없다. 그들이 아무리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지 않 는다 해도 오해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고, 자연스럽게 저 밑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다른 정보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현실에 맞지 않는 결정들을 내리게 되고 계획은 원래의 의도대로 실행되지 못한다.
모든 회사원의 책상에서 자료들을 불러올 수 있는 컴퓨터도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보들이 준비되고 요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료가 요약되지 않으면 결정자들은 나무 하나하나에 신경 쓰다가 숲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요약은 불가피하지 만 요약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해석의 여지가 생기며 그로써 오류 가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더구나 한 사람이 도맡아 중요한 결 정을 내릴 수 없으므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지도부가 회의하면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그 문제를 최적으 로 해결할 수 있는 협상안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일은 다시 원래 의도에서 빗나가게 된다.
그 밖에 공장에서 일하는 선반공은 수뇌부에게는 없는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도부에서 선반공에게 일을 어떻게 수 행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선반공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반공이 자신의 직접적인 관심사를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다 보면 다시 우연이 시스템에 개입될 수밖에 없다. 선반공은 그의 결정으로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선택은 없다. 지도부가 능력을 발휘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된다.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경제도 좋은 의도를 가지고 출발 했지만 좌초할 수밖에 없었다. 계획하는 사람들이 정보를 제대로 평 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행정부는 우즈베키스탄에 얼 마나 많은 신발이 필요한지를 알 수 없다. 그것은 현지의 구두장이나 신발 상인만이 알아낼 수 있다. 행정부가 무리하게 그런 일을 결 정할 때 사람들이 꽁꽁 언 발로 신발가게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는 일이 발생한다.
- 잠자리에 비해 파리는 우둔한 생물처럼 보인다. 더 작을 뿐 아니라 나는 동작도 유연하지 못하며 비행 속도도 잠자리의 반에도 못 미친 다. 1분당 날갯짓하는 횟수는 잠자리보다 다섯 배나 많으면서도 말 이다. 그래서 유유한 날갯짓을 하는 잠자리의 비행은 우리 귀에 들 리지 않지만, 파리가 윙윙대는 소리는 자못 시끄럽기까지 하다. 천 부적인 몸 구조를 가진 잠자리는 근육과 연결된 네 개의 날개를 각 각 자유자재로 움직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멋진 비행을 한다. 그에 반해 파리는 날개가 두 개밖에 없으며 그나마 그것도 근육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날아오르려 할 때마다 등판을 움직여 날 개를 젖은 손수건처럼 아래위로 쳐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파리가 잠자리보다 구식일 거라고, 기본형에 가까운 진화의 선배일 거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진짜 순서는 반대다. 공중을 날아다닌 첫 곤충이 잠자리와 비슷한 부류였고 파리는 잠자리와 비슷한 몸 구조를 가진 조상으로부터 잠 자리보다 최소한 1억 년은 늦게 분화된 곤충으로, 못생겼지만 굉장 히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곤충이다.
파리에 이르는 과정에서 잠자리의 탁월한 몸 구조와 비행 능력은 사라지고 말았다. 진화는 이미 이룩한 클라이맥스를 다시 저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대신 튼튼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파리가 탄생했 다. 오늘날에는 파리라는 커다란 집단에서 또 다른 곤충이 분화되어 나오고 있다(모기도 그에 속한다). 그에 반해 잠자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변방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처지다.
이런 현상이 가능한 것은 진화가 우연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 연이 목적 지향적으로 최상의 해결책만을 추구한다면 곤충의 발전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것이다. 잠자리처럼 놀랄 만한 작품을 어떻 게 더 개선한단 말인가? 잠자리는 3억 년 전 날개가 두 개뿐인 곤충 이 먼 미래에 자신을 능가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은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저 무작위적인 걸음을 어디론가로 옮길 뿐이다. 우연에 의해 유전인자가 변화할 때도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 대부분의 우연한 실험들은 생존 능력이 없는 존재들을 배출한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계획에 따른 진보라면 도저히 배출하지 못했을 걸출한 작품 하나가 그동안의 모든 실패를 무마시킨다. 우연의 원칙 에 따른 발명품이 없었다면 진화는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을 것이다. 진보가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문화와 기술 에서도 경험한다. 구글리엘모 마르코니는 전화의 대용품으로 라디 오를 발명했다. 전화선을 놓을 수 없는 배 같은 곳에서 전화 대용으 로 사용하려고 만들었지 그 이상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르코니는 훗날 자신의 발명에 기초하여 휴대전화와 위성 텔레비전까지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 1940년대 IBM의 경영진 역시 기술자들이 처음 나온 전자계산기(컴퓨터)에 매달리고 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공연히 기술개 발비만 남용한다는 생각이었다. IBM 경영진은 컴퓨터 같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몇 대만 필요할 것이라고 추측했기에 혁명적인 컴퓨터 개발 대신 타자기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하여 트렌드 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뒤늦게 컴퓨터 개발에 착수함으로써 위 기를 겪었다.
계획에 따른 진화는 업그레이드된 타자기를 선사할지는 몰라도 컴퓨터를 선사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기껏해야 약간 더 세련된 잠자 리를 만들어 낼 뿐 파리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 1980년대에 분자생물학자들은 드디어 초파리의 난세포에서 몸 의 기본 구도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 그룹을 발견했다. 바로 혹스 HOX 유전자들이었다. 혹스 유전자는 파리 몸의 올바른 위 치에서 올바른 기관이 자라도록 발생을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각각 의 혹스 유전자가 특정한 부위를 담당하는데, 애벌레가 성숙하기 시 작하면 이 혹스 유전자들이 차례로 활동에 들어가 막 형성되고 있는 유기체를 각각의 부위로 분절한다. 그리고 머리가 자라나야 할 부분 에서는 나중에 등이나 꼬리가 될 부분과는 다른 단백질을 분비한다. 이런 단백질, 즉 호메오 프로테인은 몸의 각 부분을 위한 발생 프로 그램을 시작하고 체절과 다리, 날개 등이 자라나는 것을 담당하는 하위 유전자들이 활동에 들어가도록 한다.
그리하여 혹스 유전자가 우연에 의해 뒤죽박죽되면 기형 파리가 태어난다. 연구자들은 초파리의 훅스 유전자 시퀀스를 바꿈으로써 머리에 다리가 돋아나고 눈이 생겨야 할 자리에 날개가 돋아나는 괴 상한 파리를 얻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혹스-설계도의 모든 작은 변 화가 새로운 종류의 (종종 생존 가능한) 곤충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른 동물들에서도 이런 혹스 유전자가 발견되자 놀라움은 더욱 커졌다. 벌레건 가재건 원숭이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이런 혹스 유 전자가 설계 원칙에 따라 배아의 발생을 조종했다. 고등생물일수록 혹스 유전자는 더 많았다. 그리하여 초파리의 경우 혹스 유전자가 8 개인 데 반해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은 38개였다.
- 발전은 잘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곡예를 부리는 것이다. 자연뿐 아니라 우리 인간도 기존의 것을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1857년 제프모저는 자신의 식당에서 소시지 속을 채우다가 굵기가 가는 창자가 다 떨어지자, 남은 고기를 두꺼운 창자에 채워 끓는 물에 삶아서는 손님들에게 특별 메뉴로 대접했다. 이것이 최초의 뮌헨식 흰 소시지다.
- 체계적인 예방 접종법을 마련한 루이 파스퇴르의 일화는 어떻게 새로운 발견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1878년부터 닭 콜레라의 병원체를 연구하던 파스퇴르는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는 바람에 잠시 연구를 중단하고, 인공 배양된 박테리아를 여름 내내 실험실에 방치해놓았다. 그리고 가을에 다시 연구를 시작하여 아무 생각 없이 이 변질된 병원균을 닭 몇 마리에게 주사했다. 그러자 그 닭들은 가 볍게 앓더니 이내 회복되었다. 파스퇴르는 겉으로 보기에도 썩은 것 같은 이 배양액을 버리고 새로이 병원체를 배양했다. 그리고 새로 배양한 박테리아를 새로 들여온 닭들과 썩은 박테리아 배양액을 맞고 회복된 닭들에게 주사하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처음 실험에 임한 닭들은 심하게 앓다가 죽어버렸지만 이미 한 번 가볍게 앓았던 닭들 은 수월하게 견디어냈다.
파스퇴르는 이런 사실을 더 빨리 깨달을 수 없었을까? 그보다 100년도 더 전에 의학도였던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발견 했고 유럽의 모든 학자가 이를 알고 있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때까 지 아무도 제너의 방법으로 다른 병도 예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지 못했다. 인체가 어떤 미생물과 처음 접촉했을 때 이를 병원체 로 인식하면 무장을 갖추어 다음 공격에 더 잘 방어할 수 있다는 예 방 접종의 원칙을 몰랐던 것이다.
- 파리의 화가이자 물리학자였던 루이 다게르는 빛에 민감한 판에 그린 그림을 오래 보관하는 법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으나 번 번이 헛수고로 끝났다. 그러던 1835년 봄, 다게르는 은도금이 된 동 판 하나를 화학약품을 넣어두는 장에 아무렇게나 세워놓았다가 얼 마후 다시 꺼냈다. 그런데 그곳에 그림이 나타나 있는 게 아닌가. 부주의한 행동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약품 장에서 수은 이 흘러나왔고 수은 증기에 의해 노출된 부분에 상이 생겼던 것이 다. 다게르는 그 현상에 착안하여 사진술을 발견했다.
그런가 하면 인류가 페니실린을 갖게 된 것은 박테리아 배양액 덕분이다. 런던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휴가 동안에 실험실에 박테리아 배양액을 방치해두자 배양액에 곰팡이가 피게 되었는데 곰팡이가 무성하게 생긴 곳에 박테리아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을 목격했던 것이다. 마침 그는 10년 동안 박테리아 감염에 대항하는 물질을 간절하게 찾던 중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연금술사 요한 뵈트거는 작센의 선 제후에게 금을 만들어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실패가 거듭되자 전전 긍긍하던 중 유럽 최초로 도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여 간신히 교수 형을 면했고, 스카치테이프라고 불리는 투명 접착테이프는 원래 반 창고를 만들려다가 생겨난 것이다. 비아그라는 효과가 신통치 않은 심장병 약이었는데, 그것을 투여받은 남자 환자들이 이상하게 그 약을 끊으려 하지 않는 것이 연구자들의 눈에 띄면서 그 효능이 연구되 었다. 리히텐베르크는 “모든 발명품은 우연의 작품"이라며 "똑똑한 사람들이 책상 앞에 앉아 편지를 쓰듯이 발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 했다.
새로운 발견은 불만의 해결책과 오류를 참아내며 많은 실험을 하고 적은 선택을 하는, 다소 불편해 보이는 진화의 법칙을 통해서 탄생할 뿐이다. 우연과 직관이 이성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 다. 논리적 사고가 있어야 우리의 착상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점 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2차적 단계다. 처음에는 언제나 우연에 대해 열려 있는 개방적인 사고가 존재한다. 그리하여 프랑수아 자코 브는 혁명적인 발견을 추구하는 것을 '밤의 과학night science3'이라 명 명했다.
- 우연한 관용이 이익을 준다
우연만이 보복의 악순환을 깨뜨릴 수 있다.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 마 속에서 때때로 한쪽이 협력을 섣불리 포기하지 않고 관대하게 행 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참아주면 장기적으로 둘 다 유리하다. 그러나 그럴 때 자신이 상대방의 어떤 부당함을 묵인하고 참아줄 수 있는지 를 알려주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상대방이 악용할 수 있기 때문 이다. 관용이 너무 자주 반복되지 않고, 무엇보다 무작위적으로 행 해지면 양쪽에 유익이다. 계산할 수 없게끔 행동할 때에만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된다.
- 카를 지그문트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험한 결과,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게이머들 중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법칙을 엄격하게 따른 사람들보다 때때로 상대방의 잘못을 참아준 사람들이 감옥살이를 적게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베른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대 학생들에겐 형량을 줄이는 대신 금전적 보상을 내걸었다. 실험에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학생들 중 약 3분의 1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기본으로 하되 때때로 관대해지는 지그문트의 전략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머지 3분의 2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을 엄격 하게 지켜 이전에 자신의 선택이 먹혀들면 그 선택을 고수하고 그렇 지 않으면 선택을 바꿨다. 실험 결과 후자의 학생들처럼 과거를 기 준으로 행동할 때 더 불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대로 차례가 돌아오므로 우연의 전략을 구사한 사람들이 더 성공적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이익을 얻는다. 예측 불 가능한 행동은 경쟁에 유리하고, 협력과 신뢰를 가능하게 한다. 인 간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 뇌가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의도를 숨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자연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놓은 듯하다.
- 존 메이너드 스미스를 위시한 많은 진화생물학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때때로 자신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우리 안에 있다고 추정한다. 물론 그 대가로 우리는 더욱 불확실해 질 것을 감수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계획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의도도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확실한 규범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계획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리면서 우 리 자신을 드러낼 뿐 아니라, 눈빛이나 행동 또는 어쩌다 나온 말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도를 자신도 모를 때만이 그런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메이너드 스미스의 말마따 나 우리는 머릿속에 룰렛판을 가지고 있다.
- 타고난 소질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더욱 예측 불가능한 것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일방통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의 불확실함을 주 장하는 세 번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자녀도 부모에게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부모의 관심 을 계속 요구하는 아이는 부모에게 거부당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러는 것일까? 아니면 하도 치대는 아이에게 질린 나머지 부모가 아 이에게 등을 돌리는 것일까? 아마도 둘 다 맞을 것이다. 모든 인간관 계에서처럼 양육에서도 피드백 효과가 나타난다.
어떤 시스템이 환경의 영향을 받는 동시에 환경에 스스로 영향 을 끼칠 수 있을 때면 으레 우연이 작용한다. 양자물리학(측정기가 관 찰하고자 하는 입자를 방해)도 그렇고, 진화론(어떤 종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는 동시에 환경을 변화시킴)도 그렇고 인간이 함께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 자녀에게 적절히 고무적인 환경을 만들어주고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되도록 많이 주는 것은 아이에게 단순한 재능 계발 이 상의 도움이 된다. 그들을 세상에서 유일한 개성을 지닌 존재로 여겨주는 것이 바로 자녀를 존중하는 일이다. 아랍의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자녀에게 자기 자신이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를 여러분과 똑같이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은 뒷걸음 치지 않으며 어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좌뇌는 세계가 때로는 아주 단순하며, 어떤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좌뇌는 끊임없이 그럴 듯한 연관을 고안하면서 불확실함을 몰아내고자 한다. 때로 증권 딜 러가 주가의 상승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고객들의 돈 을 날리는 것도 좌뇌가 체계와 규칙을 좋아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연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 때 우리는 대부분 좌뇌의 지휘 하에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규칙을 배우고, 규칙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능력이 고도로 발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대가다. 이런 능력 덕분에 생존했지만, 이런 능력 때문에 체계와 규칙에 매 달리게 되며, 규칙을 찾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심지어 우리를 해롭게 하는 시점이 언제인지를 분별하기 힘들어진다. 
- 정신과 의사들은 이렇게 자기를 파괴하면서까지 이유를 찾아다 니는 것을 '생존자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충격적인 경험을 한 상당 수의 사람이 이 신드롬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행 중 다 행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과연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 는 것이다.
커다란 고통에 직면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어 야 하는지 의미를 찾다가 더욱 고통스러워지기도 한다. 많은 암 환 자가 병에 걸린 이유를 자신이 살면서 지은 잘못 때문이거나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걱정을 쌓아두면 암이 발생한다는 입증되지 않은 믿음이 많은 환자에게 부가적인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신적인 원인이 암 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유전자의 우연한 변화가 거듭되어 암이 유발된다는 증거는 아주 많다. 환경 오염, 잘 못된 영양, 흡연도 유전자 변이의 빈도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암에 걸리는 것은 우연한 사건이다.
- 아이들에게는 동화가 필요하고 어른들에겐 신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삶에서 위기를 겪을 때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경험 을 의미와 연관 지으려고 노력한다. 좋은 징조에 대해 기뻐하고, '운명의 눈짓'을 따르며 삶의 중요한 전환기마다 더 높은 계획이 작용했다고 믿는다.
이런 태도는 해석과 사실을 구분하고, 상상의 산물을 결정의 근 거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려면 이중장 부를 쓰듯이 하나의 경험을 두 가지 현실로 분류하는 것이 중요하 다. 한편으로는 점검 가능한 사실의 세계에 발을 딛고 사실만을 행동의 근거로 삼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해석과 환상의 영역으로 들어가 경험을 신비로운 시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두 가지 시각을 모두 포기하지 않으면서 명백히 선을 그으라니. 말로는 굉장히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훨씬 간단하다. 극장 에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손쉽게 이중장부를 쓴다. 멜로 영화에 감동하여 눈물 콧물을 흘릴 때 그 감정은 진짜이지만 우리는 한순간도 이 영화가 허구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처럼 일상에서도 현실과 환상적인 해석 사이에서 선을 그을 수 있다. 일상에서의 주인공은 영화배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날은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의미는 우연에서가 아닌 나에게서 나온다."
- 우리는 작은 것은 과대평가하고 큰 것은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을 로가리즘이라고 하는데, 이 로가 리즘 덕분에 우리는 귓속말도 확성기 소리만큼 잘 들을 수 있고, 촛 불을 켜고도 환한 햇빛 속에 앉아 있는 것만큼이나 무리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뇌는 모든 것을 중간 정도로 확대하거나 축소한다. 이 런 현상은 먹이의 양이나 돈의 액수에도 적용된다.
그리하여 30만 유로는 직관적으로 10만 유로의 정확히 세 배가 아닌, 그보다 훨씬 적게 느껴진다. 그래서 요정이 제안한 내기의 기 대치는 20만 유로보다 더 작게 다가온다. 이 내기를 받아들이려면 요정은 돈을 더 많이 걸어야 한다. 인지의 메커니즘을 거슬러 리스크를 받아들이려면 프리미엄이 필요하다. 응답자들은 평균적으로 30만 유로가 아니라 최소 40만 유로는 되어야 안전한 금액을 포기하고 내기를 할지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대기 시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운이 없을 경우 8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 8년은 우리에게 정확히 4년의 두 배로 다가오지 않는다. 운이 없을 경우 추가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두 번째 4년보다는, 애초에 주어진 4년이 더 길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운이 없을 경우 8년 기다릴 것을 감수하고 2분의 1의 확률로 당장 돈을 손에 쥐기를 꿈꾸는 것이다.
- 기업들은 늦게서야 리스크 연구자들의 인식을 경영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 몇몇 대기업들이 리스크 처리 담당 부서를 둔 것이다. 미국의 대기업 GE 캐피털에서 첫 '리스크 매니 저'가 업무에 들어간 것은 1993년이었다. 리스크 매니저와 그의 동 료들의 과제는 중요한 결정에 직면하여 위험 요인들을 분석하고, 회 사가 실패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제 최소 한 대기업들은 리스크 경영을 도입하고 있다.
리스크 경영과 마찬가지로 필요하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기회 경영이다. 직관이 일으키는 착각은 기회를 인식하고 올바 로 평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더구나 우리의 관심은 긍정적인 기회보다는 부정적인 위험에 더 쏠리게 마련이다. 찌르레기가 안정 된 먹이를 위해 더 많은 먹이를 포기했던 것처럼 많은 기업과 정부 는 이윤으로 연결된다 해도 불확실한 기회는 꺼린다. 안전하지 않다 는 것을 과도하게 의식하여 기대되는 이윤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리스크를 너무 두려워하면 기업은 물론 심지어는 경제에까 지 심각한 해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담만 쌓기 때문이다.
- 과보호가 오히려 고집과 의존성을 키운다는 것이 다. 또한 아이에게는 리스크를 다루는 훈련이 필요하다. 과보호 속 에서 자란 아이들은 위험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기 쉽다. 독일의 표 준 계단 규정에 따라 몇십 년 동안 18~19센티미터의 계단에 익숙해 진 사람은 야무지지 못한 현장 감독이 2센티미터만 벗어나게 시공 해도 비틀거려 넘어진다.
완벽주의는 독일인의 제2의 본성이 되어버렸다. 이런 특성은 분 명 장단점이 있지만 변화하는 조건에 적응하기 힘들게 한다. 규정들 은 경직성을 띤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동 시에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가고 있는 때에는 속도와 융통성이 정확성과 예측 가능성보다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복잡한 상황에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은 절대 잘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그만큼 속도가 떨어지고, 결과와 오류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완벽함을 위해서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그로 인한 낭비는 그로써 얻는 안전성을 능가한다. 킬의 경제학자 헤르베르트 기어는 "한 번도 비행기를 놓쳐보지 않은 사람은 그만큼 많은 시간을 공항 대합실에서 허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 다양한 비극과 참사를 연구해온 미국의 기술사회학자 찰스 페로 의 견해에 따르면, 위험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개별적인 부분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확대된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세계가 복잡할 수록 우리는 행동의 결과를 더욱 예측하기 힘들며, 안전한 것과 위 험한 것을 구별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이는 점점 광범위해지는 기술 이 만들어내는 가능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비행기 조종실에는 40개 남짓한 스위치가 있지만, 이 스위치로 1조 개가 넘는 연결을 'on', 'off' 할 수 있다. 그중 대부분은 문제없이 기능한다. 그러나 어 떤 것은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위험할지 어떻게 예측한단 말인가?
그리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케이블 철도만 해도 수천 개 의 부품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온풍기와 브레이크 선이 만나면 어 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비롯한 만일의 경우를 모두 고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 미국의 비행기 엔지니어 에드워드 A. 머피는 2차 세계대전 후 실험 중 결정적인 순간에 측정기가 고장 나자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꼭 잘못된다"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우리의 다리를 걸어 넘어 뜨리고, 희생자로 만드는 것은 운명이나 누군가의 무능력이 아니라 가차 없는 확률의 법칙일 따름이다. 머피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준 이 문장에 대해 머피의 미망인은 머피가 약간 다르게 말했다고 주장 했는데, 바로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어떤 일을 하는데 한 가지 이상의 방법이 있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재난을 초래한다면 반드시 그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
- 시스템 붕괴는 인간의 몸속에서도 일어난다. 가령 체세포 안의 유전자가 우연히 돌연변이가 되면 암이 발생한다. 처음에 돌연변이는 100만 분의 1밀리미터보다 더 작은 원자 몇 개에서만 일어난다. 하 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치료 메커니즘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파괴된 세포들은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한다. 그리하여 종양이 자라나 고, 그것이 전신에 퍼진다. 처음의 돌연변이에서 환자의 죽음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리하여 초기에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 다가 나중에 발견했을 때는 의사들도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극은 예외적인 경우다. 돌연변이는 어느 누구의 몸에서나 계속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돌연변이는 대개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유전자의 실수는 저절로 개선되거나 최악의 경우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해당 세포들이 자동적으로 자살 프로그램을 실행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종양이 커진다면 그것이 더 커지지 않도록 그쪽으로의 혈액 공급이 줄어든다.
이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안전 메커니즘이 더 많이 있을 것 이다. 우리 몸은 아주 복잡한 구조물이라서 분자생물학이 아무리 발 전한다 해도 체내에서 조절되는 모든 시스템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 능하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신체에서 몇 가지를 배울 수 있다. 신체는 엔지니어들이 설계하는 대부분의 기계들과는 다른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기술보다 고장이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유기체 안의 과제는 수많은 세포들이 각자 분담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세포는 막을 통해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독립적 인 기계처럼 작동한다. 매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수천 개의 세포가 사멸하고, 또 새로 생겨난다. 심지어 신장 하나를 떼어 주고 뇌의 일부가 손상되어도 계속 살 수 있다. 뇌 손상이 발생하면 종종 이웃한 세포들이 뛰어들어 손상된 부분이 담당하던 일을 떠맡 는다.
이는 중앙권력이 유기체 안의 일을 지배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고 실험은 이런 역할 분담의 구조가 얼마나 월등한지 보여준다. 우리 뇌가 컴퓨터처럼 구성되어 있다면 뇌 속에는 모든 뇌 기능을 조절하는 중앙 프로세서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기치 않은 우발 사건이 전체 시스템의 다운을 유발할 수 있고 치명적인 결과를 일으킬 수 있다.
짐을 되도록 많은 사람이 나눠 들으면 우연의 파괴력은 줄어든 다. 이것은 복잡한 구성에서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효과 적인 전략 중 하나다. 엔지니어들은 오늘날 이런 원칙을 이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에어버스 A320에는 네 대의 컴퓨터가 각각 승강타 를 확인하고 있고, 네 대 모두 다운되는 날에는 부가적으로 전기역 학적 조종을 할 수 있다.
스페이스 셔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 독립적으로 기능하고 서로 다른 팀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컴퓨터 세 대가 우주 비행을 조 종한다. 때로 컴퓨터들이 서로 다른 결과를 내놓으면 결정은 다수결로 이루어진다. 이런 민주적 전략은 프로그램의 오류로 셔틀이 추락할 위험을 줄인다.
- 복잡한 상황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생각하려 하면 최악의 경우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 건초 두 더미 사이에서 한 더미를 먹고 다른 더미를 남겨둘 논리적인 이유를 찾지 못해 굶어 죽었다던 중세 논리학자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때로 실수를 저지르고자 하는 용기가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럴 때도 무조건 직관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실수가 발생할 확률과 그 결과를 제한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맨 처음 떠오른 방안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 방안 이 최소한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그보다 더 나은 대안이 있 느냐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신속하게 여행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 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몇 가지 기준을 생각한다. 가령 '따뜻한 곳일 것', '조용한 곳일 것',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일 것', '출발한 지 여섯 시간 이내에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등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정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여행 상품을 죽 훑어보다가 이런 기준에 적합한 상품이 나오면 고민을 끝내고 그 상품을 예약한다. 그러면 이제 유쾌한 휴가를 보낼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더 싸 고 더 멋진 상품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품을 고르려면 시간이 더 들고 골치가 아프다.
- 불확실한 상황에서 단순한 레시피에 따라 빠르고 확실하게 결정하는 방법을 인지심리학자들은 '단순한 발견'이라 부른다. 이런 식으로 여행지를 고르는 것이 석연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 은 복잡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이성적인 방법일지 모 른다. 그리하여 루프트한자 항공사도 조종사들이 위기를 맞았을 때 이 방법으로 결정하도록 훈련한다. 비행기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동 력장치가 멈추거나 다른 위험한 상황에 부딪히면 조종사는 가장 먼 저 떠오르는 해결법을 검토하여 그 방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안전하다면 곧장 그 방법을 택한다. 승객들이 힘들거나 기체에 손상 이 가도 개의치 않고 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방법이 나을 까 계속 고민하다가 최선의 결정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무능한 시장과 유능한 시장의 차이는 예측할 수 없는 일에 접근 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유능한 시장들은 과제를 더 작게 세분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도시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구 했고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지문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알았다. 그리하여 유능한 시장들은 목 표를 위해 무능한 시장들보다 더 자주, 더 많은 결정을 내렸다. 대신 각각의 결정이 미치는 영향력은 작았다. 유능한 시장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단계를 밟아가면서 예기치 않은 일에 최선의 방법으로 대처 할 수 있었다.
- 우리는 작은 걸음으로 겸손하게, 하지만 성공적으로 전진하는 것에 그리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최종적이고, 단호한 해결책을 찾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거나 변화시켜야 할 경우 작은 걸음으로 가는 것이 최상의 길이다. 삶을 운명적으로 확 바꾸어버리는 것은 영화감독이나 낭만적 작가들이 불어넣은 환상이다. 현실적으로는 너무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홈런을 꿈꾼다. 이런 꿈은 정치인이 계속 이랬다저랬다 한다고 비난하며 단번에 효과를 발하는 정책을 촉구하는 신문이나 잡지의 사설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처럼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회에서는 작은 걸음으로 걸으며 계속적 으로 규칙을 조정해 나가는 것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최상의 방법이다. 연방의회에서 한 연설가가 콘라트 아데나워가 자꾸만 견 해를 바꾼다고 비난하자 아데나워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매일 더 영리해지지 못할 이유가 뭡니까?"
- 어떤 일을 조망할 수 없음을 인정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행운의 여신을 믿기는 정말 힘들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진로 를 주사위 몇 개나 동전 하나에 위임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의 현실 인식에 커다란 구멍이 있고, 그럼에도 결정해야 한다는 것! 뇌는 우리에게 거짓된 확신을 불어넣으면서 이런 불 쾌한 사실을 은폐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은근한 불쾌감을 느낀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신탁을 구한다든지, 점쟁이나 예언자를 찾아간다든지 했다. 마약에 취한 여사제가 모호한 언어로 던지는 충고들은 동전 던지기 나 다를 바 없이 우연하다. 그러나 동전 던지기와 비할 수 없는 안도 감을 준다. 높은 힘과 접촉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새들의 비 행을 해석하고, 제비를 뽑고, 점을 치고∙∙∙∙∙∙. 결국 우연에게 결정을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 모든 방법은 정당성을 가진다.
- 무엇보다 그런 방법은 우리가 접어든 길이 별로 유리하지 않은 것으로 입증될 경우 후회를 덜어준다. 우리는 '살면서 점점 영리해 져간다'는 것을 알기는 해도 종종 과거에도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고려할 수 잇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하면서 괴로워한다. 물론 그것은 불합리하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다르게 결정했을 것이기 때 문이다. 하지만 신탁에 그 책임을 위임하는 사람, 또는 이런 류의 트 릭이 없이는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는 사람은 그런 자기 비난에 빠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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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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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철학강의

인문 2023. 8. 6. 14:59

이 책은 하버드 공개강의를 연구하고 전파하는 전뭉협렵기구인 하버드 공개강의연구회에서 지은 책이다. 이미 하버드 협상강의, 하버듸 마케팅 강의, 하버드 심리학 강의 등의 책을 통해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하버드 공개강의는 이미 잘 알려진 정설이나 보편적 일반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반대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깊은 사고와 논쟁을 거치며 천천히 받아들이게 하는 방식으로 강의가 진행된다고 한다. 그 안에 담긴 학술, 사상, 예술의 내용은 모든 사람이 주목하고 깊이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버드 공개강의 연구회는 중국철도출판사와 협력하여 하버드공개강의 시리즈 15편을 펴낸바 있다.

사람들은 보통 철학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철학은 너무 따분하지 않나?", "철학은 너무 고리타분하지 않나?", "사람들은 대개 철학을 싫어할텐데..." 
보통 일반사람들에게 철학은 무미건조하고 따분하게 느껴지는 학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하버드 학생들은 철학에 대해 이와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갖는다고 한다. 그들은 철학의 왕국을 유유히 거닐며 학문을 깊이 연구한다. 그들의 눈앞에 추상적인 철학의 체계는 마치 정교한 궁전처럼 우뚝 솟아 있다. 그들은 그 궁전에 들어가 이미 세상을 떠난 철학자들의 영혼과 마치 오래쇤 벗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철학을 진심으로 깨닫고 이해한다.

누구나 살면서 학업, 가정, 직장생활 등 삶에서 어려움과 고민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해결해야 할 크고 작은 문제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도피와 무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이때 우리가 취할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철학적 지식과 사고방식을 배우 내면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5가지의 굵직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바로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를 사랑하는 법, 어려움에 대처하기, 시간관리와 실행력, 창의적 사고와 성공의 길이다. 각 챕터는 짤막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에 어렵지 않고 편안하게 하버드 철학강의를 체험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자신으리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상을 수립하며 자신감을 갖게 되길 바란다.





#철학 #하버드철학강의 #행복 #일상의철학 #실행력 #시간관리 #인문학

 

- 영국의 시인이자 정치가 존 밀턴(John Milton)은 다음과 같이 말했 다. "나는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킬 방법을 찾는 대신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렇듯 지나치게 많은 것을 바라고 끝없이 욕망하는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 아도 행복해질 수 없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도대체 무 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 엇인지 알아야 비로소 최선을 다해 추구할 수 있으며, 그것을 얻었을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이해이자 깨달음이다. 
- ‘행복의 허상'이란 두통이 나은 사람이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지 않아서 기뻐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기쁨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라 결코 '행복'과 같지 않다. (탈 벤 샤하르)
-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유쾌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고통이 없으면 인간은 보잘것없는 행복을 소유할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에서 즐거움은 일반적인 상태고 고통은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탈 벤 샤하르)
- 나를 받아들이고 이따금 실망하고 슬퍼하는 자신을 허락하라. 그 후 어떤 일을 해야 기분이 좀 더 나아지는지 스스로 물어라. (탈 벤 샤하르)
- 인생은 방학도 없고 기간제도 아니다. 당신의 자아를 찾는 일에 도움을 줄 고용주도 없다.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라. (빌 게이츠(Bill Gates))
- 당신은 당신이 상상한 것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공하는 사람은 결코 슈퍼맨이 아니다. 성공에는 슈퍼맨의 지력이나 운, 신비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성공하는 사람은 단지 자신을 믿고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긍정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절대 자기 자신을 싼값에 팔아서는 안 된다. (존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 모든 함성이 다른 쪽을 향할 때, 우리는 평온한 마음으로 자기 생각을 고수해야 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사상가, 하버드대학 졸업)
- 그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고 용서하라. 그때 그대는 용서하는 것의 행복을 알 것이다. 우리가 남을 책망할 권리는 없다. (톨스토이)
- 운명의 신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찾아온다. 그러나 그 사람이 운명의 신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신은 큰문으로 들어와 작은창문으로 달아나 버린다. (빌 게이츠)
- 시련은 동요하거나 비겁한 사람에게는 떨어지기 쉬운 흔들다리다. 반대로 용감한 사람에게는 전진하는 완벽한 주춧돌이 된다. (랠프 월도 에머슨)
- 자신감을 가지고 당신이 꿈꾸던 삶을 살아라.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변화시킬 때 우주의 법칙도 더욱 단순하게 변화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성공은 역량이 아닌 인내력이다. 사회에서의 경쟁은 종종 지구력이 필요하기에 꾸준한 마음과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빌 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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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오륜서

인문 2023. 7. 24. 20:15

오륜서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검술과 전투기술 일반에 대해 쓴 책으로 1643년부터 그가 죽기 직전인 1645년까지 집필했다고 알려진다. 무사시는 13세부터 살기를 실전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30대 초반까지 검법을 연마하면서 강호를 유랑하며 천하의 고수들과 60여차례의 대결을 벌였고, 모두 승리했다. 그러다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절 근처 동굴에서 오륜서를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오륜서라는 이름은 불교 밀교의 오대(五大), 즉 오륜(五輪)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불교의 오륜탑에서 유래한다. 오륜탑은 모든 불탑 중에서 가장 특별한 탑으로 우주의 5대원소를 뜻한다. 그래서 오륜서의 5권은 각각 땅(地)의 권, 물(水)의 권, 불(火)의 권, 바람(風)의 권, 공(空)의 권,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권은 오늘날의 '장'에 해당한다. 1장인 땅의 권은 무사시의 생애, 검술의 개요를 설명하고, 2장 물의 권에서는 이천일류의 검술을 설명한다. 3장 불의 권은 싸우는 방법과 마음가짐 등을 설명하고, 4장 바람의 권은 다른 검술의 유파들을 다루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마지막 5장 '공'의 권에서는 싸우는 기술의 본질 또는 궁극의 경지인 '공'을 설명한다.

그중에서 '공의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앞의 네 장에서 무사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병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다섯 번째 장인 '공의권'에서는 그와 같은 병법을 어떻게 하면 잊어버릴 수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앞서 네 장이 '유병법'이라면 마지막 장은 '무병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의권'에서 '공(空)'이 지닌 함의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안도 없고 밖도 없고, 안에 들어갔으면서도 또 그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병법을 공부 하여 그것을 숙지하되, 결코 병법에 얽매이지 말라는 큰 뜻을 품고 있다. 이렇듯 니 텐이치류 병법과 교외별전의 선학 사상을 융합한 '공의 권'은 문장이 정밀하고 짧지만 논리는 심오하다.

오륜서는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어온 동양의 고전이다. 특히 시어도어 루즈벨트, 최영의, 잭 웰치 등 유명인사들도 오륜서를 읽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많은 오륜서의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딜로이트 부회장을 역임한 김경준 님이 인생의 변곡점을 맞는 50세를 맞이하는 사람이 입장에서 나이에 맞게 세계관도 변화시켜야 한다는 관점에서 오륜서를 재해석한 책이다.

오륜서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통념화된 당시 관념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직접 겪은 칼싸움의 경험을 내면적 성찰을 통해 무사도의 기반이 되는 보편적 사상으로 끄집어 내었다는 점이다. 오륜서를 관통하고 있는 인생과, 승부관은 오늘날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교훈삼을 만한 내용이다. 무사시는 칼싸움의 좁은 공간에서 출발해 승부사의 사생관,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심신을 갈고 닦는 자기계발에 이르는 폭넓은 세계로 확장했다. 무사시의 병법 35개조를 인생 35개조로 투영하여 설명하고 있는 점에서 인생철학을 다져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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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필로소피

인문 2023. 7. 21. 17:21

- 매일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가?
우리 삶의 주요 과제는 단순하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선택과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 인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 둘을 분리하는 것이야. 인생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들은 외부 요인에서 찾을 수 없네. 오로지 통제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나 자신의 선택 안에서 찾을 수 있다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2.5.4-5)
- 철인 황제처럼 아침을 맞이하는 법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다면 마음속으로 이 생각을 하라. 나는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해 깨어나야 한다. 이 세상에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짜증을 낼 필요가 있는가? 나는 기껏 이부자리나 끌어안고 살기 위해 태 어났는가? 이것이 내게 주어진 낙이란 말인가? 나는 분투하기 위해 태어났는가, 아니면 자기 위해 태어났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1)
- 거절의 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삶을 낭비한다. 무의미한 슬 픔, 어리석은 즐거움, 탐욕스러운 욕망, 형식적인 관계에 자신의 유한한 자원을 투자한 다. 이것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남아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네카, 삶의 덧없음에 대해, 3.3b)
- 행동의 의도를 분명히 하라
모든 노력을 집중시켜 끝이 보일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 행동하는 사람은 불안에 빠지지 않는다. 잘못된 신념만이 우리를 불안으로 이끌 뿐이다. (세네카, 마음의 평정에 대해, 12.5)
- 쾌락을 단호히 거부하라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우리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것들이라면 반드시 버려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용기는 사라지고 끊임없는 유혹만이 남게 되어, 영혼의 위대함도 사라지 고 말지. 군중이 열망하는 사소한 것들을 경멸하지 않는 한, 영혼의 위대함은 결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네.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74.12b-13)
-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기 위하여
선의 본질은 일종의 합리적인 선택이라네. 하지만 악의 본질 또한 다른 종류의 합리적 선택이지. 그렇다면 외적 현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합리적 선택을 내리기 위한 있는 그대로의 재료들이라네. 그것들이 어우러져 선과 악이 되지. 그렇다면 어떻게 선을 알아 볼 수 있을까? 어떤 사실에 대해 감정적 반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알 수 있다네. 죽음은 필연적으로 발생하지만 인간의 감정적 반응으로 인해 '나쁜 것'이 되는 것처럼 말이지.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판단했을 때 우리의 선택은 선이 되네. 판단이 뒤틀리면 그 선택은 악으로 바뀌고 말지. (에픽테토스, 대화록, 1.29.1-3)
- 통제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자신의 합리적 선택은 통제할 수 있으며, 모든 행동은 자신의 도덕적 의지에 달려 있다 네. 이와 달리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육신이지. 그리고 부모, 형제, 자매, 아이들, 고향 등 나와 관계 맺는 모든 것은 통제할 수 없다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1.22.10)
- 마음의 평정은 확고부동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만이 손에 쥘 수 있다네. 나머지 사람은 거절과 허락을 번갈아 하며 자신의 결정에 따라 감정적 동요를 반복할 뿐이지. 무엇이 이런 감정적 동요를 지속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들의 내면에 분명한 것이라곤 없기 때 문이라네. 그들은 '상식'이라는 가장 불확실한 것에 의지할 뿐이지.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95.57b-58a)
세네카는 평정을 에우티미아(Euthymia)라고 했다. 그리고 에우티 미아에 대해 정의하기를 "자신에 대한 믿음이자 올바른 길 위에 있다는 신념이며 모든 방향으로 뻗어 가는 수많은 오솔길 앞에서도 의심하지 않 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마음 상태는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대한 100퍼센트 확신이 자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뜻한다.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그럴 때에만 다른 사 람과 자신을 지속적으로 비교하지 않으며, 새로운 정보가 방해하더라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
- 일단 시작하라, 나머지는 따라온다
스승으로서 나의 목표는 자네를 완성시키는 것이야. 제약받지 않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부터 자유로우며, 거리낌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네를 가르칠 것이네. 사회와 타 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로운 삶, 구속받지 않는 행복, 그리고 하찮은 사물들 속에서 도 신의 섭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자네는 이 모든 것을 부지런히 배우고 연습해 야 할 것이야. 자네가 올바른 마음을 가졌고 내가 바른 목표를 제시하고 교육했다면 왜 이 과제를 완수하지 못하겠는가? 모든 것은 실현 가능할 뿐더러 이미 우리 안에 있다네. 지난 일은 잊어버리게나.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나를 믿고 앞을 보게나. (에픽테토스, 대화록, 2.19.29-34)
-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발전하고자 한다면 외적인 문제(재물, 평판)에 무감각해야 하고 그 속에서 어리석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하라. 누군가 당신을 중요한 사람으로 간주한다면, 스스로를 불신하라.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13a)
-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수심이 가득한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네. 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만약 저들이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저토록 걱정에 사로잡혀 고통 받을 필요가 있을까? (에픽테토스, 대화록, 2.13.1)
- 두려움은 자신을 향한 예언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고통 받는다. 그들이 운명을 두려워하는 동안 운명은 그들을 찾아낸다. (세네카, 오이디푸스, 992)
-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는 어떤 사물에 대해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의 평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할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사물에는 우리의 판단을 좌지우지할 자연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52)
- 두려움은 백일몽이다
마음을 정화하고 참자아를 유지하라. 어리석음으로부터 깨어나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 이 단지 꿈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라. 일어나서 단지 저 모든 것들이 그냥 꿈일 뿐임 을 응시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31)
세네카는 두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려움은 본디 정확한 실체가 없다. 우리가 두려워한 것이 일어나지 않는 그 순간에도 두려움은 여전히 불분명한 모습으로 우리를 노려본다."
세상의 온갖 사건과 사물이 우리를 괴롭힌다. 하지만 우리를 괴롭 히는 것은 대부분 우리 자신이 상상한 것일 뿐 실재가 아니다. 그것들은 마치 꿈처럼 어느 한순간에는 현실로 느껴지지만, 곧이어 터무니없는 본래의 모습을 우리 앞에 드러낸다.
- 욕망은 삶을 난파시킨다
기억하게나. 부와 지위에 대한 갈망이 우리를 약화시키고 예속시킨다네. 평화와 휴식, 여행, 배움에 대한 욕구도 마찬가지라네. 외적인 요소가 무엇이든 상관없네. 우리가 가 치를 두는 것이 우리를 다른 것에 예속되도록 만들지. (...) 명심하게. 마음이 가는 곳에 장애물이 놓여 있음을. (에픽테토스, 대화록, 4.4.1-2;15)
- 황제와 철학자가 지킨 단 하나의 규칙
행동할 때는 망설이지 말라. 대화할 때는 부조리하지 말라. 사고할 때는 방황하지 말라. 영혼을 위해 수동적이어서도, 공격적이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삶에 있어 너무 많이 가지려 하지 말고 바쁘게 살려고 하지도 말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51)
-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구속받지 않는 사람은 모든 사건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지. 그렇기에 우리는 그를 자유인이라 부른다네. 하지만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강제 받는 사람들은 노예라고 하지. (에픽테토스, 대화록, 4.1.128b-129a)
- 소유할 수 있는 것은 현재뿐이다
3천 년을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할지라도 명 심하라.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현재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순간의 삶이며 소유할 수 있는 것 또한 지금 이 순간의 삶뿐이다. 긴 삶이든 짧은 삶이든 동일하다. 우리 모두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스쳐 지나고 있는 현재밖에 없다. 과거를 잃어버리거나 미래 를 잃어버릴 수는 없다. 어떻게 지금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겠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2.14)
- 나의 선택이 나를 완성한다
자네의 용모와 머리 모양이 자네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네. 선택의 능력이야말로 자네가 누구인지 온전히 드러낸다네. 선택이 아름다우면, 자네 또한 그렇게 될 것이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3.1.39b-40a)
- 가장 기본적인 원칙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명확한 판단력, 지금 이 순간에 맞는 상식적인 행동, 그리고 일이 잘 되어갈 때 감사하는 태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9.6)
- 역경을 담대하게 마주하라
고통이 찾아오지 않기를 희망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고통이 찾아온다면 용맹과 명예로 움으로 인내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참아낼 것이네. 어떻게 전쟁의 참화에 떨어지지 않기 를 희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전쟁이 나에게 닥쳐온다면 나는 부상과 굶주림 그리고 전쟁이 가져오는 모든 불행에 고결하게 맞설 것이네. 나는 질병을 욕망하는 광인도 아니고 고통에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도 아니지만, 고통이 찾아왔을 때 경솔한 짓과 불명예스러운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요점은 이것이네. 내가 역경을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미덕을 희망한다는 것일세.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67.4)
- 가장 좋은 안식처
사람들은 시골이나 바다, 혹은 산에서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으려 한다. 우리에게는 매번 동일한 것을 열망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편견에 찬 사람들의 특성일 뿐이다. 안식처를 찾으려 한다면 어떤 순간일지라도 자신에게서 안식처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영혼보다 더 평화롭고 여유로운 안식처는 어디에도 없다. 특히 성찰로 가득 찬 삶을 살 아가고자 한다면 나는 이곳만큼 조화로운 곳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안식처를 마련하고 항상 새롭게 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4.3.1)
-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억지로 행동하지 말라. 이기적인 행동도 삼가라. 배려심 없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 자신 의 생각을 교묘한 언어로 꾸미지 말라. 말이 많은 사람이 되지 말고 작은 행동 하나에도 조심하라. (...) 활기를 유지하며 외부로부터의 도움이나 구원을 바라지 말라. 사람은 오 직 자신의 힘으로 서야 하며 타인의 원조는 거절해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3.5)
- 욕망을 해체하는 법
우리 앞에 화려한 음식이 놓여 있을 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죽은 물고기이고 저것은 죽은 새 혹은 돼지들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향기로운 와인은 한 다발의 포도 에서 즙을 낸 것이고 저기 화려한 자주색 예복은 조개껍데기에서 추출한 염료로 양털을 염색한 것일 뿐이다.' 남녀의 육체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그저 내밀한 부분을 서 로 문지름으로써 분비물이 따라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의 인식은 이런 방식으로 실제 사건을 포착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 사건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13)
- 배우는 사람은 싸울 이유가 없다
논쟁 상대가 우리를 해코지할 수 있다. 그때 그에게 항의하지 말라. 음모를 꾸미고 있는 놈이라거나 교활한 인간이라 말하지도 말라. 이런 감정을 그 사람에게 드러내서는 안 된 다. 단지 그를 계속 지켜보라. 하지만 적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며 의혹을 품고 바라보지도 말라. 단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삶에 있어 모든 행동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들과 우리는 모두 함께 배워 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러 니 조금은 관대해지자. 그렇게 해야 내가 말했던 것처럼 의심과 증오 없이 충돌을 피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20)
- 신의 선물
신이 인간에게 내린 율법이 하나 있네. “좋은 것을 원한다면 네 자신에게서 찾아라." (에픽테토스, 대화록, 1.29.4)
오늘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좋은 일을 하 는 것이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원천은 대개 통제 밖에 있거 나 재생이 불가능한 자원이다. 하지만 오직 한 가지만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은 모두 우리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칸 인디언의 경구는 스토아 철학의 생각과 비슷하다. "신은 악마가 인간의 행복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가장 안전한 장소에 숨겼다네. 그곳은 바로 인간의 마음속이라네."
- 오직 선택에 집중하라
선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합리적 선택 안에 있다네. 그럼 악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 역시 우리의 합리적 선택 안에 있다네. 그렇다면 선도 악도 아닌 것은 어디에 있을까? 젊은이, 그런 것들은 우리의 합리적 선택 바깥에 있다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2.16.1)
- 부러움의 악순환
당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은 이미 당신이 갖고 있는 것처럼 관심을 두지 말라. 하지만 당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은 만약 그것들이 없었다면 내가 얼마나 그것들을 갈망했을 지에 대해 떠올려라.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을 언젠가 잃게 되었을 때 수심에 잠길 정도로는 가치를 두지 않도록 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7.27)
-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지금 당신 앞에 놓여 있는 모든 것에 정신을 집중하라. 원칙, 주어진 과제, 던져진 말. 그 모든 것에 집중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22)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과거를 곰곰이 되새겨 보 는 것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 놓인 과제에 집중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그것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더욱 그 렇다.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단지 주어진 일일 뿐이야. 내가 누구 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야. 중요하지 않아." 아니, 중요한 일이다. 누가 아는가, 당신이 늘 하는 일이 마지막 일이 될지?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 말은 진리다. '오늘을 어떻게 다루느냐'라는 것으로 '다른 날들을 어떻게 다루느냐'를 알 수 있는 것처럼.
- 당신은 어떤 선수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단지 앞날을 위해 우리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것을 철학이라 말하 는가? 우리 스스로 인내할 준비가 되었다면 어떤 사건에도 맞설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상대의 공격을 받고 퇴장하고 마는 격투기선수와 같은 것인 가? 하지만 그런 비참한 결과가 없어도 우리는 사각의 링을 떠날 수 있네. 그런데 지혜 의 추구를 포기함으로써 얻는 이점은 무엇일까? 우리가 마주치는 다양한 시행착오 앞에 서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이것이 내가 훈련한 이유라네. 이 원칙을 위해 훈련했다고 말 해야 하지 않겠는가? (에픽테토스, 대화록, 3.10.6-7)
오늘날 우리가 야구와 축구 비유를 들 듯, 스토아 철학자는 권투와 레슬링이 혼합된 판크라티온이라는 스포츠를 자주 언급했다. 이 격투기 에 대해 이야기하며 세네카는 부상을 두려워하는 선수는 연약하며 쉽게 패배한다고 썼다. 그리고 “불운과 끊임없이 반목하는 사내야말로 고통 으로부터 굳은살을 획득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선수야말로 바닥에 쓰 러져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 행운은 무작위로 찾아온다
당신은 이렇게 말한다. "행운은 우리가 구석에 몰릴 때 마주치는 녀석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행운은 잘 조율 된 영혼이자 좋은 충동이며, 좋은 행동인 동시에 좋은 습관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36)
- '행운'이란 무엇인지 좀 더 생각해 보자. 하나는 완전히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는 것으로, 무작위로 발생한다. 또 다른 하나는 비록 확실하 지는 않지만 올바른 결정과 준비를 통해 일어날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것 이다. 후자는 어느 정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행운을 마치 중력에 이끌려 오는 듯한 미스터리한 무엇으로 바라본다.
스토아식 행운의 개념은 16세기 속담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근 면은 행운의 어머니다.” 1920년대 작가인 콜먼 콕스는 이 말에 현대적 인 감각을 보태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행운의 거룩한 신봉자다. 더 열 심히 일할수록 더 많은 행운이 찾아온다."
이런 말에는 여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마법적인 행운에 대한 기대 가 담겨 있다. 하지만 행운은 무작위적이다. 행운은 선과 악, 근면과 불 성실을 가리지 않고 사람에게 다가오는 눈먼 천사와 같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행동을 하는 데 집중하여 행운을 얻을 수 있도록 준비하자. 아이 러니하게도 이 경우 행운은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 신경 끄기의 기술
나는 다른 무엇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는 것에 놀라고는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의 판단보다 다른 사람의 판단을 더 신뢰한다. (...) 어 떻게 나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판단을 더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2.4)
- 품성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라
철학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에 관심이 없다. 단지 필요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에 담아둘 것에만 관심을 둔다. (무소니우스 루푸스, 강의록, 16.75.15-16)
승려는 승복을 입는다. 가톨릭 사제는 로만칼라가 달린 신부복을 입는다. 은행원은 값비싼 양복과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닌다. 하지만 스토 아 철학자들은 법복이 없었으며 이들을 규정할 수 있는 일관된 양식도 없었다. 보이는 외양으로 이들을 규정하거나 구별할 수 없었다. 그렇다 면 이들을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오직 품성뿐이다.
- 그가 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떠올려라. 힘든 시기는 좋아질 수 있으며, 압력은 느슨해질 것이고, 무거운 짐은 가벼워질 수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적절한 방법을 생각해 내기 때문이다. (세네카, 마음의 평정에 대해, 10.4b)
- 직업과 당신을 분리하라
누군가의 서열이나 지위에 변동이 생기고 누군가의 이름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릴 때 질 투하지 말라. 그와 같은 일에는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 누군가는 성공으로 가는 길목 에서 첫발을 떼지 못하고 죽고 또 누군가는 정상에 도달하기 전에 죽는다. 오직 자신의 야망에 도달한 극소수만이 생의 마지막에 가서야 비석에 새길 한 줄의 글을 위해 수천 번의 모욕을 감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네카, 삶의 덧없음에 대해, 20)
때때로 직업에 헌신하는 모습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있다. 정치인은 공무 수행에 몰두한다는 핑계로 가족에게 소홀히 대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작가는 자신의 재능으로 자신의 비사교적인 태도와 이기적 인 행동을 변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정치인은 명성을 더 사랑하는 것뿐이고 작가는 우월감을 즐기고 있는 것뿐이다.
일에 대한 몰입은 그에 따른 성취로 정당화되는 듯하지만 그 성취 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일하 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곡괭이 를 손에 쥐고 죽는다고 해서 즐거울 이유는 없지 않은가?" 소설가인 알렉 산드르 솔제니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노새는 일만 하다가 죽는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인생에 교과서는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반드시 이해하게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제게 말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친구에게 내가 무슨 조언을 할 수 있을까? 가능한 답변은 이것이네. “어떤 상황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마음을 훈련하라." (...) 답이 주어지 지 않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네. 그런 상황에서 절망만 하고 있을 것인가? (에픽테토스, 대화록, 2.2.20b-1; 24b-25a)
- 다른 손잡이를 잡아라
모든 사안에는 두 개의 손잡이가 있다. 열 수 있는 것과 열 수 없는 것. 형제가 당신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잘못'이라는 손잡이를 움켜쥐지 말라. 그 손잡이로는 아무것도 열 수 없다. 그 대신 다른 손잡이를 잡아라. 당신이 형제와 함께 자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손잡이를 잡았다면, 당신은 열 수 있는 손잡이를 잡은 것이다.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43)
- 운명 대신 철학에 의지하라
운명의 여신은 우리 생각만큼 팔이 길지 않네. 그는 그저 자신에게 매달리려는 자들을 잡을 수 있을 뿐이야. 그러니 우리, 그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도록 하세.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82.5b-6)
- 운명과 싸우지 말라
운명이 우리를 찾아낼 때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를 수 있어야 하네. 운명을 받아 들이는 자, 거기에 바로 위대한 영혼이 있네. 그에 반해 연약하고 타락한 자들은 운명과 싸우려 들고 세상의 질서를 무시하려 들지. 그들은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신의 실수를 바로잡으려 드는 자들이라네.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107.12)
-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
인생 전반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생각하지 말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쁜 일에 대 해 걱정하지도 말라. 단지 현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스스로 물어 보라. 지금 여기에서 참 고 견딜 수 없는 이유,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 보라. 그러고 나면 그럴 이유를 찾지 못한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질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36)
- 먼 길을 돌아가는 어리석음
스스로 박탈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먼 길을 돌아 당신이 얻으려 희망하는 모든 것들을 지금 이 순간에 거머쥘 수 있다. 과거는 버려두고, 미래는 섭리에 맡기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2.1)
- 운명을 내 편으로 만드는 두 단어
지나간 과거는 내버려 두어라. 위대한 섭리에 미래를 맡겨라. 그리고 오직 현재만이 경 건함과 정의로움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몰두하라. 경건함이란 우리에게 부여된 운명을 사 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이 우리에게는 운명을, 운명에게는 우리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정의로움이란 우물쭈물 회피하지 않고 자유롭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법대로 행동할 수 있으며 사물에게 요구되는 가치대로 움직일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2.1)
로마 시대 저술가 아우룰스 겔리우스는 에픽테토스가 이렇게 말 했다고 기록을 남겼다. "만일 누군가가 두 단어를 마음에 새긴 뒤 그것으 로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을 돌본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평정 심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 두 단어란 바로 집요함과 저항이다."
그렇다면 어떤 원칙으로 지속하고 저항해야 하는 걸까? 아우렐리 우스 황제는 그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경건함으로 지속하고 정의로움으로 저항하라."
- 결과는 신의 영역이다
나는 한 번도 내 의지를 방해받은 적이 없네. 내 의지를 강제하는 일을 겪지 않았어. 어 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내 선택을 신의 의지와 함께하도록 묶어 놓으면 된다네. 신의 의지가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나의 의지야. 신의 의지로 무언가 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야. 그가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갖게 하고 무엇 을 주고자 한다면 나는 그와 동일한 것을 희망할 것이야. 신이 바라지 않으면 나 또한 희망하지 않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4.1.89)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시되기 전 날, 아이젠하워 장군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가 생 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짜내어 연합군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하도록 했어. 하지만 답은 신의 무릎 위에 있겠지.”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리고 에픽테토스가 말한 것처럼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수용할 자세를 갖추었다.
- 불평은 시간 낭비다
비참하고 우울한 인생으로도 충분하다. 어리석은 행동은 그만하라. 왜 투덜거리는가? 뭔가 새로운 것이라도 있는가? 왜 혼란스러워 하는가? 책임감이 문제인가? 잘 살펴보 라. 혹은 사건 자체가 문제인가? 그것도 잘 살펴보라. 그것들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할 가치가 없다. 이제 신들 앞으로 나아가듯 더 솔직하고 선량한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라. 100년, 아니 고작 3년을 심사숙고해도 결론은 마찬가지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9.37)
작가인 조앤 디디온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인격이란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는 의지로 자기 존중감이 샘솟는 원천"이라고 했다. 아우렐리 우스는 우리에게 자신이 갖지 못한 것, 제대로 되지 않는 일 때문에 불평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 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르 지 않아야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 바로 설 수 있다. 인격은 계발할 수 있 는 것이며, 인격이 계발되어야 자기 존중감도 따라온다. 그 시작은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인가?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오면 그 생각을 가볍게 유지하라. 화가 증폭되지만 않으면 된다. 상냥함과 공손함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분노와 불만에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 는 인간이야말로 강인하며 진정한 용기와 참을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은 평정심 을 유지할 때 더욱 강인해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1.18.5b)
- 증오심을 다루는 법
누군가 나를 경멸한다면? 그렇게 보도록 놓아두어라. 하지만 나는 경멸받을 만한 어떠한 행동도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 누군가 나를 증오한다면? 그들이 그렇게 보 도록 놓아두어라. 하지만 나는 친절과 온화로 모두를 대하도록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지적할 준비를 할 것이다. 하지만 비난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인내하고 있음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단지 진솔하고 참되게 대할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1.13)
- 반대에 부딪혀도 단념하지 말라
우리가 이성의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때, 타인이 막아설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우리의 타당한 행동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선한 의지로 대하라. 그리고 다음 두 가지를 유념하라. 옳은 판단과 행동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앞길을 방해하 는 사람과 난관에도 친절하게 대하라. 분노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약하다는 반증이다. 과 업을 포기하지도, 공포에 사로잡히지도 말라. 무서워하는 자들, 부모와 친구에게서 멀어지는 자들 모두가 의무로부터의 탈영한 병사들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1.9)
- 이성의 일곱 가지 기능
이성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선택하고, 거절하고, 갈망하고, 혐오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아야 하네. 또한 준비해야 하는, 나아가야 하는, 승인해야 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하지. 그렇다면 이성의 정상적인 기능을 오염시키는 것은 무엇이겠는 가? 바로 부도덕한 결정이라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4.11.6-7)
- 생각이 삶을 물들인다
인간의 마음은 어떤 생각을 자주 하느냐에 의해 그 모양을 갖춰간다. 인간의 영혼과 정신은 생각에 의해 착색되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16)
- 비극을 마주하는 법
불쾌한 소식이 자네에게 전해질 때면 그 소식이 자네의 합리적 선택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게. 어느 누가 자네의 기대나 욕망이 잘못되었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겠는 가?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할 수는 있 네.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에픽테토스, 대화록, 3.18.1-2)
- 운명보다 강한 영혼
영혼은 어떤 운명보다도 강하다네. 영혼은 선과 악 어디로든지 자신을 스스로 이끌어가며 행복하거나 불행한 삶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야.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98.2b)
소 카토는 넉넉한 돈이 있는데도 종종 맨발로 로마를 돌아다녔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무심했다. 늘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음에도 간단하고 소박한 식사를 즐겼으며, 여 느 귀족과 달리 비가 오거나 폭염이 내려쬐는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맨몸으로 돌아다녔다.
왜 그는 재력에 걸맞은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카토는 자신을 강하고 회복력이 높은 영혼으로 단련하고자 했다. 특히 '무심'을 수련하 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세속적 욕망의 가치 판단에서 자유롭고자 전선 의 참호 속에서도 권모술수가 넘치는 원로원과 정치 토론의 장에서도 자 신만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유지했다. 카토는 어떤 조건이나 어떤 불운 이 닥쳐와도 자신을 준비하려 했다.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무심이란 결코 즐거움 없는 삶을 뜻하지 않는다. 좋은 순간이 찾아와도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않음을, 나쁜 때가 와도 오래 머물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그 속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강인 한 의지가 들어 있다.
- 자책하지 말라
철학은 단지 검소한 삶을 요구하는 것이지 속죄하는 삶을 바라는 것이 아니네. 함부로 살지 않으면서 검소하게 사는 것은 가능하다네.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5.5)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자기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 다른 스 토아 철학자들의 저작물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할 것은 거기까지였다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자책이 없었다. 속죄를 바라지도 않았다. 자기혐오도 없었다.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한 적도 없었고 중 세 시대 수도사처럼 자신의 실수를 단죄하기 위해 단식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자기비판은 건설적이었다.
과도하게 자신을 압박하는 것과 자신에게 벌을 주려는 의도가 있 는 모든 것은 자책이다. 자책은 어떤 향상도 개선도 가져오지 않는다. 자 신에게 가혹하게 굴 필요는 없다. 불가능하지 않을 만큼 높은 도덕적 기 준을 유지하라. 그리고 행여 실수했을 때 용서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라.
- 유리는 이미 깨졌다
불운이란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우리에게 떨어지는 법입니다. 망루에서 항상 지켜보는 자만이 쉽게 인내할 수 있지요. (세네카, 어머니 헬비아에게 보내는 위로, 5.3)
아름다운 유리컵을 가진 선승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늘 이렇 게 말했다. "컵은 이미 깨졌다." 그는 컵을 아끼고 즐겨 사용했으며, 방문 객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일에도 스스럼이 없었다. 그러던 어 느날 정말로 컵이 깨졌다. 선승은 이렇게 말했다. "당연한 일이지."
에픽테토스와 램프에 관한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에픽테토스 에게는 아주 값비싼 램프가 있었다. 그런데 평소에 문단속을 잘 하지 않 았던 그는 어느 날 그 램프를 도난당하고 만다. 에픽테토스는 미련 없이 싼 것으로 교체했다. 다시 도둑맞아도 될 만큼 아주 싼 램프였다.
- 완벽을 기대하지 말라
저 오이는 쓰다. 그렇다면 내다 버려라! 길 위에 가시덤불이 있다. 그러면 그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귀찮은 존재들 은 왜 있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한다면 자연의 진실한 탐구자인 우리는 웃음 거리가 될 뿐이다. 이는 마치 목수나 구두 수선공의 가게에 톱밥과 가죽 조각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 그들의 비웃음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그것들을 처리하기 위한 쓰레기통이 있지만 자연은 그와 같은 것이 필요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50)
- 역경과 강인함
왜 기분이 상했는가? 왜 불평하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다. 우리는 참고 견디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세네카, 섭리에 대해, 5.7b-8)
- 첫인상에 머물러라
첫인상이 전달해 주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라. 누군가 당신을 험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너에게 전해진 것은 그 이야기일 뿐이다. 그것으로 네가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 아들이 병에 걸린 것을 보았다. 병에 걸렸을 뿐 생명이 위태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첫인상 안에 머물러라. 머릿속에 어떤 것도 보태지 말라. 이것이야 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49)
- 완벽하려고 하지 말라
단지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되네. 완벽을 바라는 순간 그 속엔 절망만 있을 뿐이야. (에픽테토스, 대화록, 1.2.37b)
- 미리 비참해하지 말라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영혼은 비참하다네. 고통이 오기 전에 먼저 고통스러워하지. 그들 이 그렇게 불안에 휩싸이는 이유는 가진 것을 끝까지 소유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야. 하 지만 그와 같은 영혼에게는 결코 안식이 있을 수 없다네. 오히려 갈망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현재를 잃어버리고 말 뿐이지.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98.5b-6a)
- 난파선에서 찾은 것
나는 배에 승선하기도 전에 난파당하고 말았네. 하지만 그 여행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지. 우리가 얼마나 불필요한 것들을 많이 갖고 있는지를, 그리고 상실의 고통 없이 그것 들을 얼마나 쉽게 내다 버릴 수 있는지를.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87.1)
- 웃으면서 절망과 싸워라
헤라클레이토스는 대중 속으로 갈 때마다 울었고 데모크리토스는 웃었다. 한 사람은 세 상을 불행의 연속이라 보았고 다른 사람은 어리석음의 연속이라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 는 가벼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유연한 정신과 함께해야 삶을 인내할 수 있다. 삶을 애도하는 것보다 웃는 것이 더 인간적인 것이다. (세네카, 마음의 평정에 대해, 15.2)
- 갖고자 하는 것을 바꿔라
바라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갖지 않은 것을 원하지 않을 힘은 있다네. 그러니 우리가 가진 이 힘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네.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123.3)
- 역경의 쓸모
한 번도 불행 속에 살아 본 적이 없다면, 나는 당신이 불행하다고 말하겠다. 적대자와 마 주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행운 속에서만 살아왔다면 누구도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당신조차도! (세네카, 섭리에 대해, 4.3)
- 사슬로도 묶을 수 없는 것
자네는 나의 다리를 묶을 수는 있지. 하지만 제우스 신조차 내 자유의지를 파괴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1.1.23)
- 화창한 날에 준비해야 할 것들
자네가 얼마나 의지가 있는지 시험해 보겠나? 일주일 동안 퍽퍽한 싸구려 음식만 먹어 야 한다면, 그리고 다 낡아 해진 옷을 입어야 한다면 자신에게 물어보게. 이것이 자네가 두려워하는 최악의 상황인지 말이네. 좋은 시절일 때 우리는 다가올 힘든 시기를 위해 대비해야 한다네. 운명은 우리 앞의 햇살이 따사로울 때 자신의 이빨과 발톱을 갈아두는 짐승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군인들은 평화로울 때 병법을 수련하고, 적이 시야에 없을 때 참호를 판다네. 지쳐 있을 때 적이 공격해 오지 못하도록 그렇게 대비를 하지.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18.5-6)
- 덜 갖는 연습을 하라
동료 없이 식사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하자. 노예를 두지 않는 삶에도 익숙해지도록 하 고, 본래의 목적으로 옷을 입는 데도 익숙해지도록 하며, 좀 더 합리적인 넓이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에도 익숙해지도록 하자. (세네카, 마음의 평정에 대해, 9.3b)
- 언제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당신이 정상 체중이라면 몸무게가 두 배로 불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수명이 길지 않다고, 더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품는가? 체중에 만족하 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도 만족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49)
- 신은 현명한 자에게 역경을 준다
성공은 하찮고 볼품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도 찾아온다. 그러나 오직 위대한 사람만이 재앙과 불운에 대항해 업적을 남긴다. (세네카, 섭리에 대해, 4.1)
- 인생은 레슬링이다
삶에 필요한 기술은 춤이 아니라 레슬링을 더 닮았다. 우아하게 살기 위해서는 뜻하지 않는 기습공격을 이겨 낼 준비와 굳건히 버텨 낼 능력이 필요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7.61)
- 복수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복수이다
가장 좋은 복수 방법은 그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6)
상처를 보고 복수를 꿈꾸는 것보다 치료하는 것이 훨씬 낫다. 복수는 시간을 낭비할 뿐 만 아니라 처음보다 더 많은 상처를 준다. 분노는 상처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그러니 악에 악으로 맞서지 않고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다. 노새를 차고 개를 물어서 분풀이 하겠다는 사람을 누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가? (세네카, 분노에 대해, 3.27.2)
- 좋은 습관으로 나쁜 습관을 몰아내라
습관은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네. 우리는 자신의 통제 바깥에 있는 것을 얻기 위해, 혹은 회피하기 위해 충동을 따라가곤 하지. 그래서 그와 반대되는 습관을 만들어 야만 한다네. 나쁜 습관은 항상 미끌거리면서 빠져나가려고 하니, 대항할 수 있는 습관을 훈련해야 해. (에픽테토스, 대화록, 3.12.6)
- 삶은 주사위처럼 무작위적이다
기억하라. 당신은 연극에 출연한 배우이고 극작가가 만들어낸 등장인물을 연기해야 한 다. 그가 짧은 연극을 원한다면 짧을 것이요, 긴 연극을 원한다면 길 것이다. 그가 거지 역할을 바란다면 그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 그가 불구자, 우두머리, 혹은 평범한 사람의 역할을 맡기더라도 잘 해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의무다. 당신에게 할당된 역할을 수 행하라. 하지만 배역 선택의 권한은 다른 이에게 있다.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17)
- 철학이 향하는 곳
오만하고 아집에 사로잡힌 채 철학을 행하면 파멸의 원인이 된다네. 타인의 허물에 격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네의 허물을 벗겨내기 위해 철학을 행하도록 하게.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103.4b-5a)
- 잃는 연습을 해라
상실의 고통을 경험할 때마다 신체의 일부를 잃은 것처럼 느낄 것이 아니라 언제든 깨 질 수 있는 유리였던 것으로 생각하게. 이를 기억해야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야. 자네의 아이, 형제자매, 친구에게 입맞춤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네. 그것이 자네가 바라던 최 상의 경험이었다 할지라도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장군이 죽음을 회피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없네. 단지 잠깐 주어지는 것일 뿐, 영원히 가질 수는 없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3.24.84-86a)
- 루푸스의 역설
나라면 화려하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질병에 걸리는 것을 선택하겠다. 질병은 몸을 해롭 게 할 뿐이지만 화려한 삶은 몸과 마음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삶은 몸을 연약하 게 만들뿐더러 영혼을 통제 불능의 겁쟁이로 만들고, 더 나아가 불공정과 탐욕까지 잉태하게 한다. (무소니우스 루푸스, 강의록, 20.95.14-17)
- 영원하지 않기에 특별하다
해야 할 일을 하자. 지금이라도 바로 이승을 떠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2.11.1)
- 메멘토 모리
끝난 것처럼, 이미 죽은 사람인 것처럼 자신의 삶을 생각하라. 남은 것을 여분의 은혜라 생각하고, 자연의 본성에 맞추어 살라. 운명이 당신을 다루는 방식을 사랑하고 맡은 역 할을 다하라. 그것 외에 무엇이 더 잘 어울리겠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7.56-57)
- 미련이 남지 않는 삶
우리는 곧 죽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아직 삶에 전정성이 없고, 평정을 얻지 못했으며, 외부 사건이 우리를 해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또 다른 이에게 자비롭지도 못하며 지혜와 올바른 행동이 동일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4.37)
아우렐리우스는 생의 후반부에 명상록』을 집필하면서 심각한 질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우리는 곧 죽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자 신의 필멸을 스스럼없이 고백한 것이다. 이 구절에는 그가 느낀 두려움 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죽음을 똑바로 응시했던 그는 자신이 본 것 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실제 많은 것을 성취하였음에도 죽음 앞에서 그 의 감정은 고통과 불쾌로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 다는 사실과 더 나은 선택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안도감을 가져다주 었다.
당신에게는 지금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을까? 지금 죽는다고 해도 당신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우리의 삶은 끝까지 완성되지 않 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 죽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는 인생을 사는 것 또한 가능하다.
-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그의 노새지기도 죽음의 신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우주의 창조적 이성에게 회수되었거나, 원자들 사이로 흩어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24)
- 존재의 하찮음
우주의 규모에 견주어 네가 가진 몫이 얼마나 하찮은지 생각하라. 시간의 무한함에 견주 어 너에게 부여된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 생각하라. 운명의 오묘함에 견주어 너의 역할이 얼마나 극미한지 생각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24)
- 자신만의 지혜를 축적하라
통찰을 다른 사람의 비망록에서 빌려 오는 것만큼 늙은이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 네. '제논이 이렇게 말했다! 거기에 자네는 뭐라고 말할 텐가? '클레안테스는 이렇게 말 했다! 거기에다 자네는 또 뭐라고 말할 텐가? 얼마나 오랫동안 다른 이의 주장만 쫓아 다닐 것인가? 이제 자네만의 주장을 하게. 후대에 물려줄 자산을 말이야.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33.7)
- 배설되지 않고 남는 것
자네는 수많은 와인과 온갖 종류의 증류주 맛을 알고 있지. 하지만 백통 아니 수천 통이 자네의 방광을 지나갔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자네는 단지 알코올을 걸러 내는 거름막이었을 뿐이었네.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77.16)
- 지금 바로 시작하라
더 이상 방황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너 자신의 비망록도, 고대의 역사도, 노년에 읽기 위해 수집해 놓은 문집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삶의 목적에 충실하라. 헛된 희망일랑 던 져 버리고 너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움직여라. 너 자신을 돌보고 싶다면 할 수 있는 동안 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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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스토아 수업

인문 2023. 7. 21. 17:20

- 노예 출신이었던 에픽테토스부터 철인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 우스에 이르기까지, 스토아 철학사의 첫 500년을 장식한 이들은 놀 라울 정도로 다양한 계층 출신이다. 직업 또한 상인, 장군, 작가, 운 동선수, 교수, 외교관 등으로 다양했다. 그들의 삶을 우리는 유심히 살펴볼 만하다. 어떻게 해야 덕을 실천하면서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지 중요한 교훈을 전하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스토아 철학에 대한 고정관념과도 맞서 싸워 야 했다. 영어로 'stoic', 또는 'stoicism'은 고통을 묵묵하게 참아내 는 극기심을 뜻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스토아 철학이 무턱대고 극기 심과 평정심만을 강조한다고 여겼고, 스토아 철학자들을 평생 고생하고 살면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냉혈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그들의 생애는 그러한 고 정관념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흔히 사람들은 모든 스토아 철학자가 역경을 끈질기게 참아냈을 거라 생각하지만, 모두 그러지는 못했다. 물론 스토아 철학자들은 대 체로 자기 삶에 충실했고, 고난과 불행에는 당당히 맞섰다. 전투의 최전선에서 용맹하게 적과 싸웠고, 유배지에서도 후학을 길러내고 의미 있는 작품을 집필했으며 늘 신념을 가지고 당당한 자세로 살아 갔다. 스토아 철학은 그들 모두가 함께 일구어낸 생동감 넘치고 포괄 적인 철학이다.
진정한 스토아주의자는 현세와 얄팍하게 타협하지 않지만 세상의 부당함도 무조건 참지는 않는다. 오히려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네로황제 같은 권력자에게 누구보다 열렬히 저항했고, 한발 더 나아가 민 주주의 개혁에도 영향을 미쳤다. 역사학자 리처드 검머 Richard Gummere 의 표현을 빌리면, 깐깐한 간호사가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듯 스토아 철학은 로마 제국의 첫 100년을 빛낸 영웅들의 엄격한 간호사 역할 을 했다. 수 세기 동안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 던 스토아학파는, 남북전쟁에서 흑인 부대의 연대 지휘관을 맡은 토 머스 웬트워스 히긴슨Thomas Wentworth Higginson 같은 애국자와 미국 혁 명의 지도자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실제로 히긴슨은 에픽테토스 의 글을 번역하기도 한 스토아주의자였다.
- 기원후 55년, 세네카는 젊은 황제 네로를 위해 쓴 책에서 이런 말 을 남겼다. "스토아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토아 철학 자에 대한 나쁜 소문이 돈다. 너무 매몰찬 나머지 왕과 왕자에게 쓸 모없는 조언을 건넬뿐더러, 스스로 현자라고 주장하지만 동정심이 없고 타인에게 너그럽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 철학은 유용하게 쓰이고 삶에 도움을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철학에 몸담은 사람뿐 만 아니라, 모든 이의 이익을 고려한다. 스토아 철학의 본질이 그러 하다. 스토아학파만큼 친절하고 온유하며, 인류에 애정을 가지고 공 익에 관심을 기울이는 학파는 없다."
이처럼 스토아 철학자들은 올바른 가치를 위해 피 흘리고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고, 타인의 평가나 세속적 성공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 위대한 스토아 철학자이자 철인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는 『명상록』에서 자기 자신에게 이런 글을 썼다. "너는 평생 곳곳을 떠돌았다. 하지만 끝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 했다. 돈이나 명성을 좇거나, 제멋대로 사는 것은 답이 아니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 키티온의 제논(Zeno of Citium, B.C. 334~B.C.262)
키프로스섬의 키티온 출신 현자.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로, 원래 직업은 무역상 이다. 배가 난파되어 아테네에 머무를 때 철학에 입문, 여러 학파의 가르침을 받은 후 독자적인 철학을 창안했다. 이때 공회당의 채색 주랑(스토아) 밑에서 제 자들을 가르쳐서 '스토아 철학'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이성과 절제, 부동심을 강조했고, 외부의 어떤 불행과 변화, 압력에 결코 휘둘리거나 빼앗기지 않는 내 면의 행복을 강조했다.
- 제논은 아고라 북동쪽의 스토아 포이킬레 Stoa Poikile, 즉 채색 주랑 (벽 없이 기둥만 줄지어 나란히 서 있는 복도 - 옮긴이) 현관에서 제자들과 토론했다. 기원전 5세기에 세워진 이 유적은 무려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터가 남아 있다. 제논의 추종자들은 '제노니안'이라고 불 리기도 했지만, 그는 끝내 철학 학파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 다. 궁극적으로 자신이 추구한 지혜의 보편성과 겸손함을 보여준 것 이다. 결국 제논의 제자들이 자신이 가르침을 받던 근거지이자, 정신 적인 고향을 학파 이름으로 선택했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의 면모와 딱 들어맞는 일이었다. 주랑은 종탑이나 무대도 아니고 창문이 없는 강의실도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구조를 지녔기에, 생각과 성찰을 위한 장소이자 우정과 토론을 나누는 장소 로 손색이 없었다.
- 제논은 인간 본성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삶의 목표는 자연과 조 화를 이루고 덕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를 덕으로 이끌 기 때문이다." 또 이런 명언도 남겼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귀는 두 개, 입은 한 개를 만든 이유가 있다." "혀로 여행하는 것보다 발로 여행하는 것이 좋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고, 타인의 말을 경 청하고 직접 경험하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 앞서 말한 신탁처럼, 그는 크라테스나 스틸포, 그리고 그들보다 앞 서 세상을 떠난 소크라테스 등 여러 스승과의 대화를 통해 지혜를 얻었다. 아고라에서 제자들과 함께 진리를 탐구했고, 사색하기 위해 오랫동안 산책했으며, 치열한 토론을 통해 진리를 시험했다. 그렇게 얻은 지혜는 그 어떤 고통과 불행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내면의 행 복을 굳게 지키도록 해주었다.
지혜를 향한 제논의 여정은 배가 난파됐을 때부터 죽음을 맞이한 때까지 대략 50년간 지속됐다. 철학을 시작한 계기는 난파 사건이었 지만, 그 단발적인 사건에서 갑자기 지혜를 얻은 게 아니다. 제논은 지혜를 얻기 위해 평생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소한 행위에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지만, 진정한 행복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많은 철학자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제논의 죽음에 관해 남겨진 기 록은 그대로 믿기 어렵지만, 여기서도 그는 우리에게 교훈을 남긴다. 그의 나이 일흔두 살 때, 주랑을 떠나던 와중에 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 제논은 그 일이 자신 이 살 만큼 살았다는 신호라 생각했다. 그는 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자신보다 한 세기 앞서 살았던 시인 티모데우스의 명언을 읊는다. "내 발로 이 세상에 왔는데, 어찌 나를 부르느냐?"
제논은 스스로 숨을 참으며 생을 마감했다.

- 근면성실한 주창자, 클레안테스(Cleanthes, B.C. 330?~B.C.230?)
스승인 제논의 뒤를 이어 스토아학파의 제2대 영수가 되었다. 소아시아 아소스 출신으로, 물 긷는 노동을 하며 철학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개인의 의지를 중 시하고 신과 자연을 동일시했으며, 시의 형태로 자신의 사상을 설파했다. 작품 으로 제우스 찬가」의 일부가 전한다.
- 클레안테스는 빚을 지거나 사치하는 걸 몹시 싫어했다. 여러 명의 노예를 두고 화려하게 사는 대신, 소소한 일상 속의 자유를 추구했 다. 아테네에서 제논은 절제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사실 스토아 철학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인 고통이나 불편함에 무심하고, 사치를 지양하는 태도를 구축하는 데 더 크게 일조한 사람은 클레안테스다.

- 논쟁적인 도전자, 아리스토(Aristo, B.C. 306~B.C.240)
그리스 동부 키오스 출신으로 말솜씨가 무척 뛰어나서 '세이렌'이라는 별명으 로 불렸다. 스승인 제논, 사형인 클레안테스 등과 맞서 스토아학파에서 파문됐 으나, 날카로운 비판 정신과 타협을 모르는 사상은 훗날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영감을 주었다.
- 아리스토에게 삶의 목표란 덕과 악 사이에 있는 자잘한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무심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저 덕만 좋으면 그만이 지, '가지고 있으면 좋지만 넘치면 위험한 교묘한 것들'을 상정하고, 그것들을 세세히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는 가 치를 복잡한 범주로 나누길 원하지 않았다. 얼마나 선한지 또 얼마나 악한지 순위를 매기거나, 덕과 악 사이의 중간 영역을 고려하거나, 세세하게 쓰인 규칙서를 만들지 않았다. 흑백논리를 좇았고, 훈련과 직관에 의존해 주어진 상황에 맞는 대처법을 곧바로 알고자 했다. 그가 철학하는 자세는 마치 중요한 전쟁을 앞두고 지휘권을 넘겨 받은 장군과 같다. 전임 장군들이 만든 세세한 규칙서를 받은 장군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태워버려라. 이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곧바로 결정을 내릴 것이다.” 확실히 인상적이긴 하다. 모호한 말은 하지 않고, 판단의 준거에는 오직 선과 악만 있으며 그 사이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은 이걸 다 알고 있다!
훗날 키케로가 지적한 것처럼, 아리스토처럼 똑똑한 사람이 이런 흑백논리를 믿었다는 건 다소 어처구니없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 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순위를 매기거나 선호하는 가치를 줄 세우지 않으면 자칫 삶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확실히 인생의 어떤 요소 들은 다른 것보다 낫다. 분명히 우리를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일 반적인 규칙도 존재한다. 우리의 삶을 둘러싼 상황은 워낙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기에, 반드시 그대로 따르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참고할 만한 선례들도 필요하다. 그건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현명한 사람들 이 직접 어려움과 부딪히면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 터득한 지혜다.
- 스토아학파는 결국 아리스토를 쫓아냈다. 하지만 파문된 뒤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스토아학파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관습 을 무시한 채 오직 자신의 본성에 따른 삶을 중시한 견유학파와 모 든 것을 의심하는 회의학파의 영향을 받아들였으며, 아리스토텔레 스의 소요학파와는 대립했다. 아리스토는 스토아학파로부터 독립한 뒤, 스토아 포이킬레에서 멀리 떨어진 아테네 성벽 외곽에 있는 견유 학파의 학당인 시노게스에 자리를 잡았다. 세이렌이라는 별명답 게, 사람들은 점점 아리스토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곳에서 아리스 토는 견유학파를 비롯한 다른 급진주의자들과 제자를 양성했다. 아리스토는 명성을 얻었고, 곧 자신만의 학파를 설립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길, 아리스토학파 철학자들은 설득력 있는 언 변과 품위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 아리스토는 덕과 탁월성을 따르는 법과 무심을 대하는 법을 가르 쳤다. 그에게 현자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단순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그는 처음으로 인간이란 '운명이 정해준 역할을 흔 쾌히 맡는 배우' 같다고 주장했다. 수 세기 후, 에픽테토스는 동일한 주장을 했다. 규칙서만 찾는 학생들에게 평생 대본대로만 살 거냐고 질책했다. 아리스토와 에픽테토스 모두 인생의 대본은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맡은 역할에 맞게 열심히 인생을 살면 된다고 주장했다.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에픽테토스는 그런 주장을 펼치면서 현명한 조언을 하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 스토아를 수호한 전사, 크리시포스(Chrysippos, B.C. 279~B.C.206)
솔로이 출신. 육상 선수로 유명했다. 어린 시절 아테네로 이주해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클레안테스의 후계자가 되었다. 라이벌 학파의 비판을 물 리치고 학파의 이론을 정립해 '두 번째 창시자'로 불렸으며, 논리학과 윤리학 분 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 교사와 학생, 스승과 제자가 각자 자신의 성격에 맞는 운동을 했 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상대의 허점을 기다렸다가 쓰러뜨리는 권투 선수인 클레안테스는 인내심이 강했고, 혼자 겨루는 종목에 강했던 크리시포스는 폭발적이었다. 공격적 기질에 실력까지 더했으니, 당 시 아테네에서 논쟁의 기술을 다룰 때에는 신들조차 크리시포스를 본보기로 삼았을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폭발적 에너지를 바탕 으로 그는 철학이 '이성의 올바름을 함양하는 행위'라 정의하며 스 토아 철학을 체계화했다. 운이 좋게도 이처럼 뛰어난 사상가를 둔 스토아학파는 아리스토로 인해 흔들린 입지를 다시금 단단히 다져나 갔다.
- 한때 크리시포스는 아리스토의 강의에 참석한 무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았는데, 그는 무리의 일원이 되는 게 중요했다면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꾸했다. 그렇다고 크리시포스 가 삶의 즐거움을 아예 저버린 건 아니다. 단지 지나친 욕망을 경계 했을 뿐이다. 그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현자는 자신의 손에 떨어지 는 것을 뭐든지 사용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필요한 게 없어도 모든 걸 원한다." 가지되 원하지 말 고, 즐기되 필요로 하지 말라. 이보다 스토아학파를 더 잘 설명하는 구절이 있을까?

- 묵묵한 관리자, 타르수스의 제논(Zeno of Tarsus, B.C.?~B.C. 190-180?)
타르수스 출신으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가 어떤 철학적 견해를 가졌는지 명 확하게 전하지는 않지만, 기존에 스토아학파가 주장한 역사의 순환론은 비판했 다고 한다.
- 싸우는 용기만이 용기가 아니다. 인내심을 갖고 묵묵히 내면을 성 찰하는 힘도 용기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모든 사람이 그런 인내심과 용기를 가지고 있기에, 이를 발휘해 상황에 맞는 올바른 덕을 실천하 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의무를 다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제논도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다. 학설을 정 리하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클레안테스 편을 들고 다른 부분에서는 크리시포스 편을 들었다. 그는 자존심이 세거나 갈등을 즐기는 유형 이 아니어서, 산적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다. 세상의 관심 을 좇지 않았고, 수백 권의 책을 쓰거나 대규모 강연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눈앞에 벌어진 갈등을 매끄럽게 처리하고, 스토아 철학을 전수하는 데만 시간을 쏟았다.
키티온의 제논이 새로운 땅을 개척하고, 크리시포스가 주먹을 휘 두르며 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타르수스의 제논은 그럴 필요 가 없었다. 스토아 철학은 이미 잘 정립되어 백여 년간 지속됐기 때 문이다. 그리스 전역에서 수천 명의 사람이 스토아 철학을 따르기 시 작했으므로, 학당은 굳이 노를 젓지 않아도 순풍을 타고 앞으로 나아 가는 배와 같았다. 제논은 학파의 안정과 지속에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그리스는 점점 쇠퇴했고, 로마 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스토아 철학은 민주주의의 요람이었던 그리스를 떠나 신흥 강국인 로마로 뻗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타르수스의 제논이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크리시포스의 제자인 바빌론의 디오게네스가 제논을 계승했다는 점이다. 그 시기 는 로마 제국이 발흥하는 과도기와 맞물려 떨어진다. 로마의 공화정 과 철학의 만남은 스토아 철학을 황금기로 이끌었다. 그리고 로마는 다시 제국으로 성장한다.
역사 속에서 타르수스의 제논의 이름은 거의 잊혔다. 많은 이에게 과도기적 인물로만 기억된 탓일까? 물론 스토아 철학자는 자기 이름이 역사에 남든 잊히든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정말 중 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사실뿐이니까.

- 조국을 지켜낸 외교관, 디오게네스(Diogenes of Babylon, B.C. 230~B.C.142)
바빌론 출신. 그리스와 스토아 철학을 대표해 로마에 파견되어 큰 명성을 얻었 다.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일부 문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책이 소실되었다. 음 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음악이 영혼을 조화롭고 안정적 인 상태로 만들어 건강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 디오게네스는 클레안테스가 사망한 해에 바빌론에서 태어났다. 오늘날 이라크 바그다드에 해당하는 셀레우키아 출신으로, 아테네 로 가서 크리시포스의 제자가 되었다. 타르수스의 제논이 수장 자리 를 물려받았을 때, 디오게네스는 젊었다.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시노페의 디오게네스와는 달리, 바빌론의 디오게네스는 반사회적이 거나 반항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실용적이었다. 약 2세기 전에 이름을 떨친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는 견유학파(키니코스 학파) 철학자로, 그야말로 '개 같은 생활'로 유명했다. 대형 통이나 공 공장소에서 잠을 자거나,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알렉산더 대왕의 말에 "햇빛 좀 가리지 말고 비켜주시오"라고 쏘아붙였다는 일 화가 유명하다.
- 우리가 살펴볼 바빌론의 디오게네스는 때와 장소에 걸맞은 옷을 입고 정중히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인물이었다. 아리스 토 같은 도전자도 아니었고, 크리시포스 같은 전사도 아니었다. 디오 게네스는 특별히 유쾌한 성격을 지녔거나 영리하지는 않았지만, 아 테네의 일반 시민으로서 자기 생각을 신빙성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뛰어난 사상가였다. 그는 당시 철학계에서 떠오르는 스타였고, 언어학, 음악, 심리학, 수사학, 윤리학, 정치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크게 활약했다.
디오게네스를 스토아 철학으로 이끈 것은 무엇일까? 플루타르코 스에 따르면, 그는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 제논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제논이 생전에 많은 글을 남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세월이 흘러도 후대에 큰 영향을 주는 건 말이나 글, 건축물이라기보다 타인 에게 보인 태도와 살아가는 동안 고수한 삶의 원칙들이다. 세상에 발 자취를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상기해야 할 대목이다.
- 키케로에 따르면, 디오게네스는 덕을 실천하기 위해 '평생에 걸친 꾸준함, 목적의 확고함, 그리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돈은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보조적 도구지만, 덕은 평생 연마해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디오게네스의 글은 없다. 베수비오산의 폭발로 파묻혔던 한 마을에서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디 오게네스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작가로, 플라톤과 아리 스토텔레스보다도 인용 횟수가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어느 틈엔가 사라졌듯, 디오게네스도 세상에서 사라졌다. 어떻게 죽었는지, 언제 죽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 키케로에 따르면, 로마에 사절단으로 파견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은 기원전 150년경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로마 시대의 그리스 문학 작가 루키아노스에 따르면, 디오게네스는 여든 살까지 살았다고 하 지만 다른 출처에 따르면 아흔 살까지 살았다고도 하고, 안티파트로 스에게 수장 자리를 물려줬을 때까지 살아 있었다고도 한다.
외교관으로서 고국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철학을 현실에 접목하 려 했던 '철학의 왕자 디오게네스. 비록 영생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가 세상에 남긴 유산, 즉 현실 정치와 개인의 일상에서 힘을 발휘 하는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은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 일상의 문제를 고민한 윤리학자, 안티파트로스(Antipatros, B.C. ?~B.C. 129)
타르수스 출신으로 제논, 클레안테스, 크리시포스와 함께 대표적인 스토아 철 학자로 꼽히며, 키케로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윤리학 분야에서 큰 성 과를 거두어, 스토아 철학이 일상의 철학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 안티파트로스는 초기 스토아 철학자들이 이상하리만큼 도외시했 던 결혼과 가족생활을 강조했다. 제논은 자식이 없었다. 클레안테스 는 너무 검소한 나머지 아내를 둘 여유가 없었다. 크리시포스는 조카 의 아버지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일에 인생을 바쳤다. 하 지만 안티파트로스는 좋은 배우자를 선택하고 아이를 잘 키우는 일 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철학의 새로운 지평선을 열었다. 불 친절하고 욱하는 성격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소크라테스의 아내 이 야기를 들려주면서, 배우자를 지혜롭게 고르지 않으면 삶이 시험대에 오를거라 경고했다.

- 그리스와 로마를 이은 연결자, 파나이티오스(Panaetius, B.C. 185~B.C. 109)
로도스섬 출신으로 로마에서 크게 활약했다.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등 로마 정계의 리더들과 가까이 지내며 영향을 주었고, 스토 아 철학이 로마의 철학으로 확고히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 스토아 철학은 아테네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꽃을 피우고 철학계 를 주무르기 시작한 것은 로마 시대에 접어들면서다. 이는 스토아 철 학계의 외교관이라 할 만한 파나이티오스의 위대한 업적이기도 하 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기원전 155년 디오게네스와 외교 사절단이 로마에 스토아 철학을 성공적으로 전한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그 후 로마는 점점 스토아 철학을 흡수해 제국의 유전자에 각인한다. 하지 만 엄밀하게 말하면, 로마에 스토아 철학이 처음으로 소개된 건 그보다 앞선 13년 전, 소아시아 페르가몬 출신의 스토아 철학자 말루스의 크라테스가 로마로 보내졌을 때다.
그는 조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마케도니아 전쟁에 파견됐는 데, 낙상으로 다리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로마인들에게 철학을 가르 쳤다. 다리 부상을 회복할 무렵, 파나이티오스의 아버지는 로마에서 다른 외교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파나이티오스의 아버지가 크라 테스의 강의를 들었을까? 아니면 시중에 돌던, 크라테스의 강연 내 용이 담긴 책을 집으로 가져왔을까? 아니면 집에 돌아가 아들을 로 마로 데려온 후, 다시 크라테스에게 보낸 걸까?
어찌되었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나이티오스는 페르가몬으로 떠 나 크라테스의 제자가 된다. 철학으로 그리스와 로마를 이을 '연결 자'는 이런 인연으로 철학에 입문하게 됐다.
- 스키피오 서클이 얼마나 자주 만났고 서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쳤는지에 관해서는 오늘날까지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고대 세계에서 스키피오 서클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조금도 의심 할 여지가 없다. 로마 역사가 마르쿠스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는 『로마의 역사』에서 스키피오가 언제나 빛나는 천재 두 명, 폴리비우스 그리고 파나이티오스와 동행했다고 전한다. 스키피오는 전쟁과 평화라는 키워드에 깊게 빠져 있었는데, 끊임없이 전쟁을 연구하고 스스로 위험에 노출시켜 육체를 훈련하거나 철학 공부를 통해 마음을 단련했다고 한다.

- 정직의 아이콘, 루틸리우스(Publius Rutilius Rufus, B.C. 158~B.C.78)
로마 출신의 정치가, 군인, 스토아 철학자. 집정관을 역임하면서 여러 개혁 정 책을 펼쳤는데, 특히 퍼블리카니라는 조직이 세금 징수를 명목으로 소아시아 주민을 수탈하는 것을 막았다. 이러한 정치적 행보는 반대파의 미움을 샀고, 되레 자신이 보호하려고 했던 소아시아 지방의 수탈 혐의를 받아 로마에서 추방 되었다.
- 루틸리우스는 변호를 거부했다. 정치적 동료들의 지원을 구하거 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평판이 자신을 구할 것이라 생각했을까? 스스로 구명 행위를 하는 것이 체면이나 존엄성을 상하게 한다고 여겼을까? 키케로는 『웅변가론』에서 루틸 리우스가 침묵하고 측근 중 누구도 그 재판에 반대하지 않았기에, 마 치 그가 죄를 저지른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또 키케로는 루틸리우스 가 열띠게 반론하고 측근들을 활용해 무죄를 촉구하는 분위기를 조 성하면, 스토아학파의 비판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게 틀림없다고 비꼬았다.
무반응으로 일관하여 되레 그 혐의가 잘못되고 사소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건 소크라테스가 쓴 전략이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곤경에 처했을 때, 묵묵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 오" 하고 신에게 도움을 청한 일과도 비슷하다. 숭고한 자세지만, 적은 그런 소극성을 이용해서 정적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 결국 루틸리우스는 가장 부패한 관료도 받은 적 없는 엄청나게 가혹한 판 결을 받았다. 모든 재산이 압류되었고, 로마 밖으로 추방당했다. 깐 깐하게 묻고 따지는 이가 마리우스의 앞길을 막지 않도록, 도덕적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며 부를 축적하는 신흥 계급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루틸리우스는 분명 스승 파나이티오스로부터 판크라티온 선수처 럼 인생의 역풍에 대비해야 한다고 배웠을 것이다. 역풍을 막지 못할 거라면, 적어도 불평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또 견뎌내야 한다.
- 적은 대의를 위해 국가에 봉사한 정직한 공무원이자 전쟁 영웅 루틸리우스가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도록 해주었다. 부패한 자신들 을 위한 제물이 된 희생자에게 추방 장소를 선택할 기회를 준 것이 다. 그는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에 해당하는 스미르나를 유배지로 선택했다. 고발자들이 그가 돈을 갈취했다고 주장한 바로 그 도시였 다. 루틸리우스는 추방 장소를 스미르나로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무 고함을 역사에 증명한 것이다. 양심적이고 정직한 통치자 덕분에 수 탈에서 벗어난 스미르나는 두 팔을 벌려 루틸리우스를 맞이했고, 심지어 시민권까지 줬다.
- 시대는 새로운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훗날, 루틸리우스가 로마를 떠날 무렵에는 여덟 살에 불과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인해 로마 의 공화정 제도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적 어도 루틸리우스라는 이름은 부패한 세상에 맞선 선의의 상징이 되 었다. 그는 비록 선을 추구하다가 모진 시련을 겪었지만, 자신의 선 택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는 절대로 의심하지 않은 것 같다. 운명을 원망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옳은 일을 했다 고 확신했다. 루틸리우스는 자신의 기개를 꺾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 는 것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고 있었다. 제 논이 "당신이 폭력을 휘두르더라도, 내 마음은 철학에 충실할 것이 다"라고 말한 것처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에게 반복해서 상기한 것처럼 말이다. 제논은 신변의 위협을 받은 적이 없어 그런 말을 쉽게 뱉을 수 있었고 마르쿠스도 부당한 판결을 받거나 추방당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루틸리우스는 실제로 위협을 겪으면서도 그렇 게 믿고 말하고 실천했다. 날조된 혐의로 평판이 더럽혀지고, 재산 이 몰수되고, 사랑하는 조국 밖으로 추방당했지만, 부당한 압력과 시 련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끝끝내 타협하거나 무릎을 꿇지 않았다. 법 이라는 '채찍'을 기꺼이 맞았으며, 그들이 건네는 '당근'은 거부했다. 가만히 있으면 부와 명성을 지킬 수 있다는 유혹에도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로마에서 가장 정직했던 루틸리우스. 그의 삶은 당대의 용감한 스 토아 철학자들을 비롯해, 후대의 철학자,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 지 모두의 모범이 되고 있다.

- 진실을 좇은 천재, 포시도니우스(Posidonius, B.C. 135~B.C.51)
시리아 아파메아 출신. 아테네의 파나이티오스에게 스토아 철학을 배운 뒤, 스 페인, 아프리카, 이탈리아, 갈리아 등을 여행하며 연구했다. 로도스섬에 정착해 스토아 철학을 강의했는데, 그 명성이 로마의 폼페이우스와 키케로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지리학자이자 천문학자로, 태양의 거리와 크기를 재고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기도 했다.
- 포시도니우스는 인간의 마음이 지혜와 진정한 선을 추구하는 반면, 영혼의 가장 저급한 부분은 권력, 승리의 영광, 신체적 쾌락 따위를 추구한다고 여겼다. 마음속에 정립된 선한 습관과 생활 방식은 영혼의 비이성적인 부분을 점검한다. 이렇듯 영혼이 이성적인 면과 비 이성적인 면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발상은,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완 벽하게 이성적 존재라고 여겨온 스토아학파에게는 상당히 급진적인 것이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남북전쟁에 비유한 이성과 비이성 사이의 전투는,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사람에겐 상당히 와닿는 개념 일 것이다. 인간은 늘 내면의 여러 가치로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우리 삶이 결정된다. 포시도니우 스는 이렇게 조언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우주의 진리가 무엇인지 생각하라. 진실과 진리가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코 영혼의 비 이성적인 부분에 이끌리면 안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간계와 강력 한 군사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얻은 마리우스, 술라, 폼페이우스 같은 이들도 이루지 못한 위업이다.
- 이전까지의 스토아학파는 철학을 농장이나 과수원에 비유해, 밭 (물리), 과일(윤리), 울타리(논리) 세 부분으로 나누려고 했다.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에 따르면 포시도니우스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철학을 구성하는 부분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식물과 과일 은 서로 다르고 담장 역시 식물 간의 경계를 구분하기에, 철학을 농 장에 비유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 철학은 오히려 인간의 몸과 비슷 하다. 물리학은 피와 살이고, 논리학은 뼈와 힘줄이며, 윤리학은 영 혼이다." 이 비유는 철학이란 곧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라 주장한 스토아 철학과 완벽히 들어맞는다.
- 복수에 눈먼 문제아, 디오티무스(Diotimus, B.C. ?~B.C. 100?)
출신지와 생몰년 모두 전하지 않는다. 다만 에피쿠로스학파에 대해 악질적인 중상모략을 저질러, 스토아학파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일화만 전한다.

- 위대한 지적 방랑자,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B.C.43)
로마의 정치가, 법률가, 학자, 아르피눔(지금의 아르피노) 출신. 제정 로마로 넘어 가는 길목에 놓인 공화정을 수호하려 애썼으며,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에 맞서 싸우다 피살되었다. 사후 천 년이 지나서도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게 큰 영향을 주었다.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를 대표적인 스토아 철학자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렇게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그는 자기 자 신을 스토아 철학자라고 정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스토아 철학 을 열심히 공부한 것은 사실이다. 포시도니우스에게 가르침을 받았 고, 철학자 디오도토스와 수년간 함께 살았다. 특히 디오도토스는 키 케로의 집에 머물다가 세상을 떴는데, 자신의 오래된 제자에게 전재 산을 남겼다. 키케로는 투스쿨룸 대화에서 진정한 스토아 철학자는 포시도니우스와 디오도토스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고대 스토아 철학이 오늘날까지 전할 수 있던 데에는 키케로의 공헌이 크다. 그는 열심히 스토아 철학을 공부했고, 그 가르침에 관한 많은 글을 남겨 후대에 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 자신이 스토아 철학을 따르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로 키케 로를 스토아 철학자라기보다는 어느 학파에도 속하지 않은 '지적 방 랑자'로 보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키케로는 평생 성공과 야망을 좋았지만, 결정적으로 그 시대가 요구하는 용기와 기개는 다소 부족 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을 통해 대리 만족 을 얻고자 했을지 모른다.
- 한 신탁은 일찍이 키케로에게 이렇게 경고했다고 한다. 군중의 의 견에 따르지 말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살아가라고. 하지만 키케로처 럼 의욕과 야망이 넘치는 사람은 그런 경고를 귓등으로 들었을 것이 다. 훗날 세네카는 누군가를 본받으려면 "소 카토가 되라"라고 말했 다. 카토처럼 절개를 지키며 살고, 그 인생을 나침반처럼 삼아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일 것이다. 키케로는 진정한 스토아 철학자 카토와 동시대를 살았지만,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로 눈을 돌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마리우스를 롤 모델로 선택했다. 그는 전혀 도덕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쉽게 말하면, 도널드 트럼프나 블라 디미르 푸틴 같은 사람이었다. 이 결정은 키케로가 어떤 사람인지 단 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다.
성공을 위한 발판을 단단히 다진 키케로는, 이제 본격적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고 있 었다. 서른 살에 키케로는 로마의 재무관으로 선출되었다. 법안을 만 들고 청원에 답변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낮은 관직이었지만 원로원 의원이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했고, 결국 키케로도 원로원 의원이 된 다. 그는 자기 가문의 재산과 인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알 았기에, 첫 번째 집정관 선거에서도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제논과 제논의 후계자 클레안테스 이후, 스토아학파는 부와 지위에 무관심했다. 키케로는 스토아학파를 존 경했지만,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었다.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는 걸 마 다하지 않았고 부를 좇았다. 성공한 변호사이자 정치인이 된 키케로 는 안티파트로스의 조언에 따라 멋지고 부유한 여성 테렌티아와 결 혼해 가정을 꾸렸다. 약삭빠른 키케로는 클레안테스와 마르쿠스 아 우렐리우스가 제논의 가르침에 따라 재산 상속을 거절한 것과 달리 부모에게 상속받은 재산과 처가의 재산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다. 키케로는 라치오주 포르미아 바닷가에 있는 리조트를 포함해 무려 아홉 개의 빌라와 다른 부동산들을 소유했다. 그중 가장 비싼 것은 고 급 별장들이 즐비한 도시 투스쿨룸에 있던 빌라로, 한때 술라의 것이 기도 했다.
상속받은 부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걸까? 키케로는 부를 축 적하기 위해, 부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재산도 교묘히 넘봤다. 기록에 남아 있는 키케로의 소득원은 볼수록 놀랍다. "계좌 장부를 보면 사실 2천만 세스테르티우스가 넘는 유산을 상속받았다. (...) 친구만이 상속인이 될 수 있었기에, 돈이 쌓일 때마다 슬픔도 함께 쌓여갔다." 키케로에게 스토아 철학을 가르쳤던 스승 디오도토스도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재산을 키케로에게 남겼다. 그 많은 유산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덥석 받은 것도 조금 놀랍다. 그러고는 자신이 크리시포스나 디오도토스가 된 양 친구에게는 이런 편지를 썼다. "정원과 도서관이 있다면 필요한 모든 걸 가진 겁니다." 키케로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키케로는 단순하고 사색적인 삶에 만족할 수 없었고, 부와 명성을 좋았다. 하지만 그것들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이 그렇듯, 키케로 역시 부와 명성을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지 몰랐 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 타협을 모르는 철인, 카토(Marcus Porcius Cato Uticensis, B.C. 95~B.C.46)
청렴하고 강직한 정치인이자 철학자, 로마 공화정의 수호자. 정적 카이사르에 맞서 전통 규범을 지키려 했으나, 결국 내전에서 패해 자살했다. 동명인 증조부 '대카토'와 구별해 '소카토'라 불린다.
- "덕을 제외한 모든 걸 무심하게 대하라"는 아리스토의 사상을 가 장 적극적으로 실천한 스토아 철학자가 바로 카토다. 여론을 휘어잡 거나 멋진 외양을 꾸미는 일,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충분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늘 검소 하고 엄격한 스파르타식 삶을 선택했다. 그는 약간 오만했을지는 몰 라도, 로마의 거리를 걸을 때면 만나는 사람마다 정중히 인사를 건넸 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도와주었다. 그에게 명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중요한 건, 옳은 일을 하는 거였다.
그렇게 사는 게 어렵거나 피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카토는 그런 행위의 결과는 결코 사라지지 않기에, 과정에서의 고됨은 금방 잊을 수 있었다. 반대로, 지름길을 택하거나 옳지 않은 일로 얻은 안도감 이나 즐거움은 금방 사라진다. 악행은 영원히 남는다.
- 카토와 카이사르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지만, 둘 다 탁월한 공로를 세 웠다. 혈통, 나이, 언변에 있어서 누가 더 낫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영혼의 고귀함이나 명성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 둘은 전혀 다른 부류였 다. 카이사르는 많은 기부와 자비로 인해, 카토는 정직함 때문에 위인 으로 여겨졌다. 카이사르는 온화함과 측은지심으로 유명해졌고, 카토 는 엄격함으로 위엄과 신망을 떨쳤다. 카이사르는 남에게 베풀고 문제 를 해결하고 타인을 용서함으로써, 카토는 남에게 호화로운 선물을 주 지 않음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한 명은 불행한 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 했고, 다른 한 명은 악한 자를 멸망시켰다. 사람들은 카이사르의 태평 한 천성을, 카토의 끈기를 높게 샀다.
- 카이사르는 열심히 일하고 경각심을 갖기로 마음먹었음에도 친구들의 일을 신경 쓰느라 결국 자기 일을 등한시했다. 다른 사람이 주는 값비 싼 선물을 거절하지 않았고, 자신의 공로가 빛날 수 있는 군대와 갓 시 작된 전쟁을 찾아다녔다. 그와 반대로 카토는 자제력을 키우고 예절을 쌓았으며, 무엇보다도 엄격했다. 부자들과 재물을 두고 다투지 않았고, 음모에 연루되지 않았다. 올바른 가치를 열정적으로 추구하고, 적당히 자신을 절제하며 청렴결백했다. 남들 눈에 덕이 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덕 있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그래서 명성을 덜 추구할수록, 카토의 덕은 빛을 발했다.

- 결단력 있는 여성, 포르키아 카토(Porcia Cato, B.C.70~B.C. 43-42?)
소 카토와 그의 첫 번째 아내 아틸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카이사르의 암살자로 유명한 브루투스와 재혼했으며, 강한 결단력과 애국심으로 셰익스피어 등 후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 기원전 43년, 키케로는 브루투스를 위로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 다. 아마 그때 포르키아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참으로 큰 상실을 겪으셨군요.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동료를 잃은 거니까요. 슬픔을 느끼는 게 슬픔 그 자체보다 더 크지 않도록, 자기 자신에게 고통과 충격을 소화하고 슬퍼할 시간을 주십시오. 하지만 타인에게 유용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슬퍼하십시오.” 2년 전 키케로 역시 딸의 죽음으로 얼마나 슬퍼했는지를 생각하 면 죽음 앞에 초연하라는 키케로의 조언은 더욱 우리의 심금을 울린 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아무리 철학자라 할지라도, 사랑 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을 쉽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슬픔 앞에 무심 할 수 있을까? 카토가 형을 잃고, 마르쿠스가 스승을 잃었을 때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떠나보낼 때 스토아 철학자라도 냉정을 잃 는건 당연한 일 아닐까? 허벅지를 찌르는 고통은 치유될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은 살아 있는 한 영원하다.

- 황제의 첫 스승, 아테노도루스(Athenodorus Cananites, B.C. 74~A.D.7)
타르수스 출신의 철학자로,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스승.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강조했다. 제자를 공개적으로 책망하기도 한 엄한 스승이었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여가의 필요성을 주창하기도 했다.
- 민주주의의 요람인 아테네에서 탄생한 스토아 철학은 세계의 패 왕으로 떠오른 로마 제국에서는 휘청거렸을까? 현실은 정반대다. 스 토아 철학은 회복탄력성을 빼면 시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오히려 로마 제국의 재상 자리를 꿰찼다.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은 수 용하자는 게 스토아 철학의 핵심 메시지란 걸 고려하면, 사실 앞뒤 가 척척 들어맞는다. 카토는 공화정을 지키려 목숨을 바쳤으나 패배 했다. 로마에 '자유'를 가져오려는 브루투스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 다. 로마는 두 번째 내전을 끝낸 뒤에야 새로운 국가로 재탄생했다. 제정 시대의 막이 올랐고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혼란의 시기에서 살아남은 스토아학파는 이제 다시 국가를 섬기고 태평성대를 유지 하는 게 그들의 의무라 믿었다. 그래서 젊은 권력자 옥타비아누스를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로 만들기 위해 최 선을 다했다.
그 역할을 맡은 첫 번째 스토아 철학자는 아테노도루스다. 

- 팍스 로마나의 주춧돌을 세운 두 번째 스승, 아리우스(Arius Didymus, B.C.70~A.D. 10)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스승이자 정치적 동지,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황제의 신뢰를 얻어 로마 제국 최대의 곡창지대인 알렉산드리아 총독자리까지 제안받 았다. 분란의 씨앗이 될 만한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카이사리온을 제거하라고 권유하는 냉혈한 모습도 보였다.
- 아리우스는 위문 서신을 유려하게 쓰기로 유명했다. 아우구스투 스의 가족과도 가깝게 지낸 아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리비 아가 아들 드루수스를 잃었을 때 이렇게 썼다. "간청하건대, 세상에 서 가장 불행한 여인이 된 양 비뚤어지지 마십시오. 국가가 번영할 때 용기 있는 행동은 주목받지 못합니다. 풍랑이 순조롭고 파도가 치 지 않을 때는 선장의 항해 기술이 돋보이지 않는 것처럼요. 오직 날 씨가 궂을 때만 선장의 참 용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배를 모는 선장 처럼 슬픔에 항복하지 말고, 두 발로 단단히 땅을 딛고 서서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을 견디십시오. 비록 폭풍우의 포효에 두려움이 마 음을 덮쳤어도 말입니다.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만이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의 질책을 멈출 수 있습니다." 아리우스는 슬퍼하는 대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과의 추억을 애정으로 기리고, 살 아 있는 자녀와 손자를 생각하라고 부탁했다. 리비아는 수백만 로마 인들의 말과 기도보다 아리우스의 서신 한 장이 더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 끝까지 나답게 살았던 개성파, 아그리피누스(Paconius Agrippinus, B.C. ?~B.C.67)
크레타섬과 키레네의 총독.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아버지가 반역죄로 부당하 게 반역죄로 죽임을 당했다. 아그리피누스도 상황에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 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 유명해졌다. 결국 아버지처럼 반역죄로 기소당한다.
- "나는 나 자신의 방해물이 아니다." 에픽테토스가 인용한 아그리 피누스의 이 말은 주어진 상황을 한탄하면서 고통받지 않고, 그 어떤 일에도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하거나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은 강인 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고난이 닥쳐도 찬사를 올리고, 열이 오르 면 열병을 앓고, 평판이 떨어지면 그 평판을 더 떨어뜨리고, 유배를 보내면 도리어 유배를 즐겼다. "주어진 선택지가 제한됐을 때, 야단 법석을 떠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그저 그중에서 최선의 대안 을 선택하고 인생을 계속 살아가면 된다. 그 이외의 방법을 고민하는 건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다." 아그리피누스는 자신 의 삶과 황제의 잔인한 추방 처분 같은 가혹한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제 갈 길을 갔다. 그가 왜 추방된 걸까? 증거는 있었을 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타키투스는 일말의 단서를 제공한다. 네로는 이미 선하고 유능한 젊은 시인들을 너무 재능이 많다는 이유로 쫓아 낸 적이 있었다. 아그리피누스도 같은 이유로 추방되었을 것이다.

- 두 얼굴의 위대한 지성,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4~A.D.65)
스페인 코르두바(지금의 코르도바) 출신의 철학자·정치인·문학가. 폭군 네로의 스 승으로, 고리대금업을 통해 부를 불리기도 했다. 이후 정계를 은퇴, 스토아 철 학자로서 『인생론』, 『행복론』 등 여러 작품을 남겼다. 그의 글은 오늘날까지 높 은 평가를 받으며 키케로, 아우렐리우스의 작품과 함께 '라틴어 문학의 표준'으 로 불린다.
- 어린 시절부터 결핵을 심하게 앓아 자살을 고민했을 만큼, 세네카는 늘 죽음에 관해 생각했고 글을 썼다. 매일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마음을 다잡고, 아무것도 미루지 말며, 인생의 자양분이 되는 책을 읽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는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루 는 결코 짧지 않다고 말한다. 유배 생활 동안 사업을 빼앗겼다며 슬 퍼하는 장인에겐 로마에 곡물을 대는 일보다 삶의 대차대조표를 작 성하는 게 더 가치 있다며 위로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세네카가 생각하는 죽음이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점 이다. 우리는 흔히 죽음이란 현재가 아닌 불확실한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네카는 우리가 매일 죽고 있으며, 모두가 한 번 죽으면 다시는 부활할 수 없다고 여겼다. 즉, 삶이 죽음을 향해 달려 가는 게 아니라, 삶 자체가 이미 죽음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죽었고, 죽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지배하고 있기에, 지금 죽나 내일 죽나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 추방령을 반긴 현자, 코르누투스(Lucius Annaeus Cornutus, A.D. 20~A.D.68)
리비아 출신의 철학자. 폭군 네로 황제의 지시를 거부해 로마에서 추방됐고, 이 후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몹시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로 인해 다른 많은 철학자와 달리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 황제가 될 뻔한 철학자, 플라우투스(Gaius Rubellius Plautus, A.D. 33~A.D.62)
티볼리 출신. 황실의 피가 흘렀던 첫 번째 스토아 철학자. 아우렐리우스 이전에 최초의 철인 황제가 될 수도 있었으나, 네로의 견제를 받아 로마에서 추방되었 다가 피살됐다.

- 당당한 원칙주의자, 트라세아(Thrasea Paetus, A.D. 14~A.D.66)
로마 귀족 계급의 스토아 철학자. 강직하고 고결한 말과 행동으로 네로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친모를 살해하는 등 점점 폭주하는 폭군에 맞서다가 결국 자결 하라는 명을 받는다.

- 불의에 맞선 로마의 수호자, 헬비디우스(Helvidius Priscus, A.D. 25~ A.D. 75)
평민 출신으로 어린 시절 귀족 가문에 입양되었다. 이후 공직에 올라 네로를 포 함해 무려 다섯 황제를 섬긴 입지전적 인물로, 어떤 압력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결국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게 미움을 받아 처형됐다.

- 만인에게 평등했던 철학자, 무소니우스(Gaius Musoninus Rufus, A.D. 20-30?~A.D.101)
에트루리아 볼시니 출신의 철학자. 정계에서 활동하는 대신 스토아 철학을 연 구하고 가르치는 데 매진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수차례 유배되었음에도 신 념을 꺾지 않았으며, 신분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제자를 받았다. 노예 출신 스 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스승이다.
- 무소니우스는 겸손했다. 로마 사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꿰찼던 세네카나 키케로와 달리, 원로원 의원이 되거나 부를 쌓으려고 하지 않았다. 부와 인맥을 갖춘 가문과 결혼하지도 않았고,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것들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칭찬과 박수는 관객과 철학자 모두에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 했다. "철학자가 타이르거나 설득하거나 책망하거나 철학을 주제로 토론할 때, 청중은 동요되어선 안 된다. 자신의 열정을 절제하지 못 하고 흔해 빠진 칭찬을 뱉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몸짓을 섞어가며 말 의 리듬이나 수사적 장식 따위에 흥분한다면, 화자와 청중 모두 시간 을 낭비하는 셈이다. 그런 강연은 플루트 연주를 듣고 있는 것과 다 를 바 없다.”
무소니우스는 청중의 환호가 아닌 침묵이야말로 성공한 철학자의 표상이라 생각했다. 침묵은 청중이 실제로 화자가 내뱉는 심오한 질 문들과 씨름하고 있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 스토아학파와 폭군은 언제나 공존하기 어렵다. 결국 93년, 도미티 아누스는 과거에 트라세아를 도왔다는 명목으로 아룰레누스 루스티 쿠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헬비디우스 프리스쿠스의 아들도 살해 했다. 그 후에는 25년 전 네로의 자결을 도왔다며, 에픽테토스의 주 인이었었던 에파프로디투스를 죽였다. 심지어 에픽테토스를 비롯한 모든 철학자를 로마 땅에서 내쫓았다. 만약 무소니우스가 이때까지 살아 있었다면, 네 번째 유배 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폭군 치하에서 살았던 걸 생각하면, 무소니우스가 80대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던 건 놀랍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무너뜨리 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음모를 꾸몄지만 모두 실패했다. 몇 번이나 조국 땅에서 쫓겨났지만, 아무도 그에게서 추방을 견디는 능력까지 뺏을 순 없었다. 누구도 그에게 의연함을 앗아갈 수 없었으므로, 무 소니우스는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 로마든 그 어떤 불모지든 어디서 나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신념을 따랐다.
"철학의 핵심은 이성을 활용해 옳고 바른 것을 찾아내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무소니우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말에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삶에서 직접 실천했다는 것이 더 빛나는 지점이다.

- 노예 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 A.D. 55~A.D.135)
네로 황제의 비서였던 에파프로디투스의 노예였으나 해방된 뒤 무소니우스의 제자가 되어 스토아 철학을 접한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과 같아서 개개인은 자 신에게 부여된 역할과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여겼으며, 어느 것에도 예속되 지 않을 자유(리베르타)를 강조했다.
- 수많은 철학자가 자유를 탐구했지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준 대표적 인물을 꼽자면 단연 에픽테토스다.
제논부터 트라세아까지, 무려 반세기 동안 스토아 철학자는 자유를 주제로 글을 썼다. 또한 추방의 위기를 감수하면서까지 전제정치 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들이 특권층이었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은근히 드러난다. 제논의 가족이 판매한 염료는 노예들이 등골 빠지게 일해서 얻은 것이었고, 세네카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수많은 노예를 소유했다. 포시도니우스와 파나이티오스는 평생 단 하루도 노 동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 부자였고 유명했으며 권력을 누렸다.
당연히 그들이 말하는 자유도 추상적인 수준에 그쳤다.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쇠사슬에 묶여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네카가 노 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기는 하다. 주인이 노예를 책임지고 잘 관리하려면, 노예의 주인이 되기 전에 자신의 주인이 되라고 말이다. 묘하게 뽐내는 듯한 말투다.
대부분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그래도 자신은 노예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줬다고 자랑스러워했을지 모르지만, 에픽테토스는 출발점 부터 달랐다. 그에게 자유는 추상적이고 비유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 일 힘들게 씨름하고 쟁취해야 하는 현실 그 자체였다.
- 에픽테토스는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인생은 한 편의 연극과 같다. 그래 서 그는 온 힘을 다해 연기했다. “가난한 사람, 장애인, 총독, 아니면 일개인을 자연스럽게 연기해서 극작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잘 연기하는 게 각자가 해야 할 일이다. 배역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 에픽테토스는 모든 사물에 양면이 있다고 했다. 한쪽만 보면 답이 안 보이던 것도 다른 쪽을 보면 쉽게 해결된다. 아무리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일지라도, 처한 조건과 관계없이 우리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 선택할 수 있다. 매일 여러 사람과 상대하면서 그들의 어떤면을 바라볼지 결정하는 일이, 결국 우리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될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힘들고 잔인했던 시절, 눈물겨운 역경을 극복한 위대한 철학자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로마에서 8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 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사실은 결코 놀랍지 않다. 에픽테토스의 강의를 들은 제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풍요롭고 강인해졌을까? 제국 전역의 부모들이 자녀가 인생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에픽테 토스에게로 보냈다. 그가 노예였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 권력을 가진 자들도 에픽테토스를 공경했다. 어느 날, 젊은 황태자 하드리아누스가 니코폴리스를 거치던 중 에픽테토스를 만났다. 하 드리아누스가 얼마나 오래 그의 강의를 들었고 어떤 질문을 했는지 는 모르지만, 기록에 따르면 그는 에픽테토스를 매우 존경했다고 한 다. 훗날 하드리아누스는 권좌에 오른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에픽테 토스를 지원했다. 로마 황제들의 전기인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하드리아누스는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철학자들의 자격 을 박탈해버렸지만, 에픽테토스만은 존경했다고 한다.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은 훗날 철인 황제가 될 젊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도 전해진다.
- 에픽테토스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함'에 초점을 맞춘 건, 그 시대의 권력 구조를 잘 간파하고 있어서 가 아니다. 무엇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인간답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 어서다. 세상에는 손쓸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모든 걸 통 제하려는 시도를 멈춘다면, 역설적으로 진정한 행복과 자유의 가능 성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풍족한 돈이 있어야만 행복해지 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건 세상을 직시하는 일이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판단과 감정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야말로 우리가 경험하는 현 실을 결정한다. 에픽테토스는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 도 '나'의 기분을 나쁘게 하거나 좌절시킬 수 없다고 믿었다. "누군 가 한 대 치거나 욕을 했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모욕당했다 고 느낀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네가 그 일을 모욕적이라고 생각했 기 때문이다. 누군가 때문에 화가 난다면, 내 정신도 그 공범임을 기 억하라. 그러므로 기분이 좋지 않다고 충동적으로 반응하면 안 된다. 감정이 들기 전에 잠시 멈추면, 평정을 유지하기가 쉬워진다."
- 삶에서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는 능력과 삶을 바꾸지 않아도 안분지족할 수 있었던 자세가 바로 에픽테토스에게 내재한 힘이었다. "부와 직위에 대한 욕망뿐만 아니라, 평화, 여가, 여행, 그리고 배움에 대한 욕망도 우리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예속시킬 수 있다. 외부적인 가치와 관계없이, 내가 부여한 가치에 내가 예속된다. 집착하는 대상이 곧 나의 걸림돌이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외부 가치가 아닌 내부 가치에 초점을 맞춰 야 한다고 여겼다. 스토아 철학은 다른 사람이나 적과 맞서 얻은 승 리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게 가장 위대 하고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한계, 성질, 자존심, 사소한 욕망 따위를 딛고 올라서서 충동을 다스릴 수 있는지 여부가 삶을 결정하 고, 그런 타고난 조건을 어떤 결과물로 빚어내느냐가 중요하다.
- 어느 날 저녁, 에픽테토스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비싼 철 제 등불을 훔쳐, 복도에 있는 사당까지 등불을 훤히 피우며 달아났 다. 에픽테토스는 분노와 실망감을 느꼈지만, 스토아 철학자라면 그 런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됐다. 그래서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고, 그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찾았다. 에픽테토스는 자신에게 이 렇게 되뇌었다. "친구여, 내일은 도기 등불을 발견할 것이야. 사람은 가진 것만 잃어버릴 수 있는 법이지."
오직 가진 것만 잃을 수 있다. 소유한 것들에 본연의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부여하지 마라. 이런 교훈을 망각할 때, 삶은 고통스럽게 이를 다시 일깨워준다.
- 에픽테토스의 책을 번역한 고전학자 앤서니 아서 롱 Anthony Arther Long은 제목이 왜 '편람'이 됐는지 이렇게 설명한다.
오래전 편람을 뜻하는 엥케이리디온encheiridion은 손에 쥐는 칼이나 단검을 뜻했다. 아리아노스는 스승의 가르침을 담은 책 제목이 자기 자신 을 방어하거나 보호할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기를 바랐다. 또한, 항 상 가르침을 '손에 쥐고 다녀라'라고 한 에픽테토스의 훈고에도 걸맞 았다. 1501년, 에라스무스는 라틴어로 『기독교 군인의 편람을 발표했 는데, 이는 명백한 오마주다.

- 철인 황제를 탄생시킨 스승, 유니우스 루스티쿠스(Junius Rusticus, A.D. 100~A.D.170)
로마 출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스승이자 친구였다. 마르쿠스가 황제로 즉위한 후, 주요 공직을 맡았으며 로마의 시장이 된다. 공정하게 공무를 보았으나 기독교 철학자 유스티누스를 박해해 명성에 오점을 남긴다.

- 스토아 철학의 위대한 실천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D. 121~A.D.180)
'팍스 로마나'라고 불리는 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연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 외적 의 위협과 전염병 유행이라는 위기에 맞서, 헌신적인 태도로 자신의 정치적 책 임을 다했다. 최초의 철인 황제로 불리며, 스토아 철학적 성찰이 담긴 일기인 「명상록을 남겼다.
- 마르쿠스는 어려운 시기를 마주할 때마다 이런 조언을 마음에 새 졌다. "외부의 환경으로 불안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면, 신속하게 너 자신으로 돌아가라. 불안과 혼란에 필요 이상으로 노출되지 말라. 끊 임없이 너 자신으로 돌아간다면 네가 처한 환경을 더 잘 다스리게 될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 시기 국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지 마셜 의 아내는 남편을 이렇게 묘사했다.
남편에 관해 쓴 기사를 보니 기자들은 대개 남편이 내성적이고 겸손하 다고 썼더군요. 하지만 전 그가 내성적이거나 지나치게 겸손하다고 생 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있지만, 겸손함과 이타심으로 조절하는 것뿐이죠. 강인한 남자치고 보기 힘든 면모입니다.
- 철인 황제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마르쿠스는 권력을 쥐었지 만 타락하지 않았고, 끔찍한 전염병이 돌았을 때도 두려워하지 않았 으며, 배신당했을 때 분노를 자제했고, 가족을 잃는 비극에도 무너지 지 않았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완벽했다면, 존경받을 이유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았다는 게 요점이다. 그가 노력으로 현자 의 경지에 다다른 것처럼, 우리도 변할 수 있다. 마르쿠스도 우리가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부끄러워하는 것보다 먼저 스스로 가진 능력을 다시 떠올리기를 바랄 것이다.
- 그는 침착하고 존엄성을 갖춘 지도자였지만, 완벽한 통치자라고 할 수는 없다. 마르쿠스는 기독교인을 박해했고, 이는 루스티쿠스와 마르쿠스 삶에 오점으로 남았다. 하지만 마르쿠스 치세 말기를 살았 던 초기 기독교 작가 테르툴리아누스는 황제가 기독교를 수호했다 고 언급하기도 했다. 마르쿠스는 노예의 삶을 약간 개선했지만, 다 른 스토아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노예제도'라는 체제 자체에 의문 을 제기하진 않았다. 세계 시민으로서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연결되 어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치고는 많은 전쟁을 일으켰고, 많은 이를 '야만인'이라 간주하고 죽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인 황제는 광기 어리고 흠 많은 아들 콤모두스에게 황위를 물려줬다. 마르쿠스는 아 우구스투스 다음으로 처음 친자를 둔 황제다. 콤모두스는 네로와 더 불어 로마의 암흑기를 대표하는 폭군으로 꼽힌다.
- 자신의 기준에 맞추거나 불가능한 걸 기대하는 대신(대부분 재능 있고 뛰어난 지도자도 참모진이 자신의 기준에 맞추길 기대한다) 그들의 강점 을 살리고 약점을 품어주었다. 마르쿠스는 누군가가 자신의 말에 동 의하지 않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고 공통의 대의명분을 위해 최대한 의 의견 합치를 끌어냈다. 디오 카시우스는 이렇게 전한다. "마르쿠 스는 어떤 사람이 선을 행하는 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강 점을 살릴 수 있는 자리에 배치하되, 그 외의 행동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람을 바꿔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 고,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것보다 기존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국 가에 봉사하게 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세상이 한 사람을 얼마나 쉽게 산산조각 낼 수 있는지, 자신의 믿 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알게 되면, 자연스레 잔인한 세 상과 운명을 원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토록 잔인한 현실을 겪고 나서 쓴 그의 글은 진정한 리더십의 정수와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보여준다.
'운이 나빠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지 말고 '이런 일이 일어났는 데도 그 일 때문에 무너지지 않고, 미래에 일어날 일도 두렵지 않으며, 이렇게 아무런 해악도 입지 않고 멀쩡한 것이 행운이다'라고 말하라. 누구나 그런 일에 해악을 입지 않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 「명상록』은 인생의 기복, 즉 인생이 가져다주는 축복과 저주에 대 해, "자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무심하게 받아들여라"라고 말한다. 수 세기 전 제논, 클레안테스, 크리시포스와 아리스토가 주장한 '선호하는 무심'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문장이 있을까?
- 『명상록』에서 마르쿠스가 가장 심도 있게 다루는 주제는 단연 죽 음이다. 자신의 건강 악화와 가족들의 사망으로 늘 죽음이 가까이 있 다고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작가이자 심리학자인 도널드 로버트슨 은 『로마 황제처럼 생각하는 법에서 조금 다른 주장을 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향을 피우면 가족을 질병으로부터 지킬 수 있다고 믿었 다. 역병이 돌았을 때 다른 부유한 로마 시민처럼 몸을 피하지 않았 기에, 마르쿠스는 온종일 시체 썩는 냄새와 달콤한 향이 뒤섞인 냄새 를 맡아야 했다. 로버트슨은 이렇게 말한다. "10년 동안 도시에 퍼진 향냄새는 마르쿠스가 죽음의 골짜기에 살고 있고, 오늘도 숨 쉬고 있 음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걸 늘 깨닫게 했다."
- 이처럼 마르쿠스의 글에는 그의 통찰력이 담겨 있지만, 시대적인 상황도 반영돼 있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거나 살아야 할 분량 은 이미 다 살았다고 생각하라. 너의 여생은 덤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여겨라." 또 다른 장에서는 이렇게 썼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죽을 수도 있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라."
어쩌면 죽어가는 동안 썼을지도 모르는 『명상록』의 마지막 두 권 은 본격적으로 죽음에 대해 다룬다. 삶은 연극과 같다. 모든 연극은 막이 내리고 모든 배우는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죽 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5막 중 3막만 겨우 마쳤을 뿐인데 이렇게 가야 하나?"라고 절규할지도 모른다.
- 연극과는 달리 3막만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여러 요소 를 결합해서 처음 너를 만들어낸 그 존재만이 너의 인생을 언제 끝낼 지 결정할 수 있다. 그 결정을 따라 너를 구성하고 있던 것들은 해체된 다. 네가 태어나거나 죽는 것은 네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 므로 자연의 결정을 선의로 받아들여 순순히 떠나라.
자연의 섭리를 따라 세상을 떠나는 건 위대한 철인 황제의 마지막 과제였다. 사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지막 과제일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지만, 그 죽음을 용 를 갖고 침착하게 잘 마주해야 한다.
- 지금의 오스트리아 빈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벌인 게르만족과의 전쟁 도중에 마르쿠스의 병세는 악화된다. 자신의 병을 아들에게 옮 길 것을 방지하고, 승계 문제도 깔끔하게 해결하기 위해 마르쿠스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과 작별을 한다. 그를 로마로 보내 제국을 다스릴 준비를 시켰다. 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에 게 가르침을 주었고 철학자로서 삶을 끝내려고 노력했다. 슬퍼하는 친구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왜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가? 모두가 고통받는 전염병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늘 마음을 단련했던 마르쿠스는 존엄성 을 지키면서 말을 이었다. "만약 지금 내가 세상을 떠나는 걸 허락해 준다면, 작별 인사를 고하고 먼저 떠나겠네."
그는 이 말을 하고 하루 정도 더 살았다. 명상록의 마지막 문장에는 몸은 병마에 쓰러져갈지라도 여전히 의지를 다지며 자신만의 철학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한 강인한 철학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므로 자연의 결정을 선의로 받아들여 순순히 떠나라.
마침내 180년 3월 17일, 위대한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경비병에게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가라. 나의 태양은 이미 지 고 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잠자리에 들기 전 머리를 가렸고,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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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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