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 설계자들

인문 2024. 4. 2. 06:59

- 홀로 있든 함께 있든 떨쳐낼 수 없는 것이 바로 몸이다. 몸은 욕구로 가득하다. 수면욕, 식욕 그리고 성욕. 수도자들의 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 몸을 다스리기 위해 욕구를 적절히 해소하기도, 정면으로 거스르기도 했다. 하지만 목표는 늘 하나였다. 몸을 다스려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이 목표를 잃은 수도자들에게는 몸에 대한 집착만이 남았다.
- 수도자들이 신체를 단련하려고 개발한 일련의 수행법을 오늘날엔 '고행 asceticism'(또는 금욕주의옮긴이)으로 부른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인 아스케시스askesis에서 유래된 용어로, 신체 단련 이나 정신 단련, 또는 둘 다를 뜻한다. 하지만 자아를 전면적으로 점검하기 위한 심신 수련법을 수도자들이 처음 개발한 것은 아니 었다. 실제로 수도자들은 수 세기 전부터 이어진 철학적·의학적 전 통에도 의존했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충만함을 구원의 매개체로 강조한 기독교 신학에도 의존했다. 의사와 플라 톤주의자, 유대인, 스토아학파, 냉소주의자, 신플라톤주의자, 초기 기독교인은 신체와 영혼과 신성의 본질에 대해 각기 다른 이론을 내놨다. 하지만 영혼이 신체보다 위에 있는데도 신체에 영향받기 때문에 의학적·운동적·도덕적 훈련을 두루 거쳐 신체를 면밀히 점 검하고 단련해야 한다는 데 전반적으로 동의했다.
- 고대 후기와 중세 초기의 기독교 수도자들은 한결같이 몸단장과 수면, 성관계, 식사를 신체 단련의 주요 대상으로 보았지 만, 방법 측면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간혹 그들의 다양한 권고는 상당히 다른 우주론과 신학에 뿌리를 두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성 은 대체로 몸과 마음의 경쟁적인 역학과 관련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둘을 함께 훈련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대개 그 시작은 몸단 장이었다. 이는 사소한 주제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산만함 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수도자들이 애초에 몸과 마음을 연계해서 바라봤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 "천국에 가기 위해 스스로 거세한 남자들"
5세기가 되자 대다수 수도자는 금욕이 육체적 도전이자 정신적 도 전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렇더라도 평온한 상태에 도달하고자 다 양한 수행법을 고안했다. 일부 수도자는 거세까지 하면서 논쟁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들은 <마태복음> 19장 12절에서 영감을 얻었 는데, 여기엔 그리스도가 "천국에 가기 위해 스스로 거세한 남자 들”을 칭찬했다고 나와 있다. 그들은 또 정자가 부족하면 성욕이 고갈된다는 갈레노스Galenos파의 의학 이론을 따르기도 하고, 거세 하면 신체가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금욕주의자들의 속설에 이끌 리기도 했다. 가령 신체 일부가 “당신을 무절제한 상태로 이끈다 면, 전체를 망치느니 그 부위를 잘라낸 채 절제하며 사는 게 낫다." 이처럼 거세는 수도자를 지옥에 떨어뜨릴 수도 있는 산만함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거세의 논리에 결함이 있다고 반박하는 수도자도 꽤 있었다. 그들은 거세된 남자도 여전히 성욕을 느끼고, 또 성관 계도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더 일반적으로는 수도자들이 은유적 으로만 거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세는 해결책이 아니라 회피 책이었다. 즉 고환을 잘라내거나 수술로 제거한 수도자는 어떤 결 심으로 감행했든, 실제론 자제력 부족을 드러냈을 뿐이다. 자신의 마음이라는 궁극적 도전에 맞설 수 없었던 것이다. 30
7세기의 수도자로서 동지중해 일대의 여러 금욕 행위를 조 사한 요한 모스코스는 이러한 논리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수도 자의 성욕이 기적적으로 사라져도 축하할 일이 아니라고 못 박았 다. 성적 흥분에 맞서 싸우는 수도자야말로 육체적·정신적·도덕적으로 강건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자이자 사제인 코논Conon을 예로 들었다. 코논은 여성에게 세례를 베풀 때마다 흥분했는데, 자 기 약점을 극복하려 애쓰는 대신 당황해서 의식을 그만두었다. 그 런데 기적이 일어나 다시는 성욕을 느끼지 않게 되자, 그는 다시 세례를 베풀었다. 하지만 모스코스는 코논의 성과를 전혀 인정하 지 않았다. 코논이 마음을 수련하지 않았기에 그의 무성애는 무의 미한 승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모스코스의 판단에 동의 하지는 않았다. 로마 법학자들과 교회 평의회가 수 세기 전부터 거 세를 금지했지만, 그들의 결정이 항상 지켜지거나 강제되지는 않 았다. 모스코스가 살던 시대에도 (특히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에서) 일 부 수도자는 계속 거세를 감행했고, 일부는 결사반대했으며, 또 일부는 거세된 수도자를 동료로 받아들였다.
이성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수도자도 많았는데, 일부는 이 또한 의지 부족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남성 은수자들 은 흔히 여성 방문객을 외면하는 데서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남 성과 여성 수도원은 통상적으로 이성 수도자의 접근을 거부했지 만, 대체로 (응접실이나 교회당 같은) 특정 공간, (친척과 고위 성직자 같은) 특정 사람, (건축이나 의료, 성찬 의식 같은) 특정 직군에 대해서 는 예외를 두었다. 심지어 출생 시엔 여성으로 기록되었으나 스스 로 남성이라고 주장한 수도자가 남성 수도원에 합류했다는 기록 이 수 세기에 걸쳐서 꽤 존재한다. 그들의 트랜스 정체성은 흔히 죽고 나서야 밝혀졌다. 동료 수도자들은 그런 사실에 깜짝 놀랐는 데, 초기의 충격은 대개 분노보단 감탄으로 바뀌었다.
- 적어도 중세 초기의 성인전 작가들은 그런 식으로 묘사했다. 트랜스 수도자들에 대한 그들의 묘사로 볼 때, 이성 간의 신체 접촉이 수도자들의 정신적 평정에 결정적 위협은 아니었던 것으 로 보인다. 수도자들은 그보다 더 큰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일부 수도자는 좀 더 일상적인 상황을 예로 들며 이러한 점을 강조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수도자는 마음이 흥분할 기회를 제한하고자 길에서 마주치는 이성에게서 시선을 돌렸지만, 다른 수도자는 그 런 행동이 피상적인 형태의 금욕주의일 뿐이라고 반대했다. 몸만 치열하게 고행할 게 아니라 마음도 똑같이 단련해야 한다고 보았 다. 널리 알려진 한 이야기에서 떠돌이 남성 수도자는 여성 수도자 무리를 마주쳤을 때 그들을 피하려고 길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무리의 지도자가 그에게 다가가 “당신이 완벽한 수도자였다면, 우리가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았을 겁니다”라며 나무랐다. 신체 에 얽매이면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성인전이 이성과 기꺼이 교류했던 도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포프테그마타 파트룸》, 테오도레 투스의 《종교사Religious History》, 그레고리우스의 《대화집》 등 대 단히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금언집들만 살펴봐도 모두 그러한 성 향의 수도자들을 기리고 있다. 그런데 친밀한 공동체 안에서조차 정반대의 태도가 나타나기도 했다. 6세기에 쥐라의 아버지들Jura fathers로 불린 수도원장들에 대해 투르의 그레고리우스 주교는 한 명은 여성과 만나기를 거부했으나 다른 한 명은 따뜻하게 맞아줬 다고 언급했다.
- 수도자들이 개발한 식단은 전통적 충동과 파격적 충동의 특징을 두루 반영했다. 그들은 오랜 의학적·철학적 전통을 계승했는데, 둘 다 절제된 식사의 신체적·정신적·도덕적 이점을 강조했 다. 그들은 또 헤시오도스와 유대기독교Judeo-Christian의 신화에서 세상이 변하고 타락하지 않았을 때 인간이 먹었던 음식에 대한 영 감을 얻었다. 일종의 구석기 식단paleo diet을 애용했던 셈이다. 한편 로마 엘리트 가정에서 만연했던 축하연 형태의 식사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새로운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공동 식사는 피트 스톱pit stop(자동차 경기 도중 아주 빠르게 급유하거나 정비하기 위한 정차-옮 긴이) 같은 느낌을 주었다. 수도자들은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료를 채우기 위해서 모였다.
그렇지만 함께 식사한다는 사실 자체는 여전히 중요한 의 미가 있었으니, 함께 수행한다는 느낌을 강화했다. 수도원 지도자 들은 같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공동체의 결속이 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5세기에 상부 이집트에서 활동한) 셰누테와 (6세기에 갈리아, 또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며 《바오로와 스테파노의 규칙Rule of Paul and Stephen》을 쓴 셰누테는 심지어 수도자들이 각자의 조미료를 식 탁에 올릴 수 없게 했다. 누구나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이유 였다. 하얀 수도원의 여성 수도자들은 셰누테가 식사량에 대해서 도 그렇게 주장한다는 점에 언짢아했다. 남녀 수도자가 같은 기준 을 따라야 한다는 셰누테의 논리에 따라 일일 배급량이 조절되자, 그들 중 일부는 성별에 따라 차별을 둬야 한다고 반박했다.
셰누테가 이런 반박에 응하진 않았지만, 그를 비롯한 수도 원 지도자들은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한 수도자에 대해선 예외를 인정했다. 다만 엘리트 수도자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더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하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제안을 따르는 지도자는 많 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수도자와 나이 든 수도자, 수확 같은 계절 노동으로 지친 수도자에겐 편의를 봐주려 애썼다. 아픈 수도자에 겐 특별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점에도 대부분 동의했다. 하지만 환자가 더 나은 음식을 먹고 더 많이 쉬는 것에 일부 건강한 수도 자는 분개하기도 했다. 그래서 처방된 음식을 먹지 않고 참고 견디 려는 수도자도 있었다. 그런데도 어떤 수도자는 그가 특전 때문에 아픈 척한다고 의심했다.

- 1500년 전의 수도자들에게 책은 신문물이었다. 현대인이 스마트폰에 빠져들듯 수도자들도 책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책의 포로가 되지 않았다. 능동적으로 쓰고 만들고 읽으며 책을 집중의 도구로 삼았다. 조판부터 디자인까지 그때 개발된 기술이 지금 이 책에도 녹아들어 있다. 집중을 논할 때 여전히 책을 강조하는 이유다.
- 최적의 시간에 책을 읽는다고 해도, 수도자들과 그들의 마음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았다. 키프로스의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of Cyprus 등 열성 지지자들이 주장한, "이 책들을 보기만 해도 죄를 덜 짓고 의로움을 더 굳건히 믿게 된다"라는 식의 정서는 크게 공감받지 못 했다. 6세기에 레안데르가 말했듯 수도자들은 악마에게서 벗어나 기 위해 독서와 기도를 꾸준히 수행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 게 꾸준히 수행하더라도 늘 위태로운 상태를 면하기 어려웠다. 산만함은 책이 베개로 전락하기 한참 전부터 수도자들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수도자들은 집중하는 데 도움 을 받고자 집중이 필요한 작업, 즉 책과 씨름해야 했다.
- 그래서 수도자들은 적극적으로 읽는 법을 배웠다. 이 말은 곧 현대와 상당히 다른 독서법을 채택했다는 뜻이다. 요즘처럼 속 독, 훑어보기, 폭넓게 읽기를 목표로 삼는 대신, 수도자들은 천천 히 주의 깊게 읽고,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읽었다. 스페인 북서부 에서 전래한 '일반 규칙'은 수도자들이 성부들에 관한 글을 반복 해서 읽고 마음에 깊이 새기도록 권고했다. 심지어 글을 읽지 않 을 때라도 성부들이 사방에서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고 상상하게 했다. 이런 가상의 보호막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일종의 지원책으로 여겨졌다. 

- 수도자들은 자기 내면에서 기억이라는 또 다른 책을 찾아냈다. 원하는 것만 기억하고, 잘 분류하며, 필요한 만큼만 끄집어낼 수 있다면, 산만함과 작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개발된 불멸의 기술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으로 자기 내면에 집중한 수도자들은 머릿속 기억의 방에 가닿았다. 이후 어질러진 방을 청소하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채워 넣으니, 이를 통찰이라 불렀다.

- 집중의 단계가 심화할수록 수도자들은 가장 강력한 적, 즉 생각에 초점을 맞췄다. 생각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 없이 살 수도 없었다. 따라서 중요한 건 생각을 관찰하고 분별하는 일이었다. 이로써 생각을 생각하는 일, 곧 메타인지가 탄생했다. 메타인지의 최고 경지에 오른 수도자들은 집중에 집중하는 일, 곧 몰입의 순간을 경험했다.
- 생각 속으로 깊이, 더 깊이 파고들면 수도자들은 마음의 가장 기이 한 특징, 즉 어떤 정보를 처리하는 동시에 그 과정을 관찰하는 능 력과 마주쳤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성찰성reflexivity을 수다스러운 간섭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수도자들은 재능으로 여겼다. 그들 에게 생각에 관한 생각은 산만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아를 안정 시키는 궁극적 방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머릿속으로 들어 가기 위해 온갖 방법을 고안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전략들, 즉 수도자들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공동체, 몸, 책, 기억을 활용하기 위해 고안한 온갖 수 행법은 집중된 마음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동심원과 같았다. 그런 데 수도자들은 마음을 단련할 때조차 산만함에 빠지기 쉬웠다. 설 상가상으로 잘 훈련된 수도자일수록 산만함을 제대로 인식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정신이 고도로 기능하는 상태에서 방해받으 면, 방향이 잘못된 것인데도 순간의 통찰처럼 느껴졌다. 그레고리 우스와 니네베의 이삭은 6세기 말과 7세기 말에 저술한 책에서) 산만함과 계시는 대단히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둘 다 술에 취한 듯 통제력을 상실한 느낌을 주었다. (그레고리우스가 말한) 인지적 "실수" 나 (이삭이 말한) "말더듬증" 때문인지, 아니면 개념적으로 압도하 는 현상을 갑자기 접했기 때문인지 구별하기 위해, 마음은 자기 자 신을 철저히 조사해야 했다.
이로써 메타인지는 고대 후기와 중세 초기의 수도자들에게 중요한 수행법이 되었다. 기법은 초급부터 고급까지 다양했다. 나 스파르의 아브라함Abraham of Nathpar이 600년경에 말했듯 "수도자 내면의 숨겨진 존재가 아기처럼 자랐기 때문이다. 마음은 아기의 옹알이를 내면의 언어로 발전시켜, 이를 활용해 자신의 움직임을 능숙하게 관찰하고 산만한 요소를 제거해야 했다. 즉 점점 더 어려 운 훈련을 통해 자기 생각을 관찰하고 평가하고 격려하고 확대해, 궁극적으로 (일시적이나마)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했다.
- 기도에 집중하고자 고안한 가장 간단한 메타인지는 마음속에 상상의 울타리를 치고 그 속에 온갖 생각을 가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7세기의 시리아 작가 사도나Sandona는 “사방에 흩어져 있 는 생각을 한군데로 모은다”라고 묘사했다. 이 방법은 주로 집중 전 준비 단계로 활용되었다. 셰몬 디에부타가 상상했듯이 생각을 목초지로 보낼 수 있다면, 울타리 안에 다시 가둘 수도 있을 것이 었다. 요한도 똑같은 전략을 공유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근처의 어느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한 수도자가 기도에 굉장히 집중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에게 어떻게 그리 집중할 수 있는지 설명해달 라고 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는 기도를 시작할 때 습관적으로 내 생각과 마음과 영혼 을 끌어모읍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을 상대로 '어서 그리스도와 우 리의 왕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자!"라고 소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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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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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는 우리에게 귀한 도구를 하나 마련해주었다. 바로 '위대한 건강'이라는 개념이다. 아무 문제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러한 '좋은 건강'이라는 이상은 많은 사람을 소외시킨다. 반면 '위대한 건강'은 상처, 상흔, 모순, 장애, 질병을 모두 끌어안는다. 위대한 건강은 경직되는 법 없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다. 심지어 우리 가 지닌 모순도 우리를 명징함에 가까워지는 길로 인도할 수 있 다. 우리의 약한 부분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우리는 한 걸음씩, 밀 리미터만큼 미미할지라도 조금씩 길을 나아갈 수 있다. 잘못 내디 딘 발걸음과 날마다 겪는 근심 걱정의 한가운데에서도 자신을 단 련할 수 있다.
-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혜에는 밀접하게 연결된 두 가지 측면, 즉 소피아 sophia 와 소프로시네 Sophrosyne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는 관조적이 고 이론적인 지혜이자 어떤 관점에서는 이지적인 탁월함을 의미 한다. 실천적 지혜인 소프로시네는 특히 감정을 절제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마음의 균형을 잡는 일은 매우 섬세한 작업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는 데는 즐거움이 따른다. 이것은 '지혜'라는 말의 라틴어 어원에 '풍미 Savour'의 뜻이 담긴 것을 보면 알 수 있 다. 사피엔티아 Sapientia, 즉 지혜를 함양하는 자는 거기에 몰두하면 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거짓 행복과 현실 왜곡에 작별을 고하는 자유의 기쁨, 세상을 편향된 눈으로 보게 하여 결국 세상을 고통스럽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오해들로부터 해방되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다.

- 내가 철학에 매료된 이유는, 철학이 그 유명한 아타락시아Ataraxia, 즉 영혼이 아무런 문제도 겪지 않는 마음의 평정 상태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나를 돌아보니, 마음을 흔드는 수많은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는 행운은 내게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명상 덕분에 매일매일 일종의 기적이 일어 나고 있다. 번민이 몰려와도 그냥 웃어넘기고, 더는 두려움을 두 려워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지에 도달하는 데 꽤 도움 되는 훈련 비법이 하나 있다. 두려움, 번민, 슬픔 등을 경험하는 의식은 절대 동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면 된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고 무사한 상태로 남아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상처를 주 는 그 어떤 충격도 건드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부분, 의식이다. 의식은 커다란 곰솥에 비유할 수 있다. 곰솥 안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 있다. 기분을 좋게 해주는 당근, 상추, 병아리콩도 있고 눈물 을 쏙 빼게 하는 양파도 들어 있다. 불행에 빠지면 자아는 다른 맛 은 음미하지 않은 채 양파만 씹는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을 곰솥 과 같다고 생각하면, 분노와 아픔에 이르지 않고 감정을 그냥 홀 려보낼 수 있다. 이것들은 그저 많은 재료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 늘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나 이 세상의 규 칙을 따르지 않는 또 다른 세계에 산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이 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이 가상의 세계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그곳에서는 위험성이 1/10억에 불과할지 라도 이런 미미한 가능성에 사로잡힌다. 이는 불안을 모르는 사람 들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논리와 다르다.
따라서 불안을 극복하고 평정심을 되찾기 위한 최선책은 현실 로 돌아오는 것이다. 걷기, 자연 감상하기, 일하기, 외출하기, 움직이기, 친구와 수다 떨기 등 때로 터무니없어 보이는 방법을 동원 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는 것, 우리에게 맞서 싸울 자원이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 안에서 다시 닻을 내리 고 정착하게 된다. 한밤에 찾아오는 번민이 가장 격렬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밤에 혼자 있는 데다 활동이나 취미로 기분 전 환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그 시련에서 잘 벗어난다. 하지만 어려움을 상상하고 예측하고 기다 리고 계획하느라 완전히 지쳐버린다. 왜냐하면 불안한 뇌는 많은 에너지를 써가면서 무척이나 근엄하게 가상을 현실처럼 취급하 기 때문이다.
이때 도움 되는 방법이 있다. 두려움이 제자리를 지키도록 기꺼 이 받아들이되, 두려움이 전부가 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마음 챙김 명상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두려움 외의 모든 것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명상이란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게 아니 라 온몸을 동원하는 것이다. 명상하는 동안 우리는 자기 호흡에 주목하고, 자기 몸과 다시 연결하고, 자기 주변의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현실의 도움을 받아 극단적인 불안 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 친절은 콘크리트 포장길 사이를 비집고 나와 싹을 틔운 작은 풀과 같다. 우리가 보기에는 들어설 자리가 없는 듯하지만, 결국 이겨내 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바로 그것들이다.
친절과 자신의 가치판단을 분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인 간은 친절을 베푸는 대상이 될 자격이 있다. 친절은 보상이 아니라 그들의 인간미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친절해지자. 우리와 다른 사람들, 우리가 판단하기에 악한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친절은 그들에게 인간미와 죄의식을 일깨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날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 친절한 시선과 몸짓, 말을 아끼지 말자. 가능한 한 늘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되자. 나무가 산소를 만들 때, 인간이 친절을 만들어낼 때, 지구와 인류는 더 건강해진다.

- 행복은 지혜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다. 호기심, 뒤로 물러서기, 친절, 세상과 인간과 삶에 대한 사랑 등등. 이 모든 것이 행복해지는 데 도움 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이것은 잠이 그렇듯, 모든 감정이 그렇듯, 행복한 상태도 돌연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행 복은 소환할 수도, 선언할 수도 없다. 그저 촉진할 수 있을 뿐이다. 행복이 찾아오는 데 필요한 조건을 다 찾아 모으면 행복이 올 가능 성이 커진다. 그래도 찾아오지 않는다면? 뭐,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 다. 지혜는 행복의 직접적 원천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흥미롭기 때문 이다.

- 영적 삶에서 이루어야 하는 대업 중 하나는 우선 우리가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경우, 코헬렛이 큰 도움이 된다. 이 구약을 읽으면 평화를 발견 해야 하는 곳은 바로 희망 없는 혼란 속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유명한 후 렴구를 좋아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붙잡는 일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 많은 환상에서 치유되고, 내가 내 인생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고 믿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난다. 언젠가는 모두 무너지게 마련이며 모든 것이 무상한 법이다.

- 나는 모든 것이 무너지기 쉽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마침내 기쁜 마음으로 안정과 확고부동함을 포기 하고 무상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영원히 정착할 육지를 찾으려 든다 면 가혹하지만 실망하게 될 것이다. 붓다의 가장 고귀한 진리의 가르침은 모든 것이 고통이요 무상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나 는 티베트 학자도 산스크리트 학자도 아니지만, 용게이 밍규르 린 포체 Yongry Mingyour Rinpotche가 《지혜의 행복》에서 지적하듯, 붓다 의 진단을 '모든 것이 삐걱거린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하든, 아무리 우리가 내적으로 완벽한 상태에 있더라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은 늘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베 르나르 캄팡Bernard Campan이 말했듯, 유쾌히 삐걱거리게 놔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명상 수행은 이 세상을 빠져나오는 것이 아 니라, 이런 삐걱거림 속에서 평화를 이루며 공생하는 법을 터득하 는 것이다.

- 자기 몸을 돌본다는 말은 몸에, 몸의 외향과 탁월함에 집착한다는 뜻이 아니다. 휴식, 긴장 풀기, 쾌락, 양식, 운동 등 자기 몸에 필요한 것을 딱 필요한 만큼만 제공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돌보면서 몸에 평화가 오면 몸은 스스로 알아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다.

- 법리적 유죄가 아닌 심리학적 의미에서 죄책감이란 이런저런 식으로 행동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느낌, 따라서 잘 못을 저질렀다는 느낌을 말한다. 간혹 죄의식은 현실과 동떨어지 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사소한 일로도 아주 쉽 게 죄책감을 느끼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무슨 일이 되었건 죄책감 을 거의 느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심리적 죄책감과는 달리, 후회의 감정에는 잘못의 도덕적 측면 이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는 저지른 실수를 단순히 후회할 뿐 덜 감정적이고 더 이성적인 시선으로 자신이 한 일과 그 결과를 바라 본다. 그래서 "죄책감을 느낀다"라고 하지만 "후회감을 느낀다"라 고 하지는 않고 단순히 "후회가 든다"라고 한다. 이런 표현의 차이 를 통해 죄책감을 지배하는 측면을 잘 알 수 있다.
죄책감과 후회에는 심리적 기능이 있다.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평범한 일이 되게 만들지 않고, 우리에게 압박을 주어 실수를 깊 이 생각하고 기억 속에 새겨서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들게 한다. 따라서 죄책감은 유용한 것이다. 문제 되는 것은 죄책감이 지나치거나 잘못 어긋나는 경우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좋은 신호이기도 하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대개 공감력이 있고 타인에게 신경을 쓰며 올바르게 행동하려 마음 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실수와 잘못을 혼동하지 말라. 실수했다고 인식하면 후회하게 되는데, 이는 발전에 도움 된다. 반면 잘못했다고 느끼면 죄책감 때문에 심히 괴로워지는데, 이는 발전보다는 수치심 에 갇히게 된다.
죄책감에 직면하면? 받아들이도록 한다. 한때 '성찰'이라고 했던 작 업을 실행해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도록 한다앞으로는 어떻게 다르게 해 야 할까? 가능할 때마다 고치고 사과한다.

- 당신 내면을 황폐하게 만드는 문제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해요. 당신이 의기소침해지거나 절망감을 느낀다면, 그건 아마 상황이 정말로 의기소침할 만하거나 절망적이어서 당장은 간단한 해결 책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해결책이 있다면 분명히 나타날 테고, 없다면 다른 일들이 생길 거예요. 어떤 경우가 됐건, 눈앞의 문제 를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 마음속 한 귀퉁이에만 틀어박혀 있지도 마세요. 집 밖으로 나가고, 움직이고, 정리 정돈 을 하고, 달려보세요. 혼자만 있지 말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눠 보세요. 꼭 당신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을 좋 아하는 사람, 당신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 당신에게 조언과 위 로를 줄 수 있는 사람과 교류하세요.
그런 다음, 이렇게 의기소침하거나 절망적인 시기를 벗어나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되 돌아보고, 앉아서 글로 써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세요. 지금은 그 절망에서 벗어나 어디쯤 와 있는지도 잘 관찰해보 세요. 왜 지금은 절망이 없는지, 어떻게 해서 사라졌는지 그 이유 를 파악해보세요. 아마 절망이 슬픔으로 바뀌었을 뿐일 거예요. 이제 당신은 더는 절망적이라고 느끼지 않아도 돼요. 그렇다면 왜 전에는 절망의 구렁에 빠졌던 걸까요? 그때의 당신 상태는 어 땠나요?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단계들을 밟았나요? 결국 당신이 살아남은 그 '별일 아닌 일'로 말미암은 절망, 또는 거의 별일 아닌 일 때문에 생긴 절망의 순간들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절망의 '심미가'라고도 불리는 에밀 시오랑 Emil Cioran 의 말 '우리 는 모두 어릿광대다. 우리는 각자의 문제를 딛고 살아남는다'를 명심하세요."

- 우리 뇌에는 명상은커녕 주의를 분산하려는 습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평온함은 뇌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뇌는 판단하고, 비난하고, 비교하고, 근심하고, 과거로 도피하고, 앞질 러 생각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한마디로 허튼짓을 하고 망 상에 빠지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용게이밍규르 린포체가 설파한 독특한 수행법은 하루에 열 번 멈춰 서서 관찰하는 것이다. "아, 이런! 나는 철저히 명상을 안 하고 있군."
다시 말해 '난 완전히 주의가 분산되었어'라고 깨달으라는 뜻이 다. 자신의 주의가 분산되었음을 깨달을 때가 바로 마음속에 정신 이 현존하는 순간이다. 자, 그러면 자유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우 리 마음을 이루는 요소들은 밤낮으로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중 시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고요한 상태 가 되면 이 거대한 잡동사니 같은 감정과 경솔한 판단을 거의 비 웃는 듯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아, 이런! 내가 삶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네!'
'오늘 하루를 다 망쳐놓은 주인공이 바로 이놈의 엉뚱한 생각이었군.'
마음 수련이란 자기도취에 조금도 빠지지 않고 무한한 해석 능력을 지닌 우리 뇌를 자세히 살펴보려는 작업이다.

- 누구나 그렇듯, 나도 실패보다는 성공이 좋다. 성공이 더 기분 좋고 만족스러울뿐더러 가치 있기 때문이다. 그러 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실패했을 때 더 많이 성찰하고 다시 검토 하게 되어 결국 발전할 수 있었다. 요컨데 내게는 두 영역 모두 필 요했던 것 같다. 성공의 기쁨이 주는 에너지와 자신감, 그리고 실패의 불편함으로 얻게 된 신중함과 연습 말이다.

- 직업상 항상 쉬운 일만은 아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사들은 평균적으로 환자의 말을 20초나 30초만 듣고 끼어든다고 한다. 이들은 증상을 찾고, 환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신속히 찾고, 대 화의 주도권을 잡는 경향이 있다. 내 동료들 중 경험 많고 나이 지 긋한 몇몇 일반의의 말을 들어보면, 환자를 볼 때 저지르는 실수 는 모두 경청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한다. 환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다 하게 하지 않았거나, 환자들에게 충분한 질문을 하지 않았거나, 의사로서 생각하는 방향으로 환자들을 너무 일찍 유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단 후 처방하고 조언하는 것이 치료 라고 생각한다. 환자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약을 제공하고 조언해 주는 것이 치료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경우도 이와 조금 비슷하다. 우리는 자녀에게 충고하고, 자녀를 교육하고, 위로하고, 회복시키려 한다. 그러면서 자녀의 말을 충분히 경청하지 않고, 자녀의 말이 중요한 순간에 그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 더욱 잘 경청하려면, 부분적으로 자기 마음속에서 비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두려움(무슨 말을 할지 모를 수 있다는 두려움, 대답해줄 말이 없을 수 있다는 두려움), 확신, 싫증이다.

- 정신의 잠재적 변화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수많은 대안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필요한 경우 유연하게 방향을 바꾸며, 실패 할 경우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평정심을 찾아라. 누구도 우리에 게서 내면의 평화를 누리는 자유를 앗아가지 못한다.

-  우리 마음에 독이 되는 모든 것의 일차적 근원이 바로 자아 의 굴레다. 미국에서는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에게 아침부터 밤까 지 '너는 특별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그런데 심리학자 로 이 바우마이스터 Roy Baumeister 교수가 상당히 많은 연구를 종합해 본 뒤 내린 결론은 뜻밖이다. 학교, 부모, 치료사가 아이들의 자존 감을 높이기 위해 투자한 모든 노력과 비용이 미미한 효용밖에 없 다는 것이다.
“이 많은 세월 동안 연구한 결과로 이런 권고를 하게 되어 유감 입니다만, 자존감은 그만 잊어버리고 자기통제에 집중하십시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안 되지만, 자 아라는 작위적인 개체에 집착하는 것이 안정적인 자신감을 얻는 길은 아니다.

- '나'는 우리의 현재 상태를 경험하는 것과 관련된다. 인격이라는 개념은 우리 개인의 역사를 반영한다. 우리 삶 전체로 확장된 하 나의 연속체인 인격에는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측면이 모두 통 합되어 있다. 그 시간적 연속성 덕분에 우리는 과거에 속하는 우 리 자신의 표상과 미래와 관련된 표상을 연결할 수 있다. 이제 남 은 것은 자아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자아가 우리 존재의 핵심이 라고 여긴다. 유년기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를 특징하는 분리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아 는 '내 몸', '내 의식', '내 이름'의 주인이다. 본디 우리 의식은 항구 적으로 변화하는 역동적인 파도임에도, 우리는 강물의 흐름을 타 고 떠내려가는 배와 같은 별개의 개체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나'와 '인격'에 대한 인식이 자아라는 훨씬 더 강한 정체감안에서 명확해지면, 우리는 이 자아를 보호하고 만족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자아를 위협하는 것에는 반감을 드러내고, 자아를 즐 겁게 하고 위로하는 것에는 끌린다. 이런 두 가지 반응으로부터 충돌된 갖가지 감정 분노, 욕망, 선망, 질투 등이 탄생한다.
이런 자아를 조금만 살펴보면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우리 자신 의 정신이 만들어낸 속임수에 불과한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자 아의 위치를 확인해보자. "네가 날 때렸어"라고 말하지, "네가 내 몸을 때렸지만 괜찮아. 그건 내가 아니니까"라고 하지는 않는다. 내 몸과 자아를 잘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내 의식은 타격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네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어"
- '내' 감정, '내' 의식, '내' 이름, '내' 몸이라고 할 때는 자아가 그 모든 것의 주인으로 부상한다. 우리는 고유한 존재를 부여받은 하나의 개체가 마치 어릿광대처럼 어떻게 상호 양립 불가능한 이 모든 정 체성을 지닐 수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아는 어떤 역동적 과정에 붙이는 하나의 정신적 꼬리표이자 개념에 불과할 수 있다. 확실히 자아는 우리에게 유용하다. 변하는 상황 전체를 연결하고 우리의 감정과 생각, 환경에 대한 인식 등을 하나의 일 관된 총체로 통합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아는 결 국 우리 마음속에서 어떤 한 상상의 개체 생명을 유지해주는 연속 적인 정신 활동의 산물이다.
- 결론적으로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자아는 렌터 카처럼 필요악적인 존재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려면 운송 수단이 필요한 것처럼 삶을 헤쳐가려면 우리에게는 자아가 필요 하다. 수도원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는 일 이 더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도사나 명상가가 아니라면 말이다. 삶 이라는 길 위에는 다른 차량보다 오염물질을 더 많이 배출하는 차 량이 있다.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덩치 큰 4륜 구동차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싶어 하고 길을 양보받고 싶어 한다. 이와 반대편에 는 공기를 오염시키지도 않고 소음도 내지 않는 작은 자전거가 있 다. 나는 우리가 자아를 떼어내버리거나 창문 밖으로 던져버릴 수 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자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 염원이 되지 않고 우리에게는 너무 비싼 대가에너지, 관리, 보수 등의 측면 에서를 치르지 않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지적할 사항은 무시하는 방법으로 자아를 떼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자존감 부족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의 경우, 해결책은 자신을 계속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흔히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 에게 화가 나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떼어내버리는 것과 집착을 갖지 않는 것의 차이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중요한 건 강박적인 방식으로 자아를 떼어내버리는 게 아니라, 자아에 집착하지 않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폴 발레리 Paul Valery가 남긴 유 명한 문구처럼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미워했고 나 자신을 좋아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늙어갔다.'

- 모든 감정을 사랑하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우리의 욕구에 대한 신호다. 긍정적 감정은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었거나 충족되는 중이라는 것을 말한다. 부정적 감정은 충족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기본욕구가 균형을 유 지할 수 있도록 가장 적합하게 행동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 나는 고뇌로 가득한 삶의 여정을 가는 동안 마티유의 여사친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돌아와 한창 이사 하느라 분주할 때 내가 너무 걱정을 많이 하자, 그 여사친이 불쑥 던진 말이 있다.
"뭐, 완전 난장판이지만 문제 될 건 없어!"
그때부터 나는 이 말을 내 만트라로 삼고 있다. 혼란 속에서 난 기류를 헤쳐 나아갈 때면 나는 모든 게 진짜 난장판이지만 그렇다 고 꼭 비극은 아니라고 되된다. 거대한 걱정 제조기 같은 우리의 정신은 과장하게끔 되어 있다. 행복에 겨운 낙관주의에 빠지지 않 는다면, 고통에는 두 가지 유형 혹은 감히 말하자면 두 가지 계층 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존재의 비극질병, 지진, 장애, 죽음, 외로움 등 이며, 다른 하나는 자아에 의해 날조된 수많은 과장된 감정이다. 다행히 우리는 이런 내면의 괴물을 무찌르고 점진적으로 없애버 릴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재난 예언자 기질에 더는 완전히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게 된다.

- 초감 트룽파가 《마음공부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은 핵심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백번 옳은 일이다.
'유머 감각은 한낱 익살스러운 농담이나 말장난을 하거나 일부러 재미있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다. 양극단을 나란히 놓고 근본적 인 아이러니를 간파해서 이런 극단적인 것들을 더는 근엄하게 받 아들일 수 없도록 만들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희망의 게 임에 근엄하게 임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유머 감각이다.'

- 누군가의 마음에 증오의 불이 붙었을 때, 그런 마음 앞에서 성난 미치광이를 대하는 의사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이 바로 연민이다. 먼저, 그 사람이 누구든 해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의사가 미친 환자의 머리를 망치로 박살 내지 않으면서 그의 정신을 갉아먹는 병을 치료하려 애쓰듯, 폭력이나 증오에 빠 지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모든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증오에 증오로 응수한다면 문제는 절대 끝나지 않는다.

- 현실을 온전히 인식하는 것이 실제로 그 무엇이 일어났을 때 충 격에 빠지지 않는 최선책이다.
어떤 개체가 다음 순간에도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생 긴다면, 이것은 그 개체가 무상을 초월했다는 뜻이 된다. 이런 경 우, 그 개체는 그 상태로 영원히 고정된다. 현실을 왜곡하면,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이나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 우리 소유물이 변함없 이 존속할 것이라는 생각, 이들이 정말로 '우리 것'이라는 생각에 집착하면 고통의 원인을 키우게 된다. 그러면 결국 우리가 우리 소유물과 우리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려 해도, 우리 소유물과 우리 인생이 우리를 버리게 될 것이다!

- 인간의 뇌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면 어떻게 인생을 계획할 수 있을까?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면 될까? 너무 소모적이다. 그렇다면 최선을 기 대해야 할까? 너무 태평스럽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기 위해 예측 하고 추정한 뒤, 우리가 세운 가설을 고수하고 이를 현실로 간주 한다. 환상을 품지 않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면, 지혜란 적어도 자 신이 환상을 품는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는 것이라 하겠다. 불확실 성이 주는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뇌가 먼저 예상하고 상상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예상과 상상을 거침없이 믿는 행동은 자제할 수 있다. 폴 발레리가 문학 계간지 <텔>에서 멋지게 표현하듯 말이다.
'새가 가지에서 가지로 날아가는 것처럼 마음도 어떤 어리석음 에서 다른 어리석음으로 옮겨 간다. 달리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 이다. 핵심은 스스로 그 무엇에 대해서도 확고부동하다고 조금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지혜란 스스로 이렇게 되뇌는 것이리라.
'나는 모른다. 그러니 내가 모르는 한 나는 환상을 품지 않는다.'
그러면 많은 불필요한 억울함과 걱정을 피할 수 있다.

- AI의 토대는 특출나게 고도화된 인간의 두뇌로도 저장할 수 없는 막대한 데이터빅데이터의 활용에 있다. 역설적이지만, 피라미드 건설이나 심장병에 관한 모든 정보를 즉각적으로 얻는다고 해서 우리가 더 지혜로워지거나, 더 친절해지거나, 더 균형 잡힌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도 '빅데이터'의 등장은 그 어느 때보다 정보와 지혜의 차이를 부각한다.

- 예수는 정확히 말해서 현자의 표본이 아니다. 간혹 선동적이기도 하고 역설적이거나 난해하기도 하며 까다롭거나 급진적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상이다. 예수는 현자 가 아니라 메시아였으며 예언자이자 구세주였기 때문이다. 우리 는 현자를 자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된다우리 가 현자를 인정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예언자를 자주 만나면 마음이 동요되고 충돌하고 뒤죽박죽이 된다. 예언자는 자신의 말 에 귀를 기울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고 따르라고 한 다. 예언자를 상대할 때는 잘못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결말이 좋지 않다. 사이비 예언자보다는 사이비 현자가 아 픔을 덜 주는 법이다.

- 그러자 처음으로 어떤 외침이 울려왔다. 스피노자는 슐러에게 보낸 유명한 서간문에서 이렇게 진단한다.
'틀림없이 이 돌멩이는 자신의 노력만 의식하고 초연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자신이 끈기 있게 낙하 운동을 지속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이 그것을 욕망하기 때 문이라고 믿을 것이다. 모든 인간이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인간의 자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인간의 자유는 인간이 자신의 욕망은 의 식하나 그 욕망을 결정하는 원인은 모른다는 데 있다.'

-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정신을 생각에 따라 표류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선택한 목적지를 향해 자유 롭게 항해하는 선원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의 배를 암초에 좌초시 킬 수도 있는 바람과 해류에 따라 표류하게 두지 않고 통제한다. 달리 말해 자유롭다는 것은 조건화에 의해 단련된 습관적 성향과 자아의 독재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우리는 거의 모두가 방황과 조건화, 충동, 내적 갈등, 떠도는 생각, 동요를 일으키는 감정에 놀아난다. 이런 종속 상태는 많은 고 뇌의 근원이다. 때때로 우리를 무기력하고 체념하게 만드는 이런 메커니즘의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하기 어려운 주된 이유는 분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정 신적 요소의 정체를 파악하지도, 우리를 구속하는 생각들이 어떤 유형인지 간파하지도 못한다. 우리에게는 자유를 되찾게 해줄 지 혜와 통찰력,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너무 많다. 따라서 내면의 자 유를 획득하려면 우리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이해하고 행 복과 고통의 메커니즘을 밝혀내야 한다. 이런 분별력은 고통을 주 는 정신 상태를 여유 있고 현명하게 관리하도록 하는 마음의 훈련 과 병행되어야 한다.

- 의학에서는 치유를 뜻하는 표현으로 '병과 싸우다', '암과의 전쟁' 등을 자주 사용한다. 나는 이런 종류의 담론과
그 안에 내포된 시각이 항상 많이 불편하다. 내가 보기에 이런 표 현들은 우리를 상당 부분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 병 은 적도 아니고 상대편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불균형 상태, 우리 의 건강을 유지하는 섬세한 메커니즘이 변질한 것일 뿐이다 생명과 마찬가지로 건강은 작은 기적이다!. 내 눈에는 자기 자신을 보살피고, 두려 움이나 분노의 감정을 평화롭게 진정시키는 것, 간단히 말해 내면 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게 상상의 적과 맞서서 스트레스를 유발 하는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지 싶다.

- 지혜를 추구하려 노력하는 우리에게 명상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먼저, 분별력의 열쇠가 되는 주의력과 감정을 안정시킨다. 그다음, 의식을 확장한다. 명상이란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자발적으로 고요하게어쩔 수 없이 정신이 분산되는 경우와는 다른 방식이다 마음을 열고, 그들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우리를 연결하는 상호의 존성과 소속감을 깨닫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기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외부의 시선을 선택해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 에게서 벗어나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 이다.

- 불교적 자기성찰에는 두 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하나는 분석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관조적 방법이다. 분석적 명상은 만물의 내면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만물은 늘 변함이 없는가, 아니면 무 상한가? 만물은 자립적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가? 고통의 직접적이고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나 그러니까 자아는 고유한 존재를 지닌 단일한 개체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약정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편리한 신기루에 불과한가? 이런 분석적 명상을 통해 반박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면, 관조적 명상은 마음이 이 새로운 깨달음 안에서 차분히 쉴 수 있게 한다. 그래야 물이 땅에 스며들 듯 명상이 마음에 동화된다.
처음에는 우리 마음이 무척 동요하기 때문에, 분석적 명상을 성 공적으로 수행해서 연민을 기르고 의식의 본성을 관찰하는 것이 꽤 어렵다. 그저 생각의 소용돌이에 대적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처 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서 살펴보았듯, 어느 정도 고요한 상 태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먼저 밟아야 할 첫 번째 단계다. 몽둥이 로 때리듯 정신을 혼미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명확하 고 안정적인 정신 상태가 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명상 은 호흡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실용적이면서도 단순하고 섬세한 방법이다. 따라서 호흡은 주의력을 가다듬기 좋은 탁월한 대상이 다. 그러나 이 단순한 훈련법은 쉽지 않다. 처음 시작하면 '예전보 다 생각이 더 많아졌는걸, 나한테 명상이 맞지 않나봐' 하는 생각 이 들면서 심지어 낙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결과는 반드 시 생각이 더 많아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나 는지 깨닫기 시작하고 타격받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시작해서 그런 것이다. 폭포수가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급류가 되 고 다시 강이 되고 마침내 맑은 호수가 되듯, 시간이 지나면 마음 도 고요해진다.
그렇게 몇 주, 몇 달이 지나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제 더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마음을 지니게 된 나는 잘 훈련된 말처럼 마음을 지휘할 수 있다. 마음을 향해 "연민에 전념하도록 해" 하는 말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진행 단계는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 다. 몇 단계를 건너뛰는 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마음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도 연민에 관해 명상하려 든다면, 연민 을 기르기는커녕 정신만 분산된다.
이러한 물음을 가질 수도 있다.
'최종적으로 명상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나인가, 의식인가?' 이제 나는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을 분석할 수 있다. 더 관조적이 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탐구를 심화할 수도 있다.
'이런 모든 생각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깨달음을 얻은 현존, 즉 모든 정신적 사건의 원천이 되는 벌거벗은 의식의 모습이 숨어 있 는 것 아닌가?'
이때부터 나는 모든 생각 뒤에 감춰져 있는 것, 먹구름 뒤에서 움직이지 않고 존재하는 하늘처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어렴풋 이 보기 시작한다. 그런 뒤에는 이렇게 깨달음을 얻은 현존 안에 서 정신을 쉬게 할 수 있다.

- 고대 그리스철학에는 메타노이아라는 매우 아름다운 개념이 있다. 내면의 전환을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는 이 개념은 슬픈 열정과 반사적 행동, 이기심, 습관의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데 적합한 삶의 기술을 끌어안고자 자기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온 세상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며 정진하는 것, 마음을 무겁게 하는 그 무엇에서 벗어나고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도전이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유명한 문구 'Dilige et quod vis fac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를 통해 사랑과 자선이 중 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는 우리가 사랑 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한 선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유명한 서간문에서 그는 그 길을 밝혀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네게 이 짧은 교훈을 준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일을 하라. 조용히 한다면 사랑으로 조용히 하고, 말한다 면 사랑으로 말하며, 고친다면 사랑으로 고치고, 용서한다면 사랑 으로 용서하라. 마음속 깊은 곳에 사랑의 뿌리를 내려라. 사랑의 뿌리에서는 나쁜 것이 절대 나올 수 없다.'

-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 플라톤처럼 그리 스어로 표현하자면 멜레테 타나투Meletê Thanatou 이라고 했다. 그는 정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서 몸과 열정을 분리해내고, 자신을 노예 상 태로 묶어두고 감옥에 가두었던 곳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 다고 생각했다. 몸을 족쇄나 속박으로 여기는 것에서 단 한 걸음 만 옮기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리스어로 '소마soma, 몸'는 얄궂 게도 '세마séma, 무덤'와 유사하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유한성과 무상함을 명상하는 데는 슬픈 구석이 조금도 없다. 자신과 결별하 고 계속되는 우리 삶의 변화를 경험하려면, 바로 여기에서 지금을 사는 일에 전념하는 영원한 혁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 다. 그러면 정신이 온 힘을 다해 매달리며 얼굴을 찡그린 채 싫은 내색을 한다. 확고한 것을 손에 넣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일 시적이고 모든 게 지나가지만, 정신은 안전과 불변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한 무더기의 고통과 끊임없는 공포, 중단없는 불만족이 생겨나는 것이다.

- 용서란 무엇인가? 내가 상처나 공격을 받거나 누군가가 내게 해코지하는 경우라면, 용서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까? 우리는 용서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치 료에서 용서라고 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사면' 혹은 어떤 의미 에서는 '복종'이라고 이해한다. 용서치료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첫째, 용서는 어떤 형태의 속박에도 구속되지 않아야만 의미가 있 다용서는 상처받은 사람 쪽에서 자유로이 결정해야 한다. 둘째, 용서는 법적 전개 와는 철저히 분리된 내밀한 행위다. 환자가 용서하는 방향으로 가 기를 바라는 치료사는 용서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는 공식적인 화 해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설명해야 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자기 마 음속으로 용서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악행을 잊거나 부정하는 것 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용서는 이런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결정이다. 용서는 내가 고통당한 만큼 다른 사 람도 고통받기를 바라는 마음과 원한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해방하는 행위다.

-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가르침》을 쓴 고대 그리스의 전기작 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철학'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은 피타고라스라고 한다. 현자란 평화와 고요, 그 유명한 아 타락시아를 맛보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여정에 오른 현자의 옆에는 문자 그대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철학자가 있다. 그는 지혜를 갈망하며 온 힘을 다해 자신이 가는 방향으로 정진한다. 칸트의 《논리학》에서 발췌한 어느 유명한 글은 주요 화두를 이렇 게 요약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 가? 무엇을 기대해도 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스피노자가 말했듯, '철학함'이란 생각을 전환하고, 방향을 바꾸 고, 다시 돌아오고, 평생 현명하게 만들어진 삶의 기술을 통째로 이해하여 현명한 존재를 정립하는 것이다.
이런 모험에 뛰어든 나에게 철학자 진 허쉬Jeanne Hersch는 마치 구명튜브를 던져주듯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틀어 올린 머리를 한 이 스위스 출신 여성 철학자는 《철학적 놀라움》이라는 굉장한 책 에서 서양사상사를 되짚어본다. 이 책은 내가 플라톤 발췌서 다음 으로 접하게 된 첫 번째 철학책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은 나의 구원자였다. 며칠 동안 나는 이 황홀한 책을 탐독하느라 마 치사경을 헤맬 듯 앓았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여정을 함께할 새로운 동반자들을 만났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성 아우 구스티노, 스피노자, 키르케고르, 니체 등이 유쾌한 철학자 군단 은 삶의 비극성을 조금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삶을 그토록 아름 답고 가벼운 것으로 만든다. 삶의 여정을 한마디로 짧게 표현해야 한다면 나는 스피노자의 말을 빌리고 싶다.
'착하게 행동하고 기쁘게 지내라.'

- 치료 과정에서 우리 의사들은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 해보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환자가 깊이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반추하는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 당신이 이 문제에 관한 생각을 시작한 이후로 그 덕분에 해결 책을 발견하는 데 도움 된 적 있는가?
2. 해결책을 찾지 못했더라도 적어도 문제점이 조금은 분명해졌는가?
3. 해결책을 찾지도 못하고 문제점이 더 뚜렷해지지도 않았다 면, 그렇게 생각한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는가?
이 세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문제를 깊이 생 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 반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반추에서 벗어날 최선책은 정원 손질을 하거나 산책하거나 조깅하거나 타 인을 도와주는 등 다른 영역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 그러면서 함께 반추하라는 말 이 아니라, 다른 일들을 떠올리라는 뜻이다!

- '붓다는 붓다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붓다라 부른다
《금강경》에 나오는 이 단순한 후렴구는 내게 순간순간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는 엄청난 도구가 되었다. 내가 거의 항상 하고 있 는 이 수행법은 삶의 부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 된다. 사 는 것이 힘겹게 느껴질 때면 나는 이 금강경을 꺼내 든다. 싸움에 필요한 무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삶의 도구를 얻기 위해서다.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장애라 부른다.'
이 후렴구는 아무것도 고수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무 엇이건 재앙도 되고 동시에 기회도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이는 이분법적 논리와 이원론의 감옥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 매 순간 나는 장애를 다르게 체험할 수 있다. 하루에도 수천 번씩 내 정신이 모든 것을 고정하고 사방에 꼬리표를 붙이려 들면, 나는 이렇게 되뇐다.
'알렉상드르는 알렉상드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알렉상드르라 부른다.'
이 마법 같은 문구가 대단한 이유는 절대로 우리를 자신의 상처 안에 머물게도, 그렇다고 그 상처를 부인하게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가 현실에 숱한 선입견을 씌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그 다음에 이런 선입견들을 조금씩 걷어낼 수 있다. 그러면 나는 현 실이 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빡빡하다는 걸 알면서도 직설적 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모든 이기 적 고정관념을 버리고, 끊임없이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수련 해야 한다. 예컨대 "내 아내는 내 아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 녀를 내 아내라 부른다"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금강경이라는 이 눈 부신 경전 덕분에 나는 사람들이 무한한 부자라는 사실을 매일 발 견한다. 그리고 더는 사람들을 전형적인 모습 안에 가두어버리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생각과 감정의 강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깨달 으면, 그것만으로도 내 머릿속을 스치는 모든 걸 너무 근엄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 나는 구약성서 중에서 불교와 멋지게 연결되는 측면이 있는 코헬렛에서 한 가지 수행법을 빌려 왔다. 코헬렛은 비관적인 분위기 아래에서 모든 것을 벗겨내고 우리의 환상을 하 나씩 뽑아버린다. 나는 이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유명한 후렴구를 좋아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깨 달으면 더 심오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데 도움 된다. 이 방법은 싼값으로 마음을 달래는 경향이 있었던 내 영혼을 치유해준다. 사 실, 내가 평화를 발견할 때는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게 마련이건만, 참으로 불행하게도 나는 그냥 흘려보낼 줄 모른다. 스스로 옭매이면서 몇 번이고 다시 고통스러워한다. 사실, 코헬렛은 치유한다는 생각 자체로부터 나를 치유해주었다. 그토록 품고 있던 환상과 잘못된 기대를 하나씩 잃어가면 어느 정 도 평온함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 그러면 싸움이 멈추고, 고된 전 투가 지나고, 평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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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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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의 법칙

인문 2024. 3. 18. 07:15

- 사실 우리의 삶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을 움직인 생리적, 심리적 프로세스가 지금도 여전히 작동 중이다. (카를 융(Carl Jung))
- 어느 시대건 현자들은 항상 같은 말을 하고, 어리석은 대다수 사람은 하나같이 그 반대로 행동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이 반복되는 것이다. (볼테르(Voltaire))

- 역사를 들여다볼 때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있다. 스토리가 어떻게 끝나는지는 대개 알지만 그 스토리의 시작점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무엇이 2008년 금융 위기를 일으켰을까?
그 답을 알려면 먼저 모기지 시장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모기지 시장에는 무엇이 영향을 미쳤을까?
그걸 이해하려면 이전 30년간 금리가 하락한 과정을 알아야 한다.
금리 하락을 초래한 요인은 무엇일까?
그걸 이해하려면 먼저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을 알아야 한다.
1970년대의 인플레이션은 왜 일어났을까?
그걸 알려면 1970년대의 통화 제도와 베트남전쟁의 영향을 들여다봐야 한다.
베트남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그걸 이해하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을 거치며 미국인들이 공산주의에 공포심을 갖게 된 과정을 알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짚어 올라가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계속된다.
- 흔히들 "미래를 알려면 먼저 과거를 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음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를 보아 도 미래는 알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세상 모든 일은 예측 불 가능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혼합되고, 그 결과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운과 우연에 이토록 취약한 세상에서 나는 두 가지를 늘 기 억하려 애쓴다.
하나는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토대 로 예측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 책의 전제이기도 하다. 앞으로 50년 후에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기는 불가능 하다. 그러나 그때도 여전히 사람들이 탐욕과 두려움에 지배 당하고, 기회와 리스크, 불확실성, 집단 소속감, 사회적 설득에 반응할 것이라는 사실은 장담할 수 있다.
사건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후엔 어떻게 될까?"라 는 질문을 건너뛰기 때문이다. "기름 값이 올라가면 사람들이 운전을 덜 할 것이다"라는 말은 얼핏 옳아 보인다. 하지만 그 후엔 어떻게 될까?
기름이 비싸도 어쨌든 차는 몰아야 하므로 사람들은 연료 효율이 높은 차를 찾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이 정치가에게 불 만을 토로할 것이고, 정치가는 연료 효율이 높은 차를 구매 하는 사람에게 세금 우대 조치를 제공하는 정책을 실행할 것 이다. OPEC(석유수출국기구)은 석유 공급량을 늘리라는 압박 을 받을 것이고, 에너지 기업들은 기술 혁신을 추진할 것이다.
- 그리고 석유 업계는 호황과 불황을 극단적으로 오가는 경 향이 있다. 따라서 아마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석유를 생산할 것이다. 그러면 이후 기름 값이 떨어질 것이다. 연료 효율이 높은 차를 가진 사람이 늘어난 상태에서 말이다. 고효율 차량 덕에 통근 비용이 낮아지므로 교외 인구가 늘어날 테고, 사 람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운전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예측이 쉽겠는가.
세상의 모든 사건은 나름의 후속 결과를 낳고, 이는 또다시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앞일을 예측하기가 지독히도 어려운 것이다. 예측 불허의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연결된 과거 사건들을 보면, 미래 사건을 정확 히 예측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접을 수밖에 없다.
내가 기억하려 애쓰는 또 다른 하나는 열린 상상력을 지녀 야 한다는 점이다. 즉 현재 상황을 뛰어넘어 늘 다양한 가능 성을 고려해야 한다.
오늘의 세상 모습이 어떻든, 무엇이 당연해 보이든, 내일이 되면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작은 우연 때문에 모든 게 달 라질 수 있다. 돈과 마찬가지로 사건도 복리 효과를 낸다. 그 리고 복리 효과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미약하게 시작된 뭔가 가 나중에 얼마나 거대해질 수 있는지를 처음에는 직관적으 로 느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 알다시피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형편없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하고 미묘한 차이를 놓친 말이다. 사실 우리는 미 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꽤 뛰어나다. 다만 뜻밖의 일을 예측하 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좌우하곤 한다.
언제나 가장 큰 리스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리스크 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므로 아무도 대비할 수 없기 때문 이다. 그리고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 리스크가 현실이 됐을 때 피해가 엄청나기 마련이다.
-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는 매년 1월 발간 호에 그해에 대 한 예측을 싣는다. 2020년 1월에 발간된 <이코노미스트>에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 2022년 1월 발간 호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게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두 사건 모두 잡지 간행을 준비하고 있을 때는 알 수 없는 사건이었다. 바로 그것 이 포인트다. 가장 큰 뉴스, 가장 큰 리스크, 가장 중대한 결 과를 초래하는 사건은 늘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다.
바꿔 말하면 이렇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거나 낮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잠재 리스크를 파악하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가장 큰 리스크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발생했을 때 가장 놀랄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일 가장 큰 리스크가 뭔지 안다면 뭔가 대비책을 세울 테고, 대비책을 세우면 그 일은 덜 위험한 것이 된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은 곧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리스크를 결코 완전히 정복할 수 없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앞으로도 여전히 그럴 것이다. 향후 10년간 나 타날 가장 큰 리스크와 가장 중요한 뉴스는 지금 아무도 언급 하지 않는 무언가일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는 때가 몇 년도이든 마찬가지다. 내가 이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 는 이유는 지금까지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다는 속성이 리스크를 위험한 것으로 만든다.

- 대공황은 거대한 사건이었음에도, 그리고 그 재앙이 이미 꽤 진행된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가 아는 바에 따르면 대공황은 1929년에 시작됐다. 하 지만 1930년 미국경제연맹National Economic League의 똑똑한 회원 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 조사에서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 요한 문제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나온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1위 - 사법 정의 구현
2위 - 금주법
3위 - 법을 무시하는 세태
4위 - 범죄
5위 - 법 집행
6위 - 세계 평화
그리고 '18위'가 실업률이었다.
1년 뒤인 1931년, 그러니까 대공황이 시작되고 2년이 지났을 때 여론 조사에서 실업률은 금주법, 사법 정의 구현, 법 집 행에 뒤이어 고작 4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공황이 끔찍했던 것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으므로 아무도 대비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 은 재정적으로나(부채 증가) 심리적으로(갑작스러운 손실이 가져 온 충격과 고통)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미래에 대해서뿐 아니라 과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역사가 아는 것은 세 가지다.
1) 사진으로 남은 것
2) 누군가가 기록한 내용
3) 역사학자나 저널리스트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사람들이 한 말
지금껏 일어난 중요한 모든 일 중 몇 퍼센트가 이 세 범주 중 하나에 들어갈까?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아주 극미한 퍼센트일 것이다. 게다가 위의 세 자료는 모두 잘못된 해석, 미 완성, 윤색, 거짓말, 선택적 기억을 겪는다.
세상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과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관 점과 지식이 매우 제한적이면,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현재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일이 진행 중일 수 있는지, 상상하지 못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과소평가하기 쉽다.
- 상상할 수 없는 일의 대비책을 세우기는 불가능하다. 상상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했다고 믿을수록, 그 경우의 수 에서 벗어난 일이 발생했을 때 충격만 더 커진다.
하지만 아래 두 가지를 기억한다면 그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지진을 바라보는 것처럼 리스크 를 바라보라. 그들은 대규모 지진이 언제고 반드시 일어날 것 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강도로 일어날지는 모른다. 비록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구급 대원들이 준비 돼 있고, 어쩌면 지진이 100년 동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 만 건물이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나심 탈레브 Nassim Taleb는 말했다. "예측이 아니라 준비성에 투자하라."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정확한 예측이 있어야 대비를 하겠다고 생각할 때 리스크 는 위험한 것이 된다. 오로지 예측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를지라도 리스크가 언제고 반드시 올 것이라 고 예상하고 있는 편이 낫다.
사실 예측은 헛소리이거나 이미 누구나 아는 내용인 경우 가 대부분이다. 예상과 예측은 다르다. 그리고 다가오는 리스크를 알 수 없는 세상에서는 후자보다 전자가 더 유용하다.
둘째, 상상할 수 있는 리스크만 대비하면 상상하지 못한 리스크는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니 개인 재정을 관리할 때는 너무 많다 싶은 액수가 적절 한 저축액이라고 생각하라. 저축액은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 가 돼야 한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채 액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선을 어느 정도로 생각했든, 실제로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액수는 그보다 적을 가능성이 크다. 당신의 현재 대비 수준이 합당하게 느껴져서는 안 된다. 세상을 뒤 흔든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그 일이 실제로 터지기 전에는 비현실적이고 터무니없는 시나리오로만 보였다는 점을 떠올 려보라.
- 몽테스키외 Montesquieu는 275년 전에 말했다. "그저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 목표는 쉽게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남들 보다 더 행복해지길 원한다. 이는 언제나 어렵다. 왜냐하면 우 리는 남들이 실제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페니실린도 자외선 차단제도 애 드빌도 없는 시절을 살았다. 하지만 오늘날 저소득층 미국인 이 대부호 록펠러도 누리지 못했던 애드빌과 자외선 차단제 를 누린다고 해서 록펠러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 말할 수는 없 다. 인간의 머리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남들과 비교해 평가한다. 주변 사람 들이 잘살게 되면 사치품으로 간주되던 것이 놀랍도록 짧은 기간 내에 필수품이 된다.
투자자 찰리 멍거 Charlie Munger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탐욕이 아니라 시기심이라고. 

-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중위소득은 외벌이 가구(대개 남편이 돈을 벌고 아내는 전업주부였다)에서 자녀 셋을 키우는 것 을 가능하게 했다. 사람들은 적당한 수준의 주택을 구매하고 최신 모델과 조금 철 지난 모델로 자동차를 두 대 장만할 수 있었다. 또 차를 몰고 휴가를 떠났으며 수입을 잘만 관리하면 저축까지 할 수 있었다.
1950년대 삶의 풍경에 대한 이런 그림은 맞다. 실제로 중위 소득 구간의 미국인 가정에는 셋쯤 되는 자녀와 애완견과 공 장에서 일하며 돈을 버는 남편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만일 당시의 일반적인 가정이 오늘날보다 더 잘살았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쉽게 논박할 수 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중위가계소득은 1955년에 2만 9,000달 러, 1965년에 4만 2,000달러, 2021년에 7만 784달러였다. <라 이프>는 1920년대 사람들이 1950년대의 부를 보면 놀라 입 을 다물지 못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1950년대와 오늘날을 비 교해도 마찬가지다. 1950년대 사람들은 손자가 자신보다 두 배도 더 넘게 돈을 벌게 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득 증가는 노동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도 아니고, 여성의 노동 참가율이 늘어났기 때문만도 아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중위시급은 현재 1955년보다 약 50퍼센트 더 높다.
1950년대 사람들이 오늘날 사람들이 경제를 걱정하는 소 리를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1950년에 주택 보유 비율은 오늘날보다 12퍼센트포인트 낮 았다. 당시의 평균적인 주택은 요즘 주택보다 3분의 1 더 작았 다. 그럼에도 그 안에 사는 식구 수는 더 많았다. 1950년 평균 가계 예산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29퍼센트였고 오늘날 은 13퍼센트다.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오늘날의 세 배였다. 그 런 시대를 그리워하다니, 이해가 되는가?

-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 사회에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러 큰 흔적을 남겼다. 일례로 1942년에서 1945년 사이에 는 거의 모든 임금 수준을 미국 전시노동위원회 National War Labor Board에서 정했다. 이 위원회는 평등한 임금 체계를 지향했다. 즉 저소득 노동자와 고소득 노동자의 격차를 줄이고자 했다. 이런 접근법은 임금 규제 시스템이 폐지된 이후에도 계속됐 다. 그러면서 전쟁 전에 존재했던 계층 간 소득 차이가 크게 줄 었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 후 역사가 프레더릭 루이스 앨런Frederick Lewis Allen이 밝힌 바에 따르면, 퍼센트로 따질 때 가장 큰 소득 증가를 경험한 것은 소득이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 이었다. 따라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사람들이 1950년대가 좋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고 묻는다면, 그 답의 일부는 적어도 여기에 있다. 나와 주 변 사람 대다수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기대치가 쉽게 높아지지 않는 시대였다. 주변에 나보다 훨씬 더 잘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다수 미국인이 풍족한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자신과 주변 이들을 비교해도 그 풍족함의 수준이 비슷했다. 그것이 1950년대가 다른 시대와 달랐던 점이다. 따라서 오늘 날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소득은 더 적었지만 사람들은 만 족했다. 남들도 역시 그만큼 벌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보다 작은 집도 만족스러웠다. 나뿐 아니라 남들도 그 정도 되는 집에 살았기 때문이다.
의료 서비스가 부족해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뿐 아니라 이웃 사람도 같은 상황이니까.
-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사람들이 소셜 미디 어를 이용해 소통하기보다는 서로를 위해 공연을 한다고 지 적한다. 우리는 남들이 모는 근사한 자동차를, 남들이 사는 멋진 집을, 남들이 다니는 좋은 학교를 본다. 요즘은 "나도 저 게 갖고 싶어. 나한테는 왜 저게 없을까? 왜 저 사람은 갖는데 나는 못 가질까?"라고 생각하기가 불과 몇 세대 전보다 훨씬 더 쉬워졌다.

- 98세의 찰리 멍거에게 "당신은 매우 행복해 보입니다. 삶에 만족하는 것 같군요. 행복한 삶의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제1원칙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입니다. 비현실적인 기대치를 갖고 있으면 평생 괴로워집니다. 합리적인 기대치를 갖고, 당신이 맞이한 결과가 좋든 나쁘든 침착함과 평정심을 갖고 받아들이십시오.
- 기대치를 관리해야 한다고 여러 번 언급했지만 사실 어려움이 있다. 높은 기대치와 동기를 구분하기 힘들 때가 많다. 또 낮은 기대치는 마치 포기를 뜻하는 것처럼, 자신의 잠재력 을 눌러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난점을 감안한다면 다음 두 가지를 명심하는 것이 좋다.
첫째, 부와 행복은 두 가지 요소로 이뤄진 등식임을 항상 기억하자. 두 가지란 당신이 '가진 것'(현실)과 '기대하는 것'(기 대치)이다. 이 둘은 똑같이 중요하다. 따라서 가진 것을 늘리 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을 쏟으면서 기대치를 관리하는 데에 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특히 우리가 훨씬 더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닌 기대치이므로 더욱 그렇다.
둘째, 기대치 게임의 원리를 이해하라. 기대치 게임은 결국 멘탈 게임이다. 누구나 낙담하고 스트레스를 겪는다. 동시에 모두가 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게임의 규칙과 전략을 알아둬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자신과 세상을 위해 발전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실이 아니다. 정말로 원하는 것은 기대한 것과 실제 결과의 차이를 경험하는 일이다. 즉 우리는 기대한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 만족과 성취감을 느 낀다. 그리고 이 등식에서 기대치 부분은 중요할 뿐 아니라 현 실 상황보다 더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 어떤 한 가지에서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다른 어떤 것에서는 비정상적으로 형편없는 경향이 있다. 주변을 둘러보 면 그런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치 그들의 뇌는 지식과 감정을 수용하는 용량이 제한돼 있어서, 한 부분에서 비정상 적으로 뛰어난 능력이 발휘되는 대신 성격의 다른 부분이 희 생되는 것 같다.
일론 머스크 Elon Musk를 보라. 어떤 종류의 서른두 살 인간이 GM과 포드Ford, NASA 모두와 맞붙어 경쟁할 생각을 할까?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인간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 반적 한계가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는 인간이다. 오만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트위터 에티켓을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이다.
- 사람들은 천재적이고 대담한 비전가로서의 머스크를 좋아 한다. 하지만 사회적 관습과 상식을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행동 하는 머스크는 싫어한다. 하지만 그 두 모습을 분리할 수는 없 다. 그 둘은 리스크와 수익의 트레이드오프 관계와 비슷하다. 존 보이드도 마찬가지다.
천재인 동시에 끔찍한 상사였던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높은 포부 탓에 자신과 관계 맺은 많은 회사를 파산 위기로 몰아넣은 월트 디즈니 Walt Disney도 마찬가지다.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McGeorge Bundy는 언젠가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에게 인간을 달에 보내는 것은 무리한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자 케네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배짱이 없는 사람이라면 40대에 대통령에 출마하지도 못했 을 겁니다."
- 엄청난 성취를 이뤄내는 사람은 엄청난 실패를 가져올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하곤 한다.
어떤 사람이 성공한 기업 또는 위대한 국가의 리더가 될까? 단호하고, 낙관적이고, '노'라는 답을 허용하지 않고, 자신 의 능력을 무조건 확신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무모한 열정으로 도를 넘어서고, 욕심에 휩싸이고, 남들 눈에는 뻔히 보이는 리스크를 무시할까?
단호하고, 낙관적이고, '노'라는 답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무조건 확신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평균으로의 회귀'는 역사 속에서 대단히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제, 시장, 국가, 기업, 직업 등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 평균으로의 회귀가 일어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는 그의 성격적 특성이 동 시에 그를 위험에 빠트릴 가능성 또한 높이기 때문이다.

- 포인트는 이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미래를 바라보는 정확한 관점을 원한다고 믿지만, 사실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확실성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경기 불황이 시작될 확률이 몇 퍼센트다"라는 말은 고통을 별로 줄여주지 못한다. 어쩌면 오히려 고통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올해에 경기 불황 이 찾아올 것이다"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꽉 붙잡고 의지할 수 있는 뭔가를 제공한다.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 지금까지 지구에 산 인간은 대략 1,000억 명이다. 그들의 평 균 수명을 약 30세로 잡으면 그들이 산 날의 수는 약 1,100조 일이다. 그 시간 동안 발생 확률이 10억분의 1쯤 되는 놀라 운 사건이 수백만 번은 일어났다.
그런데 오늘날은 끔찍한 재앙을 접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십중팔구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다. 
- 지역 뉴스 매체의 감소는 여러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그중 하나는 뉴스 보도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더 부정적이고 비관 적인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아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좋은 뉴스보다 나쁜 뉴스가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나 쁜 뉴스는 사람들을 더 쉽게 끌어당기고, 비관적 뉴스는 낙관적 뉴스보다 더 시급한 무언가로 느껴진다.
*어느 특정한 때에 당신이 사는 동네에 나쁜 사건(사기, 부정부패, 재앙)이 발생할 확률은 낮다. 대상 범위를 전국으로 넓히면 그 확률이 더 높아진다. 대상 범위를 전 세계로 넓히면 어느 때라도 끔찍한 사건이 발생할 확률은 100퍼센트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이렇다. 지역 뉴스에서는 소프트 볼 경기를 보도하지만, 글로벌 뉴스에서는 비행기 추락 사고 와 집단 학살을 보도한다.

- 찰리 멍거는 1990년대에 '오의 심리학 The Psychology of Human
Misjudgment'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여기서 잘못된 판단을 초래하는 심리적 편향 25가지를 소개했는데, 그중 하나인 '불 확실성 회피 경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의 뇌는 불확실성을 빨리 제거하고 결정을 내리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동물들은 오랜 세월 진화를 통해 불확실성을 신속하게 제거 하는 쪽으로 발달했다. 포식자를 맞닥뜨린 동물에게 전혀 도 움이 되지 않는 행동은 어떻게 할지 결정하느라 오랜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 심리학자 필립 테틀록Philip Tetlock 교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자칭 또는 타칭 전문가들의 예측을 연구했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 상당히 많은 전문가가 정치와 경제를 예측하는 능력이 형편없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앞으로는 전문가를 무시하는 쪽을 택할 까? 테틀록 교수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곳이라고 믿고 싶어 한 다. 따라서 그 욕구를 채워줄 것 같은 권위 있어 보이는 이들에게 의지한다."

- 뛰어난 스토리가 승리한다. 뛰어난 아이디어나 옳은 설명, 또는 합리적인 이론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공감을 끌어내는 스토리를 들려주는 사람이 대개 성공한다.
탁월한 아이디어도 형편없는 방식으로 전달하면 실패할 수 있고, 낡았거나 엉뚱한 아이디어도 설득력 있게 전달하면 혁 신을 일으킬 수 있다. 중후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목소리를 지 닌 영화배우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은 식료품 목록을 읽는 것으로도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지만,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 떨어지는 과학자는 획기적인 질병 치료법을 발견하고도 그 업적이 묻혀버릴 수 있다.
- 언제나 훌륭한 스토리가 차디찬 통계자료보다 더 큰 설득력을 발휘한다.
당신이 옳은 답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당신이 틀린 답을 갖고 있지만 뛰어난 스토리텔러라면 (당분간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옳은 답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뛰어난 스토리텔러라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100퍼센트다.

- 유발 하라리를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는 이들은 하라리의 저서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느라 여념이 없다. 머스크 역시 사람들에게 당혹감과 경멸이 섞인 시선을 받는다.
완벽한 세상에서라면 정보의 중요성이 그 정보 전달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은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인내심이 부족하며, 감정에 쉽게 지배당하고, 복잡한 정보가 마치 스토리의 한 장면처럼 이해하기 쉬워지기를 원한다.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자. 정보가 오고가는 어떤 상황에서 든, 즉 제품, 기업, 정치, 지식, 교육, 문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 서든 뛰어난 스토리가 승리한다.
- 모든 책은 무조건 새롭고 독창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모든 기업은 이전에 없던 혁신적 제품을 선보여야 한다고 생 각한다면, 책을 쓰거나 창업을 하기도 전에 좌절부터 맛볼 것 이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와 같은 관점으로 본다면 훨씬 더 많은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만드느냐 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질문을 던져보라. 중요한 질문이다. 맞는 말을 하고 있지만 스토리텔링이 형편없어서 당신이 귀 기울이지 않게 되는 누군 가가 있는가? 당신이 진실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영리한 마케팅 의 결과에 불과한 것은 무엇인가?

- 히틀러는 이성적 인간이 아니었다. 현실과 이성에서 동떨어 져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미치광이였다. 부하 사령관들이 전 투에 사용할 연료를 어디서 구해야 하느냐고 묻자, 히틀러는 미군에게서 훔쳐오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에게 현실은 중 요하지 않았다.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즈Stephen Ambrose는 1944년 말 당시 미군 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와 오마 브 래들리 Omar Bradley가 전시 전략 수립에 필요한 최고의 이성적 판단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딱 한 가지 디테일을 놓쳤다고 말한다. 그것은 히틀러가 얼마만큼 미치광이였느냐 하는 점이었다.
브래들리의 한 측근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우리가 합리적 인간들을 상대로 싸웠다면 그들은 이미 한참 전에 투 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합리적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 고 그 사실, 즉 논리와 이성으로 측정하기 힘든 그 사실이 모 든 것을 좌우했다.

- 운동선수의 기록은 단순히 신체적 능력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뇌가 특정 순간에 리스크나 잠재적 보상을 고려해
얼마만큼의 고통을 기꺼이 견디기로 선택하는가도 선수의 기 록에 영향을 미친다.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우리의 생존을 돕는 것이다. 따라 서 마치 자동차의 속도 제한 장치처럼, 뇌는 몸이 성능을 최 대치로 발휘해야 할 만큼 중요도나 위험이 충분히 높은 상황 이 아닌 한, 그 최대치를 발휘하게 놔두지 않는다(신체적 힘을 한계까지 밀어붙여 녹초가 되면 여러 모로 취약한 상태가 된다). 성능을 최대로 발휘할 경우의 리스크를 정당화할 만큼 잠재적 보상이 크지 않다면, 뇌는 성능 발휘의 '한계'를 그보다 낮은 수 준으로 설정한다.
테스트 트랙에서 발휘되는 달리기 능력의 최대치는 올림픽 결승전에서 발휘되는 최대치와 다를 수 있고, 또 이 후자는 도끼를 든 살인자에게 쫓기고 있을 때 발휘되는 달리기 능력 의 최대치와 다를 수 있다.
이는 사람이 자동차에 깔려 목숨이 위험할 때 누군가가 자 동차를 들어 올려 구해내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이유를 설 명해준다. 사람의 능력은 그 순간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 투자자 짐 그랜트Jim Grant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보통주의 가치가 순전히 금리와 한계세율을 감안한 기 업 이익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마녀사 냥으로 무고한 이를 화형에 처하고, 충동적으로 전쟁을 벌이 고, 스탈린을 열렬히 지지하고,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다는 오슨 웰스Orson Welles"의 말을 믿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과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인간은 늘 감정과 비합리성에 지배당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떤 투자 대상이나 기업이든, '현재의 숫자'에 '미래에 관한 스토리'를 곱한 결과가 그것의 가치다.

- 1920년대는 광란의 황금기였다. 
1930년대는 패닉 그 자체였다. 
1940년대에는 세상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듯했다. 
1950년 대와 1960년대, 1970년대에는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반복됐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가득했다. 
2000년대는 마치 TV 리얼리티 쇼를 보는 것 같았다.
수치 데이터와 논리에만 의지해 경제와 사회를 이해하려 는 사람이라면 100년 내내 혼란과 충격에 빠져 허우적댔을 것이다.

- 기업가정신 및 경제학 전문가인 페어 바일런드Per Bylund는 말했다. "경제적 가치라는 개념은 간단하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 들이 원하는 것이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유용성이나 이윤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들이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가 중요하 다. 경제와 관련한 수많은 행동 및 의사결정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결국 인간의 욕구와 감정이다. 때때로 그러한 감정 요 인을 분석하거나 예측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측정할 수도, 예측할 수도, 모델을 수립할 수도 없는 그 한 가지가 모든 비즈니스와 투자 활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다. 군에서도, 정치에서도, 직업 선택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통계와 계산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
투자 활동에서 종종 목격되는 위험 하나는 맥나마라 같은 접근법에 치우치는 것이다. 즉 통계와 데이터를 최우선시하고 그런 모델에 대한 확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실수나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터무니없고 기가 막 히고 설명 불가능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 혼란이 한동안 계속 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 일이 왜 일어났지?"라 는 질문에 늘 합리적인 답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심지 어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자신의 예상과 맞아떨어지 는 결과라고 착각한다.
결국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이 세상이 불합리성과 혼란, 골치 아픈 인간관계, 불완전한 인간들로 들끓는 곳이라 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 평화가 혼돈의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그런 일은 수시로 일어난다.
우리 삶에서는 다음과 같은 아이러니가 흔하게 목격된다. 편집증적 불안은 성공을 낳는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경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집증적 불안은 스트레스가 된다. 따라서 성공하고 나면 즉시 그것을 버린다.
성공의 동력이었던 것을 버렸으므로 이제 퇴보하기 시작 한다. 그리고 그것은 훨씬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
비즈니스, 투자, 일, 인간관계 등 모든 영역에서 그렇다.
터질 때까지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알고 싶어 하는 시장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다 음 두 가지를 기억하자.
첫째, 시장이 미친 듯이 과열되는 것은 뭔가 고장 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미친 듯이 과열되는 것은 정상이다. 더 미친 듯이 과열되는 것도 정상이다.
몇 년에 한 번씩은 시장이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시장이 투기적 행동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또는 펀더멘탈 지표들과 동떨어진 채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시장은 늘 그래왔다.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것이 아 니다. 그들은 다른 투자자들이 믿는 스토리의 한계를 확인하 고 싶은 것뿐이다.
둘째, 충분함의 미학을 깨닫자 사인펠드처럼 생각하자. 투 자자 차마스 팔리하피티야Chamath Palibapitiya는 누군가가 최고 수 익을 내는 방법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연간 수익률이 15퍼센트만 되어도 좋겠습니다. 그렇 게 50년이 쌓이면 엄청난 수익이 될 테니까요. 나는 어려움 에 맞서면서 그저 천천히, 꾸준하게 나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 기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스타벅스Starbucks는 창업하고 23년 후인 1994년에 매장이 425개였다. 1999년에는 한 해에만 625개 매장을 새로 열었다. 2007년경에는 1년에 매장 을 2,500개씩 열고 있었다. 매장이 약 4시간마다 하나씩 생긴 셈이다.
하나의 결과는 또 다른 결과를 낳았다. 성장 목표 수치를 달성하려는 욕구가 결국 합리적 분석과 판단을 밀어냈다. 스 타벅스 매장의 포화 상태는 도를 넘었다. 경제 호황기였음에 도 동일 매장 매출 성장률이 50퍼센트 감소했다.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2007년 경영진에게 보낸 메일에 이렇게 썼다. "1,000개도 안 되던 매장이 1만 3,000개로 늘어 나는 동안 우리는 일련의 결정을 내렸고 지금 되돌아보면 그 결정들이 스타벅스 경험'을 희석했습니다."
- 2008년 스타벅스는 매장 600개를 폐점하고 1만 2,000명의 종업원을 해고했다. 스타벅스 주가는 73퍼센트 떨어졌다. 2008년임을 감안하더라도 끔찍한 하락이었다.
슐츠는 2011년 자서전 《온워드Onward》에 이렇게 썼다. "성장 은 전략이 아니라 전술일 뿐이다. 무분별한 성장이 전략이 되 었을 때 우리는 방향을 잃고 헤맸다."
스타벅스에는 가장 알맞은 규모가 있었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그 선을 넘어가면 매출은 증가할지 몰라도 실망 한 고객 수는 더 빠르게 증가한다. 로버트 워들로가 거인이 됐 지만 제대로 걷기 힘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 타이어 재벌 하비 파이어스톤Harvey Firestone은 1926년에 이렇게 말했다.
단번에 시장을 장악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첫 째, 대개 그것은 불가능하므로 많은 비용을 날리게 된다. 둘 째, 설령 가능하다 해도 생산 시설이 감당하지 못한다. 셋째, 설령 가능하다 해도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 너무 단기간에 거 대해진 기업은 하루아침에 큰돈이 생긴 소년처럼 행동하기 십상이다.
- 나심 탈레브는 자신이 연방 차원에서는 자유주의자이고 주 차원에서는 공화당 지지자이며 자신이 사는 도시 차원 에서는 민주당 지지자이고 가족들 사이에서는 사회주의자라 고 말한다. 집단 크기가 4명에서 100명, 10만 명, 또는 1억 명 으로 커지면 그때마다 사람들이 리스크와 책임을 다루는 방 식은 완전히 달라진다.
기업 문화도 그렇다. 10명 규모의 회사에서 효과가 있는 경 영 스타일을 1,000명 규모의 회사에 적용하면 경영을 망칠 수 있다. 이는 단기간에 빠르게 커진 기업이 종종 깨닫는 아픈 교훈이다.
- 우버 Uber 창립자이자 전 CEO 트래비스 캘러닉Travis Kalanick ick o] 대표적인 예다. 우버 초창기에는 캘러닉만이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었지만, 회사가 성숙해감에 따라 캘러닉이 아닌 다른 누 군가가 필요해졌다. 그것은 캘러닉의 잘못이 아니다. 때로 어떤 것(즉 리더십)은 규모를 확대할 수 없음을, 즉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 필요한 리더십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자연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숱하게 많다. 좋은 것이라도 무리하게 속도를 내면 문제나 재앙이 초래되곤 한다.
- 대개 어린 나무는 커다란 엄마 나무의 우거진 가지들이 만 든 그늘에서 수십 년을 보낸다. 햇빛을 적게 받으므로 천천히 자란다.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밀도 높고 단단한 나무가 된다. 그런데 만일 탁 트인 들판에 나무를 심으면 얘기가 다르다. 주변에 큰 나무들이 없으므로 어린 나무는 햇빛을 듬뿍 받고 빠르게 성장한다.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면 무르고 밀도가 낮 은 나무가 된다. 밀도가 높아질 시간이 없는 탓이다. 그리고 이런 나무는 곰팡이류가 잘 번식하고 질병에 취약해진다. "빨 리 자라는 나무는 쉽게 썩으므로 어른 나무로 성장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라고 산림 전문가 페터 볼레벤Peter Wohlleben은 설명 한다. 서두르면 망치는 법이다.
동물의 경우를 보자. 어린 물고기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은 비정상적으로 차가운 물에, 다른 그룹은 비정상적 으로 따뜻한 물에 넣는다. 이때 차가운 쪽과 따뜻한 쪽 모두 특정한 온도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차가운 물 속의 물고기는 일반 물고기보다 느리게 자라고, 따뜻한 물 속의 물 고기는 일반 물고기보다 빨리 자라는 것이다. 그런 뒤 두 그룹 의 물고기를 다시 정상 온도의 물에 넣으면 결국에는 모두 정 상적인 어른 물고기로 성장한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어린 시절에 일반 물고기보 다 느리게 성장한 물고기는 평균 수명보다 30퍼센트 더 오래 산다. 반면 일반 물고기보다 빨리 성장한 물고기는 평균 수명 보다 15퍼센트 일찍 죽는다. 이는 글래스고대학교 생물학자 들이 발견한 사실이다.
그 이유는 별로 복잡하지 않다. 연구팀의 설명은 이렇다. 인위적 성장 촉진은 조직 손상을 가져올 수 있고 "손상된 생 체 분자의 관리 및 회복에 쓰일 자원이 대신 빠른 성장에 사 용될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느리게 성장한 경우에는 "관리 및 회복에 할당되는 자원이 증가한다.
연구팀의 일원인 닐 멧칼프Neil Metcalfe는 이렇게 설명했다. "급하게 만든 기계는 신중하게 공들여 만든 기계보다 더 빨리 고장 나는 법이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생명체의 몸도 마찬가 지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성장은 좋은 것이다. 왜소하고 약한 개체는 결국 강자에게 잡아먹힐 테니까. 그러나 강제적인 성장, 지나치게 빠른 성장, 인위적인 성장은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로버트 그린은 말했다. "창의성 발현을 막는 가장 큰 장애 물은 조급함이다. 중간 과정을 신속하게 끝내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결과물을 빨리 내놓고 싶은 그 불가피한 욕망 말 이다."
이번 장을 끝내며 이것만은 꼭 말해두고 싶다. 사랑이든 일 이든 투자든,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이 두 가지가 있어 야 가치 있는 뭔가가 된다. 인내심과 희소성이다. 인내심을 지 녀야 그것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고, 희소성이 있어야 그것의 소중함을 느끼며 감사할 수 있다.

- 나심 탈레브는 말했다. "역경에 과잉 반응할 때 분출되는 엄청난 에너지가 혁신을 만들어낸다."
고통은 평화와 달리 우리의 집중력을 발휘시킨다. 늑장과 망설임을 허용하지 않는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우리의 턱밑 에 들이밀어 당장 그리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해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한 미국 병사가 신문 기자의 인터뷰에 응했다. 전투 중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묻자 병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계속 두려움에 떨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것 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리고 경솔한 실수를 막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많은 것에도 적용 가능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 1930년대는 미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암울한 시기였다. 1932년에는 미국인의 거의 4분의 1이 일자리를 잃었다. 주식 시장은 89퍼센트 폭락했다. 1930년대와 관련해서는 늘 이 두 가지에 관심이 쏠린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의 언급되지 않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1930년 대가 미국 역사상 가장 생산성이 높고 기술적으로 발전한 10년 이라는 점이다. 그 시기에 수많은 문제를 해결했고 물건을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잊혔다. 이 잊힌 스토리는 이후 나머지 20세기 동안 엄청난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 몇 가지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1930년대의 총요소생산성 total factor productivity(자본, 노동, 에너지, 원재료, 서비스 등 모든 투입 요 소를 고려한 생산 효율성 지표)은 전무후무하게 높은 수준이었다. 경제학자 알렉스 필드Alex Field의 말에 따르면 1941년 미국 경제는 1929년에 비해 노동 시간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음에 도 40퍼센트 더 많은 산출물을 생산했다. 한마디로 생산성이 월등히 높아진 것이다.
1930년대에 일어난 몇 가지 일에 주목해보자. 그것들이 생산성 증가가 일어난 이유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1920년대는 자동차의 시대였다. 미국 도로 위의 자동차 수 는 1912년에 100만 대였지만 1929년에는 2,900만 대가 되었 다. 하지만 도로는 다른 얘기였다. 1920년대에 자동차가 판매 되는 속도는 도로가 건설되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그러다 1930년이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뉴딜 정책이 실시 되면서 공공사업청 Public Works Administration의 주도 하에 수많은 도로가 건설되었다.
도로 건설에 지출하는 비용은 1920년에 GDP의 2퍼센트였지만 1933년에는 6퍼센트가 넘었다(오늘날은 1퍼센트 미만이다).

- 제품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공장은 처참한 매출 수치를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결과 많은 공장이 헨리 포드Henry Ford가 과거 자동차 생산 에 도입했던 조립 라인을 갖추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공장의 시간당 생산량이 21퍼센트 증가했다. 프레더릭 루이스 앨런은 이렇게 썼다. "많은 공장이 문을 닫거 나 시간제로 가동됐던 1930~1940년 대공황 시기에는 효율성 과 경제성에 대한 큰 압박을 받았다. 결국 생산성이 41퍼센트 나 향상됐다."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은 말했다. "대공황의 트라 우마는 미국이라는 혁신 기계의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 오히려 혁신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또 1930년대에는 지식 노동이 크게 증가했는데, 취업이 힘 들어 달리 할 일이 없는 젊은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많 아졌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다. 대공황 기간에 고등학교 졸 업률은 1960년대가 되기 전까지는 보기 힘든 수준으로 치솟 았다.
이 모든 것, 즉 생산성이 높아진 공장과 새로운 혁신 아이 디어, 교육받은 인력은 1941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해 연합국의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핵심 엔진이 되는 데에 결 정적 역할을 했다.
- 여기서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대공황이라는 비극이 없었더라도 1930년대에 기술적 도약이 일어났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만큼의 도약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심각하게 망가진 경제를 살려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뉴딜 같은 정책을 끝까지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힘들다. 줄줄이 파산하는 회사를 목격하지 않았다 면 기업들이 그토록 절박하게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제가 호황이고 장밋빛 전망이 가득할 때는 경영자가 직원들에게 "새로운 걸 시도해봐. 정해진 매뉴얼 따 위는 갖다 버려. 상관없으니까"라고 말하지 않는 법이다.
- 필요에 의해 절박해져야 거대하고 신속한 변화가 일어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에는 말 탄 기병이 싸웠 지만 마지막인 1945년에는 핵폭탄이 투하됐다.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하고 얼마 안 있어 1958년 NASA가 설립되었으며, NASA는 불과 11년 후 인간 을 달에 보냈다. 두려움이라는 동기가 작동하지 않으면 이런 단기간 내의 혁신은 일어나기 힘들다.
민간 항공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행기가 무엇보다 안전 한 교통수단이 된 것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문제점을 찾아 보완하는 강력한 프로세스가 가동되어 미래에 비슷한 사고 가 일어날 가능성을 낮췄기 때문이다.
-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이들은 프랑스 남부 해안이나 미국의 뉴포트, 팜스프링스, 팜비치 같은 유명 휴양지를 쫓아 다니는 사람들이다. 밤이면 파티를 즐기고, 낮에는 골프를 치 고, 흥청망청 마시고 떠들며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 사람들, 은퇴하고 아무 목적의식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물론 누군가는 내 말에 격하게 반대하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 다. “백만장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거야말로 최고의 인생이지!" 날마다 일할 필요가 없다면, 그저 낚시나 사냥, 골 프, 여행이나 하며 산다면 최고의 인생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인생을 알지 못한다.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목적의식이기 때문이다. 목표, 치열한 싸움, 고군분투이기 때 문이다. 설령 승리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 좋은 일은 시간이 걸리지만 나쁜 일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워런 버핏은 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그것이 무너지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세상의 많 은 일이 그렇다.
좋은 일은 작고 점진적인 변화가 쌓여 일어나므로 시간이 걸리지만, 나쁜 일은 갑작스러운 신뢰 상실이나 눈 깜짝할 새 에 발생한 치명적 실수 탓에 일어난다.

- 만일 내가 "50년 후에 평균적인 미국인들이 지금보다 두 배 부유해질 가능성이 얼마일까?"라고 묻는다면 가당찮은 얘기 로 들릴 것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낮아 보인다. 지 금보다 '두 배'나 부자가 된다고? 재산이 '절'로 늘어난다고? 너무 야심 찬 목표 같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50년 동안 평균 연간 성장률 1.4퍼 센트를 달성할 가능성이 얼마일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비 관론자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1퍼센트? 고작?"
그러나 위 둘은 똑같은 얘기다.
우리는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모두를 지혜롭게 다루기는 꽤 어렵다. 비관론은 낙관론에 비해 지적인 관점에서 더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게 들리므로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당긴다. 또 리스크에 미리 대비하게 하므로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낙관론도 똑같이 중요하다. 당장은 상황이 암울해 보일지라도 앞으로 분명 나아지리라는 믿음은, 단단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일부터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일에 이르기 까지 삶의 모든 부분에서 꼭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발전을 위해서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공존해야 한다.

- 최고의 재정 전략은 비관론자처럼 저축하고 낙관론자처럼 투자하는 것이다.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현재에 서 그 미래로 가는 길에서 실패와 절망, 충격을 끊임없이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 이 둘의 조합은 역사 곳곳에서 그리고 삶 의 모든 영역에서 목격된다.

-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극단적 낙관론자가 있다. 이들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 생각 하며, 모든 부정적 태도를 성격적 결함이라고 본다. 또 자신감 이 너무 강해서 일이 잘못될 리 없다고 믿는다.
다른 한쪽 끝에는 극단적 비관론자가 있다. 이들은 모든 것 을 부정적으로 보고, 모든 일이 망할 거라고 생각하며, 모든 긍정적 태도를 성격적 결함이라고 본다. 또 자신감이 너무 낮 아서 일이 잘될 리 없다고 믿는다. 이들은 극단적 낙관론자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극단적 낙관론자와 마찬가지다.
둘 다 똑같이 위험하다. 낙관론과 비관론을 흑백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이성적인 판 단이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것은 그 중간이다. 나는 그것을 합리 적 낙관론자라고 부른다. 합리적 낙관론자는 인간의 현실이 언제나 문제와 절망과 실패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그런 장애물도 결국엔 발전을 막을 수 없다고 믿으며 낙관적 시각을 유지한다.
어쩌면 위선자나 변덕쟁이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대개 그들은 남들보다 훨씬 더 멀리 내다보고 있다.

-  "큰 수익을 내는 것보다 재정적 파산을 겪지 않고 버티는 힘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힘을 키우면 가장 큰 수익을 얻게 된다. 복리 효과가 기적을 일으킬 만큼 오랫동 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깨닫는다. 장기적으로는 대개 좋은 결과에 이르고 단기적으로는 대개 나쁜 상황을 겪 는다는 사실이다. 단기적 역경과 장기적 관점을 균형 있게 관 리하는 법을 깨달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대개 결국 비참한 비관주의자가 되거나 파산한 낙관 주의자가 된다.

- 많은 이들이 효율적인 삶을 살려 애쓴다. 시간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아모스트버스키Amos Tversky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 다.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내는 비결은 항상 조금씩 덜 일하는 것이다. 몇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면 결국 몇 년을 낭비하게 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해변을 오래 산책한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다. 연구가 풀리 지 않을 때는 방 안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응시하면서 머릿 속 상태를 마음속에 시각적으로 그려본다.
모차르트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할 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산책할 때, 밤에 잠이 오지 않아 그냥 누워 있을 때, 그럴 때 가장 뛰어 난 음악적 영감이 가장 풍부하게 찾아온다.
- 유용한 비효율성에 관한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기업의 운영 프로세스에서 약간의 느슨함을 허용하는 것이다. 적시 생산시스템Just-In-Time은 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미리 쌓 아두지 않고 제조라인에 투입하는 시점에 맞춰 그때그때 납 품받는 방식이다. 이것은 지난 20년간 효율적인 경영 방식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하자 공급망은 붕괴했다. 거 의 모든 제조 기업이 부품 조달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2022년 소비 경기가 아주 양호해진 후에도 자동차 회사들은 칩과 브레이크, 도료가 부족하단 이유로 공장을 가동할 수가 없었다. 적시생산시스템에만 맞춰진 그들은 부품 공급의 차질 이란 변수에 대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기업들의 '목표'는 오류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 것 이었다. 그리고 이는 완전히 역효과를 냈다. 공급망 전반에 약 간의 비효율성이 허용됐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오류의 여지를 허용하는 것은 종종 비용을 발생시키거나 사업을 지체시키는 요인, 또는 비효율적인 전술로 여겨지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큰 이로움을 가져올 수도 있다.
투자에서도 비슷하다. 현금은 강세장에서는 비효율적인 짐이지만 약세장에서는 산소만큼 소중하다.
레버리지 투자는 수익을 극대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지만 모든 것을 잃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집중 투자는 수익을 극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분 산 투자는 수익을 낼 수 있는 종목을 소유할 가능성을 높이 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잘 생각해보면 약간의 비효율성을 허용하는 것이 이상적임을 알 수 있다.
- 사인펠드는 말했다. "그렇다면 필요 없습니다.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면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힘든 길이 옳은 길입니다. 그 시트콤이 성공한 것은 내가 모든 걸 챙기며 관리했기 때문 입니다. 모든 대사, 장면, 편집, 캐스팅까지 전부 말입니다."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면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직관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은 지름 길의 위험성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성공에 비용 이 따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제프 베이조스는 현실적인 관점으로 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자기 직업에서 하는 일의 절반만 즐길 수 있어도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다. 모든 것에는 비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게 현실이다. 어떤 일에든 싫은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대법원 판사도 자기 일에서 싫은 부분이 있다. 대학 교수도 참석하기 싫은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모든 직업에는 싫은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직업의 일부다.
그렇다. 그것도 직업의 일부다. 사실 모든 것의 일부다. 베 이조스의 말은 직업 이외에 다른 많은 영역에도 똑같이 적 용된다.

- 당연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법칙이 있다. 목표로 삼을 가치가 있는 것 중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모든 것에는 비용이 따르며, 대개 그 비용은 잠재적 보상 의 크기와 비례한다.
하지만 가격표가 달린 경우는 드물다. 비용을 현금으로 치 를 수 없다는 얘기다. 목표로 삼을 가치가 있는 것은 대부분 스트레스, 불확실성, 까다로운 사람 상대하기, 관료주의, 나와 상충하는 타인의 인센티브, 귀찮고 번거로운 일, 부조리한 상황, 기나긴 시간, 끊임없는 회의감 등의 형태로 우리에게 비용을 청구한다. 그것이 발전과 성공을 위한 비용이다. 많은 경우 그 비용은 치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에누리 없이 반드시 전부 치러야 하는 비용임을 기억하라. 여기에는 쿠폰도 없고 할인도 없다.

- 생물체의 몸 크기는 투자의 레버리지와 비슷하다. 이익을 증가시키지만 손실도 증가시킨다. 한동안은 별문제가 없지만, 이익이 있더라도 손실이 치명적인 수준에 이르는 시점이 되면 커다란 역효과가 발생한다.
부상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몸집이 큰 동물은 부상에 취약 하다. 개미는 자신의 키보다 1만 5,000배 높은 곳에서 떨어져 도 죽지 않는다. 쥐는 자신의 키보다 50배 높은 곳에서 떨어 지면 뼈가 부러진다. 인간은 자신의 키보다 10배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는다. 코끼리는 자신의 키보다 2배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물풍선처럼 터져버릴 것이다.
또 큰 동물은 단위 개체당 서식지 면적이 더 많이 필요하 다. 이는 서식지가 부족해지면 가혹한 특징이 된다. 큰 동물 은 작은 동물보다 단위 몸무게당 먹이도 더 많이 필요하므로 기근이 닥치면 큰 몸집이 결정적 단점이 된다.
큰 동물은 쉽게 숨을 수 없다. 움직임도 느리고 번식도 느 리다. 먹이사슬 최상위에 위치하므로 대개 적응과 변화가 필 요 없지만, 그것이 필요한 때가 되면 그런 적응 능력 부족이 생존에 불리한 특성으로 작용한다.
- 가장 지배적인 종이 몸집이 더 큰 경향이 있지만, 가장 오 래 견디는 종은 크기가 더 작은 경향이 있다. 티라노사우루 스보다는 바퀴벌레가, 바퀴벌레보다는 박테리아가 생명력이 더 끈질기다. 역설적이게도 진화는 개체의 크기가 커지도록 부추겨놓고선 이젠 크다는 이유로 가혹한 형벌을 내린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삶의 많은 영역에서 목격되는 현상과 도 일맥상통한다. 경쟁 우위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경쟁 우위를 얻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을 잃지 않는 일이다. 

- 때로 성공은 마침 그 시기에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덕분에 찾아온다. 성공을 경험하고 있을 때는 모르다가 그것이 행운 덕이었다는 사실을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누군 가는 그런 깨달음 앞에서 겸손해지고, 누군가는 그런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 제자리라도 지키려면 '계속 달려야 하는 것, 그것이 진화의 원리다. 삶에서 대부분의 것도 그렇지 않을까? 비즈니스도? 제품도? 일도? 국가도? 인간관계도? 맞다. 전부 그렇다.
진화는 가차 없고 냉혹하다. 앞서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이 아니라 뒤처지는 것을 멸종시킴으로써 가르침을 준다. 두 가지를 기억하자.
첫째, 한 시대를 지배하는 무언가가 다음 시대에 사라지더 라도 놀라지 마라. 그것은 역사에서 늘 반복된 스토리다. 기 업도, 제품도, 음악가도, 도시도, 작가도 수십 년 넘게 정상을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경우(비틀스, 리바이스, 스니커즈, 뉴욕시)는 극히 예외에 속한다.
둘째, 계속 달려라. 이미 거둔 성공에 마음 놓고 안주해도 될 만큼 확실한 경쟁 우위란 없다. 오히려 그렇게 보이는 경쟁 우위가 대개는 몰락의 씨앗을 품고 있다.

- 대다수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두려움을, 마음속 불안함을, 정말로 행복한지 아닌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남들에게 결점이 나 실패를 솔직하게 밝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대개는 멋지게 꾸민 모습만 타인에게 보여준다.
전문가는 언제나 다른 지역 출신이라는 말이 있다. 성경에 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그 누구도 자기 고향에서는 선지자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앞의 말에는 다른 더 깊은 의미 도 있지만, 어쨌든 이 두 말에는 공통적으로 중요한 포인트가 담겨 있다.
사람들이 나의 특별하지 않은 모습과 못난 구석을 눈치채 지 못한다면,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매 우 쉽다는 사실이다. 일이나 사업, 개인적 삶에서 당신 자신을 남들과 비교할 때 이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

-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깊이 알고 나서야, 특정 분야에서 뛰어나면 다른 분야에서는 서투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의 특별한 재능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과 그의 의 견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둘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오렌지를 먹을 때 껍질은 버려야 한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누구나 이런저런 문제와 힘겹게 싸우고 있다. 당신이 상대방을 깊이 알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러니 그것을 잊지 말고 당신 자신과 타인에 대 해 더 너그러워지길 바란다.

-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 제이슨 츠바이크는 전업 작가가 걷는 세 가지 길을 이렇게 말한다.
1. 거짓말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2. 진실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 진실을 말해주면 먹고살 수는 있다.
3. 거짓말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 진실을 말해주면 깡통을 차게 된다.

- 역사가 스티븐 앰브로즈Stephen Ambrose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자신감과 허세로 가 득한 채 신병 훈련소에서 나온 군인들은 전의를 불태우며 전선에 투입됐다. 그러나 총탄을 맞아 부상을 당해보면 모든 게 바뀐다.
앰브로즈는 "훈련으로 실제 전투에 대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라고 썼다. 훈련으로 총 쏘는 법과 명령을 따르는 법은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기관총 사격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파편 세례를 맞으며 공포와 무력감에 압도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가르칠 수 없다."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 나는 엄청난 성공을 이룬 뒤 남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성공이 자부심이나 만족 감,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성공한 뒤에 느끼는 것, 그리고 자신의 반응은 성공하기 전에 상상한 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배우 짐 캐리Jim Carrey는 말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고 꿈꾸던 걸 이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게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테니까요."
성공과 명예를 얻은 뒤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하기 힘든 것 도, 반대로 리스크가 현실이 됐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 하기 힘든 것도 결국은 같은 이유에서다. 직접 겪어보기 전까 지는 그 상황 안에서 일어날 감정적, 심리적 반응을 완벽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호화 저택에 사는 사람도 독감에 걸리고, 건선에 시달리고, 소송에 휘말리고, 배우자와 싸우고, 불안감으로 괴로워하고, 정치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어느 때라도 이런 것들이 물질적 부에서 오는 만족감을 밀어낼 수 있다.
우리는 미래의 성공과 행복을 상상할 때 현실적 측면은 쏙 빼놓고 이상적인 그림만 그린다. 그러나 실제로 삶에서는 언 제나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섞여 공존하면서 우리에게 영향 을 미친다.
당신은 어떨지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직접 경험하고 나면 '아, 이런 거구나' 하고 깨닫는다. 상황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 다 훨씬 더 복잡하다. 요컨대, 겪어봐야 안다.

- 장기적 목표는 자신하기 쉽지만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투 자나 일, 인간관계에서 장기적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대 다수 사람이 안다. 그러나 "장기 전략으로 갈 거야"라고 말하 는 것은 에베레스트산 밑에서 정상을 가리키면서 "저기에 올 라갈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음, 멋진 생각이다. 그리고 이제 수많은 시험과 고난이 시작된다.
장기전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또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보상을 안겨준다.

- 뭔가를 장기적으로 계획하거나 실행할 때는 다음을 기억해 야 한다.
장거리 달리기는 당신이 견뎌야 하는 단거리 달리기들의 집합이다.
당신이 투자 기간을 10년으로 잡는다고 해서 10년 동안 일 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누 구나 경기 침체와 하락장, 대폭락, 뜻밖의 사건, 또는 밈 같은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를 겪어야 한다.
따라서 장기적 목표를 세우면 단기적 예측 불가능성과 위 기를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대신, 이런 질문을 던져 라. "끝없이 나타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어떻게 하면 견 딜 수 있을까?"
- 장기적 사고는 기만적인 안전 담요가 될 수 있다. 즉 사람들 은 장기 전략을 세우면 고통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단기적 사 건을 피해갈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 히려 반대다. 투자 기간이 길수록 더 많은 재앙과 비극을 경 험하기 마련이다. 야구 선수 댄 퀴즌베리Dan Quisenberry는 말했 다. “미래는 현재와 매우 닮았다. 단지 더 길 뿐이다."
장기적 계획과 실행을 위해서는 단기적 리스크도 간과하지 않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 세상은 계속 변한다. 따라서 생각을 바꾸는 일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때로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 자신을 속여 틀린 생각을 믿는 것이 실수를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기 때문 이다.
장기적 전략은 잘못 생각하고 있음에도 그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지하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과거에 옳았지만 세상이 변해서 더는 옳지 않은 무언가를 계 속 붙들고 있으면서 "아직 초반이라 내 견해가 옳다는 게 증 명되지 않고 있을 뿐이야" 또는 "나만 빼고 전부 잘못 생각하 고 있어”라고 말한다.
- 진정한 장기적 사고를 하려면 인내심과 고집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그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이 것이다. 당신의 업계에서 절대 변하지 않을 소수의 것들을 파 악한 뒤, 그 외의 나머지는 전부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수정이 필요한 대상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그렇게 파악된 변하지 않 는 것들이 장기 전략을 적용할 대상이 된다. 그 외의 나머지 에는 유통 기한이 있다.

-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 영속성 지식과 소멸성 지식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리스크를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답은 영속성 지식이고, "마이크로소프 트는 2005년 2분기에 얼마의 수익을 냈는가?"에 대한 답은 소 멸성 지식이다.
소멸성 지식은 그 가치에 비해 더 많은 관심을 받는데,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그런 지식은 도처에서 등장해 우리의 주의력을 빼앗으려고 애쓴다.
둘째, 우리는 그런 지식을 추구하면서 그것이 의미 없는 정보가 돼버리기 전에 최대한 이용하려 애쓴다.
- 영속성 지식은 발견하기가 더 어렵다. 시끄러운 신문 헤드라인이 아니라 책 속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은 어마어마하다. 영속성 지식은 유효 기간이 없 으므로 축적될수록 그 가치를 발휘한다.
또 영속성 지식은 당신이 이미 가진 지식과 합쳐지고 상호 작용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일종의 복리 효과를 낸다. 소멸 성 지식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말해주지만, 영속성 지식 은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 어째서 또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를 말해준다. 그 이유가 당신이 지닌 다른 주제들에 관한 지식과 영향을 주고받을 때 지식의 복리 효과가 발생한다.

- 컴퓨터 과학자 에츠허르 데이크스트라Edsger Dijkstra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진실은 단순함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특히 지식 노동자인 우리는 그 사실을 더 잘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늘 복잡한 것에 병적으로 끌린다. 학계 종사자들로 이뤄진 청중 앞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강연을 하 면 청중은 실망해서 강연료가 아깝다고 느낀다. ......씁쓸한 진실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복잡한 것이 더 가치 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 존 리드John Reed는 저서 《석시딩Succeeding》에서 이 렇게 말했다.
 어떤 분야를 처음 공부할 때는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을 암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필요가 없다. 당신이 해 야 할 일은 그 분야의 토대가 되는 핵심 원칙(일반적으로 3~12 개 정도다)에 주목하는 것이다. 당신이 외워야 한다고 생각한 그 수많은 것은 그 핵심 원칙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조합한 결 과일 뿐이다.
- 마크 트웨인은 아이들에게서 가장 솔직하고 흥미로운 정보 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자기가 아는 것만 말한 뒤 입을 닫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그 능력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또는 새로운 기술을 획득한다. 온갖 복잡하고 장 황한 언어로 말을 꾸미는 기술 말이다.
스티븐 킹 Stephen King은 그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 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짧다. 글쓰기에 대한 책은 대개 헛소리로 가득하 기 때문이다. 나는 책이 짧을수록 헛소리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 우리는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기분, 두려움, 희망, 원망, 목표, 동기, 기대는 그럴 수 없다. 부분적으로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역사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 이다.

- 사람들은 기억력이 좋지 못하다. 대개 나쁜 경험도 금세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과거에 배운 교훈도 곧 잊어버린다. 그러 나 강렬한 고통과 스트레스는 흉터를 남긴다.
눈앞의 비극을 마주한 채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하는 뭔가를 경험하고 나면, 기대치와 목표 가 완전히 재설정되고 이전까지 당연한 듯 몸에 뱄던 행동 방 식이 바뀔 수 있다.

- 미국 연방 대법관 올리버 웬들 홈스 주니어liver Wendell Holmes Jr. 는 "새로운 경험에 의해 확장된 정신은 절대 과거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 대공황을 경험한 세대는 돈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은 평생 더 열심히 저축했 고, 부채를 덜 만들었으며, 리스크를 신중하게 경계했다. 이런 변화는 대공황이 끝나기 전에도 나타났다.
역사가 프레더릭 루이스 앨런은 1936년도 <포춘 Fortune> 기사를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운명론적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위 험한 모험을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지출을 피하고, 자존감을 잃지 않고, 힘든 시기를 묵묵히 견딘다. 평균적으로 볼 때 그 들은 신중하고 차분하며 모험하지 않는 세대다.

- 개인이나 집단 간의 견해 및 시각 차이로 인한 충돌은 역사에서 늘 있어온 인간의 기본적 행동 패턴이다.
"왜 저 사람은 나와 의견이 다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무수히 많다. 저 사람은 이기적이니까, 멍청하니까, 분별력이 없으니까, 무식하니까 등등.
그러나 대개는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현명하다. “저 사람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무엇을 경험했기에 그런 견해를 갖고 있 을까? 만일 저 사람과 같은 경험을 한다면 나도 저렇게 생각 하게 될까?"
대부분의 경우 이 질문은 의견 차이가 발생하는 진짜 이유를 일깨워준다. 하지만 이 질문을 생각해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 대부분의 경우 이 질문은 의견 차이가 발생하는 진짜 이유를 일깨워준다. 하지만 이 질문을 생각해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가 내 견해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 은 심리적 불편함을 초래한다. 내가 무지하고 뭘 제대로 모른 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대신 나와 의견이 다 른 사람은 나보다 생각이 짧은 것이라고 믿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속 편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의견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의견 충돌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해질지 모른다. 기술 트렌드 분석가 베니딕트 에번스 Benedict Evans가 말했듯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더 많이 접할수록 사람들은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더 분노하기" 때문이다.
의견 충돌은 사람들이 가진 지식이 아니라 경험과 더 크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경험은 언제나 다르기 마련 이므로 의견 충돌도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시작되기 전날 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아내 엘리너Eleanor에게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알 수 없는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나이 예순에 아직도 불확실성이 끔찍하게 싫다는 게 참 우습지 않아요?"
맞는 말이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늘 그랬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 일반적으로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한 것으로 바꾸고 싶어서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앞을 응시한다. 더 많은 데이터 로, 더 정확하게, 더 똑똑하게 미래를 예측하려 애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은 사실 그 반대다. 뒤를 돌아보고 넓은 시야를 갖는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알아내려고 하는 대신, 과거의 역사가 피해가지 못한 굵직하고 중요한 일 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십여 년 전 나는 역사를 더 많이 공부하고 예측 자료를 덜 읽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결정은 내 인생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를 알면 알수록 미 래에 대한 불안감이 줄고 편안해졌다.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 에 집중하면, 불확실한 앞날을 예측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대 신 세월이 흘러도 유의미한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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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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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사람
장난감을 선물 받아
그걸 바라보고, 껴안고, 이내 망가트리고,
다음 날이면 이미 그걸 준 사람을
잊어버리는 아이처럼
당신은 내가 건넨 나의 마음을
예쁜 장난감처럼 작은 손 안에서 가지고 놀면서 
괴로움에 경련하는 나의 마음을 눈여겨보지 않네

- 자신이 인생에서 이룬 일, 쌓아 올린 일, 행한 일에 대해 다른 훌륭한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버리게나. 또 세상의 기준에 맞춰 점수를 매기는 것도 그만두고, 자신이 행한 일은 자기만의 척도로 재어야 한다 네. 항상 그렇게 하면 남을 흉내 낸 것이 아닌 자 신의 진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1949년의 편지)
- 너는 불안하니?
불안하다면, 그건 지금의 자신을 진짜 자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증거야.
언제나 진짜 자신으로 있으면 불안 따윈 싹트지도 않겠지. 그러니 진짜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일치 하도록 살아가면 돼. (데미안)
-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지나치 게 관대해지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사랑하는 일 이며, 당연히도 그건 자신의 운명까지 사랑하는 일이다. 운명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까지 사랑 해야 한다. 설령 지금은 그것의 의미를 알 수 없다 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거 부하지도 멀리하지도 뒷전으로 돌리지도 말고 기꺼이 기쁘게 받아들이며 미소를 띠고 사랑하라. (사랑의 길)
- 젊은이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진지하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낯빛을 살피지 마라. 정치가의 말 에 귀를 기울이지 마라.
이름 말고 직함을 대며 대단한 인물인 척하는 어 른에게서 영향을 받지 마라. 유명인이나 백만장자 가 되는 것을 목표로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자를 무시해라. 정의를 내세우는 집단이나 단체에 휘말 리지 마라. 자기네처럼 살면 반드시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종교에 속지 마라. 돈 때문에 비굴하게 움 직이지 마라.
그 누구도 따르지 마라. 하지만 자기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따라라. 그 목소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면 그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 된다.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대가 자신의 길을 걷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아무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고요한 산장 같은 장소를 준비해둬라.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자신의 길을 확인해야 할 때, 그곳으로 돌아가 참 된 자신의 마음과 천천히 대화를 나눠라
그곳은 너만의 신비로운 피난처이며, 네가 다시 새롭게 태어날 소중한 장소다. (싯다르타)
- 두꺼운 줄기를 가진 나무처럼 살아라. 혹은 저 의연한 산처럼 살아라. 또는 고고한 야수처럼 살아라.
때로는 높은 곳에서 빛나는 별처럼 살아라.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든, 늘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라. (클라인과 바그너)
- 나도 마찬가지다. 너처럼 수없이 도끼로 베였다.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아 고뇌했다.
그럼에도 참나무여, 너처럼 포기하지 않고 새 잎을 틔웠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도 이 세상을 여 전히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 <베인 참나무)
- 고독해져라. 거리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혼자가 되어라. 웃음소리와 흥청거림, 달콤한 유혹에서 멀 리 떨어져 그대 자신이 되어라. 부모로부터도 멀 리 떨어져라. 지금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말 해두겠다. 고독은 외로운 것이 아니다. 그대가 진 실로 고독해졌을 때, 그대는 자기 운명의 빛나는 얼굴을 처음으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제야 그대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 견할 것이다. 그때 그대는 스스로를 알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어른이 되는 일이다. (고독에 대해)
- 고뇌하고 있군. 슬픈 일이 많군. 가슴이 자주 아프 기도 하겠지.
하지만 기뻐하세. 기쁨은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갑 자기 경사스러운 일을 가지고 올 때 샘솟는 감정 이 아닐세.
기쁨은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지금의 자 신을 꾸밈없이 순순히 인정하는 데서 생겨나는 감정이라네. 그러니 고뇌해도, 슬퍼해도, 그것에 자 신이 동의한다면 기쁨은 저절로 솟아날 걸세. (1922년의 편지)
- 자신의 일이나 생활이 앞으로 영원히 편안해지는 건 있을 수 없다.
마음의 평온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마음이 이제부 터 쭉 편안해지는 경우는 없다. 마음 하나를 평온 하게 만드는 것도 일일이 싸워서 얻어내야 한다. 심지어 그 싸움은 매일 이어진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지금 이 눈에 보이는 것, 지금의 이 현실, 이는 자신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것과 똑같다.
이미 마음속에 없는 현실이란 존재할 수 없다. (데미안)
- 아무리 애를 써도 낫지 않는 우울에 잘 듣는 약이 있다. 그 약은 바로 이것이다.
노래하는 것. 신 혹은 거대한 존재가 이 세상에 숨 어 있다고 믿는 것. 와인을 조금 마시고 음악을 듣는 것. 기쁨의 시를 짓는 것. 걸어서 멀리까지 나가 보는 것. (흐린 하늘)
- 그렇게 격렬하게 원하면 원할수록 너는 그걸 찾지 못할 거야. 만약 운명의 장난으로 우연히 그것 을 접한다 해도, 완전히 다른 것으로 착각하고 금 세 놓아버리겠지. 바라는 것을 쉽게 찾아내는 이 는 격렬하게 욕망하는 사람이 아니야. 전혀 격렬 하지 않게,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누구에게나 무 엇에나 자신을 열어놓는 사람이지. 또한 '이게 아 니면 안 된다' 하는 식의 조건 따위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고, 그 무엇에 대해서든 손톱만큼의 고집도 가지지 않는 사람이야. (싯다르타)
- 당신은 자신의 그것을 뭐라고 부릅니까? 성격? 인격? 캐릭터? 개성? 아니면 자기다움?
어느 쪽이든 간에 그것은 당신이 족쇄를 차고 수감되어 있는 감옥입니다. (황야의 이리)
- 진실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여태 의지해온 마법의 지팡이를 버려라. 다시 말해 시간이라는 관념 을 깨끗이 버려라.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야. 아직 내일이 안 됐잖아. 벌써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버렸어. 이 나이에 뭘 또, 이런 생각들을 낳는 시간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이 지금 해야 하는 일에 만 집중해라. (클라인과 바그너)
- 젊었다느니 늙었다느니, 그런 감각과 사고방식은 엇비슷한 나날을 지루하게 살아가는 흔해빠진 사 람들의 전유물일세.
적잖이 재치 있고 세련된 사람은 그때그때에 맞춰 젊어지거나 늙는 법이지. 마치 경우에 따라 기쁨이나 슬픔이 솟아나는 것처럼. (1930년의 편지)
- 젊었다느니 늙었다느니, 그런 감각과 사고방식은 엇비슷한 나날을 지루하게 살아가는 흔해빠진 사 람들의 전유물일세.
적잖이 재치 있고 세련된 사람은 그때그때에 맞춰 젊어지거나 늙는 법이지. 마치 경우에 따라 기쁨이나 슬픔이 솟아나는 것처럼. (1930년의 편지)
- 사람의 일생이란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을 홀로 걷는 것이다. 그 길 끝에는 완전한 자신이 서 있다.
하지만 누구나 거기까지 도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데미안)
- 여행의 참맛은 다름 아닌 길 위에 있다.
서둘러 목적지로 돌진하지 마라. 방랑해야 한다.
방랑의 달콤함을 맛봐야 한다. 그것은 청춘의 나
날의 기쁨이다. 인생의 나날의 기쁨이다. (시 <여행>)
-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일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네. 그야말로 일을 신처럼 숭배하지.
또 어쨌든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되도록 많은 돈 을 얻기 위해 고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부자 가 되는 것을 인생의 성공이라 부른다네.
한데 정말로 그런 일이나 돈이 우리에게 필요한 가. 우리에게 부족한 건 바쁜 스케줄이나 돈벌이 에 허덕이는 일상이 아닐 걸세. 일테면 그것은 아 주 소소한 무언가를 그때그때 즐기는 마음이 부족 한건 아닌가.
또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성가신 트러블로 여겨 피하지 않고, 달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운명이 어떻게 굴러가든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고, 인생에 대한 신뢰를 굳건히 유지하는 것. 그런 것이 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게 아닌가. (1925년의 편지)
- 어른의 마음속에도 있는 천진함을 계속 소중히 여기게. 그것이야말로 청춘이기 때문이지.
그 천진함이 앞으로 인생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 줄 걸세. (1912년의 편지)
- 인생에는 엄숙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늘 감동
적인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사이에는 웃을 일이 아주 많이 끼여 있다. (페터 카멘친트)
- 처음에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다음으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나아가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고, 다 정한 것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고 향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이윽고 껄끄러 운 사람까지 사랑하며, 게다가 이 인생도 완전히 긍정하고 사랑하듯이, 우리는 결국 죽음까지 사랑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죽음은 마침내 인생 최대의 행복이 된다. (《황야의 이리>)
- 자신의 인생이 마치 카오스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하찮은 잡무나 고민거리, 또는 자신에게 전혀 맞 지 않는 일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거나 정신을 빼 앗기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인생을 그런 혼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음악의 감성이 필요할 겁니다. 즉 자신이 주로 관계해야 할 일에 몰두할 때, 마치 서로가 공명하는 듯한 감 각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 감각을 알고 나면, 일테면 자신의 일을 할 때는 조화가 절로 이루어져서 일이 나를 흔쾌히 받아들 여준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는 순풍에 돛단배입니다. 인생은 그 쾌감을 중심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인생이 단단한 심으로 지탱되어 외부의 소음에 괴로워하지 않게 됩니다. (1910년의 편지)
-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말에 감명받았다 한들 실 제로 자신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노력하 는 사람은 드물다네. 또 시인과 철학자, 사상가의 사고방식에 감동을 받아봤자 자신의 생활 방식을 조금이나마 바꾸려 하는 사람도 없지.
그런데도 약간의 돈이나 이익, 명예를 위해서라면 무언가를 곧장 찬성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전쟁도 그런 식으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일세. (1929년의 편지)
- 아이들은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새로운 영혼을 지 니고 있다.
그러나 부모들은 그 사실을 조금도 깨닫지 못한 다. 그러기는커녕 자기 자식이라는 이유로 영혼도 대대로 이어진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아이가 자신들과 너무 다르게 생각하거 나 행동한다고 느끼면 그것을 어린애의 천진함이 나 격세유전, 혹은 단순한 우연 탓으로 치부해버린다. 부모들은 그것이 새로운 영혼의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 길이 없다. (《크눌프》)
- 여자들이 너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그야 그렇겠지. 원인은 너한테 있어. 네가 여자들
한테 지나치게 많은 약속을 했기 때문이야. (크눌프)
- 이 세상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이름 없는 무수한 소시민이라는 작자들은 어떤 경우라도 여하 튼 본인만 안전한 장소와 위치에 있으려고 한다. 그래서 언제나 적당한 것만 가지며, 본인한테 유 리한 환경에서만 산다.
그들은 만사에서 극단적인 것을 피한다. 그러니 사실은 예술이 뭔지도 모르고, 성스러운 것에 대 해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며, 건전한 사람에게도 이따금 생겨나는 타락이나 방탕조차 자신과 인연 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주제에 권력을 한 조각이라도 손에 쥐고 싶 다는 욕심으로 다수결 제도를 만들었다. 또 자기 안의 폭력을 권리로 정당화하기 위해 법률을 만들었고, 저 자신은 책임을 지기 싫기 때문에 투표 제도를 만든 것이다. (황야의 이리)
- 이른바 멀쩡한 사람이란 재능이 없는 자다. 그들은 건전하고 정상적인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가 가진 광기가 없으며, 오히려 광기를 꺼림칙하게 여긴다.
본디 재능과 광기는 처음부터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공상)
- 예술가는 자신이 파멸하기 바로 직전까지 창조의 힘을 쥐어짜내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그것은 매우 냉혹한 혼자만의 전쟁터에서 벌이는 싸움과 비슷하다. 그런 창조의 나날은 사람다운 생활의 평온함과 행복을 희생시켜야 할 정도로 가 혹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게르트루트)
- 단체를 만들어서 무리 짓는 사람들. 단체로 뭉치고 결속을 맹세하는 사람들. 뭉쳐서 행동하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은 왜 모이고, 얼굴을 맞대고, 서 로의 동향에 신경 쓰는 걸까. 사실 그 이유는 한심 한 것이지. 그들은 서로가 두려운 거야. 그래서 뭉 쳐 있으면서도 마음은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를 진 심으로 믿지 않아. 또 자신이 시대에 뒤처진 폐물 이라는 사실을 내심 알고 있기도 해. 그러니 적어 도 모여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같은 소리라도 내 지 않으면, 작은 의견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거야. (데미안)
- 어른이 된다는 건 사회제도가 정해놓은 나이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것 이다. 어린 시절을 버리는 것이다. 고독해지는 것 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중대한 첫걸음을 제대로 내딛지 못한다. 한쪽 발만 앞으로 내밀고 다른 한 발은 뒤편에 남겨둔다. 내심 언제까지나 가족과 고향,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싶은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 아름다운 것을 보려면, 가장 좋은 것을 느끼려면, 사랑을 만나려면 대가가 필요하네.
그 대가란 돈이 아닐세. 자네의 마음을 써야 하지.  (어떤 이에게 보내는 편지)
- 두 사람이 힘을 합칠 수는 있다. 추운 날 둘이서 바짝 붙어 있을 수도 있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영혼을 하나로 녹여서 섞을 수 는 없다. 각각의 영혼은 그대로 각자의 것이다. 그 것은 괴로운 일일까? 비극일까?
꽃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꽃과 맺어지기 위해 향 기와 꽃가루를 바람에 실어 날릴 수는 있다. 하지만 뿌리는 원래의 땅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 뿌리가 꽃의 영혼이다. (크눌프)
- 사랑은 왜 존재하는 걸까.
사람을 행복한 기분에 젖게 하려고? 아니,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는 행복 같은 게 아니다.
고뇌하고, 고통받고, 번민하고, 슬퍼하고, 헐떡이 고, 계속 참고,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똑똑히 가르쳐주기 위해 존재한다. (페터 카멘친트)
- 오래된 사랑은 고요한 숯불과도 같다.
더는 격렬한 열정의 불꽃을 내뿜는 일 없이, 지금은 그저 가만히 타고 있다. 그 따스함이 마음에 약간의 젊음을 부여하며, 겨울밤에는 손끝을 살짝 덥혀준다. (페터 카멘친트)
- 이 사랑이 저를 행복하게 해주냐고요? 설마. 그런 말은 좀 이상하네요. 원래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 게 해주려고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랑은 행 복하고는 관계없는걸요.
그게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얼 마나 깊게 고뇌할 수 있는지, 얼마나 인내심이 강한지를 사무치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페터 카멘친트)
- 마음의 깊은 아픔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릴 듯한 아름다움을 만나둬라. 예술이든 자연이든 상관없고, 찰나라도 좋으니 아름다운 것을 봐둬 라. 이 인생에는 반드시 비애가 있다. 비참함도 있 다. 그들은 소나기처럼 다가왔다가 떠난다.
하지만 그대가 본 아름다운 것은 그대 안에 오래도록 남아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의 지속)
- 독서의 최고 단계에 이르면 어떻게 되는가. 더없이 자유롭고도 거칠 것 없이 책을 읽게 된다. 그렇 게 된 누군가가 동화 한 편을 읽는다면 어떤 때는 그 동화를 심오한 철학서로 읽을 테고, 또 어떤 때 는 우주론으로, 또 다른 때는 향기롭고 에로틱한 문학으로 읽을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침대를 눈 덮인 산이나 바위 동굴, 드넓은 정원이라고 상 상하며 끝없이 노는 것처럼. 요컨대 그는 모든 연상을 총동원해서, 세상을 통째로 그곳에 전개시키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독서에 대해)
- 노인이여. 미련 없이 땅에 묻히시게.
힘이 없어도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서 그대가 지금껏 쭉 앉아 있던 자리를 흔쾌히 젊은이에게 양보하시게. 그리고 먼지만큼도 겁내지 말고 조용히 눈을 감으시게. (시 <봄의 말>)
- 이 세상을 개선하자는 멍청한 소리는 하지 말기 바란다.
세상은 정치가나 당신들의 장난감이 아니며, 애초 에 지금 세상이 좋니 나쁘니 하는 판단 자체가 터 무니없이 오만하지 않은가.
어린아이나 젊은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들을 개선시키자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이 말하는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하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세상의 틀에 집어넣고 강제로 짓누르는 게 정말로 좋은 일인가. 젊은이들이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개선이라느니 개량이라느니 큰 소리로 외치는 바보들이여.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 세상에는 화가 나는 일이 가득한 법이지. 추악함도 셀 수 없이 많고, 너무나 하찮은 것, 비열한 것 도 넘쳐난다네. 그렇다고 그것을 비난하거나, 경 멸하거나, 그 때문에 일일이 불쾌해져서 어쩔 셈 인가.
그런 것도 분명 이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 하세.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은 아니지. 흐름 속에 는 혼탁한 부분도 있기 마련일세. 그러니 그런 것에 구애되지 말고, 차라리 웃어넘기세 (평범한 이에게 보내는 편지)
- 행복했던 때를 돌아보면 저절로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런데 어째서 어린 시절일까.
행복을 느끼려면 시간의 지배를 전혀 받지 않아야 하고, 두려움이나 소망에도 지배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을 만족시켰던 것이 우리의 어린 시절이다. (행복)
- 자신이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 묻는 동안에는 아직 행복해질 수 없다.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전부 손에 넣었다 해도 여전히 행복해지지는 않을 수 있다.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거나 그것을 떠올리는 동 안에는 안 된다.
원하는 것이 있는 동안에는 행복의 평온에 도달할 수 없다.
그대의 소망이 전부 휘발되어 행복이라는 말조차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을 때, 모든 일이 있는 그대 로 발생하며 그것이 완벽한 자연의 도리로 보일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그대의 영혼은 행복의 끝없는 평온 속에서 잠시 눈 붙이겠지. (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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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메흐디 하산은 21년부터 23년까지 MSNBC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메흐디 하산 쇼의 앵커로 활동한 경험이 있으며, 각종 언론매체를 거치며 최고의 독설가로 명성을 얻었다. 특히 2013년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다 라는 주제로 옥스퍼드 유니언에서 진행된 토론에서 찬성 측 연설자로 나서서 승리를 거두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이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트럼프 정권의 핵심인사 에릭 프린스와 마이클 플린,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했던 존 볼턴 등과 거침없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 책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을 전체 16개 챕터에 걸쳐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논쟁은 피하는 것이 최고라는 말도 있지만, 이와 벌이게 된 논쟁이나 토론이라면 이기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논쟁에 뛰어들게 되었다면 우선 청중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논쟁을 벌이는 상대방이 아니라 청중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청중에게 시선을 맞추고, 뻔한 칭찬이라도 해야한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사적인 이야기로 청중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좋다.
청중을 내 편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머다. 일단 사람들을 웃게 만들면 사람들은 당신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당신은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게 된다. 유머는 청중과 친밀함을 쌓고, 심각한 주제를 가볍게 전달하고, 상대편을 제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논쟁에서 이기겠다고 철저하게 논리로만 무장하면 안된다. 팩트(로고스)보다 감성(파토스)이 우선이다.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려 한다면 논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의 마음은 단순히 이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파토스를 숙달하기 위해서는 스토리 텔링에 능해야 한다. 어휘 선택에 있어서도 청중의 감성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토론자 스스로 감정을 보여줘야 하고, 그 감정을 청중과 공유해야 한다.

보통 논쟁에서는 그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논거와 그의 이론을 공격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에토스를 공격하는 것이 실전에서는 매우 효과적이다. 상대방의 인격이나 자격, 혹은 과거 주장이나 발언을 공격하는 것은 꽤 효과적이다. 말하는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선량함이 설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화자의 성품은 그가 지닌 가장 강력한 설득 수단이다. 

토론이나 논쟁에서는 말만 잘 한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다. 잘 들어야 한다. 어차피 대화에서 말하는 시간은 반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나머지 반을 잘 들어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논쟁에서는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유도의 전략이 유용하다.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행위를 나약함을 상징으로 여기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강함과 확신의 상징이다. 상대의 주장을 인정하는 행위를 통해 청중은 당신이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논쟁이나 연설같은 재능을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연설가였던 처칠이나 마틴 루터 킹같은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끝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연설가가 되었다. 처칠은 연설 전체를 원고로 작성한 뒤 잠시 말을 멈추어야 하는 부분까지도 미리 계획해서 적어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걸 적어 놓았다고 해서 원고를 그냥 줄줄 읽는 것이 아니었다. 처칠이 원고 리허설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지 연설 중에는 간혹 원고를 슬쩍 쳐다보기만 할 정도였고, 청중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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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재 푸청 심리상담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심리상담가 쑤쉬안후이가 지은 책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심리케어와 치료에 관련된 24권을 책을 저술했으며, 각종 교육강좌 및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온갖 어려운 상황을 겪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기도 하고, 부모형제가 세상을 떠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기도 하고, 친구나 직장동료와의 관계가 나빠지기도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과 타인에게 잘 대응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인간관계의 규칙을 찾아보려한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제도와 생존을 위해 순응하며 살아가다 보면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독에 갖히게 된다. 이런 불필요한 두려움은 우리의 심신과 영혼을 갉아 멍그며 여러가지 질병을 일으킨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고되고 피로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살펴보면 타인과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경계선을 분명하게 긋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의 경계선이라는 말에서 사용되는 경계선은 일종의 범위이자 거리이다. 2명 또는 다수의 인원 사이에 필요한 개인공간과 거리를 뜻하며, 이는 관계의 멀고 가까움, 친밀함과 소원함, 그리고 개인의 상태에 근거해 조정되는 것이므로 탄성과 신축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인생에서 마주치는 여러 관계와 환경속에서 인간관계의 경계선은 서로 원하는 것을 이해해주는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래야 평등한 관계 속에서 존중할 수 이는 것이다. 이 책은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이야기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들의 생각이나 관점, 기준, 감정에 휘둘리다 보면 정작 나의 감정과 생각은 어떤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때로는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흡수한 채, 이리저리 휘둘리고 사회적 기준에 맞춰 영혼없이 살아가기 쉽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를 쓰고, 외면적인 것을 더 중시하고 겉모습을 화려하게 포장하느라 정작 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는 외면하고 만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경계선이 인간관계 속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그러면서 타인과 나의 관계가 무너지는 함정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내면을 치유해보고 견고한 관계의 경계선을 구축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내면의 질서와 안정적인 주체감을 찾고, 당신이 원하는 행복한 삶을 누리며, 매 순간 무탈하게 보냈으면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한 '게슈탈트 기도문'을 곱씹어 보면 좋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당신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나는 당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나의 희망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다.
우리가 우연히 서로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서로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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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근간이 되는 역사적 사실은 제우스와 그 가족 및 후손들의 권력투쟁과 패륜, 욕망과 폭력, 사랑과 증오, 전쟁과 모험에 관한 것이다. 이를 신화적 요소와 문학적 요소로 미화해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이야기로 포장하고 있다. 한 문장으 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암투와 패륜, 욕망과 폭력으로 얼룩진 제우스 와 그 가족 및 후손들의 행위를 신화와 문학의 이름으로 미화한 우 상화 작업의 결정체다.

- 제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 슬하의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21명의 여인에게서 18남 25녀를 낳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80퍼 센트는 이들 제우스의 형제자매와 여인들, 그 여인들에게서 태어 난 자녀들 이야기다. 나머지는 제우스의 후손이 세운 그리스 왕 가와 민간 전설에서 차용한 인물과 괴물 이야기다. 이를 간단한 등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등장인물= 제우스의 형제자매 및 여인들과 자녀들 + 제우스의 후손이 세운 왕가의 주요 인물+ 민간 전설 속 인물과 괴물

-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고대의 건국신화들은 모두 역사적 요 소와 신화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기 마련이다. 제우스의 건국신화 도 예외는 아니다. 거기다 제우스의 건국신화는 후대 작가들이 많은 설정과 이야기를 보태면서 문학작품으로 승화되었다. 그 때 문에 다른 어떤 나라의 건국신화보다도 복잡하고 세밀하며, 다양 한 문학작품을 낳았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 신화는 역사적 요소, 신화적 요소, 문학적 요소로 이뤄지게 되었다. 역사적 요소는 사실에 근거한 사건에 관한 기록이고, 신화적 요소는 종교적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신앙으로서의 기록이며, 문학적 요소는 백성의 교육을 위해 의도 적으로 창작된 기록이다. 따라서 그리스 신화를 제대로 읽기 위 해서는 세 가지 요소를 구분해야 한다.
- 이 세 가지 요소를 구분하기 위해 첫 번째로 파악해야 하는 것은 역사적 요소, 즉 사실에 근거한 사건이다. 신화적 요소와 문학적 요소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사실적인 사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제 우스가 나라를 건국했다는 것과 그를 건국시조로 삼는다는 점이 다. 그리스 신화는 제우스의 왕권 확립 과정과 국가 지배 구조, 주 변 국가와의 관계 등 부수적인 역사적 사실 또한 담고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제우스에 대한 신격화와 우상화 작업이 이뤄졌는데, 이것이 곧 신화적 요소다. 물론 제우스를 신 격화하고 우상화한 것은 그를 신앙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 신화에서 묘사되는 제우스의 가계를 살펴보면, 제우스의 아버 지는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6남 6녀 중 막내아들 크로노스다. 이들 12티탄 남매는 오케아노스, 히페리온, 코이오 스, 크리오스, 이아페토스, 크로노스 등 6남과 테티스, 테이아, 포 이베, 레아, 므네모시네, 테미스 등 6녀로 이루어져 있다. 막내아 들 크로노스는 누이인 레아와 부부가 되었다. 둘은 하데스, 포세 이돈, 제우스 등 세 아들과 헤스티아, 헤라, 데메테르 등 세 딸, 즉 3남 3녀를 낳았는데, 그중 막내가 제우스다.
그런데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레아가 자식을 낳는 족족 삼켜버린다. 크로노스의 이런 행위는 아버지 우라노스의 행동과 매우 유사했다. 우라노스는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그들을 대지 깊숙한 곳에 감춰버렸는데, 자신과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 이들이 한결같이 드세고 괴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다. 하지만 가이아는 우라노스가 자신의 아이들을 감춘 데 분개 해남편을 내쫓기로 결심했고, 이를 실행한 아들이 바로 제우스 의 아버지 크로노스였다.
- 그리스인은 왕 제우스를 신앙의 대 상으로 추앙하기 위해 그를 우상화했는데, 제우스를 신으로 격상 시킨 수단은 그를 우주와 연결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제우스를 조물주, 즉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자손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처음에 세상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 았고, 오직 카오스라는 혼돈만이 있었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는 우주에서 가장 먼저 생긴 것은 카오스이고, 이어서 대지의 신 가이아와 흑암의 구렁텅이인 타르타로스, 그리고 에로스가 생겨났다고 쓴다. 카오스는 다시 에레보스(저승)와 어두운 밤을 낳았고, 밤과 에레보스가 결합해 아이테르(창공)와 낮을 낳았다. 한편 가이아는 우라노스를 낳았고, 우라노스는 모든 신에게 안전 한 거처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가이아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탄생시켰고, 다시 우라 노스와 결합해 6남 6녀의 12티탄 남매와 키클롭스 3형제, 헤카톤 케이트 3형제를 낳았다. 이 가운데 12티탄 남매의 막내인 크로노 스와 넷째 딸 레아가 결합해 3남 3녀를 낳았다. 크로노스와 레아 의 3남 3녀 중 막내가 바로 제우스다. 그러니 제우스는 창조주에 해당하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신 가이아의 손자로 태 어난 셈이다. 이렇게 인간의 아들이자 그리스 올림포스의 왕 제 우스는 명실공히 신으로 승격되어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제우스는 기원전 5세기까지 무려 800년 동안 그리스 사람 들의 신으로 군림한다.
- 이런 신들의 계급을 현실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른바 종주국 의 왕인 제우스와 그의 형제자매, 직계 자녀는 순수 혈통인 종주 국의 왕족이라 할 수 있고, 그 아래 신은 방계 혈통의 왕족이거 나 종속국, 즉 티탄이나 여타 나라의 왕족이라 할 수 있다. 또 왕 족과 일반 신하가 결합해 낳은 자는 주로 영웅으로 묘사되고, 왕 족과 전혀 관련 없는 자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 것이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그의 일족 및 당시 왕족을 신격 화한 체계다. 말하자면 그리스 신화는 종주국과 종속국의 왕족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 위한 우상화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 이런 체계 속에서 신으로 승격된 인물에게는 모두 특별한 능 력이 부여된다. 이를테면 제우스는 번개나 비 같은 기상 현상을 주재하고, 세계의 질서와 정의 그리고 각 나라의 왕권과 사회의 위계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 존재다. 그의 형제 포세이돈은 바다를 지배하는 동시에 지진을 주관하며, 하데스는 저승 세계를 다스린다.
제우스의 누이와 자녀 역시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헤스티아는 화덕의 신, 헤라는 가정의 신이며, 데메테르는 곡물과 수확의 신 이다. 제우스의 자녀를 살펴보면 아폴론은 태양의 신, 헤파이스 토스는 대장장이의 신, 아레스는 전쟁의 신, 헤르메스는 상업의 신, 아테나는 지혜의 신, 아프로디테는 미의 신, 아르테미스는 달 의 신이다.
이렇듯 제우스의 형제자매와 자녀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위대 한 신으로 묘사되고, 동시에 그 능력으로 인간을 지배하고 응징 하며 때로는 초월적 존재로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우상 화를 통해 제우스와 그의 가족은 신앙의 대상으로 발전한다.
-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내쫓고 왕이 된 뒤, 크로노스의 형 제인 티탄족과 10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티탄 형제는 모두 6명 으로, 크로노스를 제외하고 오케아노스, 히페리온, 코이오스, 크 리오스, 이아페토스 등 다섯이 있었다. 제우스는 이들과 싸우기 위해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르 세력과 연합 전선을 펼쳤고, 결국 은 티탄을 물리친다.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아페토스의 아들 프로 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티탄의 후손임에도 제우스 편에 섰 다. 하지만 그들의 형제 아틀라스와 메노이티오스는 끝까지 제우스와 맞서 싸운다.
제우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티탄 세력과 결혼 동맹을 맺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데, 프로메테우스, 아틀라스, 에피메테 스, 메노이티오스 형제는 제우스에게 거만하게 굴며 그의 위상 흠집을 낸다. 이에 제우스는 그들을 제압하는데, 그 과정에서: 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아틀라스, 메노이티오스에 관한 5 가지 에피소드가 생겨난다. 

- 그리스인의 시조, 헬렌
한편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 사이에는 피라라는 딸이 태어났다. 피라는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인 데우칼리온과 결혼했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인간에게 분노해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려 할 때 데우칼리온은 프로메테우스의 조언에 따라 방주를 만들어 온 갖 생필품을 실어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우스가 내린 홍수 때 문에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자 그는 아내 피라와 함께 방주에 들 어가 살아남았고, 9일 밤낮을 떠돌다가 포키스의 파르나소스산 에 도착했다(데우칼리온의 방주 이야기는 기독교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 주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다.
데우칼리온과 피라는 아들 헬렌을 낳았는데, 그는 고대 그리스 인이 시조로 삼는 인물이다. 헬렌은 산의 요정 오르세이스와 결 혼해 아이올로스, 크수토스, 도로스 등 3형제를 낳았다. 이들 역 시 각각 그리스인의 시조가 된다. 아이올로스는 아이올리스인의 시조, 크토스의 아들 이온과 아카이오스는 각각 이오니아인과 아카이아인의 시조, 도로스는 도리스인의 시조다.
이들 네 부족은 고대 그리스 문화를 이룩한 주요 부족으로, 자 신들을 헬렌의 후손이라고 해서 '헬레네스'라 불렀다. 이 헬레네 스가 곧 그리스인을 통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헬레니즘이라는 용 어 또한 헬렌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인이 헬렌을 자신들의 시조로 삼았다는 것은 제우스가 아닌 프로메테우스를 자신의 근원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는 제우 스 중심의 그리스 신화가 아닌 프로메테우스 중심의 그리스 신 화가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 제우스가 메티스를 몸속에 넣어버렸다는 것은 결혼 후 그가 변심해 메티스를 궁지에 몰았다는 뜻이다. 제우스가 메티스를 어 딘가에 가뒀거나 내쫓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메티스는 그런 상 황에서도 제우스를 비난하지 않고 제우스의 몸속에서 그에게 지 혜를 빌려줬다고 한다. 그 덕분에 제우스는 풍부한 지혜를 갖추 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유추해볼 때 제우스에게 배신당해 임신 한 상태로 쫓겨난 메티스가 홀로 아테나를 낳았고, 이후 아테나 가 성인이 되어 제우스를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아테나 는 메티스가 낳은 제우스의 장녀로 인정받았고, 신화 속 올림포 스 12신 가운데 하나가 된다.
- 이렇듯 신화는 아테나가 지혜로운 여인 메티스의 딸로 제우스 의 머리에서 태어났다고 묘사한다. 이는 아테나가 메티스의 지혜 를 유전적으로 이어받음과 동시에 제우스의 지혜까지 함께 물려 받았음을 의미한다. 거기다 태어날 때부터 투구와 갑옷, 창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으니, 태어나면서부터 전쟁의 여신도 겸했던 것이다
- 이후 아테나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가 되었는데, 대개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고 창과 방패를 든 모습으 로 그려진다. 아이기스라는 방패에는 메두사의 머리를 달았다. 그녀의 방패 아이기스는 원래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제우스에 게 바친 것인데, 제우스가 아테나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방 패를 장식한 메두사의 머리는 메두사를 죽인 영웅 페르세우스가 그녀에게 바친 것이다.
- 검투사 모습을 한 그녀는 신화에서 헤라클레스, 오디세우스, 이아손 등 영웅들의 조력자로 등장하는데, 이는 일종의 문학적 장치로 영웅의 행적에는 여신의 신령한 힘이 작용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인 듯하다.
대개 아테나를 상징하는 동물은 올빼미, 나무는 올리브나무다. 올빼미는 지혜를, 올리브나무는 비옥함과 평화를 상징하는데, 그 녀가 곧 지혜와 비옥함, 평화를 수호하는 신인 까닭이다.

- 무사이 자매는 제우스와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며, 신화에서는 음악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묘사된다. 무사이는 무사 (영어식: 뮤즈)의 복수형이다.
무사이 자매의 어머니인 므네모시네는 흔히 기억의 여신으로 불리는데, 이들 자매는 어머니의 기억 능력을 물려받아 기억을 통해 올림포스와 인간세계의 음악과 시를 담당하게 되었다. 기억 이란 문자가 생기기 이전에 문화를 전승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었고, 음악과 시는 기억을 통해 탄생했다. 그래서 문자가 발명되 기 이전 시대에는 음악과 시를 창작하고 전하는 데 기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당시에는 기억술이 유행했는데, 기억을 기술적 능력으로 봤다는 뜻이다. 무사이 자매의 어머니 므네모시네는 아 마도 이 기억술의 달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어로 기억을 '므네메'라고 하는 것도 므네모시네의 이름에서 기인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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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을 만드는 것 자체가 아니라 예술을 만들 수밖에 없는 멋진 상태에 놓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라. (로버트 헨리 Robert Henri)
- 바깥세상을 작은 꾸러미들이 가득 놓인 끊임없이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라고 상상해보자. 가장 먼저 할 일은 컨베이어 벨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든지 원할 때 꾸러미 하나를 집어 포장을 풀고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도움이 될 만한 한 가지 방법은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펼 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문장을 읽는 것이다. 거기에 적힌 내 용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연관성이 발견되어도 그저 우연일 수 있지만 우연만 은 아닐지 모른다. 내가 충수염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는 당 장 맹장을 제거해야 한다고,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했다. 나 는 근처 서점에서 앞쪽 테이블에 진열된 앤드루 웨일Andrew Weil 박사의 신간을 보게 되었다. 책을 집어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눈에 띈 첫 구절은 이런 내용이었다. "만약 의사가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한다고, 신체 일부를 제거하라고 하면 믿지 말라." 필요한 정보가 시간에 딱 맞춰서 생겼다. 내 맹장은 지금까지 그대로 잘 있다.
단서가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은 시계의 섬세한 작동 원 리와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마치 우주가 내 편이고 내가 사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주겠다고 작은 알람 들을 울려서 알려주는 것 같다.

- 일본에는 도자기를 수선하는 '긴츠기'라는 기법이 있다. 도자기가 깨졌을 때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 하지 않고 금가루 로 틈을 메워 완전하지 않음을 오히려 부각시킨다. 아름다운 금색 라인이 시선을 잡아끈다. 결점이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 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점이 된다. 물리적으로나 미학 적으로나 강력한 포인트가 된다. 흉터가 작품의 과거를 기록 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 기법을 우리에게도 적용한다면 우리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가진 모든 불안을 창의성을 이끄 는 힘으로 새로이 해석할 수 있다. 불안은 우리가 우리 마음 에 가장 가까운 것을 세상과 나눌 수 없게 가로막을 때에만 방해물이 된다.
- 우리의 목표는 남들과 잘 섞이는 것이 아니다. 다른 점, 섞이지 않는 부분,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특별함을 더욱더 넓히고 키우는 것이 목표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말하지 말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높여라. 더욱더 가다듬고 소중히 여겨라.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어떤 관행이 자리잡히자마자 그 관행을 따르지 않는 작품이다. 예술을 만드는 이유는 혁신과 자기표현이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내면의 것을 공유하고 나만의 독특한 관점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 인내심의 발달 과정은 인식과 매우 비슷하다. 즉, 있는 그대로를 수용함으로써 발달한다. 조급함은 현실과 벌이는 논쟁이다. 지금의 경험이 그대로가 아니기를, 달라지기를 바 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내일이 더 빨 리 오기를, 어제가 반복되기를, 눈을 감았다가 뜨면 다른 곳 에 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시간을 통제할 수 없다. 따라서 인내는 자연스러운 리듬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조급함은 자연스러운 리듬을 건너뛰고 속도를 높여서 시간을 절약해주는 것처 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한다. 헛수고다.
창조 과정에서 인내는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 우리
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위대함은 강요로 일어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위대함을 초대하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위대함이 겁먹고 도망칠 수도 있으니 절대로 초조해하면 안 된다. 그저 끊임없이 위대함을 환영하는 상태에 머물러라.
작품의 발달 공식에서 시간을 빼면 인내가 남는다. 작품 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온전한 발달을 위해서도 인내심은 꼭 필요하다. 촉박한 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명작 은 사실 작가가 수십 년 동안 인내심을 갖고 다른 작품들을 만들며 쏟은 노력의 총합이다.
창의성에 관한 가장 깨지기 어려운 법칙이 있다면 인내심이 항상 필요하다는 것이다.
- 영감의 순간은 특별하므로 가장 큰 헌신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순간 반짝였다가 사라져버리는 빛과 같은 영감이 찾 아오면 모든 일정을 제쳐두어야 한다. 타이밍이 그리 좋지 않더라도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에는 힘을 내서 모든 관심을 쏟아야 한다. 스스로를 진지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면 이것 은 의무이다.
존 레논John Lennon은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으면 그자리에서 끝까지 쓰라고 조언했다. 초기의 영감에는 당신을 작 업의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완벽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도 걱정하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 대략적인 초안을 완성하라. 완벽하지 않은 전체 버전이 완벽해 보이는 조각보다 더 유용하다.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거나 후크를 썼을 때, 암호를 해독 했고 나머지는 알아서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때 물러나서 처음의 불꽃이 사라지게 내버려두면 다시 불 붙이기 어렵다

- 길을 잃으면 그렇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 예술의 목표는 완벽함을 얻는 게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알지만 미처 보지 못 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우리와 전혀 다른 독특 한 세계관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기적처럼 내 관점과 똑같 을 수도 있다. 마치 예술가가 내 눈을 빌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 쪽이든 예술가의 인식은 우리가 누구이고 누가 될 수 있는지를 일깨운다.
예술이 가슴에 와닿는 한 가지 이유는 인간이 서로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품 속에 담긴 공통적인 경험에 끌린다. 그 안의 불완전함까지도 포함해서 자신의 일부를 발견하고 이해받는 기분, 연결됨을 느낀다.
- 완성된 작품을 내보내는 과정은 자신 또는 작품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기도 하다. 예술 작품을 만들 때 관객은 가장 나중에 고려해 야 할 부분이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그 작품 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어떤 식으로 세상에 내놓아야 할지 는 생각하지 말자.
- 작품이 완벽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참여한 그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결점이 보일 것이다. 완성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보인다. 바꿀 부분은 언 제까지나 생길 것이다. 올바른 버전은 없다. 모든 예술 작품 은 하나의 버전에 불과하다.
예술 작품을 만드는 가장 큰 보상은 작품을 공유할 수 있 다는 것이다. 받아줄 관객이 없어도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근육을 단련한다. 작품을 끝내는 것은 성장을 위한 좋은 습관이다. 그것은 자신감을 높여준다. 비록 지금 불안 하더라도 작품을 내놓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불안감의 무게 는 줄어든다.
-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완성된 작품이 만족스럽고 친구에게 보여줄 정도라면 세상에도 보여줄 때가 된 것이다.
이 마지막 단계는 새로운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비옥한 시 간이다. 다음 작품에 대한 흥분감이 현재의 작품을 마무리하 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가져다줄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 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현재의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이 힘 들 수도 있다. 행복한 고민이다. 다음 프로젝트에 담긴 생명 력은 종종 우리를 현재 작품의 황홀경에서 깨어나게 한다. 다른 아이디어가 나를 비춰주고 있어서 지금 이 작품을 빨리 끝내고 싶어진다.
- 규칙의 부과는 이미 작품을 어느 정도 만들어 본 기성 예술가에게 가장 효과적이다. 당신이 이미 어떤 분야에서 활동 하고 있다면 임시 규칙이 패턴을 깨뜨리는 데 유용할 수 있 다. 그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개선과 혁신에 도전하고, 자아 나 작품의 새로운 면을 끌어내도록 해준다.
거장 아티스트들은 별로 친숙하지 않은 악기나 매체에 눈을 돌리기도 한다. 이러한 도전이 그들의 기교를 방해하지 는 않으면서 예술가로서 진정한 면모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 이다.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강제하도록 변수를 설정해보자. 항상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면 노트에 팬으로써 보자.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으로 그림을 그려보자. 악기를 사용하지 말고 아카펠라로 노래를 만들어보자. 전문 장비로 촬영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영화를 만들어보자. 캐릭터를 미리 연구하지 말고 즉흥적으로 연기 해보자.
정상적인 리듬을 깨뜨리는 새로운 틀을 시도해보고 어 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지켜보자. 제약의 존재만으로도 작업 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예전보다 더 나은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목적은 자기 발견이니까.
글을 쓸 때 보통 문단을 짧게 쓰는 편이라면 긴 문단을 실험해볼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 그 과정에서 짧은 문단을 개선시킬 무언가를 배울 것이다. 규칙을 어겨보면 예전의 선택이 더 잘 이해된다.
성공한 예술가들이 스타일이나 방법에 변화를 줄 때고 민하는 한 가지는 팬이다. 그들이 과연 마음에 들어 할까? 새로운 영역을 탐구할 때 일부 팬을 잃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팬이 생길 수도 있다. 어쨌든 익숙한 영역으로만 예 술을 제한하는 것은 결국 예술가 본인을 위한 일도 관객을 위한 일도 아니다. 계속해서 같은 길만 걸어가면 경이와 새 로운 발견의 에너지도 사라질 수 있다.
- 당신이 겪는 하나의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연습은 열린 가능성과 평온이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줄 것이 다. 사건들 자체에 집착하면재앙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더 거대한 삶의 작은 측면일 뿐이고 멀리서 볼수록 더 작아진다. 줌인하면 집착하게 되고 줌아웃하면 관찰할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교착 상태에 빠지면 절망감을 느낄 것이다. 눈앞의 이야 기에서 물러나라 거리를 두면 도전과 그 주변의 새로운 길 이 보인다. 그 쓸모는 무한하다.
이 원리를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하자. 우리를 집어삼킨 거미줄과도 같은 개인적, 문화적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예술은 우리를 마비 상태에서 끄집어내서 가능성에 마음을 열고 만물을 누비는 영겁의 에너지와 다시 연결시킬 힘을 갖고 있다.

- 예상 속에서 살기보다 새로운 발견 속에 사는 것이 언제나 더 낫다.
- 당신이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라. 더는 필요하지 않다.
- 의식적인 마음의 스위치를 끄고 충동을 따르는 것이 목표다. 아이들은 유난히 이것을 잘한다. 판단이나 집착 없이 순식간에 여러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나이가 들면서 우 리는 그런 반응을 숨기거나 덮는 방법을 배운다. 그렇게 내 면의 민감성이 약해진다.
우리가 무언가를 배운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것을 방해하는 어떤 믿음이나 짐이나 교리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아이처럼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상태에 가까워질수록 테스트가 더 순수해지고 우리의 예술도 향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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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38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트위터 인플루언서인 토미가 지은 책이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방송매체에 다수 출연하기도 했으며, '정신과 의사 토미 시리즈'는 일본에서 3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 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잡지나 방송에서 일반인들의 고민을 날카로운 말을 하는 언니같은 캐릭터로 냉정히 쳐낼 사람은 쳐내고, 고민하는 어린 양은 구하기 위해 활동 중이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특성상 한정된 시간에 많은 환자들을 만나야 한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제한된 상황에서 환자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한마디 조언'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한마디 조언을 환자에게 던질 수 있다면, 그 순간 환자의 마음이 풀리고 부드러워질 수 있다.

저자 스스로도 젊은 시절부터 많은 정신적 괴로움을 겪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동성파트너의 죽음으로 괴로워할 때 메모해둔 한마디 말들이 저자를 지켜주었다고 한다. 또 그 경험 속에서 많은 말들이 떠올랐고, 트위터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저자는 환자들의 고민을 완화하는데 효과가 좋은 문장들을 발견하면, 꾸준히 메모해 두었고 메모노트를 사용해서 트위터를 시작했다. 이 책은 15년 넘게 환자들을 상당하면서 경험한 정서적 치료방법과 트위터 글에서 엄선한 잠언 221가지를 모아 놓은 책이다. 

인생은 언젠가는 끝이 나게 마련이고, 자신의 마음은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을 더욱 쉽게 극복할 수 있길 바란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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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기술은 우리 삶을 변 화시킬 것이고, 그런 변화를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거대한 기술의 변 화를 직접 목격해왔다. 그런 삶에서 내가 얻은 교훈이라 면, 그 변화를 차분히 맞이하라는 것이다. 나를 비롯해 우 리 세대가 그랬듯이, 또 내 할아버지 시대의 등대지기들도 해냈듯이 너희도 어떤 변화든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 인간의 역할은 3C-창작가Creatives, 간병인Carers, 관리인 Custodians에 국한될 것이란 예측이 있다. 창작가로 성공하 면 누구보다 즐겁고, 가장 많은 돈을 벌 것이다. 간병인에 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돌보는 사람만이 아니라 상점과 학교, 교도소와 병원 등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서 시중 드는 사람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그 수가 가장 많 을 것이다.
내가 관리인이라 칭한 범주에는 결속력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행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을 비롯해 어떤 조직에서든 여전히 관 리자가 계획을 세우고, 누가 무엇을 언제 할 것인지 결정 할 것이다. 심지어 자율주행차에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시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앞으로도 많 은 일자리가 있을 것이고, 어쩌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일자리일 것이다.
- 우리가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할 때 반드시 그대로 유지해야 할 것은 '노동', 그것도 유급 노동이다. 너그러운 억만장자 자선가가 기본소득을 평생 보장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아침마다 우리를 침대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유 의미한 활동이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소중한 삶을 헛되이 낭비하는 짓이다. 내가 다른 편 지에서 돈은 필요한 만큼 충분히 있으면 된다고 주장하겠 지만 최소한의 기본소득으로는 누구도 오랫동안 만족하 지 못할 것이다. 물론 작은 기본 소득에도 감사해야 한다 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땀 흘려 일한 대 가를 처음 받았던 순간과 그때의 짜릿한 기분을 죽을 때 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 삶이 던지는 문제에 대처하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행히 기술 혁명은 들불처럼 일어나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위대한 고전과 역사를 읽어라.
변하지 않는 지혜는 그 속에 있다.
- 나는 너희 세대가 당연시하는 기술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새로운 기술은 삶을 더 쉽고 편 하게 해주고 아니 해줄 수 있지만, 삶이 우리 앞에 던지는 문제를 원만하게 대처하려면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 가 있어야 한다. 그래도 좋은 소식은 있다. 인간은 시공을 막론하고 똑같다는 것이다. 똑같은 충동과 욕망, 똑같은 좌절, 똑같은 변덕과 매력을 어느 시대에나 가져왔다. 그러 니 너희가 그것들을 재창조해낼 필요가 없다. 내가 그랬듯 이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기만 하면 그 대부분을 알 수 있다.
- 그렇다면 미국의 자연주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에게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그는 올바른 삶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거짓된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찾아내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
그대가 살았다는 이유로
한 사람이라도 더 쉽게 호흡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 켄터키 출신의 농부 시인 웬들 베리Wendell Berry는 그의 시 한 편의 끝부분에 기도의 목적을 이렇게 정리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한다.
새 땅이나 새 하늘을 간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요한 마음과 맑은 눈을 달라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곳이다.

- 너희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궁극적으로 너희 만이 알겠지만, 내가 다른 편지에서 말했듯이 다른 사람 이 너희 자신보다 너희를 더 잘 알 수 있는 경우도 비일비 재하다. 따라서 너희의 특별한 재능, 혹은 내가 황금 씨앗 이라 칭한 것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너희 스스로 그 능력 을 개발하도록 돕는 것이 부모와 교사, 그리고 상관의 책 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너희에게 지식을 주입하 는 데 그치지 않고 너희에게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 편지를 하느님으로 시작했지만 너희로 끝맺었다. 나는 하느님과 너희가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느님God은 너희 안에 내재한 '선한 존재Goodness'를 짧게 말한 것이다. 신학적으로 접근하면, 성육신 이론에 따라 하느님 은 인간이 되었다. 과거에 종교는 우리가 우리 내면에 내 재한 선한 존재를 찾아내어 올바로 활용하도록 돕는 방법 이었다. 그런데 종교가 계급화되고 관료화되면서 원래의 방향을 상실해갔다. 이제 우리는 혼자 힘으로 그 일을 해 내야 한다. 그 평생의 과제를 너희가 잘해내길 바랄 따름 이다.
- 설령 자신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일반적인 통념에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사람은 훌륭한 학자가 될 수 없다.
자신의 믿음과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최고의 학습법이다.
- 너희가 다른 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일하는지 관찰할 때 호기심이 있어야 자극을 받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형태의 삶을 꿈꿀 수 있다. 그렇기에 너희도 삶을 살아가는 동안 여행을 가게 된다면 반드시 배낭에 호기심을 담아가기 바란다.
- 우리가 삶에서 진정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학습되는 것이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지금까지 너희는 적잖은 시험을 보았을 것이다. 좋은 성적을 거둔 사람은 자신이 꽤나 똑똑하다고 자부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이나 부모님이 기대한 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다른 부분에서 똑똑하고 영 리할 수 있고, 어떤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쓸모 있는 능력 을 발휘할 수 있다.
너희를 포함해 모든 젊은이가 학구적인 성향을 띠지 않 는다는 걸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왜 모두가 학교 성적으로 똑똑하다는 걸 입증하기 바라고, 지능을 표현 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경시하는 것일까? 아리스토텔 레스는 우리가 여러 방향에서 영리함을 드러낼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지적했다. 그는 세 가지 유형의 지능이 있다고 말했다. 에피스테메episteme(순수한 지식), 테크네techne (기술적 지식), 프로네시스phronesis(실천적 지혜)가 그것이다. 세 가 지지식을 동일할 정도로 지닌 사람은 거의 없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 하워드 가드너 Howard Gardner는 음악 지능, 논리·수학 지능, 신체운동 지능, 대인관계 지 능 등 사람의 지능을 세분화해 여덟 가지로 나누었다. 가 드너의 주장에 따르면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학생이라도 수학에는 절망적일 수 있고, 운동 능력이 우수하더라도 대인관계 능력은 부족할 수 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너희는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는 똑똑하다. 그렇기에 학교가 인지적 지능만을 중시하는 것 은 학생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학교는 그런 편협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실에서는 인지적 지능만이 아니라, 삶에서 마주하는 역 경과 기회에 대처하는 실질적인 능력이 더 필요하다. 이런 능력도 지능이라 칭한다면, 우리 교육 제도에서 이런 부분 을 더 폭넓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학교는 이미 알려진 세계를 다루는 데는 큰 문제가 없 다. 그러나 교육은 그 이상을 해낼 수 있어야 하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내가 다른 편지에서 주제로 삼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쓴 에른스트 슈마허Ernst Schumacher 또한 교육 의 이런 역할을 잘 정리해주었다.
우리의 평범한 마음은 항상 우리는 도토리에 불과하 며,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은 더 크고 더 통통하고 더 반짝이는 도토리가 되는 거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그러나 그런 설득은 돼지에게만 구미가 당길 뿐이다. 우리의 굳은 믿음은 훨씬 더 나은 존재, 즉 우리가 떡갈나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 나는 '경마 경쟁horse-race competition'이 왜곡되고 남용되는 가능성을 염려했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경주인 마라톤 에 눈을 돌렸다. 앞서 달리는 선수들, 즉 우승과 입상을 벼 르는 선수들에게는 마라톤도 경마와 비슷할 수 있다. 그러 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3만 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마 라톤은 축제인 동시에 자신과의 경쟁이다. 그들은 다른 사 람을 어떻게든 이기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기록을 단축하거나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할 뿐이다. 자신과 경쟁해 본인 스스로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 누군가를 꺾고 이기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 것이다. 마라톤은 많은 시간과 노력 이 필요한 경주이지, 짧은 순간에 힘을 쏟아야 하는 단거 리 경주가 아니다.
내 생각에는 마라톤이 삶에 더 가깝다. 우리는 자체적 으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넘어서려고 끊임없이 노력 한다. 더 많은 훈련, 그리고 친구와 가족의 응원이 기록 향 상에 도움이 된다. 물론 즐기면서 친구를 사귀려고 마라 톤 대회에 참가할 수도 있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 옆에서 달리며 기록을 경신하려고 애쓰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라톤은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는 그 자체에 만족할 수 있다. 또 동료들과 함께 달릴 수도 있고 혼자 달리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마라톤 대회 는 매년 개최된다. 올해 크게 실패하면, 내년에 다시 시도 하면 된다. 삶은 마라톤처럼 장거리 경주다. 너희 자신이 외에 누구도 너희를 시험하지 않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 고 완주하면 모두가 승자다.
- 내가 하는 일이 '나 자신'은 아니다. 삶에서 행한 그 어떤 역할로도 자신을 정의하지 마라.
- 나다움 또는 인간다움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의 조직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의 규모는 어느 정도가 적합한가?
- 개개인의 인간다운 면은 공식적인 직함과 직무 뒤에 감추어진다. 경찰 같은 공직자가 흔히 제복을 입는 이유는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라 공무의 집행자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셸의 직원들은 제복을 입지 않았지만, 회색 양복에 넥 타이를 매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이렇게 개인을 지 워냈고, 직책 뒤에 '사적 자아private self'를 감추었다. 사무실 문에 부착된 큼직한 놋쇠판에는 우리가 속한 작은 부서의 공식적인 명칭 'MKR/35'가 새겨져 있었고, 그 아래로 우 리 이름이 인쇄된 명함이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 두 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구조가 지닌 의미는 분명했다. 중요 한 것은 부서이고, 담당자의 이름은 언제든 교체될 수 있 다는 뜻이었다.

- 조직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원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물건은 관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너희도 관리되어야 하는 존재인가?
너희는 적절할 때 사용되고 필요한 곳에 배치되는 존재인가?
- 단어가 중요하다. 단어가 행동을 바꾼다. 단어에는 함축 된 메시지가 있어서 우리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로 우리 생각이 달라지면 우리 행동도 바뀐다. 요즘 에는 사람을 인적 자원이라 칭한다. 이런 호칭에는 사람도 사물처럼 다듬어지고 보충될 수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남을 때는 줄일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훌륭한 관리자라면 누구나 아는 것을 되풀이한다고 빈정 댈지 모르지만, 언어는 너희를 현혹해서 정상적인 경우에는 피할 행동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단어는 기만적이고 위험 한 것이다. 따라서 너희가 의도하지 않는 메시지를 내뱉지 않도록 항상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 나는 첫 직장인 센의 싱가포르 지사에서 2년을 근무한 후, 보르네오 사라왁주에 있던 마케팅 부서의 책임자로 발령을 받았다. 사라왁주는 웨일스 정도의 면적에 도로보 다 강이 더 많은 곳이었다. 싱가포르 사무실과 연결되는 전화선도 없었고, 누구도 방문하지 않았으며, 우편물 배 달에도 나흘 이상이 걸렸다. 내가 35명의 지역민을 데리고 관리해야 할 것은 이착륙장 세 곳과 창고 두 곳이었다. 관 리에 필요한 기본 지침서 같은 것도 없었다.
나는 셸이 미래의 지도자를 이런 식으로 훈련시킨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기본 시설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오 지에 미래의 지도자들을 내던져놓고, 그들이 회사에 크게 해를 끼치지 않고도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를 보고, 또 많 은 것을 배울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그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나는 많은 실수를 저질 렀지만 다른 사람이 눈치채기 전에 그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었고, 오히려 실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처음에는 발가벗겨진 기분이었고, 이른바 관리에 필요한 기본 지침서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지침서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엄 밀하게 말하면, 너희 앞에 주어지는 그런 지침서는 전문서 인 것처럼 보이려고 장황하게 써놓은 실질적인 상식에 불 과하다. 내가 쓴 책도 다를 바가 없다. 나는 너희에게 조직 화와 리딩, 관리라는 세 분야의 활동을 기억하고, 그 활동 들을 적절히 적용하라고 권고할 뿐이다.
사람을 리딩하지 않고 관리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고, 그 결과로 일터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불행한 곳이 되 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게 나의 굳은 믿음이다. 명심해 라. 너희는 '인적 자원'을 넘어서는 존재다.

- 내가 학생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듯이, 우리 삶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난다. 사과가 느닷없이 우리 무릎 위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행운의 확률을 높이려면 과 수원에 있어야 한다. 요컨대 너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 세계에 빈번하게 접촉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고, 관련 서 적을 읽고, 학회나 발표회에 참석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 방문하라.
첫 곡선을 출발할 때보다 새로운 곡선을 시작하는 게 더 힘들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나는 세 번의 새로운 곡선을 시작했다. 그때마다 수년 동안 꽤나 큰 연봉 삭감을 감수해야 했다. 따라서 너희가 첫 번째 곡선이 상승하는 동안에 새로운 곡선을 모색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과정을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예비금을 마련해두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 충분함의 기준을 낮출수록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늘어난다.
자유의지로 가난할 수 있다면, 가난이 축복이라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 돈을 역량을 측정하는 잣대로 바라보지 마라.
돈을 성패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여기지 마라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의 전부를 걸지 마라.

- 너희도 나처럼 이상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면, 이 런 워크 포트폴리오를 구성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너희 시 간 중 일부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너 희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돈의 유혹에 깊이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해라. 돈을 벌려고 시간을 헛되이 보 내기에 우리 삶은 너무도 소중하니까.
- 삶은 계속 전진하고 많은 것을 뒤에 남긴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그 나이에 새로운 야망 을 불태우는 건 쓸데없는 짓이었고, 성취도 세속적인 성공과는 다른 것을 뜻하게 되었다.
- 마지막으로 남은 시간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 했다. 우리 부부는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즐기고 싶 었다. 새로운 계획을 위해서는 신중한 생각이 필요했다. 할 일이 있고, 사랑할 사람이 있고, 기대할 것이 있어야 행복 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 세 가지는 예나 지금이나 삶 을 살 만하게 만드는 필수 요건이다. 물론 우리 부부는 운 좋은 세대 중에서도 특히 운 좋은 사람들이었다. 겉보기 에 편안했던 우리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았을지 모른 다. 그러나 당시에는 우리 삶도 쉽지만은 않았다.
- 모두가 우리처럼 선택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환경에서나 우리는 여러 선택지 중에 서 선택을 할 수 있다.
너희가 운 좋게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맺게 된다면, 선택할 때 상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또 삶이 변함에 따라 선택도 끊임없이 수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 가 원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시행착오 를 거듭하며, 때로는 힘들게 그런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그만한 가치가 있는 교훈이었다.
- 셀 수 있는 것에 인생을 맡기지 마라.
셀 수 있는 것은 부정직하고, 쉽게 조작될 수 있다.
삶을 지탱해주는 가치들은 셀 수 없는 것들이다.

- 문제는 우리가 더 오래 살 수 있게 된 데에서 온다.
추가로 얻게 된 시간이 선물이 아닐 수 있다.
더 이상 노후는 휴식을 약속하는 상징이 아니다.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 돈을 벌려고 하는 일, 의무로 하는 일, 재미로 하는 일, 기량을 향상시키려고 하는 일.
나이듦에 따라 여러 일들을 적절히 조합해야 한다.

- 내가 깨달은 바에 따르면 삶은 발견의 여정, 즉 자아를 발견해가는 여정이다. 하지만 너희가 안전하고 익숙한 길 을 고수한다면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 으로 여정에는 목적지가 있지만, 탐험가들은 무엇을 발견하고, 어디에서 끝날 것인지를 명확히 정하지 않는다. 삶도 이런 탐험과 유사하다.

- 충만하고 보람있는 삶을 즐겁게 살기 바란다. 그리고 이 땅을 떠날 때 미처 하지 못한 것이 있어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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