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근간이 되는 역사적 사실은 제우스와 그 가족 및 후손들의 권력투쟁과 패륜, 욕망과 폭력, 사랑과 증오, 전쟁과 모험에 관한 것이다. 이를 신화적 요소와 문학적 요소로 미화해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이야기로 포장하고 있다. 한 문장으 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암투와 패륜, 욕망과 폭력으로 얼룩진 제우스 와 그 가족 및 후손들의 행위를 신화와 문학의 이름으로 미화한 우 상화 작업의 결정체다.

- 제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 슬하의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21명의 여인에게서 18남 25녀를 낳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80퍼 센트는 이들 제우스의 형제자매와 여인들, 그 여인들에게서 태어 난 자녀들 이야기다. 나머지는 제우스의 후손이 세운 그리스 왕 가와 민간 전설에서 차용한 인물과 괴물 이야기다. 이를 간단한 등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등장인물= 제우스의 형제자매 및 여인들과 자녀들 + 제우스의 후손이 세운 왕가의 주요 인물+ 민간 전설 속 인물과 괴물

-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고대의 건국신화들은 모두 역사적 요 소와 신화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기 마련이다. 제우스의 건국신화 도 예외는 아니다. 거기다 제우스의 건국신화는 후대 작가들이 많은 설정과 이야기를 보태면서 문학작품으로 승화되었다. 그 때 문에 다른 어떤 나라의 건국신화보다도 복잡하고 세밀하며, 다양 한 문학작품을 낳았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 신화는 역사적 요소, 신화적 요소, 문학적 요소로 이뤄지게 되었다. 역사적 요소는 사실에 근거한 사건에 관한 기록이고, 신화적 요소는 종교적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신앙으로서의 기록이며, 문학적 요소는 백성의 교육을 위해 의도 적으로 창작된 기록이다. 따라서 그리스 신화를 제대로 읽기 위 해서는 세 가지 요소를 구분해야 한다.
- 이 세 가지 요소를 구분하기 위해 첫 번째로 파악해야 하는 것은 역사적 요소, 즉 사실에 근거한 사건이다. 신화적 요소와 문학적 요소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사실적인 사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제 우스가 나라를 건국했다는 것과 그를 건국시조로 삼는다는 점이 다. 그리스 신화는 제우스의 왕권 확립 과정과 국가 지배 구조, 주 변 국가와의 관계 등 부수적인 역사적 사실 또한 담고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제우스에 대한 신격화와 우상화 작업이 이뤄졌는데, 이것이 곧 신화적 요소다. 물론 제우스를 신 격화하고 우상화한 것은 그를 신앙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 신화에서 묘사되는 제우스의 가계를 살펴보면, 제우스의 아버 지는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6남 6녀 중 막내아들 크로노스다. 이들 12티탄 남매는 오케아노스, 히페리온, 코이오 스, 크리오스, 이아페토스, 크로노스 등 6남과 테티스, 테이아, 포 이베, 레아, 므네모시네, 테미스 등 6녀로 이루어져 있다. 막내아 들 크로노스는 누이인 레아와 부부가 되었다. 둘은 하데스, 포세 이돈, 제우스 등 세 아들과 헤스티아, 헤라, 데메테르 등 세 딸, 즉 3남 3녀를 낳았는데, 그중 막내가 제우스다.
그런데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레아가 자식을 낳는 족족 삼켜버린다. 크로노스의 이런 행위는 아버지 우라노스의 행동과 매우 유사했다. 우라노스는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그들을 대지 깊숙한 곳에 감춰버렸는데, 자신과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 이들이 한결같이 드세고 괴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다. 하지만 가이아는 우라노스가 자신의 아이들을 감춘 데 분개 해남편을 내쫓기로 결심했고, 이를 실행한 아들이 바로 제우스 의 아버지 크로노스였다.
- 그리스인은 왕 제우스를 신앙의 대 상으로 추앙하기 위해 그를 우상화했는데, 제우스를 신으로 격상 시킨 수단은 그를 우주와 연결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제우스를 조물주, 즉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자손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처음에 세상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 았고, 오직 카오스라는 혼돈만이 있었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는 우주에서 가장 먼저 생긴 것은 카오스이고, 이어서 대지의 신 가이아와 흑암의 구렁텅이인 타르타로스, 그리고 에로스가 생겨났다고 쓴다. 카오스는 다시 에레보스(저승)와 어두운 밤을 낳았고, 밤과 에레보스가 결합해 아이테르(창공)와 낮을 낳았다. 한편 가이아는 우라노스를 낳았고, 우라노스는 모든 신에게 안전 한 거처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가이아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탄생시켰고, 다시 우라 노스와 결합해 6남 6녀의 12티탄 남매와 키클롭스 3형제, 헤카톤 케이트 3형제를 낳았다. 이 가운데 12티탄 남매의 막내인 크로노 스와 넷째 딸 레아가 결합해 3남 3녀를 낳았다. 크로노스와 레아 의 3남 3녀 중 막내가 바로 제우스다. 그러니 제우스는 창조주에 해당하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신 가이아의 손자로 태 어난 셈이다. 이렇게 인간의 아들이자 그리스 올림포스의 왕 제 우스는 명실공히 신으로 승격되어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제우스는 기원전 5세기까지 무려 800년 동안 그리스 사람 들의 신으로 군림한다.
- 이런 신들의 계급을 현실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른바 종주국 의 왕인 제우스와 그의 형제자매, 직계 자녀는 순수 혈통인 종주 국의 왕족이라 할 수 있고, 그 아래 신은 방계 혈통의 왕족이거 나 종속국, 즉 티탄이나 여타 나라의 왕족이라 할 수 있다. 또 왕 족과 일반 신하가 결합해 낳은 자는 주로 영웅으로 묘사되고, 왕 족과 전혀 관련 없는 자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 것이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그의 일족 및 당시 왕족을 신격 화한 체계다. 말하자면 그리스 신화는 종주국과 종속국의 왕족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 위한 우상화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 이런 체계 속에서 신으로 승격된 인물에게는 모두 특별한 능 력이 부여된다. 이를테면 제우스는 번개나 비 같은 기상 현상을 주재하고, 세계의 질서와 정의 그리고 각 나라의 왕권과 사회의 위계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 존재다. 그의 형제 포세이돈은 바다를 지배하는 동시에 지진을 주관하며, 하데스는 저승 세계를 다스린다.
제우스의 누이와 자녀 역시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헤스티아는 화덕의 신, 헤라는 가정의 신이며, 데메테르는 곡물과 수확의 신 이다. 제우스의 자녀를 살펴보면 아폴론은 태양의 신, 헤파이스 토스는 대장장이의 신, 아레스는 전쟁의 신, 헤르메스는 상업의 신, 아테나는 지혜의 신, 아프로디테는 미의 신, 아르테미스는 달 의 신이다.
이렇듯 제우스의 형제자매와 자녀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위대 한 신으로 묘사되고, 동시에 그 능력으로 인간을 지배하고 응징 하며 때로는 초월적 존재로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우상 화를 통해 제우스와 그의 가족은 신앙의 대상으로 발전한다.
-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내쫓고 왕이 된 뒤, 크로노스의 형 제인 티탄족과 10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티탄 형제는 모두 6명 으로, 크로노스를 제외하고 오케아노스, 히페리온, 코이오스, 크 리오스, 이아페토스 등 다섯이 있었다. 제우스는 이들과 싸우기 위해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르 세력과 연합 전선을 펼쳤고, 결국 은 티탄을 물리친다.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아페토스의 아들 프로 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티탄의 후손임에도 제우스 편에 섰 다. 하지만 그들의 형제 아틀라스와 메노이티오스는 끝까지 제우스와 맞서 싸운다.
제우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티탄 세력과 결혼 동맹을 맺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데, 프로메테우스, 아틀라스, 에피메테 스, 메노이티오스 형제는 제우스에게 거만하게 굴며 그의 위상 흠집을 낸다. 이에 제우스는 그들을 제압하는데, 그 과정에서: 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아틀라스, 메노이티오스에 관한 5 가지 에피소드가 생겨난다. 

- 그리스인의 시조, 헬렌
한편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 사이에는 피라라는 딸이 태어났다. 피라는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인 데우칼리온과 결혼했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인간에게 분노해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려 할 때 데우칼리온은 프로메테우스의 조언에 따라 방주를 만들어 온 갖 생필품을 실어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우스가 내린 홍수 때 문에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자 그는 아내 피라와 함께 방주에 들 어가 살아남았고, 9일 밤낮을 떠돌다가 포키스의 파르나소스산 에 도착했다(데우칼리온의 방주 이야기는 기독교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 주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다.
데우칼리온과 피라는 아들 헬렌을 낳았는데, 그는 고대 그리스 인이 시조로 삼는 인물이다. 헬렌은 산의 요정 오르세이스와 결 혼해 아이올로스, 크수토스, 도로스 등 3형제를 낳았다. 이들 역 시 각각 그리스인의 시조가 된다. 아이올로스는 아이올리스인의 시조, 크토스의 아들 이온과 아카이오스는 각각 이오니아인과 아카이아인의 시조, 도로스는 도리스인의 시조다.
이들 네 부족은 고대 그리스 문화를 이룩한 주요 부족으로, 자 신들을 헬렌의 후손이라고 해서 '헬레네스'라 불렀다. 이 헬레네 스가 곧 그리스인을 통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헬레니즘이라는 용 어 또한 헬렌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인이 헬렌을 자신들의 시조로 삼았다는 것은 제우스가 아닌 프로메테우스를 자신의 근원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는 제우 스 중심의 그리스 신화가 아닌 프로메테우스 중심의 그리스 신 화가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 제우스가 메티스를 몸속에 넣어버렸다는 것은 결혼 후 그가 변심해 메티스를 궁지에 몰았다는 뜻이다. 제우스가 메티스를 어 딘가에 가뒀거나 내쫓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메티스는 그런 상 황에서도 제우스를 비난하지 않고 제우스의 몸속에서 그에게 지 혜를 빌려줬다고 한다. 그 덕분에 제우스는 풍부한 지혜를 갖추 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유추해볼 때 제우스에게 배신당해 임신 한 상태로 쫓겨난 메티스가 홀로 아테나를 낳았고, 이후 아테나 가 성인이 되어 제우스를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아테나 는 메티스가 낳은 제우스의 장녀로 인정받았고, 신화 속 올림포 스 12신 가운데 하나가 된다.
- 이렇듯 신화는 아테나가 지혜로운 여인 메티스의 딸로 제우스 의 머리에서 태어났다고 묘사한다. 이는 아테나가 메티스의 지혜 를 유전적으로 이어받음과 동시에 제우스의 지혜까지 함께 물려 받았음을 의미한다. 거기다 태어날 때부터 투구와 갑옷, 창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으니, 태어나면서부터 전쟁의 여신도 겸했던 것이다
- 이후 아테나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가 되었는데, 대개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고 창과 방패를 든 모습으 로 그려진다. 아이기스라는 방패에는 메두사의 머리를 달았다. 그녀의 방패 아이기스는 원래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제우스에 게 바친 것인데, 제우스가 아테나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방 패를 장식한 메두사의 머리는 메두사를 죽인 영웅 페르세우스가 그녀에게 바친 것이다.
- 검투사 모습을 한 그녀는 신화에서 헤라클레스, 오디세우스, 이아손 등 영웅들의 조력자로 등장하는데, 이는 일종의 문학적 장치로 영웅의 행적에는 여신의 신령한 힘이 작용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인 듯하다.
대개 아테나를 상징하는 동물은 올빼미, 나무는 올리브나무다. 올빼미는 지혜를, 올리브나무는 비옥함과 평화를 상징하는데, 그 녀가 곧 지혜와 비옥함, 평화를 수호하는 신인 까닭이다.

- 무사이 자매는 제우스와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며, 신화에서는 음악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묘사된다. 무사이는 무사 (영어식: 뮤즈)의 복수형이다.
무사이 자매의 어머니인 므네모시네는 흔히 기억의 여신으로 불리는데, 이들 자매는 어머니의 기억 능력을 물려받아 기억을 통해 올림포스와 인간세계의 음악과 시를 담당하게 되었다. 기억 이란 문자가 생기기 이전에 문화를 전승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었고, 음악과 시는 기억을 통해 탄생했다. 그래서 문자가 발명되 기 이전 시대에는 음악과 시를 창작하고 전하는 데 기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당시에는 기억술이 유행했는데, 기억을 기술적 능력으로 봤다는 뜻이다. 무사이 자매의 어머니 므네모시네는 아 마도 이 기억술의 달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어로 기억을 '므네메'라고 하는 것도 므네모시네의 이름에서 기인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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