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힘

etc 2025. 1. 8. 07:15

- 20세기 초만 해도 지리학계에서는 과거 문명의 성쇠가 대부분 기후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환경결정론적 시각이 팽배했음. 이런 시각을 견지한 대표적 학자로 문명과 기후를 쓴 미국 엘스워스 헌팅턴을 들 수 있다. 이후 과거사회를 연구하는 데 환경결정론적 방식은 빠르게 인기를 잃음. 문화, 역사, 지리학자들은 인간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환경결정론적 연구가 갖는 논리적 비약을 경계. 오랜 기간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는 고대사회의 부침에 영향을 미친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견해가 전반적으로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점차 바뀌고 있음. 기후변화가 고대사회의 성쇠를 결정했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음. 환경 결정론적 접근이라고 터부시하기에는 무척 정교하다. 결과가 과거보다 정확해지고 다양한 종류의 고기후 프록시 자료가 생산되면서 환경결정론적 해석이 다시 힘을 얻고 있음. 과학기술이 제대로 무르익기 전, 기후의 급격한 변화가 고대사회에 준 충격은 가히 상상 이상이었을 것임. 

- 최종빙기 최성기의 전 세계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할때 대략 6도 낮았던 것으로 추정됨. 전 세계평균 해수면은 현재와 비교할 때 대략 125미터 낮았음. 당시 영구적인 빙하가 지구 표면의 8%, 육상부의 25%를 덮고 있었다. 참고로 지금은 지구표면의 3%, 육상부의 11% 정도가 빙하로 덮여 있음. 빙하가 생성되려면 기온도 낮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강수량이 충분해야 함. 최성기에는 동아시아 지역도 북미나 북부유럽 못지 않게 추웠는데 빙하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베리아와 만주에 있던 강한 고기압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부족했기 때문.

- 최종빙기 최성기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호모 사피엔스는 특징적인 수렵, 채집사회를 형성. 대략 3만년 전부터 동유럽과 시베리아에 나타난 그라베티안 문화와 2만 2000년 전부터 유럽에 들어선 솔뤼트레안 문화는 최종빙기 최성기를 대표하는 구석기 문화. 그라베티안 문화는 대략 2만 2000년 전에 크게 위축되었는데, 이때는 최종빙기 최성기 중에서도 기온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지구의 빙하면적이 최대로 넓어짐. 이 추위로 인해 유럽을 주심으로 주거지수는 현저히 감소.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상황이 어려울수록 창의력이 더욱 빛을 발하는 존재다. 이들은 뼈바들의 머리부문에 구멍을 뚫어 바느질의 효율성을 높였다. 구멍이 뚫린 바늘은 의류제작기술을 한차원 끌어올리는 혁신이었다. 바니즐이 편리해지며 옷감을 더 튼튼하게 이을 수 있었고, 가죽과 털을 손쉽게 봉합할 수 있었다. 호모사피엔스의 끊임없는 진보는 혹독한 기후변화 속에서도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였다.

- 유럽에서 최종빙기 최성기의 후반부를 주도한 솔뤼트레안 수렵채집민들도 불리한 기후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사냥기술이다. 그들은 창던지는 방식을 혁신하면서 사냥의 효율성을 대폭 높임. 최근에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활과 화살을 사용했을 가능성 또한 대두되고 있다. 이 주장이 맞다면 사냥기술의 일대 혁명이라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창, 활, 화살 등의 사냥무기 덕에 그들은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추운 기후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은 한층 높아짐.

- 토기는 최종빙기 최성기의 혹독했던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남. 당시 부족했던 먹을거리로부터 영양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섭취하기 위해서라도 찌거나 끓이는 요리행위는 수렵채집민들의 중요한 삶의 방식이었다. 토기는 불을 이용한 요리의 편의성을 한단계 높인 획기적 발명품이었음. 또한 식량을 제때 구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던 만큼 여분의 식량을 보관할 저장도구도 필요했을 것. 양쯔강 이남은 벼농경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기도 함. 토기를 사용해 식량을 저장하기 시작하면서 정주문화가 태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혹은 정주생활이 시작된 후에 식량 저장을 위해 토기를 활용했을 수 있다. 혹시 토기 사용이 이곳에서 벼농경이 가장 먼저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닐가.
한편 양쯔강 이북의 수렵채집민은 최성기의 추위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 생존에 유리한 해안으로 꾸준히 이동한 것으로 보임. 바다의 영향으로 기후가 온화했던 해안은 최성기에도 온대삼림이 존재했고, 주변에서 어패류의 채집도 용이했기 때문에 지역 수렵채집민의 주된 생활공간이었다. 

- 아메리카 들소가 다른 대형 포유류와 다르게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동물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과학적 추정이 가능. 반추동물이 되새김질을 하는 목적은 식물을 잘게 부수고 분해함으로써 쉽게 흡수하기 위함. 최종빙기 최성기가 끝나고 기온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툰드라 스텝식생은 북쪽으로 이동하고 빈자리에는 숲이 자리잡았음. 먹읅리가 부족해 많은 대형 포유류가 사라졌지만 반추동물인 아메리카 들소는 예외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음. 그들은 일반적 초식동물이 소화할 수 없는 나뭇잎을 먹으며 어려운 시기를 버텨낸 것이다.
보통 지하부의 뿌리성장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는 초본류와 달리 나무들은 햇빛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에너지의 대부분을 지상부에 집중. 따라서 수목류는 초본류보다 지상부의 생체가 초식동물에 훼손되는 것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다. 초식동물의 공격을 받더라도 초본류는 큰 지장이 없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다. 지상부가 췌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들은 여러가지 진화적 전략을 발전시킴. 그중 하나가 2차화합물을 생산하는 것ㅇ니데, 떫은맛을 내는 탄닌이 잘 알려져 있음. 초식동물은 탄닌을 섭취하는 순간 소화기능을 잃어 영양분을 잘 흡수하지 못하게 되므로 보통 나뭇잎을 먹을거리로 선호하지 않음. 대형 초식동물에게 숲의 확장은 분명 재앙이었다. 그러나 아메리카들소는 그 재앙을 용케 빠져나옴. 그들은 되새김질을 통해 나뭇잎이나 나무껍질의 탄닌을 무력화하면서 갑작스런 환경변화에도 생존.

- 중동지역과 달리 동북아에서는 농경문화가 수렵채집문화를 완전히 대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림. 이는 농경과 수렵채집이 오랜기간 함께 이루어졌음을 의미. 중국 신석기 유적지에서는 돼지나 닭뿐만 아니라 야생동물(거북, 사슴, 멧돼지 등)의 뼈도 함께 발견되며 도토리도 많이 확인됨. 농경문화의 전파속도 또한 유럽의 경우와 비교해 느린 편이었음. 예를 들어 양쯔강 이남에서 시작된 벼농사가 동남아나 한반도로 전달되기까지 3000년 이상 걸릴 정도로 속도가 더뎠다. 동북아에서는 홀로세 후기에 들어서야 벼농경에 더 많은 비준을 두는 생계방식으로 변해갔는데, 인간의 교란으로 삼림의 훼손이 가속화됨에 따라 야생동식물 자원이 부족해진 것이 주된 이유였다.

- 8.2ka 의 기후악화는 동북아 수렵채집민이 대거 남하하는 계기로도 작용. 한반도에서는 8200년 전에 와서야 해안을 중심으로 토기가 출현하기 시작.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많이 늦은 편. 당시 한반도에 토기문화를 처음 전파한 사람들은 갑작스레 닥친 추위를 피해 남하하던 아무르강(흑룡강) 유역의 수렵채집민들이었다. 이들은 한반도 해안뿐 아니라 러시아 극동지역의 해안으로도 움직임. 이후 8.2ka의 추위가 지나가고 홀로세 기후 최적기를 맞아 따뜻해지자 두 지역에서 모두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모습이 나타남. 

- 한반도 시기별 주거지수를 복원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략 5600년전에 주거지 수가 빠르게 증가한 후 한동안 그 수가 유지되다가 4800년 즈음에 급감. 홀로세 기후최적기의 풍부한 자원은 정주인구의 증가로 이어졌고, 5500년 전붙 시작된 조, 기장 위주 소규모 원시 농경의 기반이 됨. 그러나 4800년전 한반도의 홀로세 기후최적기가 끝남과 동시에 주거지수가 급감하는 모습이 나타남. 수렵채집민의 생업활동이 최적기말의 기후악화에 타격을 받은 것임. 4800년 전은 중국 북동부 랴오허 유역에서 크게 세력을 떨치던 훙산 문화가 쇠퇴한 시점이기도 해, 이때의 기후변화가 동북아 전역에 광범위한 혼란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됨.
8200년 전의 단기 한랭기와 이후 시작된 최적기의 온난화는 인간사회에 제한적 영향만을 미침. 당시 절대 인구도 많지 않았으르 뿐 아니라 수렵채집민이여전히 전 세계 사회의 주축을 이루었기 때문. 그러나 최적기 후반부로 접어들며 인구증가와 함께 곳곳에서 농경을 기반으로 하는 고대문명들이 나타나기 시작. 홀로세 후기의 기후변화는 이들 고대사회의 성쇠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임. 물론 여전히 관련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를 믿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개선된 연구방법을 통해 어느정도사실로 입증된 사례들이 늘고 있다. 

- 기후와 조화를 이루지 않는 중간산 지대의 초지가 도대체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그 과정을 여러 학자가 궁금해했다. 화전농업의 결과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소규모 화전행위로 중산간 지대에 광활한 초지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부는 중산간에 초지가 형성된 이유를 몽골군이 여몽전쟁 승리 후 이곳에 설치한 말목장에서 찾기도 함. 몽골군이 13세기에 목장을 설치한 후 중산간 지대의 초지면적이 좀더 늘어난 것은 사실. 그러나 몽골인들이 제조두에 목마장을 설치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이곳의 초지경관이 고향 땅의 초원과 유사하다고 느꼈기 때문. 몽골군대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중산간지대는 제주도에서 살아가던 고대인의 목축활동 때문에 크게 교란된 상태였다. 현재 중산간지대의 독특한 초지경관은 결국 제주도의 초기농경민들이 목축의 가능성을 발견한 오름에서 비롯한 셈이다. 제주도의 오름이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 13세기초는 칭기즈칸의 정복전쟁이 집중된 시가. 동시에 지난 1000년을 놓고 봤을 때 몽골지역에서 가장 강수량이 높은 시기이기도 했다. 초원의 생산성은 최고에 달했고, 말을 먹일 수 있는 풀은 흔했다. 풍부한 사료는 기마병을 주축으로 하는 몽골군대에 큰 힘이 되었다. 사실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몽골의 정복활동은 기후악화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견해가 강했다. 가뭄에 시달리다 살아남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했다는 주장이었는데, 최근 연구결과들은 정반대의 가설을 지지함. 반면 같은 시기 고려에서는 가뭄과 기근으로 많은 백성이 빈궁한 삶을 견뎌내야 했으며, 불안정한 정치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고려는 물리적 전력에서도 몽골에 현격하게 모자랐지만, 13세기의 가뭄은 고려에게 제대로 맞서 싸울 사기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 기후변화와 왕조교체
기후가 왕조의 성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은 자연과학자들이 즐겨 다루는 주제. 이웃 중국의 예를 들어보자. 08년 미국 사이언스에 중국왕조의 흥망성쇠와 기후변화가 직결되어 있다는 과감한 글이 실렸다. 저자들은 석순의 산소동위원소 분석결과를 토대로 지난 1800여년간의 동아시아 몬순기후를 복원했다. 그들은 태양활동의 변화, 중국기온의 증감, 고산빙하의 전진과 후퇴 등이 모두 연관되어 있으며 기후악화가 중국 왕조들의 멸망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 당, 원, 명 사회가 불안해지고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모든 순간에 태양활동은 저조했고 몬순은 약해 가문이 들었다는 것. 반면 몬순이 강했던 북송 초기에는 반대로 농경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인구가 급증. 

-  홀로세 중기에 접어들며 서남아를 중심으로 우르크와 같은 초창기 도시들이 나타나기 시작. 이후 수많은 도시국가의 탄생과 소멸이 이어짐.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시기별로 도시의 사회변동을 유발한 내외부적 요인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기후와 연관되어 있었음이 분명. 그중에서도 대략 4200년 전에 발생한 가뭄은 특히 치명적이었다. 이 시기의 가뭄은 북반구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아카드 제국, 이집트 고왕국, 인더스 계곡 문명 등 당시 주변을 호령하던 문명들 중 대다수가 비슷한 시기에 무너짐. 4200년 전의 사회격변은 기후변화가 인간사회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 홀로세후기 기후변화는 대략 500년 주기로 반복되었으므로 기후변화에 따른 사회변동이 4200년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님. 그 이후로도 시간을 달리하며 전세계에서 유사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발생
4200년 전의 가뭄으로 큰 혼란을 겪은 서남아와 동지중해 지역은 1000년이 흐른 3200년 전에 다시 한번 가뭄으로 심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임. 그리스 남부 필로스만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이에 존재하던 많은 도시가 갑자기 훼손되고 버려짐. 지중해 연안지역 청동기 후기를 상징했던 거대한 궁들은 가뭄을 겪은 후 고립되고 낙후된 마을들로 대체됨. 사실 에게해와 동지중해 연안헤 산재해 있던 서남아 청동기 문명이 3200년 전 미스터리하게 소멸한 사건은 오랫동안 풀지 못한 지중해 고고학계의 수수께끼였다 주로 지진, 해적, 민란 등이 닷이 청동기 문명의 쇠락을 불러온 원인으로 간주되었으나, 최근 들어 고해상의 기후변화 프록시 자료가 다수 보고되면서 기후변화 또한 유력한 가설 가운데 하나로 대두되고 있음. 기후변화 가설을 옹호하는 측은 3000년간 이어진 대가뭄으로 기근이 발생하고 이주가 빈번해지면서 정치적, 경제적 불안이 증폭되었고, 그 결과 도시사회들이 몰락했다고 주장한다. 무척 건조한 편인 지중해 연안지역 농업생산량은 지금도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곤 한다. 과거에는 아마도 그 정도가 더 심했을 것. 쇠락의 원인으로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동지중해 청동기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철기시대의 도래를 부추긴 요인으로 대가뭄이 자주 언급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 지구온난화에 대한 음모론이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짧은 기간의 날씨나 기후변화에 민감하기 때문. 예를 들어 17-18년 겨울에는 지구온난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추위가 미국, 유럽, 중국 등을 덮쳤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17년 11월 중순부터 추워지기 시작하더니 이듬해 2월초까지 한파가 지속됨. 1월말에는 철원 기온이 영하 25도 아래로 떨어지는 등 맹추위가 절정에 달했고 동파사고와 한랭질환 환자가 급증. 이렇게 추위를 겪게 되면 지구 온난화라는 말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이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체로 미국인이 이러한 회의론자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14년 여론조사결과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 때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미국에서는 54%에 불과했다. 중국의 93%와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보인다.

- 온난화 기세가 주춤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산화탄소량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02-13년까지 연평균 기온이 거의 오르지 않았는데, 이는 지구온난화가 소설이라는 회의론자의 주장을 지지하는 근거로 활용됨. 이 시기를 학계에서는 지구온난화 휴지기라 부름. 회의론자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휴지기 이후 14년부터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매년 연평균 최고기온기록을 경신하고 있음. 우리나라도 18년 엄청난 여름철 폭염을 겪음. 19-20년 겨울은 73년 우리나라에서 전국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다. 회의론자의 바람과는 달리 지구온난화는 멈추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는 중

- 우리는 흔히 여러 온실기체 중 지구대기의 온실효과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기체가 이산화탄소라고 오해함. 그러나 정답은 수증기다. 맑은 날 수증기는 전체 온실효과의 60%를 책임진다. 이산화탄소 기여율 26%보다 두배 이상. 대기에 존재하는 수증기 분자수는 이산화탄소 분자의 수보다 월등히 많을 뿐 아니라 분자 한개의 효과도 수증기가 더 높음. 그런데 온실효과에 있어 수증기의 역할이 훨씬 중요한데도 주지하다시피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것은 수증기가 아니라 이산화탄소다. 
왜 그럴까? 지구 온난화로 증발량이 늘어나 대기중에 수증기가 꾸준이 증가하면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양의 피드백이 나타날 수 있다. 반면 수증기의 증가는 구름의 증가로 이어지게 마련이므로 대기의 반사도를 높이는 음의 피드백도 나타남. 그러나 대기중에 포함된 수증기의 변화량을 측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수증기 증가가 기온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지금으로서는 판다하기 어려움. 혹여 대기중 수증기량이 증가하더라도 그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수증기가 흡수할 수 있는 파장대의 지구복사 에너지는 이미 현재 대기중에 분포하고 있는 수증기에 의해 대부분 흡수되고 있기 때문.
반면 대기의 이산화탄소량 변화와 기온간의 관계는 비교적 뚜렷한 편. 1700년대 중반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채굴하고 나무를 벌채해 태우면서 지구의 탄소순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산업혁명 이전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피피엠에 불과했다. 지금은 400피피엠을 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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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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