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페어 컬처

인문 2021. 8. 12. 20:41

- “행복은 작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일 때 생겨난다.” (빌헬름 부시(Wilhelm Busch))
- 뭐든 만지고 고치는 사람이 그 사물과 씨름하며 세상 을 이해해나간다는 것은 곧 자기와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 이라는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의 교육이념과 맞닿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수리 수선은 교육적으로도 필요하다. 하지만 훔볼트의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나는 단지 지식을 쌓는 것만이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습은 실용적으로, 특히 손을 직접 움직여 이루어질 때 가장 큰 효과를 나타낸다. 최근의 뇌과학과 학습 능력 연구 결 과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독일어에서) '이해하다 Versthen 라는 단어와 비슷한 ‘파악하다 begreifen’라는 단어가 사물을 직접 만지거나 다룰 때 쓰이는 것 역시 같은 이유일 것 이다.
-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의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교수를 비롯한 행복 연구가들이 발표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규칙들이 있다.고 한다. 타인을 돕는 것과 작은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불필요한 소비재를 사지 않는 것 등이다. 즉흥 적인 구매는 우리의 심장박동을 잠시 빠르게 할 뿐, 금세 익숙해지고 만다. 돈으로 산 경험은 그만큼 빨리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 일정한 제한수명, 그러니까 계획적인 노후화 는 미국의 알프레드 슬론 Alfred P. Sloan 이 만들었다고 한다. 1920년대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의 회장을 지낸 그는 자동차에 변화를 주어 고객들이 더 빨리 새 차를 사도록 유 도하라고 지시했다. 그때만 해도 생산과정에서 이미 취약 한 부분을 설계해 넣음으로써 이러한 목표를 이루려는 전략은 아직 없었으나, 다른 이들도 곧 비슷한 전략을 펼쳤다. 그들은 부러 품질이 떨어지는 자재를 사용해서 제품의 내구성을 낮췄다. 오늘날에는 최적의 수익구조를 내기 위 해 수명을 제한하는 요소들을 더 먼저 계산에 넣는다. 어떤 때는 제품을 폐기하라고 본격적으로 지시하는 일까지 있 었다. 2009년 독일에서는 제2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폐차보조금 지급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 지급하는 일종의 '환경보조금'으로, 낡은 차를 폐차하고 같은 해에 새 차를 등록하면 2,500유로를 지급하는 제도였다. 기존 제품의 노후화와 함께 새로운 제품의 광고는 우리 소비자들에게 원래 없던 욕구를 일깨운다. 언제나 최신 핸드폰과 한창 유행하는 옷들을 갖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 처럼 말이다.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 집도 교육받을 기회 도 없는 사람들이 지구에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욕구 조차 충족시키지 못한 채 우리가 누리고 있는 '놀랄만한 수준의 복지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의 숫 자를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 백열등도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백열등은 일종의 의도적 노후화의 가장 잘 알려진 한 예로,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이야기되곤 한다. 1950년대, 전구를 만드는 회사들 사이에서는 한 가지 음모론이 돌았는데, 이것은 이른바 푀부스카르텔Phoebuskartell*이라는 이름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사건은 제조업자들이 은밀하게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 모임에서 그들은 전등이 타는 시간을 바꾸기로 합의했다. 전등이 그렇게 오래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그들은 결국 전등을 팔려고만 했을 뿐 '영원히 타오르는 빛'을 만들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수명이 긴 백열등의 죽 음이 결정되었고, 그들은 전등의 수명을 2,500 시간에서 1,000 시간으로 줄였다. 하지만 담합은 곧 발각되었고, 전 등의 의도적 수명 단축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필립스, 제너럴 일렉트릭, 오스람 같은 회사들은 실제로 수명이 짧은 전등을 만드는 관행을 완전히는 바꾸지 않았다. 이들은 과거 카르텔을 형성했을 때와 비슷하게, 비공식적인 협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반면 지금도 교통신호등이나, 접근이 어렵거나 보안상 필요한 곳에는 수명이 수천 시간 이상인 특수전구를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은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전구는 미국 캘리 포니아주 리버모어시 소방서에 있는 것으로, 100년 넘도록 불을 밝히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1901년부터 거의 쉬지 않 고 불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 단 한 번, 1976년 소방대가 새 건물로 이사하는 사이 잠깐 꺼졌을 뿐이다. 이 리버모어의 전구는 사실 성능이 매우 좋지 않다. 그래서 고열에 잘 견디는 텅스텐으로 필라멘트를 만들었고, 덕분에 오히려 빨리 끊기지 않고 끝까지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더 약한 전류를 흘려 보내면 전구는 덜 뜨거워지고 그만큼 오래간다. 이때 발생하는 빛은 열의 방출에 비하면 당연히 더 적어지며, 이로 인해 색채 스펙트럼은 흰색 빛에서 더 따뜻한 빛인 붉은색 쪽으로 이동한다.
- 용량이 더 큰 램이 필요하다고, 그러면 모든 게 더 빨 라질 거라고들 한다. 그렇다고 지난 몇십 년간 내 타이핑 속도가 그만큼 빨라진 것도, 내 생각이 더 빨라진 것도 아 니다. 그런데 내가 왜 여러 기능이 더해진 새 프로그램을 내려받고 또 업데이트해야 하는가? 이런 경우 하드웨어 판매업자는 소프트웨어 판매업자와 연대하거나, 이들이 같은 회사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더 큰 메모리와 더 빠른 프로세서가 필요해지도록 프로그램을 더 과장하라'는 것이 이들의 슬로건이다. 구매자들이 새 워드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나면 갑자기 컴퓨터가 몹시 느려진다. 어쩔 수 없이 더 빠른 프로세서가 장착된 새 컴퓨터를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고객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다지 덕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 돈을 지출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돈을 벌게 해주었으며, 컴퓨터 쓰레기를 만 들어내고 말았다. 물론 그동안의 발전은 충분히 의미 있다. 나의 첫 피시였던 싱클레어 ZX 80으로 작업하려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기능은 전혀 쓰지 않고 오 직 텍스트를 작성하고, 편집하고, 수정하고, 저장하고, 마 지막으로 인쇄하는 작업 정도만 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 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기능이 많아지고 각종 기능 키의 위 치가 자꾸 바뀌면 작업이 더 복잡해지기만 할 뿐이다. 워드 프로그램만 해도 도구상자 위치가 계속해서 바뀌는데, 왜 그렇게 하는 건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수리하고 수선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무언가에 뛰어드는 행위이자 어떤 문제를 창의적으로 바로잡는 일이며, 또한 대안을 찾는 일이다. 대개는 제대로 된 지침서 없이 작업 해야 하는 데다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이 없어 때로는 그것 을 직접 만들어내기도 해야 하며, 또 변변치 않은 작업환경 에서 해내야 한다. 그래서 수리 수선은 창의적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각종 공구를 모두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수리할 물건의 제작과정도 다 알지 못하며, 또 그때그때 고칠 물건에 딱 맞는 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 특 히 인공지능 분야와 관련해서는 수리 수선이 나아갈 길에 대해 분명한 지침을 마련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는 듯 보이는 그러니까 너무나 부족하게 규정되어 있는 듯한 - 시스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최대한의 가능 성을 점쳐보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그러니까 간단 히 말해 무엇이라도 일단 창의적으로 시도해보아야 하며, 실수를 통해 배워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 스스로를 돕는 법을 알아가야 한다.
- 하이젠베르크는 동료 보어에 대해 이런 일화를 전한 적이 있다. 보어의 별장 대문에는 액운을 막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말편자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물리학자가 정말 그런 미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는데, 보어는 이렇게 대답했 다고 한다. “물론 믿지는 않지. 하지만 믿지 않아도 그게 도움이 된다고들 하지 않나.” 얼마나 멋진 역설인가. 
- 자연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그런 가운데 자연의 법칙을 파헤치려 연구하고 도전하는 것은 정말로 뜻깊은 작업이다. 언젠가 아인슈타인이 말했다시피, “신은 난해하지만 심술궂지는 않다.” 우리 인간은 어쨌든, 자연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도구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 리페어 컬처를 강조할 때 내가 중요하게 여 기는 것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누구나 모든 것을 직접 수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고장이 났을 때 소 비자들은 고장 난 물건을 단순히 재활용할지 폐기할지를 고민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수리가 가능한지 어떤지를 먼저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맙소사, 이걸 고쳐 쓰시겠다고 요? 이건 그만 잊어버리시는 게 나을 거예요. 이제 수리할 수 없습니다.” 혹 고칠 수 있겠냐고 고장 난 물건을 내밀었 을 때, 더는 판매자가 이렇게 말하지 못하도록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여기서 산 물건이니 여기서 고쳐주셔야죠.” 이렇게 말이다. 다 행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으며, 이런 행동들이 우리 사회를 더욱 긍정적인 곳으로 바꾸어놓으리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낙관론자다.
- 독일에서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아껴 쓰고 또 고쳐쓰는 문화가 당연했다. 전후 독일인들에게 자원 부족은 아 직 뼛속 깊이 박혀 있었다. 고철들은 전에 없이 유용해서, 사람들은 고철들을 끌어모았다. 제조설비가 부족해서 금 속 제품들을 충분히 생산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다시 수리, 그러니까 제품의 수명을 늘리는 조치로 이어졌다. 그 시절의 세대에게 자신만의 수리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우리는 깜짝 놀랄 것이다.
천연자원이든, 그 자원을 얻기 위해 필요한 기술력이 든, 이 지구상의 자원은 늘 부족했다. 서구의 산업국가들이 이러한 원료를 함부로 낭비했던 시대 - 지구의 역사에 비 추어보면 아주 짧은 순간, 그러니까 1960년대부터 최근까 지는 이제 잊어야 한다. 우리는 다시 수리하고 수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물을 더 세심하게 다루기 위해서도 그 렇지만, 무엇보다 지구를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굳이 수리해서 쓸 필요가 있나?' 하는 말에 반박하기는 어렵지 않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어떤 특정한 전구보다 새 조명기구를 더 싸게 살 수 있다면, 경영학적으로 살펴봤을 때 물건을 수리하는 것 은 때에 따라 무의미할 수도 있다. 각각의 부품들만 팔아서 는 경영학적으로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일부러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러나 국민경제 측면에서 보면 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재작년에 나는 진공관식 텔레비전 수상기를 수리 했다. 경영학적으로 봤을 때는 LED 텔레비전을 한 대 새로 구입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경제 측면에서, 수리하고 재활용하지 않는 것은 곧 우리가 함께 파산하는 길이다. 머지않아 화성이나 달에서 자원을 채굴해 오지 않는 이상 - 당분간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 원자재 가격은 금세 폭등할 것이다.
독일 한복판에서 철도 선로를 파헤치거나 빗물 홈통 을 떼어가는, 쇠붙이나 구리 도둑들의 존재가 이미 우리 사 회가 재활용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는 (기괴한) 징후의 시작 일지도 모른다. 30년 전이었다면 쇠붙이를 훔쳐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새로 생산된 철강 제품이 훨씬 더 저렴했으니 말이다. 에너지 자체가 점점 더 비싸지고 있는 현재, 이제 그런 흐름들이 바뀌고 있다.
- 이미 50년 전부터 있어왔던 석유, 가스 카르텔에 이어 새로운 원자재 카르텔이 생겨난 데다, 자원 분배를 둘러싼 전쟁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원자재는 이렇게 전략적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배터리로 구동되는 전기자동차에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한다면, 여기에는 원자재와 관련한 거대한 정치적인 문제가 결부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수소나 메탄으로 운영되는 연료전지 - 새로운 전기자동차에 전기를 공급하는-가 더 전망 있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이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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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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