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텍스트 기반의 산업을 이끄는 넷플릭스 Netflix는 단순 큐레이션 서비 스를 제공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영화를 감상하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심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시청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해 고민했다. 그 결과 넷플릭스는 양말을 만들었다.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잠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면 예약 등 기능을 활용해서 자동으로 TV가 꺼지도록 하긴 하는데 이는 매우 귀찮 은 일이다. 최고는 내가 잠이 깊이 든 순간에 TV가 알아서 꺼지는 것이지 만, 그건 엄마랑 같이 살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 넷플릭스는 시청자가 잠드는 순간을 파악할 수 있는 양말을 선물했다. 내부 센서를 통해 시청자가 잠이 들었는지를 파악하는 이 사랑스러운 마법 양말은 잠드는 순간을 인지하고, 자동으로 TV를 꺼준다. 이와 같은 제품들은 완전히새로운 컨텍스트를 창조하고 있다.
- 나는 누구인가?' 끝없는 심연으로 몰고가는 이 질문은 시대를 막론하고 모두가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물음이다. 머 릿속을 뱅글뱅글 도는 질문에 현기증이 날 무렵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한마디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나의 과거는 나의 거울이다. 나는 나였던 바의 것이다.” 그렇다. 야스퍼스의 말처럼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다. 과거 의 내가 매순간 쌓은 경험이 내 생각과 마음, 행동을 구성하고, 이 것이 모여 '현재의 나'를 이룬다. 나는 '과거 기억의 편집’ 이다.그런데 우리의 기억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도식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경험을 하는 시점부터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되고, 이를 머릿속에서 다시 꺼내 회상할 때까지 기억의 프로세스에서 원본이 고스란히 보존되지 않기 때문이다.
- 기억은 개인이 세상과 소통하고 교감한 흔적이기에 인간이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것에 기준이 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요즘 사 람들은 이러한 기억을 디지털에 위탁한다. 경험하기보다 디지털 에 먼저 기록해놓고, 나중에 디지털 기억을 보며 경험을 재구성한다. 그러나 무심한 디지털 기기는 긍정적인 해석을 해주지도 않고, 가치 있는 것을 더 많이 기억해주지도 않을뿐더러 처음 기록된 것 그대로 편집 없이 보관한다. 정말 정직한 기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현실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기억하는가'가 아니라 '현실을 얼마나 아름답게 기억하는가' 인데도 말이다.
- 센스 없는 디지털 기기를 보완하고자 사람들이 스스로 좋은 기억을 남기기 위한 경험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적나라하게 기록된 과거의 나를 나만 본다면 어느 정도의 부끄러움을 참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의 외재화는 다른 사람과의 경험 공유를 가능하게 했다. 스마트폰에 기록된 개인의 경험은 SNS에 올라가 일종의 경험 경쟁을 일으키고, 보이지 않는 자존심 싸움을 벌인다. 오죽하면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비주얼 SNS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길 정도니 말이다. 예전에는 머릿속에 기록된 경험을 말로 하며 서로에게 해석에 여지를 주었던 반면, 지금은 이미지로 경험이 드러나기 때문에 비교가 더 쉬워졌다. 이미지로 남은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비교되며 경험전쟁을 일으키는 시대다. 기억을 위한 경험을 만들고 조작하는 작업이 더 필요해진 이유다
- 경험보다 기록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미국 페어 필드대학교의 린다 헹켈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일일이 기 록하는 요즘 사람들의 습관이 실제 경험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설명 한다. 그녀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참가자들과 함께 미술관에 가서 실험을 진행했다. 총 30점의 예술 작품을 보며 15점은 사진을 찍고, 나머지는 찍지 않도록 했다. 다음날 참가자들에게 각 작품의 이름과 특징을 묻는 설문을 했더니 사진을 찍은 작품보다 사진을 찍지 않은 작품을 더 잘 기억한 것으로 나타났다. 헹켈 교수는 이를 촬영 장애 효과 Photo-taking impairment effect'라 명명하며, 사람들이 사진기가 자기를 대신해 기억해줄 것이라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에 남길 기억을 위한 체험은 경험하는 그 순간 우리가 음미할 수 있는 행복을 앗아간다. 행복의 음미란 현재의 경험에 충실 하면서 긍정적인 정서를 오래 지속시키거나 더 많이 느끼는 것이 다. 이때 필요한 것은 내가 즐기고 있는 경험에 집중하는 일이다. 밥을 먹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사소한 경험을 할 때도 그 자리 와 상황, 느낌에 좀 더 푹 빠져보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를 음미하 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행복도가 높다. 기록은 중요하다. 우리의 뇌가 망각을 일삼기에 더더욱 중요하 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이 수반되지 않은 기록은 의미가 없다.
- 이집트인들은 물질적 자원이 넉넉했던 시절에 금 접시에 음식 을 담으려 했고, 여인들은 향수를 몸에 들이부으며 자신이 가진 자 원을 자랑했다. 3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장 카스타레 드는 사치와 문명에서 인간은 어마어마한 부를 가지지 않을 때 도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사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물질적인 것이 자랑의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 사람들은 내면을, 특히 두뇌를 뽐내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인지적 에너지가 풍요로워지고, 이를 연결할 수 있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재치 있고 똑똑하고 창의적인지 다양 한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나 자신을 과시하는 사치재로서 두뇌를 택했다. 요즘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이 지닌 잠재 성과 가능성 속에서 자신의 위대함을 발견하며, 삶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인지 잉여가 모여 세상을 바꾸듯이 우리의 머리 가 함께 모일수록 사고력이 커지고 재생산된다. SNS에 글을 쓰고 그 글에 댓글을 달며 논쟁하고 토의하며, 지식과 생각을 함께 나누 는 것, 이것이 바로 두뇌를 뽐내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 특정 제품에 대한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그 제품의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을 백로효과 혹은 스놉효과라고 한 다. 사람들이 많이 구입하는 제품을 오히려 구입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 지으려는 게 마치 속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이 갖지 못한, 자신만의 희소성 있는 물건을 소유하고픈 욕망이 있다. 그래서 기업은 끊임없이 우리 브랜드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알리며, 이 브랜드 제품을 소유한 당 신 역시 특별한 존재가 될 것이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구별될 수 있다'고 암시한다.
- 서울에서는 요즘 간판 없는 바에 사람이 몰린다. 묵직한 서재 책장을 문으로 만든 바부터 꽃집 속에 숨어있는 바까지, '네이버에 주소를 찍고 가도 위치를 알 수 없는 바가 여럿 생겨나고 있다. 일명 '스피크이지바 Speakeasy bar'라고 불리는 이러한 술집은 1920년대 미국 금주령 시대에 몰래 술을 팔던 바텐더가 경찰의 단속을 피해 '조용히, 들키지 않게 은밀히 이야기하던 곳을 연상시킨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선 위장술이 중요한 만큼, 간판을 없애고 이발소나 구멍가게 같이 의심을 사지 않을 만한 장소 뒤에 몰래 바를 만들고 술을 팔았다. 어떤 때는 암호도 있었다. 스피크이지 스타일의 바는 기존의 술집에서 느끼지 못했던, 꼭꼭 숨겨진 바의 문을 열었을 때 밀려오는 성취감을 제공한다. 31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스피크이지바 (1930'은 아는 사람만 찾을 수 있다는 자격시험 외에 '진짜 우리의 바 문 화를 즐길 수 있는 자격시험도 진행했다. 데이팅 앱인 틴더inder에서 여성 사용자로 등록한 1930'은 첫 주에 4,000여 명의 남성 대상자에게 '신사처럼 행동하기'를 요청했다. 앱상에서 손수건을 떨어뜨리는 등 테스트를 진 행했고, 그 손수건을 주워 건네며 신사답게 행동한 최종 일인에게만 정말 '특권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1930'의 최고 자격을 주었다. 색다른 시험절차를 통해 진정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진짜 팬들의 팬심은 더욱 두터워진다.
- 보통 서비스는 사용자의 노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만, 이러한 서비스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추가적 행동을 하게끔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들은 수고로움을 기꺼이 즐긴다. 처음에는 단순 재미로 시작하지만, 추가적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서비스가 전달하려는 의미에 충분히 공감하게 되고, 서비스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또한 작은 장애물은 오히려 음악가에게 자신의 철학을 증명하는 도구이며 음악을 듣고 글을 읽는 팬들에게는 아티스트의 작 업에 존중을 표할 수 있는 증표다. 작은 노력이 서로의 진정성을 더욱 빛나게 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 Z세대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에 목매는 이유는 바로 '감정적 지지' 때문이다. 인생 어느 시기보다 친구들의 감정적 지지를 갈구 하는 청소년기에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어 '언제나 바로 곁에 있는 친구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실시간으로 친구와 나누는 완벽한 정서 적 교류를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항상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그들은 자신이 공유한 것들에 관한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한다. Z세대를 바라보며 어른들은 스마트폰 좀 그만하고 나가서 친구 를 만나라고 이야기한다. 이전 세대는 온라인의 세계가 오프라인의 세계를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Z세대는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온라인에 모든 관계가 항시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 려 오프라인의 세계가 즉시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프라인 세계에서 친구를 만날 때까지 기다릴 이유도 없을뿐더러 온라인에 서 이미 생중계로 대화가 이루어져 막상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 나눌 이야기도 없다. 이러한 Z세대의 특징은 면대면 대화를 어색하 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글로벌 마케팅 에이전시 JWT 에서 영미권 Z세대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50퍼센트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온라인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답했다. 이들의 주 무대는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인 것이다. 말로 하는 대화보다 손으로 하는 대화에 더 익숙 한 세대다
- 제로 커뮤니케이션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 수많은 단어를 대신해서 사진 한 장, 동영상 한 컷으로 모든 상 황과 맥락, 심지어 말하는 사람의 성격까지 드러낸다. 이야기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관적으로 알아 들을 수 있다. 또한, 제로 커뮤니케이션은 인지적 과부하에 시달리는 Z세대의 뇌의 피로를 풀어주는 이미지 소통 방식이다. 눈에 보기 좋은 것이 이해하기도 좋듯이 읽기가 아닌 보기 형태의 커뮤니 케이션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Z세대에게 이미지란 텍스트의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한 보조적인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텍스트가 이미지를 보충 설명하는 보조적인 형식으로서, 이미지로 상황을 공유한 후에 부가적으로 사용된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이미지 기반의 SNS와도 조금 다른 성격을 띤다. 이미지 기반의 SNS는 비동시적이기에 쌍방향 소통을 목적으로 하진 않으나, 제로 커뮤니케이션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의 직관성을 높이기 위해 단어와 문장을 아예 이미지로 치환해버리기 때문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숨은 맥락을 읽어낼 수 있는 또래 관계의 내공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Z세대가 이미지력, 드립력을 갈고 닦는 이유는 단순히 커뮤니 케이션을 잘하기 위한 게 아니다. 친구들의 '인정'을 얻기 위해서 다. 친구들의 인정만 있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청소년 시기, Z 세대는 자신들의 주 무대인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 방법이 필요하다.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니 외모로 어필하기도 힘 들고, 향수를 뿌려봤자 자기 코만 간질이는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 브가 승부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남들과 다른 대화 스킬뿐이다. 대화로 남과 다른 센스를 드러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늘도 Z세대는 부지런히 이미지를 채집하고 수렵하러 인터넷을 떠돈다.
-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의 토리 히긴스 교수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실제자기(Actual self)'와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인 '이상적 자기(Ideal self)', 내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당위적 자기(Ought self)'를 품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 자기와 이상적 자기가 불일치할 경우, 불만족, 낙담, 심지어 우울감을 느끼며 실제의 나와 당위적 나 간의 차이는 불안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 많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느 라 실제 자기와 이상적 자기, 당위적 자기 간의 격차를 크게 느끼는 현대인에게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 요즘 사람들은 단순히 일손이 부족한 게 아니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감정적 역할을 대신해줄 존재가 필요하다. 관계의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소비는 맡은 역할의 중복으로 인해 역할 수행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의 역할을 대신 맡아줌으로써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준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대신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게 해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고, 스스로 좋 은 사람이라는 내면의 심리적 기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관계 유지에 필요한 인지적·감정적 소비를 대신함으로써 심리적 부담을 더는 것이다.
- 집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피난처이자 타인과 나,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을 물리적·심리적으로 구분해주는 배타적인 장소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더 이상 집을 안전한 휴식처로 보기 어려워졌다. 앞으로 사물인터넷loT 시장이 더욱 확산될 경우, 이러한 사람들의 불안감은 가중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보안 기기가 외부의 물리적인 침입으로부터 집을 지키는 것에 치중해왔다면, 이제는 물리적인 침입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들의 침입을 고민해야 할 때다.
- 불안은 '어떤 일인가 당할 것 같다'는 심리적 긴장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이러한 느낌은 자신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통제감 상실에서 발생한다. 020 시큐리티 서비스는 오프라인이 갖는 시공간적인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 사람들의 두려움을 덜어주고, 온라인의 연결성으로 위험 요소에 대한 통제감을 높여준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결해 이중 통제권을 부여함으로써 마음에 울타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겉으로 드러나지 는 않지만, 새로이 생겨난 일들을 가리켜 숨어있는 노동이라는 의미에서 그림자 노동 shadow work' 이라고 명명했다. 물론, 일리치는 가사노동, 교육, 보육, 통근 등을 그림자 노동의 예로 들긴 했지만, 그림자 노동의 개념 자체는 이상하리만치 일을 많이 하는 현대인에게 도 유효하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선사했고, 이러 한 노동을 줄이기 위해 기술은 또 발전한다. 몸은 편해졌을지언정, 최고의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눈, 코, 입, 귀, 촉각을 모두 열어놓 은 채, 우리의 뇌는 늘 처리 중' 상태다. 버스 배차 시간의 일분일 초를 계산하고, 복잡해진 인간관계 속에서 중심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끊임없이 생산되는 제품과 휘황찬란한 미디어의 홍수 속 에서 현대인의 뇌는 휴식을 원한다.
- 워싱턴대학교의 신경학과 교수인 마커스 레이클은 빈둥거릴 때 도 열심히 활동하는 뇌의 영역을 fMRI를 통해 관찰하고, 이를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MN, Default Mode Network'라고 명명했다. 초기 상태를 뜻하는 디폴트 모드로 돌아가기 위해 전자기기는 끄면 되 지만, 뇌는 끌 수 없다. 대신, 적어도 멍 때리는 시간 동안 우리 뇌는 불필요한 정보를 정리하며 저장 공간을 늘린다.14 레이클 교수는 만약 사람들이 전혀 멍 때리지 않으면, 불필요한 정보를 정리하지 못하고, 뇌의 저장 공간이 줄어 결국 기억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 한다. 15 멍 때리기는 우리의 의식 세계를 보다 건강하게 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심리학적 활동이다. 끊임없이 일하느라 피로한 우리의 뇌는, 복잡하고 디지털화된 현실을 벗어나 낭만적 세상으로의 도피를 꿈꾸고 있다.
- 멀티태스킹을 하는 동안 우리가 끊임없이 받는 자극이 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스마트폰을 하면서 TV를 보는 등 여러 매체를 동시에 사용하는 경향이 높을수록 인지기능과 감정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회백질의 밀도가 낮아진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미디어 기기를 통한 멀티태스킹은 머리와 마음 모두를 지치게 한다. 만약 당신이 최근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면, 자책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지친 뇌가 택한 휴식 방법인 '상상 놀이' 이기 때문이다.
- 인간의 두뇌가 사바나 초원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진화심리학 적 증거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이 물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다. 우리는 왜 물을 보면 안정감과 쾌감, 평화로운 감정을 느낄 까? 사바나에서 살던 시절, 물은 초원에서 유일하게 부족했던 자원이라 얻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고 객들이 백화점 쇼핑몰 분수대에 물이 말라 있을 때보다 펑펑 솟아 오를 때 점원에게 더 말을 자주 건네며, 구매 비율도 높아진다고 한다. 꽃도 마찬가지다. 꽃은 먹을 것인 열매의 상징이었다. 20대에서 60대의 여성들에게 꽃다발이나 양초, 과일을 선물하고 그들의 표 정 변화를 살펴보니 꽃다발을 선물 받은 여성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눈가에 주름이 패는 진짜 웃음인 '뒤센 미소'를 지었지만, 양초나 과일을 선물 받은 여성들은 억지웃음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직도 인간의 두뇌는 사바나 환경을 기준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수백만 년 동안 사바나에서 살면서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필요 로 했던 신호는 바로 자연이었다. 그리고 깨끗하고 맑은 자연 속에 서 수백만 년을 이 신호에 반응하며 우리의 뇌는 진화해왔다. 하지 만 지금 우리가 사는 환경은 어떠한가? 드넓은 초원은커녕 창문 밖 으로 또 다른 건물이 보이는 회색 건물 숲이다. 우리는 흙이라고는 한 톨도 보기 어려운 아스팔트 도로와 푸른 나무 대신 아파트가 빼 곡하게 들어찬 도시에서 산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DNA에 탑재 된 본능을 무시하고 문명의 편리함만 추구한 결과다. 인류가 등장 한 이후 95퍼센트 이상의 시간을 사바나에서 보낸 우리의 DNA에 는 여전히 사바나를 향한 그리움이 묻어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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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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