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 카렌 호나이는 "복수충동은 이기심을 포함한 모든 것의 우선순위를 밀어내고 삶의 열정을 잠식한다. 복수심에 지배당한 인간은 모든 지적 능력과 모든 에너지를 복수성취라는 목표 하나에 집중한다."고 했음. 심지어 복수충동의 발산을 막으면 두통, 복통, 피로, 불면증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했음. 즉 복수에 대한 열망이 문자그대로 몸을 아프게할 수 있는 강력한 심리적 독소를 생산함.
- 복수심은 불행한 특정 사람을 희생시키는 질병이 아님. 그것은 인류의 조상이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자연선택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서서히 마름질 된 인간 본성의 보편적 특징임.
- 아직도 사람들은 복수심이 권리 침해에 대한 인간의 전형적 반응이라는 생각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음. 복수질병 모델 덕분에 우리는 복수가 우리가 아닌 악하거나 정신나간 사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함.
- 다른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는 흥미로운 적응의 특징이 많음. 언어는 집단이 거대해지고 동시에 의사소통의 필요성이 폭증하면서 생긴 적응. 입덧은 임신기간 동안 기형유발 물질인 테라토겐을 피하기 위한 적응. 배란 은폐는 아버지로서 보호자 역할 제공과 더 많은 짝짓기 기회 확보라는 두가지 번식 이득에서 생기는 번식의 상충관계 관리를 위한 적응임. 하지만 인간 본성에 존재하는 것은 적응이 전부가 아님.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는 적응은 꼭 필요할 때에만 사용되어야 하는 특별하고 성가신 개념이다라고 했음. 지구상의 모든 인간에게는 배꼽이 있지만 배꼽 자체는 적응이 아님. 모체에 태아와 연결된 탯줄이 접해 있는 곳으로 적응의 부산물일 뿐임. 그 자체가 적응가치에서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배꼽의 적응가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헛수고임. 배꼽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지만 자궁안에 있는 태아의 발육이라는 진정한 적응목적에서 생겨난 무의미한 산물에 지나지 않음. 최근 사회학자들은 음악과 미술이 특별히 알려진 적응적 목적이 없는데도 생겨난 유사문화간 보편성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음.
- 복수를 적응으로 정의하려면 우선 인류의 조상이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수를 적응으로 택하게 되었는지 알아야 함. 여기 매우 그럴듯한 세가지 가능성이 있음. 첫째, 복수성향은 인류의 조상에게 한번 공격을 가했던 개체들로부터 두번째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선택되었을 것임. 둘째, 복수가 애초에 잠재적 가해자들로 하여금 인류의 조상에게 가하려던 공격행위를 포기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임. 셋째, 복수가 인류조상의 사회집단에 협력하지 않는 구성원들을 벌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데 적합한 기여자로 변화시키기에 유용했기 때문일 것임.
- 사회심리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제삼자가 두 당사자 사이의 도발을 증언할 때 희생자가 자신을 도발한 사람에게 더 강력히 복수한다는 사실을 입증. 특히 제삼자가 학대로 고통을 당한 희생자를 약자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혹은 희생자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구경꾼이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 강도가 높았음. 하다못해 길에서 두남자가 논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제삼자가 출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말다툼이 주먹다짐으로 번질 가능성은 두배로 높아짐.
- 경험은 가혹한 스승이다. 실험을 통해 참가자들은 협력보상이 있고 약삭빠른 행동을 처벌할 수 있는 집단에 속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개인적인 이득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음. 비록 직관은 무임승차를 하거나 약삭빠른 행동을 처벌하지 않는 집단이 더욱 효과적이록 말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무임승차자를 기꺼이 처벌하려는 사람들이 충분히 모인 집단에서 처벌비용 감수가 적응적 이점에 미치는 영향은 잠재적 처벌자들에게 분산됨. 그렇기 때문에 그 비용은 실제로 꽤 미미함. 처벌능력이 없었다면 대규모 집단협력은 진화론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을 것임. 하지만 무임승차자를 처벌하는 능력이 있을 때는 대규모 집단 협력이 의외로 간단한 일이 됨.
- 지금까지 연구해온 열대우림 지역의 몇몇 영장류의 귀(인간의 귀를 포함)가 그들이 서식하는 지역 동물들이 소리를 낼 때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님. 그러므로 인간의 귀는 만능 압축변환기라고 할 수는 없음. 오히려 어디서 다음 먹잇감이 올까, 혹은 어떻게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되지 않을까를 염려할 때 더욱 유용한 동물탐지기에 가까움.
- 명예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할 때 쓰는 일종의 가면임.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명예를 일종의 방패로 여겼음. 만약 내가 명예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상대방이 인식하고 있다고 믿으면, 그 상대방은 누군가 나에게 해를 입혔을 때 내가 신속하고 가혹하게 보복할 것으로 짐작할 것임. 그 때문에 그가 나 자신이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용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음. 어느 인류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명예는 그것을 지키는 능력과 일치함.
- 복수는 협력의 문제해결을 도왔음. 하지만 용서 역시 그 해결책의 일부임. 용서가 우리 조상이 거대집단으로 번성하기 위해 필요했던 협력적인 동맹관계의 구축과 유지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 복수와 용서의 관계를 질병과 치료제 혹은 독과 해독제의 관계로 바라보는 것보다 오히려 인류가 협력의 극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한 팀의 지원붇로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임.
- 용서는 단지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 진화한 것이 아님.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과 믿음직한 친구들로 구성된 비교적 작은 지단을 보존하기 위해 진화한 것임. 즉 인간은 용서를 통해 직접적인 상호관계를 맺음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발전시킴.
- 사람들이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았을 때 불암감을 느끼는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소중하기 때문. 그리고 물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죄수의 딜레마, 30여년의 영장류 연구, 용서에 대한 적응주의 사고에서 기대하는 결론임. 인간의 포괄적 적응도를 향상시키고 협력상대와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용서와 화해의 근본적 목적임.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애초에 용서와 화해성향을 갖게 된 이유임. 긴장과 불안을 없애려는 욕구는 우리가 실제로 그러한 진화적 명령을 확실히 이행하도록 하기 위해 자연선택이 고른 메커니즘임.
-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은 두뇌 시스템에서 복수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는 약속어음을 받고서, 좌측 전전두엽을 가동해 복수를 계획함. 실제로 그들은 복수의 성공으로 가해자가 고통을 경험하는 모습을 보면서 추구시스템이 보장했던 유쾌한 정신적 충격을 받음. 인간은 적의 고통을 보면서 기쁨을 느낄때가 많으며, 이를 위해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그것은 기쁨이 됨. 인간 본성의 가혹한 진실중 하나임. 우리는 여기서 자연선택의 논리를 꽤 쉽게 이해할 수 있음. 기쁨이라는 보상은 인간이 고통을 고통으로 되돌려주기 위해 감당해야 할 불편함을 감수하게 한다는 것. 현대 신경과학자들은 불의가 우리 모두를 사디스트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함.
- 용서본능은 인류조상의 번식에 유용했고 경제적이었으며, 그들이 정치적으로 가치 있는 상호관계를 지키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진화했을 것임. 만약 우리가 가해자를 염려하거나, 그 사람과의 관계가 가치 있다고 판단하거나, 그 사람에게 다가가도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리의 뇌는 그 사람을 용서하고 소중한 관계를 재정립하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냄.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 사람들은 용서의 대안, 특히 복수를 선택할 때가 잦음. 다시한번 강조하면 모든 적응처럼 복수와 용서도 조건부 적용임. 우리가 용서할지 복수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누구인자와도 관련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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