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국의 조건

경제 2017. 1. 15. 19:14

- 스페인 정복자들은 식민지의 경제발전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음. 그들이 식민지에서 원했던 것은 오로지 값비싼 귀금속과 노예뿐. 그런 이유로 제조업을 금지해 경제발전의 뿌리를 잘랐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간의 무역도 허락하지 않았다. 스페인의 이 같은 정책은 식민지 경제를 무너드렸고 결과적으로 그들 자신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 후발주자로 나선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식민지 경제를 발전시켜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만든 반면, 스페인은 그 거위의 목을 잘라버리는 바람에 황금알을 주기적으로 받아먹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곧 스페인이 식민지를 가진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짐
- 아스테카 제국의 수도는 오늘날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였다. 도시국가 형태로 각 도시마다 왕이 있었으며 중앙정부가 직간접적으로 통치하는 형태를 띠었다. 도시국가들은 제국에 조공을 바쳤고, 제국의 허락 아래서만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또한 아스테카 제국은 왕과 귀족, 서민, 노예 등 신분이 명확한 계급사회였다. 대부분의 토지는 왕족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으며 그들의 토지를 경작하는 농민은 전 인구의 20%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외의 구성원들은 종이나 노예였음. 스페인 정복자들은 식민지화 정책에서 바로 이 제도를 고스란히 도입. 계급제도를 확고히 했으며 정복자나 소수의 엘리트층에만 토지를 무상으로 나누어주고 그 외 대다수의 사람들은 강제노동에 동원. 권력 또한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모든 분야에서 스페인 정복자들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정복자들은 식민지에서 특권층으로 군림하며 아스텍 사람들을 종이나 노예로 부렸다. 그들은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혹은 왕의 금고를 채우기 위해 아스텍인들을 노동에 동원했으며 자신들이 대부분의 부를 누리는 것을 당연시. 많은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소수의 특권층만이 군림하도록 설계된 제도는 수백년간 이어져 오늘날 멕시코에 그대로 답습되었다. 여전히 몇몇 특권층만이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인맥과 편법에 의해 결정되는 경제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멕시코 사회의 발전과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큰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 후발주자였던 영국은 미국 대륙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한 초기 스페인의 제도를 그대로 따라함. 하지만 이는 이미 상향식 계급제도가 구축되어 있으며 인구가 밀집된 도시국가에서나 통용되는 방법일 뿐 각지에 흩어져 사는 인디언의 땅 미국대륙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인디언을 붙잡아 강제노역을 시키는 것도 힘들었지만 붙잡힌 인디언도 장시간 노동하는 생활을 견뎌내지 못했다. 결국 영국은 스페인과는 다른 전략을 세워야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균등 수익권이다. 균등수익권은 부족의 신탁기금에 대한 각 구성원의 균등한 권리를 의미. 개척자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어 그들이 토지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만든 것 또한 이 권리 중 하나. 이와 더불어 정치제도에서도 스페인보다 훨씬 포용적인 형태를 갖춤. 영국 정부가 스페인 정부와 달리 식민지에 큰 영향력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메리카로 이주한 개척민들 역시 자신들이 영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이 훨씬 자율적이었으며 포용적일 수 있었다.
- 오늘날 멕시코는 민주주의의 옷을입고 있고 식민지 시대의 통수권자나 강제노역도 없음. 하지만 식민지 시대의 제도가 기반이 된 현재의 제도는 아직도 멕시코 사회의 많은 분야에 존재하면서 불고정한 환경을 만들어냄. 정치권력은 중앙집권화되어 있고 정치권력이 경제의 운영방식을 결정. 이는 식민지 제도하의 운영방식과 매우 유사함.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것은 변했지만 그 근본구조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 나라의 부가 황제에게 집중되면서 로마는 노예들의 노동에만 의존하는 허약한 경제로 전락.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허용되지 않던 노예들에게는 경제발전의 동력이 될 기술 또한 나올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슘페터는 경제발전에는 발명을 위한 연구, 혁신을 위한 개발, 상품화라는 3단계가 필요하다고 주장. 이는 자본주의 사회뿐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경제발전의 필수조건. 하지만 로마의 2대 황제였던 티베리우스는 이런 현실을 외면. 한 유리장인이 유리꽃병을 들고 티베리우스를 찾아왔다. 그 장인은 기존 유리의 단점을 극복한 신기술로 쉽게 깨지지 않는 유리를 개발. 그가 자신의 기술을 증명하기 위해 유리꽃병을 던졌더니 놀랍게도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그 비법을 아는 자가 또 있느냐고 황제는 물었고, 자신만이 알고 있다는 대답을 들은 황제는 장인을 죽임. 장인의 죽음과 함께 신기술도 묻혀 버린 것. 황제는 왜 새로운 기술을 매장시켜 버린 것일까? 그 이유는 황제가 보유하고 있던 금과 은에 있다. 그는 깨지지 않는 유리로 인해 자신이 갖고 있던 금과 은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 사회 전체의 발전보다 개인의 탐욕을 우선시한 결과였다. 권력자의 탐욕은 사회 구성원의 창의력과 도전전신을 꺾고 만다. 대신 황제는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끌기 위해 검투와 전차경기를 연일 계속하게 했다. 위정자들이 실정이나 실책을 가리는 도구로 오락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하면서 시민들의 비판정신을 무려화시킴.
- 한나라의 몰락은 하나의 이유에 기인하지 않음. 부패한 정치, 쇠락한 경제, 타락한 문화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몰락의 결정타가 되는 사건이 있을 뿐이다. 국내사정 뿐만 아니라 국외사정도 몰락의 이유중 하나였다. 로마제국이 쇠락의 길로 걸어가는 동안 스페인, 갈리아, 게르만 등이 독립을 원하면 로마로부터 멀어져감.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당시 지배계급은 그들이 가진 탐욕 때문에 국내외 국외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 하나였던 궁정이 4개로 늘어나고 황제를 보좌하던 사람들의 숫자는 훨씬 많아짐. 황제는 늘 많은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을 충족하는 방법은 세금을 더 많이 거둬들여 시민들의 지갑을 짜내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새로운 기술도 과감하게 묻어버리는 황제의 이기심은 로마를 경제발전으로 이끌 수 없었다. 호민과 제도 같은 포용적 제도는 로마번영의 열쇠였다. 하지만 그 제도를 무너뜨리고 대신 모든 권력이 황제에게 집중되는 상황이 전개된 순간 로마의 몰락은 예정된 수순처럼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 베네치아에 주거지를 둔 사람은 누구나 다 상업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무역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 시민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상업활동을 할 수 있었고, 귀족들은 큰 규모의 원정무역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 대표적 예가 코멘다라는 독특한 계약제도. 이것은 재력이 없는 상인들도 귀족이나 부유층의 투자를 이끌어내어 원거리 무역을 할 수 있는 일종의 벤처 계약제도다. 자본은 없지만 능력있는 절은 상인들은 코멘다 제도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사업이 성공하면 부를 쌓는 것은 물론 신분상승도 가능. 투자자들은 위험부담을 안는 대신 일정한 수익을 보장받았다. 이를 통해 무역은 더욱 활발해졌고, 귀족과 상인은 함께 부를 축적하며 도시전체의 부를 높이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 스페인 왕실은 막대한 부를 독점하고도 재정상태가 좋지 못했다. 당시 대표적 상업도시의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물품 중 가장 많은 것이 왕실에서 발행한 세금영수증이다. 왕실은 각종 명목으로 새로운 세금을 징수. 심지어 방목하는 가축들에게도 통행세를 받음.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했던 이유는 왕실의 탐욕에서 기인한 끊임없는 전쟁 때문. 매 전쟁마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됨. 16세기 스페인은 식민지 건설로 대제국을 이루는 한편 유럽대륙의 패권전쟁에도 뛰어듬. 펠리페 2세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네덜란드와 80년전쟁을 시작하였고, 1571년 오스만 제국과 지중해를 놓고 레판토 해전까지 벌이게 됨. 스페인의 통치영역은 아시아, 아메리카의 식민지 뿐만 아니라 유럽대륙의 곳곳에 흩어져 있었음. 통치영역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방어를 많이 해야한다는 것이며, 늘 전쟁에 휩쓸리게 됨. 오랜 전쟁으로 고통받은 사람은 농민이었다. 그들은 강제징집으로 전쟁터로 내몰렸을 뿐 아니라 스페인 왕실이 필요에 따라 부과한 세금에 시달려야 했다.
- 스웨덴의 노사화합은 세가지 정책에 의해 진행되었다. 첫번째는 임금정책으로 동종업체에서 일하는 경우 같은 기업이 아니더라도 동일한 임금을 받도로 한 것. 이는 100% 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업무능력, 학력 등의 조건에 따라 다를 수는 있으나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과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은 부실기업을 시장에서 자연스레 퇴출시키는 데도 한 몫함. 노동자에게 적정한 수준의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기업은 기업활동을 지속하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 때문. 국가는 부실기업의 퇴출로 인해 발생한 실업자에게 실업보험을 지급하고 재교육을 통해 재취업을 유도하는 것으로 고용안정화를 꾀함. 두번째는 세금정책. 수익이 적으면 세금을 적게 내고, 수익이 많으면 세금을 많이 내도록 한 것. 이는 스웨덴만의 경제정책 모델은 아니다. 독일, 핀란드 등 복지국가로 거듭난 유럽의 많은 국가가 이런 정책을 활용하고 있다. 세번째는 공공사회복지정책이다. 이 정책은 노동시장의 격차를 줄이는데도 도움이 됨. 만약 임금이 적더라도 의료보험 등 복지정채으로 노동자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고용자가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하는 것을 규제. 스웨덴에서는 해고하는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돈이 많이 든다. 고용인을 해고하기 위해서는 그가 업무를 게을리하고 있다는 것을 기업에서 밝혀야 함. 만약 기업의 사정이 어려워져 더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는 경우에는 누구를 먼저 해고해야 하는지도 정해져 있음. 가장 늦게 채용된 사람이 가정 먼저 해고 리스트에 오름. 만약 오랫동안 한 직장에 근무했다면 해고당할 가능성은 매우 낮고, 그래서 이직률이 높지 않은 편
- 80년대 아시아의 네마리 용으로 대한민국, 싱가폴, 대만, 홍콩이 거론되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이 4개국 중 싱가포르가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을 MPH공식으로 표현. 첫번째 공식은 능력주의(Meritocracy)다. 능력주의는 나라를 운영하는 최고의 지도자를 선출하게 해줌. 두번째 공식은 실용주의(pragmatism)이다. 싱가포르에서는 모두에게 배우는 문화를 가지고 있음. 관료체제에서도 상하관계보다 수평관계를 유지하므로 누구든 의견을 낼 수 있으며, 그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의견이라면 받아들임. 세번째는 정직함(honesty)이다. 한 사회에서 정직함을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하지만 강력한 부패방지법을 시행하면서 재계와 정계는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 자본은 시장상황에 변동에 따라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러지 않기도 하다. 만약 고용주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쉽게 고용하거나 해고해버리면 노동안정성이 무너진다. 노동자가 곧 소비자인 사회에서 실직자의 증가는 결국 내수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부분 정부에서는 노동안정성을 보장하는 고용, 임금 등의 법률을 제정해 고용주가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로 함. 네덜란드는 대신 파트타임제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 자본의 부담을 줄여 생산성을 향상시킨 것. 그런 반면 고용주가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했으며, 풀타임 노동자와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법적인 규제를 시행. 파트타임 임금만으로 불안정할 수 있는 생계를 복지정책으로 보완. 파트타임을 정규직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노동안정성까지 확보. 바로 이러한 이유로 네덜란드는 유연한 고용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안정적인 사회,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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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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