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배우는 시간

etc 2023. 9. 15. 07:16

- 죽음이 병원으로 떠넘겨진 다음 수순은 당연히 죽음이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둔갑하는 거예요. 요즘은 한술 더 떠서 노화조차도 치료가 필요한 병으로 치부되고 있지요. 자본주의 사회는 죽음과 노화를 병원의 일로 만들고 가족들이 그 시간에 노동을 하고 재화 를 축적하도록 작동해왔고요. 여러분이 중견 의사로 활동하는 시 기에는 환자들의 평균 연령이 지금보다도 높을 것이고 그런 현상 도 더 심해질 거예요. 여러분들이 의사 개인으로서 이 거대한 흐름 에 거역한다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최소한 죽음을 앞둔 환자의 입장에서 무엇이 좋은 죽음일지를 한번 고민해보기 바랍니다.
- 크게 보면 의료도 마찬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제는 70세에 사망해도 요절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까지 생겼기 때문에 의사들 은 어떻게 해서든 숫자상으로 환자의 수명을 늘려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의료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수명 연장에 기여한 바가 적기는 하지만 급성 질환 치료에서는 분 명히 큰 향상을 이루었다. 항생제의 발달로 역사적으로 인류의 수 명을 위협하던 대다수 감염 질환이 해결되었고 수술 기술, 생명보 조장치의 발달로 과거의 전쟁에서는 사망했을 대부분의 부상병들 을 이제는 살려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급성 치료에 중점을 두어온 의료기술이 전혀 다른 문제인 만성 질환자의 치료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쟁 부상병, 사고 부상자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개발된 기술들이 아 무런 기준 없이 삶의 마지막 길을 걷고 있는 환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심한 경우 의료소송의 빌미까지 제공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환자와 가족에게는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연장시 키고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제한된 의료자 원의 낭비를 초래한다. 또한 반드시 이런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치료의 기회를 박탈함과 동시에 의료비용의 천문학적인 증가를 가 져왔다. 중환자실 자리가 없어서 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하는 아 이의 예는 상당히 많으며, 보건의료 통계로 보면 한 개인이 사망하 기전 한달간 쓰는 의료비가 그 이전 평생에 걸쳐 쓴 의료비보다 더 많다. 결국 선진국들에서는 이런 불행한 결과를 막기 위해 완화 의료를 중심으로 하는 죽음의 질 향상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게 되 었다. 또한 국가는 그 구성원의 삶을 개선하는 데 힘쓰는 만큼 죽 음의 질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데에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 의료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완화의료palliative care라는 용어는 임종의 료end-of-life care와 구분 없이 쓰이고 있기는 하나 엄밀히 말하면 둘 은 조금 다른 개념이다. 완화의료는 반드시 임종을 목전에 두고 있 는 사람에게만 시행하는 치료는 아니기 때문이다. 온몸에 암세포 가 전이되어 하루하루가 힘겨운, 누가 보아도 임종이 눈앞에 닥친 사람에게만 완화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고혈압, 당뇨, 중풍 등 노년에 닥치는 온갖 만성 질환들의 후유증으로 신체의 정상적인 기능을 모두 잃고 침상생활을 하면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환 자는 언제 임종이 올지 알기는 어렵지만 삶을 좀더 편안하게 해주 는 치료는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의하는 완화의료는 다음과 같다.
완화의료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연관된 문제들을 겪고 있 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치료로 통증, 신 체적 문제, 정신적 문제, 사회적 문제, 영적인 문제까지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히 평가함으로써 고통을 예방하고 덜어주는 방 식을 의미한다.
완화의료는 구체적으로 다음을 의미한다.
*통증을 포함한 괴로운 증상을 해소시킨다.
*삶을 긍정함과 동시에 죽음이 정상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인지한다.
*죽음을 서두르지도 방해하지도 않는다.
*환자 치료에서 심리적이고 영적인 면을 통합한다.
*환자가 사망 전까지 가능한 한 능동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다.
*환자의 가족이 환자의 투병을 견디고 환자가 사망한 후 애도하는 것을 돕는다. 이런 시도는 여러 전문가들로 구성된 치료 팀이 관여하도록 한다.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임종이 임박한 경우 외에도 적극적인 치료와 함께 병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 중에도 환자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완화의료를 적용할 수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죽음이 정상적인 과정이라 는 점을 인지한다"라는 내용이다. 

- 옛날 같았다면 할아버지가 이제 돌아가시게 된다는 것을 옆에서 다들 알고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술의 발달과 함께 마 치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것 같은 착시 효과가 생기면서 이제는 노 화에 의한 자연사라는 만고의 진리가 무색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결국 쇠약해진 노인이 사망하는 맨 마지막 단계, 근력 약화에 의한 활동력 저하 → 식이섭취 부진 → 영양실조 및 탈수에 의한 장기 기능 저하 인두근 약화에 의한 흡인과 폐렴 사망이라는 과정 이 모두 처치가 가능한 질환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의료인들뿐 아니고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관여하게 되면서 점점 더 복잡한 양상으로 변화했다. 사회는 죽음에 대해 이야 기하기보다는 현대의학의 발달로 인간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게 되었는지, 예전 같았으면 죽었을 상황에서 얼마나 극적으로 생명 을 건질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점점 더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게 된다. 부모가 돌아가실 때가 되었 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막연하게 "이러다가 나빠지면 병 원에 모시고 가면 방법이 있겠지...” 이렇게 생각을 한다. 의사들의 사망진단서에는 더이상 노환이 사망 원인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심부전, 신부전, 폐렴, 감염증... 모든 사망에는 의학적인 진단명이 붙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제 현대의학은 죽음의 속도와 시간, 장소 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은 가족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장기 적출이 적절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춰야 하는 행사가 되어버렸다.
- 정상적인 상식이라면 말기 질환에 시달리던 환자가 결국 병원 에서 숨을 거두는 경우 의료인은 슬픔을 나누며 남은 가족을 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병원에서 환자의 죽음 은 어떤 경우든 일어나면 안 되는 일종의 사고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환자가 사망하면 그 경위가 무엇이었든 의료진은 우선 보호자 에게 질책당할 일이 없었는지 먼저 살피고, 병원의 정기적인 사망 집담회에서 동료 의사에게 비난받을 일은 없는지 살피고, 심지어 는 사망 예가 병원 평가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지까지 따져야 한 다. 이런 시스템은 의사들이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는 일 을 점점 더 어렵고 기피하게 만든다. 시간을 끄는 것이 환자는 물 론 환자의 가족에게까지 고통스러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죽음을 늦추려는 시도를 하는 일도 흔히 보게 된다.

- 일반인을 대상으로 어디서 죽는 것이 바람직하 다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에 병원이라고 답한 경우는 16.3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학력이 높거나 수입이 많을수록 병원에서 죽는 것 이 바람직하다는 비율이 낮아졌다. 응답자의 57.2%는 자택에서, 19.5%는 호스피스 완화의료기관에서 죽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이렇게 임종 장소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과 현실이 차이가 나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20세 기 초까지는 병원에서 임종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가 20세기 후반 50퍼센트를 넘게 되고 2000년대 들어서는 80퍼센트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죽음이 병원으로 '외주'되고 있는 것이다.
- 이런 현상은 비단 죽음의 의료화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전 쟁, 기아, 역병 등으로 죽음이 일상에 가깝던 전 시대에 비해 현대 사회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점점 더 적어졌다. 이에 따라 죽음은 누구에게나, 심지어는 의사들에게조차 낯설고 적응하기 어 려운 일이 되어버렸고, 현대의 규격화되고 위생적인 주거 환경에 서 죽음은 수용하기 어려운 짐이 되어버렸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생의 마지막에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던 일은 이제 심하게는 유기까지 비난받게 되고 하다못해 아무런 도 움도 안 되는 수액이라도 맞다가 죽어야 정상인 것처럼 오인하는 사회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보다는 죽음을 자 주 목격하는 의료인으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병원은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장소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가 장 가까운 가족과의 접촉조차 금지되는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은 더 욱 그렇다.
사회 전반적으로 죽음의 질을 생각하고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 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한 인간의 죽음을 그 개인의 일생으로부터 따로 떼어서 다루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긴 인류 역사상 많은 문학작품, 예술작품, 종교, 철학은 항상 죽음이 자연스럽고 용기 있는 삶의 한 과정임을 가르쳐왔다.

- 노안은 안경으로 쉽게 조절할 수 있다. 안경으로 해결할 수 없는 대표적인 문제가 백내장인데 이것 역시 수정체를 교체하는 것으로 비교적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황반변성이 문제가 된다. 망막에서 시력을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황반 이라고 하는데 노화가 오면서 세포 손상이 축적되고, 세월의 흔적 인 산소 독성물질 등이 망막의 색소상피를 손상시키면서 진행된다. 초기에는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에 발견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많이 진행되어도 완전 실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지만, 황반이 관 장하는 중심 시력을 잃게 되기 때문에 얼굴을 알아본다든지, 운전 이나 독서 등의 일상생활 수행에 큰 어려움이 생긴다. 심하면 환각 증상까지 일으킨다. 초기에는 직선이 구불구불하게 보이거나 끊어 져 보이는 등의 형상 왜곡이 나타나는데 전봇대나 창틀 등을 바라 보다가 자각할 때가 많다. 색상을 분별하는 능력도 크게 떨어져서 검은색과 회색, 베이지색과 핑크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시야에서 뻥 뚫려 상이 없는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운전 능력이나 계단을 내려갈 때 계단의 층을 구별하는 능 력, 울퉁불퉁한 지면을 걷는 능력 등이 떨어져 사고와 낙상으로 이 어지기 때문에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혈관이 증식되면서 발생하는 습성 황반변성은 혈관증식억제 인자로 치료 하거나 레이저 치료가 가능하지만, 노인들에게 발병하는 황반변 성은 건성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치료는 효과가 없다. 알려진 생활습관 인자로는 흡연이 가장 강력한 유발 요인이다.
많은 사람이 시각장애에 비해 청각장애는 덜 심각한 장애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큰 오해다. 듣지 못하면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 가지로 일상에서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가 되는 것 은 사회적 능력의 상실이다. 청각장애인들은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에 비해 일을 구하고 수행하기가 더 어 렵다. 상당히 진행된 청각장애가 있어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사 람도 많다. 초기에는 말소리 등이 작고 흐릿하게 들리다가, 텔레비 전이나 음향 기기의 음량을 높여야 들을 수 있게 되고, 전화 통화 가 불가능해지며, 시끄러운 곳에서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워진다. 더 진행되면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지고 심한 경우 평형감각 까지 영향을 받아 어지럼증이 생긴다.
- 한편 식욕 감퇴는 장애와 사망에 주요 전환점이 되는 노년기증 후군geriatric syndrome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요양시설에 입소한 노인중 식욕 부진을 호소하는 노인은 정상 식욕을 보이는 노인에 비해 1년 내 사망률이 2배 이상 높다. 우울증, 치아 문제, 변비, 복용 중 인 약제의 부작용 등으로 나타나는 식욕 부진은 의학적인 조치가 도움이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아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노인들에게 식욕 감퇴가 얼마나 흔한지에 대한 연구 결과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질병관리본부의 2014년 국민건강영양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의 8.1 퍼센트가 영양 섭취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듦에 따라 나타나는 여러 신체적 변화가 식욕을 감퇴시 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식욕을 돋우는 후각 신경 소실에 따른 냄새 맡는 능력의 감퇴다. 음식 맛의 절반 이상은 냄새로 느끼기 때문에 맛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미각 신경도 기능이 떨어진다. 할 머니가 만드는 음식이 점점 짜지는 이유다. 식사를 하면 위 전정부 (위의 아랫부분)가 팽창하고 위장관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중추신경 계에 충분히 먹었는지를 알리는 신호가 전달되고 포만감 및 식사 량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노인들은 위의 신축성이 떨어져서 쉽 게 위 전정부가 팽창되고 위에서 음식물을 이동시키는 위장관 호 르몬의 배출 속도도 느려져 젊은이에 비해 조금만 먹어도 금방 배 가 부르다. 또한 노화가 진행되면 근육에 비해 체지방이 증가하면 서전신에 미세한 염증이 지속되는 상태가 되는데, 이런 경우 지방 세포에서 분비되는 염증 물질이 식욕을 떨어뜨린다. 식욕을 돋우 는 모든 종류의 신경전달물질도 노화에 따라 감소한다.
- 현재로서는 식욕 부진에 효과가 검증된 치료 약물은 없다. 검증이 안 된 약을 처방하는 경우 이미 다수의 약제를 복용하는 노인들에게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 가장 많이 권장하는 것은 적절한 신체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다. 가급적 일상생활의 활동을 다 영위하고, 65세 이상 노인 기준 일주일에 150분 이상의 걷기와 같은 중등도 유산소 운동과 저항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단백질열 량보충제를 함께 복용하면 영양 결핍 노인의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 밥에 비해 위가 덜 팽창되는 유동식을 섭취하면 포만감이 덜 생겨 식이량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도 다 소용없는 단계가 오게 되어 있다. 단순 히 음식을 넘기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움을 호소하기도 하고, 근력 이 떨어져 음식을 삼키는 데 사용되는 연하근까지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이 경우 오히려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흡인 폐렴(음 식물 찌꺼기 같은 이물질이 기도에 들어가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기관지 폐렴)으 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코에 레빈튜브를 넣어 영양 공급을 하거나 위에 구멍을 내 인위적으로 식이를 공급하는 방법 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는 임종이 임박 한 상황에서의 경정맥 영양 공급이 환자의 증상 개선이나 생존기간 연장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그러나 식욕 부진과 마찬가지로 통증 역시 여러 검사를 해보아 도 몸이 아픈 원인을 딱히 찾을 수 없을 때가 많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많은 연구에서 우울증이 동반되면 다른 원인 없이도 몸이 아 플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거꾸로 통증이 우울증의 원인이 되 기도 해 결국 계속 몸이 아프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신체 조직에 손상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급성 통증과 달리, 만성 통증은 특별한 조직 손상 등의 원인 없이 신경전달의 문제만으로도 지속될 수 있다. 이때는 일반적인 진통제 처방과는 다른 방법의 치료가 필요하다. 또한 각종 진통제를 복용하는 경우 신경근기능 이 저하되면서 낙상 위험이 크게 증가할 수 있기에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렇게 관절염이나 암과 같은 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 로 인한 것도 아닌, 노화와 죽음의 단계에서 겪는 통증은 어느 정 도로 문제가 될까?
만성 노인성 통증은 "65세 이상의 환자에게서 실제적인 기관 손상의 유무와 관계없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 불쾌한 감각이나 정서적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관절염이나 낙상에 의한 골절 등의 질 환이 없더라도 노인들은 신체기능이 쇠약해져서, 인지기능이 저하 돼서, 여러 약물을 복용하면서 통증을 경험할 수 있다. 여성, 가난, 낮은 지식수준, 비만, 흡연, 우울증이나 불안은 모두 통증의 위험 인자로, 신체적인 통증은 결국 정신적·사회적인 문제와 밀접한 연 관이 있음을 시사한다.
다음과 같은 다양한 질환들이 만성 노인성 통증의 원인으로 작 용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여러 검사에도 불구하고 통증의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 지금 처방하는 약이나 100년 전에 사용되던 약이나 별반 차이가 없 다는 뜻이다. 의사들이 처방하는 진통제는 크게 세종류로 나뉜다.
첫번째는 아세트아미노펜으로 가장 유명한 제품은 타이레놀이 다. 과량을 복용하지 않는다면 비교적 부작용이 적기 때문에 경미 한 통증에 가장 많이 처방된다. 일일 최대 용량은 4그램인데, 타이 레놀 서방정(650밀리그램)을 기준으로 하루 6정까지 복용이 가능하 다. 과량 복용하면 간독성이 생길 수 있다.
두번째로 비스테로이드항염제는 아스피린을 뿌리로 개발된 약 제들로, 가장 널리 쓰인다. 약국에서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브루펜 등의 제제부터 나프록센, 모빅, 세레브렉스 등 다양한 상품이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에 비해 위궤양, 위 · 장출혈 등의 소화기계 부작용, 심근경색과 같은 심혈관계 부작용, 신장기능 저하 등의 위험이 현저히 높기 때문에 노인 환자에게 처방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장 기간 매일 복용이 아닌 몇시간 혹은 며칠간 통증이 악화되는 기간 에만 필요에 따라 복용하는 것을 권한다. 경구 약제의 부작용을 덜 기 위해 국소적인 통증에 쓸 수 있도록 피부에 부착하는 형태로도 개발되어 널리 쓰이는데, 통칭 '파스'라고 불리는 패치 제제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아편계 진통제가 있다. 가장 강력한 진통 효과를 내는 약제로, 다른 방법으로는 조절이 불가능한 심한 통증에 처방하며, 노인 환자에 대해 단기간 사용하는 경우 진통 효과가 있다고 공인되어 있다. 구역질, 변비, 인지기능 저하 및 의식 저하 등의 부작용이 흔히 동반되며, 특히 노인 환자에게 처방할 때 부작용이 심 하다. 3개월 이상의 만성 통증에 대해서는 효과가 불확실하며 의존 성이 높은 약물이기 때문에,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려운 경우 가 많다. 아편계 진통제도 피부에 붙이는 패치 형태로 개발되어 있 는데, 패치제도 의존성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 경구 약제 외에 다양한 주사요법이 있는데, 대개 무릎이나 어깨 등 국소 부분의 통증 제어에 처방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소 위 '뼈주사'로 통용되는 스테로이드 관절 주사다. 이름처럼 뼈에 놓는 것은 아니고 관절이나 인대막, 점액낭 등의 연부 조직으로 약 을 주입한다. 이 주사는 류머티스 관절염이나 퇴행성 관절염 환자 에게 염증이 심한 부위에 주사를 함으로써 효과적으로 통증을 제 어할 수 있다. 잘만 이용하면 경구약을 오래 먹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치료가 될 수 있음에도, 단순히 몸에 좋지 않다는 선입견 때문에 의료진이 권해도 맞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너무 자주 맞으면 관절 손상이나 인대 파열 등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치료와 마찬가지로 오용, 남용은 금물이다. 연골 주사는 퇴행성 관절염 환자의 손상된 연골을 치유한다고 잘못 알 려져 있는데,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100퍼센트 진통 효과뿐이다. 경구약이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 우려가 있을 때 이용한다.

- 신체기능이 심각하게 떨어져 와상 상태가 되면 가장 먼저 영 향을 받는 것이 근육과 관절이다. 며칠만 누워 있어도 근력이 약화 되고 관절이 강직된다. 젊은 사람도 골절이 생겼을 때 석고 붕대 를 감아 관절을 고정시켰다가 회복 후에 굳은 관절을 펴느라 고생 할 때가 많다. 와상 상태로 2주만 경과하면 온몸의 관절은 정상적 인 가동 범위를 잃게 된다.
노인들이 자리보전하면서부터는 욕창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욕 창은 사실 노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고 오랫동안 침상생활을 하면 젊은 사람에게도 생긴다. 욕창은 뼈와 인접한 피부에 과도한 압력이 가해지면서 피부와 피하 조직이 손상되어 발생한다. 부동 자세로 오래 누워 있다보면 몸무게 자체로도 과도한 압력이 가해 지기 때문이다. 가장 흔히 발생하는 위치가 꼬리뼈와 골반이 인접한 엉덩이 부분과 발뒤꿈치다. 하지만 누워 있는 자세에 따라 팔꿈 치, 무릎, 어깨 뒷부분, 뒤통수 등에서도 흔히 발생한다. 노인들은 동맥경화로 인해 혈류가 감소하거나 신경 감각이 저하되고, 상처 치유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자리보전을 하면 욕창이 생기기가 더 쉽다. 거창한 의학적 표현을 떠나 욕창은 내 몸이 더이상 정상적인 피부를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이해하면 된다.
욕창은 초기에는 피부 결손 없이 붉게 보이는 정도였다가 더 진 행되면 점차 피부 결손이 나타난다. 피부 결손 초기에는 표면의 살 갗이 살짝 까지는 정도지만 이후 피부 깊숙이 헐어 들어가면서 피 하지방, 근육, 뼈까지 드러나게 된다. 욕창으로 피부의 방어벽이 뚫 리면 뼈나 인근 조직으로 세균이 들어가고 골수염이나 패혈증으로 진행되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와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 면, 즉 전처럼 일어나서 활동하는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면 근본적 으로 욕창은 치유할 방법이 없다. 누운 자세를 수시로 바꾸어주어 한 부위에만 지속적으로 몸무게가 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예방법이다.

- 긴 시간을 거쳐 삶의 종착역,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말기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임종 전 몇주 동안 활동 수행 능력 감소, 섭취량과 소변 배 설량 감소, 쇠약감, 변비, 황달, 부종, 욕창 악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다 임종 일주일 전에는 의식 변화, 진정(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 의 저하), 수축기 혈압(수축기 때 혈액이 혈관 내벽에 가하는 압력, 혈압의 변화 중 가장 높은 압력) 감소, 구강 건조 등의 증상을 보인다. 특히 임종 하 루이틀 전부터는 혈압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가래 끓는 소리를 내 며, 눈을 위로 치켜뜨는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의식의 변화는 진 정, 기면 단계를 거쳐 혼수,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잠들 듯 편 하게 눈을 감는다'는 표현을 의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불 행히도 일부 환자들은 착란, 환각, 경련 등 임종 직전의 섬망妄, 갑자기 정신 상태가 악화되는 현상으로 지각력이나 집중력 저하, 헛소리나 잠꼬 대, 흥분, 불안, 낮밤 바뀜, 행동 과다 내지 저하 등의 경한 증상부터 환청, 환각, 심 한 망상, 혼수상태 등의 중한 증상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을 겪는다. 이런 경 우 진정제를 투여해 인위적으로 조용한 죽음을 유도하기도 한다.
- 의식이 나빠지면 이에 따라 호흡이 불안정해진다. 숨을 몰아쉰 다든지 긴 시간 숨을 쉬지 않는 무호흡 증상이 나타나면, 임종에 임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때 환자가 특별히 힘들어하지 않는 한 치료는 하지 않는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통증은 오히려 감소하 는 것으로 관찰되는데, 임종 환자의 50퍼센트는 거의 고통을 느끼 지 못하며 25퍼센트는 가벼운 통증 혹은 중등도의 통증만을 느낀다. 
환자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면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이 당황 할 수 있다. 특히 호흡곤란과 같이 올 경우 이는 집에 있던 환자를 의료기관으로 옮기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임종 환자의 가래 끓는 소리를 의학적으로 임종천명, death rattle 이라고 한다. 임종천명 은 신체기능이 쇠약해져 기관지에 고인 분비물을 뱉어내거나 삼킬 수 없어지면서 기도 내에 분비물이 쌓여 발생한다. 임종을 맞는 환 자의 절반 정도에서, 임종 약 17~57시간 전에 들리는 것으로 보고 된다." 이 증상이 일어날 때쯤이면 대체로 의식은 혼수상태이며, 환자는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에게는 임종의 모습이 트라우마로 남아 환자가 사 망한 후에도 수년간 회상될 수 있다고 한다." 이 시점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환자를 의료기관으로 옮기는 순간, 연명치료의 굴레에 들어서게 된다.
- 오랫동안 임종의 경과를 지나온 노인에게 이런저런 검사를 실시 하면 당연히 검사한 숫자만큼의 이상을 발견한다 해도 과언이 아 니다. 병원으로 옮겨지는 즉시, 의료진은 기관지에 고인 분비물을 뽑기 위해 흡인기를 연결한다. 폐렴 소견이 발견되면 항생제 치료 를 하고 산소포화도가 나쁘면 인공호흡기를 달 수도 있다. 전해질 이상 소견이 발견되면 곧장 정맥으로 수액 공급 치료가 들어가고, 신장기능이 나쁘면 투석을 하게 된다. 혈압이 낮으면 혈압을 높이기 위한 여러 약제를 동원한다.
완화의료를 선택하는 경우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앞에 기술한 일반적인 치료들이 죽음의 각 단계에 나타나는 증상들을 모두 치 료해야 하는 질환으로 보는 반면, 완화의료는 이 모든 증상을 죽음 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그 과정에서 환자가 통증이나 정 신적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것을 최소화하는 치료를 목표로 한다. 흔히 완화의료라고 하면 환자를 포기하는 치료 정도로 폄하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큰 오해다. 환자를 전인적으로 보고 접근해 야 하는 완화의료의 경우 매뉴얼화되어 있는 일반적인 치료에 비 해 훨씬 더 고도의 판단력과 기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 예를 들어 기관지 흡인의 경우 완화의료 전문의들은 흡인기로 구강과 비강 및 인후부의 분비물을 시도 때도 없이 흡인하면 큰 효 과도 없을뿐더러 요란한 소리로 인해 오히려 환자와 주변 가족들 에게 더 큰 불안감을 주므로 지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보다 는 히오신(자율신경조절제로 흔히 멀미와 구토 치료에 사용되며 분비물을 줄이 는 작용을 한다)과 같은 약물을 사용하여 부교감신경 반응을 감소시 키고 기도 분비물을 줄이는 방법을 권한다. 마찬가지로 호흡곤란 이 왔을 때도 모르핀이나 진정제를 사용하여 환자를 안정시키는 것을 권장한다. 다만 진정제나 모르핀은 호흡중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임종을 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 이처럼 임종치료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환자를 치 료한다. 따라서 임종 전 환자와 가족들 간의 충분한 소통이 있어야 의료진도 마음 놓고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밥을 못 먹는 단계를 지나 물도 못 마시는 단계가 오면, 이제는 정말 살 시간이 얼마 남 지 않았음을 알고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람이 물을 전혀 먹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사나흘이다. 통념과 달리 임종 환자는 탈수가 되었다고 해서 갈증을 호소하지 않는다. 음식 과 수액을 거부한 호스피스 환자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고 한 연구에 의하면, 환자들은 의료진이 보기에 대체로 편안한 임종 을 맞이했고, 허기나 갈증을 호소하지 않았다고 한다.
- 임종을 앞둔 환자와 완화의료 전문의 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가장 평화로운 임종은 다음 세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1.불안함에서 벗어날 것 
2.혼자서 임종하지 않을 것 
3.아이들과 함께 있을 것. 
모두 병원, 특히 중환자실 임종에서는 지켜지기 어려 운 조건이다.
완화치료는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죽음 은 스님들의 예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지금도 큰스님이 열반 에 들기 전 곡기를 끊고 죽음을 재촉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옆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바치며 애원해도 듣지 않고 의연히 죽음을 마주하는 스님들의 이야기에서 나는 죽음의 가장 자연스러 운 모습을 본다. 

- 사람들이 쉽게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CT촬영의 방사선 피폭량은 자연 상태에서 노출되는 피폭량을 고려할 때 짧 게는 3년, 조영제를 쓰는 경우 7년 동안 맞을 양을 한번에 맞는 것 과 같다. 암 환자가 흔히 찍는 양전자방출 컴퓨터 단층촬영PET-CT 은 8년 치를 한번에 맞는 수준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검사하 다가 암에 걸릴 가능성은 잘 모르고, 조기 암 진단을 받을 수 있게 정밀 촬영을 해달라고 한다.
- 결국 생로병사에는 항상 답이 있는 것도, 답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현대의학은 우리로 하여금 강제로 이에 대한 답을 찾도록 요구한다.
암에 대한 인식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암을 예방해 야 하는 병' '조기에 발견해서 완치해야 하는 병' '첨단 의술로 정 복해야 하는 병'으로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가리지 않고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이들을 남기고 암으로 죽어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가 있다. 암은 진단과 동시에 죽음을 연상시키는 가장 대표적인 질환이기에 더 그렇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바로 암도 노환이라는 사실이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모든 암종이 남성, 여성 모두 연령에 따라 급증하여 65~69세 사이에 정점을 보인다. 85세 이상의 초고령에서 도암 발생률은 낮아지지 않아서 50대의 발생률과 비슷하다. 암이 라는 질환이 교정하지 못한 유전자적 결함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원리를 이해하면 당연한 이치다. 나이가 들수록 유전자의 결함이 누적되기 때문이다.
- 갑상선암은 부검하면 나오는 암, 즉 경과가 완만하고 그 자체로 환자의 생명을 빼앗는 경우가 적어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암이 라고 배웠던 나로서는 요즘 갑자기 갑상선암이 늘어난 것이 조기 검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나만의 의 심은 아니었다. 곧 의료계 안팎의 여러 움직임과 갑상선암 조기 검 진에 대한 의사들 간의 찬반 격론으로 이어지면서 의심은 사실로 굳어지게 되었다.
초음파 검사가 화근(?)이었다. 건강검진 조기 암 발견 코스에 갑 상선 초음파가 포함되면서 갑상선의 이상 음영이 보이면 바로 침 생검(생체검사)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갑상선이 바늘로 찔러보면 암세포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일단 암세포가 나오면 더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해진다. 갑상선이라는 인체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관이 단칼에 날아간다. 그리고 환자는 평생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어야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갑상선암 수술 광풍에 편승하여 환자들의 갑상선을 떼어 내는 의사들이 있는가 하면 '갑상선암 과다 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 연대'도 생겨났다. 국립암센터 서홍관 박사는 갑상선암 5년 생존율 은 우리나라의 경우 100퍼센트에 가깝고 미국과 캐나다도 98퍼센 트 수준이라고 언급하며, 갑상선암의 이런 독특한 특징 때문에 미 국 질병예방위원회는 1996년 아무런 증상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초음파 검사를 이용해 감상선암 발병 유무를 감별하는 것은 오히 려 해가 될 수 있다며 권고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 만성 통증의 가장 강력한 위험 인자는 나이다. 만성 통증은 나이 가 들어가며 그 발생 빈도도 증가한다. 안타깝게도 이 가운데 상당 수는 아무리 찾아도 원인을 알 수 없다. 찾을 수 있는 원인이 없다 면 이제 통증도 노환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 저 든다. 그러나 사람이 늙고 죽는 문제가 마치 질병처럼 다루어지 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유를 찾지 않고 두고 본다'는 입장을 지키기가 쉽지만은 않다.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인공호흡기를 단 상태에서는 자발호흡을 어떤 형태로든 죽여놓지 않으면, 제정신으 로는 버티기가 힘들다. 생각해보라. 자연스러운 호흡 리듬에 반하 여 기계가 규칙적으로 그것도 가슴이 터져나갈 듯한 압력으로 강 제로 공기를 불어넣는 것이 어떻게 편할 수 있을까? 인공호흡기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결국 자발적인 호흡중추까지 마비되도록 진정제를 투여해서 환자를 깊은 무의식으로 떨어뜨리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러나 친구는 나의 거짓말에 조금은 안도한 듯했다.
"그래, 네 말을 듣고 보니 호흡기를 달고 좀 지켜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다. 이런 경우 대개 호흡기를 달아도 며칠 안에 사망한다. 대 부분의 가족이 바라는 '며칠간 호흡기를 달고 버티다가 회복하는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 장기능이 상실되면 수액 요 법을 쓰고 신장이 기능을 잃으면 투석을 한다. 호흡이 멈춘 환자에 게는 인공호흡기를 달아 생명을 연장한다. 심장이 멈춘 환자조차 체외막형산소화장치(에크모)의 출현으로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현 상황에서는 도대체 무엇이 죽음이고 무엇이 삶인지, 의료인조차 혼란스러워진다.
결국 친구의 아버지는 투석을 시작했고 3일 후에 돌아가셨다. 내 과계 중환자실은 자리가 없어 옮기지 못하고 응급실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맞았다. 중요한 순간순간에 환자에 대한 치료 결정을 고지 한의사는 환자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응급실 담당 의사였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지지와 정신적 도움이 가장 필요한 순간 환자를 오래 보고 잘 아는 의사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파편화, 전문화된 현 대의료의 가장 큰 맹점이다. 만일 환자를 오랫동안 옆에서 보아왔 던 주치의가 있었다면 이런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 리나라의 죽음의 질 지표가 좋아졌다지만, 현실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 통상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이후에는 하루하루가 감염 증이나 인공호흡기에 의한 폐 손상 위험과의 사투가 되기 때문에 의료진은 하루라도 빨리 인공호흡기를 떼려는 시도를 한다. 이것 을 갓난아기의 젖떼기에 비유해 '위닝'weaning이라고 부른다. 즉 기 계호흡의 강도를 점차 낮추어 환자가 자발호흡이 가능한지를 계속 적으로 관찰하고 자발호흡이 가능하다면 지체 없이 인공호흡기를 떼는 것이 표준 진료다. 가족들이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와서 인공 호흡기 치료를 중단하고 장례 준비까지 했는데, 정작 호흡기를 떼 고도 200일 이상 환자가 자발호흡을 했다는 것은 의료인이 아닌 일 반인의 상식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애당초 제대로 호흡 기를 떼는 시도를 했다면 법정 공방까지 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 연명의료결정법의 기본 원칙은 호스피스와 연명의료 및 연명 의료 중단 등 결정에 관한 모든 행위는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기준을 두고 있다. 또한 모든 환자는 최선의 치료를 받으며, 자신이 앓고 있는 병 상태와 예후 및 향후 본인에게 시행될 의료행위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고, 의료인은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고, 호스피스와 연명의료 및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에 관하여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며, 그에 따른 환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연명의료계획서는 다음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
1.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및 호스피스의 이용에 관한 사항.
2. 의료진의 설명을 이해하였다는 환자의 서명, 기명 날인, 녹취, 그밖의 방법에 의한 확인.
3. 담당 의사의 서명 날인
4. 작성 연월일.
환자는 연명의료계획서의 변경 또는 철회를 언제든지 요청할 수 있다.
연명의료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려는 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령 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의료기관에 의료기관 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 위원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와 환자 가족 또는 의료인이 요청한 사항에 관한 심의, 환자와 환자 가족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관련 상담, 의료인에 대한 의료윤리 교육 등을 실시한다.
- 19세 이상의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경우 충 분한 기간 동안 일관하여 표시된 연명의료 중단 등에 관한 의사에 대하여 환자 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환자가족이 1명인 경 우에는 1명의 진술)이 있으면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 의 확인을 거쳐 이를 환자의 의사로 본다. 다만, 그 진술과 배치되 는 내용의 다른 환자 가족의 진술 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 경우에는 효력이 없다. 환자 가족의 범위는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까지다.
연명의료 중단이 결정되어도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 분 공급, 물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그밖의 자세한 내용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임종 과정에 있는지와 무관하게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와 달리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들이 작성하는 연명의 료계획서는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명백한 임종 과정에 있다고 판단되는 시기는 이미 환자의 정상적인 판단력 등이 소진 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온갖 이해관계에 얽힌 주변인들의 의 사가 개입을 하고 그러다보면 병원에서는 가장 쉬운, 그냥 연명치 료를 하는 길로 돌입하기 일쑤다. 현재 모든 의료기관의 디폴트 옵 션은 연명치료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복 잡하고 까다로운 연명의료계획서를 받아야만 디폴트가 해제되는 것이 현실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웰다잉에 왕도는 없다. 죽음이 항 시 가까이 있는 삶의 과정이라는 인식과 다가올 죽음을 깊이 생각 하고 준비하는 마음가짐만이 현대의료가 제공하는 임종 문화의 난 맥상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완화의료가 심각한 질환을 가진 환자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치료인 반면 호스피스는 이런 심각한 질환으로 인해 기대 여명이 6개월이 안 되는 환자, 즉 좀더 죽음에 가까운 환자에게 행하는 치 료다. 완화의료를 선택한 환자는 항암치료 등의 완치를 위한 치료 를 병행하는 반면 호스피스에서는 힘든 증상을 경감하는 치료만을 한다는 차이점도 있다. 다시 말해 완화의료는 좀더 넓은 범위의 환 자들을 포함하는 치료로 이해하면 되는데 예를 들어 암을 진단받 고 완치 가능성이 있는 초기로 판정되어 수술 등 완치 목적의 치료 를 하면서 완화의료를 병행할 수 있다. 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 발견되고 그 치료를 시작하는 모든 단계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치료의 한 축인 셈이다. 완화의료에서 제공하는 주요 돌봄은 다음의 여섯가지 영역이다.
1) 통증 및 신체적 돌봄: 통증, 호흡곤란, 구토, 복수, 부종, 불 면 등 고통스러운 신체 증상을 조절.
2) 심리적 돌봄: 환자와 가족의 불안, 우울, 슬픔 등의 심리적 고통을 완화
3) 사회적 돌봄: 경제적, 사회적인 어려움을 파악하여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하여 지원.
4) 영적 돌봄: 삶의 의미,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에 의한 고통
을 경감시키기 위해 노력.
5) 임종 돌봄: 임종 시기의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완화시키고 가족이 임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지.
6) 사별가족 돌봄: 사별 후 가족이 겪을 수 있는 불안, 우울 등 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
- 호스피스 서비스의 경우 병원에 입원하는 입원형과 가정에서 돌 봄을 받는 가정형 서비스로 구분된다. 입원형 호스피스는 암 환자 에게만 적용이 되는 반면 가정형 서비스는 말기 후천성 면역결핍 증, 말기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말기 만성 간경화 등 적용되는 질환의 범위가 넓다. 입원형 서비스도 다른 의료 서비스와 같이 건 강보험이 적용되며 암 환자의 경우 일반적인 치료와 동일하게 본 인 부담금 5퍼센트만 적용된다. 그러다보니 호스피스병원에 입원 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죽음을 앞두고 준비가 강 조되는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아산 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의 상급 종합병원들을 포 함하여 전국 50여개소의 종합병원, 병원, 요양병원에서 호스피스 입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이용하라는 말에 환자나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는 말을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과 동의어로 여기고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하지만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모든 삶에 적용이 되는 명제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가 삶을 덜 고통스럽게 마무리하기 위해 이용하는 의료에 대해 딱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이유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냈 던 환자와 가족들은 고통이 덜했고 음악요법, 미술요법 등의 프로 그램을 이용하면서 정서적 지지를 얻고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보냈 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 우리나라의 중환자실 치료 후 환자의 생존율은 얼마나 될까? 어쨌든 숨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것이고 이런 현대식 기계들을 동원해서 치료하면 대부분의 환자가 살 수 있으 리라고 생각되지만, 일반인들의 생각과 현실은 매우 다르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대한민국 중환자실 입실 환자의 생존율 은 64~66퍼센트로 의료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향상되지 않았 다. 이 수치는 식물인간이 되거나 심한 기능장애를 안은 채 생존 한 예를 모두 포함한 수치기 때문에, 실제로 정상생활로 돌아간 예 는 훨씬 적다.
환자가 죽었건 살았건 특별한 의사 표명을 확인하지 않으면 무 조건 하고 보는 심폐소생술과는 달리, 중환자실은 자원 소모가 많 은 한정된 시설이기 때문에 입실에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즉 모든 병원에서는 중환자실 치료를 받으면 생존, 그것도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따져 입실 여부를 결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기준이 없으면 말기 환자가 임종 직전에 중환자실 치료를 받는 동안, 급성 질환으로 위중한 상태에 있지만 위기만 넘기면 정상 상 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환자가 자리가 없어서 입실하지 못하 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렇게 엄격한 기준에 의해 입실해도, 중환자의 4할 정도가 생존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 체외연명치료협회 Extracorporeal Life Support Organization, ELSO의 지침에 따 르면 에크모 치료의 기준은 회복될 가능성이 있고 일반적인 치료 로는 반응이 없는 심각한 폐, 심장 부전이라고 되어 있다. 인공호흡 기를 달아도 적절한 산소포화도가 유지되지 않는 경우, 심인성 쇼 크나 심정지, 심장 이식에 앞서 시간을 벌기 위한 경우가 가장 흔 한 적응증이 되는데 이런 가이드라인은 사실 아무런 지침이 되지 못한다. 환자의 전체적인 경과를 조망하지 않은 채 현재의 문 제들만을 바라보면 모름지기 현대의학에 있어서 고치지 못할 병 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기 암 환자가 폐렴에 걸린 경우 당 장의 폐렴 치료만 하면 또 얼마간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인데 의료인들조차 이런 궤변에서 헤어나 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명치료의 기술이 너무 빨리 발전하고 이에 대한 윤리적, 철학적 논의가 성숙되기도 전에 법리적 귀책이 앞서버린 결과다.
- 에크모를 단 환자들의 실제 생존율은 어느 정도일까? 2015년 통 계는 신생아의 경우 75퍼센트, 소아 호흡부전의 경우 56퍼센트, 성 인 호흡부전의 경우 55퍼센트 정도로 일견 상당히 높아 보이지만 이것은 에크모를 다는 적응증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한 결과다. 심 폐소생술처럼 죽었는지 살았는지 따지지도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하게 되면 당연히 생존율은 높지 않다. 게다가 인공호흡기처럼 에 크모도 한번 장착하면 법리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떼는 것이 불 가능하다. 이럴 때 의료진의 전문적인 견해가 가장 중요한데 불행 히도 의사들은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것이 두려워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기도 한다. 때로 인공호흡기 등의 연명치료는 사람이 천수를 다할 수 있었는데 해야 할 치료를 안 해서 사망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 그럼 어떤 사람이 심폐소생술 후 살아날 가능성이 높을까? 심정 지의 원인이 심인성인 경우, 즉 심장의 기능만 되돌리면 생존이 가 능한 심근경색이나 부정맥 등으로 인해 심정지가 일어났다면 심폐 소생술로 환자를 살릴 확률이 높다. 또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환자가 젊으면 소생 가능성이 높다. 연구 결과 80세 이상의 심폐소 생술 후 1년 생존율은 0.8~3.7퍼센트였다.
- 그러나 연명치료에 대한 의사를 따로 밝히지 않은 환자가 병원 에 입원해 있다가 심정지가 일어나면, 의료진은 법적 책임을 회피 하기 위해 일단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것이 디폴트처럼 되어 있 다. 이런 상황에서는 심폐소생술의 높은 생존율을 기대할 수 없다. 기술의 문제가 아닌, 환자의 문제인 것이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비의료인은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병원 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최후의 순간 병원에서 심폐소생술까지 한 뒤에야 비로소 죽음을 맞이한다.
- DNR이란 우리말로 '소생시키지 말라'를 뜻하는 영어 "Do Not Resuscitate"의 약자다. 환자의 심장이 멎거나 호흡을 하지 않게 되 는, 즉 사망하는 경우 심폐소생술이나 중환자실 치료와 같은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힐 시 법적으로 DNR이 성립된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구두로만 밝힌 의사는 법적 효력이 없 다. 반드시 서식으로 남겨야 한다. 따라서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의 사를 밝힐 방법이 없고 자동적으로 심폐소생술과 연명치료에 들어 가게 된다
- 최근 서구 의료계에서는 DNR이라는 용어가 마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Do Not 는 뉘앙스를 띠기 때문에 능동적인 의미의 '자 연사 허용'Allow Natural Death, AND 이라는 용어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 다. 즉 심폐소생술의 낮은 회생률에도 불구하고 DNR이라는 용어 를 쓰면 마치 중요한 처치를 하지 않았다는 오해를 가져온다는 비 판이 제기된 것이다." '소생' 치료가 어디까지인지를 두고는 아직 까지도 논란이 있지만, 좁은 의미에서의 DNR 혹은 AND는 기도 삽관과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미리 DNR 의사를 밝힌 환자라도 항암치료나 항생제, 투석, 수액 영양 공급 등은 지속 할 수 있다.
- 연명치료 법안이 통과된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 료계획서에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거나, 하다못해 DNR 동의서라도 서명을 하지 않으면, 환자들은 아무리 원하지 않 아도 연명치료를 받아야 하고 이를 시행하지 않은 의료진은 법적 인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막연한 웰다잉 준비가 아니다. 이제 준비 되지 않은 모든 죽음은 개인적, 사회적 재앙으로까지 이어진다. 노 환으로 사망한 환자에게도 막판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으면 살인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DNR의 과정도 철저 한 준비가 필요하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결과는 때로 참혹하다.
-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지금 그들을 보러 가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인생 수업』)
- 대부분 집에서 죽는 것을 선호하겠지만 불행히도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집에서 죽기 위해 필요한 자원 (공간, 돌볼 사람 등)을 가늠해보고 감당이 되지 않으면 결국 요양원을 택해야 한다. 죽음은 병이 아니기 때문에 이때는 요양병원이 아닌 요양원을 선택해야 한다. 불행히도 요양원에 자리가 없어 요양병 원을 선택하게 되어도 이곳이 나의 마지막을 보낼 장소라는 것을 그곳 의료진에게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요양병원도 병원이니만큼 조금만 상태가 나빠지면 바로 상급 종합병원으로 환 자를 전원하기 때문이다. 상급 종합병원으로 이송되면 결국 또 연 명치료 하네 마네 논의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 의 준비라고 생각하는 묏자리와 수의는 사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다. 그건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일일 뿐이다.

- 노인들이 외출을 못하는 단계가 되면 가족들은 첫번째 준비를 해야 한다. 혼자서는 장보기나 병원 출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누군가가 옆에서 식사 준비를 돕고 통원 치료할 때 필요한 차량과 보행 보조도구(보행기나 휠체어)를 준비해야 한다. 이 단계가 되면 노 인장기요양보험의 도움이 필요해진다.
-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인하여 혼자 힘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대상자에게 요양보호사나 요 양시설 등을 통해 신체 활동 또는 가사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 는 제도다. 궁극적으로 혼자 힘으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 들에게 장기간의 요양급여를 제공하여 노후의 건강 증진 및 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 목적이다.
수급 대상자는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치매·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병을 앓는 65세 미만의 환자 가운데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사람이다. 장기요양 대 상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건강보험공단에 의사의 소견서를 첨부 하여 장기요양인정 신청을 해야 한다. 이후 공단 직원이 방문하여 수급 자격이 되는지를 조사한 후 등급판정위원회에서 등급을 결정 한다. 기존의 노인복지 서비스 체계가 주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 급자 등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운영되어온 것과 달리 노인장기요양 보험은 소득에 관계없이 심신기능 상태를 고려한 요양 필요도에 따라 장기요양 인정 대상자에게 서비스가 제공되는, 좀더 보편적인체계다.
이런 시기가 오면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문제는 사실 어디에서 누가 노인을 돌볼 것인가이다. 전통적으로는 집에서 자식들이 돌 보았지만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죽음을 늘 곁에서 보는 완화의료 종사자나 요양사들은 입을 모아 "집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본인이 항상 보던 벽, 가구, 창문, 사람들을 바라보며 삶을 마치는 것이 환자에게 가장 좋은 일이라는 것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집에 누군가가 붙어서 노인을 계속 돌봐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환자용 침대를 들이고 환자가 안온히 거할 수 있는 상당한 공간이 필요하다. 즉 독립적인 넓은 방 한개가 있어야 하는데 좁은 아파트 생활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결론적으로 집에서 죽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 대다수의 경우 경제적인 이유로 다른 길을 선 택하게 된다.
다른 길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등의 시설 입소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의사, 간호사 등의 상주 의료 인력이 있느냐 없느냐다. 요양병원은 말 그대로 병이 있는 사람을 진료하는 병원이기 때문에 반 드시 노인만 입원하는 것이 아니고 골절 등으로 3개월 이상의 장 기 입원이 필요한 젊은 환자도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러나 요양병원은 말은 병원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 가 이루어지는 곳은 아니다. 입원해 있던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하 면 바로 상위 병원으로의 전원이 이루어진다.
요양원이 노인장기요양보험 2등급 이상이어야 입소가 가능한 반면 요양병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권고하는 병명과 입원 기준을 충족한다는 진단서가 있어야 입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요양병원의 입원 기준은 엄밀히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입원할 필요가 없는 환자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것이 사회 문제 가 되고 있다. 즉 요양원에 들어갈 정도의 상태는 아니지만 집에서 수발을 할 수 없는 환자들이 국민건강보험을 이용해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집에서의 기거가 불가능한 노인들 중 한두가지 질병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비교적 느슨한 입원 기준을 이용해 입소하게 되는 것이다. 요양원도 노인 장기요양보험 2등급 이상이어야 하지만 3~4등급도 예외적으로 입 소를 인정해주는 사례도 있다. 현재로서는 두 시설 모두 가족을 대 신해서 환자 수발 업무를 대행하는 기관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장소는 요양병 원이 아닌 요양원이 되어야 한다. 
- 요양병원은 건강보험, 요양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의해 비용 이 커버된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사안들을 벗어나면 모두 비급 여 처리가 되어 환자가 직접 돈을 내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의해 보장이 되는 액수는 4인실 기준으로 1인당 1일 5만 5,000원~ 6만 5,000원이다. 가장 큰 비용은 간병인 비용인데 규정에 따르면 환자 2.5인당 1인을 권고하고 있으나 간병인을 이 기준대로 채용하 고 있는 시설은 거의 없다. 간병인 1인을 한 사람이 한달간 고용하 려면 최소한 220만원이 드는데 2.5인 기준이라면 1인당 부담해야 하는 액수는 최소 월 90만원 정도가 된다. 그나마 인건비가 싼 중국 교포의 경우가 그렇다. 따라서 이렇게 규정대로 간병인을 두는 경우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다른 비용들을 포함하면 1인당 입원 비용은 월 150만원을 훌쩍 넘기게 된다. 일반적인 요양원 혹은 요 양병원의 월 비용이 100~120만원 정도라면 간병인을 기준에 맞춰 서는 도저히 둘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간병인들은 간병인들대로 고된 업무에도 불구하고 급여 수준이 낮아 한곳에서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시설보다는 재가요양사 일 을 선호한다.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사례들, 환자를 결박해두는 것, 학대, 위생상태 불량, 불결 등의 문제는 결국 사람을 싼값으로 부리는 데에서 비롯되는 부작용이다. 국공립 시설 중 1등 급의 경우 한달에 70만원 정도로 모든 비용을 커버해주는 곳도 있 지만 1년 정도 기다려야 하는 등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마찬가지로 입소가 매우 어렵다.
- 의외로 시설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요양병원의 경우 4인실 을 선택할 것인가, 비급여인 1~3인실을 선택할 것인가가 가장 중 요한데 유감스럽게도 이것 역시 전적으로 비용의 문제다. 1~3인 실 입소 시 별도로 월 90~300만원 정도의 병실료가 발생한다. 1인 실의 경우 비용은 시설마다 달라지는데 고위층 인사들이 방문하는 것으로 유명한 B병원의 경우 1인실 1일 입원료는 27만원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손길이기 때문에 간병인 력에 대한 비용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다면 나머지 문제들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부모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 주는 간병 인력에 대한 정당한 대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 다. 시설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등 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에 비하면 모두 이차적이고 호불호에 불과하 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최저 임금을 감안해서 계산하면 24시 간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1인의 임금은 월 500만원이 넘게 된다.

- 집에서 죽는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앞에서 말한 공간 문제 외에도 역시 비용 문제가 제일 먼저다.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 환자의 손발이 되어줄 누군가가 24 시간 돌봐야 한다. 가족들이 직접 돌본다는 가정은 아예 배제하고 논의를 해보겠다.
1. 노인장기요양보험의 1등급을 받는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24시간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 면 1등급으로 정의가 된다. 우선 월 15만원 정도를 내면 1일 4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4시간으로 돌봄이 끝나지는 않는다. 결국 요양보호사 자격을 가진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는데 1개월 기준 약 220~280만원 정도의 급여(2인 교대 기준)를 지불한다. 이 비용 은 해마다 크게 오르고 있는데 최근 지인의 경우 부모님 재택 간병 인에게 월 460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 명심할 것은 사람 손에 달린 일은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서비스 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장 기본적인 비용의 문제가 해결 되더라도 역시 남이 하는 일이니만큼 간병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지를 살피는 것은 가족들의 몫이다.
2. 환자용 침대와 물품을 대여한다
병원에서 쓰는 것과 같은 머리를 올릴 수 있는 침대를 이용해야 식이 섭취를 제대로 할 수 있고 흡인 폐렴 등의 위험을 줄일 수 있 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복지용구 대여 시스템을 이용하면 환자 용 침대를 빌릴 수 있다. 여기에 욕창방지용 에어 매트리스나 휠 체어도 대여가 가능하다.
3. 식이
어느 시점이 되면 식사를 하는 것 자체가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이 된다. 유동식 형태의 영양 공급용 제품들을 이용할 수 있고 경 우에 따라 레빈튜브를 코로 삽입하고 튜브를 통해 식이와 수분을 공급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레빈튜브는 당하는 사람에게는 결 코 편한 방법이 아니다. 무리하게 떠먹이거나 식이를 강요하는 경 우 흡인 폐렴이나 질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환자 혼자 힘으 로 먹는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4. 언제 병원에 가야 할까
사망이 임박한 경우 가족들은 환자가 갑자기 의식이 나빠진다든 지 숨을 가쁘게 쉬면 놀라서 병원으로 이송하는 일이 있다. 죽음의 과정은 다시 질병이 되고 의식이 희미해진 환자에게 생전의 의지 가 어떠했든 더이상의 결정권은 없어진다. 따라서 환자 자신이 원에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혀두어야 한다. “누나가 부모 를 집에 방치"라는 논리로 송사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이 런 문제는 반드시 문서로 남겨 두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망한 후에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이 필 요하다. 119에 연락을 하여 망인을 평소 다니던 병원, 잘 아는 의료 진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 병사에 의한 사망진단서를 발부받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 지체를 했을 때 최악의 경우 변사 처리가 되어 부검을 하는 일이 있다. 우리나라도 왕진 시스템이 활성화되어 집에서 사망하는 경우의 법적 처리가 원활히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사망 과정을 문제 삼을 만한 가족이 있는 경 우 환자의 방에 CCTV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5. 언제 가족들을 불러야 하나
임종을 지킨다는 것이 현대사회에서는 말처럼 쉽지 않다. 꺼져가는 생명도 하루는 아주 좋아 보이는 일이 있다. 다음의 증상이 생 기면 환자의 사망이 1~2주 내로 임박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낮과 밤이 바뀐다.
*식욕과 갈증을 호소하지 않는다.
*대소변의 양이 줄어든다.
*통증을 더 많이 호소한다.
*혈압이나 호흡수, 맥박이 평소 수준과 달라진다.
*체온의 변화가 심해진다.
*의식이 나빠진다.
*목 뒤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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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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