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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신 3

경영 2015. 4. 24. 15:47

 


경영의 신. 3: 세상 최초의 표준을 만들어라

저자
정혁준 지음
출판사
다산북스 | 2013-02-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위기도 기회로 바꿨던 미국 경영의 신!『경영의 신』 제3권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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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네기, 록펠러, 포드는 미국에서 어떻게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일단 지리적 기회다. 그들 또는 그들의 조상은 모두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해온 이민자들이었음. 록펠러의 증조부는 1723년 독일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왔음. 포드의 아버지도 1847년 아일랜드 감자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들어옴. 카네기 역시 부모와 함께 1848년 미국으로 이주. 이들 모두 미국의 북동부에 자리를 잡았다는 게 공통점임. 미국 북부의 뉴잉글랜드는 거칠고 돌투성이인 산악지방인 반면, 남부의 버지니아는 비옥한 평야지대였음. 이 때문에 산악지대였던 북부는 농사보다 가내수공업 같은 공업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비옥한 토지를 갖고 있던 남부는 면화와 담배같은 농업이 크게 발달. 미국 개척사는 신대륙으로 이주해온 이민의 역사였음. 미국의 이민은 1603년 영국 본토인 미국 동쪽 해안 이주로부터 시작됌. 하지만 같은 동쪽 해안이라도 뉴잉글랜드와 버지니아는 차이를 보임. 공장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했던 북부는 서부유럽 및 북부유럽의 이민을 받아들여 공업화 사회였으나, 남부는 보수적이며 영국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었다. 경영의 신의 조상들이 이주할 당시 남부는 영국계 이민자들이 대농장에서 터를 잡고 있었음. 독일계,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계였던 그들은 북부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오히려 북부는 기회라는 유산을 남겨주었음. 만약 경영의 신의 최종 이민지가 남주지방이었더라면, 그들은 경영의 신으로 거듭나지 못했을 것임. 우리나라 지주계층이 한국전 전후로 몰락했던 것처럼, 미국남부 지주층은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몰락했기 때문. 포드를 제외한 카네기와 록펠러에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183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는 점. 카네기는 1835년생이고, 록펠러는 1839년생. 1830년대생으로 미국 경제를 주름잡던 사람은 철도왕 제이굴드(1836)와 금융제국을 건설한 JP모건(1837)도 있다. 이들 모두는 미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을 때 기회를 잡음. 그들이 10대리 때는 미국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꿈을 펼치도록 자극한 시대였음. 신대류 곳곳에 은행이 들어서고 운하가 개설되면서 금융이 발전하고 물자이동이 자유로워지기 시작. 강에는 증기선이 오르내렸으며, 철도와 전신의 발달로 농업국 미국이 공업국으로 변신해 나갈 때였음. 그들이 20대일 때는 남북전쟁이후 산업화 바람이 불면서 본격적으로 공업화가 진행됐따.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맥이 발견되자, 9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금광을 찾아 서쪽으로 몰려들었다. 서부개척은 철도와 같은 교통의 발달을 이끌었고, 미국에서 최초의 전국 규모 시장이 만들어지기 시작. 경영의 신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산업혁명에서 비롯됐다.
- 기술의 진보와 공장의 등장으로 가내수공업은 급속히 몰락. 카네기 아버지도 그중 한사람이었음. 그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 자신의 젊음과 함께 했던 직조기를 헐값에 넘겨야만 했음. 아일랜드에서 신대륙으로 건너간 포드의 아버지 역시 산업혁명의 간접 피해자였음. 영국에서 섬유산업이 발달하지 아일랜드의 목화산업과 가내수공업은 도산하게 됨. 여기에 감자기근마저 터지자 포드의 아버지는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산업혁명의 직간접적인 피해를 당했던 아버지와 달리 아들에게는 산업혁명은 기회가 됨. 미국의 산업혁명은 남북전쟁을 전후로 진행됨. 당시만 해도 미국의 기술력은 영국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졌음.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영국의 기술을 모방하거나 훔쳐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만들었음. 대기업이 적었으며, 국가개입이 전혀 없었음. 카네기나 록펠러 같은 기업가에겐 천국이었다. 물론 노동자게게는 지옥과 다를 바 없었지만, 여기에 미국은 유럽국가와 달리 대서양으로 떨어져 있어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었다. 수출보다 내수위주의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좋은 환경이었음. 록펠러, 포드, 카네기 가족처럼 미국으로 이민오는 사람들은 계속 증가했음. 풍부한 노동력이 계속 공급된 것. 하지만 미국 전역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남부는 농산물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였기 때문에 북부에만 실질적인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전통적 경제를 지배하던 규칙이 부서지고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경영의 신은 그 속에서 기회를 잡아나감
- 존(아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에서, 빌(아버지)은 끊임없이 여행과 돈벌이에 대해서만 궁리했기 때문에 매력적이긴 하지만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으로 통했다. 그런 아버지를 가진 소년 존은 악의적 험담을 가려내고 주위의 평판에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비밀을 지키는 습관과 대중에 대한 공포, 쓸데없는 수다나 부주의한 언사에 대한 경멸 등을 특징으로 하는 성격을 지니게 되었고, 평생토록 이런 성격을 유지했음. 록펠러는 비밀스러운 태도를 익혔고, 낯선 사람에게는 시비조로 대했다. 이는 아마도 자기방어 본능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부의제국 록펠러, 론 처노)
- 공황은 세계사의 흐름을 갈라놓았음. 독점자본을 불러온 것이다. 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보다 생산을 합리화하고 새 시장을 획득하는 일이 필요했다. 공황기에 사정이 악화된 기업을 정리하고 대자본 아래로 통합하는 움직임이 싹트게 됐다. 최초의 공황은 최초의 세계대전을 낳음.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너나없이 값싼 원료와 신규 노동력 확보에 나섰기 때문. 바로 식민지 건설이었음. 새 시장개척을 한다는 목적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식민지가 가속화됨.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가세한 식민지 경쟁은 새로운 시장을 열고 경제를 되살렸으나 결국 전쟁으로 귀착되고 말았다. 인류가 경험한 최초의 세계적 불황이 최초의 세계전쟁인 1차대전을 낳은 셈. 공황은 역설적으로 세계경제의 중심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시켰다. 유럽 투자자들이 보유주식을 헐값에 내던지는 바람에 주가가 더 떨어졌지만 35%에 이르던 외국자본의 철도산업 평균지분이 10%로 떨어짐. 유럽인들은 수익을 한푼도 못 건진 채 광대한 미국 철도망만 건설해준 꼴이 됨. 공황은 승리자와 패배자를 갈라놓았다. 대공황 이후의 승자는 현금을 보유한 회사들이었다. 미국의 거대 제조회사들에겐 공황이 황금기였다. 카네기와 록펠러는 충분한 자본금이 있어 전혀 문제가 없었음. 외부자본에 의존하던 작은 회사들은 가혹한 패배자였다. 돈이 말라버리면서 그들도 말라갔다.
- 카네기와 록펠러는 경쟁자의 자산을 헐값에 사들임. 다른 시각으로는 미국의 한계기업이 정리되면서 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해졌다는 분석도 있음. 우리나라 외환이기 때와 비슷한 양상이 이미 미국에서 벌어진 것
- 록펠러는 회사가 한 사람의 개성에 따라 움직이도록 내버렫지 않았음. 그는 개성이 강한 이사들을 상대로 균형감 있게 조직을 이끌었다. 조직관리를 통해 록펠러가 원한 건 단 한가지. 회사에 변함없는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것. 트러스트는 이병철이 만든 비서실과 비슷함. 비서실은 삼성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병철이 계열사를 직접 챙기기 힘들어지자 그룹을 조율하기 위해 만든 조직. 인사에서 기획, 재무, 감사, 금융, 경영관리, 홍보분야로 업무영역이 광범위했다. 비서실은 재계의 청와대로 불리며 그 힘을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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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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