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11.07 현대경영, 마키아벨리에게 답을 묻다
  2. 2014.10.18 군주론(서울대 출판문화원)
  3. 2014.10.17 군주론

 


현대 경영, 마키아벨리에게 답을 묻다

저자
랄프 리슈 지음
출판사
시그마북스 | 2014-07-1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군주론》를 현대 경영에 접목시키다!시대를 초월하는 경영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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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주론을 귀족계층을 위한 지침서로 생각하고 경영과도 관련된 책이라는 것을 간과한다면 그것은 책 제목을 잘못 이해한 것. 실제로 이탈리아어로 된 원서 'Il Principe'의 초창기 번역서들은 정치권력은 혈통에 의해 승계되는 것이 합법적이라는 것을 당연시하던 바로크 시대의 정신을 따랐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는 통치자가 어떻게 권력을 쥐었든 그것은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그는 'Il Principe'를 서열이 가장 높은 로마시대 최고권력자들의 개념으로 이해. 그런 점에서 'Il Principe'는 기업 최고경영자나 관리자 또는 단순히 어떤 조직의 장으로 해설될 수 있음. 결국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귀족들에 대한 책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힘의 메커니즘에 대한 책.
- 군주론은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사악한 방법들을 제시해 주는 책. 그러니까 결국 영광에 이르는 길을 안내해 주는 여행안내서쯤으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많음. 그러나 군주론은 큰 조직의 보스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찾는 독자들에게 다소 실망스런 책일 수 있음. 어쨌든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를 그런 조언이 필요없는 통치자에게 헌정했기 때문. 로렌초 2세는 이미 권력을 손에 쥔 통치자였으니 말이다. 마키아벨리의 주요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임. 그리고 군주론은 전적으로 그런 관점에서 쓰여진 책.
- 다른 사람을 권좌에 올리는 데 힘이 되었던 사람은 결국 몰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권력을 잡는 일은 교모한 술책이나 힘에 의해 성취되는데, 이 두가지는 모두 권좌에 오른 사람이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것입니다. (군주론 3장).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감사라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킹메이커, 즉 실권자를 뒷받침해 준 사람은 조만간 몰락하게 되며, 남은 시간 내내 세상의 부당함을 원망하며 지내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안겨주기 위한 노력이 보상을 받는 경우란 거의 없다.
- Manus agere, 손을 잡고 이끈다는 뜻의 라틴어임. 관리자를 뜻하는 영어단어 매니저는 그 말에서 유래. 그러나 실제로 진정한 관리자는 그렇게 하지 않음. 일반적으로 관리자들은 키를 잡고 조종함. Manus agere라는 라틴어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manus가 가리키고 지시하고 지휘하는 손을 뜻하기도 함. 용감함과 대담함을 뜻하기도 함. 한걸은 더 나아가 무장한 군대를 뜻하기도 함. 그러니까 관리자가 개발해 추진하는 과감한 전략을 실행하는 손인 것이다. 역동적인 전략가이자 장군으로서의 관리자, 관리자들이 사람들에게 듣고 싶어하는 말이 바로 그런 것이다.
- 군주는 전쟁과 전술, 그리고 훈련 외에 다른 목표나 생각에 관심을 뺏겨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야말로 통치하는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할 유일한 것들이며, 세습군주의 자리를 지켜줄 뿐 아니라 가끔은 일개 평민을 군주자리에 오르게 해줄수도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군주가 군사력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안락한 삶에 더 관심을 보인다면, 그 군주는 틀림없이 나라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군주가 국가를 잃게 되는 주된 이유는 군사력을 키우는 일을 등한시 하기 때문이며, 국가를 손에 넣을 수있게 해주는 주된 이유는 군사력을 키우는 일에 능통하기 때문입니다. (군주론 14장) 관리자는 관리를 해야 하며 관리외에 다른 것을 해서는 안된다. 마키아벨리보다 2000년 각까이 전에 살았던 손자는 일찍이 병법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 "병법은 국가의 흥망성쇠에 더없이 중요하다. 전쟁은 한 나라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며, 안전 또는 파멸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심도있게 다루어야 할 주제이며 어떤 경우에도 등한시 해서는 안된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관리자가 상사들과 부하직원들이라는 서로 다른 두 그룹 사이에서 중재자로 나서 갈등을 다루는 것은 경영분야에서 필요한 고도의 병법이다. 그러자면 나름대로 정한 원칙과 절차들을 기본틀로 삼아, 조직의 복잡성을 줄이고 그 원칙과 절차에서 벗어나지 않게 지속적인 감시를 해야한다. 그리고 원칙과 절차에서 벗어나는 일은 바로잡거나 아니면 혁신을 꾀한다는 마음으로 지지해 주어야 한다.
- 관리자는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과 악덕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서로 충돌하는 전장에 서 있는 장수와 같다. 늘 미덕을 장려하고 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악덕을 지지하고 행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임. 오로지 선한 것만을 추구하는 도덕주의자나 권력밖에 안중에 없는 영악한 출세주의자라면 선택을 하기 쉽겠지만, 결국 둘다 실패하게 될 것이다. 미덕과 악덕을 적당히 섞어 칵테일을 만들려는 시도 역시 결과가 좋지 않을 것임. 늘 그렇듯 해답은 양 극단 어딘가 중간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제가 앞서 나열한 미덕을 다 갖출 필요는 없으며 그저 그런 것들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감히 말씀드리건대, 그 미덕들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 늘 실천하는 것은 오히려 해로우며, 그저 그 미덕들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롭습니다. 그러니까 자비롭고 신의도 있고 인정이 있으며 신실하고 강직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워낙 확고하게 굳어져 있어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싶지 않다면, 필요할 때만이라도 자신의 성격과 정반대 성격으로 바뀔 수 있어야 합니다. (군주론 18장)
- 관리자는 기업 대내외적인 여러가지 일에 직접 관여하고 진지하게 인맥을 쌓을 필요가 있음. 상아탐의 이론적인 세계안에서만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비즈니스 환경을 이해할 수 없음. 일부 조언가들은 높은데서 내려다보는 헬리콥터 관점을 권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그와 반대되는 관점을 요구. 관리자가 자신의 조직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기업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대해 철저히 알아야 한다는 것. 관리자가 비즈니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비즈니스 과정들을 철저히 공부하고, 그 전후 상황들을 잘 이해해야 하며, 직원과 동료, 사업동업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열린 귀와 눈으로 비즈니스 환경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
- 세세한 것을 다루는 것은 관리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표준적인 작업절차와 온갖 종류의 자격증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더 심화되고 있음. 그런 경향이 비즈니스가 최적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부채질하기 때문. 어쨌든 다양한 표준에 맞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공인된 자격증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표준화에 의존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 표준화된 것처럼 보이는 일 등에 실은 모든 종류의 차선책이 가능하기 때문. 업무과정이 복잡할수록 그만큼 표준화시키기가 어려움. 게다가 표준화된 방식보다 차선책이 더 좋다는 이유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 모든 조언가들은 한 방향을 가리키지만, 일부 조언가들은 자기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을 가리킨다. 조언가들을 조심하라. 그리고 사전에 그들의 목적이 무언지를 알아보라. 왜냐하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자기 이익을 지키려는 생각밖에 없으며,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조언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고 말해놓고 그들은 다른 쪽에서 당신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지켜본다. 따라서 군주는 늘 조언을 구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원할 때가 아니라 당신이 원할때만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누구든 군주자신이 요구할 때 외에는 조언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군주론 23장)
- 기업이든 거기에 속해 있는 부서든 조직은 규칙과 과정들에 의해 움직임. 조직을 뜻하는 organization은 수단이나 도구를 가리키는 organum에서 온 말. 그러니까 결국 조직이란 전적으로 그 규칙과 과정들, 그리고 어떤 목표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루려는 의도된 상호작용으로 움직인다는 말이 된다. 조직을 만든다는 것은 현재 필요한 사항이나 앞으로 예상되는 필요한 사항들에 맞춰 원칙과 과정들을 체계적으로 만든다는 뜻이기도 함. 물론 그 목표는 시스템 전체를 최적화해 의도된 바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하는 데 있음. 이는 일회적인 작업이 아니라 끝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운에 맡기지 않고 능동적으로 해나가야 하는 지속적 작업이다.
-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제멋대로 하라거나 특히 폭정을 일삼으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호함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는 것. 그러니까 관리자는 그야말로 꼭 필요할 경우에만 주저하지 말고 잔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잔인한 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취하는 본보기는 엄청난 학습효과가 있음. 그러나 그런 조치는 관리자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때에 한해, 그것도 초기 단계에 주저함 없이 취해져야 함. 특히 그런 조치는 관리자가 어떤 회사나 부서에 새로 부임했을 때 효과가 있음. 그런 관리자들의 경우, 실제로 약간의 잔인함을 보이는 것이 불가피하기도 함.
그리고 특히 신생 군주의 경우에는 새로운 나라에 위험이 많기 때문에 잔인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따라서 군주는 늘 백성들을 결속시키고 충성심을 보일 수 있게 할 수만 있다면, 잔인하다는 비난을 받는 걸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관대해 무질서를 야기시켜 살인이나 약탈이 일어나게 하는 군주보다는 몇차례 시범을 보임으로써 질서를 잡는 군주가 결국에는 보다 더 관대한 군주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관대하기만 한 군주는 백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지만, 소수에게 잔인한 조치를 취하는 군주는 단지 몇몇 개인에게만 해를 줄 뿐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는 비록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두려움을 사야 합니다. 미움만 받지 않는다면 두려움을 사는 일은 얼마든지 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움을 받지 않으면서 두려움을 사는 것은 군주가 시민이나 백성들로부터 재산을 뺏는다거나 그들의 부녀자를 탈취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큼 후하게 베풀후는 없기 때문에, 현명한 군주라면 인색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백성들은 군주가 근검절약해 외부의 그 어떤 공격에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만큼 재정이 튼튼하며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서도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래서 후하게 베푼 것보다 오히려 더 인정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군주는 모든 사람에게 후하게 베푸는 것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그가 숱하게 많은 사람들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았을 뿐 아니라, 후하게 베풀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인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후하게 베푸는 것만큼 빠른 속도로 자원을 고갈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후하게 베푸는 동안 권력이 약화되고, 결국 가난해지던가 경멸을 받게 됩니다. 아니면 가난을 피하려 하다가 탐욕스러워져 미움을 사게 됩니다. 군주는 그 무엇보다 경멸을 받거나 미움을 사지 말아야 하는데, 후하게 베풂으로써 그 두가지를 다 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후하다는 평판을 얻기 위해 탐욕스러워져 동시에 비난도 받고 미움도 사는 것보다는 인색하다는 평판을 얻으면서 비난은 받되 미움은 사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 군주는 1년 중 편리한 시기에 축제를 열거나 볼거리를 제공해 백성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도시는 각종 길드나 공동체로 나뉘어 있으므로, 군주는 그런 집단들을 존중해 종종 그드과 어울리면서 스스로 정중함과 후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늘 군주의 위엄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군주의 위엄이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도 약화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군주로 21장)
- 군주가 전쟁에서 이기고 나라를 굳건하게 유지한다면, 그 과정에서 쓰인 수단들은 늘 당연시되고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찬양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늘 겉으로 보이는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결과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그런 보통 사람들밖에 없습니다. 그 많은 보통 사람들이 기댈 근거가 없을 때만 소수의 반대자들이 설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배경, 분석, 세부적인 것들, 그런 것들은 신경쓰지 말라. 구경꾼들은 놀라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 관리자는 성공했쟎아.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눈은 그렇게 단순하다. 중요한 것은 성공뿐인 것이다.
- 관리자는 문제가 발생할 때 그걸 인지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문제를 예측할 수 있는 예지력 같은 것도 길러야 한다. 직감이라고 해도 좋다. 조그만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발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아주 예민한 육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함.
군주들은 현재의 분규뿐만 아니라 미래의 분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고, 특히 미래의 분규를 예방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리 예측하면 분규를 치유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분규가 발생할 때까지 방치하고 시간을 보내게 되면, 나중에 병세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져 약도 더 이상 듣지 않게 됩니다. 이는 마치 소모성 열이 발생할 때 의사들이 하는 말과 비슷합니다. 질병 초기에는 치유하기는 쉽지만 그 증세를 알아채기가 어렵고, 초기에 발견하거나 치료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 그 증세를 알아채기는 쉽지만 치유하기가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군주론 3장)
- 군주는 또한 진정한 친구인지 아니면 완전한 적인지를 분명히 할때, 그러니까 망설임 없이 자신은 한쪽편을 들어 다른 편에 맞선다는 것을 선언할 때 존경을 받게 됩니다. 이런 전략이 중립을 취하는 것보다 늘 더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접한 두 군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 경우, 두 군주 모두 강력해 어느 군주가 이기든 그를 두려워해야 하거느 그러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들 간에 갈등이 있을때, 관리자가 예스냐 노냐, 지지냐 반대냐를 분명히 하면 존경을 받을 수 있고 훨씬 더 위험한 지경에서 벗어날 수 있음. 기업세계에서는 온갖 갈등이 발생하는데, 그 갈등에 연루된 이해당사자들은 상대가 어느편인지 알고 싶어함. 그 갈등이 어떻게 끝나든,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갑자기 고립무원에 빠질 수 있음.
둘중 어떤 경우이든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온 힘을 다해 전쟁에 임하는 것이 늘 더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첫번째 경우 군주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그 군주는 십중팔구 승리한 군주의 먹이가 될 것이도, 그렇게 되면 패배한 군주도 기뻐하고 만족해할 것입니다. 게다가 승리한 군주에게 제시할 핑곗거리도 없고 스스로를 지키거나 피신할 방법도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승리한 군주는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돕지 않을 것이 분명한 의심쩍은 친구를 원하지 않을 것이고, 패배한 군주는 자신이 전쟁을 할 때 무기를 들고 일어나 도와주지 않은 그를 굳이 감싸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은 분란이 일어났을 때 흔히 쓰이는 전략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파트너들은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중립을 요구할 것임.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데, 그럴 경우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될 것임.
-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몰라도, 군주는 다른 나라를 공격할 목적으로 자신보다 더 강력한 군주와 동맹을 맺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만일 자신보다 더 강력한 군주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게 되면, 그의 처문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주는 가능한 한 그 어느누구의 처분에 따라야 하는 경우는 피해야 합니다.
관리자의 경우에도 전적으로 더 강한 우군들에게 의존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독립성이야말로 강력한 관리자가 되기위한 필수요건임
- 변화는 무엇보다 힘의 문제. 희망적인 생각만으로는 밀고 갈 수 없음. 설득력 있고 권위있는 사람이 추진하는 변화만이 성공에 필요한 힘을 갖춤.
따라서 우리가 이 문제를 철저히 검토하고자 한다면, 개혁자들이 자신에게만 의존해도 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야 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아니면 자신의 힘을 사용해야 하나 하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 늘 성공하기 어려우며 절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만 의존하고 힘을 사용하는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무기를 든 예언자들은 모두 성공했지만, 무기를 든 예언자들은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날 관리자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마키아벨리 시대에 정복자들이 사용한 무기들과는 다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화에 성공하려면 늘 분명한 계획, 빠르고 단호한 조치, 긴밀한 의사소통, 지속적인 후속조치 등이 필요함. 특히 후속조치가 가장 중요한데, 그것은 처음에는 설득력 있어 보이던 것들도 그리 오래가지 않아 설득력을 잃게 되기 때문.
앞서 언급한 이유들 외에도 사람들의 본성이 변덕이 심하기 때문에 그들을 설득하기는 쉽지만,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더 이상 믿지 못할 때에는 힘으로 그들을 믿게 만들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군주가 스스로 아첨꾼들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에게 진실을 이야기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진실을 말하게 된다면 군주에 대한 존경심이 약해질 것입니다.
관리자의 딜레마가 바로 이것임. 아첨꾼들에 둘러싸여 위험이 발생해도 진실된 이야기를 들을 수 없거나, 아니면 모든 직원이 서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이야기해 제대로 존경을 받을 수 없거나 둘중 하나인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관리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
따라서 현명한 군주라면 제3의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현명한 사람들을 선정해 그들에게만 마음껏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하되, 자신이 요구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군주는 그들에게 모든 일에 대해 묻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그 후 최종결론은 자신이 내려야 합니다.
- 군주는 그 현명한 조언가들이 개인적으로든 단체로든 자유롭게 말할수록 더 총애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끔 처신해야 합니다. 또한 군주는 그들 외에 다른 어떤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서는 안되며, 일단 결정한 일은 강력하게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군주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아첨꾼들에 의해 몰락하거나 아니면 너무 자주 의견을 바꿔 경멸을 받게 됩니다.
- 운명은 격렬하게 흐르는 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범람하면 평야로 넘쳐 흘러 나무와 건물들을 쓸어버리고 한 장소의 흙들을 다른 장소로 옮겨 놓습니다. 도저히 저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 앞에서는 모두가 도망가며 그 격렬함에 무릎 꿇습니다. 그러나 강물의 속성이 그렇기는 하지만 미리 대비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날씨가 잠잠할 때 사람들이 제방을 쌓는 등 예방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 대비를 할 경우, 나중에 다시 강물이 불더라도 물이 수로를 따라 흐르게 되어, 강물의 위력이 통제 불가능하지도 위험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운명도 마찬가지여서 용기있게 자신에 맞설 준비를 하지 않은 곳에서 위세를 떨치며, 자신을 제지하기 위한 제방같은 것이 구축되지 않은 곳으로 방향을 틀어 위세를 발휘합니다.
이제 여기에서 복잡성이나 불안전성을 줄이는 것이 임무인 관리자의 역할로 되돌아가보자. 관리자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자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그에 따른 불확실성은 무엇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예지력이 필요. 마키아벨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위험관리나 다를바 없음. 운명에 맞서 자신이 자유의지를 발휘하고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관리자의 가장 고귀한 임무중 하나
따라서 저는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운명은 변화하는데 인간은 자기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인간의 방식과 운명이 조화를 이룰 경우 성공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실패하게 됩니다.
- 관리자는 소위 사업상 친구라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뒷받침해주는 의무감은 투자수익이 있는 동안에만 유효한 것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함. 투자수익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할 경우, 사업상 우정은 깨질 수 밖에 없음. 그이유를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설명
인간은 두려움을 주는 사람보다는 사랑을 주는 사람을 해할 때 덜 망설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감사하는 관계에 의해 유지되는데, 인간의 본성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될 기회만 생기면 그 감사하는 관계를 언제든 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절대 실패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실망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한 최선의 예방책은 이런 일들을 기업세계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개인적 우정과는 달리, 사업상의 우정은 편의상 맺어진 일시적 동반자 관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사업상의 우정은 그 만료 일자가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이익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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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출판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04-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 국내에서 “정의”의 문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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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누군가를 강력하게 만드는 사람은 바로 그 힘 때문에 몰락한다. 그 힘은 간계 또는 무력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강력해지 사람은 이 두가지 모두를 의심스럽게 보아야 할 것이다.
- 우리 시대에 이러한 두가지 종류의 통치방식의 예로서는 터키와 프랑스 왕이 있다. 터키 왕국 전부는 한 사람의 지배자에 의해 통치되고 나머지는 그의 신하들이다. 그는 왕국 전체를 산자크라는 이름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행정관을 파견하고 자신의 뜻대로 이동시키거나 교체한다. 그러나 프랑스 국왕은 오랫동안 그 국가에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인정과 사랑(충성)을 받는 다수의 영주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들은 세습적 특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국왕도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이를 빼앗을 수 없다. 이 두 국가를 검토할 경우 터키를 정복하는 일은 어렵지만 일단 정복하기만 하면 유지하는 일은 매우 쉽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그와는 정반대로 프랑스 왕국은 쉽게 정복할 수 있지만 유지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 터키 왕국을 성공적으롤 정복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터키 왕국내 지역 군주들에게 초대되는 일이 불가능한 데 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이유로 인해 터키 국왕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당신의 사업을 돕는 것도 바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국왕의 신하로서 묶여 있어 매수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 그리고 부패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앞서 지적한 이유때문에 지지층으로서 주민들을 데리고 올 수 없으므로 그들이 득이 될 가망도 없다. 따라서 터키를 공략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터키가 완벽히 단합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해야 하며 상대의 혼란이 아니라 자신의 힘에 더 많은 희망을 걸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터키가 군대를 재건할 수 없을 정도로 전투장에서 패배해 붕괴한다면 군주의 가계외에 두려워할 것이 없게 된다. 이 가계가 제거되면, 다른 사람들은 주민들로부터 신용을 갖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할 아무도 남지 않는다. 승자는 승리 이전에는 주민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지만 승리 이후에는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프랑스식으로 통치되는 왕국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곳에 쉽게 들어가서 왕국내의 몇몇 영주들을 당신 편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 불평분자와 정치적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기 때문. 앞서 말한 이유에서 이들은 국가로 이르는 길을 열어줄 수 있고 당신의 승리를 손쉽게 만들어 줄 것임. 그러나 당신이 그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일은 당신을 도운 사람들과 당신이 압도한 사람들 모두와 관련해 무한한 어려움을 가져옴. 특정 영주의 가문을 제거하는 것도 충분치 않음. 왜냐하면 새로운 변화(변란)의 지도자가 될 영주들은 남아 있기 때문. 이들을 만족시킬수도 없고 제거할수도 없기 때문에 언젠가 기회가 오면 당신은 국가를 상실할 것이다.
- 귀족의 후원을 바탕으로 군주가 된 사람이 그 지위를 유지할 때 겪는 어려움은 평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군주가 된 사람의 경우보다 큼. 왜냐하면 그 군주는 주위에 자신과 동등해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해 이들을 명령하거나 자신의 방식대로 끌고 나갈 수 없기 때문. 그러나 평민들의 후원으로 군주의 지위에 도달한 사람은 그 지위에 자기 혼자만 있게 되었음을 알게 되고 그의 주위에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없거나 극소수임. 다음, 귀족들을 정당한 방법으로 즉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면서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한데 평민들을 정당한 방법으로 만족시키는 것은 가능함. 왜냐하면 귀족들은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자 하고 억압받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평민들의 목적이 귀족들의 목적보다 더 정당하기 대문. 더욱이 군주는 평민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적대적인 평민을 상대로 안전을 확보할 수 없음. 그러나 귀족의 수는 적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음. 적대적인 평민으로부터 군주가 기대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이들로부터 버림받는 것임. 그러나 적대적인 귀족들로부터 버림받는다는 점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대항할 것이라는 점에서도 두려워해야 할 것임. 왜냐하면 이들은 더 많은 정치적 예견능력과 책략을 갖고 있어 항상 시간을 충분히 갖고 자신을 지키며 자신의 입장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기 때문. 한편 군주는 동일한 평민들과 같이 살아야 하지만 (=평민들은 교체할 수 없지만) 같이 사는 귀족의 경우 동일한 귀족일 필요가 없음. 왜냐하면 매일 귀족을 만들수도 폐할수도 있고 이들에게 자신의 뜻대로 명예를 부여할수도 탈취할수도 있기 때문.
- 획득할 수 없는 것을 원하는 사람만이 그러한 군대(외국원군)를 선택. 왜냐하면 외국원군은 그 안에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용병군보다 훨씬 더 위험하기 때문. 이들은 단결되어 있고 다른 사람(파견국)에 대한 복종의 자세가 갖추어져 있음. 그러나 용병군의 경우 이들은 한덩어리도 아니고 또한 당신이 소집했고 급료를 지불했기 때문에, 또한 당신이 지휘관으로 만든 제삼자는 짧은 시간안에 당신을 해칠만한 충분한 권위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그들이 승리했다 해도) 당신을 해치는 데에는 보다 좋은 기회와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함. 요약컨대 용병군의 경우는 태만이 훨씬 위험하고 외국원군은 비르투(용맹)가 훨씬 위험한 것임. 따라서 현명한 군주라면 항상 이러한 군대를 멀리하고 자신의 군대에 의지. 외국 군대에 의존해 얻은 승리가 진정한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현명한 군주들은 외국군대로 승리하기보다는 자국군대로 패하는 것을 더 선호했음.
- 로마제국 멸망의 주된 원인을 검토할 때 그것이 단순히 고트족을 용병으로 고용한데서 시작했다는 점을 알게 될 것임. 왜냐하면 그 시작으로부터 고트군은 제국군대를 무기력하게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 그리고 제국군에서 탈취된 모든 비르투는 고트군에게 옮겨갔음. 따라서 자국군대 없이는 어떤 군주국도 안전하지 못하며 역경시에 자신있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비르투(군대)를 갖지 못하면 운에 전적으로 따라야만 한다고 결론짓고자 함. 자신의 무력에 기초하지 않은 권력의 명성보다 더 허술하고 불안정한 것은 없다라는 말은 현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자 판단이었음.
- 우리시대에 우리는 인색하다는 평판을 들엇던 사람들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위대한 작업들이 이루어진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몰락했음.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교황직에 도달하기 위해 씀씀이가 너그럽다는 평판을 활용했지만 전쟁을 치르기 위해 뒤에 가서는 이 명성을 지키려고 생각하지 않음. 현재 프랑스왕(루이 12세)은 오랜 절약을 바탕으로 특별지출을 충당했다는 점 하나 때문에 자신의 백성에게 특별세를 부과하지 않은 채 많은 전쟁을 치를 수 있었음. 현재 스페인 국왕(페르난도)이 만일 너그럽다고 여겨졌다면 그는 많은 정복사업을 추진하거나 성취하지 못했을 것임. 따라서 군주는 백성을 약탈하지 안하도 되기 이해, 자신을 지킬 수 있기 위해, 빈곤해져서 경멸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탐욕스럽게 되지 않기 위해서 인색하다는 평판에 개의치 말아야 할 것임.
- 당신은 두가지 종류의, 즉 하나는 법으로 다른 하나는 힘으로 하는 싸움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함. 전자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짐승에게 해당하는 것. 그러나 많은 경우 첫번째 것이 충분치 않아 두번째 것에 호소하는 일이 필요함. 따라서 군주는 짐승과 사람을 잘 사용하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음. 고대의 저술가들은 아킬레우스와 다른 많은 고대 군주들이 켄타우로스인 키론에게 맡겨져 그의 훈도하에서 양육되었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그러한(사람과 짐승을 잘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비유적으로 가르치는 것이었음. 반인반수의 스승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군주는 두가지 본성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만 한다는 점 외의 다른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님. 다른 한쪽이 없는 어느 한쪽은 지속성이 없음. 군주는 짐승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까닭에 그는 여러 종류의 짐승 가운데 여우와 사자를 선택해야 함. 왜냐하면 사자는 덫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고 여우는 늑대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기 때문. 따라서 덫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여우가 될 필요가 있고, 늑대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사자가 될 필요가 있음. 단순히 사자에게만 의존하는 사람은 정치세계의 성격을 알지 못하는 것. 따라서 현명한 통치라라면, 신의를 지키는 일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또한 자신이 약속한 이유가 소멸할 경우 약속을 지킬 수 없고 또한 지켜서도 안됨. 만일 사람들이 모두 착하다면 이런 충고는 유효하지 않을 것임. 그러나 사람들은 악하고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당신도 마찬가지로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됨. 군주가 약속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합당한 이유를 못 가져본 적은 없음. 이 점에 대한 현대의 예는 무한히 들 수 있고 수많은 평화조약과 약속들이 군주들의 배신행위로 완전히 무효로 돌아갔다는 점도 보여줄 수 있음. 여우의 간교함을 사용하는 방법을 더 잘알았던 사람들이 더 성공적이었음. 그러나 이런 간교함을 잘 윤색하는 방법을 알 필요, 즉 능숙한 위선자는 위장자가 될 필요가 있음.
-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에 탐닉함으로써 이로 인해 자신을 속이기(판단을 그르치기) 쉽기 때문에 이 아첨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가 어려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방어하려는 시도는 경멸의 대상이 되는 위험도 수반. 왜냐하면 당신에게 진실을 말해도 당신은 기분상해 하지 않는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외에 아첨으로부터 방어하는 다른 방법은 없는데, 그럴 경우 누구라도 당신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되면 당신은 존경심을 잃게 되기 때문. 따라서 분별력을 갖춘 군주라면 자신의 국가 속에 현명한 사람들을 선택해 사용한다는 제3의 방법을 갖고 있어야 함. 그리고 군주는 이들에게만 진실을, 그리고 다른 것은 아니고 오직 자신이 물어본 사안에 대해서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함. 군주는 모든 일에 대해 물어야 하고 이들의 의견을 청취한 다음 혼자 자신의 방식대로 숙고하고 결정을 내림. 그리고 이런 조언들과 그의 모든 조언자들에 대해서, 보다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보다 많이 수용된다는 점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끔 처신해야 함. 이들 선발된 조언자들 외에는 아무로부터도 의견을 듣지 않고 결정된 사안의 실천에 몰두하고 그 결정을 고집해야 함
- 시운은 변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방식을 고집하는데 이 두가지가 서로 합치될 때 사람은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실패함. 따라서 나는 격렬함이 신중함보다 낫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운은 여자이고 따라서 그녀를 당신의 통제하에 두고자 한다면 때려서라도 억지로 붙잡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차갑게 행동하는 사람보다 격렬하게 행동하는 사람에게 더 쉽게 굴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분명함. 행운의 여신은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고로 항상 젊은이의 친구임.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덜 조심스럽고 더 모질며 또한 그녀를 보다 대담하게 지배하기 때문이다.
- 마키아벨리가 문제로 의식한 점은 그가 활동했던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엽까지의 이탈리아의 정치였음. 당시 이탈리아가 겪던 가장 심각한 정치적 문제는 주변 강대국인 프랑스와 스페인이 주도권 쟁탈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장기간의 전쟁을 치르면서 큰 피해를 끼쳤음에도 이탈리아에는 그것을 저지할만한 어떤 강력한 세력도 없었다는 점에서 발견됨. 이탈리아가 이런 시련을 겪게 된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분열되어 상호 경쟁을 지속하고 있던 이탈리아 여러 지역 세력들 사이의 관계속에서 발견됨.
- 한때는 제국으로서 세계를 호령했던 로마제국의 후예인 이탈리아로서는 주변 강국들이 자신의 땅에서 벌인 각축전은 그대로 인정할 수 없는 정치적 수모였을 뿐 아니라 일상인이 겪던 엄청난 고통과 피해요인이었음. 이러한 일상에 끼친 피해의 아주 적절한 예로서 우리는 마키아벨리 자신의 일을 지적할 수 있을 것임. 즉 그 자신의 공직임명(1498)이나 파직(1512)은 모두 스페인과 프랑스가 벌인 전쟁때문에 발생한 피렌체 안의 정권변동을 계기로 이루어졌던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음. 물론 이런 개인사가 저술의 직접적 동기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10년 넘게 외교관으로서 주변 강대국들을 방문하면서 이들의 발전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던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주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항상 시달려온 이탈리아의 정치적 약점의 원천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었음. 그러에도 당대의 정치지도자나 지식인들이 이 점에 너무 무지했다는 점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임
- 당시 서부유럽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이 종식된(1453) 후 근대식 통일국가들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맞고 있었음. 장기간의 전쟁으로 중세 본건체제의 근간을 이루던 군사세력으로서의 귀족층이 사실상 붕괴하면서 영국 또는 프랑스라는 통일된 영토단위를 대표하는 군왕 중심의 근대식 국가질서가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 이런 발전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정권을 축출하고 혼인을 통해 보다 큰 규모의 통일조직을 형성해낸 스페인에서도 이루어지게 되었음. 이들 국가들, 특히 지리적으로 절연된 영국을 제외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체제는 아직 확실한 안정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문제의 극복은 주변으로의 지리적 확장을 통해 보충되어야 했음. 그런데 그 확장 대상은 당연히 아직 통일된 정치조직을 확보하지 못했던 이탈리아였음. 이탈리아를 상대로 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확장성향은 군사적 충돌을 초래할 수 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는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음.
-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가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유린당하는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보다도 이탈리아를 그에 비견할만한 큰 정치조직으로서 재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았음. 그는 로마사 논고에서 진실로 어떤 나라도, 프랑스나 스페인같이 하나의 공화정이나 군주 밑에 관할되지 않으면 통합되거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음. 문제는 이런 통일작업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고 누군가 정치적 구심세력이 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세력에 의해 강제적 방식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
- 흔히 마키아벨리는 악덕 또는 권모술수를 가르치는 사람처럼 그려짐. 그리고 성공을 위한 비도덕적 수단을 옹호한 인물로 언급되기도 함.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실과 거리가 멈. 마키아멜리가 실제 말하고자 한 것은 군주 즉 정치인의 행동을 사람들이 평가할 때는 무엇보다도 그 행동 또는 정책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느냐의 여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점. 현실적으로 실패한 정책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좋은 평가를 낳을 수 없다는 것. 실제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권력지위를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비열한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쓸 수 없는 경우에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런 성공이 그 비열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있지 않음. 그가 강조하고 싶어한 점은 정치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은 도덕적 선악과는 별도의 효용성 도는 성취도라는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그는 비열하다고 판단되는 행동은 성공적 결과가 있을 경우 정당화되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힐 수 있다고 말함. 왜냐하면 어떤 정책이 비도덕적인 성격을 지니는 경우라도 그 결과로 사람들이 혜택을 입으면 사람들은 그 정책 속에 포함되는 도덕적 결함에 대해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마키아벨리는 강조. 어떤 정치가의 행동을 판단하는 사람의 경우 그 행동의 도덕적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한 이 사람들도 그 행동주체에 못지 않게 이기적이기 때문에 대부분 그 결과가 얼마나 자신에게 혜택을 가져왔는가 하는 실용적 관점이 지배적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 정치의 세계에서는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고 나쁜 의도가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지 않을뿐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경우가 더 흔하다는 논지가 마키아벨리 생각의 저변에 굳게 깔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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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군주론

사회 2014. 10. 17. 22:11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 최장집 (엮음) 지음
출판사
후마니타스 | 2014-04-2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책최장집 교수가 한국어판 서문을 쓰...
가격비교

- 마키아 벨리는 당시 피렌체의 로마교황청 대사이자 손아래 귀족친구였던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보낸 1513년 12월 10일자 편지로 군주론을 집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서구문학 전통에서 가장 유명한 사신으로 평가되는 이 편지에서 그는 당시 자신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저녁이 되면 귀가해 공부에 들어갑니다. 문앞에서 나는 진흙이 묻어 온통 더러워진 옷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는다오. 옷을 잘 가다듬은 다음 옛 선현들의 궁정으로 들어가면, 그분들은 나를 융숭하게 맞아들이지요. 그리고 오로지 나의 몫으로 주어진 것을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만 먹습니다. 나는 그들과 대화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며, 그들은 또 정중하게 대답해 준답니다. 모든 근심걱정도 잊어버리고, 빈궁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도 나를 놀라게 하지 못합니다. 나는 완전히 그들에게 빠져듭니다."
이 편지는 당시 그가 어떤 궁핍속에 살았고, 얼마나 헌신적이고 경건하게 역사로부터 교훈을 끌어내려 노력했는지, 또 어떤 자세로 군주론과 강론을 집필하고 있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줌. 이 편지의 다른 부분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이지만, 마키아벨리는 새 정부에서 공직을 얻고자 하는 희망으로, 새로 선출된 교황 레오 10세의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에게 군주론을 헌정할 생각이었음. 하지만 나중에 그 대상을 바꾸어 줄리아노의 조카인 우르비노공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했음. 마키아벨리는 군주정 지지자도 아니고 메디치 가문을 좋아하지도 않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메디치가의 수장에게 군주론을 헌정하고자 했던 데는 두가지 목적이 있었음. 하나는 생계유지의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복귀해 피렌체를 강력한 국가로 건설하는 데 헌신하고자 함이었음. 도시국가 내지 도시 공화정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고 당시 유럽은 절대왕정을 통해 새로운 국가체제가 형성되는 방향으로 급변하고 있었음. 마키아벨리 역시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음. 그러나 군주론을 통해 공직을 얻고자 했던 그의 원래 목표는 실패로 돌아감. 그의 여망에 대해 돌아온 대답은 무관심 혹은 무관심으로 표현된 사실상의 거부였음. 한참 뒤에야 교황 클레멘스 7세는 마키아벨리에게 피렌체 역사를 집필하는 프로젝트를 맡김. 그 결과물이 마키아벨리의 마지막 작품이라 할 피렌체사 였지만, 이는 메디치 가문이 보여준, 지나치게 때늦은 반응이었음. 그나마도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마키아벨리를 묶어 두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 마키아벨리는 귀족 엘리트 가문이 아닌 중산층 평민출신으로 비교적 낮은 신분배경을 갖고 있었음. 그는 업무수행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베토리나 귀치아르디니와 같은 명문 귀족가문 출신 외교관이나 민병 조직자로서 마키아벨리의 공직 수행은 현명한 실질적 조언자라는 평가를 받음. 그러면서도 파당적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독립적인 정신과 태도로 공직에 임했음. 그러나 그의 독립적인 정치신조와 낮은 출신배경은 귀족들이 그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요인으로 작용. 그가 업무에서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공적은 늘 다른 사람엑 돌아갔음. 최근 연구들은 1512년 말 소데리니 정부가 붕괴되었을 때 다른 행정관들 대부분이 현직을 유지한 반면 마키아벨리는 즉시 파직되고 그 다음해 체포되고 고문까지 받게 된 이유에 주목함. 그것은 정권교체의 혼란속에어 있을 수 있는 단순한 오해나 사고가 아니라, 공직 기간동안 그가 보여준 정치적 태도와 관점이 귀족들의 반감을 불러오고 그들 사이에서 강력한 적대자들을 만들었음을 의미하기 때문. 그는 파직된 이후 사망할 때까지 불운의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게 살아야 했음. 그의 저술 전체를 통해 흐르는 비관적 정조는 당시의 정치환경뿐 아니라 이런 그의 내면적 체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짐. 사망하기 얼마전 귀치아리디니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자신을 가리켜 역사가, 희극작가, 비극작가라고 표현. 그만큼 자신과 조국 이타릴아의 비극적 운명은 그의 모든 역사적, 정치적 저작의 배면에 흐르는, 드러나지 않는 주제였다고 할 수 있음.
- 마키아벨리가 어떻게 새로운 비전으로 국가를 볼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 1494년 프랑스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공. 이는 피렌체가 위치한 토스카나 지방과 북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로마교황청, 나아가 남부의 나폴리 왕국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혼란에 빠뜨린 역사적 대전환점이었음. 이로써 어느 한 압도적 권력이 부재한 가운데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로마교황청, 나폴리의 5대 지역강국 사이에 유지되고 있던 세력 균형이 와해되고 말았기 때문. 로디의 평화라고 불리었던 이 세력균형 체제는 1454년 체결된 이래 1494년 프랑스와 그 후 에스파냐가 이탈리아를 침공하기 전까지 이 지역에 전례없는 안정적 평화공존을 가능케 함. 군주론 20장에서 마키아벨리가 말한대로, 일정한 세력균형은 강력한 외세의 개입이 존재하지 않는 조건에서 가능한 것이었음. 이탈리아 내부의 주변 도시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두 제국이 등장하면서, 피렌체를 포함한 이탈리아 북부 지역국가들은 외세의 먹잇감으로 전락. 이런 환경에서는 주민들 사이의 불화를 조장하거나 파벌로 분열시키는 것과 같은 전통적 통치방식은 더이상 허용되지 않음. 즉, 강력한 외부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국가 내부의 통합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치가 재구성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했던 것. 군주론은 바로 1494년 토스카나 지방에 대한 프랑스의 침공과 그오 린해 메디치 정부의 붕괴 그리고 뒤이은 피렌체의 정치혁명으로부터 시작해, 1512년 에스파냐군의 침공으로 프라토를 방어하던 2천명의 피렌체 민병대가 살육당하고 도시가 약탈당하는 참극이 벌어진 때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함
- 군주론은 테제와 안티테제, 또는 이율배반적 구분을 통해 두 범주로 대립항을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이분법적 구조로 유명. 제일먼저 공화정과 군주정의 이분법이 등장하고, 군주정은 다시 세습된 것과 새로이 획득된 것으로 나뉘며, 통치의 두 유형으로서 프랑스의 분권형과 투르크의 중앙집권형으로 구분. 6, 7장은 이런 구분의 마지막 단계임. 6장에서 저자는 완전히 새로운 군주국을 다루면서 자신의 무력과 비루트를 통해 획득한 것과 타자의 무력과 포르투나를 통해 획득한 것의 두 유형으로 구분함. 6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비르투와 무장으로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건설한 전설적 통치자들로 모세, 키루스, 로물루스, 테세우스를 꼽음.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능력을 가진 국가 창건자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모델로 할 수는 없다고 말함. 그렇다면, 대안으로 남는 것은 교황(알렉산데르 6세)을 아버지로 뒀다는 행운과 타자의 군사력으로 권좌에 오른 인물인데, 군주론 7장에서 등장하는 패러다임 인물이 바로 체사레 보르자임. 보르자는 기본적으로 행운에 힘입거 군주의 지위에 올랐지만, 동시에 그는 비르투를 현현하는 인물임. 마키아벨리가 오늘날에도 인기있는 작품으로 공연되고 있는 희극 만드라골라의 작가이고 여러 소네트와 수많은 서한들을 통해 문학적 자질과 명문들을 남긴 문장가임을 생각한다면, 군주론의 구성자체가 극적인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함. 즉 그는 평면적으로 논리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류가 진행된 마지막 단계인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을 극적으로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 바꾸어 말하면 주인공을 등장시키기 위해 먼저 분류를 하고, 비르투와 포르투나의 이념형적 인물을 배열시키면서 그 초점을 보르자에게 맞추고 있는 것이다.
- 군주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도 배워야 함. 군주론 18장은 신의를 지키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한편, 새 군주에게 국가를 유지할 목적으로 악을 권장하는 가장 악명높은 장임. 여기에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국가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의, 자비심, 인간적임과 종교적 경건함에 반하는 행동을취할 필요가 종종 있기 때문. 할수만 있다면 착하게 사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필요할 경우 어떻게 악해질 수 있는지도 알아야만 한다고 말함. 나아가 군주는 국가를 유지할 목적을 위해 부도덕하게 행위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강요된다는 점도 알아야 함. 이 경우 보통의 기준에서는 부도덕한 정치행위가 일상의 도덕적 규범이나 지배적인 종교적, 기독교적 윤리보다 높은 수준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를 남김
- 정치는 인간의 이기적 추구가 빚어내는 권력을 둘러싼 쟁투, 그리고 그것이 동반하는 악, 폭력, 부패, 타락과 같은 부정적 현상과 불가피하게 혼합될 수밖에 없음. 이런 성격들이 정치의 특성을 만들어냄. 정치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된 고대 그리스 이래로 철학자들은 정치를 이상적이고 도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이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했음. 중세 기독교 시대에는 종교적 목적에 부합하는 정치만이 정당화되었음. 그러나 이런 접근은 결과적으로 정치를 부정적으로 이해하게 만들었음. 정치와 윤리, 정치와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됐고, 정치는 윤리의 하위범주 내지 종교의 세속적 실천을 위한 한 하위분야로 자리매김되었음. 앞의 것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따르는 정치철학이라면, 뒤의 것은 기독교적 전통에서 이해되는 정치사상. 그러나 정치를 도적적 규범이나, 종교의 세속적 실천의 규칙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더 멀어지고 정치의 타락은 더 심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음. 마키아벨리가 보았던 것은 이 패러독스임
- 당위적으로 있어야 하는 상상 속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탐구한다는 말은 정치에 대한 도덕론, 형이상학적 접근을 부정한다는 것을 뜻함. 정치를 있는 그대로 탐구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핵심은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실제 정치 행위에 대한 탐구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행위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비르투가 정치적 처방에서 중심요소로 자리잡게 됨. 즉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현실주의에서 행동주의는 그 핵심적 구성요소의 하나임
- 마키아벨리는 "운명의 여신은 우리 행동의 절반에 대해서만 결정권자의 역할을 하며 나머지 절반 혹은 거의 그 정도는 우리가 통제하도록 사실상 허용하고 있다"고 말함. 풀어 말하면 현실정치에서 행위와 결과간 인과관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행위 여하에 따라 열려 있다는 것. 그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와 역량, 또는 이성만의 결과도 아니고, 환경, 행운, 기회를 포함하는 객관적 조건의 결과물만도 아님. 운명은 절반밖에 사태를 지배하지 못함. 나머지는 행위자가 얼마나 비르투를 갖느냐에 달려 있음.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포루투나가 설사 불리하다 하더라도 끝내는 자기가 의도한 방향으로 환경자체를 제압하면서 일정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데, 그것이 비르투라는 것임. 정치적 행동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정치적 비르투아먈로 마키아벨리 역사철학의 중심에 자리잡음
- 17장에서 그는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면서 기만에 능하고, 위험은 감수하려 하지 않으면서 이익에는 밝다"고 말함. 이는 인간 본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표현한 대표적 구절이자, 냉정한 현실주의적 인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용되는 유명한 문장이기도 함. 여기서 인간은 물질적 이익을 획득하고자 하는 제어할 수 없는 욕망과 자기이익의 원리에 의해 추동되는 지극히 이기적인 동물로 인식됨. 그렇기 때문에 외양만으로는 속임을 당하기 쉽고, 따라서 사랑보다 두려움에 기초하지 않는 한 신뢰를 끌어내기 어려우며, 그런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 유지된다고 말함. 두려움이야말로 정치적 권위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군주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인간본성에 대한 인식에 따른 것. 인간본성을 이렇게 이해한다는 것은 또한 인간의 정치가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다고 인식함을 의미. 인간성에 대한 이런 비관적 관점은 그로부터 추론되는 특정의 이론적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특히 다음 두가지 점을 말할 수 있음. 첫번째는, 갈등을 인간정치행위의 본질로 이해한 것. 갈등이 필연적인 것은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무한한데 자연자원과 경제적 자원은 희소한 까닭에 인간은 항상적 경쟁과 투쟁상태에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기 때문. 정치행위의 저변에는 강자와 약자를 굴종시키고, 제한된 재화에 우선적으로 접근할 특권을 가지려 투쟁하는 검투장이나 다를 바 없는 권력투쟁이 있을 뿐. 이런 환경에서 모든 욕구를 실현할 능력은 한정되고, 비르투를 획득할 능력 역시 포르투나에 의해 제약됨. 하지만 "인간은 "모든 것을 얻으려고 열망하지만, 모든 것을 얻지는 못한다."는 이 가혹한 진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음. 마키아벨리가 이해하는 정치세계에서 음모, 침략, 전쟁, 모든 형태의 국내적, 국제적 폭력은 안정적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이 아니라 자연적 정치현상으로 나타남. 이 점에서 그는 분명 평화주의자가 아님. 그러나 유념할 것은, 그가 갈등의 존재를 단지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런 갈등을 적절하게 제도화함으로써 정치체제의 안정과 자유의 실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 그는 귀족과 평민간의 강력한 긴장을 바탕으로 위대함을 건설한 로마를 경험적 모델로 삼아 일종의 동태적 균형에 기초한 역동적 체제를 대안으로 제시. 두번째는, 정치에서 선택은 이상주의적 최선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최소주의적 접근 내지는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점. 정치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을 다루면서 그러한 불편과 고통을 경감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지, 그것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 군주론 21장에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말하면서 "어떤 국가든 항상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선택이든 꼭 필요한 것인지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어떤 하나의 불편을 피하려고 하면 반드시 또 다른 불편함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실천적 이성이란 바로 그런 불편함의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고 그 가운데 가장 덜 나쁜 것을 최선인 것으로 간주해 선택하는 것에 있다."라고 권고. 정치에서 선택이란 두개의 선 가운데 차선을 발견하는 것이라기 보다 두개의 악 가운데 차악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임
- 억압하고자 하는 귀족들의 욕구는, 군주론에서 말하듯이 군주정에 대한 근본적인 위험이 되는 것처럼, 강론에서도 공화정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이 된다고 말함. 귀족들이 군주를 도와 민중을 지배한다면 공화정은 언제나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음. 그렇기 때문에 귀족가문의 젊은 세대들은 민중에 반해 군주와 동맹하거나 귀족주의적 공화정을 고수하기보다 민중의 정치참여를 허용하는 것이 그들의 부와 명성을 확대하고 고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음. 요컨대 강론은 참주를 제거하고, 군사적, 정치적 과업에 민중을 포섭하고 참여시키는 것이 귀족들의 이해관계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
- 정치의 이데올로기화는 정치현실과 사회적 갈등을 그 자체로 인식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억제하는 효과를 가짐. 이상적 담론이 현실을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적 담론 역시 현실을 말하지 않거나 왜곡함. 그러므로 정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지배는 정치가 사회의 다원화와 갈등,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현상유지를 도모하려는 기득이익에 의한, 기득이익을 위한 정치 이상일수는 없음. 또는 어떤 다른 종류의 기득 이익에 봉사하는 역할을 할 것임. 그런 정치와 사회는 정태적이고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의 정치는 마키아벨리가 좋은 정부형태의 모델로 삼았던, 소란스럽고 갈등적이지만 역동적인 로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의 한국 정치현실과 관련해볼때, 그 어느측면에서의 구분을 말하던 간에 현실주의가 약한 것은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임. 이런 환경에서 우리 모두는 겉으로 좋은 것만 말하고 속으로는 거짓말하는 숨은 마키아벨리인지 모른다. 현실주의가 약해질 때 도덕적인 것도 타락한다. 정치담론이 이상적이라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실제로는 권력론적이고 수사적일 뿐이다. 도덕담론을 이원론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이상적 규범과 현실세계 가운데 어느 하나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이제 우리는 마키아벨리를 통해 숨은 마키아벨리의 허상을 벗겨 버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마키아벨리는 모든 정치사상가들 중에서 인간의 정치행위에 개입된 다른 여러 요소들은 배제하고 그것의 어두운 측면을 포함해 권력의지와 권력을 본질로 하는 정치자체를 가감없이 사실대로 보고자 했던 가장 정직한 정치철학자이자 이론가임. 혹자는 그의 정치관이 정치현상을 과장하고 극화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가공할만한 잔인함도 서슴지 않는 무/부도덕함을 긍정적으로 설파한다고 비판하기도 함. 그러나 그것은 그가 무도덕하거나 부도덕해서가 아니라, 정치현상, 정치적 행위 그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 그러므로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를 거치지 않을 수 없음. 이 점은 거의 모든 주요 철학자와 이론가들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왜 그에 대해 논평했는지 그 이유를 말해줌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짧은 헌정의 편지로 시작. 그 배경은 다음과 같음. 1512년 9월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짐에 따라 메디치 가문의 통치가 복원되었는데, 그 때문에 같은해 11월 마키아벨리도 14년간 재직했던 제2행정위원회 서기장직(오늘날 외교안보수석 정도)에서 해임됨. 그 이듬해 2월 마키아벨리가 반메디치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어 고문과 재판을 받고 투옥됨. 다행히 그해 3월 메디치가문의 레오 10세 교황이 선출되면서 특사를 받음. 그 뒤에는 피렌체 남쪽에서 7마일 떨어진 산탄드레아 농장에 은둔해 건강을 회복한 다음, 장작을 만들고 새를 잡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빠른 속도로 군주론을 집필함
- 포르투나는 인간의 의지로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의 우연적 힘 내지 불확실성을 가리킴. 신화적 의미에서 운명은 여신으로 상징되는데,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행운의 제물을, 다른 손에는 악운의 칼을 들고 있는 것으로 형상화. 따라서 운명의 여신이 어느 손으로 내려치느냐에 따라, 상서로운 길운을 뜻하기도 하고 정반대로 가혹한 악운에 희생당하는 상황을 뜻하기도 함.
- 이탈리아가 여러 도시와 자치체로 나뉘어 격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라고 불릴만큼 당대 최고의 자유와 번영을 누렸다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 12세기 중반 이래 이탈리아를 휘감은 갈등과 분열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파와 교황을 지지하는 겔프파로 나뉘어 전개됨. 이 갈등 때문에 이탈리아 남쪽에 위치한 나폴리 왕국의 비극이 시작됨. 처음 교황은 황제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 앙주가문에 도움을 청했고, 그 대가로 앙주가문이 나폴리 왕국을 지배하게 됨. 그러나 13세기 말에 들어서 나폴리의 왕권은 에스파냐의 아라곤 가문으로 넘어감. 마키아벨리 시대에 이탈리아로 들어온 프랑스와 에스파냐 권력 모두 이 나폴리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앞세웠는데, 그 원인이 바로 이때만들어짐. 기벨린파와 겔프파 사이의 오랜 갈등에 대해 도시들간의 세력확대 투쟁도 끊이지 않았음. 그 중심에는 북부 이탈리아의 패권을 두고 경쟁했던 밀라노와 베네치아가 있었음.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 에스파냐 등 외세의 관심 역시 이 지역에서 도시국가들 사이의 싸움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쏠려 있었음. 다행히 1454년 북부 이탈리아의 로디에서 밀라노와 베네치아 사이에 평화조약이 맺어졌고, 이를 기초로 일정한 세력균형체제가 형성됨. 11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 이 평화체제는 두 내용으로 이루어짐. 하나는 당대 이탈리아의 5대세력이었던 교황국, 나폴리,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사이에서 어느쪽도 자신들의 세력권을 더 확대하지 않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외세가 이탈리아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처해 막자는 것. 그러나 이 체제는 50년만에 붕괴됨. 마키아벨리 시대란 바로 이 평화적 균형상태가 깨진 이후를 말함. 시기적으로는 1494년이 그 기점임
- 군주론에서 프루덴차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곳은 3장임.
"로마인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현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즉 시간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을 즐겨라(사태를 관망하면서 시간을 벌어라)라는 격언을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보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르투와 실천적 이성에서 비롯되는 이로움을 몹시 좋아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가져오는데, 선한 것과 함께 악한 것을, 악한것과 함께 선한것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어 prudenzia에 가장 가까운 영어표현은 prudence임. 아무튼 마키아벨리에게서 푸르덴차란 실제의 정치에 실효적인 유익함을 줄 수 있는 실천적 인식능력 내지 이성과 지식을 포함해 경험에서 얻은 지혜와 현명함 등 여러 요소를 행동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모두를 가리키는데, 네체시타의 개념과 연관해 생각해 본다면 바로 그런 네테시타를 이해하고 알아채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 스키너와 프라이스는 군주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념가운데 마키아벨리 스스로가 정의를 내린 유일한 것이 프루덴차라고 하면서, 21장의 표현을 든다.
"실천적 이성이란 바로 그런 불편함의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고 그 가운데 가장 덜 나쁜 것을 최선인 것으로 간주해 선택하는 것에 있다."
- 현명한 사람이라면 현명한 궁수처럼 해야 한다. 자신이 맞추고자 하는 목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궁수가 있다고 치자. 그는 자신의 활이 갖고 있는 비르투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목표지점보다 훨씬 높게 겨냥한다. 목표와 같은 높이가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이 조준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신생군주가 장악하고 있는 신생군주국의 경우 그 군주국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부딪치는 어려움의 많고 적음은 그 군주국을 획득한 군주가 가진 비르투의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고자 한다.
- 로마제국 멸망의 주된 원인을 살펴보면, 누구나 그것이 고트족을 용병으로 고용한데서 시작되었다는 알게 될 것이다. 그 시작에서 고트군은 로마제국의 군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기 때문. 그리고 제국군대에서 빠져나간 모든 비르투는 고트 군대로 옮겨갔음. 따라서 나는, 어떤 군주국이든 자국군대 없이는 안전하지 못하다고 결론짓겠다. 안전하기는 커녕 그런 군주국은 운명의 힘에 완전히 종속되게 마련이다. 역경에 처했을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비르투가 없기 때문이다. 현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자 판단은, "자신의 무력에 기초하지 않은 권력의 명성보다 더 허술하고 불안정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 신민들의 단결과 충성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군주는 잔인하다는 오명에 개의치 않아야 함. 지나차게 많은 자비심 때문에 무질서가 지속되는 것을 방치함으로써 살인과 약탈이 만연하게 하는 군주보다 본보기로 극소수를 처벌하는 군주가 훨씬 자비로운 군주일 것이기 때문. 본보기로 극소수를 처벌하는 군주는 특정한 개인을 해치는 데 비해, 과도한 자비심을 갖는 군주는 대개의 경우 공동체 전체를 해치기 십상
- 군주가 신의를 지키며 교활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칭송받을 만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의 경험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오늘날 위업을 이룬 군주들이란, 신의에 대해서는 많이 고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간교함으로써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으며, 결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정직성에 기초를 둔 사람들을 능가해 왔다는 사실임. 따라서 당신께서는 두종류의 싸움, 즉 하나는 법을 통한 싸움과 다른 하나는 힘으로 하는 싸움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 첫번째 방법은 인간에게 합당한 것이고, 두번째는 짐승에게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첫번째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두번째 방법에 의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따라서 모름지기 군주는 짐승의 방법과 인간의 방법, 두가지 모두를 잘 알아야 한다.
- 고대의 저술가들은 아킬레우스와 다른 많은 고대군주들이 반인반수인 키론에게 맡겨져 그의 가르침으로 양육되었다고 말함으로써, 이를 비유적으로 가르쳤음. 반인반수의 스승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군주는 두 본성 모두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 어느 한쪽이 없이는 다른 한쪽은 오래 지속될 수 없음. 군주는 짐승의 방법을 잘 알아야 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여우와 사자를 선택적으로 따라야 함. 사자는 함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는 어렵고 여우는 늑대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기 때문. 따라서 함정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여우가 될 필요가 있고 늑대를 혼내주기 위해서는 사자가 될 필요가 있음. 단순히 사자의 방법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다. 따라서 현명한 통치라자면, 신의를 지키는 일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자신이 약속한 이유가 소멸할 경우,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지켜서도 안됨. 만일 인간이 모두 선하다면 이런 계율은 유효하지 않을 것임. 그러나 사람들은 비열하고 당신과의 신의를 잘 지키지 않음. 그렇기에 마찬가지로 당신 역시 그들과의 선의를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님. 또한 군주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그럴듯하게 둘러댈 정당한 이유를 항상 갖고 있음. 이점에 대한 근래의 예는 무한히 들 수 있으며, 얼마나 많은 평화조약과 얼마나 많은 약속들이 군주들의 배신행위로 완전히 파기되고 무효화되었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음. 여우의 방법을 더 잘알았던 사람들이 더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이미 판명된 사실. 그러나 이 같은 여우의 본성을 잘 숨길줄 알아야만 한다. 즉 능숙한 기만자이자 위선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 의심의 여지없이 군주는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과 자신이 직면한 반대를 극복할 때 위대해짐. 이런 이유로 운명의 여신은, 다른 경우에도 그렇지만 특히나 세습군주보다 더 큰 명성을 필요로 하는 신생군주를 위대하게 만들고자 할 때, 그를 위해 적을 만들어내고 이들로 하여금 신생군주를 공격하게 함. 그렇게 해서 그 신생군주가 적대세력을 극복할 기회를 만드러주고, 그 적대세력을 사다리 삼아 더 높이 올라가게 해줌.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현명한 군주라면 그런 기회가 주어질 경우, 자신을 향한 적대감을 교모하게 조장하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성취한다.
- 인간이란 자시 자신의 문제에만 몰두해 있고 그러면서 자기기만에 쉽게 빠지기 때문에 이 아첨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가 어려움. 더욱이 아첨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고 할 때는 경멸의 대상이 될 위험에 처하게 됨. 당신 자신을 아첨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에게 진실을 말해도 당신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나 당신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되면 당신은 존경심을 잃게 된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라면 제3의 방도를 따라야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국가안에 있는 지혜로운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다. 군주는 이들에게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다만 오직 군주가 요구한 사안에 대해서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경우는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군주는 모든 일에 대해 물어야 하고 이들의 의견을 청취한다음 스스로 자신의 방식대로 숙고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이들 조언자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그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더욱더 잘 받아들여진다고 믿을 수 있도록 처신해야 함. 이들 선발된 조언자를 제외하고 다른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여서는 안됨.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따라야 하고 그가 내린 결정을 둘러싸고 동요해서는 안됨. 이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은 아첨꾼에 둘러싸여 재난을 당하던지 아니면 변덕스러운 의견들에 휘둘려 자주 입장을 바꾸게 된다. 그 결과 그는 형편없는 사람으로 평가받게 됨
- 운명은 가변적인데 인간은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인간의 처신방법이 운명과 조화를 이루면 행복해지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불행해짐. 그럼에도 나는 저돌적인 것이 조심스러운 것보다 낫다고 판단한다. 운명의 신은 여자이고 그녀를 당신의 통제하에 두고자 한다면 때려눕힐 듯이 달려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냉담하게 행동하는 남자보다 이렇게 행동하는 남자가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여성으로서 운명의 여신은 항상 젊은 남자들에게 끌린다. 그들은 조심스럽기 보다는 맹렬하게 달려들고 그래서 그녀를 좀더 대담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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