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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권력의 이동

경제 2014. 11. 11. 22:30

 


금융 권력의 이동

저자
론 처노 지음
출판사
플래닛 | 2008-02-2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역사적으로 고도금융의 세상에 사는 주민들은 일반투자자들의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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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 베어링브라더스의 지위는 추락. 그것은 중요한 금융거래에서 제이 쿡에서 JP모건에 이르는 국내은행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워싱턴의 의지가 어느정도 작용했기 때문. 남북전쟁의 시작에서 1차대전까지 미국은 통화를 일원화하고, 연방준비제도를 만들었으며, 연방 소득세를 거두기 시작. 이러한 힘들을 갖추면서 미국은 경제문제에서 훨씬 더 자주적이 되었고 도매 은행가들의 변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음.

- 은행에 간판이 없다는 사실은 은행가가 고객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제왕적 인물이며, 그가 하는 사업은 우리를 찾아오지 마라. 우리가 부를 것이다 라는 가정하에 경영이 되며, 새로운 고객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렇게 지체높은 양반을 대리인으로 모시는 것은 더없는 영광이며, 그는 빈틈없고 신중하게 일하며 평범한 세상보다 더 위에 있는 존재로 대중의 호기심을 이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 간단히 말해 간판의 부재는 자본제공자와 소비자 사이의 투쟁에서 프라이빗 뱅커의 승리를 의미. 아무 표시도 없는 작은 건물은 따라서 극도로 세련되고 신비스러웠엄.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영광은 지난 과거가 됨. 1914년 새로운 월스트리트 23번지 건물이 문을 열었을 때 이미 대중의 반격이 진행중이었고 그 근엄하고 비밀스러운 건물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들이 퇴색해가고 있었음.

- 은행가가 충분히 강력했고 그 기업들은 약했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는 유럽식 모델이 적절했음. 모건과 그의 경영진은 유능한 관리자들을 선택했고 몇가지 분명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그들의 감독하에 번창했음. 만일 은행이 함부로 기업들을 갈취했다면 고객이 줄어들면서 은행 또한 오랫동안 성공하지 못했을 것임. 피어폰트 모건의 영향이 종종 유익했다는 점은 그가 감독했던 기업들의 상당수가 오늘날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음.

- 20년대 월스트리트의 부흥은 상당부분 그 뜻밖의 전쟁에 의한 결과임. 미국 정부가 자유공채를 통해 전쟁에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면서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증권 수업을 받게 됨. 그런 식으로 미국인들은 본의 아니게 근검절약의 오래된 은행저축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매력적이지만 변동이 심한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옮겨가게 됨.

- 독일과 마찬가지로 패전국으로서 전후 일본은 기업의 수익성과 자산에 대한 고수익 같은 소모성 장식보다는 성장과 안전과 안정을 우선시. 은행들은 예금을 받아서 기업가들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는 거대한 방앗간과 같은 역할을 함. 오랫동안 이 시스템은 잘 움직였고 모든 것이 조화로워 보였음. 정부가 대출금리를 고정시킨 이래 기업들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다니면서 주거래 은행을 화나게 만들 이유가 없었음. 이렇게 고루하고 관습적인 세상 속에서 은행가들은 사업가라기 보다는 부지런한 시민의 종처럼 행동했고, 파생상품과 선진화된 업무기술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실패. 은행들은 도매대출을 일종의 특가상품으로 판매. 90년대 내내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버는 수입은 돈을 빌리고 지불하는 비용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음. 때때로 그것은 0.25%에 불과했고 심지어 0.125%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음. 대출을 관리하고 채무 불이행에 대비해 자금을 준비해두는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은행들은 아마 많은 기업대출에서 손해를 보았을 것임. 시티은행은 현재 대출과 투자로 6.7%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반면 후지은행의 수익률은 형편없이 낮은 평균 1.3%에 지나지 않음. 일본 은행들이 이러한 구조적 결함을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기업대출이 은행 업무의 30%에 불과하기 때문.

- 피어폰트 모건의 전성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지그미 유럽식 모델의 전성기라 부르는 은행가가 지배하는 경제의 정점이었다면 80년대의 월스트리트는 순수하고 정제된 형식으로 주식시장에 기초한 경제의 미국식 모델을 구현했음. 80년대 관계형 금융이 무너지면서 보수적 은행가들이 두려워했던 일들(기업매수, 정크본드, 주식매점, 자산 박탈)이 한꺼번에 발생했음. 모든 기업이 갑자기 잠재적 인수대상이 되어 주식시장의 노리개처럼 변해버림. 투자자들의 변덕, 투자 관리자, 차입매수와 기업 사냥꾼들에게 휘둘림. 82년에 시작된 강세장에서 기업들은 차례로 합병당했고 기업인수의 사슬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음. 마침내 혼란의 시기가 끝났을 때 많은 기업들이 빚더미에 올라 앉았고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으며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당했음. 역사적 관점에서 그 비극은 기업들이 언변이 뛰어나고 성미가 불같은 타이쿤들의 지배를 받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음. 다행히 그 파괴를 어느정도 보완해주는 긍정적 면들도 있었음. 기업경영자들과 은행가들이 모여서 대중을 상대로 음모를 꾸몄던 오래된 사교계가 해체됨. 대신 기업은 주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하고 보편적인 수행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원칙이 확립됨.

- 우리는 세계시장이 현대의 발명품이며, 첨단 컴퓨터 기술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세상은 이미 19세기 중반에 자금흐름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음.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부채 위기는 1820년대에 일어났음. 런던의 머천트 뱅크들은 바깥쪽으로 눈을 돌려 북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극동에 투자해서 높은 수익을 올리트라 정신이 팔려 있었으므로 계속 영국산업을 무시한다는 비난을 받았음. 최고의 금융가문들은 영국내에 지점을 내는 대신 해외의 주요 자본들과 제휴를 맺었음. 고도 금융의 구성원들은 전형적으로 아들들을 해외로 보내 제휴 은행에서 근무하게 하고 안전한 정략결혼으로 가문의 영향력을 넓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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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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