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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지도

심리 2014. 10. 18. 07:31

 


기억의 지도

저자
제프리 K. 올릭 지음
출판사
옥당 | 2011-03-18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고전사회학자 뒤르켕에서 경제학자 베버, 사회학자 하버마스, 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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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학 연구에 따르면 기억이란 균질적인 단위로 저장되었다고 나중에 불러들여지는 동일한 실체가 아님. 신경망은 기억심상이라 불리는 작은 조각들을 두뇌 이곳저곳으로 보내어 다양한 방식으롤 저장해 둠. 따라서 기억행위란 하나의 경험을 원래 형태대로 다시 끄집어 내거나 재생산하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으로 짜깁기 하는 과정임.
-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상황의 여러 측면을 전부 지각하지 못하며, 지각한 것을 모두 저장할수도 없을 뿐더러 저장한 것을 완전히 기억하지도 않음. 샤흐터에 따르면 "신경망은 여러 정보를 과거에 저장된 패턴대로 현재 환경에서 결합시킨다. 신경망이 기억하는 것은 현재정보와 과거 패턴을 혼합한 결과로 기억할 때 우리는 기억에서 가장 비슷한 것을 끌어다 패턴을 완성한다. 따라서 기억이란 저장된 그림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 기억의 테크놀로지는 사회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침. 메모를 쓰거나, 메시지를 기록하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개인들은 기억능력을 확장하게 됨. 이는 단지 두뇌 이외에 저장공간이 생겼다는 것을 뜻하지만은 않음. 기억의 테크놀로지는 특정방식으로 우리의 신경적 저장과정을 자극하기도 함. 따라서 우리는 몇몇 학자들이 보철기억이라 부르는 기억을 지닌, 살아있는 사이보그가 되었음. 그 접근법은 딱히 현대의 컴퓨터 테크놀로지만을 중요시 여기지도 않음. 중세 연설가들의 기억능력은 가히 전설적인데 그들은 기억술이라 알려진 개념적 장치를 사용했음. 기억행위의 본질이 진정으로 집단적이란 것은 얼마나 많은 기억행위가 언어와 서사, 대화로 일어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음. 가령 언어는 초개인적 현상을 대표하는 예로 여겨짐. 그렇다고 개인의 기억행위가 언어로 이루어진다는, 즉 언어로 경험을 코드화하고 불러들인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님. 언어 자체를 하나의 기억 시스템으로 볼 수 있음. 그것이 바로 언어는 본질적으로 대화주의적이라는 미하일 바흐친의 관점임
- 공동체에는 역사가 있다. 중요한 의미에서 그들의 과거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 따라서 진정한 공동체란 기억의 공동체, 즉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는 공동체라 할수 있다. 그러니까 집단 기억은 한 집단이 시간 속에서 스스로 연속적인 실체로 인식하는 것을 뜻하는 동시에 연속성 인식의 표현이자 연속성 인식을 강화하려는 노력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집단의 대표사례는 민족이다. 적어도 민족-국가만큼은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민족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때 집단기억이라는 용어가 특히 두드러지게 사용되기도 한다.
- 근래의 역사매개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은 방송, 특히 텔레비전의 발전일 것임. 사실 그동안 이론가는 이른바 대중매체가 기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음. 베네딕트 앤더슨과 존 톰슨 같은 학자들은 18세기와 19세기의 인쇄문화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주는 독특한 잠재력이 있었다고 지적. 카를 도이치는 민족주의 연구에서 민족성은 강하게 결속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도 정의될 수 있는데 그 네트워크는 대중매체로만 형성될 수 있다고 지적. 거대한 집단이 스스로를 공동체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곧 스스로를 기억의 공동체로 여기기 위해서는 이처럼 동질화시키는 매체가 필요. 다이앙과 카츠는 텔레비전과 기억의 관계를 다루면서 텔레비전에는 많은 사람이 역사적 경험을 동시적으로 느끼게 하는 독특한 기능이 있다고 지적. 따라서 특정 유형의 사회적 기억, 곧 공통의 자전적 기억을 낳는다는 것임. 게다가 그들에 따르면 텔레비전은 미디어 사건을 제시할 때 다양한 유형의 서사틀을 사용. 다이앙과 카츠는 서사틀을 정복과 대관식, 경합으로 분류. 이 틀은 집단 대중에게 지속적이면서도 중요한 균질화 효고를 남김. 따라서 텔레비전은 개개인에게 경험의 직접성을 주는 동시에 공통의 경험을 비교적 균질한 방식으로 해석하도록 함. 결국 경험의 파편화와 균질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임.
- 정당한 전쟁이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요즘의 개념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다소 엄격하며 해결책도 조금 다름. 근대 이전 시기에 갈등은 주로 왕 사이의 경쟁으로 여겨졌고 그 경쟁의 결과에 따른 정복이나 패배에는 어떤 도덕적 책임도 따르지 않을 때가 많았음. 또한 부당한 전쟁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왕 개인의 명예와 책임의 문제였지, 민족과 민족 사이의 책임문제로 비화되지 않았음. (사실 로마를 약탈한 샤를 5세의 군대는 대부분 외국용병이었으며, 로마는 당시 전쟁당사자인 스페인 왕과 프랑스 사이의 쟁탈대상도 아니었음.) 근대 이전 시기에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매수, 교역, 결혼, 영토이전 같은 것이지 후회를 표현하거나 민간희생자들의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이 아니었음. 전범 재교육이나 재판 같은 일은 더더욱 없었음. 근대 이전에도 도덕적 분노로 혈족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근대 이전과 이후의 정치적 갈등 그리고 혈족 분쟁과 집단적 책임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음. 따라서 인류 초기 역사에서 보상과 사죄의 전례와 모델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후회가 갈등 이후 평화정착의 필수조건으로 등장한 것은 분명 현대적 현상임. 사실 정치적 책임이라는 강령은 여러 면에서 현대정치의 특징을 규정함
- 전쟁은 정치의 또 다른 연장이라는 말이 지난했던 19세기를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오늘날 정치는 전쟁의 또 다른 연장인 듯 보임. 권력은 분명 사라지지도 감소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 교묘해졌음. 이제 헤게모니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음. 그러나 폭력이 상징적 형태로 은폐되거나 변형되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물질적 수단에만 의존하지 않는 도전의 가능성도 커졌음.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델라의 소솔 웃음과 망각의 책의 한 구절처럼 "권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투쟁"임 승리자와 희생자는 이제 끊임없는 고소와 반소, 기억과 반기억의 투쟁으로 뒤엉켰음. 그런 의미에서 현대정치는 과거 전쟁의 유산을 둘러싼 담론 투쟁이 벌어지는 전쟁의 또 다른 연장임. 문제는 담론투쟁이 어떤 해결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증오와 잔학이라는 새로운 악순환을 재생산해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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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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