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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씽킹

인문 2015. 2. 22. 16:49

 


딥씽킹 Deep Thinking

저자
성열홍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4-05-0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휴머니즘 상실의 시대, 인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최신 스마트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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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 미디어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와 모든 기술은 인간의 확장물"이라고 표현. 그에 따르면 "의복은 피부의 확장, 바퀴는 발의 확장, 책은 눈의 확장, 전기는 중추신경의 확장"이다. 맥루한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확장물인 미디어와 기술이 결국 우리의 생활을 지배한다고 주장. 상형문자, 알파벳,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시계와 같은 미디어와 기술들을 통해 우리 인가들은 세상을 접하고 메시지를 수용함. 접속의 시대는 우리에게 행복한 진화를 의미하는 것일까? 반드시 그런 건 아님. 미디어는 수용자의 정신세계를 체계화하고 통제함. 맥루한은 이들 도구에 의해 "우리 신체의 어떤 부분이 마비된다"고 지적. 이미 맥루한이 예견한 말은 현실화되었다. 인터넷이란 문명의 도구가 우리의 두뇌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 우리는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주기억장치이자 내장하드인 머릿속에 저장하지 않고, 외장하드인 스마트폰이나 PC에 저장. 스마트기기가 발달하는 만큼 더 많은 정보가 두뇌에서 스마트기기로 이동. 어쩌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면 그야말로 멘붕이다.
- 디지털 시대의 권력변동에 주목하고 있는 미래학자 니코 멜레는 '거대권력의 종말'에서 디지털 농노주의를 우려. "아마추어 창작자들은 페북이나 트위터, 유투브 같은 사이트에 현혹되어 자신보다는 미디어 플랫폼에 이득을 가져다주는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돈과 시간,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이들 창작자는 중세시대 농노처럼 정작 자신들이 농사짓고 거주하는 땅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 땅은 페북이나 트위터, 텀블러 등 다른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대인들은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안심이 되고 사이버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는 청중이 많을수록 뿌듯함을 느끼는 세상속에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는 청중들은 진짜가 아닌 허상일 수 있다. 페북같은 플랫폼은 자신들과 연결된 수많은 사람의 속성을 파악하여 비즈니스를 키워나간다. 이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접속과 연결의 개념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가 되었다.
- 혁신의 대명사 브리콜라주, 이 말은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 원시부족을 연구한 저술 야생의 사고에서 인용한 용어. 태어날 때부터 야생의 사고를 가진 원주민들은 어떻게 브리콜라주를 실천할 수 있었을까? 이들은 예리한 감각으로 바다와 육지의 모든 생물체, 바람, 빛, 하늘의 색깔, 물결의 일렁임. 파도의 변화, 기류와 해류 등 자연현상의 미묘한 변화를 관찰했음. 이를 통해 알아낸 구체적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 집을 짓고, 아플 땐 약초도 구해먹음. 신체의 능력이 일상의 구상능력으로까지 연결되었던 것이다. 잡스는 브리콜라주의 대표적 리더. 자신이 그 모든 기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기술과 재능을 조합하여 최고의 가치있는 제품을 만들어냈기 때문.
- 뉴로 마케팅에서는 이질적인 사물간의 통섭을 위한 데페이즈망 기법을 적용하기도 함. 데페이즈망 기법은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시작되었는데 데 르네 마그리트라는 화가가 즐겨 사용하던 기법. 어떤 물건을 이질적 환경에 옮겨 놓고 물체끼리 기이한 만남을 연출시키는 것. 그는 사람 얼굴위에 파이프를 하나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제목을 붙임. 그리고 물고기에 사람다리를 그려놓은 그림 '집단발명'을 통해 인어는 늘 상반신이 사람, 하반신이 물고기라는 생각을 뒤집음. 이처럼 데페이즈망은 아직 세상에 없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사람들이 느껴보지 못한 자극을 주는 기법. 데페이즈망 기법은 뭔가 새롱누 아이디어를 내거나 발명을 할 때도 쓰임. 연필에 지우개를 붙였던 것이 그렇고, 청바지에 지퍼를 달았던 것도 그러함. 휴대폰에 인터넷 기능을 넣은 것과 신발에 바퀴를 단 롤로스케이트의 발명도 마찬가지
- '지금 경계선에서'의 저자 레베카 코스타는 마야문명의 멸망에 대해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시. 그의 연구에 따르면 마야인들은 기후변화나 바이러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뿐더러 스스로 멸망을 자초할 정도의 전쟁을 벌였다고 함. 마야인들은 강우량이 적은 해에 재배할 작물의 종류를 정하고 공공용수 사용량을 규제하는 등 물 보존에 주의를 기울였음. 그러나 강우량이 계속 감소하는데도 보존 외에 근본적 대책을 세우지 못함. 이어 잘못된 고정관념인 슈퍼 밈에 빠져 어린아이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그 해결책으로 삼음. 즉 마야문명이 멸망한 근본원인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회의 복잡성이 커지는 데 비해 인간의 뇌는 그것을 감당할 만큼 빠르게 진화하지 못해 간극이 생긴다. 저자는 마야문명, 로마제국, 크메르제국 같은 과거 인류문명의 발전과 멸망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현재의 우리 지구촌도 복잡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인 슈퍼밈에 의한 인식의 한계 때문에 오류와 잘못으로 빠져들어 결국 멸망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
- 중세 이탈리아의 권력과 부를 장악한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에 세상의 온갖 창의적인 사람들을 불러들임. 당시 피렌체의 인구는 불과 6만에 불과했지만 이곳에 조각가, 과학자, 시인, 철학자, 화가, 건축가들이 모두 모임. 재력만 있다고 메디치 효과가 생기는 것은 아님.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의 운영규칙처럼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메디치가의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 이미 수백년 전에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창조와 혁신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피렌체에 모여든 이들이 서로의 지식을 연결하고 통섭하면서 창조적 폭발, 즉 르네상스가 일어났음. 이질적 분야가 연결된 힘이 바로 메디치 효과임. 즉, 전혀 다른 분야의 것들이 서로 융합하는 과정을 통해 창조적 아이디어가 발휘되는 현상을 말함. 이질적 집단이 모여 소통하며 실리콘 밸리라는 혁신도시를 만들었듯 당시 피렌체도 그러했음
- 영국 켐브리지 대학 근처 그란체스터에 오차드 티 가든이 있음. 사과나무 가든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1900년대 초반 시인 루퍼트 브룩과 함께 경제학자 케인즈, 작가 버지니아 울프,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시인 바이런 등이 그란체스터 그룹을 이루고 새로운 문화와 역사를 만들었음. 오차드 티가든은 켐브리지 대학교가 70명 가까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더 나아가 영국이 경제강국에서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한 지적 터전이었음. 서로 다른 장르와 문화가 섞이고 서로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서 교류하고 놀게 하는 것이야말로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 길이다. 오차드 티가든은 그런 경계이자 혁신의 공간이었음.
-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상식 중에는 잘못 정해진 것이 참 많다. 나폴레옹은 155~158정도의 작은 키로 알려짐. 그는 "내 키는 땅에서부터 잰다면 작지만, 하늘로부터 잰다면 그 누구보다 크다"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전해짐. 과연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한 황제다운 발상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폴레옹의 키는 약 169센티로 당시 평균보다 컸다고 함. 당시 프랑스는 피에드(32.5센티)라는 단위를 사용했는데 그의 키는 5.2피에드로 170에 가까웠음. 나폴레옹의 키가 작다는 오해가 생긴것은 영국이 프랑스 단위 피에드를 피트로 오인하여 계산했기 때문. 아인슈타인은 수학에서 낙제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는 낙제는 커녕 15세 이전에 미적분을 마스터했으며, 17세 때 대수와 기하학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천재였다
- 인터넷의 아버지 니콜라스 카는 인터넷에서 지적 활동을 할 때 인류는 장애를 앓고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 사례로 난독증을 들 수 있다. 태블릿으로 전자책을 읽을 때 난독증 환자들의 두뇌는 게임을 할 때처럼 극도의 긴장감을 겪는다고 함. 그리고 매체와 매체를 연결하는 하이퍼미디어가 인간의 기억과 이해력을 떨으뜨리며, 문서와 문서를 연결하는 링크가 학습을 방해한다는 조사결과 역시 니콜라스의 지적을 뒷받침함
- 인간공학은 2차대전 때 군용기를 중심으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시작됨. 당시 대표적 성과 중 하나로 전투기 고도계의 개량을 꼽을 수 있음. 당시 항공기의 고도계는 바늘이 3개엿다. 그런데 급박한 상황에서 조종사가 고도를 잘못 읽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고도계의 바늘을 2개로 줄였다. 이 조치로 항공기 사고는 대폭 감소. 이처럼 인간공학이란 인간을 과학기술에 끼워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맞는 설계를 추구하는 공학의 한 분야로 정리할 수 있음. 그 핵심에는 인간의 본성, 또는 인간적 요소에 대한 고려가 담겨 있어야 함. 생각과 기술의 조화는 곧 호모사피엔스와 호모파베르의 균형이기도 하다.
- 많은 사람이 오늘날의 과학이 전체를 작은 부분으로 해체해 각 부분을 고립시켜 연구하는 환원주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사실 중세 시대까지도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분화된 학문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전문가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 두루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들이었음. 그래서 지금도 다양한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르네상스인으로 부름. 세상의 지식들은 16세기 무렵부터 쪼개지기 시작. 원래 한몸이던 예술과 기술도 나뉘어짐. 대중예술 또한 작가와 장인, 그리고 예술가와 기술자로 분리됨. 오늘날 다시 통섭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술을 이해하는 테크네의 귀환이 시작됨. 기계를 디자인하는 기술과학도 이용자의 특성과 요수를 고려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 개인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주는 특허제도는 역사적으로 1474년 베네치아까지 거슬러 올라감. 인구 10만의 도시국가로 패권을 유지하며 무려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국가가 바로 베네치아다. 당시 베네치아에서는 지적재산에 대해 10년간 기술의 독점적 가치는 인정해주되, 이후에는 그 비법을 공개하자는 사회적 타협을 공포했는데, 그것이 바로 특허다.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앞선 문물을 자랑하던 비잔틴 제국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멸망한 후 갈 곳을 잃게 되자 비잔틴의 고급기술자와 숙련공들을 베네치아로 유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특허법을 고안한 것. 특허가 시행되자 주변 국가의 창의적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몰려들었다. 이 시기에 약 100여건의 발명이 나오게 되고, 1594년 갈릴레이도 낮은 위치에 있는 물을 퍼올리는 양수관개용 장치로 특허를 받음. 유능한 기술과 기술자들이 베네치아로 몰려들면서 지중해 전역의 해상 교통로를 장악한 베네치아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으며, 르네상스의 불꽃은 그렇게 타올랐다. 베네치아의 부강을 키워준 특허로부터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원동력이 된 특허제도가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지대함
-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활용한 멀티태스킹에 익숙해지면, 뇌의 생각 중추인 회백빌의 크기가 줄어들어 팝콘 브레인과 같은 뇌로 변함. 즉, 사람의 뇌가 눈앞의 자극적인 영상에는 반응하지만, 현실의 돌발상황에는 반응하지 않는 증세를 말함. 스마트폰이나 인터넷과 같이 빨리빨리 변화하는 영상에만 길든 뇌는 차분하게 책을 읽고 대화하거나 무엇인가를 기다리기가 점점 어려워짐. 특히 스마트폰에 많이 노출된 어린이들의 뇌가 감정과 표현을 잃은 팝콘 브레인으로 쉽게 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지지 않으면 집중하지 못함.
- '버스트'의 작가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는 "인간의 행동은 이상적이고 독립적이며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재현가능한 모종의 패턴에 따라 움직인다고 주장. 그러므로 단순한 인적관계의 네트워크를 분석하는 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행동패턴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간행동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가 저절로 수집되고 있기 때문. 주식가격의 연쇄 폭등과 폭락, 글로벌 경제현상, 어느날 갑자기 터지는 누리꾼들의 댓글잔치, 거리로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촛불시위 군중 등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 속에 오롯이 숨어 있는 법칙들, 신의 손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버스트라고 함. 그리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행동 패턴에 대해 자료를 통해 통계적으로 법칙을 풀어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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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씽킹

인문 2014. 10. 3. 11:36

 


딥씽킹 Deep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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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열홍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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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4-05-0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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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 모바일 기술은 이미 차세대 혁신을 넘어 인류의 생물학적 특징마저 바꾸어 놓고 있음. 모바일 정보기기의 발전은 우리를 더 빨리 걷고 더 빨리 일하는 인류로 탈바꿈시켜 놓았음. 어느 연구결과에 따르면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의 보행속도는 90년대를 거치면서 10% 이상 빨라졌다고 함. 더욱 놀라운 것은 극동아시아의 변화가 더 크다는 사실. 중국 광저우는 20%, 싱가포르는 30% 이상 더 빨라진 변화를 겪고 있음. 정보기술이 사회이 리듬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
- 디지털 시대 권력변동에 주목하고 있는 미래학자 니코 멜레는 거대권력의 종말에서 디지털 농노주의를 우려. "아마추어 창작자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투브 같은 사이트에 현혹되어 자신보다는 미디어 플랫폼에 이득을 가져다 주는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돈과 시간, 에너지를 쏟아부음. 이들 창작자는 중세시대 농노처럼 정작 자신들이 농사짓고 거주하는 땅을 소유하고 있지 않음. 그 땅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텀블러 등 다른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다." 라고 말함. 현대인들은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안심이 되고 사이버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는 청중이 많을수록 뿌듯함을 느끼는 세상 속에 이음.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은 자신들과 연결된 수많은 사람의 속성을 파악하여 비즈니스를 키워나감. 이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접속과 연결의 개념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가 되었음.
- 봉건주의는 뜻밖의 작은 물건으로부터 시작. 바로 등자의 개발로 부터 비롯됨. 안장만 가지고는 전쟁에서 개인이 혁혁한 공을 세우기가 어려워 기사계급이 생길 수 없었음. 그런데 등자가 발명된 후 비로소 말과 사람이 한 몸이 되어 높은 전투력을 갖추게 되었고 기사계급이 탄생할 수 있었음. 프랑크 왕국의 재상을 지낸 카를 마르텔은 교회의 영지를 몰수해서 전쟁에서 공을 세운 기사들에게 나눠 주었고, 이것이 봉건제도의 시작이 되었음.
- 동국대 황태현 교수는 세종때부터 이어온 조선의 발전은 18세기에 이르러 세계 최고의 경제부국이자 교육 및 문화복지국가를 일구었다고 주장. 1800년대까지 중국과 동아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영국과 유럽을 앞질렀다고 함. 경작 면적 기준으로 서기 1800년의 총요소생산성을 비교한 결과 잉글랜드가 100이라면 조선은 134였고 중국은 191이었음. 그러나 중국은 일부 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므로 중국 전체는 잉글랜드보다 높았으나 조선과는 대등한 수준이었음. 그리고 1820년 1인당 GDP를 비교해보면 중국과 조선이 각각 600달러로 분석되고 있음. 조선의 생활수준은 18세기 영/정조 시대 중국을 초월했으나 그후 하락하기 시작하여 다시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함. 1983년 일본 도쿄대 연구진이 편찬한 과학사기술사 사전에 따르면 1400~1450년 세계 과학기술 주요 업적으로 올라온 기술건수가 중국 5건, 일본 0건, 동아시아 이외 전지역 28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한국은 29건을 기록해 가장 많았음
- 인류최초의 문명인 수메르인은 5000년전 이미 문자를 발명하여 쓰고 있었고 세계 최초로 인쇄도 했음. 수메르인의 10대 발명품으로 바퀴, 무자, 범선, 달력, 족집게, 비누, 운하, 도시, 화폐, 농기구를 꼽고 있음. 그들은 바닥에 아스팔트를 깔아 어떤 수레도 지나갈 수 있게 했고 지금의 수도와 같은 배관시설을 각 가정에 갖추었음. 의사도 내과, 외과, 치과의사로 구분됨. 인류 4대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유역에 살던 수메르인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발전된 문명을 누림. 당시 수메르인들은 그림문자를 개량하여 만든 세계 최초의 문자를 점토판에 갈대로 찍어 썼는데 이것이 쐐기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설형문자라고 불림. 이 설형문자는 사람들의 힘과 지혜를 모으고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함. 문자를 통해 마을간 농업기술이 전파되면서 거대 농업혁명이 일어났고 건축기술, 공예가 발달하게 됨. 또한 신화, 종교, 역사, 법률, 교육 등 정신문명 역시 문자 덕분이었음. 그리고 이는 오늘날 서구문명의 뿌리가 됨
-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근처인 그란체스터에 오차드 티 가든이 있음. 사과나무 가든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1900년대 초반 시인 루퍼트 브룩과 함께 영국의 지식인들이 차를 마시며 지적 교류를 하는 공간이었음. 거기에서 경제학자 케인즈, 작가 버지니아 울프,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 비트겐슈타인, 시인 바이런 등이 그란체스터 그룹을 이루고 새로운 문화와 역사를 만들었음. 오차드 티 가든은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70명 가까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더 나아가 영국이 경제강국에서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한 지적 터전이었음. 서로 다른 장르와 문화가 섞이고 서로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서 교류하고 놀게 하는 것이야말로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 길임. 오차드 티 가든은 그런 경계이자 혁신의 공간이었음.
- 킴 비센티는 호모파베르의 불행한 진화에서 첨단기술이 오히려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데 이는 마법사 같은 개발자들이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이 평소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잊어버린 탓이라고 날카롭게 지적. 그는 03년 출시된 BMW시리즈를 예로 들고 있음. 전자계기판에는 각종 수치를 알려주는 기능들이 무려 700~800개나 됨. 각종 제어기능과 성능은 대단히 뛰어나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조작의 복잡성 또한 대단함. 자동차 전문잡지의 편집자들조차 이 자동차의 시동거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 10분이 걸렸다는 비난을 들어야 할 정도임
- 과거 시대로부터 기술결정론에 의해 사회가 발전했다는 증거는 많음. 먼저 등자에 의한 봉건제 발전을 들 수 있음. 쟁기에 의한 장원제와 도시의 발전도 그 사례. 무거운 쟁기 발명 덕분에 충적토를 개간할 수 있게 됨. 쟁기 덕에 농업 생산력이 높아져 잉여생상물이 생겼고, 이를 통해 물건을 사고 파는 상업이 발전. 상업이 성행하다 보니 도시가 형성됨. 기술결정론에 대해 모든 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님. 기술이 진보의 중심일 수 있는 경우는 사회적 진보와 맥락을 같이 할 때라는 반론도 있음. 예를 들어 등자는 유럽에서만 도입된 게 아니기 때문에 등자의 조입이 중세 봉건제를 낳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 특히 프랑크 왕국과 비슷한 시기에 등자를 도입한 나라 중 앵글로 색슨 족은 봉건제가 확립되지 않았음을 예로 들고 있음. 서양뿐 아니라 동양에도 봉건제가 존재했음. 특히 중국의 주나라때 봉건제는 등자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음. 등자는 주나라 후에 등장했기 때문. 서양에서의 인쇄술은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을 일으켰지만, 동양에서의 인쇄술은 서양과 같은 혁명을 가져오지 않았음.
- 디지털 치매와 같은 폐해 중 하나로 팝콘 브레인 현상이 있음. 이 말은 팝콘 처럼 톡톡 튀는 상상력이나 창의성을 의미하는 것이면 좋겠지만 그와는 정반대임.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것에는 반응하지만 느리게 변화하는 실제 현실에는 무감각해진 뇌를 의미함.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활용한 멀티태스킹에 익숙해지면, 뇌의 생각중추인 회백질의 크기가 줄어들어 팝콘 브레인과 같은 뇌로 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음. 즉, 사람의 뇌가 눈앞의 자극적인 영상에는 반응하지만, 현실의 돌발상황에는 반응하지 않는 증세를 말함. 스마트폰이나 인터넷과 같이 빨리빨리 변화하는 영상에만 길든 뇌는 차분하게 책을 읽고 대화하거나 무엇인가를 기다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짐. 특히 스마트폰에 많이 노출된 어린이들의 뇌가 감정과 표현을 잃은 팝콘 브레인으로 쉽게 변할 수 잇음. 그들은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지지 않으면 집중하지 못함.
- 감자가 유럽의 시각에 오르는 역사의 과정에서도 고정관념의 타성을 살펴볼 수 있음. 보통 새로운 작물이 사람들에게 맛을 보인 뒤 200~300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주식으로 식탁에 오름. 감자의 경우 더욱 그러했음. 1539년 스페인사람들이 감자를 페루에서 처음 보앗고, 스페인으로 들여옴. 그러나 이상한 생김새 때문에 유럽인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식품이었음. 감자는 주로 말 사료료 쓰였고 아주 허기질때만 식용으로 사용되었음. 또한 감자를 먹으면 한센병에 걸린다는 헛소문도 감자가 식용으로 대중화되는 것을 가로막음.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전쟁의 기아 속에서도 감자를 잘 먹지 않았던 이유가 식사는 반드시 빵으로 해야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음. 글루텐 성분이 없어 빵을 만들 수 없는 감자이므로 감자는 밀가루를 대체하여 식탁에 오를 수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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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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