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Quote of the day 2024. 4. 27. 07:01

'Quote of the 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0426  (0) 2024.04.26
20240425  (0) 2024.04.25
20240424  (0) 2024.04.24
20240423  (0) 2024.04.23
20240422  (0) 2024.04.22
Posted by dalai
,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역사 2024. 4. 26. 07:02

- 막걸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탁주다. 탁주는 증류주를 만들 기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만들어 마신 주종이다. 막걸리의 기 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술 자체가 고고학 유적 에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정보를 조합 해 처음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던 시기를 짐작할 수는 있다. 막 걸리의 기원을 따져보자면, 주재료인 쌀이 재배되기 시작한 이후 에야 만들어 마셨을 테니 우리나라에서 쌀이 재배되기 시작한 시 점, 즉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이후부터 주조했다고 보는 게 적 절할 것이다. 하지만 막걸리 재료가 꼭 쌀뿐인 것은 아니므로 그전부터 만들어 먹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체로 후기 구석기시대에 빙하기가 끝나가면서 곡물이나 구근류(칡이나 감자같이 뿌리를 먹는 식물), 과일 이 풍부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만들게 되었다고 본다. 근동 지 역에서는 1만 5,000년 전부터 야생에서 풍부하게 자라는 밀을 이 용해 맥주를 만들었고, 이후 이집트 문명에서도 맥주를 널리 만들 어 마셨다. 그런데 이때의 맥주는 지금처럼 청량하고 맑은 음료가 아니었다. 오히려 탁하고 걸쭉한 막걸리 같은 것이었다. 즉, 초기 에는 맥주와 막걸리가 같은 종류의 술이었다.

- 경남 창녕군 비봉리에서 발견된 8,000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에 서는 흐르는 물에 도토리가 담긴 망을 넣어서 타닌을 빼고 도토리 를 가공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살림터가 발견되었다. 도토리를 묵 형태로 가공해서 먹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에도 도토리묵이라는 요리가 없다.
세계의 수많은 고고학자들은 신석기인들이 도토리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것을 가공한 식품을 실제로 먹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해외에서 한국을 찾은 고고학자들과 막걸리를 마시게 되 면 나는 꼭 도토리묵을 소개한다. 맛을 본 동료들은 젤리처럼 독 특한 식감을 지닌 안주가 1만 년의 역사를 지닌 그 전설의 음식이 냐며 경탄한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우리는 1만 년 동안 이어진 고고학적 안주를 보유한 나라의 후손들이니 말이다.

- 소주가 '세계의 술'이 된 것은 몽골제국 건국 시기부터다. 거대 한 제국이었던 몽골의 정복 활동과 역참으로 세계는 하나가 되었 다. 동서양 할 것 없이 몽골제국의 영향력이 미친 곳에서는 저마 다의 방법으로 증류주를 만들었다. 황실에서 증류주 제조를 관리 했던 거란과 달리 몽골제국은 증류 기술을 숨기지 않고 널리 확 산시켰다. 여기에는 어떤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정복지에 소주 제조법을 전해주면 현지인들이 그 소주를 즐기는 가운데에 자연히 몽골제국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릴 것이라는 전략이었 다. 일종의 동화 정책이다.
피지배인들을 알코올로 다스렸던 것은 몽골뿐만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술 식민주의 (alchoolosialisme)'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지배 국가가 피지배인들에게 술을 공급하여 저항의 의지를 상실시키는 식민주의 전략이다. 러시아가 시베리아 원주민을 정 복할 때,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정벌할 때, 현지인의 반발을 누르 고자 사용한 방법이 바로 술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몽골제국의 영향력은 소주를 뜻하는 단어 '아라기'를 통해 짐 작할 수 있다. 몽골, 카자흐스탄, 튀르키예 등 유라시아 대부분의 지역은 물론이고, 동남아 일대에도 증류주를 가리키는 말에 '아라 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에서 소주를 '아랄길(阿剌吉)'이라고 표현한 기록이 존재한다. 경상도 일대 방언에서는 '아라기'가 술 또는 술지게미를 가리킨다. 아라기는 아랍 지역의 증류 시설인 '알렘빅'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아랍어로 '땀'이라는 뜻이다. 증류 과정에서 술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땀과 같았기 때문 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나라는 소주를 '이슬'에 비유하곤 한다. 고려 시인 목은이색이 자신의 시에서 소주를 이슬로 표현 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역시 불순물을 걸러내고 정 화된 술을 만드는 증류 과정을 담고 있는 비유다. 오늘날 우리가 인터넷으로 소통하기 훨씬 전에 이미 세계는 소주(증류주)로 대동 단결하고 있던 셈이다.

- 젓갈은 한국 김치만의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내는 일등 공신이 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에서는 생선 발효 문화가 발달 했다. 한반도의 서남해안은 말할 것도 없고 고려인들의 음식 문화 에서도 가자미식해(식해는 생선에 약간의 소금과 밥을 섞어 숙성시킨 식 품을 가리킨다)가 발달했다. 중국 기록에도 한 무제가 동이족의 땅에 서 젓갈류의 맛에 반해 '축이 오랑캐를 몰아냄)'라고 이름을 붙일 정 도였다고 한다. '오랑캐를 몰아낸다'라는 말의 뜻은 '오랑캐의 맛 을 따라간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돼지 한 마리 잡으러 갈까?" 라는 말이 "돼지고기 먹으러 갑시다"라는 말로도 통하는 것과 같 은 이치인 셈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채소 절임 요리 중에서도 한 국의 김치만큼 다양한 젓갈류로 그 풍미를 끌어올린 것은 거의 없다.

- 우리나라에서 삼겹살 구이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것은 1970년대 말이다. 하지만 비계가 낀 돼지고기에 대한 사랑은 그 역사가 무척 오래되어서 일제강점기에 출간된 요리책에도 '세겹 살(삼겹살)은 돼지 중에 최고'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삼겹살 구이가 비교적 최근에야 유행하게 된 데는 비 계가 가진 특유의 잡내가 한몫했다. 지방이 가득한 비계는 고기의 여러 부위 중에서 인기가 없는 부위다. 자연스레 값도 싸다. 하지 만 돼지 종자 개량을 통해 특유의 잡내를 없애고 비계 사이에 살 이 들어차도록 한 결과, 삼겹살 구이라는 맛있는 음식으로 재탄생 할 수 있었다.
돼지비계 요리를 사랑하는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여러모로 공 통점이 많다. 지정학적으로 유라시아의 끝자락에 위치해서 유목 문화의 영향이 강하다는 점, 주변 강대국들의 침탈로 인한 질곡의 역사를 경험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또한,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으나) 두 나라 모두 오래전부터 농업이 주요한 산업이었지만 다양한 육가공 문화가 발달했다. 육류 단백질은 농경민들에게 결핍되 기 쉬운 영양소다. 그렇기 때문에 돼지비계처럼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부위를 가공해서 영양분을 섭취할 방법을 모색하다 보니 살 로나 삼겹살 구이 같은 요리를 개발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살로와 삼겹살의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최고의 술안주라는 점 이다. 삼겹살에 소주이듯이 살로에는 보드카가 제격이다. 여기 에 상큼하고 아삭한 양배추 절임까지 곁들이면 우크라이나에서는 가히 최고의 안주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살로와 삼겹살 구이가 각각 우크라이나와 대한민 국의 국민 음식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닌 듯 하다. 그보다는 이 음식들 속에는 척박한 역사와 가난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내고자 했던 두 나라 민초들의 강인한 생존력이 담 겨 있기에 서민들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조선 후기에 인기가 많았던 소불고기 요리로는 설하멱(下) 을 꼽을 수 있다. '눈 오는 날 찾는다'라는 뜻의 설하멱은 일종의 꼬치구이로, 소고기를 불에 구웠다가 찬물이나 눈에 넣어 식힌 후 기름을 발라서 다시 한번 구워 먹는 요리다. 지금도 유라시아 일 대에서 널리 유행하는 꼬치구이인 샤슬릭도 분무기 같은 것으로 물을 뿌리면서 고기를 구우니, 요리법이 비슷하다.
보다 대중적인 소고기 요리의 대표로 설렁탕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소의 머리, 내장, 뼈다귀, 발, 도가니 따위를 푹 삶아서 만든 국 또는 그 국에 밥을 만 음식인 설렁탕은 말뼈나 양뼈를 고아서 만든 몽골과 카자흐스탄 요리인 슈르파(또는 소르포)와 그 맛이 거 의 똑같다. 가축의 뼈를 푹 고아서 만든 이 음식들은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부위까지 살뜰하게 조리해 영양 섭취를 해야만 했던 민중 들의 지혜가 담긴 레시피라고 할 수 있다.

- 알코올 분해 효소가 선천적으로 많은 서양인들은 이처럼 주로 도수가 낮은 술을 마시며 해장한다. 위스키의 본고장이자 술꾼 많 기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에서는 해장술을 '개털(hair of the dog)'이 라고 한다. 늑대 같은 맹수에게 물린 상처는 그 짐승의 털을 문지 르면 낫는다는 미신에서 비롯된 말로, 쉽게 말해 '술병은 술로 고 친다'라는 뜻이다.
반면, 알코올 분해 효소가 서양인에 비해 선천적으로 적은 아 시아인들의 경우에는 술로 해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중국 사람 들은 해장 음식으로 연두부와 쌀죽, 일본 사람들은 된장국(미소시 루)에 낫토를 먹는다. 몽골 사람들은 원래 우유를 발효시켜 약하게 알코올 성분이 함유된 쿠미스를 마시며 해장을 했지만, 요즘에는 러시아의 영향으로 맥주를 많이 먹는다.
각 나라마다 저마다의 해장 문화가 있지만, 우리나라만큼 '해 장'이란 단어가 널리 쓰이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한국에는 아예 '해장국'이라는 음식이 따로 존재할 정도다. 한국에서 해장국을 마시는 행위는 일종의 사회생활의 한 부분으로 깊숙이 자리를 잡 았다.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예전에는 회식을 한 다음 날이면 으레 함께 술자리를 한 이들 중 한 명이 "오늘은 해장국이나 할 까?" 하며 전날 멤버들을 다시 불러내어 합동으로 숙취 해소를 하 기도 했다.
다 같이 모여 해장을 하면서 전날 과음으로 인해 상했을 서로 의 건강을 생각해주고, 간밤의 여흥을 맑은 정신으로 거듭 이어가 는 해장 문화는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라고 여겨 진다. 우리나라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러시아나 폴란드에도 이런 지혜로운 해장 문화가 없다. 지금 당신이 마시는 한 잔의 술이 더 욱 행복한 이유는 아마도 내일의 따뜻한 해장국이 있기 때문은 아 닐까?

- 그렇다면 농사는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예전에는 근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지중해 동안의 팔레스타인에서 북부 메소 포타미아, 이란 고원에 이르는 지역)'에서 처음 발생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설이 우세했다. 하지만 오늘날 고고학계에서는 다지역 기원설을 더 지지한다. 중국에서도 약 1만 년 전부터 농사가 시 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나왔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약 1만 2,000년 전부터 호박, 박, 구근류 같은 것을 재배한 흔적이 발견되 었다. 즉, 농사는 동시다발적으로, 지역마다 독자적으로 발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 사실 농사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농경의 도입은 직립보행과도 견줄 수 있다. 직립보행은 동물적인 능력을 희생함으로써 당장의 생존 가능성은 줄어들게 만들었지만, 그 대신 두뇌의 폭발적인 발 전을 가져왔다. 이로써 장기적 관점에서 인간의 생존 가능성은 훨 씬 더 늘어났다. 농사도 마찬가지다. 사냥과 채집은 자연의 변화 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환경 적응성이 강한 활동이다. 눈앞의 먹잇감을 쫓거나 열매를 따면 그만이다. 만일 사냥감이 보 이지 않거나 더 이상 채집할 거리가 없으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 면 된다.
반면, 농사는 한번 시작하면 그 지역에 머무르면서 자신의 모든 삶을 농사에 걸어야 했다. 또한, 의외로 영양 상태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사냥과 채집을 하다 보면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었던 데 반해, 농사를 지을 경우 자연에서 나는 다양한 음식 자 원을 포기하고 오로지 선택해서 키운 작물만 먹어야 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비자발적 '원 푸드 다이어트'인 셈이다. 아이 러니하게도 농사를 지으면서 인간의 신장은 더 작아졌고 각종 질 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또한, 농사로 인해 전쟁이나 갈등의 빈도 도 더욱 심해졌다. 사냥과 채집 대신 농사를 선택한 상황에서 곡 물 생산량이 떨어질 경우,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약탈이다. 비축해둔 식량은 인간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로부터도 지켜야 했 다. 신경 써야 할 일들이 한층 더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농사만의 장점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주요한 장점은 인간 삶의 예측할 수 없는 요인 들을 최대한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령, 농사를 잘 지으려 면 치수(水)가 관건인데, 수리와 관개 시설에 관심을 기울임에 따라 인류는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 울 수 있었다. 또한, 사회 갈등을 줄이기 위해 공동체 내에서의 감 시와 통제를 강화하게 됨에 따라 법과 규칙 체계를 만들어나갔다. 그 결과, 장기적으로 인간의 수명은 늘어났고,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명도 빠르게 발전해갔다. 이처럼 농경이 도입되면서 인류는 급 격한 도약을 하는데 고고학계에서는 이를 '신석기 혁명'이라고 부 른다.

- 맨몸 격투기에 숨은 인류의 지혜
맨몸으로 하는 격투기가 인명 사상을 줄인다는 사실은 최근의 역사적 사례로도 확인된다. 1960년대 중국과 소련 양국은 국경 지역 영유권을 두고 우수리 강의다만스키 섬에서 큰 분쟁을 겪 었다. 이때 양측은 화력 동원은 자제하면서 주먹만 사용한 싸움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덩치 좋은 군인들을 내세웠다가 나중에 육박 전이 격해지자 다른 부대에서 권투나 무술 경력이 있는 선수를 데 려와 투입했을 정도다. 하지만 끝내 육박전으로 해결이 되지 않자 양측은 화력을 사용하긴 한다. 그 결과, 양측 도합 수백 명의 사상 자가 발생하는 수준에서 분쟁이 마무리된다. 어떠한 전쟁도 일어 나지 않는 것이 백번 옳지만, 애초부터 화력을 사용했더라면 피해 수준은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선사시대 이래로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해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선사시대 사회의 90퍼센트에서 폭력 분쟁이 있었으며 적 어도 2년에 한 번꼴로 실제 분쟁을 겪었다고 한다. 폭력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 내면에 내재된 본능 중 하나다. 그렇다고 해서 폭력성을 아무 때나 드러냈다면 인간은 이미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맨몸으로 하는 격투기는 선사시대 이래로 인간 내면의 폭력성 을 적절한 방식으로 표출하면서 재미있는 의식으로 승화시킨 결 과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무용의 <각저도>에 그려진 고구려인과 서역에서 온 호인의 결투 장면은 새롭게 다가온다. 인간은 자신 과 다른 타인에게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이 두려움이 커지 면 적개심이 되기도 한다. 고구려인들이 즐겼던 씨름은 이방인에 대한 적개심을 격투 경기를 통해 해소하는 방편이었으리라. 또한, 경기가 열리는 장을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축제의 장으로 만듦으 로써 모두가 하나로 화합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

- 사슴뿔 금관, 하늘과 땅을 잇다
1921년 발굴된 신라 금관총 금관은 사슴뿔과 나뭇가지를 모티 브로 하고, 곡옥(曲玉, 반달 모양으로 다듬은 옥구슬)을 단 화려하고 독특한 형태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사실 사슴뿔과 나무를 형상화한 금관은 흑해 연안,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도 발견된 바 있 다. 나아가서는 서쪽으로는 북유럽, 동쪽으로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유적에서도 비슷한 모티브의 관들이 발견되었다.
북반구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발견되는 사슴뿔 모양의 관은 하늘의 대리인인 샤먼의 의식에 사용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 슴뿔은 매년 자라므로 무한한 생명력을 뜻한다. 또한, 하늘로 뻗 어나가는 아름드리나무는 마치 하늘로 이어지는 통로를 연상하게 한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상징이었던 사슴뿔과 나무가 (금관 장식에 쓰인 이유다. 오늘날에도 유라시아 곳곳의 샤먼들은 신성 한 나무 아래에서 하늘과 통하는 의식을 치른다. 만주족은 20세기 초반까지도 신라 금관과 유사한 형태의 관을 쓰고 그들이 신성하 게 모시는 자작나무 앞에서 샤먼이 부족을 대표하여 하늘에 제사 를 올렸다. 사슴뿔과 나무 모양으로 장식된 샤먼의 관은 신과 인 간이 소통하는 다리의 역할을 했다.
- 신라 금관은 유라시아 네트워크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반도 동 남쪽에 위치한 신라의 왕과 귀족이 쓰던 관이 북방 유라시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에 주목하면 이해의 실마리가 보인다. 금은 무르고 변형이 쉬운 물질이다. 따라서 금관을 착용하려면 가죽이 나 천으로 만든 관모(모자)를 쓰고 그 위에 금관을 덧써야 한다. 흥 미로운 점은 신라 귀족의 무덤에서 거의 빠짐없이 발견되는 관모 의 재료다. 이 관모의 재료는 섬세하게 가공한 자작나무 껍질이 었다.
자작나무는 한반도 남쪽 신라에서는 자라지 않는 나무로 주로 만주와 시베리아 일대에서만 자라는 대표적인 북방계 수종이다.
- 오늘날에도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자작나무의 껍질로 그릇, 모자, 가방 등의 생필품을 만들어 사용한다. 천마총의 말다래도 자작나 무 껍질을 복잡하게 가공해서 만들었는데, 그 위에 복잡한 그림을 그릴 정도로 신라에서는 자작나무 공예술이 발달했다. 이는 당시 신라가 북방 지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자작나무를 공급받는 무역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또한, 그것을 가공하여 예 술품을 만드는 장인들의 기술이 출중했음도 의미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신라 금관에는 이처럼 우리 역사의 다양한 장면들이 숨어 있다. 유라시아 대륙과 맞닿고자 했던 고대 신라 왕족들의 열망에서부터 일제강점기 문화재 약탈의 아 픔, 그리고 이에 대항하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문화에 대한 자부 심과 항일 의식까지 화려한 외양속에 반만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 겨 있는 것이다.
-  중국인들은 인삼을 직접 캐지 않고 굉장히 먼 데서 수입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삼의 대표적인 산지 는 백두산 일대다. 인삼은 일교차, 계절에 따른 기온차가 뚜렷하 고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약용작물이다. 중국과 인삼 교역을 시작한 시기는 고조선 때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백두산 일 대에서 얻은 모피를 중국과 교역한 흔적이 있는데, 이때 한반도 인삼의 존재가 중국에 알려졌던 것 같다.
우리 인삼이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삼국시대에 들 어서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는 진상품으로 중국에 인삼을 선물했 다. 고구려와 백제의 인삼이 유명하다는 기록은 6세기경부터 등 장한다. 통일신라도 당나라에 인삼을 보낸 기록이 있지만, 인삼의 품질이 고구려나 백제 인삼에 미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심지어 당나라가 통일신라에서 보낸 인삼을 받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통일신라가 인삼의 주요 산지인 백두산 일대와 멀어서 생산 량이 적었던 데다 채취한 인삼을 저장하는 기술도 발달하지 못했 던 탓도 있다.
우리 역사에서 인삼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발 해다. 신라 인삼에 대한 기록은 8세기 말 이후에 사라진다. 이 시 기는 발해가 한반도에서 인삼의 주요 거래 국가로 등장하는 시점 과 맞물린다. 발해의 영토는 시베리아 호랑이로 유명한 연해주 시 호테알린산맥과 백두산 일대로까지 확장되었는데, 이 지역이 바 로 인삼의 주요 산지였다. 일본도 8세기 초에 발해를 통해서 인삼을 처음 접한다. 발해는 기후가 냉랭하고 산세가 험한 지형에 위치했지만 그러한 토양에서 잘 자랐던 특산품 인삼 덕분에 이를 수 출해 국고를 쌓을 수 있었다.
최근 러시아의 발해 유적에서 발해가 인삼 산지로 유명했음을 밝혀주는 물건이 발견되었다. 바로 인삼을 채취하는 도구다. 이 도구는 동물의 뼈로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도 삼과 쇠는 상극이기 때문에 인삼을 채취할 때 나무나 골제로 된 도구를 사용한다. 흥 미롭게도 인삼 캐는 도구가 발견된 곳들은 발해 유적들 중에서도 최북단 산악 지역들이었다.

- 적절한 모방은 그 물건이 널리 사용되고 보급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고조선 멸망 후 한반도 남쪽의 국가들은 중국과 직 접 교역하게 되는데 삼한의 우두머리들은 중국에서 사온 관리의 옷과 도장을 비롯해 중국제 명품을 무척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인 기가 있던 제품은 청동거울이었다. 한나라의 청동거울은 중국 내 에서도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청동거울의 뒷면은 화려하게 장 식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둥그런 모양이 태양 같아서 행복과 부 를 상징했다. 청동거울은 실용성과 상징성을 겸비한 도구였다. 청 동거울은 일본에서도 인기가 있었는데, 야요이시대 무덤에서는 청동거울이 같은 장소에도 몇 개씩 발견되기도 한다.
- 그런데 이 중국 명품의 수요가 많아지자 그 대안으로 청동거울 을 모방한 제품이 널리 제작, 사용되기 시작한다. 일명 '본뜬거울' 이라고도 불리는 방제경(製鏡)이다. 방제경은 특히 약 2,000년 전 무렵 삼한이 있던 경상남도 일대에서 널리 유행했다. 얼핏 보 면 한나라 청동거울과 유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무늬가 조잡해 서 차이가 난다. 거울 뒷면의 무늬는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아무 필요가 없다 보니 문양이 다소 거칠더라도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도록 보급형으로 만들어 널리 사용한 것이다. 방제경 덕분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거울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방제경은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에 있는 초기 백제시대의 집터 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는 이제 거울이 살아생전 귀하게 사용되다 가 무덤에 함께 묻히는 물건이 아니라 집에서 쓰다가 그냥 버릴 정도로 흔한 물건이 되었음을 뜻한다. 이쯤 되면 방제경은 청동거 울의 어설픈 가품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그보다는 더 많은 사람 들이 실용적인 도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급형으로 발전된 형태 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심지어 방제경은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흑해 연안이나 우크라이나에서도 발견되었다. 실크로드를 통해서 교역이 왕성해지면서 중국제 물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이를 본뜬 방제경이 유통되었던 것이다.

- 전쟁 영화 포스터나 스틸 이미지를 보면 전장에 총을 꽂고 그 위에 철모를 걸어두어 시신이 있는 곳을 표시하는 장면이 종종 묘 사된다. 이는 약 3,000여 년 전 고대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 전사 들이 땅에 낡은 칼을 꽂아 전사자를 위로하던 풍습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역사서인 헤로도토스의 《역사》 와 사마천의 《사기》에는 초원 사람들이 낡은 칼을 전사의 상징으 로 숭배했다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이 풍습을 《역사》에서 는 '아키나케스', 《사기》에서는 '경로'라고 불렀는데, 동일한 말을 다르게 음차한 것이다.
이 풍습은 고대 그리스로 건너가서 전쟁의 신 아레스(Ares)의 상징이 된다. 한반도에서도 고인돌 앞에 비파형동검을 꽂아두고 숭배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현대인들의 관점에서는 화려한 황 금 보검이 아니라 날이 빠진 낡은 칼을 꽂아두는 것이 선뜻 이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저승과 이승을 반대로 생각했던 고대 유 목 민족들의 관념에서 비롯되었다. 죽은 자를 위한 유물은 일부러 부러뜨리거나 깨서 기존의 형태를 훼손하여 넣는 경우가 흔하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왕이나 장군의 경우에는 시신을 거둔 뒤 거대한 무덤을 만들고 그 안에 안치했다. 2,500여 년 전 러시 아 알타이 초원의 파지리크 고분군 유적에서 왕족을 묻은 대형 무 덤을 발굴하던 중 흥미로운 인골이 발견되었다. 미라 형태로 발견된 무덤의 주인공은 머리 가죽이 벗겨진 상태였는데 벗겨진 부분 을 소가죽으로 덧대어둔 것이다. 오래전 동아시아에서는 적장을 죽이고 나면 목을 베어 그의 해골로 술잔을 만들어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풍습으로 유목 민족들의 경우에는 목 을 베는 대신 머리 가죽을 벗겨서 자신이 타고 다니는 말의 꼬리 에 달고 다녔다. 아마도 미라로 발견된 왕족은 전쟁터에서 선봉에 나섰다가 희생을 당한 인물이지 싶다. 그의 부하들은 전장에서 목 숨을 잃고 머리 가죽이 벗겨진 수장의 유해를 고이 모셔와 적군에 게 훼손된 신체를 정성스레 복구시킨 후 무덤에 안장했을 것이다. 이런 풍습이 있다 보니 전사의 유골은 전쟁터에서 획득해야 하는 주요한 전리품이었다. 북방 유목 전사들은 전쟁이 끝나고 승기를 잡 았다고 해도 적의 무덤을 찾아 그 인골을 훼손해야 비로소 전쟁이 끝 났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무덤 에서 발견한 귀금속들을 전리품으 로 챙기기도 했다. 실제로 흉노의 고분을 발굴하다 보면 이미 도굴이 되어서 인골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 문신 과정은 침술과도 비슷해 치료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 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굴된 미라의 허리 아래 부분에는 마치 침을 놓은 듯 일렬로 점을 찍은 문신이 양쪽으로 남아 있다. 이 부 위는 공교롭게도 오래 말을 탈 경우 가장 통증이 심한 요추 부분 이다. 기마민족에게 요통은 피할 수 없는 고질병이었을 터, 바늘 로 아픈 부위를 찔러 허리 통증도 줄이고 신령한 힘을 몸에 불어 넣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신을 완성하려면 바늘로 수백 번, 수천 번 몸이 찔리는 고통 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통을 동반한 채 우리 몸을 도화지 삼아 새겨 넣은 문신은 고대의 정신문화가 담긴 메모리와 같다. 하지만 근대 이후에 문신은 특유의 주술적, 제의적 의미는 사라지 고 그 의미가 바뀌게 된다. 사람들이 몸의 털을 밀고 문신으로 표 식을 새겨 넣는 대신 신분과 계급에 맞는 옷과 화장으로 자신의 몸을 가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와중에 문신은 근대화하지 못한 야만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또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고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문신은 고통을 감내하면 서도 자신의 지위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던 고대인들의 가 장 원초적이며 인간적인 화장술이었다.

- 사실 옛사람들이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점을 쳤는지 등을 증명할 수 있는 유물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나마 점복의 흔적으로 가장 많이 발굴되는 것은 복골이다. 복골은 짐승의 뼈로 만들 어진 점을 치는 데 쓰던 도구인데 짐승의 어깨뼈를 불로 지진 다 음 거기에 새겨진 금을 보고 점괘를 보는 방법, 거북의 껍데기나 짐승의 어깨뼈에 글자를 새겨 놓고 그것으로 점괘를 보는 방법 등 이 있었다. 뼈 부위 중에서도 어깨뼈(견갑골)가 선호된 이유는 가 장 얇은 뼈라서 잘 갈라졌기 때문이다.
- 복골의 풍습은 한반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다만, 상나라와 달리 글자를 새기지 않았을 뿐이다. 그 외에 점을 치는 방식이나 도구 등은 상나라의 그것과 모두 똑같다. 소나 돼지의 어깨뼈에 구멍을 일정하게 뚫어서 불 위에서 그을린 뒤 잘 갈라지게 한 복 골이 약 2,000년 전의 마한과 가야 사람들이 살던 서해안과 남해 안의 조개무지에서 다수 발견되기도 했다. 요즘에도 유독 어촌에 점집이 많은 편인데, 바다만큼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자연환경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복골 이 발견되기도 했다. 강릉 바닷가에 위치한 강문동의 늪지대에서 말뼈로 만들어진 복골이 발굴된 것이다. 말뼈로 만들어진 복골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강문동에서 발견된 복골이 유일하다. 중국 상나라에서는 남방 바닷가에서 잡아온 귀한 거북의 등딱지를 짐승의 어깨뼈 대신 쓰기도 했지만, 말뼈는 사용한 적이 없다. 말의 사육 과 이용이 가장 활발했던 초원 지역에서도 말뼈로 만들어진 복골 은 거의 없다. 이들에게 말은 귀하게 돌보며 타는 동물이지 잡아 먹고 남은 뼈로 점을 쳐도 되는 동물이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들 을 종합해볼 때, 강문동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복골용 뼈로 말 뼈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말을 탈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소 나 돼지 같은 가축으로 인식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담한 작전  (0) 2024.04.17
부의 세계사  (14) 2024.03.05
종교의 흑역사  (2) 2024.02.16
이천년전 중국의 일상을 거닐다  (3) 2024.01.04
음식에 담긴 문화 요리에 담긴 역사  (2) 2023.12.26
Posted by dalai
,

센세이셔널

과학 2024. 4. 26. 07:01

- 미각수용기 taste receptor는 혀, 뺨 안쪽, 식도 꼭대기 부분을 덮고 있다. 미각수용기에 분자 하나를 던져주면 수 밀리초 후 분자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뇌에 재잘댈 것이다. 미각수용기는 신체 기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간, 뇌, 심지어 고환 같은 곳에서도 미각수 용기가 발견된다. 2013년에 발표한 논문 중 하나가 고환에 미각수용 기가 있다는 내용을 언급하자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고환을 간장에 담가 확인해보는 유행이 일기도 했다. 심지어 짭짤한 맛을 느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신체 기관에서 미각 수용기가 발견된다 한들, 맛봉오리 taste bud라는 제대로 된 구조를 갖 추기는커녕 입속의 미각수용기처럼 뇌와 연결돼 있지도 않다. 따라 서 이것으로 맛을 느낄 리는 만무하다. 간장에 고환 담그기를 시도 한 사람들은 조미료에 범벅된 고환과 못 먹게 된 간장 한 사발만 남 긴 채 헛된 망상에 빠졌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감각이 진정한 감 각이 되려면 전문화된 수용기는 물론이고, 뇌의 감각겉질sensory cortex 로 이어지는 정보 고속도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감각의 신경로가 수용기에서 뇌까지 거침없이 이어져 있다고 해서 뇌가 그저 중립적으로 입력을 받아들이고 해독하는 컴퓨터에 불과하다고 결론짓지는 말라.
- 상식적으로 보면 아무리 사랑으로 눈에 콩깍지가 씐 사람이라도 산업화된 도시를 흐르는 큰 강이 푸른 숲속 맑은 호수같이 보일 리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도 일말의 진실이 있다. 감정적으로 흥분 한 상태에 있으면 뇌의 시각겉질visual cortex 활성이 증가해서 눈에 보 이는 것이 더 풍요롭고 선명하다. 할아버지는 여행하는 동안 자신의 태도에 따라 감각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크다. 마음가짐이 뇌의 신경 활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쳐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 생명은 약 40억 년 전 물속에서 진화했다. 최초의 생명체는 물살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없는 정적인 유기체였다. 하지만 한 곳 에만 머무는 것은 만족할 만한 생활방식이 아니었다. 새로운 환경을 찾아 나설 능력이 있는 도전적인 미생물에게는 다른 생명체가 사용 하지 않은 새로운 자원을 이용할 기회가 열렸다. 최초로 등장한 생 명체 중 하나인 남세균cyanobacteria은 움직이려는 야심을 다양한 방식 으로 달성했다. 어떤 것은 작은 점액을 분사해 추진력을 얻었다. 세 균은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기고, 헤엄치는 것을 이동 수단으로 삼았 다. 길을 찾아갈 능력이 있는 생명체라면 이런 소규모 이동의 효과가 훨씬 커졌다. 화학적 기울기chemical gradient는 이런 세균에게 방향 을 알려주는 물리 세계의 한 가지 속성이다. 빛도 그런 속성에 해당 한다. 로돕신rhodopsin 같은 감광단백질photosensitive protein은 빛을 흡수 하고, 그 과정에서 화학적 구조가 바뀐다. 이것이 태양 광선을 감지 하고, 그 광선이 제공하는 에너지를 유지하는 기초 원리다.
감각을 갖춘 복잡한 생명체의 진화에서 일어난 이 근본적 인 단계는 압력의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도 동반했다. 이를 기계자 극민감성mechanosensitivity이라고도 한다. 세균의 외막에는 압력에 반 응해서 열리는 채널channel이 있다. 기본적으로 채널은 세균이 과식 한 후에도 터지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세균이 자기 내부 압 력을 바깥세상의 압력에 맞출 수 있는 것도 채널 덕분이다. 이런 민감성 채널sensitive channel이 우리의 정교한 기계적 감각mechanosensation 의 선조라고 추측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원생생물 Protist인 짚신벌레 Paramecium처럼 더 정교한 생명체로 넘어오면 이들이 물리적 접촉에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균과 마찬가지로 짚신벌레도 몸이 단 하나의 생명 세포로 이뤄져 있지만, 살짝 건드리면 내부의 압력이 변 하면서 이에 반응해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빛 감지가 시 각의 출발점이었고, 화학물질을 추적하는 세균의 능력이 결국 후각 과 미각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놀랍게도 기계적 자극에 대한 이런 간 단한 대응 방식이 결국에는 청각과 촉각을 발달시켰다. 수십억 년 전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명체에서 이런 발전이 일어났고, 그 후로 생 명의 나무tree of life에 속한 모든 가지에 감각이라는 유산으로 전해 내려왔다.
진화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생명체는 감각의 사다리를 타고 올랐고, 새로운 가로대를 잡고 올라갈 때마다 특별한 혜택을 얻었 다. 이런 발전을 가능하게 한 핵심은 정보, 즉 환경에 대한 정보, 포 식자와 먹잇감에 대한 정보, 경쟁자와 잠재적 짝에 대한 정보 등이 다. 우리 감각은 원시의 습지에서 농도 기울기를 따라다니던 고대 생명체들이 물려준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런 감각들이 뇌 진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  인간은 대단히 사회적인 동물이라 다른 것은 몰라도 얼굴만 큼은 정확히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얼굴은 그만큼 중요한 대상이 라 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의 기본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한다. 특히 눈 두 개, 인접한 코, 그 아래 입으로 구성된 대략적인 형태가 보이면 얼굴로 파악하는 성향이 있다. 임신 후기의 태아는 엄마의 배에 빛으 로 형태를 만들어 비춰주면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점과 선으로 얼굴 과 비슷한 형태를 구성해 보여주면 다른 구성보다 더 오래 관심을 보 인다.
- 그림자가 성게 위로 지나가면, 가시만 많지 눈은 없는 이 작은 생명 체는 곧 공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가시를 곤두세 우며 맞서 싸울 준비를 한다. 칠성장어의 꼬리나 초파리 유충에 빛 을 비추면 이들은 서둘러 피할 곳을 찾아 나선다. 두 경우 모두 눈과 는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이다. 비둘기 새끼들은 자기 위의 빛이 변하면 몸을 꼿꼿이 세우고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친다. 빛의 변화를 부모가 도착했다는 신호로 여기도록 타고났기 때문이다. 이 행동은 모자로 머리를 완전히 덮어 빛을 볼 수 없게 해도 나타나지만, 몸 전 체에 빛을 차단하는 망토를 입혀 놓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이 모든 생명체의 반응 행동은 빛의 존재를 인식하는 피부 속 감광단백질의 도움으로 이뤄진다.
우리 몸에서도 이 단백질의 친척들을 찾아볼 수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눈을 뜰 때마다 빛이 흘러들어와 졸음을 몰아내고 하루 를 맞이할 수 있게 준비시키는 일련의 사건을 개시한다. 이런 역할 은 멜라놉신melanopsin이라는 특이한 단백질이 담당한다. 멜라놉신은 우리 머리와 눈 내부의 다양한 장소에 흩어져 있다. 빛이 멜라놉신 에 와 닿으면 이 단백질은 분자의 춤을 추고, 이것이 뇌 깊숙한 곳에 있는 교차 상핵suprachiasmatic nucleus에 메시지를 전송한다. 이에 반 응해 그 안에 있는 신경세포 다발은 우리에게 수면을 준비시키는 호 르몬인 멜라토닌melatonin의 생산을 중단하고, 우리 몸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도록 시동을 건다. 멜라놉신은 특히 청색광에 잘 흥분한다. 우리가 넋 놓고 바라보는 백라이트 스크린에서는 청색광이 많이 나 온다. 잠자리에서 스마트폰을 하지 말라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스 크린 장치를 보고 있으면 멜라놉신이 활성화돼 뇌가 깨어 있도록 유 도하는 꼴이 된다.
-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빛이 어디서 오는 건지 감지하는 능력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다. 편형동물의 시각 능력이 곰팡이에 비 해 대단히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빛의 기 울기에 따라 자신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능력만 해도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는 하나의 혁명에 해당한다. 유글레나 같은 미생물에게는 정교한 장치를 갖추지 못한 경쟁자들이 뒤처지는 동안 햇살이 좋은 장소를 독차지하고 즐겁게 광합성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편형동 물에게는 그늘을 찾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빛을 찾을 능 력이 없는 생명체보다 경쟁우위에 선다. 이런 방식으로 무장한 고대 의 생명체들은 자연선택으로 보상받았다. 이들은 더 많은 자손을 남 기고, 자손들은 부모를 승자로 만들어준 형질을 물려받는다.
- 편형동물을 필두로 안점이 있는 구멍이 깊어질수록 그 안의 감광세포에 그늘을 더 잘 드리울 수 있게 됐다. 이 구멍의 입구가 상 대적으로 좁아지면 핀홀카메라pinhole camera와 비슷한 것이 만들어진 다. 렌즈는 없지만 좁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이 반대쪽에 단순한 이미지를 투사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솔직히 그 이미지가 기막 히게 선명하지는 않지만 어엿한 이미지이고, 전복이나 앵무조개 같 은 동물은 아직까지 이런 구조에 의존한다. 이것을 토대로 눈의 발 달에 속도가 붙고, 그 위로 투명한 피부 덮개가 생겨난다. 원래의 목 적은 병원체의 침입을 막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막cornea 으로 진화한다. 수정체lens 역시 크리스탈린 crystallin이라는 투명한 단백질이 고농도로 들어있는 피부세포에서 나왔다. 편형동물 같은 생명체의 경우 원초적인 빛 감지 기능을 수행한 감광세포들도 망막 retina이라고 부르는 정교한 구조체로 발전했다. 수정체와 각막이 함 께 작용해 빛을 굴절시켜 망막에 초점이 맺히게 함으로써 우리는 아 름다울 정도로 선명한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게 됐다.
눈의 진화가 원시적인 감광 세균부터 현대 인류에 이르기까 지 뻔한 생물학적 성취 과정을 따라왔다고 섣불리 짐작해서는 곤란 하다. 많은 저명한 생물학자가 지난 5억 년 동안 시각이 독립적으로 진화해 나온 횟수를 헤아려봤다. 어떤 사람은 몇 번 정도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수백 번이었다고 한다. 정확한 횟수가 무엇이든 간 에 동물계에는 아찔할 정도로 다양한 눈이 존재하고, 그중에는 우리 보다 우월한 것도 있다. 그리고 진화의 다른 많은 산물과 마찬가지 로 우리 눈도 상황에 맞게 타협하면서 그때그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이어 붙인 것도 분명히 있다. 눈의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들도 어 느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유전체 전체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더 군다나 눈 유전자들은 눈이 존재하기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가 있다. 일부 유전자의 원래 역할은 일종의 세포 스트레스 반 응을 암호화하는 것이었다. 피부가 자외선에 노출된 후에 검게 타게 만드는 유전자에 비유할 수 있다. 여기서 결론은 눈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들은 난데없이 '짠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여기서 조금, 또 저기서 조금씩 떼어온 것이라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정말 훌륭한 눈이 탄생했지만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가장 두드러지는 결함은 망막 앞뒤가 거꾸로 뒤집힌 점이 다. 망막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 망막을 뇌와 연결해주는 신경은 망막 뒤쪽이 아니라 바깥세상을 향하고 있는 앞쪽에 분포한다. 그래 서 시신경이 망막을 뚫고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부위에 맹점blind spot이 생긴다. 그리고 이곳의 혈관이 막히거나 피가 새면 빛이 망막 에 도달하지 못해 시야가 흐려지거나 차단된다. 생명 공학은 이런 불완전한 결함의 흔적을 간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색을 범주로 나눠 분류하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언어의 차이는 풍부한 테스트 재료를 제공한다. 이에 지난 20년 동안 베린모 언 어 사용자를 찾아 파푸아뉴기니로 찾아오는 언어학 전문가들의 발 길이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그중 한 검사 결과가 상상력을 사로잡 는다. 사람들에게 색을 하나 보여주면서 기억하라고 한 뒤, 몇 초후 에 새로운 표본 두 개를 보여주며 처음에 기억했던 색과 일치하는 것 을 고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테스트 참가자에게 파란색 표본을 기 억하라고 한 후에 파란색과 초록색 표본을 보여주며 어느 쪽이 원래 색과 일치하느냐고 물어본다. 그렇게 나온 결과는 의심할 여지 없이 분명했다. 베린모 언어 사용자들은 영어 사용자보다 nol색과 wor색 경계에 있는 색의 짝을 맞추는 데 뛰어났지만, 초록과 파랑 경계에 있는 색에서는 영어 사용자들이 뛰어났다.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은 영어 사용자보다 초록색의 다양한 색조를 구분하는 데 훨씬 능하다. 초록색 계열의 용어가 영어는 11가지인데 반해 한국어에는 15가지 가 있다. 한국인들은 연두색yellow-green과 초록색green의 차이를 알아본 다. 반면 양쪽 모두 영어로는 '초록색'으로 표현된다. 이와 비슷한 여 러 연구 결과는 색의 지각에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개념을 지 지한다. 이런 결론에 무게를 실어주는 더욱 놀라운 발견이 있다. 오 른쪽 눈으로 볼 때만 색을 효과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연구 에 따라서는 왼쪽 눈으로 볼 때도 분류가 가능하나 오른쪽 눈이 훨씬 효과적이 라는 보고가 있다). 뇌에 도달하기 전에 시신경이 교차하는 방식 때문 에 오른쪽에서 오는 정보를 해독하는 쪽은 좌반구다. 이것이 왜 중 요할까? 언어 중추가 있는 곳이 바로 좌뇌이기 때문이다.
- 색각에 관한 한 우리가 포유류 중에서는 최고일지 모르겠지만 다른 동물들과 비교하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류는 적어 도 우리와 동등한 색각을 가진 한편, 조류는 색수용기가 4개라서 우 리의 색각을 훨씬 뛰어넘는다. 특히 꿀벌과 나비를 비롯한 다른 많 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새들도 자외선을 볼 수 있다. 우리도 기술을 이용하면 자외선을 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이런 동물들이 주변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 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간단한 장치를 통해 바라보면 꽃 잎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무늬가 보인다. 이런 무늬는 꽃가루 매개자를 끌어들이는 작용을 한다. 찌르레기나 까마귀 같은 새의 깃 털도 달리 보인다. 우리 눈에는 찌르레기가 얼룩덜룩하고 둔한 갈색 으로 보이지만, 찌르레기의 눈에는 강렬한 보라색, 초록색, 파란색의 향연으로 보인다. 다른 극지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순록도 자외선을 볼 수 있다. 그 덕에 이들의 주된 먹이인 지의류 lichen 이끼가 툰드라 지역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또한 소변은 자외선 아래서 빛을 내는데 이를 통해 순록은 나머지 무리가 어디로 갔는지, 늑대가 오줌을 싸는 나무는 어느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맹금류는 자외선을 볼 수 있는 능력으로 설치류가 흘리고 다닌 소변을 추적해 땅굴의 위치를 찾아 낸다. 시각적 능력을 이용해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는 동물들에게 자 외선은 비밀 통신 채널 역할을 한다.
- 가시광선 스펙트럼에서 자외선의 반대쪽에 있는 적외선을 감지하는 능력은 동물에서 아주 흔한 편은 아니지만, 생각보다는 폭 넓게 퍼진 능력임이 드러나고 있다. 적외선은 따듯한 물체에서 방출 되기에 조류나 포유류처럼 스스로 체열을 생성하는 동물은 이 게임 에낄 수 없다. 여기서 흡혈박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흡혈박쥐 는 볼 수 없지만 코에 달린 감각기관 덕분에 체열을 이용해 먹잇감에 곧장 달려들 수 있다. 박쥐의 코는 상대적으로 차갑게 유지할 수 있 는 특별한 해부학적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로써 자신의 체열에 의 해먹이 사냥이 방해받는 것을 피한다. 피를 빨아먹는 또 다른 동물 인 모기 역시 체열을 이용해 먹잇감을 찾는다. 사람들은 모기를 혐 오하지만 모기가 감각을 이용해 정확하게 표적을 조준하는 것을 보면 일말의 존경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모기는 우리가 내쉬는 숨 속 의 이산화탄소를 감지해 우리를 찾아낸다. 사람에게 접근한 후에는 적외선 감지 기능으로 전환해 따듯한 피부가 노출된 부위를 찾아낸 다. 방울뱀, 비단뱀python, 보아뱀도 적외선 감각을 이용해서 포유류 먹잇감을 찾아낸다. 그들이 발산하는 체열을 그들을 몰락시킬 수단 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적외선 시각을 보여주 는 존재는 척추동물 계열에서 축축한 끝단에 자리 잡고 있는 어류와 개구리다. 이들의 눈에 있는 발색단chromophore은 화학적 재구성을 통 해 더 긴 파장 쪽으로 시각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럼 가시영 역이 적외선 쪽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하면 생물학적인 야간 투시경 을 쓰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어서 흐린 물에서도 방향을 읽을 수 있다.
- 빨간색은 다른 색깔보다 강하게 동기를 부여하고 도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방식은 그리 간단치 않다. 빨간색은 경쟁심을 자 극하고,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보편적인 자극제 역할을 한다. 하지 만 사고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요구하는 과제의 수행에 영향을 미 칠 수도 있다. 빨간색이 우리를 긴장시키고, 창의적 사고능력을 제 한한다는 증거도 있다. 빨간색에 대한 반응은 환경에 따라서도 좌우 된다. 어른이 되면 파란색을 좋아하지만 유아 시절에는 빨간색을 더 좋아한다. 이것은 문화적 영향력이 자리 잡기 이전부터 빨간색에 빠 져든다는 의미라서 흥미롭다. 한 살배기 영아도 상황에 따라 빨간색 에 대한 선호도가 달라진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기분이 좋은 한 살 배기는 빨간색에 싫증을 내지 않지만 화난 얼굴 사진으로 기분을 상하게 하면 빨간색에 대한 호감도가 사라지고 다른 색을 고른다.
파란색은 효과가 덜하지만 빨간색과 정반대로 작용한다. 제 약회사가 각성제를 팔 때는 약이나 포장의 색깔이 빨간색일 때 해당 제품에 대한 확신이 더 강해지는 반면, 제품이 항우울제일 때는 파 란색이 더 효과적이다. 패스트푸드 식당이 로고나 인테리어, 심지어 컵까지 빨간색을 선택하는 이유가 궁금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 기에는 빨간색이 식욕을 자극하고 자발적인 구매를 촉진한다는 견 해가 한몫을 거든다. 파란색은 빨간색과 반대로 작용해서 식욕을 억 제하고, 더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한다. 이것이 파란색 브랜드의 햄 버거 가게가 드문 이유이며, 있더라도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하 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색이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의 전체적인 감 각 경험을 구성하는 다양한 입력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색 연구에 관한 기록에서 상반되는 온갖 연구 결과가 등장하는 것도 이 런 이유일 것이다.
- 우리가 아름다움과 심미에 관심을 두는 것은 감각의 무게추가 시각 쪽으로 심하게 치우쳐 있어서다. 좋든 싫든 시각은 다른 감 각을 압도한다. 우리가 기울이는 관심의 양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감 각에 이용되는 전체적인 감각기관의 비율 면에서 봐도 그렇다. 시각 에 동원되는 감각수용기의 수는 2억 개 정도로 막대하고, 시각은 나 머지 감각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뇌의 자원을 소비한다. 이것은 시각이 정말 복잡하다는 것과 시각이 우리 종의 진화에서 핵심 역할 을 맡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우리의 시각적 삶에 또 다른 특질을 부 여하는 것이 바로 복잡성이다. 끊임없이 입력되는 정보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결국 뇌는 다른 어떤 감각보다 시각을 해 석하고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 결과 매력적인 얼 굴에서 풍경, 미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개인적, 문화적 관점이 가득 녹아 있는 구성물이 된다. 우리가 주관적인 믿음이나 의견을 '관점view'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쩌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 뇌섬엽은 감각적 경험을 감각 입력과 뒤섞는 곳이다. 청각과민증이 있는 사람의 뇌섬을 과민증이 없는 사람의 뇌섬엽 과 비교했을 때, 다른 뇌 영역과의 연결 방식이나 활성화 정도(과도하 게 활성화돼 있다)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런 증상이 없는 운 좋은 사람 들은 청각과민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단순히 유별나다고 보겠 지만, 이것은 신경학적 기반이 있는 실질적 증상이다. 게다가 헤드 폰을 쓰는 것 말고는 효과적으로 치료할 방법도 거의 없다. 그러니 당신이 식사할 때 배우자가 팟캐스트 방송을 듣는다고 해서 기분 나 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 모든 사람이 청각과민증 환자가 겪는 소음 혐오증에 시달리지는 않지만, 보편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소음이 있다. 이와 관련해 혐오감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소음을 확인하는 설문조사가 여러 차 례 진행됐다. 사람들은 치과 드릴 소리를 무척 싫어한다고 답했는데, 아마도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개 짖는 소리나 다른 거슬리고 불안한 소음도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런 예시들 가운데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하는 소음은 다른 사람의 구 토 소리다. 콧물이 줄줄 흐르는 사람이 훌쩍거리는 소리나, 입을 벌 리고 음식을 씹는 소리도 싫어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다. 신 체 기능, 특히 감염 전파의 위험과 연결된 신체 기능은 우리에게 경 계심을 유발한다. 이런 종류의 반응은 우리 의식 깊숙한 곳에 내장 돼 수없이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자기 보호 수단으로 존재해 왔다.
-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 포크로 접시 긁는 소리, 아동의 비 명 등과 같은 다른 범주의 싫어하는 소리에도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강렬한 고음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인류의 모든 문화권에서 이 런 음향 프로필은 극단적인 고통을 나타낸다. 소음이 실제로는 고 통과 관련 없음을 잘 알면서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다. 이런 특성을 공유하는 비명과 고주파음이 뇌의 공포 생산 공장인 편도체 amygdala에 직접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명을 다 른 소리와 다른 방식으로 취급하는 성향이 있다. 이런 소리는 일반 적인 처리 과정을 우회해서 우리를 직접 긴장시킨다. 알람 소리나 다른 여러 가지 경고신호가 동일한 소리 주파수를 사용하는 것도 우 연이 아니다. 수백만 년을 거치면서 우리는 그런 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끔 진화했다. 한 연구에서 인간이 다양한 동물이 내는 울음소리 의 맥락을 얼마나 잘 파악하는지 조사했더니, 인간은 고통 속에 있는 동물이 내는 소리를 아주 잘 가려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계에서 보편적으로 통하는 신호가 있다면 비명일 것이다.
- 소통이 발성의 레퍼토리로 확장된 것이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과정이 정확히 어떤 시간 경과를 따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화석 증거를 바탕으로 보 면 200만 년 전에 기본적인 상징 소통symbolic communication과 함께 시 작해 5만 년에서 15만 년 전 사이에 진정한 언어가 발달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생각을 상징적 단어로 옮김으로써 우리 선조들은 자신의 감정과 아이디어를 표현했을 뿐 아니라 사람, 장소, 사물도 지칭할 수 있게 됐다. 초기 단계에서 소리는 친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유 인원의 털 고르기 행동에 해당하는 청각적 관계를 강화하는 수단으 로 이용됐을 것이다. 더 나아가 발달 과정에서 언어는 주변 사람들 과 어떤 과제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데 사용하는 협력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머나먼 과거 어느 시점에서 우리 선조들의 생활방식에 혁명 이 일어났다. 주로 과일과 채소를 먹던 식생활이 고기 섭취가 많아 지는 식단으로 바뀐 것이다. 발톱, 날카로운 이빨, 파괴적인 힘 등 사 냥하는 데 필요한 핵심 도구를 갖추지 못한 인간 같은 종에서는 효과 적으로 사냥할 방법이 협동밖에 없었다. 함께 일하며 사냥꾼 집단의 결집된 행동을 끌어내려면 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의사소통 수단이 필요했다. 기본적인 공통 어휘가 이런 수단을 제공하면서 우리 종의 특징인 협업과 혁신을 위한 무대가 마련됐다.
- 특정 음악에서 느끼는 즐거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한 가지 특징은 작곡가 겸 철학자 레너드 메이어 Leonard Meyer가 말하는 기 대expectation다. 일단 한 장르의 패턴에 정통하면 뇌는 무의식적으로 곡조가 어떻게 흐를지 예상한다. 음악을 즐길지 말지는 우리 기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느냐 달려 있다. 기대에 부합한다면 어떤 욕망을 충족했을 때 얻는 보상감과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뇌는 예측한 음과 실제 음이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하는 상호작 용을 지속한다. 따라서 우리가 음악적 모티브를 어느 수준까지 예측 할 수 있는지가 음악을 통한 즐거움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단순한 동요처럼 곡조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면 관심을 끌지 못하고, 곡조를 전혀 예측할 수 없을 때는 관심 자체가 사라진다. 내가 방그라 음 악을 들으면서 느낀 혼란과 산만함은 아마도 그 구조가 낯설어서 생 긴 것 같다. 내 뇌는 그 곡조가 어디로 향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양극단 사이에는 작곡가가 목표로 하는 최고의 균형점이 있다. 그곳 에서는 음악이 우리의 관심을 붙잡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놀랍고 복 잡하다. 하지만 전개와 반전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예측 불가 능하지는 않다. 이런 균형을 달성하는 순간 도파민이 터져 나오면서 희열을 맛보게 된다.
- 를 전혀 예측할 수 없을 때는 관심 자체가 사라진다. 내가 방그라 음 악을 들으면서 느낀 혼란과 산만함은 아마도 그 구조가 낯설어서 생 긴 것 같다. 내 뇌는 그 곡조가 어디로 향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양극단 사이에는 작곡가가 목표로 하는 최고의 균형점이 있다. 그곳 에서는 음악이 우리의 관심을 붙잡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놀랍고 복 잡하다. 하지만 전개와 반전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예측 불가 능하지는 않다. 이런 균형을 달성하는 순간 도파민이 터져 나오면서 희열을 맛보게 된다.
- 귀에는 비슷하게 들리지만, 식물은 놀랍게도 각각의 소리를 구분하 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곤충은 식물의 환대를 받는다. 꿀벌을 통해 꽃가루받이하는 식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세계도 경쟁이 치열 하다. 꽃이 곤충에게 함께 사업을 벌이자며 설득하려고 전략적으로 내놓는 유인책이 경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달맞이꽃evening primrose은 근처에서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감지하면 꿀의 당도를 높인다. 장대나물처럼 달맞이꽃도 꿀벌의 소리와 다른 비행 곤충이 내는 비슷한 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이 식물 중에 귀가 달렸거 나, 우리 뇌와 비슷한 감각처리 기관을 가진 것은 없다. 하지만 이들 에게는 진동에 엄청나게 민감한 이파리와 꽃이 있다. 식물이 인간의 청력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를 일부 갖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그렇다고 식물도 들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청력, 혹은 진동 감 수성의 토대가 되는 감각 장치의 요소를 공유한다는 의미다.
- 척추동물의 진화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약 3억 9천만 년전에 일부 어류종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물을 떠났을 때 일어났다. 이 것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변화였고, 틀을 깨고 나온 이 최초의 생명체는 물에 접근하기 쉬운 육지 가장자 리에 가까이 붙어살았다. 이런 변화는 결국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 유류, 인간을 탄생시켰다. 육지의 풀밭은 분명 신록이 더 우거져 있 었지만 호흡부터 번식까지 모든 것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고, 어류가 수중 세계를 인지하는 데 필요했던 감각들도 이상적으로 작 동하지 못했으며, 그중에서도 청각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물속에 있을 때 수면 위에서 발생한 소리를 듣기란 행운에 가 깝다. 공기 중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소리는 수면을 뚫지 못하고 튕 겨 나가기 때문이다. 소리가 물속에서 공기 중으로 나갈 때도 마찬 가지다. 어류의 속귀는 물로 가득 차 있으며, 육상 척추동물에게 물려준 귀도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 물과 공기의 경계면처럼 소리는 우리의 겉귀outer ear에서 물이 가득한 속귀로 잘 전달되지 않는다. 속 귀의 구조만 놓고 보면 어류에게는 완벽하지만 육상 동물에게는 형 편없는 구조다. 그래서 육상 생활로 인해 생기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청각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아내는 일이 오랫동안 생물학자 들에게는 수수께끼였다. 물속 환경과 건조한 환경을 오가며 생활하 는 현대의 생명체를 조사하면 단서를 얻을 수 있다. 폐어lungfish와 도 롱뇽salamander 같은 생명체는 수백만 년 동안 이 문제를 극복하며 살 아왔다. 이들은 몸으로 진동을 감지하는 능력을 청각의 수단으로 이 용해 왔다. 예를 들면 뱀 중에는 땅에서 울리는 미세한 떨림을 포착 하기 위해 머리를 땅에 대고 눌러서 청각을 강화하는 종이 많다. 소 문에 의하면 베토벤은 말년에 소리굽쇠를 치아로 물고 반대쪽 끝을 피아노에 갖다 댔다고 한다. 피아노의 진동이 뼈전도bone conduction라 는 과정을 통해 턱을 타고 속귀로 전달되게 한 것이다. 머리뼈의 다 른 부분, 특히 귀와 제일 가까운 부분은 소리를 전도하는 효과적인 매질이 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일부 유형의 보청기에서 유용하지 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보조적인 청각 수단이다.
- 겉귀는 외이도를 포함하고 있고 고막eardrum에서 끝난다. 고막은 들리는 소리에 맞춰 진동하는 직경 1cm 정도의 얇은 막이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 귀가 물리학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공기 중의 소리를 물속으로 전달하는 방법은 대체 무엇일 까? 해답은 겉귀와 속귀 사이의 가운뎃귀middle ear에 있다. 이 부위에 서 진화가 고안한 가장 놀라운 해법 중 하나를 찾아볼 수 있다. 각각 길이가 몇 밀리미터에 불과한 모루뼈incus, 망치뼈malleus, 등자뼈stapes 라는 세 개의 작은 뼈가 연쇄적으로 이어져 고막에서 발생한 정보를 속귀로 전달한다. 통칭 귓속삐ossicle라고 불리는 뼈 삼총사는 기계의 지렛대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움직이면서, 겉귀를 통해 들어온 공기 진동을 속귀의 액체 매질로 전달한다. 이상해 보일 수도 있 지만 연속적으로 이어진 작은 뼈들은 소리 에너지 전달을 천 배가량 개선한다. 이들의 작동은 마찬가지로 미세한 작은 일련의 근육들이 제어한다. 이 근육들은 귓속뼈를 안정시키고 과도하게 큰 소리에서 귀를 보호한다. 극도로 작은 뼈와 근육으로 이뤄진 기이한 구조가 소리의 전달을 개선하고 증폭해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 를 넓힌다.
가장 기이한 부분은 이 작은 뼈들이 고대 어류의 아가미와 다 른 머리 부분에서 완전히 다른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파충류가 지구에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망치뼈와 모루뼈가 턱 뼈 안에 있었고, 등자뼈 하나만 겉귀와 귀를 연결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런 구조는 오늘날에도 현대의 파충류와 조류에서 계속 이 어지고 있다. 그러던 약 1억 년 전 포유류의 망치뼈와 모루뼈가 턱에 서 가운뎃귀로 이동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포유류의 식사 습관, 즉 씹는 행위와 관련이 있을 가능 성이 크다. 뼈의 재배치가 이뤄진 이유에 대해 효과적인 씹기가 가 능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뼈를 분리함으로써 포유류가 자 신의 씹는 소리 말고 다른 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됐다는 시각에 무게 가 더 실린다. 어떤 이유든 간에 귓속뼈는 포유류가 경이로운 청각 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주요 원인 중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우리가 예리한 청각을 갖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귓속뼈 바로 옆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작은 뼈들은 고막을 통과해 들어온 메시지를 또 다른 막인 안뜰창oval window으로 전달한다. 안뜰창은 속귀, 구체적으로는 달팽이관cochlea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달팽이 껍질처 럼 둥글게 말려 있는 달팽이관은 원뿔 모양의 뼈로 된 관으로 청각 의 경이로움을 만드는 완두콩 크기만 한 일꾼이다. 안쪽 벽을 덮고 있는 유모세포는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주파수의 소리에 반응한다. 안뜰창과 제일 가깝고, 폭이 가장 넓은 달팽이관 부위에 있는 유모세 포는 고음에 반응하는 반면, 중앙에 촘촘하게 말려 있는 부위의 유모 세포는 중저음을 인식한다. 유모세포가 담당하는 또 다른 소리 해석 영역은 소리의 크기를 인식하는 것인데, 들어오는 진동에 자극을 받 는 유모세포가 몇 개나 되는지에 좌우된다.
- 귀에 도달한 음파를 소리로 인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40~50밀리초다. 훌륭한 경영 의 비밀이 권한 위임인 것처럼 뇌도 특정 소리를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처리한다. 사람의 오른쪽 귀는 언어를, 왼쪽 귀는 음악을 주로 담당한다. 몸의 양쪽에서 올라오는 감각 정보가 반대편 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뇌는 언어 해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우뇌는 음악을 감상한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하면 뇌가 동시에 여러 과제를 더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 기 때문인 듯하다.

일단 어떤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면 뇌는 구체적인 방식으로 말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언어는 문장, 단어, 음소로 점차 분해할 수 있으며 보편적으로 음소를 소리의 최소 단위로 간주한다. 그런데 뇌 는 놀랍게도 음소를 더 작은 조각으로 분리한다. 예를 들어 d, p, t같 이 뱉어내듯 발음하는 딱딱한 자음인 파열음과 c, s같이 좀 더 부드러 운 자음인 마찰음도 분리한다. 모음도 말 안에서 각각의 특징이 있 다. 뇌는 특화된 뉴런 집단이 각 부분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이처 럼 다양한 작업 부분에서 유입되는 정보를 뇌가 매끄럽게 이어붙이 면 들리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말의 깔끔한 연결은 뇌가 음성언어의 일관된 흐름을 놀라운 속도로 해석하고 조립하면서 일부 이뤄지고, 회백질이 우리에게 장 난을 치면서 말이 부분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우리가 귀 기울여 듣는 내용 중에 해석이 끊기는 부분이 있으면 뇌는 그 간극을 채운다. 이것을 연속성 착각continuity illusion이라고 하는데, 뇌가 기존 지식 을 이용해서 빠진 부분을 예측하고 채워 넣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다. 뇌가 이 일을 어찌나 효과적으로 해내는지, 우리는 그런 일이 일 어나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다. 실제로 테스트를 해보면 사람들은 착 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생략된 부분을 틀림없이 들었노라고 우긴다. 
- 약 5000년 전 음성언어에 덧붙여 문자언어가 개발됐을 때 우리는 소통 방법에 시각, 더 정확하게는 글 읽기를 통합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사고 과정은 정보가 음파를 통해 도달하느냐, 빛의 광자 로 도달하느냐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 듯 보인다. 하지 만 이 둘은 뇌에서 별개의 독자적인 경로를 통해 처리되는 물리적으 로 아주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뇌가 이 둘을 별개의 방식으로 취급하 리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읽을 때와 말로 들을 때 실제로 무 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사해 보면 뇌가 이 둘을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취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글을 읽을 때의 뇌 활성 패턴은 귀 로 들을 때의 패턴과 높은 연관성을 보여준다. 우리가 큰 소리로 읽 든, 마음속으로 읽든 뇌의 처리 방식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일상적 인 사고에서 글과 말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 이유도 이것일 가능성이 크다.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감각이 뇌에 동일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례로는 이것이 자연에서 유일하며, 이는 인간의 뇌가 관여하는 감각과 상관없이 언어를 표상할 수 있게 적응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증거다.
- 인간의 귀는 들어야 한다는 필요에 맞춰 만들어진 우수한 기관이지만, 방식은 너무나도 뒤죽박죽이다. 세상 그 어떤 공학자도 공기와 액체를 결합하고, 어류의 뼈를 빌려와 둘을 연결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설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귀는 음파를 기계적 에너지로 전 환하고, 그것을 다시 유체 에너지로 바꾼 다음, 마침내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소리를 음높이, 음색, 음량으로 분해한다. 하지 만 이 모든 기이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귀는 놀라울 정도로 적응력과 감도가 뛰어난 감각기관이다. 우리가 움직이거나 말할 때 귓속의 근육은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소리를 죽이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잘 라낸다. 청각을 담당하는 핵심 수용기인 내유모세포inner hair cell들이 각각의 귀에 약 3500개밖에 없다는 것만 봐도 우리 청력은 놀라울 정도로 예민하다. 그 정도면 많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각각 수백만 개 의 수용기를 자랑하는 시각이나 후각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숫자 다. 이렇듯 우리의 청각 능력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세포 집단이 뒷받침하고 있지만, 이것은 청각의 시작일 뿐이다. 음향 환경에서 소리의 끝없는 진동을 감지할 능력을 장착해준 진화 과정은 소리를 듣는 능력뿐만 아니라 해석하는 능력도 장착해줬다. 인간의 뇌는 이 능력을 다시 확장해서 단어와 언어의 형태로 소리에 개념을 부여했 다. 사실 청각을 담당하는 뇌는 귀의 발달 속도와 발맞춰 소리에 대 한 폭넓은 지각 능력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상호소통 능력을 달성 하는 데 필요한 지적 장치도 제공했다.

- 후각이 작동하려면 코로 들어온 냄새 분자들을 포획할 수 있어야 한다. 얇은 층을 이루고 있는 끈적한 점액이 마치 파리 잡는 끈 끈이 테이프처럼 지나가던 분자를 포획한다. 콧물을 떠올리면 더럽 다는 생각부터 하겠지만 후각 능력에는 꼭 필요한 성분이다. 콧물은 코의 정교한 후각 장치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냄새 분자들을 구성 요 소로 분해해서 재구성한다. 그다음 구성요소가 수용기로 전달되고 마침내 마법이 일어난다. 콧구멍에서 7센티미터 정도 더 들어간 비 강 꼭대기에는 후각상피olfactory epithelium가 있다. 우표 크기만 한 이것은 수백만 개의 후각 뉴런이 사는 집으로 들어오는 화학물질을 탐험할 준비를 하고 대기 중이다. 이 뉴런에는 섬모cilia라는 작은 털 같은 구조물이 점막으로 튀어나와 달려 있다. 섬모에는 냄새 분 자를 수집하려고 대기 중인 수용기들이 박혀 있다.
후각의 특별한 측면 중 하나는 놀라울 만큼 다양한 수용기 다. 사람의 유전체에는 400개가량의 후각 유전자가 있다. 각각의 유 전자는 서로 다른 수용기를 암호화한다. 우리는 모든 유전자를 양쪽 부모에게서 하나씩 물려받는다. 그래서 변이 유전자 모두 충분히 구 분되는 것들로 이뤄져 있다면 최고 800가지의 종류가 다른 수용기를 가질 수도 있다. 다른 감각들과 비교해 보면 미각은 수용기의 유형 이 5~6개에 불과하고, 시각은 막대세포와 원뿔세포 단 두 개다. 이렇 듯 후각 수용기의 종류가 많은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냄새를 경험할 수 있으며, 후각은 폭넓음과 복잡성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 여러 시대를 거치며 의사들은 치명적인 냄새에 대항하려고 다양한 허브와 향수를 활용했다. 17세기 의사들은 머리부터 발끝까 지 모두 덮는 특이한 복장을 하고 다녔다. 옷 위에는 향기가 나는 온 갖 물질을 발라 놓았고, 얼굴에는 악몽에나 나올 법한 새 부리처럼 생긴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 포푸리pot pourri를 채워 넣어 숨을 들 이쉴 때마다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도록 했다. 부유한 사람들은 포맨 더pomander를 목에 걸고 다니기 시작했다. 안에는 사향과 백단유 같 은 값비싼 향료가 들어있었다. 그들은 이런 행동으로 질병은 물론 가난한 자들의 냄새로부터 자신을 지켰다. 그럴 만한 형편이 안 되 는 사람들은 임시변통으로 레몬을 사용했다. 역겨운 거주지는 훈증 으로 소독하고, 방에는 식초와 테레빈유처럼 냄새가 강한 물질을 붓 는 등 미아스마를 물리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했다. 19세기까 지도 이런 관념이 널리 퍼져 있었고, 비교적 최근인 1846년에도 사 회개혁가 에드윈 채드윅Edwin Chadwick은 “모든 냄새는 질병이다."라 고 단언했다.
- 유전학적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우리의 후각 유전자는 400개 정도로 다른 동물과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생쥐와 개는 후각 유전자가 우리보다 2배나 많고, 코끼리의 후각 유전자는 2000개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의 후각수용기 유형의 가짓수는 다른 감각에서 사용하는 수용기 유형보다 훨씬 많다. 게다가 후각 장치라는 면에서 우리가 다른 포유류보다 열등하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뇌의 처리 능력만큼은 사람이 가장 뛰어나다. 바꿔 말하면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더욱 정교한 실험이 가능해져서 인간의 후각 능력 에 대한 관점도 부흥기를 걷고 있다. 1927년 발표된 한 연구 논문이 '인간은 적어도 1만 가지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이 통계치는 자체적으로 생명력을 얻었다. '적어도'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여러 세대에 걸친 수많은 학생이 인간의 후각 팔레트의 가짓수가 1만이라고 배웠다. 그러다가 2014년 의문이 제기됐다. 록 펠러대학교Rockefeller University의 캐롤라인 부시디드Caroline Bushdid가 이끄는 연구진이 인간은 1조 가지 이상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무려 1조 가지다! 이를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 요한 감각이라고 여겨지는 시각과 청각이 다루는 범위와 비교해보 자. 우리가 인식하는 가청음可聽은 1000가지 정도이며, 구분할 수 있는 색은 최고 1000만 개다. 이래도 인간의 후각이 다른 감각과 비 교해 열등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 후각을 다른 동물의 후각과 비교했을 때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흔히 이런 비교는 동물이 감지할 수 있는 냄새의 최저 농도 를 측정해서 이뤄지는데, 이 측정치를 후각예민성olfactory acuity으로 판단한다. 인간은 1000억 분의 1 미만의 농도에서도 특정 화학물질 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이것은 올림픽 표준 수영장을 채운 물에 서 물 한 방울도 안 되는 양이다. 다양한 생화학분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인간 참가자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 성적을 올렸다. 때에 따라서 생쥐나 개처럼 후각의 챔피언이라 불리는 동물보다 뛰 어난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인간이 개와 정면으로 맞선 15가지 화 학물질 중 5종목에서 인간이 우위를 보인 반면, 개는 나머지 부분에서 우세했다. 우리가 제일 예민하게 반응한 물질은 과일과 꽃에서 유래한 것인 반면, 개가 민감하게 반응한 냄새는 모두 먹잇감 동물에 서 나오는 냄새에 들어있었다. 양쪽 종 모두 특정 냄새에 대한 민감 성은 진화를 겪으며 조정됐다. 최초의 인류는 현대의 영장류와 공통 점이 많았고, 특히 식생활에서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초식동물이었 던 우리 선조들에게는 과일을 향하는 후각이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 이다. 반면 개의 조상인 늑대는 육식생활에 적합한 후각적 단서에 주로 집중한다. 이렇듯 후각 능력을 비교하는 것은 어떤 대상의 냄 새를 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므로, 후각이 제일 뛰어난 종이 무 엇인지에 관한 물음에 답하기가 쉽지 않다.
-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은 후 각에 큰 중요성을 부여했다. 많은 문화권에서 냄새는 삶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감각 자극이 풍요로운 환경인 아마존 우림에 사는 데 사나족Desana은 스스로를 위라Wira라고 부른다. '냄새를 맡는 사람들’ 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바람의 가닥wind threads', 즉 냄새 의 흔적을 추적해서 향기로 식물과 동물을 알아차릴 수 있고, 냄새 의 감각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숲에서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이 지역 의 다른 부족들은 각각의 집단을 자기가 사는 장소에서 유래한 특정 냄새로 구별한다. 이곳에서는 냄새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배우 자를 선택할 때도 영향을 미친다. 부부끼리는 반드시 냄새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데사나족처럼 또 다른 아마존 부족인 수야족Suyá도 동물을 냄새에 따라 분류한다. 이들은 또한 공동체에 속한 서로 다 른 구성원에게도 성별과 인생의 단계를 구분하는 냄새를 부여한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개인의 냄새가 너무 중요해서 서로의 체취가 섞 이지 않도록 주의한다. 이곳에서는 체취를 그 사람의 본질로 여기기 때문에 두 사람이 너무 가까이, 너무 오랫동안 함께 앉아서 다른 사 람과 냄새가 섞이는 것을 규제한다.
안다만 제도의 온지족Ongee도 냄새를 중시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각각의 계절이 그 시간에 피는 꽃의 향기로 정의 된다. 달력이 후각적 풍경을 통해 설정된 것이다. 온지족은 사악한 정령이 냄새로 제물의 위치를 찾아낸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은 숲 을 가로지를 때 한 줄로 움직여 냄새가 뒤섞이게 만든다. 이들은 서 로 만나서 인사를 할 때 "코는 어떠십니까?"라고 인사한다. 이런 인사법이 낯설겠지만 인사할 때 냄새를 중시하는 문화권은 생각보다 많다.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한때 상대방의 머리 냄새를 맡는 것 이 가장 다정한 인사법이었다. 북극에서 폴리네시아에 이르기까지, 서부 아프리카에서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코를 비비며 상대방의 냄 새를 맡는 것은 오랫동안 전통적인 인사법으로 사용됐다. 감비아에 서는 한때 반갑다는 인사법으로 상대방의 손등 냄새를 맡는 것이 일 반적이었다.
사족과 온지족의 아이들은 서구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의 감각적 경험을 통해 세상을 학습한다. 영국이나 미국의 아이들은 구글에서 꽃 사진을 검색하겠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꽃을 확인하는 일이 후각, 촉각, 미각을 아우르는 감각적 경험이다. 어 떤 문화권에서는 냄새가 너무 중요해 후각 능력이 거의 초능력에 버 금갈 정도로 발달해 있다. 유럽인과 볼리비아 치마네족Tsimane 원주 민들의 후각 민감도를 비교한 실험에서 볼리비아인들이 후각 능력 은 일반 유럽인들보다 훨씬 뛰어났을 뿐 아니라, 그중 4분의 3가량 은 테스트에 참여한 유럽인 200명 중에서 최고로 민감한 사람보다도 뛰어났다. 심지어 이는 실험 당시에 치마네족 원주민 중 상당수가 감기를 앓고 있던 와중에 나온 결과였다.
- 왜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난 후각을 갖게 된 걸까? 엄마와 갓 태어난 아기의 유 대감을 강화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제와 관 련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임신과 관련된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후각은 좋은 냄새로 우리를 즐겁게 만드는 역할도 하지만, 무 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유해 물질을 피하도록 돕는 것이다. 건강한 성인에게는 별 영향도 없는 물질이 태아에게는 커다란 손상을 입힐 수 있다. 진화가 이뤄지는 동안 독성 물질을 피할 수 있는 후각을 갖 춘 여성은 더 건강한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임신 중에 후각 능력이 중폭되고, 일부 여성이 특정 물질에 고도로 예민해지는 이유도 이것 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커피 향을 구성하는 화학물 질 중 인돌indole은 커피 애호가인 예비 엄마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인돌에서 구취나 똥내를 느끼는데, 커피에 함 유된 수백 가지의 냄새 중에 인돌의 향을 알아차릴 사람은 거의 없 다. 하지만 임신한 여성 중 일부는 인돌의 악취를 생생하게 느끼면 서 커피의 기분 좋은 향을 완전히 망쳐 버리는 경우도 있다.
꼭 임신해야만 슈퍼스멜러supersmeller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50명 중 한 명 정도가 민감한 후각을 지니고 태어났으며, 전문 용 어로는 후각과민증hyperosmia이라고 한다. 대체 무엇이 이들에게 후 각적 초능력을 부여하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유전자 주사위 던지기에서 행운이 찾아온 것일 수도 있지만 훈련에 의한 것 일 가능성이 제일 크다. 어떤 냄새에 익숙해질수록 그 냄새를 감지 할 수 있는 역치는 낮아진다. 냄새를 맡는 훈련에 약간의 노력을 기 울이면 후각이 개선된다. 소믈리에나 향수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오 래전부터 알려졌던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의 뇌는 후각적 필요에 적 응해서 변화를 거친다. 뇌 스캐너 영상으로 보면 전문직종에 종사하 는 사람들은 후각 처리 뇌 영역에서 재구조화와 개선의 징조가 뚜렷 하게 보인다. 보디빌더가 근육을 단련하듯 향수 제작자도 후각 근육 을 단련할수록 능력이 향상한다. 
- 인간도 각자 특유의 냄새가 있다는 점에서 여느 동물과 다를 인간도 각자 특유의 냄새가 있다는 점에서 여느 동물과 다를 것이 없다. 이 냄새는 부분적으로 우리의 신체 대사, 피부에 사는 보 이지 않는 세균 무리, 유전자 등과 관련이 있다. 유전학이 냄새에 영 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자신의 친척이 누구인지, 친해지고 싶은 사 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주조직적합복합체 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MHC는 질병에 대한 면역에서 핵심 역 할을 하는 유전자 집합으로, 침입해 들어온 병원체를 알아볼 수 있 게 한다. 또한 MHC는 우리의 화학적 지문chemical signature에도 커다 란 영향을 미친다. MHC 유전자는 다형성polymorphicol 높아서 우리 각자에게 고유 냄새를 부여한다. 그래서 우리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냄새를 바탕으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은 혈육과 유전자를 공유하는 특성이 있어서 가족 구성원 단위로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엄마는 냄새만으로 아이가 입었던 옷을 가려낼 수 있고, 아기는 수유 패드의 냄새로 엄마를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아이들은 형제도 알 아볼 수 있다. 일란성 쌍둥이는 서로 비슷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추 적견이 사람을 추적할 때 다른 쌍둥이가 그 길에 끼어들면 엉뚱한 흔 적을 따라가게 속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친척 알아보기에 도움을 준다. 그 덕분에 가까운 친척에게서는 성적으로 매력이 없는 냄새가 나서 근친상간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 베데킨트의 연구에 참여한 여성 들이 티셔츠의 냄새만으로 관계를 이어가겠다고 생각했을 리는 만 무하지만, 상대방의 매력을 판단할 때 배우자로서의 적합성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두 부모의 유전자를 재조합해서 아이를 만드는 목적은 유전적 위험을 분산하기 위함이 다. 따라서 자기와 MHC가 다른 사람과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자 손이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MHC 유전자를 물려받을 확률이 높고, 결국에는 더욱 경쟁력 있는 면역계를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 다. 바꿔 말하면 여성의 후각이 미래에 더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 도록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롭게도 티셔츠 냄새를 평가하는 여 성이 구강 피임제를 복용하는 동안에는 선호도가 역전됐다. 오히려 자기와 MHC가 비슷한 남성의 냄새에 끌린 것이다. 이 결과의 의미 는 첫째, 호르몬이 배우자 선택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둘째, 피임제의 메커니즘은 사실상 몸이 스스로 임신 중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기에 여성으로 하여금 친척을 비롯한 사회적 내집단 social ingroup에 더욱 끌리게 한다는 점이다.
- 우리가 성적으로 성숙하면서 체취가 함께 발현된다는 사실은 냄새의 근본적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힌트를 준다. 우리의 개 인적인 냄새는 자신의 성적 특질을 광고하는 효과를 낸다. 예를 들 어 독신 남성은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더 높아서 여성과 관계를 맺 고 있는 남성보다 더 강한 냄새가 난다. 이성애자 여성은 남성을 냄 새로 판단하며, 익숙한 남성의 체취에서는 긴장이 풀리는 느낌을 받 는다고 알려졌다. 여성이 남성의 몸에서 나는 특정 화학물질을 감지 하는 능력은 대단히 뛰어나다. 남성의 체취에 있는 일부 요소를 남 성이 감지할 수 있는 농도보다 수백 배 낮은 농도에서도 감지할 수 있으며, 가임기에는 절정에 이른다. 한편 이성애자 남성은 가임기 여성에게서 매력적인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화학적 음모가 남녀를 하나로 묶어주 는 것이다. 여성이 뿜어내는 향은 이성애자 남성의 행동을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남성이 여성의 냄새를 감지하면 성적 반응을 조절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냄새가 남녀를 사랑의 황홀 경에 빠져들게 하는 마법을 발휘한 후에 정자는 무엇을 길잡이 삼아 난자를 찾아갈까? 이때도 정자의 자체적인 후각을 사용한다. 그게 아니면 뭐가 있겠는가?
- 체취를 개선하는 최고의 방법은 과일과 채소가 풍부한 식단을 애용하는 것이다. 이는 체취 스펙트럼에서 온순한 쪽에 해당하 는 미생물들에 힘을 실어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호감을 주는 체취 로 만들어준다. 우리의 식습관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다른 음식으로 는 쿠민cumin, 호로파fenugreek, 무서운 마늘 같은 허브와 향료가 있다. 마늘을 무섭다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 선조에 해당하는 기존 세대가 마늘에 품었던 깊은 의심이 내 머릿속에 뿌리박고 있어서다. 마늘을 먹으면 입 냄새가 심해진다는 사실이 마늘의 불온함을 말해주는 증 거였다. 다행히도 요즘 영국인들은 담백한 요리만을 고집하던 굴레 에서 벗어났고, 현대 요리에서는 마늘을 요긴하게 활용한다. 마늘이 입 냄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격한 검증을 통해 마늘 섭취가 기분 좋은 체취를 강화하고 체취의 강도도 줄여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마늘이 건강에 이로운 다른 식품의 특징을 공유하 고 있으며 겨드랑이 세균 군집에 항균작용을 하기 때문일 수 있다.
- 생화학이 우리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면 개개인의 성격 유형 을 냄새로 알 수 있을까? 폴란드 브로츠와프대학교University of Wroclaw 의 아그니에슈카 소로코브스카Agnieszka Sorokowska는 티셔츠 실험으로 해답을 구하려 했다. 티셔츠 제공자들은 심리측정 검사로 성격을 평 가받고 사흘 동안 티셔츠를 입은 후 그 옷을 실험 참가자들에게 제공 해 냄새를 맡도록 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냄새를 맡은 사람들 은 티셔츠 제공자가 얼마나 우호적인지, 성실한지, 개방적인지는 파 악할 수 없었지만, 외향성 및 내향성extraversion-introversion, 신경증 및 정서적 안정성neurotic-emotionally stable, 사회적 주도성 및 복종성social dominance-submissiveness 척도에서 어디쯤 해당하는지는 굉장히 잘 파악 했다. 일부 사례에서는 이 검사에 참여한 평가자들의 수행 점수가 짧은 동영상 클립을 바탕으로 성격을 평가하는 검사보다 성적이 더 좋았다. 우리가 시각적 단서를 중요시하고, 후각적 정보를 의식적으 로 인식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다.
성격뿐만 아니라 기분과 감정의 변화도 화학적 지문에 반영 된다. 사람이 겁을 먹으면 개만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알아차린다. 예를 들어 사람은 운동하러 간 사람의 옷과 초보 스카이 다이버의 옷을 땀 냄새로 분간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겁을 먹 으면 다른 겁먹은 사람의 체취를 더 쉽게 감지한다. 두려움은 조기 경보시스템처럼 전염성을 띠며 퍼진다. 행복한 사람(이 경우 코미디를 보는 사람)도 식별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정서적 상태를 감 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반응도 한다. 감정에 북받쳐 나오는 눈물에 는 눈을 윤활하기 위해 나오는 눈물이나 양파를 썰 때 나오는 눈물과 는 다른 화학성분이 들어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감정적 눈물이 담 긴 병을 주고 냄새를 맡게 하면 측정 가능한 생리적 반응이 나타난 다. 본질적으로 이들의 몸은 공격적 충동을 억제하고 공감할 준비를 하도록 조절됐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뒤에서는 냄새라는 언어를 통해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
- 인종별로 냄새가 다르다는 생각은 미신에 불과하다. 임의의 두 사람 사이에서 유전자형genotype 차이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 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ABCC11 유전자는 체 취와 관련이 있으며, 이상하게도 귀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약 4만 년 전에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 유전자의 새로운 변이가 등장했다. 이것은 아포크린땀샘과 그 땀샘에서 나오는 성분 중 겨드랑이 세균 이 체취로 바꿔 놓는 분자의 활성을 떨어뜨리고 귀지를 건조하게 만 든다. 처음 등장한 이후로 이 변이는 한국, 일본, 중국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전체 인구의 80퍼센트에서 95퍼센트 정도가 이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에 반해 유럽 혈통과 아프리카 혈통의 사람 중에 이 변이를 가진 사람의 비율은 3퍼센트 미만이다. 이 유전자가 아시아에서 확고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현 재 나와 있는 작업가설working hypothesis은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추운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땀 분비를 제한하는 유전자가 생존상 이 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유야 무엇이든 간에 그 영향으로 동아시아 인들의 암내는 크게 줄었다. 
- 후각은 생명의 오랜 역사에서 처음으로 발달한 감 각이었고, 현재도 우리와 함께 지구에서 호흡하는 생명체들에게 가 장 널리 퍼져 있는 감각이다. 단세포 동물도 환경 속 화학물질을 감 지한다. 이는 거의 모든 세균이 갖추고 있는 능력이고, 효모 같은 곰 팡이류, 심지어 식물도 할 수 있다. 감각 정보를 처리할 뇌가 진화하 면서 이 원초적인 '화학감각chemosense'이 후각으로 발전했다. 결국에 는 코 같은 후각 전용 구조물이 발달해서 냄새를 감지하고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인간은 후각이 발달하지 않았고, 후각은 부차 적인 감각이라는 낡은 생각이 우리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데, 이런 생각이 차츰 바뀌고 있다. 후각은 우리 삶에서 근본적인 역 할을 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첫날부터 엄마의 젖꼭지 주변에서 분 비되는 화학물질을 길잡이 삼아 젖꼭지의 위치를 찾는다. 진화는 기 회나 위험을 나타내는 냄새에 맞춰 후각 팔레트를 조율해 놓았다. 우리가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냄새는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 한 역할을 했던 냄새라고 가정해도 무리가 없다. 따라서 잘 익은 과 일 향기, 화재를 의미하는 황 냄새, 수질오염을 알려주는 지오스민geosmin같은 냄새에 대해 감지의 역치가 낮은 것은 그만큼 그것이 우리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냄새였다는 방증이다. 간단히 말해 서 우리가 하나의 종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후각 덕분이었 고, 후각은 계속해서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 다. 후각은 우리의 식욕을 지배하고, 성생활을 통제하고, 섬세한 감 정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 아스파탐Aspartame 수크랄로스sucralose, 네오탐neotame은 실제 설탕보다 각각 180배, 600배, 8000배 더 달다. 무언가가 얼마나 달게 느껴질지는 단맛 수 용기와 얼마나 잘 결합하느냐에 달렸다. 수용기가 분자와 모양이 더 잘 맞고, 상호작용 부위가 더 많을수록 달게 느껴진다. 인공감미료 는 손과 장갑의 관계처럼 단맛 수용기와 딱 맞게끔 맞춤 설계됐다.
우리의 미각을 속이는 물질이 아스파탐과 그 화학적 사촌들 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마도 이런 물질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은 서부아프리카에서 수 세기에 걸쳐 재배된 미라클후르츠miracle fruit에 서 추출한 미라쿨린miraculin일 것이다. 미라쿨린과 신 음식을 함께 먹으면 단맛이 느껴지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레몬이 다디단 오렌지 맛으로 느껴지고 소금과 식초로 간을 한 감자칩 salt and vinegar crisp을 짭짤한 푸딩 같은 맛으로 바꿔준다. 맛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음식의 성분은 바뀌지 않는다. 신맛을 달콤한 맛으로 변환해 느끼도록 우리 지각을 바꾸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아티초크artichoke 에는 시나린cynarin이라는 화 학물질이 들어있다. 시나린은 일시적으로 단맛 수용기에 달라붙어 이를 비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티초크를 먹은 후에 음 료수를 조금 마시면 수용기에서 시나린이 씻겨나가면서 뇌를 자극해 단맛을 맛본 것처럼 느끼게 한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맛의 속 임수는 치약에 흔히 들어가는 성분인 라우릴황산나트륨sodium lauryl sulphate, SLS이 부린다. 이를 닦은 직후에 무언가 먹거나 마시면 이상 한 맛이 나는 원인이 바로 이 성분에 있다. SLS는 모든 세제 성분과 마찬가지로 지방 분자를 공격한다. 하지만 SLS가 맛세포의 지방성 세포막에 영향을 미칠 때는 단맛 수용기를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동 시에 쓴맛 감지 기능도 방해한다. 그 결과 이를 닦은 직후 오렌지 주 스를 한 모금 마시면 단맛은 느껴지지 않고, 음료의 신 향미가 쓴맛 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계속 마시면 SLS가 씻겨나가면서 정상적인 입맛이 돌아온다.
-  MSG를 악마화한 지난 50년 동안에도 사람들은 정상적인 식단의 일부로 글루타메이트를 즐겁게 섭취해 왔다. 글루타메이트 는 많은 음식에 천연적으로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MSG 를 향한 의심의 시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많 은 식당에서, 특히 아시아 식당에서는 'MSG 안 쓰는 식당'이라고 홍 보하며 선입견을 부추기고 있다. 물론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MSG에 대한 태도는 과학보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 라 볼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의 MSG에 대한 부정적 평판은 '사람은 미신을 깨는 것보다 미신을 유지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라는 옛말을 증명해준다.
- 방울다다기양배추나 다른 십자화과 식물의 쓴맛은 대부분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아이들과 일부 성인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물질이 다. 그래서 일부 식품제조업체는 쓴 향미를 가릴 방법을 조사했고, 해 결책으로 단맛을 첨가했다.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지만 우리 는 쓴맛에 특히 민감하므로 원하는 효과를 보려면 상당히 많은 양의 설탕이 필요하다. 다른 대안으로는 소금이 효과적이다. 흔히들 소금 향미를 강화한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선택적으로 특정 맛을 억제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소금은 음식의 쓴맛을 약화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소금을 사용하면 다른 향미가 도드라지는 것처럼 느 껴지는데, 이는 쓴맛의 그늘에 숨었던 맛이 염화나트륨의 존재 아래 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 설탕을 사용해서 산도와 균형을 맞추고, 소금을 이용해서 쓴맛을 억제하고, 감칠맛을 이용해서 짭짤한 맛을 끌어내는 조합이 수 세기 동안 요리의 주축을 이뤘다. 그래서 다섯 가지 맛의 상호작용 에 초점을 맞추면 완벽에 가까운 요리가 완성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 오기도 했다. 훌륭한 요리라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감칠맛이라 고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잘 알 려진 입속 미각수용기 세포들 사이에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세포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 세 가지 주요 대량영양소 macronutrient 중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특수 수용기 가 확인됐으니, 세 번째 영양소인 지방을 감지하는 수용기도 있어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중 G-단백질연결수용기120G protein-coupled receptor 120이 확인된 상태다. 간략하게 GPR120이라고 부르는 이 수용기는 지방의 기본 구성요소인 지방산fatty acido이 존재하면 활성화된다. 다 른 주요 맛과 마찬가지로 지방을 혀 위에 올려놓으면 약 6초 후에는 뇌에서 측정 가능한 반응이 나타난다. 요즘에는 지방을 주요 맛 중 하나로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물의 맛은 대개 물속에 든 소량의 미네랄, 특히 금속 이온에서 나온다. 우리의 염수용기는 그중 일부를 감지하고, 혀는 신체 기능의 또 다른 필수성분인 칼슘calcium의 존재를 감지하는 특별한 능력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추가적인 증거가 나오고 있다. 놀 라운 점은 우리가 칼슘 하면 떠올리는 음식에서 꼭 칼슘의 맛을 느 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유와 치즈에 함유된 지방과 단백질은 칼슘과 결합해서 맛을 감지하지 못하게 막는다. 칼슘의 맛은 케일이 나 양배추 같은 초록색 잎채소에서 느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음식 에는 고농도의 미네랄 성분이 있기 때문이다.
칼슘수용기의 진가는 코쿠미kokumi라는 것을 감지할 때 발휘 된다. 아직도 감칠맛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머리가 아픈 사람 에게 코쿠미는 더욱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코쿠미는 감칠 맛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처음 확인했다. 코쿠미라는 이름은 '풍부 한 맛rich taste'을 뜻하는데, 코쿠미가 실제로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 기 때문에 역설적인 이름이다. 코쿠미는 맛이라기보다 느낌에 가깝 고, '입안 가득한 느낌mouthfulness' 정도로 묘사하기도 한다. 코쿠미는 익숙한 맛의 향미를 끌어올려 음식 경험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준다. 칼슘수용기가 코쿠미의 맛을 감지하는 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 지만, 코쿠미 감각을 일으키는 분자는 천천히 익힌 육류, 숙성된 치 즈, 발효 식품 등에서 나오는 다양한 펩티드peptide에 있다. 코쿠미의 맛을 묘사하기란 젤리를 벽에 못으로 박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육류를 매달거나 치즈를 숙성시키는 등 오래전부터 이어온 관습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코쿠미다. 우리는 그렇게 하면 맛이 더 나아 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맛이 좋아지는 원인이 코쿠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 전분, 금속성 맛, 물, 칼슘, 코쿠미도 다섯 가 지 주요 맛에 추가해야 할까?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지금쯤 맛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정립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
- 맛봉오리의 수를 보면 인간이라는 종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다른 포유류와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일 반적으로 육식동물은 맛봉오리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개는 우리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고 길들인 고양이는 500개도 채 안 된다. 이와 는 대조적으로 초식동물의 입에는 맛봉오리가 가득하다. 토끼는 우 리와 비슷한 수준이고, 소는 2만 5000개 정도의 맛봉오리를 갖고 있 다. 아마도 이 정도면 풀잎을 한입 뜯어 먹을 때마다 온갖 맛의 향미 가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맛봉오리가 과도해 보일 정도로 많은 가 장 큰 이유는 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가축화된 소의 조상들은 야생 토끼나 오늘날의 다른 초식 포유류만큼이나 다양한 식물을 뜯어 먹었다. 동물이 접하는 식물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독 이 든 식물을 우연히 먹게 될 위험성도 커진다. 자연스럽게 조기 경 보시스템이 필요했고,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맛봉오리가 경보시스 템 역할을 맡게 됐다. 식물을 주식으로 하는 동물과 달리 식단이 다 양하지 않은 육식동물은 걱정할 것이 별로 없다. 
- 우리의 미각 영역도 한동안 확장을 이어왔다. 오랫동안 혀가 유일한 미각 기관이라고 생각하다가 입과 목구멍 꼭대기에도 맛 봉오리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최근에는 우리 몸 내부에도 맛봉 오리가 가득하다는 것이 발견됐다. 이 발견은 20세기 중반에 시작됐 다. 단맛 음료가 입으로 들어왔느냐 혈액 주사로 주입됐느냐에 따라 몸이 다르게 반응한 것이다. 설탕 성분이 장을 통과할 때만 췌장이 인슐린을 분비하기 시작했다. 몸이 실제로 음식을 먹었을 때만 적절 히 반응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몸은 설탕이 어느 경로로 들어왔는지 어떻게 아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아는 바로는 창자 속에 있는 미각수용기가 정보를 전달한다. 게다가 소화관뿐만 아니라 폐, 콩팥, 췌장, 간, 뇌, 심지어 고환에도 이런 수용기가 존재한다.
이 수용기는 입에 있는 수용기와 동일하지만 맛봉오리로 조 직화돼 있지는 않고, 입안의 수용기처럼 뇌와 상호작용하지도 않는 다. 따라서 이런 수용기로부터 향미의 감각을 얻을 수는 없다. 오히 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누가 창자에 있는 내용물의 맛을 보고 싶겠 는가?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맛도 아니다. 사실이 런 수용기 중에는 아주 이상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있다. 우리가 무언가 독성이 있는 것을 들이마시면 기도를 안에서 감싸고 있는 섬모라는 작은 털들이 독을 배출하는데, 독성을 처음 감지하는 것이 바 로 호흡계의 미각수용기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기도, 창자, 방광 속 미각수용기도 기생충처럼 침입하는 생명체가 분비하는 화학물질 을 바탕으로 반갑지 않은 손님들의 존재를 감지한다. 이 수용기들은 조기경보로 면역계에 경종을 울려 기생충을 몸에서 쫓아내려는 충 동을 일으킨다.
수용기에는 놀라울 만큼 다양한 기능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영양분의 존재를 감지해서 그에 대한 몸의 반응을 조직하는 것이다. 창자와 뇌에 있는 미각수용기는 에너지 수준과 포만을 감시 하는 일을 한다. 한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그렐린ghrelin이라는 호르몬의 분비가 촉발된다. 이 호르몬이 우리에게 배가 고프다는 느 낌을 준다. 그리고 우리가 독성분을 섭취하면 수용기들이 소화계에 제동을 걸고 유해한 물질이 몸을 통과하는 속도를 늦춤으로써 독성분 이 창자에 도달해 혈액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는다. 빈속에 술을 마시 면 더 빨리 취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생기는 결과다. 속 을 든든히 채우고 술을 마시면 알코올, 엄밀히 말하면 독소가 위에 더 오래 머물다가 창자로 넘어가기 때문에 흡수 속도가 느려진다.
입을 비롯해 몸 전체에 자리 잡은 미각수용기들은 놀라운 감 각 네트워크로 작용하면서 우리가 몸에 부족한 영양분들을 찾아 나 서게 만든다. 예를 들어 병에 걸리면 부신adrenal gland에서 코르티솔 cortisol의 생산이 줄어들어 혈압이 낮아질 수 있다.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단기적 해결책이 소금을 섭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증상 을 겪는 사람이나 동물은 소금을 갈망하기 시작한다. 이런 갈망은 의식적인 생각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충동이다. 부갑상선 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이때는 칼슘을 찾게 된 다. 혈당이 감소하면 단맛이 엄청나게 당기게 된다. 기근이 닥친 지 역에서 배가 부풀어 오른 어린이의 참혹한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 이다. 이는 심각한 단백질 부족으로 간이 커지고 체액이 저류되면서 생기는 결과다. 식량 지원이 이뤄지면 아이들은 다른 것은 다 제쳐 두고 곧장 아미노산이 풍부한 수프를 찾아간다. 몸이 스스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단백질을 향해 가도록 압박하기 때문이다. 대부 분의 사람은 심각한 영양결핍을 겪을 일이 없지만, 여전히 우리는 몸 안에 있는 수용기에 무의식적으로 이끌리고 있다.
- 태아는 수정이 이뤄지고 4개월만 지나면 미각이 발달한다. 태아는 엄마가 쓴 것을 먹었을 때보다 달콤한 것을 먹었을 때 자 발적으로 삼키는 양수의 양이 많아진다.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미각을 완전히 갖추고 나온다. 이는 서로 다른 향미에 대한 신생아 의 행동을 연구한 보고서를 봐도 알 수 있다. 아기에게 단맛이나 감 칠맛이 나는 물을 주면 우습게도 입맛을 다시며 미소 짓는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신맛이나 쓴맛을 주면 별로 좋아하지 않고, 혀를 내밀거나 눈을 질끈 감는 방식으로 기분을 표출한다. 아기가 소금에 반응하는 능력이 발달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생후 4개월까 지는 짠맛에 중립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4개월이 지나면 맹물보다는 소금물을 더 좋아하기 시작한다.
미각은 아동기를 거치는 동안 계속 발달해서 10대 중반이 되면 맛봉오리가 완전한 크기에 도달한다. 부모들은 잘 알겠지만 그 시기가 오기 전에는 아이들의 입맛이 어른과 다르다. 한 테스트에 서는 다양한 농도의 설탕물을 마련해서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농도 를 골라보라고 했다. 어른들은 콜라와 비슷한 농도의 설탕물로 수렴 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청량음료가 어른들의 기호에 맞춘 것이 다. 아이들에게도 마음대로 골라보라고 하면 거의 2배나 높은 농도 의 단맛을 찾는다. 이 농도 역시 아동을 대상으로 나오는 음식에 있 는 설탕 농도와 일치한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기본적인 생물 학 때문이다. 아이들은 신체의 빠른 대사율에 맞추려면 고에너지 음 식공급원을 찾아야 한다. 
- 고수를 좋아할지 말지는 이름도 기억하기 쉬운 ORGA2라는 단일 유전자를 어떤 변이로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6명 중 1명은 나처럼 이 허브 식물을 싫어한다. 비트beetroot를 보면 코를 막는 사람 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사람에게는 비트의 맛에서 불쾌한 흙 내가 난다. 이번에는 OR11A1 유전자가 범인이다. 양쪽 유전자 모두 미각보다는 후각과 관련이 있지만 각각 특정 향미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  심리학적으로 음식을 먹을 때 오래 씹지 않고 빠르게 삼키 면, 뇌는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낮은 음식이라 생각해서 계속 더 먹고 싶게 만든다. 패스트푸드 산업은 이런 성향에 꼼꼼하게 맞춰 음식을 공급함으로써 일종의 스위치를 발견한 셈이다. 물론 그 결과 패스트 푸드를 다시 찾는 고객이 늘어나고 서구 사회는 비만의 위기를 맞이 하게 됐다.
-  와인을 마실 때 느끼는 맛에는 청각도 한몫한다. 행사장 분위기, 특히 조명과 배경 음악의 변화는 마시는 와인에 대한 시음자의 평가를 크게 바꿔 놓는다. 활기 넘치는 고음의 음악은 시큼한 산미 를 더 강하게 느끼도록 하고, 부드럽고 그윽한 음악은 와인의 과일맛 을 강조한다. 바꿔 말하면 음악이 와인의 맛에 대한 기대치를 설정 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맛은 설정된 기대치를 쫓아간다. 옥 스퍼드대학교의 찰스 스펜스Charles Spence는 교차식연합의 세계적 권 위자 중 한 명이다. 스펜스는 2014년 런던에서 열린 식음료 축제의 한 행사에서 음악과 조명이 사람들이 와인을 즐기는 방식에 어떤 영 향을 미치는지 탐구해 보았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을 창이 없는 방 으로 초대하고 검은 잔에 리오하rioja 를 제공했다. 그다음 음악과 실 내조명을 바꿔가며 와인의 맛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우리의 생각처럼 맛이 일정하지 않고 조건에 따라 바로바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붉은 조명은 와인에서 단맛이 나게 하는 효과가 있는 반면, 초 록색과 파란색 조명은 향긋한 느낌을 강조하거나, 과일맛이 두드러 지게 했다.

- 아기들은 세상을 탐험하면서 식별 촉각discriminative touch을 사용해 접촉하는 것들의 형태와 질감을 능동적으로 알아낸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우리는 이 감각의 실용적인 면에 집중했으나 최근 또 다 른 측면이 있음을 알게 됐다. 정서 촉각emotional touch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포옹과 애정 표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 두 유형 의 촉각이 별개의 신경 구조를 갖추고 있음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식별 촉각은 A-섬유Type A fiber라는 고속 신경을 따라 뇌에 신속하게 도달할 수 있도록 배선돼 있다. 반면 정서 촉각은 신경계의 지방도 로에 해당하는 C-촉각 섬유C-Tactile fiber를 따라 꾸물거리며 50배 정 도 느린 속도로 전달된다.
두 유형의 촉각에서 오는 신호가 뇌에 도달하면 서로 다른 대접을 받는다. 입력한 신호를 처리하는 데 별개의 신경망이 활성화되 고 촉각 배치가 이중으로 형성된다. 세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신속 반응 시스템과 누군가 우리를 만졌을 때 작동하는 속도 느 린 2차 네트워크다. 식별 촉각이 중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지만, 정서 촉각을 전담하는 신경섬유가 3배나 많다는 추정에도 우리는 몸이 정 서 촉각에 쏟는 정성을 오랫동안 과소평가했다.
정서 촉각은 우리가 가진 사회적 성향의 토대를 제공한다. 누 군가와 서로 만지며 이뤄지는 접촉은 근본적으로 중요하며, 이 감각 이 자궁 속에서 발달하는 순간부터 깊은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주먹 인사, 악수, 포옹 등으로 서로를 환영한다. 등을 두 드리며 격려하거나, 안아주며 위로하고, 다정한 키스로 파트너에 대 한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모든 활동에 참여하는 동안 뇌가 반 응하면서 엔도르핀, 옥시토신,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분석해 기분과 행동을 준비한다. 촉각을 사회적 상호작용의 핵심으로 만드는 것은 몸과 마음 사이의 근본적인 연결 관계다. 촉각의 즉시성과 친밀성이 인간관계의 토대를 형성한다.
- 각각의 피부 유형은 촉각에서 특정한 역할을 담당한다. 평활피부는 민감한 수용기들이 풍부하게 분포하고 있다. 이는 촉각을 통 해 세상을 탐험할 때 우리가 손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섹스가 재미 있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털이 있는 피부 는 사물을 능동적으로 만져서 느끼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 다. 대신 무언가가 우리에게 와 닿는 순간에 그것을 알리는 역할을 주로 한다. 심지어 부드러운 미풍처럼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게도 해준다. 미풍은 우리 얼굴에 있는 작은 털을 날려서 모낭 그 자체에 분포하는 신경말단을 흥분시킨다. 
털 있는 피부는 식별 촉각의 용도로는 그다지 가치가 없지만 무언가가 몸에 와 닿는 것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응한다. 사랑 하는 이가 목이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말초적인 경험이 아 니라 우리 몸이 대비하는 경험 중 하나다. 털 있는 피부의 수용기 들은 동적인 자극에 특히 민감한데, 이는 운동으로 활성화된다 는 의미다. 붓이 달린 로봇 팔을 이용한 일련의 실험에서 참가자 들을 쓰다듬어 본 결과 연구자들은 최대의 즐거움을 끌어내는 완 벽한 쓰다듬기 속도가 있음을 밝혀냈다.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르 면 유쾌한 감각으로 인식하지 않지만 초속 3~5센티미터 속도로 쓰다듬으면 기계가 한 것이라도 대부분 황홀감을 느낀다. 심박수가 느려지고, 혈압이 낮아지며 긴장이 풀리는 기분을 느낀다. 이와 동 시에 우리 뇌는 천연 진통제와 오피오이드opioid를 분비해 따듯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 촉각 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감각은 피부 표면 바로 아래 있는 달걀 모양의 수용기인 메르켈 세포Merkel cell에서 나온다. 우리가 손 가락을 물체에 대고 쓰다듬거나,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예 민한 촉각 중 상당 부분을 이 세포가 담당해서 우리가 건드리는 모든 것에 대해 정교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서 피부가 1마이크론만 움직여도 감지할 수 있다. 이는 머리 카락 굵기의 1백분의 1도 안 되는 길이다. 이런 민감성에는 메르켈 세포가 다른 어떤 수용기보다도 피부 표면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 실도 한몫한다. 메르켈 세포는 몸 전체에 분포돼 있지만 우리가 미 세한 촉각을 느낄 때 제일 많이 사용하는 부위에 집중돼 있다. 예를 들어 손가락 끝에는 이 작은 수용기가 피부 1평방 밀리미터마다 무 려 100개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또한 이 수용기는 느린 적응slow-adapting 수용기로 알려져 있다. 무엇을 만지고 있든 간에 상황에
대한 업데이트를 꾸준히 제공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손가락으로 키보드 자판을 쭉 훑을 때 키의 가장자리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메르 켈 세포 덕분이다.
메르켈 세포가 이처럼 느리게 적응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만지는 모든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실황을 중계한다는 의미 다. 피부 속에 살짝 더 깊게 자리 잡은 마이스너 소체Meissner corpuscle 도 부드러운 촉각gentle touch이라는 것에 기여하고 있다. 마이너스 소 체의 핵심 임무는 피부를 누르는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이지만 빠른 적응력fast-adapting 때문에 상황에 변화가 있을 때만 우리에게 알린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그 의자가 계속 느껴진다거나, 등에 닿은 옷감이 계속 느껴진다면 정신이 산만해질 것이다. 마이스너 소체는 변화가 있을 때만 알려줌으로써 일종의 '필요한 것만 알기' 접근방식을 취한 다. 계속해서 불필요한 정보를 우리에게 쏟아내는 대신 필요한 것만 알게 하는 식으로 균형을 잡는 것이다. 메르켈 세포와 마찬가지로 마이너스 소체도 촉각에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영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고, 이들이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손의 악력을 세밀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유리잔을 너무 느슨하게 잡 아서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악력 을 높일 것이다.
메르켈 세포와 마이스너 소체 두 가지가 결합해서 정교한 감 도의 촉각, 즉 미시 척도의 촉각 세계에 관한 지각을 제공해 준다. 이 각각의 수용기는 수용야receptive field가 작다. 즉 피부와 접촉한 세상 을 고해상도로 선명하게 초점 맞춰서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 만 팀워크가 없다면 촉각은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수용기가 존재한다. 파시니안 소체Pacinian corpuscle는 피부 깊 숙한 곳에 묻혀 있는 다층의 두툼한 감각수용기다. 이들은 깊은 압 력과 고주파 진동에 반응한다. 우리는 물체의 표면에 손가락을 문 질러 보면서 질감, 거칠기, 특성을 진동으로 인식한다. 전축의 바늘 이 LP판에 나 있는 미세한 홈을 읽어내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이것을 동적 촉각dynamic touch이라고 하며, 그와 대비되는 정 적 촉각 static touch보다 훨씬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가 촉각으 로 무언가를 조사할 때 손가락을 표면 위로 미끄러지게 문질러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촉각수용기 4총사 중 다른 것 못지않게 중요한 마지막 수용기는 루피니 종말Ruffini ending이다. 아마도 루피니 종말에 대한 이해 가 가장 부족할 듯하다. 루피니 종말은 주로 우리의 자세 관련 정보 를 뇌에 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수용기는 피부가 늘어난 정도 를 감시하며 임무를 수행한다. 선반에서 잔을 꺼내려고 손을 뻗을 때 팔을 뻗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이 수용기다. 손가락으로 잔을 감싸 유리잔을 집을 때도 이 수용기는 잔 주변을 감싸는 손에 관해 필요한 감각을 제공한다. 몸 전체에서 루피니 종말은 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관한 감각을 제공하며, 우리 행동을 조종하는 데 필수 요소다.
- 약 850억 개의 뉴런으로 구성된 뇌는 자체적으로 통증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런데도 모든 통증은 뇌에서 생성된다. 뇌 자체는 통증을 느낄 수 없다는 말에 두통은 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두통은 뇌 자체가 아니라 뇌 속 근육과 혈관의 신경 들에서 촉발한다. 따라서 뇌는 통증이라는 경험을 제공하지만 뇌라 는 기관 자체는 통증에 면역돼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 상태는 통 중의 느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전학, 건강, 심지어 태도에 따 라 통증을 다르게 느낀다. 같은 사람이라도 동일한 부상을 서로 다 른 시간에 입었을 때 통증을 더 느끼거나, 덜 느낄 수 있다. 통증은 단순히 신체적 경험이 아니라, 심리와 불가분의 관계로 뒤엉켜 있어 서 그날의 기분이 통증의 지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부상이 생기면 통증은 보통 별개의 파동으로 찾아온다. 첫 파동에 실려 오는 날카로운 통증은 통각수용기가 초고속 A-섬유 를 따라 뇌로 쏘아 올린 것이다. 이 신호는 몸이 손상을 입었다는 중 요한 정보를 실어 나른다. 정서 촉각의 느낌과 비슷한 두 번째 파동 은 속도가 느린 C-촉각 섬유를 따라 이동하며 사실상 손상의 범위를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후자의 신호는 당분간 머물면서 일련의 행동 반응과 생리적 반응을 촉진한다. 
-  베인 상처나 타박상을 입었을 때는 각 부위의 세포들에 의 해 아라키돈산arachidonic acid 같은 화학물질이 분비되고, 이 물질이 통 각수용기를 자극해서 부상 부위를 통증에 민감하게 만든다. 몸이 우 리를 상대로 작당해서 상처를 더 아프게 만든다고 하니 가혹해 보일 수도 있지만,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필수 수단이다. 아프니 까 상처를 더 신경 써서 돌보게 되고, 추가적인 손상을 막아 치유할 시간을 벌어준다. 그렇지만 이 통증이 불쾌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 서 우리는 몸이 통증과 손상을 신호로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적 경로를 차단하는 이부프로펜ibuprofen 같은 진통제를 만들어 자연에 대응했다.
- 촉각은 오랫동안 타인과 교감하는 가장 친밀한 수단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그 수준은 자기가 자란 문화권에 좌우된다. 1960년대에 캐나다의 심리학자 시드니 조라드Sidney Jourard는 전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커피숍에 앉아 있는 동안 사람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연구했다. 조라드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대화를 나누 는 동안 서로 간의 신체 접촉 횟수를 기록했다. 그가 얻은 결과를 보 면 사람들 사이에 꽤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성적이라고 알 려진 런던 사람들은 접촉이 전혀 없었다. 미국인들은 좀 더 따듯해 서 시간당 평균 2회 정도 접촉했다. 반면 프랑스인과 푸에르토리코 인은 시간당 각각 110회, 180회 접촉할 만큼 서로에게서 손을 떼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후에 또 다른 연구에서 이 문제를 다시 다뤘는데 미국인들은 한 시간에 9회가량 서로를 만졌다. 흥미롭게도 도시와 시골 간 차이가 나타났는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시골 사람 들보다 신체 접촉이 많았다. 그렇대도 한 시간에 9회는 그리 많지 않 고,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촉발된 사회적 접촉의 큰 감소를 고려하 면 아주 많은 사람이 만성적으로 스킨십을 박탈당한 느낌을 받는 것 이 놀랄 일은 아니다. 최근에는 '접촉 결핍touch starvation'이라는 용어 가 생겼다. 사람의 삶에서 신체 접촉을 상실하는 것이 혼자 외롭게 표류하는 느낌, 이어서 심리적 외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잘 드러내는 용어다.
신체 접촉의 결핍으로 우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를 뒷받침하는 핵심 부분을 놓칠 위험에 처했다. 신체 접촉은 면역계의 기 능을 높이고, 우리를 진정시키며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의 분비를 개선해준다. 신체 접촉은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심오한 방법이자, 사회적 배제에서 오는 고 통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이며 인간관계의 뿌리다.

- 세균에서 박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체가 지구의 극성을 감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던 동물들은 특이한 방식으로 지구의 극성에 반응하지만 뱀장어, 비둘기, 고래처 럼 지자기장의 지각이 자체 내장 항법 시스템에서 정교한 요소로 작 용하는 종들도 있다. 동물들은 어떻게 이런 방향을 감지하는 것일 까? 철새를 대상으로 진행한 혁신적인 연구에 따르면 새들은 망막에 존재하는 크립토크롬-4cryptochrome-4 단백질 덕분에 지구의 자기장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이 시각적 경험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새들은 빛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방향감각을 잃고, 크립토크롬을 활성화하면 일반적인 시각의 경우와 동일한 뇌 영역이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자기장이 그들의 눈에 어떤 식으로 보일지는 순 수한 추측의 영역이다. 아마도 부가적인 대조나 밝기 등의 형태로 지자기장을 감지할 가능성이 크고, 이렇게 되면 진북true north이 어느 쪽인지 말 그대로 눈에 보일 것이다. 시각에 이런 특별한 기능이 있 다면 하늘을 날면서 길을 찾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 우리는 균형감각을 부차적인 감각으로 분류하지만 이것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절대적인 감각이다. 뇌수술 환자가 잘 회복 하고 있는지 예측할 수 있는 가장 큰 단일 변수는 균형을 잡고 자세 를 유지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균형감각이 서로 다른 많은 원천으로 부터 입력을 받아들이고, 또 여러 뇌 영역을 가동하는 협력적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기가 도움 없이 혼자 설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정보를 통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 중 하나다. 균형 감각을 통달하는 데는 다른 감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평균적으로 아이들은 만 한 살 정도가 돼야 일어서는 데 필요 한 소근육운동fine motor control 능력이 발달한다. 그때가 돼도 아이들 은 걸핏하면 넘어지기 때문에 걸음마 아기라 불린다. 나이가 들면서 안뜰계는 마모돼 낡는다. 제자리를 벗어난 끈적한 액체들이 반고리 관에 고이고 이석기관의 소중한 이석도 양이 줄어든다. 그 결과 나 이 든 사람은 현기증을 자주 느끼고 낙상도 잦아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소식이라면 안뜰계가 자신을 괴롭히는 이런 문제를 어느 정 도까지는 보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걸음마 하는 아기보다 나이가 많고, 70세보다는 적은 사람들은 균형감각의 가치를 과소평 가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균형감각은 사라지기 전에는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존재다.

- 불안장애anxiety disorder가 있는 사람은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좀 더 잘 감지하지만, 잘못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불안이 심한 사 람은 심장박동에서 나타나는 작은 요동도 과도하게 인식하는 경향 이 있어 공황에 더 쉽게 빠질 수 있다. 이 모든 사례는 내수용감각을 자아감의 주춧돌로 바라봐야 이해하기 쉽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데, 그럼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운동이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이롭다는 이야기 를 많이 듣는다. 한 흥미로운 개념에 따르면 운동은 내수용감각 능 력을 향상시켜 뇌와 몸 사이의 연결을 강화한다. 사실 대부분 운동 이 이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력운동은 불안과 싸우 는 데 특히 효과적이다. 몸을 단련하면 내수용감각이 개선돼 몸이 보 내는 신호에 더 예민해지고, 결국에는 정서적 회복 능력과 정신적 건 강이 개선된다.

- 수십 년 동안 공감각자들은 무질서한 뇌 연결 때문에 결함이 생긴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해하는 바 에 따르면 이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공감각자들의 정신적 능력에 는 전혀 문제가 없다. 공감각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를 바 라보는 현대의 신경학적 입장은 공감각자의 뇌 구조 및 흥분성에 주 목하고 있다. 이들은 감각겉질 사이의 연결이 더 풍부하다. 즉 한 감 각이 활성화되면 다른 감각도 자극해서 강력하고 생생한 반응을 끌 어낸다는 의미다. 설득력이 있는 한 주장에서는 태어나기 전에는 뇌 의 서로 다른 감각 영역들이 광범위하게 연결돼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발달이 진행되면서 연결이 점진적으로 가지치기 돼 결국에는 인접한 뇌 영역 사이에 걸쳐진 지엽적인 신경조직만 남게 된다. 이 렇게 하면 감각들 사이의 연결은 유지하면서도 혼선의 양은 제한하 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공감각자에서는 이런 가지치기가 훨씬 덜 일어난다. 즉 감각겉질끼리 초연결 상태로 남게 된다는 의미다. 그 래서 서로 다른 감각 양식 간의 흐름이 훨씬 크게 일어나서 많은 경 험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 우리는 맥거크 효과나 앞서 설명했던 고무손 착각 현상 같은 감각의 수수께끼를 경험하고 나서야 뇌가 자신의 경험을 인위적으 로 빚어내고 있음을 그나마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객관적인 실제 를 경험하고 있다는 자만심에 경종을 울리는 비슷한 다중감각적 경 험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한 착각에서는 소리를 이용해 촉각에 대한 지각을 왜곡한다. 참가자들에게 헤드폰을 씌워 준 다음 마이크 앞에서 손을 비비게 한다. 마이크로 입력된 소리가 귀로 전달될 때 실험자는 음향을 왜곡해서 참가자가 자기 손에서 느끼는 촉각을 극 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소리를 거칠게 하면 참가자들은 마치 자 기 손이 나무껍질처럼 건조하다고 느끼고, 소리를 부드럽게 해주면 자기 손이 매끄럽고 부드럽다고 착각한다. 참가자들은 속고 있지만 경험하는 촉각은 진짜처럼 느껴진다.

- 지각은 한데 어울려 우리 자신과 나머지 세상 사이의 접점으로 작용하는 상호의존적인 감각의 네트워크에서 생겨난다. 우리 감각은 적어도 생리학적, 해부학적 측면에서는 모두 별개이지만 뇌에 도달하면 감각들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하나의 지각으로 합쳐 진다. 달리 표현하면 감각은 다른 감각 없이 단독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단 하나의 감각만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 분은 시각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시각만 갖고 태어났다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발달 과 정에서 세상을 정확히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면 시각을 다른 감각과 비교하면서 눈으로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 이다. 아기들은 물체를 바라보면서 손으로 만져본다. 그리고 그 과 정에서 얻는 촉각적 단서가 눈으로 보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촉각뿐만 아니라 미각, 후각, 청각도 마찬가지다.
아기는 태어나고 첫 몇 달 동안 닥치는 대로 세상을 더듬거리면서 평생에 도움이 될 감각 간의 강력한 협동의 토대를 마련한다. 아기의 뇌 속에서는 개개의 감각이 배열되고 조정되며 뒤섞인다. 초 기 단계에서는 감각들이 바쁘게 유아의 뇌에서 체계를 하나씩 정립 한다. 신경 연결이 만들어지고 강화되면서 바깥세상을 이해하기 위 한 틀이 구축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뿐만 아니라 이전의 경험과 기대를 이용해 감각에서 들어오는 가공되지 않은 입력도 길들이게 된다. 그 결과 세상에 둘도 없는 자기만의 특이하고 주관적인 지각 이 만들어진다. 이 지각은 바깥세상을 거울처럼 똑같이 반영하지 않 고 뇌가 최선을 다해 추측한 대로 표상하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그 런데도 우리 감각은 지각으로 한데 결합해 가장 놀랍고 특이한 경험, 즉 살아있다는 의식적 감각을 제공한다.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가  (1) 2024.04.06
최강의 브레인 해킹  (2) 2024.04.06
수학의 힘  (3) 2024.03.27
뉴럴 링크  (1) 2024.03.25
최소한의 과학공부  (7) 2024.03.19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