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Quote of the day 2024. 4. 25.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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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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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만이 무기다

인문 2024. 4. 24. 07:16

- 엉뚱한 발상을 하는 사람이나 예술가, 작가 등 일종의 문화인들 이 다소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융통성 없는 성격이거나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 이다. 자기 자신이 자유로워지면 그에 따라 사고의 연상도 자유로워 진다.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것은 온갖 일에 대해 '일 일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일일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일이 벌어지거나 뭔가를 보았을 때 일일이 이러쿵저러쿵 마음속으 로 감상을 말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푸념도 일일이 생각하는 것에 포함된다. 타인에 대한 소문 도 그렇다. 기분이나 신체의 사소한 불편함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다. 날씨에 일희일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걱정하는 게 가장 독성이 강하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사람은 마치 자신이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보호해 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 만 실제로는 그 누군가에게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지기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상을 질리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누군가가 무사히 돌아오기라도 하면, "어디 갔었어? 계속 걱 정하고 있었잖아." 하고 진심으로 화를 낸다. 마치 나쁜 상황을 상 상했던 게 중요한 일이거나 헌신이라도 되는 듯 말한다. 이런 태도는 어리석기 그지없다.

자신에 대한 걱정도 거의 마찬가지다. 좋지 않은 상상을 하며 불 안해하거나 실망한다. 그 불안이나 실망을 위무하거나 얼버무리려 는 데 또다시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그사이 눈앞에 맞닥뜨린 문제 는 딴전이 되고 만다. 이런 버릇은 심한 낭비벽과 같으니 반드시 버 려야 한다. 이런 나쁜 습관을 버리면 생활이 달라진다. 책임감을 가 지고 꼭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다 른 일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 채 그냥 인정하는 태도로 변할 필 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기분도 흐트러지지 않고 하루를 개운하게 보낼 수 있다.
-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노트 등에 뭔가를 쓸 경우 처음에는 펼쳤을 때 왼쪽 페이지에만 기입하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다. 오른쪽 페이지 에는 아무것도 기입하지 않는다. 뭔가 나중에 기입할 필요가 있을 때 활용한다.
즉 왼쪽 페이지에 기록한 메모에서 촉발되어 발전한 사고에 대한 문장, 그 메모와 관련된 사안, 그 메모에 대한 주석, 관련 도서 등을 오른쪽 페이지에 기입한다. 따라서 왼쪽 페이지는 기원, 오른쪽은 그것의 확대, 발전, 파생, 주석, 보충이 되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노트나 수첩을 여유 있게 사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빽빽하게 기입하면 모처럼 떠오른 발상이나 사고가 문자 속에 파묻혀 쉽게 잊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수첩을 쓰더라도 지면을 여유 있 게 계획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그에 따라 1년에 몇 권의 수첩이 필 요할 수도 있다.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노트를 이렇게 사용하면 효율적이다. 왼쪽 페이지에는 수업을 받으면서 적은 메모 등을 기입하고, 오른 쪽에는 나중에 주석이나 설명을 기입한다. 이 방법만으로도 지식에 탄력이 붙고 기억력도 증대한다.

- 다만,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는 독서 방식에는 큰 약점이 있다. 그것은 그 책을 읽는 시점에서 자신이 가진 세계관과 동일한 수준의
독서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자신에 호응하는 부분만 책에서 읽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약성서》를 읽고 나서 감동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물리적으로 터무니없는 기적이나 기묘한 이야기라며 질색을 할지 도 모른다. 그리고 그 책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인상임에도 불구 하고, 그 책 자체가 그렇다고 믿어 버리는 것이다.
그 책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는지는 독자의 지식과 식견에 따라 다르다. 삶의 방식이나 나이에 따라 이해와 독후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도스토옙스키의 유명한 소설 <죄와 벌>만 해도 그렇다. 그  을 읽은 모든 사람이 <죄와 벌>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의 이단적인 사상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인간의 심리를 파헤친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으며, 전체적 으로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죄와 벌>뿐만 아니라 다른 책에 대한 감상 또한 옳고 그름 이란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독후감이야말로 정상적이라 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빈약한 이해에 불과하 다. 그 이유가 지식과 식견이 부족하거나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지만 정독은 이를 보완해 준다. 일단 책을 한 권 정독함에 따라 지식이 급속히 불어나거나 두 번째 책을 읽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지식 부족 현상을 보완해 준다.
한 권도 정독하지 않고 두 권째 읽을 경우 어떻게 될까. 첫 번째 책과 똑같이 낮은 수준의 이해력으로 일관할 것이다. 책을 많이 읽 었다고 해서 많은 지식을 흡수했다는 증거가 되지 않으며, 책을 계 속해서 오독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소장한 서적의 양을 자랑 해서는 안 된다.

- 논리적이라 해서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책이나 학문이든, 사상이나 주장이든 그것들을 이해할 때 큰 오해가 전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로 '논리적이기 때문에 옳을 것이다'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쓰여 있다고 해 서 옳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논리적이라서 옳게 보이지만 전혀 현 실 상황에 걸맞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논리적이다'는 말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과학적이라 는 의미가 아니다. 수학적이거나 또는 문법적으로 옳은 경우가 논 리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간단한 문장은 어떨까.
'모든 수상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아베 아무개는 수상이다. 따라서 아베 아무개 역시 어떤 오류도 범하지 않는다.'
이는 잘못된 문장이 아니다. 논리적이다. 삼단논법대로다. 문법적 으로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논리정연하다. 하지만 내용이 옳지 않 으며 현실적이지 않다. 논리적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왜 옳지 않 고 현실적이지도 않은가.
여기에 전제로 쓰인 '수상은 결코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는 주장 이 지금까지의 우리 경험과 식견에 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을 읽거나 타인의 의견을 들을 때 거의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 이 진지한 것인지, 아닌지 자신의 경험과 식견에 비추어 옳고 그름 혹은 타당성을 판단한다.

- 사람들은 보통 물건을 살 때 망설인다. 망설이는 동안 생각을 하 는 것이다. 어떤 상품을 선택해야 이득이 되는지 고민한다. 하지만 이는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놀이다. 아주 고가의 명품 브랜드 제품 이 아닌 이상 어떤 것을 선택하든 결과는 대동소이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스스로 고민해서 선택했다며 만족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냥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선거의 경우도 이와 똑같다.
일상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이러한 가짜 사고와 비교하면, 책 을 읽는 것은 정말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책을 읽기 때문에 더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이 전부 옳다고 믿는 사람이다. 또는 책에서 전개하는 저자의 사고를 자신의 사고와 완전히 혼동해 버리는 사람이다.
이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지적했다. ...... 독서할 때는 생각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거의 없다. 스스로 사색하는 일을 그만두고 독서로 옮겨 갔을 때 안도의 기분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독서에만 전념하는 한, 사실 우리의 머리 는 타인의 사상이 뛰노는 운동장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거의 통째로 하루를 다독에 허비하는 부지런한 사람은 서서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 간다. ...............(중략) ・・・・・・ 끊임없이 계속 읽기만 할 뿐,
읽은 것을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정신 속에 뿌리를 내 리지 못한 채 대부분 다 잃고 만다.'
-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은 대개 금전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고민밖에 하지 않는다. 온몸으로 기뻐하지 않고 머릿속 화학반응이나 이해득실을 따지는 차원에서만 기뻐한 다. 죽음이나 이별, 사랑이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는 이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희박해진 혹은 가짜 인생을 체험하고 있는 게 아닐까.
파리 컬렉션에서 발표된 옷과 비슷한 싸구려를 몸에 걸치고, 진 짜 맛과 비슷한 요리를 진짜라고 생각하며, 세금을 식량으로 삼는 무리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된 법을 최소한의 윤리라고 오해한 채 인습화된 모금 행사를 전통적인 종교 행위라고 생각하고, 자식을 키우거나 집을 짓는 걸 정상적인 인생이라고 여긴다. 이런 삶이 가짜는 아닐까.
가짜 인생을 살기 때문에 문학의 가짜인 대중소설을 재미있어 하는 것일 게다. 대중소설은 의도와 효과, 논리로 쓰여졌다. 그 상업 적인 세계에서는 어떤 일도 사랑이나 섹스, 배신조차 명백한 이유 가 있다. 그래서 추리소설에 나오는 살인범이라 해도 진짜 살인범 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얄팍한 인형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현대인의 인공적인 가짜를 모두 집어던질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문학을 읽음으로써 인간과 세상의 심연에 숨어 있는 신비를 알고, 진정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온갖 연구와 지성에 반드시 필요한 인간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되지 않을까 한다.

- 취미를 잠깐 멈추면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 것이다. 뭔가 부족한 기분이 가시지 않을지도 모른다. 취미가 있는 편이 더 충실한 삶처 럼 생각될 것이다. 실은 그 느낌이야말로 의존의 증거다. 알코올중 독자가 알코올이 없는 인생을 무미건조하게 느끼는 현상과 같다. 하지만 취미가 자신의 일이나 공부와 연관되어 있다면 더 이상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자신이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이므로 그 시간을 줄일 필요는 없다. 시간을 늘리기 위해 자신의 취미를 버 려야 할지 말지는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 다. 이력서의 칸을 채우거나 누군가에게 떠벌릴 만한 취미는 거의 대부분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활동에 불과하다.

- 30대부터 40대 이후에 공부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찾아와 진심 어린 충고를 부탁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곧바로 어떤 공부를 시작할 준비를 할 게 아니라 우선 사회와 떨 어져 볼 것. 즉 완전히 고독해질 것. 생계를 위한 직업이 있다면 어 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쉬는 주말 이틀 동안만이라도 사회에서 벗 어나 혼자 있어 보면 된다. 가능하다면 5일에서 일주일 정도 고독한 시간을 가져 본다.
그 기간에는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모든 수단을 멀리해 주변의 인공적인 소리와 정보를 차단한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도 보지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직접 밥을 해먹으며 홀로 지낸다. 자신 을 이 세상과 격리된 상태에 놓는 것이다.
왜 이런 고독에 침잠할 것을 권하는가 하면, 자신이 자신으로 돌 아오기 위해서다. 평소의 우리는 막연히 자신이 늘 똑같은 자신이 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진정한 자신이었던 적이 거 의 없었을 수도 있다.
평소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사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혹은 뭔가에 의존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당장의 역할을 부여 받고 어떤 요구가 있으면 거기에 걸맞게 행동한다.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 은 그 연속이 일상이 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일 없이 늘 뭔가 문제에 맞닥뜨려야만 해결책을 모색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습관이나 욕망의 요구대로 따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진다. 그래서 빈 시간이 생기면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SNS로 연락을 한다. 그러한 갖가지 대응을 인간적인 유대라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사실 자신만으로 존재하는 생활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려는 교묘한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고독해지라고 권유하는 이유는 온갖 사회적 요구와 자극에 의해 흩어지고 사라진 자신의 단편을 모두 되찾아 다시 자기 내부로 수렴하기 위해서다. 바쁜 스케줄을 삶의 보람으로 착각하는 현 대인에게 최초의 고독한 하루는 견디기 힘들지도 모른다. 자신만 홀로 남은 기분이 들 테고, 하는 일 없이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 내는 방식에 화가 날 수도 있다. 또 수많은 충동에 사로잡혀 괴로워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태가 되면 참지 말고 충동과 기분을 실컷 발산하면 된다. 사회적인 잔재에 매달리고 싶은 자신을 내팽개치는 것이다. 그리고 홀로 앉아 조용히 숨을 쉰다. 배가 고프면 식사 준비를 한다. 자연을 바라본다. 시간의 1초를 음미한다. 그렇게 자신만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틀째가 되면 경쟁 사회에서 일하며 사람들을 만나 온 지난날 이 왠지 아득하게 느껴질 것이다. 또 자신이 자신으로 정리되어 바 로 앞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차분히 시간을 들여 자신과 대화를 한다.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남몰래 이유를 붙여 계속 미루고 미뤄 왔던 진짜 욕구는 무엇인가. 자신은 어떻게 되고 싶은가. 무엇 을 공부하고 무엇을 알고 싶은가

- 재능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조건 중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단 하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다음 조건은 그 단 하나에 대해 계속 관여하는 것이다. 덧붙여 일반적으로 재능이 있 다 없다 하고 말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언어의 분절화 작용에 의해 크나큰 오해를 부를 수도 있는 표현이다.
언어의 분절화 작용이란 언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 본래 나눌 수 없는 대상을 나눠 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아이와 어른이다. 세계 각지의 문화에 따라 의식이나 나이를 기준으로 편의상 아이와 어른을 나누지만, 실제로 그 경계는 없다. 나이 역시 언어의 분절화 작용의 한 사례이다.
동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는 민족 간에 무자비한 전쟁이 많지만, 민족 또한 본래 나눌 수 없는데 인간을 민족의 명칭으로 나누어 언 어의 분절화 작용이 적용된다. 물론 학교 성적을 포함해 등급을 매 기는 모든 것이 분절화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초등학생들은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가 일곱 색깔이라고 배운다. 아이들은 일곱 가지 색깔로 선명하게 나뉜 무지개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진짜 무지개는 결코 색깔이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는 다. 좀 더 애매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린아이들은 배운 관념을 그 림으로 그린다.
- 그렇게 인간은 언어의 분절화 작용에 의해 생겨난 관념이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고 만다. 그런 식의 착각을 수없이 축적하며 성장한 결과 차별이 생긴다. 즉 세계는 바로 여기에 있는데, 우리는 언어의 분절화 작용에 의한 착각 렌즈를 통해 바라보므로 제대로 세계를 볼 수 없다.
다시 재능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재능이 있다 없다 하는 표현 자체가 분절화된 이후의 표현인 것이다. 이 표현대로 한다면 인간 에게 재능의 유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래서 '저 사람에게는 재능이 있지만 '이 사람에게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
신의 유무 문제도 마찬가지다.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 가. 이 물음 자체가 이미 분절화이다. 신의 존재를 묻는다는 것, 즉 상자 속 슈뢰딩거의 고양이 schrodinger's Cat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 뢰딩거가 1935년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한 사고 실 험-옮긴이)의 존재를 묻는 것처럼 인간은 단순히 있느냐 없느냐 하는 분절화만으로 사물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신론자나 무신론자 모두 똑같이 안이하다.
- 혹은 독학하는 생활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헤르만 헤세의 단편소설 《클라인과 바그너》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사실 사람들이 불안하게 느끼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즉 몸을 던지는 것, 미지의 것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 모든 게 보장되어 있 는 안전지대를 아주 조금이라도 넘어가는 것이다. 한 번, 단 한 번 만이라도 자신을 내동댕이친 적이 있는 사람은 위대한 신뢰를 느끼 고, 자신을 운명의 손에 내맡긴 사람은 불안으로부터 해방된다. 그 들은 더 이상 지상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우주에 낙하하 여 별들과 함께 윤무를 추는 것이다.'
- 오히려 자신의 삶에 대한 진정성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기성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버려야 한다. 또 자신에게 의미 있는 세계와 인 생을 찾기 위해서라도 독학을 하거나 생활할 때 관찰의 눈을 날카 롭게 벼리고, 생생한 통찰을 가능케 할 만한 새로운 자신을 매일같 이 창조해 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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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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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년 전 농경 사회가 되기 전에 지구상의 인구는 500만 명이었다. 1850년경 이 수치는 12억 명이 됐다. 400세대 동안 무려 2만 4,000퍼센트 증가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브를 다시 떠올려보자. 이브에게 미래에는 그 녀가 겪는 모든 위험이 거의 사라지리라고 말해준다면 어떨까? 머나먼 후손은 치명적 전염병도 흔하지 않고 맹수에게 공격당할 까 봐 밤잠을 설칠 필요도 없는 세상을 살 것이라고 말이다. 여 성이 출산하다가 죽는 일도 흔하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생산한 다양하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대부분 사람이 먹을 수 있으며, 지루함을 느낄 틈조차 없이 각종 오락거리가 준비된 세상을 살 게 된다고 말이다.
아마 이브는 농담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 후 손이 이 모든 것을 누리리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이해시킨다면, 그녀는 자신이 힘겹게 살아남은 결과 후손들이 그처럼 멋진 보 상을 받는다는 사실에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여덟 명 중 한 명 이 약을 먹으며, 그 이유가 우울증 때문이라고 말해준다면? 그 녀는 '약'이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고, 그처럼 좋은 세상에서 우울해한다는 말에 또다시 고개를 갸우뚱할 것 이다. 어쩌면 우리를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 정말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존재 인 걸까? 나도 이따금 특별한 이유 없이 울적해질 때면 그런 인 간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내 환자 중에도 부족함 없이 사는데 우울하거나 불안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이들이 많았 다. 그러나 이는 '이 좋은 세상에서 왜 우울해? 늘 기쁘고 감사해 야 당연한 거 아냐?'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당신과 나는 생존자의 후손이고, 사실 우리에겐 즐거운 기분을 느끼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인간은 느낄 줄 아는 생각하는 기계가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느끼는 기계다.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신경학자이자 저술가)

- 뇌가 환경에 반응하는 방식을 생각할 때 흔히 물리적 주변 환경을 먼저 떠올린다. 예컨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버스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할 뿐 아니라 뇌가 늘 면밀하 게 주시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바로 우리의 내부 세계다. 뇌 의 측두엽 안쪽에 섬엽(insula)이라는 흥미로운 부위가 있는데, 일종의 정보 수집소 역할을 한다. 즉 감각을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뿐 아니라 심박수와 혈압, 혈당치, 호흡수 등 몸 내부에서 오는 정보도 받아들인다. 따라서 섬엽은 우리의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가 만나는 곳이다. 우리는 이 때문에 느낌을 경험한다.
- 느낌은 외부 세계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밀려오는 게 아니다. 뇌가 외부 정보와 내부 정보를 결합함으로써 '만들어내는 것이다. 뇌는 그 정보를 이용해 우리가 생존에 유리하도록 행동하게 한 다. 요컨대 느낌의 목적은 단 하나다.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침 으로써 생존을 도와 번식하게 하는 것이다.

- 느낌이라는 요약보고서
눈은 1초당 1,000만 비트가 넘는 시각 정보를 뇌에 전달한다. 우 리 몸에는 끊임없이 시각 인상을 공급하는 슈퍼 광케이블이 장착돼 있는 셈이다.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역시 엄청난 용량을 소화하는 또 다른 많은 케이블이 신체 각 기관에서 오는 정보는 물론이고 청각과 미각, 후각으로 들어오는 감각 인상을 뇌로 공 급한다. 이처럼 뇌로 밀려드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
물론 뇌는 매우 뛰어난 처리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우리의 의 식적 주의력에는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우리는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고,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만 할 수 있다. 따라 서 뇌는 대부분 작업을 우리가 모르는 새에 수행한 뒤 그것을 요 약한 결과를 '느낌'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전달한다.

-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와 체격이 다르듯 뇌도 마찬가지다. 특히 섬엽은 개인에 따라 크기가 상당히 차이 나는 뇌 부위다. 섬엽은 몸 내부의 신 호를 받아들여 느낌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많은 과학자가 섬엽의 크기 차이 때문에 몸의 신호를 각자 다른 강도로 경험한다고 추정한다. 어떤 사람은 내부 신호의 볼륨이 높아서 속이 불편하거나 맥 박이 빨라지거나 허리가 아픈 것을 특히 예민하게 느낀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내부 신호의 볼륨이 낮아서 그런 자극을 잘 알아채지 못 한다.
섬엽의 크기 및 활동성의 차이가 성격과 관련이 있는가에 관한 흥미로 운 연구도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신경증(부정적 자극에 얼마나 민감하 게 반응하는지에 영향을 미치는 성격 특성)은 섬엽의 활성화와 연관돼 있 는 것으로 보인다. 섬엽의 크기 및 활동성의 차이가 우리가 몸의 신호 에 반응하는 강도와 다양한 성격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를 들으 면, '정상적인' 섬엽의 기준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 지만 그런 것은 없다. '정상적인' 뇌라는 것이 따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 다. 사실 무리를 이뤄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뇌는 각자 '달라 야만 한다. 무리 내에 다양한 특성과 느낌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생 존에 대단히 중요했을 것이다.

- 주방에 있는 당신이든 나무 앞에 선 이브든 이런 뇌의 판단 프로세스는 본질적으로 같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당신이라면 설령 판단이 잘못되어도 큰 상관이 없다. 바나나를 먹지 않기로 했더라도 언제든 다시 돌아와서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브는 그런 호사를 누릴 수가 없다. 만일 이브의 뇌가 판단을 잘 못해서 그녀가 늘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행동한다면 조만 간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반대로 절대 모험을 하지 않아도, 과도 한 경계심 탓에 굶어 죽을 위험이 있다. 우리 조상 중에 느낌이 올바른 행동을(이때 '올바르다'라는 것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함을 뜻한 다) 유도한 이들만 살아남아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프로세스는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엄청난 시간이 흐 르는 동안 계속됐다.
이렇듯 느낌은 우리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뭔가가 아니다. 뇌는 느낌을 생성해 행동을 촉발하며, 느낌은 진화의 냉혹한 선택을 거치며 수백만 년 동안 예리하게 연마돼왔다. 우리 를 잘못된 행동으로(이 역시 생존의 관점에서 '잘못됐다'라는 뜻이다) 이끄는 느낌들은 인간의 유전자 풀에서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느낌을 가진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 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느낌은 인간의 생존과 번식 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유도하는 생화학물질을 수많은 뇌세포 가 교환하여 만들어낸 결과다. 또는 좀 더 시적으로 표현한다 면, 느낌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기아와 전염병과 갑작스러운 죽음을 피하는 데 성공한 수많은 조상이 우리에게 보내는 속삭임이다.
- 지금까지의 설명은 우리가 항상 행복감을 느낄 순 없는 이유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이브가 나무에 올라가 바나나 몇 개를 따는 데 성공했다고 가정하자. 그녀는 만족해하며 바나나를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그녀에게 만족감은 얼마나 오랫동안 허락될까? 그 시간은 별로 길지 않다. 만일 바나나를 먹고 만족감이 몇 개 월 동안 지속된다면 그녀는 식량을 추가로 구할 동기를 느끼지 못할 테고, 곧 굶어 죽을 것이다.
이는 행복하다는 느낌이 일시적이어야 마땅함을 의미한다. 그 렇지 않으면 동기가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안다. 이번에 승진만 하면, 새 자동차를 장만하면, 연봉이 오르면, 정원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 면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일이 현실이 되면 행복감은 곧 사라지고, 훨씬 더 높은 직급이나 훨씬 더 많은 연봉에 대한 갈망이 또다시 마음속에 들어앉는다. 그리고 그 과정은 끝없이 계속된다!
많은 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행복을 꼽는다. 그 러나 행복감은 진화의 연장통에 들어 있는 수많은 도구 중 하나 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도구는 일시적으로만 쓰여야 한다. 늘 행 복감을 느끼기를 바라는 것은 바나나 하나로 남은 평생 배부름 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어차피 그렇게 설계돼 있지 않다.
- 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작동하는 것이 느낌만은 아니다. 심리학과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뇌는 우 리의 기억을 바꾼다. 또 우리가 실제보다 더 훌륭하거나 유능하 거나 더 외향적이라고 착각하게 한다. 반면 때로는 우리가 무가 치한 존재라고 믿게 한다. 뇌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 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뇌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과제, 즉 생존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뇌는 생존에 유리한 방식 으로 세상을 경험하게 하며, 그 결과 우리의 가장 큰 감정 해충 인 불안이 생겨난다.
- 약네 명 중 한 명이 살면서 한 번쯤 공황발작(가장 강도 높은 형태의 불안이다)을 경험한다. 공황발작이 일어나면 극심한 불안에 휩싸이고 종종 심박수 증가, 호흡 곤란, 통제력 상실감 등의 증상을 겪는다. 3~5퍼센트의 사람들이 반복적인 공황발작을 겪고, 그 결과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이들은 지하철과 버스처럼 답답한 공간을 힘들어한다. 더러는 광장처럼 개방된 공간을 두 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황발작이 또 발생할까 봐 계속 걱정 하며 불안해하는 '예기 불안(anticipatory anxiety)' 역시 발작 자체 못지않게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
공황발작을 처음 겪으면 대개 심근경색이 왔다고 생각하고 병원을 찾는다. 의사가 공황발작이라는 결론을 내린 뒤 가장 먼 저 하는 일은 전혀 위험하지 않은 상태라고 환자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환자 자신은 꼭 심장이 멈출 것처럼 또는 호흡이 막혀 질식할 것처럼 느꼈을 텐데, 그런 일은 절대 없으리라고 말해준 다. 그런데도 극도의 불안을 겪는 사람은 대개 자신에게 뭔가 심 각한 문제가 생겼다고 확신한다.
- 공황발작을 겪을 때 신체와 뇌에서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공황발작의 진원지가 편도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 거는 많다. 앞서 설명했듯 편도체는 주변 위험을 탐지하는 역할 을 한다. 편도체가 위험할지 모르는 뭔가를 감지하고 경보를 울 리면 우리 몸은 '투쟁-도피' 모드로 돌입한다. 그러면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맥박과 호흡이 증가한다. 뇌는 몸이 보내는 이 신호들을 실제로 위험이 임박했다는 증거로 잘못 해석하고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그에 따라 맥박과 호흡이 한층 더 증가하고, 뇌는 이를 위험이 다가왔다는 훨씬 더 확실한 증거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극심한 공황 상태에 빠진다.
- 공황발작이 수백 번 일어났는데 그중 한두 번만 목숨을 건졌 다고 해도, 이후 뇌가 지나치게 조심하는 전략을 택하기에는 충 분하다. 따라서 공황발작은 일종의 거짓 경보인 동시에 뇌가 당 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신호다. 음식이 탔을 때 경보음 을 울리는 화재경보기가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듯 말이다. 우리의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이 지나치게 적게가 아니라 지나치게 자주 작동하는 것은 사실 생존이라는 목적에 이로우며, 몸의 심각한 결함도 아니다.
- 우리가 오늘날처럼 안전한 세상에서도 불안을 느끼는 주된 이유는 여전히 뇌의 경보 시스템이 인류의 절반이 10대가 되기 전에 죽던 세상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 세상에서는 상상 가 능한 (때로는 상상 불가능한) 모든 위험을 경계하는 능력이 생존 확 률을 높여줬다. 당신과 나는 그 생존자들의 후손이며, 유전적 요 인이 불안에 대한 민감성에 미치는 영향은 약 40퍼센트에 달한 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실제보다 더 위험하다고 느낄 수밖 에 없다.
-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불안은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오 히려 불안을 겪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건강한 팔은 무 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고 건강한 다리는 빨리 달릴 수 있 다. 그러나 건강한 뇌는 스트레스와 고통, 외로움에 대한 면역력 이 없다. 오히려 뇌는 어떻게든 우리가 그런 일을 겪게 한다. 때 로 뇌는 불안한 느낌을 만들어내거나 움츠러들게 하거나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인식하게 한다. 당신이 이런 현상을 뇌가 고장 났 거나 아프다는 의미로 여긴다면 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생존 임을 잊은 것이다. 만약 조상들이 불안을 쉽게 느끼지 못했다면 당신과 나는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지하철에서 공황발작을 일으킨 환자처럼, 불 안을 느끼는 많은 이들이 틀림없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확 신한다. 하지만 불안감이 사실은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 다는 신호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이다.
- 뇌는 생존에 중요하다고 판단한 내용, 특히 위험과 관련한 경험을 먼저 기억에 저장한다.
위험을 감지하고 경고를 보내는 역할을 하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는 뇌의 기억 중추인 해마(hippocampus) 바로 앞쪽에 있 다. 편도체와 해마가 이웃해 있다는 사실은 강렬한 정서적 경험 과 기억이 매우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경험을 할 때 강한 정서 반응이 일어난다면, 그 경험이 생존에 중요하므로 뇌가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신호다. 위험을 마주하고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해마가 현재의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는 신호를 전달 받고 선명한 기억을 형성한다. 
- 과거의 외상경험과 눈곱만큼이라도 비슷한 무언가를 만나면 뇌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 기억을 끄집어낸다. 뇌가 가장 중 요하므로 꼭 저장해야 한다고 여기는 기억은 우리 입장에서는 사실 잊고 싶은 일인 경우가 많다. 이는 PTSD를 겪는 사람뿐 아 니라 누구에게나 해당한다. 아마 당신에게도 이따금 떠오르는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뇌가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막고 싶어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뇌는 그 기억을 자꾸 재생함으로써 당신이 과거에 그 일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상기시킨다. 그것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는 사실은 뇌 입장에서는 부차적인 문제다. 알다시피 뇌는 행복 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설계됐기 때문이다.
- 안전한 환경에서 고통스러운 기억(사고, 괴롭힘, 학대 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숲속의 같은 장소를 다시 갔는데 늑대를 만나지 않는 경험과 같은 효과를 낸다. 그 경험과 기억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덜 두려운 것으로 변한다. 신경학적으로 볼 때 고통스러운 기억을 억누르려 하는 것은 잘못된 전략일 때가 많다. 그렇게 하면 기억이 절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강하게 굳어버린다.
가장 극심한 형태의 불안인 공황발작과 PTSD는 뇌가 우리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다른 모든 종류의 불안도 마찬가지다. 뇌는 우리가 경계심을 갖길 바라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러 니 이것만은 꼭 기억하길 바란다. 불안은 위험한 감정이 아니다.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은 감정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 대다. 불안에 휩싸이면 극도로 고통스럽다. 어떤 형태로든 극심 한 불안을 겪어본 사람은 그것이 삶을 집어삼킬 수도 있음을 잘 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극심한 불안감이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입으로 후 불어서 폭풍의 방향을 바꾸려고 하는 것 과 같다. 불안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 프로이트는 불안을 삶의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라 치료해야 하는 병적인 무언가로 바라보도록 사람들의 관 점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 지식에 더 부합하는 관점은 이것이다. 불 안은 우리를 위험에서 보호해주는 자연스러운 방어 기제이며, 대개 뇌가 지극히 정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다. 어떤 이들 은 방어 기제가 특별히 예민해서 불안을 더 강하게 겪는다(나도 이 그룹에 속한다). 반면 방어 기제가 덜 민감한 이들은 불안을 덜 경험한다. 어쨌든 대부분 사람의 공통점은 필요 이상으로 불안 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불안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론은 한때 탁월하게 여겨졌을지 몰라도 사실 그저 추측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토 록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졌을까? 아마도 우리가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듣기만 해도 반가운 얘기다. 그러나 지금쯤이면 당신도 알겠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별로 현실성이 없는 희망이다.

- 불안을 가라앉히는 두 가지 방법
1. 호흡에 집중하기
심한 불안감에 휩싸일 때 호흡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길게 숨을 내쉬면서 차분히 호흡하면, 우리 몸은 주변에 위험이 없다는 신호를 뇌에 보낸다. 신체 내부 기관의 활동을 조절하는 신경계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이를 자율신경 계라고 하며,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로 이뤄져 있다. 교감신경계 는 투쟁-도피 반응을, 부교감신경계는 소화 및 휴식을 담당한다. 호흡은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의 상호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숨 을 들이마시면 교감신경계의 활동이 약간 증가해 우리를 투쟁-도피 반 응 쪽으로 유도한다. 실제로 숨을 들이마시면 심장 박동이 약간 빨라진 다. 운동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몇 번씩 숨을 급히 들이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체내 투쟁-도피 반응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숨을 내쉬면 부교감신경계의 활동이 증가한다. 즉 심장 박동이 약간 느려지고 투쟁-도피 반응이 가라앉는다.
따라서 불안감이 느껴질 때 차분하게 심호흡을 반복하되 들숨보다 날 숨을 더 길게 하면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4초 동안 들이마시고 6초 동안 내쉬는 것을 목표로 하면 적당하다. 이는 자연스러운 호흡보다 긴 시간이므로 여러 번 연습해야 한다. 날숨을 길게 쉬는 심호흡은 뇌를 '속여서' 투쟁-도피 반응을 통제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대개 이 방법을 쓰면 불안감이 서서히 잦아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 언어로 표현하기
심호흡만큼 간단한 또 다른 방법은 현재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뇌의 전두엽은 이마 바로 안쪽에 있으며 고도의 인지 활동을 담 당하는 부위다. 쉽게 표현하자면, 전두엽의 영역 중 내측 전두엽(medial frontal lobe)은 두 눈 사이에 있고 외측 전두엽(lateral frontal lobe)은 관 자놀이 근처에 있다.
내측 전두엽은 주로 자신에게 집중한다. 이 영역은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목하고 감정 및 동기와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측 전두 엽은 뇌에서 가장 늦게 발달한 영역으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한다. 또 계획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손 가락으로 양쪽 눈썹 사이를 짚어보라. 그러면 당신 자신에게 집중하는 뇌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제 손가락을 바깥쪽으로 움직여 눈썹이 끝나는 곳을 짚어보라. 그곳에는 주변 환경에 주의를 기울이는 뇌 영역 이 있다. 
흥미롭게도 전두엽이 활성화되면 편도체의 활동이 줄어든다. 한 실험에서 피험자들에게 화가 났거나 겁먹은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자 그들 의 편도체가 활성화됐다. 이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화난 얼굴은 위협 요인으로 느껴지고, 겁먹은 얼굴은 주변에 조심해야 할 뭔가가 있 다는 신호니까 말이다. 그런데 피험자들에게 자신들이 본 것을 언어로 표현하라고 하자(“이 여성은 화가 났군요." "이 남성은 겁을 먹었어요.") 전두 엽, 특히 외측 전두엽의 활동이 증가했다.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언어 로 표현할 때 외측 전두엽(주변 환경에 집중하는 영역)이 활성화된다. 외 측 전두엽 활성화는 편도체 활동을 가라앉히므로, 이를 감정 조절에 활 용할 수 있다.
감정을 최대한 상세하게 언어로 표현하라. 자신이 느끼는 것을 구체적 인 언어로 표현할수록 감정에 끌려가는 대신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다.

- 우울증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과 도파민 (dopamine),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의 결핍 때문에 생긴 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이 세 물질(항우울제는 이들 물질의 불균형을 복원해 대체로 긍정 적 효과를 낸다)이 우울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뇌를 '오로지 세 가지 재료로 만든, 맛의 균형이 무너진 수프'처럼 생각한다면 우울증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없다. 우울증에는 뇌의 여러 부위와 시스템이 관련된다. 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꽤 복잡하고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 울증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다. 특히 장기간(며칠 이나 몇 주가 아니라 몇 달 또는 몇 년) 지속되며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그러나 스트레스만으로는 완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유전적 소인도 개인마다 다르다. 유전적으로 우울증에 특히 취약한 이들은 그 다지 특별하지 않은 사건(예컨대 직장 동료와의 갈등)이 주는 스트 레스만으로도 우울증을 겪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훨씬 더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예컨대 사랑하는 이를 잃는 일) 우울증을 앓는다.
그런가 하면 살면서 어떤 일을 겪어도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유전자가 장전하고 환경이 방아쇠를 당긴다'라는 유명한 관용구로 요약할 수 있다. 
- 미국의 정신과 의사 찰스 레종(Charles Raison)의 설명에 따르면,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에 스트레스는 감염 위험이 증가했 음을 신체에 알리는 믿을 만한 신호였다. 면역체계는 신체 에너 지의 15~20퍼센트를 소비한다.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쓰이므 로 면역체계를 항상 강하게 작동할 수는 없다. 신체는 언제 면역 체계를 가동할지 선택해야 하며, 스트레스는 바로 그 시점을 알 려주는 신호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감염 위험이 커 졌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오랜 세월 동안 바로 그것이 스트레스 가 의미하는 바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감염 위험과 스트레스 가 밀접히 연결돼 있었다는 얘기이며, 그 신호에 따라 면역체계 의 활동이 증가한다. 이런 메커니즘은 먼 옛날 사바나 초원에서 만 작동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작동한다. 우리는 지금도 수 렵채집인의 뇌를 갖고 있는 것이다.
- 이 끔찍한 구직 면접은 사회적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관찰하는 트리어 사회적 스트레스 테스트 (Trier Social Stress Test)의 일부다. 테스트 전에 참가자는 모의 면 접을 진행할 것이며 그 내용을 녹화해 행동과학자들이 평가할 것이라는 설명을 듣는다. 한편 면접관은 거만한 태도를 보이면 서 굳은 표정으로 면접자를 대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대다수 참가자가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고 심박수가 증가하고 땀을 흘리는 것은 그리 놀라운 결과가 아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부 참가자의 혈액 검사 결과에서 나타났는데, 그들의 인터류킨-6(interleukin-6) 수치가 증가한 것이다. 인터류킨-6은 면역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로, 신체가 감염됐을 때 발열을 일으키는 데 관여한다. 그런데 어째서 구직 면접 도중에 인터류 킨-6 이 증가할까? 면접관이 아무리 거만하게 군다고 해도 그 때 문에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될 위험은 거의 없지 않은가. 단지 자존감이 조금 위협받는 상황일 뿐인데 왜 면역체계가 작동한 것일까?
그 답의 실마리는 앞서 설명한 내용에 있다. 면접 참가자가 스 트레스를 받으면 그의 몸은 다칠 위험이 증가했다고 해석한다. 오랜 세월 동안 스트레스가 곧 그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몸이 대응에 나선다. 다칠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은 곧 감염위험이 증가한다는 뜻이고, 따라서 면역체계가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울증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 다시 말해 인간은 바이러스와 세균에게 훌륭한 식사를 제공하는 존재다. 과거에 아이들 절반이 감염으로 죽은 것도 놀라울 게 없다. '모두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놀랍다. 항생 제와 백신, 현대 의학이 존재하기 전에 인류에게는 감염과 싸울 수 있는 어떤 자원이 있었을까?
먼저 뛰어난 면역체계가 있었다. 면역체계는 우리가 과거에 겪은 감염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또다시 감염을 만나면 재 빨리 작동하게 돼 있다. 우리의 면역체계는 대단히 정교해서 그 복잡성이 뇌 다음 순위다. 뇌와 마찬가지로 면역체계의 지도 작 성도 최근 들어 시작됐다. 면역체계의 새로운 기능이 지금도 끊 임없이 발견되고 있다. 그중 내가 특히 흥미를 느꼈던 사실은 누 군가가 기침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우리의 면역체계가 작동 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상한 음식에 대해 강한 반사적 거부감을 느낀다. 이것은 병을 일으킬 수 있는 음식을 피하게 하려는 뇌의 전략이다. 상한 우유나 썩은 생선의 냄새를 맡고 움찔하며 물러서지 않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기침하는 타인을 보고 면역체계가 작동하는 것이나 상한 음 식의 냄새만 맡아도 움찔하는 것을 '행동 면역체계(behavioural immune system)'라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확장된 면 역 방어는 행동으로 이뤄져 있다. 어쨌거나 체내의 세균이나 바 이러스와 싸우는 것보다 애초에 그것들이 몸에 들어오지 않도록 피하는 것이 당연히 더 나은 법이다.
이때 무엇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까? 느낌이다! 우리는 울적한 기분을 느끼면 움츠러들어 자신을 고립시키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일부 전문가는 우울한 기분이 우리가 감 염을 피하게 하거나 감염과 싸울 상황에 대비해 에너지를 비축 하려는 뇌의 전략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면역체계라고 할 때 흔히 떠오르는 것(항체, B세포와 T세포 등)은 사실 면역체계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또 다른 측면 은 우리의 행동이다. 즉 뇌가 만들어내는 느낌이 우리가 감염 위 험 앞에서 몸을 사리게 유도한다. 그리고 여전히 사바나 초원에 살고 있다고 믿는 우리의 신체는 스트레스를 감염 위험이 증가 했다는 뜻으로 해석하므로, 장기적인 스트레스를 장기적인 감염위험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뇌는 모종의 느낌을 만들어내 우리가 움츠러들고 정신적으로 멈춰버리도록 유도한다. 다시 말해 우울증에 빠지는 것이다.

- 오랫동안 의학계에서는 뇌와 면역체계가 완전히 별개이며 후자가 전자에게 영향을 미치기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피부에 상처가 나서 감염되면 사이토카인(cytokine)이라는 단백질 물질이 분비되고 면역체계가 감염과 싸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사이토 카인은 또 다른 중요한 일도 한다. 감염이 일어났다는 신호를 몸 전체에 보내는 일이다. 21세기 이전만 해도 의학 서적에서는 사 이토카인이 감염 신호를 신체의 모든 장기에 보내는데, 이때 뇌 는 제외된다고 설명했다. 뇌와 면역체계가 분리돼 있기 때문에 그 신호가 뇌에 도달할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 이것이 틀렸음이 입증됐다. 사이토카인이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즉 뇌는 신체 어딘가에 염증이 발생했다 는 신호를 수신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 볼 때 이는 대단히 획기 적인 발견이었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체내 염증이 우리의 기 분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아내려고 본격적으로 연 구하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쥐를 대상으로 실험했는데, 쥐에게 사이토카인을 주입하자 움직임이 위축되면서 인간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와 비슷 한 행동을 보였다. 이후 인간에게 같은 실험을 진행했을 때도 동 일한 결과가 관찰됐다. 사이토카인을 주입받은 피험자들은 우울 하고 언짢은 기분을 느꼈다.
또 다른 단서는 C형 간염에 걸려 치료를 받은 환자에게서 목 격됐다. 1990년대에 C형 간염의 효과적인 치료법이 개발됐는데, 환자들에게 바이러스 감염 시 백혈구가 생산하는 물질을 투여 했다. 그러자 흥미롭게도 환자의 약 3분의 1이 우울감을 느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질병을 치료받았음에도 안정된 기분이 아니라 우울함을 느낀 것이다. 치료 과정이 끝난 후에는 대개 우울한 기 분이 사라졌다. 장티푸스 백신을 맞은 많은 사람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됐다. 그들은 백신을 접종한 후 일시적으로 우울 감을 느꼈다.
요컨대 2000년대 초에 발견된 여러 증거는 뇌와 면역체계 가 연결돼 있음을 시사했다. 이전의 믿음과 달리 이 둘은 별개 가 아니라 사실은 복잡하게 연결돼 있는 것으로 보였다. 면역체 계의 활동이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으며, 면역 활 동 증가가 우울증에 기여하는 요인이라고 추정됐다. 우울증 환 자들은 척수액(뇌와 척수를 감싸는 액체)의 전염증성 사이토카인 (proinflammatory cytokine) 수치가 더 높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그런 추측에 한층 더 무게가 실렸다.

- 덴마크 연구진이 7만 3,000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가벼운 우울증과 피로, 낮은 자존감을 겪는 사람들은 대개 체내 염증 지표인 C 반응성 단백질(C-reactive protein, CRP) 수치가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CRP 수치가 높을수록 우울증과 피로감이 더 심했다. 또 CRP 수치가 높은 사람은 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하 거나 항우울제 처방을 받은 일이 더 많았다. 연구진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체온이 약간 더 높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는 감염 을 막아내려는 기제일 수 있다. 발열의 주요 기능은 세균이나 바 이러스의 체내 증식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우울증과 면역체계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마지막 결정적 단서는 유전학 분야에서 나왔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나의' 우울증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한 유전자가 우울증 발현 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한 주요 연구에서 우울증과 연관되는 것으로 보이는 44개의 유전자가 확인됐다. 이들 유전자 중 다수 는 뇌와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그리 놀랍지 않다. 우울증 발현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당연히 뇌에도 영향을 미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유전자 중 일부는 면역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유전자들은 두 가지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우울증 발현 위험을 높이는 것과 면역체계를 활 성화하는 것이다.

- 염증은 치명적인 세균 및 바이러스 감염처럼 어릴 때 만나는 위협들로부터 우리 조상들을 보호해준 방어 체계다. 장기적 염증이 유발하는 질병은 대개 나이가 든 후에 걸린다. 그 리고 앞서 말했듯 우리는 어릴 때 걸리는 병을 이겨내도록 진화 해왔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염증이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 노년에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 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인류사의 오랜 기간에 걸쳐 대부분 사 람은 그 정도로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동안 염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변해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에 그 원인은 주로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 부상으로 인한 상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생 활 습관의 여러 요인도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래 앉아 있는 습관이 근육과 지방 조직에 염증을 일으킨다는 사실 이 입증됐다. 또 장기적 스트레스(며칠이나 몇 주가 아니라 몇 달이나 몇 년씩 지속되는 스트레스)도 신체 전반의 염증 수준을 높이는 것 으로 보인다. 수면 부족과 환경 독소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 다. 가공식품은 위장과 장의 염증, 비만은 지방 조직의 염증을, 흡연은 폐와 기도의 염증을 유발한다.
- 역사적으로 염증을 일으킨 주범(세균, 바이러스, 상처)은 대개 일시적 성격을 띤 반면, 오늘날의 유발 원인(좌식 생활 습관, 비만, 스 트레스, 정크푸드, 흡연, 환경 독소)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향이 있 다. 그 결과 과거에는 잠깐 작동했던 체내 프로세스가 오늘날에 는 더 오랫동안 작동한다. 우리 몸이 염증의 원인을 구분할 수 있다면, 따라서 면역체계가 불필요하게 활성화되는 것을 막는다 면, 이런 사실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신체가 모든 종류의 염증을 한데 뭉뚱그려 취급해서, 생활 습관 요인을 바이러스나 세균의 공격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염증을 일으킨 범인이 감염인지 생활 습관 요인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뇌도 마찬가지다.
- 요약해보면 이렇다. 당신과 나는 수렵채집인의 뇌와 신체를 갖고 있다. 주로 앉아서 지내는 현대의 생활 습관과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몸이 수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체내 염증을 증가시킨다. 뇌는 이것을 위협으로 간주하고(인간 역사의 대부분 기간에 염증은 곧 위험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속적인 공 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분을 조종해 몸을 사리게 한다. 뇌가 기분을 하향 조정하면, 우리는 우울감과 심리적 불편 함을 느끼고 더욱더 움츠러든다. 다시 말해, 염증은 기분을 좌우 하는 일종의 조절기 역할을 한다. 염증이 많을수록 더 우울해지 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조절기가 특히 더 민감하고(부분적으로 는 유전자 때문이다). 따라서 우울증에 더 쉽게 걸린다.
그렇다면 모든 우울증 환자는 체내에서 염증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염증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여러'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모 든 우울증의 약 3분의 1이 염증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 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른다. 항염증제가 우울증 치료 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다수 존재한다.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의 형성을 막는 약물은 우울증 치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 지만, 다른 항우울제의 효과를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는 염증에서 기인한 우울증일 때의 얘기이고, 그 외의 경우에는 효 과가 미미하다.

- 운동과 숙면, 스트레스 조절과 회복이 염증을 줄이고 따라서 뇌가 모종의 신호를 받아 신체가 공격받는다고 잘못 해 석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런 행동을 열 심히 실천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염증에 대항하는 모든 것 (예를 들면 염증에 좋은 특정 식품)이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제 당신은 우리를 온종일 예측 불가능한 스트레스에 노출 시키는 근로 환경이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 게 됐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의욕 상실이나 움츠 러드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병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역설적 으로 '건강'하다는 뜻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럴 때 최선의 해결 책은 대개 근로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하길 바란다. 비정상적 인 상황에 대해 비정상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뇌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행동이다.

- 인생은 수많은 결정의 연속이고, 대체로 뇌는 자동으로 잘 처 리한다. 하지만 결코 쉽게 처리할 수 없는 결정도 분명히 있다. 인생을 바꿀 만한 결정에 직면하면 뇌가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 하는 것은 아닐까? 우울증 증상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요소를 차단해 우리가 중요한 문제를 생각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게 하려는 뇌의 전략일 수도 있지 않을까?
- 인생이 걸린 중대한 문제를 분석할 때 전략적으로 정서적 위축 상태를 취한다고 보는 것을 '분석적 반추 가설(analytical rumination hypothesis)'이라고 한다. 무기력한 우울감이 무조건 유익하다는 말이 아니다. 심해지면 파괴적 영향을 미치거나 중 대한 결정 앞에서 사고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필요할 때 재빨리 도망치는 능력이 우리에게 유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울증과 밀접하게 연관된 정신 능력 역시 매 우 유용하다는 것이다.
설득력 없는 얘기로 들리는가? 그렇다면 지금껏 살면서 우울 감을 느껴 안으로 침잠했던 적이 있는지, 그리고 그 시간을 통과 한 후 결국 의미 있는 지점에 도착했는지 아닌지 생각해보라. 어 쩌면 당신은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의 답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때 뭔가 배웠기 때문에 그 시간을 없던 것으로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러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당신에겐 그런 경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뭔가가 유용할 수 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항상 유용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어쨌든 세균과 바이러스를 경계하는 오래된 방어 기제나 스 트레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우울증에 걸릴 만큼 뇌가 기 분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상당히 타당한 이유가 있다. 뇌와 관련 한 대부분의 프로세스는 꽤 복잡하며, 우울증의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우울증에 빠진 이유를 정확히 규명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실제 현실은 단순히 흑과 백이 아니라 무수히 다양한 회색 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 '모든' 우울증이 특정한 목적에 기여한다거나 염증 또는 인생이 걸린 결정에 대한 숙고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것만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심리사회적 스트레스부터 쉽사리 제어하기 힘든 생물학적 방어 기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회색으로 이뤄진 우울증이라는 그림 에서 우리는 생물학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할 때가 많다. 그리고 대체로 우울증은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생각의 소용돌 이를 일으키지만, 때로는 인생이 걸린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도 와주는 자기 침잠의 시간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불안과 우울증이 당연히 뇌가 고장 났다는 의미라고 믿는다면, 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안과 우울증이 일상생 활을 방해하고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으며, 때로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 세상이 위험하고 적대적인 곳으로 느껴지는가?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뇌가 원래의 작동 방식대로 반응 하고 있다는 신호다.
타인과의 대화가 삐걱거린다고 느꼈다면 그것이 정말로 삐걱 거리는 상황이었는지 잘 생각해보라. 당신이 직장 동료나 학교 친구 또는 낯선 행인의 말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면, 혹시 부정 적 측면에 지나치게 집중했던 것은 아닐까? 아마 당신은 그러지 않았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외로움을 느낄 때는 자신의 생 각과 판단을 무조건 믿지 말아야 한다. 불안에 시달릴 때 자신의 생각을 무턱대고 믿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외로움과 싸워 이기려면 먼저 외로움이란 감정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미국의 연구팀이 외로움을 극복하는 다양한 접근법(사회적 능력 함양 훈련, 지지 그룹 활용 등)을 비교한 여러 연구를 분석한 결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외로움이 사 고 패턴과 자기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치료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이었다.
이런 메커니즘을 아는 것은 타인이 외로움을 극복하게 도울 때도 중요하다. 주변의 누군가가 때때로 까칠하거나 과민하거나 쌀쌀맞게 군다면, 꼭 그가 당신을 싫어하거나 어떤 도움도 원치 않는다는 신호로 해석하지는 말기 바란다. 그의 행동이 외로움 의 증상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 당신의 귓불 뒤쪽 2~3센티미터쯤 되는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어보라. 거기에서 뇌 안쪽으로 직선으로 들어가면 솔기핵(raphe nuclei)이 있다. 솔기핵은 대략 15만 개의 뇌세포로 이뤄져 있다. 이는 전체 뇌세포의 약 0.000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솔기핵은 우 리의 신체 기능과 감정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뇌의 가장 흥미로운 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 솔기핵에서 분비된 세로토닌은 최소 20개의 신호 경로를 통해 뇌 곳곳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세로토닌은 다양한 심리적 특성이 발현되는 데 영향을 미치며 그 양상 역시 대단히 복잡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역할로 보이는 것은 이것이다. 세로토닌은 우리가 몸을 사리고 위축되는 정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는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세로토닌은 적어도 10억 년 전부터 존재했고, 인간 이외에 여 러 종에서도 행동 위축 정도에 영향을 미친다. 큰가시고기와 제브라피시는 세로토닌 분비를 증가시키는 약물에 노출되면 조심성과 경계심이 줄어들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커진다.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미세하게 조정된 세로토닌의 균형 상 태가 행동 위축 정도를 조절하는데, 그 균형이 무너지자 목숨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물고기는 주로 다른 종 때문에 생명의 위협 을 받지만, 그 밖의 동물은 같은 종에게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게는 서로에게 달려들어 격렬하게 싸우곤 한다. 보통 은 더 강한 게가 이김으로써 싸움이 끝난다. 그런데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약물을 주입하면 약한 게도 주도권을 잡은 듯이 행동하면서 후퇴하지 않으려 한다. 요컨대 세로토닌 수치가 변화하자 자기 서열에 대한 인식도 변화한 것이다. 침팬지도 마찬가 지다. 우두머리 침팬지가 자리에서 밀려나면 권력의 공백이 생 긴다. 이때 무작위로 선발한 침팬지에게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약물을 주입하면 그 침팬지가 주도권을 잡고 새로운 우두머리가 되는 경향이 있다. 인간 역시 위계질서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 식하는 방식에 세로토닌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위계질서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세로토닌의 양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미국 대 학 기숙사의 학생들을 관찰한 결과, 그곳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리더 역할을 한 학생들이 새로 들어온 학생들보다 세로토닌 수치가 더 높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10대의 정신 건강과 무슨 관련이 있을 까? 세로토닌은 우리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알다시피 널리 쓰이는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농도를 조절해 기분을 나아지게 해 준다. 이는 위계질서 내에서의 자기 위치에 대한 인식과 우리의 감정이 생물학적으로 대단히 밀접히 연결돼 있음을 의미한다. 만일 서열에서 뒤로 밀려나면 기분이 우울해질 것이다. 특히 오 늘날에는 그런 기분을 느낄 이유가 차고 넘친다. 소셜 미디어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완벽한 삶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하기 때문 이다. 한마디로 세로토닌의 관점에서 보자면 요즘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우울해질 이유가 많아졌다.

- 정신의학 분야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우울증 환자에게서 종종 HPA 축의 활동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이다. 우울 증에 대한 중요한 생물학적 발견이 신체와 뇌에 '동시에 걸쳐진 HPA 축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대개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HPA 축의 활동이 증가한다. 즉 코르티솔 농도가 매 우 높다. 약물을 비롯한 대부분의 우울증 치료법에서는 HPA 축 의 기능을 조절해 정상화한다. 이때 여러 항우울제가 이 축의 서 로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약물만 HPA 축의 기능을 정상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체 활동도 그런 역할을 한다. 운동을 하면 지나치게 활성화된 HPA 축이 진정되는데, 단 오랫동안 운동을 할 때만 효과가 있다. 단 기적으로 볼 때 운동, 특히 고강도 운동은 HPA 축의 활동을 높 인다. 신체 활동 자체는 몸에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리기를 하면 체내 코르티솔 농도가 올라간다. 하지만 달리기가 끝나면 코르티솔 농도는 이전보다 더 낮은 수준으 로 떨어져 최대 몇 시간 동안 유지된다.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 이 진정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몇 주 동안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 HPA 축의 활동이 서서히 줄어든다. 운동 직후뿐 아니라 평소에도 전반적으로 활동이 가 라앉는다. HPA 축에 여러 제동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특 히 중요한 것이 해마와 전두엽이다. 해마는 기억을 담당하는 부 위이고, 이마 안쪽에 있는 전두엽은 추상이나 분석 같은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한다.
신체 활동은 해마와 전두엽의 기능을 강화한다. 실제로 운동 을 하면 해마의 물리적 크기가 커지고, 전두엽에 모세혈관이 더 생겨나 산소 공급과 노폐물 제거를 촉진한다. 이런 모든 프로세 스는 뇌 내부의 스트레스 제동 시스템을 강화한다. 게다가 운동 은 HPA 축의 자체 제동 기능도 향상시킨다. HPA 축이 자신의 활동에 더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속과 제동 기능을 동시에 가진 페달에서 제동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 우울증은 다양한 신경생물학적 프로세스가 유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태를 아우르는 포괄적 용어다. 과도하게 활성화된 HPA 축 이외에 체내 염증과도 관련돼 있다. 또 신경전달물질 인 세로토닌 · 도파민·노르아드레날린의 결핍과도 관련이 있으 며, 뇌의 '비료' 역할을 하는 뇌유래신경영양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BDNF)의 부족과도 관련이 있다. 그 밖에 섬엽 의 활동 변화, 편도체의 활동 증가와도 관련이 있다.
상호 배타적이지 않은 이들 메커니즘이 미치는 영향은 사람 마다 다르다. 사실 누군가의 우울증이 도파민 부족 탓인지, 과도 하게 활성화된 편도체 탓인지, 체내 염증이 많아서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운동에 관한 한 그 답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울증을 일으킨 원인이 무엇이든 대개 운동은 그 원인의 반대 상태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 HPA 축의 역할은 위협을 만났을 때(스트레스) 또는 뇌가 위협이 될 만한 무언가를 예상할 때(불안) 몸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 이다. 수백만 년 동안 우리 조상들에게 가장 커다란 위협은 무엇 이었을까? 어떤 위협을 받을 때 HPA 축이 몸의 에너지를 끌어 올렸을까? 각종 청구서나 마감일이 주는 심리사회적 스트레스 도,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아니었다. HPA 축은 맹수와 사고, 감염이라는 위협에 대응하도록 발달했을 가 능성이 크다.
당연한 얘기지만, 체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맹수를 피해 도망 치거나 싸움 상대를 물리치거나 감염에서 회복될 확률이 더 높 다. 그들의 HPA 축은 위험 요인을 만날 때마다 최고조로 작동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실제적 또는 잠재적 위협 앞에서 패닉에 빠 질 필요도 없다.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 즉 HPA 축이 낮은 기어로 작동해도 위험에서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뇌는 일상의 심리사회적 스트레스에 대응할 때, 오랜 세월 인류가 생존 위협 요인들에 대응할 때 사용한 것 과 같은 시스템을 사용한다. 맹수나 감염으로부터 조상들을 보 호해준 좋은 체력은 그들의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을 진정시키는 역할도 했다. 그 시절 이후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거의 변하지 않 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좋은 체력은 여전히 우리의 HPA 축을 진정시킬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관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요컨대 운동은 우리 몸이 스트레스에 너무 강하게 반응하지 않게 해준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이든 상 관없이 말이다.

- 과거의 조상들에게 '운동'이 바보 같은 짓으로 여겨졌으리라는 단서는 오늘날 여전히 수렵채집인으로 살아가는 부족에게서도 볼 수 있다. 이들이 하루에 걷는 1만 5,000~1만 8,000걸음 중대 부분은 구체적인 목적이 있다. 우리의 추측과 달리 이들은 바쁘 게 돌아다니며 생활하지 않는다. 실제로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앉아서 보내며, 수렵채집 활동은 네다섯 시간 정도만 할 뿐이다. 그러니 당신과 내가 운동화를 챙겨 신고 밖으로 나가는 대신 소 파에 드러눕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 수만 세대에 걸쳐 형성된 생물학적 힘은 나를 소파에 붙어 있 게 한다. 하지만 그 똑같은 생물학적 힘이 내가 몸을 움직이면 뇌의 기분과 작업 능력이 향상되게도 만들어놓았다. 나는 이 두 가지 사실을 모두 알고 있으므로, 운동이 지독하게 하기 싫을 때 면 소파를 선호하는 내 유전자가 주도권을 쥐게 놔두지 않겠다 고 다짐한다. 내가 지휘권을 잡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함으로써 매번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데 성공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만, 때로는 분명히 효과가 있다.
- 하지만 신체와 뇌의 구분은 인위적인 것이다. 뇌는 신체와 분리된 채 세상을 돌아다니는 기관이 아니다. 신체 없이 존재하는 뇌는 없다. 사실 뇌는 생각하고 느끼거나 의식을 만들어내기 위 해서가 아니라 우리 몸을 이끌고 통제하기 위해 발달했다. 저명 한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은 이렇게 말했다. "진화 과정에서 신체가 더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뇌도 더 커지고 복잡해졌다."
뇌와 신체는 대단히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이 책에서 나는 그 런 관계를 보여주는 최근 연구 결과들을 소개했다. 뇌가 면역체 계로부터 정보를 수신한다는 사실, 뇌가 내부 자극과 외부 자극 을 모두 이용해 느낌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등이다. 외부에서 오 는 자극(예컨대 감각 인상, 일터나 학교의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눈에 뻔히 보이고 측정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특정한 기분을 느끼거나 우울 및 불안을 겪는 원인을 외부 자극에서 찾기 쉽다.
그에 비해 신체의 내부 자극은 주관적이므로 측정하거나 알아채 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안정과 행복에 미치는 영 향이 외부 자극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많은 연구가 보여 준다. 다시 말해 심리 치료나 뇌 내 물질의 균형을 회복하는 약 물만이 기분과 우울, 불안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신체 상태 역시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 다. 과학계의 연구가 신체와 뇌 사이의 인위적인 구분을 서서히 허물어뜨리고 있다. 이 구분이 완전히 사라지면 우리는 우울증 과 불안, 행복을 단순히 심리학적 관점뿐 아니라 생리학적 관점 에서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신체 활동 역시 바로 그 두 가지 관 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 많은 이들이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과 행복을 동일시한다. 즐거움과 만족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보는 것 이다. 반면 행복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행복을 자기 삶의 방향 에 얼마나 만족하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곤 한다. 이 관점에서 행복이란 끊임없이 즐거운 상태가 아니라 장기적인 목적의식을 가진 상태로 볼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이런 정의에 동의하고 꼭 행복해지고 싶다면, 역설적이게도 행복을 돌보지 않는 편이 낫다. 그렇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워라! 행복을 신경 쓰지 않을수록 행복을 찾을 가능성이 더 크다.
뇌는 다음 순간에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예측한다. 그리고 그 예측과 비교해서 현재의 경험을 이해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욕 실에 들어간다고 치자.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당신의 뇌는 이 미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 자신이 만나리라고 예상하 는 감각 인상을 떠올리는 쪽으로 활성화된다. 이제 욕실에 들어 가면, 뇌는 당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예측한 내용과 비교한다. 만일 뇌의 예측과 그 감각 인상이 일치하면 당신은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가 예측에서 벗어나면 욕실로 들어가던 행동을 중단할 것이다.
큰 사안에서든 사소한 행동에서든, 우리 삶의 매 순간에 이런 비교가 이뤄진다. 뇌는 현재의 경험을 자신의 예측과 비교한다. 2021년 봄 영국 노인들에게 신체 건강 상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비율이 전년도 조 사 때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20년은 팬데믹 이 한창이던 시기였으므로 건강이 좋아졌다고 볼 수 있는 근거 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추측할 만한 근거가 많았다. 영국에서 10만 명 이상이 코로나19로 사망했고, 의료 시스템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응급 환자 이외에 일반 환자는 평소처럼 진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더 건강해졌다고 느꼈을까? 한 가지 가능 한 설명은 이것이다. 코로나19와 환자들의 이야기를 날마다 접 하면서 건강함에 대한 기준이 낮아진 것이다. 코로나19로 중환 자실과 영안실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언론 보도가 연일 이 어지자 그들에게 허리나 무릎 통증, 두통 따위는 별것 아닌 문제 로 느껴졌다.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세상의 상황에 대한 뇌의 예 측(뇌는 예측과 비교해 현재 경험을 이해한다)이 바뀌자 건강에 대한 관점도 바뀐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경험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모든 경험 을 자신의 예측 및 기대치와 비교하도록 신경생물학적으로 설계 돼 있다. 

- 인간이 모든 경험을 기대치와 비교하도록 진화했다는 사실은 행복을 얻으려고 애써 노력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행복 감은 일시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기 부여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뇌는 신체와 외부 환경에서 오는 정보를 토대로 끊임없이 감정 상태를 수정한다. 앞서도 강조했듯이, 우 리가 늘 행복과 만족에 젖어 살 수 있도록 뇌가 긍정적 감정 상 태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은 뇌 입장에서 보면 바나나 하나로 남은 평생 배부름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설계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 는 그렇게 설계돼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 멋진 휴양지에서 일몰을 즐기는 행복하고 예쁜 사람들의 모습에 계속해서 노출되면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한 기대치가 비현실적 으로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세계가 그 기대치 와 일치하지 않으면 낙담하게 된다. 광고로 세뇌된, 행복에 대한 몹시 비현실적인 이미지는 우리에게 불행하다는 기분을 안겨줄 위험이 있다. 이는 단순히 추측이 아니다.
한 연구에서 피험자들이 행복을 찬양하는 글을 읽은 뒤 코미 디 영상을 시청했다. 그러자 이들은 행복을 언급하지 않은 글을 읽은 그룹보다 덜 즐거워했다. 그 이유를 추정해보자면 이렇다.
- 행복에 관한 글이 피험자들의 기대치를 높였고, 그러자 코미디 가 배꼽이 빠질 만큼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치가 생겨났다. 그런 데 기대한 만큼 재미가 없자 실망한 것이다. 기대가 높지 않으 면 기준이 낮아지므로 경험에서 얻는 만족이 기대치와 동등하 거나 기대치보다 높아진다. 따라서 그 경험을 더 긍정적으로 여 기게 된다.
해마다 광고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하는 나라일수록 2년 후 국 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더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에 따 르면 광고가 우리의 감정 상태에 대한 기대치를 비현실적으로 높여서 결과적으로 실망감과 불만족을 일으킨다고 유추할 수 있다. 우리가 보다 현실적인 기대치를 갖게 하는(그리고 정신적 행복 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광고 문구는 이것일지 모른다. '때로 울적해 도 괜찮아요.' 하지만 이 슬로건으로는 청량음료나 머스터드소 스, 주택보험을 별로 많이 팔지 못할 것이다.
인생에서 많은 일은 우리가 노력하는 양에 비례해 성공 확률 이 높아진다. 하지만 행복은 그렇지 않다. 잡으려고 쫓아가면 갈 수록 놓칠 가능성이 크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사람에게 내가 주고 싶은 조언은 이것이다. 그 모든 공허한 광고 메시지에 귀를 닫으라. 행복을 찬양하는 글과 책을 읽지 말라. 행복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유튜브 동영상도 멀리하라.

- 기억해야 할 열 가지 포인트
1. 우리는 생존자의 후손이다. 인간은 건강이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해왔다. 항상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목표다. 우리는 그렇게 설계돼 있지 않다.
2. 느낌은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다. 뇌는 신체 안에서 오는 정보와 외부에서 오는 정보를 결합해 느낌을 만들어낸다. 신체 내부의 상태는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 다 느낌이 형성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
3. 불안과 우울은 방어 기제일 때가 많다. 불안과 우울은 인간 본 성의 정상적인 일부이며, 우리가 고장 났거나 아프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격상 결함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4. 기억은 바뀐다.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충격적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기억이 조금씩 바뀌고 덜 두려워진다.
5. 수면 부족, 장기적 스트레스, 앉아 있는 생활 습관, 소셜 미디어 에 올라온 타인의 편집된 삶의 모습을 과도하게 접하는 것을 피 하라. 이 모든 것이 뇌에 모종의 신호를 보내는데, 뇌는 그 신호 를 위험이 다가온다거나 자신이 부족한 인간이라는 의미로 해 석할 위험이 있다. 그러면 뇌는 당신에게 움츠러들라고 명령하고 당신을 우울하게 한다.
6. 신체 활동은 우울과 불안을 예방해준다. 인간은 몸을 움직여야 하는 존재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에 도 게으름은 정상적인 것이다!
7. 외로움은 다양한 질병과 연결돼 있다. 그러나 작은 행동도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건강의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이들과 피상적 관계를 맺는 것보다 친밀한 소수와 진실한 관계를 유지 하는 것이 더 낫다.
8. 유전적 요인은 중요하다. 그러나 환경적 요인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유전적 인자를 갖고 있다는 것이 불가피한 운명을 의미한 다고 믿지 마라. 당신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뇌의 기능과 작동 에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9. 행복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워져라. 늘 행복하길 기대하는 것 은 정신적 소모도 크고 비현실적인 바람이다. 게다가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가 날 수 있다.
10.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조언은 이것이다. 당신의 정신 건강이 나쁘다고 생각되면 주저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라. 폐 렴이나 알레르기가 괴상한 병이 아니듯, 정신 질환도 마찬가지 다. 당신이 손만 뻗으면 도움을 줄 사람은 늘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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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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