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스타는 네 가지 관점에서 분류할 수 있어요.
우선 재료를 들여다보면, 가장 주요한 재료인 밀가루 이외에 메밀, 옥수수, 감자, 밤, 그 밖의 잡곡 등이 있어요. 특히 감자를 주재료로 만든 파스타 중에 유명한 것이 '뇨키'(반죽을 둥글게 빚어 버터와 치즈에 버무린 파스타 옮긴이)가 있지요.
두 번째로, 건조했는지 물기가 있는지에 따라 건조 파스타와 생파스타로 나뉩니다. 그런데 두 파스타는 각자 다른 종류의 밀가루를 사용한답니다. 건조 파스타는 경질 밀가루인 듀럼 세몰리나를 쓰고 반죽에 '달걀을 넣지 않는다'는 점이 생파스타와 다르지요. 생파스타는 빵이나 일본의 가락국수와 마찬가지로 연질 밀가루(보통 밀가루)를 씁니다.
세 번째로 형태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긴 파스타'와 짧은 파스타' 그리고 파스타 반죽 피 한 장 한 장마다 속을 넣어 감싼 '만두 파스타"입니다.
마지막으로 조리법에 따라서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반 파스타는 이탈리아에서 '파스타 아시우타'라고 부르지요. 파스타를 삶아서 물기를 뺀 다음. 미리 준비한 소스를 없는 조리법입니다. 그것 말고도 이른바 수프 파스타(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 인 브로도'pasta in brodo라고 합니다.)가 있는데. 삶은 파스타를 고기나 야채브로도(수프)에 넣어 만드는 방식입니다. 또한 파스타 알 포르노는 우선 반쯤 삶아서 물기를 빼고 식혀 놓은 파스타에 소스를 얹은 다음 오븐에 넣어 구워 낸 것인데요. 라자냐 등이 대표적입니다.
- 로마 제국은 건축이나 법률, 국교로 삼은 기독교. 달력 등 서양 문명의 초석이 되는 많은 것을 남겼는데, 파스타의 원형도 그러한 유산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고대 로마에는 진짜 파스타, 그러니까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파스타가 있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밀반죽'(이것도 이탈리아어로는 파스타라고 부르기는 합니다만)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직접 굽든가 튀겨서 먹었을 뿐이니까요. 다시 말해 '물과 결합하는' 조리 단계인 삶거나 찌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죽이 수분을 담쑥 머금고 있어야만 식감이 부드러워지고 소스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일이 가능해진답니다.
- 밀이나 잡곡은 계속 중요한 음식 재료였지만, 게르만족의 침입과 몇 번이나 되풀이되는 전란으로 인해 밀밭을 비롯한 농지가 심하게 황페해지고 말았지요. 기원후 1000년을 넘을 무렵부터 농업이 부활하지만 신분제 사회인 중세에서는 초기 몇백 년 동안 부유층만 밀가루 빵을 먹었을 뿐. 하층민은 기껏해야 스펠트 밀(근대 밀의 전신으로 중부 유럽 등에 잔존하는 곡물-옮긴이). 보리. 귀리. 조, 피, 수수 같은 잡곡으로 빵을 만들든지 미네스트라(채소나 콩. 고기 등을 넣은 수프)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밀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반죽한 것을 빵 이외의 요리로 먹는 일. 다시 말해 오늘날의 파스타처럼 만들어 먹는 일은 게르만이 통치하던 오랜 기간 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당시 상황은 거의 사료로 남아 있지 않아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볼 수 있을겁니다. 파스타는 고도의 문명이 낳은 결실이며. 로마 문명이 망하고 게르만족이 지배를 시작하던 시대에 파스타는 퍼져 나갈 수 없었다고 말이지요. 실제로 파스타는 고전 문화가 부흥하고 '12세기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문화 운동이 일어난 시기에 부활했습니다.
- 파스타의 부활
오랫동안 파스타가 부재한 시기를 지나 이탈리아에서 파스타가 부활했다는 증거가 13세기 말에 파르마 출신 수도사 프라 살림베네가 쓴 연대기에 나타납니다. 이 책에서 프라 살림베네는 탁발 수도사 조반니 다 라벤나가 접시에
코를 박고 치즈를 얹은 라자냐를 아아귀 먹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그 앞부분에서는 색다른 라비올리(얇은 사각형 반죽 두장 사이에 소를 넣은 파스타)에 대해 희희낙락하며 수다를 늘어놓습니다.
프라 살림베네의 연대기와 함께 주목해야 할 증언이 또하나 있습니다. 14세기 중반 토스카나 지방에서 쓰인 요리책에는 라자냐 만드는 방법이 나옵니다. "하얀 밀가루로 만든 반죽을 얇고 넓게 펴서 말려 거세한 수닭 또는 다른 동물의 비계를 삶은 국물(브로도)에 넣고 끓인 다음 접시에 담고 지방분이 많은 치즈를 뿌려서 먹는다"고 쓰여 있지요.
더 거슬러 올라가 13세기 말~14세기 초에 나폴리에서 나온 또 다른 요리 책에도 라자냐가 나옵니다. 여기에는 "얇은 반죽을 손가락 세 개 정도 되는 폭으로 네모지게 잘라 끓는 물에 삶은 다음, 층층이 겹쳐 놓고 치즈를 충분히(향신료도 취향대로) 뿌려서 먹는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런 음식은 오늘날의 라자냐라기보다는 마치 중국식 완탕 같습니다.
14세기에는 만두 파스타의 일종인 토르텔리또는 토르텔리니(반죽 한 장에 소를 넣어 감싼 반원형 과스타)를 만드는 방법이 쓰여 있는 요리책도 몇 권 있는데. 거기에 나온 요리법은 오늘날과 거의 비슷합니다.
역사의 어둠을 뚫고 재등장한 파스타는 이미 로마 시대와 같이 튀기거나 굽는 것이 아니라, 우유나 닭고기 수프에 넣고 끓이는(삶는) 것이 되었지요. 한마디로 물에 경고 조리한 '파스타'가 등장한 것입니다. 나아가 '치즈'와 만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파스타를 치즈와 함께 먹으면 영양학적으로도 뛰어난 음식이 되지요. 치즈를 넣음으로써 파스타는 이탈리아 요리로서 눈부신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수있습니다.
- 10~12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연이어 탄생한 생파스타와 건조 파스타는 애초부터 부드러운 연질밀로 만든 '북쪽' 생파스타와 경질밀로 만든 남쪽' 건조 파스타라는 식으로 지역이 나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런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북이탈리아에는 라자냐, 카넬로니(주로 다진 고기나 치즈로 속을 채워 굽는 원통형 파스타-옮긴이) 라비올리, 탈리아텔레 납작한끈모양 파스타-옮긴이) 같은 수타 파스타가 지금도 많습니다. 특히 볼로의 수타파스타는 유명하지요. 이와 대조적으로 남이탈리아에는 스파게티와 마카로니 같은 건조 파스타가 많습니다.
- 중세에는 오랫동안 마케로니'가 모든 형태의 파스타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때로는 뇨키도 마케로니라고 불렀지요. 그러나 남이탈리아 사료에 나오는 마케로니는 긴 파스타든 짧은 파스타든, 구멍이 뚫린 것이든 구멍이 없는 것이든, 한결같이 건조 파스타였습니다.
그 후 경질밀로 만든 건조 파스타는 남이탈리아, 특히 나폴리의 특산품으로 이름을 떨쳤고, 이탈리아 전체, 아니, 유럽전역으로 파고들어 가면서 좀 더 손쉽게 생산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상품용 파스타는 나무통에 밀가루와 물을 넣고 한사람이 공중에 매달아 놓은
줄을 잡고서 균형을 유지하며 발로 밟아 반죽을 만들었습니다. 좀거칠어 보이는 방식이었지요.
16세기 말사람의 노동력이나 수력, 동물의 힘으로 움직이는 반죽기계인 그라몰라와 눌러서 국수를 뽑아내는 압착기 토르키오가 파리와 나폴리에 등장했고 점차개량을 거듭했습니다.
19세기 후반이 되어야 증기나 전기를 사용하지만 나폴리의 파스타업자는 대체로 17세기 이후부터 파스타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 요새는 이탈리아인뿐 아니라 대부분이 '알덴테'(너무 익히지 않고 적당히 씹는 맛이 있게 삶는것-옮긴이)를 좋아하지요.(다만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부드러운 쪽을 더 좋아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15~16세기의 파스타는 푹 삶아 냈다 싶을 정도라야 했습니다. 마르티노는 '시칠리아의 마케로니'를 "두 시간 삶을 것"이라고 했고. 다른 요리책들도 파스타는 삼십 분에서 두 시간 정도 삶으라고 지시하지요. 끈기가 있으면서 부드럽고도 흐물거리지
않는 식감을 좋아했던 듯합니다.
그러면 알덴테'는 언제 탄생했을까요? 방대한 요리책을 저술한 바르톨로메오 스카피가 1570년에 남긴 요리법을 보면 여전히 면을 삶는 시간이 입니다. 그런데 17세기 초반, 그의 요리법을 좀 더 단순화하려던 아마추어 요리사 조반니 델 투르코는 다음과 같이 탱탱한 면발을 권합니다. "마케로니를 너무 오래 삶지 않는 것이 좋다. 삶고 나서는 곧바로 냉수에 행구어야 마케로니가 쫄깃해진다."
- 오늘날에는 파스타에 맛을 내기 위해 토마토소스, 미트 소스, 마늘, 고추와 올리브유 등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지요. 물론 각종 향신료, 치즈, 버터, 우유, 포도주, 야채. 버섯, 고기, 어패류. 때로는 과일까지 다각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각각의 재료는 맛과 식감, 모양 등 파스타의 결이나 형태와 어우러져 맛을 더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맛 내는 방법이 다양해진 것은 아주 최근이랍니다
중세부터 근래까지 파스타는 기본적으로 어떻게 양념했을까요? 맨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넣고 국수만 먹었던 것 같습니다. 고기(거세한 수닭 등) 브로도나 아몬드 밀크에 넣고 오랜 시간 삶기 때문에 그런 대로 맛이 났던 것이지요.(수단을 거세하는 이유는 근섬유가 가늘어져 육질이 좋아지고 지방이 많아져 맛있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때 파스타에 국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콩소메, 즉 브로도 리스트레토나 육수를 넣었습니다. 브로도나 아몬드 밀크에 잘고 가는 파스타를 넣어서 만든 수프 파스타는 졸아붙어 죽비슷한 것이 되었지요. 오늘날 일반화된 파스타 아시우타는 점차 인기를 얻어 갔습니다. 수프방식으로 만드는 파스타는 18세기를 지나서까지도 계속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 폴렌타는 물이나 수프에 곡물 가루를 넣고 오랜시간 푹 익힌 다음 휘저으면서 걸쭉하게 끓이는 요리입니다
회색 폴렌타는 중세 이래 수수로 만든 고운 노란색 폴렌타와 쌍벽을 이루었고, 또 다른 노란색 폴렌타인 옥수수 폴렌타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북이탈리아의 전형적인 요리였습니다. 이탈리아의 국민 작가 알레산드로 만초니가 17세기를 배경으로 쓴 약혼자들(1827)이라는 소설을 보면 굵주림으로 고통 받는
가난한 토니오의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의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은 오로지 회색 폴렌타뿐입니다. 큰 접시에 그득하게 담긴 폴렌타는 보통 한가운데를 파내고 버터를 녹인 다음 가장자리부터 먹었습니다
- 채소 먹보에서 파스타 먹보로
15세기 후반에서 17세기까지 스페인이 지배하는 나폴리 왕국 수도에서는 사람들이 만자폴리아, 즉 채소 먹보라고 불릴 정도로 브로콜리나 양배추 등 잎채소를 많이 먹었습니다. 16세기 말 귀족출신의 은행가, 지식인. 미술 수집가로 알려진 빈첸초 주스티니아니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나폴리 사람은 대체로 잎채소. 브로콜리, 과일을 대량으로 정신없이 무한정 먹었다고 합니다.
일반 양배추 이외에도 브로콜리, 꽃양배추, 방울양배추, 사보이양배추. 적양배추 같은 다양한 종류의 양배추를 밭마다 재배했습니다. 사람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이런 채소를 먹었을 뿐 아니라, 삶은 양배추에 소금이나 후추, 올리브유 약간에 레몬 즙만 넣고서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렇게 일 년 내내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할 것 없이 매일같이 양배추를 식탁에 울렸다고 합니다. 물론 나폴리 사람들이 양배추만 먹은 것은 아니고 육류도 상당량 소비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리 사람들은 채소에 고기를 곁들인 오랜 식생활에서 파스타 중심의 식생활로 옮아갔습니다. 실제로 베르미첼리' (스파게티)가 나폴리의 일상 음식으로 뿌리 내린 것은 마사니엘로의 반란이 일어난 1647년 이후였습니다. 그때부터 나폴리 사람은 만자마케로니, 즉 마케로니 먹보가 되었습니다. 앞
에서 말했지만, 이 마케로니는 지금의 마카로니가 아니라 파스타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가난한 민중도 겨우 먹을 수 있게 된 파스타가 주식 메뉴로 승격해 간 것이지요. 그리하여 파스타는 이탈리아 각지. 그리고 유럽 각국으로 수출되기에 이릅니다.
- 아무튼 중세 시칠리아와 베네치아에서 시작되었다고는 해도,근대파스타 보급에는 나폴리와 나폴리 문화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18세기부터 나폴리에서는 노점이나 포장마차에서 큰 냄비를 걸고 파스타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른바 최초의 길거리 음식이라고 해야겠지요. 나폴리 사람들은 처음에 아무 양념도 하지 않은 면에 후추와 치즈가루만 뿌려 손가락 끝으로 솜씨 좋게 둘둘 말아 먹었습니다.파스타 가게 옆에는 갈아 놓은치즈가늘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요.1787년 5월 29일, 문호 괴테는 이탈리아기행에서 나폴리에가보니 어디서나 모든 종류의 마케로니를 싼값에 사먹을수 있었다고 써놓았습니다.
- 밀대신잡곡
고대 로마에서 유래한 것 가운데 곡물을 대표하는 것이 밀이었지만, 북유럽의 척박한 풍토에서는 밀을 안정적으로 충분히 수확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7~10세기에 걸쳐, 예전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잡곡(보리, 리,스펠트 밀.보리.피.수수.조기장 등)을밀 대신 재배했지요.
북방은 물론 비교적 기후 조건이 양호했던 남이탈리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잡곡 재배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숨어 있었지요. 중세 초기 이탈리아는 랑고바르드를 비롯한 게르만족의 지배를 받아 경작지가 갑자기 줄어들고 황량한 땅, 숲, 목장, 늪지가 늘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농업이 전반적으로 후퇴하면서 집약적 노동을 요구하는 밀 재배도 쇠퇴했지요. 그 대신 엄혹한 기후나 비옥하지 않은 토양에도 굴하지 않는 잡곡을 재배하면서 북방에서
건너온 귀리를 비롯해 잡곡은 대다수 사람들의 주식이 되었습니다.
특히 북이탈리아 포 강 유역에서는 잡곡이 광대한 초원처럼 자라고 있었지요. 중세 전성기부터 후기 중세까지 삼림 벌채 및 개간과 간척이 진행되면서 밀 재배가 증가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 서민의 식생활은 잡곡 위주의 곡물 중심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밀을 대신하는 잡곡은 대부분 빵으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농촌에서는 밀로만 만든 흰 빵보다는 호밀, 보리. 귀리 등을 섞은 빵(검은 빵)을 주로 먹었지요. 잡곡은 빵으로 만드는 것 외에도 미네스트라, 추파zuppa(수프), 데코티(약), 파파(토마토, 바실리코,올리브유 등을 첨가한 빵 죽)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밀을 먹을수 있었던 귀족과는 달리, 농민은 콩류와 더불어 귀족이 천한 음식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은 잡곡을 일상적으로 먹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식생활이야말로 길게 보면 이탈리아를 파스타의 나라로 만든 공신이라 할 것입니다.
- 파스타와 미네스트라는 친척 관계이거나 파스타가 미네스트라에 속하는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물론 현대 이탈리아 요리체계에서는 미네스트라와 파스타를 다른 요리로 분류하지만, 코스 요리를 짤 때는 둘 다 전체 다음에 오는 첫 번째 요리'라는 점에서 친구사이입니다. 또한 그 들은 곡류와 채소로 만든다는 점, 기름보다는 물(탕)과 어우러진다는 점, 두 번째 요리인 고기나 생선 요리보다 저럼하고 서민적인 요리라는 점, 목 넘김이 좋고 먹기 편하며 소화도 잘되고 영양가도 높다는 점도 공통적입니다
근대 이전에는 오늘날에 비해 파스타를 대단히 부드럽게 삶아서 먹었고. 다 삶은 후에도 수분이 없어지지 않도록 수프나 브로도를 넣었습니다. 더구나 삶은 국물과 함께 나오는 일종의 파스타 인 브로도(수프 파스타)가 주류였습니다. 파스타를 건더기라고 생각하면. 파스타인 브로도는 바로 미네스트라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두 요리의 연속성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합니다.
중세에 등장한 파스타는 근대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으로 보급되었지요. 그러나 '원래의 파스타 라고 할 만한 것은 휠씬 이전부터 퍼져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혼합 빵과 더불어 민중이 주로 먹었던 수프. 즉 잡곡, 콩류, 채소 중심의 걸쭉한 수프(미네스트라)가 어떤 의미에서는 파스타의 선구자였던 것입니다.
잡곡이나 채소 미네스트라는 영주나 귀족에 비해 신분도 낮고 식생활도 빈곤했던 중세 이탈리아의 농민들이 보양식으로 고안한 음식이었습니다. 농민들이 이웃 사람이나 친척. 나그네로부터 '파스타' 라는 음식을 전해 듣고 만들어 먹으려고 했을 때. 그때까지 일상적으로 먹던 미네스트라'와 공통 요소가 많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맛이 조화롭고 씹는 느낌이 월등하게 좋은 파스타를 망설임 없이 환영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향은 농민뿐만 아니라
12세기 이후 도시의 일반 시민들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파스타는 이탈리아 민중에 의해 퍼져 나간 것입니다. 물론 머지않아 파스타의 맛을 알게 된 귀족도 궁정 요리 메뉴에 파스타를 올리기 시작하지만요.
- 원래 신분 사회인 중세에는 계급에 따라 먹는 음식도 달라졌습니다. 농민은 잡곡, 콩류, 채소, 치즈 같은 유제품을 주식으로 먹은 데 비해, 귀족은 비천한' 음식은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육류(와 흰 빵)를 배불리 먹는 지위를 누렸지요. 그러나 아직 '요리 기술'이 세련되거나 요리가 그다지 다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세 말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교황이나 왕후의 궁정에서는 요리사가 두드러지게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갖가지 요리법이 나왔습니다. 또한 농민의 주식을 아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고급 요리로 탈바꿈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대에 걸쳐 왕성하게 일어났습니다.
- 중세 말기로가면, 수많은 소규모 도시국가들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 반도가 15~16세기에 도시국가들의 집합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오늘날의 영역 국가로 바뀌어 갔고, 코무네가 시뇨리아(군주제)에 자리를 내주는 식으로 정치 체제도 변화했습니다.
군주들이 황제나 교황으로부터 봉건적 칭호를 하사받으면 정식으로 군주국'이 됩니다.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 만토바의 곤차가 가문, 페라라의 에스테 가문.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등이 군주가 되었지요. 그들 군주국의 중심 도시에는 으리으리한 궁정이 들어서고 그곳에 신하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교황의 궁정도 역할은 같았지요. 궁정은 당시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었고, 이곳으
로 예술가나 학자를 불러들였습니다.
이러한 군주들은 후견인'이 되어 학자나 예술가를 보호했습니다. 그결과. 세계와 역사의 중심에 인간을 두는 학문. 그리고 언어 문헌학과 시민 도덕을 융합하는 운동인 인문주의가 꽃을 피웠습니다. 예술 분야에서도 신이 아닌 인간 중심의 예술이 홍성했지요. 이런 흐름에는 고전 시대의 문헌 및 문화의 재발견. 과학과 기술의 일대 진보도 한몫 했습니다.
- 민중은 일품요리로 끼니를 때운데 반해, 귀족은 코스 메뉴 중 하나로 파스타 요리를 먹는 것이 이시대의 새로운 조류였습니다. 현재 이탈리아 요리의 코스인 안티파스토(전채 요리), 프리모 피아토(첫 번째 요리), 세콘도 피
아토(두 번째 요리), 돌체(후식)는 19세기 중반 이후에 정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부터 바로크 시대까지는 연회에 궁정 요리사와 스칼코가 넘쳐날 정도로 호화로운 코스요리를 기획해 차려 냈습니다.
당시 코스 요리는 한 사람씩 정해진 요리를 순서대로 내는 오늘날과는 달리, 모든 사람을 위해 한꺼번에 많은 요리를 식탁에 늘어놓는 방식이었습니다. 다종다양한 요리 접시가 식품 보존실 요리'(전채, 셀러드. 후식 등 차가운 요리)와 '조리실 요리'(고기나 생선의 구이, 조림. 튀김)로 나뉘어 차례차레 실려 나왔는데. 그것도 몇 차례나 계속해서 제공되었던 것입니다.
- 파스타의 모양과 이름
파스타의 모양은 무수하게 많고 지역에 따라 특색이 있지요. 또한 어우러지는 소스와 파스타 모양 사이에는 떼려야 멜 수 없는 궁합이 존재한다는 것쯤, 웬만큼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당연한 일이겠지요. 물론 요즘에는 공업 디자인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진 건조파스타가 숱하게 팔리고 있습니다만.
덧붙여 파스타의 이름도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어원이 밝혀지지 않은 것도 많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파스타가 각 지방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름에 대한 애착도 놀랄 만큼 강하답니다. 예를 들어 피치(토스카나), 움브리첼리(움브리아), 스트로차프레티(로마냐), 비골리(네토. 륨바르디아) 등은 굵은 파스타로 모양이 거의 비슷하지만, 각 지방에서 다른 이름은 절대로 통용되지 않습니다. 나폴리 사람은 스파게티를 베르미첼리라고 부릅니다. 리구리아에서는 탈리아텔레를 피카제라고 부르는데, 다른 곳에서는 페투치네, 스트라차무스, 라자네테, 로잔게 등으로 불립니다.
똑같은 파스타인데도 이름이 다르면 다른 요리를 먹는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요? 그래서 어떤 이름을 가진 파스타를 먹는가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똑같은 파스타라해도 이름은 지역 주민의 생활이나 기억과 깊이 관련이 있는 까닭에 억지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 지중해식 식사
1960년대 이후, 특히 1980년대 이후에 지중해식 식사'라는 것이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현대 사회의 부작용이라 할만한 생활습관병을 예방하는 데 지중해식 식사'가 효과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일이 점점 더 늘고 있지요. 세계 각지의 과학자들이 그 효과를 증명하고자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 식사의 특징은 에너지원의 우세한 부분을 식물로부터 섭취하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곡물과 곡물의 파생물을 중시합니다. 그러니까 빵, 파스타, 폴렌타 등을 주로 먹으면서 거기에 종종 채소나 콩류, 과일, 식물성 기름을 첨가합니다.
고기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고기의 비중은 낮습니다. 지중해식 식사와 이탈리아 요리가 건강에 무척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린 것은 미국의 로세토 마을'입니다. 펜실베이니아 주의 작은 공동체인 로세토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곳 주민은 전부 이탈리아. 그것도 풀리아의 로세토 발포르토레 출신이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온 그들은 삼대 넘게 고향의 식생활을 지켰던 것입니다.
오클라호마 대학 연구 팀은 조사를 통해 주변 지역의 주민들과 달리 로세토 주민들의 심장병 발병율이 낮다는 것을(1960년대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90~95세나 되는 노인이 많았고, 다들 뚱뚱하기는 해도 의사가 필요 없는 건강체였습니다. 그 원인에 대헤 갖가지 가설이 나왔지만, 식습관밖에는 일관된 설명을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적포도주, 스파게티. 피망, 그리고 올리브유를 사용하는 것이 로세토 주민들의 기본적인 요리법이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에는이 마을에서도 젊은 세대가 부모나 조부모의 식습관을 버리고 미국풍 식사로 돌아서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동맥과 관련한 병에 걸렸지요. 이것이 이탈리아 전통 요리가 건강에 좋다는 효과를 더욱 확실하게 증명하는 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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