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치른 전쟁 비용을 모두 합치면 무려 8조 달러에 달했다. 브라운대학교의 '전쟁 비용 프로젝트가 추산한 금액이다. 그중 상당 부분이 국방부 계약업체로 직접 흘러들어갔다. '빅5' 방산업체인 록히드 마틴Rockheed Martin, 레이시온 Raytheon(현 RTX).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노스럽 그러먼Norhrop Grumman은 9.11 이후 20년 동안 국방부 계약으로 2조 1000 억 달러를 챙겼다. 이러한 탕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25 회계 연도 국방부 예산은 8950억 달러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이 속도라면 트럼프의 공언대로 머지않아 1조 달러에 도달할 것이다.
매년 국방부에 투입되는 예산은 국토안보부, 재향군인청, 국무부, 법무부, 상무부, 교육부, 노동부 예산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다.
만약 같은 돈을 미국 내 필요에 썼다면 미국 사회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변했을 것이다. 정부에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거듭 말하곤 하는 큰 변화들을 이률 수 있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에 쏟아부은 8조 달러는 미국 전력망 전체를 탈탄소화(비용 약 4조 5000억 달러)하고도 남을 금액이다. 전력망 탈탄소화는 기후변화를 막는 싸움에서 큰 진척이 될 수 있다. 남은 돈으로 학자금 대출 전액(1조 7000억 달러) 을 탕감해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10년간 친환경 에너지 투자와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바이든 행정부가 계획한 규모의 4배(1조 4000 억 달러)로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8조 달러는 이미 21세기의 전쟁에 쓰였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미국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 군수업체들의 영향력은 의회를 휠씬 넘어선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 군사 기술 부문을 옹호하는 인물이 머스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의 스티븐 파인버그 부장관은 총기와 방위산업에 투자해 온 이력을 가진 투자사 서버러스 캐피털에서 일했다. 또 안두릴의 마이클 오버돌 이사는 육군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블룸버그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피터 틸과 관련된 12명 이상의 사람들, 즉 그의 회사 현직 및 전직 직원. 그의 재산 관리를 도왔거나 그의 투자 및 자선 기부로 혜택을 본 사람들이 트럼프 행정부에 합류했다"라
고한다.
부통령 J. D. 밴스는 사실상 팔란티어 창업자 피터 틸에게 자신의 정치 경력을 빛지고 있다. 틸은 밴스를 후원하는 기술 거물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CBS 뉴스의 분석에 따르면 "밴스는 전국 정치 무대에서 비교적 신예임에도 불구하고 애팔래치아 지역의 절망과 마약. 세대 간 빈곤을 다룬 베스트셀러 회고록 작가에서 대통령직에 단 한 발짝 떨어진 자리까지 오르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승을 위해 억만장자들과 실리콘밸리 거물들에게 꾸준히 구애해왔다." 보수 성향 일간지 <뉴욕 포스트>는 <실리콘밸리, 밴스 지명을 환영하며 더 많은 기술 억만장자 들이 트럼프를 지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 상황을 요약했다. 한편 팔란티어 입장에서 보면 밴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부 관리들을 자사 뜻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캠페인의 일환일 뿐이다. 다른 예를 들면, 팔란티어는 2024년 8월 큰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다. 중국 공산당 활동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고위 의회 특별위원회를 이끌었던 전 하원 의원 마이크 갤러거Mike Gallagher가 팔란티어에 합류해 방위 사업을 총괄하게 된 것이다.
팔란티어 경영진은 자사 무기가 가자지구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보려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예를 들어 피터 틸은 2024년 5월 자사의 AI 프로그램이 가자지구 내 폭격 목표를 선정하는 데 사용된 사실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틸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아시다시피 나는 이스라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부 사항을 다 알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판단을 존중하니까요. 우리가 이스라엘을 의심할 일은 아니죠. 이스라엘군은 대체로 옳으니까요."
- 특수 이익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미국의 예산과 정책을 좌우하려 하는 데 대해 아이젠하워는 이렇게 말했다.
"거대한 군사 체제와 방대한 군수산업의 결합은 미국 역사상 새로운 경험입니다. 그 총체적 영향은(경제, 정치, 심지어 정신에 미치는 영향까지) 모든 도시, 모든 주 의사당 연방 정부의 모든 사무실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노동, 자원, 생계가 모두 얽혀 있으며, 우리 사회의 구조 자체도 얽혀 있습니다."2
이 새로운 체제를 아이젠하워는 '군산복합체 military-industial complex'라고
명명했다. 그는 제복을 입은 군과 군수산업이 협력해 대중 전체나 국가의 실제 안보 필요를 희생시키면서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확대하는 현상을 지칭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아이젠하워가 처음에는 이를 ' 군대산업의회복합체military-industrial-congressional complex'라고 부르려 했는지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그렇게 했다면 이는 선거 자금, 군수산업 내 미래 일자리, 그리고 지역 내 군 관련 일자리를 얻는 대가로 국방부와 군수업체의 재정적 지위를 강화해주는 의회 구성원의 역할을 포착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젠하워가 의회의 역할을 고려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의회가 군수 로비의 핵심 행위자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군사 시설의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논리의 진위
그러나 1950년대에는 중요했을지라도 오늘날의 경제 환경에서는 군사 지출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군사 자금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주들은 흔히 빈곤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다고 시민 단체 정부감시프로젝트에서 활동하는 미리엄 펨버턴Miriam Pemberton은 비교 결과를 제시했다. 펨버턴은 국방부 지출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의존에서 탈피해 민간 수요에 대한 투자를 포함해 더 균형 잡힌 접근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군사 지출이 지역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 혜택이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집중되었거나, 오히려 건전하고 다변화된 경제 기반을 구축하는 데 방해물이 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 기본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그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원인 재량 예산의 최대 몫을 펜타곤이 집어삼키는 상황에서조차, 군 지출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경제적 이익이라는 주장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2023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군사 지원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회의적인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펜타곤 지출이 독보적으로 가치 있는 일자리와 소득의 원천이라는 신화를 들먹이며 이 지원 패키지를 관철했다. 그러나 "국방 지출은 경제에 좋다"라는 주장에 예산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미국의 번영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 이로 인해 미래 산업이 뒷전으로 밀리고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부터 자금이 빼돌려지는 양상이 고착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펜타곤 예산을 국내 프로그램으로 돌리는 것이 미국의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 같은 해법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우선
그런 전환을 이루는 일은 거대한 정치적 과제가 될 것이다. 또한 전환된 자금은 모든 수준의 정부, 특정 문제 해결을 위해 연방 자금을 지원받는 기업 계약자, 비영리 단체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집행되어야 한다. 게다가 펜타곤 예산을 절반으로 줄인다 해도 미국 내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모든 필요를 해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 우선순위의 변화뿐 아니라 연방 세입 증대, 정부 대출과 보조금 지출의 낭비, 사기, 남용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현재 전쟁 계획에 쏠리는 것과 같은 관심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문제는 단순히 돈이 아니다. 대중과 정부 관리들이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고 무엇을 계획하느냐가 문제다.
- 우리가 인터뷰한 로비회사 중 한 곳은 소규모 신생 펜타곤 군수업체들을 대변했는데. 이들은 국방부 회전문 인사에서 가장 큰 문제는 대형 방산업체들이 조달 담당자들을 채용하는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한 로비스트는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조달 담당관들은 국방부에 있을 때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고, 이후에는 자신이 직접 작성했던 바로 그 계약의 입찰서를 쓰는 업체로 옮겨갑니다." 대형 업체들은 이런 전직 조달 담당자들을 너무 많이 고용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이나 더 나은 제품을 개발했지만 회전문 인사에는 투자하지 않은 소규모 업체들이 참여하기에는 조달 과정이 불리하게 돌아간다. 그 결과 미군에는 혁신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들어선다.
정부회계감사원은 회전문을 통해 옮겨간 전직 조달 담당자 외에도 전직 장군과 제독 75명이 상위 14개 펜타곤 군수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국방부 최고위직에서 회전문 인사가 획씨 더 빠르게 돌아간다는 증거도 있다. 2018년 6월부터 2023년 7월 사이에 전 열한 미군 4성 장군 32명의 행적을 보자. 그들 중 80% 이상이 방위신 업계로 옮겨 이사회 구성원, 고문, 임원, 컨설턴트, 로비스트, 또는 방위산업에 투자하는 금융기관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회전문 인사는 양방향으로 작동한다. 방위산업계 임원들과 이사회 구성원들이 흔히 국방부 고위직에 발탁되곤 한다.
- 아이젠하워가 미국 국내 요인이 군산복합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예언자처럼 짚어 보였지만, 그는 군산복합체의 핵심 동맹을 언급하지 않았다. 바로 미국의 군사주의로부터 이익을 얻는 외국 국가들이다. 펜타곤 군수업체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뜻대로 미국의 대외 정책을 움직이려는 외국 정부들은 매년 수억 달러를 미국 내 로비와 홍보에 쏟아붓는다. 많은 경우 이러한 활동의 목표는 펜타곤 군수업체를 위해 일하는 로비스트들의 목표와 동일하다
그래서 펜타곤 군수업체 로비스트들이 의회를 찾아가 무기 판매나 해외 군사 지원을 요구할 때, 그들이 두드리는 문은 이미 해당 무기의 수혜 대상인 바로 그 외국 정부를 대신해 활동하는 로비스트들이 먼저 발로 차 열어놓은 문인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으로 외국 정부의 로비 스트들은 군산복합체와 보조를 맞추어 활동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특히 무기 판매나 해외 미군 기지 유치를 요구할 때 두드러진다. 더 일 반적으로는 미국이 사실상 그들의 안보를 지원해주도록 부추긴다. 그 지원이 장기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할지 아닐지는 부차적이다
- 군산복합체와 외국 동맹의 로비는 미국의 거의 모든 대외 정책 문제 (심지어 일부 국내 문제까지)에 대해 군사적 해법을 선호하도록 몰아온 것이 분명하다. 이는 자기 영속 시스템으로, 여기에 참여하려는 이들에게 재정적 보상을 안겨준다. 또한 전 세계 공공에 적을 상정하거나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한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적은 아닐 수 있지만 이 체계가 만들어낸 막대한 예산을 정당화하려면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위협이 존재해야 한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전투 병력의 필요보다는 펜타곤 군수업체 주주들 이익을 채워주기 위한 낭비성 지출로 가득 찬 방대한 국방부 예산으로 이어졌다
상위 펜타곤 군수업체들의 로비와 영향력 행사 활동은 또한 군의 혁신에 막대한 걸림돌이 되었다. 2014년 스페이스X가 공군 계약을 따내기 위해 사실상 소송까지 제기해야 했던 사례가 그 증거다. 당시 스페이스X 창립자 일론 머스크는 이 장애의 상당 부분이 '회전문 인사' 때 문이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아마 자신들이 미래에 일자리를 얻지 못할 회사에 계약을 주라고 요청하는 셈이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그들의 친구들이 있는 회사다. 우리와 계약하려면 그들은 친구들과 미래 은퇴 프로그램으로부터 등을 돌려야 한다. 이런 일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머스크와 스페이스X는 결국 제도적 관성을 뚫어 냈고, 2024년에는 전 세계 궤도 탑재체의 87% 이상을 우주로 실어나르게 되었다.
- 1980년은 학문적이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 싱크탱크의 모델이 뒤집힌 해라고 할 수 있다. 그해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정치적 옹호 활동으로 결정적 전환을 선도했다. 이 재단은 진보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에 대응하는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로 여겨졌다. 헤리티지재단은 그해 리더십을 위한 명령Mandate for Leadership이라는 11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자를 발간하면서 전환에 나섰다. 이 보고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선인의 행정부에 2000개에 달하는 권고안을 제시했으며, "정부의 닳아빠진 뉴딜식 옷깃을 붙잡아 지난 48 년간 쌓인 진보 정책을 털어내는 청사진"을 자처했다. 이 보고서가 레이건 행정부에 끼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헤리티지 재단 집계에 따르면, 레이건은 이 권고안의 60%를 실행하거나 최소한 실행을 시도했으며, 심지어 의회 대상 국정 연설에서 이 싱크탱크의 자료를 거의 그대로 낭독하기도 했다. <리더십을 위한 명령>은 이후 헤 리티지재단의 <2025년 대통령 교체 프로젝트2025 Presidential Transition Project 또는 약칭 <프로젝트 2025 Project 2025>로 이어졌는데, 이는 사실상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위한 실행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리더십을 위한 명령> 발간 이후 45년이 지난 오늘날 싱크탱크 부문은 점점 더 당파적이고, 정치 활동에 적극적이며, 특정 이해관계 집단의 자금에 의존하는 성격을 띠게 되었다. 많은 싱크탱크가 노골적으로 당파성을 드러내는데, 좌파 성향의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 CAP와 우파 성향의 헤리티지재단이 대표적이다. 또한 미국진보 센터와 헤리티지재단 모두 그렇듯이 별도의 501(c)(4) 조직을 설립해 자신들의 정치적 의도를 공식화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런 조직은 정치 후보를 지지하거나 정치 광고를 집행하고, 풀뿌리 조직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
- 존스홉킨스대학교는 단연코 국방부의 후원을 가장 많이 받는 대학으로, 매년 10억 달러 이상을 군사 연구개발 자금으로 수주하고 사실 국방부 자금을 특정 목적에 대해 지원받아 연구센터를 처음으로 설립한 대학이 존스홉킨스대학교였다. 그런 점에서 존스홉킨스대학교는 오늘날 군산복합체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은 학계와 군대 간 관계를 개척한 유착 선구자라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과학자들을 전쟁 수행에 동원하고자 하는 흐름이 폭넓게 전개되었고,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응용물리학연구소Applied Physics Laboratory., APL는 그 속에서 설립되었다. 이후 이 연구소는 국방부를 위한 연구개발에서 중추 역할을 담당해왔는데, 활동 영역은 냉전이 절정이던 시기에 논란이 많았던 퍼싱 핵미사일 시스템 시험을 위한 기술 지원 제공에서부터 1991년 걸프전에서 대거 사용된 토마호크Tomahawk 미사일의 정확도 개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 셰일스는 또한 국방부 홍보전의 목적. 즉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배한 기억을 지우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조지 부시와 다른 이들은 이번 전쟁을 끊임없이 베트남전쟁과 비교한다. 특히 '또 다른 베트남전쟁은 아니다'라는 점에서 말이다. 이번 전쟁이 다른 점이 있다면, 적어도 대중 앞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전쟁이 이길 만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서는, 장군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화려한 언변과 강경한 발언이 슈워츠코프와 파월의 브리핑을 가득 채웠다. 여기에 더해 미군의 폭탄이 항상 목표를 정확히 명중하는 장면만 보여주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참혹한 현실은 결코 비추지 않는 영상 클립들이 능숙하게 활용되었다. 전쟁을 피 한 방울 보이지 않게 전하는 이런 세련된 첨단 영상은 군사 개입과 정부의 무력 사용 명분 모두에 깊은 회의를 품었던 대중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그러나 1991년 걸프전쟁의 현실은 슈워츠코프와 파월이 철저히 각본에 맞추어 내세운 장밋빛 시나리오와는 전혀 달랐다. 우선 미군의 '기적의 무기'라 불린 정밀유도탄의 성능은 실상 그다지 기적적이지 않았다.
- 또 주요 목표물을 파괴하는 데는 국방부와 군수업체가 애초 주장했던 것보다 휠씬 더 많은 탄약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국방부를 비판해 온 국방 전문가 윈슬로 휠러는 전쟁 후 미국 정부회계감사원(당시 명칭은 회계감사청)의 연구에서 F-117 스텔스 전투기, 토마호크 지대지미사일, 레이저 유도폭탄 같은 핵심 무기 체계의 적중률이 정부 주장보다 놀라울 만큼 낮았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정부회계감사원이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토마호크 사용을 분석한 결과 발사된 미사일의 절반 정도만 목표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정부회계감사원은 '일부는 지정된 목표 지역에 도착했지만, 명중 지점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고 단지 구덩이만 만들었다"라고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국방부와 군수업체가 레이저 유도폭탄에 대해 내세운 '한 발에 하나의 목표' 능력은 공습 작전에서 입증되지 않았다. "실제로 각 목표를 성공적으로 파괴하는 데는 평균적으로 유도탄 11톤, 비유도탄 44톤이 투하되었다" 라고 분석했다. 당시 정밀유도무기의 심각한 한계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은 '노먼과 콜린 쇼'를 망쳐버릴 뿐 아니라, 첨단 무기의 실제 전쟁 가치에 의문을 제기했을 것이다.
- 무엇이 언론의 태도를 좌우하는가 : 매출과 고급 정보 출처, 그리고 자금 후원이라는 목줄
왜 부시 행정부의 거짓 주장(사담 후세인의 핵 프로그램 현황이나 그를 알카 에다와 연결하려는 허위 시도 등)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정보가 일부 있었는 데도, 더 신중한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했을까? 이에 대해 랜데이는 그 이유가 단순히 뉴스룸과 언론 경영진의 태도에 그치지 않고, 9.11 테러 이후의 광범위한 대중 정서에까지 뻗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기를 흔들어대며 즉각 분출된 국수주의는 실로 엄청났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많은 언론사가 "분위기를 거스르거나 행정부에 맞서는 보도를 함으로써 매출을 잃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거기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문제, 즉 '접근 저널리즘이 있었다. 이는 고위급 소스들에 대한 접근을 잃을까봐 두려워 공식 발표를 지나치게 비판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말한다. 이 고위급 소스들이아 말로 이라크 침공 이유에 관한 공적 논의를 지배했던 사람들이었다
- 펜타곤과 그 예산에 기대어 먹고사는 방산업체들은 군산복합체라는 거대한 노다지판을 계속해서 굴리려면 대중의 지지가 필요하다. 만약 납세자들이 자기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또 자신들이 돈을 대는 군사력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비판적으로 따져 묻는다면, 연 1조달러 규모의 펜타곤 예산 시대는 급속히 막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군산 복합체 입장에서는 미국 국민이 자신들이 펜타곤과 대형 방산업체에 쏟아붓는 거의 모든 돈이 결국 안전을 더 잘 보장한다'는 믿음을 갖도록 하는 과제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군산복합체는 정교하고 다면적인 선전 캠페인을 펼쳐왔다. 이 캠페인은 펜타곤 예산과 관련해 "많을수록 무조건 더 좋다"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주려고 한다. 그 방식은 다양하다. 주요 언론 매체에 보조금을 지급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TV와 할리우드 영화에서 군대와 무기가 호의적으로 묘사되도록 만들고, 원격 조종 전쟁의 새로운 세계를 채워줄 모집 대상이 되는 게이머들을 겨냥해 게임 산업에 투자하고 이를 장려하는 식이다
2019년 할리우드 상공에서 선더버즈가 멋진 편대 비행을 펼쳤다 이는 새 영화 <캡틴 마블caplain Marvel> 개봉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선더버즈가 상공을 날아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조종사들이 제복을 입은 채 영화 시사회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들이 거기에 있었던 이유는 <캡틴 마블>이 아마 공군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광고였기 때문이다.
- 오늘날 미국 국방부는 병사와 조종사의 전투 훈련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치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게임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군과 게임산업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연결은 이미 미래의 전쟁 양상을 형성하고 있다. 현대 비디오게임 기술의 기반은 주로 국방부 자금으로 개발되었고, 그 관계는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선다. 게임 기술이 발전하면서 게임산업이 군이 보유한 기술보다 앞서 나가게 되었고, 결국 국방부는 상업용 게임이나 그 변형 버전을 자체 훈련과 시뮬레이션 활동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게임은 모병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군은 젊은 게이머들을 입대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실리콘밸리에서 새롭게 부상한 군사 기술 부문의 관계자들 역시 열성적인 게이머로, 게임을 경영 방식과 위험 감수 전략의 지침서로 삼기까지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려스러운 미래에 다가서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미래에는 전쟁 상황의 긴박함 속에서 일부 무기 설계자들과 군 인력 이 비디오게임과 원격으로 수행되는 첨단 전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 자동화 전쟁 시대의 도래 :무인,극초음속, AI가 지배하는 전장
전쟁 기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이 변화를 만드는 주요 요인은 벤처캐피털 펀드들과 방위기술기업들의 움직임이다. 이들은 조종사 없는 무기 체계와 극초음속 무기, AI가 통합된 통신.통제 시스템 등 많은 기술 변화를 이끌 차세대 첨단 무기를 공급하고자 한다. 독립 전문가들은 자동화된 전쟁의 잠재적 위험을 경고해왔다. 가능한 위험은 오작동으로 인해 의도치 않은 대량 살상이 벌어질 위험에서부터 군인의 위험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정부가 전쟁을 더 쉽게 결정할 수 있게 될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 진영은 미국의 세계 패권을 회복하고 중국에 대한 결정적 군사 우위를 확보하는 지름길로서 차세대 무기의 개발과 배치를 전속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 무기들 중 상당수는 아직 공상에 불과하지만, 미국 전쟁 기계의 최고위층은 그 과장된 약속을 곧이 곧대로 믿고 있다
- 새로운 첨단 무기라는 긱스의 비전은 새로운 기업군의 성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 기업군이 긱스가 언급한 기능을 갖춘 차세대 무기 체계를 필요한 규모로 감당 가능한 가격에 개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국방부는 지난 10년 동안 실리콘밸리와 다른 산업 혁신 거점의 기술기업들 및 인재들과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왔다.
이처럼 '기적의 무기' 개발을 통해 군사력 중심의 대외 정책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낯설지 않은 접근 방식이다. 그것은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미국이 치른 주요 전쟁에서 반복적으로 실패해온 방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산업계와 금융권, 국방부 내의 신세대 전쟁론자들은 지난 60년간 전쟁이 남긴 핵심 교훈을 무시하고 있다. 기술만으로는 승리를 보장할 수 없으며, 특히 사회적∙정치적∙민족주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힌 전쟁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교훈을 말이다
- 게임이라는 환상의 세계를 넘어 현실로 돌아와. 러키는 군사 기술기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에 나오는 유명한 검 '안두릴'을 회사 명칭으로 정했다. 러키는 실리콘 밸리의 논란 많은 군사 계약업자 피터 틸로부터 재정적∙도덕적 지원을 받아 안두릴을 설립했다. 틸 역시 공동 창업한 회사 이름 '팔란티어'를 반지의 제왕에서 가져왔다. 이 소설에서 팔란티어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파괴 불가능한 돌이다.
러키의 특이한 성격은 매우 재미있을 수 있지만, 그의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들은 극도로 심각하다. 안두릴은 공중용과 수중용 드론뿐 아니라 첨단 통신 시스템과 감시 시스템도 제작한다. 그중 가장 야심찬 제품은 래티스로, 모든 사용 가능한 정보원을 통합해 군 지휘관의 손에 신속하게 전달하는 정보 수집 시스템이다. 또는 회사 웹사이트에서 말하는 것처럼 "래티스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규모와 속도로 기계 간 작업을 조율해 복잡한 킬 체인을 가속화한다." 기술적 전문 용어를 건너뛰어 핵심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신중하게 다루지 않을 경우 신세대 군사 기술기업이 생산하는 제품들은 인간의 통제가 거 의 또는 전혀 없는 로봇 전쟁을 현실로 만들고, 이는 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 속 최악의 장면과 같은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 피터 틸은 실리콘밸리 군사 기술 혁명의 사실상 대부로 불릴 만하다. 그의 회사 팔란티어는 2003년에 설립되었으며, 초 기에는 CIA의 벤처캐피털 부문인 인큐텔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팔란티어의 주력 사업은 첨단 컴퓨팅∙데이터 관리 시스템 공급으로, 이 시스템은 미국 육군이 국내 기지부터 전장 지휘관까지 데이터를 공유하는 데 사용되어왔다. 팔란티어는 또한 육군을 위해 AI의 활용과 표적 선정에 관한 연구도 수행하고 있으며, 이는 `전술 정보 표적 접근 노드Tactical Intelligence Targeting Access Node, TITAN'라는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틸의 회사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엄격한 국경 단속을 가능하게 한 시스템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예측 경찰'이라고 불리는. 영장 없이 방대한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고 알고리즘에 내재된 인종 편향에 의존해 유색 인종을 체계적이고 불공정하게 표적삼아 처리하는 시스템을 가능하게 했다는 비판도 있다.
- 팔머 러키, 피터 틸, 일론 머스크와 이들의 동료들은 반정부 정서가 강하고 현실 인식이 왜곡되어 있다. 그렇기에 세계정세가 불확실하고 위험한 이 순간에 미국의 군사 정책을 설계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곧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이미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앞으로 몇 년 동안 더 큰 영향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머스크는 도널드 트럼프의 최고 고문이자 행정부의 정부효율부 의장으로서 기업 경영자 중에서는 드물게 높은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머스크는 의회와 행정부 모두에 영향력을 미치는 군사 기술 옹호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주요 무기 제조업체들이 선호하는 접근법과 달리, 실리콘밸리의 많은 군사 신기술 옹호자들은 당파성이 철저하고, 도널드 트럼프나 밴스 같은 주요 공화당 후보들에게 돈과 영향력을 쏟아붓는다. 이에 비해 록히드 마틴이나 RTX와 같은 기업들은 양쪽 정당의 관계자들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이는 정치적 우위가 언제 바뀌더라도 여전히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더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틸과 같은 극단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은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들은 기술기업이 사실상 어떤 업무에서든 정부를 능가할 수 있다고 믿는다
- 국방부는 대학의 신기술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생산 단계에서는 심각한 난관에 부딛히고 있다. 미국의 방위산업계가 새로운 시스템을 빠르고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고 단기간에 대체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난 수십 년의 경험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낙관적 기대일 뿐이며, 결과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즉 미국이 그 기술을 실질적으로 개발, 통합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중국이 차세대 군사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형 시스템들이 개발, 배치되면 안보가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 공익 단체 퍼블릭 시티즌 Public Citizen은 보고서에서 "AI를 국방부의 일상 업무, 전장 의사결정, 무기 체계에 도입하는 것은 수많은 위험을 초래한다"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현재 국방부 지침은 치명적 무력을 행사하는 결정에 반드시 인간이 개입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자율 무기가 대규모로 생산되면 인간 개입 없이 사용하려는 유혹이 커질 것이다. 그 결과 다양한 부정적 연쇄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즉 목표물을 비인간화하고, 전쟁 개시를 더 쉽게 상상하게 만들며, 복잡한 시스템 중 하나의 오작동으로 대규모 학살이 발생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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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유를 향한 열광
또한 외계인들은 월트 휘트먼의 시구에 나타난 것처럼 우리가 "물건들을 소유하려는 열광에 미친 것", 즉 아주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도 않거나 실질적으로 이익이 되지도 않는 물질적 재화를 소유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왜 인간들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 또 대부분 자신에게 별다른 기능을 선사하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새 옷. 새 보석. 새 차, 새 가구들을 사는 데 열광하는가? 작은 집, 작은 차, 작은 가구가 사람들의 사는 목적에는 잘 맞는데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호사스러운 큰 집에서 살고 싶어 하고, 비싼 차를 몰고 싶어 하고, 사치스러운 가구를 들여놓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가? 앞으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의 이러한 정신 상태를 당혹스럽게 받아들였다. 시팅 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백인들은 뭐든지 만들 수 있지만 분배할 줄은 모른다. 그들의 소유에 대한 사랑은 질병이다. 그들은 지배자인 부자에게 바치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거둬간다. 그들은 우리의 어머 나인 지구가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웃을 울타리로 막는다.
- 초기 유럽의 탐험가들과 인류학자들이 만난 수렵채집인들 그리고 전통적인 생활양식에 맞춰 살려고 하는 현대의 수렵채집인들의 한 가지 놀라운 공통적 특징은 그들 사이에 전쟁이 매우 적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많은 수렵채집인은 유럽인과 접촉해 문제가 발생하면서 폭력적으로 변했다. 예를 들면 과거의 대평원 인디언이나 최근 수십 년 동안의 남아프리카의 쿵족 같은 현대 토착민들의 경우가 그렇다. 쿵족은 처음에는 지극히 평화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적 교란의 결과로 인해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보다 높은 살인율을 보이고 있다." 전쟁이 인류의 존재만큼이나 오래 됐다고 믿는 사람들은 전쟁이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기 위해서 이러한 사례를 증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퍼거슨의 지적대로 "전 세계에서 원시적이고 토착적인 전쟁은 일반적으로 서구와의 접촉으로 촉발되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조차도 렌스키가 말한대로 '수렵채집인 집단의 전쟁 발생 빈도는 놀라울 정도로 낮다. 확실히 현대에 살아남은 집단 내부에서는 전쟁은 흔치 않으며, 같은 집단 내부에서의 구성원 간의 폭력도 드물다."' 애버리진들 사이에서도 이는 일반적인 사실이다. 인류학자 엘먼 서비스는 애버리진의 한 종류인 아룬타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족 간의 투쟁이라는 개념의 전쟁은 알려지지 않았다. 싸움이 있을 경우 이는 전쟁이라기보다는 사법적 절차라는 측면에 더 가깝다. 한 집단이나 가족은 누군가에 의해 나쁜 일을 당하면 그 부당함에 복수하기 위한 원정에 나선다. 그러나 보통은 실제로 싸움이 일어나는 대신 중재가 벌어진다.
- 제라드 렌스키에 따르면 기원전 4000년은 처음으로 선진적 원예재배 사회가 중동에서 발달한 시점이었다. 처음으로 무기의 재료로 금속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렌스키가 지적하듯이 기간에 "전투 도끼, 단검 그리고 그 외 많은 무기가 모든 성인 남성의 무덤에 발견되었다." 렌스키는 무기에 금속을 사용한 것을 이 사회의 결정적 특성으로 보았다. 이는 무기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초래한 전쟁의 결과였다. 다시 말해 `전쟁'을 그들의 결정적 특징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 이집트와 수메르, 새로운 문명의 시작
새로운 변화가 낳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무자비함과 이기심이 출현한 동시에 새로운 종류의 지적 능력, 새로운 종류의 실용성과 창의력이 태동했다. 기원전 4000년 이후 중동에서는 그 이전 세계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능가하는 기술적 발전이 갑작스럽게 밀어닥쳤다. 고든 차일드가 설명한 대로 "기원전 3000년 바로 이전의 1,000년 정도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부한 발명과 발견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혁신에는 바퀴, 쟁기, 동물을 이용해 쟁기와 수레를 끄는 것, 바람을 이용한 돛단배, 문자와 수에 관한 새로운 복합 체계 그리고 달력 등도 포함된다. 앤 베어링과 줄스 캐시포드가 <여신의 신화The Myth of the Goddes >에 쓴 것처럼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면서 "필기, 수학과 같은 엄청난 지식 폭발이 생했으며. 천문학도 발견되었다. 마치 인간의 마음이 갑자기 스스로 새로운 차원을 드러낸 것 같았다."
이러한 기술혁신은 주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고, 이 지역들은 고대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다. 만약 마리야 김 부타스처럼 문명을 "환경에 적응하고 적절한 예술, 기술, 기록과 사회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특정한 사람들의 능력"이라고 정의 한다면, 구유럽도 분명 일종의 문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고고학자들은 지난 5,000년 동안 존재했던 종류의 문명들만 문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문명'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금속도구, 사회적인 계급 분화, 재화와 부의 방대한 잉여, 강력 한 중앙집권, 군사력 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 대평원 인디언들은 끊임없이 분쟁을 벌이고, 자신들 지위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지만 여전히 모계중심적이었으며. 처가중심적이었다. 우리가 앞서 주목한 대로 아즈텍인들은 가부장적이지 않았기에 여성들이 성직자가 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 그들의 정치기구는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궁극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민주적이었다 그리고 잉카인들조차도 사회적 계급 분화와 부의 불평등이 심각하기는 했지만, 잘 발달된 복지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의 복지 체계와 같은 것들은 유럽이나 식민지 아메리카에서는 20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타났다. 잉카의 모든 주에는 음식과 옷가지 등의 재화로 가득한 공공창고가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과부, 노인, 장애인들이 이를 나누어 쓸 수 있었다
- 타락한 사람들과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 간의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는 종교에 대한 관념이다. '타락한' 종교는 세상을 내려다 보고 지배하는 의인화한 신들에 대한 숭배에 바탕을 둔다. 반면 '타락하지 않은' 종교는 세상과 세상 모든 사물에 들어 있는 영적인 힘에 대한 인식과 세상은 수많은 개별적인 영으로 충만하며 이것들은 종종 자연현상과 결합한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대평원 인디언들의 종교는 근본적으로 타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사물에 '위대한 영혼' 또는 '삶의 주인'이 내재하며. 자연현상은 (다른 세계의 신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영혼들에 의해 통제된다고 믿었다. 잉카의 종교는 전형적으로 타락한 것이다. 그들은 전능한 창조신 비라코차와 그들이 기원하고 제물을 바치는 작은 신들의 존재를 믿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종교는 물시신론(신과 물질을 결부시키는 생각)적이었다. 즉 그들은 신이 모든 사물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로널드 라이트의 말로는 잉카인들에게는 "세상은 집단적으로 와카라고 알려진 신령스런 바위들, 샘들, 산꼭대기들과 함께 살아 있었다. 이런 것들은 창조주에게는 성지로 간주되었다."
- 많은 사람은 민주주의 개념이 고대 그리스에서 나왔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매우 특별한 생각- 노예제를 인정하고 여성을 엄하게 탄압하는 것이 포함된 민주주의 -을 가졌다는 사실은 별개로 하더라도, 서구 민주주의가 아메리카 원주민들로부터 왔다는 견해를 입증하는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사례가 있다
미국 헌법에 나타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라는 무계급사회의 개념은 당시 유럽에는 완전히 생소한 내용이 었으며, 아메리카 원주민들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특히 토마스 제퍼슨과 벤자민 프랭클린 같은 미국 헌법제정자들은 각각 회고록에서 견제, 균형의 원리, 선출된 대표를 갖춘 이로쿼이족의 민주 정부 모델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여러 주를 연합한다는 발상도 이로쿼이족의 원주민 민족 연맹에서 차용했다. 실제로 이 방안은 1744년 벤자민 프랭클린이 참석한 한 조약서명 때 6개 민족지도자들에 의해 유럽인들에게 추천되었다. 그 연맹은 신중하게 고안된 헌법과 법률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도자들은 이를 마음속으로 새기고.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졌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유롭게 그것들 전부를 빌려왔다. 하이 메 게레로가 지적한 대로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들 가운데 단 한 가지. 집안 어머니들의 권위와 지도력에 대한 부분은 빌리지 않았다. 실제로 원래 미국의 민주주의 개념도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모든 사람을 위한 평등과 자유는 백인 남성 지주들에게만 국한되었다. 여성,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예들, 아메리카 원주민들 토지가 없는 백인 남성들은 배제되었다
- 지금까지 우리는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증거를 주로 전쟁, 가부장제, 불평등 측면에서만 살펴 왔다. 그러나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 - 원시적인 사람들과 선사시대 사람들 -과 타락한 사하라시아 사람들 간의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자연에 대한 태도다
이전에 나는 현재 우리의 환경문제는 자연을 지배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러한 태도의 연원을 추적하다 보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연현상이 살아 있음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나무, 바위, 산, 강과 같은 것들이 영혼이 있다거나 살아 있는 존재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원시인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자연과 관계를 맺는다. 그들에게는 모든 자연의 사물은 살아 있으며. 스스로의 의식과 내부의 삶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원시인들의 자연에 대한 자세와 종교적 생활을 분리하기는 불가능하다. 나무와 바위 그리고 산이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영적인 힘이 그것들 내부를 통해 흐르기 때문이다.
- 원시인들은 사회적인 고통이 없으므로 정신적인 고통도 없으리라고 기대한다. 그들이 평화로워 보인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그들 생활에는 이를 시사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원시인들이 부나 지위나 권력을 확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부나 지위, 권력을 얻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정신적 부조화가 그들 내면에는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우리와는 달리 원시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이를 시사한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유럽 식민주의자들은 인디언들이 필요한 만큼만 일하며. 보통 1년에 6개월만 일하고 나머지 6개월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고 게으르다고 억측했다. 그러나 이것은 게으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마도 인디언들은 유럽인들처럼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는 정신적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 문일 것이다. 인디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루해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고립된 자아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와 현대의 수럽채집인들이 식량을 찾는 데 별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를 시사한다. 우리는 재정적으로 아무리 여유가 생긴다고 해도 적게 일하는 게 매우 어럽다. 왜냐하면 우리는 외부 자극이 줄어들면 권태, 근심 그리고 일반적인 정신적인 불화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신화가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인류에게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단서들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타락이 환경적 재앙과 관계가 있음을 알았다. 즉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사막화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신화의 도움 없이 유라시아인들이 어떻게 이 재앙에 영향을 받았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그들의 정신을 변화시켜 그들 이전에 있었던 인간 정신과 완전히 달라지게 만들었는지를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성경>에서 타락이 "이브가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은 결과로 일어났다"고 하는 부분은 중요하다. 이는 타락이 어떤 새로운 지적 능력이나 인식을 얻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아담과 이브에게 이해력이 주어졌고,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깨닫고 나뭇잎들을 모아 붙여 스스로를 덮었다"서는 점이다. 이는 타락이, 인간들에게 스스로를 관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능력, 어떤 새로운 자기 인식이 인간 내면에서 발전되는 것과 연계되었음을 시사한다 다른 신화들에서도 비슷한 암시들이 있다.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과거의 신성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제하고. 부러워하지 않았다"고 하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자아인식과 자기과시가 없었음을 시사한다.' 중국의 완벽한 미덕의 시대에 관한 신화에서도 인간은 '도'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어떤 새로운 종류의 개인성과 자기만족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자연의 뜻보다는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살기 시작했다. 장자는 "고대의 진실된 인간들은 많이 있다고 자랑하지 않았다.그리고 일을 계획하지 않았다.. 그들은 실수해도 뉘우치지 않았으며, 성공해도 과시하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고대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분 석하지 않고 행동했는데, 이는 아마도 자아인식도 적고, 죄의식이나 자부심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장자는 이 새로운 개인성이 어떻게 새로운 종류의 지적 차별과 분리로 이끌었는지 암시했다. 장자는 과거의 인간들은 "물건들이 있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 했지만" 후대의 인간들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였다""고 말했다.
- 선사시대의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은 원시인들과 같이 개인성에 대한 인식이 덜 발달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그들과 기원전 4000년기부터 계속해서 그들을 정복한 침략적이고 부성선호적인 사람들 간의 핵심적인 차이였다. 유라시아인들은 자아에 대한 예민한 인식을 발달시킨 첫 번째 인류였다. 그리고 우리의 선조들인 그들은 이를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그렇다면 타락이란 6,000년경 전 특정 인류 집단의 정신에 발생한 변화를 말한다. 타락은 이들이 강하고 예민한 자아를 갖게 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타락은 '나' 또는 '개인성'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심화되는 것이다.
'두뇌 폭발'이라는 용어는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뇌가 극단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뇌는 지난 50만 년 동안 3분의 1이 커졌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그와 평행되는 용어로 인류 정신 내부의 갑작스럽고 극적인 변화를 지칭하는 '자아폭발'을 소개하려 한다.
- 자아폭발에 대한 구체적인 고고학적 증거도 있다. 기원전 4000년 경부터 -유라시아 중앙부가 사막화되고 남성 지배, 물질주의, 사 회적 불평등, 격렬한 전쟁 등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시기에 -새로운 종류의 예민한 개인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매장 관행의 변화에서 이 점을 볼 수 있다. 기원전 4000년기에 사하라시아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공동 매장의 오래된 관행이 개인 매장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구세계인들은 익명으로 매장되었고, 부장품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각자의 개인성이 중요한 것처럼, 또 그 개인성이 죽은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는 듯 정체성과 재산을 가지고 매장되었다. 족장들은 말. 무기. 아내들과 함께 매장되었다. 마치 그렇게 강력하고 중요한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이 어느 순간 반드시 살아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스웨덴의 고고학자인 매츠 말머는 이러한 새로운 매장관행들은 "유럽에서 발생한 개인에게 사적 소유에 대해 보다 큰 자유와 권리를 부여하는 놀라운 변화"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기원전 3000년기 초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새로운 유럽인들을 '최초의 개인주의자들'이라고 불렀다.
- 나는 잠재적 지배자들에 대한 통제는 단지 원시사회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원시사회에는 잠재적 지배자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며, 지위와 권력에 대한 욕구는 타고난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확실히 원시인들의 평등주의를 설명하는 가장 쉽고 합리적인 방법은 단순히 그들에게는 지위와 권력에 대한 선천적인 욕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전쟁을 벌이거나, 여성을 지배하려는 선천적인 욕구가 없었다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그들에게는 우리 같은 과도하게 발달한 자아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지위와 권력에 대한 욕구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고도로 계급 화되고 경쟁적인 사회들은 자아폭발 이후에야 선천적인 것이 되었다.
-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든 종교는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하도 비슷해서 나는 그 모두를 포함해 '원시종교'라는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원시종교에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는데 그 어느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신들을 포함하지 않는다. 우리는 앞에서 이들 중 하나에 대해 언급했다. 즉 세상 전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는 생기를 불어넣는 힘이 스며들어 있다는 원시인들의 인식이다
이 영혼의 힘이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신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인류학자들이 이러한 용어들을 흔히 '신'으로 번역하기 때문에 여기서 때때로 혼란이 발생한다. 에번스 프리처드는 이것을 누에르족의 용어로 영혼의 힘을 뜻하는 '크오트'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크오트가 인격화된 신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의 설명대로 "누에르족의 신에 대한 관 년에서 인격화된 모습들은 매우 약하다. 그리고 앞으로 살퍼보겠 지만 누에르족은 그들을 향해 행동하지도 않는다. 나는 신이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 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다른 인류학자들도 이러한 용어들을 번역하면서 신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최초의 인류학자들은 '생명의 힘', '영혼 물질', '포텐즈' 등의 용어들을 사용했으며, 과거 영국의 인류학자인 홈즈는 '영혼' 또는 '살아 있는 원칙'이라고 불렀다.
- 흔히 히잡을 쓰는 것이 이슬람교도의 관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무함마드가 그것을 권장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코란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아내들조차 히잡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무함마드가 죽은 뒤 두 번째로 이슬람의 지도자 칼리프가 된 우마르'는 무함마드에게 이렇게 불평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의 전달자에, 당신은 집에서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도덕적인 사람, 나쁜 사람을 모두 만납니다. 왜 모든 믿는 자들의 어머니들에게 히잡을 쓸 것을 명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히잡은 이슬람교보다 몇 세기나 앞서 있다. 히잡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은 기원전 1500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베일로 가리는 것은 구금 중인 여자임을 나타내는 방법의 하나로, 습격 무리가 그 여자를 다시는 잡지 않도록 하였다. 무함마드가 죽은 후에도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 기능이 유지 되었다. 이슬람 여성들은 일종의 제복으로써 베일을 쓰고 있어아 했기 때문에, 공격자들이나 전사들이 강간과 납치할 여자를 수색 할 때 그들을 그냥 놔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원이 있 는 동시에 히잡은 여성의 육체에 대한 남성들의 신경증적인 억압적 태도와 여성을 지배하고 자유를 제한하려는 충동을 보여 준다
타락 이후 혼전정사나 혼외정사는 모두 죽음으로 처벌되었다. 청소년의 성관계를 막기 위해 타락한 문화에서는 소년들과 소녀들을 떼어 놓았으며 어떠한 낭만적인 관계들도 허용하지 않았다. 결혼은 부모들이 주선하는 경제적 거래가 되었고 신부의 가치는 성적인 순결성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낭만적인 관계를 맺지 않도록 하는 것은 특히 중요했다. 아내가 불결한 것으로 드러나면, 많은 인도유럽인 및 셈족 문화에서는 여자를 돌로 처 죽이거나 불에 태워 죽였다. 유부남과 여성 간의 관계도 죽음으로. 아니면 최소한 여성들의 죽음으로 처벌당했다. 훈외정사를 가진 남자들은 종종 거세되기도 했지만, 죽음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체험하지 못하므로 미래와 과거도 거의 의미가 없다. 우리가 미래와 과거에 집착해 현재로부터 멀어지는 반면, 그들에게는 현재가 유일한 사실이다. 이것이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이 유럽적 생활방식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여겼던 또 하나의 이유이다. 유럽 식민주의자들은 원주민들로 하여금 수렵채집 생활양식에서 농사짓는 생활방식으 로 바꾸도록 강요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보통 성공할 수 없었는 데, 원주민들이 미래를 인지하지 않을뿐더러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식량 공급원 -동물과 식물들 -이 매 순간 주위에 널려 있는데 몇 달 내에는 얻지도 못할 많은 식량을 수확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주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은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의 기한과 시간표에 대한 개념을 다루기 어려워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바호족과 호피족에게는 유럽인들이 가진 '마감'에 대한 욕구가 없으며, 과제를 끝내지 않고 놔두는 것을 무능함의 증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에드워드 홀은 지적했다. 호피족 마을에는 짓다 만 집들이 널려 있다. 아름답게 쌓은 담장과 창문들은 있지만 지붕은 없다. 지붕을 만들 나무는 집 옆에 쌓여 있다
- 역사적으로 선형 시간 인식은 고도의 추상화-또는 쉬지 않는 생각의 수다-가 우리 정신의 한 특징이 되었을 때 발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자아폭발과 연계가 되어 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사하라시아의 사막화 이후, 우리 조상들은 생활이 고통스러워지고 복잡해지자 새로운 자기성찰 능력을 발달시켰다. 그들은 생활의 실제적인 어려움들을 처리 하기 위해서는 더 심사숙고하고, 계획하고, 판단해야 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조상들이 성찰하고 심사숙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아가 예민하게 발달되었다. 철학자 에리히 노이만은 자기성찰과 선형 시간과의 연관성을 주장하면서 "통각적' 자의식이 없으면 역사도 있을 수 없다. 역사는 성찰적 의식을 요구하기 때문인데, 성찰을 통해 역사를 구성한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보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우리의 자기성찰 능력은 일종의 자동적 기제, 즉 생각할 소재들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채우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과거와 미래가 관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때였을 것이다
- 순환하는 시간과 선형의 시간
그래도 처음에는 타락한 사람들의 시간 인식은 엄격한 선형이라기보다는 순환적이었다. 시간이 흐르기는 하지만 앞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었다. 마야인들은 역사가 260년을 주기로 진행된다고 믿었다. 그리스인들은 3만 6000년의 주기를 생각해냈다. 고대 힌두교도들은 역사가 4개의 마하유가를 통해 진행되는데. 이 시대는 450만 년 동안 지속되고. 다시 시작된다고 믿었다. 순환적 시간관은 원시 종족들의 시간이 없는 상태와 진정한 선형 시간관 사이의 일종의 중간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다신교처럼 타락의 첫 국면 동안 나타난 덜 심화된 부성선호사상의 일반적 형태의 한 부분이다. 진정한 선형 시간관은 자의식이 더 심화된 다음에 나타났으며, 타락의 두 번째, 더 심화된 국면에 속한다. 이것이 아마도 생각의 수다나 일반적 자기성찰 능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며, 그 결과 인간은 과거와 미래어 대해 보다 예민하게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 그리고 실제로 선형 시간은, 유일신 종교와 전쟁의 심화 등 타락의 두 번째 국면에 나타나는 다른 결과들과 대충 비슷한 시기에 발달했던 것 같다. 즉 기원전 2000년기 중반부터 후반부 사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강력한 선형 세계관이 발달한 때였다. 즉 세계는 과거 어느 순간에 창조되었으며, 그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화살처럼 움직이며, 미래의 어느 순간에 세상이 끝날 때 까지 계속 움직일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것은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순환적인 시간관을 가진 문화들도 역사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수메르와 이집트의 창조 신화들 은 세상이 과거 어느 순간에 창조되었다는 믿음을 보여 준다. 그 러나 기원전 2000년기 중반부에 이르면 우리는 최초로 상세한 역 사적 기록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기록으로 우리는 당시 사람들에게 사건들이 선형으로 흘러간다는 인식이 생겼다는 사 실과 미래 세대들이 그들의 과거를 돌아볼 것을 분명히 알고 있 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기원전 1300년경에는 메소포타ㅁ 아에 있는 왕실 건물들에 새겨진 명문에 중요한 변화가 나타난 다. 그 이전에는 왕의 이름과 그의 신들 그리고 건물이 언제. 어떻 게 세워졌는가에 대해서만 언급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1300년부 터는 명문에 건물 건축이 시작되기 전에 발생했던 사건들에 대한 언급과 왕의 군사적 무훈과 업적 등에 대한 기록 등 상세한 역사 적 내용들이 가득 찼다. 그리고 수 세기 안에 아시리아의 왕들은 통치 기간 동안의 상세한 연대기를 남기게 되었다.'
- 끔찍한 성의 기원
38억 년 전 최초의 생명체는 단순했다. 이들은 원핵생물이라는 생명체다. 세포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 DNA가 자유롭게 떠다니는 단세포 미생물이기에 DNA가 손상될 위험이 컸다. 하지만 이 생명체도 살아남았고, 해저 바닥은 살아 있는 작은 덩어리들로 가득 찼다. 부동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 34억 년 전 몇몇 원핵 생물은 해수면 근처로 이동해 수중 화산의 열기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했다. 이 작은 덩어리들은 태양 에너지를 이용했다. 광합성을 하면서 물, 햇빛,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형태를 바꿔서 먹고 살았다. 지금의 식물처럼 말이다. 이들은 광합성의 부산물인 산소를 대기로 방출했다 다만 산소가 매우 격렬한 화학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며, 대량일 경우 지구 초기 그러니까 대기 중에 산소 농도가 매우 낮은 시기에 진화한 미생물 같은 연약한 원시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25억 년 전 광합성을 하던 미생물이 대기 중 산소 농도를 0%에서 2.5%까지 높였다. 이 독성이 강한 화학 물질은 '산소 대학살'이라는 사건으로 수많은 미생물을 몰살시켰다. 지구 최초의 대멸종이자 소행성 충돌∙화산 폭발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가 일으킨 유일한 대멸종 사건이다
- 살아남은 미생물들은 서서히 대기 중의 산소에 대한 내성을 키웠다. 일부는 심지어 이산화탄소 대신 산소를 소비하는 능력까지 진화시켜서 어떤 화학 물질이 섭취 가능한 식량인지, 어떤 화학 물질이 노폐물인지가 뒤바뀌기도 했다. 이들은 최초의 호기성종 이었으며, 이런 면에서는 인간∙다른 동물과 유사한 미생물이었다. 우리처럼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은 여전히 지구 생명체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산소를 배출하며 엄청난 재앙을 일으켰다. 약 22억 년 전 대기 중의 산소 원자가 3개씩 풍쳐져서 오존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산소가 모였다. 이로 인해 생성된 오존층은 지구를 덮어 햇빛 대부분을 우주로 반사시켰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태양 복사 에너지로부터 보호해주는 오존층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22억 년 전에는 오존층이 그리 도움되지 않았다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들은 계속해서 오존층의 두께를 키웠다. 그러자 지구는 점점 더 추워졌다. 극지방의 바다가 얼었고 적도를 향해 얼음이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대략 20억 년 전 최초의 '눈덩이 지구' 사건이 발생했다. 지구 전체가 얼음 감옥에 같혔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영하 50도쯤 되었을 것이다
눈덩이 지구는 이제 얼음으로 뒤덮인 바다에 사는 미생물들을 압박했다. 이들은 새로운 미생물인 진핵생물로 진화했다. 진핵생물은 원핵생물보다 10배에서 1,000배 더 '우락부락한' 세포를 지녔고. DNA가 세포 내에 떠다니지 못하도록 중앙의 핵에 DNA를 보관.보호했다. 우리 인간뿐 아니라 식물과 동물의 진화 계보에 있는 모든 조상과 후손도 이 진핵생물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이 작은 진핵생물이 최초로 성을 가진 생명체다
재앙 같은 눈덩이 지구가 계속되는 동안 이 작은 진핵생물들은 성적인 관계로 엮이기 시작했다. 오늘날 진핵생물의 99.9%기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이 습성은 고착화되는 동시에 더욱 흥미롭고 장황하게 변했다. 하지만 우리의 미생물 조상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두 사람이 바에서 전화번호를 교환하듯이 유전 정보를 교환하려는 충동을 느끼기 시작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 여러분이 DNA 사슬 한 가닥이라고 상상해보자. 우주에서 여러분의 유일한 목표는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하는 일이다. 따라서 다른 생명체의 DNA 사슬과 한 공간에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38억 년 전부터 20억 년 전까지 모든 생명체가 그랬던 것처럼 무성 생식을 통해 스스로를 복제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유전자를 100% 복사해낼 수 있다. 훌륭하다. 여러분은 임무를 완수했다. 그러나 다른 미생물과 유전자를 결합할 때는 여러분은 자신의 유전자 중 50%만 성공적으로 복사해서 후세에 전달하게 된다. 이는 DNA의 존재 이유에 완전히 어긋난다. 생명체는 외부 환경에 압박을 받지 않는 한 그렇게 행동하도록 진화하지 않는다. 더구나 자가 복제를 하는 무성 생식 생명체면 번식을 하는 과정에서 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몇 시간 만에 혼자서도 엄청난 수의 자손을 만들어서 수백 혹은 수천 마리의 집단을 형성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역시나 임무 완수다
그런데 섹스가 개입하면 인구 증가 속도가 느려진다. 자손을 만들기 위해 두 생물이 필요할 뿐 아니라, 마음에 드는 짝을 찾고 DNA를 교환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자손이 너무 많으면 모두 굶어 죽을 수 있으므로 거대하고 빠르게 규모가 늘어나는 집단에는 많은 개체수 가 모여 있는 것이 생존에 불리하다. 즉, 자원이 한정적이고 집단이 굵주린 상황에서만 섹스의 첫 번째 진화가 이해된다. 15명의 가족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상황은 3명의 가족이 굶주리는 상황보다 휠씬 힘들다. 섹스의 역할은 먹이와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번식 속도를 늦춰 인구를 조절하는 것이었다. 눈덩이 지구 같은 환경 말이다
- 그러나 지난 18억 년 동안 행복하게 자가 복제를 하던 미생물만 존재하던 상황에서 어떻게 물리적인 섹스가 등장하게 되었을 까? 성적 충동을 처음 느낀 진핵생물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가장 믿을 만하고 강력한 이론부터 이아기해보겠다. 두 생명 체 간의 첫 DNA 교환이 '우연히' 이뤄졌다는 이론이다. 눈덩이 지구로 우리 진핵생물 조상들의 먹이가 극도로 줄어들자 몇몇은 서로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동족 포식 말이다. 무성 생식을 하던 진핵생물이 다른 생물의 세포를 먹었을 때 우연히 DNA가 교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잡아먹힌 희생자의 DNA 가닥이 굶주린 포식자의 DNA와 얽히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자손은 얼어붙은 환경에서 유전적 이점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점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섹스를 통한 번식으로 돌연변이를 더 빈번하게 만들어내면서, 이 진핵생물은 진화를 가속하고 자신이 처한 암울한 환경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이 미생물의 진화에 필요한 건 '부족한 먹이'였다.
- 물 밖으로 나와 생긴 또 다른 성적 이점은 페로몬 사용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원시 어류는 물속에서 서로의 위치, 포식자의 존재, 짝짓기 욕구에 대한 정보 정도를 페로몬으로 주고받았지만 신선한 공기 중에서 짝짓기를 할 때는 성페로몬이 과하게 작용했다. 수컷 양서류는 강한 냄새를 풍겨서 근처의 암컷을 끌어들이고 알을 낳도록 자극하여, 일시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암컷이 짝을 다시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성페로몬으로 양서류의 유혹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가를 수 있던 것이다
페로몬은 우리의 직계 조상 계보를 거쳐 인간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중요한 물질이 되었다. 페로몬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만약 인간의 체내에 갑작스러운 화학적 변화(약물이나 나이로 인해) 가 일어나서 그 페로몬에 대한 반응이 줄어들면 이전에는 매력적으로 느꼈던 사람이 갑자기 성적으로 매력적이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만약 당신의 페로몬이 변하면 파트너가 느끼던 매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최근에 헤어진 연인의 베개, 셔츠, 담요에서 냄새를 맡게 된다면 3억 6천만 년 이상 된 강렬하고 원초적인 성적 매력이라는 존재를 떠올려보자. 이 모든 것은 성 선택의 결과다. 야생에서 즉각적인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자연 선택과는 별개로) 성공적으로 번식 확률을 높이는 신체적 특성, 본능, 행동의 진화다. 성 선택의 힘은 개구리의 개굴개굴 우는 소리와 페로몬처럼 특정 종의 가장 강력한 특성을 형성한다. 그리고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런 특성은 우리 인간에게도 있다.
- 살아 있는 새끼를 낳는 포유류의 출산 방식은 약 1억 6천만 년 전에 진화했다. 어미의 포궁 안에서 완전히 성장하는 일이 얇은 알껍데기와 함께 바깥 세계로 나가는 일보다 새끼에게 약간 더 안전했기 때문이다. 공룡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계속해서 도망치던 작은 포유류가 사는 세상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10cm 크기의 포유류가 숲을 달음박질치거나 나무를 오르거나 굴로 파고들 때 어미가 새끼를 품고 있는 것이 진화적으로 유의미했다 이 시기에 태반을 지닌 포유류(고양이, 개, 인간)와 유대류(코알라 캥거루, 주머니쥐)의 공통 조상은 덜 성숙한 상태의 새끼를 낳았다. 성장 막바지가 되면 새끼의 크기에 비해 포궁이 너무 작아져서 계속 품을 수 없었기에 새끼가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덜 성숙한 채 태어난 새끼는 어미의 털에 매달리거나 주머니 안에서 조금 더 자라야 했다. 주머니는 알에서 발달하는 것과 포궁에서 발달하는 것 사이에 있는 진화적 중간 형태였다.
- 6천6백만 년 전 충돌한 소행성은 지구에 서식하던 육상동물의 90%와 식물의 50%를 죽였다. 대형 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새의 진화적 조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룡은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살아남은 포유류는 매우 작았는데 보통 몸길이가 10cm 정도 였다. 몸길이가 50cm를 넘는 종은 없었고 대부분 몸무게도 1kg 미만이었다. 백악기 대멸종 후 처음 몇 년 동안 이들은 벌레와 살아남은 식물을 먹었다. 이들은 트라이아스기가 시작된 때부터 1억 8천5백만 년 동안을 자연의 변두리에서 청소부처럼 살았다. 그러나 익룡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거대 공룡이 없었으므로 채워져야 할 생태계 지위가 많았다. 포유류는 딱 맞게 그 자리를 메울 수 있었다. 포유류는 빠르게 여러 종으로 나뉘고 신체적으로 그리고 신경학적으로 복잡해졌다. 이로 인해 우리 조상 계통의 성은 신체와 지능 면에서 더 정교해졌다.
- 자연의 더 잔인한 면을 보자. 포유류의 짝짓기는 짧고, 꽤나 자주 강압적이며, 수정의 핵심 요소는 삽입과 수컷의 사정뿐이다. 많은 포유류 종에서 암컷이 거의 또는 전혀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짝짓기가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난다. 강제적이거나 폭력적인 짝짓기에는 공포와 고통이 동반될 뿐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수정을 위해 암컷의 성적 쾌락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는데 쾌락은 왜 진화 과정에 나타나게 된 걸까? 답은 간단하다. 암것의 쾌락이 포유류의 임신 전제 조건은 아니지만 번식 성공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6천6백만 년의 진화 과정 중 몇 번의 짝짓기에서 암컷의 쾌락이 임신 성공률을 높였다면 그것만으로도 암컷의 쾌락이 유지되고 더 정교해질 이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우리 포유류 가문에서 암컷의 쾌락이 사라져야 할 만큼 뚜렷한 손해도 없었다. 암컷이 짝짓기를 너무 즐겨서 멸종한 종은 없다. 따라서 외음경과 클리토리스 간 공진화의 시작은 번식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한 이점을 제공하며 유지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클리토리스가 진화사에서 탈락될 이유는 전혀 없었다
- 약 4천만 년 전 우리의 마지막 공통 조상은 근친 교배를 피하기 위해 '모계 거주 무리'를 이루며 살았다. 암컷은 자신이 태어난 무리에서 평생을 살아가고 수컷은 짝짓기를 위해 새로운 무리를 찾아 떠났다. 암컷 원숭이는 어머니, 자매들과 평화롭게 지냈던 반면 발정난 수컷 원숭이는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이런 행동 양식은 짝짓기 기회를 두고 수컷 간의 경쟁을 치 열하게 만들었고. 힘이 센 수컷이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형태를 만들어냈다
개코원숭이는 여러 수컷과 암컷이 함께 생활하는 무리를 이루지만 수컷은 대부분 새로 합류한 구성원이다. 수컷 간의 치열한 경쟁과 엄격한 서열 체계는 수컷 개코원숭이가 암컷과 얼마나 자주 짝짓기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서열이 높은 수컷일수록 짝짓기 기회를 많이 얻는다
- 오랑우탄의 좋지 않은 특성이 있다. 바로 암것의 배란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암컷은 수컷에게 자신이 가임기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로 인해 수컷 오랑우탄은 언제나 암컷과 짝짓기를 시도하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이 짝짓기를 진심으로 원하는지 아닌지를 아는 건 암컷뿐이다. 그리고 암컷 오랑우탄은 플랜지가 없는 수것의 접근을 별로 반기지 않기 때문에 강간이 끔찍할 정도로 흔하게 벌어진다.
암컷은 배란기가 아니면 임신 위험이 없으므로 플랜지가 없는 수컷의 성폭행에 보통 저항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가임기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암컷 오랑우탄은 정력이 떨어지는 수컷으로 인한 임신 가능성에 맹렬히 저항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상황이 폭력적으로 변한다. 오랑우탄의 짝짓기는 평균적으로 15분이나 걸리기 때문에 끔찍한 강간에 저항하다가 암컷은 부상을 입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강간도 암것 오랑우탄이 플랜지를 지닌 힘이 센 수컷 주변을 맴도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 한편 암컷 고릴라들은 실버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실버백의 호의가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에 그의 호의를 얻어야만 자신의 '유전적 투자 상품'을 보존.보호하고 DNA를 전달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암것 고릴라는 엄격한 위계를 두고 경쟁하며, 다른 암것을 하위 서열에 묶어두기 위해 동맹을 맺고 위협 전술을 사용하기도 한다. 고등학교의 '인기 있는 여학생 무리'를 상상한 다음 여기에 약간 더 털을 더하면 꽤나 가까운 모습일 테다. 가임기 암컷을 선택하기보다 암컷들 간의 위계질서를 우선시한 채로 짝짓기하는 모습을 보면 실버백도 암컷들의 위계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암컷 고릴라는 실버백을 기분 좋게 만들고 유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임신 중일 때도 실버백에게 짝짓기를 청한다. 실버백이 하렘의 암컷 1마리와 짝짓기를 하면 다른 모든 암컷도 애정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앞다튀 짝짓기를 하려고 몰려든다. 반대로 실버백이 누구와도 짝짓기를 하지 않는 날에는 하렘의 암컷들도 짝짓기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즉, 고릴라의 섹스는 명백한 번식 목적 외에도 무리 내의 위계.정치와 밀접한 전략적 목적도 수행한다.
- 낯선 암컷이 합류할 때면 기존 암것들은 적대적으로 반응한다. 짝짓기 경쟁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낯선 암컷은 암것 서열의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수컷 침팬지의 입장에서는 발정기(가임기가 되어 암것 침팬지의 엉덩이가 풍선처럼 부풀어오르고 붉게 변하는 시기)가 아니면 새로운 암컷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임기가 아닌 암컷이 무리에 합류하려고 들면 수컷은 이 암컷을 쫓아내고 심한 경우에는 구타까지 한다. 비가임기 암컷은 무리의 식량 자원을 축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로 합류한 암컷이 짝짓기와 번식에 준비된 상태면 수것은 환영한다
먼저 무리에 있던 암컷들은 고분고분한 신입 암컷을 지배하며 자신들만의 서열과 동맹을 유지하려 든다. 암컷 침팬지는 족벌주의를 실천한다. 서열이 높은 암컷의 새끼는 어미의 동맹과 보호를 동일하게 누린다. 서열이 낮은 암컷은 서열이 높은 암컷의 어린 새끼를 아무 이유 없이 괴롭힐 수 없다
- 수컷도 족벌주의를 실천한다. 자신의 형제와 어미에게 먹이를 나누어주는 동시에 혈연관계가 아닌 암컷에게는 섹스와 먹이를 교환하는 행동을 보인다('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인 매춘의 일종이다) 수컷은 경쟁자 수컷에게는 먹이를 나누어주지 않는다. 혈연관계가 멀면 가족 구성원이어도 무시한다
왜 이런 행동을 보일까? 자신의 DNA를 복제.전달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세상에서는 혈족에서 멀어질수록 친절과 이타심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은 동물이 자신의 DNA와 거의 동일한 DNA를 지닌 혈족을 돕기 위해 약간의 희생(예를 들면 먹이)을 감수하는 '혈연 선택'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모든 것은 전근대의 인간 사회(부족의 족장, 파라오, 황제, 왕, 공작, 후작 등)에 존재하는 세습 원리의 진화적 흔적이다. 솔직히 말해 족벌주의는 지금도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난무하고 있다. 암컷 침팬지가 서로 친밀하지 않고 수컷에게 종속되어 있지만 암컷들도 성적 선호가 꽤나 강하다. 암컷은 높은 서열의 힘이 센 수컷과 짝짓기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새끼가 영아 살해로부터 보호받고, 공유 자원인 먹이에 접근하기 쉽다
- 침팬지의 짝짓기 중 대략 35%는 암컷이 주도한다. 암컷 핌팬지가 힘이 센 수컷과 짝짓기를 하면 암컷의 서열이 상승될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무리에 새로 합류한 암컷이면 힘이 센 수컷과 짝짓기를 했을 때 서열 상승에 더 유리하다. 짝짓기 후 수컷은 암컷을 향한 소유욕을 키우며. 짝짓기를 기대하는 다른 수건을 쫓아낸다. 따라서 암것 침팬지의 성적 취향은 상향혼 성향을 띤다. 새끼의 생존에 이익이 되도록 지위가 높은 수컷과의 짝짓기를 우선하고, 지위가 낮은 수컷과의 짝짓기를 꺼리는 전략이다. 이런 짝짓기 전략은 호모 사피엔스에게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나머지 65%의 짝짓기는 수컷 침팬지가 주도한다. 그들은 무리 내의 모든 암컷과 짝짓기를 시도하는데 이미 출산을 한 암컷을 우선순위에 둔다. 출산 경험이 있다는 건 그 암컷이 임신을 해서 새끼를 낳을 수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컷 침팬지는 약간의 경험이 쌓인 암것을 선호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이가 너무 많은 암컷은 제외된다
- 보노보 사회에서 치명적인 폭력이 드물고 수컷이 암컷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흔치 않지만 암컷이 수컷에게 혹은 암컷이 암컷에게 휘두르는 폭력은 흔하다는 점이다. 모계 중심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암컷은 서로를 물어뜯고 때리고 걷어차고 밀치고 끌어당기고 옴짝달싹 못하게 하거나 달려들기도 한다. 암컷이 주도하는 이런 사회 구조는 유인원 중 유일하며 그만큼 엄격하게 유지된다. 인간의 눈에는 이상적으로 보일지라도 진화는 결코 온화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수컷에 의한 영아 살해는 관찰된 적이 없지만 암컷이 유사한 행위를 저지르는 사례는 보고된 바 있다. 지위가 높은 암컷 보노보는 때때로 지위가 낮은 암컷의 새끼를 빼앗아 숲속으로 데려가서 버리고, 새끼를 되찾으려는 어미를 쫓아내서 새끼가 굶어 죽게 만든다. 우수한 수컷과 짝짓기를 한 경쟁자 암컷의 유전자를 제거하기 위한 행위로 보인다. 이처럼 보노보 사회는 종종 묘사되는 것처럼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침팬지 사회의 권력 다툼이 단지 다른 형태의 전장으로 옮겨간 것에 불과하다.
- 여성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두 발로 걸으면서 질과 포궁 경부의 위치가 달라졌다. 질이 '엉덩이 쪽'에 존재하는 침팬지(사족 보행)와 달리 여성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질은 허리와 골반이 만나는 앞쪽으로 이동했다. 이런 생리적 변화는 정상위 자세를 더 자주 취할 수 있게 만들었다. 침팬지는 정상위로 짝짓기하지 않는다. 보노보도 약 15% 비율만 정상위로 짝짓기한다. 하지만 이 시점부터 정상위 자세가 점차 전체 짝짓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마주 보는 체위에서 앞쪽을 마찰하면 클리토리스가 자극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점만큼은 진화가 남긴 호재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질이 몸 앞쪽으로 이동하면서 남성의 생식기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음경골이 점차 줄어들어서 후배위를 할 때도 음경의 유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런 변화 덕분에 다양한 체위가 가능해졌다. 생리학적으로 볼 때 직립 보행을 하는 남성의 음경은 기승위 자세, 앉은 자세, 무릎을 끓은 자세,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아프리카 사바나를 여행하던 직립 보행 종에게 필수적이었을) 일어선 자세로 하는 짝짓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즉, 섹스의 집단 역학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섹스의 형태 자체는 다양해지기 시작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남성 사이의 치열한 경쟁은 여전히 계속되었기에 평균 추정된
짝짓기 시간은 분 단위가 아니라 초 단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강제적인 짝짓기가 빈번했을 가능성을 감안하면 초 단위의 섹스는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었을 것이다. 또 직립 보행은 여성의 평균 가슴 크기를 키웠다. 이전의 영장류는 유선의 크기가 비교적 작았고, 가슴이 성적 매력을 상징하기 보다는 수유를 하는 기능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예를 들어 침팬지의 가슴은 대체로 평평하고 처져 있으며, 인간 여성의 유방에 비해 지방 함량이 훨씬 적다. 성적 매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수컷 침팬지는 거의 예외 없이 '엉덩이에 끌리는 타입'이다. 이들은 암컷의 발정기를 보여주는 눈에 띄게 부풀어오른 엉덩이에 주목한다.
- 여성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가슴이 커지게 된 데에 더 그럴듯한 설명도 있다. 동아프리카 전역으로 먹이를 구하러 다니기 시작 했을 때 직립 보행을 한 덕분에 장거리 이동에 필요한 지방 비축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방 저장소는 주로 가슴, 엉덩 허벅지였다. 가슴 같은 지방 저장소는 아이에게 수유를 하면서 이동하기에 유용했다. 며칠 동안 먹이를 구하지 못해도 어머니는 잠시 굵주림을 견디며 자신의 지방을 태워서 모유를 생산했다
그러자 지방을 더 많이 축적할 수 있는 풍만한 가슴이 성선택 으로 선호되었다. 이에 따라 평균 가슴의 크기와 둥근 정도도 점차 커졌다. 남성은 장거리 이동 중에도 아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 는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신체 전반에 지방이 증가한 몸의 형태, 다시 말해 비만이 성 선택을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지방이 가습, 엉덩이. 골반 허벅지에 전략적으로 저장되어 있으면 장거리 이동에 도움이 되지만 지방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심장 및 호흡 기능이 저하된다 그러면 유목 생활에서 뒤처질 수 있다. 게다가 뒤처지는 것은 여성의 생존뿐 아니라 아이의 생존에도 치명적이었다. 특히 부성애에 기반한 양육이 거의 없는. 난교가 주를 이루는 오스트랄로피테
쿠스 사회에서는 더욱 그랬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날씬한 몸매와 잘록한 허리. 풍만한 가슴 적당히 살집이 붙은 엉덩이가 이상적인 신체 비율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체형은 매일 걸어서 이동하며 아이를 안아 젖을 먹이는 고된 생활을 견디기에 가장 적합했다. 그리고 아이의 생존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높였다
- 여성의 질투도 진화했다. 소수의 매력적이고 힘이 센 남성의 관심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여성과 벌이던 단순한 경쟁이 지위와 무관하게 짝의 성적 활동을 감시하는 양상으로 진화한 것이다. 낯선 여성이 누군가의 남성에게 다가가면 쫓아냈고, 남성의 시선이 다른 여성에게 머무르면 남성은 짝의 분노와 공격을 마주해야 했다.
남성은 여성과 짝짓기를 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높은 서열에 오를 필요가 없었고, 이는 다시 한번 호모 에렉투스의 공격성을 줄였다. 하위 서열인 남성도 이미 어떤 여성에게 '속해' 있었기에 충분히 다른 개체와 잘 지낼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여성의 질투는 우리 암컷 조상이 지난 1천2백 만 년 동안 그래왔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성적 주체성을 선사했다. 짝을 감시하는 일이 주로 수컷의 영역이었던 상황 즉. '소수의 공격적이고 멍청한 수컷들이 경쟁하며 수동적인 암컷 무리가 전리품으로 여겨지던 상황'이 끝났다. 여성 호모 에렉투스의 질투는 무리내 공격성을 종 전체로 고르고 완만하게 분산시켰다.
- 일부일처제로 짝이 더 고르게 분배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의 평균 매력도가 높아지지는 않았다. 미안하지만 이것이 바로 다윈주의의 냉정한 현실이다. 남성은 본능적으로 다양한 형태와 체형의 여성과 섹스하길 원하기 때문에 폭넓은 범위의 여성을 평균 이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여성은 전체 남성의 70~85%를 `평균 이하'라고 판단한다. 숫자상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지속된 치열한 수컷 간의 경쟁이 소수의 상위 남성에게만 높은 번식 성공 기회를 부여해온 결과다
아도니스. 같은 남성이 다소 흐리멍덩한 남성들 속에서 눈에 잘 띄는 건 당연하다. 최소 1천5백만 년 전부터 여성의 성적 선호는 이렇게 도발적이고 매력적인 형질을 식별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다행히도 이 가혹한 생물학적 현실에도 한 줄기 희망이 있다. 약 190만 년 전 일부일처제가 등장하면서 여성은 외모나 지위 외에도 다른 특성들을 성 선택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좋은 파트너로서 아이를 잘 돌보고 가족을 잘 돌보는 능력을 체크한 것이다.
- 수렵 채집 사회에서 여러 아내를 둔 남성은 높은 지위의 인물 그러니까 부족 지도자나 샤먼이다. 한편 대부분의 부족은 사회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 그러지 않으면 남녀 인구가 대략 50 대 50으로 나뉜 상황에서 너무 많은 남성이 좌절하고 고립되기 때문이다. 성적 질투는 부족의 결속력을 느슨하게 만든다. 따라서 수렵 채집 문화든 다른 문화든 한 남성이 여러 아내를 두는 일이 관행으로 나타나려면 강력한 권력이나 종교적 정당화가 반드시 따라 붙었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에도 남성들의 번식 성공률에는 불균형이 있던 것 같다. Y염색체 분석에 따르면 1만 2천 년 전 농경 문화가 도래하기 전에는 소수의 남성이 대부분의 여성을 임신시켰다. 이는 호모 에렉투스에게서 나타난 현상과 동일하며. 규모만 약간 줄었을 뿐이다. 다음은 이런 현상을 설명할 다양한 가설이다
* 불륜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결혼 전 여성들이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난잡한 섹스를 하며 매우 매력적인 남성에게 몰렸다
* 서열이 높은 남성들이 일부다처제로 너무 많은 아내를 독점해서 우리 계통수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 전쟁. 높은 남성 사망률, 적대 부족에 의한 여성 납치와 성노예화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 위의 상황들이 모두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많은 수럽 채집 사회의 남성이 유전자 풀에서 밀려났다. 일부일처제를 사회적으로 강제하고 아이의 진짜 생부를 확인하려는 수많은 시도에도 말이다
- 일반적으로 여성의 정치적 자본은 직접적인 명령이 아니라 부드러운 힘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여성 개개인이 매우 존중받는 수렵 채집 사회에서도 문화적으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었다. 이는 19세기의 서구 남성 중심주의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현대 및 모든 역사적 수렵 채집 사회에서 매우 확고하게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부족 문화를 둘러싼 환경이 적대적이고 호전적이며 척박하고 열악할수록 남성지배적이고, 심지어는 여성 혐오적인 문화적 태도가 더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수렵 채집 사회 사람들 사이의 이런 성 기반 역학은 2가지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첫째. 지속된 성적 이형성 때문에 남성은 무리 내에서 의견 불일치가 발생할 경우 주기적으로 물리적인 수단을 사용했다. 반면 여성은 그럴 수 없었다
둘째, 호모 사피엔스에게서 지속된 높은 수준의 공격성과 경쟁 때문에 남성이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성적 이형성과 여성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은 남성의 희생 본능으로 이어졌으며, 남성들(특히 낮은 지위의 남성)이 포식자를 방어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일처럼 위험하고 고통스럽고 폭력적이며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임무를 더 많이 맡게 되었다. '여성과 아이들 먼저라는 개념은 현대에 와서 자발적으로 등장한 게 아니다. 이는 역 사적으로 관찰된 그리고 오늘날의 수럽 채집 무리들에도 정신적으로 존재해 내려온 개념이다
-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정신병적 성향과 이타심은 종 모양의 곡선으로 균형을 이룬다. 한쪽 끝에는 극도로 정신병적이거나 마키아벨리적인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극도로 친절하고 타인의 감정에 잘 이입하는 사람이 있으며, 대부분은 그 중간쯤에 몰려 있다. 구석기 시대에 만약 당신이 지나치게 정신병적이었으면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기도 전에 추방되거나 살해당했을 것이고, 반대로 너무 이타적인 나머지 남에게 이용당할 정도였으면 역시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수럽 채집 시대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자비할 정도로 집요하게 추구하는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있었다면 오히려 번식에 유리했을 테다. 외로운 늑대처럼 살든 집단을 좌우하는 독재자처럼 행동했든 말이다(이 때문에 오늘날 권력이나 명성을 지닌 정치나 사업 같은 직종이 사이코패스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냉정한 사실을 전하겠다. 바로 사이코패스적∙소시오패스적∙반사회적 행위가 종종 번식을 성공시켰다는 사실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살인이나 성적 강압도 빈번하게 벌어지곤 했다
- 농업의 발명은 우리의 성생활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성은 재산과 연결되었고, 여성의 섹스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제한되었다. 성을 둘러싼 관행은 결국 조직화된 종교와 국가 법률의 명령에 종속되었다. 농경 시대가 되면서 일부다처제는 점차 억압되었고. 동성애는 범죄화되었으며. 결혼 제도 밖에서 이루어지는 쾌락을 위한 섹스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부끄러움, 불명예, 수치의 원천이 되었다.
수렵 채집 시대에 이미 다수가 채택한 관행이었던 일부일처제는 사회를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제도화되었다. 남성이 주도하는 가정, 충실하고 복종적인 아내, 그리고 임대료와 십일조, 세금을 내서 교회와 정부. 특권충의 금고를 채워줄 아이를 많이 탄생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가정을 만드는 데 기여하지 않는 모든 성적 관행은 무의미하다고 여겨졌고, 최악의 경우 사회 질서에 위협이 된다며 금지되었다











- 글로벌 사모편드들이 한국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주주 충실 의무를 명문화한 상법 개정안 통과 가능성과 배당세 개편, 자사주 의무 소각 등 정부가 추진하는 증시 부양 및 기업 거버넌스 개선 정책들 때문이다. 일본 시장이 거버넌스 개선을 통해 증시 부양에 성공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이들의 다음 타깃으로 IT, 뷰티. 콘텐츠 등 '글로벌 확장성'이 검증된 분야의 기업들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 같은 전망은 현실이 되고 있다. 2025년 10월 기준 EQT는 국내 굴지의 전사적 자원 관리ERP 기업인 더존비즈온 인수에 근접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EQT의 공개매수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점쳐진 다. 공개 매수가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더존비즈온 인수 규모는 1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한 글로벌 PE 관계자는 "최대주주 지분을 포함한 경영권 인수가 기본 목표지만,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적대적 M&A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해, 향후 국내 M&A 시장에서 글로벌 사모펀드의 활동 폭이 더욱 넓고 과감해질 것임을 시사했다
- 과거에는 사모편드가 잠재력 있는 브랜드를 발굴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 기업가치 제고를 통해 기업의 스토리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품력은 뛰어나지만 해외 마케팅 역량이 부족한 기업을 인수해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를 하고, 생산 설비가 부족하면 과감한 투자를 통해 생산 능력을 늘려주는 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삼양식품의 사례처럼 이미 성공을 거둔 기업들이 M&A를 통해 스스로의 성장 스토리를 다음 챕터로 이끌어가고 있다. 또한 JKL 사례처럼 사모편드들 역시 유형자산이 아닌 무형의 브랜드 IP 자체를 핵심 투자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결국 어떤 기업이 어떤 파트너(사모펀드 또는 다른 기업)를 만나 얼마나 설득력 있는 '글로벌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내는지가 향후 M&A 시장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 2024년에 이어 2025년에도 대기업발 자산 리밸런싱은 계속되었다. SK그룹은 여전히 계열사 매각과 합병을 지속 중이고, 다른 그룹들 역시 더욱 적극적으로 자산 유동화를 타진 중이다. 2024년 대기업 계열사 매물이 대대적으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2025년에는 보다 다양한 산업과 그룹에서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산업계 지각 변동 속에 소화되지 못하거나 추가로 나올 잠재 매물들은 여 전하다. 2025년에 이어 2026년에도 숨가쁜 자산 매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2025년 LG디스플레이 광저우 액정디스플레이 공장은 매각이 확정됐다. 2025년 4월 1일부로 광저우 대형 LCD 패널과 모들 공장의 재무제표가 분리돼 중국 TCL의 자회사 차이나스타로 공식 이전됐다. 매각 대금은 2조 2,466억 원이다. 회사에 따르면 당초 처분 예상 금액은 2조 300억 원 정도였지만 지난해 사업 결과 반영과 환율 영향으로 예상보다 약 10% 더 높은 금액을 수령했다
LG디스플레이에게 광저우LCD 공장은 상징적인 생산거점이었다. 2014년 가동을 시작한 이 공장은 8.5세대(2200 x2500mm) TV 용 LCD 패널 라인을 갖췄다. 최대 월 생산량은 도합 20만 장 수준으로 평가되는 초대형 LCD 생산기지였다.부지 33만m2, 연면적 12 만m2급 패널 공장에 모듈 공장∙기숙사∙협력사 단지를 더했다. 중국 프리미엄 TV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LG디스플레이가 야심 차게 건설한 전진기지였다.
광저우 LCD 공장 정리는 LG디스플레이의 대형 LCD 사업 정리와 함께 고부가 제품인 유기발광다이오드 중심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LCD는 중국 제조사들과의 단가 경쟁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LG디스플레이의 수익성을 잠식했다. 광저우에는 LCD 공장 뿐만 아니라 OLED 공장도 함께 운영 중인데. 이번 거래에서 OLED 생산라인은 제외됐다
- LG디스플레이가 큰 결단을 내린 와중에 LG그룹 계열사들 역시 분주하게 자산 매각을 단행하고 있다. LG화학은 여수 NCC 2공장 매각을 위해 쿠웨이트 PIC와 협상을 이어갔지만 끝내 결렬됐다. 다만 에스테틱사업부는 약 2,000억 원을 받고 VIG파트너스에 넘기면서 한숨을 돌렸다. LG생활건강은 음료 사업을 담당하는 해태 htb를 매각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벌였는데, 현재로서는 잠정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덩달아 LG생활건강의 주력 자회사인 코카콜라음료까지 매각설에 협싸였지만 해태htb와는달리 매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 AI 시대의 3가지 권력 법칙
AI 데이터센터 혁명은 다수 기업이 경쟁하는 수평적 시장이 아니라, 각 계층의 절대적 지배자가 다음 계층의 운명을 결정하는 명확한 수직적 권력 구조를 가졌다. 이 생태계를 지배하는 세 가지 성공 방정식, 즉 '게임의 률'은 다음과 같다
법칙 1. 룰을 만드는 자The Rule Maker
"우리가 가는 길이 곧길이 된다.
엔비디아NVIDIA의 독점적 표준화 전략을 상징하는 캐치프레이즈다. 생태계의 정점에는 '칩 설계자' 엔비디아가 있다. AI 칩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데이터센터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서 98%의 점유율을 기록한 엔비디아는 단순히 부품을 파는 회사가아니다. 엔비디아 '블랙웰' 칩의 전력 소모량과 발열량이 데이터 센터의 설계, 냉각 방식, 전력 인프라 규모까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산업 표준이다. AWS,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조차 엔비디아 칩을 확보 하기 위해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하며 줄을 서야 했다. AI 데이터센터 혁명은 사실상 엔비디아가 던진 기술적 과제를 나머지 산업 전체 가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법칙 2. 영토를 지배하는 자 The Empire Builder
'우리 생태계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라.' 하이퍼스케일러(AWS, 마이크로소프트, 구글)들의 플랫폼 종속 전쟁은 이 문구로 요약할 수 있다. 엔비디아 바로 아래 계층에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이퍼스케일러가 있다. 이들은 엔비디아 칩의 최대 구매자이자, AI 서비스의 최종 제공자로서 실제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점유율 싸움을 넘어 사용자를 자신들의 플랫폼 안에 가두려는 거대한 '영토 전쟁'인 셈이다
과거에는 콜로케이션 데이터센터를 임대, 운영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었지만 AI 시대에는 자체 구축 방식으로 전환됐다.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는 이유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년에만 105조 원을 투자하며 OpenAI의 기술을 자사 클라우드에 독점적으로 녹여내는 '선점 및 통합' 전략을 펼쳤다. AWS도 자체 AI칩인 트레이니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엔비디아 의존 탈피와 클라우드 최적화를 목표로 독립 및 수직계열화 전략으로 맞섰다
법칙 3. 왕을 결정하는 자 The Kingmaker
마지막 계충에는 왕의 운명을 결정하는 '킹메이커'들이 있다. 데이터센터가 전기를 먹는 하마가 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이 프로젝트 성패를 좌우하는 최우선 조건이 됐다. 과거에는 '을'이 었던 전력 회사가 이제는 핵심 파트너이자 '갑'으로 부상했다. 에퀴닉스Equinix 같은 데이터센터 전문기업은 하이퍼스케일러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여 '디지털 부동산 임대업'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AI 시대의 혈맥과 영토를 통제하는 실질적인 권력자로 지목된다
- 데이터센터는 이제 전통 인프라 자산의 성격을 넘어 성장형 자산으로 인식된다. 예측 가능한 장기 현금흐름 창출과 인플레이션 헤지 특성뿐만 아니라 향후 가치가 유의미하게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 덕분이다. 실제 글로벌 인프라 편드 등 기관투자자 자본이 이 분야에 대규모로 유입되고 있다. 자본의 움직임을 보면 AI의 폭발적 수요에 대한 시장의 강력한 확신을 엿볼 수 있다 글로벌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시장은 2022년 374억 달러 규모에서 2032년 3485억 달러까지 연평균 2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퀴닉스와 같은 글로벌 데이터센터 기업들은 싱가포르투자청과 5억 2,500만 달러 규모의 공동 투자를 진행하는 등 대규모 자본을 유치하여 인프라를 확장하고 있다. 이는 데이터 센터가 단순한 창고가 아닌 미래 산업의 핵심 동력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 현재 사모펀드의 차입 규제와 관련하여 국회에서 발의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사모펀드의 차입 한도를 기존 순자산액의 400%에서 200%로 대폭 축소했다. 또한 PE가 기업을 인수한 후 일정 기한 내 배당, 자사주 매입, 자본 매각 등의 형태로 자산을 유출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내용에 더해 내부 통제 및 공시 의무 강화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이와 같은 LBO 규제 강화는 사모펀드 업계에 여러 우려를 발생시킨다.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규제 준수를 위한 운영비용 증가다. LBO 규제가 도입될 경우 인수자금 조달 방안을 보다 보수적으로 짜야 하고, 특수목적법인과 펀드, 피인수 기업까지 포함한 내부통제와 보고 체계를 구축하려면 운용비용이 증가해 중소 운용사나 신규 진입자는 사실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컴플라이언스 비용은 펀드 규모가 작을수록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이 된다
-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가 사모편드 업계에 미치는 또 다른 중대한 영향은 경영권 방어 수단의 실질적 소멸이다. 2000년 스위스 다국적 기업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 공격, 2003년 소버린의 SK 공격, 2018년 엘리엇의 현대자동차 공격 등에서 자기주식을 활용해 경영권을 방어한 전례가 있다. 그런데 자기주식 소각이 의무화되면 이러한 방어막이 사라지게 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 1주만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특정 주식에 의결권을 더 많이 배정하는 차등의결권. 적대적 인수합병 때 기존 주주가 싼값에 신주를 매수할 수 있는 포이즌필 등 외국에서는 일반화된 제도 자체가 없거나 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주식마저 활용할 수 없게 되면. 국내 기업들은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위험이 크다. 사모편드 업계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이중의 딜레마를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인수한 기업이 다른 적대적 인수자들의 공격에 취약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도 기존 경영진이나 대주주들의 저항을 극복하기 어려워진다. 기업 오너들이 주주 환원보다는 단순 자기주식 매입으로 경영권 강화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이것이 PE의 M&A 전략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 2025년 하반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논의는 사모편드 업계에게 상당한 도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주주환원 확대와 기업 거버넌스 개선이라는 명분하에 추진되고 있는 이러한 규제들이 실제로는 PE의 투자 전략과 수익성에 근본적인 타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차입매수 한도 축소,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등과 맞물려 진행되는 자기주식 규제는 사모 편드 업계에 삼중고를 안겨주고 있다. 투자 자금 조달의 제약, 인수 전략의 제한. 그리고 인수 후 자본 구조 최적화 수단의 박탈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가 모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과도한 레버리지를 통한 무분별한 기업 인수나 단기 수익 추구를 위한 자산 매각 등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사모편드 업계가 재무적 엔지니어링보다는 실질적 기업가치 향상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주주보호와 시장 효율성, 그리고 사모펀드 업계의 건전한 발전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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