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착각 환각

과학 2025. 3. 19. 07:07

- 코에 존재하는 후각수용체의 종류는 약 400종. 우리 몸에 존재하는 수용체 중 가장 많은 것이 G수용체이고 대략 800종 정도가 있는데, 그중 절반이 후각에 사용됨. 우리 몸의 32000종에 불과한 유전자 중 후각에만 무려 400개가 사용된다.
G수용체는 세포막에 존재하면서 세포 안과 밖을 7번 통과하는 것이 특징. 그래서 7TM수용체라고도 함. G단백질은 자물쇠에 해당하고 G수용체는자물쇠의 열쇠구멍과 비슷한 역할을 함. G수용체는 기본형태와 작동원리를 같지만,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종류에 따라 입체적 모양이 변함. 한마디로 열쇠구멍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 열쇠구멍이 달라지니 열쇠 즉, 결합가능한 분자도 달라짐. 이런 G수용체는 후각세포의 세포막에서 계속 꿈틀거리다가 모양이 일치하는 분자와 만나면 결합하여 ON상태로 바뀐다. 전기적 신호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감각이 시작된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G수용체는 약 800종. 이중 절반은 후각에 쓰이고, 쓴맛에 25종, 단맛과 감칠맛에 3종이 쓰임. 그런데 400종의 후각수용체를 딱 분자 한가지만 결합할 정도로 특별한 형태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상호작용이 심하다.

- 맛과 관련된 감각은 오미 말고도 많다.
혀에서 느껴지는 것은 오미 말고도 많음. 떫은맛은 쓴맛과 유사하지만 감각기작은 완전히 상이. 탄닌 같은 물질이 혀의 침 단백질과 반응하고 상피조직에 결합하여 수축 등이 일어나 느껴지는 감각. 매운맛은 캡사이신이 고온을 감각하는 온도수용체와 결합하기 때문이고, 마라의 얼얼함은 산쇼율이 촉각(진동) 수용체까지 자극하기 때문. 그럼에도 오미의 감각수용체만 다룬 것은 오미만 온전히 이해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

- 단맛은 포용하는 힘이 크가. 음식에 단순히 달콤함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풍미를 높이는 작용을 하여 익숙하지 않은 음식도 쉽게 친숙하게 해준다. 신맛은 그 자체로는 날카롭지만, 단맛과 어우러지면 매력적으로 되고, 단맛, 짠맛, 감칠맛을섬세하게 드러나게 함. 우리 몸의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액의 주성분답게 피가 흐르듯 맛도 조화롭게 흐르게 하여 맛의 판도를 바꾼다. 감칠맛은 자체로는 밍밍하다는악평도 받지만 다른 맛과 어울리면 음식의 풍미를 깊게 하고, 심지어 쓴맛마저 다른 맛과 조화를 이루면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여 고급스러운 맛으로 대접받기도 함. 이런 맛의 복합적 의미는 감각 자체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다.

- 시각을 설명할 때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뇌로 본다, 눈의 신경세포부터 뇌이다, 의학적으로 눈은 튀언온 뇌이다, 시각은 가상의 세계다, 와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정밀하고 사실적이며 입체적인 영상은 단순히 눈에 들어온 정보를 거울에 비춘 것처럼 뇌에 투사한 영상이 아니라 뇌가 감각을 참조해 일일이 그린 그림이다. 더구나 눈을 통해 들어온 정보 그대로가 아니라 그 정보를 해석해 적당히 보정하고 적절한 자료를 추가하여 실제와 똑같은 것으로 보이게 한 일종의 컴퓨터그래픽, 즉 뉴로그래픽이다. 시각은 뇌가 감각을 참고해 일일이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만 납득해도 좋다.

- 빛은 같은 햇빛이라도 아침, 한낮, 저녁 모두 다르고 형광등, 백열등 같은 광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색은 빛의 흡수도이기 때문에 같은 희종이라도 광원에 따라 색이 달라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 뇌는 조명이 달라져도 흰색은 흰색으로 피부색은 피부색으로 볼 수 있게 조작한다. 예전 카메라는 이처럼 화이트밸런스를 조절해주는 기능이 없어서 사실 그대로 빛에 따라 색이 달라졌고, 요즘에야 오토화이트밸런스 기능이 추가되어 흰색이 흰색으로 보이게 됨. 이처럼 우리눈의 화이트밸런스 기능은 정말 탁웛다. 우리 뇌는 대상물에서 순식간에 흰색으로 보여야 할 물건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흰색으로 보정하는 순간, 다른 색들도 자동으로 보정된다.
트루톤은 애플이 16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실시간 색상보정기술. 사람의 눈은 주변환경의 색온도에 순응하는 반면, 디스플레이 화면은 항상 일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색감에 이질감이 생기는데, 트루톤은 모니터에 주변광센서를 붙여 색온도를 측정하여 실시간으로 주변의 색온도에 맞게 디스플레이를 조정. 조작된 인간의 시각에 맞추어 디스플레이 색을 조작하고 이를 트루톤이라 부르는 것.

- 우리는 귀로 외부의 소리를 직접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소리는 바깥귀의 일부인 고막을 흔들뿐이고, 고막에 연결된 뼈(이소골)가 감각하기 적합한 진동을 만들어 그 진동이 달팽이관을 타고 흐른다. 그러면 달팽이관에 다양한 길이를 가진 청각세포가 포진되어 있다고 해당주파수에 공명하기 적당한 청각세포가 활성화되어 전기적 신호가 발생. 그리고 그 신호를 바탕으로 뇌가 소리를 만들어야 우리가 들을 수 있다. 뇌 안에 소리를 만드는 장치가 있기 때문에 환청이 가능하고, 그 소리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리와 전혀 차이가 없다. 더구나 소리는 듣자마자 사라지므로 사실 여부를 따질 방법이 없어서 환청이 가장 고약한 환각이다. 이런 환각은 촉각(환촉)에도 존재한다.

- 시각의 따라하기 방식은 시각을 통해 세상을 지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하기 장치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지각할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고, 착시와 환시도 존재할 수 있다. 눈의 망막에는 1억개가 넘는 시각세포가 있지만, 시상의 외측슬상핵을 경유해 뇌로 전달되는 것은 100-120만개에 불과. 그 과정에 이미 신호가 1차 가공되고, 시각의 중계기인 외측슬상핵에는 뇌에서 보내온 40-900만 화소가 추가되어 1차 시각피질인 V1영역에 500-1000만 화소의 시각정보가 투사된다. 눈에서 온 정보보다 4-10배나 많은, 뇌에서 온 정보와 혼합되어 시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시각, 환각, 꿈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눈에서 오는 신호는 고작 10-20%이고, 나머지는 뇌에서 만든 신호를 바탕으로 시각이 시작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1억 2천만화소의 정보를 뇌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압축하여 100만으로 줄였는데, 거기에 10-20% 정도의 보정정보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뇌에서 만든 시각정보 80-90%에 눈에서 온 정보를 고작 10-20% 혼합하는 형태니 말이다.

- 지각을 위해서는 환각능력이 필요하다.
뇌는 거대한 신경세포 네트워크일 뿐, 뇌 안에 특별한 의식장치도 주인공도 없다. 뇌에는 감각세포에서 보내온 정보를 바탕으로 세상을 재현하는 회로가 있다. 그 회로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우리 눈에는 분명 맹점이 있지만, 뇌가 워낙 잘 채워넣기에 맹점이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른다. 눈은 맹점뿐 아니라 시각전체가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주변시, 깜박임, 화이트밸런스, 고계조 등 무수한 보정을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착각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감각을 참조해 뇌가 그린 것이다.
세상을 그대로 뇌 안에 그리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그 장치를 통해 꿈도 꾸고, 때로는 환각도 경험한다. 시각, 꿈, 환각이 완전히 동일한 장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꿈과 환각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환각은 유별난 것이 아니다. 단지 평소에는 감각의 신호만 그대로 따라하도록 완벽하게 통제가 될 뿐이다. 시각은 감각과 일치하는 환각이고, 꿈은 눈을 감고 자면서 보는 환각이고, 환각은 눈뜨고 보는 꿈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뇌가 그린 그림이고, 착시또한 뇌가 판단한 가장 그럴듯한 현실이다. 그러니 착시나 환각이 일어나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고, 평소에 그것들이 완벽하게 억제되는 게 오힐 특별한 것이다. 뇌에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자체가 착각이다.

- 미각은 후각보다 훨씬 독립적이지만 미각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단맛마저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감각은 원래 작은 분자의 일부를 감각하는 것인데, 거대한 단백질마저 단맛으로 착각할 정도다. 모넬린, 토마틴, 브라제인 같은 단백질은 설탕보다 수천배 이상 달기도 하다. 이런 거대 단백질이 감미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정상적인 감각수용체의 결합위치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수용체 자체에 달라붙어 활성화하기 때문.
이와 반대로 단맛으르 억제하는 단백질도 있다. 김네마산은 김네마 실베스터의 잎에서 발견된 단맛 억제성분인데, 단맛 수용체의 T1R3 부위에 결합하여 수용체가 다른 단맛 물질과 결합하는 것을 막는다. 김네마산은 다시 떨어져 나가지만, 단맛회복에 10분 이상 걸린다. 락티솔은 볶은 아라비카 커피콩에서 검출되는데, 100-150ppm의 적은 양으로도 설탕과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의 단맛을 크게 억제한다. 락티솔을 첨가하면 12% 설탕액이 4%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아세설팜칼륨, 설탕, 포도당, 사카린에서 감미의 억제작용은 김네마산보다 떨어지고 인간의 T1R3에는 작용하지만 설치류에는 작용하지 않음. 이밖에 호돌신과 지지핀도 감미억제기능을 갖고 있지만, 김네마산보다는 약하다. 미각의 가장 기본을 다루는 단맛에도 상당히 많은 착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 신맛을 단맛으로 느낄수도 있다.
네오쿨린이나 미라쿨린같은 단백질은 신맛을 단맛으로 바꾸기도 함. 미라쿨린은 미라클 후르츠 과육에 함유된 아미노산이 191개 결합한 당단백질이며, 그 자체로는 달지 않다. 그런데 먹은 뒤 최대 1시간 동안 신맛을 단맛으로 바꾸는 재미있는 기능을 한다. 단맛 수용체가 활성화되지 않아 단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산성상태가 되면 pH가 낮아니며 단백질의 특성이 변해 단맛수용체를 강하게 활성화한다. 신맛을 첨가하면 마치 그 맛때문에 단맛이 증가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 코로 숨을 들이키면서 맡는 향기와 음식을 먹을 때 목뒤로 휘발하면서 코로 느껴지는 향기는 다름. 체온에 의해 음식의 온도가 놀라가 향기물질의 휘발성이 증가하고 침과 반응해 pH가 변하면서 휘발성이 변하고, 미각과 연합하면서 다양한 상호작용이 발생해서 들숨과 향이 달라질 수 있다.
보통의 동물은 들숨을 통해 향기를 탐색하는 기능이 발달해 있고, 인간만이 날숨의 경로를 통해 음식의 품질을 판단하는 능력이 발전해서 대체로 입에서 목뒤로 넘어가는 향을 강하게 느낀다. 그래서 커피향이 좋은데 맛은 기대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있고, 발효한 식품은 단백질에서 만들어지는 강력한 향 때문에 냄새가 고약하지만, 발효로 만들어진 분해물때문에 맛이 매력적인 경우도 많다.

- 뇌의 놀라운 계산속도의 비결에 대해 제프 호킨스는 '뇌는 계산하지 않고 기억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컴퓨터로 지능을 모방하려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한 원인이 뇌의 작동을 컴퓨터의 작동방식과 비슷하게 파악하려고 한 오류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 뇌의 작동방식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달라서 컴퓨터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져도 기존의 알고리즘으로는 모방이 불가능하다는것. 그는 뇌는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고 기억의 패턴으로부터 예측한다고 설명한다.
그가 꼽은 뇌의 작동방식의 핵심원리는 신피질에 있다. 신피질은 독특한 여러개의 계층구조를 가진다. 단순히 기존 신경세포의 모임이 아니라 각각 신경세포가 조직화된 작은 뇌 회로라는 말이다. 각 계층에서 일어나는 일은 근본적으로 모두 동일하다. 입력된 정보를 패턴으로 받아 상위계층에 전달하고, 상위계층의 예측을 피드백으로 받기도 한다. 이러한 계층이 6개 층으로 되어 있다. 그는 6층으로 이루어진 구조가 어떻게 기억을 형성하고 패턴을 만들고 예측을 하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인간의 뇌가 발달한 것은 크기가 커서가 아니라 이런 탁월한 피드백 구조를 가진 신피질이 많기 때문.
인간의 뇌에서 기억한다는 예측한다와 거의 같은 말이다. 그 증거로 뉴런들은 실제로 감각 입력을 받기에 앞서 미리 활성을 띤다고 한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다음 곡조를 예상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예측하는데 얼마나 쉽고 정확히 예측하는지의 차이만 있는 셈. 그러니 지능은 세계의 패턴을 이해하고 깅거하고 예측하는 능력으로 측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측이 먼저고 감각으로 확인하는 것은 나중이라 생각하는 것이 뇌의 작동원리를 파악하는 데 효과적임. 모든 감각에는 이미 뇌의 판단(예측0이 반영되어 있으니 세상에 순수한 눈은 없는 것이다. 인간의 동기와 가치가 물든 해석이다.
뇌의 가장 큰 역할은 기억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기억의 목적은 조정, 즉 예측이 추가된 출력을 위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로돌포 이나스는 꿈꾸는 기계의 진화에서 '뇌란 변화하는 환경에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곤이다.' 라고 말한다. 사람의 뇌는 과거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100% 다 기억하여 저장하지 않는다. 특징적인 것들이나 개념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다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기억을 꺼낼 때 조합해서 내어준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의 조합은 과거에 실제 벌어진 일만 가지고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현상에 영향받은 일종의 조작된 과거를 보여준다. 그래서 기억의 조작은 생각보다 쉬우며, 기억의 진위는 검증하기 어렵다.

- 맛에서도 이런 예측은 무한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멘톤이라는 향기성분이 들어간 껌을 씹기 시작하면 2분정도 지나며 설탕의 농도가 떨어지기 시작. 이때 실제 향의 양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씹는 사람은 향이 급격히 약해졌다고 느낀다. 설탕이 양이 많고 맛에 더 주도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설탕이 줄어들면 향도 줄어들었을 것이라 뇌가 예측하고 한동안 그렇게 지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화를 느끼는 강도가 향보다는 설탕의 농도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껌의 향기가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향의 지속성을 높이는 것보다 감미의 지속성을 높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 우리는 감각과 지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 간격은 좁다.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함. 시각은 원래 장면과 장면이 스냅사진처럼 끊겨서 전송되는데, 우리가 현시을 끊김이 없는 동영상처럼 볼 수 있는 것은 그 사이를 예측(지각)을 통해 미리 채워넣기 때문. 지각과 감각이 동시에 일치되게 일어나는 것이다. 감각과 지각 중에 어떤 것이 먼저 일어나는지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와 같은 질문이라 굳이 그 순서를 따질 필요는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 뇌에 주인은 없다. 뇌는 신경세포의 네트워크일 뿐, 우리 뇌 안에 주인은 따로 있지 않다. 뇌의 한가운데 앉아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난쟁이같은 의식기관은 없는 것이다. 과거에는 감각 입력이 모이고 통합되고 상영되는 내적 자아의 공간이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뇌에 그런 장소가 없으며, 의식은 뇌의 정보가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분산적으로 처리되고, 연속적으로 생성, 편지되는 이야기들의 흐름같은 것일뿐이다. 각각의 모듈은 독립적으로 처리하고 결과만 공유한다. 그리고 고집이 정말 세고, 의식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보통 자신을 '단일한 의식을 가진 행위자'라고 느낌. 데닛의 설명에 따르면, 그런 착각에 빠지는 이유는 뇌에서 수많은 원고(또는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처리되고, 그 과정에서 하나의 이야기만 채택되기 때문. 미국 드라마 제작은 한 편의 에피소드를 위해 여러 명의 작가가 각자의 스토리로 경쟁하고 경합을 통해 최고의 스토리가 선정되면 나머지 모든 작가가 합류해 세련되게 다듬는다고 한다. 우리의 뇌도 무수한 선택이 가능하지만, 기억이 만든 뇌의 회로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대로 워낙 순식간에 적절한 인과관계로 매끈하게 이어지므로 우리는 마치 단일한 의식 즉, 내부에 모든 것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작은 난쟁이가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유롭게 생각한다고 착각하지만, 경험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시냅스 경로 가운데 순식간에 한 가지가 선택되는 것에 불과함.

- 르네상스시대까지 빵은 주로 호밀로 만들어짐. 여기에는 맥각균이 기생하는데, 이것은 알칼로이드 물질을 분비한다. 그래서 고용량으 맥각을 섭취하면 온몸이 타는 듯한 고통을 받으며 죽기도 하지만, 저용량의 맥각은 강력한 환각효과를 발휘. 14-17세기 유럽문헌에 등장하는 무도병은 맥각이 만든 환각 때문에 광란의 춤을 추어서 생긴 현상이다.
이런 천연 약물에 의한 환각이 14세기 중반에서 18세기 후반에 걸쳐 수십만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함. 중세 마녀사냥 시대에 뻔히 족을 줄 알면서도 고문을 하기도 전에 스스로 마녀라 고백하는 사례가 발생. 마녀로 몰린 여자는 약초술사가 가장 많았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물질 중에 환각을 일으키는 물질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아트로핀과 스코폴라민이 있는데, 물에 잘 녹지 않아 기름에 녹여 요즘의 패치처럼 피부에 바르면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피부 중에서 약물 흡수가 가장 잘 되는 부분이 얇고 밑에 혈관이 흐르는 부위다. 그래서 약초술사는 마법 약을 온몸에 바르거나 빗자루의 긴 손잡이 부분에 바르고 그 위에 걸터앉아 아트로핀가 스코폴라민 함유 혼합물을 생식기 점막에 문질렀다. 
그런 그녀들이 실제 빗자루를 타고 악마의 연회에 갔을리는 만무하지만, 하늘을 하는 환각에는 쉽게 빠졌다. 스코폴라민가 아트로핀이 만드는 환각의 대표적 특징이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떨어지는 느낌, 왜곡된 시야, 도취감,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느낌, 악마와의 조우 등이라고 함. 더구나 이 증상의 마지막 단계는 거의 혼수상태와 같은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당시 여성들의 삶은 대단히 고단했고, 질병, 가난, 죽음이 언제나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런데 이런 환각에 빠져 몇 시간의 자유를 누리다 다음날 아침, 자신들의 침대에서 아무 탈없이 깨어나는 상황은 대단히 유혹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 중에는 그것이 환각인지 실제인지 전혀 구분도 못하고 악마의 파티에 참여한 마녀라고 자백하는 사람도 있었다.

- 결국 억제야말로 우리 뇌가 의미있게 작동하는 핵심기능이고, 그렇게 막강안 환각능력을 거의 완벽하게 억제할 수 있는 감각고 감정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지난 수백년 동안 그렇게 어마어마한 환각장치로 세상을 보면서 그냥 눈으로 세상을 본다고 착각했으니 우리의 환각능력은 대체 얼마나 뛰어난 것일까? 우리는 이처럼 실로 막대한 환각능력을 갖고 있지만 평생 단 한번도 우리의 의지대로 마음껏 써보기는커녕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 올리버 색스가 관찰한 환자의 마지막 환각...
나는 양로원과 요양원에서 일하는 동안, 의식이 맑고 정신이 멀쩡한 환자들이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낄 때 환각을 경험한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뭉클함을 느끼곤 한다. 로잘리는 샤를보네 증후군을 가진 아주 연로한 시각장애인 할머니였다. 그녀가 병상에 누워서 곧 죽으리라 생각했을 때 그녀의 어머니가 환영으로 나타났고, 천국에서 그녀를 맞이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환각은 평소에 겪은 샤를보네 증후군 환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다중감각적이었고, 개인적이었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흠뻑 빠져 스며들어 있었다. 보통의 단순한 환각은 자신과 관련이 없고, 어떤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내가 아는 바로는 다른 환자들, 평소에 특별히 환각을 경험하지 않은 환자들도 그과 비슷한 임종환각을 겪는다. 그러한 환각이 그들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환각인 셈이다.

- 향은 뇌의 해석이다.
미각과 후각도 엉성한 정보로부터 뭔가 종합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하지만 시각만큼 정교하지는 못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는 작업이 더 많다. 그래서 더 많은 예측이 들어가고 경험과 환경, 언어와 관념 등이 만든 첫인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시각에도 물론 많은 감정이 개입하지만 그래도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한다. 하지만 후각은 정보가 불충분해서인지 자꾸 정보 이상의 감정적 판단을 한다. 향기를 그 자체 그대로 두려 하지 않고 좋은 향인지 수상한 향인지 분류하고 판단하려 하는 것이다. 사실 향은 워낙 그 양이 적어서 그 자체로는 이미 이취도 아니고 해롭거나 유익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인데도 그렇다.
우리는 수많은 향기성분의 칵테일에서 뭔가의 특징을 드러내는 힌트를 찾으면 그것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짐작하고 비교하고, 모자란 부분은 적당히 채워 넣으면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동시에 좋고 싫음도 판단한다.

- 맛이 말을 만들고, 말이 맛을 만든다
위스키나 와인의 짠맛 또는 미네랄리티는 무엇일까? 특정 와인이나 위스키에는 간혹 짠맛이 느껴지는데,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위스키에서 실제 짠맛ㅇㄹ 내는 인자는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위스키에서 나는 짠맛은 신맛과 황을 포함한 향이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착시. 감각은 생존을 위한 예측과 편견까지 포괄하고 있어 어떤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착시가 흔히 일어나기 때문.
헝가리 작가 벨라 함바스는 45년 와인의 철학이라는 책을 통해 '고유의 환경에서 생산된 와인은 모방할 수 없는 특유의 미네랄 풍미를 가진다'고 주장. 이를테면 모래토양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은 아주 작은 별 같은 모양의 알갱이로 우리 혈관을 채우고 이 알갱이가 은하수처럼 혈액 속에서 춤춘다는 것이다. 와인에서 미네랄리티라는 용어는 70-80년대 등장했으며, 20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됨. 그리고 지금은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 중 하나.
와인은 테루아를 강조하고, 그 단어가 갖는 긍정적 이미지와 은유적 모호성 때문에 더 인기를 끈다. 물론 소량의 미네랄은 분명 와인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맛으로 느껴질만큼 충분한 양은 아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미네랄은 그 자체로는 좋은 맛도 아님. 결국 미네랄리티의 실체가 무엇이든 말 그대로 포도농장의 돌이나 토양속 미네랄의 맛일 수는 없다. 오히려 정신적 연상인 것이다. 단지 그것이 적절한 은유여서 많은 사람이 공간할 수 있다면 적절한 용어가 된다. 그리고 그 말 덕분에 와인에서 미네랄리티를 더 잘 느끼게 된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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