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읽기 독서법

인문 2020. 9. 25. 21:31

누군가 '고전'이란 누구나 책 제목을 알고 있지만, 제대로 읽은 사람은 드문 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고전보다는 주로 실용서,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게 되는 게 현실이다

 

이 책은 자녀들에게 고전 읽기 독서를 교육하는 방법에 대해 실용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고전을 읽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읽지 않고, 생각하지 않은 내용을 어떻게 자녀들에게 교육할 수 있겠는가.

 

고전은 수백년 이상, 혹은 천년 이상 인류의 머릿 속에 남아 있는 지혜의 보고다. 고전은 삶을 단단하게 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밖에 고전읽기의 장점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자기를 성찰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
*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 나만의 중심을 잡을 수 있다.
* 교양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 중 '나만의 중심잡기'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린 자녀들이 반드시 가져야할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고전독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고전을 읽어야 하는데, 무작정 읽는 것보다 전략적으로 단계별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1) 먼저 부모가 읽되, 아이와 함께 볼 부분을 정리한다
(2)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략을 수립한다
(3) 아이가 읽고 싶다고 할 때까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4)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난 뒤에 상상력, 생각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한다
(5) 읽은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게 한다.

 

고전에 대해 부담없이 재미있게 접근하게 만드는 실용적인 방법 4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호기심을 자극하라 :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급함을 버리는 것이다. 성공률이 높지 않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하고 싶다고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도해 보고 실패한 방식은 버리고, 아이가 어떨 때 호기심을 갖게 되는지 일기를 쓰면서 연구해야 한다
(2) 질문하라 : 스스로 생각한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예를 들어 주제, 생활속에서 연결되는 점, 읽으면서 느낀 감정, 다른 컨텐츠와 연결할 수 있는 사항, 변화를 유도하는 질문을 해야 한다.
(3) 연결독서로 무한확장하라 : 주제와 연관된 다른 책을 읽거나, 등장인물, 작가를 연결시킬 수도 있다. 사전이나 도감 속에서 고전에 나온 내용을 찾아보거나, 다른 관점으로 서술된 책을 비교해서 읽을 수도 있다.
(4) 필사하라 : 책 전체가 아니더라도 일부만이라도 필사해 보면,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해 조용히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책의 내용을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 수 있다.

 

 

- 고전 독서를 통해서 논리력, 사고력 등을 기르는 것이 도움은 됩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데 결정적인 것은 본인의 의지, 경험과 실천이 아닐까요? 요컨대 고전 독서가 무슨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전을 읽는다고 당장 천재가 되는 것도,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고전 독서가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초체력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독서'만' 해서는 무엇인가를 이룰 수 없습니다. 고전 독서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인간에 대한 이해 를 깊게 하면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 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간 정신은 타인의 생각을 소유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만의 판단기준 을 세우고 자신만의 생각을 생산함으로써 비로소 참된 자유를 얻는다.” (타고르)
-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는 주나라의 힘이 쇠약해지고, 제후들이 난립하면서 서로 치고받고 싸우던 시기입니다. 주나라가 견융세력의 침략을 받아서 원래 수도였던 호경(서안)에서 낙읍(낙양)으로 동천, 즉 동쪽으로 천도를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동주'라고 합니다. 주나라가 천도한 기원전 770년부터 진시황에 의해서 기원전 221년에 통일되기 전까지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합니다. 춘추시대(BC 770~BC 403)는 그중 앞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축구 경기로 치면 전반전이죠.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나눌 때 춘추시대의 강국 진나라가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 이렇게 3국으로 분열된 시점을 기준으로 잡습니다. 춘추시대가 대략 370년 정도 되고, 전국시대가 약 200년 정도 됩니다. 공자는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입니다. 노나라는 여러 제후국들 중에 서도 국력이 약한 편에 속했습니다. 춘추시대에는 제후들 사이에 회맹會盟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회맹은 제후국 중 가장 힘이 센 나라가 주관했습니다. 중원의 질서유지를 위한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회맹에서 주 왕실을 명목상 받드는 척하면서 맹주인 제후국 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외교적인 실리를 취했던 것이죠. 이 회맹의 맹주를 '춘추오패'라고 했습니다. 춘추오패는 제나라의 환공, 진나라의 문공, 초나라의 장왕, 오나라의 합려, 월나라의 구천입니다. 노나라는 춘추오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힘이 약한 작은 나라였던 것입니다. 공자는 이 시기를 혼란의 시대라고 보았습니다. 공자의 눈에 춘추시대는 하은 주로 이어 내려져오던 성인정치의 정통성이 훼손되고, 이익에 따라 제후국들끼리 서로 싸우는 난세였던 것입니다. 제후들이 서로 죽이고 싸우기를 밥 먹듯이 하는 시대에 공자는 주나라의 예를 다시 세우고 인을 주장했습니다. 당장 눈앞의 부국강병을 원하던 제 후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였던 것이죠. 공자의 눈에 비친 제후들은 소인배였을 테고, 제후들 눈에 공자는 입만 살아있는 이상주의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 정말 중요한 것을 보려면 판단을 중지하고 있는 그대로 천천히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뱀을 모자로 보는 이유는 대체적인 특징만 보고 그것을 뱀이라고 판단해버리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중요한 것, 본질을 보려면 판단중지의 여유와 멈춤이 필요합니다. 대상을 내가 가진 편견이나 잣대로 결론 내려버리지 말고 어린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온 힘을 다해 살펴봐야 합니다.
- 좁은 문, 지상의 양식으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인간의 행복은 자유 속에 있지 않고 의무를 받아들이는 데 있음을 밝혀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라고 말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리비에르는 강한 의지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자기 초월적인 인물입니다. 생텍쥐페리는 허영이나 인정욕구, 권위 등 자기 자신의 일에만 갇혀 있는 어른들의 모습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 았습니다. 그보다 자신의 의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위해 자기를 이겨나가는 모습에 더 큰 가치를 두었습니다.
- “농구선수로서나 한 개인으로서나 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엄청나게 노력한 결과이다. '나'라는 오렌지에서 한 방울도 남지 않도록 모든것을 짜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결 따위는 없다 그저 연습만 했을 뿐이다.”
코비 브라이언트
- 죽어가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삶을 살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평범하기보다 비범하려고 해야 합니다. 평균이 아닌 탁월함을 추구해야합니다. 아이들에게 평범함을 강요하지 말고 내 아이만의 특별함과 탁 월함에 주목해보세요.
- 아버지의 부재는 소년을 어른으로 만듭니다. 왜 그럴까요? 아버지라는 존재를 한번 떠올려보세요. 어떤 이미지인가요? 개인적으 로 차이는 좀 있겠지만 '아버지' 하면 대체로 내가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주는 분,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사람, 외부의 세파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바위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이렇게 멋진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강한 아버지는 자식들의 독립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 다. 만약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가지 않고 텔레마코스와 계속 함께했다면 어땠을까요? 너무 훌륭한 아버지의 후광에 가려 텔레마코스는 제대로 된 남자로 자라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나를 보호해주던 아버지의 부재가 텔레마코스의 성장에는 약이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대할 때도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면 좋겠습니다.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들은 그대를 통하여 왔지만 그대에게서 온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과 함께 있지만, 그들이 당신에게 속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들은 사랑을 주어야 하지만 당신들의 생각들을 강요해서는 아니 되리니 (중략)
아이들은 내 소유가 아닙니다. 내 몸을 통해 왔지만, 나에게 속한 존재가 아닙니다. 아이들 나름의 생각이 있고 이 세상에 온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삶을 체험하고, 성장하고,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아이들에게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신체적인 폭력만큼이나 끔찍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부모의 부재 -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것-가 자신만의 생각을 가진 성숙한 아이를 만들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 공중곡예사들이 외줄타기를 할 때 가장 많이 떨어지는 건 언제일까요? 이제 막 줄 위에 올라가서 처음 시작할 때일까요? 외줄의 중간지점을 통과할 때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외줄을 거의 다 타고 마지막 한두 걸음을 내딛으면 되는 바로 그때 가장 많은 실수를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방심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나 한창 줄타기를 할 때는 중심을 잘 잡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잘난 체하거나 방심하면 망신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우리 아이들도 어떤 경우에도 교만해지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자신감과 교만함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감은 나 자신을 믿는 마음으로, 한계를 극복하면서 일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자신감은 꼭 가져야겠죠. 하지만 교만함은 “이제됐다.”, “역시 나는 다른 사람보다 잘났어.” 라는 상대적인 우월감입니다. 비교하는 마음이죠. 이렇게 비교하는 마음은 모든 것을 망치게 합니다. 마음속에서는 절대평가만을 해야 합니다. 상대평가는 의미 없습니다.
-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에게 애인이 둘 있었는데, 한 명은 젊고 한 명은 늙었다. 나이 많은 여자는 연하의 남자를 가까이하는 것이 창피해서 남자가 찾아올 때마다 늘 남자의 검은 머리를 뽑곤 했다. 한편 젊은 여자는 애인이 늙은 것이 싫어서 그의 흰머리를 뽑았다. 그리하여 그는 두 여자에게 번갈아 머리털이 뽑혀 대머리가 되었다.
- 영재교육의 아버지 칼 비테 목사는 아이에게 생활력을 길러주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아들이 일곱 살 때 하루는 엄마가 몸이 아파 누워 있었습니다. 칼 비테 목사는 외출 중이었죠. 아침에 눈을 뜬 아이는 엄마는 누워 있고, 자신은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마냥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집에 돌아온 칼 비테는 가족들을 위 해 멋지게 요리를 합니다. 이것을 보고 그의 아들은 “많이 배운 사람은 요리를 못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칼 비테 목사는 “난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기본적인 일상생활에도 충실하길 바란단다. 머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생활력이 없는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라고 대답했습니다. 자녀교육에서도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 앞가림을 하는 아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자기 일을 스스로 하지 않고 항상 부모가 옆에서 붙어 있어야 하는 아이는 커서도 의존적이 됩니다. 당장 생활을 위해 결정해야 하는 작은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자기 발밑의 우물을 못 보는 천문학자처럼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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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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