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것을 다른 것에 영구히 붙이기 위해서는 두 물체 사이의 초강력 물리적 또는 화학적 결합이 필요하다. 녹슨 부분을 대 체하기 위해 새 금속판을 자동차에 용접해 붙인다 치자. 용접 은 실제로 두 금속을 녹여서 원자구조를 하나로 접합하는 공정이다. 이 경우 딱히 물리적 결합은 아니다. 두 개의 금속으 로 시작해서 하나로 끝난다. 따라서 접착이라고 부르는 것과 는 좀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신발에 고무창을 새로 붙이는 경우는? 이 경우는 어떻게 다를까? 고무와 신발 어느 한쪽을 상하게 하지 않고 고무를 신발에 녹여 붙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두수 선공은 중간재로 접착제를 사용한다. 두 표면에 질긴 접착제를 바른 다음, 둘을 마주대고 눌러 붙인다. 그렇게 얻어지는 것은 고무와 구두라는 두 가지 재료를 연결하는 '다리다. 접 착 상태는 어떤 유형의 접착제를 어떤 물체에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어떤 접착제는 두 표면의 구조에 파고들어 인접한 두 표면의 구멍에 갈고리를 걸어서 둘을 물리적으로 결박한 다. 어떤 접착제는 두 표면에서 반응을 일으켜 강력한 화학적 다리를 놓는다. 어떤 것은 두 표면 사이에 미세 정전기력을 발생시켜 둘을 흡착시킨다. 어떤 것은 분자의 교환과 융합을 통해 작용한다. 이 네 가지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다. 어떤 원자는 다른 원자보다 탐욕스럽다. 두 가지 물질을 밀착시켜 반복적으로 문지르면 이쪽 원자들이 저쪽 원자들로부터 전자를 강도질해 온다. 이것이 스웨터에 풍선을 비볐을 때 생기는 일이다. 강도(스웨터)는 전자가 늘어 음전하를 띠게 되고, 불쌍한 피해자(풍선)는 전자를 잃어 양전하를 띠게 된다. 그러면 둘은 자석의 양극과 음극처럼 서로 끌어당긴다. 이것이 스웨터에 풍선이 달라붙는 이유다.
- 일부 접착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런 접착제를 다른 물질에 가까이 가져다대면 접착제의 분자들이 인접한 표면의 분자들로부터 전자들을 끌어당기거나 밀쳐내며 미세한 전기적 결합을 만든다. 자, 구두 수선 가게로 돌아가보자. 신발에 바른 접착제는 살짝 양전하를 띠게 되고, 반 대로 신발 바닥은 살짝 음전하를 띠면서 둘이 찰싹 달라붙 는다. 이 힘은 믿기 힘들 정도로 짧은 거리에서 작용하기 때 문에 엄청나게 강력하다. 여기서 말하는 단거리'란 10억분 의 1m쯤 된다. 얼마나 작은 거리인지 실감나지 않는가? 나도 그렇다. 이 거리(10억분의 1m)를 약 10만 배 키우면 인 간 머리카락의 너비(약 10분의 1mm)쯤 된다. 그래도 눈에 보 일까 말까 한다. 중요한 건 거리만이 아니다. 접착제의 분자 들과 신발 바닥의 분자들 사이에 일일이 달라붙는 힘이 발 생한다. 분자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힘이 수조 배씩 증폭해 엄청난 효과를 낸다. 0.1g의 굵은 물방울 하나에 약 3,000,000,000,000,000,000,000개, 즉 30억조 개의 분자가 들어 있다. 이것이 정전기처럼 일견 보잘것없는 힘을 이용해 초강력 접착제를 만들 수 있는 이유다.
- 그럼 포스트잇은 어떻게 작용하는 걸까? 종이를 책에 영구히 붙일 때 우리는 종이 뒷면에 풀을 골고루 바른 다음 종이를 단단히 반반하게 눌 러 붙인다. 이렇게 하면 접착제가 퍼져서 매끈하고 연속적이고 매우 얇 은 막을 형성하는데, 이 막은 종이나 책을 손상시키지 않고는 다시 떼어 낼 수 없다. 하지만 포스트잇 메모지는 다르다. 즉 접착물질이 균일하게 퍼지지 않는다. 아크릴레이트 폴리머acrylate polymer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접착물질의 입자들이 기존 접착제의 경우보다 약 100배 큰 '미세캡슐 안에 들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거칠고 울퉁불퉁한 접착 표면을 형성 한다. 포스트잇 메모지를 책장에 눌러 붙일 때 이 캡슐 중 일부만 터져 종이에 붙을 뿐 다 붙지는 않는다. 사용하지 않은 캡슐들은 메모지를 도로 떼어내 바로 다른 곳에 붙일 때 쓰인다. 이렇게 반복하다 결국 캡슐이 모두 먼지와 때로 막히면 그때는 메모지가 더 이상 붙지 않는다.
- 엄밀히 말해 유리가 고체와 액체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물 질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유리가 고체가 되는 과정 에 있거나 언젠가는 완전히 굳어질 물질이라는 뜻은 아니다. 유리는 이미 굳을 만큼 굳은 상태다. 유리는 반고체이며 점도 가 지극이 높아 초저속으로 흐르는 액체와 같다고 말하는 것 도 옳지 않다. 어린이 과학도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근거 없는 설명 중 하나가 유리는 반고체라 눈에 보이지 않게 아주 천 히 흘러내리기 때문에 수백 년 된 옛날 창유리는 아랫부분이 윗부분보다 두껍다는 얘기다.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유리 제조법, 즉 크라운 유리crown glass 공법의 한계상 유리판의 두께가 완전히 고르 지 못했고, 따라서 유리를 창틀에 끼울 때 자연스럽게 두꺼운 쪽을 아래로 가도록 끼웠을 뿐이다.
- '방탄유리'라는 명칭은 사실 잘못된 표현이다.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그런 명칭으로 팔리는 제품은 방탄도 유리도 아니다. 사실 방탄유리는 여러 겹의 유리와 플라스틱을 특수 접착제로 붙여 총탄에 깨지지 않게 만든 일종의 합판이다. 이 재료에 총을 쏘면 총알의 에너지가 층층 사이로 분산되고 스며들어 신속히 소멸한다. 플라스틱이 유리가 깨지는 것을 막고 총알의 충격을 흡수해서 방탄유리 너머의 사람이 치명상을 입는 것을 방지한다. 하지만 방탄 효과가 완벽하지도 않아 세번 정도는 총알을 막아내겠지만 여러 번 총격을 당하면 결국 뚫린다. 방탄유리의 궁극적 목적은 최초 피격 후 도피할 시간을 벌어주는 데 있다.
- 열은 적외선 복사infrared radiation 형태로 허공을 돌진한다.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광대한 진공 공간도 그렇게 가로지른다. 열은 일정한 속도(초속 30만 km)로 질주한다는 점에서 빛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열(적외선)과 가시광선의 실질적 차이는 열을 전달하는 파동이 살짝 더 길다는 것뿐이다. 무지개 (가시광선)의 빨강(바깥쪽)에서 파랑(안쪽)까지의 스펙트럼을 생각해보자. 적외선은 빨간색 바로 너머에, 즉 우리가 볼 수 있는 색들 바로 밖에 있다. 열이 빛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면 열이 유리창을 곧장 통과하는 것이 하등 신기할 게 없다. 빛이 갈 수 있는 곳은 열도 따라간다. 이걸 막을 해법은 간단하다. 유리에 금속이나 (이산화티타늄같은) 금속산화물을 얇게 입혀서 부분적 거울로 만드는 것이다. 원자 몇 개 두께의 초박막 코팅은 빛은 투과시키고 열은 차단한다. 타는 듯이 더운 여름날에는 이 보이지 않는 코팅이 바깥의 열을 반사해서 집 안을 상대적으로 시원하게 유지해 준다. 반대로 바깥보다 집이 따뜻한 겨울밤에는 (가스 중앙난방이나 전기히터로) 실내에서 만들어진 열이 금속 코팅에 부딪혀 반사되기 때문에 온기가 쉽게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 피부에는 해롭지만 자외선은 쓸모가 많다. 자외선이 자가 세척 유리창의 이산화티타늄 분자와 만나면 거기서 전자들을 두들겨 빼낸다. 이렇게 빠져나온 전자들은 공기 중의 물분자와 충돌해 활성산소인 수산기 hydroxyl radical라는 물질로 변환된다. 다시 말해 물 분자(H2O)가 쪼개지면서 수소원자 하나(H)가 뜯어져나가고 01, 즉 수산기만 남는다. 이 물길은 세제처럼 작용해서 유리창의 먼지를 다루기 쉬운 조각들로 잘게 썬다. 이 상태에서 다음에 비가 오면 먼지 파편들이 깨끗이 씻겨나가게 된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물론 유리창 안쪽과는 하등 상관없는 얘기다. 안쪽은 여전히 스펀지로 직접 닦아야 한다.
- 전기변색 유리는 유리판에 초박형 노트북 배터리를 붙인 것과 같다. 이 배터리는 다섯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쪽 외층은 양극단자와 음극단자에 해당한다. 중간의 세 층 중 상층에는 리튬 이온이 풍부하고, 중층(전해질)은 리튬 이온을 전도하고, 하층의 결정질 산화텅스텐은 리튬 이온을 공급받는다. 유리가 투명할 때는 리튬 이온들이 상층에 머물러 빛을 정상적으로 통과시킨다. 스위치를 누르면 이온들이 산화텅스텐 층으로 내려가 그 결정구조 속에 갇힌다. 이 상태가 빛의 통과를 차단해 유리를 검게 만든다. 다시 스위치를 눌러 전류 를 되돌리면 이온들이 다시 상층으로 올라가 유리가 다시 맑아진다.
- 이미 재료과학자들이 작은 손상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수리 메커니즘 을 내장한 플라스틱을 다양하게 개발해놓았다. 이것을 자기치유재료selfhealing materials라고 한다. 이런 재료는 어떻게 작용할까? 플라스틱 내부에 접착제를 담은 미세 캡슐과 촉매(화학반응을 촉진하는 물질)가 들어 있어서, 플라스틱이 긁히거나 갈라지면 캡슐이 터지고, 캡슐에서 유출된 접착제(또는 일종의 치유제)가 족매의 도움을 받아 손상을 신속히 보수한다. 또 다른 자기치유 플라스틱, 은 내부에 혈관과 비슷한 수리관이 있고 이 관들이 접착제(리페어 겔)로 가 득한 저장고에 연결돼 있다. 재료에 금이 가면 해당 지점의 수리관이 터져 저장고의 압력이 해제되면서 마법의 화학물질을 필요한 곳에 뿜어낸다. | 소소한 균열과 상처는 이런 방식으로 수리될 수 있다 해도, 보다 심각 한 손상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전투기의 총탄 구멍과 우주선의 운 석 충격을 자동으로 수리하는 대규모 자기치유재료를 개발해왔다. 총탄 이 플라스틱 동체에 맞을 때의 엄청난 에너지가 재료를 가열해서 해당 부위가 순간적으로 액체로 변한다. 따라서 총알이 관통할 때 플라스틱이 순간적으로 그 주위에 흘렀다가 원래 상태로 돌아가며 틈을 막아 손상을 즉각 보수한다. NASA의 실험에서 이 자기치유재료는 미소운석의 속도 (최대 18,000km/h, 점보제트기 순항속도의 20배)로 충돌이 일어날 때도 자 체 봉합이 가능한 것으로 입증됐다.
- 세제의 주성분인 계면활성제 surfactants 또는 표면활성제surface active agentis는 때에 달라붙어 때를 옷에서 분리하는 일을 한다. 계면활성제는 종류가 엄청 많고, 보통은 세제 한 병에 여러 계면활성제가 들어간다. 빌 더(builders, 세정보조제)는 다양한 일을 한다. 빌더에 들어 있는 제올라이 트 촉매는 경수를 연수로 만들어서(경수에서 '센' 칼슘이온을 훔치고 연한 나트륨이온으로 대체해서) 계면활성제의 작업을 용이하게 만들어준다. 효 소는 물과 세제가 세 가지 천연 '때'를 공격하는 것을 돕는 화학적 가속 기다. 세제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세 가지 효소가 있다. 단백질 얼룩을 노리는 프로테아제, 지방과 기름기를 공격하는 리파아제, 녹말을 분해하는 아밀라아제다. 이제 세제의 주요 성분 중에서 표백제와 형광증백제 optical brighteners만 남았다. 표백제는 당연히 표백을 한다. 형광증백제는 푸르스름한 형광을 내서 하얀 빨래를 더욱 하얗게 보이게 하는 교활한 '마케팅 화학물질'이다. 형광등 내벽의 백색 인광 코팅과 마찬가지 로 형광증백제도 햇빛의 자외선을 가시광선으로 변환한다. 그래서 흰색 셔츠가 실제로 받는 가시광선보다 더 많은 가시광선을 반사하는 결과를 만든다. 그 밖의 성분은? 요즘의 세제들은 초고농축이라서 물을 거의 함유하 지 않기 때문에 이들 화학성분이 한데 섞여 안정적인 액체 형태를 유지하는 데 애를 먹는다. 그래서 한두 가지 용해제를 첨가해야 성분들이 제대로 섞이고 용기 안에서 굳거나 분리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염료와 향료는 세척에는 기여하지 않지만 나름 필수 성분이다. 우리에게 빨래가 실제와 달리 매력적인 일이라는 거짓 환상을 심기 때문이다. 염료는 도 배 풀을 떠올리는 찐득하고 흉물스런 화학물질을 하늘색이나 연보라색 같은 덜 생경한 색으로 바꾸고, 향료는 세탁기를 여는 순간 우리 코를 향 기로 채워서 일을 제대로 해냈다는 쾌감을 준다.
세제가 옷은 깨끗하게 빨아주지만 지구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은커녕 세탁세제의 거의 모든 성분에 환경파괴물질이 있다. 이는 검 증된 사실이다. 계면활성제는 수생생물에게 직접적 독이 되고, (빌더로 이용되는) 인산염은 담수의 산소 수준을 감소해 생물을 질식시키고, 용해 제는 인간과 수생생물 모두에게 유해하다. 또한 세제는 내분비 교란물질, 다시 말해 강에 서식하는 물고기의 최대 80%의 성별을 바꿀 수 있는 '성전환' 화학물질이다.  수생생물은 곤충, 조류, 인간을 포함하는 거대 생태계의 일부라는 것을 생각하면 강과 바다가 오염될 경우 문제가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우리가 물에 푼 독은 조만간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게 돼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용기의 성분표를 보는 것을 생활화하자. 화학에 대 해 생각하자. 되도록 가장 순하고 환경친화적인 세제를 골라 쓰는 습관이 필요하다.
- 울은 놀라울 정도로 땀(특히 수증기)을 잘 흡수한다. 사실 울이 천연섬유 가운데 흡습성이 가장 좋다. 특히 메리노울은 스포츠 의류의 베이스레이어base layer', 흔한 말로 방한용 내의로 주로 사용된다. 메리노울은 섬유가 매우 가늘고 섬유수도 월등히 많아서 다른 울보다 열을 많이 낸다. 울은 물을 만나면 발열하는 성질이 있다. 울은 대략 세 가지 방법으로 땀을 열로 변환한다. 우선, 물 분자는 극성이 있 어서 주변 것들에 자석처럼 달라붙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물분자의 수소 끝들이 울의 피질(섬유 내부의 세포구조)에 끼어들어 수소결합을 하면서 물 분자들이 자연스럽게 울 섬유 내부에 달라붙게 된다. 이렇게 분자들이 서로 결합해 전보다 안정되면서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것이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울 특유의 훈훈함의 정체다.
울의 두 번째 발열 효과는 사실 발열보다는 냉각 차단에 가깝다. 수분이 피부에서 멀찍이 울 섬유 내부에 잠겨 있는 덕분이다. 합성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과 달리 울은 축축해지지 않는다. 땀을 흘리는 것 자체가 몸의 냉각 메커니즘이다. 땀이 나서 피부가 젖으면 수분이 증발하면서 좋든 싫든 몸이 식는다. 그런데 울이 땀을 흡수한 덕분에 땀이 피부 표면에 거의 또는 전혀 남지 않고, 따라서 증발이 일어나지도 몸이 극적으로 식지도 않는다.
울의 세 번째 발열 효과는 땀이 흡습성 울 섬유 안에서 응축하는 현상에 기인한다. 기화하던 땀이 다시 액화하면서 잡혀 있던 잠재 열에너지를 발산한다. - 셔츠부터 드레스와 코트까지 모든 의류에는 공통점이 있다. 날실과 씨실의 패턴, 이는 금속 막대 같은 고체의 내부 조직, 즉 원자들이 가로세로로 정렬한 양상과 비슷하다. 다만 금속 막대는 모든 방향에서 동일하게 강한 반면(이를 전문용어로 등방성isotropic이라고 한다) 직물은 특정 방향이 다른 방 향보다 더 강하다(이를 비등방성anisotropic이라고 한다). 즉 날실이나 씨실과 평행한 방향보다 대각선 방향으로 더 많이 늘 어난다. 대각선 방향의 저항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단사들은 날실과 씨실이 대각선이 되도록 직물을 45도 돌 려놓고 재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바이어스 컷bias cut' 이라고 하는데, 바이어스 컷 드레스는 여성의 몸에 감기듯이 신축성 있게 늘어져서 몸을 움직일 때 몸의 선을 잘 살려준다.
- 휘발유 자동차를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도시 주행에 따르는 스톱 스타트 운전 행태다. 뭐라도 하려면 에너 지가 든다. 고장난 차를 밀어봤다면 자동차의 관성(inertia, 물체가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한 정지 상태 또는 운동 상태를 그 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을 깨는 것만도 얼마나 등골 빠지게 힘 든지 알 것이다. 무게 1.5톤(1,500kg), 주행 속도 65km/h의 자동차는 상당한 운동에너지를 보유한다. 계산해보면 약 240kJ(킬로줄, kilojoule)인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올라 가기에 충분한 에너지양이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축구공을 따라 도로에 튀어나오는 아이들이나 교통안전 수칙을 모르는 고양이를 피해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이 240kJ의 에너지는 허공으로 사라 진다. 브레이크 패드가 브레이크 디스크와 만나 자동차가 정 지할 때 운동에너지는 타이어의 끼익 하는 비명과 풀썩 피어 오르는 연기로 사라진다. 포뮬러 1Formula I의 트랙을 질주하 는 레이싱카의 경우는 브레이크가 750 °C까지 끓어오른다. 차가 나무였으면 불이 붙을 온도다. 완전 제동 후 가속페달 을 밟으면 엔진은 속도를 바닥에서부터 다시 끌어올리기 위 해 더 많은 휘발유를 태워야 한다. 주행 중에 이렇게 끔찍히 소모적인 순환이 계속 반복된다.
- 엔진이 아니라 모터로 구동되는 전기차는 그런 면에서 크게 유리하다. 극히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전기모터는 원통형 자석 안을 빙빙 도는 구리 코일이다. 코일은 구리선을 촘촘히 감은 것이다. 구리선에 전기를 주입하면 임시 자기장이 발생해 자석의 자성을 밀어낸다. 이 때문에 구리심이 뱅뱅 도는데, 이 현상을 이용해 진공청소기부터 고속열차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에도 동력을 공급할 수 있다. 전기모터의 위대한 점은 이 과정을 역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전기모터의 축을 비틀면 전기가 구리선에서 반대 방향으로 빠져 나온다. 다시 말해 모터가 발전기가 된다. 이론상으로는 전기 제품(예를 들어 진공청소기)의 모터를 수동으로 회전시키는 방 법으로 반대편 끝에서 전기를 뽑아낼 수 있다. 허무맹랑하게 들리겠지만 진공청소기의 전원을 뽑고 인공호흡을 실시하면 전원 케이블에서 전기를 빨아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실제로는 진공청소기에서 전기를 회수할 수 없다. 하지만 전기차에서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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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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