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은 인생의 밤이자 부담스러운 시민권에 해당한다. 누구나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두 곳의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난다. 다들 좋은 쪽의 여권만 쓰고 싶어 하나, 한 명씩 늦든 이르든 잠시나마 자신이 다른 쪽 왕국의 시민임을 확인하게 된다.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 어떻게 보면 자가면역질환은 19세기의 매독이나 폐결핵처럼 의학의 최전선에 있다. 하버드대학의 어느 연구자는 의 학이 자가면역을 파악하는 수준은 암(여전히 부분적으로만 알 려진 질병이지만)과 비교하면 10년이나 뒤떨어졌다고 말했다. 자가면역질환에 유전적 요인이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가 족 구성원이 질환을 같이 앓는 경향이 있고, 나중에는 다수가 그런 질환을 한 가지 이상 앓게 된다.
그렇지만 환경 또한 분명 큰 몫을 차지한다. 자가면역질 환은 부유한 서구권 국가에서 대유행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 을 만큼 늘어나는 추세다. 쌍둥이 연구 결과, 자가면역질환은 유전이 3분의 1, 환경이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로즈가 말했 다. 오늘날 미국자가면역질환관련협회AARDA는 자가면역 장애 를 겪는 미국인이 5천만 명이라고 추산하는데, 이 수치대로라면 자가면역질환은 암 다음으로 흔한 질병인 셈이다. 2020년 의 한 연구에 따르면, 자가면역의 생체지표 노릇을 하는 항핵 항체ANA가 1991년 이래로 청소년 집단에서 3배가 되는 등 특 정 연령대에서 상당히 증가했다. 인간의 유전적 특성은 한 세대 안에서는 달라지지 않으니, 과학자들이 보기에 이 같은 엄청난 증가는 환경 혹은 생활양식의 변화가 원인이다. 식생 활이 달라져 마이크로바이옴이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자가면역질환은 집단마다 상이하게 나타난다. 이유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환자의 약 80퍼센트는 여성이다. 남성에 게 많이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도 몇 종 있다. 인종마다 다르 게 발생하기도 한다(특히 루푸스). 흑인 여성과 히스패닉계 여 성은 비히스패닉계 백인 여성에 비해 루푸스 진단을 받을 가 능성이 3배이며, 사망률도 2~3배쯤 높다
- 오늘날에는 장이 건강에 일조한다는 생각이 친숙하다. 하지만 그 당시 나를 진료한 어떤 의사도 마이크로바이옴의 역할을 언급하지 않았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에 서식하는 미생물 생태계를 뜻한다. 그래도 내가 읽은 자료들은 위와 장 에는 좋은 세균과 나쁜 세균이 모두 살고 있으며, 이것들 사 이의 균형이 깨지면 온갖 자가면역질환이나 만성 염증이 생 길 수 있다고 이해할 만하게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어 만성질환자는 칸디다 알비칸스Candida albicans 라는 균이 너무 많을 수 있는데, 이 균은 효모 감염을 유발하고 염증을 일으켜 피로와 동통을 부른다.15 '염증'은 여기저기서 자주 보는 용어다. 보통 염증이란 면역 세포가 문제를 탐지하고 '염증 매개체'를 방출 할 때 일어나는 과정을 뜻한다. 염증 매개체는 혈관 확장과 혈 류 증가를 유도하고 혈구와 면역 세포가 상처 부위로 가게끔 한다. 이 과정에서 통증, 신경 자극, 세포 조직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급성 염증은 상처를 낫게 하고 감염과 싸우는 데 도 움이 된다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만성 염증은 신체에 해로우 며 무엇보다도 암과 뇌졸중 위험을 키울 수 있다.

- 그 사람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아는 것보다,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히포크라테스)

- 기존 의학의 관점은 19세기 세균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감염병은 하나의 관찰 가능한 병원체에서 생기며, 이 병 원체가 뚜렷하고 예측 가능한 증상을 유발한다는 이론이다. 세균론 덕분에 의학은 아주 명료한 학문으로 거듭났다. 서양 의학은 질병을 앓는 개인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살피는 초기 의 흐름에서 벗어나, 특정 병원체가 유발한 결과를 측정하는 흐름으로 옮겨갔다. 1890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 Robert Koch는 감염병과 그 원인의 관계를 확립하는 엄격한 기 준을 세웠는데 일명 '코흐의 가설'이라고 불린다. 세균이 모든 사람을 거의 똑같이 아프게 하리라는 가설에 기댄 규칙이다.
- 그렇게 해서 질병을 깔끔하게 정의하는 관점이 등장했다고 앤더슨과 맥케이가 《과민한 몸》에 썼다. "특정 세균이 한 가 지 유형의 질병을 유발하며, 그와 완벽하게 짝이 맞는 항체를 끌어낸다" 말하자면 흙이 아니라 씨앗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세균론은 의사에게 과거에는 치료하기 어려웠던 질병 을 고칠 도구를 부여했고, 전문 의학과 세균학의 황금시대가 도래했다. 조지 버나드 쇼는 1906년 희곡 《의사의 딜레마The Doctor's Dilemma》의 서문에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의사들은 성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천사 이야기를 듣는 만큼이나 미 생물 이야기를 많이 듣더니, 치유의 기술은 한 가지 공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별안간 결론을 내렸다. 바로 미생물을 찾아 서 죽이는 것이다." 같은 시기, 실험실 검사와 엑스선 촬영 같 은 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로젠버그의 표현을 빌자면 “질병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새로운 관점”이 정당성을 얻었다. '치유 를 중시하는 도덕적 의료는, 식별과 반복이 가능한 검사 결과 를 중시하는 진단 위주의 과학으로 바뀌었다. 1932년 역사학 자 헨리 E. 지거리스트Henry E. Sigerist는 체계를 세우고자 하는 의학의 충동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질병에 관심을 기울이 게 되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고, 앤더슨과 맥케이가 지적했다.
- 이 같은 방향 전환은 여러 측면에서 좋은 일이었다. 감염병 생존율이 증가했고 평균수명도 늘어났다. 하지만 특히 부 정적인 결과도 한 가지 있었으니, 의사는 선뜻 검사할 수 없는 질환을 맡으면 그 질환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의문을 품게 되 었다. 이들은 자가면역, 근육통성뇌척수염/만성피로증후군, 섬유근육통 같은 무정형 질환의 증거를 의심했는데, 이런 질 환의 경우 확실한 검사도, 검증 가능한 원인도, 효과적 치료법 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원인을 알아내기 힘든 질병 앞에서 의사는 흔히 환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예를 들어 환자가 감염 후에 증상이 남아 있다고 호소해도, 맨 처음 검사 결과에 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오랫동안 무시 혹은 묵살했다. 하 버드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완화 의료의 개척자인 수전 블록Susan Block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의학의 많은 분야는, 측정이 안 되는 병은 존재하지 않거나 환자가 미쳤다고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지만 최근에 등장한 개척자들이 "측정할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관점을 밀어내고 개인의 체질(흙)에 다시 관심을 기울이면서 좀 더 정교한 개념을 만들고 있다. 병 원체에 대한 면역계의 반응은 우리 몸이 손상된 정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질병은 다면적인 현상으로 병원체와 면역계,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뜻한다. 여기서 '환경'은 개인의 마이크로바이옴이나, 독성 화학물질 과 외상 등에 노출되는 상황일 수 있다(양쪽 다 면역계에 영향 을 미친다고 밝혀졌다).

- 오늘날 의학은 대안적 관점으로 궤양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균과 신체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생긴다는 것이다. 궤양이 불안과 관련이 있다는 가설은 참이다. 스트레스, 혹은 스트레스와 연관된 미지의 변이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을 악화시킬 수 있다. 특정 상황에서, 중성적 상태의 세균을 병리 적인 것으로 변형시키는 듯하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자체 는 유해하지 않으며, 인간과 소위 '공생적 관계를 맺는 일이 흔하다. 공생이란 두 가지 종이 서로 해를 입히지 않고 함께 살거나, 그 상태에서 서로 이득을 얻는 경우를 말한다. 헬리코 박터 파일로리가 인간의 건강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 균이 위장에 없는 성인은 어릴 때 천식으로 고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숙주의 생리가 변하 면, 무해한 관계가 병리적 관계로 바뀐다.

- 통증은 언제나 당사자에게는 새로우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참신함이 없다. (알퐁스 도데, 《고통의 땅에서》)
- 버지니아 울프는 《아픈 것에 관하여》에 이런 말을 남겼다. “영어로 햄릿의 생각과 리어의 비극을 표현할 수는 있어 도, 오한과 두통을 표현할 수는 없다. (...) 일개 여학생이라도 사랑에 빠지면 셰익스피어와 키츠로 마음을 말할 수 있다. 그 렇지만 환자가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그 통증을 의사에게 전 달하려 하면, 언어는 즉시 고갈되고 만다."
내 경우 가장 힘든 부분은 이해받는 일도, 신뢰받는 일도 아니었다. "신체적 고통은 단순히 언어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활발히 파괴한다”라고 일레인 스캐리가 《고통받는 몸》에 썼다.' 
- 기술 중심의 미국 의료계에서, 아픈 사람은 병원에 가면 사람 이하의 존재로 떨어진다. 이미 20세기 전환기부터 환자가 이제 "차트 위의 숫자, 엑스선 판 위의 그림자, 슬라이드 위의 얼룩"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평론가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찰스 E. 로젠버그가 언급했다. 기술적 진보와 민영 화를 거쳐 미국 의료는 분업화 및 첨단 기술 전문화를 특징으 로 삼게 되었고,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환자는 관료적 방식으 로 지워졌다. "어떤 환자든 병원에 가면 옷을 벗고 침대에 누 워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며칠 뒤 그들 모두 어느샌가 하나 의 수동적 몸으로 합쳐진다”라고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채플힐 의 노인의학 전문가 테런스 홀트Terrence Holt가 책에 썼다.
- 여성이 원인 모를 병을 앓으면 건강염려증이라고 짐작하곤 한다. 현대 의학 기반의 의사들은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데 다, 여성을 향한 사회의 무의식적 편견도 여전하다. 그리하여 오늘날 의료계 종사자들은 모호한 증상을 불안 혹은 우울의 신호로 쉽게 간주한다. 하지만 사실관계만 보면, 오락가락하는 증상을 가진 젊은 여성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자가면역질환자는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다. 게 다가 이 질환은 점점 흔해지고 있는데, 혈액 검사로는 초기에 거의 잡아낼 수 없다. 여성 네 명 중 한 명이 자가면역질환에 걸릴 수 있단다. 그러니 합리적 의사라면, 몸이 안 좋고 자가 면역질환 가족력이 있는 환자를 맡을 때 이 사람도 그런 환자 일 수 있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 최근까지 의학 연구 대부분은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남성 및 수컷만을 대상으로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11년의 한 연구는 의료계 실험의 5분의 4에서 수컷 쥐가 압 도적으로 많이 사용되었음을 발견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암컷 동물의 호르몬 주기 때문에 변수가 늘어나고 연구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라는 걱정 때문에 암컷 쥐를 연구에 쓰지 않았다고 한다.5그러다 보니 연구들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고려하지 못하게 되었다. 성별이 다르면 신진대사와 체지방 함량과 효소 활동성의 차이 때문에 의약품에도 다르게 반응 하는데, 이 또한 고려하지 못했다. 저용량 아스피린은 남성의 경우 심근경색의 위험을 낮추지만, 65세 이하 여성의 심장병 위험은 줄이지 못한다. 2020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베타차단 제(심장 질환 및 고혈압 치료에 쓰이는 약물-옮긴이)는 고혈압 여성에게 심근경색의 위험을 오히려 더 높일 수 있다(이 연구 자들은 역사적으로 여성이 베타차단제 임상 연구에서 충분히 대표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연구를 수행했다).' 여성은 마취로 인한 합병증도 더 많이 겪을 수 있다.
2001년, 미국의학연구소는 《인간 건강의 생물학적 요 인 탐색하기: 성별은 중요한가? Exploring the Biological Contributions to Human Health: Does Sex Matter?>라는 제목의 연구집을 냈다. 결론은 "(성별은) 예상치 못한 측면에서 중요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바뀐 것은 거의 없었다. 그 결과 지식 격차가 심해졌 다. 최근으로 오자면, 2014년 국립보건원의 여성건강연구소 부국장 재닌 오스틴 클레이턴 Janine Austin Clayton 박사가 《뉴욕 타임스》에 “남성 생물학에 비하면 여성 생물학의 지식은 모 든 면에서 문자 그대로 모자랍니다”라고 말했다.
- 그 결과 식품의약국이 어떤 약물을 승인해도, 그 약이 여 성에게 유달리 해롭다거나 승인된 용량과는 다른 용량을 처 방해야 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다. 그런 사례 가운데 하 나가 수면제 앰비엔Ambien 이다. 남성과는 달리 여성은 앰비엔 분해 속도가 무척 느려서, 복용한 다음 날 아침에 운전을 하면 차 사고가 났다. 2013년, 식품의약국은 앰비엔의 여성 권장량 을 놀랍게도 50퍼센트나 줄이라고 제조사에 명했다. "1997년 부터 2001년 사이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았으나 '건강상 위 험'이 발견되어 시장에서 퇴출된 약은, 열에 여덟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해로웠다”라고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 는가》의 저자 마야 뒤센베리가 밝혔다. 20 성별 차이가 약의 효 과 차이로 이어지는지 아닌지 밝혀내는 연구는 현재 학계에 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생물학적 성별과 사회적 성별 에 근거한 지식을 생산하지도 않고 분석하지도 않으니, 간과 해 버리는 부분이 놀랄 만큼 많이 생긴다.

- 여성이 몸이 아파도 사실은 병을 꾸며낸 것이거나 심신증이라는 식의 사고는 역사가 길다. 그런데 19세기 서유럽 과 미국에서 히스테리를 의학적 문제로 간주하고, 이후 지그 문트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이 인기를 끌면서 이런 생각은 새로운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 의사들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대놓고 고려하지는 않는다고 해도(심지어 믿지 않아도) 그의 사상은 의사 교육의 뼈대 혹은 배경에 상당 부분 깔려 있다. 의학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증상을 겪는 몸이란 심리적 문제 가 있는 몸이라는 생각이 요즘도 검사실에 숨어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프로이트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꺼내지 않더라도 말 이다. 실로 우리 모두가 수용한 것이 프로이트의 사상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히스테리'라는 단어는 고 대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기원전 5세기에 맨 처음 사용했다. 20 불안과 떨림 증상, 심지어 마비까지도 일으킬 수 있는 병으로, 히포크라테스에 따르면 원인은 자궁의 이동이다. 히스테리 개념은 중세 후반의 유럽으로 전해져 자연요법으로 치료되었 다. 15세기에 이르러 어떤 종교학자들은 히스테리를 악마가 유발하는 여성 질병으로 보기도 했다. 원인 모를 질병에 대처 하는 그 시대의 흔한 방법이었다. 어느 학자의 표현을 빌자면, "의사가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면, 악마에 의해 발생했 다는 뜻이다."
19세기 후반에는 히스테리 진단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빅토리아 시대 의사들은 참정권 활동이나 여성의 지적 활동 때문에 히스테리가 유행한다고 생각했다. 자주 잊히곤 하는 사실이지만, 당시 의사들은 처음에 히스테리가 신경계에 과 부하가 걸려 생기는 기질적 (혹은 신체적 질병이라고 믿었다. 신경계의 존재가 이제 막 발견된 참이었다. 샬럿 퍼킨스 길먼 과 앨리스 제임스처럼 히스테리 진단을 받은 여성 다수는 피 로와 복부 통증 같은 뚜렷한 신체 증상으로 고통받았다. 그 시대 의사와 의학자 다수는 신경계와 자궁이 밀접한 관계라 고 봤다. 찰스 E. 로젠버그와 캐럴 스미스로젠버그Carroll Smith- Rosenberg의 표현처럼, 여성을 “재생산 체계의 산물이자 죄수" 로 간주했고, 여성의 몸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재생산 체계가 신체 건강의 원천이라고 믿었다(1870년에 어떤 의사는 여성의 건강에 관해 “전능하신 신이 여성을 창조할 때 자궁을 중심에 놓고 빚어낸 것 같다"라고 썼다). 22 '두뇌 활동은 말 그대로 여성의 자 궁에서 기력을 짜내기 때문에 허약과 피로를 불러온다고 믿 는 의사들이 많았다.
사일러스 위어 미첼Silas Weir Mitchell은 지금까지도 악명이 높은 휴식 치료를 개척한 의사로, 시간을 내서 휴식을 취하 는 방법만으로 피로와 복부 통증 같은 신체 증상을 치료하고자 했으나 바로 실패로 돌아갔다. 환자들은 건강해지지 않았 다. 치료에 저항하는 여성 환자에게 실망한 남성 의사들은 히 스테리를 신체적 질병 대신 잠재된 정서적 문제가 표출된 상 태로 보게 되었다. 우리 몸이 신체 증상을 통해 숨겨진 감정적 진실을 말한다는 익숙한 개념이 이렇게 등장했다.
물론 이 개념을 주류로 끌고 온 사람은 프로이트이다. 앞 서 언급한 앤 해링턴의 《마음은 몸으로 말을 한다》에 따르 면, 프로이트 또한 처음에는 다른 의사들처럼 히스테리 환자 가 신체 질병에 시달린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치료해도 낫 지 않자, 환자의 증상이 성폭력 같은 정신적 외상이나 억압된 리비도적 충동의 표현이라고 믿게 되었다. 프로이트가 볼 때 몸은 진실을 말하는데, 그 진실이란 환자의 무의식에 담긴 내용이었다. 해링턴은 이렇게 썼다. “이제부터 신체의 부호화된 메시지에 대한 의사의 해석은 (...) 당연히 환자의 해석을 이 기게 되었다. 환자가 그 해석에 저항하거나 거부하는 상황에 도 (특히) 그랬다." 정신분석은 마음이 알고 있으나 내담자가 인정하지 않는 내용을 분석가가 밝혀내는 창조적 과정이었다. 
그랬다. 그렇게 의사는 여성 증상의 전문가가 되었다. 여 성 본인이 정말로 아프다고 주장할수록, 완고하고 부적응적 인 정신상의 문제, 억압된 심리적 갈등이 있다는 증거로 보기 쉬운 체계가 완성되었다. 해링턴에 따르면, 프로이트 이후 환 자는 "자기 몸이 겪는 일을 가장 잘 파악하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고, "최종 결정권을 꼭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 히스테리에 관한 프로이트식 사고는 더 이상 우위에 있 지 않다. 그러나 그 사상적 뼈대는 오늘날에도 의학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 환자의 건강이 개선되지 않으면 환 자, 바로 환자의 자아가 문제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경 향이 여전하다. 여성의 신체가 심리적 곤경을 표출하는 일이 흔하다는 개념은 실제로 여전히 의학적 사고로서 활개 친다. 25 다만 이 개념은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브리케 신드롬 Brique's syndrome 이었고, 1920년대에는 빈의 정신분석가 빌헬름 슈테켈Wilhelm Stekel이 “신체화somatization”라고 명명했으 며 “내적 갈등이 신체장애로 나타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가 장 최근에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에 “신체형 장애somatoform disorders"라는 진단명으로 등장한다. 이런 명칭은 의사들이 여성 환자의 문제를 알아내지 못할 때 가져다 쓰는 소위 쓰레기통 진단명이다. 마야 뒤센베리의 지적처럼 이는 성 별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의대 학생들은 “신체형 장애는 숙녀 를 괴롭히고 의사를 성가시게 한다Somatization Disorder Besets Ladies and Vexes Physicians"라는 문장의 머리글자를 따서 SDBLVP라고 암기하곤 한다.

- 불확실성은 두려움의 원인이 아니다. 사용법을 익힐 수 있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마이클 D. 록신, 《폐허가 된 탑의 왕자》)

- 선천면역은 방어의 최전선 을 맡는다. 병원체와 외부 물질에 즉시 반응하여, 병원체와 싸 우도록 대식세포와 식세포, 호중구, 자연살해세포 같은 온갖 백혈구를 배치한다. 보통 위험한 물질을 잡아먹거나 집어삼 키는 방식으로 싸운다. 후천면역('적응면역이라고도 한다)은 더 복잡한 2차 방어선을 맡는다. 몸에 들어온 병원체에 특이 적으로 반응한 다음, 그 병원체의 정보를 기억한다. 적응면역 세포에는 B세포와 T세포가 있는데, 이들은 선천면역계를 통 과한 감염과의 싸움을 돕는다.
면역계의 1차 기관은 골수와 가슴샘이라고 한다. 가슴샘 은 심장 위에 자리한 삼각 모양의 부드러운 회분홍색 샘이다 ('thymus'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타임 thyme' 이파리를 닮았다). 사춘기 이후로 점점 작아지는 드문 기관 가운데 하나로, 우리 몸의 많은 면역 세포를 생산한다. 골수와 가슴샘에서 B세포와 T세포 무리가 자라나 학습을 하게 되며, 이들의 이름 또한 생산기관인 골수bone narrow와 가슴샘thymus에서 각각 따왔다. 두 세포 모두 감염에 대처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등의 일을 한 다. B세포는 항체를 생산하는데, 테트리스 게임을 할 때처럼 특정 병원체에 딱 맞게 결합하는 Y자 모양의 단백질이 항체 다. 항체 각각은 주어진 병원체에 특화되어 있다. 그래서 항체 를 측정하면 신체가 이제껏 어떤 적을 맞이했는지 알 수 있다.
- 성장한 면역 세포는 마치 전공을 선 택하듯 특정 외부 물질에 집중하도록 훈련한다. 적응면역 세 포는 최초의 항원이나 외부 물질을 만나면 구조적, 화학적 변 화를 겪는다. 특정 항원에 각인되는 것이 키스하는 것과 비슷 하다는 비유를 들며, 케일럽은 항원과 항체가 결합하는 그림 을 그려 주었다. 그렇게 면역 세포는 항원 특이성 항체가 된다 (백신 대부분의 제조 원리이기도 하다. 백신에는 변형된 형태의 바이 러스가 들어 있어, 그것과 특수 결합하도록 고안된 항체를 신체가 생 산하게끔 한다). '도움 T 세포'라고 알려진 T세포(엄밀히 말하면 CD4+T-도움 림프구)는 신체의 면역반응이 증가하도록 돕는 데, B세포를 자극하여 항체를 만들게 한다. 또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죽일 수 있는 살해 세포도 활성화한다.
- 폴리바이오연구재단의 설립자인 미생물학자 에이미 프롤Amy Proal은 우리 몸에 어떤 세균이 있는지는 중요하 지 않다고 했다. 그 세균들이 어떤 활동에 관여하는지, 우리 삶의 어떤 다양한 측면이 그 활동을 결정짓는지가 진짜 문제 라고 말했다. 분명 20세기는 우리의 마이크로바이옴에 변화 를 불러왔다. 서구에서는 감기처럼 끝이 안 나는 병을 치료하 려고 수십 년 동안 항생제를 썼다. 약이 장에 사는 나쁜 세균뿐만 아니라 '좋은' 세균까지 무차별적으로 죽일 수 있는데도 그랬다. 표준 미국 식단 또한 단기간에 가공식품을 섭취하는 쪽으로 급격히 옮겨 갔다. 가공식품이 장내 균 무리를 파괴하 고장내 투과율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증거가 늘고 있다. 장내 투과율이 증가하면 음식 분자가 혈류로 들어가게 된다. 이상 태가 소위 '새는 장leaky gut'으로, 면역계가 이 음식 분자에 반 응하면 식품 민감증과 자가면역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스탠퍼드대학의 저스틴 Justin Sonnenburg과 에리카 소넨버 그 Erica Sonnenburg 부부는 오늘날의 식단에는 좋은 세균의 먹이 인 식물성 섬유가 부족하다고 강조한다. 미국인의 채소 세척 습관 때문에 섭취가 필요한 토양 기반의 세균 일부를 놓치고 있다고도 한다. 그 결과 하부 위장관의 균 무리는 영양이 부족 하다. 시간이 지나면 미생물 무리 전체가 소멸하며, 식물성 식 단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완전히 복구할 수 없다.
- 프롤의 표현에 따르면 마이크로바이옴(장이든 다른 기관, 세포 조직, 또는 실제로 우리 입 안 생태계든 간에)과 면역계는 유 치원 교실과 선생님이 맺는 관계와 비슷하다. 교실 (마이크로 바이옴)은 선생님(면역계)이 존재할 때는 질서가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 바이옴은 나 쁜 짓을 저지를 수 있다. 평소에는 모범생이다가도 제멋대로 굴게 된다. 모두가 나쁜 행동에 휩쓸리며, 주변을 거의 부추기 는 것이나 다름없는 화학적 신호를 방출한다. 프롤은 이런 설 명을 했다. "포르피로모나스 진지발리스P. gingivalis는 잇몸 질환 을 유발하는 대표적 병원체입니다. 많은 사람의 입 안에 이균 이 사는데, 일단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면역계 상태가 좋지 않 아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P. 진지발리스는 생물막을 만 들자고 신호하는 분자들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인접한 유 기체들은 '우리도 생물막에 낄 수 있나?' 하고 행동하게 됩니 다”(생물막biofilm이란 세균이 조직적 공동체 형태로 서식하며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얇은 구조물이다. 면역계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도 움이 되는, 스펀지 같은 분자 그물망을 갖추고 있다). 이제 곧 치아 는 잔뜩 손상된다.
- 굴게 된다. 모두가 나쁜 행동에 휩쓸리며, 주변을 거의 부추기 는 것이나 다름없는 화학적 신호를 방출한다. 프롤은 이런 설 명을 했다. "포르피로모나스 진지발리스P. gingivalis는 잇몸 질환 을 유발하는 대표적 병원체입니다. 많은 사람의 입 안에 이균 이 사는데, 일단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면역계 상태가 좋지 않 아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P. 진지발리스는 생물막을 만 들자고 신호하는 분자들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인접한 유 기체들은 '우리도 생물막에 낄 수 있나?' 하고 행동하게 됩니 다”(생물막biofilm이란 세균이 조직적 공동체 형태로 서식하며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얇은 구조물이다. 면역계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도 움이 되는, 스펀지 같은 분자 그물망을 갖추고 있다). 이제 곧 치아 는 잔뜩 손상된다.
- 의대에서는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 동안 자가면역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있 다고, 임신 및 이후의 호르몬 변화 때문일 것이라고 가르친다. 폐경 전후 시기에는 항염증성 사이토카인의 수치가 줄고 전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수치가 증가한다고 한다. 이 시기의 여 성은 몇몇 자가면역질환을 앓을 위험이 크다.
후성유전학은 사람이 살면서 겪는 유전자 발현의 변화가 자가면역질환에 일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전에는 라마 르크가 아니라 다윈이 진화를 제대로 설명했다고 배웠는데, 이제 와서 경험이 다음 세대의 유전학을 결정지을 수 있다니. 고등학교 생물학 시험 때 암기한 내용과 전부 어긋난다. 그렇 지만 후성유전학은 DNA 염기 서열의 변화 말고, 유전자 발현 스위치를 켜고 끄는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런 변화는 세대에 걸쳐 전해질 수 있다고 한다.
- 스트레스가 건강을 결정짓는다는 사상은 20세기 초 두 남성에 의해 현대적으로 변형되어 인기를 끌었다. 먼저 하버 드대학의 생리학자 월터 B. 캐넌Walter B. Cannon은 감정이 인간 의 생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하기 전에 그는 신기술인 엑스선을 활용해 동물의 연동 운동(몸속 폐기물을 밀어내는 장의 수축)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동물이 싸우거나 괴로운 상황에 놓이면 연동운동이 느려졌다. 피를 뽑아 보니 신장 위에 자리한 부신에서 분비하는 (현 재 에피네프린 혹은 아드레날린으로 불리는) 호르몬의 수치가 상 승했다. 감정이 동물의 생리를 바꾼다는 증거를 찾은 캐넌은 추가 실험을 수행하여, 중요한 두 가지 의학적 발상을 제안했 다. 첫 번째는 그 유명한 투쟁 혹은 도피 반응fight-or-flight이다. 인간이 위험에 처하면 신체는 소화가 느려지고(근육에서 에너 지를 빼앗기 때문에), 포식자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해 주는 에피네프린 같은 호르몬을 생산한다. 두 번째는 감지된 위협 이 사라지면 신체는 기본적 안정 상태로 돌아온다는 것인데, 캐넌은 이를 '항상성'이라고 불렀다. 1936년, 캐넌은 임상의들 을 대상으로 새로운 종류의 미국적 병이 나타나고 있다고 경 고하는 강의를 했다. 현대성이 항상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 이다. '전염병과 역병'이 한때 사람들 대다수를 죽게 했는데, 이제는 현대적 삶의 '압박과 스트레스'가 항상성을 파괴하여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만성적 불안 상태'는 현대적 삶이 빨 라지는 만큼 심해져, 병의 새로운 원인이 되었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 캐넌이라면, 스트레스가 면역계를 압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오 늘날의 용어로 대중화한 사람은 헝가리 의사 한스 셀리에Hans Selye다. 젊은 교수 시절 셀리에는 내분비학, 즉 인체 내 호르몬 분야를 연구했다. 호르몬의 효과를 알기 위해 셀리에는 실험 실의 쥐에 난소 추출물을 주사했다. 그런데 로버트 M. 새폴스 키가 《스트레스: 당신을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에 썼듯이, 실험에 서투른 셀리에는 쥐들을 다 놓쳤고, 쫓아다니며 붙잡아다 주사를 놓아야 했다. 연구가 끝날 무렵 쥐들은 특 이하게도 위궤양이 많이 생기고 부신이 커졌으며 "면역 조직 이 쪼그라들었다. 처음에는 난소 추출물 주사 때문인 줄 알았 다. 그렇지만 염분을 주사한 대조군 또한 같은 반응을 보였다. 결과를 놓고 곰곰이 생각한 끝에 셀리에는 서투른 교수에게 쫓긴 괴로운 경험이 동물을 아프게 했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이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새 실험을 고안했다. 셀리에의 생각이 맞았다.
- 스트레스는 자가면역 및 기타 면역 관련 질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과학자들은 스트레스 반응의 핵심 단계를 간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트레스 요인이 등장하면 처음 30분 동안은 면역계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진다. 아주 타당한 반응으로, 신체가 상처나 감염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시간 동안 스트레스 반응은 면역 활동을 정상으로 돌린다. 백혈구 생산을 막는 스테로이 드 호르몬을 분비하여 기본 상태로 돌아가게끔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바이러스나 유전자 변이 때문일 텐데, 면역 활동이 활발해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과도하게 활성화된 면역계는 그릇된 목표를 공격한다. 즉, 이런 사 람들은 새폴스키의 말처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며 면역계 의 활동성을 조금씩 올려, 결국 자가면역에 가까워진다." 연 구에 따르면 류마티스관절염을 앓는 사람은 면역 세포의 활 동성을 꺾는 스테로이드의 수치가 증가해도 면역 세포가 이 에 충분히 반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나를 포함한 많은 자가면역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에 증상이 악화한 것 은 당연한 일이다. 계속되는 스트레스 요인의 반복은 새폴스키의 표현에 따르면 “조절이 잘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위험을 키워, 면역계는 과도하게 활발해지고 환자는 증상을 더 자주 겪게 된다.

- 내가 가장 두려워했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예상하지 못했다. 바로 희망을 잃는 일이었다. (윌리엄 스타이런, 《보이는 어둠》)

- 세균은 사람마다 활동이 다른데, 차이는 그 군집의 특성 에 달려 있다. 내가 만난 연구자들은 이를 세균의 '정족수감 지quorum sensing'라고 설명한다. 특정 균주가 사라지면, 다른 균 주의 유전자 발현이 양성에서 악성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세 균의 변화는 소화관 장벽의 밀착연접(이웃하는 세포들의 막이 단단하게 밀착한 상태옮긴이)에도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소 화관 장벽은 병원체와 음식 분자가 혈류로 들어가는 것을 막 으면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점막이다. 장내 불균형으로 인해 이 장벽이 손상되고 염증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음식 분자가 혈류로 들어가면, 면역계가 그 분자에 반응하면서 민감성이 생긴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소위 새는 장 증후군이다. 병이 나으려면 장벽의 느슨해진 밀착연접을 회복해야 하는데, 여 기에 분변 미생물 이식이 도움이 된다.
이식을 통해 건강한 바이옴을 회복하면 효과가 아주 좋 다. 그래서 특정 감염과 소화 문제의 경우 효과가 느리더라도 항생제 말고 분변 미생물 이식을 통해 장벽을 재건하는 방향 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위장병 전문의들도 있다(시술 후 4개월에서 2년 사이에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 같다고 어느 전문가가 말했다). 분변 미생물 이식을 받으면 사소한 동반질병(두 가지 이상의 질병이 공존하는 상태옮긴이)이 사라지며, 잠재된 병의 원인이 드러날 수 있다고 말하는 치료사도 있었다.
글렌은 면역 매개 질환의 증가에는 식생활 변화와 항생 제도 원인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수백만 년 동안, 아주 최근 까지도 장내 환경은 대체로 수렵 채집인의 식생활을 기반으 로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이 섭취하는 음식은 지역마다, 계절마다 관리 가능한 속도로 바뀌었지요. 그런데 19세기에 너무나 갑작스럽게 식품 산업화가 닥친 겁니다. 20세기가 되 자 이제는 음식도 필요 없다. 화학물질로 해결할 수 있다'라 고 말하는 수준에 이르렀죠.” 이런 변화가 인간의 마이크로바 이옴을 뒤엎어 버렸는데, 세균은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 하기 때문이다. 어떤 종은 6분마다 한 번씩 분열한다. 그래서 글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마이크로바이옴을 따 라잡을 수 없습니다."

- 아픈 것이 가장 큰 불행이고, 아픔의 가장 큰 불행은 고독이다. (존던, 《비상시의 기도문》)

-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치유를 단순히 병이 나은 상태 이상 으로 본다. 건강이란 "질병을 앓지 않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 태를 넘어서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온전히 안녕한 상 태”다. 의학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이 정의 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히 만성질환의 경우 그러하다. 의사 들이 환자의 치유를 돕고 싶다면, 환자가 온전함을 느낄 수 있 도록 해 주는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햇빛이든 고요함이든 자연이든, 혹은 완전히 다른 것이든 상관없다. 스턴버그는 언 젠가 미국 국립보건원 임상연구센터의 통증 및 완화 치료 서 비스 국장 앤 버거Ann Berger에게 치유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 다. “완화 치료에서 치유란 온전함을 뜻합니다. 병이 꼭 낫지 는 않더라도 환자가 온전함을 느끼는 것이지요."" 버거의 대 답처럼, 환자는 스테로이드나 항생제로만 병이 낫는 것이 아 니라 자연, 신나는 대화, 접촉, 공감처럼 온전함을 느끼게 해 주는 요소로도 치유된다. 이는 의사의 진찰을 받고 나올 때처 럼 심란한 경험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던의 말이 얼마나 적절한지 알 수 있다. 아프다는 것은 상호 연결성을 인식하는 일이고, 우리 가 “본토의 일부”임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 서병을 앓으면, 이를 부인하는 문화의 병리학에 직면하게 된 다. 가장 아팠던 시절, 병을 고치기 위한 일은 무엇이든 공동체가 아니라 당사자의 몫이라고 다들 믿고 있어서 외로웠다.
- 미국의 영적 대중문화에서 병은 자기 수양의 수단이자 얻기 힘든 인정을 받는 수단으로, 아픈 사람이라면 이런 사고 의 흐름을 어디서나 바로 발견할 수 있다. 만성질환자 앨리스 제임스의 이야기를 담은 수전 손택의 희곡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에도 나온다. 너무나 심하게 아픈 앨리스에게 친구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라”고, 나머지는 무시하라고 속 편하게 격려한다. 앨리스는 “삶은 단순히 용기의 문제가 아니 야"라고 톡 쏘아붙인다. 인류학자 아서 클라인먼은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에서 병을 "품위" 있게 관리하는 환자들 을 칭송한다.' 구경꾼들은 흔히 만성질환자의 경험을 접하면 긍정적으로 보이는 측면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야 구경꾼으 로서 병을 지켜보는 고통이 견딜 만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영적 변화의 수단으로 병을 바라보는 관점은, 인간의 고통이란 유익하고 심지어 성스럽다고 보는 유대 기독교의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다.
병은 분명 우리의 삶을 검증하고 다시 세우도록 떠민다. 병이 불러온 파괴로부터 재창조의 공간이 생겨난다. 아서 프 랭크가 《몸의 증언》에 쓴 표현에 따르면 "파괴는 생성의 과정 일 수 있다. 부서진 것은 다시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건 강한 친구가 병에 수반되는 '영적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 습이 참 낙관적으로 느껴진다고 토로하는 투병자의 편지와 일기를 너무 많이 봤다. 병의 아픔을 보상해 줄 만한 유용한 점을 찾는 행위와, 아픔의 본질에 관해 우리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는 행위는 한 끗 차이다. 병으로 잃은 것들을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는 순간, 그리고 의료계가 환자의 투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순간이 와야 병으로 얻은 지혜도 찬양할 수 있다.

- 만성질환이든 암 같은 중대한 병이든 병을 심하게 앓으면 이야기를 만드는 감각이 막혀 버린다. 아서 프랭크의 표현 처럼, "병이 옛이야기를 가로막는 때가 오면, 몸은 새 이야기 가 필요하다고 시동을 걸면서 환자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 도록” 이끈다. 프랭크는 환자가 새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중 요하다고 보는데, 그래야 병으로 인해 환자의 삶이 망가지진 않았더라도) 망가진 자기 인식을 "복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에 따르면 병 이야기에는 세 종류의 서사가 있다. 복원 서사, 혼돈 서사, 탐구 서사가 그것이다. 복원 서사는 아 픈 사람이 결국에는 건강해진다고 믿는 이야기다. 그래서 병 은 견딜 만하다. 복원 서사는 병을 앓는 현실에 맞서 회복을 강조한다. 사실 복원 서사는 후기 자본주의 질병 서사의 지배적 유형이라 할 수 있다. 프랭크가 지적했듯이 “현대 문화에 서 건강이란 사람들이 마땅히 회복하여 되찾는 정상적 상태 다." 프랭크 본인은 암에 걸렸다. 암 치료를 받는 동안, 의료계 종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건강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서사 로” 해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만성질환은 복원 서사로 설명하기 어렵다. 병이 그리는 궤적이 절대 사라질 일이 없으므로 당연히 극복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아주 많은 환자가 두 번째 서사 인 혼돈 서사에서 제 이야기를 찾는다. 이런 이야기들은 들어 주기 힘들다. 프랭크가 언급하듯 "연속성도, 확실한 원인 과 결과도 없이, 이야기꾼이 경험한 대로 사건을 말한다. 복 원의 경우 본디 서사적 (처음에 아팠으나 나중에 나았다)인 반면, 혼돈은 "비서사적이다. 그래서 경청이 힘들다. 병원에서 끝 이 보이지 않는 검사에 시달리며 해답을 찾느라, 아픈 사람들 은 보통 폭풍우에 난파당한 배처럼 "서사가 망가진다". 프랭 크가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에게서 따온 표현이 다.
마지막 유형은 탐구 서사로, 환자가 자기 경험을 다 그러모아 어떤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 형식이다. 다만 그 의미는 처음 아팠을 때 기대한 의미(회복)와는 보통 다르 다. 탐구 서사의 본질은 “아픈 삶의 대안을 찾아 나서는” 이야 기라는 것이다. 아픈 사람이 병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그 로 인해 자기 자신이 달라진 모습을 알아본 후에야 서사가 명 확해진다. 탐구 서사의 화자는 이야기를 말하는 그 자체가 그 간 잃어버린 통제력이며 의미의 감각을 일정 부분 회복해 주 는 행위임을 알게 된다. 견디기 어려운 두통에 시달린 프리드 리히 니체는 "내 통증을 이제 '개'라고 부르겠다. (...) 사람들 이 개나 하인이나 아내에게 그러듯 나도 내 통증을 야단칠 수 있고 분풀이도 할 수 있다”라고 썼다.

- 병은 분명 환자를 달라지게 한다.
'지혜wisdom'는 옛말 wis (지식, 배움)와 doom (파멸)에서 왔 다. 어떻게 보면 아픈 사람들은 파멸의 운명을 조우하여 현명 해지고, 그 결과 새로운 자기 자신으로 거듭난다는 뜻이리라. 존 애쉬베리가 말하는 "어려운 순간들이 베푼 자비"를 경험하 는 것이다. 이런 조우 앞에서 나 자신과 나의 도덕성을 명확하 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지식이 체념과 상실에서 탄생한다는 사실 을 말하지 않으면 거짓이 될 것이다. 발전하길 바랐던 자신의 어떤 측면들을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하면서 생겨나는 지식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혜는 파멸과의 조우에서 입은 상처와 이어진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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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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