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피엔스

인문 2020. 12. 19. 12:50

-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역사가에게도 때때로 발생하는 재앙에 가까운 전염병 창궐은 일상을 급작스럽게, 예측불허로 침범하는 것이었으며 본질적으로 역사적인 설명이 가능한 범주의 바깥에 있다. (윌리엄 맥닐, 시카고대학 역사학과 교수이자 《전염병의 세계사》 저자)
- 진짜 자연을 건드리지 않는 게 더 좋다는 계산을 이제 드디어 사람들이 할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이 생긴 겁니 다. 몇 년마다 한 번씩 이런 대재앙에 휘둘릴 수는 없어요. 이제 생태를 경제활동의 중심에 두는 생태중심적eco-centered 기 업들이 생겨나고, 소비자는 그런 기업만 선택하는 일이 벌어 질 겁니다. 생태적 전환만이 살 길이에요.
- 지금은 돈을 풀어야죠. 그 방법밖에 없기는 합니다. 여기에 서 어떻게 푸느냐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2008년 이후 돈을 엄청 풀었지만 그 돈이 실물경제로 거의 가지 않았어요. 그냥 은행들이 쌓아놓고 있다든가 기업들이 무리한 부채를 끌어오 는 식으로 해서 자산시장에 거품만 끼게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죠. 특히 이번에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돈을 풀어도 나가서 소비를 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로 생계 에 돈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돈을 줘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기업이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계속 고용을 유지할 경우 정부가 임금의 80퍼센트까지 지원을 해준다고 합니다. 물론 한시적인 것이지만요. 심지어 영국에서는 '그러면 자영업자는 어떻게 하냐 이런 움직임이 있으니까 자영업자도 80퍼센트까지 지원해주겠다고 하고 있어요. 물론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옛날처럼 그냥 막연하게 돈을 푸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사람들이 깨달은 거죠. 예를 들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도 돈을 풀었는데, 그 돈이 금융기관에만 유입됐고 실물경제에는 돈이 흘러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푼 돈의 양은 많은데 사실 그것에 비해서 효과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진짜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줘야 한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는 거죠.
-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고 건강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장이라는 건 수단이잖아요. 모든 국민을 잘살게 하는 게 결국 목표인데 말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그런 가치관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됐습니다.
- 1960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을 봤더니 80달러더군요. 아프리카 우간다와 당시에 똑같이 출발한 겁니다. 그렇다면 1960년대에 태어나신 분들은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 우간다. 에서 보낸 것과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보세요. 환갑이 된 이분들이 60년 만에 우리나라를 세계 5위의 제조 강국으 로 올려놨고,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현대 인 류 100년 역사에 비교할 대상이 없는 기적을 만든 것이죠. 그 러니까 지금의 60대는 보호하고 지키는 데 익숙한 세대가 아 니라, 인생 자체가 엄청난 도전으로 점철된 분들이라는 겁니 다. 이런 분들이 디지털 문명, 스마트폰 생활, 이거 하나 적응 못 할 리가 있을까요? 저는 마음의 문을 닫은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애들 한테 배워야 하니 자존심이 상하는 거죠. 배운다고 또 잘 쓸 수도 없고, 자꾸 물어봐야 하니 짜증이 나는 겁니다. 이런 거 배우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더라, 그래서 난 안 배운다. 이러는 거죠.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19를 겪어보니 어느 쪽이 더 건강하 고 안전하게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지 답이 나왔습니다. 그 렇다면 어른들이 나서서 바꿔야지요. 더구나 40억 이상의 인류가 동참하는 새로운 문명이라면 고집을 버리고 이제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른들이 마음의 표준만 바꿔준다면 저는 금세 바뀔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내 마음의 표준을 바꾸는 일이 우리나라의 미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 두 가지 미래가 있습니다. 혹시 옛날 영문법 시간에 배웠던 의지미래, 단순미래 기억나세요? 이처럼 하나는 단순히 예측해야 하는 미래가 있고요. 또 하나는 우리가 마음을 굳게 먹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미래가 있습니다. 앞으로 단순미래는 불가능합니다.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대부분의 구조가 멀쩡히 있는 상태에서 몇 가지가 바뀔 때는, 우리가 예측할 수가 있어요.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전제를 놓고 모델을 만들어서 미래에 투사해볼 수가 있는 거죠. 하지만 구조 자체가 바뀔 때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미래를 대하는 방식은 '결단입니다. 우리가 이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고 어떤 식의 미래를 우리가 만들고 싶은가? 이처럼 우리의 이성과 양심으로 되돌아가서 어떤 미래를 만들지, 그 그림을 우리 스스로 결단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 아주 근본적인, 문명의 기본적인 문제입니다만, 인간 역사에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무한히 긍정한 문명은 현대문명밖에 없어요. 소비가 미덕인 건 현대밖에 없죠.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꼭 해외여행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명도 이 문명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무한한 욕망을 추구하는 원칙이 계속되는 한 생태 위기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코로나19 위기도 누그러 지지 않을 거고요. 현대문명의 가장 근간이 되는 이 원칙에 대해서 반성을 해야 됩니다. 우리의 욕망에 우리 스스로 질서를 부여할 수는 없는 것인가. 무한한 욕망을 계속 무한하게 긍정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 여기서 우리가 살아온 방식도 바꿔볼 게 있을 겁니다. 우선 매년 한 번씩 해외로 여행을 가서 공기를 더럽히고 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가서 피사의 사탑을 꼭 손으로 만져봐야 할까요? 지하수고 암반수고, 심지어 빙 하 녹은 물까지 플라스틱 통에 담아서 도시에서 마셔야 하겠 습니까? 덴마크 사람들도 우리도 농사 짓고 돼지 기르는 것 은 마찬가지인데, 단 몇백 원, 몇천 원이 더 싸다고 해서 우리 농산물을 덴마크로 보내고, 덴마크에서 돼지고기를 가져오다 보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의 질서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진 욕구와 능력의 한계와 질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유한한 인생인데 수십 년을 한없이 먹고 한없이 입다가 끝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바이러스는 미물이지만 우리에게 인간과 이웃과 자연이 함께 지복을 누리는 좋은 삶, 그걸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코로나19 이후의 시대, 다시 말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것을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까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포스트 코 로나 시대는 거대한 인식의 전환, 패러다임 전환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수월성meritocracy 사고는 이제 존엄성dignocracy 사고로 바뀌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경쟁 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겁니다. 수월성 사고는 실력주의, 그러니까 능력을 평가의 준거로 삼는 것이고요. 존엄성 사고는 말 그대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 을 동등하게 보는 관점입니다. 둘째는 한국이 코로나 대응에서 보여준 대응 모델을 사회개혁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도 적극 적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적 대응 모델은 중국의 전체주의적 대응 모델, 미국의 자유방임적 대응 모델, 일본의 관료주의적 대응모델, 그 어느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임을 확인 했습니다. 이런 모델을 사회 개혁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창조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겁니다. 재난 자본주의의 위험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사회적, 자연적 재난 상황을 자본 지배를 강화하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해왔습니다. 최근 한국의 몇몇 재벌과 대기업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보인 일련의 행태,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보인 자본친화적 조치들은 재난 자본주의의 악폐가 재현될 가능성을 경고합니다. 분명 우리의 국민적 대응은 훌륭했고 의식도 높았습니다만, 이런 악폐에 대한 자각도 절대 놓쳐선 안 되는 거죠.
- 사실事實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는 식의 표현을 쓰지요. 진실은 좀 다릅니다. 진실眞實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진실은 감춘다' 혹은 '밝힌다’같이 보다 더 드러냄을 의미하는 동사적 표현과 결부시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거리에서 한 노숙인이 굉장히 초 췌한 얼굴로 동냥을,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사실은 한 푼을 달 라고 하는 행위죠. 그런데 우리가 가정한 '진실'은 그 노숙인 이 최소한 3일 동안 굶었겠구나, 하는 겁니다. 그런 진실에 기반해서 동냥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실상 그 노숙인은 굉장히 좋은 승용차를 타고 윤택한 생활을 하다가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요. “이 자리가 대박 자리네.” 하면서요. 이게 진짜 '진실'인 거고요. 실제로 해외에는 그렇게 기업형으로 동 냥을 하는 분들이 있죠. 그러면 동냥하는 행위, 즉 사실을 본 우리는 그것이 진실과 다르기 때문에 분노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사실이란 건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정확한 면이 있는 겁니다. 진실은, 그러니까 트루스truth는 진짜 원인을 얘기 하는 겁니다. 심리학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불안은 사실을 알려달라는 감정이고, 분노는 진실을 말하라는 감정이다. 그 런데 우리가 광장에 나갈 때는 어떤 상태일까요? 분노해서 나 가죠. 광장에 나간 시민들은 진실을 말하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때 ‘아니야, 이거 별문제 없는 거야.'라고 사실관계만 얘기하면 분노가 사라지지 않죠. 심리학자들이 대표적인 예로 언급하는 것이 2008년 촛불시위를 촉발한 광우병 사태입니다. 광우병 사태 때 시민들이 분노해서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우리가 왜 이걸 먹어야 하는지 진실을 얘기하라는 거였어요. 미국에서 수입한 쇠고기가 신체에 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사실을 몰라서 나간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정부는 그저 사실만 얘기하니까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는 거죠.
- 대한민국 국민들이 서구보다 더 감정적, 정서적이라고 생각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니 아닌 것 같아요. 대한민국 국민들이 굉장히 이성적이고 유럽 사람들, 미국 사람들은 이상하게 감정적으로 반응해요.
저도 외국 학자들로부터 한국인이 이렇게 수준이 높았냐 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제가 그래서 그분들에게 이렇게 얘 기해요. “우리가 많이 분노해봤거든. 그래서 분노해야 할 때와 분노하지 않아야 할 때를 알고 있어."
정확한 말씀이네요.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코로나19 이후 신인류의 심리 상태는 어떠해야 할까요?
다른 분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슈퍼파워, 혹은 야수자본 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말씀해주셨잖아요. 저는 심리학자로서 전문적인 용어보다는, 실생활에서 자주 쓰는 좀 더 밀착감 있 는 단어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지혜로운 만족감을 추구하는 사회로 갈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 지혜로운 만족감을 추구하는 사회로 간다는 건, 내 만족감이 지혜롭지 않으면 앞으로 훨씬 더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의미거든요. 불만족한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회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지혜로운 만족감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건요. 나도 그만큼 만족감을 지혜롭게 가져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 기준은 본질적으로 남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하는 거고요.
- 그럼 만족감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걸 깨달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제가 얼마 전 경험 한 일인데요. 풍선을 사달라고 하는 아이한테 풍선을 사줬더 니 5분 있다가 아이가 풍선 줄을 놓더라고요. 그렇게 원했던 걸 얻었는데 팔이 아프다고 그냥 놓아버린 거예요. 어이가 없 었죠. 그런데 그날 찍은 사진을 보니 풍선을 사달라고 조르던 그곳 주위에 있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풍선을 갖고 있더라고요. 나만 안 가지고 있으니까 원했던 겁니다. 상대적 박탈감이죠. 사회적으로 원트want를 만들어낸 거예요. 그런데 아이가 풍선 줄을 놓고 나서 저한테 혼났던 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까 주위에 아무도 풍선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풍선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다시 말해 라이크 like는 없는데 그저 사회적으로 원트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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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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