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자신에 대해 고민할 때면 현실을 외면하는 버릇이 있다. (마크 트웨인)
- 사운드가 별로인 데다, 기타를 연주하는 밴드는 한물 갔다. (62년 비틀즈를 퇴짜 놓으면서 데카레코드 임원이 한 말)
- 씨 뿌리는 사람이 실수로 콩을 삐뚤빼뚤 뿌려두면, 콩의 실수는 아니지만 콩도 삐뚤빼둘 자라난다. (랠프 월도 에머슨)
- 선과 악은 없다. 단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셰익스피어)
- 넘어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다시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 (빈스 롬바르디)
- 당신의 허락없이 아무도 당신이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는 없다. (엘리너 루즈벨트)
- 화로 시작된 것은 부끄러움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 나는 늘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좀 더 구체적이었어야 했다. (릴리 톰린, 제인 와그너)
- 직면해서 맞서야만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러니 맞서라 (조지프 콘래드)
- 여전히 잠재력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대럴 로열, 텍사스주립대 미식축구 감독)
-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낡은 격언은 잊어라. 무지로 인한 평안함과 행복보다는 차라리 고통과 두려움을 주는 선택과 행동을 소망하라. 인생법칙과 책임감, 어려운 질문과 결정은 당신의 귀에 쓴소리일 수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그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해답이다. (필립 C. 맥그로)
- 자기계발은 대체로 초점이 없는 나태한 속임수이자 듣기에 그럴싸한 얘기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진실을 가장한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다. 이른바 자기계발 전문가란 이들의 말을 들으면 미사여구만 넘쳐날 뿐 알맹이는 없다. 당신은 그저 월세나 제때 내고 자식들이 대학에 가도록 뒷바라지를 잘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기계발 전문가들 은 이런 평범한 꿈에 대해서도 내적 감정이나 자아를 들먹인다. 내 말이 과장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기혁신'도 팔리는 상품이다. 이 쉬운 5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당신은 너무나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어서 성공은 떼어놓은 당상이다. 원하는 결과물도 즉각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심리학을 가장한 이런 헛소리 때문에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상당하다. 나는 감히 '오염'이란 단어를 쓰고 싶다. 이런 심리학 낭설은 우리가 변명을 멈추고 삶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삶을 회피하는 온갖 새로운 변명거리만 제공한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더 산만해지고 더 많은 문제를 겪게 된다. 오늘날 대중화된 심리학은 실제 심리적 질환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지나치게 남발되면서 진짜 문제를 감추기 위한 핑곗거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의 행동 때문에 골머리 썩는 엄마는 아이가 '과잉행동장애가 있으며 '엄마의 주목을 끌려고 일부러 나쁜 행동만 골라서 한다'라는 진단을 받는다. 교실에서 산만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하나같이 주의력결핍장애 진단이 내려진다. 당신이 마약을 주사하거나 술에 흠뻑 취해야만 잠자리에 들 수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약물남용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뜻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가 모두 이런 터무니없는 게임에 참여하면 서 이런 환상을 확대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 서서히 가라앉는 배가 있다. 계속해서 항로도 이탈한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서서 이렇게 소리쳐야 하지 않을까?
"이봐, 배에 문제가 있어!"
- "당신은 그저 아는대로 행동해왔을 뿐이다. 더 잘 알았다면 더 잘 행동했을 것이다.” (작가 마야 안젤루)
- 인간의 가장 중요한 10가지 고통적 특성이다.
1) 사람은 남에게 거부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2)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는 것을 가장 원한다.
3) 사람을 효과적으로 움직이려면 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주거나 높여주어야 한다.
4)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도 조금이나마 '내가 얻는 게 뭐지?'라며 고민한다.
5)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6) 사람은 자신이 이해하는 것만 듣고 기억한다.
7)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신뢰하고, 믿는다.
8) 사람은 종종 터무니없는 행동을 한다.
9) 고상한 사람도 때로는 소심한 소인배처럼 행동한다.
10)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다. 따라서 그 사람의 본모습을 보려면 가면 뒤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 당신의 인생에서 화가 나고, 상처를 입었고, 분노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감정 또한 당신의 것이며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결국 당신 책임이다. 피해자인 척 행동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당신은 누군가를 야비하고 공정하지 못하며 추악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가장 흔한 방식은 당신의 입장만이 옳으며 당신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모두 그르다는 생각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 세상이 이도 저도 아닌 혼란스런 상태에 빠진 것도 당신 탓이 아니라 남들 탓이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이 옳고 다른 사람이 그르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그 문제는 당신의 것이다. 그리고 나라면 이렇게 지적할 것이다.
“당신이 옳다면, 당신이 그렇게 똑똑하다면, 왜 스스로 원하는 결과를 만들지 못하죠?”
당신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사람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아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 말을 듣지 않는 것도 당신 책임이에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당신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당신에게 그럴 능력이 없어서 발생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해주겠다.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다. 당신이 처한 상황은 당신이 만든 것이며, 그런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도 당신 소관이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실제 삶이 그렇게 돌아간다. 당신은 기꺼이 입장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어렵고 특이한 상황일지라도 그 문제는 당신의 것임을 받아들여라. 사실 이것은 어떤면에선 희소식이기도 하다. 당신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당신이 인생을 깨쳤다는 뜻이다. 그것은 당신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당신 안에 있음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모든 문제에 대해 부모 탓을 하거나, 선생님 탓을 하 거나, 불운을 탓하거나, 우주의 음모로 몰아붙이는 것이 더 쉽긴 하다.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 더 쉽다는 말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더 쉽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더 쉽다. 그러면 당신은 피해자이니 굳이 자신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불우한 가정환경, 가정의 불화, 자녀에 대한 언어적·육체적 · 성적 학대에 관한 책은 무수히 많다. 이런 책은 당신이 어린 시절을 박탈당했고, 당신 내면에 있는 어린 자아가 밖으로 분출되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했든 간에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메시지를 읽게 되면,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주장을 하는 책을 탐독한다. 그 책들이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책의 주장이 얄팍하게나마 이성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모두 내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의도적으로 자신을 망치려 드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나 를 망친 사람이 나 자신이 아니라면, 나 말고 다른 누군가를 비난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당신이 모든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당신은 상처를 받았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 렇다면 잘못은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있다.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 다. 왜냐하면, 제정신이라면, 당신 스스로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나 상당히 그럴싸하게 들리긴 해도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신이 성인이고 독립해서 살고 있다면, 치매도 아니고 뇌종양도 아니라면, 어떤 형태로든 올바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모든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아니오”라고 말해서 내 인생이 더 풍성해지거나 더 나아졌던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면에 단지 “네, 한번 해보 죠”라고 말한 것만으로 삶이 나아진 경우는 여러 번 있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영화를 보자는 말에 좋다고 했고, 대학교에 진학하라는 말에 알았다고 했다. 나는 기꺼이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반대로 내 멋대로 판단하거나 싫증 내기 좋아하는 본능대로 행동했을 때에는 득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당신도 기꺼이 시도하라. 적극적으로 다가가라. 물론 적극적인 것과 무모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다르다. 적극적이 되라는 말을 냉철한 판단을 하지 말라는 말로 해석해선 안 된다. 혹시 매사에 의욕이 없다면 그 상태에서 벗어나라. 판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주변을 둘러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비상식적이고 고통스러운 생활에 오래 머물수록 삶을 창출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때로 변화는 작은 걸음부터 시작된다. 그 작은 걸음에서 탈출의 기회가 생겨날 수 있다.
- 특정한 행동을 그만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행동에 대해 스스로 보상하는 것부터 그만두어야 한다.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싶은가? 그렇다면 타인의 행동에 뒤따르는 보상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하라. 그런 후 그 보상을 조절함으로써 타인에게서 원하는 행동을 꾸준히 이끌 어낼 수 있다. 보상으로 타인의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 사람을 이용하거나 통제하는 것으로 들리는가? 실제로 그렇다. 예를 들어, 자기만 내세우는 당신의 상사가 배고플 때 음식을 섭취하기보다는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뛰었던 무용담을 떠벌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가? 그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가? 당신이 이 사실을 안다면, 적어도 상사에게 잘 보이는 방법 하나쯤은 알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자원해서 상사의 잘난 체를 들어주는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사가 어떤 보상을 원하는지 안다는 건, 당신이 그 보상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예외일까? 당신은 남들과 달라서 특정한 행동에 따른 보상에 지배되지 않을까? 당신은 이 인생법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착각이다. 당신이 특정한 행동에 따른 보상이 무엇인지 모 르겠다면, 그 상황을 충분히 분석하고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보상이 무엇인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혹시라도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보상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 거부에 대한 두려움 탓에 행동이 통제된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유념해야 한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어떤 짓이든 한다. 그만큼 두려움은 강력하다. 변화하는 것보다는 그대로 있는 것이 쉽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시도하지 않는 것이 더 쉽다. 한마디로 거 부될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것이 쉽다. 따라서 당신이 변화를 회피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한다면, 이렇게 물어보라. “거절당할지도 모를 두려움과 위험을 피하면서 얻는 안도감이 보상인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나한테는 보상이 아닐까?" 우리는 변화를 추구하지 않을 때 안도감이라는 보상을 얻게 된다. 반대로 변화를 추구할 때에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 나는 당신이 인생에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모든 것을 다 인정하기를 바란다. 결혼 생활, 직업이나 일, 태도, 분노 조절, 우울함, 두려움 등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모두 다 인정하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신이 현재 하는 행동이나 일이 무조건 옳다고 확신하더라도 상관없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모두 바꿔라.
-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고통은 당신에게 약이 될 수도 있다. 그 고통을 당신이 전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지금 당신의 삶에서 느끼는 고통은 변화를 추구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삶이 아주 비참한 지경에 놓여 있다면, 그런데도 당신은 계속 그 상황을 부인하고 무감각해졌다면, 그래서 매일 쳇 바퀴 돌 듯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당신은 변화에 대한 욕구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삶의 고통으로 인해 정말로 아파한다면, 그 고통을 인정함으로써 당신은 무감각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니 고통을 부인하지 말고, 감추려 들지 마라. 고통스럽지 않은 척도 하지 마라. 애써 고통을 합리화하면서 나는 그런 고통을 당해도 된다. 며, 별로 대단한 고통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기만하지 마라. 오히려 당신 의 의식을 고통에 집중하라. 그러면 그 고통이 당신을 변화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 당신이 지금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기만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하거나 더 나은 것을 원하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한다면, 실패에 따른 위험이나 두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저 당신이 이미 가진 것마저 잃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살아갈 것이다. 안전지대에 머문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고, 변화하지도 않으며,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당신은 모순에 빠지게 된다. 당신이 계속 도전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두려움에 시달리다가 끝내 도전을 멈추고 무기력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시도조차 하기 전에 포기한다면, 당신은 결국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 사람은 누구나 회피를 선택할 때가 있다. 회피는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이다. 긴장감에 휩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것 역시 회피다. 꿈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도 회피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스스로 포기하면, 이전의 삶이 당신을 찾아온다. 삶은 포기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포기하는 것을 보상하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그리고 당신이 포기함으로써 얻는 보상은 헛된 안도감일 수 있다. 그 안도감은 당신이 꿈과 희망을 포기하고 얻은 보상일 뿐이다.
- 아내가 남편이 쓰레기를 내다 버리지 않는 것을 두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면, 아내에게 그 해석은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 것만큼 당연한 사 실일 수 있다. 남편이 그 일을 일상적인 집안일 중 하나로 보고 전혀 감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아내의 시각이 그런 것처럼, 남편의 입장에서는 남편의 시각이 현실이다. 이처럼 특정한 사안에 대한 당신의 시각은 그 사안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결정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원한다면 지금 지닌 시각과 전혀 다른 시각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이 특정한 사안을 해석할 때, 당신에겐 선택권이 있다.
- 빅터 프랭클 박사의 경험이 주는 교훈은 두 가지다.
첫번째 교훈은, 프랭클 박사의 경우처럼,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결국 당신의 선택이다. 당신의 상황이 어떠 하든 적어도 그 상황을 보는 시각만큼은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
두 번째 교훈은 프랭클 박사는 자신에게 그런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수용소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는 점이다. 프랭클 박사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남들 에게 알리기 전에 죽는다면, 애써 수용소 생활을 버텨온 것이 물거품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 덕분에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도전으로 해석 하기로 선택했다. 극심한 고난 속에서 생존의 강한 의지가 생겨났고, 그 결과 그의 발견은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다. 당신이 살면서 프랭클 박사만큼 극심한 도전을 견뎌야 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프랭클 박사의 메시지는 당신의 삶에도 유효하다. 당신이 일상에서 겪는 사건의 의미는 결국 당신이 부여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세상에는 좋은 사건도 나쁜 사건도 없다. 그저 사건만이 있을 뿐이다. 당신에겐 자신의 시각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당신은 일상에서 겪는 모든 상황에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든 할 수 없다고 믿든, 대체로 당신의 생각은 옳다.
- '구두 수선공이 막상 맞는 구두가 없다.'
당신이 남들의 문제와 요구를 해결해주느라 정신없이 바쁘지만, 막상 자신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감정적 파산으로 치닫는 것과 같다. 당신이 문제를 참고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 문제에 거의 무감각해진다. 따라서 남들의 문제에만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당신의 문제 해결 에너지를 충분히 쓰겠다고 결심하라. 그리고 명심하라. 당신은 스스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다. 따라서 오래도록 외면해온 문제 때문에 당신의 영혼이 황폐해졌다면, 당신은 절대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강하고 건강하고 평화로 운 당신 자신을 베풀어주지 못한다.
- 당신에게 인생계획이 없다면, 당신은 인생계획이 있는 이들이 밟고 올라가는 디딤돌에 불과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세상에 살고있다는 것이 불편한가.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관리되지 않거나, 적절히 관리하지 않은 인생에는 세상의 잔인하고 거친 대접이 따라온다. 반대로 명확한 인생계획이 있고, 프로젝트에 착수하는 것처럼 그 계획을 실행할 용기와 열정, 에너지가 있다면 당신은 크게 성공할 수 있다. 삶이 던지는 그 어떤 거친 풍랑도 극복할 수 있다.
- 효과적인 인생 관리는 스스로를 더 몰아붙이는 것이다. 당신은 모든 행동에서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더 높여야 한다. 심지어 아주 단순한 행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단정한 외모나 자기절제, 감정관리, 대인관계, 업무성과, 두려움 극복을 비롯한 모든 측면에서 스스로의 기준치를 높여라. 오늘부터 당장 아침에 눈을 뜨면 이런 질문을 던져라. '내 인생을 개선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할까?' 이 질문을 던지고, 답변하 고, 실행에 옮겨라. 하루도 거르지 마라. 주변 사람들이 당신의 행동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진정한 변화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당신은 삶의 방향부터 전환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일상에서부터 성과를 높이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명심하라. 성과는 전염성이 있다. 당신이 특정한 부분에서 성과가 높아진다면, 다른 부분에서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 인간관계를 검토할 때 자신을 속이고픈 유혹을 주의하라. 상대가 부적절하게 대우하는 것이 일부나마 당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피해자인 척하면서 상대방을 비난 하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관계가 성립한 데에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이 당신을 대하는 방식 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진심으로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는 말로는 관계에 변화를 줄 거라고 떠들면서, 실제로는 과거의 친숙하고 파괴적인 관계로 되돌아가 는 것이다. 변화를 말하면서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은 상대에게 당신의 말을 가볍게 여기라고 가르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당신의 의지는 우리가 앞서 얘기한 인생결정의 수준 정도는 되어야 한다.
-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가해자가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그 상처를 간직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상처를 입힌 사람이 사라져버려서 더는 따지지도, 논쟁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데이비드처럼, 상대방은 오래전에 죽은 아버지일 수도 있다. 멀리 이사해서 다시는 못 만나게 된 친구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남은 인생 동안 여전히 증오와 분노, 적개심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갈 것인가? 용서를 미루지 마라. 당신에겐 그들을 용서할 힘이 있다. 그리고 그 용서는 그들이 아닌 자신을 위한 선물이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고통과 상처에서 벗어날 자격이 있다. 다만 명심하라. 당신의 경험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원하는 경험을 만들고, 당신이 원하지 않는 경험은 제거하겠다고 굳게 결심하라. 당신의 용서로 오히려 상대방이 득을 보더라도 개의치 마라. 용서를 통해 구원할 대상은 당신 자신이며, 감정적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 또한 당신 자신이다. 용서의 힘은 증오와 분노, 적개심에서 스스로를 해방하는 힘이다. 그 힘을 움켜쥐고 고통에서 벗어나라.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도 그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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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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