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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지구사

역사 2015. 5. 3. 16:42

 


빵의 지구사

저자
#{for:author::2}, 빵의 지구사#{/for:author}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5-01-0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신의 선물’이라 불리는 서양인의 주식, 빵 부유한 자와 가난한...
가격비교

 

 

- 고운 가루를 만드는 것과 흰가루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흰가루는 순수하게 정제된 가루를 의미. 곡물에서 흰가루를 얻기 위해서는 여러단계를 거쳐야 함. 새하안 가루를 얻으려면 먼제 제분할 때 곡물의 껍질가 배아가 가루에 섞여 들어가는 것을 최소화해야 함. 그런 다음 가루를 체와 고운 천에 여러번 내려 가루에서 순수한 녹말을 분리하면 그것이 바로 흰가루다. 밀의 초기 품종인 일립계밀은 베타카로틴 함량이 높기 때문에 그것으로 만든 흰가루는 매우 노랬을 것이다. 또한 고대곡물은 현대곡물보다 겁질이 잘 부스러져 제분할 때 고운 가루로 갈려 한데 섞였을 가능성이 높음. 어찌 되었든 곡물에서 흰가루를 분리해내는 기술을 터득한 사회라면 상류층의 경우 일반대중보다 훨씬 더 순수한 가루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
- 곡물을 거칠게 가는 것에 비해 고운 가루나 흰가루로 만드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든다. 특히 흰가루를 만들려면 껍질과 배아를 체에 쳐서 골라내야 하기 때문에 흰가루의 생산은 비경제적임. 그러므로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 흰가루는 부를 과시하는 대표적 소비품목이었다. 지금처럼 저렴한 흰가루는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 곡물수확량이 늘어나고 금속제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음. 흰가루를 만들 때 현대의 제분기술로는 곡물중량의 25% 정도가 손실되지만 산업화 이전에는 중량의 50% 이상이었을 것이다.
- 빵을 부풀리는 대표적 방법
(1) 얇은 반죽에 강한 열을 가해 반죽에서 나오는 증기로 부풀리는 방법
(2) 공기중의 유산균을 이용해 자연적으로 발효시키는 사워도 발효법
(3) 이스트를 첨가해 발효시키는 방법. 이때 이스트는 술 양조장에서 빵을 굽는 사람들에게로 전해져 수천년 동안 사용되고 있는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를 가리킴. 플랫브레드를 만들 때에는 세가지 방법을 모두 쓸 수 있지만 로프브레드를 만들때는 사워도 발효법이나 이스트 발효법을 써야 함
- 빵의 역사를 이끌어온 원동력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모두 그것을 먹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낸다는 사회적 표지로서의 빵과 관련이 있음. 가장 강력한 원동력인 첫번째는 가능하면 가난한 자의 빵을 먹지 않으려고 하는 보편적 경향. 두번째는 곡물가루를 더욱더 곱게 갈고자 하는 경향. 여기서는 두가지 가운데 더 중요한 원동력인 상위계층이 하위계층의 빵을 거부하는 현상에 중점을 두는데, 결론적으로 이 책의 핵심주제는, 이런 거부현상은 고대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부드럽고 폭신한 호밀빵과 갈색 빵을 포함한 현대 빵문화지형을 형성한 주동력이라는 점이다.
- 로프브레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빵 안쪽, 즉 빵의 속살이다. 빵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빵 속살에 갖는 사람들의 기대감. 실제로 곡물을 선택하고, 정제하고, 발효하고, 반죽하는 모든 제빵 과정은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적 속살을 만드는 데 맞추어짐. 보리 같은 다른 곡물로도 빵을 만들 수 있지만 재배면적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곡물이 밀인 이유는 사람들이 밀로 만든 빵의 속살을 좋아하기 때문. 문화적 표지가 되는 빵 속살의 주요 요인으로는 빵이 얼마나 가벼운지와 식감,색상이 있음. 토머스 코건이 펴낸 1500년대 중반의 영향력 있는 건강안내서 '건강 안전지대'에는 빵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실림. 코건은 가장 좋은 빵은 "가벼워야 하고 차고 습한 기운이 없어야"한다고 설명. 여기서 말하는 차고 습한 기운이란 끈적이는 것을 말함. 코건이 책을 쓸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먹던 단단한 통곡물빵, 특히 호밀빵 종류는 실제로 속살이 끈적거렸음. 그는 체액설에 근거하여 그런 빵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주장했음.
- 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킨 흰 밀빵은 만드는 과정에서 두배이상 부풀어 오름. 반면 밀을 제외한 곡물과 껍질은 원래 잘 부풀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재료를 많이 넣을수록 반죽은 덜 부풀어 오름. 이를테면 100% 통호밀가루로 만든 반죽은 발효를 거쳐도 사실상 거의 부풀지 않음. 즉 가벼운 속살이 만들어지지 않음.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단단한 빵을 피하려 했기 때문에 이와 반대되는 부풀어오른 가벼운 속살의 빵을 더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근본적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은 가벼운 속살을 좋아했고 그런 빵을 만들 수 있는 밀가루,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정제된 밀가루를 원했다. 이는 제분기술의 발달로 이어져 오늘날에는 통밀가루조차도 아주 곱게 생산되어 과거보다 훨씬 더 가벼운 통밀빵과 잡곡빵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현대 제빵업계도 최신 발효과학을 적용해 원래 단단한 것이 정상인 통밀빵과 잡곡빵까지도 부드럽게 만듬. 반면 전통방식으로 빵을 만드는 전통 수제빵집에서는 100% 통호밀빵이나 통밀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음. 전통 방식으로는 도저히 끈적이지 않는 부드러운 통밀빵을 만들 수 없기 때문. 입자가 굵은 밀가루를 쓰면 고운 밀가루를 사용할 때보다 빵이 단단해 지는데, 요즘 제빵업계에서는 굵은 밀가루를 거의 찾지 않음. 코건의 책에서처럼 단단한 갈색 빵보다 부드럽고 가벼운 흰빵이 좋다는 내용이 글로 쓰이기 훨씬 이전에도 사람들은 빵의 가벼운 속살을 좋아했음. 아마도 그 기원은 상류층의 빵에 밀을 썼던 고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임.
- 19세기 미국 요리책에는 빵 껍질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갓 구운 빵에 물을 바르라는 조언이 나옴. 수세기 동안,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까지 상당수의 유럽 상류층은 빵껍질을 벗기고 먹었다. 빵껍질은 빵이 뜨거울때문 벗길 수 있다. 20세기 초반의 껍질을 벗긴 롤빵 요리법을 살펴보면 빵이 뜨거울 때 빵 껍질을 벗겨낸 뒤 다시 오븐에 넣으라고 되어 있음. 그 당시 상류층들이 번번이 이런 식으로 빵을 구워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해보면 깜짝 놀랄만한 빵이 만들어짐. 빵 속살이 겉으로 드러난 연한 색의 빵이 되는데 입으로 베어물 때의 느낌이 매우 훌륭하다. 이렇게 벗겨낸 빵 껍질은 빵가루의 재료가 되었고 실제로 17세기에는 많은 요리에 빵가루가 쓰였음. 상류층이 빵껍질을 벗긴 이유는 평소에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아 빵껍질을 소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 반면 노동자들은 빵껍질을 잘 소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음.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당시 유명했던 '시골농장(1616)'에는 상류층 사람들이 빵껍질을 먹으면 우울해진다는 내용이 나옴. 한편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색에 대한 심미적 기준에서 빵껍질을 벗길지 여부를 결정했을 것임.
- 빵의 신선도도 평가 기준이 됨. 과거에는 절대 빵이 따뜻할 때 먹지 않았음. 실제로 근대까지의 모든 건강 안내서에는 빵을 구운 뒤 하루가 지나기 전에는 절대로 먹어서는 안된다고 쓰여 있음. '음식과 요리(2004)'의 저자 해럴드 맥기가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빵이 식는 동안에도 급격한 화학적 변화가 계속 일어나며 만 하루가 지나야 안정화되고 자르기 좋은 상태가 된다. 특히 호밀빵은 빵을 구운 다음 자르지 않은 채 하루에서 며칠 동도 두면 풍미가 더욱 좋아짐. 마찬가지로 흰 빵도 빵을 굽고 난 다음날 맛이 더 좋아지는 경우가 많음. 프랑스 파리에 있는 푸알란 베이커리의 제빵명장 리오넬 푸알란은 그의 빵 가운데 가장 유명한 미시(밀가루, 물, 소금만으로 만드는 커다랗고 둥그런 빵)를 구운지 3일이 지난 뒤에 먹기를 권했음. 이처럼 빵의 신선도와 맛은 반비례함. 빵의 노화란 빵 녹말 입자에서 물이 증발해 빵이 말라버리는 복잡한 화학반응. 빵은 노화되면 냄새가 달라짐. 신선한 냄새가 사라지는 대신 그 냄새를 대체해 다른 좋은 맛과 냄새가 생기는 경우가 많음. 다만 프렌치 바케트처럼 껍질이 바삭한 종류는 구운 뒤 식자마자 바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 설탕을 넣지 않고도 단맛이 약간 느껴지는 빵 반죽을 만들 수 있지만 영국과 미국에서는 100년이 넘게 이스트 발효빵 반죽에 종종 설탕을 넣어 왔음. 보통은 미국에서 설탕을 더 많이 넣는다. 19세기 상업적 제빵 업자들이 처음으로 빵에 설탕을 넣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맛을 내기 위해서라기보다 반죽개량제 용도로 사용. (빵껍질이 부드러워짐) 이때부터 단맛이 살짝 나는 빵맛에 사람들의 입맛이 길들여지면서 지금까지도 계속 설탕을 넣게 된 것으로 보임. '타사하라 브레드 북(1970)'은 오늘날가지도 미국의 히피스타일의 제빵사들에게 통밀방의 교과서로 통하는 영향력 있는 반체제적인 요리책임. 기존과는 전혀 다른 요리법을 선보인 이 책에서조차 설탕을 쓰지 않는 대신 반죽에 꿀을 넣은 것을 보면 지난 100년 동안 아주 살짝 단맛이 나는 빵에 대한 미국인들의 사랑이 거의 보편적이었음을 알 수 있음. 한편, 서로 다른 문화적 취향을 반영하듯 프랑스에서는 절대 빵에 설탕을 넣지 않음. 요즘에는 프랑스식 빵이 유행하면서 영국, 미국인의 취향도 점차 변화하기 시작.
- 소금은 대부분의 현대 빵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 소금의 맛을 따로 떼어내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소금은 빵맛에 많은 영향을 끼침. 오늘날 대부분의 밀빵에는 소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감. 일반적으로 밀가루 중량의 1.5~2%정도 소금이 반죽에 들어가며 빵집에 따라 3%까지 쓰이기도 함.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소금은 오늘날 빵에서 뚜렷하게 느껴지는 맛 가운데 하나임.
- 1550년에서 1800년까지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빵 반죽에 소금을 전혀 넣지 않거나 소금을 넣더라도 오늘날 사람들의 입맛에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적은 양을 썼다. 짭짤한 빵은 랭들 코트그레이브가 1611년에 쓴 프랑스어-영어사전의 팽 몰레에 대한 정의에서 처음 언급된다. 팽 몰레는 오늘날 흔하게 볼 수 있는 흰 프랑스빵과 비슷한 종류로 수분 함량이 높은 묽은 반죽으로 만듬. 반죽에 수분이 많으면 발효할 때 눈이라고 불리는 큰 구멍이 잘 생기는데, 이때 소금은 반죽의 조직을 탄탄하게 하여 구멍이 잘 유지되록 하는 역할을 함. 팽 몰레류의 빵에서 짠맛이 나는 이유가 여기 있음. 또한 소금은 빵껍질의 색을 짙게 만드는 역할도 함. 그러나 오늘날 빵에 들어가는 소금의 양은 역할상 필요한 양을 넘는 경우가 많은. 짠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입맛도 하나의 원인이 될 것임.
- 유럽에는 지금까지도 빵에 소금을 넣지 않은 유일한 지역. 바로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토스카나다. 토스카나를 방문한 여행자들은 한목소리로 토스카나 빵에 대해 불평한다. 빵에서 소금을 빼면 맛이 심심해진다. 하지만 그래야 빵의 섬세한 풍미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소금을 넣지 않은 빵맛에 익숙해지면 밀가루의 맛과 발효과정에서 생긴 미묘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빵에 소금을 넣지 않았거나 아주 약간만 넣었던 과거에는 실제로 밀을 제분하자마자 바로 빵을 제조. 반면 요즘에는 밀을 제분한 뒤 최소 6주 이상 일부러 숙성시키고 수개월 이상 쓰지 않는 경우도 많음. 오늘날 빵에 소금을 많이 넣는 이유는 산화되고 노화된 밀가루에서 손실된 풍미를 감추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 이스트는 당분을 분해해 탄산가스를 발생시키는 단세포 미생물. 빵 반죽에서 이스트가 대사하여 탄산가스가 생성되면 빵에 공기구멍이 생김. 17세기에는 이 공기구멍을 눈이라고 불렀음. 또한 이스트 대사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알콜과 에스테르는 빵에 풍미를 더함. 맥주나 와인 이스트로도 빵을 만들 수 있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공장에서 이스트를 대량생산하면서 빵 이스트와 맥주 이스트가 차별화되기 시작. 사람들이 이스트 발효빵에 원했던 것은 섬세한 풍미보다는 폭신한 식감이었다. 현재 빵 이스트로 판매되는 공장제 이스트는 다른 종보다 풍미는 덜할지 몰라도 가스가 잘 생긴다는 이점이 있음.
- 사워도는 말 그대로 신 반죽. 밀가루와 물을 섞은 반죽을 실온에 그대로 놓아두면 자연스레 발효가 시작됨. 수분함량이 높은 반죽도 실온에 놓아두면 며칠안에 반죽이 시어지면서 거품이 생기기 시작. 그대로 내버려둔 반죽에는 박테리아와 이스트가 100대 1 정도의 비율로 생김. 이때 박테리아와 이스트는 서로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당분을 대사하고 탄산가스를 배출함. 이스트 발효때와 마찬가지로 이 탄산가스가 반죽을 부풀리는 역할을 함. 사워도 발효과정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빵을 담백하게 만들수도, 달거나(특히 호밀가루를 썼을 때) 시게 만들수도 있음. 역사적으로 영국인은 형편만 된다면 누구나 맥주 양조장에서 이스트를 사거나 에일 맥주를 직접 만들어 이스트를 넣은 폭신하고 달콤한 빵을 만들 수 있었음. 그렇기 때문에 사워도 발효빵은 항상 가난을 상징했다. 반면 프랑스의 경우 맥주 양조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워도 발효를 통해 빵을 만드는 일은 대개 불가피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신맛이 나는 사워도 발효빵은 가난과 촌스러움을 상징. 과거 프랑스 상류층 가정의 빵 요리법을 보면 현대 프랑스 빵집에서 르뱅 발효방에서 신맛이 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르뱅 발표빵과 비슷하게 만든 이스트 발효빵과 신맛이 나지 않게 만든 르뱅 발효빵은 사실상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스트를 언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어떤 발효빵을 더 좋아하느냐는 대체로 유행의 문제다
- 현재 대부분의 빵과 와인, 맥주를 만들 때 쓰이는 이스트는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 종이다. 사카로미세스 세리비시아가 빵 이스트로 분류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 19세기까지는 빵을 만들  때 누구나 맥주 양조장에서 이스트를 구해서 사용. 즉 빵 이스트라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 이스트 제조업자가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를 제빵용 이스트로 대량생산하면서 사카로미세스 세리비시아가 빵 이스트로 불리게 됨. 이것이 선택된 이유는 발효과정에서 많은 양의 가스를 빠르게 내뿜어 사람들이 원하는 가벼운 빵을 잘 만들 수 있는 이스트였기 때문. 이스트 제조업자들은 제빵업계의 요구에 따라 어떤 환경에서든 가스를 빠르게 많이 생성하는 이스트를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춤. 예를 들어 설탕을 넣은 반죽에서도 발효가 잘 되고, 설탕을 넣지 않은 반죽에서도 발효가 잘 되며, 이스트를 미리 물에 개지 않고 밀가루에 바로 섞어도 발효가 잘 되는 그런 이스트를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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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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