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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억 기업가들이 온다

경영 2014. 10. 18. 12:35

 


24억 기업가들이 온다

저자
타룬 칸나 지음
출판사
세종서적주식회사 | 2011-07-1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한국통인 하버드대 타룬 칸나 교수가 들려주는 우리의 미래! 21...
가격비교

- 일부 추정에 따르면 04년 총선에서 선출된 의원들 가운데 약 25%가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었음. 인도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징후가 여기 있음.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불미스러운 개인들을 공직에 앉힘으로써 무책임성이라는 기준을 강화한 것.
- 중국과 의미있는 대화를 하려는 나라라면 질서, 조화, 계급의 이면은 경직, 검열, 국가통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됨. 58년부터 10년에 걸쳐 마오쩌둥은 두건의 대규모 사회적, 경제적 재앙들을 주관. 첫번째 재앙인 대약진 운동은 저렴한 노동력이 대규모 공급을 바탕으로 중국이 농업과 공업 양대 부문의 급속한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는 마오쩌둥의 믿음을 구체화했음. 그의 비전은 전국 각지의 간부들에 의해 비상한 열정으로 이행되었음. 결국 이 단계는 중국인들 가운데 약 3000만 명이 죽은 대규모 인위적 기근이라는 비극으로 종료되었음. 두번째 재앙은 마오가 시작한 정치운동이 문화대혁명. 인민해방군과 홍위병은 중국 공산당 내 반발세력을 무자비하게 억압. 문화대혁명이 끝날 때까지 1억명의 중국인이 공개적으로 비난받고, 추방되고, 개혁되었으며, 1000만명이 살해당함. 76년에 마오의 죽음으로 이런 만행은 본질적으로 종식되었지만, 정부 명령에 반대한 사람들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음.
- 90년대 말에 여러 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인들 중 40%는 중국 공산당원으로 추산. 이중 많은 사람들은 샤하이 기업인들(관리생활을 그만두고 민간 경제의 바다에 뛰어든 사람들)이었음.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뒷날 작심하고 당에 가입한 사람들도 있었음. 이에 따라 공공과 민간 부문을 융합한 형태가 점차 등장했으며, 이로 인해 중국 공산당원은 성공적이고 실용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됨. 공산당은 당원기반을 성공적으로 확대했음. 06년 공산당 당원의 수는 7100만명에 달함. 공산 당원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면서 부패또한 늘었음. 중국 공산당의 중앙기율 검사위원회는 부패한 당 간부들에 대한 형사처분 확률은 거의 무시해도 될 수준이라고 말했음.
- 인도 시스템은 잡음이 있되 편견없는 정보를 생성. 중국 시스템은 잡음이 없되 편견있는 정보를 생성. 다시금 말하거니와, 한 나라의 강점은 다른 한 나라의 약점임.
- 통제와 검열에는 복잡한 기술적 노력이 전혀 필요치 않음. 대부분 서구의 컴퓨터 및 통신기술 거대기업들에 의해 제공되는 제품들에 약간의 조정만 가하는 것만으로 충분. 중국에서 사업하는 것에 대한 조건으로서 국가의 노력에 협력하겠다는 일부 서구기업들의 명백한 의사는 단지 국가통제에 도움이 되었을 뿐. 위반자들을 투옥과 심지어 죽음으로 처벌하는 법률도 도입됨.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구글은 아마도 도덕적으로 책임질 일이 가장 많은 서구기업일지도 모름.
- 정보를 여과하는 것을 계급에 의존해온 중국의 역사는 제국시대로 거슬러감. 백성은 지배자에게 충성을 바치며, 가족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지배자는 물질이든 아니면 다른 것이든 백성의 복지를 책임진다는 것이 당시의 묵계였음. 지배자 주변의 소수 집단은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누가 그 정보에 접근할지를 결정하는 천명을 받아놓고 있었음. 애퍼드에 따르면, 제국시대의 중국에서 종이에 적힌 법률의 보급을 억제했던 이유는 백성들이 글을 몰라서이기도 했지만, 지배자가 법률을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위임받았기 때문에 지배자 외에는 어느 누구도 법률을 알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음. 이것의 현대판은 물론 공산당 계급임. 공산당은 어떤 정보가 누구에게 공개될 것인지, 그리고 어떤 것이 공산당 체계 내부에 보관될 것인지를 결정.
- 오늘날 인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가장 긍정적 법률들 가운데 하나는 05년 제정된 정보권리법임.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시민들은 오랫동안 정부문서와 통신에 대해 거의 규제받지 않는 접근을 향유해온 반면, 인도인들은 23년 제정된 공공비밀법에 의해 통제를 당해왔음. 그런데 새 법률에 의해 시민들은 누구나 공공당국에 정보를 청구할 수 있음.
- 중국에서 들리는 대부분의 항의 목소리, 최소한 정부의 이익에 정면으롤 배치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그런 목소리는 새로운 권리의 제도화보다는, 기존 규칙의 공정한 적용을 촉구. 하버드대 엘리자베스 페리는 이것을 가리켜 권리자각이 아니라 규칙자각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권리를 권력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오랜 전통을 반영함.
- 중국인들이 저축을 많이 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공식적 사회안전망의 결여, 그리고 적어도 도시지역에서 사회안전망을 대체할만한 가족적 유대의 균열. 철밥통은 깨졌으며, 가족에 기반을 둔 사회안전제도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제 앞가림을 스스로 하도록 내몰고 있음. 중국의 한가구 한자녀 정책은 미래에 노인을 돌볼 근로인구를 줄임으로써 더 많은 저축을 부추길 것임. 역설적으로 이처럼 어렵게 모은 저축(파산한 은행예 예치됨으로써 당의 금고로 들어가는)은 결국 미국의 과도한 소비를 감당하는데 사용됨.
- 중국이 인도에서 배워야할 교훈들 가운데 하나는 주식시장의 더 나은 관리임. 하지만 그 교훈은 배우는 데 시간이 걸림. 중국 시스템을 개혁하는 데에는 정치적 의지가 필요한데 아직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음. 그리고 시장에 기반을 둔 자본할당과 관련된 경험도 필요. 남쪽의 이웃나라에서 배우겠다는 중국의 의향은 북쪽의 이웃나라인 러시아의 경험에 의해 영향 받음. 90년대 러시아의 붕괴를 분석하는 중국인들은 성급한 자본시장 자유화가 자본통제에 구멍을 냈으며, 은행간부들을 러시아 금융위기와 채무불이행 사태 이전인 98년 공매자 입장을 취한 과두제 집권층의 일원으로 변모시켰다고 결론지음.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러시아의 파국은 중국을 극도로 조심하게 만들었음.
- 거의 모든 범주에 걸쳐 생산자가 과다한 것은 중국 토착기업의 특징인데, 이는 정치적 지방분권이라는 이 나라의 독특한 특징에 기인. 각 성의 관리들은 자신들이 평가받는 기반이 되는, 자기들 관할 내의 기업을 키우기를 좋아함. 자신들이 그렇게 하면 인근 성들에서도 비슷한 노력을 쏟아 경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음. 게다가 성과 성 사이에는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장벽이 매우 높음. 고만고만한 생산설비들이 너무 많이 난립한 탓에 효율은 저하됨. 보호주의와 파편화가 없었더라면 필요 없었을 가외의 자원, 즉 더 많은 노동력, 원자재, 전력이 상품 한 단위를 생산하는 데 들어감. 중국의 성장 가운데 많은 부분은 주어진 투입의 오랜 시간에 걸침 더 효율적인 사용보다 더 많은 투입에서 생긴 것으로 보임.
- 인도와 중국의 국제거래 차이점은 무엇인가? 첫째, 인도는 미국의 동맹국으로 인식됨. 냉전시기에 미국보다는 소련에 더 동조했던 이력을 가진 인도에 대해 이처럼 더 따뜻한 시각이 생겨난 것은 비교적 최근. 그래서 중국 기업들보다 인도 기업들에 대해 제기된 정치적 반대가 훨씬 더 적었음. 둘째, 영국의 코루스 스틸을 사들인 타타스틸을 예외로 하면, 인도 기업들은 처음에 레노버, TCL, 중국 해양석유 총공사, 하이얼에 의해 추진된 것과 같은 대규모 인수와는 거리를 두었음. 인도 사람들은 더 작고 더 다루기 쉬운 자산을 상대로 조심스릅게 인수를 시도. 1억달러 같은 액수가 중국의 180억 달러 같은 액수보다 인도에서는 더 흔함. 이런 종류의 거래는 당연히 주목을 덜 끔. 특히 거래들이 널리 분산되어 있기 때문. 타타 가문은 영국에서 테틀리 차, 한국에서 대우 자동차 트럭부문, 동남아에서 철강회사,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소규모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사들임. 중국의 공격적 인수 사례들은 국가의 정치적 위임과 무제한의 자본으로 지원받았으며, 인수동력으로 작용한 것은 자본 이익률이 아니라 인수대상 기업의 명성이었음. 그런 반면에 인도의 기업구매는 전통적 주주들의 압력과 맞닥뜨려야만 함. 인도 사람들이 대형기업 구매를 시도했을 때, 그 거래는 정부내의 악감정, 그리고 국영기업 CEO와 장관간의 입씨름 와중에 무산됨. 때때로 역 기능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당성과 전략에 관해 의미있는 논의로 이어지는, 이견에 대한 그러한 공개적 토론은 중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움. 끝으로 중국과 달리 인도는 그 대표산업인 소프트웨어 산업을 위해 일하는 민간부문 로비단체가 분명히 있어서 국경을 넘는 상업을 위해 정지작업을 함. 뉴델리에 있는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회사 전국 협회 회장인 키란 카리닉은 뉴욕과 워싱턴에서의 회합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냄. 이런 모임에서 그는 의회 및 행정부 사람들과 만나 인터넷 보안, 외주, 미국과 인도간 경쟁의 미래 같은 사안을 놓고 공통의 관심사를 도출하려고 노력.
- 중국의 FDI가 그 나라의 근본적 강점 못지 않게 그 나라의 허약한 미시경제를 나타냄. 중국이 FDI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국내저축을 효과적으로 생산적 투자로 돌릴 수단을 중국이 갖고 있지 않기 때문. 국가에 의해 소유되고 국가로부터 지시를 받는 은행들은 대부분 없어졌는데, 이런 은행들은 대규모로 계속 돈을 태워 날려버리는 국영기업들을 주로 떠받치는 데 사용됨. 따라서 외국인 투자자들과 그들이 하는 투자의 본질은 여타 개도국들 중 대부분의 FDI와 비교할 때 변칙적임. 예컨대 90년대의 많은 투자는 먼 외국들이나 전형적으로 규모가 큰 서구 다국적 기업들이 아니라 홍콩, 마카오, 대만의 중소기업들에 의해 이루어졌음. FDI자금이 종래 통상적으로 흘러들어가던 분야(상아나 옥가공)가 아니라 다른 산업에 종종 투입됨. 게다가 중국으로 들어오는 돈 가운데 많은 부분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FDI를 사용하는 방식처럼 생산적 투자자금을 제공하는데 사용되지 않음. 오히려 그 돈은 이전에 국영기업들이 소유했던 자산들을 재구매하는 데 쓰임
-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자국의 값싼 노동시장을 활용하려는 중국은, 토착 민간 기업 대신 FDI에 주로 의존. 인도는 정반대였음.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 때문에 중국의 토착기업이 사실상 제거된 것과 달리, 인도는 그와 비슷한 과정을 겪지 않음. 심지어 바리티 텔레콤 같은 세계 최고수준의 기업들이 등장하기 전부터 인도에는 토착민간기업들이 있었음. 국가의 보호주의 정책 아래 안주했기 때문에 인도의 기업들은 시장을 놓고 싸우는 법을 배우지도 않았으며, 오늘날의 기업들만큼 역량이 높지도 않았음. 그럼에도 인도의 민간부문은 언제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세력이었음.
-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37%는 석사 또는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데, 이는 미국 태생 주민들의 8%와 비교됨. 첨단기술의 또 다른 본산인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미국에 사는 사람들의 석사 또는 박사 학위 보유비율은 18%임. 인도 태생의 근로 연령대 미국인들 가운데 80%는 고등교육을 받았는데, 이는 중국 태생 미국인들의 54%와 비교됨. 세계는 갈수록 지식자본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인도교민은 소프트웨어, 생명공학, 그리고 이와 유사한 분야에 있어서의 고급지식과 동의어로 통함.
- 80년대 내내 중국이 화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조직을 잇달아 만드느라 바빴던 반면, 인도는 자국의 해외교민들을 차단. 속지주의 원칙을 채택하고, 인도에 거주하는 인도인들만을 인도에 기여하는 사람들로 간주하는 것은 현대에 들어 국가적 자원을 가장 잘못 관리하는 최악의 사례들임. 인도에 뭔가를 되돌려주고 싶어하는, 감성적으로 연결된 성공한 개인들의 집단은 거듭 기피되었음. 그것은 마치 해외여행을 금하는 일부 힌두교 샤스트라(경전)의 시대착오적 메시지가 계속 인도 정책 당국자들에게 효력을 미치는 것과도 같음. 역사적으로 나라를 떠나는 인도인들은 카알라 파니, 즉 검은 강을 건넜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따라서 그들은 불순한 존재였음. 카알라 파니는 그러다가 영국령 인도에서 벵골만의 안다만 제도에 건축된 인도의 독립투사들을 수용하는 범죄자 식민지에 붙여진 이름이 되었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용어는 추방과 동의어가 됨. 이는 마치 바다를 건너는 인도인들이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것과 같음. 역설적으로 인도양은 세계 교역 뱃길과 해상원정을 상징했음.
- 경제-산업 정책의 문제를 놓고 간디와 네루는 상반된 견해를 지녔음. 네루는 소련식 중앙계획과 공업화에 대한 강조를 선호. 인도는 촌락에 산다는 유명한 어록을 남긴 간디는 촌락 및 소규모 산업개발을 옹호했으며, 인도의 50만개 촌락들에 중점을 둠. 그는 촌락수준의 지배를 추진했으며, 인도 민주주의와 개발의 체계로서 그람 스와라지(촌락 공화국)를 꿈꾸었음.
- 자국의 부를 사용하는 중국의 능력, 그리고 서구의 석유회사들의 제약을 받는 곳들에서 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중국의 의향 덕분에 중국은 버마와 여타 지역들에서 주도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 중국의 후원은 버마의 거리에서 실감할 수 있음. 중국이 친구로 남아 있는 한 변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국은 바늘에서 핵폭탄까지 그 나라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 GE는 다국적 기업들에게 많은 교훈을 제시. 첫번째 교훈은 실험의 결정적 중요성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현지 조건에 적응하는 것. 시험진출 단계에서 GE의 사업 단위들, 특히 의료진단 사업단위는 중국과 인도에서 판매할 제품들을 채산성 있게 개발할 수 없었음. GE조차 그런 제품을 그 두나라 저소득층의 수준에 맞게끔 충분히 싸게 다른 곳에서 생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상당한 실험끝에 GE는 자사에 필요한 부품을 아예 중국과 인도에서 개발하기 시작. 이런 실험을 하면서 GE는 두 나라에서 수많은 인재들을 채용. 이는 두 나라 시민들에게 판매할 제품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기도 전에 있었던 일임. 인재 육성에 대한 GE의 약속이 믿을만하다는 것이 도움이 되었음. 예컨대 GE의료 서비스의 사이사 사장인 후지모리 요시아키는 사내의 승진 사다리를 곧장 타고 올라가 2001년에 GE플라스틱의 사장이 됨. GE가 던지는 두번째 교훈은 아낌없는 베품임. 자사가 사업을 영위하는 국가들에 후하게 되돌리는 것은 돈을 벌겠다는 GE의 욕망뿐만 아니라 사회적 양심도 반영함. 두 나라 모두에서 GE의 납품업체들과 고객들은 모범사례들을 전파했으며, GE 출신들은 중국과 인도에서 기업들의 최고직위들을 채움. 두 나라에 대한 일종의 신임투표의 일환으로서, GE는 자사의 최대 그리고 최첨단 연구개발 센터들을 상하이와 방갈로르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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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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