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CEO

인문 2020. 10. 12. 08:05

- 초현실주의 예술이란,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생각과 감정들을 해방시키려는 의도를 지닌 미술 운동을 가리킨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인간의 본성은 외양이 아닌 무의식에 숨겨져 있다. 고 믿었고, 무의식을 자유롭게 풀어주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의식을 어떻게 해방시킨다는 말인가? 초현실주의 예술 가들은 사물을 경이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었다. 초현실주의 시인 앙드레 부르통은 자신을 추종하는 예술가들에게 “경이는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다. 아니, 경이로운 것은 어떤 것도 아름답다. 사실은 경 이로운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다”라면서 평범함을 벗어버릴 때만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생긴다고 전파했다.
- 비단 예술가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일상 에서 낯설기 기법을 활용해서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사물을 낯설게 보려면 먼저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없애야 한 다. 예를 들면 파란색 장미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변종 파란색 장미가 선보여 세 계적인 화제가 되지 않았던가. 선입견은 생각의 흐름을 막는 장벽이 다. 생각이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물꼬를 트라. 다음에는 사물의 성질과 재질을 바꾸어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자. 즉, 단단한 것은 부드럽게, 가벼운 것은 무겁게, 실용적인 것은 사치스럽게 변형시키는 것이다. 며칠 전 길을 걷다가 사람들에게 인사 하는 빌딩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높다란 빌딩의 상층부가 앞으로 비스듬히 꺾인 형태였다. 단단한 재질의 빌딩을 고개 숙여서 인사하 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 건축가의 발상, 그 발상을 실현한 건물주의 유연한 생각이 온종일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낯설기 기법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혀 다른 성질의 사물과 생각이 부딪치면 번쩍하고 불꽃이 튀고, 쨍하고 천둥치 는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지금부터라도 사물을 낯설게 보는 훈련을 시작하라. 사물을 낯설게 보는 순간 권태는 사라지고 세상이 매혹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 무엇보다 좋은 점은 예술가처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 바니타스란 라틴어로 공허함과 무상함을 뜻하며 바니타스화란 인생의 덧없음과 무상함을 미술에 표현한 것을 말한다. 해골, 모래시계, 촛불 등은 바니타스화에 등장 하는 단골 소재다. 이런 소재들은 인간이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 임을 각인시키는 데 효과를 발휘한다. 따라서 막달레나가 만지는 해골은 죽음을 상징한다. 한편 자신의 몸체를 녹여서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시간의 흐름에 의해 소멸되는 덧없는 인생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촛불이 반사된 거울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기 성찰과 명상, 도덕심을 뜻한다. 즉, 막달레나가 영혼의 거울에 자신의 죄를 비춰보면서 깊이 참회하고 반성한 다는 의미다.
- 얀 반 에이크는 최초로 유화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린 화가다. 유화란 안료 가루에 기름을 섞은 유성 물감을 말한다. 유화가 개발되기 이 전의 화가들은 안료 가루와 달걀노른자, 물을 혼합해서 만든 템페라 (그림 물감의 일종)를 사용했다. 템페라는 부드럽고 산뜻한 느낌을 표현 하는 등 장점이 많았지만 세밀하게 묘사하기 힘들다는 결점을 지녔다. 게다가 고착제인 계란이 물감을 급속하게 마르게 해서 색채를 혼 합할 수 없었다. 자신이 관찰한 대상을 화면에 완벽하게 재현하고 싶은 열망에 불탄얀 반 에이크는 숱한 실험 끝에 분말 안료를 아마씨에서 추출한 린시드 오일에 섞으면 정밀 묘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화는 늦게 마르기 때문에 색채를 혼합하거나,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캔버스에 붓질을 할 수 있었다. 또 물감이 마른 뒤에도 색채를 덧칠하고, 수정할 수도 있었다. 색채를 투명하고, 반짝반짝 윤이 나게 만들고, 명암의 미묘한 변화나 미세한 농담, 꼼꼼한 세부 묘사도 가능했다. 그래서 관찰한 대상을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 화가들이여, 그대는 자연이 창조한 모든 종류의 형태를 모방할 수 있는 만능인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연의 다양한 형태들을 관찰하고 머릿속에 각인시켜두지 않으면 만능인이 될 수 없다. 화가는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자연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답을 예술의 언어로 표현하는 통역사가 되어야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원근법은 15세기 이탈리아 건축가인 부르넬레스키가 창안한 기법 이다. 부르넬레스키는 평행되는 면에 있는 선들은 소실점에 모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소실점을 활용하면 가까이 있는 물체는 크게, 멀리 있는 물체는 작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즉, 2차원 화면에 공간감이 생기면서 평면인 그림이 실제 공간처럼 느껴 지는 것이다. 부르넬레스키가 창안한 원근법은 르네상스 화가들을 사로잡았다. 탐구심이 강한 화가들은 원근법의 원리를 그림에 응용했다. 화면 에 소실점을 정하고 그것을 향해 일정한 간격으로 가상의 선들이 모여지도록 했다. 그리고 이 선을 기준으로 묘사하고 싶은 대상을 크기순으로 배치했다. 화가들은 수학적 원리인 선 원근법을 활용해서 그림 속 허구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만들었다. 지적 호기심이 유독 강했던 레오나르도도 원근법을 연구해서 마술같은 효과를 최후의 만찬에 구현했다. 이 그림에서 소실점은 예수의 눈과 눈 사이 부분이다. 그림에 표현 된 대상의 모든 선들은 예수의 양미간, 즉 소실점으로 향한다. 화면과 평형을 이루는 천장의 격자무늬와 양 벽면의 태피스트리, 식탁의 선은 소실점인 예수에게로 모여진다. 수학에 해박했던 레오나르도는 원근법을 활용해서 관람객을 그림 속 가상의 공간 속으로 깊숙이 끌 어들였다. 원근법 덕분에 관람객은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 〈최후의 만찬〉에서는 도형도 찾을 수 있다. 예수의 머리와 펼친 양 손의 끝을 꼭지점으로 한 선을 연결하면 대문자 A 형태의 삼각형이 생긴다. 바로 삼각형(혹은 피라미드) 구도다. 레오나르도가 삼각형 구도를 적용한 것은 화면에 질서와 통일,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제 독자는 레오나르도가 뛰어난 수학자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예술가인 그가 수학을 열심히 공부한 까닭은 무엇일까? 사물의 본질과 우주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아름다운 형태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는 예술가의 풍부한 감정과 정서, 상상력과 직감, 예리한 감각을 구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는 수학이라고 생각했다. 직관과 논리, 감성과 이성은 적대 적인 관계가 아닌 다정한 한 쌍이라고 믿었다. 레오나르도는 예술가 의 영역인 우뇌만 편애하지 않고 좌뇌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좌 뇌와 우뇌를 통합적으로 사용해서 인류 최대의 걸작으로 찬미 받는 최후의 만찬을 창작한 것이다.
- 대기 원근법으로 부르는 것은 일직선 위에 나란히 놓인 서로 다른 건물의 거리감을 공기의 변화로 구분할 수 있어서다. ... 벽에 가장 가까운 건물은 원래 색깔대로 선명하게 칠하고 그보다 멀리 떨어진 건물의 윤곽은 덜 또렷하게 그리면서 푸른색을 좀 더 진하게 칠해야 한다. 만일 대상이 다섯 배 정도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5배만큼 짙은 농도의 푸른색을 칠해야 한다. 이런 기법은 일직선 위에 있는 같은 크기의 건물이 다른 건물에 비해 가깝거나 멀리 있는 것처럼, 혹은 더 크거나 작게 보이는 효과를 발휘한다. 자연을 늘 관찰했던 레오나르도는 가까이 보이는 대상은 형태도 또렷하고 색채도 진한 반면, 멀리 있는 물체는 윤곽이 흐릿할 뿐만 아니라 푸른색을 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는 말 그대로 천장화이다. 예배당의 높은 천장에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묘사 하는 것은 일반 그림을 제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그림의 재료도 다루기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프레스코다. 프레스코는 영어로 프레쉬fresh를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축축하게 젖어 있는 석고에 그린 그림을 말한다. 프레스코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전 준비, 정확한 타이밍,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프레스코는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석회석과 모래로 만든 마감 바탕재인 인토나코가 젖은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은 날씨에 따른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대략 20~24시간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석고는 더 이상 안료를 흡수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따라서 화가들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용적 범위를 정해서 인토나코를 발랐는데, 이를 조르나타라고 부른다. 석고가 굳기 전에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화가 들은 시간과 전쟁을 벌였다. 여유를 부리면서 그림을 그릴 수 없는데, 다 수정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화가들의 피를 말리게 했다. 작업 속도를 빠르게 하려고 허리띠에 물감 통을 매고 양손에 붓을 쥐고 묘 기를 부리면서 작업하는 화가들도 많았다. 그런 만큼 프레스코 작업 에는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었다. 숱한 화가들이 프레스코 작업을 하 던 중 체력이 부족해서 곤욕을 치렀다. 몸을 혹사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화가들도 생겨났다.
-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왜 그것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 그럴 바엔 다른 것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 (파블로 피카소)
- 미술의 전통을 단숨에 깬 피카소, 그의 엄청난 저력은 어디에서 비 롯된 것일까? 바로 동시대의 변화를 꿰뚫는 통찰력에서 나왔다. 피카 소가 활동하던 20세기 초는 격동의 시대였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개발되고 다양한 문화적 실험이 다채로운 꽃을 피웠다. 최첨단을 달리는 과학 기술과 다원화된 현대 문명은 미술가들을 자극했다. 예술가들은 변화를 바라는 시대의 요구에 응답했다. 미술의 역사상 가장 빛나는 미술 사조들이 앞다투어 선을 보였다. 이 개혁과 변화의 시대에 피카소는 실험적인 예술의 본거지인 파리 에서 창작 활동을 하면서 전위 예술가들의 보스가 되었다. 차세대 리더로 급부상한 그에게는 미술의 전통에 반기를 드는 일에 앞장서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 는 절박한 상황은 그의 창작 욕구에 불씨를 지폈다. 피카소는 자신의 속내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예술은 저절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각은 끊임없이 바뀌 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를 표현하는 예술 형식도 진보할 수밖에 없다.”
피카소의 변화 욕구를 자극한 에너지의 원천은 새 시대에 걸맞는 혁신적인 회화를 창조해야 한다는 리더로서의 자각이었다.
- 그에게 미술이란 예술가의 정서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고요와 평온, 명상의 상태에 젖어들게 하는 것이다. 그림은 자연 속에 숨 겨진 실재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인 동시에 인간을 현실 세계에서 해 방시켜 내적인 평온에 도달하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몬드리안은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의 내면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고 믿었으며, 그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갈망을 추상화에 구현 했다. 몬드리안이 얼음처럼 냉정하고 이성적인 추상화를 창안한 결 정적인 동기가 있다. 화가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혹한 실상을 체험하면서 인간에게 절실한 것은 질서와 안정감이라고 믿게 되었다. 가치관이 붕괴된 현대 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새로운 표현 수단이 필요하다고 여긴 그는 자신의 성품을 쏙 빼닮은 신종 그림을 개발했다. 바로 몬드리안표 추상 미술이다. 논리적이면서 이성적인 몬드리안표 추상화는 서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전쟁의 참상에 지친 사람들은 불변하는 세계를 표현한 그의 추상화를 보면서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 몬드리안표 추상화는 순수 미술로는 드물게 대중적인 인기도 누렸다. 대중문화와 패션, 건축, 가구, 인테리어에 폭넓게 응용되었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인 이브 생 로랑의 의상에 적용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자, 이제 몬드리안의 추상화가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정리해보자. 몬드리안의 추상화는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 말과 행동 을 절제하게 만든다. 간결하고 질서정연한 그의 그림을 대한 사람들은 자신이 너무 많은 말과 생각, 행동과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풀어 놓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산만하고 들뜬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고요한 정신의 세계에 은둔하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실제로 몬드리안의 추상화는 현대인들의 불안감을 치유하고 일상의 위협과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
- 정확성이 진실은 아니다.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진정한 화가에게 장미 한 송이를 그리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 장미를 제대로 그리려면 지금껏 그렸던 모든 장미를 잊어야 하기 때문이다. (앙리 마티스)
- 카라바지오식 명암법이란 빛과 어둠을 강하게 대비하면서 강조할 부분만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기법을 말한다. 카라바지오의 그림들을 보면 강조할 대상에게만 강한 조명을 비추고 나머지는 어둠에 묻 어둔다.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로 인해 대상은 입체감을 갖게 되고 연극적인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일명 카라바지즘으로 불리는 독창적인 조형 양식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로마에 머물던 외국 화가들에게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 결과 카라바지스트로 불리는 후계자들이 생겨났다. 렘브란트, 라투르 등 미술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화가들이 바로 카라바지오 화풍의 후손들이다. 고객의 요구보다 자신의 신념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화 단의 이단아, 신성불가침의 성서를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석한 혁명 가, 빛과 어둠의 효과를 활용해서 대상에 깊이감과 입체감을 부여한 명암 조절의 대가.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미술계의 개혁을 주도한 카 라바지오에게 다음과 같은 경의를 표했다.
“카라바지오의 빛은 비천한 인물들을 어둠 속에서 끌어내어 그들을 영원히 살게 했다.”
- 회화의 제왕인 피카소가 일생의 라이벌로 여긴 화가가 있다. 미술 계를 석권한 피카소도 그의 탁월한 미술적 재능에 고개를 조아렸다. 두 화가는 평생토록 질투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예술적 영감을 주 고받으면서 천재성의 우열을 가르는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영원한 맞수인 두 화가의 치열한 승부욕으로 인해 현대 미술은 찬란하게 꽃 피웠다. 그렇다면 피카소의 숙명적인 맞수는 누구일까? 바로 색채의 대가인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다. 피카소가 원근법을 파괴하고 새로 운 회화의 제국을 건설하는 동안 마티스도 질새라 색채의 왕국을 설 립했다.그런데 마티스가 건설한 색채의 나라가 미술계에 평지풍파를 일으 켰다. 왜냐하면 당시 대다수의 화가들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는 데생, 즉 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데생은 이성, 색채 는 감정에 비유하면서 데생은 우대하고 색채는 홀대했다. 그러나 마티스는 색채를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면서 데생 대신 색채로 사물을 표현했다. 나무는 빨강색, 사람의 피부는 파란색, 하늘은 노란색으로 칠했다. 대상의 원래 색깔과는 전혀 다른 색 채, 그것도 강렬하게 칠한 바람에 마티스는 야수파 화가라는 희한한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야수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원 색을 사용해서 그림에 표현했다는 뜻이다.
- 간혹 제 정신이 돌아오면 나는 발작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점을 자각하게 된다. 그럴 때는 고통도 잊고, 공포심에 짓눌리지 않도록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열심히 작업할 때면 내 영혼은 잠시나마 조용해지고, 언젠가는 병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
- 미술 전문가들은 고흐가 자살하게 된 원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첫째, 경제적으로 무능한데다 고질병을 지닌 형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테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것,
둘째, 예술의 제단에 자신의 생 명을 제물로 바치는 것,
셋째, 가세 박사를 겨눈 복수의 칼날을 자신에게 되돌린 것(고흐는 가세의 딸 마르게리트에게 애정을 느꼈지만 가세는 두 사람의 연애를 반대했다),
넷째, 광기에 의한 충동적 발작이 그것이다.
고흐가 자살한 동기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았지만 그가 고통을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킨 것만은 확실하다. 고흐의 그림과 편지들이 사 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는 것도 열정적인 삶이 고통의 치료법이라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반드시 병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 다. 왜냐하면 작업에 몰두하면 의욕이 생기고, 의욕이 생기면 병에 신 경을 덜 쓰게 되고, 마침내 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흐는 비록 자살했지만 죽는 순간까지 삶에 충실했고, 몰입이 질 병의 특효약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통스런 삶이었기에, 민감한 감수성을 지녔기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기에, 그는 그토록 치열하게 매순간을 살았던 것이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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