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면 산다는 건 이루지 못한 꿈에 괴로워하거나, 이루고 싶은 꿈이 없다는 것에 고민하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 덜 불행한 걸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 바둑과 아르바이트를 겸한 때문이 아니다. 용돈을 못 주는부모라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자리에 누우셔서가 아니다. 그럼 너무 아프니까.
그래서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했다.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겠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드라마 '미생' 中)
- 그래 인생에 정답은 사실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삶이 불안한 건 인생의 정답이 있다고 믿어서 아닐까? 있지도 않은 인생의 정답을 찾다 보니, 정답이 아닌 오답을 고른 것 같아 불안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공포 영화가 아니라 장르가 불분명한 미스터리 영화쯤 되지 않을까?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어쩌면 끝까지 봐야 알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난 그저 지레 겁먹 고 있었던 아니었을까?
- 전쟁에서 결국 패배하는 나라들의 공통점 :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었던 2명의 주역. 아이젠하워'와 '조지 S. 패튼’ 이 둘은 성향도, 관점도 너무 나 달랐다고 한다. 아이젠하워는 생각하는 리더, 관념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의 지휘관이었다고 한다. 전투에 있어서 항상 계획과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패튼은 적극적이고 극단적인 실천 주의적 지휘자였다. 항상 계획보다는 행동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둘은 성향도 관점도 너무나 확연하게 다른 사람들이었고, 서로 갈등하기도 했으나, 서로가 갖지 못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고, 결국 서로를 도와 전쟁을 연합군의 승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반면 독일군은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에르빈 롬멜이라는 최고의 전략가로 평가되는 장군이 있 었음에도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독재자 히틀러의 생각과 다른 관점은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전쟁에서 결국 패배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바로 독재국가라고 한다. 나와 다른 관점과 생각은 틀린 것이기에 스스로 잘못된 길을 바로잡을 수 없는 단점이 결국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 ‘이러면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늘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노예일 뿐이다. (쇼펜하우어)
- 가난은 나를 확실하게 불행해질 수 있게 만드는 이유니까. 세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 실패에 너그러운 척 인색한 세상, 가난에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세상에서 그저 도전하라고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의 고통을 견뎌내라는 무책임한 말은 못 하겠다. 도전이 밥을 먹여주진 않으니까. 꿈만 있다고 지금의 불행을 견뎌야 할 이유를 난 전혀 모르겠다. 꿈이고 행복이고 간에 일단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지 않을 까? 돈 때문에 현실과 타협할 수도 있지. 멀고 먼 미래의 행복 때문에 현실의 고통을 억지로 버티지는 않았으면 한다. 세상은 당신에게 그리 너그럽지는 않으니까. 최소한 행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불행해지지는 말아야지.
- 심리학에서 좌뇌의 거짓말이라는 용어가 있다. 인간의 뇌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때, 스스로 납득할만한 이유를 본능적으로 찾는데, 그 이유를 나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의외로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 확실하고 합당한 외부의 이유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면 내탓이 가장 합당한 이유로 적당할 거다. 그게 거짓 이유건 인과관계가 어긋나건 상관이 없다. 나의 뇌는 결과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 어쩌면 나에게 행복이라는 건 '원피스'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어딘가에는 있다고들 하는데 난 한 번도 본 적없는 그런 것 말이다. 이렇게 행복이라는 게 뜬구름 같은 것이라면 차라리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더 낫지 않을까? 행복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에 스스로를 불행에 빠뜨리는 거라면 차라리 나를 불안하고 괴롭게 만드는 확실한 불행의 요소들을 최소화하는 게 내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불행해지도록 사는 것 말이다. 그럼 행복까지는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행복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불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니까.
-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자신의 삶을 불행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너무 행복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는 것이다' 라고.
어쩌면 우리의 안녕한 삶을 위해서는 앞으로 더 행복해지려고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는 것보다 최소한 지금보다 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닐까?
- 어차피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도망치면 뭐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을 것 같냐고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이 힘듦을 버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버텨야 할 수밖에 없다. 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으니까 말이다.
- 너무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말라는 쇼펜하우어의 격언은 어쩌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건 불행해지지 않는 것일 테니까.
- 비관주의자들은 언제나 행복하다. 왜냐면 스스로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증명할 때마다 큰 기쁨을 얻을 테니까. (마리 폰 에브너 에센바흐)
- 비관주의자들은 바람에 대해 불평을 터트린다. 낙관주의자들은 그 바람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현실주의자들은 돛의 방향을 바꿀 뿐이다. (윌리엄 아서 워드)
- 삶을 비관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억지로 맞지도 않는 낙관주의자인 척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걱정이 많다는 건 그만큼 삶에서 나를 위험에 빠뜨릴 불안한 것들에 대해 민 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일 테니까. 그저 돛을 이리저리 바꾸며 불안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면 되지.
나는 똑똑한 게 아니라 문제를 남들보다 더 오래 고민했을 뿐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 어쩌면 자신의 삶을 성공으로 물들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일지 모르 겠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고민하고 생각하는 신중함 역시 스스로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말이다. 남들보다 더 오래 고민한다는 건 남들보다 그만큼 신중하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 때로는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에 귀를 기울여 볼 것. 내가 느꼈던 좋지 못한 경험을 앞으로의 나에게 전염시키지 않는다면, 어제의 나쁜 감정을 오늘의 나에게 끌고 오지 않을 수 있다면, 삶이 조금은 덜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 지금의 고통에 대한 보상은 오로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밖에는 없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다면 현실은 더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원하는 건 결국 '결핍'에서 올 수밖에 없으니까. 원하는 것을 채운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이 갖지 못한 '새로운 결핍을 찾아 다시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고 말 거다. 원하는 걸 이루는 게 행복한 삶의 필수조건이라면 아마 평생 행복이라는 건 이루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 나는 그르렁대는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고, 내 가 좋아하는 삼겹살집에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찾아간다. 마 흔에 가까운 나이에 만화책을 좋아해서 사 모으기도 한다. 내 와이프는 1년에 몇 번은 프리다이빙을 위해 바다로 떠나곤 한다. 아무 장비도 없이 몇십 미터 깊이의 바다에 줄 하나만 잡고 들어가는 위험천만한 이 스포츠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작은 것들로 우리는 삶에서 마주하곤 하는 괴로움을 이겨내고는 한다. 물론 이런 걸 나는 행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행복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작고 사소하기에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내가 너무 불행해지지 않게 만들어 주곤 한다. 그래서 아주 작더라도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는 건 너무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 작지만 확실한 자신의 취향이 최소한 너무 불행해지지 않도록 해줄 안전장치쯤은 되어 줄 수는 있을 테니까 말이다.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안전장치가 삶의 가성비를 높여 줄 수 있는 결정쯤은 될 수 있으니까.
-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건 반드시 이길 수 있는 마법 같은 필승의 방법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실패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래서 자신을 최악의 상황에 빠뜨리지 않을 수 있는 '백전불태'와 같은 삶에 최소한의 '확신'이 필요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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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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