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인문 2020. 11. 1. 08:11

-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삶이 나에게 묻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은 세상을 향해 던져진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그 물음에 나의 해답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세상이 주는 답에 따라 살아갈 뿐이다. - 칼 융
- 융 학파의 심리학자 캐럴 S. 피어슨은 융의 원형 심리학을 바탕으로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여섯 가지 심리적 원형을 이야기한다.
고아 원형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하고 버림받은 듯한 외로움으로 가득한 심리적 추방자이다. 사람을 믿지 않고, 자신을 희생자로보며, 삶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왜 이토록 힘든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지 때로는 의아해한다. 보살핌받기를 원하지만, 세상은 안전을 기대하는 그를 보금자리에서 내쫓는 다양한 방법을 갖고 있다. 우리 안의 고아가 만드는 이야기는 '내가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가?' 혹은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이다.
방랑자 원형은 자신의 삶이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처럼 느끼고 이상적인 곳을 찾아 떠나는 유형이며,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 는 선언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여행을 가장한 현실도피자가 될 수 도 있다. 방랑자가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내가 어떻게 탈출했는가?' 혹은 '어떻게 나 자신의 길을 발견했는가?'이다.
전사 원형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싸우는 유형으로, 성 취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인다.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과 개인적 책임감이 강하다. 타인과의 경계선을 명확히 긋지만 그만큼 주위 사람을 혹독하게 다루며 항상 이기려 드는 부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전사의 이야기는 주로 '내가 어떻게 목표를 이루었는 가?' 혹은 '어떻게 적을 이겼는가?'이다.
이타주의자 원형은 자신보다 숭고한 무엇인가를 위해, 혹은 세 상을 더 나은 장소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자세를 지니고 있다. 이 유형의 사람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 자신이 세 상에 주고 싶은 것, 이 삶 이후에 남기고 싶은 것을 중요하게 여긴 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강박적으로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도 있다. 이타주의자의 이야기는 내가 어떻게 베풀었는가?' 혹은 '어떻게 나를 희생했는가?'이다.
순수주의자 원형은 삶을 낙관하고 보다 큰 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유형이다. 심리적 추방과 시련을 거쳐 순수 세계로 귀환함으로써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치유하고, 자신이 희생자라는 피해 의식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자신의 여행을 신뢰하면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순수주의자가 만드는 이야기는 내가 어떻게 행복을 발견했는가?' 혹은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 가?'이다.
마법사 원형은 자신의 미래를 마법처럼 변화시키려는 강한 의지 를 지닌 사람이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삶의 주인을 자신으 로 설정하는 유형이다. 마법사는 삶을 선물로 보며, 이곳에서 자신 이 할 일은 자신의 선물을 세상에 주면서 삶과 완전한 관계를 맺 는 것이다. 우리 안의 마법사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 게 나의 세계를 바꾸었는가?'이다.
이 여섯 가지 원형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평생 동안 한 가지가 지배하기도 하지만, 단계적으로 나타나 그 시기의 자아를 형성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여러 원형이 함께 활성화되어 다양하게 자아의 여러 모습을 구성하기도 한다. 길이 막히고 방향을 잃을 때마다 우리 안의 고아는 회복력을, 방랑자는 독립심을, 전사는 용기를, 이타주의자는 연민심을, 순수주의자는 삶에 대한 믿음을, 마법사는 변화를 이끌어 내는 마음의 힘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영웅의 여행에는 어느 정도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에고는 필사적으로 안전을 원한다. 반면에 영혼은 진정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한 가지 진리는 이것이다. 모험 없이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시련 없이는 깊어질 수 없다.”

1. 어떤 이야기를 살고 있는가 : 마음사용 설명서
-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길이 진정한 길인지 알려면, 그 길이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지 보면 된다. 자신에게 맞는 길을 아는 사람은 오직 당신 자신뿐이다. 행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을 따를 때 여행은 보물을 가져다준다.
- 한번은 컴퓨터 전문가가 나에게 불평한 적이 있다. 컴퓨터를 처 음 구입한 사람들은 흔히 상담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들의 불평을 자세히 들어보면 결국 그들은 컴퓨터 사용법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살 때 우리는 그 차가 저절로 움직일 것이라고 기 대하지 않는다. 차를 타려면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모두는 내면에 놀라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에 접근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거의 없다. 컴퓨터를 처음 구입하면 사용법 강의를 듣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사용 설명서를 읽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관해서는 그저 마음이 스스로 잘 굴러갈 것이라 기대한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만 자 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 정신과 의사나 심리 상담사, 성직자, 구루(영적 스승)를 찾아간다. 그제야 자신의 어떤 부분이 병들어 있고, 무엇이 부족하며, 무슨 잘못이 문제를 일으키는지 알려고 한다. 마치 기계의 결함 있는 부품을 찾아내어 그 부분만 교체하려고 하듯이 말이다. 어쩌면 컴퓨터를 처음 구입했을 때처럼 우리 자신도 수리가 필요한 상태가 아닐 수 있다. 다만 우리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여행의 지금 단계에서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배우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이야기 구조를 알아차리고, 자신이 전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유가 시작된다. 여섯 가지 원형이 가진 각각의 관점은 그 자신이 제작하는 영화의 중심인물들 과 같으며,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 안의 고아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고통을 받 았는가?' 혹은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이다. 이 고아 원형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회복력이다.
방랑자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탈출했는가?' 혹은 '어떻게 나 자신의 길을 발견했는가?'이다. 방랑자 원형이 주는 선물은 독립심이다.
전사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목표를 이루었는가?' 혹은 '어떻게 적을 이겼는가?'이다. 전사 원형이 주는 선물은 용기이다.
이타주의자의 이야기 구조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베 풀었는가?' 혹은 '내가 어떻게 나를 희생했는가?'이다. 이타주의자 원형이 주는 선물은 연민심이다.
순수주의자의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행복을 발견했는가?' 혹은 '내가 어떻게 약속의 땅을 찾았는가?'이다. 순수주의자 원형 의 선물은 신념이다.
그리고 우리 안의 마법사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나의 세계를 바꾸었는가?'이다. 마법사 원형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힘이다.
- 이 원형들은 우리가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발달과제(각각의 성장발달 단계에서 습득해야 하는 정신적, 신체적 내용)를 해내도록 돕는다.
우리 안의 고아 원형은 어려움과 시련을 견뎌 내도록 우리를 돕고,
방랑자 원형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전사 원형은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하도록 돕고,
이타주의자 원형은 자비심과 공감 능력을 키우도록 돕는다.
그리고 순수주의자 원형은 진정한 행복을 성취하도록 돕고, 마법사 원형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돕는다.
- 자신 안의 원형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삶과 화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지만, 그것은 현재 자신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원 형들이 우리 삶의 다양한 단계와 상황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각각의 원형은 우리에게 선물을 안겨 준다. 따라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에 따라 살지 않은 것 때문에 자신을 질책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어떤 재능을 키워 왔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2. '내가 모르는 나'가 있다 : 고아
- 우리 안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영웅의 여행에는 어느 정도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에고는 필사적으로 안전을 원한다. 반면에 영혼은 진정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한 가지 진리는 이것이다. 위험 없이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으며, 고통 없이는 깊어질 수 없다는 것.
-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삶에서 내린 결정들은 단 한 가지의 목적, 즉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공허를 느낀다. 삶을 충분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다. 암 진단을 받고, 자식이 죽고, 배우자가 떠나 며, 언제까지나 안정되어 보였던 직장을 잃는다. 갑자기 그들은 삶 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한 자각이 깊어질수록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진정한 삶을 미루면서 느꼈던 마음의 좌절감이 진정한 삶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하지 않으려고 회피하면, 삶이 시련을 통해 우리를 떠다민다.
- 결혼은 삶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 시작된 제도이다. 결혼 생활이 실패하면 모두가 고통받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존 체제에서는 당신이 행복하든 행복하지 않는 근본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당신에게 주어진 의 무를 다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면 결혼 생활과 가정이 안정될 것이며, 그 구성원들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들 은 자신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느끼면 무미건조하게 살기를 거부한다. 근본적인 신뢰와 애정이 결여된 결혼 생활에서 오는 불만족은 당신을 떠나게 할 수도 있다. 어쨌든 결혼은 이제 과거에 그랬듯이 자동적으로 긴 안정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 고아 원형은 한마디로 말해 실망한 이상주의자이다. 세상에 대한 이상이 높을수록 현실은 더 좋지 않게 나타난다. 심리적 추방을 경험한 후에 자신을 혼자뿐인 고아로 느끼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세상은 위험해 보이고, 나쁜 사람들과 함정이 어디에 나 있다. 마치 위험에 처한 처녀처럼 고아는 힘도 기술도 없이 적대적인 환경에 맞서야 한다. 세상은 서로 먹고 먹히는 곳처럼 보이며, 이곳에서 사람들은 희생자가 되거나 아니면 타인을 희생시키는자이다. 심지어 악랄한 행동조차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된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작용하는 규칙은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하기 전에 네가 먼저 그들에게 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관을 지 배하는 주된 감정은 '두려움'이며, 삶을 살아가는 주된 동기는 살아남기이다. 이 단계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은 술과 약물, 과도한 업무, 무분별한 소비 행위와 쾌락 등 다양한 중독에 빠져 그 고통 에서 달아난다. 혹은 고통에 무뎌지고 가짜 안정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관계나 일, 종교를 이용한다. 한 가지 모순은, 이런 중독들이 오히려 무력감과 부정적인 감정을 더 깊어지게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이다.
- 자신 안의 고아가 처한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에게 는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는 아이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만약 행복한 유년기를 보낼 자격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면, 평생을 속았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삶과 영원히 화해할 수 없게 된다. 또 내가 완벽한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면, 나는 어떤 어려움에도 비참해지고 불행해진다.
- 남자들은 거의 언제나 자신이 주인공인 순교 영화에서 아내에게는 그녀 자신의 여행 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이야기들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내가 너를 위해 희생했으니 나를 떠나지 마. 내 곁에 있으면서 내 환상을 만족시켜 줘. 내가 안전하고 안정된 기분을 가질 수 있게 해줘’ 심리적 상호 의존(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그것을 베푸는 사람 사이의 지나친 정서적 의존성) 역시 고아의 감정에서 도피하기 위한 방 법이다.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둘 중 어느 쪽도 진정으로 성장할 수 없는 그런 관계에 묶여 있기 쉽다. 이런 관계의 밑바탕에는 다음의 메시지가 깔려 있다. '너를 보살피는 것이 내 삶의 의미야. 그러니 그렇게 할 수 있게 허락해 줘.” 자신이 추방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고아 중에는 가짜 이타주의자 역할 대신 전사의 그림자 측면을 행동에 옮기는 이들도 있 다. 즉 희생자가 아니라 희생시키는 사람이 되어 빼앗고, 폭력을 휘 두르고, 착취하고, 다른 사람을 타락시키고 이용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취할 거야. 나는 강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어.'라는 전형적인 태도이다. 혹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일을 통해 그것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일 중독자가 될 수도 있다. 칼 융의 분석에 따르면 '그림자'는 억압에 의해 생겨난다. 자신 안의 원형들이 지닌 긍정적 측면을 살지 않으면, 그것의 부정적인 모습이 우리를 넘겨받는 것이다. 가슴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 자신을 발견하라'는 최근의 유행에 힘입어 가짜 방랑자도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애에 빠져 여러 자기 계발 프로그램들을 찾아다닌다. 모든 프로그램들은 저마다 낙원으로 돌아가게 해 줄 것이라고 약속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추방을 겪은 고아가 할 수 있는 진정한 영웅적인 행동은 자신의 아픔, 실망, 상실을 있는 그대로 오롯이 느끼는 것이다. 즉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렇게 하려면 진심으로 슬퍼하면서 자신의 삶에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나는 지금 고통 속을 헤매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용기 있게 인정하는 것이 허세를 부리거나 실망해서 다른 사람에게 분풀이하는 것보다 더 영웅적인 행동이다.
- 고아원형에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필수적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랑, 즉 보살핌과 관심을 보여 주는 개인이나 모임이다.
둘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정하는 심리적 방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되풀이해 말할 수 있는 기 회이다. 술을 끊고, 문제에서 벗어나고, 집을 떠나고, 구조되기 전까 지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책 임의 소재를 개인의 외부로 돌려 다른 곳에서 원인을 발견하도록 해 주는 심리요법이다. 그리고
넷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 도록 돕는 행동 프로그램이다.
- 힘든 문제를 함께 헤쳐 나갈 모임이 없다면 배우자나 친구나 부모, 혹은 당신이 아픔을 겪을 때마다 공감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믿을 만한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다. 당신이 소리를 지르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더라도 그냥 두라고 그 사람에게 부탁한다. 그런 식으로 응어리를 풀면 감정이 해소되어 자기 정 화에 도달할 수 있다. 그다음에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앉 아 명상하며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행할지 결정한다. 그들의 역할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보다는, 단지 당신 곁에 있으면서 당신이 혼자 괴로워하지 않도록 힘과 위안을 주는 일이다.
- 지혜를 얻은 사람은 때가 되면 자신이 관계나 장소, 혹은 직장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과, 그때가 바로 성장하고 다음 여정을 향해 나아갈 시기임을 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것임과 동시에 젊은 시절이 끝났음을 의미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펼쳐질 새로운 미래와 성장의 기회를 기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지금까지 함께했던 사람, 직장이나 학교, 장소 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충분히 인정하며, 지나간 일들에 감사하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애도할 시간을 갖는다. 이 감사와 애도가 그를 비워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한다. 이것이 '추방'이 갖는 행운의 의미이며, 우리 안의 고아 원형이 주는 궁극적인 선물이다. 이제 우리는 의존에서 벗어나 자신의 여 행길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그 길에서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울 것이다. 고통은 아무 의미 없는 괴로움이 아니라 배우고, 공감하고, 성장하기 위한 동기가 될 수 있음을.

3. 나의 얼굴을 찾을 때까지 : 방랑자
-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진실성을 위해 고독한 여정을 선택하는 것은, 그 선택으로 인해 혼자가 되고 사랑받지 못한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 방랑자 원형은 구시대적인 부모에게 반항하는 청소년기나, 실적기계가 되라는 압박에 저항하는 중년기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이 삶의 중요한 단계에서 방랑자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생각하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한다.
- 방랑자는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맞서 외로움과 고립, 심지어 사회적 배척의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진 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로 결심한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기가 되면 독립적인 삶과 친밀한 관계, 이 두 가지가 다 중요해진다.
- 오늘날 방랑자와 관련해 가장 흔한 주제는 외로움을 무릅쓰고 직장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도시를 떠나지 않는 사람, 자 신을 구속하는 결혼생활을 떠나지 못하는 배우자, 회사에 계속 남 아 있는 근로자도 방랑자 못지않게 외롭다. 도시든 결혼 생활이든 회사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으므로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다 해 도 변화에 맞추기 위해 자신이 발전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반드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여행을 떠날 시간이 되면 방랑자는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자녀가 있든 없든,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아니든 외로움 을 느낀다. 그 감정은 피할 길이 없다. 그 감정을 회피하려고 하면 오히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른 척하게 되기에 배워야 할 것들을 더 늦게 깨달아 더 오래 외로움 속에 머물게 된다.
- 역설적이지만 부모나 직장인으로서의 책임감과 개인적 탐구 사 이의 도저히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 않던 갈등을 해결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더 온전히 발견하게 된다. 타인을 돌보는 일과 자기존재에 대한 책임이 조화를 이루도록 순간순간 결정을 내리는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 나가는 것이다. 과거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동시에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자신의 탐구 여행을 계속할 방법을 찾아 나가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 만약 누군가가 갑자기 당신에게 적대적이 되었거나 그 사람을 기쁘게 해 주던 행동 방식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당신이 급격히 변했거나 상대방이 변 화를 겪고 있어서 둘 사이의 관계가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음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아마도 당신의 오랜 친구나 연인은 당신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당신이 그 거리를 허용 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그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계속 싸움을 걸어 당신을 악당으로 만들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거리를 허용하고 상대방이 성장할 공간을 주기로 결정한다면, 결국 당신은 새롭고 더 깊고 진실한 관계를 보상으로 받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최악의 경우, 상대방을 놓아줌으로 써 두 사람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때 당신은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렵고, 사랑하는 이를 자신의 뜻 대로 통제하고 싶고, 따라서 그 사람의 여행을 무산시키고 싶을 것 이다. 그렇더라도 잠시 숨을 고르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직시해 이겨 낸 후 그 사람을 놓아주는 것이 최선이다.
- 모든 사람이 영웅적인 존재이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자신이 누구인지 흔들림 없이 확신하는 것이다.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느라 조금이라도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다. 모두가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방랑자의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직장이나 공동체에 매우 큰 자산이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정찰병 역할을 하 며,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열정을 쏟아 세상을 위해 일한다

4.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 : 전사
-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의 사이에 적절한 경계선을 긋는 기술은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게 해 주며, 궁극적으로는 삶 자체를 사랑하고 음미할 수 있게 한다.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 남성의 문화는 전사(사 냥꾼)의 전통에서 비롯된 반면 여성의 문화는 이타주의자(채집가) 의 전통에서 유래되었다. 고대의 이러한 성역할 속에서 남성들은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소규모 조직을 이루었고, 이 조직은 서로 죽이고 위협하고 경쟁하는 사냥꾼 무리나 씨족, 부족으로 발전했 다. 여성들도 식량을 찾아 들판이나 덤불숲을 누빌 때 아이들을 돌보고 서로를 챙기기 위해 무리를 이루었다. 당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할 때 이 두 가지 원형을 이용할 수 있다. 당신 안의 전사는 당신이 치열하게 싸워 승리를 손에 넣 도록 돕고, 이타주의자 원형을 이용하면 공동체 안에서 상호 간의 이익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이 공동체 안에서는 모두가 기여하 고, 모두가 받으며, 따라서 누구도 부족함이 없다.
- 청소년기의 남자아이는 엄격하고 고압적으로 보이는 아버지에게 억압받는다고 느낀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하려들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평가하며, 아버지 자신만 늘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불만을 품는다. 내면의 전사가 발달하기 시작하면 아들은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고 때로는 반항까지 한다. 하지만 아 들의 전사 원형은 결국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아버지를 닮아 간다. 자신의 기준을 만들고 스스로에게 규율을 정해 주면서 노력을 통해 공부와 운동에서 성취를 이뤄 나간다. 그런 후에야 아버지가 자신에 대해 안심하고 더 이상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이제 아들은 아버지와 의견이 다를 때도 언쟁 없이 차분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아들 내면의 전사가 성장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 관리를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전했는데도 계속 아들의 삶을 통제해 나간다. 그때 아들의 전사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고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전사 원형에 사로잡힌 아버지는 늘 경쟁적이고, 승리해야 하며, 자신이 옳아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전사 원형은 무엇보다 남성에게 위험하다. 사회화 과정에서 전사에너지에 따라 살도록 입력되기 때문이다. 전사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실적 기계로만 살아 가면 너무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회사에서 이룬 성공 때문에 그 들은 특권층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상 앞에서 일만 하다가 죽어 가는 남자들의 숫자가 놀랄 만큼 많다. 보통 우리는 남자가 일찍 사망하는 것, 그리고 종종 심장마비로 죽는 것을 당연히 여 긴다. 그들이 자신 안의 전사 원형에 집착하다 일찍 죽는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 단지 자신 안의 고아나 방랑자 원형에만 연결된 전사는 지나치 게 냉정해지기 쉽다. 하지만 이타주의 원형을 발달시킨 전사는 타인을 위해 싸운다. 여기에 순수주의자와 마법사 원형까지 깨어난 다면 전사의 투쟁은 영적 차원에 이른다. 그때 그는 인류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샴발라 전사의 신성한 길 Shambhala: The Sacred Path of the Warrior」에서 초감 트룽파(티베트 출신의 영적 스승으로, 20세에 달라이 라마와 함께 인도로 망명 후 북미 최초의 불교 대학인 나로파대학을 설립)는 말한다. “전사의 본질, 인간이 가진 용맹함의 본질은 그 어떤 존재도 포기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 일단 자신 안의 원형이 주는 선물을 받으면 그 원형의 속박에서 놓여나게 된다. 전사 원형이 주는 '용기'라는 선물을 통해 두려움 이 줄어들면 사고에 여유가 생기고 세상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그때 현실을 '영웅과 악당과 희생자' 공식으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작은 생각인지 깨닫는다.
- 한때는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원하는 대로 일을 이루는 능력을 가진 것에 자부심과 자신감을 느끼던 전사가 몇 년 후에는 지치고 소진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즉 성공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 카페인, 각성제, 술에 중독되는 것이다. 아니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계속 앞으로만 질주한다. 이 경우에는 건강했던 성취 욕구가 사라지고 강박적이고 중독적이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자신이 평범한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마 찬가지로 상처받을 수 있으며 사랑을 필요로 하고 누군가가 필요 하다는 것, 영적인 활력과 육체적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 하는 것이다.

5.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때 행복하다 : 이타주의자
- 누군가에게 헌신한다는 것은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결함 있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한 마음으로 그렇게 할 때, 그 헌신은 변화의 힘을 갖는다. 그때 친밀감과 기쁨이 오가는 마법 같은 관계가 생겨난다.
- 우리 안의 이타주의자가 주는 궁극의 교훈은 베푸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의 삶을 선물로 주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이미 선물로 거저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은 죽음과 상실들은 항상 변화를 몰고 와 새로운 삶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실제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단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더 극적인 통로일 뿐이다. 삶에 기꺼이 자신을 바치지 않으면 늘 죽음에 대한 생각에 사로 잡혀 살아갈 수밖에 없다. 철학적인 논리를 동원해 희생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방랑자의 길을 걷거나 전사의 삶을 살거나 마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신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타심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은 여성 본연의 고귀함을 드러내기보다는 여성이 지닌 온전한 인간성을 왜 곡한다. 그리고 그렇게 강요된 희생은 원망과 가식, 죄책감을 낳는 다. 남성 역시 자신의 더 깊은 갈망과 관심사를 돌아볼 여지도 없 이 부양자 역할만 강요받을 때,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무엇인가를 바라게 되고 남성 위주의 특권 의식에 사로 잡힌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주위에서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 해 자신의 삶을 포기할 경우, 필연적으로 상대방에게 보상을 요구 한다. 남편을 질책하는 매서운 아내,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부모, 또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일을 하다가 집에 와서는 가족들에게 왕처럼 명령을 내리는 남성의 모습에서 그 심리를 엿 볼 수 있다.
- 헌신한다는 것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헌신한다는 것은 완벽 한 배우자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결함 있 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한 마음으로 계산 없이 그렇게 할 때, 그 헌신은 변화의 힘을 갖는다. 두 사람 다 서로에게 진정으로 헌신할 때 친밀감과 기쁨이 오가는 마법 같은 관계가 생 겨난다. 한쪽에서만 그렇게 헌신해도 그 사람 자신에게 변화가 일 어난다. 그 헌신을 통해 주저하지 않고 온전히 사랑하는 기술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누군가를, 혹은 무 엇인가를 잃어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삶에 헌신하고 전념한다는 것은, 세상 이 어떠해야만 한다는 경직된 생각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렇다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거나 더 나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좌절한 이상주의자 같은 태도를 버리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달아야 하며, 자신을 열고 모든 것을 있 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삶에 헌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관념을 버리 는 것을 의미한다. 나도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도 부족하고 따라서 세상은 부족한 것투성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사랑과 물자와 공간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많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 역사문화학자 리안 아이슬러는 저서 『성배와 칼The Chalice and the Blade」에서 남성 지배 문화는 인류의 절반이 다른 절반 위에 올라 서서 권력을 휘두르는 지배 중심 체제인 칼의 문화이고, 여성 중심 문화는 협동과 공존을 중시하는 공동 협력 체제인 성배의 문화라 는 이론을 전개한다. 리안은 이 두 공존하는 세계의 기원을 찾아 전사 집단이 여신 숭배 문화의 농경민을 정복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지배 중심 사회와 동반자 관계로 나누어 부르면서, 전자는 계급주의적 성격을 띠며 후자는 비교적 평등주의적 성격 을 띤다는 것에 주목한다.

6.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 순수주의자
- 자신의 본성과 맞서 싸워 영웅이 되려 하지 말고,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믿음으로써 자기 존재의 고귀함을 주장해야 한다. 자신의 여행을 신뢰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지혜로운 순수주의자는 여러 가지 현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가 언제나 통제할 수 는 없지만, 일어난 일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자신 이 살아갈 현실을 선택한다. 산티아고는 이 영적 원리를 이용해, 보 물을 찾는 것이 자신의 본성이자 운명이라고 확신한다. 다음과 같 은 긍정적인 말을 반복함으로써 우리도 똑같이 할 수 있다.
"나는 기쁨과 빛으로 가득하다."
"완벽한 건강과 넘치는 에너지가 나에게 흐르고 있다."
"나는 지금 나에게 꼭 맞는 일을 하고 있다.”
- 방랑자 단계에 있을 때 세상은 온통 고통뿐이다. 전사 단계로 들 어서면 그때 세상은 우리 자신과 함께 기적처럼 변하고, 우리는 세 상을 재앙이 아니라 도전으로 여긴다. 이타주의자 단계에서 우리 는 언제 어디서나 사랑과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인 자신을 발견한다. 마법사 단계에 들어서면 변화가 필요한 상 황이나 사람들을 만난다. 순수주의자는 이것을 거울 효과로 본다. 순수주의자는 원하지 않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때 맨 먼저 자 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린다. 그래서 외부 세계의 변화를 위해 마음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살핀다. 순수주의자는 낙원이 가능하 며 그 세계가 가까이 있다고 믿는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상황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언제나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세상의 변화는 우리 자신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 우리가 세상에 대해 믿는 것 많은 부분이 사실은 우리의 마음 이 투영된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순수주의자는 사람들에게 희 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 평화롭고 인간적이며 공정하고 따뜻한 세 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순수주의자는 타 인과 자기 자신을 평화롭게 대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운 다. 나아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맞는 것들을 끌어당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참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세상을 경험한다. 지혜로운 순수주의자는 우리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우리에게 충분한 사랑이 있음을 믿는다. 재능과 좋은 생각과 물자들을 쌓아 두는 것을 멈출 때 오히려 우리는 더 풍요로워지며, 우리의 두려움 이 결핍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안다. 자신의 삶 속으로 편안히 녹아들어갈 때,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본성이 활짝 피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그 본성은 언제나 옳고, 그 결과는 행복이다.

7. 다시 뜻대로 살기 : 마법사
- 우리 안의 마법사는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상태에서 벗어나 자기 운명의 운전대를 잡을 것을 요구한다. 온전한 참 자아를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 외에는 어떤 힘에도 이용당하거나 사로잡히지 않는다.
- 우리 안의 마법사 원형은 자유로운 선택을 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능력,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결단력과 관계가 깊다. 오직 인간만이 삶을 따라잡기 위해 서로를 밀치면서 변명하고, 남을 탓하고, 불평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안 에 존재하는 마법사는 우리가 바깥세상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것이 내면의 불균형 때문이며, 마법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도록 한곳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 직업에 관한 최고의 조언은,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삶이 준비해 두고 있음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일들이 어느 순간 유용하게 쓰일 때, 그것이 놀라운 마법처럼 느껴지며 자신의 삶이 마치 제자리에 딱 맞게 놓 인 퍼즐 조각 같다고 느낄 것이다. 점점 더 많은 부분들이 자기 자 리를 찾아 나갈 때 전체 윤곽이 드러나면서 나머지 조각들도 있어 야 할 위치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하여 퍼즐 전체를 완성하는 것이 갈수록 쉬워질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할 때 의 심할 여지 없이 그 일을 아주 잘할 것이다.
- 순수주의자 원형은 우리에게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우리 안의 마법사 원형이 이 순수주의자 원형의 도움을 받아 균형을 잡으면 목표를 이루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도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바라는 것을 얻는 일에 너무 강박적이 되 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에 작용하는 마법도 약해진다. 그때는 자신의 목표를 진심으로 공유하는 사람들과 쉽고 자연스럽게 연 결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세상 을 이용하려고 든다.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는 생 각에 사로잡히면 마법은 불쾌하고 조종하는 것이 된다. 그때 삶에 에너지를 불어넣던 멋진 비전은 삶을 지배하는 강박 관념으로 변 하며, 이 시점에서 마법사는 악한 주술사로 변한다.

8.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다 : 영웅의 여행
- 영웅의 여행은 때로 지독히 외로울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모두는 다 함께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든, 무엇을 느끼든, 당신에게는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나로부터 배우고 나는 당신부터 배운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성장하는 방식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역할을 곡예하듯 해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외부의 압력 때문에 자신의 삶이 통제할 수 없이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무의식 속 원형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삶에 질서가 없는 것이다. 고아 원형이 너무 지배하면 자신을 환경의 희생자로 여긴다. 방랑자 원형이 너무 활성화되면 삶과 세상에 대해 계속 거리감을 느끼고,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전사 원형이 너무 강하면 지나친 성취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타주의자 원형에 치우치면 순교자가 되어 다른 이들을 돕거나 기쁘게 하는 일에 자신의 삶을 내준다. 순수주의자 원형에 너무 지배당하면 문제를 예상하지 못하고 걸려 넘어진다. 그리고 마법사 원형이 너무 강하면 자신의 한계에 대한 감각이 약해져 누 구든 무엇이든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고아 원형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배신하거나 학대할 때 우리가 고통과 실망감을 다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분 노를 퍼붓거나 모든 걸 잊기 위해 중독에 빠지지 않게 된다. 방랑 자 원형은 대중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끝까지 지킬 수 있게 자극한다. 전사 원형은 유혹에 굴복하지 않도록 절제력과 도덕적 용기를 준다. 이타주의자 원형은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연민심을 갖도록 요구하며, 그 결과 우리는 해로운 일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순수주의자 원형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신뢰와 긍정주의를 심어 준다.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진실성을 굽힐 필요는 없다고 믿게 한다. 그리고 마법사 원형은 우리가 세상에 내보내는 것은 종종 몇 배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보게 해 준다. 당신 안에서 이 여섯 가지 원형이 모두 깨어났다면, 당신은 이제 세상에서 변화의 중심이 될 준비가 된 것이다. 이제 그 일이 그다지 벅차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그 모든 것을 혼자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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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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