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종말

경제 2021. 6. 13. 09:09

- 이런 이론들이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규제나 과세가 성장 둔화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거의 또는 전혀 없다. 예를 들어 21세기 초에는 연방 차원에서 배당세율과 개인소득세율이 모두 인하됐다. 그렇다면 노동자 수와 기업 투자가 늘어나야 하는데 정확하게 반대 현상이 발생했다. 모든 주를 통틀어 더욱 엄격한 규제 와 더욱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기업의 성장률이 더 유리한 환경에서 사업하는 기업보다 낮다는 증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캘리포니아 와 매사추세츠는 기업 친화성' 척도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데도 여전 히 가장 생산성이 높은 주에 속하며, 미국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규제의 영향을 다룬 연구 결과를 살펴보 면, 연방 법령으로 규제를 더 많이 받는다고 해서 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낮아지진 않았고 오히려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 하지만 성장 둔화의 이면에는 궁극적으로 생활 수준의 향상이라는 요인이 존재하며, 우리는 성장 둔화를 되돌릴 수 없을뿐더러 되돌리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단순히 자동차 산업에서 고용을 늘리고 1인당 GDP 증가율을 잠시나마 끌어올리기 위해 사람들이 소유한 자동차를 모조리 파괴할 가치가 있을까?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성장을 증가시키려는 의도에서 인구 고령화 현상을 뒤집으려고 생활 수준과 여 성의 권리를 과거로 되돌리고 싶을까?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 요'라면, 성장 둔화에 분명하게 원인을 제공한 악당은 없다. 성장 둔 화는 수십 년에 걸쳐 발생한 시장 변화, 소비 패턴의 변화, 가족 형성 을 둘러싼 결정의 변화가 누적되어 나타났을 뿐이다. 우리는 단지 성장률을 약간 더 높일 목적으로 그동안 발생한 모든 변화를 되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가 성장 둔화를 '성공' 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원했던 성장률을 달성한 것이다.
- 이런 예측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다. 거의 2세기 동안 모든 선진국에서는 1인당 GDP와 임금이 증가하면서 출산율이 하락했다. 게다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시기와 상관없이 언제나 고소득 자의 출산율이 더 낮다. 래리 존스 Lary Jones와 미셸 터틸트 Michele Tertit 는 미국 역사에서 목격할 수 있는 가족의 소득과 출산율의 관계에 주목했다. 두 사람은 과거 인구조사국 데이터를 사용해 1828년에 출생 한 여성 집단을 시작으로 연도별 조사를 이어갔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가족의 소득과 여성이 출산하는 자녀 수는 분명히 반비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득 수준을 불문하고 모든 여성의 출산율이 다소 하 락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소득 증가가 출산율을 낮춘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 잔차 성장은 더 많은 물적자본이나 인적자본의 축적에 기인하지 않은 경제 성장을 뜻한다. 잔차 성장은 공식적인 정의가 없으며, 1인당 실질GDP 성장률에 영향 을 미쳤거나 미치지 않았을 수도 있는 모든 힘을 포괄한다. 4장의 회계에서 살펴봤듯이, 세기가 바뀔 무렵 벌어진 상황 때문에 결과적으로 잔차 성장률이 하락했다. 하지만 잔차가 측정하는 단 일 경제활동이나 개념이 없으므로 잔차 성장률이 하락한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잔차 성장은 '생산성 증가'라는 친숙한 명칭으 로도 불린다. 자료에 따라서는 총요소 생산성 증 가.total factor productivity growth'나 '다요소 생산성 증가 multifactor productivity growth'라고 불린다. 생산성 증가(지금부터는 일반적인 의미의 용어로 사용할 것이다)는 잔차 성장의 일부도 아니고, 잔차 성장의 추정치도 아니다. 잔차 성장과 생산성 증가는 동의어다. 
- 상품 생산 기업은 서비스 생산 기업보다 더 높은 생산성 증가율을 달성할 수 있으므로, 상품 생산 비용 은 서비스 생산 비용보다 더 빨리 내린다. 이것은 서비스와 비교할 때 상품의 상대적인 비용이 점점 더 작아진다는 뜻이다. 역으로, 상품과 비교할 때 서비스의 상대적인 비용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커져야 한다는 뜻이다. 시장 경제에서 가격과 비용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보멀이 얘기한 서비스의 비용 질병은 서비스 대비 상품의 상대적 가격이 더욱 낮아지는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 서비스 산업에서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하는 이유는 서비스산업이 지닌 시간과 관심 집약적인 특성 때문이지, 기술 노하우나 적성이 반드시 실패했기 때문은 아니다. 다시 말해, 상품에서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은 경제에 문제가 있거나 경제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상품 생산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 성장 둔화에 부분적으로 기여한 서비스로의 전환은 21세기에 국한 된 특징이 아니고 1950년 이후, 심지어 그 전부터 진행되어왔다. 이는 서비스(소득 탄력적)와 상품(소득 비탄력적)에 대해 소비자가 장기적인 선호도 차이를 보인다는 보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2000년에 들 어서면서 경제활동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고, 이런 변화 때문에 발생한 생산성 증가율 둔화가 마침내 가시화됐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동안 상 품 생산의 생산성을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내구재에 대한 지출 비중이 감소한 것은 더는 소득에서 큰 몫을 지출할 필요가 없도록 매우 싼 가격으로 상품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그 덕에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게 됐다. 
- 아기옹과 호윗의 주장에 따르면, 기업들이 보유한 시장 지배력이 혁신에 대해 보상하기에 충분하기는 하지만, 경쟁자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는 최적의 지점이 양극단 사이에 있다. 아기옹과 호윗은 니컬러스 블룸, 리처드 블런델 Richard Blundell, 레이철 그리피스 Rachel Grifith와 공저한 논문에서 이런 영향을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했다. 저자들은 시간 경과에 따라 산업 내에서 혁신의 대명사가 되는 특허 활동을 계산했다. 각 산업에서 마 크업을 측정하는 또 하나의 방법인 산업별 러너 지수Lerner Index도 계산 했다. 저자들은 특허 활동을 마크업과 대조했을 때 분명한 언덕 모양 그래프를 발견했다. 마크업이 매우 낮은(즉,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는 특허 활동이 매우 적었고, 마크업이 매우 높은(즉, 경쟁이 거의 없는) 산 업에서도 특허 활동은 매우 적었다. 특허 활동이 최고를 기록한 것은 마크업이 중간 수준인 기업들이었다.
- 시장 지배력의 결과: 지금까지 제시한 증거를 살펴보면 기업의 시장 지배력은 1980년 무렵부터 현재까지 상당량 증가했다. 하지만 시장 지배력의 증가에서 성장 둔화까지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순수하게 성장 회계 관점에서 생각할 때, 마크업이 큰 기업으로 노동과 자본이 이동하 는 것은 생산성 성장에 좋다. 비용에 대비해서 상품이 높은 가치를 지 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업의 순투자율은 하락했고, 이런 현상은 기업의 집중도가 높은 산업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투자 감소가 성장 둔화에 미친 영향은 처음엔 그다지 크지 않았으므로 집중도 증가는 성장 둔화를 약간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이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업과 개인에게 인센티브를 최대로 제공하는 최적의 지점에서 시장 지배력과 혁신의 관계는 모호하다. 하지만 시장 지배력 이 지나치게 크거나 작아도 혁신과 성장에 해를 끼칠 수 있다.
- 시장 지배력의 증가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시장 지배력이 증가하면서 경제 성장의 이익을 획득하는 대상이 바뀌었다는 점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GDP에서 노동력 제공자나 물적자본 제공자에게 흘러가는 몫이 줄어들고, 시장 지배력이 창출하 는 경제적 이익의 청구인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졌다. 일반적으로 그 청구인들은 기업 소유주를 뜻했다. 인구통계상 변화와 서비스로의 장 기적 이동이 1인당 실질GDP 성장률이 하락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기업이 지닌 분명한 동기는 순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순이익은 세 가지 구성 요소, 즉 마크업, 세율, 규모의 상호작용에서 나 온다. 이 책에서 마크업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깊이 있게 다뤘 다. 마크업은 각 생산 단위의 한계비용에 대한 가격을 가리키고, 규모 는 판매할 수 있는 단위 수를 가리킨다. 규모에 마크업을 곱하면 기업 이 창출하는 총이익을 산출할 수 있다. 심지어 월마트처럼 마크업이 작은 기업이라도 규모가 매우 크면 막대한 총이익을 거둘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크업과 규모에서 발생하는 이익에 세금이 부과되고, 기업 은 세금을 내고 나서 순이익을 손에 쥔다. 준수 비용이 발생하므로 규 제는 이익에 대한 효과적인 세금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세율은 순이익에 중요하지만 마크업과 규모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 세금과 규제가 기업의 순이익에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중요하다. 어떤 기업이라도 세금과 규제가 많은 것보다 적 은 것을 선호할 것이다. 기업들이 세금과 규제를 줄이려고 열심히 로 비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소 정책을 뒷받침하는 주장에 따르면 세금과 규제를 줄일 경우 경제 성장률을 자동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시점에서 GDP가 무엇을 측정하는지 생각해보면 유익하다. GDP는 기업의 재무 성과를 합한 것이 아니라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 의 실제 가치를 합한 것이다. 이런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아메리칸항공이 2011년 말 파산을 신청했다. 그해 순손실이 19억 달러였고, 다음 해에 18억 달러, 그다음 해에도 18억 달 러라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아메리칸항공이 실질GDP에 미치는 영향 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전혀 없다.
실질GDP의 관점에서는 아메리칸항공이 해당 연도에 실어 나른 승객수만 중요하다. 아메리칸항공은 파산 절차가 진행되던 2011부터 2013년까지 연간 약 8,600만 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다. 그 기간에 엄 청난 적자가 발생하고 있었는데도 수백만 명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 소로 운송하는 서비스는 실질 상품과 서비스의 흐름을 구성하는 일부 가 됐다. 
이런 사실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든 세금을 100퍼센트에 맞 춰야 한다는 것도, 규제가 경제에 대가를 물리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얼마간 이익을 거둘 수 없으면 어떤 기업도 굳이 사업을 운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규제 때문에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면, 어떤 기업도 굳이 규제를 준수하면서 사업을 끌고 나가려 하지 않을 테 고 결국 회사 문을 닫고 말 것이다. 하지만 증거들을 검토해보면 세금 과 규제는 실질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의 능력에 지대한 영 향을 미치지 않았고, 정부 정책 중에서 2000년경 성장 둔화를 설명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는 전혀 없었다.
- 스포츠와 영화에서 활약하는 슈퍼스타의 등장은 소득 분배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불평등이 전반적으로 증가한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더욱 적절한 원인은 피케티가 대기업 고위 중역을 가리켜 말한 '슈퍼매니저'의 확대였다. 존 바키자Jon Bakija, 애 덤 콜Adam Cole, 브래들리 하임 Bradley T. Heim이 제시한 데이터에서는 슈퍼매니저들의 상대적 중요성이 드러난다. 세 사람은 2005년 개인 세금 신고서를 사용해 상위 소득자 0.1퍼센트의 약 41퍼센트가 비금융 계 기업 중역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18.4퍼센트는 금융 전문가들이다. 상위 0.1퍼센트 중에서 3.1퍼센트만 스포츠 · 미디어. 예술 분야에 속했다. 트레버 아리자, 채닝 프라이, 콜 알드리치 등 소 득 상위 0.1퍼센트에 들어가는 중간급 NBA 선수에게도 20여 명의 CEO, CFO, COO, 헤지펀드 매니저가 붙는다. 이처럼 고위 중역과 금융 전문가에게 돌아가는 소득 증가분은 1993년 이후 상위 0.1퍼센트에게 돌아간 NI 증가분의 3분의 2를 설명한다. 최고 경영진과 금융 전문가에게 지급되는 임금과 기타 보상(예: 스톡옵 션)은 최고 소득 범위 안에서 임금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불평등이 전 반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을 부추긴다.
- 중국과 성장 둔화를 연결하는 방식이 있는데, 개중에는 타당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 다. 중국이든 멕시코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경험한 단순한 수입 증가는 GDP 수준이나 성장률과 필연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을 우선 입증하려 한다.
수입이 미국 GDP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하는 흔한 주장은 회계 정체성의 잘못된 해석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무역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중국 수입품의 도입과 제조업 등의 현저한 일자리 감소를 연결한 믿 을 만한 연구가 있다. 노동자가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인적자본 스 톡이 축소되거나, 노동자가 저생산성 성장 산업 쪽으로 이동하는 현 상이 가속화하면서 이론상으로 성장 둔화를 부추겼을 수도 있다. 이 런 현상이 발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이 미친 영향의 규모와 전반 적인 무역은 성장 둔화를 두드러지게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부족한 듯하다.
- 미국 제조 산업에 속한 기업과 고용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대중국무역의 영향이 실재하고 노동자와 지역 사회에 현실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지만, 성장 둔화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미국은 이미 장기적으로 상품 생산에서 서비스 생산으로 이동하는 중 이었으므로 중국이 주요 수출국으로 부상하지 않았더라도 성장은 둔화했을 것이다. 중국이 이런 이동 속도를 약간 부추기기는 했지만, 원인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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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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