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피드팩토리로 불리는 아디다스 독일 신발공장은 생산직 노동자가 없는 무인 로봇 공장이다. 전통적 공장에서 400명의 생산직이 하던 일을 로봇 공장에서는 열 명의 로봇 오퍼레이터가 처리한다. 노동 절약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신발 생산의 혁명이다. 그런 데 흥미로운 점은 이 독일 공장의 생산비가 중국, 인도네시아의 전통적 공장들보다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절약된 인건비 이상으로 로봇이 비싸기 때문이다.
사실 스피드팩토리의 목적은 생산비 절약이 아니다. 이 공장의 역 할은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신제품을 소량 생산해 시장에 빨리 내 놓는 것이다. 아시아 공장들에서는 신발 한 켤레 생산에 두 달이 걸리 고, 또 소비지로 이동하는 데 두 달이 걸린다. 하지만, 독일 스피드팩토리 공장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 달도 걸리지 않는다. 이 공장에서 는 디자인만 넣으면 신발이 완성된다. 하지만 가격은 일반 신발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그래서 이 공장이 타깃으로 삼는 소비자는 일반 대 중이 아니라 최신 제품에 돈을 아끼지 않는 이른바 얼리어댑터들이다.
호사가들은 아디다스의 스피드팩토리가 아시아의 노동집약적 공장들을 머지않은 미래에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장담과 달리 찬찬히 따져보면 스피드팩토리 같은 공장이 기존 공장들을 대체할 가능성이 당장은 크지 않아 보인다. 현재 기술로는 로봇 투자가 수익률 높은 투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8년 말 독일과 미국의 로봇 신발공장 생산량은 아디다스 전체 생산량의 0.2퍼센트에 불과했 다. 로봇이 비싸다 보니 고가의 사치성 신발만 생산 중이다. 그런데 사 치성 신발은 대량으로 판매되기 어렵다. 연 4억 켤레의 대중용 신발을 생산하는 아디다스 공장을 사치재 공장으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로봇 공장으로 대중용 신발을 생산하려면 당연히 로봇 가격이 충 분히 싸야 한다. 더구나 나이키 같은 경쟁사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생산 을 시작했을 때도 이전보다 높은 수익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로봇 공장이 기존 공장을 대체할 수 있다.
- 이윤율 저하가 이어지는 것은 기술진보에서 기계의 가격 자체를 낮 추는 기술진보, 즉 노동을 절약하면서 동시에 기계도 절약하는 기술진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 노동과 기계를 동시에 절약할 정도로 기술이 크게 진보하는 시기를 산업혁명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혁명'이라는 말이 붙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런 기술진보는 어렵기 때문에 예외 적으로만 발생한다.
- 생산수단 소유자가 생산물을 차지하는 소유법칙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은 수천 년간 이어져 온 계급 지배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농업 경제의 봉건 질서에서는 왕이나 귀족이 토지를 소유하면서 무력으로 소작농에게 소작료를 걷었다. 그리고 이런 소유자 계급이 지배하는 질서는 봉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탄생할 때도 사라지지 않았다. 계급 지배는 형태만 바꿔 지속됐다. 토지를 이용한 농업경제가 기계를 이용 한 산업경제로 바뀌었고, 위계적 신분제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주의로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생산수단 소유자가 노동을 지배하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생산물 소유자는 생산을 이어가기 위해 생산과정에서 소모된 자원 들을 복구시켜야 한다. 기계의 물리적·기술적 마모를 복구하고, 또한 인간이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유지 ·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자는 회계에서 말하는 감가상각비이다. 후자에 필요한 비용은 일반적으로 임금에 포함된다.
그런데 생산물 소유자는 이런 복구비용을 지불하고도 생산에 지출된 노동 중 일부를 얻는다. 이를 잉여노동이라고 부른다. 기업 회계로
말하면, 기업들은 매출에서 감가상각비를 공제한 순매출을 얻고, 여기서 다시 한 번 인건비를 공제해 이윤profit을 얻는다. 이 이윤의 본질이 바로 잉여노동이다.
그렇다면 잉여노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간단히 말해 무급노동unpaid labor(부불不拂노동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이 바로 잉여노동이다. 
- 기술진보는 생산성을 상품소비로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제도의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 20세기 초 포드자동차는 노동생산성을 일곱 배 높였는데, 만약 그 자동차를 구매할 소비자가 없었다면 공장의 상당 부분 이 가동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즉, 높아진 생산성만큼 판매가 늘지 않 으면 유휴 자본이 증가해(가동률이 저하돼) 자본 절약 효과가 상쇄된다. 생산성을 실현하기 위해 유효수요에 초점을 맞췄다. 케인스주의는 정 부가 소비와 투자에 직접 나서도록 권고했고, 금융규제를 통해 이윤 이 금융자산이 아닌 실물 투자로 이어지도록 유도했다. 미국에서는 보수 정당의 대통령마저 “우리 모두는 이제 케인스주의자다” 라고 선언했다. 20세기 초중반 케인스주의 정책은 효과를 발휘했다. 기업은 더 많은 기계를 구매했고, 낮은 실업률로 노동자의 소득과 소비 역시 증가했다. 2차 산업혁명과 케인스주의 정책 덕에 인류 역사상 가장 높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산업혁명의 효과가 점차 사라지면서 편향적 기술진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 수 백 명의 노동자가 용접봉을 들고 일하던 자동차 차체 공정은 1980년 대 후반 로봇으로 자동화되었다. 엄청난 노동 절약이었다. 그럼에도 자동차 기업들의 투자 자본 수익률은 오히려 하락했다. 자동차 기업들의 평균자산수익률(순이익을 기업이 보유한 총자산으로 나눠준 비율)은 1960년대까지 두 자릿수였지만 대규모 자동화가 이뤄진 1990년대 이후에 는 한 자릿수로 하락했다. 노동을 절약했지만 자본을 너무 많이 소모 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런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만이 아니다. 미국 경제 전체의 이윤율도 이때부터 지금 까지 하락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정보통신혁명으로 불리는 과학기 술과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제도의 변화가 이윤율을 잠깐 반등시키는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이윤율이 다시 하락하고 있다.
- 기술들이 자본을 절약했다면 자동차 기업들의 자산수익률이 장기적으로 상승했어야 하는데, 그런 상승은 관측되지 않는다. 2000년대에 수 익성을 개선한 기업들이 일부 있었으나, 이는 기술변화가 아니라 수익 성 낮은 공장들을 폐쇄하는 구조조정 덕분이었다.
국민경제 전체 지표로 봐도 최근의 자동화 기술이 노동과 자본을 동 시에 절약하고 있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는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 의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Gerard Dumenil과 도미니크 레비Dominique Levy의 추계에 따르면, 자동화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 경제는 2004년 이후 자본생산성이 하락하고 노동생산성 상승 속도도 둔화했다. 자본생산성은 노동자 1인당 생산액(노동생산성)을 노동자 1인당 자본의 양(자본집약도)으로 나눈 것으로, 투자된 자본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는지 보여준다. 편향적 기술진보에서는 자본생산성 증가율이 마이너스이다. 중립적 기술진보에서는 자본생산성 증가율이 플러스이다. 뒤메닐은 편향적 기술진보로 자본생산성이 장기간 하락하는 시기를 마르크스의 궤도 the trajectories a la Marx라고 부른다.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Robert J. Gordon도 1870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의 총요소생산성 추이를 분석해 비슷한 결론을 내놨다. 경제학에서 총요소생산성은 기술혁신을 통한 노동생산성 향상을 의미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2004~2014년 총요소생산성은 연평균 0.4퍼센트 증가에 그쳤다. 2차 산업혁명 이후인 1920~1970년 1.9퍼센트는 물론이거니와 정보통신혁명 시기로 불리는 1994~2004년 1.0퍼센트보다도 낮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이야기되는 기술혁신이 생각만큼 대단 치 않다는 것이다. 고든은 2000년대 기술혁신이 예전만큼 대단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누구도 미래를 예견할 수는 없지만, 미래의 모습이 1994~2004년 의 닷컴 10년을 닮을지 최근의 2004~2012년을 닮을지 정도는 물을 수 있다. ... 업무 관행이 1994~2004년 빠르게 전환한 이후 변화의 속 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 증권거래소 일일거래량, 창업률, 제조업 생산능력의 증가, 순투자 비율, 컴퓨터의 가격 대비 성능의 향상 속도, 컴퓨터 칩의 밀도 증가율 등 모든 점에서 1990년대 말에 최고로 활성 화되었다가 최근 10년 동안 성장속도가 급격히 둔화되거나 정체되거나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한 것이 200년 이상 계속되었고, 컴퓨터가 인간의 일을 대신한 것이 50년 넘도록 계속되어 왔다는 점이다. ... 최근 의 10년을 근거로 지금이나 앞으로나 '오십보백보일 것이며 큰 변화 가 없을 것이다.”
-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07~2009년 세계금융위기 때 서민들은 엄청 난 피해를 입었다. 반면 천문학적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들은 금융위기 와중에도 보너스 잔치를 벌였고, 서민의 생활고와 무관하게 경영위기 를 탈출했다. 시민의 분노는 극에 달해 2011년 9월, 월스트리트를 점 거하자는 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미국 전역에서 발발했다. 유럽 에서도 그리스,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 기업의 탐욕과 불평등 을 비판하는 대중운동이 일어났다. 경제학계에서도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2010년 고든은 미국의 성장이 불평등의 역풍으 로 인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2012년에는 노 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Joseph Stiglitz가 기업들의 지대추구가 불평등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3년 토마 피케티 Thomas Piketty는 21세기 자본》을 출간해 소득 불평등을 세계적 이슈로 부상시켰다. 그는 세계가 이대로 가면 자본 상속이 가장 중요한 부가 되는 세습자본주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논란 와중에 발표된 《제2의 기계시대》, 옥스퍼드대학교의 일자 리 보고서, 세계경제포럼의 4차 산업혁명론 등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기술 책임론이었다. 불평등이 부자에게 유리한 제도 탓이 아니라 기술변화 때문에 발생한 필연이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기업 측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들은 이런 보고서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연일 대서특필했다. 4차 산업혁명론이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배경에는 불평등의 책임을 둘러싼 기업 측의 선전이 분명 있었다.
- 이윤으로 자사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이윤이 지대rent인지 아닌지를 파악해보기 위해서다. 좁은 의미의 지대는 토지 소유권에서 발생하는 이득을 뜻하지만, 요즘은 이전소득을 광의의 지대로 부른다. 지대는 누군가의 이득이 누군가의 손해가 되는 제로섬게임에서 발생하는 소득이다. 그런데 제로섬게임에서는 자기 자신과 거래할 수 없다. 자신의 플러스가 자신의 마이너스가 되니 말이다. 이윤으로 자사 상품을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그 이윤이 지대라는 의미다. 요컨대 디지털 기업의 이윤은 그 본질이 지대다.
- 경제성과 측정을 둘러싼 혼란은 경제학이 스스로의 계급성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학은 경제성과를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효용의 증감으로 정의하고, 그 효용의 증감을 상품가격으로 측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상품경제의 목표는 효용의 증가 이전에 자본가의 이윤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상품경제는 소비자 효용이라는 중립적 목표를 위해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이라는 계급적 목표를 위해 조직된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던컨 폴리Duncan Foley는 신경제로 불리는 디지털 경제의 핵심이 기술에 대한 혁신이라기보다 세계적 수준에서 노동을 이전받는 지대추구 방법의 혁신이라고 꼬집었다. 회계감사 기업인 피더블유씨PwC가 평가한 2015년도의 세계 100대 기업을 보면, 40퍼센트 가량이 지적재산권, 독점, 금융, 천연자원으로 돈을 버는 기업들이었다.14 이런 기업들의 성장은 기술적 찬사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 성장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술혁명과 경제성장 정체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현재 상태도 이런 지대추구가 영향을 미친 결과다.
- 짐바브웨는 1990년대 후반부터 산업 기반이 무너지며 2000년대 내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였다. 토지개혁에 실패해 식량 생산이 절반으로 줄었고, 제조업 가동률도 20퍼센트 미만으로 하락했다. 실업률은 80퍼센트가 넘었다. 광물 수출로 얻은 외환을 식량 수입에 사용해 가까스로 경제를 유지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광물 수출이 인프라 파괴로 감소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광물 가격마저 폭락하자 결국 경제가 붕괴하고 말았다. 외화 부족으로 식량 을 수입하지 못해 식량 가격이 폭등했고, 이에 연관된 다른 상품들의 가격도 함께 상승했다. 정부는 식량을 비롯한 공공 물품을 사기 위해 중앙은행에 국채를 넘기고 화폐를 받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통되는 화폐량이 폭증했다. 17 화폐 발행을 남발해 통화가치가 폭락한 것이 아니라, 상품가치의 폭등에 대응해 화폐량이 같이 폭증했다는 것이다. 
즉, 화폐량은 짐바브웨 사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통화수량설의 역사적 증거로 자주 인용되는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혼란도 마찬가지다. 경제학 교과서들은 물가 지수와 통화량 지수가 비슷한 추이로 1조 배 증가하는 그래프를 그려놓고, 이 를 화폐수량설의 직접적 증거라고 설명한다. 교환수단인 통화가 마구 발행되어 통화가치가 폭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인과관계가 뒤집어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전쟁배 상금을 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승전국들은 배상금으로 자기 나라의 전쟁 적자를 해결하려고 했다. 독일 정부는 금을 얻기 위해 수출을 늘려 야 했지만, 생산시설 상당 부분이 전쟁으로 파괴돼 생산량은 국내 수요조차 충족하지 못했다. 휴전 직후 독일은 금 준비금을 비롯해 철도, 차량, 선박 같은 장비들을 모두 승전국에 빼앗겼고, 심지어 석탄도 무 상으로 송출해야 했다. 승전국 국민의 정서는 “독일놈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La Boche payera!” 였다. 1921년 3월 독일이 승전국들의 예비 요구사항 일부를 준수하지 못하자, 연합국 군대는 뒤셀도르프, 뒤스부 르크 등의 라인강 동쪽 도시들을 즉각 점령했다. 1923년에는 루르 탄 광지역도 점령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상품 부족으로 물가가 치솟았 고, 정부는 공공물품 구매와 배상금으로 쓸 금을 확보하기 위해 화폐 발행을 늘렸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야기했다.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역시 화폐량의 증가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는 것이다.
화폐수량설은 상품가격이 오르는 원인을 항상 화폐수량이 증가한 데서만 찾는다. 이렇다 보니 화폐수량설을 강령으로 삼은 통화주의 경 제학자들은 화폐긴축을 인플레이션에 대한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하 기도 한다. 하지만 짐바브웨나 바이마르 독일 시기의 혼란에서 본 것 처럼, 상품가격 상승의 원인을 화폐수량 변화에서만 찾는 것은 절반의 진실 그리고 절반의 거짓이다. 짐바브웨에서 화폐를 발행하지 않았더 라도, 어차피 생필품 부족과 중앙은행 자산의 부실로 화폐 시스템이 붕괴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경제는 1925년 즈음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는데, 이는 긴축이 아니라 1924년 미국의 도즈 계획Dawes Plan에 따라 배상금 징수 정책이 완화 됐고, 미국이 독일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한 덕분이었다.
- 그러면 왜 우리나라는 국내 시민이 아니라 굳이 미국 시민의 노동에 의존해 화폐를 발행하고 있을까? 1990년대 중반까지는 우리나라 중 앙은행도 정부가 지급보증하는 채권으로 주요 자산을 구성했다. 1995 년까지도 한국은행 자산의 60퍼센트 이상이 국내자산이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외환위기 직후부터 외국증권 비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IMF 관리가 끝난 2002년에는 한국은행 자산의 90퍼센트가 국외자산으로 채워졌다. 외환위기가 한국 화폐 제도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화폐의 불안정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외환위기는 대외 결제수단인 달러 부족으로 시작됐고, 이후 정부 지불능력과 국민경제 미래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국민경제의 화폐 가치는 정부의 지불능력, 즉 미래의 국민경제에 대한 신뢰에 의존한다. 외환위기는 원화의 가치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외환위기와 화폐위기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 한국의 화폐는 자국 시민의 노동이 아니라 달러에 의해 그 가치가 유지되며, 국내에서 달러를 가져오는 핵심 주체는 수출기업이다. 국가주권의 한 요소가 화폐주권이라면 한국은 제대로 된 주 권을 가지고 있지 못한 셈이며, 보편적 등가물로서 화폐를 만드는 것 이 주권자의 역할이라면 한국사회에서 주권자 역할은 시민보다도 수 출기업이 하는 셈이다. | 이런 화폐의 식민성은 외환위기 이후에도 한국 원화가 지속해서 불 안정해지는 원인이다. 한국은 환율 변동성이 선진국 사이에서도 가장 큰 나라다. 2009년이 대표적 사례였다. 당시 한국은행은 GDP의 20 퍼센트에 달하는 20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세계금융위기 여파로 수출이 급감하고 달러 자산이 줄자 국내외 언론에서 “제2의 외환 위기”가 언급될 정도로 외환시장이 요동쳤다. 미국과 한국이 상대국에 화폐를 대여해주는 한미통화스와프를 체결하지 않았다면 정말 제2의 외환위기가 발발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정부가 재정적자나 국가채무에 민감한 이유도 화폐의 이 런 불안정성 탓이다. 우리나라는 자국 화폐 가치를 자국 국채로 지지 하지 못할 정도로 정부의 지불능력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지불할 빚이 늘면 시장이 과민반응을 한다.  2019년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퍼센트로, OECD 평균 110퍼센트나 주요 7개국 G7 평균 120퍼센트보다 한참 낮다. 이런 수치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정부가 재정적자를 늘려 사회복지를 확충 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국가채무 비율이 높은 나라들은 미국, 일본, 유로국가들처럼 오랜 기간 정부 신뢰를 바탕으로 자국 화폐를 세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나라들이다. 한국과 비슷하게 무역비중이 높고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들, 예를 들어 스웨덴, 호주, 대만 등은 국가채무가 5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 한국의 치명적 약점은 일본과 달리 가계부채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가계부채가 많다는 건 국내 은행들의 자산이 가계부채로 채워진다는 뜻이다. 가계부채 비율이 높을수록 은행이 정부에 빌려 줄 자산이 부족해진다. 2019년 일본은 가계부채 비율이 GDP 대비 60 퍼센트대인 데 반해, 한국은 100퍼센트에 달한다. 은행들이 가계에 물 려 있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선진국 중 최고이다. 참고로 국채 구 매의 또 다른 핵심인 국민연금의 경우 아직은 여유가 있지만, 본격적 으로 연금지출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기금이 바닥난다. 정부가 돈을 빌 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 연금 적자를 채워야 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
- 성과급은 직장 내 '갑질'을 종사자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임금 체계다. 성과급은 임금총액을 두고 종사자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기업이 정해놓은 성과에 도달하기 위해 종사자 스스로 고강도 장시간노동을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기업 내 갑질은 이런 임금체계에서는 '성과 평가'라는 숫자로 포장된다. 물론 성과의 보상은 실제 지출한 노동보다는 항상 적다. 이윤이 존재하는 한, 제대로 된 성과 보상이라는 것은 허상일 뿐이다.
-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서유럽 노동운동에서 정착된 맥락은 한국과 다르다는 점에 유의하자. 유럽 노동조합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전국적, 산업적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전략적 경로로 주 장했다. 예로 스웨덴 노총은 1940년대 이후 “대기업 볼보의 선반공이 나 영세기업의 선반공이나 기업이 달라도 하는 일이 같으면 임금이 같 다.”라는 원칙을 천명하며 기업을 넘어선 전국적 임금협약을 체결했 다. 동일임금의 범위를 기업이 아니라 비슷한 일을 하는 노동자 전체 범위로 설정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노동이 동일한지 아닌지도 기업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에 의해 규정된다.
이때 노동조합이 정하는 동일노동 집단들 사이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최고와 최하 차이가 두 배를 넘지 않는다. 격차 가 크지 않다 보니 정교하게 동일노동들을 구별할 이유도 없다. 임금협약에서 강조한 것은 어떤 일을 하던 간에 사회가 누리는 풍요는 사 회적 분업을 통해 노동자가 함께 생산한 것이라는 연대의 원칙이었다.
즉, 노동조합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강조한 것은 임금 차이의 공정성 이나 고임금 추격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풍요의 사회적 성격과 임금의 연대성을 강조하면서 노동조합이 임금 결정의 주도권 을 쥐기 위해서였다. 노동조합이 임금 결정의 주도권을 가지면 당연히 노동자 간 격차는 줄고, 그만큼 경쟁도 약해진다. 그런데 서유럽 전통과 달리 한국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기업 내의 고임금 추격 전략에 주로 이용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에게 임금의 사회성과 연대성을 설득하지 못하 는 것이 핵심 이유다. 같은 노동조합에서도 최저임금인 연봉 2,000만 원과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연봉 1억 원의 격차를 버젓이 내버려 두 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현실이다. 심지어 공공부문 정규직 조합원 일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근거로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하 는데, 이들은 자격증이나 공채시험이 우월적 가치의 노동을 증명한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역차별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자본 간 격차가 지속해서 커졌을까? 역사적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저임금 문제는 수출주도 추격성장 과정에서 시작됐다.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해 중화학공업 수 출을 시도한 한국 제조업은 생산성을 좀처럼 상승시키지 못했다. 막대한 자본투자가 필요한 중화학공업에서 생산성이 정체 · 하락하면, 자본은 이윤율 하락을 막기 위해 임금을 낮출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중 반까지 정부는 제조업 임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노동시장을 억압적 으로 통제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까지도 제조업 임금이 서비스업 보다 낮게 유지됐다.
노동시장이 변한 계기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었다. 노동조합 결 성과 치열한 임금 인상 투쟁이 수년간 계속되어 수출제조업에서는 노동생산성 상승만큼 임금 인상을 달성할 수 있었다. 3저 호황으로 수출제조업의 가동률이 80퍼센트 이상으로 높아져 이윤율도 하락을 멈 췄다. 하지만 노동조합 조직률이 매우 낮았던 내수서비스업에서는 이런 임금 인상 투쟁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인력난이 이야기될 정도로 실업률이 낮아진 덕분에 임금이 약간 오르긴 했지만 충분하지는 못했다.
제조업과 내수서비스업의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은 자본집 약도 격차가 노동조합 격차와 결합한 이후였다. 노동조합의 임금 인 상 압박이 덜했던 서비스업 기업과 자영업자는 생산성이 하락하자 자본투자를 하기보다 저임금을 이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1990~1997년 자본집약도 격차는 1986~1990년보다 더욱 커졌다. 그리고 이런 자본집약도 격차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빠르게 증가했는 데,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자영업자가 되어 도소매·음 식·숙박업에 대규모로 진입했기 때문이었다.
- 동일생산성, 동일노동, 동일제도는 개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임금 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임금에는 공정성이 없다. 임금형태 는 착취를 은폐하며 노동자 스스로 착취하도록 독려하는 보상 체제일 뿐이다. 노동시장을 독립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임금의 공정성을 분석 하는 노동시장 전문가들의 접근법에도 문제가 있다. 앞서 봤듯 노동시장은 이윤율, 투자, 기술, 산업예비군 규모, 노동조합의 역량 같은 노 동시장 외부 변수에 종속되어 있다. 임금만 보아서는 임금조차 분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임금 격차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답 은 하나뿐이다. 임금을 시장의 법칙이 아니라 노동자의 윤리에 따라 조정하는 것이다. 노동의 사회적 성격, 임금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자들 모두가 인정하고 임금의 평등성과 연대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이런 평등성과 연대성은 노동조합이 조직률을 높이고 사회적 힘을 키워, 시장 밖에서 임금을 결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평등과 연대에는 원리나 법칙이 있을 필요가 없다. 사회적 합의 또는 조합원의 합의가 필요할 뿐이다. 최대 두 배 정도만 임금 차이를 허용 하기로 한다든지, 아니면 아예 직무 경력에 따라서만 임금 차이를 최소 범위 내에서 인정한다든지. 평등과 연대의 원칙 속에서 직무에 필 요한 노동강도나 숙련을 감안해 약간의 격차를 두면 그만이다. 이런 결정은 시민 또는 조합원의 윤리에 속한다. 이런 평등과 연대의 임금 정책은 물론 제한적이다. 임금노동제는 이윤율이 하락할 때 언제든지 노동자에게 반격을 가할 수 있도록 애초부터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하더라도 평등과 연대의 임금정책은 노동조합이 계급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힘을 키우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된다.
- 신자유주의로도 불리는 2000년대 노동시장 신축화(유연화)는 실업과 취업 사이 경계를 허물어 반(半)실업 반(半)취업 상태의 불완전취업자 를 다수 만들어냈다. 비정규직이 바로 그런 불완전취업의 대표적 형태 다. 우리나라에서는 여기에 더해 자영업을 노동시장의 배후지로 활용 해 신축화를 극대화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자영업을 노동시장의 배 수통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산업예비군 숫자를 살펴보자.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 르면 2019년 경제활동인구는 3,000만 명, 취업자는 2,700만 명, 실업자는 300만 명이다. (고용보조지표를 이용했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잠재적 취업가능자를 더한 숫자다.) 그런데 이 취업자 중에는 제대로 된 취업자가 아 닌 경우가 많다. 예로 임금노동자 2,000만 명 중 700만 명은 불완전 취업의 대표 격인 비정규직이다. 자영업 700만 명 중 100만 명은 실업 과 비슷한 상태로 볼 수 있는 무급가족종사자이고, 400만 명은 임금노 동자 평균보다 못한 월 200만 원 이하 수입을 벌고 있다. 자영업이지 만 반실업 상태로 볼 수 있다.
정리하면, 2019년 우리나라에는 300만 실업자와 1,200만 불완전 취업자가 있다. 3,000만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인구가 제대 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 참고로 노동시장의 가장 대표적 문제인 비정규직은 80퍼센트가 중소기업, 개인기업(자영업) 등 자본규모와 자본집약도가 낮은 부분에 존재한다는 점도 확인해두자.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개인기업에서 48퍼센트에 이르며, 중소기업에서도 38퍼센트나 된다. 대기업의 경우 26퍼센트, 일반정부는 15퍼센트이다. 전체 비정규직의 80퍼센트가 중소기업과 개인기업에 밀집해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중소기업, 개인기업에서의 고용과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쌀이나 채소 같은 농산물 생산이 아니라 순전히 매매 차익을 목적으로 거래되는 토지, 즉 부동산 상품이 된 토지는 기본적으로 가공자본 fictitious capital의 원리를 따른다. 자본이라는 점에서 증식은 하는데, 가공 이라 함은 현재의 노동이 증식의 토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가공자본의 크기는 미래 소득에 대한 청구권 가격으로 결정된다. 임대료, 이자, 배 당 같은 형태의 소득을 미래에 얼마나 청구할 수 있는지로 자산의 가격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가공자본이란 착취할 미래에 대한 기대로부터 등장한다. 예로 10억 원의 명동 한복판 점포 부지는 먼 미래까지 지대로 10억 원을 걷을 수 있다는 기대를 표현한다. 기대이기 때문에 가공자본은 주관적으로 커질 수 있고, 심지어 미래는 끝이 없으니 상한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 토지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농업용이 아니라면 토지 자체는 어떤 생산물도 만들지 않는다. 토지 소유로 얻는 미래의 지대(토 지 임대료)가 있을 뿐이다. 즉 미래의 지대에 대한 청구권 가치가 현재 의 토지 가격을 결정한다. 물론 여기서 미래의 지대는 주관적 기대치 이다. 10년 후, 20년 후 지대는 그때의 수요-공급 사정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단, 토지는 생산이 불가능해 공급보다 수요 측 변화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토지 수요 기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래의 금리와 지대에 대한 주 관적 예상이다. 내가 10억 원이 있는데 이것을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 한다고 생각해보자. 먼저 적금 이자가 연 5퍼센트라면, 3년 후 금리 수 입은 약 1억 5,000만 원이다. 그런데 10억 원으로 연 5,000만 원 이상 임대료를 얻을 수 있거나, 3년 후 매각 가격이 11억 5,000만 원 이상이 될 것이라 예상되는 토지가 있다면 당연히 이것을 사는 것이 이득 이다. 여기서는 짧게 3년을 가정했지만, 현실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짧 게는 10년, 길게는 30~50년의 경기변동에 따른 금리와 토지 수요 변 화를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누구도 이렇게 긴 미래를 정확히 예 상할 수는 없다. 정확한 예상이 불가능한 만큼 주관적 심리가 가격 결 정에 크게 개입한다.
금리와 토지 수요 예상에는 경제성장과 인구증가가 핵심 변수다. 경 제가 성장하고 인구가 증가하면 공급이 제한된 토지의 상대가격은 당연히 오를 것이다. 고도성장기에는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기 때문에 대 도시의 토지가격이 더 빠르게 상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도시 중 대도시라 할 서울, 그중에서도 대기업 본사와 명문 고등학교가 밀집한 강남이 그런 사례다. 금리 역시 경제가 성장하면 자금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상승한다. 다만 금리는 정부의 통화정책도 영향을 미치는데,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통화긴축을 할 경우 금리가 더 상승한 다. 물론 정부 정책은 경기 변화에 따라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이뤄지 기 때문에 경제성장 예측과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는다. |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경제와 인구가 감소할 때도 토지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자본과 인구의 집중 때문이다. 불황이 닥치면 집적 concentration이 집중centralization으로 발전한다. 100억 원의 신규자금 을 열 개 기업이 아니라 두 개 기업에 몰아서 투자하는 것이 집적이라 면, 신규자금이 100억 원에서 80억 원으로 줄어들 때, 두 개 기업이 나머지 여덟 개 기업을 합병하여 이전보다 더 많은 자본을 쌓는 것이 집중이다. 경제와 인구가 감소할 때 지방 군소도시의 경제와 인구를 서 울이 흡수하는 방식으로 토지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서울이 커지는 만큼 지방 군소도시는 몰락한다. 1960년대 자본이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서울로 자본을 집적해 성장 을 극대화했다. 물론 대도시로 자본이 집적되는 현상은 다른 선진국 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지만,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는 추격성장 국가에서는 이런 집적이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은 대도시 집 중도가 선진국 사이에서도 높은 편이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과장 만은 아니다.
- 서울로의 집적은 경제와 인구의 성장이 둔화할 때 집중으로 발전한 다. 2010년대 이후 서울의 토지 가격 상승은 집적이 집중으로 발전하 면서 이뤄진 것이었다. 시민들은 국민경제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을 지역은 서울이라고 생각한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지 역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서울로 올라가고, 지역 유지들도 자 산 가치를 유지하려고 서울에 투자를 늘린다. 경제성장률이 1퍼센트 하락하면, 지역경제는 2퍼센트 하락하고, 서울경제는 그래도 1퍼센트 상승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작동방식이다. 출산율과 경제성장률이 이 전보다 많이 하락했지만 최근 부동산 가격은 서울에서는 폭등, 지방에 서는 폭락으로 양극화됐다.
- 이윤에는 착취라는 그것의 기원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지만, 이자에 이르면 그 기원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스스로 증식하는 자본만 남아 있다. 예로 경제학은 은행이 예금과 대출을 통해 얻은 이윤을 금융중개서비스라고 부르며 새롭게 창조된 가치로 평가한다. 2014년 국민계정에서 보면 금융중개서비스로 창조됐다고 평가되는 부가가치가 40조 원에 이른다. 물론 이 40조 원에는 그 어떤 착취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 임금주도성장론의 내적 결함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경험했던 바이기도 하다. 임금주도성장론이 불가능하다는 증거는 다름 아닌 1997년 국가부도 사태였다. 우리나라 경제는 1989년 3저 호황 종료 이후에도 자본투자가 증가했고 임금 상승도 이어졌다. 특히 1987년 노동자대투쟁 효과로 이전까지 정체되어 있던 임금이 빠르게 상승하던 시기라 마치 임금 인상이 투자와 고용을 견인하는 것처럼 거시 지표가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실제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림 12는 우리나라의 민간 경제성장률(요소소득 기준)을 고정자본스톡 증가율과 자본생산성 증가율로 분해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경제는 자본투자 주도로 성장해 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특히 주목해서 볼 시기는 1989~1996년이다. 큰 폭의 자본생산성 하락 속에서도 자본투자가 이전 수준으로 유지되어 경제성장률이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었다. 더욱이 이런 투자 덕에 임금도 상승할 수 있었고, 임금분배율도 약간이나마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성장은 지속 가능한 것은 아니어서, 1997년 국가부도 사태를 기점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임금주도성장론은 과잉투자로 인한 임금상승을 임금 인상으로 인한 투자 촉진으로 오해한다. 그 결과 임금주 도성장론이 적용되는 1990년대의 성장이 왜 1997년 국가부도로 이어 졌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 임금주도성장론은 자본투자만큼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낙관주의를 전제한다. 임금 인상이 자본가에게 이윤율 보존을 위한 투자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그 투자 의욕이 임금 인상으로 낮아진 이윤율을 다시 높 인다. 케인스처럼 말하자면, 임금 인상은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을 일 깨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본투자와 생산성에 관한 낙관주의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실과 상당히 다르다.
저성장 속에 이뤄진 한국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사례였다. 그리고 그 효과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나 임금 격차 완화에 생각만큼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다. 그렇다. 면 2018~2019년 최저임금 인상은 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까?? 간단하게 말해 최저임금이 시장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금주도성장론을 근거로 한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자에게 오히려 불리한 결과를 가져온다.
- 경제학에서 널리 알려진 불평등 이론은 쿠즈네츠 곡선Kuznets Curve이다. 쿠즈네츠 곡선은 역U자 모양(1)으로, 불평등이 처음에는 경제성장 탓에 증가하다가 나중에는 경제성장 덕에 감소하는 것을 표현한다. “성장은 모든 배를 뜨게 하는 밀물이다.” 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경제성장과 함께 불평등이 증가했다 감소하는 이유는 노동시장의 공급·수요 변화와 관련이 있다. 성장 초기에는 농촌 지역(또는 해외)에 서 산업화된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어 노동자 임금이 정체하고, 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자본의 이윤이 증가한다.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한 저숙련 노동자와 기존 고숙련 노동자의 임금 격차도 증가한다. 하지만 경제가 계속 성장해 농촌 노동력이 고갈되면, 노동력 부족으로 임금 상 승 속도가 빨라지고 이윤은 감소한다. 대중교육으로 노동자의 교육 격차도 완화되면서 임금 격차 역시 감소한다. 실증적으로 보면, 선진국에서는 20세기 초중반 쿠즈네츠의 역U자 곡선이 실제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1980년대 중반까지 고도성장과 함께 불평등이 증가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불평등이 감소하는 역U자 곡선이 나타났다.
- 불평등 연구로 세계적 경제학 스타가 된 토마 피케티(Tomas Piketty는 U 자형 불평등 곡선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은 원래 큰 것이 정상이다. 20세기 초중반의 불평등 감소가 오히려 예외적이었다. 이는 세계대전으로 인한 자산 파괴, 산업혁명 이후 고도성장 덕분에 일 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가 불평등 지표로 사용하는 상위 1퍼센트나 상위 10퍼센트의 소득비중을 보면, 선진국 대부분에서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의 불평등 곡선은 큰 U자형으로 나타난다. 피케티는 불평등 확대가 자본주의 법칙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은 자본과 비슷 한데, 다만 그 근거나 대안은 다르다. 
먼저, 그는 자본을 재정의한다. 경제학에서 통상 이야기하는 기계설비, 건물 같은 생산물(자본재)이 아니라 부동산과 천연자원, 심지어 19세기의 노예 같은 매매 가능한 모든 것을 자본에 포함한다. 생산 측면 이 아니라 분배와 거래 측면에서 자본을 규정하다 보니 그렇다. 그에 게 자본은 생산에 대한 기여가 아니라 소득을 분배받을 수 있는 소유 권의 힘이다. 다음으로, 그는 이런 재정의를 전제로 자본수익률을 매 매 가능한 소유권의 가격과 소유권 덕분에 얻는 소득의 비율로 규정 한다. 그의 추정에 따르면 18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자본수익률은 3~6퍼센트 사이에 있었다. 자본수익률은 역사적으로 일정했다.
불평등 쟁점에서 변수는 국민소득증가율이다. 자본수익률은 일정 하지만 국민소득증가율은 변동이 크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에서 숙련편향적 기술변화가 빨라진 시기는 90년대 초반부터.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제조업 생산직에서 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해 기업의 기술발전방향에 큰 영향을 미침. 이때부터 한국기업들은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생산직을 줄이는 자동화 기술에 투자를 집중함. 정보통신 산업도 빠르게 발전해 적당한 숙련의 직무들도 빠르게 감소. IMF 구조조정으로 노동시장 유연화가 확대대 비정규직과 아웃소싱도 급증함. 다만 우리나라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로 인한 임금 양극화가 개별노동자의 숙련특성보다 기업별 격차로 나타난 점이 미국과 다른 특징이다. 강한 노동조합과 해고 제한이 있는 대기업에서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의 영향이 작았고, 무노조에 해고도 자유로운 중소기업에서는 기술변화의 영향이 빠르게 나타났다. 대기업은 이런 제약을 회피하기 위해 숙련편향적 기술에 영향을 받는 직무들을 중소기업으로 대거 아웃소싱했다. 기술변화와 한국적 노동시장 제도가 결합해 대기업 · 중소기업 간의 엄청난 임금 격차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 케인스주의 경제학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경제적 불평 등의 원인을 지대추구 행동의 증가에서 찾았다. 
지대추구란 사회적 이익 이상으로 개인적 보수를 챙기는 행위다. 완전 경쟁 시장에서는 개인이 받는 보수가 딱 사회적 생산에 기여한 만큼이라, 개별적 보수와 사회적 이익이 일치한다. 그래서 불평등도 과 도하게 커지지 않는다. 하지만 시장 경쟁이 제한되고 지대추구 행동이 증가하면 불평등은 확대된다. 그런데 현실 시장에서는 완전경쟁이 쉽 지 않고, 정보의 불균형으로 시장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때 시장 실패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부다. 정부가 시장 의 규칙을 정하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는 20세기 후반의 경제적 불평등은 정부가 상위계층의 영향력 아래에서 지대추구를 규제하지 않은 탓이라고 주장한다. 
금융시장은 지대추구의 대표적 사례다. 금융부문은 정부의 규제완 화 덕분에 20세기 후반부터 다양한 지대추구 기술들을 개발해왔다. 예 로 규제가 없는 장외시장의 파생금융상품들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정 보를 얻을 수 없어 금융기관이 소비자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은행 들의 대출상품도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소 비자는 은행에 정당한 이자 이상을 뜯길 수밖에 없다.
거대 디지털 기업들 역시 지대추구의 최전선에 있다. 구글, 마이크 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큰 수익을 올리는 것은 이들이 엄 청난 기술을 개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쟁자의 시장진입을 막고 시장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 21세기의 정부들은 새로운 독점기업들을 오히려 지적재산권 제도로 보호한다. 천문학적 연봉의 최고경영자들, 또는 상위 1퍼센트의 부 자들 대부분이 이런 지대추구 게임의 승리자들이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오늘날의 정부들은 지대추구 행위자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을 돕고 있다. 역진적 조세제도와 인플레이션 관리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경우 부자나 지대추구로 얻은 수 입에 대해서는 오히려 중산층 노동자보다도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이 렇다 보니 기업은 이들에게 더 쉽게 수익을 배분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목표로 완전고용을 포기하는 통화정책은 실업률을 높여 노동자 임금을 정체시킨다.
불공정한 시장 탓에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 개혁진영에서도 많이 이야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대로 부를 축적 하는 대표적 경제 행위자가 재벌이다. 이들에 따르면 재벌은 원·하청 불공정거래, 부당내부거래, 골목상권 침해 등으로 지대를 추구한다.
- 21세기의 정부들은 새로운 독점기업들을 오히려 지적재산권 제도로 보호한다. 천문학적 연봉의 최고경영자들, 또는 상위 1퍼센트의 부 자들 대부분이 이런 지대추구 게임의 승리자들이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오늘날의 정부들은 지대추구 행위자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을 돕고 있다. 역진적 조세제도와 인플레이션 관리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경우 부자나 지대추구로 얻은 수 입에 대해서는 오히려 중산층 노동자보다도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이렇다 보니 기업은 이들에게 더 쉽게 수익을 배분할 수 있다.
- 쿠즈네츠 곡선을 재해석해보자. 기본적으로 기술진보로 이윤율이 상승할 때는 자본축적이 활발해지고 고용도 증가한다. 인구가 급 격하게 증가하지 않으면 산업예비군이 감소하고 노동시장 경쟁이 완화되면서 임금도 상승한다. 여기에 노동조합의 계급투쟁이 더해지면 임금 상승이 가속된다.
그런데 임금 상승은 이윤율 상승에 뒤처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산업 예비군이 감소하고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가 커지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윤율 상승 초기에는 임금이 노동생산성보다 덜 오르면서 이윤분배율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기술선도 기업의 초과이윤으로 기업 간 이윤 격차가 커지고, 특별 이윤을 얻는 기업의 임금이 먼저 오르면서 노동 간 임금 격차가 커질 수 있다. 다만, 이런 격차들은 곧 줄어든다. 노동자가 투쟁으로 노동생산성 상승을 따라잡는 임금 인상 을 쟁취하고, 기술선도 기업의 특별 이윤도 시장경쟁과 기술추격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예비군의 감소, 노동조합의 평등주의적 임금정책, 정부의 분배 · 재분배 정책이 더해지면서 소득 격차는 더 빠 르게 줄어든다. 요컨대, 쿠즈네츠 곡선은 20세기 초중반의 이윤율 상 승기 특징을 간단한 곡선으로 묘사한 것이다. 쿠즈네츠 곡선이 묘사하지 못하는 것은 이윤율 하락 국면에서의 불평등이다.
- 이윤율이 하락하면 임금 상승에 제동이 걸린다. 노동생산성 상승만큼만 임금을 인상해도 자본생산성 하락으로 이윤율은 계속 하락한다. 이윤율 하락으로 자본축적이 감소하면 고용 증가가 둔화하 고, 일자리 경쟁으로 임금에 하방 압력이 가해져 결국 임금이 하락한다. 특히 산업예비군과 직접 경쟁하는 일자리에서는 임금 하락이 상 대적으로 더 크다. 그 결과 임금 격차가 커진다. 실업으로 노동조합이 약화되고 노동시장 제도가 노동자에 불리하게 개혁되면, 임금 상승은 노동생산성 상승에도 뒤처지면서 임금분배율이 하락할 수도 있다. 1970~1980년대 미국과 유럽 그리고 1990년대 중반 한국 상황이 바로 이러했다.
- 케인스는 <자본>과 비슷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자본순환의 어려움을 유효수요 부족으로 제기했다. 생산설비처럼 오랫동안 사용 하는 내구재는 미래의 수입이 수익성을 결정하기 때문에 자본가는 위 험을 감수하면서 동물적 충동animal spirit으로 투자를 감행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 자본가는 이 충동을 억제하고 안전자산인 화폐를 보유(유동성 선호)하려 한다. 그런데 자본가가 투자 를 주저하면 자본재 수요가 감소하면서 경제가 침체한다. 케인스는 경기침체 해법으로 자본가의 동물적 충동을 부추기는 방법을 제안했다. 정부 스스로가 투자에 나서고 금융을 억압해, 자본가가 화폐를 소유하는 대신 투자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
- 《자본》은 자본순환의 어려움을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투자 자본은 재료비나 인건비같이 상품 판매와 함께 곧바로 회수되는 유동자본과, 기계설비같이 자본순환에 묶여 오랜 기간에 걸쳐 회수되는 고정자본으로 나뉜다. 투자 자본의 수익률을 결정하는 것은 두 부분인데, 하나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을 추출하는 고정자본의 생산성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 화폐'로 순환하는 유동자본의 회전시간이다. 전자를 생산과정, 후자를 유통과정이라고 부른다. 
케인스는 여기서 유통과정에 주목했다. 하지만 케인스의 결함은 고정자본의 생산성과 유통시간을 종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고정자본의 생산성 자체가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케인스의 해법이 오히려 이윤율 하락을 더 빠르게 만들 수도 있다. 예로 케인스주의는 1970년대 자본생산성 하락 국면에서 영향력을 잃었는데, 이는 단지 이데올로기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케인스주의가 당대 경기침체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제학계의 좌파는 케인스주의의 복권을 주장하지만, 자본생산성 하락 국면에서 적자재정은 오히려 위기를 가속할 수 있다.
-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 선언》(공산당선언)에서 “억압자와 피억압자 는 항상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숨겨진, 때로는 공공연한 싸움을 벌 였다. 그리고 각각의 싸움은 그때마다 사회 전체의 혁명적 재구성 또 는 투쟁하는 계급들의 공멸로 끝났다.”라고 썼다. 마르크스가 묘사한 것은 자본축적의 S자 곡선 끝자락 모습이었다.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 전체의 혁명적 재구성”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첫째 자본의 혁명이고, 둘째 노동의 혁명이다. | 먼저, 자본의 혁명은 산업혁명이다. 우리는 1장에서 이를 살펴봤다. 한국의 경우 산업혁명과는 거리가 멀다. 혁명은커녕 추격성장의 한계 만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40여 년간 일본을 모방 해 성장했지만, 모방 이후 기술 선도자로 나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고등교육기관이 몰락해 기술선도 경제로 나가기 위한 지식 기반을 만드는 데도 실패 중이다. 미국 유학 알선기관이 되어버린 한국의 대학에서는 지식 축적이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노동의 혁명을 검토해보자. 노동의 혁명은 자본주의를 지 양하는 사회혁명이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이 대표적 사례였다. 하 지만 자본의 혁명과 달리 노동의 혁명은 지금까지 성공 사례가 없다. 소련은 붕괴했고, 중국은 당이 조절하는 시장경제로 나아갔을 뿐이다. 20세기 내내 진행된 서유럽 노동운동의 도전 역시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보완하는 수준에서 중단되었다. 21세기의 노동운동에서는 자본 주의를 위협할 만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한국의 노동운동 역 시 대안은커녕 '귀족노조' 같은 말로 조롱받기 일쑤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두 계급 모두 위기에 대응하지 못 할 때 “공멸”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계급적 공멸의 한 형태가 바로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은 사회 변화에 관한 과학적 분석을 포기하고, 대신 기득 권에 대한 비난, 영웅적 정치인에 대한 기대, 대중의 정념을 발산하 는 정치를 확대한다. 대표적 사례가 1930년대 독일이었다. 당시 독일에서는 자본가가 공황에 대처하지 못했고, 노동자계급을 대표한 정당들 역시 경제와 사회를 재건하는 것에 실패했다. 이런 두 계급의 실 패 틈새에서 반유대주의와 게르만 민족주의를 앞세워 히틀러가 권력 을 잡았다.
지난 2016년 인종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내걸고 당선된 미국 트럼 프 대통령 역시 그런 사례였다. 세계금융위기 전후로 공화당과 민주 당이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정성을 해결하지 못하자, 위대한 아메리카' 를 내걸고 이민자 추방을 외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겪은 딜레마 역시 포퓰리즘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21세기, 자본의 작동중지 상태에서 자본의 무능과 진보진영의 실패 로 말미암아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적 공멸이라는, 체제의 극한적 위기 가 심화하고 있다.
- 보통 주류경제학은 계획경제가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 에 경제성장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학이 간과하는 다른 측면이 있다. 바로 완전고용 문제다. 시장경제의 민간 기업은 수익성을 기준으로 투자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런 투자 결정은 인구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돈이 안 되면 일할 수 있는 노동자도 실업자로 놀리는 것이 시장경제의 법칙이다. 심지어 수익률 이 하락하면 자본도 놀린다. 
계획경제에서는 투자가 이윤율이 아니라 생산량 최대화를 목표로 결정된다. 생산은 자본 부족, 인구 부족 상태까지 증가한다. 이런 생산 방식은 시장경제에 비해 자본생산성이 떨어지지만, 자본과 인구를 놀 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적 경제성장에는 유리한 점이 있다. 1940년 대 이후 소련은 중앙당국의 계획에 따라 적자에 연연해하지 않고(연성 예산제약이라고 부른다.) 자본투자와 고용을 늘리면서 고도성장을 달성했 다. 물론 스탈린의 5개년 계획이 성공한 정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로버트 앨런Robert Allen의 시뮬레이션 분석에 따르면 레닌의 신경제정책이 계속됐더라도 성장 속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신경제정책이 같은 결 과를 덜 폭력적인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 5개년 계획은 당의 관료적 경직성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소련 경제 에 치명적 후유증을 남겼다. 스탈린은 5개년 계획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자 당 정책에 대한 이견 표명을 금지했다. 이런 공포정치 탓에 생 산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은 보고되지도 않았다. 현장 피드백 이 없었던 탓에 한번 잘못 결정된 계획이 수정되지 않고 파국적 결론 을 낼 때까지 이어졌다. 1970년대가 되자 소련의 경제성장률이 급락했다. 이전까지 5퍼센트 이상을 기록하던 경제성장률이 1970년대 초반 3퍼센트대로 하락하더니, 1970년대 후반에는 2퍼센트대로 주저앉았고, 1980년대는 이보다 더 하락했다. 일본과 비교해보면, 1970년 소련의 1인당 GDP는 일본의 60퍼센트였는데, 1989년에는 40퍼센트로 낮아졌다. 성장 속도가 둔화하자 소련 국가자본주의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 국유기업 부채는 말하자면 공산당의 권력 유지 비용이다. 중국은 세계에 개방되어 있음에도 정치, 사법, 언론 등에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정부 통제가 이뤄지는 나라다. 국민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자유를 만끽하지만, 정작 자기 나라에서는 거대 권력의 감시하에 있다. 불만이 크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도 공산당이 독재를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경제성장으로 국민의 불만을 관리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은 어떤 경우에도 고용과 소득증가를 포기할 수 없다. 국유기업의 부채는 당의 독재를 위한 비용인 셈이다.
- 국유기업 부채는 중국의 금융시장 부실로 이어진다. 대형 국유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대형 국유상업은행들이다. 이 은행들은 중국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자산으로 삼아 국유기업에 지속해서 대출 을 제공하고 있다. 국유기업의 부실 채권을 튼실한 달러 자산으로 희 석하는 식이다. 그리고 지방 국유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금융당국 규제조차 받지 않는 그림자금융이다. 그림자금융은 지방정부가 경제성과를 내기 위해 당국의 관리를 피해 만든 일종의 관제 사채시장이다. 그런데 이런 그림자금융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어 한순간에 파산할 수 있다. 현재 부실 규모가 너무 커 중앙정부조차 쉬쉬하면서 상황을 덮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세계 경제기관들은 중국의 기업부채와 금융 부실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지뢰라고 경고한다.
- 인공지능 기계의 확대로 일자리가 사라질 테니, 국민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임금을 대체하는 새로운 소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기본소득 정책은 근거도, 방향도 잘못된 대안이다. 
우선 기본소득 정책은 기술변화가 초래할 미래를 과장한다는 점에 서 문제다. 인공지능 발전으로 자동화가 확대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고실 업을 지속해서 유지하는 산업혁명은 존재할 수 없다. 자본주의적 기술발전은 노동을 절약(노동생산성 향상)하면서 동시에 노동을 증대(생산 량 증가)해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1장에서 살펴본 바 있다.
- 기본소득은 생산과 소득의 관계를 무시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신고전파는 소득을 생산에 대한 기여로 규정한다. 소득을 높이려면 생산에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 이것이 생산을 자극하는 인센티브가 된다. 케인스주의는 생산적 투자를 자극하기 위한 소득을 이야기한다. 생산의 주체인 기업이 위험한 설비투자에 나서야 경제가 성장하는데, 정부는 기업이 설비투자에 집중하도록 금융소득을 규제한다. 마르크 스주의는 이윤율 동역학을 통해 생산과 소득의 모순을 분석했다. 자본 주의적 생산에서 이윤은 착취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고용을 유발하는 기업 투자는 이 착취가 원천이다. 착취가 줄면 투자가 줄고, 고용이 줄면, 노동자 소득이 감소한다. 소득을 얻기 위해 착취를 수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이런 이론을 전제로 신고전파는 생산성에 비례하는 소득을, 케인스주의는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소득을, 마르크스주의는 임금소득의 모순을 혁파할 자본주의 변혁을 주장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에는 어떤 생산이론도 없다. 오직 분배 정책만 있다. 이러한 정책은 사실 복지이론에도 미달하는 것이다. 복지이론은 노동시장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사회임금(사회보장지출에서 사회보장세입을 공제한 것)제도를 설계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현금을 나눠주는 것이다. 분배의 대상과 방법만 있지, 시쳇말로 “소는 누가 키우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한 분배 이론이라는 것이다. 만약 어떤 정부가 그럼에도 기본소득을 실시한다. 면, 결국 재정적자라는 딜레마에 부딪혀 파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컨대, 기본소득은 상상 속 4차 산업혁명의 구빈법이다. 거대한 실업의 공포를 만든 후 그들을 구제할 방법으로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제시하니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하는 월스트리트의 엘리트들은 진보진영 이상으로 기본소득에 우호적이다. 이유는 그들이 지대추구 로 독차지하는 사회적 부를 기본소득이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기본 소득은 현 엘리트들의 기득권을 전혀 침해하지 않으면서, 시장 경쟁에서 패배한 시민들이 급진적 저항에 나서는 것도 방지한다.
- 한국에서도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시중에 화폐를 공급했다. 그런데 한국의 중앙은행은 미국보다 제약이 많다. 4장에서 본 한국은행 대차 대조표를 떠올려보자. 한국은행은 위험 자산을 희석하기 위해 더 많은 달러를 보유할 필요가 있는데, 세계 경제의 침체에 뒤이은 수출 감소 로 달러 확보는 이전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정부 부채의 급증도 화폐스톡의 또 다른 변화이다. 방역으로 인한 경제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유례없는 재정지출을 계획하 고 있는데, 지출의 대부분이 빚으로 조달된다. 정부의 빚이 증가해 지 불능력에 문제가 발생하면 화폐스톡의 가치가 영향을 받는다. 정부는 화폐 →생산>에서 기업에 직접 대출을 해주고 있고, 생산 → 상품〉에 서도 지원금으로 해고와 사업 철수를 억제하고 있으며, 상품 →화폐) 에서 공공사업을 늘리는 방식으로 소비와 투자를 보조하고 있다. 거의 모든 경제 주체들이 재정 지원을 요구하고 있어 재정중독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정부가 빚을 늘리는 방법은 국내의 저축과 해외 자금을 이자를 주고 빌려오는 것이다. 경제를 금리 생활자와 노동 소득자로 단순화하면, 정부 빚은 금리 생활자에게 이자를 주고 자금을 빌린 뒤 노동자에게 세 금을 거둬 이자와 원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금리 생활자의 자산을 수탈 하지 않는 한, 정부 빚은 이렇게 국채를 매개로 한 착취의 연장선에 놓 이게 된다. 그래서 정부 부채가 증가할수록 당연히 착취도 증가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파산해버린다. 정부 빚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 이윤율이 하락하며 생산에 이용되지 못하는 자본과 인구가 증가한다. 《자본》의 결론은 자본축적의 필연적 결과로 과잉자본과 과잉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과잉자본은 금융화를 통해 경제를 혼란으로 이끈다. 과잉인구는 “빈곤, 노동의 고통, 노예 상태, 무지, 포악,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져 시민을 비참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19 사 태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바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마자 기업단체들은 규제완화를 대책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들이 요구한 규제완화 대상은 유통, 금융 등 생산보다는 가치 이전과 관련 있는 영역이 대부분 이었다. 10장에서 본 것처럼 시장 안에 있는 개별 기업은 자신의 이익 극대화가 사회적 부의 생산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경제학은 개별 기업의 합계로 국민경제의 성장을 파악해 기업 들의 이런 오해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생산적 노동을 증가시키지 못하 는 개별 기업의 이익 추구는 국민경제의 성장을 오히려 낮출 뿐이다.
개혁진영의 학자들과 정당들은 무차별적 가계소득 지원을 코로나19 대책으로 주장한다. 생존 위기에 빠진 시민을 돕는 것은 정부의 당연 한 역할이다. 하지만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100만 원씩 50조 원을 일 시에 주고, 필요하면 계속해서 더 주자는 식의 주장은 긴급한 구제의 필요성을 넘어서는 이야기다. 이들의 논리는 임금주도성장론과 비슷하게 소득을 주면 경제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11장에서 본 것처럼 소득이 성장으로 바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자 본생산성 상승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를 전제한다. 2018~2019년 최저 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저임금계층 임금총액의 감소로 귀결된 것에서 도 볼 수 있듯, 적자재정을 통한 무차별적 소득 지원은 재정위기를 야 기해 결과적으로 국민 모두의 소득을 줄일 수 있다.
한편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출 주도의 한국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 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불어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이 달러 자산을 찾아 국외로 탈출할 경우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2020 년에 신흥시장에서는 엑소더스란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세계금융위기 당시보다 몇 배나 큰 자본 유출이 발생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 이런 자본 도피가 한국 같은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 농업 기반의 봉건제가 산업 기반의 자본주의로 변화한 이행기를 짧게 살펴보며, 시대가 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해보자.
서유럽은 14세기부터 흑사병과 잦은 전쟁으로 농민이 감소했다. 토 지의 생산성도 하락했다. 농민과 토지 생산성이 동시에 감소하면 당연 히 지주가 토지에서 취득하는 잉여농산물도 크게 감소한다. 지주가 지 대로 취득하는 토지당 잉여생산물, 즉 지대율이 폭락하자 지주인 귀족 들은 농민을 쥐어짜 자신의 몫을 늘리려 했다. 농민은 가혹한 수탈을 견디지 못해 영지를 탈출하거나 반란을 일으켰다. 귀족들은 농민을 붙 잡으려 군대를 이끌고 농촌 마을을 습격했고, 지대율 하락을 토지 확 대로 상쇄하기 위해 주변 지역을 자주 침략했다. 이렇게 전쟁과 살육이 수백 년간 서유럽을 휩쓸었다.
- 서유럽 봉건제는 300년 가까운 긴 시간에 걸쳐 붕괴했다. 그리고 16 세기부터 두 세기에 걸쳐 여러 혁명이 발발했다. 그리고 이 혁명들이 새로운 세계를 건설했다. 네덜란드 귀족과 상인들은 에스파냐의 과도 한 세금징수에 맞서 싸우며 국가주권이라는 현대 사상을 만들었다. 새 로운 사상으로 무장한 네덜란드는 독립 이후 무역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뤘고, 주식시장과 동인도회사 같은 현대적 경제 제도도 만들었다. 왕의 막무가내 세금 징수에 저항한 영국 귀족들은 수차례의 내전을 거 치며 의회를 강화해 왕의 권력을 통제했다. 의회주권이라는 관념이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국가재정을 정비하며 현대적 화폐제도와 중앙은행도 설립했다. 화폐 유통의 경계로서 국가경제라는 범주는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은 왕이 없는 세계에서 자신들의 이성으로 국가 를 설계했다. 인류 최초의 작업이었다. 주권의 주체로서 국민이 탄생 했고, 성문헌법, 삼권 분립 같은 현대적 정치 제도도 만들어졌다. 프랑 스에서는 평등과 자유가 같다는 인권선언에 따라 평등하지 않았던 민 중이 자유를 위해 봉건제 타파의 전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재산 소 유 중심의 자유를 주장하는 부르주아 혁명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모든 개인의 평등한 자유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운 동이 출현했다. 
18세기 중반부터 영국에서는 새로운 발명들이 쏟아져 나왔다. 증기기관, 방적기, 방직기, 철강제련 같은 유명한 발명들이 이어졌고, 모자, 핀, 못 등 소소한 생산물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생산되었다. 그리고 이런 기술들이 서유럽 대륙으로 전파되어 서유럽 전체의 고도성 장을 이끌었다.82 영국이 18세기까지 만들어 놓은 경제·정치 제도들 은 새로운 산업경제에 적합할 뿐 아니라 이를 발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됐다. 입헌군주제는 왕가의 지대추구를 제한했고, 자본가들의 이해관 계를 조세, 전쟁, 법률 제정 등에 반영했다. 토지에 묶여 있던 농민들 을 노동능력의 판매자로 만든 것과 중앙은행권을 만들어 신용을 확대 한 것 역시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봉건제 붕괴 이후 200년에 걸친 부단한 혁명이 새로운 세계를 이렇 게 만들었다. 물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계급 사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15장에서 본 사회주의의 도전은 이런 계급 사회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도전은 성공하지 못했다. 소련과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는 20세기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못했다.
오늘날 세계는 저 중세 말기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지대율 하락 은 이윤율 하락으로, 농민의 몰락은 대규모 실업과 빈부격차로, 전쟁과 약탈은 반세계화와 인종주의 확대로, 흑사병은 코로나19로, 체제 붕괴의 형태는 달라도 잉여노동 추출과 그것을 재생산하는 제도의 위기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본주의는 이전 같은 활력을 보여주기 어려울 것이다. 자본주의를 혁신하자는 대안들이 나오겠지만, 자본주의 내적 결함은 정책 개혁 수준이 아니라 근본적 변화로 해결해야 한다. 14장 에서 본 S자 곡선의 최종 단계에 있는 세계자본주의는 봉건제 말기와 비슷하다. 여기서 잠깐 1840년 중국의 딜레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 다. 중국 명나라, 청나라는 서유럽 봉건제가 몰락할 때 오히려 봉건제 를 혁신해 봉건 국가를 400년 더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체제의 변혁 대신 혁신을 선택한 결과는 19세기 말의 반식민지로의 몰락이었 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혁신이 아니라 자본주의 내적 결함을 해결하는 변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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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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